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Bogota)_0808_0815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왔다. 원래 월요일에 가려했으나 꽃축제의 여파로 하루 미루고 화요일에 떠났다. 새벽같이 터미널에 도착해서 미리 예매한 버스를 기다렸다. 식당에서 조식 메뉴를 사먹었다. 콜롬비아식 아침은 계란, 아레파(Arepa), 치즈, 핫초코가 기본이다. 은근 아침에 먹는 핫초코가 매력있다. 버스 길은 꼬불꼬불 끝도 없다. 중간에 라 도라다(LA DORADA)를 지날 때 여편님은 막달레나 강을 외쳤다. 이 곳 항구에서 막달레나 강을 따라 커피를 카리브해로 날랐다고 한다. 버스에선 영화를 4,5편이나 봤다. 심지어 보고타에 다다르니 퇴근시간,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장장 12시간이 걸려서 보고타 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보노보노가 일러준 호스텔로 향했다.


숙박_Ulucaho Hostel_식물성 게르_7

호스텔은 컬러풀한 벽에 부엌, 공용공간, 잔디밭도 있다. 하지만 휴가철이라 그런지 일주일 내내 비는 방은 없단다. 우리는 제일 안쪽 잔디밭 옆의 게르를 배정받았다. 담쟁이 덩쿨이 천막을 덮고 있는 식물성 게르였다. 보고타는 메데진 보다 고도가 높아서 밤, 새벽엔 매우 쌀살했다. (보노보노에게 보내버린 패딩이 아쉬웠다.) 어찌저찌 침낭과 옷을 껴입으니 잘만했다. 문제는 잔디밭 옆에 벤치에서 술판을 벌이는 놈들이었다. 처음 며칠은 조용하더니 금토 연속으로 잠을 설쳤다. 주인장에게 강조를 하니 일요일부턴 스텝이 나서서 자제를 시켰다. (스텝인 윌은 토요일 밤엔 같이 떠들 정도로 뺀질 거리는 애였지만, 안쪽 방에 머무는 주인장 부부는 매우 점잖으신 분들이다.)

구시가지 중심에 그래도 이만하면 좋은 숙소였다. 양은 적지만 과일과 계란이 포함된 콜롬비아식 아침도 차려주고, 잔디밭에서 마음껏 광합성도 할 수 있다. (대부분 아침에만 해가 난다.) 주방도 잘 되있고, 만들어 먹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메데진에서 요리 열정을 다 쏟아서 간단한 짜파게티나 볶음류만 만들어 먹었다.


호스텔 사람들

간만에 호스텔에 머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 건 하비에르 아저씨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 출신으로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친다. 스페인어를 가르쳐서 그런지 말도 천천히 하고 발음도 정확해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다. 보고타에 딸도 있어서 겸사겸사 놀러왔단다. 아침이면 잔디밭에서 담뱃대로 담배를 태운다. 재밌는 건 중국을 여러 번 여행했다는 거다. 위구르, 티베트 같은 곳까지 구석구석 다녔다. 중국말도 좀 할 줄안다. 결국 떠나는 날 함께 짬뽕을 만들어 먹었다. (메데진에서 총각의 중국 요리를 보며 고추 기름 만드는 데 취미를 붙이던 시기다.) 젓가락질도 수준급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조용한 시골집에 혼자 살고 있으니 언제든 놀러오라고 했다.

저녁으로 짜파게티를 만드는데 옆의 거실에서 누구 생일이란다. 조셉이라는 페루 사람이다. 보고타에 사는 여자친구 발렌티나를 만나러 왔단다. 이 둘은 인터넷으로 만났다고 한다. 남미 대륙에선 다들 말이 통하니 인터넷으로 외국 사람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점심에 한식당에서 사온 김이 있어서 선물로 줬다. 바다맛을 아는 페루 사람이라 그런지 좋아했다.


한국에 공연하러 갔었다는 아르헨티나 민속공연단도 만났다. 그리고 호스텔의 마지막 며칠을 휩쓴 언니들을 만났다. 간만에 햇살이 좋아서 밀린 빨래를 널려고 보니 빨랫줄에 옷이 가득했다. 왜 방이 없나 했더니 주말에 단체 손님이 온 것이다. 다 여자들이다. 거침이 없다. 직원들 눈치도 안 보고 빨래를 넌다. (그 안 빤다는 청바지도 널려있다.) 다음날인가 잔디밭에서 햇살을 쬐고 있는데 이 언니들 중 한 명이 말을 건다. 말이 엄청 빨라서 못 알아듣는다. 어찌어찌 대화를 나눈다. FARC란다. 내가 잘못들었나? 얼마 전까지 무장투쟁을 하던 그 게릴라 단체다. 정확하게는 FARC의 여성조직이라고 한다. 평화협정이 진행되면서 이제는 정치적 투쟁, 사회운동으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관심을 보이니 아예 게릴라 강령집도 줬다. 저녁엔 다른 언니와도 얘기를 나눴다. 자기네 동네로 놀러오란다. 시골엔 공기도 좋고, 보고타처럼 파파야가 비싸지도 않고(대체 얼마나 싸길래), 팔려고 내놓은 집도 저렴하다고 한다. 물건 사고 볼일보러 왔지 대도시는 싫다고 한다. 미리 끊은 비행기만 아니면 진짜 가보는 건데 아쉽다. 군복 입은 사진들도 보여줬다. 투쟁 방향이 바뀐 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도 여편님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이제 막 스마트폰의 세계에 눈을 떠서 그런지 이런저런 광고성 문구를 마구 보낸다.


참고 SNS: MUJER FARIANA https://www.facebook.com/MujeresFarianas/


주변_BBC_BOGOTA BEER COMPANY_0808 &0810 &0813

숙소 주변은 완전 중심가에 대학가다. 메데진에 없던 예쁜 언니들도 많이 보인다. 저녁 10시가 넘으면 숙소 앞에 걸인들이 자리를 잡아서 좀 신경쓰이긴 해도 주변을 돌아다닐만 했다. 저녁 늦게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그 유명한 BBC, 보고타에서 가장 유서깊은 맥주집 중 하나라고 한다. 첫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달려갔다. 저렴한 가격으로 7가지의 샘플을 맛볼 수 있었다. 피자도 좀 비싸도 맛있었다. 하지만 다음부턴 무난하게 라거만 마셨다. 다른 곳에 비해 확실히 맥주 값이 좀 비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찾아간 날엔 맥주 두 잔을 시키니 아슬아슬 주머니에 꼴랑 천페소가 남기도 했다.

대망의 엘클라시코가 있던 일요일 오후, 주변 술집은 다 닫고 BBC만 열었다. 축구 중계한다고 입간판도 내걸었다. 난 바르셀로나의 팬이지만 (까딸루냐 찬가_3_FC 바르셀로나 캄프누(Camp nou) 직관기http://cordon.tistory.com/161 ) 이날 레알마드리드의 축구는 완벽했다. 거기다 우리형 호날두의 웃통벗는 세레모니의 폭풍간지에는 저절로 기립박수를 쳤다.


시내 교통_TRANS MILENIO

보고타에선 시내, 교외를 많이 돌아다녔다. 보고타엔 지하철도 트램도 없는 대신 버스와 트램, 지하철의 장점을 모두 합친 트랜스 밀레니오가 있다. 대부분의 구간에 버스 전용차로가 적용되고, 환승도 정류장 내에서 이뤄져서 지하철처럼 이용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역이 서울의 환승센터처럼 생겼다. 노선 번호가 앞의 알파벳으로 종점을 파악할 수 있게 배정되고(갈 때와 올 때 버스 번호가 달라진다.) 동네 마을 버스(초록색)는 무료라 별도의 환승시스템 없이도 트랜스 밀레니오를 타러 갈 수 있다. 교통 카드는 대부분의 역에서 쉽게 사고, 충전이 가능하다. 공항까지도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다. 지금 껏 겪어본 대중교통 시스템 중에 가장 편하고, 만드는 데 돈도 별로 안들었을 테고, 환경 파괴도 적었을 최고의 시스템이다.


아드리와 함께 하는 보고타 관광_0809

보고타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아드리를 만나는 것이었다. 아드리는 나와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 스페인어 강의를 했던 선생님이다. 나 말고도 한국인 학생을 많이 가르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2년 전에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심지어 서울에서 잡은 숙소가 우리집 근처라 여편님과 함께 카페에서도 한 번 만나고, 집에 초대해서 불고기도 맛보여줬다. 콜롬비아에 왔더니 당연히 웰컴, 보고타에 오면 꼭 만나기로 했다.

멋모르고 ARTE Y PASION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양쪽 다 찾는데 애를 먹었다. 나보고 건강해 보인다고 칭찬해줬다. (아드리는 여편님을 늘 BONITA ESPOSA라고 강조한다.) 아드리는 이미 오늘의 일정까지 다 짜고왔다.


MUSEO DEL ORO_0809

먼저 황금박물관으로 갔다. 아드리의 예상 방문 시간은 2시간, 하지만 질문이 많은 여편님과 풍부한 지식을 가진 아드리의 조합은 3시간을 초과했다. 화려한 금붙이와 각 지역의 장식물들은, 콜롬비아 구석구석을 못 가서 한에 사무친 여편님을 신나게 했다. 난 이미 녹초가 되어 마지막 기념품 매장에서 반지를 구경하는 둘을 외면했다.


식당_La Puerta Falsa_0809

5, 지친 우리를 위해 아드리는 간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가는 길에 콜롬비아와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얘기했다. 콜롬비아에선 6,7시에 간단한 아침을 먹고, 11시 정도에 누에베라는 간식을 먹고, 2~3시에 점심을 먹고 5시에 또 온세라는 간식을 먹는다. 그리고 9시 정도에 저녁을 먹는다. 한국에 왔을 때 5시에 만나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볼리바르 광장에서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달달한 것들을 파는 식당이었다. 다들 퇴근길에 온세를 먹으러 오는지 붐볐다. 퇴근 전에 간단히 먹고 집에 가면 저녁 준비도 여유롭고 좋을 것 같다. 거리에서 많이 파는 타말도 이 식당의 주메뉴인 것 같다. 아드리는 간단히 주스를 시키고 우리에겐 주메뉴인 흑설탕물(Agua de Panela, 한국의 흑설탕과는 다르게 거의 정제되지 않은 사탕수수액 덩어리다. 이 근방에선 건강식품으로 더 각광받고 있다.)와 핫초코를 추천해줬다. 기본으로 작은 빵과 치즈가 같이 나왔다. 다 찍어먹는 거라고 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치즈도 뜨거운 차에 찍으니 보드러워지고, 단단한 치즈라 차 맛에도 별 영향이 없었다.


서점_Centro Cultural Gabriel García Márquez_0809

어느새 해가 졌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서점이다. 사실 이 서점은 예전에 나도 와봐서 꼭 다시 찾을 관광코스기도 했다. 마르케스 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점이라 문학 코너도 크고, 콜롬비아 관련 서적도 많고, 서점 자체도 잘 꾸며놓아서 구경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런 저런 책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드리가 불쑥 책 두 권을 사더니 그 중 한권을 줬다. 콜롬비아 전래동화 책이다. 글자 수가 적으니 읽을만 할 거라고 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 서점은 나중에 둘이서 한 번 더 구경왔다.

주말에 아드리네 집에 놀러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빡센 일정의 투어로 둘다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시내_MUSEO DE BOTERO_0811

메데진의 열기를 이어 보고타의 보테로 박물관도 갔다. 여긴 관광객이 더 많고 북적인다. 역시 보테로 그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다른 박물관과도 연결되어 있으나 안갔다. 기념품 매장에서 보테로의 춤 그림을 하나 샀다. 어디 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외_초이푸드CHOI FOOD) & EXITO_0810

김밥을 좋아하는 여편님이 초이푸드 노래를 불렀다. 보고타의 한식당인데 아드리가 종종 SNS에 올리는 걸 보면서 알게됐다. 찾아보니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다. 가는 길은 멀었다. 트랜스 밀레니오를 처음 가는 거라 헷갈리기도 했다. 머나먼 허허벌판 같은 동네에서 내려서 주택가로 들어갔다. 한인타운 같은 데 있는 게 아니다. 들어가보니 직장인, 군인 등이 있다. 군인들은 양념치킨을 시켜먹고 있다. 예전 친정집 양념통닭 같은 스타일이다. 우린 오징어김밥, 참치김밥, 떡볶이를 시켰다. 떡볶이와 오징어볶음의 양념은 같은 걸로 보였다. 어묵이 없으니 아쉬웠다. (나중에 아드리가 한국에 오면 제대로된 떡볶이를 만들어 줘야겠다.) 그래도 김밥이 푸짐했다. 정말 컸고, 속도 알찼다. 다 먹고 나서 짜파게티를 샀다. 보노보노가 다녀간지 며칠 안되서 매장에 재고가 별로 없다.

버스를 타기에 앞서 EXITO 대형 매장을 들렀다. 그간 낡을대로 낡은 속옷을 샀다. 콜롬비아에 오니 속옷을 사도 되겠다 싶었다. 가격도 저렴한데 질은 한국 못지 않다. 엑시토는 안그래도 노란색인데 전면에 농부 사진으로 농산물 광고를 하고 있다. 이 땅의 마트를 자부하는 한국의 마트가 떠올랐다.


시내_악기점과 기념품

여편님이 다시 한 번 우쿨렐레를 사겠다고 했다. 시내에 가면 악기점이 많다고 했다. 복잡한 시내로 나갔다. 악기점이 진짜 많았다. 거의 10군데를 돌아 저렴한 메이커를 하나 샀다. 근처에 기념품 매장이 있었다. 박물관 근처의 매장들보다 훨씬 저렴했다. 악기를 손 보러 다시 갔을 때 기념컵을 샀다. Cafe de Colombia가 새겨진 컵으로 커피를 마시면 맛있을 것 같다.


시장_Mercado Paloquemao_0810

집 근처 슈퍼의 과일이 시원치 않아서 농수산물 시장을 찾았다. 거의 닫는 시간이라 후다닥 과일과 야채만 샀다. 훨씬 저렴하고 질이 좋았다. 특히 버섯의 풍미가 어마어마했다.


시장_토요시장, 일요시장_0812 &0813

집 근처에 토요일이라고 무슨 시장이 섰다. 각 지역의 특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다. 들어서자마자 와유백과 비슷한 가방을 파는데 훨씬 질이 좋아보였다. (비싸기도 했다.) 후안발데즈가 새겨진 가방을 샀다. 일요일엔 또 다른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커피 스푼 세트 등 아기자기한 것들을 샀다.

콜롬비아는 진짜 이것저것 예쁜 소품들이 많다. 거기다 이게 다 관광객 뿐만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대상으로도 파는 거라 바가지 쓰는 느낌도 잘 없다. 결국 콜롬비아에서 쓴 돈 중 1/4을 기념품 쇼핑에 쓰고 말았다.


초대_아드리집_0812

대망의 토요일, 시내에서 케잌을 사들고 아드리네집으로 갔다. 트랜스 밀레니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아드리가 나와있었다. 집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조용한 연립주택 단지였다. 사진으로 많이 봤던 아드리의 어머니를 만났다. 집은 작지만 고풍스럽고 이쁘다. 식사 준비를 도울 아주머니 한 분도 계셨다.

먼저 아구아르디엔테(Aguardiente)를 줬다. 여편님이 메데진에서부터 마시고 싶어하던 술이다. 럼처럼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지만 허브가 들어가있어 향긋하다. 맥주와 소다를 섞은 콜롬비아식 음료(Refajo)도 준다. 그리고 식사시간, 보고타 정통 바베큐 요리(Fritanga). 돼지, , 소세지, 꾸이, 감자를 골고루 익혔다. 거기다 콩나물, 참기름(초이푸드에서 구매 샀다고 한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샐러드도 준비하셨다. (전날 짬뽕을 과식하는 바람에 많이 못먹었다.) 후식을 먹고 여편님은 틴토(Campesino) 커피 내리는 것까지 전수받았다. 푸짐하게 마무리했다.

나와 화상 강의를 했던 아드리의 방도 구경했다. 아드리의 어머님까지 넷이 한참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드리 어머님은 판다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어했다. 아드리는 사료 값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된다고 했다. 두 시에 점심을 먹기 시작했는데 놀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돌아오는 길엔 아드리가 마을 버스를 태워줬다. 아드리는 2020년에 다시 한국에 올거라고 했다. 그때를 기약하고 헤어졌다.


전망_몬세라떼_0813

여편님의 전망 사랑, 일요일이니 전망대를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따말을 사먹었다. 메데진 슈퍼에서 팔던 것보다 훨씬 따끈하고 맛있다. 전망대쪽으로 가니 옥수수를 판다. 옥수수는 맛이 없다. 언덕은 오래된 기차, 혹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같은 티켓으로 골라서 타면 된단다. 내가 기차를 타자고 했다. 케이블 카는 메데진에서 실컷 탔다. 기차 타고 터널까지 지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언덕 위에는 성당이 있다. 성당 보단 둘러보이는 보고타의 전망이 정말 좋다. (성당 안엔 인파가 가득이라 들어갈 엄두도 안난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기념품 매장들이 많다. 오오 파파 프란치스코 기념품을 판다. 9월에 콜롬비아에 온다는 홍보를 에콰도르에서부터 봤다. 내전 중단에도 한몫한 포프가 평화에 불을 지피러 다시 왔다. (아드리의 엄마는 프란치스코 미사 맨 앞자리를 일치감치 예매했다고 한다.) 우리는 소박하게 부채를 샀다. 기념품 매장을 지나니 먹거리 천지다. 곱창골목을 지났다. 너무 비싸서 안먹기로 했다. 끄트머리에 아드리가 말한 치차를 판다. 산 위에서 마시니 더 막걸리갔다. 반대편엔 아예 등산으로 온 사람들이 바위에서 간식을 먹는다.


내려가는 길엔 줄이 길었다. 그나마 기차 줄이 짧았다. 내려가는 길에 여편님이 시몬 볼리바르 집(Quinta de Bolivar)을 들르자고 한다. 집은 좋다. 통영의 충무공 집을 갔던 기억이 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까지 차는 별로 없고, 오랜만에 날씨가 맑았다.


남미 대륙 안녕_0815

떠나기 전날, 풍요로운 남미를 떠난다는 두려움에 과일과 야채, 고기를 잔뜩 사서 든든하게 먹었다. 보고타 엘 도라도(El Dorado, 공항 이름도 아름답다.) 공항은 수화물 검사도 까다롭고 수속도 오래 걸린다고 해서 일찍 출발했다. 이제 더 이상 추울일은 없을 것 같아서 부피 큰 내 침낭을 버렸다. (이왕이면 노숙자가 가져가도록 양지바른 길에 두었다.) 아마 남미 대륙 중 하나를 고르라면 우선 콜롬비아, 카르타헤나부터 바랑키아, 유명한 커피 산지, 아마존까지 구석구석 여유롭게 흝어보고 싶다.



참고_LOS PUROS CRIOLLO

아드리가 수업 참고용으로 활용했던 프로그램이다. 콜롬비아의 6시 내고향 느낌으로,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커피, 아레파, 타말, 아침 식사, 시장 등을 재미있게 봤다. (YOUTUBE에서 대부분 시청이 가능하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los+puros+criollos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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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에서 커피 체험을 마치고 콜롬비아에 들어서니 커피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수확철은 이미 지났으니 좋은 농장 좋은 카페에서 좋은 커피나 실컷 마시기로 했다.


뽀빠얀_후안 발데즈(Juan Valdez)

콜롬비아 커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다. 거의 오십년이 넘는 동안 콜롬비아 커피를 대표해왔다. 후안 발데즈는 특정 사람이 아니라 노새를 끌고 있는 캄페시노(Campesino, 농부)를 상징한다. 주기적으로 모델을 선발한다. 에콰도르 키토에서도 몇 번 갔지만 본토 후안 발데즈는 좀 다를 것 같아서 뽀빠얀의 후안 발데즈를 찾아갔다.

큰 회사답게 광장 한 가운데에 있다. 여편님과 총각은 아이스 라떼 프라페를 시켰다. 더위사냥을 그대로 갈아놓은 맛이다. 나는 틴토(Tinto)를 시켰다. 한국 카페 식으로 말하면 ‘오늘의 커피’에 가깝다. 콜롬비아에서는 미리 우려놓은 커피를 틴토 또는 캄페시노(Campesino)라고 한다. 이미 설탕도 덜지근하게 들어간 블랙커피다.

나중에 돌아다니다보니 아예 이 틴토를 아침에 길거리에서 많이 팔고, 보통은 여기에 아레파(Arepa)나 치즈 등을 찍어 먹는 게 콜롬비아식 아침이라고 한다. 나중에 살렌토에서 조식을 시켜도 틴토를 줬다.

이후 콜롬비아를 떠날 때까지 후안 발데즈 커피는 입에도 데지 못했다. 공항에 큰 매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작았다. 나중에 출국 게이트에서 기다리다 급작스레 게이트가 변경되서 지나다보니 그제서야 엄청 큰 매장을 발견했다. 이런저런 굿즈가 많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구경 못한 걸 아쉬워했다.

뽀빠얀도 좌우로 커피가 유명한 나리뇨(NARIÑO), 우일라(HUILA) 주의 사이에 있다. 이 지역 커피도 당연히 괜찮은 모양이다. 시장 가는 길에 길에서도 생두를 말리고 있었다.


살렌토_농장_Las Acacias_0716

사실 살렌토는 휴양지지 커피 재배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마니살레스, 페레이라, 아르메니아로 이뤄진 삼각지대가 커피로 유명해 아예 이 지역을 카페테로(Cafetero)라고 부른다. 물론 살렌토도 이 구역에 포함되서 커피 재배엔 좋고, 살렌토에 놀러왔다가 가볍게 찾을 수 있는 소규모 농장(Finca)들이 여러개 있다. 유명한 곳도 있고 숨겨진 곳(?)도 있어서 고민하던 중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 소녀가 다녀온 곳을 가기로 했다.


일요일인데도 농장은 열려있었고, 앞에 다른 팀의 투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콜롬비아 커피 전반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여전히 스페셜티 커피로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지만, 베트남 등의 커피재배가 확대되면서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그래도 많은 농부들이 콜롬비아 커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르메니아로 내다 팔면 가격 변동이 너무 심해서 주로 관광객에게 생산한 원두를 판다고 했다. 작은 커피 묘목부터 보여주면서 커피 나무가 자라는 과정을 알려줬다. 예전 중남미에 병충해가 심했던 적이 있어서 지금은 아마존의 어떤 묘목과 아라비카 종을 교배한 종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중간 중간 라임, 오렌지, 바나나 나무 등을 심어주면 그늘도 만들어주고 커피의 맛(신맛, 단맛) 등에도 영향을 주고, 바나나 나무는 수분을 많이 먹고 있다가 가뭄 때 수분 조절을 해준다고 한다. 이 농장의 경우 규모도 작고, 밭의 고도가 모두 높아서 농약을 안 쓰지만 큰 농장들은 약을 쓰는 게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런 저런 설명을 하면서 커피 밭을 구경시켜주고 다음 공정을 보여준다. 로스팅 기계가 없어서 말리는 과정까지만 보여주고 시음을 한다. 커피는 정제되지 않은 신맛이 매우 강했다. 한 봉지를 샀다. 나중에 다른 심심한 원두와 블랜딩해서 마시니 풍미가 있었다. 나중에 보노보노는 더 알려지지 않은 농장을 가서 설명을 실컷 들었다고 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터의 차이 등등등

사실 다른 농장 못 가본 건 별로 아쉽지 않은데 Café Jesús Martin(http://www.cafejesusmartin.com/) 을 한번 밖에 못 간게 더 아쉽다. 주변 농장에서 직거래하고 로스팅도 다양하게 해서 커피가 맛있어 보였다.



메데진_El Laboratorio de Cafe: http://ellaboratoriodecafe.com/

메데진에서 바리스타나 배워볼까 하다가 찾았다. 바리스타 과정이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한 수준은 아니라서 포기했다. (스페인어로 배울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커피를 마셔보기 위해 보테로 광장에 있는 매장을 찾아갔다. 드립 커피를 V60, CHEMEX, 프렌치프레스 등으로 고를 수 있고 콜드 브루도 있다. 원두 종류도 ROJO, ORO, NEGRO 세 가지가 있어서 돌아가면서 마셨다. 개인적으로 ORO의 균형잡힌 맛을 좋아했다. (센트로만 가면 여길 가서 직원들도 우리를 알게 됐다.) 여편님은 여기서 기념 티셔츠도 샀다. (사이즈가 없어서 다른 매장에 있는 걸 가져다줬다.)


바리스타를 안하는 대신 로스팅 공장에서 진행하는 테이스팅 투어를 하기로 했다. 며칠 간 워크숍이 있는 바람에 공장 방문은 칠월 마지막 날에 성사됐다. 최소 인원이 5명이라 보노보노(2명이다.), 총각까지 총 출동했다. 공장은 포블라도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로스팅 공장 겸 카페다. (손님은 없었다.) 근처가 공장 지대라 다른 큰 커피 공장도 있었다. 담당 직원이 와서 투어를 시작한다. 먼저 농장을 소개해준다. 메데진이 속한 안티오키아 주의 농장에서 생두를 조달한다. 시장가보다 높게 쳐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장도 있다. 농장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다. 지역 내의 커피만으로도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게 놀라웠다.

다음은 생두분별과 로스팅이다. 보통 콜롬비아에서 원두 품질은 크기별로 구분해서 슈프리모를 많이 수출하는데 무조건 크다고 좋은 건 아니란다. 로스팅 기계도 간단히 보여주고 시음을 하러 간다. 커피 맛 지도를 보면서 6잔의 커피를 보고, 냄새 맡고, 마셔본다. 노트에 감상도 쓴다. 담배맛이 나는 것이 일반 슈퍼마켓에서 파는 커피란다. 쟈스민 차 같은 건 게이샤 커피, 소량만 들어온다고 한다. 기념으로 작은 원두도 받고, 소포장 원두도 하나씩 샀다. (생두는 구입할 수 없었다.)


메데진_Pergamino Café: https://us.pergamino.co/

유명하기로는 라보라토리오보다 더 하다. 아무래도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포블라도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처음 지날 때 하도 붐벼서 포기했다가 다음에 가서 마셔봤다. 여기도 안티오키아와 다른 지역의 원두를 취급한다. 포장이나 디자인 등이 라보라토리오(실험실)와 달리 팬시한 컨셉이다. 여기도 CHEMEX로도 드립을 내려준다. 진하게 두 잔을 통으로 내려줬다. 한국 자유 커피집에서 스티커도 붙여놨다. 예쁜 굿즈들이 많아서 망설이다가 커피 스티커만 사서 컴퓨터에 붙였다.


메데진_모카포트

처음엔 각지에서 사온 원두를 커피메이커로 내려마셨다. 그러다 보노보노가 와서 아랫방의 모카포트를 가져다줬다. 확실히 커피메이커보다 맛있었다. 보노보노가 떠나면서 줌보에 들러 빨간 모카포트를 사다줬다. 감동의 눈물이 날 뻔했다. 휴대용 원두 분쇄기는 은근 찾기가 어려웠다. (페루 마트에서 샀어야 했다.)


한국에선 모카포트 는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고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커피 좀 마신다는 나라 백화점이나 마트엔 만만한 가격에 종류도 가지가지다. 핸드드립은 한가한 주말에나 쇼하는 거고, 태반은 커피국이 됐다. 모카포트는 바쁜 아침에 내려놓기도 편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떼까지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좋은 원두를 만나니 욕심에 세 번째 모카포트를 질러버렸다. 하난 쓰다 보내고, 하난 사서 바로 보내고, 이건 집까지 잘 가져가 보자.’



보고타_Arte y Pasion (http://www.arteypasioncafe.com/)

메데진에서 콜롬비아 커피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보고타에선 숙소에서 주는 커피를 안 마시고 메데진에서 남은 원두를 굳이 모카포트에 직접 내려가며 마셨다.

소박하게 보고타에선 Arte y Pasion 카페를 자주 찾는 걸로 만족했다. 황금박물관 쪽과 대통령궁 쪽에 두 개가 있다. 황금박물관 쪽의 지점을 처음 찾을 땐 당황했다. 매장이 큰 건물 안에 감춰져있었다. 점심 시간이라 점심 메뉴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했다. 오전에 한가한 시간에 가니 쾌적했다. 대통령 궁 쪽의 지점은 커피만 파는 곳이라 좋았다. 두 매장 모두 콜롬비아 각지의 원두를 취급한다. 지역의 원두를 골라서 다양한 형태로 내려달라고 주문할 수 있다.

카페 자체가 바리스타 학교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바리스타들(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다. 한국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들 너무 잘한단다.)이 자리에 와서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 먼저 원두 향을 맡게 해주고, 불린다음 내린다. 자리에서 커피를 내려주니 향이 더 그득했고, 맛이 더 감칠났다. 여편님은 여기서도 기념 티셔츠를 샀다.


예전에 콜롬비아하면 슈프리모만 알아서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각 지역마다 색다른 풍미의 원두를 맛보다보니 콜롬비아 커피에 엄청난 애착을 갖게 됐다. 커피를 마실 때 나라를 넘어 지역, 농장, 자연과 사람들까지 보기로 했다. 나의 커피에 대한 열정도 한 단계 올라선 계기였다.



독서_매혹과 잔혹의 커피사_마크 펜더그라스트_을유문화사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미국 대중 문화, 커피 산업에 할애하는 부분이 좀 커서 아쉽지만 이만큼 포괄적으로 잘 다루는 책이 없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한 번 읽어야지 하던 책이다. 여행이 좋은 건 이런 긴 책을 읽을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무겁다. 얼른 읽고 치워버려야겠다. 커피가 대중화된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가정에선 원두를 직접 볶아 마셨고, 2차 대전 때 미군엔 전선에서 그때 그때 로스팅한 원두가 배급되었다고 한다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장주가 받는 생두값, 일꾼들이 받는 일당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시계는 전진하기도, 후퇴하기도, 돌기도 한다.

(나도 남편님 덕분에 덩달아 읽고 있다. 미국이 없었다면 커피가 어떻게 되었을까 매번 읽을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EEUU여… - 여편님 왈)


다큐_Black Gold (https://www.youtube.com/watch?v=qLCql6m3Pm4)

앞의 책에서 추천한 다큐다. 좀 이색적인 에티오피아의 풍경도 많이 나오고, 화려한 커피 산업 뒷면의 안타까운 분배의 현실을 다룬다. 그나마 소농 중심으로 짜여진 콜롬비아 커피 산업은 나은 편이다.


다큐_Black coffee (https://www.youtube.com/watch?v=TTDy-L0NKIg)

이것도 앞의 책에서 추천한 다큐다. 분량이 길다. 아직 안 봤다.


다큐_Los Puros criollos_El café (https://www.youtube.com/watch?v=1XXWh0mpet0)

콜롬비아 커피에 대해 소개한 현지 프로그램이다. 꿀잼이다.


다큐_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_커피의 나라_1부 콜롬비아

(https://www.youtube.com/watch?v=zzxMAAEQUUA)

예전에 봤던 다큐인데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을 다뤄서 재밌게 봤다.


도서_Coffee Obsession_한글판: 커피중독_아네트 몰배르_시그마북스

여편님이 보고타 마르케스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다. 백번 글보다 좋은 그림 하나가 훨씬 뇌리에 잘 박힌다. 각 나라별 커피 재배를 그림으로 잘 표현해서 10분만에 전 세계 커피를 돌아봤다. 한국에서는 ‘커피중독’으로 번역되어 있다.


참고_콜롬비아의 커피 산업

콜롬비아 커피를 개괄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되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cw5172&logNo=10012628313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co%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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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진도 콜롬비아의 손에 꼽히는 대도시답게 여러모로 볼 것이 많았다.


시내와 교통

집에서 시내 여러 지역으로 갈 때는 대부분 택시를 이용했다. 환승 할인이 없어서 트램+지하철 등을 조합하면 일인당 3,4천 페소인데 3명이 움직이면 대부분 택시비가 만~2천 페소였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다 나를 제외한 둘은 택시 매니아, 거기다 난 택시 아저씨랑 이런 저런 말하기를 귀찮아하는데 메데진 기사 아저씨들은 대부분 묵묵해서 별 불만이 없었다. 탑승 거부는 딱 한 번, 축제 때 공원 앞에서 당했는데 옆에서 지켜본 경찰 언니가 당장 다른 택시를 직접 잡아줬다.)

센트로에 갈 때는 트램을 탔다. 집에서 걸어내려가면 센트로까지 가는 트램이 있었다. 트램은 최신식이라 쾌적했다. 지하철은 케이블카 타러 간다고 한 번 탔다. 케이블카 역이 지하철과 연결된다.



센트로_시장과 광장

시내는 여러 번 나갔다. 주로 쇼핑과 관광 목적이었다. 트램 마지막역인 San Antonio가 지하철과도 만나서 엄청 붐볐다. 각종 과일부터 옷가지, 헌 책, 장난감 등을 파는 노점상과 가게들이 줄비했다. 은행이 몰린 번화가와 고급 상점가, 기념품 시장, 광장까지 이어진다.


와유백_CENTRO ARTESANAL MI VIEJO PUEBLO

작년 대유행했다던 와유백*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서 여편님은 장만을 결심했다. 하나 사고, 곧 만날 친구를 위해 또 하나 샀다.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냉장고 바지도 하나 샀다. 그 외 각종 기념품들은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전국민이 쓰고 다니는 콜롬비아식 모자는 동네 시장이나 공원에서 구매했다.) 여편님이 먼저 시범구매를 하고, 보노보노와 함께 다시 찾았다. 한국 가서 지인들 준다며 무려 9개와 아가용 와유백 1개를 샀다.

*한국에서는 모칠라백으로 알려져있으나 모칠라(Mochila) 자체가 스페인어로 가방이라는 뜻이다. 카르타헤나 지역의 와유족 사람들이 생계 수단으로 만든 가방으로 와유백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총각은 우리와 메데진에서 헤어진 후 진짜 와유백을 찾아 머나먼 모험을 떠났다.


광장_PLAZA BOTERO

늘 시내 모험의 종착역이 되었던 곳이다. 휴일이 아니어도 사람이 넘친다. 광장 주변에 식당가가 있어서 점심 메뉴를 두 번 먹었다. 특이한 것은 이 시내 북새통에 식당 사이사이 카지노와 미용실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점심 시간에 밥을 후딱 먹고 카지노 아니면 미용실을 간다는 추축을 해봤다.

보테로 광장이 좋은 점은 거장 보테로의 조각상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 조각상들은 자주 해외 순방을 나가기도 한단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조각상을 보다보면 보테로의 그림이나 조각이 큰 과장이 아니란 생각도 하게된다. 또한 안티오키아 미술관 입구 오른쪽에 내가 사랑한 카페(El Laboratorio de Cafe)가 있어서 마음껏 광장을 음미했다.


안티오키아 미술관(Museo de Antioquia)_0728

오전에 살사 강습을 마치고 미술관을 갔다. 기대했던 보테로의 작품을 실컷봤다. 메데진을 포함한 안티오키아 지역 미술관이라 보테로 작품 말고도 다른 작가의 작품이 많았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보테로의 그림은 행복과 귀족스러움이 가득했다. 다른 작가들의 보다 서민적인 그림도 좋았다. 기념품 매장에 가니 복사품 그림들의 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카노(Francisco Antonio Cano)의 수평선(Horizontes)라는 그림이 마음을 열어줘서 사버렸다. 좋은 통에 담아줘서 그 후로 맘에 드는 그림들을 몇 점 사서 모아 다니고 있다. 무사히 가져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포블라도(POBLADO)_0721_0802

메데진의 번화가 포블라도를 구경하러 갔다. 센트로와 달리 여기는 고층 건물과 사무실, 빌라 등이 위치한 곳이다. 총각과 내가 기대한 예쁜 언니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공원(Parque de la presidenta)를 산책했다. 뒤쪽으로 나가니 번화가였다. 화려한 바와 채식당, 고급진 카페들이 줄비했다. 호스텔과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배고파서 햄버거집을 갔는데 평소보다 2배를 주고 먹었다. 물가가 확실히 비쌌다. 수제 옷가게와 더불어 수선집도 많이 보여서 여편님과 한 번 더 찾아갔다. 안쪽에 들어가니 그나마 저렴하게 점심 메뉴를 파는 식당들이 있었다. 제육볶음을 줘서 매우 만족했다. 유명한 카페(Pergamino Cafe)는 처음엔 너무 붐벼서 지나쳤다가 재방문때 들렀다.


쇼핑_산타페몰(Centro Comercial Santafè)

포블라도의 최대 쇼핑몰이다. 일층에 JUMBO라는 슈퍼마켓이 있는데 외국식품 코너가 빵빵해서 우리의 사랑을 받았다. 남미 대륙에서 본 것 중엔 최대 규모다. 한 번 돌아보는 것만도 체력이 다했다. 후퇴했다. 그 뒤 큰 맘을 먹고 다시 찾았다. 꽃축제를 기념해서 쇼핑몰 일층 라운지에 커다란 꽃밭에 꽃으로 만든 공작새를 구현해놨다. 거기다 각종 기념품 시장까지 열려서 볼거리가 풍성했다.

백화점도 연결되어 있어 쇼핑을 했다. 여편님이 원피스를 고르는 사이 나는 바람막이 하나와 티셔츠 하나를 냅다 샀다. 여편님은 대여섯개의 원피스를 골라서 입어봤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탈의실 직원이 건네준 원피스 하나가 딱 맘에 들었다. 원피스를 입고 나선 살사 교습 중 도는 속도가 1.3배 빨라졌다.


서점_Librería Panamericana

산타페몰 옆에 있는 큰 서점 겸 생활용품 점이다. 콜롬비아가 다른 건 다 (한국에 비해) 저렴한데 책 값은 엄청 비쌌다. 기념으로도 하나 살 엄두를 못냈다.


대학_Centro de Egresados Universidad EAFIT

동네에도, 시내에도, 쇼핑몰에도 없으면 대학에라도 있을까 싶어 들어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공식 신분증(여권)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고 해서 실패했다.


메데진 꽃축제(Feria de las Flores)_0730 & 0806

메데진에 온지 얼마 안되어 조만간 꽃축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여러 꽃장식을 들고 (등에 지고) 행진하는 것인데 못봤다. 대신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공원 지구를 두 번 찾았다. 한 번은 총각, 보노보노까지 다 함께, 또 한 번은 여편님과 둘만 다녀왔다.


공원_Parque de Los Deseos & Parque Norte Medellin_0730

두 팀으로 나눠서 택시를 타고 갔다. 무려 공원 세 개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시장 건물과 차가 없는 대로에 사람들과 먹거리가 가득했다. 여편님은 냅다 피카츄 풍선을 샀다. (무슨 단체도 아니고 피카츄를 따라 같이 움직였다.) Parque Norte로 가보니 놀이공원이었다. 하지만 입장은 무료였다. 꽃축제 기간이라 공원 곳곳을 행사장으로 꾸며놨다. 안에는 또 먹거리가 가득했다. (딱히 꽃은 많지 않았다.) 맥주 차가 있어서 기대했는데 모두 캔 맥주만 있다고 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광장의 먹거리를 지나칠 수 없어 수박과 옥수수, 머릿고기와 곱창 볶음 등을 나눠먹었다.

그 밑에는 모두 테마파크 같은 곳들이었다. 길을 건너 Parque Deseo로 갔다. 여기선 낮부터 공연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불렀다. 일주일 내내 크고 작은 공연이 있어서 집의 TV로도 많이 봤다.


공원_Jardin Botanico_0806

처음 갔을 때 보타니코 정원의 행사는 8월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 다음 주말을 맞아 공원 지구를 다시 찾았다. 보타니코 공원이라 정말 꽃축제 분위기였다.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몰려왔다. 멀리 보고타에서 단체로 놀러온 할망들도 만났다. 가운데 행사장엔 각 디자이너(?)와 화원에서 출품한 꽃더미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거대하고 예뻤다. 작은 전시도 있었고, 메데진럼 같은 술회사에서 장식한 곳도 있었다. (분홍꽃 사이에 럼들이 가장 아름다웠다.) 꽃 구경도 꽃 구경이지만 이렇게 꽃 축제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게 더 놀라웠다. 콜롬비아는 세계 꽃 수출 3위로 꽃도 많이 팔지만 다들 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재밌는 것은 각 지역에서 올라온 특산품 구경이다. 단순히 외국 관광객이 타겟이 아니라 그런지 물건 질도 좋고, 곳곳의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많았다. 홀랑 넘어가서 Pasto 지방의 반지함, 보고타의 반지, 여성단체에서 만든 꽃 모형 등을 사버렸다. 거기다 30년 전통의 사탕수수 주스(Guarapo), 핫도그, 커피 등을 사먹고 유기농 과일 매장에서 망고스틴을 샀다.

끝으로 커다란 화환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식물이 들어간 전세계 화폐 특별전도 유익하게 관람했다.



전망대 나들이(Parque Arvi)_0807

메데진을 떠나기 전날, 짐정리를 마치고 고민 끝에 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했다. 트램을 타고 지하철 역으로 가서 Acevedo역까지 간 다음, 거기서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고 종점인 Santo domingo역까지 간다. 여기까진 무려 지하철과 환승까지 되는 대중교통이다. (사실 여기까지의 여정만으로도 만족했다.) 공원이 있는 Arvi역까지는 관광용 케이블카라서 추가 요금을 내야했다.

추가 요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케이블카가 길었다. 그냥 꼭대기 전망대에 내리는 건 줄 알았는데 산을 넘어 공원 한가운데 내렸다. 지역 특산물 시장이 있어서 근처에서 재배한 커피, 와인도 팔고 북적북적했다. 안내센터로 가니 생태 공원 등은 입장료가 있고, 무료인 산책로를 알려주었다. (어디 돈 내고 들어가기엔 이미 시간이 늦었다.) 지역 특산 커피를 한잔 들이키고 산책을 시작했다. 산길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다들 올라오는 시간이다. 중간중간 식당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삼십분을 내려가서야 산책로로 진입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간단히 산책을 마치고 서둘러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줄이 어마어마했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정든 메데진 생활이 이렇게 마감됐다. 우리 덕분에 무리한 총각은 그 후 며칠을 홀로 앓아누웠다고 한다.


은행_CITI BANK

콜롬비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금융 생활이다. 콜롬비아엔 시티 은행이 여전히 개인, 지점 영업을 한다. 저 머나먼 아르헨티나에서 쓰고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시티은행의 혜택을 드디어 누리게 됐다. 시내는 물론, 각 지역의 중심가에도 시티 은행이 있었다. (뽀빠얀, 살렌토 같은 지방 도시는 없다.) 인출 한도도 백만 페소가 넘어서 넉넉하게, 수수료 부담을 덜고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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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뽀빠얀에서부터 총각과 동행한 데에는 큰 목적이 있었다. 총각과 우리 모두 영원한 봄의 도시, 미녀의 도시로 불리는 메데진에서 넉넉히 머물려고 했기 때문이다. 추진력이 좋은 총각 덕에 뽀빠얀에서 만난 다음날 아침 바로 좋아보이는 아파트 하나를 빌렸다.


메디진(Medellin)_0717_0808

일년 내내 날씨가 좋아서 영원한 봄의 도시로 불린다. 예쁜 언니들이 많다. 마약왕으로 유명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이기도 하다. 살렌토에선 메데진으로 바로 가는 콜렉티보가 있었다. 전날 슈퍼를 겸한 곳에서 미리 예매를 했다. 아침에 가보니 버스는 자리가 꽉찼다. 지정 좌석이라 좋은 3자리를 차지했고, 편안히 예상보다 빨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박_좋은 전망 장미 아파트_더블룸_3

총각은 한달(4), 우리는 2~3주 정도 머물려고 했다. 2개에 3명이 가능한 집, 가격 필터를 아래로 조정하니 공기방울에서 몇 개만 나왔다. 깔끔한 집 한채인데도 저렴해서 바로 예약했다. 동네 이름은 Buenos Aires, 나중에 알게 된 바,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택시는 시내를 가로질러 빠지더니 꼬불꼬불 언덕길을 한참 올라갔다.

경비원과 내부 주차장도 있는 고급(?)아파트였다.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줬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청소 마치기를 기다렸다. 간단한 안내를 해줬다. 우리가 쓰기로 한 안방은 넓은 침대에 옷장, 넉넉한 수건까지 완벽하게 갖춰져있었다. 총각이 혼자 쓸 옆방도 이층침대지만 밝고 쾌적했다. 화장실, 주방도 잘 갖춰져있다. 거실도 창이 넓고, 쇼파에 TV, 식탁까지 얼마만에 맛보는 제대로 된 살림살이인가. 저녁엔 주인 아저씨가 와서 등을 갈아주고 갔다. 부부는 엘페뇰 근처에 전원주택에 살면서, 메데진에 볼 일이 있으면 이 아파트에 머물고, 우리 같은 장기 체류자에게 빌려주는 식이었다. 중간에 한 번 정도 청소 필요하냐고 확인하는 거 빼곤 거의 왕래가 없었다.


동네

집 주변은 주택가라 출퇴근, 등하교 시간에만 붐빈다. 바로 옆에 학교가 있어서 등하교 시간엔 헤어지고 만나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뽀뽀하고 난리가 난다. 집 바로 맞은 편에는 피자집과 아이스크림집이 있다. 아이스크림은 레알 맛있고, 피자는 한 번 먹고 더 안 먹었다. 귀퉁이에 치킨집이 하나 있는데 한국 마인드로 한 마리 반을 사왔다가 반 마리를 남겼다.

슈퍼 하나와 빵집, 슈퍼 하나와 청과+정육점이 다들 나름 시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빵집은 죄다 치즈가 들어가서 맛이 없다. (시내에 가면 빵집 밀집 구역에서 이 치즈냄새가 진동을 한다.) 슈퍼에선 우리가 하도 생필품과 맥주를 사러 드나드는 바람에 안면도 텄다. 야채와 과일을 파는 집도 거의 매일 갔다. 파파야, 망고, 바나나, 파인애플(심지어 잘라준다.) 등의 과일과 각종 야채를 한아름씩 샀다. 가장 호황을 누린 건 정육점이다. 세명이, 중간엔 다섯명이 먹다보니 기본 1kg 많게는 2kg씩 돼지나 소고기를 사댔다. 슈퍼마켓은 십분을 내려가야하는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쉬운 게아니라 반 강제적으로 골목상권에 의존했다.


일과

총각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여편님은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메데진의 날씨는 낮엔 25도 밤엔 15도 정도라 그간 설친 잠을 실컷 잤다. (볼리비아, 페루 등에선 해안은 너무 덥고, 고지대는 새벽에 너무 추워서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괜히 영원한 봄의 도시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은 내 차지였다. 간단히 바나나를 먹고 커피를 내리며, 밀린 여행기를 쓰거나 드라마를 봤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산 동네의 전경이 늘 펼쳐졌다. 아침은 주로 빵, 볶음밥, 파파야 등으로 간단히 먹었다. 주변에 가볍게 점심 먹을 곳이 없어서 점심도 간단히 만들어 먹었다. 태반이 파스타나 비빔파스타였다. 가벼운 외출 후에 돌아와서 장을 보고 저녁은 늘 푸짐하게 먹었다. 시내에 나가서 큰 마트에 가게 되면 갖은 양념을 사왔다. 총가은 요리 실력이 뛰어나서(그런데 수크레에선 모두가 총각에게 설거지만 시켰다.)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다. 본격적인 먹방은 일주일 뒤에 시작됐다.


손님_보노보노

계속 뒤쳐져서 오던 보노보노가 드디어 메데진에 왔다. 우리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왔다. 키토에서 장을 볼 때 고추장과 고추가루를 부탁했다. 총각 방의 위층 침대와 거실 쇼파가 비었으나 마다했다. 근처 호스텔에 머물겠다고 하더니 당일날 우리 집 근처의 원룸을 빌렸단다. 잠깐 나갔다가 와서 메세지를 보니 설마설마 같은 아파트 아래층이다. 심지어 그 숙소에 모카포트와 큰 웍, 세탁기가 있어 살림이 더 풍요로워졌다. (집주변엔 빨래방이 없어서 손빨래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집엔 건조대만 있었다.)

숙소는 따로였지만 거의 한 식구처럼 같이 매일 밥 해먹고 놀았다. 큰 솥이 있고, 사람이 많으면 보쌈만한 것이 없다. 거기다 고추장이 있으면 비빔면을 겻들일 수 있다. 정육점에서 2kg를 사다가 보쌈을 했다. 보쌈 장인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정 많은 보노보노는 지난 내 생일을 기억하고 마른 미역을 고이 갖고 와서 미역국도 끓여줬다. 거기다 호기심에 산 춘장도 갖고 왔다. 여기서 중식에 그나마 감각이 있는 건 총각 뿐이었다. 모두 초롱초롱하게 총각의 짜장면을 지켜봤다. 춘장이 많아야 2~3인분이라 옆에서 대충 짬뽕을 만들었다. 진짜 짜장면은 만들어 먹는 게 아니란 걸 생생하게 지켜봤다. (춘장을 기름에 따로 튀겨야 된다는 걸 몰랐다.) 총각이 고난 끝에 만든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여편님의 주도로 월남쌈을 사와서 월남쌈을 먹었다. 매일 고기 위주로만 먹다가 건강한 월남쌈을 먹으니 좋았다. 보노보노가 몇 달간 아껴둔 소면도 겻들였다. 그 전에 팟타이, 그 후에 쌀국수도 한 번씩 먹었다. 태국, 베트남에서 쿠킹 클래스 들은 게 헛되지 않았다. 부지런한 총각은 수제비 반죽도 했다. 난 수제비는 별론데 보노보노가 끓인 라면 국물에 맛있게 먹었다. 고춧가루(막판에 이 고추가루를 한 바닥 쏟았다가 여편님과 총각에게 융단폭격을 맞았다. 서울 사람들의 고춧가루 사랑은 남다르다.), 피쉬소스를 본 여편님이 결국 김치를 만들었다. 겉절이와 파김치 모두 아껴가며 먹었다. 거기에 하이라이트로 총각이 돼지갈비찜을 해줬다. 너무 맛있어서 떠나기 전에 한 번더 해달라고 했다. 저녁에 먹을 걸 전날부터 절이는 정성을 발휘했다. 총각은 늘 엄마를 보고 싶어했다. 라면은 잘 끓여주신다고 했다.

보노보노는 보고타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갔다. 친절하게도 우리 짐도 가져가서 인천공항에서 바로 택배로 부쳐줬다.


맥주와 럼

이렇게 잘 차려 먹은 덕에 술도 꾸준히 마셨다. 콜롬비아 맥주는 Poker, Aguila가 많고 프리미엄 컨셉으로 Club Colombia가 있다. 가격 차이는 별로 안나는데 우린 입에 착착 감기는 서민형 AguilaPoker를 선호했다. Aguila는 바랑끼야 지역의 맥주라고 한다.

콜롬비아는 사탕수수가 많아서 정제되지 않은 설탕(Panela)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사탕수수로 만든 술도 많다. 메데진은 럼이 유명하다. 5년 산을 사마셨는데 (따는 데 좀 고생했지만) 역시 고품격으로 맛이 좋았다. 3년 산도 마실만했다. (메데진이 속한 주인 안티오키아는 Aguardiente라는 증류주도 유명한데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 여편님 주)


교습_살사_2_Academia de Baile Dancing Con Los Gemelos

메데진에 머물면서 셋 다 살사를 배우기로 했다. 처음 한주는 널부러져 있다가 그 다음주가 되서야 알아보러 나갔다. 총각이 미리 몇 군데를 수소문했다. (콜롬비아 살사는 칼리가 가장 유명하지만 칼리 도시 자체는 오래 머물만큼 매력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괜찮다는 곳은 대부분 시내 기준으로 반대편에 있었다. 일단 택시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처음 들어간 곳은 교차로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무슨 할인 어쩌구) 그냥 여기서 하기로 했다. 우리는 2:1 교습 16시간, 총각은 1:1 교습 32시간을 끊었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효과는 1:1 교습이 훨씬 좋다. 계속 선생님이랑 추기 때문이다. 남자가 중요하다는 건 헛소리, 총각이 추는 걸 보면 여자 선생님이 알아서 잘 이끌어주고 잘 돌고, 그래서 잘 춰 보인다. (총각도 엄살이 심하지만 잘 따라간다.) 우리도 더듬더듬 꾸준히 스텝을 밟고, 돌았다. 초반에 자기만 돈다고 불평하던 여편님도 나중엔 꾸준히 돌았다. 두 번 돌기, 자리 바꿔서 돌기 등등을 할 수 있게 됐다. 밤에 살사바를 한 번 가면 좋을텐데 주행성인 우리는 여태껏 한 번도 못갔다.

우릴 가르친 선생님들은 모두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주로 우리를 담당한 하이메는 키가 엄청 크고 왠지 건성이라 맘에 안 들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총각은 무려 3명의 여선생님이 번갈아가며 가르쳤다. 우리랑도 친해져서 나중에 우리 수업 끝나면 총각 혼자 오는 걸 걱정했다. (결국 총각은 혼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라도 꾸준히 살사를 (여편님과 같이) 배우고 싶다.


음악_SHAKIRA_EL DORADO

살사를 배우면서 좋은 점은 살사 음악을 실컷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우리를 지배한 음악은 샤키라의 음악이었다. 마침 새 음반이 나와서 좋았다. 여편님은 샤키라 언니의 기운을 받겠다며 바랑키아까지 가겠다고 했다가 살렌토에서 대판 싸웠다. 샤키라, 마르케스의 사생팬도 아닌데 그 땡볕에 뭐하러 가냐고 했다가 대반격을 당했다. 다행히 한 달 뒤에 카리브의 태양을 맛보시곤 그때의 결정에 순응하고 계시다.


음악_MALUMA

음악에 열정있는 여편님은 말루마를 찾아냈다. 메데진 태생의 아이돌(?)이다. 어딜가도 말루마처럼 머리하고, 차려입은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음악_CHINO Y NACHO

베네수엘라 출신 남자 듀엣이다. 너무 매력 터져서 최근 활동 중인 가수 중엔 우리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시청과 독서

숙소에 TV가 있고, 인터넷도 엄청 빠르고, 총각과 보노보노가 가진 자료도 많아서 영화와 드라마를 꾸준히 봤다.


독서_무소유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의 책이다. 예전에 읽었는데 들고 다니다 이제 읽었다. 여행 중 물건을 잃어버릴 때 이만큼 위로가 되는 책이 없다.


독서_꿈을 빌려드립니다 & 마르케스: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작가, 여편님이 열정적으로 그의 단편집과 만화로 된 전기를 구입했다. 난 단편집 몇 편과 뒷부분의 대담만 봤다. 콜롬비아의 폭력과 관련된 그의 언급이 인상 깊었다.


영화_콜레라 시대의 사랑

예전에 책으로 읽었던 걸 영화로 봤다. 내용은 다 알지만, 카르타헤나와 막달레나 강의 정경을 화면으로 나마 느껴서 좋았다. 마르케스가 감독에게 OST는 꼭 샤키라로 해야한다고 고집한 일화가 유명하다.

HAY AMORES OFICIAL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JM7bY9Gtmsw


영화_네루다

최근에 개봉한 네루다와 관련된 영화다. 역시 우리 시인은 추격자도 매혹당할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다.


영화_아가씨

영상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보면서 화면이 예쁘다했더니 미술상을 받았단다.


드라마_나르코스(NARCOS)_SEASON 1 & SEASON 2

내 메데진 생활을 지배한 드라마다. 내용 상으론 1부까지가 더 극적이고 재밌다. 그의 상식을 뒤집는 협상력이 포인트다. 2부는 힘의 균형이 바뀌고 추격전만 반복되서 흥미가 덜했다. 그래도 끝가지 본 건 드라마 내내 나오는 메데진의 풍경, 오프닝 음악, 그리고 끝임없는 폭력에 시달리는 콜롬비아의 모습이다. 마르케스는 대담에서 콜롬비아엔 폭력이 너무 일상화*되었다고 했다. 마약, 내전, 독재 등 콜롬비아 사람들은 현대에서 겪을 수 있는 폭력을 계속 견뎌냈다. 그런데도 우리가 만난 콜롬비아 사람들은 늘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밝았다. 내전도 끝났으니 이제 평화로울 일만 남은 나라다.

NARCOS OPENING: https://www.youtube.com/watch?v=PtJ6yAGjsIs


*콜롬비아에서 폭력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콜롬비아의 역사는 폭력적인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아마 세상의 모든 역사가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콜롬비아에서는 매우 특이합니다. 이것이 아주 오래되고 심오한 현상이 아니라면, 이런 문제는 모두 교육 탓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콜롬비아에서 폭력을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교육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꿈을 빌려드립니다.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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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한국에서 살면서 접하는 이미지는 내전과 마약이다. 내가 콜롬비아라는 나라를 처음 인지한 것도 1994년 미국 월드컵, 자살골 넣은 축구 선수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뒤로 마르케스의 소설, 샤키라의 노래를 들으며 친해졌다. 그리고 남미 대륙에서 만난 장기 여행자들은 하나 같이 콜롬비아가 최고라고 했다. (우린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다보니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여행자들을 종종 만났다.) 넉넉한 마음으로 콜롬비아를 만나보기로 했다.


일정과 이동_20170711_20170815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 국경 도시인 이피알레스로 들어왔다. 여기서 하루를 자고, 콜롬비아 남부 맛의 도시라는 뽀빠얀으로 갔다. 며칠 구경하다가 중부의 휴양마을 살렌토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메데진에서 3주를 지냈다. 수도인 보고타에서 짧은 일주일이 지나갔고, 정든 남미 대륙을 떠났다.


도시 간 이동에는 버스를 이용했다. 에콰도르 국경에서 만나 함께 택시를 공유한 친구가 콜롬비아 넘어와서 밤 버스를 걱정했다. 옆에 콜롬비아 친구가 여긴 에콰도르와 달리 중간에 안 내리는 버스가 많아서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우린 아직 트라우마가 있어서 7시간 걸리던 10시간 걸리던 주간 버스만 탔다. 대도시간 이동에는 버스를 탔지만 뽀빠얀-아르메니아-살렌토, 살렌토-메데진 노선은 버스는 없고 미니밴이 있었다. 합승택시 개념이라 가격은 좀 비싸지만 오르락 내리락이 많은 도로에선 버스보다 훨씬 빨랐다. 메데진에서 보고타로 갈 때는

꽃축제 기간이 겹쳐서 미리 인터넷으로 버스를 예매(pinbus 사이트 이용)했다. (우리가 타기 전날에 터미널에 갔다가 티켓이 없어서 돌아온 여행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 버스나 미니밴 모두 쾌적하고, 와이파이도 된다. 버스 회사의 브랜드 가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좀 있었다. (터미널에서도 알아서 프로모션 가격을 제시한다.) 장거리 주간 버스를 탔으니 휴게소에서 밥도 많이 먹었다. 대부분 기사 아저씨가 배고플 때 쯤이면 휴게소에 들른다. 가격은 시내에서 먹는 것 보다 비싸지만 먹을만하다. 하지만 마지막 메데진 보고타 구간의 볼리바리아노(Bolivariano) 버스는 가장 더운 지점에서 엄청 맛없는 식당을 갔다. 회사 버스들만 있는 걸로 봐서 독점 계약한 식당인 것 같다. 많은 승객들이 불만을 표했다.



국경과 이피알레스(Ipiales)_0711_0712

에콰도르 출국 도장을 받고, 다리를 넘으니 콜롬비아 국경 사무소가 있다. 에콰도르 쪽에 비하면 다소 번잡하다. 소문대로 입국 도장을 찍어주면서 어디 갈거냐 이런 걸 묻는다. 대충 대답한다. 함께 넘어온 친구가 경비원에게 야간에 뽀빠얀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지 묻는다. 버스는 계속 있는데 밤에 가면 아름다운 풍경을 못 볼 거라고 했다. 우린 안심하고 예정대로 하루 묵고 가기로 한다. 어쨋든 함께 근처 환전소에서 환전을 좀 하고, 뒤쪽의 버스 정류장에서 이피알레스로 가는 미니벤을 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이피알레스는 엄청 복잡하다. 에콰도르에서 늦장부리면서 출발해서 어느새 해질녘이다. 어지간하면 어디 안 돌아다니기로 한다. (그러다 결국 언덕 성당도 피곤해서 안 갔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음날 아침 버스 시간대를 알아놓고 미리 알아둔 숙소를 찾아갔다. (나중에 다시 보니 터미널에 ATM도 있어서 추가 환전은 필요없었다.)


숙박_Hotel San José_더블룸_1

국경은 무조건 조심조심, 어차피 하루만 잘 거라 괜찮은 블로그 후기를 맹신했다. 호텔은 터미널 주차장 건너편에 있었다. 지은지 얼마 안된 깔끔한 모텔이었다. 괜히 끝방을 골랐다가 와이파이가 잘 안되서 고생했지만 직원들도 친절하고 편히 쉬었다. 1층 식당의 갈비탕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천천히 열고 일찍 닫아서 놓쳤다. 직원한테 물어서 뒷쪽 골목으로 가니 식당이 몇 개 있었다. 돼지 어쩌구를 시켰는데 훈제 구이였다. 에콰도르의 정식 메뉴보단 훨씬 맛깔난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터미널로 갔다. 티켓을 끊고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티비 뉴스는 모두 레알 마드리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iguez) 얘기다. 여편님은 아주 맘에 들어한다.

뽀빠얀까지 가는 남부 계곡길은 진짜 예뻤다. 볼리비아에서부터 주구장창 보는 꼬불꼬불 안데스 산맥길이다. 볼리비아가 강인하고, 페루가 영험하고, 에콰도르가 안락하다면 콜롬비아의 풍경은 예쁘다. 보이는 집들이 꽃을 많이 심어놓기도 했지만 햇빛에 반사되는 산의 모습도 화사하다.


뽀빠얀(Popayan)_0712_0714

콜롬비아 맛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안데스 전통 요리와 스페인 이주 문화가 만나 독특한 요리가 많다고 했다. 심지어 유네스코가 맛의 도시로 지정했다. (Ciudad de la gastronomia, 유네스코 유산, 유네스코 경관 이런 것 치고 좋았던 경험은 별로 없다.) 중부까지 한 번에 가기엔 너무 멀어 쉬면서 가기로 했다.


숙박_Hostel Trail_더블룸_2

배낭 여행객이 많이 찾는 도시는 아니라서 그런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진 않았다. 터미널에서 내려 먼저 찍어둔 숙소로 갔다. 대충 만든 나무 판자 침대에 방도 좋은 방이 없어서 나왔다. 같은 날 아침 도착했다는 총각(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만난 그 총각)이 있는 호스텔로 갔다. 도미토리만 많은 줄 알았는데 더블룸도 있었고, 깔끔하고 쾌적했다. 주방도 있고, 공용 공간도 넓었다. 콜롬비아 호스텔답게 조식은 유료지만 커피는 늘 제공되었다. (당연히 맛있다.) 급작스러운 변수만 아니었다면 며칠 더 머물렀을 것이다.

방을 잡고 나니 목베개를 걸친 총각이 등장했다. (도마뱀인줄) 총각은 볼리비아에서 헤어진 후 2달만에 처음 만났다. 그간 페루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다시 타블렛을 하나 샀는데 갈라파고스 호스텔에서 누가 훔쳐가고, 상어가 조류에 휩쓸린 카메라를 먹어버려서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갈라파고스 숙소에서 한국인이 두고 간 장류를 득템했고, 우리가 가진 라면스프도 있어서 가볍게 한식류를 만들어 먹었다. 첫날은 소세지 구이와 샐러드, 맥주를 마셨고, (여편님과 총각은 라면을 끓여서 마무리) 다음날은 고추장찌개를 먹었다. 마트에서 구입한 Poker 맥주가 착착 감겼다.


시장 구경_0713

든든한 조식을 먹고 중대 업무를 마친 뒤 식재료를 구하러 시장으로 갔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고추가루였다. 하지만 시장엔 고추가루가 없었다. 콜롬비아를 떠날 때까지 시장에선 고추가루를 볼 수 없었다.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된 고춧가루 아니면 액상소스뿐이었다.) 시장 가운데선 음식과 주스를 팔았다. 주스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한 바가지를 줬다. (페루, 볼리비아보다 가성비가 좋다.) 건물 시장 뒤로 가니 야채, 과일 가게가 쭉 늘어섰다. 종류별로 고추와 감자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산 망고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심지어 한 망고에선 망고만 먹어서 노랗게 변한 망고 벌레가 나오기도 했다. (사후 확인 결과 망고 벌레는 살렌토에서 나왔다.)


시내 구경

뽀빠얀 시내는 여느 스페인 식민도시와 마찬가지로 건물이 하얗게 도배되어있다. 총각의 말대로 한 두 시간이면 다 돌아본다. 가운데 광장이 널찍하게 펼쳐져있고, 골목 골목엔 Menu del Dia를 파는 식당들이 많다. 전설의 요리들을 찾아보려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일 소스를 겻들인 닭구이를 점심으로 먹었다. 점심까지 먹고 쉬는데 여편님이 언덕을 올라가자고 했다. 광장 뒤에 우뚝 솟은 언덕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해질녘에 언덕을 올라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전망도 좋고, 주변 산세도 아름답다.

저녁 준비를 하는데 화장실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을 봤다. 토요일 새벽부터 도시에 물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호스텔에선 물탱크에 물을 모아놓겠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원래 하루 이틀 더 머물려고 했으나 급계획을 변경했다. 다음날 바로 살렌토로 떠나기로 했다. 뽀빠얀의 전통 요리를 즐기지 못한게 아쉽다.


살렌토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아르메니아로 가야했다. (살렌토는 작은 휴양 마을이라 대부분 직행이 없고, 주변 도시로 가서 갈아탄다.) 뽀빠얀에서 아르메니아로 가는 버스도 미니밴이었다. 총각은 앞자리에 앉고 우린 맨 뒷자리에 앉아서 가는 길이 힘들었다. 승객 중에 칼리 가는 사람이 없어 옆길 고속도로를 광속 질주했다. 생각보다 이른 3시에 아르메니아 터미널에 도착, 터미널 안쪽으로 들어가니 살렌토로 가는 콜렉티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살렌토까진 옆길로 빠져서 꼬불꼬불 계곡길을 타고 갔다.


살렌토(Salento)_0714_0717

전형적인 계곡 휴양 마을이라고 하기엔 참 아릅답게 꾸며놨다. 좋은 (예쁜 것만 아니라 최고급의 커피를 취급) 카페도 많고, 맛난 식당도 많다.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계곡길도 있고, 비가 자주 와서 숙소 해먹에 누워만 있어도 좋다. 주말엔 메데진, 보고타에 사는 콜롬비아 사람들도 많이 놀러와서 바글바글했다.


숙박_Hostal Estrella de Agua_더블룸_3

살렌토는 숙소 천지다. 몇 개 추천받은 숙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Estrella de Agua를 찾아갔다. 괜찮아 보였다. 시간도 있으니 다른 숙소를 더 둘러보기로 한다. 길이 대부분 언덕이라 배낭 메고 돌아보는 게 쉽지 않다. 몇 군데 돌아봤지만 어떤 건 공사 중, 어떤 건 너무 새 거 등등 별 거 없다. 처음 봤던 숙소가 괜찮으면 그냥 거기서 자야 한다. 욕심 부려봤자 몸만 고생한다. 수없이 반복된 불변의 진리다.

숙소는 도미토리와 더블룸, 가운데 캠핑장(텐트에 이불까지 빌려줌)까지 겸한 큰 곳이었다. 우린 가장 안쪽 별채의 더블룸 하나를 배정받았다. 별채에 좁은 더블룸이라 깎으니 총각의 도미토리x2 보다 1인당 비용이 살짝 저렴할 지경이었다.


급한 이동의 피로, 오후면 비가 오는 날씨 등으로 호스텔에서 쉬는 시간이 많았다. 가운데가 잔디밭이고 본채와 별채에 해먹이 있다. 해먹에 누우면 일어날 수가 없다. 천국이다. 잔디밭 가운데 주방이 있다. 냄비 몇개가 구멍난 것 빼곤 쓸만했다. 대충 라면과 비빔면, 뽀빠얀에서 남은 알감자로 끓인 닭도리탕 등을 먹었다. 와중에 호주에서 온 친구, 일본에서 온 친구 등을 만났다. 잔잔한 호스텔에서 여편님과 바랑키아 소동을 벌였다. 부끄러운 일이다.


시내 구경_0714&0715

체크인을 하고 쉬다가 돈도 뽑고, 저녁도 먹을 겸 광장으로 나갔다. 금요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각 골목에서 말떼가 몰려왔다. 수 많은 말떼가 광장을 점령했다. (X로 바닥이 가득찼다.) 몇몇 사람들은 말을 옆으로 몰아서 빠가닥빠가닥 소리를 내기도 했다. (참고_El Caballito De Palo: https://www.youtube.com/watch?v=lvgqbaxd3w0) 저녁이 되니 광장 분위기가 더 무르익었다.


식당_Restaurante Aqui Me Quedo_0714

광장을 돌아보다 사람이 북적여서 들어갔다. 오래된 맛집인 것 같다. 주메뉴는 타코와 비슷하게 넓은 반죽에 치즈와 갖은 고기를 얹어주는 것이었다. 맛있었다. 급 폭풍우가 들이쳐서 대기해야 했다.


식당_El Rincon de Lucy_0715

푸짐한 조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양은 생각보다 적었다. 계란을 듬뿍줬다.


식당_Las Perras_0715

호스텔 바로 옆에 있는 핫도그 집이다. Perras는 핫도그 빵에 구운 삼겹살(베이컨이 아니라 잘개 썬 삼겹살을 철판에 바로 굽는다.)을 넣은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맛있어서 점심에 먹고 저녁에 또 먹었다. 살렌토에 오래 못 있어서 아쉬운 건 이걸 더 못 먹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먹어본 핫도그 중 가성비 최고, 소스도 이것저것 듬뿍 뿌려준다. 살렌토, 콜롬비아에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카페_Café Jesús Martin_0717

유명한 카페라고 해서 마지막 날 아침에 찾아갔다. 진작 왔어야 했다. 조식도 깔끔하게 나오지만 커피가 진짜 맛있다. (커피만 따로 마셔보고 싶다.) 옆에서 얘기하는 주인 아저씨 말을 들어보니 부모님이 직접 커피 농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주변 커피 농장에서 직접 생두를 조달해서 로스팅 하는 것 같다. 원두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팔았다. 여기 말고도 좋아보이는 카페가 많았다. 풍경도 좋고 산지와도 가까워서 어지간해선 커피가 맛없을리가 없어 보였다. 물론 호스텔에서 주는 커피를 해먹에서 마시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지나가는 길에 여편님이 어마어마한 기계를 봤다. 카페에 들어가보니 무려 120년된 에스프레소 추출기라고 했다. (메이드 인 이딸리아) 바로 시음했다. 120년 간 기계를 닦지 않은 것 같은 맛이었다.


언덕_Mirador_0715

여편님은 쉬기로 한 오늘도 언덕 전망대를 가자고 했다. 어쩌다 언덕 매니아가 된 건지 아무도 모른다. (이후 메데진, 보고타의 언덕도 모두 올랐다.) 전망대가 있는 쪽으로 가다보니 또 예쁜 가게와 골목들이 많았다. 관광객도 많았다. 계단은 파랑, 노랑, 분홍으로 칠해져있었다. 올라가니 계곡이 다 보였다. 계곡쪽으로 산책길도 있었지만 자제했다.


산책_커피농장_Las Acacias_0716

일요일 오전엔 커피 농장을 다녀왔다. 평소 커피를 안 마시는 총각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주변에 커피 농장이 많다. 호스텔에선 자기네한테 예약하고 가라고 했는데 그럴 필욘 없었다. 너무 유명한데는 가격도 비싸서 무난해 보이는 곳을 가기로 했다. 총각이 도미토리에서 만난 한국 친구가 다녀온 곳을 알려줬다.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편안했다. 자전거, 말을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나라는 투르드프랑스를 대회 내내 중계할 정도로 자전거 인기가 높은 나라다.) 아침이라 햇볕도 강하지 않고, 계곡 사이로 펼쳐진 어마어마한 숲을 만끽했다. 커피 농장 얘기는 나중에 한꺼번에 할 거다. 돌아오는 길엔 지프 버스를 잡아탔다. 이 지역의 명물이라고 한다. 코코로 계곡 투어 등엔 셋 다 열정이 없어서 생략했다.

계곡 휴양마을 치곤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 더 오래 머물러도 좋을 뻔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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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어웨이를 가기 전 오타발로에 잠시 들렀다. 점심을 먹으려고 잠깐 돌아다녔는데도 재밌어보였다. 농장에서 탈출하면서 오타발로를 며칠 돌아보기로 했다.


오타발로(Otavalo)_0707_0711

에콰도르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주변 계곡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는 토요일엔 남미에서 제일 큰 시장(할망 왈)이 열린다. 오타발로에선 남자들이 머리를 길게 땋고 다니고(느네에게 물어보니 딱 오타발로 사람들만 하는 풍습이란다.) 전통의상을 입고 생활하는 여자들도 많다. 안데스 전통 도시의 분위기도 남아있지만 쿠스코처럼 관광객이 넘치지도 않고 크지도 않는 상위호환의 느낌이다.

대략 이런 느낌이다. El condor pasa_Leo Rojas: https://www.youtube.com/watch?v=8kQZHYbZkLs


주변에 큰 화산과 호수가 있어서 풍광도 수려하고, 코이카가 도운 것으로 추정되는 관광정보센터도 잘 되어있어서 둘러보기 좋았다.


숙박_Rincon del Turista_더블룸_4

할망은 오타발로에 머물게 되면 Atardecer에 머물라고 했다. 터미널과 가깝다. 가봤더니 주말에 단체 손님이 있어서 좋은 방이 없단다. 가격도 좀 비싼편이라 옆 호스텔을 보러 갔다. 가격도 저렴하고 방도 깔끔했다. 전망 좋고 넓은 방을 골랐다. 위에 주방도 사용할 수 있어서 저녁엔 라면, 짬뽕(망함) 등을 만들어 먹었다. 조식은 좀 꽝이다. 빵과 계란은 둘째치고 커피가 너무 맛이 없다. 막판엔 아예 빵만 받아다가 위에서 커피를 타서 마셨다. 수크레에서 묵었던 파차마마와 비슷한 구조였다.


숙소 주변만해도 맛나 보이는 식당이 많았다. 5일간 농장에서 풀과 계란, 닭만 먹은 효과다.


피자_OSKAR PIZZARIA_0707

원래 시골에 있다가 도시에 오면 제일 당기는 건 피자다. 숙소 오는 길에 점찍어둔 피잣집이다. 내부는 복고 컨셉, 옆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죄다 미팅 온 것처럼 느껴진다. 피자는 양이 많았다. 내용물도 실했다. 콜라 한 통을 시켜서 도시의 맛을 맘껏 풍미했다.


식당_콜롬비안_0708

피자집 맞은 편엔 콜롬비안 식당이 있다. 곧 있을 콜롬비아 여행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의미로 찾아갔다. 메뉴에 말고기가 있었다. (딱히 다른 메뉴보다 비싸지도 않았다.) 역시 말은 맛있는 것이다. 스테이크 메뉸데도 계란 후라이를 두 개나 얹어준다. 콜롬비아 커피도 팔고, 식당 분위기도 오래된 식민지 시대 주택이라 쾌적하고 좋다. 점심 먹으러 한 번 더 갔다.


카페_Cafeteria S.I.S.A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니 꽤 좋은 카페도 있었다. 레스토랑을 겸하는 곳인데 건물 1층 가게도 고급스럽고 이층에 카페도 고급지다. 내부도 넓은데 위에 테라스에서 저녁 식사나 술을 마시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린 점심에 커피 마시는 용으로만 들렀다.


그 외 여러 로컬 식당, 멕시칸, 이탈리안에 중국식도 있다. 주말에 갔더니 중국집(CHIFA)에 사람이 많았다. 볶음밥 하나에 볶음면 하나 시켰다가 배터져 죽을 뻔했다.


시장_가축시장(Mercado de Animales)_0708

토요일엔 여러 시장이 열린다. 가장 기대한 건 가축시장이다. 눈 못뜨는 여편님을 일으켜 찾아갔다. 이미 많이들 팔렸는지 동물이 많진 않았다. (새벽 6시부터 시작한다. 우린 9시가 넘어서 갔다.) 넓은 공터엔 소, , 돼지 몇 마리가 묶여있다. 막판 돼지를 두고 협상 중인 사람들도 보인다. 새끼들은 몇 달러면 살 수 있어서 여편님에게 사줄까했더니 돼지는 진저리를 친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작은 동물들은 많이 모여있다. , 오리, 토끼, 꾸이 등 귀여운 새끼들이 많다. 주변에 먼지가 많아 적당히 둘러보고 나왔다.


시장_중앙시장(Mercado Municipal 24 de Mayo)_0708

가축 시장은 중앙시장 뒤편에 들어선다. 중앙시장은 매일 여는데 겸사겸사 구경을 갔다. 토요일이라 시장에 놀러온 사람들도 많았다. 3층짜리 현대화된 시장인데 1층엔 아이들이 놀거리도 많다. 1층엔 육류와 생선, 2층엔 야채, 식료품, 과일, 식당 등이 있다. 깔끔하게 구획과 매장이 구분되어 있어서 둘러보기 편하다. 식당 칸에 맛나보이는 메뉴도 많았다. 딸기가 특히 저렴해서 실컷 사다 먹었다. 시내에도 작은 시장들이 곳곳에 있어서 과일과 야채는 그때그때 조달할 수 있었다. (물론 마트도 여러 개 있다.)


시장_공예품 시장(Mercado Artesanal)_0708

중앙 광장엔 늘 기념품과 공예품을 파는 시장이 서는데 토요일엔 골목골목까지 커진다. 대충 둘러봤지만 토요일이라고 기가막힌 물건들이 더 늘진 않았다. 시장이 아니어도 여러 가게에서 비슷한 물건들을 취급한다. 오타발로 내에 직접 전통 공예를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았다.


La casa de Intag_0711

우리가 딴 커피를 파는 곳이다. 오타발로에도 인타그 커피 매장이 있다. 커피를 포함한 투어도 소개되어 있다.


공원_콘도르 공원(Parque Condor)_0709

콘도르 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택시 기사에게 콘도르 공원을 물으니 걸어서 한 시간 걸린단다.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쇼가 있다고 했다. (바람이 심하면 안한다.) 한 시반쯤 입장해서 공원을 먼저 둘러보았다. 공원 안에는 매와 독수리들이 큰 우리마다 한 쌍씩 있었다. 꽤 멋진 놈들이 있었다. 그리고 두둥, 콘도르 한 쌍이 큰 우리에서 놀고 있었다. 괜히 황제로 불리는 게 아니다. 머리가 왕관같다. 먹이로는 닭 한마리를 통으로 준다. 웅장한 자태다. 안데스에서는 전통적으로 콘도르를 신성시했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보니 새 조련사가 있었다. 물어보니 3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다른 쪽을 둘러보러 갔다. 거기엔 커다란 맹금류들이 줄에 묵여 있었다. 슬슬 쇼를 보러 갔다.

쇼는 커다란 야외 무대에서 한다. 뒤로 넓은 벌판과 산이 보인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조련사가 새를 들고 나타난다. 한 마리를 들고 와서 이리 날렸다 저리 날렸다한다. 줄도 없는데 잘 돌아온다. 한 마리만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두, 세 마리를 계속 데리고 온다. 멀리 갔다가 한참 뒤에 돌아오는 놈도 있다. 아이들은 기념 사진을 찍게 해준다.


전망대_El Lechero_0709

콘도르 파크로 올라오는 도중 갈림길에서 반대로 가면 Lechero라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라기 보단 경치 좋은 언덕이다. 콘도르를 실컷 보고 걸어갔다. 언덕 위엔 커다란 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다. 호수와 마을, 뒤덮은 산이 아주 보기 좋다. 나무를 한 바퀴 돌면서 둘러보고 내려온다. Lechero 주변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해도 뉘엇뉘엇 지고 있어서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한 시간쯤 걸어내려가니 마을로 돌아왔다.


생일_0709

하마터면 농장에서 생일을 지낼 뻔했다. 다행히 평화로운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외국에서 생일을 맞아보긴 처음이었다. 생일날 아침은 전날 근처 빵집에서 산 1.3달러짜리 작은 딸기 케잌과 과일 샐러드로 준비해주셨다. 촛불은 지나치게 화려한 거 뿐이라 자제했다. 낮에 콘도르 공원을 다녀오고, 저녁엔 키토에서 사온 5또기 카레를 먹었다. 생일날 저녁도 에콰도르에 어울리는 노란색이었다. 행복했다.


콜린과의 대화

호스텔에서 재미있는 친구를 만났다. 여편님이 혼자 아침 먹다가 옆자리 미국인과 친해져서 왔다. 이름은 콜린이라고 한다. 1년째 에콰도르를 탐방 중이다. 여기서 농가주택 하나를 사서 자급자족하면서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할망 농장에서 좌절했던 자급자족의 불씨를 다시 되살렸다.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하면 다들 작은 농장과 이웃들간의 교류로 평화롭게 살 거라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미국 커플의 자연농 다큐멘터리도 봤다고 했다. 뉴욕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포틀랜드(킨포크의 성지!)에서 살다가 왔다.

엄청난 채식주의자다. 심지어 아침에 커피를 타서 마실래? 했더니 아 거기 꿀 넣어서 안 마신다고 했다. 동물이 고생해서 만든 걸 착취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기 에콰도르에선 작은 농장만 있어도 과일을 실컷 따먹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매일 아침, 서로의 자급자족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대화라기 보단 강의에 가까웠지만;;)

꿈만 큰 줄 알았는데 구체적이었다. 어느 날 여자친구라면서 소개했다. 며칠 간 다퉈서 여길 떠나네 마네 했는데 화해하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나아갈 거라고 했다. 당장은 여자친구와 함께 오타발로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농장 살 돈을 모을 거라고 했다.

떠나는 날 작은 선물이라며 귀여운 디자인의 텃밭 일지를 선물로 줬다. 알려준 이메일로 이런 저런 자료도 보내주고, 블로그에도 글이 빼곡하다. 언젠가 콜린이 농장에서 살면 적당히 일을 도우러 가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자급자족을 해도 꼭 작은 돼지 몇 마리는 키울 거다.



오타발로에서 5일은 있을려고 했는데 금방 회복이 됐다. 월요일 하루 쉬고, 콜롬비아 국경으로 향했다. 길에서 국경 가는 버스를 잡아타는 방법도 있지만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단다. 안전하게 Ibarra로 가서 점심을 먹고, Tulcan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툴칸 터미널에서 내려서 배낭 멘 여행자 하나까지 함께 국경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다큐_EBS 다큐프라임_가축

이래저래 가축과 사연이 많았다. 몇 번이나 보다 잠들어서 아직도 다는 못봤다. 총규쇠와 닫는 면도 있고, 친근한 라마, 알파카 얘기도 나온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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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선지는 에콰도르 수도 키토, 민도에서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도착했다. 가는 길에 적도 박물관이 있어서 내려서 보고갈까 하다가 말았다. (이때 갔어야 했다.) 키토엔 터미널이 여러개다. 이 터미널에서 숙소까진 그냥 택시를 타고 가야했다.


키토(QUITO)_0628_0703

에콰도르의 수도다. 적도국의 수도답게 적도에 거의 근접해있다. 도심에서 한 시간만 버스를 타고 가면 적도 기념관에도 다녀올 수 있다. 에콰도르는 미국, 독일인들이 선호하는 은퇴이민 나라 중 하나기도 한데 이런 사람들이 사는 부촌과 신시가지도 키토에 있다. 오래된 주거지역, 관광지 구도심, 신시가지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되는 도시다. 나름 고도 2,800미터에 이르는 고산도시다.


숙박_Bellavista_더블룸_5

수도에 가면 어찌저찌 5일 정도는 금방이다. 별계획 없어도 넉넉하게 공기방울로 숙소를 찾았다. 무슨 일인지 방값이 1명과 2명이 동일했다. 위치도 나름 부촌에 속하는 곳이고, 집은 언덕을 올라가니 새아파트였다. 관리인이 맡아놓은 열쇠를 받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나갔다오니 왔다. 시내 전망 좋은 언덕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아파트다. 남매가 방 하나씩 쓰고 남은 큰 방을 부모님이 왔을 때 쓰거나 공기방울로 놓는 모양이다. (우리방에 가족 사진이 있다.) 여동생은 건축을 공부한다고 하고, 오빠는 영어 학원에서 일한다고 했다. (집에 과야사민 어학원 포스터가 붙어있다.)

둘 다 바쁜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넓은 집은 우리가 전세냈다. (집사가 된 느낌이다.) 방에도 테라스가 있지만 거실 전망이 기가 막혔다. 키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데 야경은 여느 유명 대도시 부럽지 않았다. 부엌에 온갖 조미료는 다 있었지만 주인들은 뭘 안 해먹는 모양이다. 아침 저녁을 부지런히 만들어 먹었다.


공원_PARQUE LA CAROLINA

집 주변은 주택가라 한산하지만 좀만 나가면 큰 공원이 나온다. 키토에서 제일 큰 공원인 것 같다. 공원 바깥쪽엔 스케이트 보드부터 놀이터, 축구장에 육상 트랙도 깔려있다. 그리고 가운데엔 무려 하트 모양의 연못이 있고 거기서 오리배도 탈 수 있다. (너무 빡센 액티비티로 보여서 컨디션상 걸렀다.) 공원 가운데엔 식물원(Jardin Botanico)도 있다. 먹거리도 많은데 주말엔 더 많아졌다. 여편님은 옥수수, 난 핫도그를 먹었다. 핫도그는 소세지가 부실했지만 다른 양념을 마음대로 넣을 수 있었다. 돼지고기와 갖은 반찬을 겻들인 요리도 팔았는데 줄이 어마어마해서 먹지 못했다.


쇼핑몰_MAXI & MARATHON

공원 주위를 대형 쇼핑몰이 둘러싸고 있다. 먼저 건너편 쇼핑센터에 있는 한인마트를 찾아갔다. 물건 대부분은 페루 리마 한인마트에서 본 것과 같았다. 된장과 함께 회심의 두부를 샀는데 저녁에 보니 상한 것이었다. 그나마 된장으로 된장제육볶음, 된장파스타 등등을 해먹었다. 쇼핑몰은 모두 크고 좋다. 슈퍼는 한인마트 사장님 추천으로 MAXI를 애용했다. 스포츠 매장에서 에콰도르 국가대표 비슷한 옷을 좋은 재질, 좋은 가격에 팔아서 샀다. 노란색이다. 이 나라는 노란색을 참 좋아한다. 국기도 노란색, 많이 마시는 맥주도 노란색, 국가대표도 노란색, 자주 먹는 과일도 노란색, 은행도 노란색 등등 어딜가도 노란색 천지다.


카페_JUAN VALDEZ

쇼핑몰과 중심가 곳곳에 후안 발데즈가 있었다. 남방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콜롬비아의 커피 체인이다. 막시에서 장을 보면 카푸치노 1+1 쿠폰을 줬다. 매일 직접 내린 드립커피만 마시다가 강한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하루는 잠을 설쳤다. 키토에선 2,3번 가놓고 콜롬비아 가선 딱 한 번 갔다.


과야사민 미술관_Museo Guayasamín_0629

간만에 문화생활이다. 남방의 피카소라 불리는 과야사민 미술관을 갔다. 집에서 언덕 길만 좀 올라가면 됐다. 뭔가 익숙했다. 지난 여행 때 와봤던 곳이다. 이런 석조 건물의 미술관은 콜롬비아에서 갔던 걸로 기억했다. 늘 기억은 뒤섞이고 왜곡된다. 스페인어? 영어? 스페인어!라고 대답했더니 먼저 집으로 가란다.

과야사민이 살던 집과 박물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가보니 막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됐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과야사민의 소장품과 곳곳에 그림들이 다 좋아보인다. 키토를 붉게, 파랗게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그의 영상도 보여준다. 혈기가 넘친다. 집을 다 돌아보고 나온다. 풀장도 있고, 집도 좋다. 과야사민 잘 살았네. 숙소 애들도 잘 사는 것 같다. 학원은 엄마가 하는 것 같은데 과야사민 어학원이다. 방에도 걸린 그림도 과야사민 그림이다. 숙박 전에 채팅할 때 동생 이름에 과야사민이 들어갔던 것 같다. 나의 의심은 틀리지 않았다. 집에 가서 과야사민 미술관 다녀왔다고 하니 과야사민이 할아버지란다. 가족 사진을 다시 보니 엄마가 과야사민 딸인 것 같다.

잠시 휴식 후 박물관을 갔다. 언덕을 오르느라 이미 체력을 많이 소진했다. 박물관의 그림들은 대부분 특유의 다양한 정체성이 혼합된 얼굴 그림이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본 다양한 소재의 그림들이 더 재밌었다. 기념품으로 키토를 그린 엽서 하나를 샀다.


식물원_Jardin Botanico_0701

에콰도르는 생명다양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면적 대비 종다양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적도의 매력이다.) 좁은 나라지만 해안, 산간, 아마존 열대 우림 등 다양한 기후가 분포한다. 식물원도 재밌을 것 같았다. 꽤나 규모가 컸다. 산책하면서 다양한 식물들을 돌아 볼 수 있다. 구석구석에 하우스와 실험실 등이 있다. 각종 작물이나 난 등을 모아 놓은 곳도 있다. 열대 우림 식물관은 후덥지근하다. 체계적으로 기후와 생태계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렇게 상세한 식물원은 남미 대륙에선 처음이다.) 눈에 띄는 건 고사리 나무다. 그 옛날 공룡들이 한 손에 들고 먹었을 크기다.


적도 박물관과 올드타운은 포기하기로 했다. 여편님의 목감기가 완쾌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쉬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워크어웨이(WORKAWAY)

오랜만에 등장한다. 나의 소원 중 하나는 콜롬비아나 과테말라 커피 농장에서 일 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각을 짜도 수확시기와 여행시기가 엇갈렸다. 그런 절망 속에 에콰도르 커피 수확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적도 부근은 일년 내내 날씨가 비슷해서 어느 때 수확해도 별 상관은 없다고 한다.)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카카오 농장 몇 개와 커피 농장 한 군데에 연락을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커피 농장에서만 답이 왔다. 지금은 머무는 애들이 있어 7월 초에 오라고 했다. 민도와 키토에서 숨을 고르고 커피 농장을 찾아갔다.


인타그(INTAG)_0703_0707

키토에서 콜롬비아 국경쪽으로 3시간을 가면 오타발로란 소도시가 있다. 거기서 INTAG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우리가 머물 곳은 인타그 계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 APUELA. 사연이 좀 있는 마을이다. 이곳 천연 자원을 정부가 다국적 기업에 개발권을 팔았고, 이를 막기 위해 반대 투쟁을 하고 있단다. 다른 에콰도르의 계곡들과 마찬가지로 해발 1,500미터 정도에 위치해서 사탕수수, 커피, 파파야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여기도 나름 짚라인, 폭포, 온천 등 즐길거리도 있다.


숙박_그레이스 별채_도미토리_5

메일에 설명한 대로 APUELA 마을을 지나서 다리 두 개를 건너니 정거장이 보인다. 세워 달라고 한다. 한 할머니가 개 2마리를 데리고 마중을 나왔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숲이 우거지고 안에 넓은 집이 있다. 호스트 이름은 그레이스다. 케나다에서 태어났고, 에콰도르에서 무슨 NGO를 하다가 이 마을에 놀러왔다가 집 나온 걸 보고 샀단다. 집 벽은 전에 머물렀던 애들이 그려놓았다고 한다. 커피를 준다. 처음 사서 한 번도 안 씻은 것 같은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려준다. 본격적으로 집을 안내해준다.

집 주위론 곳곳이 커피 밭이다. 구석구석 파파야, 아보카도, 바나나 등도 있다. 안쪽으로 별채가 하나 있다. 먼저 창고에서 맞는 장화를 찾는다. 하나씩 준다. 다음 옆방의 더그를 소개해준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사람인데 이 방에 세를 내고 산다. 은퇴한 군인으로 여기서 사진 찍으며 살고 있다. (꾸준히 페북으로 신기한 생물 사진을 올린다.) 오후면 그레이스 집으로 와서 케잌을 함께 먹는다. 붙잡히면 끝없는 얘기를 들어야한다. 반대편 방이 우리 방이다.


이층 침대를 우리에게 배정한다. 옆에 침대 하나엔 다른 봉사자가 있단다. 우리 말고 또? 저녁에 정체가 밝혀졌다. 우리와 달리 그냥 근처에 사는 에콰도르 사람이다. 이름은 느네다. 다 큰 애가 셋인 아저씬데 집까지 거리가 있어 3,4일은 여기서 잔다. 집에선 또 전자제품 판매를 하는 투잡맨이다.

그게 단 줄 알았는데 자기 직전, 한 명이 더 온다. 파비앙이라고 한다. 키토에 볼 일이 있어 늦었단다. 원래는 그레이스의 농장 일을 하는데 요즘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한다. 사탕수수 밭 일은 다른 농장 일보다 훨씬 힘들고, 밥도 대충 준단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한다. 일주일 내내 일하면 90달러 정도를 받는다. 이혼 소송 중이라 양육비를 보내야 하는 처지다. 그레이스 집에 파비앙의 부인과 아이들도 찾아왔었다. 마을 사람들의 이런저런 일도 도와주는 모양이다. 근처에 와이파이가 되는 집도 여기뿐이라 밤 중에 집 근처엔 와이파이 잡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레이스 집과 달리 이 방은 허름하다. 좁은 방에 주방도 화장실도 있어서 환기가 잘 안된다. 침대 이층이 부실해 보이기도하고, 모기장도 하나 뿐이라 일층에서 둘이 잤다. 쾌적한 잠자리는 아니었다. 옆에 빡세게 일하고 잠만 자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하루하루가 빡센 날들이라 잠은 실컸잤다.


1일차_개와 돼지의 시간_0703

방을 보여주고 나서 대충 옷을 갈아입고 돼지 축사로 갔다. 축사 앞엔 엄청 무서운 개가 하나 묶여있다. 개가 총 3마리다. 이 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불친절해서 묶어 둔단다. 동물이 많은 집이다. 그레이스 집엔 고양이도 2마리가 있다.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는 모두 잘 지낸다. 개 한 마리는 새끼도 만들어서 이웃들에게 분양했다.

돼지 축사가 열리자 앞에 돼지들이 일어선다. 유일한 숫놈 로베르토씨다. 돼지는 사람과 유전자가 비슷하다더니 진짜 아재의 얼굴과 표정이다.

시범 삼아 그레이스가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한다. 8개의 방에 암돼지 6마리와 새끼 돼지, 청년 돼지들이 있다. 새끼 돼지들이 앞길을 막으면 발로 치운다. 로베르토씨는 다른 돼지들 먹이를 다 주고 돌아서면 자기도 안 먹었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내민다. 돼지는 똑똑해서 드나들 때 문을 잘 잠궈야 한다. 웬만큼 쉬운 잠금 장치는 열어서 뛰쳐 나간다고 한다. 할망은 쉽사리 축사 사이를 뛰어 넘으며 변을 치우고 물을 뿌린다. 우리도 어정쩡하게 돕는다.


커피 일과 함께 돼지 축사일도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커피를 따볼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었고, 그간 내가 먹은 돼지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일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건 남미의 시골 마을에서 봤던 작은 돼지들이다. 작은 돼지는 닭과 마찬가지로 풀어서 키워도 집도 잘 찾아오고 주변에 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고기에 대한 욕심이 돼지를 이렇게 키운 것이다. 할망은 이 돼지를 마을에 보급하고 있다. 원래 작은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도 점점 큰 돼지를 갖게 될 것이다.


저녁은 브로콜리 볶음이다. 오랜만에 야채가 듬뿍 들어간 요리를 먹으니 속이 편하다. 브로콜리는 인후염에도 좋다고 해서 키토에서도 실컷 먹었다. 근처에 가게가 있는 건 아니라서 대부분의 식재료는 텃밭에서 가져오거나 일주일에 한 두번 찾아오는 야채 장수에게 산다고 한다.


2일차_나비 장인_0704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 파비앙은 밥도 안 먹고 나갔다. 6시 반에 느네와 할망까지 넷이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서양식, 시리얼과 과일, 요거트 등이다. 커피도 내려준다. (집에서 직적 따서 볶고 아침마다 가는 걸 기대했는데 그런 거 없다. 그냥 공장에서 갈아 오는 것 같다.) 7시 돼지 똥을 치우러 간다. 전날 저녁에도 그렇게 치웠는데 밤새도록 잘도 쌌다. 새끼 돼지들이 밖으로 나온다. 새끼 우리를 청소하는 동안 복도로 내보낸다. 이놈들이 돌아다니는 사이 다른 우리를 드나들자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할망은 우리를 보챈다. 빨리 빨리 먹이주고 문닫으란다. 돼지는 사료도 주고, 후식으로 바나나도 먹는다. 작은 놈들은 그냥 썰어서 준다. 둘다 넋이 나간채로 우리를 빠져나왔다.

드디어 커피!가 있는 곳으로 간다. 전날 물에 불려 놓은 커피콩을 씻는다. (돼지 똥 치우고 손도 안 씻고 커피를 씻는다. 어차피 씻는 것 보다 커피 씻는 게 손에 벤 냄새가 더 잘빠진다. 우리가 아로마니 산미니 하는 커피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상태가 안 좋은 커피콩을 골라내면서 큰 대야에 물을 채웠다 뺐다 하면서 씻는다. 부지런히 문질러줘야 한다. 이렇게 씻은 걸 돼지 우리 옆 건조대로 가져간다. 평평하게 말린다. 또 안 좋은 콩을 골라낸다.


어깨 끈이 달린 플라스틱 통 2개씩을 준다. 커피 열매를 따러 간다. 하나는 빨갛게 잘 익은 거, 다른 통엔 상하거나 검게 변한 열매를 넣으란다. 이런 안 좋은 원두들은 네스카페 같은 곳에서 수거해 간다고 한다. 커피 열매를 따는 재미도 잠시, 10, 할망이 나는 느네를 도우러 가라고 한다. 느네는 집 아래 계곡 근처에 나비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파비앙은 느네를 나비 인간(Hombre de Mariposa)라고 불렀다.) 느네가 할망에게 먼저 나비 정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할망은 처음에 몇 주면 되냐고 물었단다. 수시로 와서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 느네는 혼자서 제법 그럴듯한 나비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가운데 연못에서 물도 나온다.

느네는 별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자기가 알아서 한다. 처음에 선을 그려 주고 삽질을 시켰다. 설렁설렁하다보니 점심 시간이다. 점심은 감자다. 1, 사건이 터졌다. 우리에서 돼지들이 방을 탈출한 것이다. 복도 구석에 있는 말린 짚더미를 다 엎어서 적셔놓았다. 할망은 범인으로 나를 지목했다. (나중에 할망도 종종 문 잠그는 걸 까먹는 걸로 보아 내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 다음부턴 문 열지말고 벽을 넘어 다니란다. 그러면서 짚더미를 다 쓸어모아서 밖에다가 말리라고 했다. 주기적으로 뒤짚어서 잘 말리라고 했다. 축사 밖엔 무서운 개가 지키고 있어서 그 앞에서 뒤집는 것도 살 떨리는 일이었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나비 정원 일을 시작한다. 계곡에서 돌을 주워다 옮기는 일이다. 3시가 되어 작업을 종료한다. 커피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3~4시 정도까지 일을 하고 각자 다른 일을 하러 간다. 학업을 계속 하기 위해 오후반 학교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일은 끝나지 않았다. 할망과 함께 오늘 수확한 커피를 세척한다. 먼저 커피 체리를 다 모아서 대야에 넣고 물로 씻는다. 나쁜 열매들은 알아서 위로 뜨거나 손으로 골라낸다. (네스카페 통에 넣는다.) 한 번 씻은 열매를 탈곡기에 넣는다. 과육이 후두둑 벗겨진다. 과육은 모아서 돼지도 주고 퇴비로도 쓴단다. (녹차 돼지처럼 커피 돼지도 상상했는데 이건 맞았다.) 껍질 벗긴 커피를 물에 씻는다. 안 좋은 것들은 여기서도 걸러낸다. 초반에 뜨는 것들은 아예 버린다. 상태가 안 좋은 놈들이다. 열심히 부벼서 몇 번 물로 씻는다. 그리고 물에 적당히 담가 두고, 다음날 아침 2차 세척을 하는 것이다.


4, 휴식 시간이다. 할망이 손수 만든 바나나 케잌과 커피를 먹는다. 할망이 케잌 하나는 진짜 잘 만든다. 잠시 쉰다. 손님들도 다녀간다. 씻을까 하다가 참는다. 어차피 6시에 또 똥을 치우고 저녁을 줘야한다. 두 번째라 한결 수월하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만든다.


저녁은 우리가 준비해서 먹는다고 했다. 정신없는 날을 보내서 간단히 파스타에 라면 스프를 넣어 볶아 먹기로 한다. 야채와 계란을 추가해서 만들었다. 할망과 느네에게도 권하니 먹는다. 인터넷이나 좀 둘러보다가 (느리다.) 일찍 잠에 든다.


3일차_커피 따기_0705

아침 먹고, 돼지 밥 주고, 커피 씻는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커피 따기에 전념하고 여편님이 느네를 돕기로 한다. 이 커피밭도 수확이 막바지라고 한다. 한알 한알 정성들여 체리를 딴다. 중간 중간 맛을 본다. 커피 열매는 맛있다. 다만 안에 원두가 너무 커서 쪽 빨면 끝이다. (이것도 종자 개량의 결과인가) 아드득 씹어 보기도 한다. 커피 맛도 나고 카페인도 오는 것 같다. 커피 나무의 햇살과의 각도 별로 열매 달린 양이 다르고, 익은 정도도 크게 차이난다. 할망이 지나가다가 내가 딴 커피의 분류 상태를 보고 칭찬 한 번 해주고 간다. 후에 나의 작업을 본 더그는 커피를 한알씩 소중하게 느리게 딴다고 평했다.

점심은 닭고기가 나왔다. 여편님도 느네와의 작업은 순조롭다고 한다. 오후에 두 시간 또 커피를 딴고, 오후 세척 작업을 돕는다. 두 어번 하고 나니 대충 익숙해졌다. 안 좋은 원두를 골라내는 건 아주 재밌는 일이다. 오후 작업까지 끝내고 커피와 케잌을 먹는다. 어제 만든 케잌이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 집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정자 같은 게 하나 있다. 정자엔 침대와 쇼파 등이 있다. 여기도 돈 주고 머물 수 있는 모양이다. 경치가 좋다. 돼지 밥 주고 청소하고 샤워를 했다. 할망이 뜨거운 물 트는 법을 알려줬다.


나른한 몸으로 휴식을 취했다. 빈둥거리다 저녁 준비를 슬렁슬렁 시작했다. 그런데 할망이 저녁을 왜 이제야 준비하느냐고 난리다.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서 느네, 파비앙에게 준다. 느네, 파비앙은 아침 일찍부터 일해야 하니 저녁을 빨리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두둥, 우리 먹을 저녁만 해서 먹는 게 아니라 다섯 명 저녁을 다 준비해야 한다고? 할망은 자기가 아침, 점심 우리가 저녁 담당이라고 한다. 아니 그럼 새벽 6시부터 저녁 마무리까지 우리가 노예로 왔나. 간단히 계란(또 계란)과 야채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자러 갔다. 사실 여편님은 어제부터 할망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나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 자면서 분노의 이불킥을 연달아했다.


4일차_노예 4_0706

할망은 농장 일에 따라 쉬는 날을 유기적으로 조절한다고 했다. 그래서 화수목 일했고, 대강 커피 따는 것도 끝났으니 금요일에 오타발로에 가서 주말까지 놀다오라고 했었다. 여편님과 상의 끝에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 떠나기로 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얘기를 하니 할망은 쿨하게 그러라고 했다.

아침 먹고, 돼지 밥 주고, 커피 씻는 일을 마쳤다. 오늘은 커피 안 따니 둘 다 느네와 함께 나비 정원 만들기를 하란다. 그 이틀 사이에도 나비 정원은 많이 진전됐다. 느네가 주변에서 잡아온 나비도 몇 마리있다. 오늘은 정원 주변 화단에 꽃을 더 심고, 화단을 두를 울타리를 만든다. 한 명이 도와도 할 일이 없는데 보조가 둘이라 더 한가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본격적인 울타리 만들기에 돌입했다. 우리가 판자를 잡고 느네가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그러다 나보고 한 번 해보라고 한다. 긴장했지만 쑥 들이미니 구멍이 뚫렸다. 딱히 재밌진 않아서 여편님에게 권했다. 여편님은 신나게 구멍을 뚫었다. 남은 구멍을 모두 그녀가 뚫었다. 늘 느끼지만 이공계로 갔으면 큰 인재가 되었을 것이다.

한가한 할망이 작업 순시를 하고 간식을 먹으러 오란다. 오늘은 새로 만든 레몬 케잌이다. 느네는 오늘 집으로 간다. 작별 인사를 했다. 옆집 이웃이 놀러왔다. 애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이 집 개 새끼다. 생이별한 새끼와 어미가 붙어서 떠날 줄을 모른다. 강제로 떼놓는다. 종일 풀이 죽었다. 커피를 공장으로 보내러 차가 왔다. 차를 갖고 온 사람은 치즈집 아저씨다. 간식으로 치즈를 권했으나 먹지 않았다. 커피 자루 싣는 것을 도왔다. 엄청 무겁다. 할망에게 물으니 내일 우리끼리도 커피 공장을 가볼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힘차게 똥을 치우고 장화를 집어 던졌다.


오늘 저녁은 느네도 파비앙도 없어서 또 우리 먹을 것만 만들었다. 또 계란 볶음밥이다. 먹고 잠을 잔다. 신기한 것은 거의 두달 가까이 지속되던 여편님의 목 질환이 5일 간의 노예 생활로 깔끔하게 나았다는 것이다.


5일차_탈출_0707

다음날도 어김없이 6시에 일어났다. 여편님의 예감대로 할망은 아침을 차려주지 않았다. 옆에 놓인 바나나를 먹었다. 짐싸고 할망과 인사를 나눴다. 더그는 우리를 배웅해 주겠다고 한다. 버스 시간이 바뀌었으니 얼른 나가잔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정류장 옆집엔 혼자 두면 안되는 아픈 청년이 있다고 한다. 커피 따러 오는 사람 중 한 명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점심도 따로 먹고 수시로 집에 다녀온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버스가 왔다. APUELA 마을에서 바로 내렸다. 더그가 알려준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정갈한 조식과 여유있고 진한 커피의 맛이다. INTAG 커피를 파는 조합 직영 카페였다. 물어보니 커피 공장은 바로 옆이라고 한다. 가방을 맡겨두고 공장을 찾아갔다. AARIC, 새가 그려진 인타그 커피 로고가 보인다. 공장을 들어갔더니 직원이 오늘은 공장 투어가 없다고 한다. 금요일엔 로스팅을 안하기 때문이다. 할망은 끝까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오타발로로 가는 버스를 탔다. 계곡을 돌고 돌아 내려가는 경치가 좋다.


참고_INTAG 관련 홈페이지

http://www.deco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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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찾아 만타까지 가는 바람에 다음 목적지 민도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침에 출발해 중부 대도시 산토 도밍고에 오후에 도착, 민도로 간다는 완행 버스를 타고 저녁 7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르락 내리락했다.


민도(MINDO)_0623_0628

수도 키토에서 서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계곡 마을이다. 에콰도르엔 바뇨스를 포함해 유명한 계곡 휴양지가 많다. 튜빙, 리프팅 같은 액티비티를 하기엔 바뇨스가 최고지만 (우린 어차피 안할테니) 민도도 비슷한 액티비도도 있고, 다소 한적한 편이며, 새를 구경하기엔 가장 좋다고 했다. 1,500미터 정도의 계곡 마을이라 날씨가 일정하다. 아침엔 살짝 구름이 끼고 좀 갰다가 다시 흐려져서 비가 오고 그친다. 좀만 위로 올라가도 구름 속이다.


숙박_BIOHOSTAL MINDO CLOUD FOREST_더블룸_5

중심가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갔다.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이 숙소 찾는 걸 도와준다. 미리 찍어둔 비오 호스텔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숙소를 둘러보고 왔더니 주인이 돌아왔다. 침대도 크고 아늑한 방을 보여준다. (침대 시트와 수건이 하얀 숙소는 참 오랜만이다.) 좋아보인다. 가격 흥정을 해도 많이 깎아주진 않는다. 아침을 아주 푸짐하게 준단다.

조식은 정말 푸짐했다. 진한 주스와 커피, 오물렛, 과일, 빵 등을 골고루줬다. 1층 로비가 넓은 식당인데 한쪽 벽엔 통으로 새를 그려두었다. 바이오바이오한 느낌이다. 윗층엔 해먹도 있고, 우거진 테라스도 있다. 방도 매일 청소를 해주었다. 주방도 사용 가능해서 라면과 파스타를 간단히 먹었다. 간만에 융숭한 대접을 받는 숙소에 머물렀다.

주인 아저씨가 관광 안내를 잘해줬다. 집 바로 옆에 있는 나비 정원, 두 개의 산책로, 새 관찰할 수 있는 곳 등등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본인도 새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넉넉하게 오일을 머물며 돌아보기로 했다.


시내 구경과 맛집

외로운 행성을 보고 온 덕분에 맛집과 볼거리를 풍성하게 알고 왔다. 시내는 작다. 투어 가는 벤이나 버스를 빼면 차도 별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가운데 큰 공원이 있는데 주변 산세를 둘러보며 광합성을 했다. 이런저런 꽃들도 예쁜게 많다. 시내 큰 길을 따라 식당과 여행사들이 있고, 주변 골목으로도 맛집 거리, 작은 시장 등이 있다. 야채가게에선 간단히 야채와 파파야 정도만 사다 먹었다.


Dragonfly_0623

장장 12시간 낮버스를 탔으므로 든든한 고기를 먹으러 갔다. 철판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든든하게 먹었다. 가격은 물가를 생각하면 비싼 편이다. 분위기도 고급져서 여편님은 자연스레 와인을 드셨다.


El cheff_0626&0627

맞은 편에 있는 좀 더 로컬한 분위기의 고기집이다. (가평갈비 느낌?) 점심으로 한 번 가보니 소불고기 정식 밖에 없다고 했다. 레몬 쥬스도 맛있고, , 불고기 모두 맛있었다. 다음날 저녁으로 소와 돼지를 하나씩 먹었다. 철판 구이는 앞집 고기의 두툼함과 정갈함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돼지가 맛있었다.


Padrino`s pizza_0624

점심 메뉴를 먹으러 갔다가 옆에서 먹는 피자들이 맛있어 보였다. 저녁에 바로 피자를 테이크 아웃해서 숙소에서 맥주랑 마셨다.


Reposteria Suiza_0625

독일식 소세지를 먹으러 갔다. 기대와 달리 소세지는 작았다. (맛은 있었다.) 식당이 있는 거리 이름 자체가 맛집 거리라 코지하고 다양한(채식, 퀴노아 햄버거 등등) 식당들이 많다. 길 건너편엔 우뚝 솟은 파파야 나무도 보인다.


El Quetzal_0624

초콜렛 가게다. 홈페이지까지 있는 큰 곳이라 카페도 넓고, 상품도 많다. 카카오 투어를 물어보니 매 시간 가능한데 공장을 둘러보고 여러 초콜렛을 맛보는 거라고 한다. 더 알아보기로 하고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에서 약간 올라온 언덕이라 경치가 좋다. 산들바람이 분다. 핫초코와 카카오 주스를 시켰다. 카카오 주스는 카카오 과육을 갈아만든 거다. 카카오 열매를 먹어본 결과 과육이 진짜 맛있다. 주스는 환상이다. 이런 주스를 파는 집이 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카카오에서 초콜렛까지_0625

Arte Sano Chocoarte

집 주변을 돌아보는 길에 발견했다. 소박한 오두막 같은 곳인데 초콜렛 투어를 한다고 한다. 들어가서 물어보니 직접 카카오부터 초콜렛까지 만드는 거라고 했다. 일요일 오후에 하기로 했다.

주인장이 소박하게 초콜렛 만들어 팔고, 직접 투어도 하는 가게였다. 투어 시간에 가보니 앞 그룹 투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히 앉아서 기다렸다. 앞의 투어가 끝나고 다시 준비하고 우리 투어가 시작됐다. 투어는 예상보다 길게 3시간 정도 진행됐다.

먼저 잡지를 하나 보고 있으라고 줬다. 에콰도르 초콜렛에 대한 기사였다. 키토를 축으로 민도, 서쪽의 푸에르토 키토(Puerto Quito) 등으로 이뤄지는 초콜렛 투어와 공정이 소개되어있다. 푸에르토 키토에선 아예 카카오 농가에서 카카오 따는 것부터 초콜렛까지 만드는 투어도 있다고 들었다. 민도는 카카오가 잘 자라기엔 고도가 좀 높다고 했다.


카카오의 역사

카카오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원래 카카오의 원산지는 에콰도르쪽이다. 여기서 시작해서 멕시코 마야문명에까지 퍼졌다. 마야 문명에선 카카오를 매우 신성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스페인 사람들이 와서 이걸 봤고, 냅두다가 신분가 선교사가 조리해보고 맛있어서 설탕쳐서 먹고 인기가 높아졌다. 그후 아프리카에 어마어마한 카카오 농장을 만들고, 이걸 가져다가 유럽에서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파는 것들이 지금의 초콜렛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양이 에콰도르, 브라질 등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양보다 훨씬 많다.)


카카오 공정

에콰도르에서 많이 재배되는 종은 Fino de Aroma라는 것이다. (향이 더 좋은 것 같다.) 카카오 열매를 보여준다. (페루에서 맛본게 큰 도움이 됐다. 이건 숙성된 거라 먹기엔 안좋다.) 카카오 열매는 일년 내내 재배가 가능하다. 이걸 따서 숙성시킨다. 그런 다음 껍질을 벗겨 과육과 함께 숙성시킨다. 그리고 나서 물이 빠지면 카카오 원두(씨앗)을 말린다. 여기까지가 보통 카카오 농가에서 이뤄지는 과정이다.

주인장도 이런 카카오 원두를 구해와서 작업한다. 이제부턴 공정을 함께 실습한다. 먼저 카카오 원두를 로스터 기계에 볶는다. (이 기계로 커피도 볶는다고 한다.) 통을 손으로 돌려가며 로스팅을 마친다. 채에 식히면서 손으로 껍질을 깐다. 이 껍질도 좋다고 해서 받아왔다. 차로 우려서 마시면 꽤나 향미가 좋다. (저렴한 핫초코에 타서 먹으니 고급 핫초코가 되기도 했다.) 이제 원두를 간다. 커피와 달리 카카오 원두를 갈면 진득하게 나온다.


초콜렛 만들기

이 진득한 덩어리(이하 원액)을 그대로 말려도 초콜렛이 된다. 원액엔 지방도 많이 들어있어서 공정을 통해 지방을 분리하기도 한다. 이 지방만 분리한게 카카오 버터다. 또한 우유에 타먹는 핫초코의 원료도 지방을 좀 분리한다. 우유 자체에 지방이 있어서 그냥 초콜렛으로 핫초코를 만들면 너무 느끼하단다. 우린 이 원액으로 퐁듀를 만든다. 그냥 데우면서 휘휘젓는 것이다.

완성된 퐁듀를 바나나, 딸기, 파파야에 얹어서 준다. 맛있다. 맛있는데 한 그릇 다 먹으려니 느끼하다. 저녁으로 라면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간식이다. 다 못먹은 퐁듀는 그대로 굳혀서 싸준다. 다시 초콜렛이다. 두고두고 에콰도르를 떠날 때까지 먹었다.



나비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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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도는 새와 나비도 유명한 곳이다. 나비를 모아 놓은 나비 정원이 시내와 교외에 하나씩 있다. 시내에 있는 건 무려 호스텔 바로 옆이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갔다.

기벼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그냥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서 보란다. (뒤에 그룹한텐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형형 색색의 나비들이 난리가 났다. 부엉이 눈처럼 큰 놈도 있다. 하지만 날개를 펴면 반대편은 파란 형광이다. 노란색, 노랑 빨강 등등 아주 다양한 나비가 있다. 하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정신이 없다. 정신 건강을 위해 한 시간 정도 체류하다가 나왔다.

한쪽 편엔 해먹과 의자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난간 앞에 새들이 오도록 꿀과 바나나 등을 비치해 두었다. 벌새와 노란 참새, 파란 참새 등이 날아온다. 이것도 열심히 누웠다 일어섰다하며 관찰했다. 12, 점심 시간이 되니 배가 고파서 나왔다.


San Tadeo Birding_0626

호스텔 주인이 추천해준 곳을 갔다. 키토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민도를 빠져나가 도로에 진입, 산 타데오에서 바로 내려준다. 그리고 샛길로 걸어 들어가니 새 보는 곳이 나왔다. 관리인도 있었다. 여기는 새 보는 곳이 두 개다. 아래쪽에서 먼저 벌새를 봤다. 심심하지 않게 차와 커피도 있다. 전날 나비 정원에서 봤던 것과 다른 색깔도 있다. 초록색 위주에 무지개 머리인 것들과 검파 위주의 벌새가 있다. 여기 벌새들은 꿀통에도 자주 있고 근처 나무에도 오래 앉아 있어서 훨씬 보기가 좋다.

벌새를 볼 만큼 보고 위로 올라갔다. 여기선 바나나를 놔둬서 참새류가 많이 온다. 조던 운동화처럼 검은색 바탕에 배가 노란 것과 아예 노란 새가 같은 종이란 걸 알려줬다. 파란새도 자주 찾아왔다. 좀 더 참새스러운 노란새도 있고, 아예 검은새도 온다. 거의 두 시간 가량 관리인 아저씨와 잠답을 하며 새를 지켜봤다. 아예 오늘 처음 오는 새도 있었다. (여편님이 선물받아 온 조류 관찰용 쌍안경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여편님은 투칸을 발견했다. 원래 투칸은 주로 오전에만 활동한다. 뿌리가 너무 두드러져서 밝을 때 돌아다니다간 독수리의 먹이가 되기 쉽단다.


폭포 산책_0627

주인 아저씨는 두 개의 산책로를 추천해줬다. 마을 북쪽의 보호구역은 경치가 좋고, 남쪽은 폭포가 있단다. 남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곧 강줄기가 나오고 오르막이 시작됐다. 페루, 볼리비아에서 시작된 여편님의 목감기는 아직 완치가 되지 않았다. 곧 힘들어했다. 그래도 반은 왔으니 걸어가야 했다. 가다보니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왔다. 이삿짐 올리는 데나 쓸 뚜껑도 벽도 없는 케이블카를 타고 어마어마한 계곡을 건넜다. (이 케이블카 왕복이 이날의 백미였다.)

계곡 너머엔 폭포를 돌아볼 수 있었다. 여러개의 폭포가 있다. 왕복 한 두 시간은 걸린단다. 일단 가까운 거 하나를 보기로 한다. 아담한 폭포가 있다. 바위길로 올라가보니 사람들이 모여있다. 티셔츠를 보니 경찰에서 야유회를 온 것 같다. 몇 명이 번지점프를 하려고 대기 중이고, 다른 사람들이 응원한다. 줄을 보니 옆에 난간에서 사람이 잡는 거다. 보는 내가 다 무섭다. 고심 끝에 한 명은 포기하고 한 명이 뛰어내린다. 내려서 줄을 풀고 알아서 헤엄쳐서 나온다. 보기만해도 스릴이 전염된다.


다른 폭포 돌아보기를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돌아왔다. 내리막은 완만해서 편했다. 가이드와 함께 새를 보러 온 사람들도 보인다. 우리도 투칸을 보고 저 멀리 나무 꼭대기에 초록색 새도 봤다. 새 관찰을 뽀지게 했다. 내가 조류 여행자도 아니고 이 정도로 새를 열심히 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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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와 볼리비아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에콰도르로 향했다. 남미에서 찾은 나라 중 가장 작은 나라, 적도를 지나는 나라다. 적도의 풍요로움과 일년 내내 기후 변화가 거의 없다는 편안함 덕분인지 여행의 재미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마을에서 멀리 가지 않고도 관찰할 것이 많았고, 버스엔 여행객 보다 현지 사람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정과 이동_20170614_20170711

고산 지대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며, 대략 4주를 보냈다. 페루 툼베스에서 국경을 지나 과야킬 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남부 대도시 (수도인 키토 보다 큰) 과야킬에서 하루를 자고,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참치의 성지 만타를 들러 하루를 자고, 계곡 관광지인 민도에서 또 5박을 했다. 수도인 키토에서 5박을 하고, 북부의 오타발로와 근처 Intag 계곡에서 남은 날을 보냈다.


도시 간 이동은 버스, 도시 내 이동은 택시를 이용했다. 에콰도르는 중남미 4번째 산유국으로 기름이 싸서 교통비도 저렴하다. 버스는 대충 1시간에 1달러, 택시도 도시 내에선 대부분 몇 달러 선이다. 버스 터미널은 복잡하지만 일부 회사는 자체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어서 한가하다. 대부분 버스는 가는 길 있는 사람마다 정차해서 느린데 좀 비싼 Executivo 버스는 직행한다. 버스에선 와이파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어마어마한 화면과 음향으로 영화를 틀어준다. 지난 일 년 간 본 영화보다 에콰도르 버스에서 본 영화가 훨씬 많다. 가끔 숙소의 영화 채널을 돌리다보면 그때 본 영화가 수시로 등장한다. 또 하나 버스의 재미는 무수한 간식이다. 따로 터미널에서 간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수시로 먹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버스에 드나든다. 이것도 정식 등록을 하는지 대부분 공식 조끼를 맞춰 입고 과일부터 주스, 과자, , 튀김 등등 사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건 일지_0614_18시 무렵_GUAYAQUILCIFA 버스

툼베스에서 내려 과야킬로 가는 버스 CIFA를 탔다.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국경에서 정차해서 입국 수속을 밟고 간식을 먹고 버스를 다시 탔다. 근처 도시 터미널에서 정차를 하고 사람을 더 태우고 출발한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간다. 불안한 마음에 지갑에 돈이 잘 있나 확인했다. 에콰도르는 아예 달러를 쓴다. 볼리비아 ATM에서 달러가 두둑히 나오길래 챙겨두었다. 여편님에게 좀 나눠줄까 생각한다. 앞에서 틀어주는 영화 한 편도 끝나고, 슬슬 잠이 온다. 직통인 줄 알았는데 길에서 계속 사람들을 태우고 내린다. 좀 소란스럽다. 자다깼더니 옆에 내리려고 준비 중이던 사람이 과야킬은 좀 더 가야한다고 한다.

퍼뜩, 앞에 내려놓은 가방을 집어들었다. 지갑을 열어봤다. 돈이 없다. 750달러가 쌩하니 사라졌다. 다른 물건을 확인한다. 노트북, 카메라, 비상금 봉투, 카드, 여권, 핸드폰 그대로 두고 돈만 빼갔다. 허탈해하는 사이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소용 없는 걸 알면서도 여편님은 버스 기사에게 얘기를 해본다. 다행히 큰 돈은 자기네 사무실에서 바꿔주겠다고 한다.


사건을 범인 시선에서 재구성해보면, 뒷자리의 누군가 내가 지갑을 열어 확인하는 걸 봤을 것이다. 중간에 터미널에서 버스 직원이 간식 먹는 언니에게 뭐라뭐라하며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게 수면 가스였을 수도 있다. 물론 20시간짜리 장거리 버스를 타고 바로 이걸 탄 거라 저녁 시간이 다 되서 잠이 든 건 이상하지 않다. 버스 맨 앞자리라 내 좌석과 가방을 놓은 벽 간의 간격이 넉넉했다. 뒷좌석의 범인은 내 의자 밑을 파고 들어 가방을 끌어 간뒤, 지갑에서 돈을 쏙 빼고 제자리에 가지런히 놔두었다. 그리고 내가 깨자 아직 과야킬이 아니라며 안심시키고 근처에서 내렸을 것이다.

나중에 보노보노에게 들은 바, 원래 CIFA 버스는 위험하기로 소문이 나있다고 한다.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 오는 건 전형적인 수법이란다. 과야킬이 에콰도르에서 치안이 안 좋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보노보노는 에콰도르 야간 버스 맨 앞자리에서 잤는데 일어나보니 벗어둔 운동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내 기억에 1년 정도 신다가 쿠스코의 가죽 장인에게 수선까지 받은 파란 리복 운동화다.) 에콰도르 버스에서 의자 밑 바닥에 놓아둔 건 가져가라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범인은 매우 매너있게 현금만 쏙 빼갔다.


750달러면 우리가 에콰도르에서 일주일을 먹고 자는 비용이며, 몇 달러 아끼려고 이 숙소 저 숙소 전전했던 걸 생각하면 더욱 아까운 일이다. 며칠 내내 가슴이 쓰라졌지만 다른 귀중품이 멀쩡한 걸로 위안을 삼았다. 그것보다 못한 값어치라도 핸드폰, 카메라, 노트북을 잃어버렸으면 더한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돈을 잃어버린 건 물건을 잃어버린 것에 비해 심리적 아픔은 크지 않았다.

에콰도르 한달 최저임금은 350달러 정도로 저 돈이면 두달치 임금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뭐든 우리가 쓰는 것보다 더 큰 만족을 얻었을 것이다. 긴 여행기간 동안 큰 사건사고가 없었단 걸 생각하면, 이정도는 감사한 일인 것이다. 여행 기간 전체로 보면 큰 돈은 아니고, 여행세금을 통째로 에콰도르에 낸 것이다. 여행자 보험은 보장 기간일 때는 아무일 없다가 끝나면 사건이 터지는 마법을 부린다. 돈 잃어버린 일 갖고 이렇게 주절주절 쓴다는 건 지금도 가슴 아픈 일이란 반증이다.


과야킬(GUAYAQUIL)_0614_0615

소문대로 치안도 안좋고, 볼것도 없는 대도시라 하루만 자고 이동했다.


숙박_Hotel Sander_더블룸_1

미리 인터넷에서 저렴한 호텔을 찾았다. 터미널에서 택시타고 호텔 앞에 도착, 이미 저녁 10시가 다 되어간다. 얼른 체크인을 마치고, 간단히 씻고, 호텔 건너편 가게에서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했다. 허탈함은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은 호텔 아래 식당에서 먹었다. 에스프레소가 넉넉히 나오는데 맛있었다. 뭔가 브라질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시내 구경_0615

중국 마트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체크인 전에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시내는 다소 우중충하지만 활기가 있었다. 뒤늦게 연 중국마트를 가봤지만 별 건 없었다. 호텔에서 어뎁터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사려고 돌아봤지만 없었다. 이런 저런 가게 주인이 대부분 중국계로 보였다. 에콰도르의 상권도 화교들이 많이 장악하고 있단다. 우리에게도 chino chino 하는데 에콰도르 사람들이 중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터미널로 돌아갔다. 터미널에서 푸에르토 로페즈로 가는 표를 구입하고, 간단히 간식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푸에르토 로페즈(Puerto Lopez)_0615_0622

가난한자의 갈라파고스로 불리는 섬, 이슬라 플라타(Isla de la Plata)가 있는 마을이다. 갈라파고스는 다이버가 아니라면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왕복 비행기, 입도료, 비싼 섬의 물가 등) 해안가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며 가볍게 섬 구경만 다녀오기로 했다.

가방을 끌어안고 과야킬에서 푸에르토 로페즈로 가는 버스를 달렸다. 터미널에서 내리니 삼발이 오토바이들이 도열하고 있다. 여기 공식 택시는 모두 툭툭이다. 마을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1달러, 부담없이 간다.


숙박_CASA MOSAICO_더블룸_7

공기방울로 일주일 간 머물집을 예약했다. 약간 팬션 분위기로 넓은 공간에 주방과 침실이 분리되어 있다. 무려 쇼파와 테라스도 있다. 테라스로 건너편 집에 3자매가 다정히 노는 걸 구경했다. 독일인 아저씨가 별장처럼 지은 거라 건너 큰 집에 관리인 지오반니가 거주한다. 저녁에 코고는 소리가 들리긴해도 여러모로 안심이 됐다. 푸에르토 로페즈는 해안을 따라 길게 가게와 숙소들이 도열해 있는데 우리 집은 안쪽 골목이라 조용하고, 바다와 접근성도 좋았다. 주방에 냄비들이 좀 낡긴해도 있을 거 다 있고, (심지어 커피포트도!) 좀만 틈을 보이면 개미떼가 우르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숙소에 무려 에콰도르 외로운행성 가이드북이 있었다. 이후 루트를 짜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해안 구경

도착하자마자 해안으로 산택을 나갔다. 수산시장을 보기 위해서다. 집 반대편 해안 끝에 가서야 배들이 모여있었다. 오후엔 별개 없어서 다음날 아침 다시 갔다. 배들들이 해안으로 와서 직접 생선을 내렸다. 큰 뿔이 달린 참새치, 참치가 종종 보였다. 큰 놈들은 대부분 트럭으로 직행, 멀리 떠나갔다. 모래밭 시장에서 파는 건 여러 생선류와 새우, 오징어, 문어 이런 것들이다. 참치는 없어서 도라도란 큰 생선을 사와서 생선찜을 해먹었다.

몇 번을 가도 참치는 없었다. 어느날은 조개에 새우 몇 개를 얹어서 사왔다. 조개는 해감이 안되서 몇 개만 건졌고, 새우를 위주로 짬뽕을 했다. 맛이 어마어마했다. 알고보니 푸에르토 로페즈는 원래 새우가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를 알고 새우 대량 구매에 나섰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새우 파는 곳이 없었다. 모래를 차며 돌아왔다.


해안에는 관광객을 위한 이런저런 가게도 많다. 눈에 띄게 갈색 봉지에 원두를 파는 곳이 있었다. 이 지역에서 재배한 커피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서 온 거라 정말 신선했다. (마트에서 팔던 것들과는 비교 불가) 진한 땅맛이 우러나왔고, 바다와 가까와서 그런지 뒷맛은 가벼웠다. 아침 점심으로 두 잔씩 마셨다. 케잌집은 콩알만한 걸 3달러에 팔았다. 나중에 시내 빵집에 가보니 1달러면 산더미 같이 단빵을 줬다. 우유니 투어 중 여편님 수영복 상의를 두고왔다. 수영복을 파는 가게는 많았는데 확실히 에콰도르는 공산품이 비쌌다. 그러다 결국 한 가게에서 상의만 모아서 저렴하게 파는 걸 발견, 원래 하의와 잘 어울리는 걸 득템했다.


시내 구경

해안에서 안쪽으로 가면 시장통과 시내 번화가가 나온다. 마트도 있고, 중앙 시장도 있다. 길에선 유카빵, 옥수수빵을 파는 리어카도 만날 수 있다. (식사로 쓸만한 빵은 대부분 이렇게 판다.) 시장 분위기는 페루, 볼리비아와 비슷하다. 식당 코너는 한산한 편이다. 점심 메뉴로 랍스타 머리국밥, 새우국밥 같은 걸 먹었다. 시장엔 야채가 많다. 마트에 비해 야채들이 싱싱하다. 고기나 생선 코너도 있는데 냉장 시설이 열약해서 그날그날 잡은 고기를 판다. 그럼 과일은? 가운데 통로에 메론, 파파야, 수박, 딸기 정도만 판다. 그럼 바나나는? 간식용 바나나는 과일이랑 같이 파는데 시장 뒤 주차장을 초록 바나나 더미가 다 차지하고 있다.

마트는 주로 맥주나 곡류, 시장이 파했거나 멀게 느껴질 때 고기나 야채를 사러 갔다. 첫날 냉동 새우를 먹었는데 나중에 먹은 생새우와 너무 큰 차이가 났다. 맥주는 주로 PILSEN이라는 대표 맥주를 먹었다. 캔도 노란색인데 맛도 약간 바나나맛이 난다. 옷이나 공산품류는 주변국보다 훨씬 비싸다. 페루나 콜롬비아와 1인당 소득 수준은 비슷한데 나라 규모가 작아서 그런 것 같다.


짬뽕과 라면

여기서 여편님의 요리 열정이 불에 탔다. 그녀는 무려 김치를 담갔다. 예전에 장기 여행자가 나오는 프로를 보며 여행 중에 김치를 담그면 경지에 오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볍게 배추 김치와 물김치를 담그셨다. 시장에서 큰 락앤락을 사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면을 삶아서 김치에도 말아먹었다. 물김치는 젓갈 같은게 필요 없으니 한국에서 먹는 거랑 차이가 없었다. 김치를 담그는데는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산 고춧가루가 큰 몫을 했다. 어정쩡한 한인마트 고추가루보다 월등했다. 하지만 이후 에콰도르, 콜롬비아에선 시장에서 갈아서 파는 고춧가루는 구할 수 없었다.

수크레에서 쉐프님께 배운 짬뽕도 실습했다. 좋은 해산물까지 겻들이니 제법 맛이났다. 불맛은 제대로 못살렸지만 앞으로 인생에 소중한 자산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수확은 라면 스프다. 리마에서 헤어지기 전 보노보노가 소중한 라면스프를 나누어줬다. 거대 ㄴㅅ 기업과 달리 뚝심의 기업은 라면스프만 업소용으로 따로 판다. 여행자에겐 라면보다 라면스프가 훨씬 경제적이다. 스파게티 면으로 끓인 라면은 더 담백하니 맛있었다. 라면스프가 생긴 이후 여편님의 고질적인 향수병은 사라졌다. 종종 라면 외의 다른 국을 끓이는 데도 사용한다.

사실 밖에 나가도 바, 피잣집, 기사식당 정도라 저녁은 매일 부지런히 해먹어야 했다. 생선조림, 수육, 각종 볶음 요리들이 김치와 함께 빛을 발했다. 섬에 가는 날을 빼면 바닷가 산책이나 하고, 장 보고, 테라스에서 비를 보는 잔잔한 날들이었다. (지금도 비가 온다.)


은섬(ISLA DE LA PLATA) 관광_0620

해안가에도 투어 업체가 많았지만 관리인 지오반니를 통해 예약했다. 막상 아침에 픽업 온 걸 보니 우리가 길에서 알아본 업체였다. 픽업은 달랑 사무실까지만 해주고 선착장까지는 가이드를 따라 걸어간다. 이미 배엔 사람들이 많이 타있다. 콜롬비아에서 온 가족을 빼면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 같다. 스탭이 대략 3,4명이다. 뒤가 뚫린 보트다. 출발한다. 무서운 속도로 물을 스치듯 달려간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튕겨진다. (보통 투어배는 이렇게 빨리 안 다닌다. 참치 어업이 커지면서 이런 속도가 보편화된 게 아닐까 싶다. 참치 같이 고급 수출어종은 잡아서 빨리 가져오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곧 고래가 나타난다. 고래 보러 가는 투어도 따로 있을 정도로 흰수염 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시기다. 넉넉히 한 시간 정도 고래의 유영을 감상한다. 한 마리도 보고, 여럿이 움직이는 것도 본다. 고래가 툭하면 뒤집힐 보튼데도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스리랑카-우수아이야-에콰도르로 이어질 수록 고래 보는 고생과 가격은 줄고 만족도는 높아진다.) 1시간 가까이 고래를 봤다. 다들 됐다 싶으니 다시 은섬으로 달려간다.


은섬에 도착하니 보트 옆에 둥둥 거북이가 떠다닌다. 펠리컨도 많이 보인다. 섬에 정박한다. 섬은 선착장에 간단한 휴게실과 화장실을 빼면 다른 시설이 없다. 두 팀으로 나눠서 섬을 돌아본다. 섬 안에 꽃들이 만발했다. 색깔들이 하나하나 다 예쁘다. 가이드가 모기 쫓는 풀도 설명해준다. PALO SANTO라는 풀인데 이걸로 만든 향초, 비누 등등을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판다. 그리고 드디어 두둥, 파란발 부리새가 길을 막고 있다. 이미 관광화된 건지 사람이 와도 꿈적도 안한다. 정말 신기한 존재다. 열대 어류를 많이 먹어서 발 색깔이 파랗다고 한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파란발 부리새를 더 본다. 저기 부부도 있다. 언덕 위에서 다른 열대 조류들을 본다. 프라가타는 번식기에 수컷의 가슴이 빨갛게 변한다고 한다. 지금은 번식기가 아니라 평범해 보인다. 해안 절벽까지 돌아보고 내려간다.

밥은 언제주나 하는데 다시 보트로 돌아간다. 바로 스노쿨링을 하러 간단다. 배고픈데? 바나나를 준다. 샌드위치도 주고, 수박과 파인애플도 준다. 신나서 실컷 먹었다. 스노쿨링 장비를 나눠준다. 해안까진 좀 멀어보이는데 여기서 뛰어내리란다. (스노쿨링은 원래 발 짚고 하는 거 아닌가?) 주저하는 여편님을 뒤로 하고 앞의 사람들을 따라 뛰어든다. 여편님은 결국 구명조끼를 입고 입수한다. 오랜만에 스노쿨링용 장비를 꼈더니 호흡이 힘들다. 바다 안은 날씨가 흐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헤엄치기가 힘들다. 배는 저 멀리 보인다. 힘들다. 여편님이 입수하는 게 보인다. 도와주는 스탭에게 손짓을 했다. 상황을 알아챘다. 튜브를 던지고, 그가 온다. 튜브를 준다. 겨우 헤엄쳐서 여편님이 있는 쪽으로 갔다. 보트로 올라왔다. 죽을 뻔했다. 여편님도 바로 배로 올라온다. 절벽 가까이 스노쿨링 갔던 사람들도 별 소득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온다. 비가 와서 그런지 물도 차갑다.


사람들이 다 돌아오고 보트가 돌아간다. 속이 울렁거린다. 스탭이 젤 뒤쪽 바람 통하는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한다. 내 표정을 보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 도망간다. 한참 달리는 바람을 쐬니 속이 진정된다. 다시 앞자리로 가려고 일어섰다. 순간 파도가 일어 하늘로 솟아서 앞자리로 떨어졌다. 곧 육지에 도착했다.


투어의 상처를 가라앉히고, 하루를 쉬고 난 뒤 푸에르토 로페즈를 떠났다. 떠나는 길에 터미널에서 한국인 여행자 한 분을 만났다. 나이가 좀 있어보이시는데도 자전거로 남미를 여행하고 계신단다. 이제 푸에르토 로페즈로 오는 길이라고 하셔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만타(MANTA)_0622_0623

갈라파고스로 간 총각은 먹을 게 참치 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참치 한 덩이 5달러, 양파 11달러) 우리도 참치를 한 번 먹겠다는 일념으로 리마에서 와사비까지 들고왔다.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참치를 못 구하니 참치의 본 고장 만타로 향했다.

버스는 만타로 가는 직행이어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나름 에콰도르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 터미널은 복잡했다. 얼른 택시를 타고 블로그에서 본 숙소로 향했다.


숙박_CASA VERDE_더블룸_1

블로그에서 나름 저렴하고 부엌 사용이 가능한 숙소를 봤다. (참치를 썰어야 하니까) 찾아가서 벨을 누르니 방이 없다고 한다. 근처 호텔을 알려주며 저기서 하룻밤 자고 오라고 한다. 맵양을 통해 주변 숙소를 뒤적거린다. 저렴해 보이는 숙소는 한창 공사 중이다. 나름 부촌인 주택가라 숙소 가격대가 좀 높다. 겨우 깔끔하고 덜 비싼 숙소를 찾았다. 아침 포함 40달러, 하루만 자고 떠나기로 했다. 조식도 방으로 가져다주는 구조였다. 맛있었다.

왠지 참치 무역하러 온 일본 상사 과장과 대리가 묶을 것 같은 좋은 숙소였다. (침대도 트윈이다.) 직원이 친절하게 민도 가는 버스를 알려준다. 터미널의 버스들은 대부분 계속 정차하는 완행 버스니 별도의 터미널이 있는 회사 버스를 추천했다. 해변에 터미널이 있으니 겸사겸사 찾아가기로 했다.


참치 찾아_0621

택시를 타고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만타의 참치를 상징하는 참치동상을 지났다. 참치 먹을 거라고 하니 아저씨가 직접 해변 식당 하나를 추천해서 내려준다. 메뉴판에 참치는 없다. 식당가 옆 시장으로 갔다. 오후라 시장은 이미 폐장. 허탈감에 해변을 거닐었다. 참치를 먹기 위해 여기서 하루를 더 머물 것인가. 고뇌 끝에 참치는 단념하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먹는 참치는 하위20% (만타의 참치 80%는 일본, 미국 등지로 바로 수출된다고 한다.) 아까 내렸던 해변 식당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생선튀김과 볶음밥, 쉐비체 모두 싱싱하고 푸짐했다.

터미널에 가서 표를 예매하고 다시 해안도로로 나왔다. PACIFICOF라는 커다란 쇼핑몰이 있었다. 주머니엔 단돈 10달러가 있었지만 쇼핑몰을 구경했다. 참치가 만든 풍요를 빨아들이려는 기운이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와 편히 잤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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