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파스(Chiapas)_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 _1001_1011

치아파스, 산크리스토발 모두 나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치아파스 주도가 아래 툭스틀라(Tuxtla Gutierrez)로 바뀌기 전까지는 중심도시였고, 지금도 행정을 제외한 관광, 문화 등에선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1995년 전설적인 게릴라 사파티스타의 봉기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자료 영상에 점거된 청사가 중심부의 그 건물이다.)

오 년전 홀로 여행했을 때 이곳에서 2주간 머무르며 자원활동을 했다. 한국워크캠프를 통해서 신청한 현지 단체의 이름은 Natate(https://www.natate.org.mx/)였고, 교육용 식물 정원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한국 친구들도 몇 명 있었고, 멕시코 현지 스탭들, 유럽과 미국에서 온 친구들까지 잘 어울려 지냈다. 오전엔 작업을 하고, 아침과 점심은 까사 아르볼(La Casa en el Árbol Instituto Cultural)에서 먹고 (그때도 난 홀로 또르띠야와 팥을 물리지 않고 먹었다.) 오후엔 다시 까사 아르볼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때 우릴 가르쳤던 강사 메모(Memo)는 스페인어 과외 사업을 시작하더니 그 사이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어 강사가 되었다. 저녁엔 Cafe Bar Revolucion에서 살사를 배웠다.


일요일 새벽 터미널에 내리 익숙한 돌길을 보니 기억의 쓰나미가 용솟음쳤다. 지난 여행의 (실질적) 시작과 이번 여행의 종착지는 같은 곳이었다. 시내를 가로질렀다. 새벽까지 클럽에서 논 청년들이 해장하는 듯 이른 아침 거리에서 삼삼오오 타말을 먹고 있었다. 광장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조식 세트를 먹고 다시 숙소로 갔다.


까사 쿠쿨(Casa Kukul)_파란방(Azul)_열흘

마지막 숙소다. 비수기라 그런지 공기방울에 나오는 숙소들의 물가가 한결 저렴했다. 깔끔한 숙소를 들어가보니 쿠쿨이라는 브랜드로 여러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중 정원이 아름다운 숙소에 정원이 잘 보이는 방을 골랐다. 일요일 아침에 가니 일찍 오라던 호스트는 없고, 청소하시는 분들이 와있다. 아직 준비가 안됐으니 아침 먹고 오란다. 근처 카페에 가서 또 차를 마시며 시간을 떼웠다. 한떼의 축제행렬이 지나갔다.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사탕을 던져줬다. 다시 숙소로 갔다. 아직도 청소 중이다. 일하는 분들과 함께 온 아이들과 놀았다. 한국 문양의 연필을 줬다. 하나 갖고 놀다가 잃어버렸다. 다시 하나 줬다.


넓은 방에 개인 창고로 쓸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화장실도 딸려있다. 새벽에 좀 춥긴했다. 오전마다 청소를 해준다. 일층에 세탁기가 있어 빨래도 해준다. 거실은 별도 사업(코워킹스페이스)을 위해 준비 중이다. 주방도 넓긴한데 약간 어둡다. 커피나 내려 마시고 (콜롬비아에서부터 들고 다니던 모카포트는 손잡이가 날아가서 기증했다.) 과일이나 썰어 먹고, 라면 한 번 끓여먹고 말았다. 대부분의 끼니는 밖에서 해결했다.

규칙적으로 오전에 나가서 돌아다니다 들어와서 낮잠 자고, 저녁 먹으러 다시 나갔다. 머문 시간도 별로 없고, 옆방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교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잠을 설치기도 했다. 절대 귀국에 따른 긴장감이 아니다. 살 좀 빼보겠다고 저녁 적게 먹었다가 속쓰림에 설친 것 뿐이다. 밤에 일어나 빵이나 우유, 바나나를 먹었다.


워킹투어_1004

https://www.facebook.com/freewalkingtoursancristobal/

산크리스토발에 프리워킹투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어지간한 도시에 다 있긴하다.) 알차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10시나 오후 5시에 광장 십자가에서 모인다. 요일별로 가이드 봉사를 돌아가면서 한다. 원래 산크리스토발 출신이 대부분인데 오늘은 폴란드 출신으로 장기체류 중인 언니다. 모인 사람들은 우릴 빼면 다 유럽, 미국 사람들 같았다.

중간에 Casa del pan에서 쉬면서 간식을 먹는 것 빼곤 3시간을 부지런히 다녔다. 광장, 시장은 물론 곳곳의 좋은 카페와 식당도 추천해줬다. (그런 게 그려진 지도도 준다.) Iglesia del Cerriloo 가 있는 광장에 갔다. 여기서 토요일 밤에 이웃들과 타말을 나눠먹는다고 했다. (토요일에 가보니 허허벌판 아무도 없었다.) 어느 정글같은 박물관도 보여줬다. 사파티스타 관련 물품을 파는 가게도 들렀다. (숙소 근처였다.) 하이라이트는 치아파스 전통술 포쉬(Pox)를 마시는 것이다. 바로 들어가니 마침 비가 쏟아졌다. 밖에선 다국적기업의 석유독점을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코카콜라는 치아파스의 좋은 물로 코카콜라를 마구 찍어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약간 싸게는 판다.) 술은 진하고 맛있었다. 마지막엔 정작 이 술 대신 다른 술을 사왔다.


아나 만남_1003

치아파스엔 반가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거의 일년 전, 터키에서 후와 함께 만난 아나(Ana). (터키 유람기_3_파묵칼레와 에페수스_http://cordon.tistory.com/139) 자칭 치아파스의 딸, 치아파스 홍보대사인 아나는 유럽 여행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미국에서도 오래 머물다 쿠바도 두 번 갔다가 때마침 치아파스로 돌아왔다. 집은 툭스틀라(예전엔 공항에서 일했다.)에 있어서 우리도 산크리스토발 가기 전에 툭스틀라를 들를까 고민했었다. 정작 아나는 어차피 산크리스토발에 자주 온다고 했다. 산크리스토발엔 이탈리아 사람이 피자를 만들고, 치아파스 각 지역의 공예품도 다 모이니 쇼핑하기도 좋아서 툭스틀라 사람들도 자주 온다고 한다. 이날도 마침 엄마와 함께 산크리스토발에 왔다며 급연락이 닿았다.

과달루페 거리(Real de Guadalupe)의 카카오나티바에서 만났다. 아나 엄마는 잠시 인사를 나누고 먼저 집으로 갔다. (아나는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오래 전부터 해서 각지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고 했다. 엄마는 아나가 또 누굴 집으로 데려올까봐 겁났을 수도 있다.) 사실 아나의 동생이 산크리스토발 시장 등지에서 수공예품을 구해다 좀 더 가공해서 미국 등에 온라인으로 판다고 한다. (https://www.instagram.com/sosa_caustica/)그 물건들을 구하러 왔다. 동그란 전통 가죽가방도 샀다고 자랑했다. 그간 지낸 얘기, 여행 얘기, 산크리스토발 주변의 볼거리, 먹을 거리, 앞으로 할 일 등등 이야기를 나눴다. 잠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재미가 있어서 더 할 생각이라고 했다. 여행 내내 여편님이 들고 다니던 비단천으로 만든 공기를 일년 반만에 드디어! 선물로 줬다. 툭스틀라에 뭐가 있냐고 하니 동물원을 적극 추천했다. 동물을 가둔게 아니라 보호구역처럼 해놓고 구경하는 느낌이고, 치아파스 내에서 사는 동물들만 모여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툭스틀라는 구경가지 못했다.


요리수업_1004_https://www.eltzitz.com/

워킹투어에서 요리수업 정보도 얻었다. 고대고대하며 메일을 보냈다.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가보니 어학원이었다. 수업은 별도로 가정집에서 한다고 했다. 알려준 주소의 파란 대문집을 찾아갔다. 치카(이름이 기억 안난다.)가 우리를 맞아줬다. 집은 엄청 좋았다. 물론 그녀의 집은 아니다. 어학원 사장으로 추정되는 독일 할망의 집인 것 같다. 주방도 트이고, 쾌적하고, 테라스도 따뜻하고, 다 원목이고, 정원의 잔디와 꽃, 나무도 아름다웠다.

집에는 애들 두 명이 놀고 있었다. 하나는 치카의 딸이고, 하나는 딸 친구라고 했다. 9월 지진 때 파손된 학교가 아직 복구가 안되서 숙제만 내준다고 한다. (애들은 살판났다.) 종종 애들을 데리고 오기도 한단다. 수업 방해 안하고 잘 논다.


본격적인 수업 내용은 어제 직접 복습하신 여편님이 쓴다. 안쓴다.

우선 요리하며, 먹으며 마실 주스를 만들었다. 분말가루가 준비되어있다. 주황색쌀음료다. 무려 세 가지의 살사를 만든다. 자주 먹는 과카몰레, 초록살사(Salsa verde), 붉은살사(Salsa rojo). 과카몰레는 쉽다. 아보카도 까서(중남미 반년이면 아보카도 해체하는 건 도마도 필요없다.) 으깨고 토마토, 양파, 라임 같이 으깨면 끝이다. 초록살사는 초록토마토와 파랗고 매운 고추 몇가지를 같이 넣고 끓인다. 붉은살사는 토마토, 양파, 마늘, 말린 고추를 팬에 굽는다. 그걸 통으로 간다. 고기 삶은 물도 조금 넣는다.

주요리로 소고기를 삶는다. 쭉쭉 찢는다. 장조림이다. 호박꽃도 손질한다. 꽃 밑둥의 튀어나온 것들은 먹는 게 아니라고 한다. 양파 등과 가볍게 볶아준다. 와하카치즈 쭉쭉 늘여서 또르띠야에 싸먹으면 된다.


대망의 또르띠야도 만든다. 많은 옥수수 중 푸른 옥수수가 준비되어 있다.먼저 옥수수 알을 네 다섯 시간 불린다. 그리고 석회가루를 약간 넣고 삶는다. (석회가루를 넣으면 옥수수 껍질이 잘 벗겨진다.) 이런 과정을 거친 옥수수가 준비되어 있다. 떡빻는 기계 같은 것에 넣고 빻는다. 두 세번 거쳐야 곱게 빻아진다. 적당한 크기로 떼어내서 반죽 누르는 도구(나무)에 넣으면 만두피처럼 얇고 넓어진다. (결국 우린 이 도구를 사서 들고왔다.) 그리고 석회칠해진 판에 굽는다.

준비한 음식을 테라스의 식탁에 차린다. 진짜 또 배가 터져라 먹었다.


Punto y Trama_1009_1010

더 이상 뭘 배울 의욕도 없고, 떠날 날이 다가오던 토요일, 여편님이 뽐뽐 수업을 발견했다. 뽐뽐(폼폼, Pompones)은 중남미 곳곳에서 볼 수 있는(페루, 볼리비아 알파카들이 두르고 다니고, 산크리스토발에선 시장 곳곳에서 파는) 동그란 실뭉치 이은 것이다. 이틀 동안 세 시간씩 배운다고 했다. 일요일에는 안한다. , 화 오후에 이걸 배우겠다고? 수요일 새벽에 떠나는데? 여편님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올림픽 정신을 보였다.

난 그 시간에 카페에서 놀고 있었으므로 설명은 생략한다.


*여편입니다.

마지막 여행지라 보니 그동안 억눌렀던 구매 욕구가 불꽃솟듯 솟았습니다. 하지만 다 사갈 수는 없는 법. 그러던 중 만들기를 배우면 가서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뽐뽐’을 배웠죠!

뜨개질이나 다른 직조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어서 이게 한국에도 있는지 몰랐는데 있더군요. 게다가 쉽게 만들 수 있는 ‘폼폼메이커’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치아파스에서는 그냥 살사병에 실을 둘둘 말아서 그걸 쏙 빼서 가장자리를 가위로 죽 잘라 실로 묶어서 그걸 또 가위로 사각사각 다듬는 걸로 폼폼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필요한건 실, 가위, 살사 병이었죠.

엮을 줄도 만드는 걸 배웠고 하트모양으로 자르는 것도 배웠습니다.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하겠다는 저의 의지는 이렇게 꺾여, 두달 반이 지난 지금도 방산시장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현실과 날씨는 이렇게 가혹하구나 생각합니다.


Iglesia de Guadalupe_1005

Real de Guadalupe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우리 숙소로 빠지는 길이 있고, 더 쭉 가면 커다란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을 올라가면 과달루페 성당이 있다. 흥겨운 찬송가가 한창이다. 사실 이 언덕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성당 오른쪽으로 가면 La Maldita Cafe가 있다. 여기 테라스가 전망이 죽인다. 간단히 허브티 하나 시켜놓고, 일몰을 감상했다. 그나마 이 계단 오르내린 것이 산크리스토발에서 우리가 한 운동의 전부다.


과달루페 거리(Real de Guadalupe)_까르멘 대문(Arco Torre del Carmen)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Real de Guadalupe는 차도 안다니고, 주변 골목골목까지 식당과 상점이 이어져서 걷기만해도 재미가 있다. 많은 식당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장사를 하니 근방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했다. 카페에서 사람 구경도 했다.

오래 앉아있으면 원주민 할머니, 아이들이 이것저것 들고와서 사라고 한다. 대부분 시장에도 있는 거라 살 생각은 안하게 된다. 정중히 거절해도 자꾸 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아이가 물건이 아니라 물이 마시고 싶다고 해서 마시던 물을 줬다. 지진 때문에 학교를 안 가서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원래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굳이 경제사정이 괜찮아도 친구들따라 팔러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한편에선 각지에서 모여든 히피들이 자기들 물건을 판다. 정작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은 이쪽이다. 누군 정말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게 없어서 흔한 물건을 판다. 누군 가진게 너무 많아서 다 버리고 이 저렴한 물가의 혜택을 보면서 트랜디한 물건을 판다. 주절주절

까르멘 대문이 있는 쪽은 좀 더 고급지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옷 가게들이 오래된 건물 안에 들어차 있기도 하다. 여기도 주말, 저녁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근처에 문화센터(Centro Cultural El Carmen)와 전시관도 있다. 전시는 못봤다.



나머지는 먹고 마시고 사는 이야기다. 산크리스토발에서 물갈이를 했다거나, 길이나 시장통에서 막 집어 먹었다가 탈났다는 사람이 많아서 가능하면 괜찮아보이는 식당에서만 먹었다. (물론 시장에서 과일이나 옥수수 등 간식은 사먹었다. 우린 그간 이 근방 음식과 균에 적응해서 별탈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은 동네 근처나 과달루페 거리 외곽에서 먹었다. 주로 또르띠야에 스크램블 에그를 겻들여서 먹었다. (멕시코 스타일) 따말(Tamal, 각종 고기, 야채를 넣어 찐 것) 세트도 만족스러웠다. 멕시코 따말은 콜롬비아랑 달리 크기가 작고, 내용물도 더 담백하다. 당연히 아침부터 후끈하게 살사랑 먹는다. 근처에 또 무슨 베지터블 식당이 있었다. 점심 메뉴인 커리를 시켰는데 그때야 조리를 시작했다. 맛은 있었으나 그거 먹자고 하루를 버릴 순 없었다. 진짜 맛있는 로컬 타코 식당이 있었다. 바베큐를 또르띠야로 돌돌 말아주는 Taquita가 주메뉴다. 지날 때 마다 성황이라 한 번 테이크 아웃해서 먹었다. 맛있었다.


파차마마(Pachamama)

첫날 점심을 찾아 돌아다니다 발견했다. 5년 전에 하루 머물던 호스텔 주인이 추천했던 식당이다. 햄버거, 피자 등을 파는데 당연히 멕시코식이다. 야채버거도 맛있었다. 피자도 푸짐했다. 길가 테이블에서 사람 구경하며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파차마마는 어디서 들어도 친근하다. Gracias pachamama por estas comidas.


엘 깔데로(El Caldero)

첫날 터미널에서 광장을 가면서 발견했다. 좋아보였다. 나중에 찾아가니 대박 맛집. 아나도 추천하는 곳이었다. 깔도, 국밥집이다. 내용물이 어마어마해서 전골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프리미엄 해산물 깔도가 맛있다. 백숙도 먹었다. 최적 조합은 깔도 하나 시키고, 따코를 몇 개 추가해서 먹는 것이다. 또르띠야가 찰져서 따코도 깔끔하고 맛있다. 3번 넘게 먹은 우리 단골집이었다.


라 루페(La lupe)

과달루페 거리를 걷다보면 바로 눈에 띄는 집이다. 화려한 옷을 입은 언니들이 메뉴판을 보여준다. 그냥 비싸기만 한 줄 알았는데 맛도 있는 곳이었다. 고급 한정식집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큰 장점은 각종 살사와 할라피뇨, 노빨 등을 샐러드바에서 맘껏 떠다 먹을 수 있는 점이다. 화지타, 퀘사디야 같은 무난한 요리를 먹었다. 개방형 주방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준다. 깊은 맛이 난다. 가게 내부도 전통전통하다. 단점은 아저씨들이 끊임없이 술 더 안시키냐고 보채는 것이다.


엘 따콜레토(El Tacoleto)

테디커피 아시아리코 안쪽에 있는 따코집이다. 깔끔하고, 브로콜리 볶음도 있어서 따코와 궁합이 잘 맞았다. (따코 메뉴만 두 개 시키면 또 배터져 죽는다.)


엘 보니(El Bony)

집에서 나가다 발견한 새우집이다. 이 산골에서도 새우를 먹을 수 있다니. 일요일 아침 브런치로 출격했다. 어리버리한 직원의 실수로 새우칵테일(Cocteldecamaron, 커다란 잔에 새우와 야채, 살사를 부은 것)가 큰 거 작은 거 두 개, 문어 볶음이 하나 나왔다. 또르띠야는 한참 뒤에야 나왔다. 태평양 건널 때까지 새우 생각이 안나게 먹었다.

콜로체(Coloche)

분위기 전환을 위해 파스타도 먹으러 갔다. 아시아 음식으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파스타와 샐러드, 와인을 겻들였다. 간만에 식당에서 차분함을 느꼈다. 근처에 멕시코 와인을 파는 곳이 있어서 한 병 사서 숙소에서도 마셨다.


롤과 스시_아시아리코(Asiatico)

여편님이 초밥이든 김밥이든 안 먹으면 죽겠다고 해서 집 근처의 요이 스시를 발견했다. 심지어 1+1 행사라 하나 가격에 롤 두개를 샀다. 이건 김밥도 롤도 아닌 것이 한 줄에 밥 네 공기는 들어갔을 정도로 꾹꾹 눌러쌌다. 이렇게 사단이 난데에는 사연이 있다. 산크리스토발엔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 아시아 음식도 괜찮은 곳이 많다. 첫날 찾아간 태국 식당은 휴가 중, 그래서 찾아간 아시아리코도 휴가 중이었다. 우리가 떠나기 전 마침내 아시아리코가 문을 열었다.

사장이자 쉐프님은 한국 분이셨다. 롤을 말아주셨는데 우리가 상상한 그 맛, 아니 일본에서 먹은 것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아보카도 롤에는 아보카도가 잔뜩, 새우롤에는 새우가 잔뜩 멕시코 식재료와 그의 솜씨가 환상적인 조화였다. 점심부터 롤 두 개에 볶음밥 하나를 먹고 말았다. 지진 때문에 휴가는 제대로 즐기지 못하셨다고 한다. 대신 전설의 과테말라 럼과 근처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아시아 식당을 또 추천해주셨다.


추천해주신 식당을 찾아갔다. 라멘 말고도 팟타이 쌀국수 등의 메뉴를 팔았다. 라멘을 먹었다. 면을 직접 뽑는 곳이라고 했다. 두부 디져트도 줬다. 두부도 직접 만든다고 했다. 맛있었다. 또 먹고 싶었다. 아쉽게도 월, 화를 쉰다고 했다.


(사생활 등을 생각하여 쓸까말까 했으나, 테디 빼고 산크리스토발 여행기를 쓰면 너무 허전할 것 같았다.)

Teddy’s Coffee Factory_https://www.facebook.com/Teddys-Coffee-Factory-743368225792028/

태국 식당에 아시아리코까지 휴가라고 절망하던 차, 바로 옆에 꼬미다 꼬레아(한국음식, Comida Corea)가 보였다. 그런데 식당 이름은 테디 커피다. 다음날 인터넷에서 확인해보니 한국음식을 팔긴 파는 듯하다. 돌진하는 여편님을 막을 수 없었다. (난 귀국이 코앞인데 또르띠야 한 장이라도 더 먹어야 했다.) 어리버리한 직원을 제치고 사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김치도 더 주셨다. 비빔밥과 라면을 시켰다. 맛있게 먹었다. 원래 카페 가서 커피를 마시려다가 라면의 열기를 바로 지우기 위해 커피를 시켰다.

프렌치 프레스로 바로 진하게 내려서 고풍스러운 잔에 담아줬다. 일반 식당의 커피 맛이 아니었다. 여운을 즐기고 커피 맛있다고 하니, 사실 남편 분이 근처에서 커피 공장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식당 이름이 테디의 커피 공장인 것이다. 콜롬비아에서부터 커피에 빠져서 귀국길에 생두를 좀 가져가볼까 한다고 하니, 한번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일반 카페나 커피 볶는 집에서도 생두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며칠 뒤 아침에 가게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사장님과 테디, 푸른 눈의 개 블루까지 차를 타고 공장으로 갔다. 공장은 시내에서 살짝 외곽에 있었다. 간단히 공장 구경을 하고, 직원이 커피를 한 잔 내려주었다. 콜롬비아 커피였는데 역시 품격있었다. 치아파스 커피는 멕시코 내에선 최고로 꼽히지만 세계적으론 그리 유명세를 타지 못한다. 실상 유명한 과테말라 안티구아와 같은 산맥이라 품질이 더 좋은 경우도 많고, 가격은 저렴해서 이걸 사다가 과테말라 커피라고 속여서 파는 업자들도 있다고 했다. 와하카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테디의 커피 설명에 부지런히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생두를 부탁드리니 Caracolillo(피베리라고 알려진 커피 체리 하나에 생두가 하나만 들어간 커피), SHG Organico(치아파스 유기농 커피는 유기농 커피 중에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Marago Blend(Elephant, 코끼리 원두라고도 불리는데, 크기가 크다는 거지, 코끼리똥 커피는 아니다.)를 조금씩 골라주셨다. (말도 안되는 가격만 받으셨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음에 또 식당에 가서 치킨을 먹었다. 먹고 나서 테디, 사장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훈훈한 시간이었다. 떠나기 전 다 읽은 책 한 권을 드렸는데 또 원두를 500그램이나 주셨다. (이것도 더 사올걸 후회할 정도로 볶은지 한달이 지나도 맛있었다.)


카라히요 카페(Carajillo Café)_http://carajillo.mx

테디 커피를 만나기 전 과달루페 거리의 많은 카페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다. 한쪽엔 카페가 있고, 다른쪽엔 토스타도르(TOSTADOR, 로스터)도 있다. 여기 토스타도에서도 생두를 판다고 했지만 볶은 원두랑 같은 가격을 받는다고 했다. 우선 San Pedro 원두를 사서 숙소에서 내려 마셨다. 신기하게도 좀 식으면 아몬드즙 같은 고소함과 든든함이 밀려왔다. 카페에선 TYC라는 이름의 블랜딩 커피를 팔았다. 블랜딩인데도 여러가지 오묘한 맛이 잘 어우러졌다. 떠나기 전 토스타도에서 TYC와 부르봉(BOURBON Y CATURRA) 원두를 샀다. (170페소) 둘다 훌륭했다. 인기가 많아 토스타도에서 볶은지 하루 이틀 밖에 안된 여러 종류의 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멕시코 커피의 성지답게 블루커피 등등 좋은 카페와 토스타도가 많지만 테디와 카라히요 커피 마시기에도 바빴다.

하지만 얼마전 산크리스토발에도 스타벅스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속상했다. 연대와 투쟁의 치아파스 인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 성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열발자국만 걸어가면 풍미도 신선도도 최고인 커피들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즐비한 곳, 산크리스토발라스카사스 다.


Cacao Nativa

치아파스 카카오 체인점이다. 과달루페 거리 초입에 있는 곳을 애용했다. 분위기도 쾌적하고, 핫쵸코도 진하기별로, 우유 있이 없이 가능했다. 오후 5시쯤 살짝 추워질 때 저녁의 열기를 고조시키기 딱이었다. 시장에서 카카오 구할 길이 없어 여기서 파는 100% 카카오 500그램(230페소)을 사왔다. 와하카에서 산 것만큼 신선하지 않았다.



Mercado de Artesanias de Santo Domingo

광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만나는 시장이다. 그간 수 많은 공예품 시장을 가봤지만, 관광객 대상으로 한 시장 중에 최고다. 워킹 투어로 간 이후 근처를 지날 때마다 종종 들렀다. 보면 볼수록 집집마다 다른 특색이 보인다. 와하카처럼 여기도 주변 마을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대부분의 공예품들은 하나하나 마을에서 직접 만들어 온 것이다. 호박같은 보석도 판다. 주위엔 박물관과 성당도 있는데 지진 우려로 운영하지 않았다. 고심고심 고심 끝에 새와 꽃이 수 놓아진 쿠션 커버 2450페소, 식탁용 깔개 4600페소, 유니콘/투칸/돼지/다람쥐 인형 250페소, 개량한복 느낌의 티셔츠 150페소, 뽐뽐과 카메라 넣을 손가방 등 225페소를 썼다. 모두 충실히 거실과 식탁을 장식하고 있다. 마침 집중 쇼핑의 날이 주말이라 적당히 지를 수 있었다.


Mercado Jose Castillo Telemans_1005

산토도밍고 시장 위로 가면 가까운 일반 시장이 있다. 겉으로 보기보다 들어가보면 시장 규모가 크다. 각종 과일, 야채, 고기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것을 판다. 우린 요리수업에 봐둔 살사의 재료들을 찾았다. 이왕이면 씨로 구입해서 한국에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토종 씨앗은 없었다. 대부분의 고추 씨앗은 이미 거대 종자회사들에서 파는 것이었다. 역시 수확해도 거기서 다시 씨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단 사봤다. 돌아다니면 닭과 칠면조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어떤 아주망들은 닭을 거꾸로 해서 닭다리를 잡고 있었고 닭은 꼼짝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외곽 마을에서 손으로, 자전거로, 차로 데리고 온 아이들이다. 나오는 길에 보부상에게 또르띠야 누르는 도구 35페소, 나무 주걱을 5페소 주고 샀다. 가게의 반값이다.

시장 외곽에는 여러 마트가 있다. 마트에 들어가서 우리가 사랑한 Sanissimo 옥수수 비스켓을 샀다. 귀국길 공항에서 간식으로 먹고, 한국 와서 엄마들 맛보여드렸더니 당장 다 내놓으라고 했다.


Merpo Sur_1007

와하카 식탁 깔개와 법랑컵과 그릇에 대한 미련이 남아 더 일상적인 걸 찾고자 큰 시장으로 갔다. 콜렉티보를 타고 갈 수 있다. 아빠 일 도우러 나왔는지 차장 어린이의 눈빛에 책임감이 초롱초롱했다. 시장이 끝도 없이 이어진 곳이었다. 정말 다양한 것을 팔았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우리 기준, 시골에서 책가방, 나일롱 츄리닝 등을 사러 오는 느낌이다.) 청과물 시장에 가면 진짜 어마어마한 양의 토마토와 바나나를 볼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나름 재밌는 곳이다. 간식으로 망고와 옥수수를 사먹었다.


Mercado de Dulces y Artesanias Ambar_1007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산토도밍고 시장과 큰 차별점이 없다. 실내에 좀 더 쾌적하게 정리했다는 정돈데 눈에 띄는 물건은 없었다.




네미 사파타(NEMI ZAPATA)_http://www.nemizapata.com/

워킹투어 때 들른 곳이다. 사파티스타와 관련된 굿즈를 판다. 특히 칠레 화가 BEATRIZ AURORA가 아기자기한 그림톤으로 그린 그림들을 자석, 엽서, 포스터의 형식으로 파는 게 매력이다. 세계평화 등의 메세지가 멕시코의 토속적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있다. 자주 들르며 자석, 엽서 포스터 등 300페소 어치를 샀다.

과달루페 거리에도 사파티스타 굿즈를 파는 곳들이 몇 개 있다. 그 중 여성 사파티스타 굿즈 가게에서 여편님은 붉은 에코백을 하나 샀다. SIN MUJER NO HAY REVOLUCION, 여성 없이 혁명없다. 자본주의는 마초라고 했으므로 맞는 말이다.


엽서 쓰기

시내 가게에서 파는 엽서들은 별로 시원치 않았다. 다행히 네미 사파타에서 좋은 엽서를 대량 발굴했다. 엽서 하나 보내겠다고 해놓고 미루던 곳들에 일괄 배송했다. (모두 다 한달 남짓, 우리보다 늦게 잘 도착했다. 엽서 배송비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


서점_Librería Chilam Balam & Abuelita Books

시내에도 여러 서점이 있다. 광장 바로 윗쪽에는 Librería Chilam Balam가 있는데 일반 서점이면서도 멕시코, 치아파스 관련된 서적도 많이 비치되어 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걸 기념으로 샀다. 350페소. 대신 네루다의 시집은 헌책방 Abuelita Books에서 샀다. 오 년 전에도 여기서 쿠바 가이드북을 샀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주인이 치아파스 시집이라며 엄청 낡은 종이 덩어리를 줬다. 나중에 길거리의 다른 서점에도 마구 비치된 걸로 보아 숙소에 기증하고 왔다. 그 외에 아기자기한 서점이 또 있었다. 프리다 그림책을 사오는 걸 깜빡했다.


그 외 길거리 상점들에서 과테말라 럼(ZACAPA RUM, 정가 1000페소, 멕시코시티 공항 면세점에서 30% 할인에 1+1 할인 중이었다. ) 아디다스 모양의 또르띠야 티셔츠 2360페소, 집 근처 가게에서 범낭컵 4, 각질 제거용 천연 목욕솔 4개 등을 샀다. 동주전자, 동후라이팬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동후라이팬이 로스팅에 그렇게 좋다는데 아쉽다.



정신없이 쇼핑을 하고, 떠나기 전날 짐을 쌌다. 대략 한 시간이 걸렸다. 호스트에게 내일 공항 가는 셔틀이 새벽 5시로 당겨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어 곧 도로가 통제될 예정이라고 한다. 더 알아볼 사이도 없이 인터넷이 안됐다. 약간의 불안감 속에 일찍 잠이 들었다. 다행히 셔틀은 5시에 집 앞으로 왔고, 질풍같이 툭스틀라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체크인까진 한참 시간이 남았다모던한 공항을 배경으로 꼬깃꼬깃 비닐에 싸온 아보카도와 파파야, 바나나를 실컷 먹었다. 나도 여편님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일기장은 1011일부터 하얗다.



부록_영화_다니엘 블레이크

귀국 동기부여를 위해 봤다. 빡침이 끊임없이 빡치는 세상이다.


부록_도서_마르코스_21세기 게릴라의 전설_베르트랑 데 라 그랑쥬_박정훈_휴머니스트

콜롬비아에서 읽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에 대한 이야기다. 다소 비판적으로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 운동을 다뤘다. 지금은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http://enlacezapatista.ezln.org.mx/


부록_도서_비아캄페시나_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

중남미를 중심으로 전개된 농민운동 이야기다. 사람보다는 단체와 관련된 이야기라 생각보다 흥미가 덜했다.

https://viacampesina.org/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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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전주, 맛의 보고다. 멕시코시티에서 맛에 눈을 뜬 우리는 주저없이 와하카로 향했다. 가는 길은 평탄했다. 버스는 안락했다. 오랜만에 보는 뻥 뚫린 교외의 풍경이다. 유명한 푸에블라 화산을 봤다. (며칠 뒤에 터진다.) 와하카 터미널에 도착했다.


와하카(Oaxaca de Juarez)_0918_0930

와하카 주의 주도이다. 그런데 그냥 와하카, 와하카시티로도 많이 불린다. 버스도 와하카 가는 버스는 와하카데후아레즈로 간다. 가운데 네모난 올드타운 구역이 있고, 그 구역 너머에 월마트를 포함한 마트들, 우리가 머물렀던 약간 부촌 등이 있다. 멕시코 전역은 물론, 와하카 주 내의 다른 마을로 가는 교통편이 많다. ADO 버스 터미널도 시내에 있어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숙박_까사 기기_한채_2

귀국도 확정된 마당에 숙소에 돈 아낄 이유가 없었다. 중심가는 아니지만 침실과 거실, 부엌으로 구성된 집을 공기방울로 빌렸다. 방 한 두개 빌려주는 곳은 아니었다. 정원을 중심으로 대문쪽은 주인집이 쓰고, 안쪽 1,2층의 여러 방을 빌려주는 모양이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 다른 게스트는 없었다.) 연락한 기기 말고도 부모님이 운영을 돕는다. 정원도 예쁘고, 고양이도 몇 마리 돌아다니고, 주인 가족도 잘 챙겨주고, 집도 이층이라 밝고 조망이 좋았다.

집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창문으로 비치는 정원을 바라보며, 밀린 여행기를 쓰는 일이었다. 여편님이 실컷 주무신 덕분에 콜롬비아, 쿠바의 여행기를 여기서 쓱싹 썼다. 도착 다음날 큰 지진은 느끼지 못했고, 토요일 아침에 지진이 나는 바람에 여편님을 깨워 마당에 모여 진동을 느꼈다. TV가 있어 뉴스도 보고,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봤다. 책도 부지런히 읽었다. 아침에 문 열어 놓고, 거실 테이블에 앉으면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새소리 운치가 장난아니다.

아침은 주로 주변의 빵집에서 구입한 빵이나 시장의 또르띠야, 포장해서 파는 과일(시장이나 집 앞, 망고, 파파야, 파인애플 등)과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먹었다. 점심은 외식을 하고 저녁은 대부분 숙소에서 만들어 먹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먹어본 호박꽃 퀘사디야도 만들어보고, 새우화지타도 만들어 먹고, 바질 패스토로 파스타도 먹고, 버섯을 듬뿍 넣은 알람브라도 시도했고, 시장에서 파는 와하카 소세지(멕시칸 분홍색인데 맛이 없다.)도 볶아봤다. 제육볶음, 된장찌개, 짬뽕 등도 만들어 먹었다. 가장 빛이나는 식재료는 쭉쭉 늘어나는 와하카치즈(Queso Oaxaqueño)와 다양한 종류의 버섯이었다.


교통_시내/시외 버스

숙소에 머문 시간이 많았지만 나름 부지런히 시내를 왔다갔다했다. 보통 시내를 갈땐 걸어갔다가 안쪽 깊숙이 들어가버리면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물어물어 버스 타는 곳을 찾아냈고, 여편님은 능숙하게 병원이나 Inegi로 가는 걸 잡아탔다. 요금도 저렴하다.

교외로 나갈 때(Teotitlán del Valle 갈 때 딱 한 번 탔다.)는 야구장(Estadio Eduardo Vasconcelos)에서 그쪽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그간 남미에서 탔던 목적지만 덕지덕지 붙어있던 시골 시외버스(콜렉티보 ㅂㄷㅂㄷ)를 생각하면 매우 쾌적하고, 겉에 페인트칠도 체계적으로 되어있다.

주변_Reforma_Plaza Parque

우리 숙소 주변을 보통 레포르마(Reforma, 리폼? 재개발?)라고 불렀다. 숙소에서 은행과 슈퍼있는 쪽으로 가니 떡하니 신생 쇼핑몰이 있었다. 별다방, 나잌, 사과가게 등이 있다. 안에 대형마트는 없다. 와하카가 장기체류의 명소로 부상하면서 부자들이 많이 생겼나? 사람들이 많다. 굳이 여기서 밥을 먹고 싶진 않았다. 종종 둘러보기만 했다.나름 부촌인 것 같아 은행과 서점도 있고, 맛있는 식당도 많았다. 집 옆엔 와하카 것을 비롯해 각종 수제맥주를 파는 곳도 있었다. 한 번 먹었다. 맛은 있었으나 매우 비쌌다. 일반 맥주만 파는 점방도 있어서 자주 애용했다. 여편님의 감기 기운도 말끔히 나아서 코로나를 실컷 마셨다.


시장_Mercado Hidalgo

숙소에서 가까운 시장이다. 크진 않아도 갖출 건 다 갖췄다. 신선한 야채과일 가게를 주로 이용했다. 주인이랑 눈이 익어서 얘기도 하고, 버섯도 추천받는 사이가 되었다. 스페인어 잘 한다고 칭찬받았다. 정육점에 고기 사니까 앞에 아줌마가 김치 안다고 했다. 입구에선 또르띠야와 살사를 파는 아줌마가 둘이 있다. 한 아줌마가 장사를 잘한다. 또르띠야와 살사를 사다두니 아침에도 저녁에도 먹기 편했다. 식당가에선 먹어보지 않았다. 앞에서 가끔 길거리 음식을 판다. 또르띠야 안에 밥이 있고, 거기에 양념을 끼얹은 김떡순 같은 조합을 줬다. 둘다 하나씩 먹었다가 배불렀다.


슈퍼_CHEDRAUI, BODEGA, SORIANA

근처 슈퍼가 시원치 않아 대형마트를 찾았다. 거리가 좀 멀어서 삼사일에 한번씩 갔다. 체드라우이가 수입식품 코너가 잘 되어 있어서 애용했다. 나초도 5가지 넘게 팔아서 멕시코 마트는 재미가 있다. (시식도 가능하다.) 해산물도 여기가 더 싱싱했다. BODEGASORIANA가 집에서 더 가까웠지만 수입코너가 부실해서 잘 안갔다.


주변_식당

첫날 저녁엔 근처 슈퍼도 시원치 않고, 어두워지니 식당도 잘 안보였다. 진성갈비 느낌이 나는 곳에서 간단히 소고기 구이와 국을 먹었다(이렇게만 시켜도 배터진다.). 점심 먹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근처 식당 가면 수프와, 고기까지 푸짐하게 저렴하게 줬다.

이 동네 길거리 음식 중에 가장 매력적인 것은 소머리타코였다. 머리고기 삶은 걸, 또르띠야에 듬뿍, 간결하게 내줬다. 꿀맛이라 두 번 먹었다. 그리고 와하카에서 먹은 음식, 아니 멕시코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건, 시외버스 타러 가다 발견한 따끼또(TAQUITO)집이다. 간판도 없이 아침, 점심 장사를 하는 집인데 입구에서 아줌마가 가열된 은색 판에 또르띠야를 반죽해서 굽고 있다. 다양한 속재료들이 있어서 하나 당 10페소씩인 따끼또는 타코보다 좀 더 묵직하다. 제육볶음이나 노빨볶음 등이 핵맛이다. 거기에 음료수도 서비스로 준다. 오이로도 음료를 만든다.


Saludable

근처에 있는 깔끔한 식당이다. 브런치 메뉴를 파는데 충격적으로 양이 적었다. (멕시코 기준) 나름 건강을 생각한 집이다.


Taqueria Flamita Mixe

병원 앞에 있는 식당이다. 병원 직원, 학생들이 단체로 찾는다. 알람브라와 바베큐를 시켰다. 진짜 푸짐하고, 살사도 여러가지로 맛있다. 학교 앞 사랑분식느낌이다.


Marisquería Don Ramón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해산물식당이다. 밀또르띠야인게 아쉽지만 (다 깊은 뜻이 있겠지) 새우타코는 푸짐하고 맛깔난다. 다른 요리도 맛있어서 점심부터 북적인다.


Caldos Los Cuchos

계속 지나치다가 마지막날 고심 끝에 들어간 집이다. 이름대로 깔도(수프)가 메인인 곳이다. 규모가 크고, 사람도 많다. (전주국밥?) 그간 일반 식당에서 먹은 수프는 대부분 그냥그랬다. 역시 국밥은 국밥집에서 먹어야 했다. 멕시코 국밥은 또 다양한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산크리스토발에서 국밥을 애용하는 디딤돌이 됐다.


이제 시내 이야기다.


시내_관광정보센터(Secretaria de Turismo)_0921_http://www.oaxaca.travel/index.php/en/

도착 다음날 시내로 가서 와하카에서 할 관광정보를 뒤졌다. 가장 열정있던 요리수업을 알아봤다. 유명한 Casa de los sabores, Season of my heart를 가봤다. 모두 가격이 비쌌다(1500페소?). 우리 같은 배낭여행객을 타겟으로 하는 수업이 아닌 것 같다. (우린 단체 맛원정대가 아니다.) 주변에 천연염색 하는 곳이나, 시골 또르띠야 만드는 곳, 메스칼 공장 투어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를 세밀하게 보는 투어는 별로 없었다. 하루에 몽땅 거기에 유적 몇 개(돌덩이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까지 다 둘러본다고 했다.

다음날 허탈한 마음으로 시내를 가다가 여편님이 관광정보센터에 가보자고 했다. 앞에 사람들이 진득하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왔다. 직원이 우리의 고민을 정확히 이해했다. 우선 버스를 타고 Teotitlán del Valle에 가면 직물 작업하는 곳과 메스칼 공장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직접 전화해서 담당자에게 예약도 해주었다. 다녀와서 또 오면 저렴하게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곳도 주선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요리수업은 하지 않았다.) 이땐 열정이 넘쳐서 주변의 관광안내 책자도 다 가져왔다. (결국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Teotitlán del Valle_0921

시내 더 들어가기 전에 Teotitlán del Valle 다녀온 얘기부터 하겠다. 야구장 앞은 번잡했다. 그쪽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는 우리를 마을 진입로 앞에 내려줬다. 여기서 콜렉티보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나무 아래 택시가 있었다. Arte y Tradicion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 탈 필요도 없이 가까운 곳이었다.) 마을 안이 아니라 한참 밖에 나와있는 곳이었다. (단체 관광객을 겨냥한 위치인 것 같다.) 결국 마을 구경은 하지 못했다.


Arte y Tradicion

미리 연락받은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줬다. 천연 염색에 대해 설명해줬다. 염색을 위해서는 각종 천연재료가 활용되었다. (나뭇잎, , 꽃 등) 화학적 조합과는 달리 매우 보드라운 색감이었다. 실재로 색깔 입히는 과정을 보여줬다. 양털은 호주에서 수입한다고 했다. 멕시코 양털은 질이 안 좋단다. 작업장을 둘러봤다. 젊은 친구들부터 나이 많은 아저씨까지 열일하고 있었다. 커다란 배틀로 작업하는 아저씨는 장인 냄새가 펄펄 풍겼다.

따로 관람료는 없고, 작품을 보여주고 파는 식이다. 천연+수제라 시장이나 길에서 파는 거랑은 퀄리티가 다르다. 여긴 물고기, , 꽃 문양이 많아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좀 사이즈가 되겠다 싶은 건 다 몇 천 페소였다. 얼굴만한 물고기 문양을 두 개 샀다. (개당 300페소)

관광안내소 직원의 주문대로 아저씨가 우리를 택시 탔던 마을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Fabrica_Don Agave

큰 길 주변엔 메스칼 공장이 여러 개 있었다. 추천 받은 돈 아가베 간판이 보였다. 직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연락하고 온 건 모르는 것 같다. 곤잘레스 느낌으로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다.) 한국에선 데킬라가 더 유명하지만 데킬라는 데킬라(Tequila)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메스칼의 한 종류다. 전체 메스칼 중엔 와하카 메스칼이 가장 품질이 좋다고 한다. 당연히 종류도 많다.

먼저 밭을 보여줬다. 메스칼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용설란(agave, 선인장류)이 사용되었다. 우리보다 훨씬 크다.

(재배도 하지만 야생 아가베를 사용하기도 하고 이게 더 맛과 향이 좋다. 뿌리를 사용해 술을 만든다. By 여편님) 뿌리를 불에 구웠다가 찧는다. 다큐에서 봤던 말로 돌 돌려서 용설란 찧는 건 안보여줬다. (시기가 아니다.) 그런 다음 큰 통에 담는다. 어떤 건 벌레(Gusano)를 함께 담그기도 한다. 의외로 맛이 있다고 한다.

다음은 시음시간, 대략 4~5가지를 시음했다. 어떤 건 아예 야생 아가베로 담근 것도 있다. 코요테란 놈은 향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작은 병도 천 페소를 넘기도 했다. 좀 싼 건 없냐고 하니, 1리터에 300페소짜리 댓병 메스칼도 보여줬다. 마셨다. 역시 비싼 거랑 맛이 달랐다. 그럼 마가리타는? 더 싼 걸로 만든다고 했다. 더 맛없었다. 취기가 많이 올랐다. (7,8가지 조금씩 마신 걸 생각하면 두 잔은 넘어섰다. 가지러 가는 사이 여편님이랑 맛있는 걸 한잔씩 더 따라 마셨다.) 코요테 작은 놈을 650페소 주고 샀다. 집까지 고이 모셔왔다. 아직도 개봉 안했다.


관광공사 직원은 꼭 여기서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안 그래도 시음한 식당이 마당 한 가운데, 탁 트여서 분위기가 좋았다. 몰레를 추천했지만 전날 먹어서, 따꼬와 칠레데예노를 먹었다. 첼레데예노도 감칠나게 맛있었지만, 충격은 따꼬, 전설의 메뚜기(Chapulines) 따꼬 다. 시장통에도 엄청 많은데 거기선 차마 못먹고 여기서 먹었다. 고소하고, 바삭하고, 매운양념을 한 메뚜기는 또르띠야와 살사를 더하니 꿀떡 넘어갔다. 맛있는 맛이다. 또 배터지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진짜 시내 이야기다.


광장_산토도밍고_Plaza Santo domingo

숙소가 있는 북쪽에서 중심 큰 길을 건너 들어가면, 말 그대로 다른 세상 올드타운이 된다. 사람도 훨씬 많다. 커다란 공원에 분수가 있고, 금요일, 토요일이 되면 여러 먹거리를 파는 장터가 선다. 더 들어가면 산토도밍고 성당과 이걸 둘러싼 식물원(Jardin Botanico)가 있다. 성당 앞 광장에선 나무 아래 앉아서 밥도 먹고, 사진도 찍는다. 성인식 이런 문화가 있어서 여자 애들이 남동생 여럿까지 대동해서 드레스 입고 화려한 촬영을 한다. 골목골목 건물 색깔들이 다양해서 날씨가 좋으면 파란 하늘과 색색이 조화를 이룬다. 괜히 와하카 로고가 형형색색이 아니다. 관광 중심지답게 우편 박물관(Museo de la Filatelia Oaxaca)도 있고, 여러 메스칼을 모아서 판매하는 곳도 있다.


식당_La Olla_0919

유명한 식당이다. 파울라가 우리를 위해 친구들에게 와하카 명소 추천도 받아줬는데 포함되어 있었다. 점심 메뉴는 비교적 저렴했다. 여편님은 몰레 네그로(Mole Negreo)를 난 버섯리조또를 시켰다. 큰 쟁반에 샐러드부터 깔끔하게 나왔다. 리조또도 맛있었다. 몰레(Mole가 멕시코 말로 전통적인 살사를 뜻한다. 과카몰레도 살사의 한 종류인 것이다.) 네그로(카카오는 검다.)는 카카오와 각종 양념을 더해 졸인 와하카 특유의 살사다. 밥과 닭고기에 이 살사를 얹어준다. 살사로는 안어울릴 것 같지만 제법 맛있다. (잘 하는 식당에서 먹어야 한다. 잘못 먹고 탈난 사람도 있다.) 짜장에 밥 얹어 먹는 느낌도 난다. 자주 당기는 맛은 아니었다.

유명한 Casa de los Sabores 요리 수업도 같이 운영하는 곳이다. 주인인 Pilar Cabrera가 유명 요리사다. 요리 수업이 비싸서 대신 식당에서 파는 요리책을 샀다. (영어책이다. 가까운 미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배워가나 보다. 요리 수업 들어도 요리책은 따로 판단다.)


정원_Jardin Botanico_0930

성당 뒤의 성벽 안에 식물원이 있다. 미루고 미루다 밤버스 타고 떠나는 날 가게 됐다. 금요일 오후에 가니 오늘 관람은 끝났다고 한다. 내일 오란다. 정해진 관람 시간에 가이드를 동반해서만 볼 수 있다. 토요일이라 오전 10시에 관람이 있었다. 사무실에 입장료를 내니, 모자도 빌려준다. 모기약도 뿌리라고 준다. 가이드가 온다. 와하카 지역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들을 보여준다. 와하카는 멕시코 내에서 생명 다양성이 으뜸인 곳이다. 대략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다. 역시 놀라운 건 선인장이다. 나문지 뭔지 분간 안가는 것들도 있다. 쭉쭉 뻗은 선인장 숲도 있다. 신기한 세상이다.


건축물과 문화센터_Arquitos de Xochimilco_Instituto oaxaqueño de las artesanías_0922

여편님이 오늘은 문화센터와 건축물을 보러 간다고 했다. 따라갔다. (늘 그런다.) 우선 고대 건축물을 본다고 했다. 오래됐다. 근처에 문화센터 같은 곳이 있다. 와하카 지역의 다양한 공예품들을 팔고 있다. 간단하게 투칸 열쇠고리 하나 샀다.


광장_플라자 단자_Plaza de danza_0923

관광정보센터에 토요일 아침 세계 춤 공연이 있다고 했다. 주말 귀찮음을 뿌리치고 부지런히 갔다. , 며칠 전 지진의 여파인지 아무도 없다. 주변은 여러 Soledad 광장, 건물이 많다. 어디서나 고독한 기운이 흐르는 멕시코다. 장례행렬도 지나간다. 음악이 구슬프다.



광장_소칼로(Zocalo)

산토도밍고를 지나 더 중심부로 들어가면 소칼로 광장이다. 여긴 분위기가 더 다르다. 진정한 중심가다. 주변 카페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가운데엔 지진 피해 모금을 하는 사람들, 무슨 일인지 텐트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있다. 한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시장통이 시작된다.

공예품 매장이 있었다. 길에서 파는 것보다 약간 더 깔끔한 것들을 모아서 판다. 도매상 같은데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여기서 식탁용 짚깔개를 샀어야 했다. 와하카에서 쓰는 나무로된 둥그런 거랑 치아파스에서 쓰는 거랑은 또 달랐다. 끝까지 구하지 못했다.

한쪽엔 대형 새우집이 있었다. 지나기만해도 엄청난 새우튀김의 열기가 쏟아진다. 시장통 오면 한 번씩은 들르고 가는 곳인 것 같다. 못 먹어서 아쉽다.


시장통 안에 별도 건물로된 시장이 여러 개 있다.

시장_Mercado 20 de Noviembre

먹거리 시장이다. 몰레 네그로, Tlayuda 같은 와하카 음식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안쪽엔 고기 골목이 있다. 대략 20~30개의 고기집들이 소세지, 곱창, 스테이크를 굽고 있다. 한국 수산시장 회센터처럼 식당에 살사와 야채, 음료(콜라나 맥주) 값을 내고, 고기집에서 고기를 사오는 식이다. 또르띠야는? 아줌마들이 지나가면서 판다. 고기 진짜 맛있다. 곱창도 기름기 쏙 빠지게 잘 굽는다. 다시 한 번 멕시코에선 고생해서 고기 사다 구울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낀다. 토요일 점심부터 또 배가 터졌다.


시장_Mercado Benito Juarez

일반 시장이다. 위 아래 두 시장을 섞어 놓은 느낌이다. 메뚜기, 벌레부터 가지가지 재밌는 것들이 많다. 와하카 지역별 다양한 의상을 볼 수 있다. (꽃 수를 놓았는데 동네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프리다가 여기서 장을 보고 의상실을 꾸몄을 것 같다. 여편님은 원피스까지 입어보다가 가벼운 티만 샀다.


시장_Mercado Artesanal

전통 의상, 공예품 등을 파는 곳이다. 위 두 시장에 비해 다소 활기가 떨어진다.


메스칼_Mezcal_El famoso

시장통에 종종 보이는 메스칼집이다. (공장은 Teotitlán del Valle 돈 아가베 옆에 있었다.) 메스칼 투어 가기 전에 이미 여기서 한 병을 샀다. 구사노 들어간 것 부터 기본적인 몇 가지가 있다. 와하카에 머물면서 종종 마셨다. 메스칼 마시다 목 마르면 맥주를 마시라고 배웠다.

카카오_Chocolate Mayordomo

여기도 시장통 주변에 여러 매장이 있는 곳이다. (터미널에도 매장이 있다.) 와하카의 대표 카카오 판매 브랜드이다. 통 카카오부터 잘개 쪼갠 것, 으깬 것, 초콜렛, 몰레 네그로(여기 사람들에게 카카오는 디저트가 아니라 식재료다.) 등을 판다. 와하카 떠나기 전에 여기서 카카오 닙스 1킬로를 샀다. 한국도 카카오 닙스가 유행이라 다들 먹고 있었다. 비교가 안됐다. 현지 시장에서 바로 구매한 것이라 그런지 향미와 풍미, 신선도가 압도적이었다. (치아파스 산크리스토발에서 사온 카카오보다도 질이 훨씬 좋았다.) 홈쇼핑에서 페루산 카카오 닙스를 드시던 모 어머님은 이거 불러먹을 방법 없냐고 하셨다. 다른 카카오 닙스는 줘도 안 드시던 아버님도 탈탈 털어 드시고 계신다.


멕시코 내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커피가 재배되는 곳이다. (치아파스 바로 옆이니까)

브런치_Boulenc

원래는 근처 타코집을 가려했으나 닫아서 브런치를 먹었다. 유명한 곳이라 사람이 많다. 치즈 진하게 올려주는 바게트빵이 맛있다. (물론 살사랑 같이 준다.)


카페_Café La Antigua Gourmet

La olla 근처라 들어간 카페, 유명로스터나 커피 체인점은 아니지만 야외 실내 모두 밝고 쾌적하고, 차분했다. 핫초코가 진해서 머무는 동안 애용했다.


카페_Café Brujula_서점_porrua

와하카 시내에 몇몇 지점을 갖고 있는 와하카 커피가게다. 시내에 있는 곳은 오래된 건물에 정원도 있어서 쾌적하다. 숙소 근처에도 매장이 하나 있었다. 여기 기념 티셔츠는 프리다 칼로 케릭터라서 여편님이 하나 샀다. (프로 중남미 커피집 티셔츠 수집가) 시내 매장 옆에는 Porrua라는 멕시코 유명 서점 매장도 붙어 있다. 특히 여기엔 와하카와 멕시코 음악을 많이 소개해뒀다. 릴라 다운스(Lila Downs) la cantina (술집) 씨디를 하나 샀다.


카페_Café Blason

거의 전국적인 체인이라 매장이 매우 깔끔하다. 와하카는 물론 베라크루즈 등 멕시코 각지의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오래 작업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쪽은 어두워서 책 읽고 싶은 우리 취향은 아니었다. 쇼파가 매우 편하긴 했다.


카페_Café Nuevo Mundo

와하카 커피를 내건 집이다. 위 커피들과 다르게 매장에서 로스팅하고 바로 판다. (로스팅 정도도 고를 수 있고, 갈아달라면 바로 갈아준다.) 분위기는 좀 로컬했다. 여기서 산 원두로 숙소에서 모닝커피를 만끽했다.


집 없음_0930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했다. 바로 손님이 들어오기로 해서 10시에 방을 뺐다. 그래도 아래 빈방에 짐을 두고, 화장실도 맘편히 쓰라고 했다. 그래도 이미 우리 방은 없고, 낮에 이런 저런 걸하며 시간을 떼워도 시간이 남았다. 하루라도 집이 없는 건 서러운 일이다. 남미 대륙으로 넘어와 수도 없이 밤 버스를 탔지만, 과야킬 습격사건 이후로 거의 백일만에 타는 밤버스였다. 버스야 타면 졸다깨다 바쁜데 정작 힘든 건 버스 타기 전까지의 허전함이다. 오랜만에 타도 밤버스는 잠이 잘왔다. 새벽 치아파스 주도인 툭스틀라를 지나 산크리스토발로 꼬불꼬불 올라가다보니 잠이 다 깼다.


죽음의 날_Dia de Muerto_1102

9월 독립기념일과 함께 멕시코 최대의 축제날은 112일 죽음의 날이다. (할로윈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귀국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와하카에서 푹 머물면서 죽음의 날을 보내려고 했다. 축제는 멕시코 전역에서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와하카 축제가 가장 성대하다고 했다. 나중에 멕시코를 또 여행한다면 꼭 11월에, 와하카를 다시 찾을 것이다.


음악_릴라 다운스(Lila Downs)

지난 회에 언급한 영화 프리다에도 등장한다. 와하카 출신의 가수다. 멕시코 음악하면 산타나, 라쿠카라차 정도만 알았는데 멕시코시티에서 알게됐다. 파울라도 이 언니를 적극 추천해줬다. 와하카에서 열심히 듣다보니 CD(앨범: La cantina: Entre copa y copa...)를 살 정도로 팬이됐다. 와하카 원주민 출신 엄마와 스코틀랜드 아빠 사이에서 자랐고, 메르세데스 소사가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좀 비슷하다.)

LA CANTINA: ENTRE COPA Y COPA 앨범엔 와하카 문화가 잘 녹아든 곡들이 많아서 보고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진짜 몰레(Mole) 만들 것 같은 라이브: La Cumbia del Mole (En Vivo)_https://www.youtube.com/watch?v=8_qakIoYmso) 산타나와 라이브(Una Noche en Napoles_https://www.youtube.com/watch?v=ks7xvjT8bEE)에서도 옆의 (나름 유명한) 언니들보다 너무 돋보여버렸다. 우리가 오기 직전에 와하카 지진돕기 콘서트를 하러 다녀갔다. 아쉽다.


독서_매혹과 잔혹의 커피사_마크 펜더그라스트_을유문화사

오래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다. 쿠바에서 공수받고 소원을 이루었다. 와하카에서 커피 공부를 열심히했다. (커피 열정이 산크리스토발에서 만개했다.) 나 읽고, 여편님도 읽었다. 미국 중심인게 아쉽지만 (어차피 한국 커피 문화가 태반 미국에서 온 거라) 커피 문화와 산업의 역사에 대해 조예가 좀 깊어졌다.

인상적인 대목은 1900년대 초반만해도 많은 미국의 가정에서 커피를 직접 볶아 먹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부대에서도 꼭 취사병이 커피를 볶았다고 한다. (그러다 간편한 인스탄트가 급격하게 보급됐다.) 그리고나서 대형 로스터들이 등장하고, 균일한 로스팅 어쩌구하는 마케팅이 심해지면서 커피는 원두는 다 사먹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난 집에서 더욱 부지런히 커피를 볶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작가는 개인적으로 프레스로 내리는 게 최고라고해서 프레스도 구비해서 마시고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읽은 두 책과 함께 와하카 디씨엠브레 민박에 기증했다.)


다큐_블랙골드(Black Gold_https://www.youtube.com/watch?v=c28cUBjWtmc_http://blackgoldmovie.com/)

책에서 추천한 다큐다. 1시간짜린데 커피 산업의 불균형을 잘 보여준다. 에티오피아 커피가 더 맛있어 보인다.


다큐_블랙 커피_(PBS- Black Coffee)_https://www.youtube.com/watch?v=TTDy-L0NKIg

책에서 같이 추천한 다큐인데 세 시간짜리라 못봤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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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숙소를 근거로 멕시코 시티 곳곳과 주변을 돌아봤다. 요약하면 리베라와 프리다, 돌덩이다.


소칼로 주변_0909_0910

대진 다음날, 여진을 우려해 하루를 쉬고 9일부터 관광에 나섰다. 2호선을 타고 Bellas Artes역에 내렸다. 지하철엔 시내로 놀러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광장에 나가도 시내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근처에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 프로지도수집가가 지도를 받았다. 시티투어버스도 노선이 여러가지였다. 한 번에 탈 수 있는 패키지가 있었는데 결국 타지 못했다. 프리다가 그려진 버스를 보는 걸로 만족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Museo Mural Diego Rivera_0909

비가 오니 가장 가까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디에고 리베라의 유명한 벽화가 있는 박물관이다. 민중예술을 지향했던 리베라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 벽화에 열정을 쏟았다. 이 벽화 박물관과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 대통령궁에 전설적인 벽화가 하나씩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크고 작은 벽화들이 있고, 큰 방에 유명한 아라메다 광장의 일요일 오후의 꿈(Sueno de una tarde dominical en la Alameda Central)이 있다. 그런데 하필 이 벽화를 배경으로 두고 무슨 토론회 같은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럴거면 입장료 받기 전에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위층에서도 볼 수 있고, 많이 가리는 건 아니라서 열심히 봤다. 그림 속 각 인물이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침략자 피사로부터 판초비야, 프리다, 어린 리베라 등등이 보였다. 사실 이 벽화를 제외하곤 볼게 많지도 않고, 규모도 엄청 작아서 무료인 일요일에 오는 게 좋을 뻔했다.


이 교훈으로 예술궁전은 내일 오기로 하고,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대통령궁으로 가는 골목길, 상점들이 매우 많다. 그 좁은 길로 가는데 비가 쏟아졌다. 다들 가게 안으로 대피했다. 우리가 피신한 가게는 향수가게였다. 각종 향수를 (브랜드 없이) 파는 곳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향 조합도 가능했다. 재밌는 곳이다. 비가 그치고 대통령궁으로 갔다. , 여권 없으면 못들어간단다. (치안에 신경쓰고 나서 여권은 숙소에 두고, 사본만 들고다니던 시절이다.) 광장만 돌아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다음 주말은 멕시코 독립기념일이다. 거기에 맞춰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소칼로 광장의 커다란 건물들을 초흰빨의 멕시코 색깔로 장식했다. 축제 때 여기 올까? 그냥 주말도 이렇게 복잡한데?


광장에선 향토음식문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눈 여겨 보다가 다음날 점심을 여기서 먹었다. 그냥 길거리 음식도 맛있는데 전국의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모아놨다. 참을 수가 없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발목이 잡혔다. 바싹 구운 푸른 또르띠야에 야채와 살사를 가득 얹어준다. 아드득 고소하다. 이제부턴 꾹 참고 둘러보기로 한다. 와하카 원두도 있어서 한통 샀다. 숙소에서 내려 마시니, 마트에서 산 원두보다 훨씬 싱싱했다. 끝으로 가니 줄줄줄 서있는 곳이 있다. 틀라이우다(Tlayudas)라는 와하카 음식이다. 커디란 또르띠야에 찐팥을 두르고 쫀득한 와하카 치즈와 야채, 바베큐된 고기를 얹어 굽고 반으로 접는다. (퀘사디야와 비슷하다.) 우리도 줄 서서 하나를 받아서 반으로 갈랐다. 콜콜한 살사를 곁들여 먹으니 배가 불렀다. 전국적 행사인데 와하카 음식이 반이다. 역시 멕시코에서 제대로 먹으려면 와하카를 가봐야 한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와하카행 버스 티켓을 끊었다.)


대통령궁(Palacio Nacional)_0910

여권을 들고 궁에 들어갔다. 고급진 순찰견과 고양이들이 있다. 벽화를 보러 올라갔다. , 리베라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하나의 벽화에 마야 문명의 탄생, 스페인의 침탈, 투쟁과 민중의 삶이 모두 녹아 있었다. 계단의 벽화를 한참 감상하고 2층의 벽화들도 찬찬히 둘러봤다. 마야의 옥수수 문명을 아기자기하게 그린 벽화가 인상깊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내부 전시실이 있었다. 멕시코 현대사와 각 지역, 문화에 대한 소개였다. (간단해 보이지만 내부가 매우 알차고 큰 전시실이다.) 깔끔하면서도 상세한 소개 자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 보다간 오늘 하루 지날 거 같아서 대충 보고 나왔다.


예술 궁전(Palacio de Bellas Artes)_0910

점심을 먹고 예술궁전으로 갔다. 여기도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줄이 길다. 일요일이라고 다들 무료 전시를 보러 온 것 같다. 기다린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 입장했다. (사실 전날도 줄이 좀 길어보여서 패스했다. 전날 봤어야 했다.) 벌써 4시다. 다행히 오늘은 연장 개방한단다. 바로 피카소와 리베라라는 기획전시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이었다. 미국의 어느 박물관과 번갈아하는 기획이라고 한다. 기획전시실에만 사람이 엄청 많았다. 우리도 유럽에서 한 피카소하고 왔으니 뒤질 수 없다.

피카소와 리베라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설명해줬다. 둘은 동시대의 화가로 교류를 많이 했다. 리베라도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입체파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그리스의 전통으로 파고든 피카소는 그 시대에 더 자연스럽게 표출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표현했다. 마야로 파고든 리베라는 마야 문명의 전통과 지금 억압받는 멕시코 민중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교양이 마구 솟구쳐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층의 다른 전시실은 한가했다. 그리고 이층 복도는 벽화들이 장식하고 있다. 트로츠키 암살을 시도했다는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의 그림에선 광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한가운데 리베라의 벽화가 있다. 뉴욕 록펠러 재단에서 그리려다 철거되어 다시 그린 벽화다. El hombre controladro del universo. 맑스와 레닌, 트로츠키가 노동자와 함께 자본과 귀족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혁명의 열기가 마구 타오르는 순간이다.

다른 기획전시로 Leo Matiz라는 콜롬비아 사진가도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늦었다. 얼른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식당_일식_Matsu

여편님은 일식을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물론 한식재료 사기 전) 일식 인기가 높아서 멕시코시티엔 좋은 일식당이 많았다. (동네에도 많았다.) 이왕이면 시내의 괜찮은 곳을 가기로 했다. 나름 저렴한 가격이라고 광고도 하고, 맛있었다. (외국에서도 일식당은 배신하는 법이 별로 없다.) 우동튀김 세트와 스시 등을 먹었다. 광화문 뒷골목 사보텡에 온 줄 알았다. (대강의 위치도 그러하다.)


카페_Cafe Cielito

멕시코 시티 곳곳에 있는 체인점이다. 눈에 띄어 들어갔다. 베라쿠르즈, 와하카, 치아파스 등 멕시코 곳곳에서 생산된 커피를 블랜딩해서 판다. 원두도 판다. 커피도 괜찮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각종 굿즈들이다. 멕시코 식당에선 파란 범낭 그릇과 냄비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여기선 그 범낭에다가 푸른색의 회사 로고를 새겼다. 주전자도 사고 싶은 걸 참고, 컵만 두 개 샀다. 며칠 전에 부엌에 장식용+티스푼 꽂이로 비치했다.



코요아칸(Coyoacan)_0912

프리다와 리베라가 살던 집, 카사 아술로 유명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이 많은 곳이다. 트램으로 편하게 갔고, 날씨도 좋고, 가는 길에 오리엔탈 슈퍼도 발견해서 기분 좋았다.


까사 아술_프리다 칼로 박물관(Casa Azul_Museo Frida Kahlo)_http://www.museofridakahlo.org.mx/

사람이 많다는 소문에 인터넷으로 예매를 했다. 입장 시간까진 시간이 남아서 근처 시장을 둘러보고 왔다.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직접 사는 입장권이 더 예뻐서 여편님은 달라고 졸랐다. 주지 않았다. 사진 촬영 스티커는 한 명만 샀다. 번갈아 붙이며 찍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프리다와 리베라의 일생(대충 아는 내용)과 둘의 그림이 (프리다 위주)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몸이 불편한 프리다를 위한 곳곳의 침대와 작업실이 눈에 띈다. 집보다 더 좋은 건 정원이다. 파란색 벽돌에 마야 돌조각, 초록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다. 의자에서 광합성을 하니 너무 좋다.


별관엔 의상 전시실이 있다. 프리다가 입었던 옷들이다. 참 토속적인 취향이다. 상점엔 온갖 화려한 굿즈들이 많다. 다른 건 좀 많이 비싸서 엽서만 잔뜩 샀다. 박물관 입장료도 여기가 가장 비싸다. (그 거대한 인류학 박물관이나 테오티우아칸 보다 비싸다. 일반 입장료: 200페소 vs 70페소) 작년의 한국, 그 이전부터 미국에서 여성주의 바람을 타고 인기가 급상승한 것 같다. 사실 이번 멕시코 시티를 둘러보며, 감탄한 건 프리다보다 리베라였다. (이전엔 나도 프리다를 더 좋아했었다.) 그가 민중 예술을 통해 그려낸 가치와 열정은 대단했다. 프리다 역시 그녀의 의상과 그림에서 멕시코의 토속적 문화, 리베라와 함께한 이념적 투쟁(그 지향점 때문에 개떡같은 리베라의 성격과 바람기를 참아준 거 아닌가)이 주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프리다가 화가보다 ‘여성’화가라는 점만을 부각시켜 대중성과 상품성에만 치중하는 느낌이다. 물론 프리다의 자아, 여성 정체성과 관련된 그림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품 세계가 또 있을 것이다. (여편님은 수박 그림을 좋아한다. 왜 자신과 스탈린을 함께 그렸을까? 왜 맨날 멕시코 의상만 입었을까?) 물론 그 중심에 있는 미국 문화계는 민중, 토착민(Indian), 공산주의 이런 단어는 일단 지워버리고 시작했을 것이다.


빨간집_레온 트로츠키 박물관(Museo casa de Leon Trotsky)

코요아칸 중심가를 둘러보고 큰 길로 나가면서 들렀다. 그 레닌, 스탈린과 함께 꼽힌다는 러시아 혁명의 영웅 레온 트로츠키가 살던 곳이다. 스탈린에 쫓겨 멕시코에 망명 온 트로츠키는 리베라와 프리다의 집에 머문다. 그러다 (프리다와 사랑에 빠졌다는 유력한 설도 있지만) 리베라와 사상의 차이로 집을 나와 근처에 머문다. 집 벽은 진짜 기존의 집을 개조해 벽을 높이고, 베란다를 막은 흔적이 보인다. (결국 여기서 최후를 맞는다.)

입장료도 현격히 저렴하다. 안에는 트로츠키를 다룬 신문기사, 그의 사진들이 있다. 정원으로 가면 그가 마지막까지 가꿨던 선인장과 토끼집이 있다. 왜 힘든 일을 손수 하냐는 소년의 질문에, ‘노동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사람이 노동을 싫어해서 쓰겠느냐’라고 대답했다. 안쪽의 별채가 그가 머물렀던 방이다. 워낙 버려지다시피 보존이 잘 되서 100년 전의 생활상까지 보여준다. (욕실, 화장실 등등) 정원과 건물엔 풀이 무성하다. 옆의 파란집과 비교하면 이 빨간집은 관람객도 별로 없고, 초라해 보인다. 아니 아무리 예술이 좋고 위대하다지만 인류와 지금 우리가 그의 사상에 빚진 걸 생각하면 이래도 되는 건가. 안타까웠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래도 조용한 것이 사색에 빠지기 좋은 공간이다.


시장_스티커

코요아칸엔 시장이 많았다. 하나는 일반 시장, 하나는 먹거리 시장, 하나는 기념품 시장이었다. 기념품 시장은 그리 활기 있지 않았다. 그나마 맘에 드는 건 프리다 스티커였다. 해골 스티커도 추가했다.


식당_Taqueria Los Parados

먹거리 시장도 시원치 않아 보였다. 광장을 기웃거리다 맛나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멕시코시티엔 타코를 전문으로 하는 큰 식당도 많다고 했다. 바베큐 타코와 새우탕을 시켰다. 새우탕은 좀 많이 짜고 칼칼했지만, 새우탕면의 라이브 버전이었다. 결국 밥을 추가해서 말아 먹고 말았다. 타코도 가격이 비싼 만큼 고기도 실하고, 또르띠야도 진했다.


카페_El Jarocho

아직 멕시코시티 커피 탐방의 열정이 남아있던 시기, 코요아칸의 이름난 카페를 찾아갔다. 아직 영업을 안한단다. 카페가 대낮에 안 열면 언제 연다는 건가. 포기했다. 멕시코시티에선 그냥 무난하게 마시다 가기로 했다. 그러다 또 시장 건물 한면을 차지한 카페를 발견했다. 모카포트 로고가 인상적이다. 원두보단 카페의 전통에 더 끌리는 풍경이었다. 난 시그니쳐 메뉴인 계피커피를 마셨다. 아메리카노에 계피를 잔뜩 타주는 식이다. 벤치에만 앉아셔 마셔도 맛있었다.



차풀테펙_0913 & 0917

커다란 공원과 박물관이 몰려있는 차풀테펙을 갔다. 지하철로는 꽤나 멀었다. 내리는 순간 그간 못 봤던 고층 빌딩과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을 목격했다. 멕시티의 강남이었다. 역 주변엔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넥타이를 멘 사람들이나,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나 길거리 식당에서 먹긴 마찬가지였다.

어찌저찌 공원쪽으로 건너갔다. 공원도 왠지 매연을 많이 머금은 느낌이다. (차라리 나르바르떼의 골목길이 쾌적하다. 나무 많기로 소문난 동네이기도 하다.) 공원엔 온갖 노점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호수에 오리 타는 사람들도 있고, 야외테라스를 겸비한 서점이 스타벅스와 나란히 있다. 주말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두 번째, 일요일에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갔다. 생각외로 멕시코 시티의 택시 요금이 저렴했다. 그래서 다음날 터미널에 갈 때도 택시를 타버렸다.

국립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_0913_http://www.mna.inah.gob.mx/

점심 먹은 뒤라 티켓을 사고,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가 맛있다. Agua mineral을 달라고 했더니 탄산수를 가져다 준다. 그냥 물은 Agua natural이라고 알려준다.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했다. 늘 느끼지만 멕시코의 안내도는 불친절하다. 이 큰 박물관을 어디서 어떻게 돌아보라는 말이 하나도 없다. 일층을 보다가 연결된 이층으로 가니 거긴 문화영역이다. 다시 일층으로 내려갔다.

일층엔 아주 고대의 멕시코 지역의 문명 흔적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구축된 문명을 보여준다. 잘 알려진 곳 말고도, 유카탄, 와하카 등 멕시코 각 지역에 퍼진 문명에 대해 소개한다. 마야 문명이란 것이 대륙 일대를 다 지배하던 게 아니라, 옥수수 먹고 사는 부족들이 각 지역에 고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박물관의 백미는 실내와 야외에 그대로 옮겨놓은 돌들이다. 작은 돌이 아니라 진짜 피라미드에서 나온 실물 크기의 동상과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문들을 안에 옮겨놨다. 어떤 인류학박물관보다 규모가 크다.

돌들을 다 보고나면 시간이 한참 흐른다. 힘들다. 벤치에 누워서라도 쉬다가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도 재밌다. 각 지역의 토속문화(의상, 음식, 축제 등)을 재현해 둔 곳이다. 비슷한 듯 달라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층 하루, 이층 하루 이렇게 나눠서 보면 좋았을 뻔했다. 기념품 샵에서 투박한 그림을 하나 샀다. 나중에 와하카에 가니 길거리에서 5페소 10페소로 팔고 있었다.


Jadrdin Botanico

복잡한 대로변이 아닌 공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나갔다. 재밌는 그림들을 공원 벽에 전시해두었다. Jardin Botanico도 있었다. 주말 장이 서서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건너편의 Tamayo 박물관도 유명하다고 한다. (문화적으로 볼 게 너무 많다!!) 고르고 골라 무료인 일요일에 현대미술관을 갔다.


현대미술관(Museo de Arte Moderno)_0917_http://www.museoartemoderno.com/

마침 기획전시로 Garry Winogrand라는 미국 사진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한쪽에선 예전 귀족집 물건 만으로 또 전시를 하고 있었다. 이층에 Identidad de Mexico라는 타이틀로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 프리다와 리베라를 비롯해 멕시코의 주요 화가들의 그림이 잔뜩 모여있다. (프리다의 유명한 자화상 그림도 다 여기 있었다.) 멕시코의 시대성, 자연과 화가들의 정체성이 잘 어우려져 있었다.

박물관 뒤에는 기념품 점과 카페가 있다. 카페에서 가볍게 에피타이져를 시켰다가 또 배가 터질 뻔했다.


식당_Los Panchos_0913

블로그를 보니 맛집이라고 알려졌다. (멕시코시티 오자마자 가는 사람도 있었다.) 평범한 입구와 달리 안은 정말 넓고 고급스럽고, 벽면은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넥타이 멘 무리들이 단체로 회식을 하는 분위기다. 우린 점심이라 과카몰레와 호박꽃퀘사디야를 시켰다. , 그간 우리가 먹은 음식들이 동네 분식집 쫄면이라면 이건 3대 냉면의 평양냉면 같았다. 과카몰레를 담아낸 돌그릇하며, 또르띠야 하나하나의 만개하는 고소함, 살사의 진한맛, 나초마저도 한 웅큼 싸가고 싶은 수준이었다. 멕시코에선 저렴한 음식도 맛있지만 비싼 식당은 또 그 값어치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식당_Antojitos Yucatecos Los Arcos_0913

한식당, 한인 슈퍼가 있는 Zona Rosa에 족발집이 있다는 호세호세(블로그)의 제보를 받았다. 유카탄식 돼지 요리인 차모르라고 한다. 진짜 한국 민속촌 바로 옆에 있다. 족발 앞에 한식당은 우리를 1도 유혹하지 못했다. 돼지발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하지만 여긴 술을 안판다고 했다. 옆에 성경 같은 문구가 보인다. 그래도 침착하게 콜라와 족발을 시켰다. 잘 졸여진 느낌이라 부드럽고, 따뜻했다. 수육 메뉴도 하나 더 시켰다. 온 몸에 온기가 돌았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_0915_http://www.teotihuacan.inah.gob.mx/index.php

멕시코 시티 주변에는 피라미드 말고도, 배 타고 꽃놀이하는 호수도 있다. 하지만 호수는 가기도 멀고, 우리 같이 눈에 띄는 관광객에겐 바가지도 심하다고 했다. 유명한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만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에서 가기는 정말 편했다. 트램의 종점이 버스가 있는 Terminal Norte였기 때문이다. (대신 한참을 가야한다.)

멕시코 시티엔 여러 개의 터미널이 있다. 북터미널은 그 중에 작은 축에 속하는데도 규모가 컸다. 8번 창구 구석에 Autobuses Teotihuacan (헷갈릴 일이 없다.)이 테오티우아칸까지 오고가는 버스를 운행한다. 버스는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좀만 교외를 벗어나도 사막이었다. 벌판 같은 곳에 내렸다.


피라미드 구경

입구가 여러 개 있는 모양이다. 티켓을 사고 걸어들어가니 상점가가 나왔다. 여편님이 화장실 간 사이 냅다 저렴한 옥수수 모자를 샀다. (모자는 아직도 집에서 옥수수 냄새를 풍기고 있다.) 모자 안 샀으면 큰일 날 뻔했다. 햇볕이 쨍하니 덥다. 여기도 별로 친절한 안내도는 없다. 본격 유적지로 들어섰다.

쌩 사막일 줄 알았는데 제법 풀이 돋아 있고, 거무틔틔한 돌들이 쌓여있어서 편안하다. 넋놓고 돌아다니다간 해가 다 질것 같다. 유명한 것만 돌아보기로 한다. 우선 태양의 피라미드(Piramide del Sol)로 갔다.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이거 올라갔다오면 허벅지가 남아날까. 12시까지 기다리면 태양이 정확히 피라미드 정점에 내려앉는 걸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라갔다. 계단이 촘촘한 구간은 좀 위험해보였다. 보기보다 힘들진 않았다. 올라가면 유적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주변의 숲과 산세도 보인다. 역시 이런 건 다 명당에 짓는다. 올라오니 바람이 많이 분다. 사진 찍고 내려간다.


여세를 몰아 달의 피라미드(Piramide de la luna)도 가보기로 한다. 여긴 좀 더 낮고 넓은 구조다. 피라미드 위에서 거닐기 좋다. 아늑한 곳이다. 금방 내려온다. 피라미드 주변엔 짤랑짤랑 장난감들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랑 비슷한 모자를 써서 친근감이 넘친다. 여편님은 구멍 두 개 뚫린 거북이모양 피리를 샀다. 우리가 불어도 소리는 잘 난다. 반대편 입구의 굴속 식당까지 찾아가서 점심을 먹는 건 무리일 것 같다. 나가는 길에 일방통행만 허용되는 유적을 봤다. 이쪽이 큰 출입구인지 기념품 상점과 매점이 도열하고 있다. 신기한 색깔의 돌맹이를 판다. 하나 사왔으면 유용한 장식물로 썼을 것 같다.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거부할 수 없는 망고 소년이 있다. 11쯤 도착해서 3시 쯤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오길 잘했다

터미널에 돌아오니 로비에 음악이 울린다. 독립기념일 명절 연휴를 맞아, 귀향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다. 마리아치(Mariachi)를 여기서 만나게 됐다. 다들 가던 길 멈추고 둥그렇게 모여서 본다. (나도 귀향하고 싶다.) 연주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 어디서건 좋은 음악을 만날 수 있는 나라다. 옆에 따꼬집에서 따꼬를 몇 개 집어 먹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소고기를 굽고 비빔면을 먹으니 모래 먼지까지 가라앉는 완벽한 하루였다


참고_친절한 테오이우아칸 방문기(영어)

https://sightdoing.net/how-to-visit-teotihuacan-without-a-tour/



대지진의 여파 속에서도 얘기 잘 통하는 호스트, 사람 냄새 나는 골목길, 프리다와 리베라, 귀여운 돌덩이들, 맛난 먹거리로 대도시의 풍성함을 안겨준 멕시코 시티 시간이었다. CDMX의 상징색인 핫핑크도 잊혀지지 않는다. (택시, 지하철, 버스, 관공서 등등 어디서나 보인다.) 파올라는 마지막 주말에 캠핑을 갔다가 떠나는 날 늦게까지 자는 바람에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Terminal Oriente로 왔다. ADO 버스 전용 터미널이다. 동그랗고 크다. 한 시간을 넉넉히 기다려 와하카행 버스를 탔다.



영화_프리다(Frida, 2002)

멕시코 오기 전, 쿠바에서 봤다. (반갑게도 그 비날레스 민박집 색깔도 멕시코스러웠다.) 난 예전에 감명깊게 본 영화인데 여편님은 안봤다니 충격이었다. 진심 멕시코시티를 가기 전에 꼭 봐야하는 영화다. 멕시코의 전설적인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까사 아술에 얽힌 비화들이 쏟아진다. 또 봐도 재밌었다.


다큐_EBS 다큐프라임_불멸의 마야

멕시코 오기 전 쿠바에서 봤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다소 과테말라 위주) 곳곳에 분포했던 마야 문명과 지금 원주민의 생활에 대해 말한다. 인류학 박물관, 피라미드 보는데 도움이 됐다. CG가 고퀄이라 당연히 해외 다큐 더빙인 줄 알았는데 자체제작이다. 현지에서 섭외한 이들의 연기도 재밌다.


도서_멕시코의 세 얼굴_옥타비오 파스

쿠바에 온 솔님에게 책을 여러권 부탁했다. 멕시코 관련 책이 몇 권있다. 그 중 먼저 읽은 책이다. 문체가 딱딱하고 오래된 책이지만, 인간의 본성, 멕시코 사람들이 갖는 열등감, 역사 등을 다룬다. 열등감 얘기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 시사점이 컸다.


도서_화가, 혁명가 그리고 요리사_바버라 킹솔버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멕시코 시티, 음식, 프리다, 리베라, 트로츠키, 피라미드 등 여기저기에 양념을 팍팍 뿌려줬다. 프리다와 리베라의 집에 요리사로 고용된 소년이 트로츠키까지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특히 까사 아술과 트로츠키 박물관에 가면 작가가 여기를 세세하게 묘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나고 있는 기분이다.


두 책은 와하카 디씨엠브레 민박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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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Ciudad de Mexico)_0907_0918

멕시코는 연방 국가다. 나라 이름은 수도인 멕시코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와 시를 구분하기 위해 멕시코 수도는 국제적으로 멕시코 시티로 많이 불린다. 근교에 큰 피라미드도 있고, 도시 내에도 볼 게 많다. 그냥 수도라서 볼 게 많은 게 아니라 문화 예술적으로도 마드리드,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뺨치게 풍성한 곳이다. 열흘도 부족했다.


시내 교통

도시가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지하철이 잘 되어 있다. 멕시티 공항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나가다보니 지하철 역이 나왔다. 숙소 주인에게 물으니 우버를 추천했다. 우린 꾸역꾸역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낡은 지하철, 환승 구간도 길어서 힘들었다. 아직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공항은 시내랑 가깝다. 택시를 타도 그리 비싸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유명한 관광지도 같이 표시되어 있고, 지하철 요금은 무지막지하게 저렴하다. (5페소) 지하철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사람들 생김새다. 멕시코 특히 멕시코시티는 유럽계와 메스티소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하철엔 백이면 팔구십이 원주민계열인 것 같다. 저렴한 탓에 서민들만 타고, 부자들은 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극명한 인종간 빈부격차가 여기서도 보인다. 숙소는 지하철에서 10분정도 떨어져 있었다. 시내 중심에 두 개 역과 가까워서 큰 불편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알게된 것이 중앙 트램이다. 진짜 멕시코 독립과 역사를 함께했을 것처럼 오래된 트램이다. 시내에 노선이 한 개인 것 같은데 마침 집 앞 큰길을 지나갔다. 시내 중심 광장은 물론이고, 피라미드 가는 터미널까지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요금은 4페소인데 절대 지폐를 받지 않는다. 당황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보던 아저씨가 혼쾌히 내주었다. 에콰도르 사람인데 일본에서도 일하고 지금은 여기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니다보면 큰 도시지만 인정이 살아있다는 걸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숙박_나르바르테 하얀집_10_더블룸

동네는 도시 한 가운데 서울 마포 같은 위치였다. 공항 대란을 마치고, 아침 일찍 도착했다. Narvarte 역에서 내리니 슈페르따꼬(SUPER TACO) 노점이 보인다. 한 번 먹어봤다. 아니, 카르멘의 어느 비싼 식당보다 맛있다. 양념곱창에 밥을 겻들여서 넣어준다. 고추튀김도 있다. 든든하다. 골목, 하얀집에 도착했다. 친절하게 집주인인 파울라와 친구가 맞아줬다. 파울라 친구는 미국에서 공부 중인데 오늘까지 쉬다가 간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방청소가 안되었다. 기다리라하고 서둘러 치워준다.)

집은 파울라가 어릴 때부터 가족과 살다가, 부모님은 외곽으로 이사가고, 파울라는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이 집에서 살기로 했다. 넓지만 워낙 오래된 집이라 하루하루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일층은 부엌과 차고, 그 옆 차고를 거실처럼 꾸며놓았다. 해먹과 선인장이 있다. 2층 방도 엄청 넓고, 햇볕이 아주 잘 들어온다. 파울라는 조명을 공부해서 밝은 걸 좋아한다. 아침을 준다고는 써있었지만 별로 먹을 건 없었고, 주방엔 모카포트 등 있을 건 다 있어서 아침, 저녁 잘 차려먹었다. 일주일 예약했다가 삼일을 추가해서 머물렀다.

파울라가 아예 맛집과 주변 생활 시장, 편의시설 리스트를 적어놔서 생활이 매우 풍족해졌다. 특히 맛집 리스트는 찬양할만했다. 원래 이 구역이 곳곳에 시민들이 찾는 맛집이 많다고 했다. 심지어 타코는 멕시티 제일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오전에 방에도 햇빛이 쩍 드는 것이고, (드디어 쿠바와 카르멘의 습기에서 해방됐다.) 일층 거실의 해먹의자에서 그네를 타며, 커피와 소설책을 보는 순간이었다. (무려 그 소설의 배경이 이곳 멕시코 시티다.)


운명의 밤_0907

여편님은 여정이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난 근처 시장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보통 시장에 가면 밥과 끓인팥, 고기, 또르띠야를 겻들인 정식 메뉴들이 저렴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집엔 인터넷이 고장이었다. 내일 고칠거라고 했다. 오늘 저녁에 중요한 전화를 받기로 했다.

별 수 없이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통화를 했다. 같이 일을 하기로 했다. 10월 중순까지 귀국하면 좋겠다고 했다. 여편님은 그러자고 했다. 부모님들께도 소식을 전했다. 티켓은 내일 끊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동네 식당에서 김치찌개(맛 나는 수프)와 소고기구이(ARRACHERA)를 먹었다. 피곤한 나는 그대로 잠들었고, 여편님은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다 나를 깨웠다.

지진이다. 난 잠이 덜 깨서 흔들리는지 땅이 흔들리는지 모르고 따라 나갔다. 옆방의 파울라도 데리고 나갔다. 땅이 꿈틀꿈틀, 주변은 번개가 쩌렁(나중에 생각해보니 합선으로 생긴 것이었다.) 골목 주민들과 함께 10여 분의 진동을 맨발로 느꼈다. (신발은 우리만 안 신고 나왔다….) 10분 정도 더 기다렸다. 다들 괜찮다며 집으로 들어갔다. , 파울라가 열쇠를 안 갖고 나왔단다. 안에서 자동으로 잠기는 문이다. 망할, 전화도 한동안 먹통이다. 발을 동동 거리다 앞집 아저씨가 들어오라고 한다. 겨우 언 몸을 녹였다. 잠시 뒤 파울라가 열쇠공을 불렀다. 나가서 열쇠공이 문 여는 걸 본다. (실력이 의심된다. ) 한참동안 문을 못 연다. 그러다 옆 차고를 열면 어떠냐고 하니 아! 하고 몇 번 끄적이고 문을 연다.


겨우 방으로 돌아왔다. 불안감에 몇 번을 자다깼다. 결국 여편님은 다음날 감기에 걸렸다. 여전히 인터넷은 불통이다. 조식을 먹을 겸 스타벅스로 갔다. 카톡방이 난리가 났다. 평소에 연락없던 사람들까지 안부를 묻는다. 부모님은 당장 돌아오라고 했다. (무슨수로 당장 돌아가는 비행기를 끊나) 차분히 생각했다. 그래도 남은 기간 멕시코만이라도 더 여행하기로 했다. 대신 시설이 취약한 지역말고, 안전한 도시 위주(와하카, 산크리스토발)로 여행하기로 했다. 한참 검색한 끝에 우선 LA-인천 구간 비행기를 끊었다. (며칠 뒤 산크리스토발 옆 툭스툴라에서 LA까지 가는 비행기도 예매했다.) 지구와 함께 우리의 여행도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있었다.


시장_Mercado Postal & Mercado Narvarte

파울라가 알려준 시장은 나르바르떼 시장, 집에서 큰 길 나가면 바로였다. 첫날 점심 한 번 먹고, 빠에야 특선 메뉴도 먹었는데 그리 활기찬 맛은 아니었다. 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우체국(Postal) 시장이 좋아보였다. 시장이 규모도 크고 싱싱한 것들이 많았다. 점심으로 Chille rellono를 먹었다. 개운한 고추 안에 밥과 고기가 잘 다져들어갔다. 망고, 파파야도 싱싱했다.

사실 역까지 가는 길엔 시장 말고도 위협요소가 많았다. 길에 앉아서 할머니들이 파는 또르띠야의 색은 다 다르다. 검은색, 하얀색, 회색 등등. 역까지 버티지 못하고 길에서 번번히 발목을 잡혔다. 여편님은 따끈한 옥수수수프, 난 든든한 바베큐 타코를 먹었다. 망고도 여기서부턴 거의 안 사먹었다. 길에서 잘라서 파는 것도 맛있었다.

집 앞엔 커다란 푸드트럭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약간 미국식이 가미된 햄버거 가게였다. 친절한 여편님은 주인과 안면까지 텄다. 감자튀김도 맛있고, 살사의 나라답게 소스 맛이 잘 배겨들어있다.


한식_Super Oriental

멕시코 음식은 너무 맛있다. 든든하다. 하지만 이러다 몸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여편님은 감기가 걸려 죽도 먹었다. 주변 동네슈퍼나 마트는 카르멘처럼 아시아 음식이 풍부하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카사 아슐을 가려고 Coyoacan 근처에 트램을 타고 내렸다. 가다보니 Super Oriental! 중국 슈퍼다. 규모가 꽤나 컸다. 중식은 물론, 한식, 일식 식재료가 풍성했다. 짜파게티와 쌀국수, 양념거리를 샀다. 차풀테펙에 갔다가 Zona Rosa에 들리니 한인슈퍼도 들어갔다. 전설의 8도 비빔면이 있었다. 냉큼 샀다. 고추장과 된장을 고민하다 또 된장을 샀다.

짜파게티는 파울라와 나눠먹고, 소고기에 비빔면, 된장찌개, 쌀국수를 우리끼리 해먹었다. 야심차게 갈비김치타코를 시도했으나 (여편님은 피쉬소스, 고춧가루를 활용해 김치도 담갔다. 심지어 파울라는 원래 김치를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껏 수많은 아시아 애호가를 만났지만 대부분 일본, 일식에 관심이 많았지, 이런 친한파는 처음이었다.) 갈비가 설익고 질겨서 망했다. 멕시코 고기들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식당 가면 고기 실컷 잘 구워준다. 굳이 고생해서 구울 필요가 없다.


식당_Los secina_0908

귀국 비행기 발권을 기념하기 위해, 파울라가 추천한 식당을 찾아갔다. 합구정의 잘나가는 힙하지만 약간 비싼 식당같았다. 화지타와 샐러드를 시켰다. 역시 소문난 식당답게 살사가 각별했다. 또르띠야도 수제, 레알, 유기농같다. 실컷 먹고 마셨다.


식당_Henrry Sailor_0914 & 0916

파울라 추천 식당의 하이라이트, 해산물집이다. 파란 인테리어에 브리튀시 아릴랜드 바다를 헤메이는 인테리어다. (이름도 영국식이다.) 물회인 아구아칠레가 고도의 탑처럼 나왔다. 우선 문어튀김을 시켰다. 맥주가 꿀떡꿀떡 넘어가는 맛이었다. (서비스로 데낄라도 한잔 준다. 거부할 수 없다.) 문제는 파울라가 추천한 멕시코 음료, 클라마토 (clamato), 케챱에 맥주를 탄 맛이다.

너무 맛있어서 일요일에 또 가서 한을 풀었다. 이집의 또다른 백미는 오르차타(Horchata). 식당에서 겻들여 주는 식혜같은 음료인데, 이 집은 직접 만들어서 새벽햇살을 마시는 기분이다.


카페_Almanegra & Salem Witch Store & Coffee

커피의 나라 멕시코에서 스타벅스만 간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파울라도 커피를 좋아해서 주변의 좋은 카페 리스트도 있었다. Almanegra는 멕시코 스페셜티 카페 추천리스트에도 나오는 곳인데, 커피는 맛있는데, 앉아서 마실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길가의 벤치에서 마셔야 한다. Salem Witch Sore & Coffee는 마녀카페다. 온갖 주술적 장신구로 가득한 카페였다. 공간은 넓었다. 다행히 커피의 한은 와하카와 치아파스에서 실컷 풀었다.


복잡한 시내를 구경갔다가 나르바르테로 돌아오면 한없이 평화로웠다. 작은 번화가만 나가도 눈에 찍어두고 못간 맛집들이 가득했다. 첫 일요일까진 교회에서 행사를 한다고 폭죽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쏴댔다. 그래도 특이하게 장식된 교회는 재밌었다. 저녁에 맛난 것을 먹고 들어와도 무섭지도 않았다. 좋은 곳이다.



부록_멕시코 지진에서 느끼는 소회

우리가 멕시코에 머물렀던 97일과 919일 멕시코에선 두 번의 큰 지진이 있었다. 첫 번째 지진의 규모는 8.1 진원지는 멕시코 남부 와하카주의 바닷가였다. 지진 규모가 컸지만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많이 흔들리기만 했지, 별 피해는 없었다. (밤에 대피한 그 지진이다.) 피해는 와하카주와 치아파스주의 산골마을에 집중되었다. 주로 가난한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멕시코시티는 85년에 대지진 이후 건물들의 내진 설계가 잘 되었다고 한다. 안그래도 가난한 원주민들은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도 취약한 처지인 것이다.

그렇게 지진에 대한 기억이 사그라들 때쯤 다시 지진 소식이 들려왔다. 와하카에 도착한 다음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니 또 카톡이 한더미 와있다. (우리보다 한국이 소식이 빠르다.) 이번엔 전날 우리가 지나친 멕시코시티 인근 푸에블라주가 진원이라고 한다. 멕시코시티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멕시코시티는 내진 설계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원래 호수가 많던 도시를 스페인 침략자들이 메꿔서 지금과 같이 넓은 대지를 만든 도시다. 지진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에 반해 와하카시티처럼 원래 원주민들이 모인 대도시는 지반이 단단한 곳이라고 한다. 우린 천만다행으로 지진의 파고를 비켜갔다. 다음날 여진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정말 집이 흔들렸다. 숙소 마당으로 대피해서 진동을 보냈다. 와하카에 머무는 내내 대피할 수 있는 가방을 문 앞에 두고 잤다. 한동안 멕시코 국립대학의 지진정보 사이트를 보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http://www.ssn.unam.mx/)

한국 언론에서 멕시코 지진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수준이하였다. 이 커다란 멕시코 전체가 흔들리기라도 한듯 보도했고, 멕시코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것봐라 그런 나란 위험하다. 이런식이다.) 사실 우리가 멕시코 언론에서 보는 모습은 사람들이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연일 구호품을 보내고, 자원봉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도시 곳곳에, sns에 구호를 독려하는 곳들이 많았다. 집주인 파울라를 통해서, 마트의 구호품 모으는 곳을 통해 작게 나마 손길을 보탰다. 가까운 칠레, 페루 등은 물론 멀리 일본에서도 구조대가 왔다. (괜히 일본이 선진국이 아니다. 중남미 국가들과의 협력을 보면 위상 차이를 확실히 느낀다.) 물론 처음 와하카에서 피해가 컸을 때와 두 번째 멕시코 시티의 피해가 컸을 때의 관심도가 다른 건 안타까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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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다. 멕시코를 떠난지 한달 밖에 안됐지만 그 사이 영겁의 강이 흐르고 있다. 밀린 방학숙제를 마치는 기분으로 여행기를 써보기로 했다. 더 이상 여행자의 신분이 아닌 정착자 관점에서 쓰는 여행기는 앞의 여행기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다.


일정과 이동_20170829_20171012

칸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급형 칸쿤이라는 플라야델카르멘에 갔다. 그간 아껴둔 호텔스닷컴 리워드를 불살라 초호화 리조트에서 이틀을 자는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숙소를 옮겨 일주일을 더 머물며 마지막 물을 먹었다.

산크리스토발로 바로 가는 저가항공이 있는 줄도 모르고, 버스 타기 싫어서 멕시코시티로 먼저 비행기를 타고 갔다. 멕시코시티에서 열흘 정도 머물다가 와하카로 이동, 대략 2주를 빈둥거렸다. 마지막 밤버스를 타고(에콰도르의 악몽 이후 미루고 미뤘지만 이 구간은 밤버스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음의 고향 치아파스,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에서 또 다시 열흘 정도 머물다가 집으로 갔다.


버스와 비행기

그간 다녔던 나라들에 비하면 멕시코는 현대화(?)가 매우 잘 되어있는 곳이다. 미국 바로 밑에 있어서 그런지 웹/모바일, 저가항공 등이 우리나라 보다 더 발달했다. 비행기는 쿠바 하바나 - 칸쿤 구간부터 오래된 저가항공사 Interjet을 이용했다. 오래된 저가항공사라 수화물 추가 요금도 없고, 간식도 그냥 준다. 자리도 넉넉했다.

버스는 ADO만 탔다. 남미 대륙과 달리 멕시코는 버스회사 독점이 엄청났다. 우리가 머문 중부, 남부는 대부분 ADO가 장악하고 있다. 칸쿤 공항 버스도 모두 ADO였다. 저렴한 2등 버스들이 있었지만 ADO도 미리 할인가에 예매하면 그리 비싸진 않았다. 보안도 신경쓰는 것 같아서 더 ADO만 타게 됐다. 트라우마란 무서운 것이다. 미리 예매를 하려면 ADO앱을 쓰면 되는데 해외카드는 결제가 잘 안된다. 그래서 타 예매 사이트 중 저렴한 http://www.reservamos.mx/ 를 애용했다. (그래봤자 도시간 이동은 멕시코시티-와하카, 와하카-산크리스토발 두번이다.) 칸쿤-플라야델카르멘 구간은 그때그때 가까운 터미널에서 직접 구매했다.


입국과 칸쿤 공항_0829

멕시코는 시작부터 풍성했다. Interjet 비행기에 들어서니 이륙과 함께 간식을 주는데, 난 감자칩, 여편님은 도리토스를 고르고 음료로 무려 코로나 뚱캔맥주를 줬다. 맥주도 맥주지만 이 도리토스는 다른 나라의 도리토스와는 품격과 향미가 달랐다. 고수의 내음이 팍 퍼지며 매콤함이 싸르르했다. 창밖으로 전설의 칸쿤 해변을 봤다. 옥빛이 풍성한 해안의 숲과 맞물렸다. 섬에서 자라 바다는 그래봤자 바다라는 나의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내렸다. 수크레에서 한글 가이드북 쪼가리를 주웠는데, 멕시코는 입출국이 좀 까다로운 나라였다. 이른바, 입국센지 출국센지를 받는다고 했다. 보통 비행기를 타고 드나들면 티켓값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민국 직원이 괜히 더 뜯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걱정과 달리 우리 담당관은 무사히 통과시켜 주었고, 출국티켓이 없는 것도 문제삼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과테말라를 갔다가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것이 극도로 꺼려졌다. 들은바론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의 이민국 비리가 가장 심하다고 한다.)

게다가 무슨 버튼을 눌러서 초록색이 나오면 통과 빨간색이 나오면 짐검사를 하는데.. 우리는 모두 초록색이 나와서 통과했다. 옆에는 빨간색이 나와서 짐 검사받는 짜증나는 표정의 여행객이 몇몇 보였다.


공항은 매우 현대적이었다. 하얀색이라곤 찾기 힘들던 쿠바와는 달랐다. 에어컨도 빵빵했다. 플라야델카르멘으로 바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곳곳에 미니벤 삐끼들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다행히 공항셔틀 ADO 사무실은 국내선 터미널 (터미널이 달라 한참을 걸어야 했다.) 바깥쪽에 있었다. 공항버스는 좀 비싸도 달러도 받았다. 오오 버스의 쾌적함, 푹신하고 과학적인 시트, 문명이다. 도로도 그저 쭉뻗었다. 한 시간만에 플라야델카르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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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자의 칸쿤, 보급형 칸쿤으로 불리는 곳이다. 칸쿤에 여행자가 몰리면서 조용한 어촌마을인 이곳도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먼저 칸쿤은, 사계절 날씨가 좋아서 미국과 쿠바 관계 악화에 따라 전략적 휴양지로 육성되었다고 한다. 그 주변에 플라야델카르멘이 있는데, 바로 앞에 멕시코의 제주도라 할만한 이슬라 코수멜(ISLA COZUMEL)도 있고, 주변엔 수 많은 세뇨테(CENOTE)가 있으며, 마야 유적지인 툴룸(TULUM)도 가깝고, 바다는 칸쿤 보단 살짝 덜 예쁜 천해의 요양지다.


숙박_HM PLAYA DEL CARMEN_스위트 더블룸_2

여편님이 큰 결단을 했다. 그간 쌓아놓은 호텔들점컴 보너스를 쓰기로 했다. 신혼여행 때 크게 쓴 덕분에 제법 고가의 1일 숙박권이 있었다. 쿠바에서 녹을만큼 녹았고,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쓰냐며 치워버리자고 했다. 이왕 그럴거면 돈을 좀 더 써서 2박까진 묵는 것이 머무는 티가 날 것 같았다. 무난한 예산에서 좋은 호텔을 골랐다. 터미널에서 호텔까지 뚜벅이답게 걸어갔다. 도심에서 멀면 이동이 힘드니 시내 한가운데 호텔을 골랐다.


좀 일찍 도착했으나 곧바로 체크인을 시켜줬다. 큰 리조트는 아니라서 시원한 풀장 한 가운데 호텔 건물이 둘러진 구조였다. 침대가 광활했다. 쿠바 까사에서 둘이 자던 침대보다 3배는 컸다. 둘이 세로로 누워도 남을 지경이었다. 바닥도 돌이라 시원했다. 다만 에어컨인지 화장실인지 수영장 냄새가 나는게 흠이었다.

호텔에서 머무는 동안 풀장을 만끽했다. 우리같은 배낭 여행객은 없는 것 같았다. 여유있게 풀장이나 선베드에서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풀장에 백조 튜브 하나와 아보카도 튜브 하나가 떠있었다. 그걸 갖고 몇 명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나도 얼른 아보카도 하나를 집어다가 탔다. 재밌었다. 다음날엔 튜브가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들 것이었다.

밤에는 풀장 주변에 앉아 바를 즐겼다. 절대 바가 비싼 건 아니었으나, 쿠바 공항에서 사온 럼을 먹고 싶었다. 아직 쿠바리브레의 여흥이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콜라와 얼음만 사다가 방에서 간단히 제조했다. 고급스러운 밤이었다. 푹 자는 여편님을 대신해 아침엔 식당으로 새벽같이 올라갔다. 먼저 커피를 마시며 테라스를 즐기고 싶었다. 서빙까지 해서 주는 커피는 실망이었다. 뒤돌아보면 아쉽다. 그렇게 좋은 커피가 많이 나는 멕시코인데도 넷스커피 같은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식은 종류가 많진 않아도 다 맛있었다. 멕시코답게 조식에도 또르띠야, 살사가 잘 구비되어 있었다. 유럽, 미국 고객이 많으니 팬케잌도 있고, 용과, 파파야 같은 과일도 실컷먹었다.


숙박_공기방울_펜션_안방_더블룸_7

달콤한 이틀을 보내다 보니 플라야델카르멘에서 하려던 걸 하나도 안했다. 저렴하고 위치 좋은 공기방울을 찾아서 일주일을 예약했다. 호텔과도 가까운(거의 두 블럭) 중심지 펜션이었다. 여기도 공용 풀장이 하나 있고, 장기로 빌려서 머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집 주인은 이탈리아에서 온 커플로 근처에서 쏘렌토 어쩌구하는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장사를 해서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우리가 문을 잘 안잠갔거나 하는 등으로 약간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됐다. (곳곳에 자물쇠가 있는 걸로 봐서 좀도둑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식당에도 한 번 오라고 했으나 굳이 멕시코 음식을 두고 쿠바에서 물리게 먹은 파스타를 또 먹고 싶진 않았다.

집은 좋았다. 안방에 화장실도 딸려있고, 베란다도 있고(맞은 편 집이 매우 멕시코 해변스러운 펜션이었다.), 에어컨은 있었지만 호텔에서 냉방병이 올라와서 천장 선풍기만 썼다. (에어컨에서 걸레 냄새도 났다.) 주방도 눈치껏 조심조심 사용했다. 간단히 장을 봐서 볶음라면, 과카몰레, 새우요리 등을 해먹었다. 마지막 날 낮에 비오는 가운데서 수영을 해서 더위를 싹 던져버리고 나왔다.


주변엔 월마트를 포함해 대형 슈퍼마켓이 몇 개 있다. 우리가 맘에 든 건 MEGA였다. 여편님은 10년 전 미국 경험을 토대로 우리 월마트~ 했으나, 일단 월마트는 그녀의 기억과 달리 기본 색상이 파란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나마 월마트가 나은 건 아시아 식품 코너, 그 중에서도 오또기 라면을 풍성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메가는 풍족한 마트였지만 관광객들은 별로 없어 쾌적했다. 색깔도 멕시코스러운 것이 정이 갔다.



시내와 해변

카르멘 시내는 엄청났다. 배낭여행자들이 가는 칸쿤이라고 해서 소박한 풍경을 기대했다. 착각이었다. 체계적으로 개발된 곳이라 차 다니는 대로가 있고, 해변과 대로 중간에 번화가가 쭉 뻗어 있었다. 거기엔 대형레스토랑과 쇼핑몰, 기념품 가게, 별다방, 니케 등 없는 게 없었다. 기념품 가게만해도 쿠바와는 양이 달랐다. 가게 하나에 있는 기념품 양이 쿠바섬 전체 기념품 양이랑 맞먹을 것이다. 물자가 이렇게도 풍부한데 한쪽엔 가난한 사람은 많을테고, 자본주의가 그대로 비쳐지는 곳이었다. (쿠바물 덜 빠진 상태)

이런 번화가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어이어 칸쿤까지 이어질 기세다. 실제로 칸쿤에 있으면서 놀러오는 걸로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너무 더워서 낮엔 숙소에서 뒹굴다가 밤에 산책 나가서 둘러봤다. 쇼핑몰에 가면 시원했다. 개방형 쇼핑몰인데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다. 벨기에 초콜렛, 이탈리아 커피도 판다. 옆에 가면 멕시코 초콜렛, 멕시코 커피, 멕시코 와인, 멕시코 시가, 멕시코 가죽이 좀 더 저렴하다. 이 나라 대체 없는 게 뭔가 싶다. 기념품은 좀 귀엽다. 괴팍한 해골들이 많다. 콜롬비아가 우아하고, 쿠바는 고고하다면, 여기는 귀여움과 개그, 괴상함으로 팔아먹으려고 한다. (전반적인 멕시코 기념품이 그렇고, 와하까, 치아파스 등 원주민 컨셉으로 가는데는 또 다르다.)


해변도 밤낮으로 갔다. 미리 멕시코를 다녀온 보노보노는 카르멘 해변은 별로라고 했다. 역시 비행기에서 본 칸쿤 해변이랑은 좀 달랐다. 미역이 많았다. 멕시코 친구들은 미역은 거북이 먹이라고 생각해서 잘 안먹는다고 한다. 첫날 여편님이 주무시는 동안 일출을 보러 갔다. 운이 좋았다. 시간이 딱 맞았다. 리조트 사이로 가서 카리브의 일출을 봤다. 보름달 뜨는 날, 밤의 해변을 거닌 것 빼고는 거의 바다에 안갔다. 바다쪽은 여기도 거의 리조트와 레스토랑이 빼곡한 분위기다.


식당_Mariscos y Clamatos El Doctorcito_http://mariscoseldoctorcito.com/

첫날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데 번화가의 식당들은 왠지 호구될 것 같았다. 괜히 아까 터미널 근처에서 본 허름한 로컬 노천 식당이 끌렸다. 여편님도 순순히 가기로 했다. 다들 대낮부터 맥주와 나초를 먹고 있다. 대짝만한 음룐지 칵테일을 먹는 사람들도 많다. 메뉴판을 봤다. 옆을 보니 뭔가 해산물 무침 덩어리를 먹는다. 쉐비체 집이라고 한다. 페루에서 좀 먹어봤으니 멕시코 음식을 시켰다. 해산물 타코 하나와 Aguachiles를 주문했다.

타코는 소박해도 안에 내용물이 튼실했다. 하이라이트는 아구아칠레스였다. 멕시코식 물회였다. 가격이 좀 비쌀만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해산물이 오이와 함께 무쳐져 나왔다. 후와후와하며 나초에 맥주에 한그릇을 다 비웠다.


비로소 멕시코에 왔다. 이 매운 소스와 고소한 또르띠야, 하지만 보노보노는 멕시코에서 플라야 델 카르멘이 제일 맛없다고 했다. 서쪽으로 갈수록 맛있단다. 아마 여행기는 먹는 이야기가 반일 것 같다. 사실 예전에 남미 여행 중에 만난 친구는 멕시코에서 타코만 대충 먹고 지냈다고 하니, ‘멕시코는 먹으러 가는 데야.’라고 했다. (물론 양질의 또르띠야는 실컷 먹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엔 더 먹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어쨌든, 저 독토리스를 한 번 더 먹기로 했다. 숙소를 옮겨 주방이 생긴 뒤, 하루 날을 잡아 아구아칠레스를 테이크 아웃했다. (당연히 멕시코는 테이크 아웃 문화도 매우 발달되어있다. 나초까지 다 잘 챙겨준다.) 거기에 마트에서 사 온 쌀국수 소면을 비볐더니, 영혼까지 후벼파는 조합이었다. 이 때부터 우리의 멕시코 새우 사랑은 시작됐다. 대략 일주일에 2,3회는 새우를 먹었다.


식당_El fogon & Don Sirloin

가이드북과 검색으로 찾아낸 곳이다. 엘 포곤은 대로 건너편에, 돈 시로인은 번화가쪽에 있다. 둘 다 느낌은 비슷한데, 돈 시로인은 관광객이 좀 더 많고, 엘 포곤은 로컬과 관광객이 섞여있다. 대략 대성갈비, 태종갈비 느낌이다. 엘 포곤이 맘에 들어서 돈 시로인 한 번, 엘 포곤은 두 번 갔다. 둘 다 또르띠야는 밀이라 좀 아쉽다. 또르띠야에 닭과 치즈를 같이 볶은 알람브라가 맛있다. 여편님이 우린 왜 저 선인장 안주냐고 했더니 아예 선인장 샐러드를 메뉴로 줬다. 두 번째 갈 때는 기본으로 주는 선인장을 세 번이나 리필해서 먹었다. 이 선인장 무침은 노빨(nopal)이라고 불린다. 멕시코 해변에 온 김에 얼굴만한 마가리따를 한잔씩 곁들였다. 무슨 신혼여행 온 것 마냥 먹었다. 또 하나 여기서 얻은 교훈은 멕시코에서 메인메뉴 두 개 시키면 배 터져 죽는 다는 사실이다. 그 이후 메인하나 에피타이져 하나의 정책을 유지하고도 몸이 퉁퉁 불어서 돌아왔다.


식당_La Cueva del Chango

가이드북에 나온 집이다. 둘째날 점심을 위해 찾아갔다. 외로운 행성에 소개됐으니 당연히 사람은 많았고, 직원도 대충 맞아줬다. 그래도 다른 식당들과는 다르게 좀 더 건강한 맛이었고, 살사들에서 좀 더 깊고 다양한 맛이 풍겼다. 하지만 가격도 좀 비싸고, 숙소에서 워낙 먹어서 한 번 가고 말았다.


식당_ TORTAS Alejandra

쿠바에 차마 내 미용을 맡길 수 없었다. (혁명이발소!) 카르멘에 오자마자 답답한 머리를 자르러 갔다. 큰 길 건너편에 이발소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 중 가장 고급스러운 곳으로 들어갔다. 한국 못지 않은 커트 가격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여행 중 가장 섬세하게, 한국에 들어가도 부끄럽지 않게 머리를 잘랐다. 근처에 식당들은 다 허름한데 사람도 없었다. 날도 더운데 장사 안되는 집에서 오래된 음식 먹으면 큰일난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 , 사람이 바글바글한 토르타스 집이 있었다. 멕시코에선 샌드위치 같은 걸 토르타스라고 한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앞에 단체 주문이 있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여편님이 시킨 것이 진짜 맛있었다. 여기의 핵심은 토르타스에 더해 깔리는 다양한 살사와 할라피뇨에 같이 절인 야채 피클이다. 이걸 슥삭 빵 사이에 끼워먹다보면 곰발바닥만한 토르타스가 어찌저찌 내 배안에 들어가있다. 한 번 더 가서 먹었다.


그 외 엘 포곤 옆 Chilakiles de Playa과 콜렉티보 정류장 근처 Tortas del Carmen도 맛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콜렉티보 정류장 근처에 호스텔도 많고 저렴한 식당도 많은 것이었다.



세노테(Cenote)

카르멘의 최대 장점은 주변에 놀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편하게 콜렉티보 타고 다녀올 수 있었다. 콜렉티보는 남미 대륙의 그것과는 달랐다. 다 새하얗고, 앞뒤로 목적지가 덕지덕지 써져있지도 않으며, 에어컨도 삼면에서 빵빵하게 얼어죽게 나와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거북이 해변, 툴룸 유적지, 이슬라 무헤레스 등이 후보로 부상했으나, 결국 일주일 간 빈둥거리다 세뇨테 두 군데 다녀오는 걸로 만족했다. 다이빙을 배우긴 글렀고, 스노쿨링도 좋다고 했다. 스노쿨링용 안경도 대여비가 은근 비싼 것 같아서 MEGA 마트에서 백페소짜리를 하나 구비하고, 마지막 세노테 바위 위에 기증했다.


세노테에 대해서는 여편님이 설명할 것이다.

(여편 say, 칸쿤과 플라야델카르멘이 있는 유카탄과 킨타나로오는 석회암 지대이다. 그래서 주변 해안의 바닷물이 지하로 역류하면 녹게 되는데 큰 구멍이 되면서 거기에 담수가 차오르게 된다. 해수도 섞이게 되면서 독특한 천연 수영장이 된다.)


Cenote Azul_0904

겁 많은 우리는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 세노테 아슐은 깊은 구멍도 없고, 다 얕아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콜렉티보를 탔다. 리조트에 출근하는 직원들, 뚜벅이 여행객들이 많이 탔다. 20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세노테 아슐 표지판 앞에 내려줬다. 입장료를 내고, 구명조끼만 빌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물이 파란색이었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돌에 걸터 앉아서 발을 담그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오 전설의 닥터피쉬가 모여들었다. 여편님은 이것만 해도 좋다면서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1년 간 쌓인 발의 각질이 후둘둘 벗겨졌다. 개인적으로 물고기들은 내 발을 더 좋아했다.

난 과감하게 스노쿨링을 해봤다. (깊어봤자 물은 허리 높이다.) 닥터피쉬와 여편님의 발을 봤다. 아기자기한 색깔의 물고기도 많았다. 배가 고파서 과자를 하나 사왔다. 슬슬 비구름이 몰려왔다. 대피하기로 했다. 그래도 한 시간 반은 놀았다. 발도 깨끗해졌다. (지금도 만져보니 발이 매끈하다.) 폭우가 쏟아져서 입구 앞에서 대기했다. 방금 입장한 사람들은 환불을 요구했지만 들어줄리가 없다. 비가 좀 잦아들자 큰 길을 건너 지나가던 콜렉티보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콜렉티보 안에서 얼어죽을 뻔했다. 카르멘은 햇볕이 쨍쨍했다.


Cenote Jardin del Eden_0905

세노테가 의외로 재밌어서 다음날은 에덴의 정원 세노테를 갔다. 여기는 스노쿨링 하기에는 제일 좋다고 했다. 위치는 아슐이랑 거기서 거기였다. 대신 길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했다. 입장료를 내고는 또 한참을 걸어들어간다. 날이 덥고, 모기도 많다. 아래에 동그란 세노테가 펼쳐졌다. 아름다웠다. 각 언덕에서 풍덩풍덩 물 속으로 점프하는 친구들이 많다. 우리는 주변을 한바퀴 돌며 동태를 살폈다. 점프하는 곳은 너무 깊었고, 얕은 곳은 햇볕이 강했다. 한바퀴를 돌고 반대편 구석에 가보니 얕은 곳이 있었다. 얕고, 그늘도 있어 앉아 있을만 했지만 모기가 많았다. 햇볕나는 곳으로 갔다. 계단으로 연결된 아래쪽엔 물 안에서 발로 디딜 수 있는 바위가 몇 개 있었다. 줄을 잡고 바위까지 갔다. (구명조끼를 입었어도 발 안 닫는 곳에서 스노쿨링 하기는 겁이 났다. 에콰도르에서 빠져 죽을 뻔한 기억 때문이다.)

한참 바위 근처 물속을 구경하다 용기를 냈다. 그럴만큼 바닷속이 아름다웠다. 꽤나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여편님도 바톤을 터치해 물속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물 속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스노쿨링 기어는 하난데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했다. 바위에서 일미터 이미터씩 떨어지다가 건너편 바위까지도 헤엄쳐서 가봤다. 여편님이 큰 맘 먹고 반대편 끝 자락까지 구경해서 갔다. 다시 돌아왔다. 나도 따라했다. 뒤늦게 스노쿨링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물론 바위 근처가 볼 건 많았다. 멀리 간다고 많은 게 보이진 않았다. 다이빙하는 사람들은 뭘 좀 더 봤을 것이다. 금방 또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또 갈까 망설였지만 저녁에 체크아웃을 해야 해서 숙소 풀장에 물을 담그는 걸로 만족했다.



부록_삽질_칸쿤 공항_1

원래는 공기방울에서 일주일을 머물고, 칸쿤에서 낮 비행기로 멕시코시티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아니 그렇게 예매를 했다. 멕시코시티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다. 우리가 몇시 도착인지 삼사일 전쯤 확인을 했다. 엇 비행기 출발 시간이 아침 6시다. 난 분명 오후 1시 걸로 예매했는데 말이다. 몇 번이나 확인하다가 서비스 센터에 연락해봐도 묵묵부답이다. 열을 내다가 포기했다. 예매할 때 추가요금 확인한다고 창 두 개 띄운게 잘못이다. 새벽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도 있었으나 전날 밤에 가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귀국길에 노숙할 가능성이 높으니 연습 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았다. (귀국길에 노숙 따윈 없었다.)

삭막하지만 그래도 정든 카르멘을 떠났다. 숙소에서 저녁까지 먹고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탔다. 고작해야 9시였다. 어디서 잘까 고민했다. 공항노숙은 나나 여편님이나 평생 처음이었다. (유투브에서 공항 노숙 영상도 찾아보고, 노숙하기 좋은 공항 순위도 찾아봤다. 애시당초 칸쿤 공항은 목적지지 경유지는 아니라 노숙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공항 대기 의자엔 자는 사람도 몇명 있었다. 망할 의자가 이미 주인이 있는 것들 빼고는 다 손잡이가 불쑥불쑥 솟아 있다. 여기서 쪽잠을 잘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남은 럼을 매점 주스에 타봤으나 맛이 없었다. 공항은 추웠다.

그러다 결국 화장실 왼쪽, 은행 앞이 최적지임을 알게됐다. 그리로 가서 잠자리를 펴고, 중요한 배낭은 감싸안고, 큰 배낭을 배개 삼았다. 저기 의자에서부터 말 많던 친구도 옆으로 왔다. 우리랑 같이 내일 6시 비행기란다. 4시에 서로 깨워주기로 했다. 거의 10번을 깨며 잠을 잤다. 무사히 새벽에 일어나 첫 비행기를 탔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참고_호스텔 리오 플라야_http://cafe.naver.com/playadelcarmen

플라야 델 카르멘 구석구석, 교외 투어에 대한 정보까지 잘 나와있었다.


참고_호세호세 블로그_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ose_jose

먹다보니 좀 많이 알고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열심히 공부했다.


금융_Banamex

여행 내내 쓸데 없다고 투덜거리던 도시은행 카드가 또 빛을 발했다. 도시은행은 없지만 도시은행이 인수한 Banamex에서도 수수료 할인 혜택이 유지된다. 마지막 산크리스토발 지점이 수리 중이었던 걸 빼곤, 어딜가나 곳곳에 퍼져 있어서 유용하게 썼다. 멕시코도 IMF를 거쳐 은행 대다수가 외국계로 넘어간 건 슬픈 유대감이다.


영화_내 어머니의 모든 것(Todo Sobre Mi Madre)

심심한 카르멘에서 영화를 몇 편 봤다. 이왕이면 스페인어인 것을 봤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이다. 제목과는 좀 다르게 벙진 영화다.


영화_사랑해 매기(No se Aceptan Devoluciones)

이건 진짜 멕시코 영화다. 추천받은 멕시코 영화가 다 너무 괴팍해서 보다 말았다. 이건 재밌었다. 내용이나 감동이 뻔하지만 훈훈한 멕시코 냄새가 느껴진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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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서부의 산골 휴양지 비날레스로 갔다. 이번에도 까사에 부탁해서 콜렉티보를 불렀다. 이번에 온 건 정식 택시가 아니라 가족이다. 앞 자리에 부부가 앉고 뒤에 아들이 앉고, 우리 셋이 끼어 앉았다. 좀 많이 좁았지만 차도 올드카가 아니라 덜 떨렸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마신 커피도 맛있었다. 아들이 절대 다리를 오므리지 않는 것만 빼면 쾌적했다. 아저씨가 비날레스 가는 콜렉티보가 있는 곳에 내려줬다. 빨간 올드카를 탔다. 알고보니 뷰익이었다. 고속도로를 창문 열고, 노래 들으며 달렸다. 우리 셋이고 매연이나 에어컨도 없어서 쾌적했다. 끈적한 바람에 머리는 모두 떡이됐다. 한 번은 해볼만한 경험이다. 꼬불꼬불 산길로 진입해서 30, 비날레스에 도착했다.


Viñales_0823_0828

쿠바의 다른 관광지와 달리 산골(그래봤자 해발 150m)에 있어서 좀 차분한 분위기다. 주변에 농장, 산이 많아서 생태 관광으로 유명하다. 어지간해선 예전엔 안 그랬다는 표현 싫어하는데 여긴 진짜 많이 변했다. 가운데 식당 몇 개 있고, 숙소도 많지 않고 골목엔 돼지와 닭이 자유롭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지금은 골목에 포장도로도 많이 깔리고 큰 길은 물론 뒷 골목까지 모두 까사와 식당으로 가득하다.


숙박_Casa Colonial_트리플룸_4

산타 클라라에서 아델라와 통화했다. Villa el Pollo로 가라고 했다. 주소를 보니 맵양에도 나왔다. (쿠바에서 맵양: maps.me은 거의 절대적 신이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아줌마의 거친 마케팅을 뿌리치고 숙소를 찾아갔다. 젊은 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자기네 집은 방이 없지만 연결된 옆집(형제인 듯?) 방을 보여준다. 숙소가 큰 길가라 걱정했는데 마당 깊숙이 있는 별채다. 스머프 버섯이 심어진 잔디밭도 있다. 방도 넓고 창문도 있다. (밖으로 통하는 창문은 쿠바에서 처음이었다.) 비날레스 숙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 앞에 흔들의자다. 서늘한 아침 바람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책만 읽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방은 좋았지만 아침은 그냥 그랬다. 무엇보다 커피가 너무 맛이 없었다. 우리 속을 모르는 주인 부부는 계란만 엄청나게 부쳐줬다. 밖에 나가면 아침 파는 식당도 얼마든지 있어서 큰 불편은 없었다. 하지만 아침도 잘 안 먹고, 저녁도 한 번 안 먹으니 우릴 별로 좋아하지 않는게 느껴졌다.


숙박_Casa Elisa_더블룸_1

솔님은 3박만하고 공항으로 바로 떠났다. (아바나로 가는 콜렉티보가 공항에도 내려주었다.) 주인에게 이틀 더 있을 거라고 하니 확답을 안주다가 하루만 된다고 한다. 옆집(Villa el pollo)에 방이 있다고 한다. 짐을 싸서 배낭을 맡겨 놓고 나갔다 왔는데 오늘 나가기로한 애들이 하루 더 있는다고 한다. 근처 집을 보여주는데 다 맘에 안든다. 여편님이 아침에 카페에서 조식 먹으면서 맞은 편의 좋은 집이 ‘빈 방 있음’을 걸었다고 했다. 가봤더니 이 집 주인도 우리가 아침 먹는 걸 보았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20)에 방을 하나 내준다. 에어컨 위치가 요상했지만 별로 덥지도 않았고, 방은 깔끔했다. (다른 좋은 방은 다 차 있었다.)

하루만 머물렀지만 편안한 집이었다. 나름 마당도 있고 쾌적했고, 아침 식사도 무난했다.


시내_추억 산책_0823

비날레스도 공원에서 와이파이를 한다. 동네가 좁아서 근처 식당이나 바에서도 접속이 되서 편안하게 인터넷도 좀 했다. 공원 한쪽엔 문화센터에서 살사 배우는 친구들도 있고, 밤엔 그 옆에서 트리니다드처럼 공연을 한다. 현숙 같은 언니가 나와서 분위기를 으쌰으쌰했다.

내가 비날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예전 여행 때 머물렀던 숙소가 좋았기 때문이다. 예약한 숙소가 맘에 들어 그대로 머물렀지만 그쪽을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연립주택을 지나 소박한 까사 몇 개가 보인다. 이제 돼지와 닭들은 저 풀섶 안쪽에서 놀고 있다. 여전히 운치가 있다. 이쪽 숲길을 돌아보는 친구들도 있다.


투어_국립공원_승마_0824

근처 국립공원을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숙소 아저씨를 통해 신청했다. 말 타고 돌아보는데 1인당 1시간에 5쿡이라고 한다. (나중에 돌아보니 3쿡이라고 써붙인 곳도 있었다.) 오전을 추천했는데 여전히 햇볕이 강해서 오후에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3시가 되니 비는 좀 잦아들고 구름이 껴서 선선했다. 우릴 데리러 온 사람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마을 외곽에 말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각자 말을 배정받는다. 내가 탄 말이 5, 여편님 말이 4, 솔님 말은 더 어리다. 순서대로 가는데 4살짜리가 자꾸 앞서려는 욕심을 낸다. 그럼 또 내 말이 달려나간다. 몇 번이나 여편님과 부딪혔다. 가이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뒤에서 까바요~(Caballo, ) 소리만 치면서 따라온다.

마을 외곽인데도 까사가 많다. 계속 짓고 있다. 한참을 말 타고 나가야 국립공원 길로 접어든다. 보아하니 예전에 워킹투어로 했던 거랑 코스가 똑같다. 담배 농장으로 간다. 앞의 팀 설명이 끝나고 우리가 들어간다. 담배 수확철이 아니라서 초간단 설명을 해준다. 여편님과 솔님은 괜찮다고 해서 나만 체험용 시가를 하나 물었다. (사진 않았다. 예전에 6개월 간다고 샀는데 한 달만에 배낭 속에서 다 썩어 문드러진 기억이 있다.) 여편님도 몇 번 피우고 맘에 들어한다. 시가는 연기를 머금다가 내벹는 거라 칼칼함도 없다. 그래서 천식이 있는 체형도 좋아했던 것 같다. 시가를 마저 물고 말에 오른다. 말 위에서 피우는 시가의 맛이란, 흡연가가 아닌 나에게도 신선 놀음이었다.


비가 그친지 얼마 안되서 내리막 비탈길은 미끄럽다. 긴장 빡 하고 내려간다. 커피 농장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거대한 호수를 끼고 (아침에 시작하면 점심에 이 호수에서 수영도 하는 것 같다. 하기 싫다.) 커피 농장을 보러 간다. 농장을 둘러본다. 커피 나무 뿐만 아니라 구아바 등등 열대 과일 나무가 많다. (자긴 구아바 두 개 먹고, 우린 하나 준다.) 커피 나무를 보여준다. 노란색 열매도 열렸다. 고도가 낮은 걸로 보아 로부스터 품종일 것이다. 구아바를 넣은 럼을 맛 보여준다. 커피는 볶은 원두를 생수통에 판다. 전통 방식으로 한 시간 동안 구웠다고 한다. 숯덩이 같은 맛이다. (당연히 사진 않았다.)

호수와 주변 산세를 보이는 오두막 카페에서 음료를 한잔씩 마신다. 코코넛인데 물이 별로 없다. (아바나 시내에서 사먹은 것보다도 못하다. 마시던 거 준듯?) 경치는 진짜 좋다. 가운데 홀로 솟은 오름 같은 봉우리가 인상적이다. 왔던 길을 한 번에 돌아간다. 중간에 여편님 말이 난동을 부렸다. 솔님은 중간 중간 말이 땅을 뚫을 기세로 볼일을 보면서 서서히 넋이 나갔다. 우리야 몽골, 페루 등에서 타면서 말에 안장만 있으면 감지덕지다 하는 수준이지만 제주도 승마장 이후 쿠바에서 말타기란 엄청난 문화 충격인 것이다.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돌아오니 2시간 반 정도가 흘러있었다. 말에서 내려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왔다.


요양_0825_0826

승마 후 돌아와서 저녁에 먹은 바베큐가 탈이났다. 바베큐라 질기군 하며 먹다가, 여편님 걸 먹어보니 부드러웠다. 결국 나와 솔님이 탈이 나고 말았다. 하루 종일 누워서 요양했다. 아껴둔 컵라면 세 개를 먹어봤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배고픈 여편님은 홀로 피자를 테이크 아웃해서 먹었다. 여편님과 나, 솔님의 생체리듬은 쿠바 여행 내내 반대 곡선을 그렸다. (참고: 생체리듬 변화)



다음날 아침, 헤롱헤롱한 상태로 솔님은 떠났다.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컸다. 어찌어찌 살아서 한국엔 갔다고 한다. 우리의 짐 몇 개와 그녀의 기념품까지 더하니 올때보다 캐리어가 더 무거워졌다. 여러모로 다시 감사를 표한다. 그녀가 떠난 날, 몸을 마저 회복했다. 기름기 없는 음식을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 마음은 허전했다. 우린 뭐하러 3,4일을 더 머물기로 했을까. 남은 날은 멍만 때리다 가나. 괜한 기우였다. 우리의 쿠바 여행은 (솔님께 미안하게도) 다음날 정점을 찍었다.


수영장_Horizontes Los Jazmines_0827

숙소를 옮기려고 짐을 뺐다. 짐 정리해서 맡기고 나니 땀이 한바닥. 해결책은 수영장을 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근처 자스민 호텔은 수영장만 별도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수영 장비를 챙겨서 택시를 타고 갔다. 호텔 입구로 들어갔다. 수영장 입장료는 3(가이드북에 7쿡이라고 해서 쫄았었다.)이었다. 바에서 파는 음료, 커피, 샌드위치도 일반 식당과 다르지 않다. (다른 곳의 고급호텔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 정책이다. 혁명 만세!) 일요일이라 놀러온 쿠바 사람들(대부분 까사 주인 느낌이다.)이 훨씬 많았다. 몇몇 가족은 어마어마한 바베큐 덩어리를 다같이 나눠 먹고 있었다.

처음엔 한가해서 아무데나 자리잡았는데 점점 사람이 늘어났다. 한쪽은 어린이용으로 낮은데 반대편은 기하급수적으로 물이 깊었다. 우린 안전하게 어린이들과 섞여 놀아야했다. 물에서 실컷 놀다가 나오면 비날레스 계곡이 그대로 펼쳐졌다. 물놀이를 실컷 하고, 점심도 먹고, 엽서 쓰고, 호텔 매점도 구경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쿠바에서 보낸 최고의 하루였다.


식물원_Jardin Botanico_0825

요양 중에 잠깐 다녀왔다. 그냥 산책하는 식물원인 줄 알았는데 가이드를 따라 구경하는 곳이었다.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상태가 메롱이라 별 감정이 없었다.



중심거리는 가로수길 못지 않게 번화하다. 초반엔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미국 휴가 시즌 막판이라 그런지 마지막 며칠은 한산했다. 골목엔 또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 선다. 대부분 지역 특산물인 나무와 짚 제품을 판다.


카페_Café del Rey

은근 카페는 많지 않다. 그나마 제대로된 커피를 팔 것 같았다. 마셔보니 맛도 있다. 조식을 먹어보니 양도 적당하고, 아침엔 커피가 더 맛있다. 종종 애용했다.


식당_El Barrio

가이드북에 나온 식당이고, 숙소 근처라 첫날 피자를 먹었다. 맛있었다. 또 가서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별로였다. 피자만 한 번 더 먹었다.


식당_길에서 굽는 바베큐 집

첫날 저녁을 뭘 먹을까 서성거렸다. 길가에서 직접 돼지 통구이를 굽고 있다. (비날레스에 가면 돼지 통구이를 먹으라고 했다.) 길가와 너무 가까웠지만 소박한 분위기에 고기도 맛있었다.


식당_100% 쿠바

문제의 식당이다. 승마를 하고 와서 들어갔다. 옥상 테라스 자리도 있어서 인기가 많다. 음악도 신난다. 다 같이 돼지 바베큐를 시켰다. 먹을 땐 좋았으니 결과는 폭망이었다. 고기는 잘 익혀 먹어야 한다.


식당_El Olivo

여행조언자 일등 식당이다. 몇 번 지나칠 때마다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솔님이 떠나고 둘이 기웃거리다가 한가해서 들어갔다. 안락하고 점잖은 분위기였다. 샐러드와 빠에야를 시켰다. 빠에야에 해물이 진득하게 들어가서 맛있었다. 샐러드도 오이, 토마토가 아닌 여러 풀이 잔뜩 들어간 것이었다. 이탈리아와 지중해 매니아인 솔님 생각이 났다. 그렇게나 풀이 많은 샐러드와 촉촉한 죽 같은 밥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이후 남은 이틀 내내 올리보에서만 먹었다. 직원들도 얼굴이 익었다. 모두 형제로 보이는데 몸집이 다 좋다. 쿠바 식당에선 하나 같이 접시를 한 번에 모아서 다 치우는데 이 형들이 치우니 불안하지가 않다. 파스타도 우리가 그리던 맛이었다. (이전에 쿠바에서 먹은 파스타는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주는 스타일이었다.) 나중엔 오리 고기도 시켰다. (토끼 고기도 판다.) 중화풍으로 부드럽게 나와서 집에서 먹던 생각이 날 정도였다. 먹을 때마다 솔님 생각을 했다.



P.S 꽝님

솔님과 더불어 감사해야 할 분이 또 있다. 솔님과 공항에서 만난 분이다. 우리가 오기 전 하루 아바나 관광을 같이 했다고 한다. 우리 아바나 숙소 얘기를 듣고 아델라 집을 예약해 달라고 했다. 이후로도 종종 솔님에게 쿠바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어떤 수난이 닥쳤는지 쿠바 이미지 꽝이라고 했다.


독서_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솔님이 예전에 읽고 여편님 보라고 가져온 책이다. 나도 예전에 읽고 쿠바에 대한 이미지가 급 좋아진 책이다. 저자는 쿠바 매니아라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 교육 천국 쿠바, 의료 천국 쿠바 등의 책을 펴냈다.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도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솔님은 여행 기간 이 책을 봤다. 각자 쿠바 관련된 책을 하나씩 보며 중간 중간 토론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비날레스 숙소 Casa Colonial에 두고 왔다.


_맥주__칵테일

쿠바하면 럼이다. 아바나 클럽 말고도 산티아고 데 쿠바 등등 다른 럼도 많은데 마셔보지 못했다. 더위 때문에 럼보단 맥주를 많이 마셨다. Cristal이 연하고 시원했다. 럼을 그냥 먹으면 온 몸에 없는 수분이 다 날라가는 것 같아서 쿠바리브레, 모히또를 종종 마셨다.


음악_영화_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설명이 필요없다. 집에 가면 한 번 더 봐야겠다. (여편님은 극장에서 이걸 보고 Chan Chan 나오자마자 울었다고 한다.)


음악_쿠바로 가는 길(The Road to Cuba)

유명한 부에나 비스타 클럽 엘범과 함께 쿠바에서 많이 들은 엘범이다. 여러 유명한 쿠바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_Silvio Rodriguez

실비오 로드리게스가 칠레 가순 줄 알고 있었다. 쿠바의 김광석 같은 대표적 민중 가수였다.

Mi unicornio azul: https://www.youtube.com/watch?v=dnvVtkVaM84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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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를 맛보고자 트리니다드로 갔다. 혁명을 맛보고자 산타 클라라도 갔다.


트리니다드(Trinidad)_0817_0821

남부 해안에서 조금 올라온 곳에 있는 마을이다. (난 여기가 바로 바닷간 줄 알았는데 바다는 차를 타고 10~20분 내려가야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식민지풍의 건물들과 가까운 해변 때문에 발달한 관광지다. 그래도 우리가 머물렀던 곳 중엔 가장 한적했다. 마을 안에선 바다는 고사하고 산만 보인다. 시원해서 좋다.


가는 길_0817

예정 시간보다 일찍 집으로 온 택시 운전사, 서둘러 밥을 먹고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데리러 갔다. 아바나의 부촌이라 불리는 동네다. 말루마 같은 애가 나와서 얘기를 하더니, 한 시간을 기다린다. 기약도 없다. 그러다 딱 봐도 전날 늦게까지 술 마신 말루마 친구 세 명이 나타난다. 워낙 늦어서 나머지 두 명은 다른 차를 타고 여기로 직접왔다. 콜렉티보 택시는 초록색으로 포드사거 였다. 여편님이 기사에게 “이 차 몇살이냐?” 고 물어봤다. 기사는 ‘58년형’ 이라고 했다. 우리 아빠, 장모님과 동갑이다. 올드카는 아바나 시내 관광할 때만 쓰는 줄 알았는데, 장거리 택시도 한다. 반 세기 지난 에어컨의 공기도 탁하다. 고속도로를 시속 백키로로 달린다. 거의 떠있는 상태로 달달달 거리며 간다.

잠시 휴게소에서 쉬고, 세 명은 다른 차로 갈아탄다. 앞의 두 여성은 필리핀에서 왔다고 한다. 5시간의 힘든 여정이었다. 다음엔 무조건 버스를 타기로 한다.


숙박_Casa Colonia Nena y Robe_트리플룸_4

아델라가 써준 종이를 보고 콜렉티보가 숙소 앞에 내려준다. 두근두근 어떤 방일까. 넓고 깨끗한 더블침대 2, 깔끔한 화장실, 심지어 LED로 온도가 표시되는 최신 에어컨. 좋은 집이다. 위에 테라스에서 아침이나 저녁을 맞이해도 좋다. 점심도 대충 먹어서 오후 늦게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방에 창문이 없어서 문 닫고 에어컨을 켜니 스르르, 모두 7시에 자서 다음날 7시에 일어났다.

당연히 아침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주인 내외 모두 친절하고 여러모로 배려를 많이 해준다.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에 새우, 랍스터 등도 있어서 랍스터 2, 새우 1개를 부탁했다. 랍스터는 보기엔 기세 등등했지만 살은 새우가 더 맛있었다. 더 이상 랍스터에 집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시내_광장과 시장

숙소에서 번화가까지는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길이 돌길이라 차는 별로 안 다닌다. 은퇴해도 괜찮을 말들이 힘겹게 마차를 끌고 있다. 비가 자주와서 지붕 밑의 좁은 도보 길로 다녀야 했다. 아바나 보단 덜 하지만 미친듯이 더워서 외출 후 집으로 피신하기를 반복했다.

두 개의 광장이 있다. 하나는 은행, 통신 등 사무적인 중심가고, 하나는 좋은 식당과 가게가 몰려있는 관광 중심가다. 골목골목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들어섰다. 지역별로 기념품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걸 보면 다들 근처에서 만드는 것 같다. 혹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많이 샀다. (티셔츠, 앞치마 등등) 와이파이가 잡히는 공원에 계단으로 공연장까지 이어지는데 거기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다들 콜라 하나 시켜놓고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공원엔 그늘이 별로 없어서 힘들다.)


전망_Museo Nacional de la lucha contra bandidos_0818

뜬금없이 트리니다드에 무슨 혁명 박물관인가 했더니, 이쪽 해안을 공습했던 미국과의 투쟁을 기념한 곳이다. 혁명 이후 끊임없이 쿠바를 괴롭혔던 미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실 박물관 방문의 주 목적은 종탑에 올라가서 전망을 보는 것이다. (여편님의 전망 욕심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더워서 대충 보고 나온다.


공연_Casa de la Musica_0818

광장 바로 위 계단 꼭대기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여기서 밤마다 공연이 펼쳐지고, 너도나도 무대로 올라가 살사를 춘다는 그곳, 숙소 저녁을 먹고 밤마실을 나갔다. 음료 하나를 시켜놓고 공연을 감상했다. 공연은 아저씨가 노래만 안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앞에는 바람잡이들이 춤을 추고, 맨 앞자리에 때를 노리던 2커플이 나선다. 잘 춘다. 여편님이 졸림을 호소하여 귀가했다.


해변_Ancon_0819

토요일은 해변에 갔다. 터미널 근처에 가서 택시를 탔다. (버스도 가격은 거기서 거기다.) 휴가철이라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제일 안쪽에 야자수 하나와 선베드 3(유료 대여)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선베드는 혁명적이게도 좀만 앉으려고해도 알아서 내려간다. 관리인은 중국제라서 그렇다고 한다.

여름 주말, 공공 해변이라 쿠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옆엔 젊은이들이 스피커로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줬다. 라틴 음악의 보급 창고 푸에르토 리코와 인접해서 그런지 익숙한 음악들이 줄줄 나온다. 앞엔 가족들이다. 오이, 토마토 등 어마어마한 도시락도 준비해왔다. 재밌는 건, 쿠바 사람들의 수영복에 미국 국기가 많이 그려진 것이다. 미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라고 마이애미의 월마트 등에서 폭풍 세일, 이걸 친척들이 보내주는 것으로 추측했다.


신난 솔님이 먼저 입수한다. 뒤이어 여편님도 한 두번 입수한다. 나는 읽던 책을 다 읽고 느지막히 입수했다. 점심 먹을 식당은 해변에 꼴랑 하나다. 돼지, , 소 중에 하나를 택하면 된다. 해변이라고 바가지도 없고, 맛은 있다. 노점상들은 피자를 판다. 쿡으로 비싸게 받는데 맛은 없다. (아마 동네에선 5모네다면 먹을 맛이다.) 입수 두 번이면 일 년 해수욕 다 하는 여편님이 먼저 귀가를 외친다. 올 때 탔던 기사 아저씨가 보인다. 담합 가격보다 싸게 태우는 거라 말 없이 우리를 태운다.


카페_Don Pepe_0819

이렇게 가게가 많지만, 트리니다드에 괜찮은 카페가 별로 없다. 여기 오는 관광객들은 다들 대낮부터 모히또 마실 생각만 하나보다. 각종 커피 음료도 있고, 정원의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자리가 별로 없어서 한 번 밖에 못갔다.


식당_Paladar El Criollo_0818

첫날 오후에 찾아간 곳이다. 카사를 겸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테라스에서 쾌적하게 수육같은 돼지고기를 썰었다. 본격적인 영업 시간이 아니라 연습하고 있던 밴드가 가볍게 부에나 비스타 ‘Chan Chan’을 연주해줬다. 체게바라가 그려진 기타로 ‘Hasta Siempre Comandante’도 연주했다.


식당_El Jigue_0820_0821

트리니다드에서 가장 맛나게 먹은 식당이다. 처음 가서 해산물 피자(Mar Pizza)를 먹었는데 반죽에 해물을 갈아넣었는지 촉촉함에 해물의 감칠맛이 잘 녹아있었다. 다음날 또 가서 같은 피자를 또 먹고, 파스타도 2개 먹었다.


밴드_Sabor Tropical_0821

El jigue 두 번째 방문이 만족스러웠던 건, 공연때문이다. 여기도 나름 크고 인기가 많아서 종종 밴드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 일찍 들어가서 음식을 기다리며 밴드의 공연을 봤다. 섹소폰 소리가 여유로웠다. 쿠바에서 본 최고의 공연이었다. 솔님이 CD를 구입해서 나중에 추출한 MP3파일도 보내주었다.


여편님이 수시로 졸림을 호소하는 바람에 제법 잔잔하게 트리니다드에서 4일을 보냈다. 정신없이 아바나를 탈출해서 쌓인 피로를 충분히 풀었다. 그리고 여행의 정점을 찍으러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비아슐 버스 정류장은 사람이 많았다. 체크인을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시엔푸에고스를 거쳐서 산타클라라까지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산타클라라 터미널은 더 크고 복잡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서 픽업 기사를 보냈다. 다음 티켓을 살 거라고 하니 비아슐 사무실로 안내해줬다. 비날레스로 가는 직행은 없고, 아바나로 가야하는데 자리가 없다고 한다.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만 적어놓고 왔다.



산타 클라라(Santa Clara)_0821_0823

아바나, 산티아고 데 쿠바 다음으로 큰 도시다. 중부 교통, 통신의 중심지고 대학도 많다. 체 게바라 기념관을 빼면 관광객에겐 별로 없다. 덕분에 일상적인 쿠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혁명의 불꽃을 활활 태웠다.


숙박_Hostal Cuba 208_트리플룸_2

택시가 집 앞에 내려줬다. 생각보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이다. 트리니다드 숙소에 아는 곳을 물어보니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아델라에 대한 신뢰도가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방이 매우 작았다. 에어컨도 켜고 자면 죽을 것처럼 오래된 것이다. 그래도 주인 내외가 친절하고, (아저씨가 영어도 했다.)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선풍기도 빌려줘서 이틀 지내기엔 나쁘지 않았다.

식사는 아침만 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좋은 식당을 추천해줬다. 아침은 다른 집보다 1쿡 저렴한 4쿡이었는데 전혀 부족함 없이 맛나고 정갈했다. 아저씨가 화가라서 그런지 그리던 그림도 보이고 고풍스럽다.


식당_Saborarte_0821_0822

주인 아저씨 추천 식당이다. 넓고 평범하게 생겼다. 메뉴판 가격이 모네다다. (대충 계산해보면 엄청 싼 건 아니다.) 돼지고기 요리를 시켰다. 잡곡밥에 붉은 고기, 제육볶음이다. 양도 푸짐해서 학교 근처 분식집 같은 감성이다. 다들 푸짐하게 먹어서 다음날 저녁에 회식을 하러 왔다. 전날 옆자리 사람들이 먹던 새우튀김, 솔님은 제육복음(전날은 다른 메뉴를 시켰다가 우리의 제육볶음만 탐냈다.)을 시켰다. 쿠바는 지역마다 함께 주는 칩의 종류가 다른데 이 동네 칩은 진짜 맛있었다. 추가로 한 번 더 먹었다. 맥주와 모히또까지 배불게 먹었다.


식당_Santa Rosalía_0821

점심 먹고, 시내 구경을 하다가 광장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식당 안쪽엔 마당에도 자리가 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바의 직원들이 반대편 손님있는 쪽으로 오지 못할 정도다. 다들 어찌저찌 시간만 떼웠다. 마당 한쪽엔 기념품 매장이 있다. 다른 곳에 안파는 티셔츠가 있어서 구입했다.

저녁을 먹으러 다시 찾았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했다. 새우, 생선 등을 먹었다. 카리브해 새우는 정말 맛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살도 도톰하고 쫄깃하다.


식당_La Toscana_0822

첫날부터 점심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둘째날 점심을 먹어보기로 했다.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위에 언급한 두 식당보다 가격이 비싼데도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식당안에서 콤큼한 냄새가 났는데 여기서 쓰는 치즈인 것 같다. 우리한텐 쉽지 않았는데 동네 사람들에겐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시내_광장과 쇼핑

광장엔 와이파이도 되고, 공연하는 바도 있고, 문화센터, 극장 등이 있다. 일단 날씨가 훨씬 덜 더워서 돌아다닐만했다. 안쪽 번화가로 들어가니 커다란 슈퍼마켓이 있다. 가방 맡기는 걸 기다려가면서까지 내부를 구경했다. 몇 군데 서점도 있다. 역시 체게바라의 도시라 관련 도서가 많다. 솔님은 이틀간의 고민 끝에 커다란 화보집을 구매했다. 티셔츠부터 시작해서 엽서, 모자, 화보집까지 솔님의 쇼핑도 여행도 여기서 정점을 찍었다.


기념관_Memorial Comandante Ernesto Che Guevara_0822

도착 당일엔 기념관이 쉬는 날이라 다음날 아침에 갔다. 광장쪽으로 나가니 말 버스(말이 끄는 다인승 수레)가 다닌다. 3명이 2쿡으로 쇼부를 본다. 더 없이 하늘이 푸르고 맑다. 공원 앞에 내려서 걸어간다. 그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다. 5년 전에 처음 봤을 땐 감동에 사무쳐서 차마 사진도 찍지 못했다. 천천히 둘러본다.

커다란 기념 동상 뒤편에 기념관이 있다. 짐을 맡기다가 여편님, 솔님을 잃어버려서 당황했다. 입장한다. 기념관은 무료다. 체 게바라의 유년 시절부터 성장기, 혁명 전쟁, 그 이후까지 주요한 유품과 사진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솔님과 여편님은 특히 웃통 벗은 사진을 좋아했다.) 다른 쪽엔 주요 혁명 영웅들을 기념한 곳도 있다. 기념관을 나와 밖으로 나가면 여러 무덤도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곳을 찾았던 모습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쿠바는 두 번 여행할 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위 자유, 배낭 여행이란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행자로서 지켜야할 제약 요소가 많다. (불만은 아니다. 쿠바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덴 그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을 꼽자면 체 게바라의 재발견이다. 예전엔 그저 여행가, 게릴라 지도자, 혁명가로 좋아했다면, 이젠 앞서간 세계 시민 사상가, 실천가로서 믿고 따른다. (여편님은 며칠 내내 체 게바라를 칭송하는 나와 솔님을 두고, 교회 수련회 온 것 같다고 평했다.)


독서_쿠바혁명사: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여정_아비바 촘스키

솔님이 여행 준비하면서 보고 갖고 오셨다. 아바나에서 시작해서 트리니다드의 해변까지 단숨에 읽었다. 저자는 그 유명한 미국 노인, 노엄 촘스키의 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요하게 미국의 횡포를 늘어놓기도 한다. 쿠바현대사를 다시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됐다. 비판적인 그녀도 체 게바라는 거의 절대 존엄 취급한다. 중간중간 그의 사상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다큐_체 게바라 뉴 맨(Che. Un hombre Nuevo)

산타클라라에 오기 전, 혁명의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트리니다드에서 단체 관람했다. 그가 남긴 흔적을 철저히 추적해 체 게바라가 진실로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뉴 맨은 체의 새로운 인간 사상을 말한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인간을 물질적 동기로 분석한다. 하지만 새로운 인간은 도덕적 동기를 기반으로 행동한다.

체가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남기는 편지에서 말한 혁명이다.

혁명의 중요성을 잊지마라. 하지만 혁명은 혼자선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은 민중이 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언제나 전세계의 누군가가 당하는 불의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혁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Acuérdense que la Revolución es lo importante y que cada uno de nosotros, solo, no vale nada. Sobre todo, sean siempre capaces de sentir en lo más hondo cualquier injusticia cometida contra cualquiera en cualquier parte del mundo. Es la cualidad más linda de un revolucionario.’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영원한 사령관’으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Hasta Siempre_Carlos Puebla: https://www.youtube.com/watch?v=GxtwzU0-wPM


기타_체가 남긴 말들 (개인 메모용)

Seamos realistas y hagamos lo imposible: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리고 불가능한 일을 하자.

Estar siempre lista a apoyar las causas justas: 언제나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편지 중

Que en dondequiera que me pare sentiré la responsabilidad de ser revolucionario cubano y como tal actuaré. Que no dejo a mis hijos y mi mujer nada material y no me apena; me alegro que así sea. Que no pido nada para ellos, pues el Estado les dará lo suficiente para vivir y educarse.

어딜가든 쿠바 혁명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행동할 것이다. 내 아이들과 부인에게 아무것(유산)도 남겨준 게 없는데, 슬프지도 않고 기쁘다. 국가가 이들에게 삶과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Patria o Muerte:.

Hasta la victoria siempre로 유명한 문구인데, 다큐에 따르면 피델이 편지글을 잘못 끊어 읽어서 굳어진 표현이라고 한다. 원문은 ‘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 조국 아니면 죽음을’로 끊어 읽는 게 맞다고 한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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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가느냐 마느냐, 고민의 연속이었다. 보노보노의 쿠바 체험담에 여편님은 쿠바행을 포기하려고 했으나, 고민하던 여편님의 베프 솔님이 쿠바행 비행기를 끊었다. 우리도 바로 보고타-아바나 비행기를 끊었다.


공항_보고타_Bogota El Dorado_0815

쿠바는 기다림의 나라라고 했다. 공항 길도 길었다. 보고타-아바나 노선은 새로 생긴 Wingo 항공을 이용했다. 엄청 미리 한 것도 아닌데 값이 쌌다. 미리 도착한 보람도 없이 체크인은 출발 3시간 전에 이루어졌다. 거의 일등으로 체크인을 했다. 다음에 어디 갈 건지를 묻는다. 아웃 티켓을 보여줬다. 쿠바 여행자 카드를 사려고 했는데 콜롬비아 화폐로만 받는다고 한다. 전날 약간만 남기고 이미 다 환전해버렸다. 환전소로 가서 예전에 남은 페루 100페소를 환전해서 없애버렸다. 돌아가서 여행자 카드를 사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남은 돈에 몇 달러를 보테서 햄버거 세트를 하나씩 사 먹었다. 버거왕 옆, 콜롬비아 브랜드인데 빵이 맛있다. 탑승구로 향했다. , 탑승구가 바뀌었다는 신호가 나온다. 부랴부랴 다른 게이트로 이동했다. 지연이다. 거의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려서 탑승했다.


공항_아바나_La Habana Jose Marti_0815_0829

보고타 공항에 비하면 아바나 공항은 참 소박한 편이다. 내려보니 출국장이 사람이 한 가득이다. 더워보인다. 출입국 수속은 간단하다. 여행자 카드 내미니 도장 쾅, 건강 체크 종이 던지니 끝이다. (여행자 보험 등은 묻지도 않는다.)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한국 사람을 만났다. 간단히 환전을 하고 시내로 가는 택시를 같이 탔다. 덕분에 혼잡한 곳에서 택시 기사 고르는 수고를 덜었다. 베다도 숙소 앞에서 먼저 내리고 이 친구들은 센트로의 요반나로 향했다.


2주 뒤, 숙소에서 불러준 콜택시를 타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돌아왔다. 체크인이 시작 되기를 기다려 또 일등으로 한다. 공항에 둘러봐도 살 만한 건 없어서 남은 쿠바 돈을 달러로 환전했다. 다른 공항의 호화, 북적거림과는 다른 분위기다. 인테리어도 붉은색!.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장으로 갔다. 소박한 면세 코너가 있다. 술 코너가 가장 붐빈다. 애용했던 Havana Club 스페셜 작은 병을 하나 샀다. (그래봤자 7달러다.) 면세점인데 쿡으로 계산한다. 어찌저찌 달러와 남은 쿡 동전으로 셈을 마쳤다. 구미를 당기는 카페도 없다. 앉아서 남은 인터넷 카드를 활활 불태웠다.


일정과 이동_20170815_20170829

2주를 여행했다. 섬 나라는 여러모로 힘들다. 대부분 인-아웃 티켓을 미리 끊어야 한다. 괜히 오래 머물렀다가 안 맞으면 남은 기간이 힘들다. 10일 정도 방문하는 솔님의 일정에 더해 추가로 한 군데 정도 돌아보려고 했다.

아바나에 밤 늦게 도착해 2박을 했다. 나의 쿠바 여행 지론은 ‘어차피 다른 데가 별로면 아바나로 돌아오면 된다. 아바나에서 오래 있다가 다른 곳에 짧게 머물면 아쉽다.’이다. 첫날 아바나에서 후라이가 된 솔님이 적극 동의해서 바로 트리니다드로 떠났다. 트리니다드에선 숙소가 좋아서 4박을 했다. 체형을 만나기 위해 산타클라라에서 2박을 했다. 비날레스로 가서 함께 3박을 하고 솔님이 떠났다. (당초 예정은 반 정도만 같이 다니는 거였는데 결국 끝까지 같이 다녔다.) 나머지 2박을 비날레스에서 더 하고 아바나로 돌아갔다. 처음 머문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교통_도시 간 이동

혼자 쿠바에 왔을 땐 아바나 버스도 타고, 현지인 가격으로 박박 우겨서 산티아고 데 쿠바 가는 기차도 탔었다. 하지만 이번엔 초대 손님도 있고, 나이도 먹었으니 무리 안하고 편하게 다녔다. (쿠바의 여름은 모든 로망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콜롬비아에 이어 택시를 많이 탔다.

쿠바는 작은 섬나라에 동서로 고속도로가 쭉 뻗어있고, 교통량도 많지 않다. 남미 대륙에 비하면 도시간 이동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휴가철이라 버스 예매도 쉽지 않고, 일행이 3명이라 콜렉티보 택시(사람 모아서 가는 택시)라는 옵션을 많이 활용했다. 숙소-숙소 인 걸 감안하면 버스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아바나-트리니다드 구간은 숙소 주인의 마케팅에 바로 콜렉티보 택시를 이용했다. (숙소에서 콜렉티보를 부르면 가이드북에 알려진 가격보다 5쿡 정도 비싸긴 했다. 하지만 숙소 안 끼고 했다가 택시가 안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트리니다드-산타클라라 구간은 국영 여행자 버스인 Viazul을 이용했다. 출발 며칠 전에 터미널에 가서 예매를 했다. 버스는 여행객으로 꽉찼다. 버스도 매우 낙후되서 느렸다. 쿠바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 보다도 안 좋은 것 같다. 산타클라라-비날레스 구간은 산타클라라-아바나까지 숙소에서 불러준 콜렉티보를 탔고, 아저씨가 여행자 버스 터미널이 아닌 일반 버스 터미널 옆에 내려줬다. 덕분에 보다 저렴하게 비날레스까지 가는 콜렉티보를 타고 갈 수 있었다. 그래도 현지인들에 비하면 비싸게 내는 건지 우리 셋만 타고 갔다.

마지막으로 비날레스에서 아바나까지는 여행자 버스가 아닌 관광사 버스를 이용했다. Habana TourCubacan에서 운행하는 버스인데 아바나의 경우 센트로와 베다도의 호텔 앞에서 내려준다. 버스도 Viazul보다 훨씬 쾌적하고 빠르다. 가격은 Viazul보다 몇 달러 비싼 수준이다.


정세_쿠바-미국 관계

오바마 정권의 가장 큰 성과였던 쿠바-미국 간 관계 완화는 트럼프의 취임으로 바로 뒤집혔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진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다 이것 때문이었다. 비날레스에서 만난 미국인 말로는, 미국인의 쿠바 일반 자유 관광이 올해 8-9월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바나의 올드카들은 모두 예쁘게 단장되어 있고, 영화 ‘치코와 리타(Chico y rita)’에 나오는 것처럼 올드카를 타고 아바나를 누비는 사람들도 많았다. 막판 며칠을 제외하곤 늘 많은 인파가 작은 마을들을 가득채웠다.


금융_화폐와 ATM

쿠바는 화폐 제도가 특이하다. 쿠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쿠바 페소(CUP, MONEDA)와 공산품 거래 및 여행자 화폐로 쓰이는 쿡(CUC) 두 가지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행자들이 적정 비용을 지불하게 해서 관광수입을 극대화한 것이다. (물론 두 화폐 가치의 엄청난 차이로 소득 격차 등 많은 문제가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쿡은 단순히 달러와 연동시키고 거기에 약간의 수수료를 더한 것 뿐이다. 달러와 로컬 화폐가 통용되는 많은 나라와 별 차이가 없다. 대신 국가 입장에선 효율적인 외화 관리가 가능해진다.


미리 환전을 두둑히 해둔 솔님 덕분에 공항에서 약간의 유로를 환전(예전엔 달러 환율이 매우 불리했는데 요즘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하고 거의 돈 걱정없이 지냈다. 그러다 한참 지나서 ATM으로 돈을 뽑았다. Banco de Credito y Comercio만 두 번 이용했다. 몇 번 시도해도 안 뽑혀서 문제가 있나 했더니 마스터카드여서 그랬다. VISA카드로 인출하니 500, 700쿡씩 술술 나왔다.

쿠바 페소, 모네다의 경우 거의 쓸일이 없었다. 솔님이 미리 아바나의 환전소에서 한 시간 동안 후라이가 되가며 준비한 240CUP(=10CUC)를 겨우 썼다. 모네다 피자 한 번 안 먹고, 산타클라라에서 말택시 탈 때나, 흥정하다가 약간 더 깎고 싶을 때 1달러 대신 20모네다를 내는 식으로만 활용했다. 몇몇 로컬 식당에서도 모네다와 함께 쿡 가격을 알아서 제시하고 계산을 해줬다.


인터넷_인터넷 카드와 와이파이 공원

쿠바는 인터넷도 다르다. 인터넷 접속을 하려면 전화국에서 줄을 서서 인터넷 카드를 사야 한다. 솔님의 아바나 경험을 듣고, 일단 아바나에선 포기하기로 했다. 트리니다드 광장의 전화국에서 구매했다. (5시간에 7) 생존 보고도 문자(한 통에 몇 백원)로 하고, 바라데로의 숙소를 알아보는데 썼다. 인터넷으론 대충 가격대만 파악하고 여행사 사무실에 물어봤다. 방이 별로 남지 않아 바라데로는 포기했다.

숙소 침대에서 각자 누워 와이파이뽕을 맞을 시간에 멍하니 눕거나, 음악을 틀거나, 책을 읽거나, 사상 토론을 하고 특정 인물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터넷을 안하니 셋 다 엄청난 쾌적함을 느꼈다. (세상 모든 게 포기하면 편하다.) 머리가 가벼워졌다. 솔님은 이를 ‘디지털 디톡스’라고 명했다. 그러다 한 번 포털에 들어가니 복잡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고 했다. 우리도 그냥 안 쓰기로 했다. 나중에 솔님이 주고 간 카드를 썼다. 더운 공원에서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늘어지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랩탑으론 접속도 안됐다. 겨우 다음 여행지 숙소만 예약하고 말았다. 인터넷 세상은 오랜만에 들어가면 참 재미없는 곳이었다.



아바나(La Habana)_0815_0817 & 0828_0829

쿠바의 수도, 혁명 광장, 말레꽁 해안도로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 낭만이 넘치는 도시다. 하지만 그만큼 넘치는 호객꾼과 사기꾼, 올드카에서 뿜어지는 매연과 바다의 습기, 열섬 현상이 더해져서 8월엔 어마어마한 더위까지, 호텔이 아닌 까사에 생활자가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숙박_까사 아델라(CASA ADELA)_트리픔 룸_2+ 1

아무리 아날로그 여행의 로망이 있어도 아바나 숙소는 미리 예약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호아끼나, 요반나 등 북적북적한 곳에서 솔님과 셋이 접선하는 것도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까사 예약 사이트를 뒤지다가 공기방울을 보니 좋아 보이는 집이 있었다. 처음 3박을 예약해서 똘님이 먼저 하루를 자고 있다가 다음날 밤에 숙소에서 우리가 합류하기로 했다. (셋이 같은 방에 자는 것도 외국 여행 가면 온갖 사람들과 도미토리에 자는 거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데 모두 동의했다.쿠바는 대부분 도미토리도 별로 없고, 방 단위로 가격을 받아서 한 방에 자는 게 이득이다.)


택시가 집 앞에 내려줬다. 오래된 아파트다. 벨을 누르고 계단을 올라 올라 가니 맨 윗층에서 우리를 맞아준다. 간단히 주인과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둥 솔님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방에서 나타났다. 둘은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잠시 그녀의 일일 아바나 체험기를 듣고 간단히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었다. 소문대로 커피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2주 동안 이 집 커피가 최고라는 게 판명났다.) 샌드위치나 주스도 모두 맛있었다. 당장 이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뒤이어 아델라 아줌마의 마케팅이 시작됐다. 트리니다드를 갈 거라고 하니, 비날레스가 시원하고 좋단다. 그래도 일단 트리니다드를 가겠다고 하니 까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알아보기도 귀찮고 믿어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택시도 아델라에게 부탁했다. 아바나는 너무 커서 여행사든 터미널이든 알아보러 가는 것도 큰일이다.

숙소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방에 최신 에어컨이 달려있고, 2명이 자기엔 침대가 작았지만 화장실도 깔끔했다. 거실은 전망도 좋고, 가구도 다 좋아보이지만, 주로 주인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너무 더워서 밥만 먹으면 방으로 대피했다. 우리 말고도 맞은 편 방엔 늘 다른 투숙객이 있었다. 명함을 보니 아바나 센트로에도 아파트를 운영하는 것 같았다. 사업 수완이 띄어난 그녀를 신뢰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쿠바 여행은 아델라가 지배했다.


저녁도 맛있었다. 돼지고기를 요청했는데 팔둑만한 통삼겹이 나왔다. 잡곡밥도 착착 감겼고, 주스도 맛있었다. 아델라의 구아바 주스도 쿠바 제일이다. 다음날 아침까지 든든히 먹고 떠났다. 2주 뒤, 우리 둘만 아델라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리 비날레스에서 전화(대부분 까사에서 전화 한 두 통은 쓰게 해줬다.)로 방과 저녁 식사를 예약했다. 처음 썼던 방과 같은 방을 줬다. 에어컨 아래 자리에 솔님도 없고, 선반 위에 우리 몫의 택배 거리도 없는 방을 보니 허전했다. 그냥 저녁을 미리 부탁했더니 소박한 메뉴가 나왔다. 콩 수프를 줬는데 된장찌개 같았다. (솔님은 한국 가자마자 된장찌개를 끓일 거라고 했다.) 야채 볶음과 흰 밥에 비장의 깻잎 통조림을 겻들였다. 한식 부럽지 않은 식사였다. 부실한 메뉴 대신 디저트가 나왔다. 진한 초코맛 아이스크림이었다. 다음날 아침, 끝까지 맛있었다.


선물_솔택배_0815

메데진에서 보노보노에게 짐까지 부탁하고 나니, 솔님에게 받을 게 많아졌다. 뭐든 다 가져다주겠다는 말에 귀이개, 5(이 중 2권은 손수 중고 서점에서 픽업해 오셨다.) 등을 부탁했다. 거기에 최신 커피 믹스와 통조림 깻잎 절임, 컵라면 3개를 챙겨오셨다. 심지어 여편님에게 원피스 하나를 그냥 주었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의 콜롬비아, 쿠바 기념품 몇 점과 다 읽은 책까지 이고 가셨다. (본인의 기념품이 또 어마어마했다.)



베다도(VEDADO)에서 센트로(CENTRO)까지_0816

길고 긴 서론이 끝났다. 본격적인 아바나 관광 이야기다.


말레꽁(MALECON)

유명한 아바나의 해안도로다. 제주시 탑동 해안도로에 가도 이런 방파제는 다 있다. (에콰도르 과야킬에도 있는 걸 보면 보통 명사인 것 같다. 찾아보니 둑, 제방이란 뜻이다.) 어디든 해안도로는 드라이브하면 좋고, 파도 보면서 산책하고, 걸터 앉아서 맥주를 마시건 수다를 떨 건 좋다. 그래도 아바나 왔으면 말레꽁이라는 여편님의 열정에 숙소에서 나가자마자 밤 바다로 나갔다. 열대야를 피하러 온 시민들이 많다.

다음날 아침, 센트로로 나가면서 밝은 말레꽁을 또 보러 나갔다. 잠시 바다 감상을 하고 너무 더워서 골목으로 돌아왔다. 말레꽁이 유명해진 것은 드라이브,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서막, CHAN CHAN이 깔리는 대목이다. 밤밤 바바바바 밤바밤바밤…. 운 좋게 말레꽁을 차를 타고 두 번이나 달렸다. 심장 터지는 순간이다. 한 번은 둘째날 센트로 관광 후 숙소로 택시 찬스, 두 번째는 비날레스에서 돌아오는 데 센트로에 들른 버스가 베다도까지 말레꽁 도로를 따라서 갔다.

마지막 날 숙소 체크인을 하고 해질녘의 말레꽁을 또 걸어보기로 했다. 호텔 나시오날(HOTEL NACIONAL)에서 미국 대사관이 있는 길을 걸었다. 더운 해안도로다.


골목길

아바나의 평범한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의의가 있었다. 말레꽁에서 골목길로 돌아와 센트로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경기가 좋은 지 건물 수리 작업들이 한창이다. 그러다 두 명이 와서 말을 건다. 자기네 동네에서 축제를 하니 구경하러 같이 가잔다. 냄새가 난다. 따라가다보니 제법 활기찬 골목이 나온다. 관광객도 있다. 바로 들어간다. 확실하다. 우린 안 마실 거라고 나왔다. (전날 솔님은 공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다니다가 현지인에게 덜컥, 모히토 한 잔을 뜯겼다고 한다.)


까삐똘리오(CAPITOLIO NACIONAL) 주변

겨우 중심 광장까지 기어왔다. 땡볕이 내리쬐었다. 까삐똘리오 주변의 그늘로 피신했다.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보노보노가 알려준 일식집(NIPPON SHOKUDOU)을 가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에 맛난 튀김과 덮밥이 나왔다. 라임 주스와 함께 흡입했다. 다시 피난처를 찾았다.

솔님이 그깟 호텔 에어컨 얼마 안한다. 커피 자기가 살테니 가자고 했다. 플라자 호텔에는 CUBITA(쿠바 커피 브랜드)를 비롯한 명품 가게가 많았다. 둘러보지 못했다. (공항에도 매장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센트럴 파크 호텔(HOTEL PARQUE CENTRAL)에 들어가려고 했다. 경비원이 나를 제지했다. 뭐라뭐라 하길래 돌아가라는 줄 알았다. 한바퀴 빙 돌아도 입구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내 복장이 문제란다. 너무 더워서 팔을 자른 민소매 티를 입고 있었다. 그럼 여자는? 괜찮다고 한다. 다른 호텔로 갔다. 텔레그라포 호텔(HOTEL TELEGRAFO)는 우리를 시원하게 맞아줬다. 건물 안쪽까지 파랗고 높은 디자인이다. 가우디 풍인지 천장도 오묘하고 높다. 물론 커피 가격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소독 시간이라 나가라고 할 때까지 에어컨을 맘껏 마시며 버텼다.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de Cuba_0816

냉기 충전 후 미술관으로 갔다. 국립 미술관은 쿠바관과 국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두 개 동시에 보면 할인이 되지만 쿠바관 하나 제대로 보기에도 벅차다. 식민지 시절의 평화로운 그림, 열대 섬의 풍경 등이 지나고 혁명을 맞이 한다. 그리고 나서도 그림들은 다양한 색채를 보인다. 민중적인 삶,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의 삶, 아프리카에서 이어져 온 문화색에 대한 특별 전시 등등 문 닫을 때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Tomás SanchezRelación이란 그림은 여전히 인상이 깊다.


나와 솔님은 거의 체력이 다해서 미술관 앞에서 쉰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편님은 더 돌아보자고 한다. 오비스포 거리를 갔다. 인파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여러 가게들을 대충 돌아보고 바닷가에서 기지를 바라본다. 모두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갔다.


공연_Jazz club la zorra y el Cuervo_0816

하바나의 밤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어딜 갈까하다가 살사는 다른 데도 많을 거고, 재즈 공연을 보기로 했다. 숙소가 있는 VEDADO엔 괜찮은 바가 많다. 가장 유명하다는 재즈 클럽을 갔다. 공연은 10시 시작이다. 가보니 5년 전에 홀로 찾았던 그 재즈바다. 오늘은 거의 100세에 이른 재즈 할아버지의 생일이란다. 친히 나오셔서 인사를 하고, 공연 중간에 올라와서 드럼을 쳤다. 그 전까진 기력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신기하게 드럼 앞에서니 에너지가 넘친다. 현실 부에나 비스타가 여기 있었다.

우린 입장료에 포함된 모히또 한 잔씩을 마시고 졸음이 밀려온다. 결국 솔님이 먼저 포기를 외쳤다. 숙소로 돌아가서 꿀같이 잤다.



다시 아바나

산타 클라라에서 비날레스로 가기 위해 아바나로 한 번 돌아왔고, 비날레스에서 다시 또 아바나로 돌아왔다. 택시, 버스로 아바나 시내를 두 번이나 제대로 돌아봤다. 덕분에 여편님은 혁명 광장도 두 번이나 만끽했다. (안 그랬으면 따로 혁명광장을 가야 했다.)


호텔_Hotel Nacional de Cuba_0816 & 0828

솔님이 여기서 모히또를 한 번 마셔야 한다고 했다. 정원도 산책할 수 있고, 좋다고 했다. 재즈바에 가기 전에 들렀다. 그냥 들어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식당을 물으니 아래로 내려가라고 한다. 식당은 아직 영업 준비 중이다. 모히또를 마실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호텔 로비만 돌아보고 재즈바로 향했다.

다시 아바나로 돌아온 나와 여편님, 저녁 먹기 전에 호텔 나시오날을 다시 찾았다. 호텔 내부엔 기념품 가게도 많다. 이번엔 입구에서 쭉 들어갔다. 야외로 연결된 바가 여기에 있었다. 말레꽁 해안 도로 위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예전에 쓰던 포대와 벙커 같은 곳도 있다. 커다란 체 게바라와 콤파이 세군도의 사진도 걸려있다. 약간 비싼 모히또를 홀짝였다. 취기가 오르고 감성이 도진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게 하는 도입부다.

Buena Vista Social Club_Chan Chan: https://www.youtube.com/watch?v=6JEdf7XsV5g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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