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한국에서 살면서 접하는 이미지는 내전과 마약이다. 내가 콜롬비아라는 나라를 처음 인지한 것도 1994년 미국 월드컵, 자살골 넣은 축구 선수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뒤로 마르케스의 소설, 샤키라의 노래를 들으며 친해졌다. 그리고 남미 대륙에서 만난 장기 여행자들은 하나 같이 콜롬비아가 최고라고 했다. (우린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다보니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여행자들을 종종 만났다.) 넉넉한 마음으로 콜롬비아를 만나보기로 했다.


일정과 이동_20170711_20170815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 국경 도시인 이피알레스로 들어왔다. 여기서 하루를 자고, 콜롬비아 남부 맛의 도시라는 뽀빠얀으로 갔다. 며칠 구경하다가 중부의 휴양마을 살렌토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메데진에서 3주를 지냈다. 수도인 보고타에서 짧은 일주일이 지나갔고, 정든 남미 대륙을 떠났다.


도시 간 이동에는 버스를 이용했다. 에콰도르 국경에서 만나 함께 택시를 공유한 친구가 콜롬비아 넘어와서 밤 버스를 걱정했다. 옆에 콜롬비아 친구가 여긴 에콰도르와 달리 중간에 안 내리는 버스가 많아서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우린 아직 트라우마가 있어서 7시간 걸리던 10시간 걸리던 주간 버스만 탔다. 대도시간 이동에는 버스를 탔지만 뽀빠얀-아르메니아-살렌토, 살렌토-메데진 노선은 버스는 없고 미니밴이 있었다. 합승택시 개념이라 가격은 좀 비싸지만 오르락 내리락이 많은 도로에선 버스보다 훨씬 빨랐다. 메데진에서 보고타로 갈 때는

꽃축제 기간이 겹쳐서 미리 인터넷으로 버스를 예매(pinbus 사이트 이용)했다. (우리가 타기 전날에 터미널에 갔다가 티켓이 없어서 돌아온 여행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 버스나 미니밴 모두 쾌적하고, 와이파이도 된다. 버스 회사의 브랜드 가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좀 있었다. (터미널에서도 알아서 프로모션 가격을 제시한다.) 장거리 주간 버스를 탔으니 휴게소에서 밥도 많이 먹었다. 대부분 기사 아저씨가 배고플 때 쯤이면 휴게소에 들른다. 가격은 시내에서 먹는 것 보다 비싸지만 먹을만하다. 하지만 마지막 메데진 보고타 구간의 볼리바리아노(Bolivariano) 버스는 가장 더운 지점에서 엄청 맛없는 식당을 갔다. 회사 버스들만 있는 걸로 봐서 독점 계약한 식당인 것 같다. 많은 승객들이 불만을 표했다.



국경과 이피알레스(Ipiales)_0711_0712

에콰도르 출국 도장을 받고, 다리를 넘으니 콜롬비아 국경 사무소가 있다. 에콰도르 쪽에 비하면 다소 번잡하다. 소문대로 입국 도장을 찍어주면서 어디 갈거냐 이런 걸 묻는다. 대충 대답한다. 함께 넘어온 친구가 경비원에게 야간에 뽀빠얀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지 묻는다. 버스는 계속 있는데 밤에 가면 아름다운 풍경을 못 볼 거라고 했다. 우린 안심하고 예정대로 하루 묵고 가기로 한다. 어쨋든 함께 근처 환전소에서 환전을 좀 하고, 뒤쪽의 버스 정류장에서 이피알레스로 가는 미니벤을 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이피알레스는 엄청 복잡하다. 에콰도르에서 늦장부리면서 출발해서 어느새 해질녘이다. 어지간하면 어디 안 돌아다니기로 한다. (그러다 결국 언덕 성당도 피곤해서 안 갔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음날 아침 버스 시간대를 알아놓고 미리 알아둔 숙소를 찾아갔다. (나중에 다시 보니 터미널에 ATM도 있어서 추가 환전은 필요없었다.)


숙박_Hotel San José_더블룸_1

국경은 무조건 조심조심, 어차피 하루만 잘 거라 괜찮은 블로그 후기를 맹신했다. 호텔은 터미널 주차장 건너편에 있었다. 지은지 얼마 안된 깔끔한 모텔이었다. 괜히 끝방을 골랐다가 와이파이가 잘 안되서 고생했지만 직원들도 친절하고 편히 쉬었다. 1층 식당의 갈비탕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천천히 열고 일찍 닫아서 놓쳤다. 직원한테 물어서 뒷쪽 골목으로 가니 식당이 몇 개 있었다. 돼지 어쩌구를 시켰는데 훈제 구이였다. 에콰도르의 정식 메뉴보단 훨씬 맛깔난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터미널로 갔다. 티켓을 끊고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티비 뉴스는 모두 레알 마드리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iguez) 얘기다. 여편님은 아주 맘에 들어한다.

뽀빠얀까지 가는 남부 계곡길은 진짜 예뻤다. 볼리비아에서부터 주구장창 보는 꼬불꼬불 안데스 산맥길이다. 볼리비아가 강인하고, 페루가 영험하고, 에콰도르가 안락하다면 콜롬비아의 풍경은 예쁘다. 보이는 집들이 꽃을 많이 심어놓기도 했지만 햇빛에 반사되는 산의 모습도 화사하다.


뽀빠얀(Popayan)_0712_0714

콜롬비아 맛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안데스 전통 요리와 스페인 이주 문화가 만나 독특한 요리가 많다고 했다. 심지어 유네스코가 맛의 도시로 지정했다. (Ciudad de la gastronomia, 유네스코 유산, 유네스코 경관 이런 것 치고 좋았던 경험은 별로 없다.) 중부까지 한 번에 가기엔 너무 멀어 쉬면서 가기로 했다.


숙박_Hostel Trail_더블룸_2

배낭 여행객이 많이 찾는 도시는 아니라서 그런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진 않았다. 터미널에서 내려 먼저 찍어둔 숙소로 갔다. 대충 만든 나무 판자 침대에 방도 좋은 방이 없어서 나왔다. 같은 날 아침 도착했다는 총각(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만난 그 총각)이 있는 호스텔로 갔다. 도미토리만 많은 줄 알았는데 더블룸도 있었고, 깔끔하고 쾌적했다. 주방도 있고, 공용 공간도 넓었다. 콜롬비아 호스텔답게 조식은 유료지만 커피는 늘 제공되었다. (당연히 맛있다.) 급작스러운 변수만 아니었다면 며칠 더 머물렀을 것이다.

방을 잡고 나니 목베개를 걸친 총각이 등장했다. (도마뱀인줄) 총각은 볼리비아에서 헤어진 후 2달만에 처음 만났다. 그간 페루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다시 타블렛을 하나 샀는데 갈라파고스 호스텔에서 누가 훔쳐가고, 상어가 조류에 휩쓸린 카메라를 먹어버려서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갈라파고스 숙소에서 한국인이 두고 간 장류를 득템했고, 우리가 가진 라면스프도 있어서 가볍게 한식류를 만들어 먹었다. 첫날은 소세지 구이와 샐러드, 맥주를 마셨고, (여편님과 총각은 라면을 끓여서 마무리) 다음날은 고추장찌개를 먹었다. 마트에서 구입한 Poker 맥주가 착착 감겼다.


시장 구경_0713

든든한 조식을 먹고 중대 업무를 마친 뒤 식재료를 구하러 시장으로 갔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고추가루였다. 하지만 시장엔 고추가루가 없었다. 콜롬비아를 떠날 때까지 시장에선 고추가루를 볼 수 없었다.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된 고춧가루 아니면 액상소스뿐이었다.) 시장 가운데선 음식과 주스를 팔았다. 주스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한 바가지를 줬다. (페루, 볼리비아보다 가성비가 좋다.) 건물 시장 뒤로 가니 야채, 과일 가게가 쭉 늘어섰다. 종류별로 고추와 감자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산 망고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심지어 한 망고에선 망고만 먹어서 노랗게 변한 망고 벌레가 나오기도 했다. (사후 확인 결과 망고 벌레는 살렌토에서 나왔다.)


시내 구경

뽀빠얀 시내는 여느 스페인 식민도시와 마찬가지로 건물이 하얗게 도배되어있다. 총각의 말대로 한 두 시간이면 다 돌아본다. 가운데 광장이 널찍하게 펼쳐져있고, 골목 골목엔 Menu del Dia를 파는 식당들이 많다. 전설의 요리들을 찾아보려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일 소스를 겻들인 닭구이를 점심으로 먹었다. 점심까지 먹고 쉬는데 여편님이 언덕을 올라가자고 했다. 광장 뒤에 우뚝 솟은 언덕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해질녘에 언덕을 올라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전망도 좋고, 주변 산세도 아름답다.

저녁 준비를 하는데 화장실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을 봤다. 토요일 새벽부터 도시에 물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호스텔에선 물탱크에 물을 모아놓겠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원래 하루 이틀 더 머물려고 했으나 급계획을 변경했다. 다음날 바로 살렌토로 떠나기로 했다. 뽀빠얀의 전통 요리를 즐기지 못한게 아쉽다.


살렌토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아르메니아로 가야했다. (살렌토는 작은 휴양 마을이라 대부분 직행이 없고, 주변 도시로 가서 갈아탄다.) 뽀빠얀에서 아르메니아로 가는 버스도 미니밴이었다. 총각은 앞자리에 앉고 우린 맨 뒷자리에 앉아서 가는 길이 힘들었다. 승객 중에 칼리 가는 사람이 없어 옆길 고속도로를 광속 질주했다. 생각보다 이른 3시에 아르메니아 터미널에 도착, 터미널 안쪽으로 들어가니 살렌토로 가는 콜렉티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살렌토까진 옆길로 빠져서 꼬불꼬불 계곡길을 타고 갔다.


살렌토(Salento)_0714_0717

전형적인 계곡 휴양 마을이라고 하기엔 참 아릅답게 꾸며놨다. 좋은 (예쁜 것만 아니라 최고급의 커피를 취급) 카페도 많고, 맛난 식당도 많다.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계곡길도 있고, 비가 자주 와서 숙소 해먹에 누워만 있어도 좋다. 주말엔 메데진, 보고타에 사는 콜롬비아 사람들도 많이 놀러와서 바글바글했다.


숙박_Hostal Estrella de Agua_더블룸_3

살렌토는 숙소 천지다. 몇 개 추천받은 숙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Estrella de Agua를 찾아갔다. 괜찮아 보였다. 시간도 있으니 다른 숙소를 더 둘러보기로 한다. 길이 대부분 언덕이라 배낭 메고 돌아보는 게 쉽지 않다. 몇 군데 돌아봤지만 어떤 건 공사 중, 어떤 건 너무 새 거 등등 별 거 없다. 처음 봤던 숙소가 괜찮으면 그냥 거기서 자야 한다. 욕심 부려봤자 몸만 고생한다. 수없이 반복된 불변의 진리다.

숙소는 도미토리와 더블룸, 가운데 캠핑장(텐트에 이불까지 빌려줌)까지 겸한 큰 곳이었다. 우린 가장 안쪽 별채의 더블룸 하나를 배정받았다. 별채에 좁은 더블룸이라 깎으니 총각의 도미토리x2 보다 1인당 비용이 살짝 저렴할 지경이었다.


급한 이동의 피로, 오후면 비가 오는 날씨 등으로 호스텔에서 쉬는 시간이 많았다. 가운데가 잔디밭이고 본채와 별채에 해먹이 있다. 해먹에 누우면 일어날 수가 없다. 천국이다. 잔디밭 가운데 주방이 있다. 냄비 몇개가 구멍난 것 빼곤 쓸만했다. 대충 라면과 비빔면, 뽀빠얀에서 남은 알감자로 끓인 닭도리탕 등을 먹었다. 와중에 호주에서 온 친구, 일본에서 온 친구 등을 만났다. 잔잔한 호스텔에서 여편님과 바랑키아 소동을 벌였다. 부끄러운 일이다.


시내 구경_0714&0715

체크인을 하고 쉬다가 돈도 뽑고, 저녁도 먹을 겸 광장으로 나갔다. 금요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각 골목에서 말떼가 몰려왔다. 수 많은 말떼가 광장을 점령했다. (X로 바닥이 가득찼다.) 몇몇 사람들은 말을 옆으로 몰아서 빠가닥빠가닥 소리를 내기도 했다. (참고_El Caballito De Palo: https://www.youtube.com/watch?v=lvgqbaxd3w0) 저녁이 되니 광장 분위기가 더 무르익었다.


식당_Restaurante Aqui Me Quedo_0714

광장을 돌아보다 사람이 북적여서 들어갔다. 오래된 맛집인 것 같다. 주메뉴는 타코와 비슷하게 넓은 반죽에 치즈와 갖은 고기를 얹어주는 것이었다. 맛있었다. 급 폭풍우가 들이쳐서 대기해야 했다.


식당_El Rincon de Lucy_0715

푸짐한 조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양은 생각보다 적었다. 계란을 듬뿍줬다.


식당_Las Perras_0715

호스텔 바로 옆에 있는 핫도그 집이다. Perras는 핫도그 빵에 구운 삼겹살(베이컨이 아니라 잘개 썬 삼겹살을 철판에 바로 굽는다.)을 넣은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맛있어서 점심에 먹고 저녁에 또 먹었다. 살렌토에 오래 못 있어서 아쉬운 건 이걸 더 못 먹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먹어본 핫도그 중 가성비 최고, 소스도 이것저것 듬뿍 뿌려준다. 살렌토, 콜롬비아에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카페_Café Jesús Martin_0717

유명한 카페라고 해서 마지막 날 아침에 찾아갔다. 진작 왔어야 했다. 조식도 깔끔하게 나오지만 커피가 진짜 맛있다. (커피만 따로 마셔보고 싶다.) 옆에서 얘기하는 주인 아저씨 말을 들어보니 부모님이 직접 커피 농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주변 커피 농장에서 직접 생두를 조달해서 로스팅 하는 것 같다. 원두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팔았다. 여기 말고도 좋아보이는 카페가 많았다. 풍경도 좋고 산지와도 가까워서 어지간해선 커피가 맛없을리가 없어 보였다. 물론 호스텔에서 주는 커피를 해먹에서 마시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지나가는 길에 여편님이 어마어마한 기계를 봤다. 카페에 들어가보니 무려 120년된 에스프레소 추출기라고 했다. (메이드 인 이딸리아) 바로 시음했다. 120년 간 기계를 닦지 않은 것 같은 맛이었다.


언덕_Mirador_0715

여편님은 쉬기로 한 오늘도 언덕 전망대를 가자고 했다. 어쩌다 언덕 매니아가 된 건지 아무도 모른다. (이후 메데진, 보고타의 언덕도 모두 올랐다.) 전망대가 있는 쪽으로 가다보니 또 예쁜 가게와 골목들이 많았다. 관광객도 많았다. 계단은 파랑, 노랑, 분홍으로 칠해져있었다. 올라가니 계곡이 다 보였다. 계곡쪽으로 산책길도 있었지만 자제했다.


산책_커피농장_Las Acacias_0716

일요일 오전엔 커피 농장을 다녀왔다. 평소 커피를 안 마시는 총각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주변에 커피 농장이 많다. 호스텔에선 자기네한테 예약하고 가라고 했는데 그럴 필욘 없었다. 너무 유명한데는 가격도 비싸서 무난해 보이는 곳을 가기로 했다. 총각이 도미토리에서 만난 한국 친구가 다녀온 곳을 알려줬다.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편안했다. 자전거, 말을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나라는 투르드프랑스를 대회 내내 중계할 정도로 자전거 인기가 높은 나라다.) 아침이라 햇볕도 강하지 않고, 계곡 사이로 펼쳐진 어마어마한 숲을 만끽했다. 커피 농장 얘기는 나중에 한꺼번에 할 거다. 돌아오는 길엔 지프 버스를 잡아탔다. 이 지역의 명물이라고 한다. 코코로 계곡 투어 등엔 셋 다 열정이 없어서 생략했다.

계곡 휴양마을 치곤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 더 오래 머물러도 좋을 뻔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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