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 다음으로 향한 곳은 파묵칼레, 그리고 에페수스가 있는 셀주크였다. 에게해쪽으로 향하니 그리스 로마 시대의 흔적들을 보게 됐다.


파묵칼레(PAMUKKALE)_1013_1014

괴레메에서 출발한 버스는 파묵칼레까지 가는 건 아니었다. 데니즐리(DENIZLI)라는 도시에서 내려주고 기다리던 세르비스가 우리를 태우고 갔다. 마침 괴레메 터미널에서 한국 청년을 만났다. ‘후’라는 청년도 파묵칼레를 간다고 했다. 우리랑 같은 버스라 다른 말레이시아 커플까지 다섯 명이 세르비스를 탔다. 세르비스가 내린 곳은 SUHA 사무실이 아닌 파묵칼레 버스의 사무실이었다. 세르비스 운전한 아저씨가 파묵칼레 버스티켓도 팔고, 파묵칼레 투어도 겸하고 있었다. 자꾸 투어 안할거냐길래 우린 무시했고, 말레이시아 커플은 투어를 하기로 했다.


새벽이라 아침 먹을 궁리를 하는데 아저씨가 자기 부인이 바로 옆집 식당을 한단다. 일곱시에 열어준단다. 곧 무려 신라면 티셔츠를 입은 동양 아줌마가 나타났다. 여편님이 파묵칼레에 괜찮은 일식당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그 집 주인이었다. 시국이 어수선해서 그런지 신라면은 없다고 했다. 대신 저렴한 인도네시아 라면에 계란도 풀어주고, 공기밥도 서비스로 줬다. 후와 함께 모두 행복한 아침을 맞았다.

저녁도 여기서 먹기로 했다. 나는 오야꼬동을 시키고 여편님은 닭볶음탕을 시켰다. 우리가 상상하던 그것보다 더 매콤하고 자극적인 닭볶음탕이었다. 밥 한공기를 더 추가해서 국물까지 싹 다 비벼먹었다. 한 켠의 미국인들 중 한 명도 닭볶음탕을 시켜놓고 입에서 연신 불을 뿜어댔다.


숙박_OZEN TURUKU HOTEL

아침을 먹고 잠잘 곳을 구하러 나섰다. 어차피 하루만 자고 갈 생각이라 대충 돌아봤다. 파묵칼레 사무실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을 골랐다. 웃긴 할아버지가 주인장이었다. ‘머니가 없으면 허니도 없단다’. 온 방을 다 보여주면서 기어코 우리를 눌러 앉혔다. 다음날 가족들이 모두 안탈리아로 간단다. 진짜로 새벽에 우다당 소리가 났고, 아침에 보니 호텔엔 우리밖에 없었다. 식당에 올라가보니 한쪽 구석 식탁에 아침을 플라스틱 대야로 덮어두고 갔다.


파묵칼레 자연 공원(PAMUKKALE NATURAL PARK)

호텔에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오전 열시 쯤 여편님을 깨워 파묵칼레로 갔다. 옷 다 버릴 각오하고, 비닐도 챙기고, 수건도 챙겨서 갔다. 석회똥을 뒤집어 쓰는 줄 알았다. 이미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후를 만났다. 이날 바로 셀주크로 간다고 했다. 가서 또 만나기로 하고 입장했다. 듣던대로 신기한 석회층이었다. 신발을 벗고 감촉을 느끼며 올라갔다. 미끄러운 곳도 있고, 꺼끌꺼끌한 곳도 있었다. 중간에 물이 고인 곳도 거쳤다. 하얀 언덕 막바지에 이르르니 수영복을 입은 서양 여행객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그간 보지못했던 단체 여행객들이 다 여기 있었다. 알고보니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서해안 지대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석회 언덕을 다 오르니 카페가 있었다. 인스턴트 커피 한잔이 9리라였다. 아래론 석회언덕과 그 옆의 호수 공원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 마을과 산맥이 놓였다. 숨을 돌리고 로마 유적들을 봤다. 여기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더 귀족스러웠다. 먼저 원형 경기장쪽으로 갔다. 배가 고파서 원형 경기장의 높은 계단들이 버거웠다. 여기선 또 뭘 했을까. 경기장을 나와 다른 건물들을 봤다. 아고라 광장의 늘어선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날도 덥고 배가 고팠다. 한쪽엔 석회 언덕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었다.

대충 유적을 돌아보고 온천으로 갔다. 목욕탕 이름이 클레오파트라였다. 욕탕 입장료가 비쌌지만 밤버스로 쌓인 피로를 풀기로 했다. 간단히 햄버거로 요기를 하고 온천에 입수했다. 탕 입구에서 티켓을 내고 들어가는 식이라 한 번밖에 못들어 간단다. 그래서 그런지 탕에 안들어가고 온천의 정취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본전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한 시간이나 탕 안에 있었다. 둘 다 삶은 계란이 된 느낌이었다. 물 느낌은 조지아 보르조미의 온천과 비슷했다. 황제들은 이런 물을 좋아하나 보다.


목욕까지 마치고 다시 카페로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때웠다. 론리 플레닛에서 파묵칼레 석양이 좋다는 얘기를 봤기 때문이다. 주변 산책도 더 하고, 해가 산 자락에 걸리고 하늘이 노르스름해질 무렵 석회 언덕을 서서히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물이 흐르는 곳에 발을 담그고 석양을 즐겼다.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해서 족욕도 하고, 일어나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특히 여편님이 인생 사진을 많이 건졌다. 하얀 석회 바위와 하얀 물줄기 위로 갖가지 석양빛이 그대로 쏟아졌다. 여지껏 바라본 석양 중에 손에 꼽을 장관이었다.



셀주크(SELCUK)_1014_1017

처음으로 밤버스가 아닌 이동이라 편안했다. 버스는 우등이 아니라 좀 작은 버스였다. 이스탄불의 4인승 돌무쉬부터 미니벤, 긴 벤, 소형버스, 우등버스 터키는 버스 사이즈가 아주 다양하다. 미니버스라고 해서 당황했는데 생각보단 컸고, 여기서도 간식과 차를 서비스해줬다. 셀주크에 도착해서 앞서 간 후가 알려준 숙소로 바로 갔다.


숙박_ANZ GUEST HOUSE_더블룸_3

숙소 주인인 이브라힘은 한국 식당에서 일했다고 한다. 파주에서 일했다니 파주 잘 안다고 했다. 차를 내주면서 얘기를 나눴다. 관광객이 없다는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터키 정치 얘기로 넘어갔다.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에르도안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슬람 성향이 강한 곳이나 지방 발전 정책 덕분에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지역이 많다고 들었다. 자기가 쉐프 출신이라 아침은 좀 특별하단다. 그렇게 특별할 건 없었지만 잘 나왔다. 볕 잘드는 테이블에서 차도 아무때나 마실 수 있었다.

다시 만난 ‘후’는 첫날 셀주크 구경을 다 하고도 며칠 더 있었다. 그리스로 가기 전에 스카이 다이빙을 하고 간단다. 몇 번을 가도 비행이 취소되서 못하다가 떠나기 전날 성공했다. 다시는 안한단다. 멕시코에서 온 아나도 알게 됐다. 한창 스페인어에 열을 올릴때라 말을 붙여봤다. 바로 대답을 못 알아듣고 큰 좌절에 빠졌다. 멕시코 집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해온 덕분에 유럽 여행에서 카우치서핑 게스트로 여러 군데를 들렀단다. 터키에선 워크어웨이도 했단다. 여러모로 새로운 여행 스타일에 눈뜨게 해줬다.


셀주크 시내

늦은 점심으로 이브라힘이 추천해준 케밥 하우스를 갔다. 한국어 메뉴판도 있었다. 이브라힘의 친척이 운영하는 것 같다. 닭고기 케밥이 아주 푸짐했다. 터미널 뒤로 돌아가면 가게도 많고, 본격 여행자 거리와 셀주크 중심가가 있었다. 후와 다시 재회한 기념으로 함께 시내 피데집에서 테이크아웃을 해서 와인과 함께 먹었다. 피데는 터키식 피잔데 셀주크에서 먹은 버섯 피데가 가장 맛있었다. 그 옆의 케밥집에서 동생이 추천한 요거트케밥을 먹었다. 양념된 소고기에 요거트를 겻들이고 아랜 양념이 베인 식빵을 깔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맛이었다. 아이란과 먹은 케밥도 맛있었다. 전반적으로 셀주크의 식당들은 비싸지도 않고 터키맛이 잘 났다.

다음날 저녁, 후가 우리를 양곱창 집으로 데려갔다. 곱창 구이집은 아니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케밥만 파는 집이었다. 근데 그 샌드위치에 양곱창을 넣어 파는 곳이다. 우린 곱창과 빵을 따로 달라고 했다. 양꼬치도 주문하고, 근처에서 맥주도 사왔다. 허가 안받은 식당에서 대놓고 마시면 안된다고 해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간만에 느끼는 기름기라 속을 지글지글 태웠다. 에페스 맥주 중 강한 걸 사오니 곱창과 소맥의 마리아주가 펼쳐졌다. 셋 다 다음날 과도한 기름기로 고생을 좀 했다.


며칠 더 셀주크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니 좋은 곳을 많이 알게됐다. 특히 기차역 맞은 편에 큼지막한 정원을 가진 노천카페가 좋았다. 떠나는 날 오후에 잠깐 머물렀지만 푸르고 쾌적했다. 셀주크 사람들이 애용하는 명소 같았다. 그 앞에 중심가로 들어서는 커다란 고대 기둥 흔적도 있는데 아르테미스 신전보다 훨씬 멋있었다. 후가 아르테미스 신전 진짜 별거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가봤다. 황룡사터가 그렇듯이 그냥 신전’터’였다.

토요일엔 시장이 선다고해서 기대를 했다. 터미널 뒤편 중심 거리 가득 시장이 섰다. 과일의 광채가 마트랑은 급이 달랐다. 여편님이 아주 신이 났다. 과일 한풀이를 실컷했다. 쇼핑 목록은 아래와 같다.

청포도 1.2kg=3리라=1200

무화과 1kg, 15=5리라=2000

1kg=1.5리라=600

2=5리라=2000

포도는 송이채 잡고 흡입해버렸고, 귤은 아줌마들과 경쟁해 선별했다. 무화과는 곧 상했다. 배는 살면서 외국에서 먹어 본 것 중 최고였다. 탱크보이 갈아서 얼리기 전의 맛이다. 후는 15리라에 츄리닝 바지를 건졌다.


PAMUCAK 해변

에페수스를 걸어서 가려는데 지나가던 돌무쉬가 우리를 태웠다. 해변까지도 간다길래 우선 해변을 가기로 했다. 에페수스는 오전에 가면 사람도 많고 더울 것 같았다. 카페 두 어개가 있는 조용한 해변이었다. 주말이라 음식 싸들고 야유회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것이 에게해인가 했다. 모래 사장을 더 걷다보니 작은 방파제가 있었다. 낚시꾼들이 늘어섰다. 안쪽의 가족은 파란게도 잡았다. 다시 카페로 돌아와서 탄산수를 들이키고 돌무쉬를 기다렸다. 돌무쉬 두 어개가 만석이라 그냥 갔다. 삼십분을 기다려서야 돌무쉬를 잡아탈 수 있었다.


에페수스(EFESUS)

돌무쉬가 에페수스 주차장에서 내려줬다. 괴레메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입구까지 상점들과 식당이 늘어서있다. 일단 파스타로 요기를 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입장했다. 과거엔 해안선이 더 안쪽까지 들어와서 에페수스 자리가 포구였다고 한다. 바다와 어우러졌으면 더 빛이 났을 거다. 원형경기장은 파묵칼레에서 본 거랑 비슷했다. 단체로 온 사람들은 노래도 시켰다. 아예 여기서 정기 공연이나 행사를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이런 좋은 노천극장을 보존만 하는 건 낭비다.


가장 인상적인 건 추가 입장료가 필요한 테라스 저택이었다. 물론 박물관 패스엔 다 포함되는 거다. 이럴 때 고민을 안해도 된다. 한창 발굴 중인 것처럼 천막이 쳐져있어 인디애나 존스 감성이 돋는다. 지금으로 치면 타워펠리스 같은 고급 다세대 주택이다. 바닥이나 벽에 타일 장식이 매우 고급스러웠다. 다음 인상적인 건 도서관이다. 이집트 도서관 저리가라로 맘먹고 지은 거라고 했다. 스케일이 웅장했다. 여편님은 그 기세에 압도되어 미끄러졌다.(대리석이 미끄럽기도 했다) 왼쪽의 내 엉덩이가 아닌 오른쪽의 다른 남자 엉덩이를 잡고 늘어졌다. 대략 두 시간 정도 돌아다니고 귀가했다. 성경 지식이 해박한 여편님은 더 재밌게 봤다. 난 터키 맥주 에페스가 여기 이름을 딴 거라는 것도 이날 알았다.


에페수스 박물관(EFESOS MUSEUM)

에페수스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에페수스를 보고 가는 게 좋다고해서 에페수스 보고 떠나는 날 갔다. 간단히 돌아봤다. 슬슬 그리스 로마 풍 돌덩이엔 물리기 시작했다.


요한 성당(BASILICA OF ST. JOHN)과 성채

토요일 오후에 갔더니 성당만 열고 성채는 닫는 단다. 성채를 보려면 성당을 거쳐야 한다. 박물관 패스론 2회 입장이 불가능해서 떠나는 날 갔다. 그 유명한 세례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데리고 온 곳이라고 한다. 에페수스에서 더 가면 성모 마리아가 살았던 곳도 있다고 한다. 여편님은 성당 가운데 구멍 안에 쏙 들어가 세례 세레모니도 했다. 무너진 성당 터를 지나면 성채가 있다. 셀주크 전경을 흝어볼 수 있었다.



밤 열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전날 먹은 요거트 케밥을 또 먹었다. 가게 문 닫는 시간이 되서 축구 틀어주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 아저씨가 좋아했다. 팝콘도 줬다. 또 문을 닫을 기세라 터미널 앞에서 멍하니 버스를 기다렸다. 파묵칼레 우등 버스를 타고 마지막 종점 이스탄불로 갔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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