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와 볼리비아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에콰도르로 향했다. 남미에서 찾은 나라 중 가장 작은 나라, 적도를 지나는 나라다. 적도의 풍요로움과 일년 내내 기후 변화가 거의 없다는 편안함 덕분인지 여행의 재미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마을에서 멀리 가지 않고도 관찰할 것이 많았고, 버스엔 여행객 보다 현지 사람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정과 이동_20170614_20170711

고산 지대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며, 대략 4주를 보냈다. 페루 툼베스에서 국경을 지나 과야킬 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남부 대도시 (수도인 키토 보다 큰) 과야킬에서 하루를 자고,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참치의 성지 만타를 들러 하루를 자고, 계곡 관광지인 민도에서 또 5박을 했다. 수도인 키토에서 5박을 하고, 북부의 오타발로와 근처 Intag 계곡에서 남은 날을 보냈다.


도시 간 이동은 버스, 도시 내 이동은 택시를 이용했다. 에콰도르는 중남미 4번째 산유국으로 기름이 싸서 교통비도 저렴하다. 버스는 대충 1시간에 1달러, 택시도 도시 내에선 대부분 몇 달러 선이다. 버스 터미널은 복잡하지만 일부 회사는 자체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어서 한가하다. 대부분 버스는 가는 길 있는 사람마다 정차해서 느린데 좀 비싼 Executivo 버스는 직행한다. 버스에선 와이파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어마어마한 화면과 음향으로 영화를 틀어준다. 지난 일 년 간 본 영화보다 에콰도르 버스에서 본 영화가 훨씬 많다. 가끔 숙소의 영화 채널을 돌리다보면 그때 본 영화가 수시로 등장한다. 또 하나 버스의 재미는 무수한 간식이다. 따로 터미널에서 간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수시로 먹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버스에 드나든다. 이것도 정식 등록을 하는지 대부분 공식 조끼를 맞춰 입고 과일부터 주스, 과자, , 튀김 등등 사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건 일지_0614_18시 무렵_GUAYAQUILCIFA 버스

툼베스에서 내려 과야킬로 가는 버스 CIFA를 탔다.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국경에서 정차해서 입국 수속을 밟고 간식을 먹고 버스를 다시 탔다. 근처 도시 터미널에서 정차를 하고 사람을 더 태우고 출발한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간다. 불안한 마음에 지갑에 돈이 잘 있나 확인했다. 에콰도르는 아예 달러를 쓴다. 볼리비아 ATM에서 달러가 두둑히 나오길래 챙겨두었다. 여편님에게 좀 나눠줄까 생각한다. 앞에서 틀어주는 영화 한 편도 끝나고, 슬슬 잠이 온다. 직통인 줄 알았는데 길에서 계속 사람들을 태우고 내린다. 좀 소란스럽다. 자다깼더니 옆에 내리려고 준비 중이던 사람이 과야킬은 좀 더 가야한다고 한다.

퍼뜩, 앞에 내려놓은 가방을 집어들었다. 지갑을 열어봤다. 돈이 없다. 750달러가 쌩하니 사라졌다. 다른 물건을 확인한다. 노트북, 카메라, 비상금 봉투, 카드, 여권, 핸드폰 그대로 두고 돈만 빼갔다. 허탈해하는 사이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소용 없는 걸 알면서도 여편님은 버스 기사에게 얘기를 해본다. 다행히 큰 돈은 자기네 사무실에서 바꿔주겠다고 한다.


사건을 범인 시선에서 재구성해보면, 뒷자리의 누군가 내가 지갑을 열어 확인하는 걸 봤을 것이다. 중간에 터미널에서 버스 직원이 간식 먹는 언니에게 뭐라뭐라하며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게 수면 가스였을 수도 있다. 물론 20시간짜리 장거리 버스를 타고 바로 이걸 탄 거라 저녁 시간이 다 되서 잠이 든 건 이상하지 않다. 버스 맨 앞자리라 내 좌석과 가방을 놓은 벽 간의 간격이 넉넉했다. 뒷좌석의 범인은 내 의자 밑을 파고 들어 가방을 끌어 간뒤, 지갑에서 돈을 쏙 빼고 제자리에 가지런히 놔두었다. 그리고 내가 깨자 아직 과야킬이 아니라며 안심시키고 근처에서 내렸을 것이다.

나중에 보노보노에게 들은 바, 원래 CIFA 버스는 위험하기로 소문이 나있다고 한다.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 오는 건 전형적인 수법이란다. 과야킬이 에콰도르에서 치안이 안 좋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보노보노는 에콰도르 야간 버스 맨 앞자리에서 잤는데 일어나보니 벗어둔 운동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내 기억에 1년 정도 신다가 쿠스코의 가죽 장인에게 수선까지 받은 파란 리복 운동화다.) 에콰도르 버스에서 의자 밑 바닥에 놓아둔 건 가져가라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범인은 매우 매너있게 현금만 쏙 빼갔다.


750달러면 우리가 에콰도르에서 일주일을 먹고 자는 비용이며, 몇 달러 아끼려고 이 숙소 저 숙소 전전했던 걸 생각하면 더욱 아까운 일이다. 며칠 내내 가슴이 쓰라졌지만 다른 귀중품이 멀쩡한 걸로 위안을 삼았다. 그것보다 못한 값어치라도 핸드폰, 카메라, 노트북을 잃어버렸으면 더한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돈을 잃어버린 건 물건을 잃어버린 것에 비해 심리적 아픔은 크지 않았다.

에콰도르 한달 최저임금은 350달러 정도로 저 돈이면 두달치 임금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뭐든 우리가 쓰는 것보다 더 큰 만족을 얻었을 것이다. 긴 여행기간 동안 큰 사건사고가 없었단 걸 생각하면, 이정도는 감사한 일인 것이다. 여행 기간 전체로 보면 큰 돈은 아니고, 여행세금을 통째로 에콰도르에 낸 것이다. 여행자 보험은 보장 기간일 때는 아무일 없다가 끝나면 사건이 터지는 마법을 부린다. 돈 잃어버린 일 갖고 이렇게 주절주절 쓴다는 건 지금도 가슴 아픈 일이란 반증이다.


과야킬(GUAYAQUIL)_0614_0615

소문대로 치안도 안좋고, 볼것도 없는 대도시라 하루만 자고 이동했다.


숙박_Hotel Sander_더블룸_1

미리 인터넷에서 저렴한 호텔을 찾았다. 터미널에서 택시타고 호텔 앞에 도착, 이미 저녁 10시가 다 되어간다. 얼른 체크인을 마치고, 간단히 씻고, 호텔 건너편 가게에서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했다. 허탈함은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은 호텔 아래 식당에서 먹었다. 에스프레소가 넉넉히 나오는데 맛있었다. 뭔가 브라질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시내 구경_0615

중국 마트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체크인 전에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시내는 다소 우중충하지만 활기가 있었다. 뒤늦게 연 중국마트를 가봤지만 별 건 없었다. 호텔에서 어뎁터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사려고 돌아봤지만 없었다. 이런 저런 가게 주인이 대부분 중국계로 보였다. 에콰도르의 상권도 화교들이 많이 장악하고 있단다. 우리에게도 chino chino 하는데 에콰도르 사람들이 중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터미널로 돌아갔다. 터미널에서 푸에르토 로페즈로 가는 표를 구입하고, 간단히 간식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푸에르토 로페즈(Puerto Lopez)_0615_0622

가난한자의 갈라파고스로 불리는 섬, 이슬라 플라타(Isla de la Plata)가 있는 마을이다. 갈라파고스는 다이버가 아니라면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왕복 비행기, 입도료, 비싼 섬의 물가 등) 해안가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며 가볍게 섬 구경만 다녀오기로 했다.

가방을 끌어안고 과야킬에서 푸에르토 로페즈로 가는 버스를 달렸다. 터미널에서 내리니 삼발이 오토바이들이 도열하고 있다. 여기 공식 택시는 모두 툭툭이다. 마을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1달러, 부담없이 간다.


숙박_CASA MOSAICO_더블룸_7

공기방울로 일주일 간 머물집을 예약했다. 약간 팬션 분위기로 넓은 공간에 주방과 침실이 분리되어 있다. 무려 쇼파와 테라스도 있다. 테라스로 건너편 집에 3자매가 다정히 노는 걸 구경했다. 독일인 아저씨가 별장처럼 지은 거라 건너 큰 집에 관리인 지오반니가 거주한다. 저녁에 코고는 소리가 들리긴해도 여러모로 안심이 됐다. 푸에르토 로페즈는 해안을 따라 길게 가게와 숙소들이 도열해 있는데 우리 집은 안쪽 골목이라 조용하고, 바다와 접근성도 좋았다. 주방에 냄비들이 좀 낡긴해도 있을 거 다 있고, (심지어 커피포트도!) 좀만 틈을 보이면 개미떼가 우르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숙소에 무려 에콰도르 외로운행성 가이드북이 있었다. 이후 루트를 짜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해안 구경

도착하자마자 해안으로 산택을 나갔다. 수산시장을 보기 위해서다. 집 반대편 해안 끝에 가서야 배들이 모여있었다. 오후엔 별개 없어서 다음날 아침 다시 갔다. 배들들이 해안으로 와서 직접 생선을 내렸다. 큰 뿔이 달린 참새치, 참치가 종종 보였다. 큰 놈들은 대부분 트럭으로 직행, 멀리 떠나갔다. 모래밭 시장에서 파는 건 여러 생선류와 새우, 오징어, 문어 이런 것들이다. 참치는 없어서 도라도란 큰 생선을 사와서 생선찜을 해먹었다.

몇 번을 가도 참치는 없었다. 어느날은 조개에 새우 몇 개를 얹어서 사왔다. 조개는 해감이 안되서 몇 개만 건졌고, 새우를 위주로 짬뽕을 했다. 맛이 어마어마했다. 알고보니 푸에르토 로페즈는 원래 새우가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를 알고 새우 대량 구매에 나섰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새우 파는 곳이 없었다. 모래를 차며 돌아왔다.


해안에는 관광객을 위한 이런저런 가게도 많다. 눈에 띄게 갈색 봉지에 원두를 파는 곳이 있었다. 이 지역에서 재배한 커피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서 온 거라 정말 신선했다. (마트에서 팔던 것들과는 비교 불가) 진한 땅맛이 우러나왔고, 바다와 가까와서 그런지 뒷맛은 가벼웠다. 아침 점심으로 두 잔씩 마셨다. 케잌집은 콩알만한 걸 3달러에 팔았다. 나중에 시내 빵집에 가보니 1달러면 산더미 같이 단빵을 줬다. 우유니 투어 중 여편님 수영복 상의를 두고왔다. 수영복을 파는 가게는 많았는데 확실히 에콰도르는 공산품이 비쌌다. 그러다 결국 한 가게에서 상의만 모아서 저렴하게 파는 걸 발견, 원래 하의와 잘 어울리는 걸 득템했다.


시내 구경

해안에서 안쪽으로 가면 시장통과 시내 번화가가 나온다. 마트도 있고, 중앙 시장도 있다. 길에선 유카빵, 옥수수빵을 파는 리어카도 만날 수 있다. (식사로 쓸만한 빵은 대부분 이렇게 판다.) 시장 분위기는 페루, 볼리비아와 비슷하다. 식당 코너는 한산한 편이다. 점심 메뉴로 랍스타 머리국밥, 새우국밥 같은 걸 먹었다. 시장엔 야채가 많다. 마트에 비해 야채들이 싱싱하다. 고기나 생선 코너도 있는데 냉장 시설이 열약해서 그날그날 잡은 고기를 판다. 그럼 과일은? 가운데 통로에 메론, 파파야, 수박, 딸기 정도만 판다. 그럼 바나나는? 간식용 바나나는 과일이랑 같이 파는데 시장 뒤 주차장을 초록 바나나 더미가 다 차지하고 있다.

마트는 주로 맥주나 곡류, 시장이 파했거나 멀게 느껴질 때 고기나 야채를 사러 갔다. 첫날 냉동 새우를 먹었는데 나중에 먹은 생새우와 너무 큰 차이가 났다. 맥주는 주로 PILSEN이라는 대표 맥주를 먹었다. 캔도 노란색인데 맛도 약간 바나나맛이 난다. 옷이나 공산품류는 주변국보다 훨씬 비싸다. 페루나 콜롬비아와 1인당 소득 수준은 비슷한데 나라 규모가 작아서 그런 것 같다.


짬뽕과 라면

여기서 여편님의 요리 열정이 불에 탔다. 그녀는 무려 김치를 담갔다. 예전에 장기 여행자가 나오는 프로를 보며 여행 중에 김치를 담그면 경지에 오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볍게 배추 김치와 물김치를 담그셨다. 시장에서 큰 락앤락을 사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면을 삶아서 김치에도 말아먹었다. 물김치는 젓갈 같은게 필요 없으니 한국에서 먹는 거랑 차이가 없었다. 김치를 담그는데는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산 고춧가루가 큰 몫을 했다. 어정쩡한 한인마트 고추가루보다 월등했다. 하지만 이후 에콰도르, 콜롬비아에선 시장에서 갈아서 파는 고춧가루는 구할 수 없었다.

수크레에서 쉐프님께 배운 짬뽕도 실습했다. 좋은 해산물까지 겻들이니 제법 맛이났다. 불맛은 제대로 못살렸지만 앞으로 인생에 소중한 자산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수확은 라면 스프다. 리마에서 헤어지기 전 보노보노가 소중한 라면스프를 나누어줬다. 거대 ㄴㅅ 기업과 달리 뚝심의 기업은 라면스프만 업소용으로 따로 판다. 여행자에겐 라면보다 라면스프가 훨씬 경제적이다. 스파게티 면으로 끓인 라면은 더 담백하니 맛있었다. 라면스프가 생긴 이후 여편님의 고질적인 향수병은 사라졌다. 종종 라면 외의 다른 국을 끓이는 데도 사용한다.

사실 밖에 나가도 바, 피잣집, 기사식당 정도라 저녁은 매일 부지런히 해먹어야 했다. 생선조림, 수육, 각종 볶음 요리들이 김치와 함께 빛을 발했다. 섬에 가는 날을 빼면 바닷가 산책이나 하고, 장 보고, 테라스에서 비를 보는 잔잔한 날들이었다. (지금도 비가 온다.)


은섬(ISLA DE LA PLATA) 관광_0620

해안가에도 투어 업체가 많았지만 관리인 지오반니를 통해 예약했다. 막상 아침에 픽업 온 걸 보니 우리가 길에서 알아본 업체였다. 픽업은 달랑 사무실까지만 해주고 선착장까지는 가이드를 따라 걸어간다. 이미 배엔 사람들이 많이 타있다. 콜롬비아에서 온 가족을 빼면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 같다. 스탭이 대략 3,4명이다. 뒤가 뚫린 보트다. 출발한다. 무서운 속도로 물을 스치듯 달려간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튕겨진다. (보통 투어배는 이렇게 빨리 안 다닌다. 참치 어업이 커지면서 이런 속도가 보편화된 게 아닐까 싶다. 참치 같이 고급 수출어종은 잡아서 빨리 가져오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곧 고래가 나타난다. 고래 보러 가는 투어도 따로 있을 정도로 흰수염 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시기다. 넉넉히 한 시간 정도 고래의 유영을 감상한다. 한 마리도 보고, 여럿이 움직이는 것도 본다. 고래가 툭하면 뒤집힐 보튼데도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스리랑카-우수아이야-에콰도르로 이어질 수록 고래 보는 고생과 가격은 줄고 만족도는 높아진다.) 1시간 가까이 고래를 봤다. 다들 됐다 싶으니 다시 은섬으로 달려간다.


은섬에 도착하니 보트 옆에 둥둥 거북이가 떠다닌다. 펠리컨도 많이 보인다. 섬에 정박한다. 섬은 선착장에 간단한 휴게실과 화장실을 빼면 다른 시설이 없다. 두 팀으로 나눠서 섬을 돌아본다. 섬 안에 꽃들이 만발했다. 색깔들이 하나하나 다 예쁘다. 가이드가 모기 쫓는 풀도 설명해준다. PALO SANTO라는 풀인데 이걸로 만든 향초, 비누 등등을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판다. 그리고 드디어 두둥, 파란발 부리새가 길을 막고 있다. 이미 관광화된 건지 사람이 와도 꿈적도 안한다. 정말 신기한 존재다. 열대 어류를 많이 먹어서 발 색깔이 파랗다고 한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파란발 부리새를 더 본다. 저기 부부도 있다. 언덕 위에서 다른 열대 조류들을 본다. 프라가타는 번식기에 수컷의 가슴이 빨갛게 변한다고 한다. 지금은 번식기가 아니라 평범해 보인다. 해안 절벽까지 돌아보고 내려간다.

밥은 언제주나 하는데 다시 보트로 돌아간다. 바로 스노쿨링을 하러 간단다. 배고픈데? 바나나를 준다. 샌드위치도 주고, 수박과 파인애플도 준다. 신나서 실컷 먹었다. 스노쿨링 장비를 나눠준다. 해안까진 좀 멀어보이는데 여기서 뛰어내리란다. (스노쿨링은 원래 발 짚고 하는 거 아닌가?) 주저하는 여편님을 뒤로 하고 앞의 사람들을 따라 뛰어든다. 여편님은 결국 구명조끼를 입고 입수한다. 오랜만에 스노쿨링용 장비를 꼈더니 호흡이 힘들다. 바다 안은 날씨가 흐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헤엄치기가 힘들다. 배는 저 멀리 보인다. 힘들다. 여편님이 입수하는 게 보인다. 도와주는 스탭에게 손짓을 했다. 상황을 알아챘다. 튜브를 던지고, 그가 온다. 튜브를 준다. 겨우 헤엄쳐서 여편님이 있는 쪽으로 갔다. 보트로 올라왔다. 죽을 뻔했다. 여편님도 바로 배로 올라온다. 절벽 가까이 스노쿨링 갔던 사람들도 별 소득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온다. 비가 와서 그런지 물도 차갑다.


사람들이 다 돌아오고 보트가 돌아간다. 속이 울렁거린다. 스탭이 젤 뒤쪽 바람 통하는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한다. 내 표정을 보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 도망간다. 한참 달리는 바람을 쐬니 속이 진정된다. 다시 앞자리로 가려고 일어섰다. 순간 파도가 일어 하늘로 솟아서 앞자리로 떨어졌다. 곧 육지에 도착했다.


투어의 상처를 가라앉히고, 하루를 쉬고 난 뒤 푸에르토 로페즈를 떠났다. 떠나는 길에 터미널에서 한국인 여행자 한 분을 만났다. 나이가 좀 있어보이시는데도 자전거로 남미를 여행하고 계신단다. 이제 푸에르토 로페즈로 오는 길이라고 하셔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만타(MANTA)_0622_0623

갈라파고스로 간 총각은 먹을 게 참치 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참치 한 덩이 5달러, 양파 11달러) 우리도 참치를 한 번 먹겠다는 일념으로 리마에서 와사비까지 들고왔다. 푸에르토 로페즈에서 참치를 못 구하니 참치의 본 고장 만타로 향했다.

버스는 만타로 가는 직행이어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나름 에콰도르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 터미널은 복잡했다. 얼른 택시를 타고 블로그에서 본 숙소로 향했다.


숙박_CASA VERDE_더블룸_1

블로그에서 나름 저렴하고 부엌 사용이 가능한 숙소를 봤다. (참치를 썰어야 하니까) 찾아가서 벨을 누르니 방이 없다고 한다. 근처 호텔을 알려주며 저기서 하룻밤 자고 오라고 한다. 맵양을 통해 주변 숙소를 뒤적거린다. 저렴해 보이는 숙소는 한창 공사 중이다. 나름 부촌인 주택가라 숙소 가격대가 좀 높다. 겨우 깔끔하고 덜 비싼 숙소를 찾았다. 아침 포함 40달러, 하루만 자고 떠나기로 했다. 조식도 방으로 가져다주는 구조였다. 맛있었다.

왠지 참치 무역하러 온 일본 상사 과장과 대리가 묶을 것 같은 좋은 숙소였다. (침대도 트윈이다.) 직원이 친절하게 민도 가는 버스를 알려준다. 터미널의 버스들은 대부분 계속 정차하는 완행 버스니 별도의 터미널이 있는 회사 버스를 추천했다. 해변에 터미널이 있으니 겸사겸사 찾아가기로 했다.


참치 찾아_0621

택시를 타고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만타의 참치를 상징하는 참치동상을 지났다. 참치 먹을 거라고 하니 아저씨가 직접 해변 식당 하나를 추천해서 내려준다. 메뉴판에 참치는 없다. 식당가 옆 시장으로 갔다. 오후라 시장은 이미 폐장. 허탈감에 해변을 거닐었다. 참치를 먹기 위해 여기서 하루를 더 머물 것인가. 고뇌 끝에 참치는 단념하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먹는 참치는 하위20% (만타의 참치 80%는 일본, 미국 등지로 바로 수출된다고 한다.) 아까 내렸던 해변 식당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생선튀김과 볶음밥, 쉐비체 모두 싱싱하고 푸짐했다.

터미널에 가서 표를 예매하고 다시 해안도로로 나왔다. PACIFICOF라는 커다란 쇼핑몰이 있었다. 주머니엔 단돈 10달러가 있었지만 쇼핑몰을 구경했다. 참치가 만든 풍요를 빨아들이려는 기운이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와 편히 잤다

Posted by Cord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