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우리가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예정된 귀국이었다. 이유는 집안 대소사였다. 여편님의 오빠, 즉 형님의 결혼식 참석을 주목적으로 한달 반 정도를 한국에 머물렀다. 앞선 여행 동선 역시 이를 염두해두고 한국에서 멀리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동남아 휴양도 실컷하고, 안나푸르나도 둘러보고, 북해도도 자전거로 돌았던 것이다. 결혼식은 칠월 초였지만 미리미리 들어와서 얼굴도 하얗게 만들고, 그리웠던 한국음식도 마음껏 먹고 놀다 갔다.


일정과 이동_0614_0802

예상 체류 기간은 한달 정도였으나 어어 하다보니 한달 반이나 머물렀다. 역시 집이 좋고, 먹던 밥이 제일 맛있다. 서울에서 일주일 정도 쉬다가 부모님이 계신 제주도에 가서 일주일, 다시 서울에서 한달 정도를 지내다가 막판에 부산으로 갔다. 당연히 서울과 그 근방에선 대중교통망을 실컷 활용했고, 제주도를 오갈 때는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부산으로 갈 때는 모든 주위 사람들이 KTX, KTX를 연호했지만 시간은 배로 걸리고, 가격은 절반인 고속버스를 이용했다. 원래는 강원도에 새로 집을 짓고 사신다는 분들한테 가서 집 짓는 것도 좀 돕고, 어떻게 사나 볼 계획도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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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_우리집과 처갓집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대부분은 예전에 살던 집에서 잤다. 우리가 살던 집은 근처에 살던 동생이 들어와서 살고 있다. 우린 그 덕분에 살림 대부분을 그대로 둔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체류 기간 동안에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따라오는 것이 인생의 순리다. 귀국 첫날 늦은 밤에 자전거까지 들고 집에 들어갔을 때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해야 했다. 물론 자전거 포장을 두고 귀국 직전 삿포로에서 치열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나와 여편님 모두는 마중 나온 동생을 매우 반가워했다. 그 반가움은 집에 가자마자 한숨과 분노로 승화되었다. 원룸에 살던 아이에게 집 한채는 버거운 것이었나보다. 우리가 비워준 안방은 침대만 들여놓은 체 쓰지도 않는단다. 거실과 연결된 부엌에서 자고, 먹고, 보고 심지어 빨래도 베란다가 아닌 거실에서 말리고 있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밀린 설거지까지 하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자던 방에서 쓰던 이불로 잘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었다.

숙박의 대가는 동생의 출근 준비를 돕는 것과 미용실 못지않게 쏟아져 나오는 수건을 빠는 일이었다.


우리 처갓집은 경기도 고양시의 새로운 아파트 단지라 서울에 머무는 기간 틈틈이 가서 밥을 먹고 오기도 하고, 자고 오기도 했다. 결혼식 기간 동안에는 서울 집에 우리 부모님이 올라오기도 했고, 잔일도 도울겸 23일을 지내기도 했다. 장인 장모 두분이 근처에서 텃밭도 일구고 계셔서 신선한 채소도 실컷 먹고 한다발씩 집으로 가져와서 또 먹었다. 이번에 가면 농사일도 좀 도울 계획이었으나, 어차피 폭염 중에 늦게 일어나는 우리가 도울 일은 별로 없었다. 대신 오리를 좋아하는 장모님과 오리도 두 번 먹고, 장인 어른과 반주도 부지런히 마셨다. 한 번은 내가 직접 돼지고기를 삶아서 지역 특산물인 배다리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특별히 장모님의 제안으로 양파 껍질을 넣어 삶았는데 색깔도 한방족발 같고, 육지돼지를 제주도 돼지 급으로 격상 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장인어른이 손수 키우신 수박은 작년에도 검증을 마쳤지만 올해도 또 맛있었다. 워낙 수박 재배 기술이 발달해서 어느 수박도 다 달긴하지만 그 싱싱함을 따라올 수가 없다. 하얀 살까지 뜯에 먹게 만드는 맛이고, 배낭에 담고 다니고 싶은 수박이다.


부암동 라카페갤러리_0617,0629,0715,0720,0722,0725

서울에 있는 동안 라카페를 방문한 날짜다. 나눔문화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카페로, 선선한 부암동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커피도 커피지만 계절 별로 담근 차가 일품이고, 카페 내의 갤러리에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계속 열린다. 바뀌는 사진과 담금차를 챙겨 마시러도 가야하고, 그새 더욱 친해진 나눔문화 연구원들과도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거기다 평일 낮에 가면 사람도 별로 없고, 자연 채광도 좋아 독서를 하기에도 천해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서울 집도 뭔가 어수선하고 부모님 집도 우리집은 아니라 그런지 한국에 있는 동안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그리고 부암동은 치킨이 좋은 곳이라 라카페에서 꽉 차고, 늘어진 시간을 보내다 사이치킨에서 숙주와 맥주를 겻들인 치킨을 먹으면 좋은 조합이 된다. 이 치킨집들이 꽉 찼거나 요즘 대세인 수제맥주와 피자를 굳이 먹겠다 하는 날에는 통인시장의 빚짜로 가기도 했다.


서울시청&서울도서관_광화문_남대문 일대

서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귀국 다음날 바로 처갓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 시청을 들렀다. 이날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국제포럼'이라는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잘 알고 지내는 한겨레쪽에서 주최하는 행사기도하고, 태국에서 만났던 송이양이 스탭으로도 참여한다고 해서 귀국 전에 참가신청까지 해두었다. 거기다 주요 참가자들이 대부분 우리가 방문했던 국가에서 왔다. 특히나 치앙마이에서 자주갔던 아카아마커피의 주인 청년을 보니 매우 반가웠다. 다만 아시아라는 범주가 동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로만 국한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했으면 한다. 이건 이 행사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라는 주제를 갖고 얘기할 때 빠지는 흔한 함정이기도 하다.

행사에 앞서서는 서울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던 책도 빌렸다. 서울도서관은 구 서울시청을 도서관으로 만든 것인데 장서도 많고, 내부도 잘 꾸며놓아서 인기가 많다. 문제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 오히려 책 대출이 힘든 경우가 많다는 거다. 나중에 집 근처에 있는 아현 도서관을 가보니 생각보다 쾌적하고, 요즘 관심을 갖는 국제적인 범주의 책들도 많았다. 다녀오면 오히려 이곳을 자주 이용할까 싶다.

서울시청 지하도 의외로 구경거리가 좀 있다. 지구마을이라는 공정무역가게가 있고, 카페의 커피도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지역을 돌고나서 서울시청이라는 곳에 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색다르다.


시청을 기준으로 광화문과 남대문에 이르는 곳들도 자주 드나들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남대문 시장은 엄마가 서울 올 때마다 다녀와서 신문물들을 구경시켜주곤 했었다. 이번에도 생두와 치즈, 빵 등을 사들고 와서 우리의 흥미를 자극했다. 결국 날을 잡아 수입상가도 구경하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도 하나 샀다. 백화점의 그릇 코너보다 더 다양한 식기와 살림살이들이 많았다.

광화문 일대는 주로 교보문고와 기타 서점을 둘러보기 위해 갔다. 새 책을 거의 안샀지만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관심 가던 책들의 실물을 보는데 유용하다. 특히나 교보문고 정문 옆에 해커스의 화려한 매대를 보고는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서점의 현실을 체감했다. 그래도 운좋게 여편님은 교보문고에 책 사러온 슬라보예 지젝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기념 사진도 촬영했다.


문화의 중심 마포

우리집은 마포구 염리동에 있다. 이 집에 오기 전에도 바로 옆 대흥동에서 5년 정도 살았다. 그때 워낙 마포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계속해서 이 동네 살기를 고집했다. 지금도 서울에 산다면 만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예전 한겨레21에서 마포 진보&문화 지도라는 기획 기사를 내기도 했었고, 강남 깊숙한 곳을 제외하면 서울 어디든 접근성도 좋다. 나같은 촌놈이 서울에서 살려면 이런 중심부에 붙어있어야지 한 번 외곽으로 밀려나면 답이 없다는 생각도 깔려있다.

달동네 같은 염리동 골목에도 자랑거리가 좀 있다. 한동안 서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퇴근길 책한잔도 있고, 사진관과 카페를 겸한 가게도 생겼다. 이런 알록달록한 움직임은 재개발의 폭풍에 묻혀가고 있다. 서강대와도 문화권을 함께 할 수 있는 거린데, 서강대 남문 옆에 숨도도 좋다. 이번에 갔을 때는 늘 사람이 워낙 많아서 책극장이라는 본연의 역할과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대신 서강대 정문 위에 여행자라는 서점카페는 생각보다 책 선정이 좋았다. 주인장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떠났던 사이 마포에 획을 긋는 경의선 공원 공사도 거의 끝났다. 공덕역의 늘장도 주말엔 푸드트럭까지 와서 더 성행하는 분위기고, 드디어 그 유명한 연남센트럴 파크까지도 공원이 이어지게 됐다. 공원을 따라가면 홍대도 나오고, 연남동까지 편하게 갈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신촌 지하철역 뒷편에는 헌책방 숨어있는책방이 있다. 여긴 알라딘 중고서점에선 구할 수 없는 진짜 희귀한 책들을 구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 그 주위로 파란빵집, 식빵집 등 맛난 빵집들도 많다.

연남동에서 망원시장까지 이어지는 곳에는 워낙 소문난 맛집들이 많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제리코바엔키친이다. 저녁반과 낮반으로 나뉘어 운영하는데 낮반 사장님과는 절친한 사이다. 제주도 가기 직전에도 들렀고, 출국 직전에도 들렀다.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주는 파스타 갔지만 재료 하나하나 먹어보면 자테가 살아있다. 물론 사장님도 재료의 질부터 스토리까지 신경을 많이 쓰신다. 특히 출국전에 찾았을 때에는, 와인 시음을 위해 이탈리아 와인 수입상이 오셔서 우리도 그 맛을 함께하는 호사를 누렸다. 거기다 곧 상용화될 피자도 맛보았다. 피에몬테를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는 곳이다.

이 사장님도 추천하는 식당이 망원동에 있어서 찾아갔다. 협동식당 달고나라는 곳인데 제육, 수육과 한라산을 판다. 먼저 제육과 한라산으로 속을 풀고, 냉면과 해장국을 2인당 하나씩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냉면은 요란함이 없이 차분했다. 해장국은 이 가격에 이런 건더기가 들어가도 되나 싶다. 맛도 순하고 말그대로 속을 다스리고 풀어주는 국물이다.

어쩌다 보니 마포 얘기는 내고향 최고다가 되버렸다.


랭면 공화국

올해 서울의 여름은 냉면 공화국으로 기억될 것이다. 귀국 전부터 누가 뭘 먹었다는 SNS는 태반이 평양냉면 얘기였다. 이 평양냉면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을밀대인데, 여긴 바로 우리집 골목에 있다. 작년에 운좋게 반값 자리에 앉아 먹은 이후론 굳이 줄 서서 먹을 열정은 사라졌다. 지나갈 때 마다 올핸 더 줄이 길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외국 나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냉면이다. 더운 나라들에 오래 있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을밀대는 가지 않았지만 우리도 부지런히 냉면을 먹으러 다녔다. 요리 고수께서 직접 사주신 을지면옥에선 옆 테이블의 아저씨들로부터 냉면의 정의를 배웠다. 먼저 수육 혹은 제육과 소주로 속을 달아오르게 한뒤 그 속을 냉면으로 가라앉히는 것이 냉면 먹기의 정석인 것이다. 요즘 중년 샐러리맨들이 점심이면 냉면집으로 몰려가는 것도 겉으론 미식이지만 실상은 해장이 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냉면집 중 하나는 여의도의 정인면옥이다. 집에서 접근성도 좋고, 가격도 쎈 편은 아니라 좋아한다. 특히 순면은 100% 메밀면이고, 만두도 맛있다. 여기도 열풍에 편승한 덕분인지 가격도 조금 올랐고, 대중화를 고려해서인지 국물 간이 좀 쎄진 감이 있다.

평양냉면류의 가성비 갑은 한살림에서 사와서 집에서 먹는 동치미냉면이다. 계란 두 개를 삶고, 오이까지 송송 썰어 넣으면 딱 좋다. 함흥냉면도 종종 먹었다. 강남을 지나다 함흥 냉면을 한 번 먹었다. 집 근처에는 을밀대 말고도 아소정이라는 괜찮은 냉면집이 있다. 여긴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썼다는 곳인데 함흥냉면을 적당한 가격에 맛있게 말아준다.

동대문의 오장동흥남집과 충무로의 필동면옥을 아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데 못 먹고 온게 아쉽다.


분식과 외식

냉면과 더불어 외국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떡볶이인데 이건 주로 집에서 해먹는게 최고다. 마포 우리집에서 해먹었던 전골식 떡볶이와 합정 어느집에서 해준 즉석떡볶이가 아주 맛있었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면 만만한 것은 치킨과 곱창이었다. 어딜가나 닭고기는 있지만 치맥을 따라갈 곳은 없다.

강남과 강북에서 곱창도 한번씩 구웠다. 곱창은 대학생때까지만해도 취직한 선배신이 강림해야 먹을 수 있는 고귀한 안주였다. 취직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 내 돈으로도 곱창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곱창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아깝지 않다. 양꼬치는 신흥 메뉴로 떠올랐는데 이런 푹푹찌는 여름에 만만한 것이 됐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 퀄리티도 보장되고, 배가 허전할 땐 꿔바로로 채워주면 된다. 어쩌다 보니 한국 여행 얘기는 자꾸 먹방으로 가고 있다. 워낙 거센 시대의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집 음식

집 밥이라고 하기엔 별로 밥을 열심히 해먹지 않았다. 워낙 날이 더워 아침 겸 점심을 대충 해먹는 일이 많았다. 여기저기 친구들 사람들 만나다 보니 저녁도 집에서 먹는 날이 많지는 않았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여편님의 팟타이와 나의 한국식 분짜였다. 태국 요리교실에서 배운 팟타이를 실습했다. 내 생일날 선물로 팟타이를 한 사발 해달라고 했다. 새우, 닭고기, 숙주, 두부, 굴소스, 쌀국수 등의 재료는 얼추 구했지만 달달한 팟타이 소스는 바로 구할 수가 없었다. 일단 산더미 같은 팟타이를 하려니 솥을 써야 했다. 이 난관을 이겨내고, 달달한 맛은 엄마가 보내놓은 귤잼으로 대신했다. 꽤나 훌륭한 맛이었다. 그리고 이후 팟타이 소스를 사와서 한 두번 내맘대로 팟타이를 볶아 먹었다.


그 다음 우리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동거인과 이웃 주빈을 불러 파티를 했다. 이건 내 주도로 베트남에서 먹은 분짜에서 영감을 얻었다. 돼지고기를 생강, 마늘, 양파, 간장 등으로 양념해 볶고, 쌀국수와 숙주를 한 통 삶아서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팟타이 소스와 올리브 드레싱 등과 함께 먹으니 꽤나 훌륭한 파티 상차림이 되었다. 와인전문가 정파리 군이 추천해준 칠레 와인과 함께 먹으니 좋은 궁합이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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