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숙소를 근거로 멕시코 시티 곳곳과 주변을 돌아봤다. 요약하면 리베라와 프리다, 돌덩이다.


소칼로 주변_0909_0910

대진 다음날, 여진을 우려해 하루를 쉬고 9일부터 관광에 나섰다. 2호선을 타고 Bellas Artes역에 내렸다. 지하철엔 시내로 놀러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광장에 나가도 시내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근처에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 프로지도수집가가 지도를 받았다. 시티투어버스도 노선이 여러가지였다. 한 번에 탈 수 있는 패키지가 있었는데 결국 타지 못했다. 프리다가 그려진 버스를 보는 걸로 만족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Museo Mural Diego Rivera_0909

비가 오니 가장 가까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디에고 리베라의 유명한 벽화가 있는 박물관이다. 민중예술을 지향했던 리베라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 벽화에 열정을 쏟았다. 이 벽화 박물관과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 대통령궁에 전설적인 벽화가 하나씩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크고 작은 벽화들이 있고, 큰 방에 유명한 아라메다 광장의 일요일 오후의 꿈(Sueno de una tarde dominical en la Alameda Central)이 있다. 그런데 하필 이 벽화를 배경으로 두고 무슨 토론회 같은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럴거면 입장료 받기 전에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위층에서도 볼 수 있고, 많이 가리는 건 아니라서 열심히 봤다. 그림 속 각 인물이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침략자 피사로부터 판초비야, 프리다, 어린 리베라 등등이 보였다. 사실 이 벽화를 제외하곤 볼게 많지도 않고, 규모도 엄청 작아서 무료인 일요일에 오는 게 좋을 뻔했다.


이 교훈으로 예술궁전은 내일 오기로 하고,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대통령궁으로 가는 골목길, 상점들이 매우 많다. 그 좁은 길로 가는데 비가 쏟아졌다. 다들 가게 안으로 대피했다. 우리가 피신한 가게는 향수가게였다. 각종 향수를 (브랜드 없이) 파는 곳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향 조합도 가능했다. 재밌는 곳이다. 비가 그치고 대통령궁으로 갔다. , 여권 없으면 못들어간단다. (치안에 신경쓰고 나서 여권은 숙소에 두고, 사본만 들고다니던 시절이다.) 광장만 돌아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다음 주말은 멕시코 독립기념일이다. 거기에 맞춰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소칼로 광장의 커다란 건물들을 초흰빨의 멕시코 색깔로 장식했다. 축제 때 여기 올까? 그냥 주말도 이렇게 복잡한데?


광장에선 향토음식문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눈 여겨 보다가 다음날 점심을 여기서 먹었다. 그냥 길거리 음식도 맛있는데 전국의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모아놨다. 참을 수가 없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발목이 잡혔다. 바싹 구운 푸른 또르띠야에 야채와 살사를 가득 얹어준다. 아드득 고소하다. 이제부턴 꾹 참고 둘러보기로 한다. 와하카 원두도 있어서 한통 샀다. 숙소에서 내려 마시니, 마트에서 산 원두보다 훨씬 싱싱했다. 끝으로 가니 줄줄줄 서있는 곳이 있다. 틀라이우다(Tlayudas)라는 와하카 음식이다. 커디란 또르띠야에 찐팥을 두르고 쫀득한 와하카 치즈와 야채, 바베큐된 고기를 얹어 굽고 반으로 접는다. (퀘사디야와 비슷하다.) 우리도 줄 서서 하나를 받아서 반으로 갈랐다. 콜콜한 살사를 곁들여 먹으니 배가 불렀다. 전국적 행사인데 와하카 음식이 반이다. 역시 멕시코에서 제대로 먹으려면 와하카를 가봐야 한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와하카행 버스 티켓을 끊었다.)


대통령궁(Palacio Nacional)_0910

여권을 들고 궁에 들어갔다. 고급진 순찰견과 고양이들이 있다. 벽화를 보러 올라갔다. , 리베라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하나의 벽화에 마야 문명의 탄생, 스페인의 침탈, 투쟁과 민중의 삶이 모두 녹아 있었다. 계단의 벽화를 한참 감상하고 2층의 벽화들도 찬찬히 둘러봤다. 마야의 옥수수 문명을 아기자기하게 그린 벽화가 인상깊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내부 전시실이 있었다. 멕시코 현대사와 각 지역, 문화에 대한 소개였다. (간단해 보이지만 내부가 매우 알차고 큰 전시실이다.) 깔끔하면서도 상세한 소개 자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 보다간 오늘 하루 지날 거 같아서 대충 보고 나왔다.


예술 궁전(Palacio de Bellas Artes)_0910

점심을 먹고 예술궁전으로 갔다. 여기도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줄이 길다. 일요일이라고 다들 무료 전시를 보러 온 것 같다. 기다린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 입장했다. (사실 전날도 줄이 좀 길어보여서 패스했다. 전날 봤어야 했다.) 벌써 4시다. 다행히 오늘은 연장 개방한단다. 바로 피카소와 리베라라는 기획전시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이었다. 미국의 어느 박물관과 번갈아하는 기획이라고 한다. 기획전시실에만 사람이 엄청 많았다. 우리도 유럽에서 한 피카소하고 왔으니 뒤질 수 없다.

피카소와 리베라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설명해줬다. 둘은 동시대의 화가로 교류를 많이 했다. 리베라도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입체파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그리스의 전통으로 파고든 피카소는 그 시대에 더 자연스럽게 표출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표현했다. 마야로 파고든 리베라는 마야 문명의 전통과 지금 억압받는 멕시코 민중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교양이 마구 솟구쳐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층의 다른 전시실은 한가했다. 그리고 이층 복도는 벽화들이 장식하고 있다. 트로츠키 암살을 시도했다는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의 그림에선 광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한가운데 리베라의 벽화가 있다. 뉴욕 록펠러 재단에서 그리려다 철거되어 다시 그린 벽화다. El hombre controladro del universo. 맑스와 레닌, 트로츠키가 노동자와 함께 자본과 귀족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혁명의 열기가 마구 타오르는 순간이다.

다른 기획전시로 Leo Matiz라는 콜롬비아 사진가도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늦었다. 얼른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식당_일식_Matsu

여편님은 일식을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물론 한식재료 사기 전) 일식 인기가 높아서 멕시코시티엔 좋은 일식당이 많았다. (동네에도 많았다.) 이왕이면 시내의 괜찮은 곳을 가기로 했다. 나름 저렴한 가격이라고 광고도 하고, 맛있었다. (외국에서도 일식당은 배신하는 법이 별로 없다.) 우동튀김 세트와 스시 등을 먹었다. 광화문 뒷골목 사보텡에 온 줄 알았다. (대강의 위치도 그러하다.)


카페_Cafe Cielito

멕시코 시티 곳곳에 있는 체인점이다. 눈에 띄어 들어갔다. 베라쿠르즈, 와하카, 치아파스 등 멕시코 곳곳에서 생산된 커피를 블랜딩해서 판다. 원두도 판다. 커피도 괜찮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각종 굿즈들이다. 멕시코 식당에선 파란 범낭 그릇과 냄비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여기선 그 범낭에다가 푸른색의 회사 로고를 새겼다. 주전자도 사고 싶은 걸 참고, 컵만 두 개 샀다. 며칠 전에 부엌에 장식용+티스푼 꽂이로 비치했다.



코요아칸(Coyoacan)_0912

프리다와 리베라가 살던 집, 카사 아술로 유명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이 많은 곳이다. 트램으로 편하게 갔고, 날씨도 좋고, 가는 길에 오리엔탈 슈퍼도 발견해서 기분 좋았다.


까사 아술_프리다 칼로 박물관(Casa Azul_Museo Frida Kahlo)_http://www.museofridakahlo.org.mx/

사람이 많다는 소문에 인터넷으로 예매를 했다. 입장 시간까진 시간이 남아서 근처 시장을 둘러보고 왔다.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직접 사는 입장권이 더 예뻐서 여편님은 달라고 졸랐다. 주지 않았다. 사진 촬영 스티커는 한 명만 샀다. 번갈아 붙이며 찍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프리다와 리베라의 일생(대충 아는 내용)과 둘의 그림이 (프리다 위주)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몸이 불편한 프리다를 위한 곳곳의 침대와 작업실이 눈에 띈다. 집보다 더 좋은 건 정원이다. 파란색 벽돌에 마야 돌조각, 초록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다. 의자에서 광합성을 하니 너무 좋다.


별관엔 의상 전시실이 있다. 프리다가 입었던 옷들이다. 참 토속적인 취향이다. 상점엔 온갖 화려한 굿즈들이 많다. 다른 건 좀 많이 비싸서 엽서만 잔뜩 샀다. 박물관 입장료도 여기가 가장 비싸다. (그 거대한 인류학 박물관이나 테오티우아칸 보다 비싸다. 일반 입장료: 200페소 vs 70페소) 작년의 한국, 그 이전부터 미국에서 여성주의 바람을 타고 인기가 급상승한 것 같다. 사실 이번 멕시코 시티를 둘러보며, 감탄한 건 프리다보다 리베라였다. (이전엔 나도 프리다를 더 좋아했었다.) 그가 민중 예술을 통해 그려낸 가치와 열정은 대단했다. 프리다 역시 그녀의 의상과 그림에서 멕시코의 토속적 문화, 리베라와 함께한 이념적 투쟁(그 지향점 때문에 개떡같은 리베라의 성격과 바람기를 참아준 거 아닌가)이 주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프리다가 화가보다 ‘여성’화가라는 점만을 부각시켜 대중성과 상품성에만 치중하는 느낌이다. 물론 프리다의 자아, 여성 정체성과 관련된 그림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품 세계가 또 있을 것이다. (여편님은 수박 그림을 좋아한다. 왜 자신과 스탈린을 함께 그렸을까? 왜 맨날 멕시코 의상만 입었을까?) 물론 그 중심에 있는 미국 문화계는 민중, 토착민(Indian), 공산주의 이런 단어는 일단 지워버리고 시작했을 것이다.


빨간집_레온 트로츠키 박물관(Museo casa de Leon Trotsky)

코요아칸 중심가를 둘러보고 큰 길로 나가면서 들렀다. 그 레닌, 스탈린과 함께 꼽힌다는 러시아 혁명의 영웅 레온 트로츠키가 살던 곳이다. 스탈린에 쫓겨 멕시코에 망명 온 트로츠키는 리베라와 프리다의 집에 머문다. 그러다 (프리다와 사랑에 빠졌다는 유력한 설도 있지만) 리베라와 사상의 차이로 집을 나와 근처에 머문다. 집 벽은 진짜 기존의 집을 개조해 벽을 높이고, 베란다를 막은 흔적이 보인다. (결국 여기서 최후를 맞는다.)

입장료도 현격히 저렴하다. 안에는 트로츠키를 다룬 신문기사, 그의 사진들이 있다. 정원으로 가면 그가 마지막까지 가꿨던 선인장과 토끼집이 있다. 왜 힘든 일을 손수 하냐는 소년의 질문에, ‘노동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사람이 노동을 싫어해서 쓰겠느냐’라고 대답했다. 안쪽의 별채가 그가 머물렀던 방이다. 워낙 버려지다시피 보존이 잘 되서 100년 전의 생활상까지 보여준다. (욕실, 화장실 등등) 정원과 건물엔 풀이 무성하다. 옆의 파란집과 비교하면 이 빨간집은 관람객도 별로 없고, 초라해 보인다. 아니 아무리 예술이 좋고 위대하다지만 인류와 지금 우리가 그의 사상에 빚진 걸 생각하면 이래도 되는 건가. 안타까웠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래도 조용한 것이 사색에 빠지기 좋은 공간이다.


시장_스티커

코요아칸엔 시장이 많았다. 하나는 일반 시장, 하나는 먹거리 시장, 하나는 기념품 시장이었다. 기념품 시장은 그리 활기 있지 않았다. 그나마 맘에 드는 건 프리다 스티커였다. 해골 스티커도 추가했다.


식당_Taqueria Los Parados

먹거리 시장도 시원치 않아 보였다. 광장을 기웃거리다 맛나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멕시코시티엔 타코를 전문으로 하는 큰 식당도 많다고 했다. 바베큐 타코와 새우탕을 시켰다. 새우탕은 좀 많이 짜고 칼칼했지만, 새우탕면의 라이브 버전이었다. 결국 밥을 추가해서 말아 먹고 말았다. 타코도 가격이 비싼 만큼 고기도 실하고, 또르띠야도 진했다.


카페_El Jarocho

아직 멕시코시티 커피 탐방의 열정이 남아있던 시기, 코요아칸의 이름난 카페를 찾아갔다. 아직 영업을 안한단다. 카페가 대낮에 안 열면 언제 연다는 건가. 포기했다. 멕시코시티에선 그냥 무난하게 마시다 가기로 했다. 그러다 또 시장 건물 한면을 차지한 카페를 발견했다. 모카포트 로고가 인상적이다. 원두보단 카페의 전통에 더 끌리는 풍경이었다. 난 시그니쳐 메뉴인 계피커피를 마셨다. 아메리카노에 계피를 잔뜩 타주는 식이다. 벤치에만 앉아셔 마셔도 맛있었다.



차풀테펙_0913 & 0917

커다란 공원과 박물관이 몰려있는 차풀테펙을 갔다. 지하철로는 꽤나 멀었다. 내리는 순간 그간 못 봤던 고층 빌딩과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을 목격했다. 멕시티의 강남이었다. 역 주변엔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넥타이를 멘 사람들이나,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나 길거리 식당에서 먹긴 마찬가지였다.

어찌저찌 공원쪽으로 건너갔다. 공원도 왠지 매연을 많이 머금은 느낌이다. (차라리 나르바르떼의 골목길이 쾌적하다. 나무 많기로 소문난 동네이기도 하다.) 공원엔 온갖 노점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호수에 오리 타는 사람들도 있고, 야외테라스를 겸비한 서점이 스타벅스와 나란히 있다. 주말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두 번째, 일요일에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갔다. 생각외로 멕시코 시티의 택시 요금이 저렴했다. 그래서 다음날 터미널에 갈 때도 택시를 타버렸다.

국립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_0913_http://www.mna.inah.gob.mx/

점심 먹은 뒤라 티켓을 사고,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가 맛있다. Agua mineral을 달라고 했더니 탄산수를 가져다 준다. 그냥 물은 Agua natural이라고 알려준다.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했다. 늘 느끼지만 멕시코의 안내도는 불친절하다. 이 큰 박물관을 어디서 어떻게 돌아보라는 말이 하나도 없다. 일층을 보다가 연결된 이층으로 가니 거긴 문화영역이다. 다시 일층으로 내려갔다.

일층엔 아주 고대의 멕시코 지역의 문명 흔적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구축된 문명을 보여준다. 잘 알려진 곳 말고도, 유카탄, 와하카 등 멕시코 각 지역에 퍼진 문명에 대해 소개한다. 마야 문명이란 것이 대륙 일대를 다 지배하던 게 아니라, 옥수수 먹고 사는 부족들이 각 지역에 고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박물관의 백미는 실내와 야외에 그대로 옮겨놓은 돌들이다. 작은 돌이 아니라 진짜 피라미드에서 나온 실물 크기의 동상과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문들을 안에 옮겨놨다. 어떤 인류학박물관보다 규모가 크다.

돌들을 다 보고나면 시간이 한참 흐른다. 힘들다. 벤치에 누워서라도 쉬다가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도 재밌다. 각 지역의 토속문화(의상, 음식, 축제 등)을 재현해 둔 곳이다. 비슷한 듯 달라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층 하루, 이층 하루 이렇게 나눠서 보면 좋았을 뻔했다. 기념품 샵에서 투박한 그림을 하나 샀다. 나중에 와하카에 가니 길거리에서 5페소 10페소로 팔고 있었다.


Jadrdin Botanico

복잡한 대로변이 아닌 공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나갔다. 재밌는 그림들을 공원 벽에 전시해두었다. Jardin Botanico도 있었다. 주말 장이 서서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건너편의 Tamayo 박물관도 유명하다고 한다. (문화적으로 볼 게 너무 많다!!) 고르고 골라 무료인 일요일에 현대미술관을 갔다.


현대미술관(Museo de Arte Moderno)_0917_http://www.museoartemoderno.com/

마침 기획전시로 Garry Winogrand라는 미국 사진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한쪽에선 예전 귀족집 물건 만으로 또 전시를 하고 있었다. 이층에 Identidad de Mexico라는 타이틀로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 프리다와 리베라를 비롯해 멕시코의 주요 화가들의 그림이 잔뜩 모여있다. (프리다의 유명한 자화상 그림도 다 여기 있었다.) 멕시코의 시대성, 자연과 화가들의 정체성이 잘 어우려져 있었다.

박물관 뒤에는 기념품 점과 카페가 있다. 카페에서 가볍게 에피타이져를 시켰다가 또 배가 터질 뻔했다.


식당_Los Panchos_0913

블로그를 보니 맛집이라고 알려졌다. (멕시코시티 오자마자 가는 사람도 있었다.) 평범한 입구와 달리 안은 정말 넓고 고급스럽고, 벽면은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넥타이 멘 무리들이 단체로 회식을 하는 분위기다. 우린 점심이라 과카몰레와 호박꽃퀘사디야를 시켰다. , 그간 우리가 먹은 음식들이 동네 분식집 쫄면이라면 이건 3대 냉면의 평양냉면 같았다. 과카몰레를 담아낸 돌그릇하며, 또르띠야 하나하나의 만개하는 고소함, 살사의 진한맛, 나초마저도 한 웅큼 싸가고 싶은 수준이었다. 멕시코에선 저렴한 음식도 맛있지만 비싼 식당은 또 그 값어치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식당_Antojitos Yucatecos Los Arcos_0913

한식당, 한인 슈퍼가 있는 Zona Rosa에 족발집이 있다는 호세호세(블로그)의 제보를 받았다. 유카탄식 돼지 요리인 차모르라고 한다. 진짜 한국 민속촌 바로 옆에 있다. 족발 앞에 한식당은 우리를 1도 유혹하지 못했다. 돼지발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하지만 여긴 술을 안판다고 했다. 옆에 성경 같은 문구가 보인다. 그래도 침착하게 콜라와 족발을 시켰다. 잘 졸여진 느낌이라 부드럽고, 따뜻했다. 수육 메뉴도 하나 더 시켰다. 온 몸에 온기가 돌았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_0915_http://www.teotihuacan.inah.gob.mx/index.php

멕시코 시티 주변에는 피라미드 말고도, 배 타고 꽃놀이하는 호수도 있다. 하지만 호수는 가기도 멀고, 우리 같이 눈에 띄는 관광객에겐 바가지도 심하다고 했다. 유명한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만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에서 가기는 정말 편했다. 트램의 종점이 버스가 있는 Terminal Norte였기 때문이다. (대신 한참을 가야한다.)

멕시코 시티엔 여러 개의 터미널이 있다. 북터미널은 그 중에 작은 축에 속하는데도 규모가 컸다. 8번 창구 구석에 Autobuses Teotihuacan (헷갈릴 일이 없다.)이 테오티우아칸까지 오고가는 버스를 운행한다. 버스는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좀만 교외를 벗어나도 사막이었다. 벌판 같은 곳에 내렸다.


피라미드 구경

입구가 여러 개 있는 모양이다. 티켓을 사고 걸어들어가니 상점가가 나왔다. 여편님이 화장실 간 사이 냅다 저렴한 옥수수 모자를 샀다. (모자는 아직도 집에서 옥수수 냄새를 풍기고 있다.) 모자 안 샀으면 큰일 날 뻔했다. 햇볕이 쨍하니 덥다. 여기도 별로 친절한 안내도는 없다. 본격 유적지로 들어섰다.

쌩 사막일 줄 알았는데 제법 풀이 돋아 있고, 거무틔틔한 돌들이 쌓여있어서 편안하다. 넋놓고 돌아다니다간 해가 다 질것 같다. 유명한 것만 돌아보기로 한다. 우선 태양의 피라미드(Piramide del Sol)로 갔다.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이거 올라갔다오면 허벅지가 남아날까. 12시까지 기다리면 태양이 정확히 피라미드 정점에 내려앉는 걸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라갔다. 계단이 촘촘한 구간은 좀 위험해보였다. 보기보다 힘들진 않았다. 올라가면 유적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주변의 숲과 산세도 보인다. 역시 이런 건 다 명당에 짓는다. 올라오니 바람이 많이 분다. 사진 찍고 내려간다.


여세를 몰아 달의 피라미드(Piramide de la luna)도 가보기로 한다. 여긴 좀 더 낮고 넓은 구조다. 피라미드 위에서 거닐기 좋다. 아늑한 곳이다. 금방 내려온다. 피라미드 주변엔 짤랑짤랑 장난감들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랑 비슷한 모자를 써서 친근감이 넘친다. 여편님은 구멍 두 개 뚫린 거북이모양 피리를 샀다. 우리가 불어도 소리는 잘 난다. 반대편 입구의 굴속 식당까지 찾아가서 점심을 먹는 건 무리일 것 같다. 나가는 길에 일방통행만 허용되는 유적을 봤다. 이쪽이 큰 출입구인지 기념품 상점과 매점이 도열하고 있다. 신기한 색깔의 돌맹이를 판다. 하나 사왔으면 유용한 장식물로 썼을 것 같다.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거부할 수 없는 망고 소년이 있다. 11쯤 도착해서 3시 쯤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오길 잘했다

터미널에 돌아오니 로비에 음악이 울린다. 독립기념일 명절 연휴를 맞아, 귀향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다. 마리아치(Mariachi)를 여기서 만나게 됐다. 다들 가던 길 멈추고 둥그렇게 모여서 본다. (나도 귀향하고 싶다.) 연주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 어디서건 좋은 음악을 만날 수 있는 나라다. 옆에 따꼬집에서 따꼬를 몇 개 집어 먹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소고기를 굽고 비빔면을 먹으니 모래 먼지까지 가라앉는 완벽한 하루였다


참고_친절한 테오이우아칸 방문기(영어)

https://sightdoing.net/how-to-visit-teotihuacan-without-a-tour/



대지진의 여파 속에서도 얘기 잘 통하는 호스트, 사람 냄새 나는 골목길, 프리다와 리베라, 귀여운 돌덩이들, 맛난 먹거리로 대도시의 풍성함을 안겨준 멕시코 시티 시간이었다. CDMX의 상징색인 핫핑크도 잊혀지지 않는다. (택시, 지하철, 버스, 관공서 등등 어디서나 보인다.) 파올라는 마지막 주말에 캠핑을 갔다가 떠나는 날 늦게까지 자는 바람에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Terminal Oriente로 왔다. ADO 버스 전용 터미널이다. 동그랗고 크다. 한 시간을 넉넉히 기다려 와하카행 버스를 탔다.



영화_프리다(Frida, 2002)

멕시코 오기 전, 쿠바에서 봤다. (반갑게도 그 비날레스 민박집 색깔도 멕시코스러웠다.) 난 예전에 감명깊게 본 영화인데 여편님은 안봤다니 충격이었다. 진심 멕시코시티를 가기 전에 꼭 봐야하는 영화다. 멕시코의 전설적인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까사 아술에 얽힌 비화들이 쏟아진다. 또 봐도 재밌었다.


다큐_EBS 다큐프라임_불멸의 마야

멕시코 오기 전 쿠바에서 봤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다소 과테말라 위주) 곳곳에 분포했던 마야 문명과 지금 원주민의 생활에 대해 말한다. 인류학 박물관, 피라미드 보는데 도움이 됐다. CG가 고퀄이라 당연히 해외 다큐 더빙인 줄 알았는데 자체제작이다. 현지에서 섭외한 이들의 연기도 재밌다.


도서_멕시코의 세 얼굴_옥타비오 파스

쿠바에 온 솔님에게 책을 여러권 부탁했다. 멕시코 관련 책이 몇 권있다. 그 중 먼저 읽은 책이다. 문체가 딱딱하고 오래된 책이지만, 인간의 본성, 멕시코 사람들이 갖는 열등감, 역사 등을 다룬다. 열등감 얘기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 시사점이 컸다.


도서_화가, 혁명가 그리고 요리사_바버라 킹솔버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멕시코 시티, 음식, 프리다, 리베라, 트로츠키, 피라미드 등 여기저기에 양념을 팍팍 뿌려줬다. 프리다와 리베라의 집에 요리사로 고용된 소년이 트로츠키까지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특히 까사 아술과 트로츠키 박물관에 가면 작가가 여기를 세세하게 묘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나고 있는 기분이다.


두 책은 와하카 디씨엠브레 민박에 기증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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