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Ciudad de Mexico)_0907_0918

멕시코는 연방 국가다. 나라 이름은 수도인 멕시코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와 시를 구분하기 위해 멕시코 수도는 국제적으로 멕시코 시티로 많이 불린다. 근교에 큰 피라미드도 있고, 도시 내에도 볼 게 많다. 그냥 수도라서 볼 게 많은 게 아니라 문화 예술적으로도 마드리드,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뺨치게 풍성한 곳이다. 열흘도 부족했다.


시내 교통

도시가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지하철이 잘 되어 있다. 멕시티 공항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나가다보니 지하철 역이 나왔다. 숙소 주인에게 물으니 우버를 추천했다. 우린 꾸역꾸역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낡은 지하철, 환승 구간도 길어서 힘들었다. 아직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공항은 시내랑 가깝다. 택시를 타도 그리 비싸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유명한 관광지도 같이 표시되어 있고, 지하철 요금은 무지막지하게 저렴하다. (5페소) 지하철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사람들 생김새다. 멕시코 특히 멕시코시티는 유럽계와 메스티소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하철엔 백이면 팔구십이 원주민계열인 것 같다. 저렴한 탓에 서민들만 타고, 부자들은 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극명한 인종간 빈부격차가 여기서도 보인다. 숙소는 지하철에서 10분정도 떨어져 있었다. 시내 중심에 두 개 역과 가까워서 큰 불편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알게된 것이 중앙 트램이다. 진짜 멕시코 독립과 역사를 함께했을 것처럼 오래된 트램이다. 시내에 노선이 한 개인 것 같은데 마침 집 앞 큰길을 지나갔다. 시내 중심 광장은 물론이고, 피라미드 가는 터미널까지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요금은 4페소인데 절대 지폐를 받지 않는다. 당황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보던 아저씨가 혼쾌히 내주었다. 에콰도르 사람인데 일본에서도 일하고 지금은 여기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니다보면 큰 도시지만 인정이 살아있다는 걸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숙박_나르바르테 하얀집_10_더블룸

동네는 도시 한 가운데 서울 마포 같은 위치였다. 공항 대란을 마치고, 아침 일찍 도착했다. Narvarte 역에서 내리니 슈페르따꼬(SUPER TACO) 노점이 보인다. 한 번 먹어봤다. 아니, 카르멘의 어느 비싼 식당보다 맛있다. 양념곱창에 밥을 겻들여서 넣어준다. 고추튀김도 있다. 든든하다. 골목, 하얀집에 도착했다. 친절하게 집주인인 파울라와 친구가 맞아줬다. 파울라 친구는 미국에서 공부 중인데 오늘까지 쉬다가 간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방청소가 안되었다. 기다리라하고 서둘러 치워준다.)

집은 파울라가 어릴 때부터 가족과 살다가, 부모님은 외곽으로 이사가고, 파울라는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이 집에서 살기로 했다. 넓지만 워낙 오래된 집이라 하루하루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일층은 부엌과 차고, 그 옆 차고를 거실처럼 꾸며놓았다. 해먹과 선인장이 있다. 2층 방도 엄청 넓고, 햇볕이 아주 잘 들어온다. 파울라는 조명을 공부해서 밝은 걸 좋아한다. 아침을 준다고는 써있었지만 별로 먹을 건 없었고, 주방엔 모카포트 등 있을 건 다 있어서 아침, 저녁 잘 차려먹었다. 일주일 예약했다가 삼일을 추가해서 머물렀다.

파울라가 아예 맛집과 주변 생활 시장, 편의시설 리스트를 적어놔서 생활이 매우 풍족해졌다. 특히 맛집 리스트는 찬양할만했다. 원래 이 구역이 곳곳에 시민들이 찾는 맛집이 많다고 했다. 심지어 타코는 멕시티 제일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오전에 방에도 햇빛이 쩍 드는 것이고, (드디어 쿠바와 카르멘의 습기에서 해방됐다.) 일층 거실의 해먹의자에서 그네를 타며, 커피와 소설책을 보는 순간이었다. (무려 그 소설의 배경이 이곳 멕시코 시티다.)


운명의 밤_0907

여편님은 여정이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난 근처 시장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보통 시장에 가면 밥과 끓인팥, 고기, 또르띠야를 겻들인 정식 메뉴들이 저렴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집엔 인터넷이 고장이었다. 내일 고칠거라고 했다. 오늘 저녁에 중요한 전화를 받기로 했다.

별 수 없이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통화를 했다. 같이 일을 하기로 했다. 10월 중순까지 귀국하면 좋겠다고 했다. 여편님은 그러자고 했다. 부모님들께도 소식을 전했다. 티켓은 내일 끊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동네 식당에서 김치찌개(맛 나는 수프)와 소고기구이(ARRACHERA)를 먹었다. 피곤한 나는 그대로 잠들었고, 여편님은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다 나를 깨웠다.

지진이다. 난 잠이 덜 깨서 흔들리는지 땅이 흔들리는지 모르고 따라 나갔다. 옆방의 파울라도 데리고 나갔다. 땅이 꿈틀꿈틀, 주변은 번개가 쩌렁(나중에 생각해보니 합선으로 생긴 것이었다.) 골목 주민들과 함께 10여 분의 진동을 맨발로 느꼈다. (신발은 우리만 안 신고 나왔다….) 10분 정도 더 기다렸다. 다들 괜찮다며 집으로 들어갔다. , 파울라가 열쇠를 안 갖고 나왔단다. 안에서 자동으로 잠기는 문이다. 망할, 전화도 한동안 먹통이다. 발을 동동 거리다 앞집 아저씨가 들어오라고 한다. 겨우 언 몸을 녹였다. 잠시 뒤 파울라가 열쇠공을 불렀다. 나가서 열쇠공이 문 여는 걸 본다. (실력이 의심된다. ) 한참동안 문을 못 연다. 그러다 옆 차고를 열면 어떠냐고 하니 아! 하고 몇 번 끄적이고 문을 연다.


겨우 방으로 돌아왔다. 불안감에 몇 번을 자다깼다. 결국 여편님은 다음날 감기에 걸렸다. 여전히 인터넷은 불통이다. 조식을 먹을 겸 스타벅스로 갔다. 카톡방이 난리가 났다. 평소에 연락없던 사람들까지 안부를 묻는다. 부모님은 당장 돌아오라고 했다. (무슨수로 당장 돌아가는 비행기를 끊나) 차분히 생각했다. 그래도 남은 기간 멕시코만이라도 더 여행하기로 했다. 대신 시설이 취약한 지역말고, 안전한 도시 위주(와하카, 산크리스토발)로 여행하기로 했다. 한참 검색한 끝에 우선 LA-인천 구간 비행기를 끊었다. (며칠 뒤 산크리스토발 옆 툭스툴라에서 LA까지 가는 비행기도 예매했다.) 지구와 함께 우리의 여행도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있었다.


시장_Mercado Postal & Mercado Narvarte

파울라가 알려준 시장은 나르바르떼 시장, 집에서 큰 길 나가면 바로였다. 첫날 점심 한 번 먹고, 빠에야 특선 메뉴도 먹었는데 그리 활기찬 맛은 아니었다. 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우체국(Postal) 시장이 좋아보였다. 시장이 규모도 크고 싱싱한 것들이 많았다. 점심으로 Chille rellono를 먹었다. 개운한 고추 안에 밥과 고기가 잘 다져들어갔다. 망고, 파파야도 싱싱했다.

사실 역까지 가는 길엔 시장 말고도 위협요소가 많았다. 길에 앉아서 할머니들이 파는 또르띠야의 색은 다 다르다. 검은색, 하얀색, 회색 등등. 역까지 버티지 못하고 길에서 번번히 발목을 잡혔다. 여편님은 따끈한 옥수수수프, 난 든든한 바베큐 타코를 먹었다. 망고도 여기서부턴 거의 안 사먹었다. 길에서 잘라서 파는 것도 맛있었다.

집 앞엔 커다란 푸드트럭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약간 미국식이 가미된 햄버거 가게였다. 친절한 여편님은 주인과 안면까지 텄다. 감자튀김도 맛있고, 살사의 나라답게 소스 맛이 잘 배겨들어있다.


한식_Super Oriental

멕시코 음식은 너무 맛있다. 든든하다. 하지만 이러다 몸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여편님은 감기가 걸려 죽도 먹었다. 주변 동네슈퍼나 마트는 카르멘처럼 아시아 음식이 풍부하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카사 아슐을 가려고 Coyoacan 근처에 트램을 타고 내렸다. 가다보니 Super Oriental! 중국 슈퍼다. 규모가 꽤나 컸다. 중식은 물론, 한식, 일식 식재료가 풍성했다. 짜파게티와 쌀국수, 양념거리를 샀다. 차풀테펙에 갔다가 Zona Rosa에 들리니 한인슈퍼도 들어갔다. 전설의 8도 비빔면이 있었다. 냉큼 샀다. 고추장과 된장을 고민하다 또 된장을 샀다.

짜파게티는 파울라와 나눠먹고, 소고기에 비빔면, 된장찌개, 쌀국수를 우리끼리 해먹었다. 야심차게 갈비김치타코를 시도했으나 (여편님은 피쉬소스, 고춧가루를 활용해 김치도 담갔다. 심지어 파울라는 원래 김치를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껏 수많은 아시아 애호가를 만났지만 대부분 일본, 일식에 관심이 많았지, 이런 친한파는 처음이었다.) 갈비가 설익고 질겨서 망했다. 멕시코 고기들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식당 가면 고기 실컷 잘 구워준다. 굳이 고생해서 구울 필요가 없다.


식당_Los secina_0908

귀국 비행기 발권을 기념하기 위해, 파울라가 추천한 식당을 찾아갔다. 합구정의 잘나가는 힙하지만 약간 비싼 식당같았다. 화지타와 샐러드를 시켰다. 역시 소문난 식당답게 살사가 각별했다. 또르띠야도 수제, 레알, 유기농같다. 실컷 먹고 마셨다.


식당_Henrry Sailor_0914 & 0916

파울라 추천 식당의 하이라이트, 해산물집이다. 파란 인테리어에 브리튀시 아릴랜드 바다를 헤메이는 인테리어다. (이름도 영국식이다.) 물회인 아구아칠레가 고도의 탑처럼 나왔다. 우선 문어튀김을 시켰다. 맥주가 꿀떡꿀떡 넘어가는 맛이었다. (서비스로 데낄라도 한잔 준다. 거부할 수 없다.) 문제는 파울라가 추천한 멕시코 음료, 클라마토 (clamato), 케챱에 맥주를 탄 맛이다.

너무 맛있어서 일요일에 또 가서 한을 풀었다. 이집의 또다른 백미는 오르차타(Horchata). 식당에서 겻들여 주는 식혜같은 음료인데, 이 집은 직접 만들어서 새벽햇살을 마시는 기분이다.


카페_Almanegra & Salem Witch Store & Coffee

커피의 나라 멕시코에서 스타벅스만 간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파울라도 커피를 좋아해서 주변의 좋은 카페 리스트도 있었다. Almanegra는 멕시코 스페셜티 카페 추천리스트에도 나오는 곳인데, 커피는 맛있는데, 앉아서 마실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길가의 벤치에서 마셔야 한다. Salem Witch Sore & Coffee는 마녀카페다. 온갖 주술적 장신구로 가득한 카페였다. 공간은 넓었다. 다행히 커피의 한은 와하카와 치아파스에서 실컷 풀었다.


복잡한 시내를 구경갔다가 나르바르테로 돌아오면 한없이 평화로웠다. 작은 번화가만 나가도 눈에 찍어두고 못간 맛집들이 가득했다. 첫 일요일까진 교회에서 행사를 한다고 폭죽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쏴댔다. 그래도 특이하게 장식된 교회는 재밌었다. 저녁에 맛난 것을 먹고 들어와도 무섭지도 않았다. 좋은 곳이다.



부록_멕시코 지진에서 느끼는 소회

우리가 멕시코에 머물렀던 97일과 919일 멕시코에선 두 번의 큰 지진이 있었다. 첫 번째 지진의 규모는 8.1 진원지는 멕시코 남부 와하카주의 바닷가였다. 지진 규모가 컸지만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많이 흔들리기만 했지, 별 피해는 없었다. (밤에 대피한 그 지진이다.) 피해는 와하카주와 치아파스주의 산골마을에 집중되었다. 주로 가난한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멕시코시티는 85년에 대지진 이후 건물들의 내진 설계가 잘 되었다고 한다. 안그래도 가난한 원주민들은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도 취약한 처지인 것이다.

그렇게 지진에 대한 기억이 사그라들 때쯤 다시 지진 소식이 들려왔다. 와하카에 도착한 다음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니 또 카톡이 한더미 와있다. (우리보다 한국이 소식이 빠르다.) 이번엔 전날 우리가 지나친 멕시코시티 인근 푸에블라주가 진원이라고 한다. 멕시코시티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멕시코시티는 내진 설계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원래 호수가 많던 도시를 스페인 침략자들이 메꿔서 지금과 같이 넓은 대지를 만든 도시다. 지진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에 반해 와하카시티처럼 원래 원주민들이 모인 대도시는 지반이 단단한 곳이라고 한다. 우린 천만다행으로 지진의 파고를 비켜갔다. 다음날 여진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정말 집이 흔들렸다. 숙소 마당으로 대피해서 진동을 보냈다. 와하카에 머무는 내내 대피할 수 있는 가방을 문 앞에 두고 잤다. 한동안 멕시코 국립대학의 지진정보 사이트를 보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http://www.ssn.unam.mx/)

한국 언론에서 멕시코 지진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수준이하였다. 이 커다란 멕시코 전체가 흔들리기라도 한듯 보도했고, 멕시코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것봐라 그런 나란 위험하다. 이런식이다.) 사실 우리가 멕시코 언론에서 보는 모습은 사람들이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연일 구호품을 보내고, 자원봉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도시 곳곳에, sns에 구호를 독려하는 곳들이 많았다. 집주인 파울라를 통해서, 마트의 구호품 모으는 곳을 통해 작게 나마 손길을 보탰다. 가까운 칠레, 페루 등은 물론 멀리 일본에서도 구조대가 왔다. (괜히 일본이 선진국이 아니다. 중남미 국가들과의 협력을 보면 위상 차이를 확실히 느낀다.) 물론 처음 와하카에서 피해가 컸을 때와 두 번째 멕시코 시티의 피해가 컸을 때의 관심도가 다른 건 안타까운 대목이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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