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서부의 산골 휴양지 비날레스로 갔다. 이번에도 까사에 부탁해서 콜렉티보를 불렀다. 이번에 온 건 정식 택시가 아니라 가족이다. 앞 자리에 부부가 앉고 뒤에 아들이 앉고, 우리 셋이 끼어 앉았다. 좀 많이 좁았지만 차도 올드카가 아니라 덜 떨렸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마신 커피도 맛있었다. 아들이 절대 다리를 오므리지 않는 것만 빼면 쾌적했다. 아저씨가 비날레스 가는 콜렉티보가 있는 곳에 내려줬다. 빨간 올드카를 탔다. 알고보니 뷰익이었다. 고속도로를 창문 열고, 노래 들으며 달렸다. 우리 셋이고 매연이나 에어컨도 없어서 쾌적했다. 끈적한 바람에 머리는 모두 떡이됐다. 한 번은 해볼만한 경험이다. 꼬불꼬불 산길로 진입해서 30, 비날레스에 도착했다.


Viñales_0823_0828

쿠바의 다른 관광지와 달리 산골(그래봤자 해발 150m)에 있어서 좀 차분한 분위기다. 주변에 농장, 산이 많아서 생태 관광으로 유명하다. 어지간해선 예전엔 안 그랬다는 표현 싫어하는데 여긴 진짜 많이 변했다. 가운데 식당 몇 개 있고, 숙소도 많지 않고 골목엔 돼지와 닭이 자유롭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지금은 골목에 포장도로도 많이 깔리고 큰 길은 물론 뒷 골목까지 모두 까사와 식당으로 가득하다.


숙박_Casa Colonial_트리플룸_4

산타 클라라에서 아델라와 통화했다. Villa el Pollo로 가라고 했다. 주소를 보니 맵양에도 나왔다. (쿠바에서 맵양: maps.me은 거의 절대적 신이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아줌마의 거친 마케팅을 뿌리치고 숙소를 찾아갔다. 젊은 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자기네 집은 방이 없지만 연결된 옆집(형제인 듯?) 방을 보여준다. 숙소가 큰 길가라 걱정했는데 마당 깊숙이 있는 별채다. 스머프 버섯이 심어진 잔디밭도 있다. 방도 넓고 창문도 있다. (밖으로 통하는 창문은 쿠바에서 처음이었다.) 비날레스 숙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 앞에 흔들의자다. 서늘한 아침 바람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책만 읽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방은 좋았지만 아침은 그냥 그랬다. 무엇보다 커피가 너무 맛이 없었다. 우리 속을 모르는 주인 부부는 계란만 엄청나게 부쳐줬다. 밖에 나가면 아침 파는 식당도 얼마든지 있어서 큰 불편은 없었다. 하지만 아침도 잘 안 먹고, 저녁도 한 번 안 먹으니 우릴 별로 좋아하지 않는게 느껴졌다.


숙박_Casa Elisa_더블룸_1

솔님은 3박만하고 공항으로 바로 떠났다. (아바나로 가는 콜렉티보가 공항에도 내려주었다.) 주인에게 이틀 더 있을 거라고 하니 확답을 안주다가 하루만 된다고 한다. 옆집(Villa el pollo)에 방이 있다고 한다. 짐을 싸서 배낭을 맡겨 놓고 나갔다 왔는데 오늘 나가기로한 애들이 하루 더 있는다고 한다. 근처 집을 보여주는데 다 맘에 안든다. 여편님이 아침에 카페에서 조식 먹으면서 맞은 편의 좋은 집이 ‘빈 방 있음’을 걸었다고 했다. 가봤더니 이 집 주인도 우리가 아침 먹는 걸 보았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20)에 방을 하나 내준다. 에어컨 위치가 요상했지만 별로 덥지도 않았고, 방은 깔끔했다. (다른 좋은 방은 다 차 있었다.)

하루만 머물렀지만 편안한 집이었다. 나름 마당도 있고 쾌적했고, 아침 식사도 무난했다.


시내_추억 산책_0823

비날레스도 공원에서 와이파이를 한다. 동네가 좁아서 근처 식당이나 바에서도 접속이 되서 편안하게 인터넷도 좀 했다. 공원 한쪽엔 문화센터에서 살사 배우는 친구들도 있고, 밤엔 그 옆에서 트리니다드처럼 공연을 한다. 현숙 같은 언니가 나와서 분위기를 으쌰으쌰했다.

내가 비날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예전 여행 때 머물렀던 숙소가 좋았기 때문이다. 예약한 숙소가 맘에 들어 그대로 머물렀지만 그쪽을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연립주택을 지나 소박한 까사 몇 개가 보인다. 이제 돼지와 닭들은 저 풀섶 안쪽에서 놀고 있다. 여전히 운치가 있다. 이쪽 숲길을 돌아보는 친구들도 있다.


투어_국립공원_승마_0824

근처 국립공원을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숙소 아저씨를 통해 신청했다. 말 타고 돌아보는데 1인당 1시간에 5쿡이라고 한다. (나중에 돌아보니 3쿡이라고 써붙인 곳도 있었다.) 오전을 추천했는데 여전히 햇볕이 강해서 오후에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3시가 되니 비는 좀 잦아들고 구름이 껴서 선선했다. 우릴 데리러 온 사람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마을 외곽에 말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각자 말을 배정받는다. 내가 탄 말이 5, 여편님 말이 4, 솔님 말은 더 어리다. 순서대로 가는데 4살짜리가 자꾸 앞서려는 욕심을 낸다. 그럼 또 내 말이 달려나간다. 몇 번이나 여편님과 부딪혔다. 가이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뒤에서 까바요~(Caballo, ) 소리만 치면서 따라온다.

마을 외곽인데도 까사가 많다. 계속 짓고 있다. 한참을 말 타고 나가야 국립공원 길로 접어든다. 보아하니 예전에 워킹투어로 했던 거랑 코스가 똑같다. 담배 농장으로 간다. 앞의 팀 설명이 끝나고 우리가 들어간다. 담배 수확철이 아니라서 초간단 설명을 해준다. 여편님과 솔님은 괜찮다고 해서 나만 체험용 시가를 하나 물었다. (사진 않았다. 예전에 6개월 간다고 샀는데 한 달만에 배낭 속에서 다 썩어 문드러진 기억이 있다.) 여편님도 몇 번 피우고 맘에 들어한다. 시가는 연기를 머금다가 내벹는 거라 칼칼함도 없다. 그래서 천식이 있는 체형도 좋아했던 것 같다. 시가를 마저 물고 말에 오른다. 말 위에서 피우는 시가의 맛이란, 흡연가가 아닌 나에게도 신선 놀음이었다.


비가 그친지 얼마 안되서 내리막 비탈길은 미끄럽다. 긴장 빡 하고 내려간다. 커피 농장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거대한 호수를 끼고 (아침에 시작하면 점심에 이 호수에서 수영도 하는 것 같다. 하기 싫다.) 커피 농장을 보러 간다. 농장을 둘러본다. 커피 나무 뿐만 아니라 구아바 등등 열대 과일 나무가 많다. (자긴 구아바 두 개 먹고, 우린 하나 준다.) 커피 나무를 보여준다. 노란색 열매도 열렸다. 고도가 낮은 걸로 보아 로부스터 품종일 것이다. 구아바를 넣은 럼을 맛 보여준다. 커피는 볶은 원두를 생수통에 판다. 전통 방식으로 한 시간 동안 구웠다고 한다. 숯덩이 같은 맛이다. (당연히 사진 않았다.)

호수와 주변 산세를 보이는 오두막 카페에서 음료를 한잔씩 마신다. 코코넛인데 물이 별로 없다. (아바나 시내에서 사먹은 것보다도 못하다. 마시던 거 준듯?) 경치는 진짜 좋다. 가운데 홀로 솟은 오름 같은 봉우리가 인상적이다. 왔던 길을 한 번에 돌아간다. 중간에 여편님 말이 난동을 부렸다. 솔님은 중간 중간 말이 땅을 뚫을 기세로 볼일을 보면서 서서히 넋이 나갔다. 우리야 몽골, 페루 등에서 타면서 말에 안장만 있으면 감지덕지다 하는 수준이지만 제주도 승마장 이후 쿠바에서 말타기란 엄청난 문화 충격인 것이다.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돌아오니 2시간 반 정도가 흘러있었다. 말에서 내려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왔다.


요양_0825_0826

승마 후 돌아와서 저녁에 먹은 바베큐가 탈이났다. 바베큐라 질기군 하며 먹다가, 여편님 걸 먹어보니 부드러웠다. 결국 나와 솔님이 탈이 나고 말았다. 하루 종일 누워서 요양했다. 아껴둔 컵라면 세 개를 먹어봤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배고픈 여편님은 홀로 피자를 테이크 아웃해서 먹었다. 여편님과 나, 솔님의 생체리듬은 쿠바 여행 내내 반대 곡선을 그렸다. (참고: 생체리듬 변화)



다음날 아침, 헤롱헤롱한 상태로 솔님은 떠났다.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컸다. 어찌어찌 살아서 한국엔 갔다고 한다. 우리의 짐 몇 개와 그녀의 기념품까지 더하니 올때보다 캐리어가 더 무거워졌다. 여러모로 다시 감사를 표한다. 그녀가 떠난 날, 몸을 마저 회복했다. 기름기 없는 음식을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 마음은 허전했다. 우린 뭐하러 3,4일을 더 머물기로 했을까. 남은 날은 멍만 때리다 가나. 괜한 기우였다. 우리의 쿠바 여행은 (솔님께 미안하게도) 다음날 정점을 찍었다.


수영장_Horizontes Los Jazmines_0827

숙소를 옮기려고 짐을 뺐다. 짐 정리해서 맡기고 나니 땀이 한바닥. 해결책은 수영장을 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근처 자스민 호텔은 수영장만 별도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수영 장비를 챙겨서 택시를 타고 갔다. 호텔 입구로 들어갔다. 수영장 입장료는 3(가이드북에 7쿡이라고 해서 쫄았었다.)이었다. 바에서 파는 음료, 커피, 샌드위치도 일반 식당과 다르지 않다. (다른 곳의 고급호텔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 정책이다. 혁명 만세!) 일요일이라 놀러온 쿠바 사람들(대부분 까사 주인 느낌이다.)이 훨씬 많았다. 몇몇 가족은 어마어마한 바베큐 덩어리를 다같이 나눠 먹고 있었다.

처음엔 한가해서 아무데나 자리잡았는데 점점 사람이 늘어났다. 한쪽은 어린이용으로 낮은데 반대편은 기하급수적으로 물이 깊었다. 우린 안전하게 어린이들과 섞여 놀아야했다. 물에서 실컷 놀다가 나오면 비날레스 계곡이 그대로 펼쳐졌다. 물놀이를 실컷 하고, 점심도 먹고, 엽서 쓰고, 호텔 매점도 구경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쿠바에서 보낸 최고의 하루였다.


식물원_Jardin Botanico_0825

요양 중에 잠깐 다녀왔다. 그냥 산책하는 식물원인 줄 알았는데 가이드를 따라 구경하는 곳이었다.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상태가 메롱이라 별 감정이 없었다.



중심거리는 가로수길 못지 않게 번화하다. 초반엔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미국 휴가 시즌 막판이라 그런지 마지막 며칠은 한산했다. 골목엔 또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 선다. 대부분 지역 특산물인 나무와 짚 제품을 판다.


카페_Café del Rey

은근 카페는 많지 않다. 그나마 제대로된 커피를 팔 것 같았다. 마셔보니 맛도 있다. 조식을 먹어보니 양도 적당하고, 아침엔 커피가 더 맛있다. 종종 애용했다.


식당_El Barrio

가이드북에 나온 식당이고, 숙소 근처라 첫날 피자를 먹었다. 맛있었다. 또 가서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별로였다. 피자만 한 번 더 먹었다.


식당_길에서 굽는 바베큐 집

첫날 저녁을 뭘 먹을까 서성거렸다. 길가에서 직접 돼지 통구이를 굽고 있다. (비날레스에 가면 돼지 통구이를 먹으라고 했다.) 길가와 너무 가까웠지만 소박한 분위기에 고기도 맛있었다.


식당_100% 쿠바

문제의 식당이다. 승마를 하고 와서 들어갔다. 옥상 테라스 자리도 있어서 인기가 많다. 음악도 신난다. 다 같이 돼지 바베큐를 시켰다. 먹을 땐 좋았으니 결과는 폭망이었다. 고기는 잘 익혀 먹어야 한다.


식당_El Olivo

여행조언자 일등 식당이다. 몇 번 지나칠 때마다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솔님이 떠나고 둘이 기웃거리다가 한가해서 들어갔다. 안락하고 점잖은 분위기였다. 샐러드와 빠에야를 시켰다. 빠에야에 해물이 진득하게 들어가서 맛있었다. 샐러드도 오이, 토마토가 아닌 여러 풀이 잔뜩 들어간 것이었다. 이탈리아와 지중해 매니아인 솔님 생각이 났다. 그렇게나 풀이 많은 샐러드와 촉촉한 죽 같은 밥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이후 남은 이틀 내내 올리보에서만 먹었다. 직원들도 얼굴이 익었다. 모두 형제로 보이는데 몸집이 다 좋다. 쿠바 식당에선 하나 같이 접시를 한 번에 모아서 다 치우는데 이 형들이 치우니 불안하지가 않다. 파스타도 우리가 그리던 맛이었다. (이전에 쿠바에서 먹은 파스타는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주는 스타일이었다.) 나중엔 오리 고기도 시켰다. (토끼 고기도 판다.) 중화풍으로 부드럽게 나와서 집에서 먹던 생각이 날 정도였다. 먹을 때마다 솔님 생각을 했다.



P.S 꽝님

솔님과 더불어 감사해야 할 분이 또 있다. 솔님과 공항에서 만난 분이다. 우리가 오기 전 하루 아바나 관광을 같이 했다고 한다. 우리 아바나 숙소 얘기를 듣고 아델라 집을 예약해 달라고 했다. 이후로도 종종 솔님에게 쿠바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어떤 수난이 닥쳤는지 쿠바 이미지 꽝이라고 했다.


독서_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솔님이 예전에 읽고 여편님 보라고 가져온 책이다. 나도 예전에 읽고 쿠바에 대한 이미지가 급 좋아진 책이다. 저자는 쿠바 매니아라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 교육 천국 쿠바, 의료 천국 쿠바 등의 책을 펴냈다.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도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솔님은 여행 기간 이 책을 봤다. 각자 쿠바 관련된 책을 하나씩 보며 중간 중간 토론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비날레스 숙소 Casa Colonial에 두고 왔다.


_맥주__칵테일

쿠바하면 럼이다. 아바나 클럽 말고도 산티아고 데 쿠바 등등 다른 럼도 많은데 마셔보지 못했다. 더위 때문에 럼보단 맥주를 많이 마셨다. Cristal이 연하고 시원했다. 럼을 그냥 먹으면 온 몸에 없는 수분이 다 날라가는 것 같아서 쿠바리브레, 모히또를 종종 마셨다.


음악_영화_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설명이 필요없다. 집에 가면 한 번 더 봐야겠다. (여편님은 극장에서 이걸 보고 Chan Chan 나오자마자 울었다고 한다.)


음악_쿠바로 가는 길(The Road to Cuba)

유명한 부에나 비스타 클럽 엘범과 함께 쿠바에서 많이 들은 엘범이다. 여러 유명한 쿠바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_Silvio Rodriguez

실비오 로드리게스가 칠레 가순 줄 알고 있었다. 쿠바의 김광석 같은 대표적 민중 가수였다.

Mi unicornio azul: https://www.youtube.com/watch?v=dnvVtkVaM84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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