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도_0621_0628


김포공항과 제주공항

제주공항이야 몇 년전부터 북새통이었지만 이번엔 김포공항 마저 엄청난 제주행 비행기 폭격으로 미어터졌다. 제주공항의 신공항도 문제지만 그 많은 서울-제주 노선을 김포공항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한 개의 게이트를 나눠서 쓰는 걸 김포공항에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제주공항은 당연히 미어터진다. 너무 시끄러워 구석에 피난해 있었다.


숙박_제주도집

마음 같아서야 우리집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엄마 아빠가 사는 집에서 일주일을 묵었다. 여편님 기준으론 시월드이기도 하다. 대략 4년 전 내가 여행을 떠난 사이 부모님은 지금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 전 겨울에 집을 보여줬을 땐 그냥 황량한 벌판에 있는 황량한 집이었다. 여행 후 돌아와보니 집은 새단장이 되있었고, 잔디밭과 감나무, 텃밭 등 초록으로 가득했다. 당시 지친 심신을 추스리며 일주일 이상을 넋놓고 지냈다. 이때부터 느꼈지만 부모님 집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 집 자체를 아주 사랑하게 됐다. 제주시 신시가지 외곽에 위치하는데 여기도 개발 붐을 타서 갈 때 마타 주택단지가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 다행히 집 바로 옆 밭과 골목은 잘 버티고 있다.


아빠의 사무실과 엄마의 한의원

집에 묵는 대가는 혹독했다. 올해 연말, 내가 퇴사를 하고(여편님은 미리 퇴사를 하고), 동생은 취업이 됨과 동시에 아빠는 3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자영업을 시작하셨다. 업종은 원래 일하시던 분야에서 벌이는 중간 유통이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신터라 이래저래 신경 쓸일이 많았고, 짧게나마 머무르는 나에게도 몇 가지 과제가 부여됐다.

첫번째 과제는 노트북 구입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 노트북 구입을 요청하셨고, 이왕이면 서울에서 사오라고 했다. 검색 좀 해서 화면 크고 가성비 무난한 걸 인터넷으로 구매했고, 집에서 먼 거리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직접 수령하러 갔다. 일본에서 사온 그 자전거다. 하지만 서울의 구도심은 복잡하고 언덕이 많고, 도보는 좁고, 차도의 차는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 내리막을 내려가다 보도로 올라가려는데 높은 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과 어깨를 살짝 밀어먹었다. 다행히 노트북 수령 전이라 노트북은 무사히 받아서 들고 올 수 있었다. 이걸 고이 모시고 제주도로 갔다.

다음 임무는 노트북과 주변 기기의 연동, 기본 소프트웨어 설치 및 간단한 사용 교육이었다. 국세청 계산서 발급 등은 나도 모르는 업무라 제꼈다. 스마트폰 사진 전송과 이메일 열람 및 전송 등을 가르쳐드렸다. 의외로 시간이 걸렸지만 나름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이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서너번이나 아빠의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사실 이 사무실을 드나드는 것이 싫지 않은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무실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집이다. 구시가지 개천 변에 위치한 작은 집이다. 이 집을 적당히 손봐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내 기억엔 그 정도로 작은 집은 아니었는데 지금 가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작은 공간이다. 이 작은 집을 안방, 중간방, 거실 등으로 나누고 네 식구가 어떻게 살았나 싶기까지 하다. 사무실 방문의 백미는 짜장면이었다. 오전에 어디를 갔다가 사무실로 가면서 짜장면을 시켰다. 그 허름한 사무실에서 나와 여편님, 아빠 셋이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먹었다. 오래된 쇼파에 앉아 탁자에 신문지를 깔고 먹었다. 고사장, 고대리, 윤과장의 창업, 벤처, 스타트업 정신 풀풀 나는 식사였다.


위와 같은 식사가 가능했던 건 엄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저런 류의 배달 음식을 매우 저급하게 보는 분인데 더해 요즘은 한의원을 다니며 팔체질에 몰두하고 계신다. 우리가 제주도에 있는 동안 이미 한의원 예약이 잡혀 있었고, 반강제로 팔체질 진료를 받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체질은 토음인으로, 돼지가 좋다고 했다. 그동안 돼지를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대략 내가 다 좋아하는 음식들이 나와 궁합이 맞는다고 하니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장기 여행자 신분에 음식 가려먹는 게 쉽지는 않다. 여기 몽골도 돼지고기는 나름 귀해서 시골가면 닥치고 뿔달린 짐승고기다. 돼지고기 맘껏 먹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야 겠다.



육지사람들, 맥파이, 오일장 등

여편님과 함께 오고 이러다보니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둘다 아는, 육지에서 알던 사람 중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주 만난 사람은 우리의 네팔 멘토 화성인님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사이 이분은 운명처럼 불숙 제주도로 내려와 살게 된다. 지인분들과 제주도에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계신다. 네팔에 대한 공감 대를 가득 안고 가니 더욱 반가웠다. 거기다 혼자 사는데 투룸을 얻게 되어 남는 방 하나를 에어비엔비로 활용하고 계신다. 거실 책장을 여행 책자로 꾸미신다길래 집에서 안보는 책이나 당분간 볼일이 없는 책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만나게 됐는데 그 중 한분은 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당연히 섬은 좁아서 크게 놀랄일은 아니다. 또 어쩌다 에어비엔비의 중간 매니저로 일하는 분도 만나게 됐다. 공기 방울방울 같은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여러모로 신세진 것도 많고 먹거리도 한 번 크게 나눌 생각으로 이분들을 부모님 집으로 초대했다. 잔디밭에 초석을 깔고 오겹살과 목살을 굽기로 했다. 엄마가 보너스로 전복도 굽고, 남은 전복으로 전복죽도 끓여주셨다. 그 선배님의 형수님과 아이들도 합류해 잔치가 더욱 재밌어졌다. 아이들이 잔디밭을 너무 좋아했고, 부모님도 간만에 귀여운 아기들을 접해서 신나셨다.

또 제주베이스캠프에 놀러갔다가 급 나들이를 하게 됐다. 제주도 동쪽으로 가서 맥파이라는 수제 맥주집에 갔다. 이태원에서 시작한 이곳은 제주도에 양조장과 매장을 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양조장을 겸한 매장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영어로 인사가 나오고, 외국인들이 많았다. 제주도가 엄청 글로벌해진걸 새삼 느낀다.또한 이날 저녁엔 제주베이스캠프로 돌아가 파스타를 해먹었는데 후식으로 만보기네 김밥을 맛보게 됐다. 남은 걸 집에 싸가서 다음날 후라이팬에 데워 먹었더니 또 꿀맛이었다.


이들 말고도 태국에서 만난 하늘양도 만날 수 있었다. 잘 돌아다니는 하늘양은 이번 여름엔 제주도 바닷마을에 흔한 집을 얻어 머물고 있다. 중간 점접이 오일장이라 겸사겸사 오일장 구경을 먼저 했다. 별에 별거 다 있는 오일장이지만 여행자인 우리가 향하는 곳은 먹거리 밖에 없었다. 잔칫날이나 장례식날 먹는 급은 아니었지만 피순대를 찾아 시장식 떡볶이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 하늘양의 주 근무지인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로 가서 얘기를 나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시설은 꽤나 좋은데 여길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자꾸 변화하는 제주도를 보면 예전보다 훨씬 살기 재밌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변화들이 스스로 나온 변화라기보단 좋든 나쁘든 외부로부터 온 것 같아 좀 아쉬움이 든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위치한 제주 시청 주변은 오랜만에 갔지만 크게 변한게 없었다.


절물 휴양림과 도립 미술관 강요배

사실 엄마는 우리가 머문 기간 동안 고모네 횟집에 일을 나가야 했다. 다행히 하루 쉬게 되어 절물 휴양림으로 갔다. 원래는 사려니숲길을 가려 했지만 주차가 문제엿다. 주자장을 가려다가 그냥 절물로 갔다. 훨씬 사람도 적고 좋았다. 산책로에서 몸을 풀고 가볍게 오름을 오르니 주변 경관이 탁 트였다. 가운데 분화구를 두고 한바퀴를 빙 둘러 볼 수 있으니 좋은 산책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강요배의 전시였다.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괜찮은 전시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제주도 도립미술관에서 하는 강보배 화가의 전시였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도 가까워 찾아갔다. 도립미술관 입장료는 이천원에 불과한데 마침 또 미술관 생일 기간이라고 무료 입장이었다. 전시가 너무 좋아서 잘 안듣는 도슨트도 듣고, 또 다시 전시를 여유있게 만끽했다.

작가의 어린시절 그림부터 볼 수 있었는데 이미 초등학교 시절 추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후 시대적인 문제의식에 몰두했고, 제주도의 4.3 항쟁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바람과 자연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상반기에 본 다른 외국의 유명한 그림들보다도 큰 감성을 얻었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자의 마음응 푸는 길은 오직 자연에 다가가는 것 뿐이었다. 그 앞에 사면 막혔던 심기의 흐름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하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거나 격렬하게 후려치면서,'

마음의 풍경_작가에세이 중


1부에서 냉면을 다뤘다면 2부의 주인공은 회다. 외국가면 그리운 양대 산맥이 회와 냉면이라 했는데 제주도에서 마음껏 충전했다. 우리가 먹은 회는 모두 고모가 운영하는 횟집에서 먹은 것이다. 유명 횟집을 운영하는데 인사차 한 번 들러서 가볍게 회와, 전복, 한치 등을 먹었다. 그리고 떠나기 마지막날에는 회 한접시를 테이크아웃 해와서 집에서 마음껏 즐겼다. 화사하고, 쫄깃한 돔의 맛은 참으로 깊은 것이다.



2) 부산_0728_0802


고속버스터미널

버스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자리도 넓고 오랜만에 타는 터라 신이 났다. 휴게소 간식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감자도 없었고, 핫도그는 냉동같았다. 옆에 던킨도너츠로 우울함을 달래야했다.


숙소_이모비엔비

부산에 형님 집은 신혼집이라 쳐들어가기가 뭣하고, 휴가 기간이라 다른 숙박 구하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우리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부산에 사는 이모집은 아들들이 다 나가서 방도 남았고, 쿨한 이모는 얼마든 와서 자라고 했다. 첫날 가자마자 이모부가 웰컴드링크로 발렌타인도 까주셨고, 아침마다 과일을 겻들인 빵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팥빙수 매니아인 두 분 덕분에 부산의 자랑 설빙을 두 번 가고, 동네의 유명 팥빙수도 맛 볼 수 있었다.


다시 회

제주도 이야기를 회로 끝냈으니 회 이야기를 마저해야 겠다. 부산에 잘 아는 신부님이 우리에게 회를 사주셨다. 해운대에 위치한 경관 좋은 횟집이었다. 고등어 회는 물론 각종 회가 맛깔스러웠다. 일본에서 사갔던 사케도 대동해서 겻들이니 좋았다. 그 다음날엔 형님께서 우리를 위해 초밥을 사주셨다. 꽤나 유명한 곳이라 코스도 잘 나오고 맛나게 먹었다. 오후부터 여편님은 속이 이상하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나도 속이 이상해 설사를 했다.

밤 중에 여편님이 나를 깨우며 너무 춥다고 한다. 좀 지나니 너무 덥고, 아프단다. 식중독 증세였다. 형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함께 먹은 아주망은 응급실을 다녀왔다고 한다. 다행히 응급실에서 별다른 처방을 해준 건 아니라서 여편님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모가 다음날 죽도 끓여주고 지나고 나니 속이 다 괜찮아졌다. 그 폭염 속 점심에 초밥과 회를 넙죽넙죽 먹은 우리가 바보였다. 힘겨운 토요일 밤을 보냈지만 일요일 오후에 또 형님 집을 가서 꽃갈비를 구워먹으니 기운이 솟았다.


백제병원과 인디고 서원

여편님이 부산의 신흥 명소라고 하는 백제병원을 가보자고 했다. 오래된 병원 건물 내부를 카페로 쓰고 있단다. 최근 개업한 곳인데 공간도 넓고, 커피도 맛있고, 콘크리트가 생생해서 시원했다. 우리끼리 한 번 가고 서울로 돌아가는 여편님의 친구도 여기서 만났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인디고 서원이었다. 부산에서 유명한 인문서점이라고 해서 가볍게 구경하려고 갔다. 의외로 내가 듣도보도 못한 책들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새로운 희망 독서 리스트를 잔뜩 얻을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신부님에게 드릴 책으로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도 구매했다. 인디고 서원 옆에는 에코토피아라는 채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료는 크게 감명 깊지 않았지만 여기서 운영하는 요리 수업이나 다양한 채식 메뉴는 맛있을 것 같았다. 부산의 라카페 같은 곳이었다.


3의 고향

예전에도 부산을 몇 번 왔었고, 이젠 공기업 이전 등의 효과로 부산에 지인도 제법 많아졌다. 덕분에 부산에서의 일정은 생각보다 꽉 들어찼다. 떠나기 전날엔 작년에 향토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던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서울에서 빡빡하게 사는 것 보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다고 한다. 저녁엔 여편님과 함께 또 다른 후배를 만났고, 점심에 만난 후배도 합류했다. 이 후배는 타향 살이가 힘들었는데 곧 서울로 돌아가게 됐다고 한다. 부산만큼 텃새가 덜한 지방도 없지만 가족도 남겨두고 홀로 내려와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후배와 김치말이국수로 점심을 먹는 사이, 여편님은 이모, 이모부와 점심을 먹었다. 오소리 순대라는 근처 식당에 갔는데 고기와 순대가 충격적으로 맛있었다고 한다. 가끔 술 없이도 고기만으로 취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이날 여편님의 상태가 그러했다. 이날 오소리 순대를 못 먹은 곳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어 또 부산을 찾게 될 것 같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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