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를 맛보고자 트리니다드로 갔다. 혁명을 맛보고자 산타 클라라도 갔다.


트리니다드(Trinidad)_0817_0821

남부 해안에서 조금 올라온 곳에 있는 마을이다. (난 여기가 바로 바닷간 줄 알았는데 바다는 차를 타고 10~20분 내려가야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식민지풍의 건물들과 가까운 해변 때문에 발달한 관광지다. 그래도 우리가 머물렀던 곳 중엔 가장 한적했다. 마을 안에선 바다는 고사하고 산만 보인다. 시원해서 좋다.


가는 길_0817

예정 시간보다 일찍 집으로 온 택시 운전사, 서둘러 밥을 먹고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데리러 갔다. 아바나의 부촌이라 불리는 동네다. 말루마 같은 애가 나와서 얘기를 하더니, 한 시간을 기다린다. 기약도 없다. 그러다 딱 봐도 전날 늦게까지 술 마신 말루마 친구 세 명이 나타난다. 워낙 늦어서 나머지 두 명은 다른 차를 타고 여기로 직접왔다. 콜렉티보 택시는 초록색으로 포드사거 였다. 여편님이 기사에게 “이 차 몇살이냐?” 고 물어봤다. 기사는 ‘58년형’ 이라고 했다. 우리 아빠, 장모님과 동갑이다. 올드카는 아바나 시내 관광할 때만 쓰는 줄 알았는데, 장거리 택시도 한다. 반 세기 지난 에어컨의 공기도 탁하다. 고속도로를 시속 백키로로 달린다. 거의 떠있는 상태로 달달달 거리며 간다.

잠시 휴게소에서 쉬고, 세 명은 다른 차로 갈아탄다. 앞의 두 여성은 필리핀에서 왔다고 한다. 5시간의 힘든 여정이었다. 다음엔 무조건 버스를 타기로 한다.


숙박_Casa Colonia Nena y Robe_트리플룸_4

아델라가 써준 종이를 보고 콜렉티보가 숙소 앞에 내려준다. 두근두근 어떤 방일까. 넓고 깨끗한 더블침대 2, 깔끔한 화장실, 심지어 LED로 온도가 표시되는 최신 에어컨. 좋은 집이다. 위에 테라스에서 아침이나 저녁을 맞이해도 좋다. 점심도 대충 먹어서 오후 늦게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방에 창문이 없어서 문 닫고 에어컨을 켜니 스르르, 모두 7시에 자서 다음날 7시에 일어났다.

당연히 아침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주인 내외 모두 친절하고 여러모로 배려를 많이 해준다.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에 새우, 랍스터 등도 있어서 랍스터 2, 새우 1개를 부탁했다. 랍스터는 보기엔 기세 등등했지만 살은 새우가 더 맛있었다. 더 이상 랍스터에 집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시내_광장과 시장

숙소에서 번화가까지는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길이 돌길이라 차는 별로 안 다닌다. 은퇴해도 괜찮을 말들이 힘겹게 마차를 끌고 있다. 비가 자주와서 지붕 밑의 좁은 도보 길로 다녀야 했다. 아바나 보단 덜 하지만 미친듯이 더워서 외출 후 집으로 피신하기를 반복했다.

두 개의 광장이 있다. 하나는 은행, 통신 등 사무적인 중심가고, 하나는 좋은 식당과 가게가 몰려있는 관광 중심가다. 골목골목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들어섰다. 지역별로 기념품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걸 보면 다들 근처에서 만드는 것 같다. 혹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많이 샀다. (티셔츠, 앞치마 등등) 와이파이가 잡히는 공원에 계단으로 공연장까지 이어지는데 거기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다들 콜라 하나 시켜놓고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공원엔 그늘이 별로 없어서 힘들다.)


전망_Museo Nacional de la lucha contra bandidos_0818

뜬금없이 트리니다드에 무슨 혁명 박물관인가 했더니, 이쪽 해안을 공습했던 미국과의 투쟁을 기념한 곳이다. 혁명 이후 끊임없이 쿠바를 괴롭혔던 미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실 박물관 방문의 주 목적은 종탑에 올라가서 전망을 보는 것이다. (여편님의 전망 욕심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더워서 대충 보고 나온다.


공연_Casa de la Musica_0818

광장 바로 위 계단 꼭대기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여기서 밤마다 공연이 펼쳐지고, 너도나도 무대로 올라가 살사를 춘다는 그곳, 숙소 저녁을 먹고 밤마실을 나갔다. 음료 하나를 시켜놓고 공연을 감상했다. 공연은 아저씨가 노래만 안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앞에는 바람잡이들이 춤을 추고, 맨 앞자리에 때를 노리던 2커플이 나선다. 잘 춘다. 여편님이 졸림을 호소하여 귀가했다.


해변_Ancon_0819

토요일은 해변에 갔다. 터미널 근처에 가서 택시를 탔다. (버스도 가격은 거기서 거기다.) 휴가철이라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제일 안쪽에 야자수 하나와 선베드 3(유료 대여)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선베드는 혁명적이게도 좀만 앉으려고해도 알아서 내려간다. 관리인은 중국제라서 그렇다고 한다.

여름 주말, 공공 해변이라 쿠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옆엔 젊은이들이 스피커로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줬다. 라틴 음악의 보급 창고 푸에르토 리코와 인접해서 그런지 익숙한 음악들이 줄줄 나온다. 앞엔 가족들이다. 오이, 토마토 등 어마어마한 도시락도 준비해왔다. 재밌는 건, 쿠바 사람들의 수영복에 미국 국기가 많이 그려진 것이다. 미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라고 마이애미의 월마트 등에서 폭풍 세일, 이걸 친척들이 보내주는 것으로 추측했다.


신난 솔님이 먼저 입수한다. 뒤이어 여편님도 한 두번 입수한다. 나는 읽던 책을 다 읽고 느지막히 입수했다. 점심 먹을 식당은 해변에 꼴랑 하나다. 돼지, , 소 중에 하나를 택하면 된다. 해변이라고 바가지도 없고, 맛은 있다. 노점상들은 피자를 판다. 쿡으로 비싸게 받는데 맛은 없다. (아마 동네에선 5모네다면 먹을 맛이다.) 입수 두 번이면 일 년 해수욕 다 하는 여편님이 먼저 귀가를 외친다. 올 때 탔던 기사 아저씨가 보인다. 담합 가격보다 싸게 태우는 거라 말 없이 우리를 태운다.


카페_Don Pepe_0819

이렇게 가게가 많지만, 트리니다드에 괜찮은 카페가 별로 없다. 여기 오는 관광객들은 다들 대낮부터 모히또 마실 생각만 하나보다. 각종 커피 음료도 있고, 정원의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자리가 별로 없어서 한 번 밖에 못갔다.


식당_Paladar El Criollo_0818

첫날 오후에 찾아간 곳이다. 카사를 겸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테라스에서 쾌적하게 수육같은 돼지고기를 썰었다. 본격적인 영업 시간이 아니라 연습하고 있던 밴드가 가볍게 부에나 비스타 ‘Chan Chan’을 연주해줬다. 체게바라가 그려진 기타로 ‘Hasta Siempre Comandante’도 연주했다.


식당_El Jigue_0820_0821

트리니다드에서 가장 맛나게 먹은 식당이다. 처음 가서 해산물 피자(Mar Pizza)를 먹었는데 반죽에 해물을 갈아넣었는지 촉촉함에 해물의 감칠맛이 잘 녹아있었다. 다음날 또 가서 같은 피자를 또 먹고, 파스타도 2개 먹었다.


밴드_Sabor Tropical_0821

El jigue 두 번째 방문이 만족스러웠던 건, 공연때문이다. 여기도 나름 크고 인기가 많아서 종종 밴드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 일찍 들어가서 음식을 기다리며 밴드의 공연을 봤다. 섹소폰 소리가 여유로웠다. 쿠바에서 본 최고의 공연이었다. 솔님이 CD를 구입해서 나중에 추출한 MP3파일도 보내주었다.


여편님이 수시로 졸림을 호소하는 바람에 제법 잔잔하게 트리니다드에서 4일을 보냈다. 정신없이 아바나를 탈출해서 쌓인 피로를 충분히 풀었다. 그리고 여행의 정점을 찍으러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비아슐 버스 정류장은 사람이 많았다. 체크인을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시엔푸에고스를 거쳐서 산타클라라까지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산타클라라 터미널은 더 크고 복잡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서 픽업 기사를 보냈다. 다음 티켓을 살 거라고 하니 비아슐 사무실로 안내해줬다. 비날레스로 가는 직행은 없고, 아바나로 가야하는데 자리가 없다고 한다.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만 적어놓고 왔다.



산타 클라라(Santa Clara)_0821_0823

아바나, 산티아고 데 쿠바 다음으로 큰 도시다. 중부 교통, 통신의 중심지고 대학도 많다. 체 게바라 기념관을 빼면 관광객에겐 별로 없다. 덕분에 일상적인 쿠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혁명의 불꽃을 활활 태웠다.


숙박_Hostal Cuba 208_트리플룸_2

택시가 집 앞에 내려줬다. 생각보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이다. 트리니다드 숙소에 아는 곳을 물어보니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아델라에 대한 신뢰도가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방이 매우 작았다. 에어컨도 켜고 자면 죽을 것처럼 오래된 것이다. 그래도 주인 내외가 친절하고, (아저씨가 영어도 했다.)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선풍기도 빌려줘서 이틀 지내기엔 나쁘지 않았다.

식사는 아침만 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좋은 식당을 추천해줬다. 아침은 다른 집보다 1쿡 저렴한 4쿡이었는데 전혀 부족함 없이 맛나고 정갈했다. 아저씨가 화가라서 그런지 그리던 그림도 보이고 고풍스럽다.


식당_Saborarte_0821_0822

주인 아저씨 추천 식당이다. 넓고 평범하게 생겼다. 메뉴판 가격이 모네다다. (대충 계산해보면 엄청 싼 건 아니다.) 돼지고기 요리를 시켰다. 잡곡밥에 붉은 고기, 제육볶음이다. 양도 푸짐해서 학교 근처 분식집 같은 감성이다. 다들 푸짐하게 먹어서 다음날 저녁에 회식을 하러 왔다. 전날 옆자리 사람들이 먹던 새우튀김, 솔님은 제육복음(전날은 다른 메뉴를 시켰다가 우리의 제육볶음만 탐냈다.)을 시켰다. 쿠바는 지역마다 함께 주는 칩의 종류가 다른데 이 동네 칩은 진짜 맛있었다. 추가로 한 번 더 먹었다. 맥주와 모히또까지 배불게 먹었다.


식당_Santa Rosalía_0821

점심 먹고, 시내 구경을 하다가 광장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식당 안쪽엔 마당에도 자리가 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바의 직원들이 반대편 손님있는 쪽으로 오지 못할 정도다. 다들 어찌저찌 시간만 떼웠다. 마당 한쪽엔 기념품 매장이 있다. 다른 곳에 안파는 티셔츠가 있어서 구입했다.

저녁을 먹으러 다시 찾았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했다. 새우, 생선 등을 먹었다. 카리브해 새우는 정말 맛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살도 도톰하고 쫄깃하다.


식당_La Toscana_0822

첫날부터 점심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둘째날 점심을 먹어보기로 했다.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위에 언급한 두 식당보다 가격이 비싼데도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식당안에서 콤큼한 냄새가 났는데 여기서 쓰는 치즈인 것 같다. 우리한텐 쉽지 않았는데 동네 사람들에겐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시내_광장과 쇼핑

광장엔 와이파이도 되고, 공연하는 바도 있고, 문화센터, 극장 등이 있다. 일단 날씨가 훨씬 덜 더워서 돌아다닐만했다. 안쪽 번화가로 들어가니 커다란 슈퍼마켓이 있다. 가방 맡기는 걸 기다려가면서까지 내부를 구경했다. 몇 군데 서점도 있다. 역시 체게바라의 도시라 관련 도서가 많다. 솔님은 이틀간의 고민 끝에 커다란 화보집을 구매했다. 티셔츠부터 시작해서 엽서, 모자, 화보집까지 솔님의 쇼핑도 여행도 여기서 정점을 찍었다.


기념관_Memorial Comandante Ernesto Che Guevara_0822

도착 당일엔 기념관이 쉬는 날이라 다음날 아침에 갔다. 광장쪽으로 나가니 말 버스(말이 끄는 다인승 수레)가 다닌다. 3명이 2쿡으로 쇼부를 본다. 더 없이 하늘이 푸르고 맑다. 공원 앞에 내려서 걸어간다. 그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다. 5년 전에 처음 봤을 땐 감동에 사무쳐서 차마 사진도 찍지 못했다. 천천히 둘러본다.

커다란 기념 동상 뒤편에 기념관이 있다. 짐을 맡기다가 여편님, 솔님을 잃어버려서 당황했다. 입장한다. 기념관은 무료다. 체 게바라의 유년 시절부터 성장기, 혁명 전쟁, 그 이후까지 주요한 유품과 사진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솔님과 여편님은 특히 웃통 벗은 사진을 좋아했다.) 다른 쪽엔 주요 혁명 영웅들을 기념한 곳도 있다. 기념관을 나와 밖으로 나가면 여러 무덤도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곳을 찾았던 모습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쿠바는 두 번 여행할 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위 자유, 배낭 여행이란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행자로서 지켜야할 제약 요소가 많다. (불만은 아니다. 쿠바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덴 그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을 꼽자면 체 게바라의 재발견이다. 예전엔 그저 여행가, 게릴라 지도자, 혁명가로 좋아했다면, 이젠 앞서간 세계 시민 사상가, 실천가로서 믿고 따른다. (여편님은 며칠 내내 체 게바라를 칭송하는 나와 솔님을 두고, 교회 수련회 온 것 같다고 평했다.)


독서_쿠바혁명사: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여정_아비바 촘스키

솔님이 여행 준비하면서 보고 갖고 오셨다. 아바나에서 시작해서 트리니다드의 해변까지 단숨에 읽었다. 저자는 그 유명한 미국 노인, 노엄 촘스키의 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요하게 미국의 횡포를 늘어놓기도 한다. 쿠바현대사를 다시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됐다. 비판적인 그녀도 체 게바라는 거의 절대 존엄 취급한다. 중간중간 그의 사상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다큐_체 게바라 뉴 맨(Che. Un hombre Nuevo)

산타클라라에 오기 전, 혁명의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트리니다드에서 단체 관람했다. 그가 남긴 흔적을 철저히 추적해 체 게바라가 진실로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뉴 맨은 체의 새로운 인간 사상을 말한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인간을 물질적 동기로 분석한다. 하지만 새로운 인간은 도덕적 동기를 기반으로 행동한다.

체가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남기는 편지에서 말한 혁명이다.

혁명의 중요성을 잊지마라. 하지만 혁명은 혼자선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은 민중이 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언제나 전세계의 누군가가 당하는 불의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혁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Acuérdense que la Revolución es lo importante y que cada uno de nosotros, solo, no vale nada. Sobre todo, sean siempre capaces de sentir en lo más hondo cualquier injusticia cometida contra cualquiera en cualquier parte del mundo. Es la cualidad más linda de un revolucionario.’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영원한 사령관’으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Hasta Siempre_Carlos Puebla: https://www.youtube.com/watch?v=GxtwzU0-wPM


기타_체가 남긴 말들 (개인 메모용)

Seamos realistas y hagamos lo imposible: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리고 불가능한 일을 하자.

Estar siempre lista a apoyar las causas justas: 언제나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편지 중

Que en dondequiera que me pare sentiré la responsabilidad de ser revolucionario cubano y como tal actuaré. Que no dejo a mis hijos y mi mujer nada material y no me apena; me alegro que así sea. Que no pido nada para ellos, pues el Estado les dará lo suficiente para vivir y educarse.

어딜가든 쿠바 혁명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행동할 것이다. 내 아이들과 부인에게 아무것(유산)도 남겨준 게 없는데, 슬프지도 않고 기쁘다. 국가가 이들에게 삶과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Patria o Muerte:.

Hasta la victoria siempre로 유명한 문구인데, 다큐에 따르면 피델이 편지글을 잘못 끊어 읽어서 굳어진 표현이라고 한다. 원문은 ‘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 조국 아니면 죽음을’로 끊어 읽는 게 맞다고 한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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