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 볶기

한국에서 한 일 중 가장 생산적인 일을 꼽으라면 원두를 볶은 것이다. 엄마가 남대문에서 생두를 사워서 집에서 볶아 먹겠다고 했다. 나도 실험정신이 차올라서 좀 달라고 했다. 그 일요일 당장 조그만 뚝배기를 꺼내 원두 볶기에 도전했다. 처음 볶은 거라 아주 약불에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럼에도 1차 폭발밖에 일어나지 않아 신맛이 강했다. 마포 프릿츠의 커피와 비슷했다. 나를 이어 도전한 여편님은 나보다 짧은 시간에 이차 폭발까지 일어나 쓴맛이 강한 스타벅스형 커피가 됐다. 커피의 신맛, 단맛, 쓴맛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대략 감이 잡혔다. 하루가 지나니 원두에서 풍미가 나고, 드립으로 내려마시니 아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덩달아 베트남에서 사온 커피핀을 활용했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내려지니 라떼를 만들어 마시기 더욱 용이했다.

두번째 로스팅에서는 원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공정무역원두 중 얼굴있는거래의 르완다 코바카바 협동조합의 아라비카를 사용했다. 커피 계량 스푼으로 10스푼 퍼내니 원두 반 정도였다. 좀 더 큰 뚝배기에 25부 정도 약불로 쭉 볶았다. 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었다. 1차 폭발 후 2차 폭발이 한창 진행되고 나서야 불을 끄고 잔여 폭발까지 방치했다. 몇몇 알을 빼곤 잘 익거나 살짝 탔다. 베란다에서 부채를 동원해 식히고 찌꺼기를 털어내니 20스푼 정도가 되었다. 하루 지나고 나니 그윽한 향기가 났다. 라떼를 만들어마시면 초코렛을 타넣은 듯 했다.



독서 일기

한국에 있으면 가장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우리말로 된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가면 가장 부러운 것이 서양 친구들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힘들게 짐을 지지 않고도, 어디서든 영어, 불어, 독일어 등으로 된 책을 구할 수 있다. 새책은 물론 중고서점에도 그들의 언어로 된 책이 널렸으니 말이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_김호동

몽골과 중앙아시아 전문가 김호동 교수님의 신작이다. 워낙 매니아 층이 두터운지라 빌리는 것도 운이 좋아야했다. 약간 교과서적인 느낌이다. 워낙 방대한 내용이기도하다. 그림과 사진도 많고, 다 잊어버렸던 이 지역사를 되살리기에 좋은 책이었다. 심화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도 강하게 된다.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_노엄 촘스키, 안드레 블첵

여행 중에 눈에 들어온 책이다. 촘스키의 책은 큰 관심이 없었지만 안드레 블첵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처음 구독한 녹색평론에서 그가 쓴 라틴아메리가 얘기와 그 후에 또 녹색평론에서 소개된 유럽 복지사회에 대한 비판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 역시 그간 모르고 있었던 제국주의의 폐해를 일깨워줬다. 생각보다 더 그들이 행한 짓은 잔혹했고, 지금도 그렇다. 라오스의 항아리 폭격 사건 등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덕분에 보다 더 서구 문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총균쇠_재레드 다이아몬드

이걸 배낭에 싸들고 갈까를 고민했고, 또 가져와서 읽을까 했었다. 도저히 못참겠어서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고 이후에 몽골에서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제목과 다르게 인류의 역사를 갈라 놓은 것은 목축이었다. 지금껏 실컷 본 소, , , 염소, 낙타가 바꾸어 놓은 게 생각보다 많다. 그것 말고도 식량 생산의 영향과 환경적 영향, 한동안 관심 갖고 읽어온 지리학 이야기나 바빌로프의 종자 이야기들이 잘 매듭지어졌다.


군대를 버린나라 코스타리카_아다치 리키야

예전 쿠바 관련 책도 일본인 저자였는데 이것도 일본 사람이다. 일본의 중남미에 대한 이해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은 것 같다. 평화는 민주주의, 인권, 환경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단다.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_실뱅 테송

시베리아의 월든을 생각했으나 그런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책을 궤짝으로 들고 가서 시베리아의 오두막에 반 년을 살았단다. 워낙 어수선한 시기라 책이 잘 읽히지는 않았지만 예상대로 여편님은 이 책을 너무 좋아했다. 다 읽지 못했는데 가져와서 마저 볼 걸 그랬다.


녹색평론 147, 148

여행 중 가장 아쉬운 것이 녹색평론을 꾸준히 못 보는 것이다. 왜 르몽드처럼 피디에프 판을 제공하지 않는 것인가. 149호도 흥미로워보였는데 못 보고 왔다.


아버지의 라디오_김해수

라카페에 갈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신 느린걸음 연구원께서 책도 두둑히 챙겨주셨다. 대신 방학 숙제도 하나 하게 되었다. (부록1)



감상 일기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_국립중앙박물관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이런 전시를 한다니 안 가볼 수 가 없었다. 황금의 유적들은 찬란했으나 대부분이 알렉산더 시대의 유물이었고, 이 유물들의 발굴을 주도한 것도 영미권의 학자들이었다.


정글북

제주 시청을 지나다 선약이 어긋나서 영화를 봤다. 곰 케릭터가 아주 맘에 들었다.


제임스 본

영화의 도시 부산에 갔으니 하나 봐야했다. 본 시리즈 몇 편을 재밌게 봤어서 이것도 재밌게 봤다. 끝의 자동차 추격신은 좀 어거지엿다.



한국 감상

중간적 존재

한국에서 머무는 기간은 중간적 존재였다. 아예 한국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여행자의 신분으로 있는 것도 어려웠다. 어쨌든 우리가 살던 집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감정적 고비들이 있었지만 막상 떠날 때가 다가오니 자연스레 털어졌다. 생각보다 체류 기간이 길었지만 그만큼 지인들도 많이 만나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폭염과 기후변화

한국의 여름은 사상 최고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떠난 지금은 더 덥다고 한다. 차와 건물은 늘어서 덥고, 에어컨을 틀면 안은 시원하지만 밖은 더 더워진다.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서로 누구 탓만 하지 자정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짐또싸기

짐을 싸다보니 지난 여행은 전반기라기 보다 에필로그가 아니었나 싶었다. 시행 착오를 겪은 덕분에 좀 더 효율적이고 요긴한 것들을 추가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냈다. 대신 남는 무게는 책으로 채워서 무게는 거기서 거기다. 책들은 대부분 시내 중고서점들을 뒤져서 얻어냈고, 절대 못구한 것들은 중고상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거나, 그래도 못구하는 것들은 샀다. 옷가지는 대충 입던 걸 그대로 입고, 추위를 대비해 네팔에서 샀던 두툼한 덧바, 털모자, 우비 등도 그대로 챙겼다.


테블렛PC와 전자책 단말기

지난 여행에서 여편님의 연말정산과 한국 결제 등을 위해 노트북을 하나 더 들고 다녔다. 이런 비효율이 없었다. 전자책이나 PDF도 편하게 볼 겸 윈도우 테블렛을 사기로 했다. 알아보니 가장 무난한 것이 델 베뉴(DELL) 라인업이었고, 여러 사이즈를 비교해본 결과 9인치가 적합했다. 중고나라를 뒤져서 10만원에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편님의 전자책 단말기도 두고 가기로 했으나 몽골에서 뒤늦게 배낭 속에서 발견되었다. 막상 가져와서 보니 좋다고 하신다.


기타 전자제품

샤오미 보조베터리는 접촉 불량이 되버렸다. 이번엔 그냥 안 가져가려고 했는데 여편님의 충실한 전 직장 후임이 보조베터리를 하나 챙겨주셨다. 용량은 좀 작지만 가볍고 이쁘다. 집에 뒹구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전용 필름도 챙겼다. 여행 다니면서 선물로도 줄 수 있고, 바로 소장도 가능하다.



신발

말레이시아에서 운동화를 구입하고 한국에서까지 신고 다녔다. 하지만 등산화도 필요했고, 이왕이면 튼실한 샌들도 좋을 것 같았다. 가산의 아울렛에 가서 매장을 쭉 돌아보았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콜롬비아의 가볍고, 부드러운 등산화 2켤레, 몽벨에서 나온 아웃도어용 샌들 2켤레였다. 특히 몽벨의 샌들은 밑창은 운동화 재질이면서도 위에는 가벼운 샌들 형태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세면도구

드문드문 물로만 머리감기를 하고, 씻는 것도 대부분 물로 씻게 되면서 샤워 용품에 대한 절박함이 사라졌다. 대충 비누 몇 개와 샴푸, 클렌징 소량만 챙기니 훨씬 간결해졌다.


통신사 이동

원래 쓰던 알뜰폰 통신사의 기본 요금이 더 높아져서 아예 우체국 알뜰폰의 통신사로 옮겼다. 기본요금 3000원짜리가 가능했다. 다만 떠나기 전에 요금제를 바꾸려니 고객센터가 묵묵부답이었다. 한시간 만에 극적으로 연결이 되어 바꿀 수 있었다. 통신사에 대한 불만을 아래와 같은 글로 해소하기도 했다. (부록2)



이동도서관 이차

이번에도 가장 큰 짐은 책이다. 초반엔 큰 배낭 들고 움직일 일이 적을 것 같아 두둑히 챙겨왔다. 먼저 내가 들고 있는 책이다.


가난한 농민에게 고한다_레닌

레닌 그라드까지 들고 가야할 책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_릴케

릴케는 여러 번 좋은 글을 접해서 인상이 좋다. 서울국제도서전 범우문고에서 득템했다.


TRANS SIBERIAN RAILWAY_LONELY PLANET

시베리아 횡단열차 가이드북이다. 올해 한글판도 나와서 그걸 새로 살까 했는데 운명처럼 중고책을 구하게 됐다.


터키_LONELY PLANET

심지어 한글판을 중고로 구했다. 안그래도 IS로 시끄러운데 쿠데타로 더 시끄러워졌다. 우리가 갈 때 쯤엔 잠잠해졌으면 한다.


마르코스_베르테랑 라 데 그랑쥬, 마이테 리코

멕시코 자파티스타의 리더 마르코스 이야기다. 작년에 숨어있는 책방에서 건진 책이다. 휴대성도 좋고, 내용도 기대된다.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_잭 웨더포드

제주베이스캠프에서 보고 탐이 났는데 중고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몽골에 대한 심화학습용으로 몽골에서 다 읽었다.


죄와 벌_도스토예프스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선 왠지 퍽퍽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이 어울릴 것 같았다. 한 권짜리로된 죄와벌을 찾아헤멘 끝에 강남에서 건졌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작년에 산 새책이다. 잘 관리해서 두고두고 읽으며 남미까지 갔으면 좋겠다.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_유진 로건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교수님의 페이스북에서 본 추천도서다. 아랍 지역의 근대사를 이해하고 싶다. 큰 맘 먹고 새책으로 샀다.


이스탄불_오르한 파묵

제목과 저자만 듣고도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여편님이 중고로 업어왔다.


이븐바투타 여행기_정수일 역주

저 언 옛날에 모로코에서부터 아시아까지 다녀간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워낙 흥미진진해 보여서 탐을 내고 있었다. 유일하게 인터넷 중고거래까지 해가면서 구한 책이다.


다음은 여편님이 들고 온 책이다.

무소유_법정

이 많은 책을 들고 다니는 걸 알면 스님한테 혼날 게 뻔하다.


너의 시베리아_리처드 와이릭

읽다 만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 보다는 안 읽은 시베리아 이야기를 들고 오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여행의 기쁨_실뱅 테송

그 대신 실뱅 테송의 다른 에세이를 사왔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아요_박노해

떠나는 우리를 위해 느린걸음 연구원님께서 손수 챙겨주셨다. 라카페에서 보고 느낀 감성들을 쭉 이어갈 요량으로 챙겨왔다.


조용한 혁명_호세 무히카

무히카 할배의 조용한 혁명이 드디어 번역되서 나왔다. 안 사고 안 가져 올 수가 없었다.


몸에 벤 어린시절_휴 미실다인

쥐도 새도 모르게 딸려 왔다고 한다.


온 삶을 먹다_웬델 베리

리 호이나키에 이어 우리를 즐겁게 해줄 대륙의 사상가일 것 같다.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_

이것도 마찬가지류의 자립과 관련한 책이라 기대가 된다. 빽빽하니 효율적이기도 하다.


세 종교 이야기_홍익회

추천해드렸더니 넙죽 구해와서 읽겠다고 했다. 몽골에서 해결했다.


아티스트 웨이_줄리아 카메론

몸소 창의력을 키우시겠다고 이런 책도 들고 오셨다. 12주 뒤가 기대된다.



사진_들고 온 책, 칭키스칸 책과 세 종교 이야기는 몽골에서 해결이 되었다.



부록1_아버지의 라디오 감상문

출처: 느린걸음 블로그 http://blog.naver.com/slow_foot/220769358027

요즘 나의 독서목록은 다른 나라 이야기나 오래된 역사 이야기에 쏠려 있었다

서점을 가도 경영·경제·자기계발서 분야는 순식간에 지나쳤다

<느린걸음>은 이런 나의 취향에 충실한 출판사였다

그런 곳에서 국산 라디오 이야기를 펴냈다니? 아주 의아했다

처음엔 산업화 시대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도 그때처럼 도전하라는 내용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책감이 좋아서, 조금은 다르겠지라는 생각에 책을 읽어내려갔다


유명한 정치가, 기업가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지 

엔지니어 아버지 '김해수'의 이야기는 

우리 할아버지 혹은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당시 사람들이 쓰던 소소한 도구들에 대한 기술자의 관점이 더해져 

시대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금성사 창업 초기 시절 이야기도 기술개발에서부터 

시장에서 제품이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흔히 접하는 기업가의 성공 스토리에는 기업가의 비전 제시와 추진력만을 조명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 제품 대부분은 

기술자와 노동자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온다

리더들은 이 제안을 구별하고, 실행하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곳곳에서는 리더만을 주목하고

이는 조직 내에 소외감과 갈등을 증폭시킨다


또한 필자가 기업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는 기술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우리에게 익숙한 노사 간의 갈등 역사와는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간부들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는 구인회 회장도 지금의 재벌 2,3세가 

경영을 숫자로만 대하는 것과는 다른 '사람경영'의 냄새를 풍긴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라듸오』에서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선 긋고 어느 한쪽을 편 드는 논리가 없다

필자는 다음 세대를 향해 '왜 우리의 희생을 몰라주냐', 

'우리 땐 이랬다' 등의 어조로 옛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한마디로 꼰대같지 않아 좋았다

그는 지난 시대를 회상하면서도 시대적 성과와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세대 간에 담아두었을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나눌 뿐.

앞선 세대의 따뜻한 응원을 등에 업고 

새로운 세대를 그려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대부분 산업화 세대의 자식이거나 민주화 세대의 부모일 것이다

이 두 세대는 정치 논리나 신문기사 속에서 늘 서로를 헐뜯는 반대 세력으로 그려진다

경쟁 사회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우는 개인으로 분석될수록 세대 간의 갈등은 커진다

시선이 경쟁 안으로 향할수록 상처를 입는 것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다

어느 한쪽이 다치면 한쪽이 슬플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넘치는 분석도 과장된 드라마도 아닌

조금은 수수한, 그래서 서서히 젖어드는 이야기 『아버지의 라듸오』.

이 책이 갈등과 대립으로만 치닫기 쉬운 우리 사회에

세대 간의 관계와 신뢰를 회복하는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본다.



부록2_호구폰과 호가항공

출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o.cordon

4년 정도 이용하던 CJ헬로모바일과 결별하고 우체국에서 공급하는 소규모 알뜰폰으로 갈아탔다. 쓰던 폰과 번호 그대로 유지하고 유심만 바꿔서 개통했다. 통화 100/문자 100/ 데이터 1기가에 12000원이다. 갈아타게된 계기는 헬로모바일이 평생 반값고객이라면서도 정작 새로 생긴 착한00 요금제 등은 적용이 안된다는 둥 슬슬 약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년 간 쓰면서도 통화나 데이터 품질 문제로 불편을 느껴본 적은 없고, 이번 통신사도 KT망을 쓴다니 별 걱정은 안된다. 그리고 오늘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갈 일이 있어 아이디 찾기를 해봤다. 유물같은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니 아이디를 찾을 수 있었고,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도 몇 천점이나 적립되어 있었다. 어느새 저가항공이 주류로 자리 잡아서 이런 대형 항공사를 이용할 일이 없어서다. 최근 몇 년간은 제주도를 왔다갔다 할 때도 제주항공 등을 이용했고, 작년에 신혼 여행을 갈 때도, 올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때도 대부분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에어아시아 결제를 하다 빡쳐서 인도항공을 타봤는데 좌석이 너무 넓고 아늑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에어아시아도 결제가 익숙해지니 딱히 다른 항공을 이용하진 않게 된다. (물론 이것도 에어아시아의 잘못이라기보다 항공권을 예매하는 데에도 복잡한 인증절차를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금융결제 규제 때문이다.)

결론은 최근 몇 년간 저가항공, 알뜰폰을 이용해왔지만 딱히 불편을 겪은 적이 없다는 거다. 그저 적정한 가격에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대부분의 비행기에서 내가 바라는 건 안전함이고, 휴대폰에서 바라는 건 빵빵함 뿐이다. 그나마 신경쓰이는 건 저가항공, 알뜰폰을 쓴다고 하면 허리띠를 졸라메고 산다는 인식을 갖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건 사람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이런 용어와 기존 업체 위주로 시장을 보는 문제가 크다고 본다.


이 서비스와 업체들을 저가항공, 알뜰폰이라고 부를게 아니라, 독과점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가격담합, 뻥튀기 등으로 소비자 등골만 뽑아먹었던 업체들을 호가항공, 호구폰 등으로 불러야 한다.

Posted by Cord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