중남미를 여행하는 수 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대다수가 스페인어를 거의 배우지 않고 여행한다는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말은 알면 알수록 좋다.

혹시나 도움이 될 사람이 있을까(1순위 미래의 나)해서 스페인어 공부한 방법을 기록해둔다.


1. 수업

내가 스페인어를 처음 접한 건, 5년 전 혼자 중남미 여행을 준비하면서다. 사실 그 때만해도 중남미를 거쳐서 유럽을 갈 생각에 별 열정이 없었다. 학교에 적이 있던 때라 스페인어 수업을 청강했다. 원어민 선생님이 영어로 스페인어를 가르쳤다. 내 영어 실력이 빼어난 건 아니지만, 영어로 배우는 게 훨씬 쉬운 것 같았다. 겨우 몇 시간만 듣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진 못했다. 그 후 인턴을 몇 달 하고(이 사이에 학원을 안 다니고 뭐 했는지 모르겠다.), 멕시코로 날아갔다.

산크리스토발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후에 스페인어 수업을 들었다. 그때 강사가 지금은 산크리스토발 한국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메모(Memo). 그때는 단체 수업이었는데도 쉽게 잘 가르쳐줬다. 그래봤자 2주 배우고, 여행을 떠났다. 이 정도 수준에선 말 붙일 사람도 없어서 말이 늘지 않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취직을 했고, 당장 스페인어 학원을 끊었다. 6개월 과정의 문법 수업을 (2개월 과정은 제끼고) 수강했다. 그리고 나선 한동안 정체기였다. 그러다 스페인어 화상강의를 알게됐다. 콜롬비아의 아드리와 1:1 수업을 더듬더듬하며 감을 유지했다. 내 실력에 쉽지는 않았다.


2. 자습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늘 스페인어를 생각했지만, 막상 아시아나 유럽을 여행하니 공부를 안하게 됐다. 그러다 몽골에서 만난 남매의 열정을 보고 크게 감동, 당장 시베리아 열차에서부터 스페인어를 다시 공부했다.


스페인어 회화 핵심패턴 233_허마야

https://ridibooks.com/v2/Detail?id=754011976

여편님도 여행 전에 스페인어 학원을 다녔다. 이분한테 배웠다며, 책을 추천했다. 복습하기에 딱이었다. 전자책이나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인어 초급에서 중급으로_민킴

https://ridibooks.com/v2/Detail?id=1195000102

http://blog.daum.net/mh_king/112

팟캐스트를 뒤지다 발견했다. 딱 나에게 맞는 제목이었다. 팟캐스트를 들어보니 책도 있다고 했다. 전자책(스마트폰)mp3, 팟캐스트 쓰리 콤보로 공부할 수 있다. 반복하다보면 꽤나 효과가 있다. 특히 초급 수준에서 중급 수준까지 빠른 듣기 훈련이 주효했다.



3. 실전

대충 이 정도했으니 좀 됐을 줄 알았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갔더니 한 마디도 못 알아먹었다. 그냥 영어로 소통했다. 모로코를 지나 포르투갈, 브라질에 있으니 스페인어 쓸일이 없었다. 그래도 어휘는 늘어서 메뉴나 안내문 보기가 편했다. 하지만 우루과이, 호스텔에서 워크어웨이를 하면서 멘붕이 왔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좌절에 빠져지냈다. 다행히 산티아고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는 자기도 이 동네 사람들 말이 너무 빨라서 잘 못알아 듣겠다고 했다.

전환점은 볼리비아, 아직까지도 스페인어가 제2언어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확실히 말이 느렸다. 우유니 투어를 하면서 가이드 후고와도 말을 많이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수크레에서 과외를 구했다. 여기저기 학원을 알아보다가, Condor Cafe에서 1:1을 쉽게 구했다. 친절하고, 다정한 선생님과 말을 하니 실력이 쑥쑥 늘었다. 하지만 스페인어 공부한다고, 새벽에 인터넷도 안잡히는데서 유투브 영상 보려고 설친게 화근이었다. 어마어마한 독감에 걸려, 수업은 일주일만에 끝내야 했다. 그래도 역시 언어는 자신감이다. 이때부턴 거침없이, 페루 리마에서 게스트들과도 스페인어를 섞어 말하고, 에콰도르의 새 공원 관리 아저씨들과도 새를 기다리며 한 시간 넘게 말을 섞었다. 여행 중 과외하기 좋은 곳은,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 과테말라의 퀘살테낭고, 안티구아 등, 콜롬비아의 메데진, 페루의 쿠스코, 볼리비아의 수크레 등 많다고 들었다.

아 그리고, 1년 동안 틈틈이 1,2주에 한 번꼴로 스페인어로 일기식의 여행기를 썼다. 거기에 아래 유투브, 팟캐스트 등의 컨텐츠를 틈날 때 마다 들었다.


유투브 영상 (대충 난이도 순이다.)

엑스트라_Extr@espanol

https://www.youtube.com/watch?v=86OaYqmjTrs&list=PLRps6yTcWQbrPgh0nNqNwin8UULKxlRcE

영어로 치면 프렌즈 시트콤 컨셉의 스페인어 공부 드라마다. 진짜 공부를 위해서 만든 거라 억지는 좀 있지만 난 재밌게 봤다. 민킴과 비슷한 난이도다.


IslaPresidencial

https://www.youtube.com/user/IslaPresidencial

이건 여행 전에 봤던 건데 자막 없으면 난이도가 높다. 중남미 대통령들이 조그마한 무인도에 고립되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중남미 정치를 좀 알고 보면 꿀잼이다. 차베스 따라다니는 모랄레스가 매우 귀엽다. 하지만 차베스는 오바마가 암살해버린다.


Los puros Criollos

시즌 1: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J7uD3fYm0Fqynnr-mwkUhA4YlKYoY0lw

시즌 2: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rklQJ85XyNlSeF_nbnnxuLZ0lflBWU-k

시즌 3: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RQxCJRB6ffuqVpyufkX4tvu60mKe-4U

시즌 4: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RQxCJRB6fdNuAnye_Xvyaa_YV5eGETM

콜롬비아 6시 내고향, 콜롬비아 뿐만 아니라 안데스, 남미의 공통된 문화가 많이 보인다.


Ted en Español

https://www.youtube.com/channel/UCshVTOdmZLdLj8LTV1j_0uw

영어가 테드이듯이 스페인어도 테드가 있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g3klnAfDSZxFWl492CeUzGRF6kck1Re-

그 중에 좀 재밌어 보이는 것만 모아봣다.


팟캐스트

Note in spanish

https://www.notesinspanish.com/

커피 브레이크 스페니쉬와 함께 양대 산맥이다. 난 이게 좀 더 재밌었다. 영국 남자랑 스페인 여자가 진행한다. 초급부터 중급,, 고급까지 있다. 최근에 다시 고급 시즌2 업데이트가 시작되서 들어볼 생각이다.


Españolistos

https://www.espanolistos.com/

작년부터 시작한 따끈따끈한 팟캐스트다. 지금도 업데이트 중이고, 팟캐스트, , 유투브 강의까지 컨텐츠를 늘리고 있다. 미국 남자랑 콜롬비아 여자가 진행한다. 노트 인 스페니쉬와 마찬가지로 둘이 결혼했다. 이런 팟캐스트들의 아쉬운 점은, 영국/미국 남자의 스페인어 억양이 굉장히 거슬린다는 점이다. 콜롬비아 여자의 스페인어는 충분히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방송에서 나오는 아저씨들의 말투도 콜롬비아가 최고였다.) 스페인어 음악, 영화, 드라마, 공부법도 소개해준다.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http://blog.naver.com/silviaspanish

한국어로 팟캐스트와 책 등을 다양하게 진행하는 분도 있다. 좀 듣다가 너무 초급이라 말았다.


신문/방송

TeleSur

https://www.telesurtv.net/index.html

베네수엘라에서 만든 남미 종합 신문/방송사다. 중남미는 물론, 전세계 소식을 탈미국의 관점에서 보여주니 컨텐츠의 가치도 상당하다.


El mundo

http://www.elmundo.es/

스페인(?)의 국제 언론이다.


El Prensa Latina

http://www.prensa-latina.cu/

이건 무려 쿠바에서 운영하는 국제 언론이다.


기타

블로그_JARDIN DEL ESPAÑOL

http://adinerado.tistory.com/

혼자 공부하다가 문법적으로 궁금할 때, 그리고 꼭 한국말로 설명듣고 싶을 땐 여기를 이용했다.


난 바르셀로나의 팬이라 라리가 중계를 스페인어로 많이 봤다. 스페인어에 크게 도움되는 지는 모르겠다.


듀오링고_https://www.duolingo.com/comment/3208124

외국어 학습 어플리케이션인데 스페인어도 있다. 좀 해봤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다.


Los mejores podcast en español de 2017

https://digitalymas.com/2015/03/mejores-podcast-espanol-2015/

잘나가는 스페인어 팟캐스트 모음이다.


http://www.lingus.tv/

이런데도 있다


Posted by Cordon
,

매년 진행하는 시상식을 건너뛰는 대신 여행 기간 보고, 읽고, 들은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음악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음악_CHINO Y NACHO

본격적인 음악 여정은 크레타섬의 조르바에서 시작된다. Zorba the greek 따란, 따란,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Paco Ibañez가 부른 Andaluces de Jaén이라는 노래다. 안달루시아 올리브 노동요다. 이 노래만 들으면 지금도 땀의 숭고함에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리스본에서 Luis Sobral의 노래를 백 번 더 듣다가, 콘서트까지 본 것도 의의가 있었다.

본격적인 음악 여정은 남미 대륙으로 넘어오면서 시작된다. Despacito2월부터 버스 내내 주구장창 듣다가, 겨우 열기가 식을 때 쯤, 중미로 넘어오니, 저스틴 비버가 한 번 더 불러버리는 바람에 지금 한국의 거리에서도 듣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겁을 잔뜩 먹어서 라이브는 못들었지만, 카를로스 조빔이나 세르지오 멘데스 같은 형들과도 친해졌다. 우루과이로 넘어가기 전에, 호르혜 드렉슬러(Jorge drexler)를 안 것도 큰 수확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선 탱고 공연은 보러 안 가고, 메르세데스 소사의 라이브 공연 영상을 봤다. Todo Cambia 수건 돌리는 걸 보니, 신이 내렸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파타고니아에선 잠시 음악과 멀어졌던 것 같다. (대신 네루다의 시와 와인을 마셨다.) 산티아고에선 Los Cafres를 소개 받았다. 뚜루루루. 페루, 볼리비아의 젊은 열기를 느끼다보면 CNCOREGETTON LENTO가 스쳐간다. CNCO와 마찬가지로 그 전부터 꾸준히 듣긴 했지만, 에콰도르에서 마침 샤키라의 새 앨범 EL DORADO가 나왔다. 버스에서 아가들은 늘 뿌로부로 CHANTAJE를 외쳤다. (샤키라가 MALUMA와 같이 부른 노래다. 백지영 옥택연의 내 귀에 캔디 느낌이다. 엄마들이 이 뮤직비디오를 어지간히 좋아한 모양이다.) 안데스의 소리 EL CONDOR PASO를 들으면 지금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콜롬비아에서 CHINO Y NACHO를 발견한 것은 근래 몇 년 음악 인생의 최대 성과다. 최근에 작년 해체 소식을 접했지만, 지금도 데뷔앨범부터 차곡차곡 잘 듣고 있다. 김종국과 이정 조합의 느낌이다. 치노와 나초가 없었다면, 지난 몇 달이 15%는 심심했을 것이다. 쿠바에선 재즈도 부에나 비스타도 좋았지만, HASTA SIEMPRE COMANDANTE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멕시코에선 릴라 다운스를 뜨겁게 들었다. CD를 안 사왔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Calle 13Latinoamerica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리운 장면이 다 나온다.


사회+과학 부문

여행의 좋은 점은, 일상에서 읽기 힘든 두꺼운 벽돌책들을 읽을 만큼 집중력과 여유가 생긴다는 점이다. 최고는 제라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다. 여행은 총균쇠를 읽은 여행과 읽지 않은 여행으로 나뉜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 같은 인생의 스승을 만난 것도 행운이다.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총균쇠가 다 담지 못한 곳, 네팔 히말라야, 안데스 등 고원 산간지대 문명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칭키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영원한 푸른하늘, 초록 대지만큼 상상력을 넓혀줬다. 돌아보니 지리적 감수성을 넓혀준 책들이 여행을 많이 풍부하게 해준 것 같다.

무히카, 조용한 혁명은 내가 원하던 무히카에 대한 책이었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덕분에 나만의 커피 세계를 구축하겠다는 욕심을 내게 됐다.

사과공책_2016_http://cordon.tistory.com/148

사과공책_2017_http://cordon.tistory.com/228


문학 부문

여행하는 동안엔 소설이 잘 먹히지 않는다. 소설은 현실도피의 맛인데 그럴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라고 하면 수필류를 많이 봤다. 시작점에서 읽은 신영복 선새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청구회 이야기는 아직도 선명하다. 시베리아의 향기는 대문학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벵 테송의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는 한국에 두고 온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은 횡단열차 최고의 선택이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들 새로운 인생, 이스탄불 그리고 이난아의 평론집 덕분에 터키 여행이 세 배는 즐거웠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은 남미 대륙을 관통할 만큼 풍성했다. 화가, 혁명가 요리사도 멕시코 시티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문학공책_2016_http://cordon.tistory.com/148

문학공책_2017_http://cordon.tistory.com/228


2016년엔 영화가 참 재미없었는데, 2017년엔 좋은 영화를 몇 편 봤다. 다시 본 프리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화면이 좋았다. 영화는 영상미다. 드라마 나르코스의 인트로는 언제 들어도 설렌다. 귀국 후 본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티베트와 연결고리를 시작했다.


영화_2017_http://cordon.tistory.com/229

영화_2016_http://cordon.tistory.com/151


좋은 다큐를 많이 봤다. 코스모스는 총균쇠와 양대 산맥을 이룬다. 올해는 책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웨이스트 랜드 덕분에 리우에서 몇 일간 마음이 편안했다. 체 게바라 뉴맨, 그는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생선의 종말을 좀 더 읽찍봤다면, 이베리아 여행 경로가 대격변했을 것이다.

팟캐스트를 여기다 덧붙인다. 조선왕조실록에 감사를 표한다.


다큐_2017_http://cordon.tistory.com/230

다큐_2016_http://cordon.tistory.com/150






Posted by Cordon
,

몇가지 잡설들을 기록해본다. 우선 한국 돌아오는 일기다.


귀가일기_1011_1013

그간 서쪽으로 돌며 축적한 시차의 이득을 귀가길 한방에 까먹었다. 거기에 환승에 환승을 더하니 집까지 돌아가는데 23일이 걸렸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우선 항공권은 귀국 한 달 전, 멕시코시티에서 끊었다. 장거리 항공권은 가격 변동이 심하므로, 미쿡 LA공항에서 대만 타이페이를 거쳐, 인천공항에 떨어지는 일정이었다. LA공항에서 밤에 비행기를 탄다는 점, 인천공항엔 오전 11시에 떨어진다는 점이 매우 맘에 들었다. 중화항공(CHINA AIRLINES)이라고 나왔지만, 알고보니 대만항공이었다. 며칠 뒤, 치아파스까지만 여행한다는 루트를 확정하고, 치아파스 툭스툴라 공항에서 멕시코시티를 거쳐 LA공항으로 가는 편을 끊었다. 멕시코항공(AERO MEXICO)였지만 다른 저가항공과 별다른 가격차이가 없었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었다. LA공항을 거치는 항공은 모두 기본적으로 항공사가 제공하는 무료 수화물(부치는 짐)이 하나씩 적었다. 대만항공의 경우, 다른 노선은 무료 수화물이 1인당 2갠데, LA에서 출발하는 항공은 무료수화물이 하나였다. 우리야 어차피 큰 짐은 배낭 하나씩이니 이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멕시코항공, 기본 무료 수화물이 하나니, 미국까지 가는 노선은 무료 수화물이 0개였다. 그래서 수화물 옵션을 나중에 추가했다. 추가해도 홈페이지 어디서도 확인이 안되서 헤멨다. 어찌저찌 페이스북 계정에 메신져로 물어보니 짐 추가 됐다고 답을 줬다.


툭스툴라(TGZ)_멕시코시티(MEX)_1011_09:25_11:10_이코노미

준비한 간식을 다 먹고, 짐을 부치고 티켓을 받았다. 중간에 멕시티에서 환승 후 바로 출국하는 건데도, 여기서 출국 서류를 챙겨준다. 멕시코시티에선 바로 게이트로 가면 된다고 한다. 멕시코의 입출국 제도는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 공항 탑승구는 좁다. 꼴랑 게이트가 3개인 공항이다. 커다란 창밖을 보니 안개천지다. 당연히 비행기가 안뜬다. 연착이다. 딱 봐도 아침 비행기는 상습적으로 연착되는 것 같다. 비행기 언제 뜨냐고, 우리 다음 비행기도 있다고 물으니, 니네 시간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다음 비행기 시간 안 맞는 사람들은 다음 비행기 시간도 바꿔주는 모양새다.) 1시간을 기다리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비행기가 하나 둘 내린다. 2시간이 지나자 우리 비행기가 내리는 게 보인다. 그 사이 작은 기념품점도 구경하고, 빵도 하나씩 사먹었다.

새벽 산크리스토발에서 출발해서, 마냥 기다린 거에 비하면, 멕시코시티까지 가는 비행기는 금방이었다.


멕시코시티 공항(MEX)_LA공항(LAX)_1011_14:30_16:40_이코노미

처음 칸쿤 공항에서 왔을 때는 공항 노숙의 여파로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이번엔 다음 비행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짧고 굵게 공항을 둘러봤다. 넓긴해도 면세코너가 한쪽에 몰려있어서, 다음 비행기를 신경써야 했다. 우린 여기서도 와하카에서 본 식탁깔개를 찾아해맸다. 어느 기념품 가게에도 그런 건 없었다. 눈물을 닦고, 주류 코너로 갔다. 외국술은 제껴두고, 멕시코 술 중엔 데낄라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도 그 사이에 메스칼 이름을 단 것들이 있었다. 그 중에 와하카나, 다른 시내 마트에서도 많이 봤떤 LEYENDA 브랜드의 OAXACA 메스칼 큰 병을 하나 샀다. 이미 우리 배낭엔 작은 메스칼과 과테말라 럼 큰 병이 있었다. 요즘 인천공항 면세점 특별 단속 기간이라는 썰이 돌아서 꾹 참았다. 가장 충격적인 건, 산크리스토발에서 천 페소 주고 산 ZACAPA 럼이 면세점에선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1+1 행사까지하면서 팔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출국 과정은 신기하게도, LA행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멕시코 입국 때 작성하고 도장받은 출입국카드만 승무원에게 제출하면 끝이었다.


나름 국제선이라고 기내식 기대했는데, 꼴랑 간식이 끝이다. 미국으로 넘어가는 비행기, 사막이 보이고 도시가 보인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집들이 가지런하다. LA에 가까워오니 도시가 더 잘보인다. (평생 미국땅 처음보는 1) 와중에 10여 년전, 미국 와봤던 여편님은, ‘미국 입국은 준비를 철저히 해야해. 예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더 하겠지. 그때도 입국 전에 미리 가상대화 연습하고 그랬어. 발음도 구린데 어버버하면, 거기다 그런 모자 들고 다니면 딱 봐도 불법체류할 것 같잖아. 준비 단단히.’ 블라블라 내가 왜 여길 왔고, 나는 곧 비행기를 탈거며, 여기 비행기 티켓 서류가 있다 등을 영어로 그려봤다. 진심 이 시기만은 스페인어가 영어보다 편하던 때였다. 자꾸 스페인어가 나오려는 걸 영어로 참았다.


LA공항(LAX) 체류기_1011

어느새 저녁이 다됐다. 긴장어린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이상한 기계 주변으로 줄을 섰다. 뭐지? 우리도 저 기계로 뭔가를 해야했다. 띡띡 누르니 다행히 영수증 같은 것이 나왔다. 그걸 들고, 다시 입국 심사 줄을 섰다. ‘, 저 아저씨 봐봐. 순대국밥 사장님 같은 인상 아니니?’, ‘아니, 딱 봐도 중국사람 같은데? 한국 사람 저렇게 안 생겨.’, ‘우리 아빠 저렇게 생겼는데?’ 이러다 그 아저씨한테 심사를 받게 됐다. 두근두근, ‘한국 사람이세요?’ 두둥, 이름표에 SONG라고 쓰여있다. 한국 말로 어디 여행하다 왔냐 등을 가볍게 묻는다. 과테말라 안 갔어죠? GUATEMALA IS TERRIBLE. 내가 미국에서 나눈 영어회화의 전부다.

다음 관문은 세관이다. 귀여운 비글이 지나가며 냄새를 맡는다. 우리의 옥수수 모자에 흥미를 갖는다. 다행히 이건 음식물 취급을 안 받는다. 무사히 모든 절차를 통과했다.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안내가 없다. 더듬더듬 뒤지니 우리가 가야할 터미널은 반대편에 있었다. 누구 안내데스크에서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다. 중간에 아이폰을 사러갈까 했던 고민은 싹도 나오지 않는다. 정신 바짝 차리고 출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한산했던 이쪽과 달리 새로운 터미널은 반짝반짝, 휘황찬란했다. 들어갔더니 사림이 어마어마하다. 여기가 LA공항인지 인천공항인지, 아시아 사람들 천지다. 추석연휴의 영향인 것 같다. 앉을만한 자리도 화장실 앞에만 있다. 심지어 친근하게 커피빈도 있다. 멕시코에서 사온 술도 다시 배낭에 넣을겸 짐을 다시 정리했다. 옥수수 과자를 꺼내 먹으며, 그새 떠나온 멕시코가 그리워졌다. 엉엉


아직도 출국까진 시간이 남았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다. 여편님과 번갈아가며 공항을 둘러봤다. 아직 우리 비행기 데스크는 개시도 안했다. 3시간 전에 열릴 모양이다. 이제 지친다. 같은 시간대에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는 비행기편도 있다. 잠깐 1 부럽다. 저녁을 먹기로 했다. (원래도 안 먹을 생각은 없었다.) 미국에 오면, 햄버거를 먹어 보고 싶었다. 블로그를 뒤져보니 LA공항에도 유명한 안과밖 햄버거가 있다고 했다. 엄청 기대했으나, 비행기 티켓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다행히 공항 이층에 식당이 몇개 있었다. 여편님이 저 백작 샌드위치도 유명한 거라고 위로해줬다. 주문은 능숙한 여편님이 하고 왔다. 심지어 중간에 메뉴 하나를 환불까지 받아왔다.

배가 좀 든든해지니 체크인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유롭게 내려갔다. 두둥, 줄이 어마어마하게 생겼다. 제 시간에 비행기 못타는 거 아닌가 했다. 베트남에서 온 단체팀은 각자 어마어마한 전자제품도 챙겨왔다. 그래도 다행히 티켓을 받았다. 출국장도 난항이었다. 여기도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겨우겨우 들어갔다. 들어가니 비교적 한산했다. 둘다 지칠대로 지쳐서 면세점이 뭐고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적당히 쉴 곳을 헤메다, 쇼파가 많은 곳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비행기 타러 갔다. 옆에 또 인천행 비행기 탑승줄이 보인다. 2 부럽다.


LA공항(LAX)_타이페이 공항(TPE)_1012_00:35_1013_05:30_13시간 55_이코노미

부러움은 비행기에 들어서자마자 사라졌다. 대만항공은 엄청나게 아늑했다. 익숙한 백색톤이 아니라, 나무톤의 비행기 내부에, 대나무톤으로 구역 칸막이를 해놔서, 동남아 스파온 느낌이다. 지친 몸이 폭 녹는 듯했다. 밥은 또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빵과 파스타는 손이 델 정도로 뜨끈했다. 와인도 깔끔했다. 차는 당연히 맛있다. 이런 저런 영상을 보다가, 뷰티 인사이드를 매우 재밌게 봤다. 자다깨다 자다깨다 아침을 또 맛있게 먹었다. 밖에 비가 내리는지 비행기가 좀 흔들렸다. 하지만, 이 육중한 비행기가, 악천후 속에서도 충격 하나없이 부드럽게 착륙했다. 수 백번의 비행에서 최고로 꼽는 착륙이었다. 조종사의 실력까지 완벽한 비행기였다.


타이페이 공항(TPE)_1013_07:45_인천공항(ICN)_11:10_2시간 25_이코노미

타이페이 공항에 내리니 정신이 좀 들었다. 슬슬 공항 면세점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공항만 봐도 아기자기 재미나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중국 문화의 향기가 깔려있으면서도, 일본처럼 정돈이 잘된 느낌이다. 둘다 대만에 꽂혀서 다음을 기약했다. 가볍게 우롱차 하나를 샀다. 창밖에 아직도 비가 내렸다. 동이 트니 비행기를 탈 시간이다. 입국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세관에서 우리를 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단기로 나갔다가 케리어에 명품 담아오는 사람 잡기도 바쁠텐데, 쭈구리 배낭 열어볼 시간이 있을리 없다. 술이나 더 사올걸 그랬다.


적응기_10

마중나온 장인 장모님을 따라 처갓집으로 갔다. 가볍게 국수를 먹으니 잠이 쏟아졌다. 2시부터 저녁 6시에 장모님이 깨울 때까지 넋놓고 잤다. 만찬을 즐기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전날 올라와놓고, 오늘 온다고 거짓말을 했다. 통화 중에 우리집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거짓말을 하는 능력은 있으나, 들키는 능력도 겸비했다.) 그간 우리집에 들어와 살던 동생이 옮길 집을 알아볼겸 왔다. 그 후 일주일 간은 시차 적응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여행 내내 시차 적응이라곤 모를 정도로 1년 여를 14시간 시차에 천천히 적응했는데, 한방에 10시간을 적응하려니 힘들었다. 저녁 8시만되도 잠벼락을 맞기 일쑤였다. 그리고 곧바로 새롭게 일할 사람들과 함께 제주도로 23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한국적인 일정으로 움직이다보니 시차 적응은 자연스럽게 됐다. 중간에 다른 사람들과 회식자리도 가졌다. 한국 와서 만난 거라곤 가족 밖에 없다가, 낯선 사람들 그것도 일로 만나려니 어색함이 활화산처럼 터졌다. 회와 해산물만 부지런히 먹었다. 안타깝게도 이날 잠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2년 동안 안달루시아에서 올리브 따다 온걸로 기억할 것이다.

10월 귀국의 가장 큰 메리트는 기아의 한국시리즈를 편안히 보는 것이었다. 당초 연말 귀국을 예정했을 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당연히 우승했다.


그 후 10월 말에 동생이 이사가기 전까진 집안이 난장판이었다. 우리 짐을 풀기도 애매하고, 동생 짐도 싸야했다. 하림의 노래 중 아일랜드에서를 들으며, 여행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달콤하게 쉴날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디 엄마한테 붙어사는 대학생(혹은 노총각)이 배낭여행 다녀왔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이었다. 내가 돌아갈 집도 내가 정리하려면 달콤한 이불까지 손이 참 많이 간다. 다 누군가의 희생이 도움이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였다. 괜히 여행 내내 밤낮으로 운전한 버스/택시/기차/비행기 기사, 숙소의 스탭들, 식당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적응기_11

예상과 달리 111일부터 임시 사무실로 출근했다. (1월부터 출근하는 줄 알았다.) 힘들었다. 오랜 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는 일이 쉬운게 아니었다. 워드/엑셀 단축키가 헷갈렸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복학생의 마음이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여행 중 읽었던 블로그 중 하나는, 여행 기간 돌아가서 뭐할지에 대해 고민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고 한다. 돌아와서 운 좋게 취업이 됐다고 한다. 이 얘기를 읽고 여행 기간 고민은 자제하려고 했지만, 자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됐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 여행도 내가 잘나서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듯이, 와서 일하는 것도 팔할이 운이다. 스페인어는 쓸일이 없으니 공부를 안하게 된다. 한국에선 라틴어 수업이 인기였다고 한다. 나도 라틴어나 배워볼까한다.


적응기_12

한국에 온 순간 이미 2017년은 끝난 기분이었다. 거기다 11월부터 2018년을 준비하는 일을 하다보니 연말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여행 전과 후가 갖는 차이가, 연도 변화보다 컸다. 출근도 익숙해졌다. 마침 임시 근무지가 전직장 근처라 예전 회사 사람들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니 다 반가웠다. 틈틈이 다른 지인들도 만났다. 여행 얘기를 하자고 만나지만 보통은 각자 일상 얘기를 하게 된다. 여행기라도 안 썼으면 다 휘발유가 될뻔했다. 부록 몇 편을 더 쓰고, 사진 정리를 해볼 계획이다. 오늘은 꼭 배낭을 빨겠다.


1223일 엘클라시코를 매우 재밌게 봤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세계시민의 정체성으로 1231일엔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사진도 찍어 올렸다. 그간 취미로 가장 공들인 건 커피다. 최근 인스타를 보면 민망할 정도로 커피 투성이다. 멕시코에서 가져 온 여러 커피를 마시고, 볶았다. 다른 지역의 원두나 생두도 꾸준히 마셔보고 있다. 서울의 전설적인 커피집에서 마셔봐도 집에서 먹는 커피만 못하다. 커피를 볶겠다고 솥을, 프레스도 내려마시겠다고, 프레스도 구비했다. 또 하나 만족스러운 아이템은 스피커다. 15만원대 스피커를 하나 장만했더니 삶의 질이 부쩍 높아졌다. 여편님이 어린 시절에 모은 음악, 중고서점에서 라틴 음악 건져오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녁 먹고, 스피커 앞에 누우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이 든다. 중남미 여행에서 큰 소득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이젠 음악은 나의 영혼이다. La musica es mi alma.



1월부턴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로 했다. 쓰다가 안썼더니 휑한 느낌이다. 기록은 중요하다. 이 여행 전, 내 주활동 범위는 성수와 마포였다. 그땐 변방의 느낌이 강했는데 연남파크, 성수벨리 등 힙한 주류가 됐다. 새로운 비전 2020을 구상하고 있다. 혁신은 변방에서 나온다.

며칠 전, 사장님은 적응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무지도 또 다른 공간으로 바뀌면서 삶의 질이 부쩍 높아졌다. 아침 출근 시간 2호선 지하철 무리에 속하지 않는 다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원래 여행 후 일상 적응 걱정은 출퇴근 시간에 서울 지하철 몇 번 타보면 사라진다.

여행기는 이렇게 마친다. 추가할 부우로옥 몇 편은 잡다한 것들만 정리할 생각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가 둘이 장기여행을 다니는 걸 보면, 저건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둘이 다녀보니 좋은 점이 많다. (싸우긴 피터지게 싸운다. 그래도 붙어 다니는 시간으로 따지면 맞벌이부부 10년 차와 맞먹는 양이니, 이정도면 잘 지내는 편이다.)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부록_영화_다시 태어나도 우리_20170916

오자마자 상영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엄마, , 여편님 셋이서 봤다. 티벳이 다시 우릴 부른다는 계시였다.


부록_영화_페터슨(Paterson)_20180101

신년 영화제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봤다. 5일제의 따분함을 알리는 영화였다.


부록_독서_불안과 경쟁없는 이곳에서_201711

귀국 후 읽은 여러 책 중에 일과 상관없는 유일한 이야기였다. 매일 딱딱한 글만 읽다가 이런 이야기를 접하려니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막판엔 재밌게 읽혔다.


부록_독서_녹색평론_149~156

지난 삼개월 독서의 우선순위는 밀린 녹색평론 읽기였다. 끝내기 무섭게 구독 연장한 신간과 2년 연장 사은품이 도착했다. 짚한오라기의 혁명




Posted by Cordon
,

원두 볶기

한국에서 한 일 중 가장 생산적인 일을 꼽으라면 원두를 볶은 것이다. 엄마가 남대문에서 생두를 사워서 집에서 볶아 먹겠다고 했다. 나도 실험정신이 차올라서 좀 달라고 했다. 그 일요일 당장 조그만 뚝배기를 꺼내 원두 볶기에 도전했다. 처음 볶은 거라 아주 약불에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럼에도 1차 폭발밖에 일어나지 않아 신맛이 강했다. 마포 프릿츠의 커피와 비슷했다. 나를 이어 도전한 여편님은 나보다 짧은 시간에 이차 폭발까지 일어나 쓴맛이 강한 스타벅스형 커피가 됐다. 커피의 신맛, 단맛, 쓴맛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대략 감이 잡혔다. 하루가 지나니 원두에서 풍미가 나고, 드립으로 내려마시니 아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덩달아 베트남에서 사온 커피핀을 활용했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내려지니 라떼를 만들어 마시기 더욱 용이했다.

두번째 로스팅에서는 원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공정무역원두 중 얼굴있는거래의 르완다 코바카바 협동조합의 아라비카를 사용했다. 커피 계량 스푼으로 10스푼 퍼내니 원두 반 정도였다. 좀 더 큰 뚝배기에 25부 정도 약불로 쭉 볶았다. 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었다. 1차 폭발 후 2차 폭발이 한창 진행되고 나서야 불을 끄고 잔여 폭발까지 방치했다. 몇몇 알을 빼곤 잘 익거나 살짝 탔다. 베란다에서 부채를 동원해 식히고 찌꺼기를 털어내니 20스푼 정도가 되었다. 하루 지나고 나니 그윽한 향기가 났다. 라떼를 만들어마시면 초코렛을 타넣은 듯 했다.



독서 일기

한국에 있으면 가장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우리말로 된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가면 가장 부러운 것이 서양 친구들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힘들게 짐을 지지 않고도, 어디서든 영어, 불어, 독일어 등으로 된 책을 구할 수 있다. 새책은 물론 중고서점에도 그들의 언어로 된 책이 널렸으니 말이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_김호동

몽골과 중앙아시아 전문가 김호동 교수님의 신작이다. 워낙 매니아 층이 두터운지라 빌리는 것도 운이 좋아야했다. 약간 교과서적인 느낌이다. 워낙 방대한 내용이기도하다. 그림과 사진도 많고, 다 잊어버렸던 이 지역사를 되살리기에 좋은 책이었다. 심화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도 강하게 된다.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_노엄 촘스키, 안드레 블첵

여행 중에 눈에 들어온 책이다. 촘스키의 책은 큰 관심이 없었지만 안드레 블첵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처음 구독한 녹색평론에서 그가 쓴 라틴아메리가 얘기와 그 후에 또 녹색평론에서 소개된 유럽 복지사회에 대한 비판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 역시 그간 모르고 있었던 제국주의의 폐해를 일깨워줬다. 생각보다 더 그들이 행한 짓은 잔혹했고, 지금도 그렇다. 라오스의 항아리 폭격 사건 등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덕분에 보다 더 서구 문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총균쇠_재레드 다이아몬드

이걸 배낭에 싸들고 갈까를 고민했고, 또 가져와서 읽을까 했었다. 도저히 못참겠어서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고 이후에 몽골에서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제목과 다르게 인류의 역사를 갈라 놓은 것은 목축이었다. 지금껏 실컷 본 소, , , 염소, 낙타가 바꾸어 놓은 게 생각보다 많다. 그것 말고도 식량 생산의 영향과 환경적 영향, 한동안 관심 갖고 읽어온 지리학 이야기나 바빌로프의 종자 이야기들이 잘 매듭지어졌다.


군대를 버린나라 코스타리카_아다치 리키야

예전 쿠바 관련 책도 일본인 저자였는데 이것도 일본 사람이다. 일본의 중남미에 대한 이해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은 것 같다. 평화는 민주주의, 인권, 환경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단다.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_실뱅 테송

시베리아의 월든을 생각했으나 그런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책을 궤짝으로 들고 가서 시베리아의 오두막에 반 년을 살았단다. 워낙 어수선한 시기라 책이 잘 읽히지는 않았지만 예상대로 여편님은 이 책을 너무 좋아했다. 다 읽지 못했는데 가져와서 마저 볼 걸 그랬다.


녹색평론 147, 148

여행 중 가장 아쉬운 것이 녹색평론을 꾸준히 못 보는 것이다. 왜 르몽드처럼 피디에프 판을 제공하지 않는 것인가. 149호도 흥미로워보였는데 못 보고 왔다.


아버지의 라디오_김해수

라카페에 갈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신 느린걸음 연구원께서 책도 두둑히 챙겨주셨다. 대신 방학 숙제도 하나 하게 되었다. (부록1)



감상 일기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_국립중앙박물관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이런 전시를 한다니 안 가볼 수 가 없었다. 황금의 유적들은 찬란했으나 대부분이 알렉산더 시대의 유물이었고, 이 유물들의 발굴을 주도한 것도 영미권의 학자들이었다.


정글북

제주 시청을 지나다 선약이 어긋나서 영화를 봤다. 곰 케릭터가 아주 맘에 들었다.


제임스 본

영화의 도시 부산에 갔으니 하나 봐야했다. 본 시리즈 몇 편을 재밌게 봤어서 이것도 재밌게 봤다. 끝의 자동차 추격신은 좀 어거지엿다.



한국 감상

중간적 존재

한국에서 머무는 기간은 중간적 존재였다. 아예 한국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여행자의 신분으로 있는 것도 어려웠다. 어쨌든 우리가 살던 집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감정적 고비들이 있었지만 막상 떠날 때가 다가오니 자연스레 털어졌다. 생각보다 체류 기간이 길었지만 그만큼 지인들도 많이 만나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폭염과 기후변화

한국의 여름은 사상 최고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떠난 지금은 더 덥다고 한다. 차와 건물은 늘어서 덥고, 에어컨을 틀면 안은 시원하지만 밖은 더 더워진다.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서로 누구 탓만 하지 자정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짐또싸기

짐을 싸다보니 지난 여행은 전반기라기 보다 에필로그가 아니었나 싶었다. 시행 착오를 겪은 덕분에 좀 더 효율적이고 요긴한 것들을 추가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냈다. 대신 남는 무게는 책으로 채워서 무게는 거기서 거기다. 책들은 대부분 시내 중고서점들을 뒤져서 얻어냈고, 절대 못구한 것들은 중고상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거나, 그래도 못구하는 것들은 샀다. 옷가지는 대충 입던 걸 그대로 입고, 추위를 대비해 네팔에서 샀던 두툼한 덧바, 털모자, 우비 등도 그대로 챙겼다.


테블렛PC와 전자책 단말기

지난 여행에서 여편님의 연말정산과 한국 결제 등을 위해 노트북을 하나 더 들고 다녔다. 이런 비효율이 없었다. 전자책이나 PDF도 편하게 볼 겸 윈도우 테블렛을 사기로 했다. 알아보니 가장 무난한 것이 델 베뉴(DELL) 라인업이었고, 여러 사이즈를 비교해본 결과 9인치가 적합했다. 중고나라를 뒤져서 10만원에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편님의 전자책 단말기도 두고 가기로 했으나 몽골에서 뒤늦게 배낭 속에서 발견되었다. 막상 가져와서 보니 좋다고 하신다.


기타 전자제품

샤오미 보조베터리는 접촉 불량이 되버렸다. 이번엔 그냥 안 가져가려고 했는데 여편님의 충실한 전 직장 후임이 보조베터리를 하나 챙겨주셨다. 용량은 좀 작지만 가볍고 이쁘다. 집에 뒹구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전용 필름도 챙겼다. 여행 다니면서 선물로도 줄 수 있고, 바로 소장도 가능하다.



신발

말레이시아에서 운동화를 구입하고 한국에서까지 신고 다녔다. 하지만 등산화도 필요했고, 이왕이면 튼실한 샌들도 좋을 것 같았다. 가산의 아울렛에 가서 매장을 쭉 돌아보았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콜롬비아의 가볍고, 부드러운 등산화 2켤레, 몽벨에서 나온 아웃도어용 샌들 2켤레였다. 특히 몽벨의 샌들은 밑창은 운동화 재질이면서도 위에는 가벼운 샌들 형태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세면도구

드문드문 물로만 머리감기를 하고, 씻는 것도 대부분 물로 씻게 되면서 샤워 용품에 대한 절박함이 사라졌다. 대충 비누 몇 개와 샴푸, 클렌징 소량만 챙기니 훨씬 간결해졌다.


통신사 이동

원래 쓰던 알뜰폰 통신사의 기본 요금이 더 높아져서 아예 우체국 알뜰폰의 통신사로 옮겼다. 기본요금 3000원짜리가 가능했다. 다만 떠나기 전에 요금제를 바꾸려니 고객센터가 묵묵부답이었다. 한시간 만에 극적으로 연결이 되어 바꿀 수 있었다. 통신사에 대한 불만을 아래와 같은 글로 해소하기도 했다. (부록2)



이동도서관 이차

이번에도 가장 큰 짐은 책이다. 초반엔 큰 배낭 들고 움직일 일이 적을 것 같아 두둑히 챙겨왔다. 먼저 내가 들고 있는 책이다.


가난한 농민에게 고한다_레닌

레닌 그라드까지 들고 가야할 책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_릴케

릴케는 여러 번 좋은 글을 접해서 인상이 좋다. 서울국제도서전 범우문고에서 득템했다.


TRANS SIBERIAN RAILWAY_LONELY PLANET

시베리아 횡단열차 가이드북이다. 올해 한글판도 나와서 그걸 새로 살까 했는데 운명처럼 중고책을 구하게 됐다.


터키_LONELY PLANET

심지어 한글판을 중고로 구했다. 안그래도 IS로 시끄러운데 쿠데타로 더 시끄러워졌다. 우리가 갈 때 쯤엔 잠잠해졌으면 한다.


마르코스_베르테랑 라 데 그랑쥬, 마이테 리코

멕시코 자파티스타의 리더 마르코스 이야기다. 작년에 숨어있는 책방에서 건진 책이다. 휴대성도 좋고, 내용도 기대된다.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_잭 웨더포드

제주베이스캠프에서 보고 탐이 났는데 중고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몽골에 대한 심화학습용으로 몽골에서 다 읽었다.


죄와 벌_도스토예프스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선 왠지 퍽퍽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이 어울릴 것 같았다. 한 권짜리로된 죄와벌을 찾아헤멘 끝에 강남에서 건졌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작년에 산 새책이다. 잘 관리해서 두고두고 읽으며 남미까지 갔으면 좋겠다.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_유진 로건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교수님의 페이스북에서 본 추천도서다. 아랍 지역의 근대사를 이해하고 싶다. 큰 맘 먹고 새책으로 샀다.


이스탄불_오르한 파묵

제목과 저자만 듣고도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여편님이 중고로 업어왔다.


이븐바투타 여행기_정수일 역주

저 언 옛날에 모로코에서부터 아시아까지 다녀간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워낙 흥미진진해 보여서 탐을 내고 있었다. 유일하게 인터넷 중고거래까지 해가면서 구한 책이다.


다음은 여편님이 들고 온 책이다.

무소유_법정

이 많은 책을 들고 다니는 걸 알면 스님한테 혼날 게 뻔하다.


너의 시베리아_리처드 와이릭

읽다 만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 보다는 안 읽은 시베리아 이야기를 들고 오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여행의 기쁨_실뱅 테송

그 대신 실뱅 테송의 다른 에세이를 사왔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아요_박노해

떠나는 우리를 위해 느린걸음 연구원님께서 손수 챙겨주셨다. 라카페에서 보고 느낀 감성들을 쭉 이어갈 요량으로 챙겨왔다.


조용한 혁명_호세 무히카

무히카 할배의 조용한 혁명이 드디어 번역되서 나왔다. 안 사고 안 가져 올 수가 없었다.


몸에 벤 어린시절_휴 미실다인

쥐도 새도 모르게 딸려 왔다고 한다.


온 삶을 먹다_웬델 베리

리 호이나키에 이어 우리를 즐겁게 해줄 대륙의 사상가일 것 같다.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_

이것도 마찬가지류의 자립과 관련한 책이라 기대가 된다. 빽빽하니 효율적이기도 하다.


세 종교 이야기_홍익회

추천해드렸더니 넙죽 구해와서 읽겠다고 했다. 몽골에서 해결했다.


아티스트 웨이_줄리아 카메론

몸소 창의력을 키우시겠다고 이런 책도 들고 오셨다. 12주 뒤가 기대된다.



사진_들고 온 책, 칭키스칸 책과 세 종교 이야기는 몽골에서 해결이 되었다.



부록1_아버지의 라디오 감상문

출처: 느린걸음 블로그 http://blog.naver.com/slow_foot/220769358027

요즘 나의 독서목록은 다른 나라 이야기나 오래된 역사 이야기에 쏠려 있었다

서점을 가도 경영·경제·자기계발서 분야는 순식간에 지나쳤다

<느린걸음>은 이런 나의 취향에 충실한 출판사였다

그런 곳에서 국산 라디오 이야기를 펴냈다니? 아주 의아했다

처음엔 산업화 시대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도 그때처럼 도전하라는 내용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책감이 좋아서, 조금은 다르겠지라는 생각에 책을 읽어내려갔다


유명한 정치가, 기업가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지 

엔지니어 아버지 '김해수'의 이야기는 

우리 할아버지 혹은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당시 사람들이 쓰던 소소한 도구들에 대한 기술자의 관점이 더해져 

시대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금성사 창업 초기 시절 이야기도 기술개발에서부터 

시장에서 제품이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흔히 접하는 기업가의 성공 스토리에는 기업가의 비전 제시와 추진력만을 조명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 제품 대부분은 

기술자와 노동자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온다

리더들은 이 제안을 구별하고, 실행하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곳곳에서는 리더만을 주목하고

이는 조직 내에 소외감과 갈등을 증폭시킨다


또한 필자가 기업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는 기술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우리에게 익숙한 노사 간의 갈등 역사와는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간부들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는 구인회 회장도 지금의 재벌 2,3세가 

경영을 숫자로만 대하는 것과는 다른 '사람경영'의 냄새를 풍긴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라듸오』에서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선 긋고 어느 한쪽을 편 드는 논리가 없다

필자는 다음 세대를 향해 '왜 우리의 희생을 몰라주냐', 

'우리 땐 이랬다' 등의 어조로 옛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한마디로 꼰대같지 않아 좋았다

그는 지난 시대를 회상하면서도 시대적 성과와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세대 간에 담아두었을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나눌 뿐.

앞선 세대의 따뜻한 응원을 등에 업고 

새로운 세대를 그려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대부분 산업화 세대의 자식이거나 민주화 세대의 부모일 것이다

이 두 세대는 정치 논리나 신문기사 속에서 늘 서로를 헐뜯는 반대 세력으로 그려진다

경쟁 사회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우는 개인으로 분석될수록 세대 간의 갈등은 커진다

시선이 경쟁 안으로 향할수록 상처를 입는 것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다

어느 한쪽이 다치면 한쪽이 슬플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넘치는 분석도 과장된 드라마도 아닌

조금은 수수한, 그래서 서서히 젖어드는 이야기 『아버지의 라듸오』.

이 책이 갈등과 대립으로만 치닫기 쉬운 우리 사회에

세대 간의 관계와 신뢰를 회복하는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본다.



부록2_호구폰과 호가항공

출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o.cordon

4년 정도 이용하던 CJ헬로모바일과 결별하고 우체국에서 공급하는 소규모 알뜰폰으로 갈아탔다. 쓰던 폰과 번호 그대로 유지하고 유심만 바꿔서 개통했다. 통화 100/문자 100/ 데이터 1기가에 12000원이다. 갈아타게된 계기는 헬로모바일이 평생 반값고객이라면서도 정작 새로 생긴 착한00 요금제 등은 적용이 안된다는 둥 슬슬 약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년 간 쓰면서도 통화나 데이터 품질 문제로 불편을 느껴본 적은 없고, 이번 통신사도 KT망을 쓴다니 별 걱정은 안된다. 그리고 오늘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갈 일이 있어 아이디 찾기를 해봤다. 유물같은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니 아이디를 찾을 수 있었고,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도 몇 천점이나 적립되어 있었다. 어느새 저가항공이 주류로 자리 잡아서 이런 대형 항공사를 이용할 일이 없어서다. 최근 몇 년간은 제주도를 왔다갔다 할 때도 제주항공 등을 이용했고, 작년에 신혼 여행을 갈 때도, 올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때도 대부분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에어아시아 결제를 하다 빡쳐서 인도항공을 타봤는데 좌석이 너무 넓고 아늑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에어아시아도 결제가 익숙해지니 딱히 다른 항공을 이용하진 않게 된다. (물론 이것도 에어아시아의 잘못이라기보다 항공권을 예매하는 데에도 복잡한 인증절차를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금융결제 규제 때문이다.)

결론은 최근 몇 년간 저가항공, 알뜰폰을 이용해왔지만 딱히 불편을 겪은 적이 없다는 거다. 그저 적정한 가격에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대부분의 비행기에서 내가 바라는 건 안전함이고, 휴대폰에서 바라는 건 빵빵함 뿐이다. 그나마 신경쓰이는 건 저가항공, 알뜰폰을 쓴다고 하면 허리띠를 졸라메고 산다는 인식을 갖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건 사람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이런 용어와 기존 업체 위주로 시장을 보는 문제가 크다고 본다.


이 서비스와 업체들을 저가항공, 알뜰폰이라고 부를게 아니라, 독과점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가격담합, 뻥튀기 등으로 소비자 등골만 뽑아먹었던 업체들을 호가항공, 호구폰 등으로 불러야 한다.

Posted by Cordon
,

1) 제주도_0621_0628


김포공항과 제주공항

제주공항이야 몇 년전부터 북새통이었지만 이번엔 김포공항 마저 엄청난 제주행 비행기 폭격으로 미어터졌다. 제주공항의 신공항도 문제지만 그 많은 서울-제주 노선을 김포공항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한 개의 게이트를 나눠서 쓰는 걸 김포공항에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제주공항은 당연히 미어터진다. 너무 시끄러워 구석에 피난해 있었다.


숙박_제주도집

마음 같아서야 우리집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엄마 아빠가 사는 집에서 일주일을 묵었다. 여편님 기준으론 시월드이기도 하다. 대략 4년 전 내가 여행을 떠난 사이 부모님은 지금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 전 겨울에 집을 보여줬을 땐 그냥 황량한 벌판에 있는 황량한 집이었다. 여행 후 돌아와보니 집은 새단장이 되있었고, 잔디밭과 감나무, 텃밭 등 초록으로 가득했다. 당시 지친 심신을 추스리며 일주일 이상을 넋놓고 지냈다. 이때부터 느꼈지만 부모님 집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 집 자체를 아주 사랑하게 됐다. 제주시 신시가지 외곽에 위치하는데 여기도 개발 붐을 타서 갈 때 마타 주택단지가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 다행히 집 바로 옆 밭과 골목은 잘 버티고 있다.


아빠의 사무실과 엄마의 한의원

집에 묵는 대가는 혹독했다. 올해 연말, 내가 퇴사를 하고(여편님은 미리 퇴사를 하고), 동생은 취업이 됨과 동시에 아빠는 3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자영업을 시작하셨다. 업종은 원래 일하시던 분야에서 벌이는 중간 유통이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신터라 이래저래 신경 쓸일이 많았고, 짧게나마 머무르는 나에게도 몇 가지 과제가 부여됐다.

첫번째 과제는 노트북 구입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 노트북 구입을 요청하셨고, 이왕이면 서울에서 사오라고 했다. 검색 좀 해서 화면 크고 가성비 무난한 걸 인터넷으로 구매했고, 집에서 먼 거리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직접 수령하러 갔다. 일본에서 사온 그 자전거다. 하지만 서울의 구도심은 복잡하고 언덕이 많고, 도보는 좁고, 차도의 차는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 내리막을 내려가다 보도로 올라가려는데 높은 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과 어깨를 살짝 밀어먹었다. 다행히 노트북 수령 전이라 노트북은 무사히 받아서 들고 올 수 있었다. 이걸 고이 모시고 제주도로 갔다.

다음 임무는 노트북과 주변 기기의 연동, 기본 소프트웨어 설치 및 간단한 사용 교육이었다. 국세청 계산서 발급 등은 나도 모르는 업무라 제꼈다. 스마트폰 사진 전송과 이메일 열람 및 전송 등을 가르쳐드렸다. 의외로 시간이 걸렸지만 나름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이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서너번이나 아빠의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사실 이 사무실을 드나드는 것이 싫지 않은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무실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집이다. 구시가지 개천 변에 위치한 작은 집이다. 이 집을 적당히 손봐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내 기억엔 그 정도로 작은 집은 아니었는데 지금 가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작은 공간이다. 이 작은 집을 안방, 중간방, 거실 등으로 나누고 네 식구가 어떻게 살았나 싶기까지 하다. 사무실 방문의 백미는 짜장면이었다. 오전에 어디를 갔다가 사무실로 가면서 짜장면을 시켰다. 그 허름한 사무실에서 나와 여편님, 아빠 셋이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먹었다. 오래된 쇼파에 앉아 탁자에 신문지를 깔고 먹었다. 고사장, 고대리, 윤과장의 창업, 벤처, 스타트업 정신 풀풀 나는 식사였다.


위와 같은 식사가 가능했던 건 엄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저런 류의 배달 음식을 매우 저급하게 보는 분인데 더해 요즘은 한의원을 다니며 팔체질에 몰두하고 계신다. 우리가 제주도에 있는 동안 이미 한의원 예약이 잡혀 있었고, 반강제로 팔체질 진료를 받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체질은 토음인으로, 돼지가 좋다고 했다. 그동안 돼지를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대략 내가 다 좋아하는 음식들이 나와 궁합이 맞는다고 하니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장기 여행자 신분에 음식 가려먹는 게 쉽지는 않다. 여기 몽골도 돼지고기는 나름 귀해서 시골가면 닥치고 뿔달린 짐승고기다. 돼지고기 맘껏 먹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야 겠다.



육지사람들, 맥파이, 오일장 등

여편님과 함께 오고 이러다보니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둘다 아는, 육지에서 알던 사람 중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주 만난 사람은 우리의 네팔 멘토 화성인님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사이 이분은 운명처럼 불숙 제주도로 내려와 살게 된다. 지인분들과 제주도에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계신다. 네팔에 대한 공감 대를 가득 안고 가니 더욱 반가웠다. 거기다 혼자 사는데 투룸을 얻게 되어 남는 방 하나를 에어비엔비로 활용하고 계신다. 거실 책장을 여행 책자로 꾸미신다길래 집에서 안보는 책이나 당분간 볼일이 없는 책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만나게 됐는데 그 중 한분은 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당연히 섬은 좁아서 크게 놀랄일은 아니다. 또 어쩌다 에어비엔비의 중간 매니저로 일하는 분도 만나게 됐다. 공기 방울방울 같은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여러모로 신세진 것도 많고 먹거리도 한 번 크게 나눌 생각으로 이분들을 부모님 집으로 초대했다. 잔디밭에 초석을 깔고 오겹살과 목살을 굽기로 했다. 엄마가 보너스로 전복도 굽고, 남은 전복으로 전복죽도 끓여주셨다. 그 선배님의 형수님과 아이들도 합류해 잔치가 더욱 재밌어졌다. 아이들이 잔디밭을 너무 좋아했고, 부모님도 간만에 귀여운 아기들을 접해서 신나셨다.

또 제주베이스캠프에 놀러갔다가 급 나들이를 하게 됐다. 제주도 동쪽으로 가서 맥파이라는 수제 맥주집에 갔다. 이태원에서 시작한 이곳은 제주도에 양조장과 매장을 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양조장을 겸한 매장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영어로 인사가 나오고, 외국인들이 많았다. 제주도가 엄청 글로벌해진걸 새삼 느낀다.또한 이날 저녁엔 제주베이스캠프로 돌아가 파스타를 해먹었는데 후식으로 만보기네 김밥을 맛보게 됐다. 남은 걸 집에 싸가서 다음날 후라이팬에 데워 먹었더니 또 꿀맛이었다.


이들 말고도 태국에서 만난 하늘양도 만날 수 있었다. 잘 돌아다니는 하늘양은 이번 여름엔 제주도 바닷마을에 흔한 집을 얻어 머물고 있다. 중간 점접이 오일장이라 겸사겸사 오일장 구경을 먼저 했다. 별에 별거 다 있는 오일장이지만 여행자인 우리가 향하는 곳은 먹거리 밖에 없었다. 잔칫날이나 장례식날 먹는 급은 아니었지만 피순대를 찾아 시장식 떡볶이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 하늘양의 주 근무지인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로 가서 얘기를 나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시설은 꽤나 좋은데 여길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자꾸 변화하는 제주도를 보면 예전보다 훨씬 살기 재밌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변화들이 스스로 나온 변화라기보단 좋든 나쁘든 외부로부터 온 것 같아 좀 아쉬움이 든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위치한 제주 시청 주변은 오랜만에 갔지만 크게 변한게 없었다.


절물 휴양림과 도립 미술관 강요배

사실 엄마는 우리가 머문 기간 동안 고모네 횟집에 일을 나가야 했다. 다행히 하루 쉬게 되어 절물 휴양림으로 갔다. 원래는 사려니숲길을 가려 했지만 주차가 문제엿다. 주자장을 가려다가 그냥 절물로 갔다. 훨씬 사람도 적고 좋았다. 산책로에서 몸을 풀고 가볍게 오름을 오르니 주변 경관이 탁 트였다. 가운데 분화구를 두고 한바퀴를 빙 둘러 볼 수 있으니 좋은 산책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강요배의 전시였다.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괜찮은 전시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제주도 도립미술관에서 하는 강보배 화가의 전시였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도 가까워 찾아갔다. 도립미술관 입장료는 이천원에 불과한데 마침 또 미술관 생일 기간이라고 무료 입장이었다. 전시가 너무 좋아서 잘 안듣는 도슨트도 듣고, 또 다시 전시를 여유있게 만끽했다.

작가의 어린시절 그림부터 볼 수 있었는데 이미 초등학교 시절 추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후 시대적인 문제의식에 몰두했고, 제주도의 4.3 항쟁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바람과 자연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상반기에 본 다른 외국의 유명한 그림들보다도 큰 감성을 얻었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자의 마음응 푸는 길은 오직 자연에 다가가는 것 뿐이었다. 그 앞에 사면 막혔던 심기의 흐름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하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거나 격렬하게 후려치면서,'

마음의 풍경_작가에세이 중


1부에서 냉면을 다뤘다면 2부의 주인공은 회다. 외국가면 그리운 양대 산맥이 회와 냉면이라 했는데 제주도에서 마음껏 충전했다. 우리가 먹은 회는 모두 고모가 운영하는 횟집에서 먹은 것이다. 유명 횟집을 운영하는데 인사차 한 번 들러서 가볍게 회와, 전복, 한치 등을 먹었다. 그리고 떠나기 마지막날에는 회 한접시를 테이크아웃 해와서 집에서 마음껏 즐겼다. 화사하고, 쫄깃한 돔의 맛은 참으로 깊은 것이다.



2) 부산_0728_0802


고속버스터미널

버스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자리도 넓고 오랜만에 타는 터라 신이 났다. 휴게소 간식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감자도 없었고, 핫도그는 냉동같았다. 옆에 던킨도너츠로 우울함을 달래야했다.


숙소_이모비엔비

부산에 형님 집은 신혼집이라 쳐들어가기가 뭣하고, 휴가 기간이라 다른 숙박 구하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우리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부산에 사는 이모집은 아들들이 다 나가서 방도 남았고, 쿨한 이모는 얼마든 와서 자라고 했다. 첫날 가자마자 이모부가 웰컴드링크로 발렌타인도 까주셨고, 아침마다 과일을 겻들인 빵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팥빙수 매니아인 두 분 덕분에 부산의 자랑 설빙을 두 번 가고, 동네의 유명 팥빙수도 맛 볼 수 있었다.


다시 회

제주도 이야기를 회로 끝냈으니 회 이야기를 마저해야 겠다. 부산에 잘 아는 신부님이 우리에게 회를 사주셨다. 해운대에 위치한 경관 좋은 횟집이었다. 고등어 회는 물론 각종 회가 맛깔스러웠다. 일본에서 사갔던 사케도 대동해서 겻들이니 좋았다. 그 다음날엔 형님께서 우리를 위해 초밥을 사주셨다. 꽤나 유명한 곳이라 코스도 잘 나오고 맛나게 먹었다. 오후부터 여편님은 속이 이상하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나도 속이 이상해 설사를 했다.

밤 중에 여편님이 나를 깨우며 너무 춥다고 한다. 좀 지나니 너무 덥고, 아프단다. 식중독 증세였다. 형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함께 먹은 아주망은 응급실을 다녀왔다고 한다. 다행히 응급실에서 별다른 처방을 해준 건 아니라서 여편님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모가 다음날 죽도 끓여주고 지나고 나니 속이 다 괜찮아졌다. 그 폭염 속 점심에 초밥과 회를 넙죽넙죽 먹은 우리가 바보였다. 힘겨운 토요일 밤을 보냈지만 일요일 오후에 또 형님 집을 가서 꽃갈비를 구워먹으니 기운이 솟았다.


백제병원과 인디고 서원

여편님이 부산의 신흥 명소라고 하는 백제병원을 가보자고 했다. 오래된 병원 건물 내부를 카페로 쓰고 있단다. 최근 개업한 곳인데 공간도 넓고, 커피도 맛있고, 콘크리트가 생생해서 시원했다. 우리끼리 한 번 가고 서울로 돌아가는 여편님의 친구도 여기서 만났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인디고 서원이었다. 부산에서 유명한 인문서점이라고 해서 가볍게 구경하려고 갔다. 의외로 내가 듣도보도 못한 책들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새로운 희망 독서 리스트를 잔뜩 얻을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신부님에게 드릴 책으로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도 구매했다. 인디고 서원 옆에는 에코토피아라는 채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료는 크게 감명 깊지 않았지만 여기서 운영하는 요리 수업이나 다양한 채식 메뉴는 맛있을 것 같았다. 부산의 라카페 같은 곳이었다.


3의 고향

예전에도 부산을 몇 번 왔었고, 이젠 공기업 이전 등의 효과로 부산에 지인도 제법 많아졌다. 덕분에 부산에서의 일정은 생각보다 꽉 들어찼다. 떠나기 전날엔 작년에 향토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던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서울에서 빡빡하게 사는 것 보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다고 한다. 저녁엔 여편님과 함께 또 다른 후배를 만났고, 점심에 만난 후배도 합류했다. 이 후배는 타향 살이가 힘들었는데 곧 서울로 돌아가게 됐다고 한다. 부산만큼 텃새가 덜한 지방도 없지만 가족도 남겨두고 홀로 내려와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후배와 김치말이국수로 점심을 먹는 사이, 여편님은 이모, 이모부와 점심을 먹었다. 오소리 순대라는 근처 식당에 갔는데 고기와 순대가 충격적으로 맛있었다고 한다. 가끔 술 없이도 고기만으로 취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이날 여편님의 상태가 그러했다. 이날 오소리 순대를 못 먹은 곳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어 또 부산을 찾게 될 것 같다.


Posted by Cordon
,

처음 우리가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예정된 귀국이었다. 이유는 집안 대소사였다. 여편님의 오빠, 즉 형님의 결혼식 참석을 주목적으로 한달 반 정도를 한국에 머물렀다. 앞선 여행 동선 역시 이를 염두해두고 한국에서 멀리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동남아 휴양도 실컷하고, 안나푸르나도 둘러보고, 북해도도 자전거로 돌았던 것이다. 결혼식은 칠월 초였지만 미리미리 들어와서 얼굴도 하얗게 만들고, 그리웠던 한국음식도 마음껏 먹고 놀다 갔다.


일정과 이동_0614_0802

예상 체류 기간은 한달 정도였으나 어어 하다보니 한달 반이나 머물렀다. 역시 집이 좋고, 먹던 밥이 제일 맛있다. 서울에서 일주일 정도 쉬다가 부모님이 계신 제주도에 가서 일주일, 다시 서울에서 한달 정도를 지내다가 막판에 부산으로 갔다. 당연히 서울과 그 근방에선 대중교통망을 실컷 활용했고, 제주도를 오갈 때는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부산으로 갈 때는 모든 주위 사람들이 KTX, KTX를 연호했지만 시간은 배로 걸리고, 가격은 절반인 고속버스를 이용했다. 원래는 강원도에 새로 집을 짓고 사신다는 분들한테 가서 집 짓는 것도 좀 돕고, 어떻게 사나 볼 계획도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서울살이_0614_0621&0629_0728


숙박_우리집과 처갓집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대부분은 예전에 살던 집에서 잤다. 우리가 살던 집은 근처에 살던 동생이 들어와서 살고 있다. 우린 그 덕분에 살림 대부분을 그대로 둔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체류 기간 동안에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따라오는 것이 인생의 순리다. 귀국 첫날 늦은 밤에 자전거까지 들고 집에 들어갔을 때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해야 했다. 물론 자전거 포장을 두고 귀국 직전 삿포로에서 치열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나와 여편님 모두는 마중 나온 동생을 매우 반가워했다. 그 반가움은 집에 가자마자 한숨과 분노로 승화되었다. 원룸에 살던 아이에게 집 한채는 버거운 것이었나보다. 우리가 비워준 안방은 침대만 들여놓은 체 쓰지도 않는단다. 거실과 연결된 부엌에서 자고, 먹고, 보고 심지어 빨래도 베란다가 아닌 거실에서 말리고 있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밀린 설거지까지 하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자던 방에서 쓰던 이불로 잘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었다.

숙박의 대가는 동생의 출근 준비를 돕는 것과 미용실 못지않게 쏟아져 나오는 수건을 빠는 일이었다.


우리 처갓집은 경기도 고양시의 새로운 아파트 단지라 서울에 머무는 기간 틈틈이 가서 밥을 먹고 오기도 하고, 자고 오기도 했다. 결혼식 기간 동안에는 서울 집에 우리 부모님이 올라오기도 했고, 잔일도 도울겸 23일을 지내기도 했다. 장인 장모 두분이 근처에서 텃밭도 일구고 계셔서 신선한 채소도 실컷 먹고 한다발씩 집으로 가져와서 또 먹었다. 이번에 가면 농사일도 좀 도울 계획이었으나, 어차피 폭염 중에 늦게 일어나는 우리가 도울 일은 별로 없었다. 대신 오리를 좋아하는 장모님과 오리도 두 번 먹고, 장인 어른과 반주도 부지런히 마셨다. 한 번은 내가 직접 돼지고기를 삶아서 지역 특산물인 배다리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특별히 장모님의 제안으로 양파 껍질을 넣어 삶았는데 색깔도 한방족발 같고, 육지돼지를 제주도 돼지 급으로 격상 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장인어른이 손수 키우신 수박은 작년에도 검증을 마쳤지만 올해도 또 맛있었다. 워낙 수박 재배 기술이 발달해서 어느 수박도 다 달긴하지만 그 싱싱함을 따라올 수가 없다. 하얀 살까지 뜯에 먹게 만드는 맛이고, 배낭에 담고 다니고 싶은 수박이다.


부암동 라카페갤러리_0617,0629,0715,0720,0722,0725

서울에 있는 동안 라카페를 방문한 날짜다. 나눔문화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카페로, 선선한 부암동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커피도 커피지만 계절 별로 담근 차가 일품이고, 카페 내의 갤러리에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계속 열린다. 바뀌는 사진과 담금차를 챙겨 마시러도 가야하고, 그새 더욱 친해진 나눔문화 연구원들과도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거기다 평일 낮에 가면 사람도 별로 없고, 자연 채광도 좋아 독서를 하기에도 천해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서울 집도 뭔가 어수선하고 부모님 집도 우리집은 아니라 그런지 한국에 있는 동안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그리고 부암동은 치킨이 좋은 곳이라 라카페에서 꽉 차고, 늘어진 시간을 보내다 사이치킨에서 숙주와 맥주를 겻들인 치킨을 먹으면 좋은 조합이 된다. 이 치킨집들이 꽉 찼거나 요즘 대세인 수제맥주와 피자를 굳이 먹겠다 하는 날에는 통인시장의 빚짜로 가기도 했다.


서울시청&서울도서관_광화문_남대문 일대

서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귀국 다음날 바로 처갓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 시청을 들렀다. 이날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국제포럼'이라는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잘 알고 지내는 한겨레쪽에서 주최하는 행사기도하고, 태국에서 만났던 송이양이 스탭으로도 참여한다고 해서 귀국 전에 참가신청까지 해두었다. 거기다 주요 참가자들이 대부분 우리가 방문했던 국가에서 왔다. 특히나 치앙마이에서 자주갔던 아카아마커피의 주인 청년을 보니 매우 반가웠다. 다만 아시아라는 범주가 동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로만 국한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했으면 한다. 이건 이 행사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라는 주제를 갖고 얘기할 때 빠지는 흔한 함정이기도 하다.

행사에 앞서서는 서울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던 책도 빌렸다. 서울도서관은 구 서울시청을 도서관으로 만든 것인데 장서도 많고, 내부도 잘 꾸며놓아서 인기가 많다. 문제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 오히려 책 대출이 힘든 경우가 많다는 거다. 나중에 집 근처에 있는 아현 도서관을 가보니 생각보다 쾌적하고, 요즘 관심을 갖는 국제적인 범주의 책들도 많았다. 다녀오면 오히려 이곳을 자주 이용할까 싶다.

서울시청 지하도 의외로 구경거리가 좀 있다. 지구마을이라는 공정무역가게가 있고, 카페의 커피도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지역을 돌고나서 서울시청이라는 곳에 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색다르다.


시청을 기준으로 광화문과 남대문에 이르는 곳들도 자주 드나들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남대문 시장은 엄마가 서울 올 때마다 다녀와서 신문물들을 구경시켜주곤 했었다. 이번에도 생두와 치즈, 빵 등을 사들고 와서 우리의 흥미를 자극했다. 결국 날을 잡아 수입상가도 구경하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도 하나 샀다. 백화점의 그릇 코너보다 더 다양한 식기와 살림살이들이 많았다.

광화문 일대는 주로 교보문고와 기타 서점을 둘러보기 위해 갔다. 새 책을 거의 안샀지만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관심 가던 책들의 실물을 보는데 유용하다. 특히나 교보문고 정문 옆에 해커스의 화려한 매대를 보고는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서점의 현실을 체감했다. 그래도 운좋게 여편님은 교보문고에 책 사러온 슬라보예 지젝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기념 사진도 촬영했다.


문화의 중심 마포

우리집은 마포구 염리동에 있다. 이 집에 오기 전에도 바로 옆 대흥동에서 5년 정도 살았다. 그때 워낙 마포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계속해서 이 동네 살기를 고집했다. 지금도 서울에 산다면 만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예전 한겨레21에서 마포 진보&문화 지도라는 기획 기사를 내기도 했었고, 강남 깊숙한 곳을 제외하면 서울 어디든 접근성도 좋다. 나같은 촌놈이 서울에서 살려면 이런 중심부에 붙어있어야지 한 번 외곽으로 밀려나면 답이 없다는 생각도 깔려있다.

달동네 같은 염리동 골목에도 자랑거리가 좀 있다. 한동안 서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퇴근길 책한잔도 있고, 사진관과 카페를 겸한 가게도 생겼다. 이런 알록달록한 움직임은 재개발의 폭풍에 묻혀가고 있다. 서강대와도 문화권을 함께 할 수 있는 거린데, 서강대 남문 옆에 숨도도 좋다. 이번에 갔을 때는 늘 사람이 워낙 많아서 책극장이라는 본연의 역할과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대신 서강대 정문 위에 여행자라는 서점카페는 생각보다 책 선정이 좋았다. 주인장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떠났던 사이 마포에 획을 긋는 경의선 공원 공사도 거의 끝났다. 공덕역의 늘장도 주말엔 푸드트럭까지 와서 더 성행하는 분위기고, 드디어 그 유명한 연남센트럴 파크까지도 공원이 이어지게 됐다. 공원을 따라가면 홍대도 나오고, 연남동까지 편하게 갈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신촌 지하철역 뒷편에는 헌책방 숨어있는책방이 있다. 여긴 알라딘 중고서점에선 구할 수 없는 진짜 희귀한 책들을 구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 그 주위로 파란빵집, 식빵집 등 맛난 빵집들도 많다.

연남동에서 망원시장까지 이어지는 곳에는 워낙 소문난 맛집들이 많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제리코바엔키친이다. 저녁반과 낮반으로 나뉘어 운영하는데 낮반 사장님과는 절친한 사이다. 제주도 가기 직전에도 들렀고, 출국 직전에도 들렀다.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주는 파스타 갔지만 재료 하나하나 먹어보면 자테가 살아있다. 물론 사장님도 재료의 질부터 스토리까지 신경을 많이 쓰신다. 특히 출국전에 찾았을 때에는, 와인 시음을 위해 이탈리아 와인 수입상이 오셔서 우리도 그 맛을 함께하는 호사를 누렸다. 거기다 곧 상용화될 피자도 맛보았다. 피에몬테를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는 곳이다.

이 사장님도 추천하는 식당이 망원동에 있어서 찾아갔다. 협동식당 달고나라는 곳인데 제육, 수육과 한라산을 판다. 먼저 제육과 한라산으로 속을 풀고, 냉면과 해장국을 2인당 하나씩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냉면은 요란함이 없이 차분했다. 해장국은 이 가격에 이런 건더기가 들어가도 되나 싶다. 맛도 순하고 말그대로 속을 다스리고 풀어주는 국물이다.

어쩌다 보니 마포 얘기는 내고향 최고다가 되버렸다.


랭면 공화국

올해 서울의 여름은 냉면 공화국으로 기억될 것이다. 귀국 전부터 누가 뭘 먹었다는 SNS는 태반이 평양냉면 얘기였다. 이 평양냉면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을밀대인데, 여긴 바로 우리집 골목에 있다. 작년에 운좋게 반값 자리에 앉아 먹은 이후론 굳이 줄 서서 먹을 열정은 사라졌다. 지나갈 때 마다 올핸 더 줄이 길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외국 나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냉면이다. 더운 나라들에 오래 있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을밀대는 가지 않았지만 우리도 부지런히 냉면을 먹으러 다녔다. 요리 고수께서 직접 사주신 을지면옥에선 옆 테이블의 아저씨들로부터 냉면의 정의를 배웠다. 먼저 수육 혹은 제육과 소주로 속을 달아오르게 한뒤 그 속을 냉면으로 가라앉히는 것이 냉면 먹기의 정석인 것이다. 요즘 중년 샐러리맨들이 점심이면 냉면집으로 몰려가는 것도 겉으론 미식이지만 실상은 해장이 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냉면집 중 하나는 여의도의 정인면옥이다. 집에서 접근성도 좋고, 가격도 쎈 편은 아니라 좋아한다. 특히 순면은 100% 메밀면이고, 만두도 맛있다. 여기도 열풍에 편승한 덕분인지 가격도 조금 올랐고, 대중화를 고려해서인지 국물 간이 좀 쎄진 감이 있다.

평양냉면류의 가성비 갑은 한살림에서 사와서 집에서 먹는 동치미냉면이다. 계란 두 개를 삶고, 오이까지 송송 썰어 넣으면 딱 좋다. 함흥냉면도 종종 먹었다. 강남을 지나다 함흥 냉면을 한 번 먹었다. 집 근처에는 을밀대 말고도 아소정이라는 괜찮은 냉면집이 있다. 여긴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썼다는 곳인데 함흥냉면을 적당한 가격에 맛있게 말아준다.

동대문의 오장동흥남집과 충무로의 필동면옥을 아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데 못 먹고 온게 아쉽다.


분식과 외식

냉면과 더불어 외국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떡볶이인데 이건 주로 집에서 해먹는게 최고다. 마포 우리집에서 해먹었던 전골식 떡볶이와 합정 어느집에서 해준 즉석떡볶이가 아주 맛있었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면 만만한 것은 치킨과 곱창이었다. 어딜가나 닭고기는 있지만 치맥을 따라갈 곳은 없다.

강남과 강북에서 곱창도 한번씩 구웠다. 곱창은 대학생때까지만해도 취직한 선배신이 강림해야 먹을 수 있는 고귀한 안주였다. 취직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 내 돈으로도 곱창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곱창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아깝지 않다. 양꼬치는 신흥 메뉴로 떠올랐는데 이런 푹푹찌는 여름에 만만한 것이 됐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 퀄리티도 보장되고, 배가 허전할 땐 꿔바로로 채워주면 된다. 어쩌다 보니 한국 여행 얘기는 자꾸 먹방으로 가고 있다. 워낙 거센 시대의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집 음식

집 밥이라고 하기엔 별로 밥을 열심히 해먹지 않았다. 워낙 날이 더워 아침 겸 점심을 대충 해먹는 일이 많았다. 여기저기 친구들 사람들 만나다 보니 저녁도 집에서 먹는 날이 많지는 않았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여편님의 팟타이와 나의 한국식 분짜였다. 태국 요리교실에서 배운 팟타이를 실습했다. 내 생일날 선물로 팟타이를 한 사발 해달라고 했다. 새우, 닭고기, 숙주, 두부, 굴소스, 쌀국수 등의 재료는 얼추 구했지만 달달한 팟타이 소스는 바로 구할 수가 없었다. 일단 산더미 같은 팟타이를 하려니 솥을 써야 했다. 이 난관을 이겨내고, 달달한 맛은 엄마가 보내놓은 귤잼으로 대신했다. 꽤나 훌륭한 맛이었다. 그리고 이후 팟타이 소스를 사와서 한 두번 내맘대로 팟타이를 볶아 먹었다.


그 다음 우리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동거인과 이웃 주빈을 불러 파티를 했다. 이건 내 주도로 베트남에서 먹은 분짜에서 영감을 얻었다. 돼지고기를 생강, 마늘, 양파, 간장 등으로 양념해 볶고, 쌀국수와 숙주를 한 통 삶아서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팟타이 소스와 올리브 드레싱 등과 함께 먹으니 꽤나 훌륭한 파티 상차림이 되었다. 와인전문가 정파리 군이 추천해준 칠레 와인과 함께 먹으니 좋은 궁합이었다.

 

Posted by Cordon
,

현재 나와 여편님의 배낭에서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책이다. 둘 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서로가 원하는 책을 챙기는 걸 별로 만류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참사로 이어졌다. 현재 목표는 다음 행선지까지 각자 2,3권의 책을 다 읽고 누군가에게 주거나 한국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먼저 여편님이 지고 있는 책부터 소개해보면,


1) 사는게 뭐라고_사노요코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고, 보는 내내 낄낄 거리며 이 할머니 완전 멋있다고 하는 책이다. 매우 쿨한 분의 이야긴 것 같다.


2)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_김남희

여행작가인 김남희씨가 발리,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에 대하여 쓴 책이다. 이 책을 읽으시며 동남아 여행지를 추리셨는데 이런저런 정보가 여행 중에도 도움이 될거라고 하셨다.


3) 열대식당_박정석

출발 직전 들린 처가에서 뒤늦게 추가된 책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버마의 음식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된 책이라 유용해 보인다.


4)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_이반 일리치

작년에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인상깊게 읽어서 보다 그의 사상을 깊이 있게 소개한 책을 읽고 싶었다. 해당 출판사를 거느린 모 카페에서 직접 정가를 주고 구매해서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5) 불타석가모니_와타나베 쇼크_법정 옮김

지은이 보다 옮긴이에 주목한 책이다. 아시아를 이해하는데 있어 불교 사상과 석가모니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6) 셀프트레블 베트남편

여편님이 예전부터 소장하고 있던 베트남 가이드북이다. 베트남을 최초 출발지로 선정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음은 내가 지고 다니는 책이다.

1) 루트아시아 2015

아시아적 관점에 기초해 아시아지역의 경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잡지(?). 이번에 처음 발간되어 여러모로 알찬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챙겨왔다.


2) 갈색의 세계사_비쟈이 프라사드

1900년도 쯤부터 제3세계의 변화를 다룬 책이다. 강대국 관점이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 국가들의 주체적인 노력을 담고 있다.


3) 바빌로프_피터 프링글

이것도 작년에 인상 깊에 읽은 20세기 최고의 식량학자 바빌로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전기다.


4)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_잭 호이나키

녹색평론 2년 구독 연장 사은품으로 받은 책이다. 아메리카, 유럽, 인도 등을 여행한 미국인의 이야기다. 이반 일리치와 절친한 사이기도 하단다.


5)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_제임스 C. 스콧

구매할 때 가장 고민이 됐던 책이다. 책값이 가장 비싸기도 했고, 꽤나 학술적인 책이라 여편님과 바꿔 읽기에도 적합해 보이지 않아서다. 그래도 태국과 버마 국경 사이에서 특정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여러모로 '국가가 날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회의적이게 만드는 것이 이번 한국 정부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신영복

열대식당과 마찬가지로 출발 직전 처가에서 보이는 걸 집어왔다. 때가 때인지라 의미가 남다르다.


7) LONELY PLANET THE WORLD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가이드북인 론니플레닛 시리즈에서 전세계 판을 내놓았다. 론니플래닛의 장점인 적은 사진과 상세한 설명이 여기선 나타나지 않지만, 각 국가별 지도와 개괄적인 안내, 주요 여행포인트를 소개하고 있어서 유용한 듯하다.


8) 론니 플레닛 네팔(한글판)

여편님이 아는 분 중 네팔에 여러 번 다녀온 분을 만나 여러 좋은 이야기도 듣고, 네팔 여행책도 몇 권 빌려주셨다. 네팔까지 소중히 들고 갔다 오는 것이 목표다.


9) BARRON'S SPANISH GRAMMAR

둘다 틈틈이 스페인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로 가져왔다.


10) LONELY PLANET PHRASE THAI

태국말 단어장이다.


다행히 다른 짐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초반에 읽기 쉬운 몇 권만 덜어버리면 지고 다니는데 큰 부담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굳이 특히나 무거운 책들을 챙겨온 이유는 같은 무게 대비 글의 양이 많기도 하고, 평소에 읽기 힘든 책들도 여행 다니며 지루한 시점에 읽으면 술술 읽히고 구절구절이 잘 새겨진 경험이 있어서다.

들고 와서 읽고 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늘 생각하신다. 책을 맑이 읽고 생각과 지식을 넓히는 것 보다 적게 읽더라도 깊이 생각하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단다. 굳이 많은 책을 가져와서 낑낑거리는 것도 다 집착이다 싶고, 선생님의 말씀에 좀 뜨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행 중엔 읽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사색하고 되새길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지식을 실천한다는 것이 생활 속에 마주하는 대상을 배운바 느낀바 대로 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왕 가져온 책이니 잘 읽고, 더 나은 태도로 마주치는 사람과 자연을 대하도록 해야겠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렷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하여야시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신영복



<숙소에서 줄 세워 본 책들>




Posted by Cordon
,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장기여행을 또 한 번 나서게 되었다이번에는 여편님과 함께우선 5개월 정도 아시아를 여행할 생각이다무슨 일이 있어도 6월 말에는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출발해서 동남아-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을 생각했다하지만 동남아와 아시아에 대해 알아갈수록 가고 싶은 곳도 많아지고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지금 기세론 중앙아시아까지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거실에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세계지도를 보며 틈틈이 토론한 끝에 베트남-캄보디아-태국-미얀마-스리랑카-네팔 정도로 경로르 구상한 상태다.



항공권과 집

나의 퇴사 일자가 확정되고 난 뒤, 12월 중순 쯤 얕은 고민 끝에 끊은 인천-다낭(베트남편도 항공권을 구매했다늘 타고 다니는 제주항공이 신규 취항 기념으로 특가를 많이 하고 있어서 1인 당 15만 원 선에서 구매가 가능했다편도항공권 구매시 입국 거부 등의 위험으로 귀국 항공권이 필요하다는 주의사항이 있었다이걸 방지하려고 추후에 이동할 지역의 항공권을 구입하려고 보니 벌써부터 구체적인 일정을 짜는게 못마땅했다미루고 미루다 대충 방콕에서 돌아오는 항공권을 구입해서 e-티켓만 출력 후 다시 환불해 버렸다.


여행 기간 가장 중요한 이슈는 빈 집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다행히 결혼 전 동거인이었던 동생이 다시 집에 들어오는 걸로 해결이 되었다동생의 이사도 돕고우리와 진한 인사도 나눌겸 제주도의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퇴사하자마자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고약 2주 간 동생의 출근 준비를 돕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건강과 보험

장기간 여행하면서 가장 유의해야할 것은 첫째도둘째도 건강이다무사히만 돌아온다면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그래서 준비하는 것이 예방접종과 보험이다예방접종은 다들 그렇듯이 국립중앙의료원에 신청해서 주사를 맞았다난 황열병과 파상풍 주사의 유효기간이 남아서 장티푸스 주사만 한 방 맞았고여편님은 3가지 주사를 한 번에 다 맞았다결과적으로 둘 다 4,5일은 접종 후유증으로 골골 거리며 험난한 준비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알아본 것은 여행자 보험이었다대충 책이나 인터넷을 보면 많은 장기 여행자들이 어시스트 카드라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보험 패키지를 신청한다이걸 하느냐 다른 대안을 찾느냐를 놓고 꽤나 고심을 했다와중에 보험 관련 일을 시작한 동생의 조언을 구하다보니 비용 대비 보장액이 적절한 상품을 찾고자 노력을 했다이래저래 알아본 결과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한 단기 여행자 보험을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했고주요 보험사 중 1군데 정도가 장기 여행자가 장기 체류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1년을 기준으로 대략 70만원의 비용이 발생했다이걸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엄청난 고민을 했다단기 상품만 가입했다가 다시 해지해서 또 고민하기도 했다난 보험에 대해 비판적이라 보험 상품 하나 들어본 적도 없고예전 장기여행 때도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이제 홀몸도 아니고혹시나가 가져올 여파가 책임질 것이 없던 시절과는 다른 것 같아 두 눈 꼭 감고 가입했다.



돈돈돈

여행할 때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은 돈이다건강이고언어고지식이고용기고 부족한 것은 돈으로 다 커버할 수 있다물론 건강하고아는 게 많고말이 통하고용기가 있으면 돈이 좀 덜 들기도 한다어찌됐든 이 돈을 잘 관리하려니 통장도 두 개 더 만들고해외에서 수수료나 이용이 편리하다는 시티은행 체크카드와 하나은행 체크카드를 준비했다약 8년 간 지속적으로 말아먹기만 하던 100만원 남짓한 펀드를 이제야 회수하고, 3년 간 부었던 채권 펀드도 해지해버렸다미약한 나의 퇴직금은 수소문 끝에 영업일 기준 출발 전날에서야 거머쥘 수 있었다그리고 5년 만의 최고 환율이라는 연초 고환율 러쉬에 충격을 받고 매매 타이밍을 재고 재다가 이것도 끝내 막판에 가서 최고 정점에서 1000달러를 매수해야 했다.


남들 다 죽어라 일하는 이 마당에 또 여행이나 가겠다고 하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듣는 소리가 금수저론이다물론 이걸 아예 부정할 생각은 없다금수저까진 아니어도 부양해야할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살던 집을 마련하는 데에도 부모님으로부터 막대한 도움을 받았으니 최소 동수저 정도는 되는 것 같다그래도 애시당초 여행이나 가려던 생각으로 3년 간 쓸데없는 소비 줄이고비싼 옷 안사고부지런히 밥 해먹으며 모은 덕도 크다더불어 결혼식도 검소하게 치뤘고혼수도 이불과 밥솥 외에 큰 돈을 들이지 않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물론 수 년간 죽어라 일한 여편님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전자제품

최첨단 디지털 강국의 여행자로서 챙겨야할 전자제품이 많았다여편님이 사용하고 있는 맥북을 들고 가자니 인터넷 뱅킹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고심 끝에 보조노트북으로 쓸겸 집에 있는 구형 노트북도 같이 들고가게 되었다카메라는 최근 중고 거래에 맛들인 우리답게 소니의 미러리스 nex-5t를 중고로 샀다막상 집에 와서 보니 잔 기스도 많고덮개도 없어서 판매자를 저주했지만 이런 저런 보조 용품을 사고 청소도 좀 해줬더니 나름 애정이 생겼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휴대용 태양광 발전기다오지를 촬영하는 사진가들이 카메라 밧데리 충전을 위해 이런 걸 들고다니는 얘기를 듣고 순간 모험심이 발동했다가능한 친환경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나의 의지와도 맞물려 수소문 끝에 휴대용 발전기를 하나 챙겨왔다이게 하필 아이폰은 충전이 바로 안되서 덩달아 샤오미 베터리도 하나 챙겨왔다그 외에 외장하드변환 어뎁터멀티 콘센트 등 챙기다 보니 전자제품 덩어리만 해도 한 짐이 되었다.



기타 물품

둘 다 큰 배낭은 예전에 사둔 것이 있어서 그걸 쓰기로 했고준비하다보니 주로 있는 것을 위주로 쓰고필요한 몇몇가지만 사기로 했다보조배낭이나 침낭은 예전에 쓰던 게 아직 쓸만 했고여편님은 가벼운 침낭을 하나 주문했다그외 여행용 쿠션이나 스포츠 타올 등 이것저것 사다보니 이것도 10만원을 훌쩍 넘겼다비상약을 챙기려다 보니 서로 노선이 갈렸다나는 외상의 아픔이 있어 붕대소독약밴드 등을 넣었고여편님은 벌레 방지와 치료 물품에 전념했다결국 약봉지도 크게 부풀었다.


또 하나 작은 소동이 있었던 것은 화장품과 세면도구다남자인 내 입장에서 보기엔 저런 무겁고 다양한 것들을 뭣하러 들고가냐고 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의 지지 발언에 묻혀 여편님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대신 관련 물품은 여편님이 들기로 했다.


옷은 어차피 더운 지역이 태반이고필요하면 사면 된다는 주의라 출발 전날에 대충 두깨별로 몇벌 챙겼다트레킹 등을 위해 등산화를 사려고 아울렛까지 간 적이 있었지만 이것도 귀찮음을 반반하여 평소 신던 등산화를 신고 가기로 했다거기에 각자 조리와 크록스 하나 씩 챙겨와서 신고 있다.



출발 당일

건강보험료 납입 중지를 당일에야 신청하려고 보니 아직 퇴사처리가 안되서 퇴사 처리가 되고 나서야 신청이 가능하단다결국 동생에게 사후 처리를 위한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처가에 들러 맛난 아주 맛난 밥을 얻어 먹고 형님과 아버님이 친히 우리를 데리고 인천공항으로 가셨다.


얼른 수속을 끝내고 여유롭게 면세점 구경이나 하려던 참인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항공사에서 귀국 티켓이 불분명하면 수속을 안해주겠다는 것이었다다소간의 빡침과 당황으로 어버버하는 사이 여편님이 침착하게 등장해서 사태를 수습했다우선 방콕발 티켓을 끊어서 수속을 마치고환불 한 뒤 혹시 모를 베트남에서의 입국 거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다낭에서 돌아오는 항공권을 구입했다겨우 수속 마감 시각에 맞춰서 티켓을 받고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형님아버님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떨떠름하고 넋이 나간 상태에서 비행기에 타고 꾸역꾸역 졸며 다낭에 도착했다다행히 베트남 입국 절차는 간단했지만 픽업을 위해 나오기로한 숙소 측 피켓이 보이지 않았다당황 반 침착 반으로 서성거리다 혹시 몰라 잡히는 와이파이에 메일을 열어보니 담당자가 아파서 못 온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라 마음이 좀 찝집했지만별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다낭(da nang)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호이안(hoi an)으로 향했다택시기사가 길을 헤메긴 했지만 어찌저찌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준비소감

본격적인 준비 기간은 퇴사 후 2주 정도였는데 준비하랴 사람 만나랴퇴사자 감성팔이 하랴다소 지치기도 했다그래도 짧게 나마 얼굴 보러 와준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니 매우 고맙다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들로 고심하느라 마음이 급해졌었다그러다 보니 책도 별로 못보고 사람도 많이 못 만났다이 기간에 만난 한 분이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딱 두가지라 하셨다. “사랑”과 “용기”

Posted by Cord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