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행선지는 에콰도르 수도 키토, 민도에서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도착했다. 가는 길에 적도 박물관이 있어서 내려서 보고갈까 하다가 말았다. (이때 갔어야 했다.) 키토엔 터미널이 여러개다. 이 터미널에서 숙소까진 그냥 택시를 타고 가야했다.


키토(QUITO)_0628_0703

에콰도르의 수도다. 적도국의 수도답게 적도에 거의 근접해있다. 도심에서 한 시간만 버스를 타고 가면 적도 기념관에도 다녀올 수 있다. 에콰도르는 미국, 독일인들이 선호하는 은퇴이민 나라 중 하나기도 한데 이런 사람들이 사는 부촌과 신시가지도 키토에 있다. 오래된 주거지역, 관광지 구도심, 신시가지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되는 도시다. 나름 고도 2,800미터에 이르는 고산도시다.


숙박_Bellavista_더블룸_5

수도에 가면 어찌저찌 5일 정도는 금방이다. 별계획 없어도 넉넉하게 공기방울로 숙소를 찾았다. 무슨 일인지 방값이 1명과 2명이 동일했다. 위치도 나름 부촌에 속하는 곳이고, 집은 언덕을 올라가니 새아파트였다. 관리인이 맡아놓은 열쇠를 받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나갔다오니 왔다. 시내 전망 좋은 언덕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아파트다. 남매가 방 하나씩 쓰고 남은 큰 방을 부모님이 왔을 때 쓰거나 공기방울로 놓는 모양이다. (우리방에 가족 사진이 있다.) 여동생은 건축을 공부한다고 하고, 오빠는 영어 학원에서 일한다고 했다. (집에 과야사민 어학원 포스터가 붙어있다.)

둘 다 바쁜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넓은 집은 우리가 전세냈다. (집사가 된 느낌이다.) 방에도 테라스가 있지만 거실 전망이 기가 막혔다. 키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데 야경은 여느 유명 대도시 부럽지 않았다. 부엌에 온갖 조미료는 다 있었지만 주인들은 뭘 안 해먹는 모양이다. 아침 저녁을 부지런히 만들어 먹었다.


공원_PARQUE LA CAROLINA

집 주변은 주택가라 한산하지만 좀만 나가면 큰 공원이 나온다. 키토에서 제일 큰 공원인 것 같다. 공원 바깥쪽엔 스케이트 보드부터 놀이터, 축구장에 육상 트랙도 깔려있다. 그리고 가운데엔 무려 하트 모양의 연못이 있고 거기서 오리배도 탈 수 있다. (너무 빡센 액티비티로 보여서 컨디션상 걸렀다.) 공원 가운데엔 식물원(Jardin Botanico)도 있다. 먹거리도 많은데 주말엔 더 많아졌다. 여편님은 옥수수, 난 핫도그를 먹었다. 핫도그는 소세지가 부실했지만 다른 양념을 마음대로 넣을 수 있었다. 돼지고기와 갖은 반찬을 겻들인 요리도 팔았는데 줄이 어마어마해서 먹지 못했다.


쇼핑몰_MAXI & MARATHON

공원 주위를 대형 쇼핑몰이 둘러싸고 있다. 먼저 건너편 쇼핑센터에 있는 한인마트를 찾아갔다. 물건 대부분은 페루 리마 한인마트에서 본 것과 같았다. 된장과 함께 회심의 두부를 샀는데 저녁에 보니 상한 것이었다. 그나마 된장으로 된장제육볶음, 된장파스타 등등을 해먹었다. 쇼핑몰은 모두 크고 좋다. 슈퍼는 한인마트 사장님 추천으로 MAXI를 애용했다. 스포츠 매장에서 에콰도르 국가대표 비슷한 옷을 좋은 재질, 좋은 가격에 팔아서 샀다. 노란색이다. 이 나라는 노란색을 참 좋아한다. 국기도 노란색, 많이 마시는 맥주도 노란색, 국가대표도 노란색, 자주 먹는 과일도 노란색, 은행도 노란색 등등 어딜가도 노란색 천지다.


카페_JUAN VALDEZ

쇼핑몰과 중심가 곳곳에 후안 발데즈가 있었다. 남방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콜롬비아의 커피 체인이다. 막시에서 장을 보면 카푸치노 1+1 쿠폰을 줬다. 매일 직접 내린 드립커피만 마시다가 강한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하루는 잠을 설쳤다. 키토에선 2,3번 가놓고 콜롬비아 가선 딱 한 번 갔다.


과야사민 미술관_Museo Guayasamín_0629

간만에 문화생활이다. 남방의 피카소라 불리는 과야사민 미술관을 갔다. 집에서 언덕 길만 좀 올라가면 됐다. 뭔가 익숙했다. 지난 여행 때 와봤던 곳이다. 이런 석조 건물의 미술관은 콜롬비아에서 갔던 걸로 기억했다. 늘 기억은 뒤섞이고 왜곡된다. 스페인어? 영어? 스페인어!라고 대답했더니 먼저 집으로 가란다.

과야사민이 살던 집과 박물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가보니 막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됐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과야사민의 소장품과 곳곳에 그림들이 다 좋아보인다. 키토를 붉게, 파랗게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그의 영상도 보여준다. 혈기가 넘친다. 집을 다 돌아보고 나온다. 풀장도 있고, 집도 좋다. 과야사민 잘 살았네. 숙소 애들도 잘 사는 것 같다. 학원은 엄마가 하는 것 같은데 과야사민 어학원이다. 방에도 걸린 그림도 과야사민 그림이다. 숙박 전에 채팅할 때 동생 이름에 과야사민이 들어갔던 것 같다. 나의 의심은 틀리지 않았다. 집에 가서 과야사민 미술관 다녀왔다고 하니 과야사민이 할아버지란다. 가족 사진을 다시 보니 엄마가 과야사민 딸인 것 같다.

잠시 휴식 후 박물관을 갔다. 언덕을 오르느라 이미 체력을 많이 소진했다. 박물관의 그림들은 대부분 특유의 다양한 정체성이 혼합된 얼굴 그림이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본 다양한 소재의 그림들이 더 재밌었다. 기념품으로 키토를 그린 엽서 하나를 샀다.


식물원_Jardin Botanico_0701

에콰도르는 생명다양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면적 대비 종다양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적도의 매력이다.) 좁은 나라지만 해안, 산간, 아마존 열대 우림 등 다양한 기후가 분포한다. 식물원도 재밌을 것 같았다. 꽤나 규모가 컸다. 산책하면서 다양한 식물들을 돌아 볼 수 있다. 구석구석에 하우스와 실험실 등이 있다. 각종 작물이나 난 등을 모아 놓은 곳도 있다. 열대 우림 식물관은 후덥지근하다. 체계적으로 기후와 생태계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렇게 상세한 식물원은 남미 대륙에선 처음이다.) 눈에 띄는 건 고사리 나무다. 그 옛날 공룡들이 한 손에 들고 먹었을 크기다.


적도 박물관과 올드타운은 포기하기로 했다. 여편님의 목감기가 완쾌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쉬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워크어웨이(WORKAWAY)

오랜만에 등장한다. 나의 소원 중 하나는 콜롬비아나 과테말라 커피 농장에서 일 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각을 짜도 수확시기와 여행시기가 엇갈렸다. 그런 절망 속에 에콰도르 커피 수확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적도 부근은 일년 내내 날씨가 비슷해서 어느 때 수확해도 별 상관은 없다고 한다.)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카카오 농장 몇 개와 커피 농장 한 군데에 연락을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커피 농장에서만 답이 왔다. 지금은 머무는 애들이 있어 7월 초에 오라고 했다. 민도와 키토에서 숨을 고르고 커피 농장을 찾아갔다.


인타그(INTAG)_0703_0707

키토에서 콜롬비아 국경쪽으로 3시간을 가면 오타발로란 소도시가 있다. 거기서 INTAG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우리가 머물 곳은 인타그 계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 APUELA. 사연이 좀 있는 마을이다. 이곳 천연 자원을 정부가 다국적 기업에 개발권을 팔았고, 이를 막기 위해 반대 투쟁을 하고 있단다. 다른 에콰도르의 계곡들과 마찬가지로 해발 1,500미터 정도에 위치해서 사탕수수, 커피, 파파야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여기도 나름 짚라인, 폭포, 온천 등 즐길거리도 있다.


숙박_그레이스 별채_도미토리_5

메일에 설명한 대로 APUELA 마을을 지나서 다리 두 개를 건너니 정거장이 보인다. 세워 달라고 한다. 한 할머니가 개 2마리를 데리고 마중을 나왔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숲이 우거지고 안에 넓은 집이 있다. 호스트 이름은 그레이스다. 케나다에서 태어났고, 에콰도르에서 무슨 NGO를 하다가 이 마을에 놀러왔다가 집 나온 걸 보고 샀단다. 집 벽은 전에 머물렀던 애들이 그려놓았다고 한다. 커피를 준다. 처음 사서 한 번도 안 씻은 것 같은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려준다. 본격적으로 집을 안내해준다.

집 주위론 곳곳이 커피 밭이다. 구석구석 파파야, 아보카도, 바나나 등도 있다. 안쪽으로 별채가 하나 있다. 먼저 창고에서 맞는 장화를 찾는다. 하나씩 준다. 다음 옆방의 더그를 소개해준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사람인데 이 방에 세를 내고 산다. 은퇴한 군인으로 여기서 사진 찍으며 살고 있다. (꾸준히 페북으로 신기한 생물 사진을 올린다.) 오후면 그레이스 집으로 와서 케잌을 함께 먹는다. 붙잡히면 끝없는 얘기를 들어야한다. 반대편 방이 우리 방이다.


이층 침대를 우리에게 배정한다. 옆에 침대 하나엔 다른 봉사자가 있단다. 우리 말고 또? 저녁에 정체가 밝혀졌다. 우리와 달리 그냥 근처에 사는 에콰도르 사람이다. 이름은 느네다. 다 큰 애가 셋인 아저씬데 집까지 거리가 있어 3,4일은 여기서 잔다. 집에선 또 전자제품 판매를 하는 투잡맨이다.

그게 단 줄 알았는데 자기 직전, 한 명이 더 온다. 파비앙이라고 한다. 키토에 볼 일이 있어 늦었단다. 원래는 그레이스의 농장 일을 하는데 요즘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한다. 사탕수수 밭 일은 다른 농장 일보다 훨씬 힘들고, 밥도 대충 준단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한다. 일주일 내내 일하면 90달러 정도를 받는다. 이혼 소송 중이라 양육비를 보내야 하는 처지다. 그레이스 집에 파비앙의 부인과 아이들도 찾아왔었다. 마을 사람들의 이런저런 일도 도와주는 모양이다. 근처에 와이파이가 되는 집도 여기뿐이라 밤 중에 집 근처엔 와이파이 잡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레이스 집과 달리 이 방은 허름하다. 좁은 방에 주방도 화장실도 있어서 환기가 잘 안된다. 침대 이층이 부실해 보이기도하고, 모기장도 하나 뿐이라 일층에서 둘이 잤다. 쾌적한 잠자리는 아니었다. 옆에 빡세게 일하고 잠만 자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하루하루가 빡센 날들이라 잠은 실컸잤다.


1일차_개와 돼지의 시간_0703

방을 보여주고 나서 대충 옷을 갈아입고 돼지 축사로 갔다. 축사 앞엔 엄청 무서운 개가 하나 묶여있다. 개가 총 3마리다. 이 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불친절해서 묶어 둔단다. 동물이 많은 집이다. 그레이스 집엔 고양이도 2마리가 있다.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는 모두 잘 지낸다. 개 한 마리는 새끼도 만들어서 이웃들에게 분양했다.

돼지 축사가 열리자 앞에 돼지들이 일어선다. 유일한 숫놈 로베르토씨다. 돼지는 사람과 유전자가 비슷하다더니 진짜 아재의 얼굴과 표정이다.

시범 삼아 그레이스가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한다. 8개의 방에 암돼지 6마리와 새끼 돼지, 청년 돼지들이 있다. 새끼 돼지들이 앞길을 막으면 발로 치운다. 로베르토씨는 다른 돼지들 먹이를 다 주고 돌아서면 자기도 안 먹었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내민다. 돼지는 똑똑해서 드나들 때 문을 잘 잠궈야 한다. 웬만큼 쉬운 잠금 장치는 열어서 뛰쳐 나간다고 한다. 할망은 쉽사리 축사 사이를 뛰어 넘으며 변을 치우고 물을 뿌린다. 우리도 어정쩡하게 돕는다.


커피 일과 함께 돼지 축사일도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커피를 따볼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었고, 그간 내가 먹은 돼지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일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건 남미의 시골 마을에서 봤던 작은 돼지들이다. 작은 돼지는 닭과 마찬가지로 풀어서 키워도 집도 잘 찾아오고 주변에 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고기에 대한 욕심이 돼지를 이렇게 키운 것이다. 할망은 이 돼지를 마을에 보급하고 있다. 원래 작은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도 점점 큰 돼지를 갖게 될 것이다.


저녁은 브로콜리 볶음이다. 오랜만에 야채가 듬뿍 들어간 요리를 먹으니 속이 편하다. 브로콜리는 인후염에도 좋다고 해서 키토에서도 실컷 먹었다. 근처에 가게가 있는 건 아니라서 대부분의 식재료는 텃밭에서 가져오거나 일주일에 한 두번 찾아오는 야채 장수에게 산다고 한다.


2일차_나비 장인_0704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 파비앙은 밥도 안 먹고 나갔다. 6시 반에 느네와 할망까지 넷이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서양식, 시리얼과 과일, 요거트 등이다. 커피도 내려준다. (집에서 직적 따서 볶고 아침마다 가는 걸 기대했는데 그런 거 없다. 그냥 공장에서 갈아 오는 것 같다.) 7시 돼지 똥을 치우러 간다. 전날 저녁에도 그렇게 치웠는데 밤새도록 잘도 쌌다. 새끼 돼지들이 밖으로 나온다. 새끼 우리를 청소하는 동안 복도로 내보낸다. 이놈들이 돌아다니는 사이 다른 우리를 드나들자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할망은 우리를 보챈다. 빨리 빨리 먹이주고 문닫으란다. 돼지는 사료도 주고, 후식으로 바나나도 먹는다. 작은 놈들은 그냥 썰어서 준다. 둘다 넋이 나간채로 우리를 빠져나왔다.

드디어 커피!가 있는 곳으로 간다. 전날 물에 불려 놓은 커피콩을 씻는다. (돼지 똥 치우고 손도 안 씻고 커피를 씻는다. 어차피 씻는 것 보다 커피 씻는 게 손에 벤 냄새가 더 잘빠진다. 우리가 아로마니 산미니 하는 커피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상태가 안 좋은 커피콩을 골라내면서 큰 대야에 물을 채웠다 뺐다 하면서 씻는다. 부지런히 문질러줘야 한다. 이렇게 씻은 걸 돼지 우리 옆 건조대로 가져간다. 평평하게 말린다. 또 안 좋은 콩을 골라낸다.


어깨 끈이 달린 플라스틱 통 2개씩을 준다. 커피 열매를 따러 간다. 하나는 빨갛게 잘 익은 거, 다른 통엔 상하거나 검게 변한 열매를 넣으란다. 이런 안 좋은 원두들은 네스카페 같은 곳에서 수거해 간다고 한다. 커피 열매를 따는 재미도 잠시, 10, 할망이 나는 느네를 도우러 가라고 한다. 느네는 집 아래 계곡 근처에 나비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파비앙은 느네를 나비 인간(Hombre de Mariposa)라고 불렀다.) 느네가 할망에게 먼저 나비 정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할망은 처음에 몇 주면 되냐고 물었단다. 수시로 와서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 느네는 혼자서 제법 그럴듯한 나비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가운데 연못에서 물도 나온다.

느네는 별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자기가 알아서 한다. 처음에 선을 그려 주고 삽질을 시켰다. 설렁설렁하다보니 점심 시간이다. 점심은 감자다. 1, 사건이 터졌다. 우리에서 돼지들이 방을 탈출한 것이다. 복도 구석에 있는 말린 짚더미를 다 엎어서 적셔놓았다. 할망은 범인으로 나를 지목했다. (나중에 할망도 종종 문 잠그는 걸 까먹는 걸로 보아 내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 다음부턴 문 열지말고 벽을 넘어 다니란다. 그러면서 짚더미를 다 쓸어모아서 밖에다가 말리라고 했다. 주기적으로 뒤짚어서 잘 말리라고 했다. 축사 밖엔 무서운 개가 지키고 있어서 그 앞에서 뒤집는 것도 살 떨리는 일이었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나비 정원 일을 시작한다. 계곡에서 돌을 주워다 옮기는 일이다. 3시가 되어 작업을 종료한다. 커피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3~4시 정도까지 일을 하고 각자 다른 일을 하러 간다. 학업을 계속 하기 위해 오후반 학교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일은 끝나지 않았다. 할망과 함께 오늘 수확한 커피를 세척한다. 먼저 커피 체리를 다 모아서 대야에 넣고 물로 씻는다. 나쁜 열매들은 알아서 위로 뜨거나 손으로 골라낸다. (네스카페 통에 넣는다.) 한 번 씻은 열매를 탈곡기에 넣는다. 과육이 후두둑 벗겨진다. 과육은 모아서 돼지도 주고 퇴비로도 쓴단다. (녹차 돼지처럼 커피 돼지도 상상했는데 이건 맞았다.) 껍질 벗긴 커피를 물에 씻는다. 안 좋은 것들은 여기서도 걸러낸다. 초반에 뜨는 것들은 아예 버린다. 상태가 안 좋은 놈들이다. 열심히 부벼서 몇 번 물로 씻는다. 그리고 물에 적당히 담가 두고, 다음날 아침 2차 세척을 하는 것이다.


4, 휴식 시간이다. 할망이 손수 만든 바나나 케잌과 커피를 먹는다. 할망이 케잌 하나는 진짜 잘 만든다. 잠시 쉰다. 손님들도 다녀간다. 씻을까 하다가 참는다. 어차피 6시에 또 똥을 치우고 저녁을 줘야한다. 두 번째라 한결 수월하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만든다.


저녁은 우리가 준비해서 먹는다고 했다. 정신없는 날을 보내서 간단히 파스타에 라면 스프를 넣어 볶아 먹기로 한다. 야채와 계란을 추가해서 만들었다. 할망과 느네에게도 권하니 먹는다. 인터넷이나 좀 둘러보다가 (느리다.) 일찍 잠에 든다.


3일차_커피 따기_0705

아침 먹고, 돼지 밥 주고, 커피 씻는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커피 따기에 전념하고 여편님이 느네를 돕기로 한다. 이 커피밭도 수확이 막바지라고 한다. 한알 한알 정성들여 체리를 딴다. 중간 중간 맛을 본다. 커피 열매는 맛있다. 다만 안에 원두가 너무 커서 쪽 빨면 끝이다. (이것도 종자 개량의 결과인가) 아드득 씹어 보기도 한다. 커피 맛도 나고 카페인도 오는 것 같다. 커피 나무의 햇살과의 각도 별로 열매 달린 양이 다르고, 익은 정도도 크게 차이난다. 할망이 지나가다가 내가 딴 커피의 분류 상태를 보고 칭찬 한 번 해주고 간다. 후에 나의 작업을 본 더그는 커피를 한알씩 소중하게 느리게 딴다고 평했다.

점심은 닭고기가 나왔다. 여편님도 느네와의 작업은 순조롭다고 한다. 오후에 두 시간 또 커피를 딴고, 오후 세척 작업을 돕는다. 두 어번 하고 나니 대충 익숙해졌다. 안 좋은 원두를 골라내는 건 아주 재밌는 일이다. 오후 작업까지 끝내고 커피와 케잌을 먹는다. 어제 만든 케잌이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 집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정자 같은 게 하나 있다. 정자엔 침대와 쇼파 등이 있다. 여기도 돈 주고 머물 수 있는 모양이다. 경치가 좋다. 돼지 밥 주고 청소하고 샤워를 했다. 할망이 뜨거운 물 트는 법을 알려줬다.


나른한 몸으로 휴식을 취했다. 빈둥거리다 저녁 준비를 슬렁슬렁 시작했다. 그런데 할망이 저녁을 왜 이제야 준비하느냐고 난리다.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서 느네, 파비앙에게 준다. 느네, 파비앙은 아침 일찍부터 일해야 하니 저녁을 빨리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두둥, 우리 먹을 저녁만 해서 먹는 게 아니라 다섯 명 저녁을 다 준비해야 한다고? 할망은 자기가 아침, 점심 우리가 저녁 담당이라고 한다. 아니 그럼 새벽 6시부터 저녁 마무리까지 우리가 노예로 왔나. 간단히 계란(또 계란)과 야채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자러 갔다. 사실 여편님은 어제부터 할망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나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 자면서 분노의 이불킥을 연달아했다.


4일차_노예 4_0706

할망은 농장 일에 따라 쉬는 날을 유기적으로 조절한다고 했다. 그래서 화수목 일했고, 대강 커피 따는 것도 끝났으니 금요일에 오타발로에 가서 주말까지 놀다오라고 했었다. 여편님과 상의 끝에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 떠나기로 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얘기를 하니 할망은 쿨하게 그러라고 했다.

아침 먹고, 돼지 밥 주고, 커피 씻는 일을 마쳤다. 오늘은 커피 안 따니 둘 다 느네와 함께 나비 정원 만들기를 하란다. 그 이틀 사이에도 나비 정원은 많이 진전됐다. 느네가 주변에서 잡아온 나비도 몇 마리있다. 오늘은 정원 주변 화단에 꽃을 더 심고, 화단을 두를 울타리를 만든다. 한 명이 도와도 할 일이 없는데 보조가 둘이라 더 한가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본격적인 울타리 만들기에 돌입했다. 우리가 판자를 잡고 느네가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그러다 나보고 한 번 해보라고 한다. 긴장했지만 쑥 들이미니 구멍이 뚫렸다. 딱히 재밌진 않아서 여편님에게 권했다. 여편님은 신나게 구멍을 뚫었다. 남은 구멍을 모두 그녀가 뚫었다. 늘 느끼지만 이공계로 갔으면 큰 인재가 되었을 것이다.

한가한 할망이 작업 순시를 하고 간식을 먹으러 오란다. 오늘은 새로 만든 레몬 케잌이다. 느네는 오늘 집으로 간다. 작별 인사를 했다. 옆집 이웃이 놀러왔다. 애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이 집 개 새끼다. 생이별한 새끼와 어미가 붙어서 떠날 줄을 모른다. 강제로 떼놓는다. 종일 풀이 죽었다. 커피를 공장으로 보내러 차가 왔다. 차를 갖고 온 사람은 치즈집 아저씨다. 간식으로 치즈를 권했으나 먹지 않았다. 커피 자루 싣는 것을 도왔다. 엄청 무겁다. 할망에게 물으니 내일 우리끼리도 커피 공장을 가볼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힘차게 똥을 치우고 장화를 집어 던졌다.


오늘 저녁은 느네도 파비앙도 없어서 또 우리 먹을 것만 만들었다. 또 계란 볶음밥이다. 먹고 잠을 잔다. 신기한 것은 거의 두달 가까이 지속되던 여편님의 목 질환이 5일 간의 노예 생활로 깔끔하게 나았다는 것이다.


5일차_탈출_0707

다음날도 어김없이 6시에 일어났다. 여편님의 예감대로 할망은 아침을 차려주지 않았다. 옆에 놓인 바나나를 먹었다. 짐싸고 할망과 인사를 나눴다. 더그는 우리를 배웅해 주겠다고 한다. 버스 시간이 바뀌었으니 얼른 나가잔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정류장 옆집엔 혼자 두면 안되는 아픈 청년이 있다고 한다. 커피 따러 오는 사람 중 한 명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점심도 따로 먹고 수시로 집에 다녀온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버스가 왔다. APUELA 마을에서 바로 내렸다. 더그가 알려준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정갈한 조식과 여유있고 진한 커피의 맛이다. INTAG 커피를 파는 조합 직영 카페였다. 물어보니 커피 공장은 바로 옆이라고 한다. 가방을 맡겨두고 공장을 찾아갔다. AARIC, 새가 그려진 인타그 커피 로고가 보인다. 공장을 들어갔더니 직원이 오늘은 공장 투어가 없다고 한다. 금요일엔 로스팅을 안하기 때문이다. 할망은 끝까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오타발로로 가는 버스를 탔다. 계곡을 돌고 돌아 내려가는 경치가 좋다.


참고_INTAG 관련 홈페이지

http://www.decoin.org/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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