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뽀빠얀에서부터 총각과 동행한 데에는 큰 목적이 있었다. 총각과 우리 모두 영원한 봄의 도시, 미녀의 도시로 불리는 메데진에서 넉넉히 머물려고 했기 때문이다. 추진력이 좋은 총각 덕에 뽀빠얀에서 만난 다음날 아침 바로 좋아보이는 아파트 하나를 빌렸다.


메디진(Medellin)_0717_0808

일년 내내 날씨가 좋아서 영원한 봄의 도시로 불린다. 예쁜 언니들이 많다. 마약왕으로 유명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이기도 하다. 살렌토에선 메데진으로 바로 가는 콜렉티보가 있었다. 전날 슈퍼를 겸한 곳에서 미리 예매를 했다. 아침에 가보니 버스는 자리가 꽉찼다. 지정 좌석이라 좋은 3자리를 차지했고, 편안히 예상보다 빨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박_좋은 전망 장미 아파트_더블룸_3

총각은 한달(4), 우리는 2~3주 정도 머물려고 했다. 2개에 3명이 가능한 집, 가격 필터를 아래로 조정하니 공기방울에서 몇 개만 나왔다. 깔끔한 집 한채인데도 저렴해서 바로 예약했다. 동네 이름은 Buenos Aires, 나중에 알게 된 바,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택시는 시내를 가로질러 빠지더니 꼬불꼬불 언덕길을 한참 올라갔다.

경비원과 내부 주차장도 있는 고급(?)아파트였다.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줬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청소 마치기를 기다렸다. 간단한 안내를 해줬다. 우리가 쓰기로 한 안방은 넓은 침대에 옷장, 넉넉한 수건까지 완벽하게 갖춰져있었다. 총각이 혼자 쓸 옆방도 이층침대지만 밝고 쾌적했다. 화장실, 주방도 잘 갖춰져있다. 거실도 창이 넓고, 쇼파에 TV, 식탁까지 얼마만에 맛보는 제대로 된 살림살이인가. 저녁엔 주인 아저씨가 와서 등을 갈아주고 갔다. 부부는 엘페뇰 근처에 전원주택에 살면서, 메데진에 볼 일이 있으면 이 아파트에 머물고, 우리 같은 장기 체류자에게 빌려주는 식이었다. 중간에 한 번 정도 청소 필요하냐고 확인하는 거 빼곤 거의 왕래가 없었다.


동네

집 주변은 주택가라 출퇴근, 등하교 시간에만 붐빈다. 바로 옆에 학교가 있어서 등하교 시간엔 헤어지고 만나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뽀뽀하고 난리가 난다. 집 바로 맞은 편에는 피자집과 아이스크림집이 있다. 아이스크림은 레알 맛있고, 피자는 한 번 먹고 더 안 먹었다. 귀퉁이에 치킨집이 하나 있는데 한국 마인드로 한 마리 반을 사왔다가 반 마리를 남겼다.

슈퍼 하나와 빵집, 슈퍼 하나와 청과+정육점이 다들 나름 시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빵집은 죄다 치즈가 들어가서 맛이 없다. (시내에 가면 빵집 밀집 구역에서 이 치즈냄새가 진동을 한다.) 슈퍼에선 우리가 하도 생필품과 맥주를 사러 드나드는 바람에 안면도 텄다. 야채와 과일을 파는 집도 거의 매일 갔다. 파파야, 망고, 바나나, 파인애플(심지어 잘라준다.) 등의 과일과 각종 야채를 한아름씩 샀다. 가장 호황을 누린 건 정육점이다. 세명이, 중간엔 다섯명이 먹다보니 기본 1kg 많게는 2kg씩 돼지나 소고기를 사댔다. 슈퍼마켓은 십분을 내려가야하는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쉬운 게아니라 반 강제적으로 골목상권에 의존했다.


일과

총각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여편님은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메데진의 날씨는 낮엔 25도 밤엔 15도 정도라 그간 설친 잠을 실컷 잤다. (볼리비아, 페루 등에선 해안은 너무 덥고, 고지대는 새벽에 너무 추워서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괜히 영원한 봄의 도시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은 내 차지였다. 간단히 바나나를 먹고 커피를 내리며, 밀린 여행기를 쓰거나 드라마를 봤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산 동네의 전경이 늘 펼쳐졌다. 아침은 주로 빵, 볶음밥, 파파야 등으로 간단히 먹었다. 주변에 가볍게 점심 먹을 곳이 없어서 점심도 간단히 만들어 먹었다. 태반이 파스타나 비빔파스타였다. 가벼운 외출 후에 돌아와서 장을 보고 저녁은 늘 푸짐하게 먹었다. 시내에 나가서 큰 마트에 가게 되면 갖은 양념을 사왔다. 총가은 요리 실력이 뛰어나서(그런데 수크레에선 모두가 총각에게 설거지만 시켰다.)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다. 본격적인 먹방은 일주일 뒤에 시작됐다.


손님_보노보노

계속 뒤쳐져서 오던 보노보노가 드디어 메데진에 왔다. 우리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왔다. 키토에서 장을 볼 때 고추장과 고추가루를 부탁했다. 총각 방의 위층 침대와 거실 쇼파가 비었으나 마다했다. 근처 호스텔에 머물겠다고 하더니 당일날 우리 집 근처의 원룸을 빌렸단다. 잠깐 나갔다가 와서 메세지를 보니 설마설마 같은 아파트 아래층이다. 심지어 그 숙소에 모카포트와 큰 웍, 세탁기가 있어 살림이 더 풍요로워졌다. (집주변엔 빨래방이 없어서 손빨래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집엔 건조대만 있었다.)

숙소는 따로였지만 거의 한 식구처럼 같이 매일 밥 해먹고 놀았다. 큰 솥이 있고, 사람이 많으면 보쌈만한 것이 없다. 거기다 고추장이 있으면 비빔면을 겻들일 수 있다. 정육점에서 2kg를 사다가 보쌈을 했다. 보쌈 장인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정 많은 보노보노는 지난 내 생일을 기억하고 마른 미역을 고이 갖고 와서 미역국도 끓여줬다. 거기다 호기심에 산 춘장도 갖고 왔다. 여기서 중식에 그나마 감각이 있는 건 총각 뿐이었다. 모두 초롱초롱하게 총각의 짜장면을 지켜봤다. 춘장이 많아야 2~3인분이라 옆에서 대충 짬뽕을 만들었다. 진짜 짜장면은 만들어 먹는 게 아니란 걸 생생하게 지켜봤다. (춘장을 기름에 따로 튀겨야 된다는 걸 몰랐다.) 총각이 고난 끝에 만든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여편님의 주도로 월남쌈을 사와서 월남쌈을 먹었다. 매일 고기 위주로만 먹다가 건강한 월남쌈을 먹으니 좋았다. 보노보노가 몇 달간 아껴둔 소면도 겻들였다. 그 전에 팟타이, 그 후에 쌀국수도 한 번씩 먹었다. 태국, 베트남에서 쿠킹 클래스 들은 게 헛되지 않았다. 부지런한 총각은 수제비 반죽도 했다. 난 수제비는 별론데 보노보노가 끓인 라면 국물에 맛있게 먹었다. 고춧가루(막판에 이 고추가루를 한 바닥 쏟았다가 여편님과 총각에게 융단폭격을 맞았다. 서울 사람들의 고춧가루 사랑은 남다르다.), 피쉬소스를 본 여편님이 결국 김치를 만들었다. 겉절이와 파김치 모두 아껴가며 먹었다. 거기에 하이라이트로 총각이 돼지갈비찜을 해줬다. 너무 맛있어서 떠나기 전에 한 번더 해달라고 했다. 저녁에 먹을 걸 전날부터 절이는 정성을 발휘했다. 총각은 늘 엄마를 보고 싶어했다. 라면은 잘 끓여주신다고 했다.

보노보노는 보고타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갔다. 친절하게도 우리 짐도 가져가서 인천공항에서 바로 택배로 부쳐줬다.


맥주와 럼

이렇게 잘 차려 먹은 덕에 술도 꾸준히 마셨다. 콜롬비아 맥주는 Poker, Aguila가 많고 프리미엄 컨셉으로 Club Colombia가 있다. 가격 차이는 별로 안나는데 우린 입에 착착 감기는 서민형 AguilaPoker를 선호했다. Aguila는 바랑끼야 지역의 맥주라고 한다.

콜롬비아는 사탕수수가 많아서 정제되지 않은 설탕(Panela)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사탕수수로 만든 술도 많다. 메데진은 럼이 유명하다. 5년 산을 사마셨는데 (따는 데 좀 고생했지만) 역시 고품격으로 맛이 좋았다. 3년 산도 마실만했다. (메데진이 속한 주인 안티오키아는 Aguardiente라는 증류주도 유명한데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 여편님 주)


교습_살사_2_Academia de Baile Dancing Con Los Gemelos

메데진에 머물면서 셋 다 살사를 배우기로 했다. 처음 한주는 널부러져 있다가 그 다음주가 되서야 알아보러 나갔다. 총각이 미리 몇 군데를 수소문했다. (콜롬비아 살사는 칼리가 가장 유명하지만 칼리 도시 자체는 오래 머물만큼 매력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괜찮다는 곳은 대부분 시내 기준으로 반대편에 있었다. 일단 택시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처음 들어간 곳은 교차로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무슨 할인 어쩌구) 그냥 여기서 하기로 했다. 우리는 2:1 교습 16시간, 총각은 1:1 교습 32시간을 끊었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효과는 1:1 교습이 훨씬 좋다. 계속 선생님이랑 추기 때문이다. 남자가 중요하다는 건 헛소리, 총각이 추는 걸 보면 여자 선생님이 알아서 잘 이끌어주고 잘 돌고, 그래서 잘 춰 보인다. (총각도 엄살이 심하지만 잘 따라간다.) 우리도 더듬더듬 꾸준히 스텝을 밟고, 돌았다. 초반에 자기만 돈다고 불평하던 여편님도 나중엔 꾸준히 돌았다. 두 번 돌기, 자리 바꿔서 돌기 등등을 할 수 있게 됐다. 밤에 살사바를 한 번 가면 좋을텐데 주행성인 우리는 여태껏 한 번도 못갔다.

우릴 가르친 선생님들은 모두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주로 우리를 담당한 하이메는 키가 엄청 크고 왠지 건성이라 맘에 안 들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총각은 무려 3명의 여선생님이 번갈아가며 가르쳤다. 우리랑도 친해져서 나중에 우리 수업 끝나면 총각 혼자 오는 걸 걱정했다. (결국 총각은 혼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라도 꾸준히 살사를 (여편님과 같이) 배우고 싶다.


음악_SHAKIRA_EL DORADO

살사를 배우면서 좋은 점은 살사 음악을 실컷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우리를 지배한 음악은 샤키라의 음악이었다. 마침 새 음반이 나와서 좋았다. 여편님은 샤키라 언니의 기운을 받겠다며 바랑키아까지 가겠다고 했다가 살렌토에서 대판 싸웠다. 샤키라, 마르케스의 사생팬도 아닌데 그 땡볕에 뭐하러 가냐고 했다가 대반격을 당했다. 다행히 한 달 뒤에 카리브의 태양을 맛보시곤 그때의 결정에 순응하고 계시다.


음악_MALUMA

음악에 열정있는 여편님은 말루마를 찾아냈다. 메데진 태생의 아이돌(?)이다. 어딜가도 말루마처럼 머리하고, 차려입은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음악_CHINO Y NACHO

베네수엘라 출신 남자 듀엣이다. 너무 매력 터져서 최근 활동 중인 가수 중엔 우리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시청과 독서

숙소에 TV가 있고, 인터넷도 엄청 빠르고, 총각과 보노보노가 가진 자료도 많아서 영화와 드라마를 꾸준히 봤다.


독서_무소유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의 책이다. 예전에 읽었는데 들고 다니다 이제 읽었다. 여행 중 물건을 잃어버릴 때 이만큼 위로가 되는 책이 없다.


독서_꿈을 빌려드립니다 & 마르케스: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작가, 여편님이 열정적으로 그의 단편집과 만화로 된 전기를 구입했다. 난 단편집 몇 편과 뒷부분의 대담만 봤다. 콜롬비아의 폭력과 관련된 그의 언급이 인상 깊었다.


영화_콜레라 시대의 사랑

예전에 책으로 읽었던 걸 영화로 봤다. 내용은 다 알지만, 카르타헤나와 막달레나 강의 정경을 화면으로 나마 느껴서 좋았다. 마르케스가 감독에게 OST는 꼭 샤키라로 해야한다고 고집한 일화가 유명하다.

HAY AMORES OFICIAL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JM7bY9Gtmsw


영화_네루다

최근에 개봉한 네루다와 관련된 영화다. 역시 우리 시인은 추격자도 매혹당할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다.


영화_아가씨

영상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보면서 화면이 예쁘다했더니 미술상을 받았단다.


드라마_나르코스(NARCOS)_SEASON 1 & SEASON 2

내 메데진 생활을 지배한 드라마다. 내용 상으론 1부까지가 더 극적이고 재밌다. 그의 상식을 뒤집는 협상력이 포인트다. 2부는 힘의 균형이 바뀌고 추격전만 반복되서 흥미가 덜했다. 그래도 끝가지 본 건 드라마 내내 나오는 메데진의 풍경, 오프닝 음악, 그리고 끝임없는 폭력에 시달리는 콜롬비아의 모습이다. 마르케스는 대담에서 콜롬비아엔 폭력이 너무 일상화*되었다고 했다. 마약, 내전, 독재 등 콜롬비아 사람들은 현대에서 겪을 수 있는 폭력을 계속 견뎌냈다. 그런데도 우리가 만난 콜롬비아 사람들은 늘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밝았다. 내전도 끝났으니 이제 평화로울 일만 남은 나라다.

NARCOS OPENING: https://www.youtube.com/watch?v=PtJ6yAGjsIs


*콜롬비아에서 폭력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콜롬비아의 역사는 폭력적인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아마 세상의 모든 역사가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콜롬비아에서는 매우 특이합니다. 이것이 아주 오래되고 심오한 현상이 아니라면, 이런 문제는 모두 교육 탓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콜롬비아에서 폭력을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교육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꿈을 빌려드립니다. 인터뷰 중)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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