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난 뒤 우리가 향한 곳은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였다. 실론티라는 이름으로 홍차를 알게되어 홍차의 섬이라는 거 빼고 사전지식은 없었다. 거대한 대륙 인도를 가기엔 겁도 나고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비슷한 문화권의 스리랑카를 방문하면 인도의 향기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베트남 이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동양의, 인도양의 바닷가에 대한 로망도 함께 했다.


일정과 이동_2016_0309_0407

이전까지 50일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에서의 이동을 합친 거 보다 더 많은 도시를 더 잘게 부지런히 다녔다. 공항과 가까운 네곰보에서 2, 2의 도시인 캔디에서 2, 아담스피크가 있는 델하우시에서 3, 힐컨트리 도시인 하푸탈레와 엘라에서 각각 5박과 3박을 했다. 사파리 한다고 우다왈라위에서 1, 다시 바닷가로 내려와 미리사에서 4, 콜롬보에서 2, 트링코말리의 닐라벨리 3, 우푸벨리 3박 다시 아침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 앞의 호스텔에서 1박하는 엄청 빡센 일정이었다.


이동

1) 버스

이런 빡센 일정이 가능했던 건 스리랑카의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 덕분이다. 앞서 국가들과 달리 스리랑카엔 렌트카를 대절하는 거 외에 투어리스트 버스 같은 게 없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과 같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 하게 됐다.

첫 도시인 네곰보에서 다음 도시인 캔디로 가면서 버스부터 이용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터미널이 지척이었다. 터미널에 가면 각 도시로 가는 버스가 줄비해 있고, 버스 앞에 최종 목적지가 영어로 써져있다. 잘 못찾겠으면 물어보면 된다. 버스 안에 차장이 함께 타고 가면서 티켓도 끊어주고 우리같이 어벙벙한 여행자들은 내릴 때 됐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심지어 숙소 근처를 지날 거 같으면 대충 지도 보여주면서 여기도 세워주냐고 하면 세워준다. 고속버스조차도 도심 각 지에서 승객이 원하는 곳에 세워주는 구조다. 나머지 버스들은 그냥 지나는 길이면 다 세워준다.

버스는 대부분 인도에서 넘어온 것들이라 구닥다리고 사설버스에는 어마어마한 사운드 장치가 실려있다. 빨간색 버스는 공공버스고 나머지 온갖색으로 칠해진 것들은 다 사설버스인 것 같다. 버스도 중간 중간 간식 상들이 올라타서 간식도 팔고, 7,8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밥도 먹고 살 수 있다. 힐컨트리의 꼬불꼬불한 산간을 버스로 지나는 재미가 꽤나 쏠솔하다. 직행버스가 없는 경우엔 주요 거점 도시에서 환승을 해야되는데 이것도 차장이 다 도와준다. 이거 타고 여기서 내려서 여기행 버스 타면 된다고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 환승 지점에서 갈아탈 버스를 세워서 바로 탈 수 있게도 해준다. 덕분에 환승 지점에서 간식을 사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먼지도 엄청 먹어야 하고 이 동네 사람들 표준 엉덩이가 작은지 의자도 작아서 2명 좌석에 둘이 앉으면 좁다. 그렇다고 3명 자리에 2명이서 앉았다가 큰 아줌마 아저씨가 쑥 밀고 들어오면 또 낭패다. 다들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지 장거리건 단거리건 늘 사람들로 터졌다 빠졌다 하는게 스리랑카 버스다.


2) 기차

버스를 타고 나면 기차는 로얄이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주로 힐컨트리 지역을 여행할 때 기차를 이용했는데 이건 우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 스리랑카 힐컨트리 지역의 기차 여행은 계곡과 차밭을 지나는 풍경이 워낙 수려해서 투어로 온 사람들도 자기들 차를 버려두고 기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거기다 주말이면 스리랑카 사람들도 많아서 표 구하기가 어렵다. 마침 우리가 처음 기차를 탄 날도 일요일이라 예매를 할 수가 없었다. 입석도 괜찮다고 티켓을 달라하니 역무원이 빡셀거라며 주의를 줬다. 막상 타보니 3등칸 입석도 나쁘지 않았다. 그냥 우리나라 시골 기차랑 다를게 없다. 거기다 주요 역을 지나면 자리도 생겨서 앉을 수 있다. 배낭 여행객의 로망은 또 입석 뒷칸에 서서 문 밖을 바라보는 거 아닌가. 이등석도 타봤는데 이등석 정도되면 케이티엑스 부럽지 않다. 간식도 얼마든디 살 수 있고, 좌석도 안정적이다. 2등석이든 3등석이든 따로 좌석이 지정되어있진 않아서 2등석 표를 사도 재수 없거나 어리버리 떨면 서서가야 한다는 게 함정이다. 가능하면 기차가 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앉는 게 좋은 풍광을 보기에 좋다고 한다.


기차나 버스나 모두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해서 여기갔다 저기갔다해도 별 타격이 없다. 그 외에 시내나 투어시에 이용한 툭툭 가격은 상대적으로 매우 비싸다. 관광객을 대상으론 가격을 단합하고 있어서 툭툭이들의 단합을 깨는 건 매우 어렵다. 심지어 콜롬보의 툭툭이들은 가격 좀 깍아보려하니 100루피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라며 걸어가라고 했다. 뭐 그래도 서울시내에서 택시 탄다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하다. 날이 워낙 더울 때가 많아서 툭툭이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3) <부록> 항공_에어아시아_치앙마이 출국에서부터 콜롬보 입국까지

스리랑카는 섬나라이고, 비자 발급에 일정한 수수료를 필요로 한다. 30일짜리 비자를 온라인으로 신청했다. 괜한 소린 건 알지만 공지사항에 나가는 항공편도 있어야 한다길래 아예 일정을 확정하고 들어갔다. 정확히 30일 꽉 채워서 네팔로 가는 일정을 확정했다. 이것도 꽤나 고심끝에 한 결정이었지만 더 신경을 쓰이게 한 건 에어아시아를 통해 치앙마이에서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 공항으로 가는 거 였다.

누구 작품인지 고작 몇 십달러 항공권 사는데에도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는 바람에 모바일로 결제하는 데 몇 번이나 펑크가 났다. 그런데 막상 에어아시아 내 계정에는 결제하려던 항공권이 한달 내내 결제 대기 상태로 남아있었다. 이런 것들이 온갖 신경을 자극했고, 웹 체크인인가하는 것도 괜히 피곤한 장치로 보였다. 침착한 여편님 덕에 임시용으로 가져온 노트북으로 꾸역꾸역 결제도하고 웹체크인도 하나는 모바일 하나는 인터넷으로 해버렸다. 결과적으론 걍 모바일로 웹 체크인을 해놓고 공항에 있는 에어아시아 단말기에서 항공권 발급 받으면 되는 거다. 그러고 카운터 가서 짐만 맡기면 땡이다. 이런 쉬운 걸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온갖 전전긍긍을 다 해야했다.


출국날, 치앙마이에서 아침에 예약한 택시가 오지 않았다. 아침 비행기라 7시부터 나와서 기다렸는데 1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안되겠다 싶어서 영혼의 숙적 흑구 황구 집 앞을 당당히 지나(호구들 간다고 새벽부터 엄청 짖었다.) 길가로 나가서 툭툭을 집어 탔다. 공항이 멀지는 않아서 수월하게 도착했다. 일찍 나선 덕에 시간이 남아서 공항에서 남은 바트로 커피도 마셨다. 면세 쇼핑은 상점들이 열지도 않았고 딱히 볼 것도 별로 없었다.

갖은 욕을 다해가면서 찾은 쿠알라룸푸르 제2공항은 에어아시아 전용 공항이라 할 정도였다. 보험이니 좌석 지정료니 짜잘한 것들이 더 붙긴해도 엄청나게 싼 가격이다. 동남아 어디를 가더라도 에어아시아를 타서 쿠알라룸푸르에서 환승해서 가는 게 젤 싼 것 같다. 모든 길은 에어아시아로 통한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티켓 구매나 체크인 등이 생각보다 수월한 걸 알았다면 스리랑카에서 네팔로 가는 비행기도 그냥 또 말레이시아로 갔다가 네팔로 갔을 지도 모른다.

쿠알라룸푸르 공항 칭찬만 해도 한 바닥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쇼핑몰과 결합 형태인데 환승 객이 많아서 그런지 짐카트를 밀고 다녀도 별 이상한 분위기가 아니다. 공항 내의 마트 조차도 짐카트를 밀고 들어갔다. 다양한 여행자의 이목을 끌만한 스포츠, 의류 등등 가게도 많고 세일 전쟁 중이라 구경거리가 많다. 식당도 말레이시아 대표 프랜차이즈인 CHEF CHOW, 파스타 집 등등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맛도 좋았다. 다만 밖은 푹푹 찌는데 안에는 에어컨을 막 틀어놔서 그런지 공기가 좀 답답하긴 했다. 공항에 대한 좋은 인상 덕에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에어아시아 스텝들도 전반적으로 친절하고 시원시원해서 꼬장꼬장해 보이는 홈페이지의 인상을 좀 지웠다. 말레이시아 비자도 하루 체륜지, 뭐하러 왔는지 묻지도 않고 쾅쾅 찍어준다.


이 공항의 하이라이트는 면세점인데 출국게이트에서 탑승 게이트까지 거리가 꽤 있어서 방심하면 큰일날 구조다. 거기다 딴 공항처럼 품목별로 명품들 모아놓은 게 아니라 ENJOY, BEAUTY 이런식으로 코너별 테마를 마련해놔서 구경만 해도 재밌고, 막 사고 싶어지는 구조다. 거기다 양주 코너에는 여편님의 사랑 핸드릭스 진, 봄베이 사파이어 같은 유명주들이 덕후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이쁘게 쌓여있다.

이렇게 지루할만한 환승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콜롬보행 또 다른 에어아시아를 탔다. 첫 비행때 확인한 기내식 가격이 별로 나쁘지도 않고, 저녁 비행 동안 할일도 없어 기내식을 시켜먹기로 했다. 공항에서 엄청난 값을 주고 수박주스를 시켜먹고 실패한 덕분에 환전한 말레이사아 돈이 아슬아슬했다. 딱 메뉴 두 개를 시켜서 먹으니 좀 짜기도 하고 양도 좀 부족했다. 빵 하나가 아쉬웠다. 첫 비행 때는 까짓 밥 안먹고 말지 했지만 막상 기내에서 남들은 밥 나눠주는 데 난 안주니 좀 섭섭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위축이 됐었다. 결국 시켜먹게 되는 것이 이런 상술의 힘이다 싶다.

밤늦게 도착한 콜롬보 공항은 쿠알라룸푸르와 비교되어 더 한적하고 쓸쓸해 보였다.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쳤다. 생각외로 이미 다 전자화 되어 있어서 인터넷으로 신청한 비자가 바로 뜨는지 여권 이외에 준비해간 E비자 증빙서류는 쓸모가 없었다. 편도 입국 여부도 묻지 않았다.


태국에서 겪었던 환전의 피로와 전화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출국장에 보이는 ATM으로 갔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 4개 중 3개가 고장이었다. 다행히 하나는 원활이 작동해서 현금을 바로 두둑히 들고 시작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주요 통신사들이 다들 투어리스트 요금을 판매하고 있었다. 좋다는 소문을 들은 DIALOG1300루피부터 요금제가 가능해서 가장 저렴하게 시작되는 AIRTEL에서 1000루피짜리 요금제로 개통했다. 다들 왜 디알로그가 좋다는지 한달내내 실감했다. 에어텔이 잘 안터지는 지역도 많았고, 디알로그 와이파이 존을 수없이 지나쳤다. 어쨌든 한달에 5기가(따로 설명 안해주는데 알고보니 낮 시간 2.5기가, 밤 시간 2.5기가 주는 구조다.)도 쏠솔히 다 쓰지도 못했고, 300루핀가 남은 잔고로 저렴한 국제전화도 쏠쏠하게 썼다.

공항을 나가는 길에 실수로 몸이 불편한 아저씨를 치는 바람에 마음을 크게 졸이긴 했지만 무사히 픽업 나온 툭툭이를 만나 예약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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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청기

숙소에 티비가 있었다. 그것도 국내 유명 회사의 평면티비였다. 서울에서도 티비 없이 살던 우리에겐 엄청난 호사이자 기회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 온 해외의 유명 다큐를 하루에 한 두 편씩 부지런히 감사했다. 물론 한 편을 보고 두 편째를 보다가 나는 잠들어 버렸고, 그 다음날 아침이나 저녁에 이어서 보기 일쑤였다. 이런 징크스가 생긴 건 방콕에서 보다가 중간에 졸아서 치앙마이에서도 몇 번이나 보다 졸다를 반복한 수면의 과학이란 영화 때문이다. 중간 중간 스페니쉬도 들리고 이것이 꿈인지 어딘지 헷갈리다가 답답하다가 졸아버리는 영화였다.


BBC 바다(SEA), 아프리카(AFRICA)

'바다'는 총 10부작 다큐인 것 같은데 챙겨온 목록에는 8부까지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심해와 섬, 산호초와 남북극해 등 잘 모르던 바닷 속 세계를 탐험했다. 우리 지구의 70%는 여전히 바다고 그 바다 중 대부분은 인류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며 세계일주를 한다고 해봤자 그건 그냥 한바퀴 도는 것 뿐 지구 발끝 만큼도 다 느껴보지 못하는 거다 싶었다. 바다를 보다보니 뒤늦게 바닷 속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간 나와는 멀다고 생각했던 스노쿨링, 다이빙, 그리고 여편님은 서핑에 대해 우리 입에 수 없이 오르내리는 계기가 됐다.

'아프리카'는 이미 나 혼자 집에서 틈틈이 한 번 본적이 있다. 화질이 블루레이라 제대로된 티비에서 보니 또 봐도 더한 감동이 일었다. 3부까지 밖에 못봤지만 그 인상은 너무나 강렬했다. 하늘이 너무나도 예뻐서 뭘해도 떼깔이 달라지는 것이 그 대륙의 매력이다. 검은 대륙이 아니라 푸른 대륙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NGC 코스모스(COSMOS) 2014

우리의 세계관을 바꿨다. 서점 과학 코너를 지날 때마다 언제 한 번 도전해보나 싶던 책의 다큐 버전이다. 한국어 더빙이라 닐 아저씨의 어조로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 별의 일생 등등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가면서 알면 좋을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한 편씩 볼 때마다 수 많은 지식의 양에 압도당하고 이해못할 때도 많았다. 세계를 이해하는 초석이라 생각하고 모르는 건 찾아보거나 넘어갔다. 주특히 물리학 부분은 이해가 잘 안가서 치앙마이 도서관에서 파인만의 여섯 강의라는 책을 들쳐보기도 하고, 위키피디아에서 뉴턴의 법칙, 상대성 이론을 찾아보기도 했다. 어렵다. EBS 5부작 '빛의 물리학'을 통해 심화학습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책으로 한 땀 한 땀 읽어봐야 겠다. 특히 아래 문장 들을 말이다.


지상을 환하게 비추면서 우리는 별을 잃었다.

우리가 우주 속에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창백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2) 독서일기

당연히 책도 많이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 여편님이 잠든 사이 홍차 혹은 커피에 꿀을 한 술 타서 한 두 챕터를 읽었다. 의자가 매우 딱딱하다는 점만 빼면 마구마구 책이 읽고 싶어지는 집이었다.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_제임스 C. 스콧

동남아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화인류학 책이다. 아나키즘과 관련해서 예전부터 보려던 책인데 치앙마이 인근이 딱 여기에 해당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출발 전에 읽은 맨발의 학자들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파트를 쓰신 박사님이 이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두꺼운 책인데 여러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 들고오게 된거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원시부족사회는 평지의 농경 수탈 문명을 피해 형성된 것이다. 평지에 저항하거나 탈출한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폐쇄적인 혈연집단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평지의 계급사회와 달리 산악 지역의 부족민들이 평등한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다. 수탈에 용이한 쌀, 밀 등이 평지에서 발달한 것이고, 실제로 자유로운 생활과 영양상의 균형 측면에서는 감자나 고구마 등이 훨씬 탁월하다. , 밀 등이 요리하는데에도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주로 여성이 여기에 묶이게 되어 사회 활동에서 소외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모로 국가나 부족, 인종 중심으로 문화를 구분하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게 해줬다.


새로운 인생_오르한 파묵

치앙마이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다. 내 이름은 빨강을 코로 읽어서 파묵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호감만 갖고 있었다. 초반에 좀 꾸역꾸역 읽히는 똘아이의 자아정체성 얘기다. 버스 타고 무작정 돌아가는 여행 얘기라 좀 끌리게 된다. 서구와 전통의 대립이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은 별로 공감가지 않는다. 돌고 도는 여행이야기는 늘 재미가 있다. 이 산더미 같은 사회과학 서적 속에 보석같은 소설이었다.


불타 석가모니_와타나베 쇼코

옮긴이가 무려 법정스님이다. 이걸 읽고 나서야 앙코르에서 봤던 유적들에 대해 좀 더 이해가 갔다. 불타의 가르침보다는 불타의 생애와 그 시기 주변의 문화와 상황에 대해 알게 해준다. 불교 공부가 여기서 시작이란다. 불교 공부 더 하고 싶다. 그나마 끝에 하시는 말씀은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61

여행 내내 읽을 거리가 꾸준하면 좋을 것 같아 고민 끝에 온라인 구독을 신청했다. 국제 사회 이슈를 르몽드처럼 맛깔나게 뽑아주는 곳도 없긴하다. 작년 12월호 이전까진 모르겠다하고 1월호부터 보기로 했다. 붙인 김에 인쇄해서 보겠다고 치앙마이를 뒤졌다. 어차피 스리랑카 비자나 비행기 E티켓도 뽑아야 했다. 동네 피시방에서 뽑았더니 화질이 개판이라 치앙마이 대학교 근처에 갔다. 인쇄소가 있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최적의 비율로 뽑아냈다. 1월 주요 기사 중 중남미 좌파의 동향 기사가 있었다. 동남아에 빠져서 한동안 소홀히 했었던 감을 찾게 해줬다. 좌파가 집권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집권해도 문제다. 사람들은 모두 아이폰을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우리 무히까 할베가 말했다. 역시나 재밌는 동네다.


3)사람들

한달이나 있었지만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많진 않다. 은둔형 커플로 둘이 먹은 밥만 백끼는 넘을 거다. 치앙마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찾아간 건 예전에 서울에서 몇 번 만난적이 있던 송 양이다. 지금은 독일, 태국 등 방방콕콕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 마침 치앙마이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해서 우리 정착 좀 도와줍쇼하고 찾아갔다. 송양과 함께 일하고 있는 하늘양도 여기서 만났다. 둘은 현재 디지털노마드(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갖추고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보고 정보를 검색하고 음악을 감상하는 무리, 또는 그런 사람)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진행 중에 있다. 발리, 치앙마이, 제주도에서 디지털노마드끼리 함께 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치앙마이에 적응할 수 있었다. 휴대폰 유심 사서 한달 신청하는 것도 알려줬는데 내가 어리버리를 까서 그런지 한 달내내 데이터 50매가에 전화 몇 통 밖에 못했다. 송양은 곧바로 이주간 수행을 떠났고, 하늘양과는 첫 주말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웠다. 배려심도 많고 참 재밌는 친구였다. 송양은 이 주 뒤 돌아와서 우리집에 놀러왔다. 그 다음날에 치앙마이에 있는 친구들을 불러모았고, 우리도 합석했다. 치앙마이에 오래 살고 있는 미국 친구도 있었고, 한국과 발리, 일본을 돌며 사는 한국 형님도 있었다. 그리고 독일 친구인 무리스는 내가 바다에서 자랐다고 하니 좋게 말해줬다. 탁 트인 바다에서 자라면 GOOD VIEW를 갖게 된단다. 역시 독일 친구들은 진지하고 재밌다.

그 다음은 우리 집 건물 이웃들 이야기다. 우리가 입주할 때 있었던 덴마크 여성은 입주 후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떠나갔다. 그렇게 외로운 시절을 보내다가 만난 것이 옆집 커플이다. 여기도 우리처럼 여기저기 여행을 하고 있단다. 하늘양을 방콕에서 만났는데 하늘양이 우리집을 추천해줬단다. 우리와 비슷하게 1월에 시작해서 발리에서 넘어왔단다. 서로 관심사도 비슷하고 다들 술도 좋아해서 몇 번이나 술자리를 가졌다. 옆집 집이 좋은 집이라 매번 신세를 졌다. 심지어 우리 덕분에 이 집을 알게됐다며, 와인과 치즈다 쐈다. 등산도 함께 가고, 온천 나들이도 가고, 윷놀이도 하고, 여편님은 팔자에 없는 카드놀이까지 배웠다. 이런 즐거운 날을 많이 보냈고, 떠나기 마지막 날에는 송별회까지 해줬다. 서울 우리집에서 또 한 번 정겨운 술자리를 가지면 좋겠다. 일층에 살던 뉴질랜드 총각은 몸은 좀 뚱뚱해서 물에 한 번 들어가면 풀장물이 10%는 날아간다. 그래도 사람은 참 좋은 친구라 늘 서로 안부를 묻곤 했다. 운동만 좀 더 하면 좋겠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물도 그냥 불러서 먹는다.


우리의 분쟁 일지를 보면 이런 이웃들의 소중함이 더 돋아난다. 우리가 길을 저기서 건너냐 여기서 건너냐 같은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곤 하던 시기는 대부분 이런 이웃들이 없던 시기다. 둘만 다녀도 좋긴 하지만 둘만 계속 사는 삶은 심심하다. 밥도 세명, 네명은 되야 더 맛있고 술자리도 흥이 난다.



4)여행자의 천국

태국은 여행자의 천국으로 불린다. 방콕의 호스텔에는 우리가 묵었던 호스텔을 포함해 WESETERN STAFF을 광고하는 곳도 많다. 방콕에서 태국 관련 글을 보다보니 여기서 오래 체류하는 사람들 중에는 프리랜서가 많단다. 그 프리랜서라고 하는 사람들 중 상당 수는 주식거래가 주업이거나, 오피스텔 몇 채가 있어서 월세 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단다. 이렇게 태국에서 오랜 기간 장기 여행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행자 비자로만 버틸려고 주변국으로 비자런을 하다가 몇 년 전에 태국 이민국에서 비자 검사를 까다롭게 한 적이 있단다. 이런 경우 우리같은 단순 여행자들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왕복 티켓이나 다음 행선지에 대한 증빙 자료가 없으면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자 문제가 늘 골칫거리라 장기 여행자들에 대한 내 시선은 별로 곱지 않다.


치앙마이에선 시내 어딜가도 ROOM FOR RENT나 콘도 분양 광고를 볼 수 있다. 여기에 장기로 머물거나 은퇴 후 정착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등산 모임에서 은퇴비자를 받고 사는 미국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은퇴비자의 경우 매년 일정액을 내고, 은행에 적당량의 잔고만 있으면 된단다. 그 액수도 최근에 좀 더 커져서 불만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또 은퇴비자로는 자산보유나 사업활동이 금지되기 때문에 태국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생활과는 다르다는 늬앙쓰였다. 이 타이 와이프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사업하던 은퇴비자 사람들은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고 한다. 1년 내에 다 처리해야 한단다.


모든 여행지가 그렇듯 치앙마이도 한중일 중에선 일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다. 주택가에서도 일본 음식점을 많이 볼 수 있고, 태국 사람들도 일본 음식을 많이 즐긴다. 그 물결을 타고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고, 당연히 중국 대륙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서양 은퇴자들에 한중일의 장기 체류 영향인지 이 작은 치앙마이에 쇼핑몰도 대여섯개나 있단다. 우리가 몇 번 다녀간 마야도 처음엔 횡했지만 지금은 외국인들로 가득차있다. 이런 외부인들이 원래 살던 태국사람들과 어우러진 커뮤니티를 형성하진 않는 것 같다. 내가 목격한 바로는 그랬다. 그래도 이런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동남아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우리에게 익숙한 대학생들의 모습도 치앙마이에선 많이 볼 수 있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라, 중국인들이 점령해나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봐서인지 님만해민의 고급레지던스들과 거기에 바글거리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태국을 찾는 많은 사람들 중 진정 태국 사람들의 생활이나 생각,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태국은 저렴한 물가에도 먹거리도 풍성하고 교통, 통신, 쇼핑 등 여러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태국의 매력은 싸고, 깔끔한 소비지인 것 같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란 것도 이렇게 모여든 사람덕에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분지인 치앙마이는 그 많은 오토바이와 차가 배출하는 대기오염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우리는 한달 내내 그 불쾌한 공기를 들이마셔야 했다. 태국 사람들은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폐쇄적인 나와 달리 오래전부터 외국여행객들과 부대끼며 살아서 보다 개방적이고 쿨한 생각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많은 질문들이 남는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이었다. 별일없이 먹고 자는 생활이었지만 우리의 생활은 외부인, 여행자의 삶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한달을 살아도 이민을 해도 외부인은 외부인인 것 같다. 여기에 정착해서 산다는 많은 사람들도 내 눈엔 다 외부인으로 보였다. 너가 아닌 우리로 느껴지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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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CHIANG MAI)_0208_0309

정착과 적응이 끝나고 여기저기 구경도 가고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책도 좀 보며 돌아보면 알찬 한달을 보냈다. 일자별로 말고 테마별로 생활기를 정리해 본다.


1) 교내외 나들이: 방캉왓, 올드타운, 시장, 도이스텝, 온천 등등

방캉왓(BAAN KANG WAT)

비록 한 달 짜리 집에 쭉 머물며 빠이나 치앙라이 같은 동네까지 가진 않았지만 치앙마이에서 당일치기로 갈만한 곳들은 부지런히 다녀왔다. 첫 주말에는 방캉왓이란 곳을 다녀왔다. 치앙마이 대학을 넘어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곳이다. 대학로 공원 같은 분위기가 난다. 인디스러운 공연도 하고 소소한 샵들과 식당들이 있다. 마침 일요일이라 간단한 먹거리나 유기농 식품 등을 팔고 있었다. 대학로에서 마르쉐를 하는 거다. 일요일 아침부터 썽타우를 타고 한참을 간 터라 때양볕에도 직접 갈아주는 태국 원두 드립커피가 알싸하니 개운했다. 여편님은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어 다녔다. 샵 중에는 한국 사람이 여기서 결혼하고 운영하는 곳도 있다. 국자가 맘에 들었으나 여기서 또 택배를 보내는 건 오버다 싶어 참았다. 방캉왓을 둘러보고 나서 근처에 로얄프로젝트 어쩌구 하는 곳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 좀 맵긴했으나 음식이 신선하고 맛있었다. 치앙마이 대학쪽으로 걸어내려오는 길에 COMMUNISTA 안에 PAPER SPOON을 들렀다. 방캉왓 보다는 여기의 샵을 둘러보고 싶었다. 태국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만든 이런 저런 소품들을 팔고 카페도 운영하는 곳이다. 옷들은 여행하면서 입기엔 좀 불편한 것들이라 살게 없었다. 하지만 페이퍼 스푼의 분위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꼭 다시 가고 싶을 정도다. 또 내려오다 들린 곳은 동굴사원이다. 동굴 속에 사원이 있는 건 아니고 사원 안에 들어가면 사당이 동굴 안에 있는 정도다. 문제는 여기가 동물친화사원 인증을 받은 곳이란 거다. , , 비둘기 등 온갖 동물들이 사원을 지배하고 있다. 굳이 저런걸 안해도 불교는 충분히 동물친화적인데 과유불급이다 싶다.


시장구경, 요리학교

다음 나들이는 시장구경이었다. 치앙마이 동쪽에 위치한 와로롯시장과 그 옆의 또 무슨 식료품 시장이었다. 가보니 나의 러브 라임이 한덩이나 있었고, 수박도 사각 기준으로 팔았다. 그 옆에 와로롯 시장은 광장시장처럼 관광객도 많고 이런 저런 기념품들을 사기에 좋아 보였다. 시장 골목에 백년된 국수 집이 매우 맛있어 나중에 한 번 더 찾게 된다. 여기 시장을 구경하다 올드타운 입구인 타페게이트로 들어가게 된다. 치앙마이 여행자 거리라고 할만한 곳이다. 정착 후 일주일 만에야 찾게 됐다. 여기서 발견한 아일랜드 빵집의 식빵이 엄청난 맛이었다.

시장 구경 다음날 1일 요리학교를 갔다. 서울에 살 때부터 여름이면 팟타이를 만들거라고 노래를 부르던 여편님의 소원을 성취하고자 함이다. 베트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앙마이에만 수 십개의 요리학교가 있다. 좀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욕심에 조사를 좀 해봤더니 일주일 정도 배우는 데에만 6~7천바트 정도가 든다고 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하루짜리 코슨데 하루에 7백에서 천3백바트까지 가격대만 다양하고 옵션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다른 코스를 두어개 하기도 에매하다. 결국 하루짜리 코스를 해서 전반적인 감만 익혔다. 전날 시장을 대충 보긴했는데 수업 초반에 근처 시장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재료와 쓰임새를 설명해주니 유익했다. 자세한 얘기는 하루한상에 있으니 넘어간다.


도이스텝(DOI SUTHEP). 부빙 펠리스(BHUBING PALACE)

치앙마이 생활 2주가 넘어가서야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도이스텝을 방문했다. 치앙마이 대학교 너머 치앙마이 동물원까지 가면 도이스텝으로 가는 썽타우가 널려있다. 대충 인원을 맞춰 올라가보니 여기 또 사람잔치가 벌어졌다. 그간 듣기 힘들던 한국 말도 많이 들리고, 역시나 중국 사람이 제일 많다. 종교 의식을 치르는 태국 사람들도 많다. 사람구경 돌 구경도 좋고, 훤히 보이는 치망마이 전경도 괜찮다. 하지만 치앙마이의 뿌연 대기를 또 한 번 절감할 수 있는 계기다.

도이스텝에서 더 올라가면 왕궁도 있고, 산책로도 있고 이것 저것 볼 것들이 많다. 일단 왕궁을 갔다. 태국 왕실이 별장으로 사용하는 곳이란다. 정원이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북방의 장미라는 치앙마이 답게 꽃밭도 잘 가꿔져 있다. 두 어시간 정도 꽃길 여기저기를 산책하고 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출구쪽에 마침 식당이 잘 꾸려져 있어 간단히 차 한 잔씩 마시며 촉촉한 정원을 즐겼다. 이런 정원을 소유하고 있는 왕실은 재산이 세계 왕실 중 5위 권인가 그런단다. 산유국 제외하면 1등이란다. 물론 태국 국민들은 우리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이용이 가능하다. 국민들에게 적당히 배풀건 배풀면서 누릴 껀 다 누리는 왕실이다. 마침 치앙마이 가뭄이 심해 주말만 개방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주말이었다.


싼캄펭(SANKAMPENG) 온천

마지막 나들이 장소는 싼캄펭 온천이었다. 우리보다 2주 늦게 치앙마이에 와서 같은 숙소에 머물게된 옆집 커플과 함께 갔다. 온천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갈 생각있냐길래 바로 간다고 했다. 한 번 놀러간 적이 있던 와로롯 시장 옆에서 썽타우를 타고 간다. 시외로 나가는 썽타우는 노란색이다. 그래도 편도 비용은 50바트 밖에 안한다. 출발 전에 좀 알아보니 가서 발담그고 온천물에 계란 삶아 먹는 재미란다. 우리도 입구에서 계란을 사고 펄펄 끓는 온천물에 15분 정도 계란을 삶았다. 덜 익었는데 소금마저 잃어버렸다. 내부 가게에는 다들 소금이 없단다. 별 수 없이 힘들게 깐 한 알을 쑥덕쑥덕 먹었다. 온천물이 흘러내려오는데 적당한 온도 지점에 발 담그고 한참 누워도 보고 신선 놀음을 했다. 여편님은 물이 너무 뜨겁다며 좀 힘들어 했다. 잠시 뒤 옆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쏘니 너무나 행복해 하셨다. 관광객도 많고 소풍 온 태국사람들도 많았다. 역시 소풍은 먹는 맛인데 간식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것이 아쉬웠다. 여기도 치앙마이 답게 이런 저런 산책길도 있고 또 한 번 소풍오면 좋을 곳이다.


나이트바자

치앙마이 오자마자 유명하다는 것이 나이트바자였다. 그래봤자 여행 기념품 파는 곳이겠지 했는데 그렇긴 하다. 근데 규모가 엄청 크고 이런 저런 먹거리 타운도 끼어 있다. 우린 그냥 바르셀로나 유니폼(가짜)를 사려고 한 번 다녀왔다. 좀 돌아보다가 적당한 가격에 네이마르와 수아레즈가 마킹된 유니폼 한 벌 씩을 샀다. 가짜여도 축구 유니폼은 여행 중에 이래저래 쓸모가 많다. 땀 배출도 잘 되고 바지도 잠옷, 산책, 비상시엔 수영까지 활용도가 높다. 그 진정한 활용도는 다음 스리랑카 편에서 언급하겠다.



2) 치앙마이의 카페들

북방의 장미란 이름이 무색하게도 치앙마이에는 북방의 카페를 다 모아놓은 듯 카페가 많다. 앞에서 말한 딘디카페나 커뮤니스타 안의 페이퍼스푼처럼 호적하고 네츄럴한 카페가 특히 좋다. 그 말고도 도시 곳곳에 카페들이 잘 차려져있어 마포, 부암동 부럽지 않은 곳이다.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아카아마 커피는 산악 지역에 사는 부족민 청년이 하는 곳이다. 태국 산악지역에서 직접 기른 커피를 쓴단다. 드립커피 원두도 고를 수 있고, 와이파이도 빠르다. 주택가 한 가운데 약간 네츄럴한 분위기를 꾸려놨다. 공간과 의자가 좀 협소한 게 단점이다. 이 청년은 올드타운에도 매장을 냈는데, 지나가다가 방송 인터뷰를 하는 것도 봤다. 우리식으로 하면 청년 벤쳐 이런 느낌인가 보더라.

우리가 다닌 곳 중 가장 고급스럽고 쾌적한 곳은 올드타운 박물관 안에 위치한 CAFE DE MUSEM이다. 원래 박물관에 딸린 카페치고 별로인 곳이 없다. 가격이 좀 쎄긴해도 사람도 많지 않고, 망고쥬스 한 사발이면 배가 터진다. 님만해민에도 당연히 고급스러운 카페들이 많다. 맘먹고 카페를 찾아봤는데 고심 끝에 들어간 곳은 LIBERISTA. 물론 가격은 좀 쎘지만 이런 저런 여행 책 보면서 딩구니 좋긴 하더라. 막판에 발견한 나의 핫스팟은 우리 집 바로 다음 골목에 있는 BEARISTA. 이름도 훔쳐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길가에 위치했는데도 쇼파랑 쿠션 공간이 워낙 넓어서 오토바이 연기를 적당히 막아준다. 아카아마처럼 네츄럴하면서도 좀 더 로컬한 분위기가 살아있는 곳이다. 나나베이커리도 크로와상이 유명해서 한 번 가봤는데 아예 아침을 데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 후로는 아침에 내가 자전거 끌고 가서 크로와상 사와서 집에서 먹었다.

치앙마이에 카페가 이렇게 많은 건 원래 살던 사람들보다는 그 많은 외국인 거주자 및 여행자들 때문인 것 같다. 태국 사람들이 감당하기엔 다소 높은 가격대임에도 엔간한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와이파이뽕릏 맞거나 디지털노마드들이 이런 저런 작업을 하는 곳으로 많이 쓰인다. 맥북을 꺼내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학가나 학원가 앞에도 크고 작은 카페들이 있고, 여긴 학생들로 가득차 있다. 그 외에 일반 주택가의 태국 사람들은 가게 앞에서 낮부터 맥주나 음료를 사서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



3) 등산과 수영

치앙마이 하이킹

치앙마이가 산악지대고 트레킹이 유명하다고 해서 1박이나 2박짜리 트레킹을 해보려고 했다. 알아보니 이것도 역시나 트레킹 업체가 수십, 수백개에 이른다. 가격이 싼 곳은 온갖 부족 투어에 코끼리 타기 등등 프로그램이 잡다하고, 트레킹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은 가격이 너무 비쌌다. 한달내내 할까말까 하다가 결국 안했다. 이 등산 욕구를 치앙마이 하이킹이라는 동호회가 훌륭하게 메꿔줬다. 트레킹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에는 자율로 참가하는 등산 일정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매주 치앙마이 교외에 있는 산을 오른다. 교통편은 차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얻어타는 사람은 100바트 정도만 내면 된단다.

치앙마이 정착 후 첫 일요일 대망의 등산날이 밝았다. 여편님도 전날 고심 끝에 함께하기로 했었다. 새벽 6시 일어나자마자 여편님은 포기를 선언하시고 대신 이런 저런 준비를 도와주셨다. 도시락으로 먹으라고 빵에 잼도 발라주시고, 주섬주섬 짐 챙기는 거 보고 배웅까지 해주셨다. 여행 후 첫 단독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창문 너머로 노심초사 뒷모습을 지켜보기까지 하셨단다. 집합 장소는 치앙마이 외곽의 쇼핑몰이라 썽타우를 타고 가야했다. 일요일 새벽이고, 큰 길에는 썽타우가 없었다. 다시 집 쪽으로 돌아와 골목을 뒤지다 겨우 한대를 발견했지만 이미 시간은 늦은 뒤였다. 가격도 좀 비싸보여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여편님의 눈에는 놀람과 실망이 선했다. 간만에 나 없이 마음 껏 잘 수 있는 일요일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둘 다 아쉬움을 추스리고 내 도시락을 까먹고 이날 방캉왓 소풍을 갔다.


DOI MOT

일주일 뒤 일요일, 대망의 등산을 했다. 이날 향한 산은 Doi Mot, 1800m 대의 산이었다. 집합 장소에 가보니 이건 왠 할아버지들 등산 모임에 나 같은 청년 몇이 끼는 구조였다. 은퇴 후 여기서 은퇴비자 받고 사는 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동호횐데, 단기 여행자들에게도 모임을 개방해서 운영한단다. 으흠 이거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차를 얻어 타고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경계까지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갔다. 내가 상상하던 동남아의 시골 마을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다들 인사하고 반겨준다. 주차 공간이 모자라 물어보니 예비역 군복 입은 아저씨가 주차 안내까지 해주신다. 등산 코스를 정하는데 쉬운 곳과 어려운 곳이 있단다. 할아버지들도 가는 건데 어려워봤자다 싶어 나도 어려운 코스를 택했다. 팀 리더인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데 산을 좋아하고 한국도 와봤다며 북한산 얘기를 하신다. 북한산이 이것보단 어렵죠라고 물으니 '아니, 오늘 코스가 더 어려워'. 올라가는 길은 죽음이었다. 길을 잘못들어서기도 했다. 길이 아니라 말그대로 산 오르막을 올랐다. 빈속이라 그런지 구토기도 몰려오고 여행하면서 체력 좀 다진 줄알았는데 다진 거 없었다. 죽음의 오르막을 오르고 나서야 좀 여유도 생겼고, 몸도 풀렸다. 정상까지는 능선이라 양쪽으로 펼쳐진 태국 산자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안개가 끼긴해도 굽이굽이 지리산 보는 것 같다. 내려가는 길은 또 다른 고생이었다. 쇠봉을 잡고 바위 길을 내려가니 또 같은 경사에 풀숲을 내려간다. 쇠봉이 없으니 거의 미끄러져 엉덩이로 내려갔다. 팔뚝 곳곳에 생채기가 났다. 막판에 리더아저씨가 나무막대기를 줘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왜 다들 산에 그 불편한 막대기들을 들고 오는지 알게됐다. 이런 나와 반해 할아버지들은 잘도 오르 내린다. 대부분 다리가 길어서 쑥숙 오르고 내리기도 했고, 산만 꾸준히 타서 그런지 능숙하다. 등산은 총 6시간 정도가 걸렸다. 맨 꼴지로 터벅터벅 내려와서 동네의 커피 나무들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찾아갔다. 어려운 팀, 쉬운 팀 다 모여서 맥주와 음료를 마시고 있다. 나도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시켜서 몸을 식혔다. 집에 돌아오니 만신창이가 된 나를 여편님이 맞아주셨다. 드디어 내가 등산을 간 덕분에 가려던 쇼핑도 안 가고, 끼니도 대충떼우고 휴일을 만끽하셨단다. 등산의 여파로 이틀을 내리 골골 거리며 쉬어야했다.


DOI PUI, BUDDHA FOORPRINTS

그 다음주 일요일에는 주중에 새로 들어온 옆집 커플과 함께 했다. 마침 등산 코스는 BUDDHA FOOTPRINTS가 있는 DOI PUI로 금요일에 다녀온 도이스텝이 있는 산을 타는 것이었다. 집합 장소도 이미 가본 적 있는 치앙마이 동물원이라 쉽게 갔다. 지난주에 이어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치앙마이에서 일하고 있는 탄아저씨의 차를 타고 갔다. 중국계로 보이는 탄 아저씨는 여기저기 해외 근무도 많이 했고, 한국 친구도 있어서 한국에도 두 번이나 놀러왔었단다. 용평 가서 스키도 타고 제주도도 갔었단다. 한라산을 안가봤데서 아주 쉽고 경치가 좋다고 잘 설명해드렸다. 말레이시아에 가족이 다 있어서 한 두달에 한 번씩 가신다는데 태국 보다 말레이시아가 음식이 더 맛있단다. 한국 음식도 좋아해서 종종 한국 식당을 가는데 거기서 자기 딸이 이용대를 만나서 싸인도 받았다고 한다. 듣던대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에 대한 인기는 엄청난 것이다. 탄 아저씨 덕에 말레이시아에 대한 인상도 좋아졌고 페낭에 꼭 가보고 싶어졌다.

이날 등산은 지난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경쾌했다. 내가 가장 즐기는 완만한 트레킹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산이라 산길도 잘 닦여 있고, 두 시간 정도 올라가니 정상이었다. 한 팀은 산행을 계속하기로 했고, 우리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유유히 산을 내려왔다. 등산 코스가 산악 부족 마을을 통과하는데 트레킹 상품에 끼어있는 부족 마을이었다. 이것저것 많이 판다. 식당에 들어가 카오사이를 먹었는데 반찬으로 김치가 나왔다. 우리가 먹는 김치와 매우 유사하게 열무줄기를 절여서 고춧가루로 양념을 했다. 일반적으로 카오사이 집에 가면 열무줄기를 절이기만 해서 주는데 여기서 김치를 보니 더한 친근감이 들었다.

떠나기 직전 주말에도 또 한 번 등산을 갈까했지만 이래저래 컨디션도 좋지 않고, 떠나기 직전에 다치기라도 할까봐 전날까지 고민하다 참았다. 태국의 산들은 내가 상상한 동남아의 산 답게 각종 풀숲이 우거져 있고, 지리산자락 처럼 굽이굽이 산들이 이어져 있다. 워낙 안개가 심해 전망이 좋지는 않지만 정글숲을 해집는 듯한 느낌이 더 좋다. 더구나 더운 치앙마이를 벗어나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좋은 것은 산행을 전후로 한적한 산골마을을 지나게 되는 것이다.


수영


캄보디아에서 이미 수영장 달린 숙소 소원성취를 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우리 숙소에 더 깨끗하고 널찍한 풀장이 있어 우린 또 그걸 만끽했다. 사실 처음 2주 동안은 숙소에 투숙객이 우리 뿐이었고, 정원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어서 수영을 하기가 민망했다. 정착 초기 치앙마이에 한파(20)가 몰아치는 등 날씨도 별로 안덥긴 했다. 그렇게 2주가 눈치를 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간만에 유영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남자가 일층 방에서 나오더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한국인 커플이다. 수영을 하다말고 인사를 나눴다. 이날 수영은 또 공치고, 그 다음날부터 떠나기 전날까지 우리는 매일 11수영을 준수했다. 수영 전 10~15분 정도 스트레칭과 가벼운 근력 운동을 하고 30분 정도 수영을 했다. 걷기와 함께 꾸준한 수영이 추후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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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BANGKOK)_0205_0207

애시당초 치앙마이를 가기 위해 머무는 도시였고, 들어가는 것부터 방 잡는 것까지 워낙 고생을 한터라 유쾌한 인상은 없는 도시다. 우리가 처음 내린 곳은 방콕의 여행자 거리로 불리는 카오산로드였다. 차 없는 도로를 전세계에서 몰려온 듯한 여행자들과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꾼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화려하다는 소문답게 여행자거리도 이전에 보았던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보다 더 원색적이었다. 어차피 이런 분위기엔 별 감흥이 없던터라 그나마 사람만 지나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지친 몸을 추스리고 기차표라도 알아볼겸 시내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큰 사원도 있고 이제껏 보지못한 큰 도로와 많은 차들, 대로변의 가게들이 잘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꽤나 일찍부터 인프라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한국 건설사들이 태국 고속도로, 다리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는 얘기를 몇 번 주워들은 기억이 났다. 치앙마이에서 워낙 잘 먹고 평화롭게 지낸 덕에 방콕은 별 인상이 남지 않는 도시다.

마지막날은 밤버스를 타기로 해서 시간을 떼워야 했다. 전날 돌아본 방향을 둘러 강변의 공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날까지 컨디션이 바닥이었던 여편님이 많이 회복한 덕에 좀 더 적극적으로 방콕 골목을 탐구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방콕 사람들로 이런 저런 종교 행사로 바쁜 것 같았다. 우리가 찾아간 공원은 금연에 금주 공원이라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었다. 우리처럼 시간을 떼우려는 여행객들도 배낭채로 누워있었고, 근처에 이런 분위기의 숙소가 있는지 몇몇 무리는 자리깔고 낮잠을 자거나 기타치고 요가하고 노니는 분위기다. 앞에 강도 크고 다리도 나름 운치있는 곳이었다. 쉬러 들어간 카페에서는 소개팅으로 추정되는 남녀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뭘 먹긴 했는데 나중에 먹었던 태국 음식을 생각하면 다 그냥 볶음일 뿐이었다.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숙소 근처 골목에 할아버지가 검게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담가주는 국수와 홍콩요리를 파는 체인점의 만두 정도다. 그래도 태국 음식에 대한 기본 교양을 갖춘 여편님덕에 쏨땀과 팟타이 등에 가볍게 입문하는 시간이었다.



치앙마이(CHIANG MAI)_0208_0309

방을 잡는 것을 포함해 초반 일주일 아니 이주일 정도는 치앙마이 생활에 정착하는 시기였다. 4주 정도를 머물렀는데 2주 정도가 지나고 나니 도시에 정이 들어 떠나는 날까지 주변 도시를 가느니 이곳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상과 달리 주구장창 치앙마이에만 머물게 되었다.


1) MAYA MALL, 센트럴몰, TESCO

도착하자마자 숙소에서 좀 쉬고 우리가 찾은 곳은 마야 쇼핑몰이었다. 치앙마이에는 여로 쇼핑몰이 있는데 도심과도 가깝고 최신식이라 다들 많이 이용한단다. 가보니 여긴 화장실도 한국에서 쓰던 어떤 곳보다 고품격이었고, 미국풍의 브랜드와 전자제품 매장, 은행, 통신, 영화관 오락실 등 별의별 시설을 다 갖추고 있었다. 옥상에는 치앙마이를 한번에 둘러볼 수 있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고급 맥주바가 구비되어 있었다. 아 내가 이런데서 한달을 사는구나 싶어 조금 의외기도 했고,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번쯤은 이런 고급진 곳에서 맥주 한잔하며 치앙마이의 야경을 감상해야 겠다 했다.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첫날 이후 두어번 더 마야몰을 찾았다. 우리집과 가장 가까운 쇼핑몰이라 필요한 옷을 사거나 지나는 길에 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가면 갈수록 별로 정이 가는 곳은 아니었다. 마야 4층에 위치한 캠퍼스도 꽤나 이상적인 공간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주로 대학생들이 개인공부나 과외, 협업 프로젝트를 하는 곳이다. 좀 번잡스럽기도 하고 막상 아무도 보지도 않는 책을 감성을 위해 손도 닿지 않는 곳까지 진열해놓은 것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푸드코트가 위아래로 있는데 첫날 한끼를 먹어본 이후 다시는 가지 않았다. 먹을때는 몰랐지만 좀 지나고 나면 거기서 어느 메뉴를 시켜도 비슷한 식감이 남을 것 같은 맛이었다. 원래 나는 푸드코트를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굳이 그 소란스러운데서 전문 요리사도 아닌 애들이 만든 걸 먹고 싶진 않아서다. 한국서도 자주 안가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여기라고 자주 갔을 리가 없다. 어쨋든 요즘 세상은 어딜가나 좀 규모 있는 도시는 이런 대형몰이 있고 여길 중심으로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고 전반적인 생활감각도 익히기 쉬워 찾게 되는 것 같다.

마야가 들어서기 전 치앙마이 도심의 메인 쇼핑몰은 센트럴몰이라는 곳이었단다. 이곳은 10여 년 전 여편님이 머물때도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여기서 씨즐런지 피자헛인지를 드시고 쇼핑몰을 구경하셨단다.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쇼핑몰 내부는 침침한 조명에 어수룩한 옷 매장들로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그래도 지하에는 식품매장과 각종 잡동사니를 파는 곳이 가득해 그나마 활기가 있다. 그리고 여기 내부 슈퍼인 TOPS MARKET은 마야 지하의 슈퍼보다 훨씬 품목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마야는 주 타겟이 외국인들이라 그런지 한국라면 같은 건 다양하지만 전반적인 물품 가격은 더 비싸단다. 집 근처 큰 길에는 할인형슈퍼마켓(?)인 테스코24가 있어서 물이나 맥주 등을 사는데 많이 이용했다. 일정액을 넘기면 오리 케릭터의 스티커를 주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다. 여행다니다 다른 사람 물건과 혼동하기 쉬운 여권, 핸드폰, 카메라 등을 식별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2) 시내이동

집을 알아보면서 치앙마이 도심 서북부의 어지간한 골목을 다 돌아보니 그 이후 어딜 돌아다니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치앙마이 안에서 돌아다닐 때 이용한 건 우리의 두 발과 대중교통인 썽타우였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슷하게 여기도 걸어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토바이가 가장 대중적이고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이도저도 없는 사람들은 대게 택시와 버스를 결합한 썽타우를 타고 다닌다. 주로 붉은 색을 칠하고 짐칸에 지붕을 덧씌운 소형 트럭이다. 시내 어지간한 거리는 20~30밧 정도면 이용이 가능하다. 목적지를 기사한테 말하고 기사가 운행하는 방향과 대충 맞으면 타는 거다. 다른 승객이 없는 경우 가격을 쇼부쳐서 택시처럼 이용도 가능하다. 엄청 편리하고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물론 승차감과 매연을 마셔야 하는 것이 큰 단점이다.

그렇다고 어딜 갈 때마다 썽타우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다니길 선호하는 터라 하루에 만보 이만보는 거뜬하게 찍혔다. 하지만 치앙마이는 걸어다니기에는 최악의 도시긴하다. 한겨울에도 30도를 넘어서는 더위는 실상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워낙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피해가 가장 크다. 도심의 사각형 강변을 제외하고 딱히 도보가 조성된 곳이 없다. 자동차-오토바이-자전거 다음 가장 마지막 순위로 도로변을 걸어야 한다. 심지어 어떤 차는 백미러로 내 팔을 치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큰 복병은 개다. 동남아의 개들은 주인이 있건 없건 자유분방하게 풀려 있다. 대문을 열어 놓는 낮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방범, 반상회 등 자기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들어간다. 길가에 워낙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몇몇 개들은 자기집 앞을 낯선 우리가 지나가면 달려와서 짖어댄다. 한 번은 골목 개 세네마리에 쫓겨 도망친 적도 있다. 그리고 큰 길에서 우리집 골목으로 들어가려면 옆집의 흑구 황구를 지나야 한다. 흑구가 종종 황구를 불러와 우리를 몰아세우는 덕분에 어두운 밤이면 몇 번이고 길을 빙 둘러서 집에 들어가곤 했다. 얘들이 무서워 해가 지고 난뒤 나가는 것을 극히 자제했으며, 특히 여편님은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우려해 나홀로 저녁거리를 사서 들어오기도 했다. 개들의 횡포야 어쩔 수 없는 거다. 다만 이렇게 더운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너도나도 문명에 의존해 걸어다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걸어보면 의외로 갈 수 있는 거리도 길고, 차나 오토바이를 타고는 쉽게 지나치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넘쳐난다는 것이 가능한 걸어보는 이유다.


3) 치앙마이 도서관

생긴거나 내부는 그냥 오래된 시립도서관이다. 특이점은 한국책이 천 권 정도 있다는 거다. 이걸 미리 알고 있어서 치앙마이 체류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이사를 마친 다음날 일단 가본 곳이고, 그 후로도 생활 초반에 주구장창갔다. 오래된 책만 있을 줄 알았는데 꾸준히 신간이 들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미생 같은 명시리즈들도 풀로 구비되어 있다. 분야도 문학, 인문, 사회, 과학, 여행, 어린이 도서 등 골고루 배치되어 있어 기증을 꾸준히 성심껏 관리하는 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나마 아쉬운 것 동남와 인근 지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책들이 좀 더 풍성했으면 하는 것이다. 뭐 어쨌든 죽치고 앉아서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하다. 집에서 걸어오려면 40분 정도를 험난한 도심길로 걸어야하고, 대출도 안되는 것 같아 생각처럼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이왕이면 정원이 보이는 집이나 아늑한 카페에서 읽는 것이 더 감칠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답답한 마음에 여편님은 쉬겠다며 혼자 도서관을 갔던 날 읽던 책을 몰래 들고 나와서 주말 동안 읽고 또 몰래 반납하기도 했다.


4) 치앙마이 대학교

CMU라 불리는 태국 최고이 대학이란다. 치앙마이 도착 첫날 지인을 따라 이곳의 집을 구경하고, 대학벽을 따라 화려하게 들어선 길거리 음식점들을 본 덕에 이쪽에 집을 구할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래도 대학가는 대학생과 거리가 멀어진 우리가 살기엔 좀 그렇다는 판단을 했다. 이젠 대학가의 생기보다 주택가의 사람살이가 좀 더 끌리는 시기가 된 것 같다.

치앙마이 대학은 도심과 가까운 넓은 부지에 꽃밭과 호수 등 예븐 캠퍼스가 조성되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단다. 그나마 산책하기에 좋아보여 두 번쯤 찾아갔지만 걸을 수 없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방문하면서 아예 일정 비용을 내고 관람차를 타는 투어를 통해서만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단다. 정착 초기와 끝 무렵에 이런 좌절을 맞게 되자 좀 화가 났다. 만약 우리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들어갔다면 제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과도한 방문이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면 방문객의 제한을 두던가 출입 제한 구역을 두면 될 것을 돈벌이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뭔가 싶다. 대학이 돈 장사나 위상 자랑으로 전락한 우리나라 현실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여기서도 걷는 놈이 죄인인 것이다. 나는 걷고 싶다시던 신영복 선생님의 감사색 글귀가 떠올랐다.


본 캠퍼스는 못들어 갔지만 그 옆의 아트센터는 방문이 가능하다. 가보니 대학생들의 현대미술 전시가 있었다. 볼만은 했지만 난해하다. 그 옆의 딘디라는 카페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엔 일본인들로 가득하다. 일찍부터 눈치빠른 일본사람들이 많이 정착해 있단다. 그 뒤를 한국인, 중국인이 따라오는 건 어딜가도 다를게 없다. 안그래도 삿뽀로와 비슷한 인상인데 일본인이 가득한게 좀 싫었다. 하지만 기름진 음식으로 속이 안좋을 때 찾아가서 먹은 소바와 야채 커리는 그런 앙금들을 다 사라지게 하는 아늑함을 주었다.


또한 대학 안에는 로얄프로젝트샵이 있다. 로얄프로젝트는 태국 왕실에서 산악지역 주민들의 생활을 돕기 위해 커피, 차 등의 작물 재배를 돕고 이를 판매한 수익을 재투자하는 방식이란다. 로얄프로젝트샵에는 태국 산악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품들과 각종 싱싱한 유기농 식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파는 식빵은 호박식빵, 잡곡식빵 등 종류도 다양하고 쫄깃해서 아침에 생빵을 먹는 우리에겐 매우 적절했다. 꿀도 하나 사서 집에서 차나 커피에 타 마셨는데 원래 태국 꿀이 좋고 유명하단다. 꽃과 잘 어울리는 나라라 그런가보다. 그 가게 근처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유기농장터가 열려서 싱싱한 태국 농산물을 살 수 있다. 지나치다가 혹은 일부러라도 몇 번 찾아가서 싱싱한 라임과 방울토마토 등을 사다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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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태국 방콕과 치앙마이에서 약 한달을 보내셨던 여편님은 여행 시작 전부터 치앙마이라는 곳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볼 것을 제안했다. 이미 '한달에 한도시'라는 책 저자의 인터뷰를 보면서 아 이런 여행 스타일도 있구나 했었다. 여행 초반에 타이트함으로 지친 몸도 추스리고 다양한 여행 방식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나도 동의했다.


일정과 이동_2016_0205_0309

이미 다음 행선지인 스리랑카로 가는 비행기를 끊어버린 터라 태국에서의 일정은 확정이 되버렸다. 씨엠립에서 방콕으로 넘어와 23일을 보내고, 방콕에서 야간 버스를 이용해 치앙마이에 도착 후 3박을 하면서 한 달간 머물 숙소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구한 숙소에서 약 한달을 머물다 39일 아침에 떠났다.

씨엠립에서 방콕으로 넘어오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숙소를 통해 버스-미니벤으로 구성된 12달러짜리 티켓을 구매했다. 숙소에 픽업 온 버스는 생각외로 괜찮았다. 3시간 남짓해서 국경에 도착했고, 1시간 정도 캄보디아 아웃, 태국 인의 행정 절차를 통과하는데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방콕으로 가는 미니벤을 타는 것이었다. 식당을 겸한 곳에서 무작정 기다리다가 무작위로 지목되서 미니벤에 타는 방식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데 방콕행 미니벤은 한시간에 하나 꼴이었다. 운좋게도 우리는 20여 분만에 지목이 되어 미니벤을 타라고 했다. 문제는 대기시간동안 고민하다 뒤늦게 주문한 음식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음식을 시켜놓았다고 하니 그럼 다음에 타란다. 대충 대기 시스템이 저런 식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여편님을 제지하지 않은 나의 실수였다. 결국 잠시 뒤 나온 팟타이를 우적우적 먹고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다 벤을 탈 수 있었다. 참고로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경우 음식을 싸달라고 해서 고이 포장해서 들고 갔다. 이런 우여곡절과 불금 퇴근 시간에 방콕에 접근한 덕에 우리의 도착 시간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 여덟시가 다 되서야 방콕 관광 중심인 카오산 로드에 내릴 수 있었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길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당초 쾌적하고 전망도 좋다는 야간열차를 선택할 계획이었다. 관광지구에 있는 여행사에 찾아가보니 딱 두 자리가 남아있고 가격은 1인당 900바트 정도란다. 왠지 바가지 갔기도하고 기차역도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기차역으로 향했다. 허나 기차역도 꽤나 멀었고, 여편님의 컨디션이 말이 아닌 날이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여행사를 찾았다. 이미 그 티켓은 팔렸고 다음날 밤에 넘어가는 좌석은 없단다. 다른 여행사도 알아봤지만 막상 첫 여행사가 제시한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었고, 역시나 남은 좌석은 없었다. 결국 첫 여행사로 돌아가서 600바트짜리 야간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국경 넘어오면서 워낙 고생을 한 터라 숙소에 돌아와 태국 야간버스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온갖 악평이 쏟아졌다. 여행사를 통한 투어리스트 버스에서 왠갖 도난 사고가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티켓을 구매한 여행사에 대해서도 여러 도난 제보가 실려있었다. 이런 연유로 대부분 커뮤니티가 외곽의 터미널에서 직접 티켓을 구매하고 떠나는 것을 추천했다. 이미 티켓을 환불해서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는 늦었다. 걱정과 초조함 속에 관광지구 여행사 앞에 모여 픽업을 탔고 버스에 올랐다. 배낭을 의자 밑에 묵어두고 각자 손가방을 꼭 안은 체 바람막이를 입었다. 그 와중에 잠은 잘잤고, 치앙마이에 도착할 때까지 별일 없었다. 거기다 중심가에서 내린 후 개별 숙소로 썽타우를 이용해 데려다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이렇게 치앙마이까지 향하는 잔혹 이동기는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덧붙여 추측컨데 태국 여행사 버스에서 자주 벌어지는 도난 사고는 대부분 남부행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짐칸의 배낭 뒤지기부터 휴대하던 가방 속 소지품 도난, 수면가스를 이용한 도난 등 별의별 사례가 다 있었다. 어떤 여행사에서 구매하건 어차피 이걸 취합해서 각 지역별 여행사가 버스 운행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주로 휴양지가 집중되어 있는 남부행 버스에서 이런저런 도난사고가 많이 일어나 여행사 버스에 대한 악평이 쏟아진 것 같다. 아무래도 휴양지로 향하는 남부 여행객들이 귀중품도 많고 단기 여행자 비율도 높아 범죄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관광 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남부에 절도범들이 많이 분포할 것이란 생각이다. 얕은 분석의 결론은 역시나 휴양지보단 한적한 시골을 여행하는 것이 가격 부담도 덜하고 안전에도 좋지 않겠냐는 말이다.



잠자리

1) 방콕, 치앙마이 단기 숙박

밤늦게 방콕에 도착해서 미리 알아본 숙소를 가봤더니 더블룸이 하루밖에 안된단다. 최소 이틀은 있어야하기에 다른 숙소를 알아보러 배낭을 메고 또 돌아다녔다. 호스텔이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한 군데를 제외하곤 다들 방이 꽉찼단다. 그마저 방이 있는 곳도 더블룸은 너무 비쌌고 도미토리 밖에 머물만한 곳이 없었다. 나야 상관이 없었지만 30년 만에 장기 배낭 여행이 처음인 여편님은 선뜻 내켜하지 않았다. 다른 호스텔을 돌아다녀도 답이 없어 몇 번의 고심 끝에 도미토리에 투숙하기로 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도미토리에 묵으려하니 불편하긴했다. 빨래 널 공간도 마땅치 않고 소지품도 그때그때 잘 간수해야 한다. 거기다 방콕의 호스텔이면 12시가 넘어서야 스물스물 기어들어오는 취한 청춘들의 콧소리는 기본으로 깔려있는 위험요소다. 자잘한 도미토리적 요소를 빼곤 be어쩌구 호스텔의 스탭도 친절했고, 호스텔 앞에 의자랑 테이블을 설치해놔서 주말 방콕 골목의 일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거기다 남자 셋이 동남아 놀러와서 기념품을 배낭 터지게 들고 가는 한국 대학생들을 보니 마음도 흐믓해졌다. 물론 가급적이면 도미토리는 피해야할 습관이 들었다는 걸 느낀 시간이었다.


치앙마이에서 방을 알아보기 위해 3일 정도 무난한 숙소에서 이래저래 지친 심신을 달래고 여유있게 방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미리 예약한 숙소는 YMCA호텔. 치앙마이에 있다는 지인이 머무는 숙소와도 가깝고 가격도 꽤나 만족스러운 114달러 정도인 더블룸이었다. YMCA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만 빼면 매우 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 밤버스를 타고 아침부터 도착해서 부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체크인 시간을 기다렸다. 어지간히 친절한 이곳의 스탭들이 쇼파에서 꺾여서 자는 여편님이 안스러웠는지 청소가 끝나기 무섭게 방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삿뽀로의 쾌적한 시내가 생각나는 탁트인 치앙마이의 전망도 보이고 30년된 TV가 존재의 이유를 모르지만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2) 치앙마이에서 집 잡기

도착 첫날, 치앙마이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 지인을 만났다. 그들도 프로그램을 위한 숙소를 알아보던 터라 찜해두었다는 곳을 따라가서 한 번 보긴 했다. 대학가 주변의 원룸이라 쾌적하고 가격도 나쁘지 않아 참고하기로 했다. 이틀째부터 본격적인 집 탐방에 나섰다. 사전에 어느 정도 조사를 해둔 터라 올드타운 기준 서북쪽을 타겟으로 삼았다. YMCA 인근인 싼티탐로드 근처부터 돌아보았다. 오래된 여관을 개조한 숙소도 있고, 색칠만 다른 원룸 아파트도 있었다. 가격은 대략 6~8천 바트 선으로 또이 또이했다. 마구잡이로 돌아보다 큰 아파트 뒤 켠에 좀 특이한 집을 발견했다. 집 바깥의 톤도 나무톤이고 풀장과 잔디밭도 있는 상상하던 그런 느낌의 집이었다. 외부에는 자잘한 공사가 진행 중이긴 했지만 막 오픈을 한 새집이었다. 새집이어도 고급 목재를 썼는지 냄새도 심하지 않았고 깨끗했다. 부엌이 딸린 방은 자그만치 만 칠천바트나 했지만 부엌 없는 단촐한 방은 8,500바트로 적절해 보였다. 아직 초반이라 남은 동네를 더 돌아보기로 했다.

최고급 쇼핑몰인 마야를 중심으로 유명한 콘도들을 돌아보았으나 이미 꽉찼거나 가격대가 좀 비쌌다. 거기다 워낙 큰 콘도들이라 여기 살면 숨막힐 것 같았다. 굳이 내가 이 돈내고 저기 살거면 서울에 있지 하는 생각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추가 리서치 후 그 유명하다는 님만해민 지구로 갔다. 이곳은 압구정 혹은 가로수길이라고 해야하나. 최신 건물들과 레지던스, 카페, 레스토랑 등이 정사각 구획으로 딱딱 그어진 골목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물론 최신식 레지던스도 만바트 정도면 한달 렌트가 가능해 보였다. 감섬차이로 넘어갔고 우리의 마음은 초반의 그 아파트로 기울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시내 유명 숙소를 몇 군데 더 보았지만 결국 답은 우리의 숙소 S 부띠끄 아파트였다.


내부 가구가 다 목재로 되어있었고, 심지어 다수가 주인 아저씨를 축으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최신 삼성 티비도 있었다. 우린 커피포트를 원했지만 전자렌지와 기본 컵 세트만 주었다. 결국 커피포트는 근처 전자제품 매장에 가서 새걸로 사버렸다. 300바트 였지만 뽕은 뽑았다. 문제는 워낙 새집이라 아직 홍보도 덜 되고, 위치도 에매한 곳이라 투숙객이 거의 없었다는 거다. 특히 처음 2주 간은 20개의 방 중 우리만 있기도 했다. 추후엔 이웃도 생겨서 좀 나아졌다. 무엇보다 이 집의 매력은 계속 무언가 공사 중이란 거다. 이 집을 짓는데만 5년이 걸렸다는데 우리가 머무는 동안도 계속 마당과 식당 작업이 진행됐다. 동방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라 불릴만 했다. 추측이지만 집 주인 아저씨가 이 집에 무한한 애정을 가진 듯 했다. 반면, 우리 등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빠뿐은 놀고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무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영어도 수준급이지만 평소에 뭘 하는지 숙소엔 잘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 빠뿐과도 페친을 맺고 주인아저씨와도 꼬박꼬박 인사를 나누면서 친하게 지냈다. 우리가 손가락 안에 드는 초반 투숙객이기도 했고, 여기저기 다리를 놔줘서 그런지 별탈없이 머물 수 있었다. 막판에 깨먹은 컵받침도 커피포트랑 딜 하자니 혼쾌히 받아줬다.


치앙마이 숙소 정보: Serene Teak Boutique Apartment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ereneTeakApartment/?fref=ts



먹고 마심

1) 태국 음식

태국 음식이라곤 팟타이 밖에 모르는 나였다. 다행히 여편님이 기본적인 조예를 갖춘 덕에 어지간한건 다 즐겨 먹을 수 있었다. 우리의 로망은 부엌이 딸린 집에서 팟타이를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숙소의 가격 문제로 포기했지만 워낙 테이크 아웃 문화가 잘 되있는 나라라 약간의 불편함와 아쉬움만 느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팟타이 만들기는 일일 요리학교로 대체했다. 이런 속사정들은 우리의 연재물인 하루한상 태국 특집으로 두 편에 걸쳐 다루었다.


하루 한 상 – 열네 번째 상 : 태국 치앙마이 요리학교 체험기

태국의 향은 어디서 오는가 http://ch.yes24.com/Article/View/30310

하루 한 상 – 열세 번째 상 : 부엌 없이 상 차리기 in 태국

테이크아웃 태국 http://ch.yes24.com/Article/View/30212


여기 사람들은 쌀 생산 대국 답게 쌀을 주식으로 한단다. 보통 식당에 가면 볶음밥이나 야채 혹은 고기 볶음을 얹어주는 덮밥이 기본이다. 점심으로는 면요리를 많이 먹는 것 같았다. 우리도 점심은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면을 수도 없이 흡입했다. 태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팟타이라 이틀에 한 번은 먹었다. 우리에게 최고의 팟타이집은 집 근처 아줌마네였다. 심지어 여편님은 너무 잘 먹었다며 막판에 주방장 아줌마에게 소박한 선물까지 했다. 팟타이는 물론이고 스파게티나 덮밥 요리도 수준급으로 해주신다. 특히 계란볶음밥은 어느 유명 중국집 못지 않다. 팟타이는 한국으로 백 개 정도 포장해 가고 싶은 정도다.

그 다음 자주 간 집은 집 뒤편에 있는 쏨담집이다. 동네를 서성거리다 발견한 집인데 이 동네 사람들이 외식을 즐기는 곳이다. 젓갈이 있고 없고, 과일 추가 등 다양한 형태의 쏨담 주문이 가능하고, 닭고기나 목살 구이 맛도 좋다. 찹쌀밥인 스띠끼라이스까지 추가해서 먹으면 딱이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시내의 카오소이 집도 세네번은 갓다. 진한 카레 국물에 계란면을 넣어주는데 양배추와 숙주를 한 사발 넣어서 먹으면 해장용으로 딱이다. 이외에도 방콕 숙소 근처 할아버지의 검정국수, 올드타운 중심가에 어묵국수, 시장 옆에 백년 된 고기국수, 대학병원 맞은 편의 팟씨유 등이 치앙마이 누들로드에 새겨둘 만한 곳들이다. 꽤나 분위기도 괜찮은 식당으로는 노란 언니네(레이디보이) 집이 깔끔하면서도 좋은 가격의 음식들을 제공해주었다. 여기서 처음 맛본 코코넛 수프는 아 코코넛이 이런 느낌을 주나 싶을 정도로 신선했지만 먹다 보면 까르보나라 국물을 퍼먹는 듯한 느끼함이 몰려오는 단점이 있었다. 요리학교에서 이걸 택해 만들었을 때는 쪽파를 팍팍 뿌려봤는데 느끼함이 가시고 프리마가 들어갔다는 설렁탕면 감성이었다.


길거리에 꼬치집들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특히 싼티탐로드에 열꼬치에 20밧인 집은 가성비로는 최고였다. 소세지들은 태국의 맛 그자체라 여편님의 취향은 아닌 결과로 많이 먹지는 않았다. 혼자 다녔으면 수도 없이 먹었을 꼬치지만 교양있는 여편님 덕에 많이 자제할 수 있었다. 거기다 길거리 음식 대부분이 기름기가 많아 안그래도 튀기고 볶은 음식 위주인 태국에서 그걸 막 집어먹기에는 무리수가 따랐다. 참고로 과도한 기름기 섭취로 두 번 정도 탈나서 고생 좀 했다.

생선도 자주 먹는 것 같아 생선구이를 시켜봤는데 메기와 돔 같은 거 모두 별로였다. 내 생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굳이 이 돈주고 이 생선을 먹어야 하나 싶었다. 생선구이를 주는데 포크를 주니 그걸로 발라먹기도 어렵고 메기는 그냥 손으로 들고 뜯어 버렸다. 아마 치앙마이가 산간 지대로 생선의 가격 대비 질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생선 속에 야채나 라임을 넣어 굽는 센스는 좋게 볼 수 있었다. 시뒤늦게 발견한 동네 시장에서 사 온 오징어 볶음과 생선과일조림도 이들의 조리법이 꽤나 풍성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시장에는 이것 말고도 흑미밥, 닭강정볶음, 곱창찜, 족발 등 갖가지 음식들이 많았다. 여길 좀 더 일찍알았다면 더 다양한 음식들을 시도해봤을 것 같다.

아침엔 주로 빵을 사놓고 먹었는데 크로와상으로 유명한 나나베이커리의 크로와상은 모닝 커피에 좋은 궁합이었고, 로얄프로젝트 샵의 고소하고 쫄깃한 식빵은 홍차와 좋은 조합이었다.


2) 과일과 맥주

치앙마이의 테이크아웃 문화 중 또 하나 사랑스러웠던 것은 과일이었다. 어디서나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진 과일을 만날 수 있다. 인도차이나반도 50일 내내 여편님의 사랑을 받아온 수박은 물론 내 사랑 파파야, 구아바, 파인애플 등등을 원없이 먹을 수 있었다. 첫날 길거리에서 고가인 100바트에 구매한 딸기 한팩은 꽤나 상큼했는데 그 이후론 그만큼 맛있는 딸기를 구할 수 없었다. 마야몰 앞에서 구매한 유기농 추정 구아바가 엄청 상큼 아삭하고 향이 좋았다. 카페에서도 큰 맘 먹고 100바트 가까이 시키면 나오는 과일주스들은 순도 백퍼센트에 양도 많아 배가 터지는 맛이다.


과일하면 또 나의 러브 라임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걸 얘기하려면 또 맥주 얘기부터 해야된다. 베트남의 지역별 맥주, 캄보디아의 앙코르비어와 다르게 태국의 맥주시장은 한국과 비슷하다. CHANG, LEO, SINGHA3대 축으로 CHEER 등 저렴한 맥주들이 끼어드는 판국인 것 같다. 치앙마이 정착 초반의 방탕한 시절 식당은 물론, 테이크 아웃해온 음식과 함께 부지런히 마셔댔다. 주로 캔맥주가 아닌 620ML짜리 댓병으로 팔기 때문에 퍼마시기 좋은 구조다. 이곳 사람들도 3,4병씩 쌓아놓고 마셔대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LEOSINGHA는 가격도 가장 비싼(그래봤자 5바트 차이) 좀더 세련되고 야들야들하다. 개인적으론 이런 맛은 좀 쉽게 물리는 편이다. 그에 반해 CHANG은 청량함과 경쾌함 그리고 약간의 중독성을 준다. 병도 우리에게 친숙한 초록병이라 서민적인 정취를 더한다. (나중에 안 것인데 이 초록색은 CHANG이 칼스버그 소유라 그런 것 같다.) 한 병은 아쉽고 둘이 먹다보면 두 병 세병이 되기 일쑨데 도수도 높아서 숙취가 만만치 않다. 이걸 방지하고 풍미를 더하기 위해 탱글탱글한 유기농 라임을 반틈 짜 넣으면 또 다른 신선계로 넘어간다. 꾸역꾸역 쓰다가 이제야 좀 신이 난다. 중반 이후에는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길겸 라임이나 진저에일에 라임을 타 먹었다. 라임의 상큼함 덕에 어디 싸구려 진토닉 부럽지 않은 맛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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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에 가서 보니 앙코르와트를 구경하는 방법에는 수십가지가 있다. 왜냐하면 앙코르와트는 씨엠립 근처에 있는 수 십개의 사원 중 가장 유명한 것이고, 그 주위와 멀리에도 사원들이 많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볼것이냐도 문제고 어떻게 볼것이냐도 골치아픈 문제였다. 앙코르와트를 중심으로 주요 사원을 돌아보는 티켓이 1일권, 3일권, 7일권이 있는데 3일권을 구입하기로 했다. 다행히 일주일 동안 3번을 방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3번의 카드가 있으니 우선 가장 일반적인 툭툭 투어로 한 두번 가본 후, 체력과 열정이 남아있다면 자전거로 돌아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만능 툭툭은 앙코르와트 등 주요 관광지 투어도 해준다. 툭툭으로 하는 앙코르와트 투어는 앙코르와트와 인접한 사원을 돌아보는 스몰투어와 주변의 사원을 돌아보는 그랜드투어 두 가지가 일반적이다. 둘 다 비용은 하루에 15달러 정도이고, 기사 한 명을 한나절 고용하는 방식이다. 시간에 대한 제약은 따로 없어서 원하는 만큼 사원을 둘러 볼 수 있었다. 듣던 대로 툭툭이들은 우리가 사원을 구경하는 동안 한 숨 자거나 그물을 짜거나 수다를 떨고 있어서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툭툭이 투어는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승용차로 투어를 하면 더 좋겠지만 가격면에서 합리적이다. 자전거로 가면 더 저렵하다. 문제는 체력이다. 자전거로 사원 간 이동을 하면서 힘을 다 빼면 사원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다. 사원 하나하나가 대충 둘러보는 데도 한 시간은 걸어야 하는 거리라 만만치가 않다. 나중에 아이폰으로 측정된 2일의 걸음수가 22천보, 26천 보씩이고, 걸어다닌 거리가 17km, 19km씩이었다.


스몰투어_0201

대충 이런 시스템을 알고 나서 숙소에 툭툭 기사를 요청했다. 특별히 첫날 우리를 픽업해준 ''를 요청했다. 버스가 연착되서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으니 어지간하면 자기를 고용해 달라고 요청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유명하다는 앙코르 일출을 보겠다는 열정으로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에 눈을 뜨니 여편님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휴대폰 알람이 무음으로 설정되서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 잠에 관해선 어디가도 안 밀리는 분이 앙코르 신의 계시를 받고 눈을 떠서 나까지 깨우셨다.


1) 앙코르와트(Angkor Wat)

비몽사몽 새벽 공기를 가르며 비교적 한산한 매표소에 도착했다. 철저한 검표를 위해 사진 촬영을 하고 이걸 티켓에 박아 준다. 3일권은 40달러고, 놀랍게도 앙코르와트는 민간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티켓을 끊고 첫 목적지인 앙코르와트로 향한다. 기사 리는 우리를 내려주고 자기는 저기 툭툭들 몰려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가보니 호수 같은 곳에 웅성웅성 모여있다. 일출 명당이 이곳인가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명당이고 뭐고 제대로 못볼 것 같아 바로 옆의 또 다른 호숫가로 갔다. 일출 각도를 고려해보건데 다소 빗겨나가더라도 한적한 곳을 택하는 것이 더 장엄할 것 같았다. 다섯시 반 부터 일출 시간인 여섯시 반까지 스물스물 밝아오는 호수와 그 너머 나무사이 사원 벽을 찍고 놀았다. 대장엄을 마주하기에 앞서 충분한 예열 시간으로 기억된다. 막상 구름 덕에 일출은 없었고 대충 동이 터서 대문으로 진입했다. 각 변이 1킬로미터 이상인 정사각형의 사원을 다 둘러보는 데에는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숲길 옆에 위치한 작은 돌더미까지 보고 앙코르와트의 지배자 원숭이 가족들도 보인다. 총 세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기사가 기다리는 장소로 돌아왔다. 옆 기사 말로는 우리가 너무 안와서 두 번이나 잤단다.


2) 앙코르톰(Angkor Thom)

다음 이동한 돌무더기는 앙코르톰이다. 이 지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사전에 공부해 온 바가 없어서 앙코르와트 이후 사원은 다 거기서 거기인 돌더미로 보인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고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원을 둘러볼 때마다 아득한 시간의 무게감이 느껴지고, 사원 곳곳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 있어 심심할 새가 없다. 사진을 찍어대는 재미도 있고, 같은 돌무더기라도 큰 조형감과 돌에 새겨진 아기자기함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툭툭이 내려준 곳에서 좀만 걸어가다보면 쾌적한 화장실이 우리를 반겨준다. 나름 시설 투자와 관리는 꾸준히 하는 업체다. 그 옆에는 관광용 코끼리 몇 마리가 서성이고 있는데 누가 탈지는 모르겠다. 그 옛날 앙코르왕은 코끼리를 타고 앙코르와트로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도 코끼리테라스가 있다. 화장실 옆의 코끼리도 X를 푸지게 싼다.

앙코르톰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단체 관광객과 한덩어리가 된다. 한 가운데에는 바욘(Bayon)이라는 큰 무덤이 있다. 정사각형 구조인 무덤 한가운데로 조금씩 올라갈 수 있는 구조라 위로 가면 한누에 사원 구조를 돌아볼 수 있다. 이때부터 더워지기 시작하고 여편님의 체력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한다.


3) 타프롬(Ta prohm)

영화 툼레이더로 유명해진 사원이라 툭툭이도 툼레이더라고 안내해주는 사원이다. 이날 이거 말고 사원을 1개 더 봤는데 지금 별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돌썸띵인 것으로 보인다. 숲길로 한참을 걸어들어가는 것이라 그리 덥지 않았다. 이 사원에서 인상적인 것은 사원을 무너뜨리고 쑥쑥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다. 사원보다 더 거대한 나무들이 사원 사이사이로 뿌리를 내렸고, 사원 이곳저곳을 무너지게 했다. 앙코르의 거대한 권력도 자연 앞에서야 무용지물이다. 주요 사원들은 여전히 전세계의 협조아래 복구 중인데 개인적으론 무너진 것조차 자연스러워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스몰투어에 포함된 사원이 하나 남았지만 이건 다음에 올 때 같이 보기로 하고 체력 방전으로 귀가했다.

툭툭 기사 투어값은 기본이 15달러인데 새벽 출발로 3달러를 추가하기로 했었다. 보통 하루 투어가 6시간 정도라는데 우린 5시에 출발해서 2시에 들어온 관계로 팁으로 2달러를 얹어주었다. 지난 번 픽업 때 한 시간 이상 기다려준 데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여행 중 보답을 미루다 기회를 놓친 경헙이 몇 번 있어서다.


그랜드투어_0203

하루를 충분히 쉬고 남은 사원을 둘러보기 위해 7시 반에 준비를 마쳤다. 우리 드라이버 리가 오지 않아 카운터에 물어보니 뭔 일이 있어서 다른 기사를 섭외해 주겠단다. 전날 우리를 호수까지 데려다준 기사가 나타났다. 둥글둥글한 외모에 광속 질주형인 리와 달리 이 친구는 서글픈 눈빛에 조심조심 운전하는 스타일이다. 쉬는 시간에도 그물을 엮으며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것 같다.

이날의 첫 돌덩이도 이런 저런 나무들과 엉켜서 자연감이 있다. 어린이 백과 등을 통해 힌두신에 대한 간결한 조사를 마친 여편님이 가루다 등 여기저기 새겨진 신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주신다. 왠지 로마 콜로세움의 냄새가 나는 사원이다. 여기를 둘러보다 보면 그리스나 로마의 돌덩이를 굳이 멀리까지가서 볼 필요가 있나 싶다.

서서히 태양이 익어갈 무렵 호숫가 한 가운데 있는 자그만 사원인지 탑을 둘러본다. 또 간단히 돌덩이를 보고 나니 허기가 져서 밥을 먹기로 했다. 벌써 3개의 사원을 둘러보고 나니 체력이 다한 것 같았다. 툭툭이와 얘기를 하다 오토바이 열통에 화상을 입었다. 맘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니 얼음도 찜질하라며 챙겨주셨다. 특히나 관광지 한 가운데 있는 식당답지 않게 최고의 볶음 실력을 보여주셨다. 당초 우리 툭툭이는 중간에 반데스레이(Banteay Srey)라는 사원도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정보 찾아보면서 이름을 들어본적 있는 폐허 감성 사원이었다. 10달러 추가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 대신 산 정상에 있는 사원 프롬복(Phrom bok)을 가자고 했다. 우리가 가진 안내 지도 상에는 가까워 보였고, 추천 장소로 되어있어서 괜찮아 보였다. 툭툭이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식당 아줌마에게 길을 물어보고 출발했다.

대략 삼십분 정도 몰아서 산 입구에 도착했다. 툭툭이로 더 안쪽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무리였다. 툭툭이는 대기하고 걸어들어갔다. 한 소년과 아저씨가 코코넛과 음료를 파는 가게를 관리하고 있었다. 길을 무르인 저기 계단으로 올라가면 15분이고, 산길로 둘러가면 40분이지만 나무 덕에 선선할 것이라 했다. 여기도 나름 앙코르와트 티켓에 포함되는 사원이라 화장실엔 관리 직원도 있다. 관광객이 하나도 안 보였지만 안심하고 오르기로 했다. 문제는 오후에 내리쬐는 햇볕 뿐만이 아니었다. 그분의 신호가 오기 시작해 계단을 오르면서도 몇번이나 내려갈까를 제안했다. 다만 의지의 여편님은 일단 가보자. 올라가면 화장실도 있을 것이라며 강행했다.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가보니 몇몇 사람들이 지키는 사당이 있었다. 물론 화장실 따윈 있을리가 없었다. 사당 뒤로 가보니 이 높은 산 중에 반은 무너져내린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우뚝 솟은 나무에는 흰 꽃들이 피어있고, 이 사원을 지키는 개가 우리의 냄새를 확인하고 돌아간다. 인적이 없어서일까 사원을 돌아보며 느꼈던 감성들에 몰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편님은 찬찬히 더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싶어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알아서 보고와! 나 먼저 간다! 5분만에 800개나 된다는 계단을 순식간에 내려왔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여편님은 코코넛을 하나 마시고 게신다. 신기한 것이 맛도 맛인데 먹어도 먹어도 계속 나오는 코코넛이었다. 우리 옆에는 스님 한 분이 코코넛을 마시며 둘러 앉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말을 나눈다. 이래저래 스님이 귀한 나라다웠다.

앙코르투어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툭툭이와 다시 투어궤도로 돌아왔다. 중간에 멈춰서 또 다른 사원도 하나 보고 이제 또 돌덩이 볼거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 사원은 황토 재질의 구멍이 송송 뚫린 대형 사원이었다. 거기다 토실토실한 엉벅지(엉덩이+허벅지)를 갖춘 코끼리 동상이 각 귀퉁이를 지키는 매력적인 곳이다. 한국어 가이드가 있길래 몰래 들어보니 현무암이라고 한다. 다음날 여편님이 본 다큐에서는 사암이라고 한다. 스몰 투어에서 못 본 사원하나를 마저 보고 돌아왔다.


앙코르 부록

앙코르와트를 투어하다 보면 우리나 딴 사람들이나 촬영쇼를 하러 왔다는 걸 느낀다. 물론 난 막찍는 주의라 찍건 말건 막 지나가버리는 식이다. 아직 중국인들에게 셀카봉이 보편화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일 정도다. 우리 카메라는 여기저기 쏘아대는 로켓포 카메라들에 비하면 평범했다. 하지만 장비 면에서 아쉽지 않았던 것은 쌍안경의 존재였다. 예전에 여편님이 선물받은 쌍안경을 챙겨왔는데 한참 높은 곳에 위치한 사원에 새겨진 문양들을 관찰하는 데 너무나 유용했다. 자랑은 이정도고, 남미의 시인 네루다는 마츄피츄를 보고 이걸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을까라는 생각을 했단다. 그 말을 떠올리며 앙코르 짓느라, 식민지 수탈 당하느라, 지금도 척박한 경제 사정에서 살아가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대장엄을 보며 이런 비관에 지배당한 데에는 이때부터 열심히 읽은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의 덕이 컸다. 중국 남부, 미얀마, 태국 등 동남아 산악 지역에 자리잡은 이른바 00족들이 어쩌다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연구한 책이다. 소위 원시라고 취급받는 산악 부족들이 실상은 평지, 농업 국가의 지배를 피해 산악에 자리잡은 것 뿐이라는 얘기다. 그들이 문명 이전의 삶에서 발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명 즉, 국가의 발전과 지배력 확대에 따라 상호작용으로 생겨난 삶의 형태라는 것이다. 민족, 부족이라는 구분 역시 국가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고작 몇 키로 더 가고 말고에 따라 비자니 여권이니 하며 귀찮게 하는 국가라는 존재의 시달림을 받다보면 더더욱 공감하게 되는 글들이었다.


참고자료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동남아시아 산악지대 아나키즘의 역사, 제임스 C 스콧 저, 이상국 역, THE ART OF NOT BEING GOVERNED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패키지보다 자유여행을 추천하는 이유, 최경진, 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2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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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Phnom Penh)_0128_0130

애시당초 프놈펜에 대해서는 나나 여편님이나 아는 바가 없었다. 캄보디아의 수도라는 점과, 캄보디아에 체류했던 여편님 지인 분이 소개시켜 준 캄보디아 친구 연락처가 있어서 방문하게 머물게 되었다. 결국 그 캄보디아 친구는 주중에는 일을 해야 해서 만날 수가 없었고, 우리가 주말이 오기 전에 프놈펜을 떠나게 되면서 만나지 못했다. 호치민의 복잡합에 신물이 났고, 숙소도 꽤나 구리구리한터라 여편님이 프놈펜에 오래 머물기를 꺼려하셨다. 당초 3박하려던 것을 2박으로 줄여버렸다.

물론 나는 프놈펜의 복잡함이 싫지 않았다. 호치민에 비하면 교통량이 많은 것이 아니었고, 강을 끼고 나는 퀘퀘한 냄새가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캄보디아의 수도가 기대와는 달리 활력이 넘쳐 보였다. 시장과 큰 상가, 여행객들이 몰리는 리버사이드 등은 싫지 않은 번잡함이었다.

도착한 첫날 어렵게 숙소를 잡자마자 달러 인출을 위해 수수료 부담이 적다는 Canadia 은행의 ATM을 찾아나섰다. 캄보디아에서는 두 개의 화폐가 통용되는데 캄보디아 화폐인 리엘과 달러가 공식적으로 통용되었다. 더구나 ATM에서는 달러만 인출이 가능했다. 리엘을 쓴다고 지역 내 거래에서 딱히 유리한 것은 아니고 1달러 보다 작은 단위를 구입할 때에만 유용한 정도였다. 아마 기본적인 경제 규모가 빈약한 데 반해 앙코르와트를 중심으로 밀려들어오는 관광객들이 쓰는 달러가 워낙 커서 이런 구조가 자리잡은 게 아닌가 싶다. 들어보니 앙코르와트를 찾는 관광객 수는 1년에 400만 정도고 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국가가 한국이었다가 최근에 중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주로 먹는 식당에서는 한 끼가 2~3달러고,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을 가면 반값 정도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맥주는 한 캔에 1달러 정도다.

둘째날 본격적인 시내 관광에 나섰다. 프놈펜에 유명한 볼거리로는 언덕에 자리한 사원인 WAT PHNOM과 국립 박물관, 왕궁(ROYAL PALACE), 킬링필드(KILLING FIELD) 정도가 있다고 한다. 킬링필드는 너무나도 유명한 캄보디아 대학살과 관련된 박물관과 학살자들이 묻힌 곳 등등이 시내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캄보디아를 방문하기에 앞서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뒤늦게 보려고 찾아보니 웹하드에 들어있는 건 캄보디아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학살과 관련된 영화였다. 무지한 상태에서 킬링필드를 둘러본다고 역사의식이 한 껏 고양될 것 같지도 않았고, 일개 관광객으로서 둘러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숙소에서 쌓인 꾸리함을 덜기 위해 사원을 찾았다. WAT PHNOM은 언덕 위에 자리해있고 그 주위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복잡하고 쾌쾌한 프놈펜에서 도피하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공원 주위를 두르며 나선형으로 올라가다 보면 공사가 진행 중인 거대한 탑들이 둘러져있다. 올라가보면 관광객과 불공을 드리는 프놈펜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원이 나온다. 관광지와 종교시설,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큰 사원이지만 사원 자체보다는 둘러싼 공원이 커서 관광지와 종교시설,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사원을 둘러보고 정오가 되기도 전에 습도와 도시의 열기가 온몸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리버사이드라는 프놈펜 관광 핵심지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주스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업무나 공부 목적으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많아서 베트남 여행기 1부를 써내려갔다. 여기 말고도 지인이 추천해준 블루펌킨이라는 카페를 다음날 찾았는데 그곳은 더 천국적이었다. 실내 가운데는 테이블이 있지만 가장자리에는 신발을 벗고 쿠션을 끼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너무나 쾌적한 것이 이곳을 알아낸 여행객들은 주구장창 여기서 시간을 떼울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캄보디아의 팍팍한 경제상황과 프놈펜의 분주함과는 대조되는 공간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척박한 강변과 쓰레기를 바라보며 적은 돈으로도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나라였다.

어쨌든 카페에서 고급진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급작스레 프놈펜의 일정을 2박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오후에 국립 박물관을 돌아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왕궁을 보고 오후에 씨엠립으로 떠나기로 했다. 국립 박물관은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캄보디아 여러 시대의 유물이 잘 안내되어 있고, 힌두, 불교 등 이 나라를 둘러싼 종교색들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둘러본 왕궁은 너무나 넓고 거대한 건물과 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 업무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도 우리가 둘러볼 수 있는 곳들은 풍성했다. 사원인지 궁궐인지 적당히 버무려진 건물들과 사이사이에 정리된 정원들이 매력적인 곳이다. 은색 석탑은 물론 궁궐을 둘러싸고 있는 벽들과 구조물들도 캄보디아 특유의 노란색과 주황색이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건축학 개론 답안지도 아니고 과도한 묘사는 자제하겠다. 굳이 덧붙히자면 캄보디아는 주황과 노랑의 나라다. 곳곳에 사원과 건물, 맥주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색이고, 심지어 땅도 황토 색깔이라 그런지 스님들의 주황색 승복도 귀엽게 느껴진다.



씨엠립(Siem Reap)_0130_0205

장기 체류가 목적인 치앙마이를 제외하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3개 국에서 가장 오래 머문 도시가 되었다. 앙코르와트가 크게 한 몫했지만 이미 언급한 고급 숙소도 만만치 않은 역할을 했다. 앙코르와트를 위한 도시라 관광객이 머물기엔 더할 나위 없는 도시였다. 앙코르와트 보는 거 빼고 가장 많이 한 것은 숙소에서 책 보고, 헤엄치고, 광합성 좀 한거다. 생각보다 앙코르와트를 둘러보는 데 체력소모가 커서 충분히 쉬어가며 머문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여행객들이 몰리는 펍스트리트 주위로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쇼핑몰도 있는데 앙코르와트 덕에 소득 수준이 다른 지역보다 높아서인지 쇼핑몰은 온갖 관광객, 봉사단, 지역 주민들로 미어터질 뻔한 적도 있었다. 물론 다른 지역보다야 형편이 낫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숙소를 포함한 여러 숙소의 주인장들은 다 외국인(?)이고 캄보디아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숙소의 스탭으로 일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여행사를 끼고 오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개별 여행으로 오는 사람들 중 상당수도 해당 나라 사람들이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이곳에서의 소비가 어디 흘러갈지에 대한 회의감이 늘 깔려있는 시간이었다.

씨엠립에서 67일 중 도시간 이동으로 앞 뒤 하루를 빼면 1일차 휴식, 2일차 앙코르와트 투어 1, 3일차 휴식 및 툰레삽 호수 관광, 4일차 앙코르와트 투어 2, 5일차 휴식의 일정이었다. 앙코르와트와 관련해서는 3부에서 다루기로 한다.

3일차에 휴식을 취하다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툰레삽 호수를 멀리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숙소 앞 툭툭 기사에게 호수가로 가자고 했다. 알아보니 툰래삽 호수를 보려면 씨엠립에서 선착장까지 툭툭(왕복 8달러)이나 자전거로 간 뒤 선착장에서 또 보트를 타고 나가야한다고 한다. 선착장에 가보니 보트 투어가 1인당 25달러라고 하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프놈펜에서부터 30달러 정도면 보트를 타고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한다. 이동과 관광을 다 할 수 있는 가격과 관광만 하는 가격이 별 차이 없다고 하니 꽤나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고민하는 걸 알았는지 툭툭 기사가 자기가 1인당 15달러에 티켓을 사다주겠다고 했다. 코코넛 하나 마시고, 선착장을 거닌 끝에 타보기로 했다. 정해진 인원을 태우고 가는 게 아니라 그룹별로 다른 배를 타고 간다.

운전수랑 가이드(?), 나랑 여편님 4명이서 출항했다. 가이드가 설명 좀 해주다가 코스를 설명해준다. 호수가로 나간 뒤 무슨 학교, 식당, 악어 있는 곳을 들린다고 한다. 여편님이 다 싫다고 해버렸다. 이런 저런 요청에 다 싫다 해버리니 드디어 가이드가 조용해졌다. 호수로 나가는 길에 황소 몇 마리가 풀을 뜯는다. 관광 보트들 사이로 생계를 위해 쾌속 혹은 유유히 지나가는 작은 보트들이 보인다. 호수 곳곳에 떠있는 집들은 육지에 땅이 없어 이곳에 사는 것이란다. 대략 한 시간 정도를 호수에서 둥둥 떠다니다 돌아왔다. 오후에 찾은 덕과 탈까말까 고민한 시간 덕에 석양이 지는 망망대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예전 볼리비아에서 크나 큰 티티카카 호수를 본 터라 큰 기대가 없었는데 다소 쾌메한 바닷가 같은 동남아의 호수는 또 다른 향기가 있었다. 대자연은 크건 작건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5일차 방콕행 준비를 하고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 원래 자전거를 빌려 앙코르와트를 가볍게 한 번 더 돌고 오려했었다. 여편님이 뒤늦게 EBS다큐를 보며 복습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으로 재방문을 대체했다. 맘껏 쉬려던 찰나에 예전에 알고 지내던 준태가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가 베트남을 떠나고 며칠 뒤에야 호치민이 왔다고 하고, 오늘에야 캄보디아로 넘어온다고 해서 그런줄 알았다. 바로 씨엠립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밤늦게나 도착하지 싶었는데 광속 질주로 저녁에는 씨엠립에 도착한다니 만나서 맥주나 한 잔 하기로 했다. 대충 짐정리를 하고 시내에서 돈을 찾고 준태의 숙소를 찾느라 한 시간을 헤멨다. 덕분에 여편님은 방콕에서의 3일을 감기와 콧물로 지새워야했다. 몇 년만에 만났지만 여전히 잘생기고 서글서글한 준태와 또 인상좋은 승유 형님과의 식사는 즐거웠다. 떠나와서 처음으로 제 3자와 어울린 덕에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앙코르와트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주었고, 준태의 동남아 쇼핑 노하우를 전달 받았다. 속옷은 한국에서 충분히 사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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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과 이동_2016_0128_0205

앙코르와트라는 이름 하나만 알고 방문한 국가다. 물론 입국 전에 몇 가지 정보를 좀 더 알아보고 해안가 도시나 산간 도시를 둘러볼까도 생각했다. 결론은 수도인 프놈펜(Phnom penh)을 거쳐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Siem Reap)으로 바로 가는 경로를 택했다. 프놈펜에서 23, 씨엠립에서는 67일을 머물렀다.

호치민의 많은 여행사들이 프놈펜으로 바로 가는 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가는 길은 까다롭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선택한 버스 회사는 한국 기업인 금호가 만든 합작회사였다. 그렇다고 여기가 특별히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아니다. 익히 들은 소문대로 캄보디아 비자 대행을 하는데 발급비용 30달러에 5달러의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 이걸 안 떼이고 모험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는 했지만 순순히 버스 회사를 따랐고, 무난하게 비자 발급 후 프놈펜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프놈펜에서 씨엠립까지 이동하는데도 숙소를 통해 버스를 예약해서 타고 갔다. 이것도 일인당 7달러 정도에 이용이 가능하다. 숙소까지 픽업을 무려 깨끗한 외제차가 와서 기대를 잔뜩했다. 도착해보니 버스가 연착이라 한 시간을 기다려야했고, 막상 도착한 버스는 제주도 시외버스 수준이었다. 여행사 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였는지 온갖 잡다한 짐이 실리고, 우리 같은 여행자들과 할머니, 아기를 데린 아빠까지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탄다. 현지인들 조차 내리기 꺼려지는 휴게소를 지나 7시간 반을 걸려서야 씨엠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프놈펜, 씨엠립 모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옮겨타는 이동 수단은 툭툭이라는 오토바이 택시다. 1~5달러 정도면 엔간한 시내 이동이 가능하다. 돌아다니다보면 기사들이 툭툭? 툭툭? 하는데 귀엽기도 하고 목적지를 말하면 척척이라 쏠쏠하게 이용했다.


숙소

프놈펜에서 가장 애를 먹은 것이 숙소였다. 베트남에서 예약한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가지 후보군을 추려 놓고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프놈펜의 호스텔 가격은 도미토리 기준으로 3달러, 더블룸은 10달달러 정도라 저렴하고 쾌적한 곳이 많을 줄 알았다. 막상 가서 본 숙소는 상상 이상의 낙후성을 보였다. 그 다음 후보로 가본 곳이 그나마 나아보여 되는대로 이틀을 묵기로 했다. 바로 앞에 새로 리모델링한 같은 계열의 호스텔이 있었다. 프놈펜에서 숙소를 옮겨가며 더 있을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다 이틀만 묵고 프놈펜을 탈출하기로 했다.

프놈펜 숙소에서 심신이 나약해진 터라 씨엠립의 숙소는 쾌적한 곳을 고르기로 했다. 앙코르와트라는 대장엄을 만끽하려면 안락한 숙소가 뒷받침되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심끝에 찾아낸 Jasmine Family Hostel의 장점은 쾌적한 수영장이었다. 25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1박을 예약했고, 더 싼 방은 없다길래 같은 가격에 총 6박을 머물렀다. 버스에서 픽업 서비스도 제공해줬고, 조식도 괜찮게 나오는 편이었다. 엔간한 호텔급으로 타올, 청소 등도 해주는 터라 예상외의 호사를 누렸다. 그 외 툭툭 기사 연결이나 버스 예약 등 다른 투어 서비스도 비싼 편은 아닌 것 같아 씨엠립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베트남에서부터 한이 맺혔던 수영장을 투숙하는 내내 마음 껏 즐겼다. 앙코르와트를 돌아다니며 찌든 땀과 뭉친 근육을 한 번에 씻어내기에 매우 적절했다.


식생활

애시당초 캄보디아 음식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여편님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닭을 많이 먹고, 오리 고기도 많이 먹는다고 한다. 길 곳곳에 보이는 구이에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고 하고, 베트남에서 사랑에 빠졌던 사탕수수 주스 조차 설탕이 막 들어가 입맛을 버리게 했다. 프놈펜에서는 숙소 주변에서 몇 끼를 해결했다. 처음 들어간 로컬 식당 메뉴에는 볶음밥과 캄보디아 누들 등이 있어 먹어보니 볶음에 대한 조예가 깊어 보였다. 메뉴가 일반 볶음과 캄보디아 볶음 이런 식으로 구분되는 걸로 봐서 캄보디아 요리가 다양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곳은 중국집이었다. 도시 곳곳에 중국식당이 보이는데 우리나라 중국집이 한국식이 듯 이곳도 캄보디아식 중국집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덤플링 속의 새우는 살아있었고, 오리탕은 복날 보신용의 깊이를 갖추고 있었다.

대충 이런 감을 잡고 나니 씨엠립에서는 캄보디아 음식 탐험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거기다 워낙 해외 여행자들로 가득찬 곳이라 번화가에서는 전세계 음식을 거진 다 찾을 수 있었다. 펍 스트리트라 불리는 씨엠립의 여행자 거리는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가야 하고, 그냥 번잡한 곳이라 한 두번 밖에 가지 않았다. 한 번은 멕시칸 식당에서 고향의 맛 따꼬를 즐겼고, 또 한 번은 초록빛 캄보디아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적당히 오가닉한 입맛에 맞았지만 막판에 시킨 야채튀김이 상상한 것과 달랐다. 우리가 먹는 야채 튀김이 아니라 예를 들어 브로콜리 한 조각을 통으로 튀기는 식이었다. 그 느끼함은 현재까지도 튀긴 음식을 꺼리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워낙 숙소가 쾌적하고 앙코르와트 다녀오면 온 기력을 소진하는 터라 우리가 주로 애용한 식당은 바로 옆에 일본인 게스트하우스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일식메뉴도 캄보디아 식당에 비해 비싼 편도 아니고 기본적인 캄보디아식 볶음 메뉴도 있다. 6박 하는 동안 조식을 제외한 10끼 중 5~6끼를 이곳에서 해결했다. 회사에서 식당하나 계약해서 밥 데 먹는 느낌이었다. 실제 요리는 캄보디아 아줌마가 하는 지라 돈까스나 카레 등이 한국에서 먹는 것 못지 않았다. 특히나 생맥의 나라 일본답게 펍스트리트 가면 1잔에 0.5달러에 마시는 앙코르드래프트비어를 1달러에 팔지만 냉각시킨 잔에 순도 높은 생맥주를 만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끝으로 캄보디아의 맥주 얘기를 하면, 앙코르비어와 캄보디아비어 두 종류가 쉽게 보인다. 둘 다 색깔 구성도 빨간색 노란색이라 구분도 어렵고 맛도 거기서 거긴 것 같다. 맥주 로고 아래에도 국가 정체성이 녹아있어 주황의 나라 캄보디아 색체와 잘 맞아 떨어지는 맛이다. 어감이 착착 맞아들기도 하고 이런 저런 활동 후에 기름진 음식들과 마시면 찰떡 궁합인 맛이다. 기름지지 않은 음식이 없어 이 맥주 외에 다른 선택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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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람들

베트남에서 다른 여행자와 말을 섞은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은 숙소 호스트나 스탭들 정도다. 여기저기 주워 들은 바로는 다른 동남와 국가와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다고 한다. 아마 1,000년의 중국권 지배, 100년의 프랑스 지배, 10여 년간의 내전과 미국과의 전쟁 등의 역사가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을 형성했기 때문일 수 있다. 거기다 사회주의 정권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에 절박할 정도는 아니었을 테니 관광객들에게 친절로 목메지는 않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10일간의 경험으론, 엄청난 친절은 없지만 관광지임에도 호객 행위도 덜하고, 가격 갖고 바가지를 씌운다는 느낌도 없다. 사람들도 예의바르게 대하면 또 예의바르게 대해주고, 사소한 요구에도 얼굴 찌푸리는 법은 없다. 애시당초 누군가에게 무작정 친절과 미소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수한 여행지에 대한 환상이나 특정 지역 사람들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감정이 깔려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친절과 미소는 주고 받는 것이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물론 여기 사람들도 웃으면서 말하면 다 웃으면서 받아준다.


엄청나게 복잡한 호치민의 도심에서도 경적을 빵빵 거리며 오토바이와 사람이 범벅이 되지만 멈춰서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사막 투어 가이드 겸 운전수도 이런 저런 서비스를 제공해서 팁을 더 받겠다는 마음보다는 정확히 예정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옆 좌석의 경제학 선생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다들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큰지 식당에서 맛있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당당함과 깔끔함이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루트아시아 2015

베트남에선 출발 직전 부랴부랴 챙겨 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동남아 관련 잡이 루트 아시아를 읽었다. 시종 일관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는 신영복 선생의 편지들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양가 부모님께 엽서를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선생은 책을 많이 읽는 것 보다 생각의 깊이를 강조했고, 지식의 습득이 한 팔이며, 이를 행하는 것이 다른 한 팔이라 하셨다. 감옥에 갇혀 한쪽 팔만 커가는 것이 안타깝다 하셨다. 또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저널리즘이라는 것이 사태를 객관화하여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기게 한다는 것이었다. 기사만 보고 어, 하는 데 그치기 보다 이들의 사태를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는 자세를 가져야 겠다.


루트아시아는 아시아적 관점을 강조한다. 아시아적 관점이란 동남아시아를 먼 나라 보듯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많은 교류를 갖고 있는 동반자로서 보는 것이다. 이 지역을 짧게 나마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 곳곳에 묻어 있는 동질감이다. 젓가락, 밥 문화나 불교적 색체 등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친숙한 이들 지역에 대해 그간 문외한으로 있었던 것이 여러모로 안타깝다. 책을 통해 현재 동남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대충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아세안이나 중국의 AIIB 등을 통해 국제적인 역학관계와 동남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가늠할 수 있었다. 역시나 이곳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중국이 가장 큰 화두다. 과거부터 화교가 동남아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행사해왔고, 이젠 화교보다는 중국 자체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남아라는 열대 기후적 특성을 가진 곳에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경제 성장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그러기엔 중국 인도 등 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공동체가 되기엔 언어나 종교, 문화 등이 다양하고 독재가 많은 정치권도 자기들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다. 책에서 아쉬운 점은 아시아라기엔 지나치게 동남아시아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까지 좀 더 폭넓은 관점이 제시되었으면 한다.


베트남 전쟁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작년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되었던 베트남 전쟁 기사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기획 기사다. 또 벙커1에서 박태균의 베트남 전쟁 관련 강의가 올라와 슬리핑 버스에서 들었더니 다시금 정리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단순 내전이라기엔 중국과 미국, 남한과 북한의 여러 정세적 요인이 맞물려 있었다. 베트남 전쟁 덕에 우리가 경제 개발을 했다지만 그 덕만 보기엔 한국과 베트남이 입은 상처가 너무나 컸다. 애시당초 미국은 베트남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였고, 이를 통해 얻은 것이 생각보다 큰 것도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를 보면서 우리가 이런 요구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자행한 학살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애석한 것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위령비 역시 한국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위한 방편으로 베트남 정부가 이를 철거해왔다는 사실이었다. 박정희, 박근혜가 정치 경제적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일본에 치욕적인 합의를 선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베트남 여행을 하는 내내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하루한상 연재에도 썼지만 커피의 단맛과 쓴맛처럼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의 당당한 모습이 더 보기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만들던 분들이 베트남 피에타를 함께 만들게 되었다는 소식이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먼저 사과하자는 운동은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참고

루트아시아 홈페이지: http://rootasia.org/

베트남 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지음

소녀상 친구, 베트남 피에타,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26443.html

한국인 손 놓은 곳은 아직도 적대적 분위기,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6433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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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HOI AN)_0119_0121

첫날 아침은 가벼운 시내 관광으로 시작했다. 자전거가 지나는 한적한 골목길을 돌아 나가니, 오토바이들이 빵빵 거리는 시내 중심가가 나왔다. 베트남에서 도로의 주인은 차가 아닌 오토바이다. 아마 이 민족은 몽고인들이 걷고 나서 말 타기를 배우듯이 누구나 오토바이 타는 법부터 배우는 것 같다. 노인들과 어린애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애 두셋을 앞뒤로 끼고 가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북적거리는 시내 중심가를 지나 강가쪽으로 가니 관광지구인 올드타운이 나왔다.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된 많은 관광지와 비슷하게 이 구역도 외국인들로 북적거리고, 각종 기념품과 식당들로 가득차 있다.


올드타운 한 가운데 강이 흐르고 있고, 다리 주변과 강가에 동양적인 장식물들이 많아 밤이건 낮이건 거닐기에 좋다. 강물은 좀 더러워 보이기도 하고, 강에서 유유자적 저어주는 보트 타는 것엔 취미가 없어서 강은 그냥 구경만 했다.


호이안은 맛의 나라 베트남에서도 꽤나 맛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호이안을 방문하신 여편님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모닝글로리를 축으로 올드타운 중심가에 유명한 식당들이 많단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닝글로리를 소유한 마담 vy가 이 유명한 식당 상당수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호이안에서 올드타운에서 우리가 먹은 식당 대부분이 그녀의 손에서 운영되는 것이었다. 베트남 물가를 감안하면 비싼 편이지만 어쨋든 고급 베트남 요리를 1인당 1만원 선에서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분짜나 닭고기볶음 쌀국수 같은 호이안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은 물론, 모닝글로리 볶음처럼 다소 건강하면서도 깔끔한 요리도 맛볼 수 있어서 베트남 요리의 다양한 면모를 만끽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요리 퀄리티가 높아서 그런지 심지어 첫날 저녁에 강변 야경을 보며 먹었던 감자튀김마저 여편님의 표현으론 역대급 감튀였다.


호이안의 장점은 강가를 끼고 있는 올드타운 뿐만 아니라 바다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강가와 열대해안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요소다. 숙소를 고르면서 주안점을 둔 것이 자전거 무료 대여였고, 지금은 오토바이국이지만 과거 자전거의 나라였던 것을 추억하며 자전거를 타고 해안가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통해 알려진 길은 큰 도로를 따라 쭉 올라가는 것이었다. 근데 문제는 도로가 1 차선이라 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같이 타고 가기엔 자전거가 너무 후달린다는 것이다. 한참 올라가다가 논밭을 가르는 시골길이 나오길래 바다는 넓고 방향만 맞으면 나오겠지라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중간 중간 일하는 농부들도 있고, 소와 오리들이 밥 먹고 있어 구경 거리도 많았다. 종종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지나가긴 하지만 훨씬 편하고 맑은 길이라 베트남에서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다. 문제는 방향만 믿고 가다보니 막다른 길이 나타난 것이었다. 돌아간다고 될 일도 아니고, 저 너머 보이는 차도를 따라 자전거를 끌고 무작정 들판으로 들어갔다. 무섭게도 큰 숫소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껏 많은 소를 봐왔지만 베트남 숫소처럼 뿔도 크고 색깔도 희끄무리한 종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얼핏 들으니 물소 종이라고 한다. 쉬고 있는 숫소 앞 1미터를 숨죽여 지나가서 도로 변에 안착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시 도로를 따라 달려가니 바다가 나왔다. 해안가 근처 식당에 들어가서 맘고 샐러드와 파파야 볶음밥을 시켰는데 오 이런 어제 고급 식당가에서 먹은 것에 못지 않게 산뜻함이 밀려왔다. 망고나 파파야 같은 과일로 이런 볶음 요리를 만들다니 대단하다. 바다는 바다였고, 해변은 해변이어서 잠시 거닐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그냥 큰 도로를 따라 왔는데 매연도 엄청 먹고 멘탈이 털리면서 막판에 길을 읽어 헤메다 여편님까지 잃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가다 길 건너는 타이밍을 놓쳐 여편님만 멀리 사라진 것이다. 울며불며 찾아헤멘 끝에 저기서 날 부르는 여편님을 만날 수 있었다. 겨우 숙소로 돌아가 실신했다가 모닝글로리에서의 만찬으로 지친 심신을 회복했다.


호이안에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쿠킹클래스, 모닝글로리 등을 운영하고 있는 마담 vy그룹이 진행하는 쿠킹클래스 안내문을 첫날 발견하고, 여러 코스 중 고심하다 가장 기본적인 클래스를 예약햇다. 아침 먹고 유유히 가보니, 장소는 먹기리 타운 컨셉으로 조성된 식장을 겸하고 있었다. 입구부터 여러 채소와 갖은 향신료 등이 비치되어 있고, 정사각 형태로 각종 베트남 요리의 재료와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게 해두었다. 가운데는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여기서 직접 음식음 주문해서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클래스는 쿠킹이라기보다 먹방 클래스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했다. 각 구역을 돌며 쌀국수 뽑는 것을 따라해본다던가를 제외하면 베트남 음식 전반을 먹어보는 시간이다. 거기에 덤으로 간단한 계란말이 비스무리한 것과 야자수잎으로 만든 만두,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배 터질 것 같아서 만두와 계란말이는 무이네로 향하는 슬리핑 버스의 간식으로 훌륭했다. 끝나고 주는 설문지에 이왕이면 아침 먹고 오지 말라는 안내사항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썼다.


나짱(NHA TRANG)_0122

호이안에서 무이네로 가는 길에 휴양도시인 나짱에 경유했다. 호이안에서 무이네로 가는 직행 버스는 없고, 나짱에서 버스를 갈아타야했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나짱에 내렸더니 배도 고프고, 꾸리꾸리한 것이 쾌적한 무언가를 갈구했다. 내려서 둘러보니 꽤나 고급진 호텔이 난무했고, 그 중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곳에 들어갔다. 1인당 6,7천원의 뷔폐형 아침식사를 했는데 먹을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쾌적한 호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은 것 같아 풀배낭을 지고 해변 구경을 갔다. 비싸지는 해변 휴양도시가 다 그런 것인지 해변으로 들어가는 인트로부터 해변에 줄비한 고층 건물까지 딱 해운대의 그것이었다. 마침 일출이 시작된 타이밍이라 아침 해변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무이네(MUI NE)_0122_0125

일주일이 지난 지금 돌아보았을 때 무이네에서 이삼일 정도 더 머물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고 낮에는 후덥한 정도인 호이안과 달리 베트남 남부 끝자락의 무이네는 말그대로 열대 기후라 겨울에도 30도를 넘는 태양이 내리쬐고, 가는 길 주변 곳곳에서도 사막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미 휴양도시로 유명해진 다낭이나 나짱과 달리 무이네는 고급 리조트까지는 없는 소박한 휴양도시였다. 비록 우리가 잡은 숙소는 해변을 끼고 있지 않았지만 주변 리조트나 식당들은 해변을 끼고 있으면서도 1달러 정도면 해변과 맥주 한 병 또는 과일주스 한 잔을 즐길 수 있었다.

숙소 옆에 이 해변가 식당인 POGO BEACH3번을 갔는데 첫날엔 사이공 비어 한 잔을 시켜놓고 석양을 만끽했고, 둘째날은 주스 한 잔 마시다 해수욕도 즐겼다. 대학 초년 생때 바닷가 놀러간 이후 처음으로 바다에 몸을 담갔더니 썩어있던 몸이 말끔히 소독되는 기분이었다. 마침 바람도 세게 불어서 파도에 몸을 맡겨보고 작년에 배워둔 수영도 연습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식사는 주로 숙소 주변의 식당에서 해결했는데 호이안의 고급 식당들 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보다 저렴한 가격에도 꽤나 훌륭한 쌀국수들을 먹을 수 있었다. 종류별 쌀국수를 거의 섭렵했고, 상태에 따라 가볍게 시킨 두부 퍼는 시큼하면서도 고소해서 과일아나 야채만으로도 훌륭한 국물 맛을 내는 것에 감탄했다. 또 어떤 가정식 식당에서는 쌀국소도 맛있는데다가 샌드위치를 한 번 시켰더니 거대한 바게트에 동일한 양의 닭고기를 넣어주는 푸짐함도 경험했다. 이 식당 주인 아줌마 음식 솜씨가 괜찮았는데 요리하는 엄마 옆에서 칭얼거리는 꼬마가 인상적이었다. 가정집을 겸한 이 식당은 물론이고 다른 식당에서도 아기를 데려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보육 시설이 마땅치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일터에 아이들을 데려와 가깝게 지켜보는 것도 좋은 것 같고, 일터에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이 사회의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보았다.


전형적인 베트남 음식 이외에도 즐길 음식이 많은데, 하나는 한국 사람들도 즐겨 찾는다는 신바트케밥이고, 숙소 기준 3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보케거리의 해산물이다. 보케거리는 한국의 광안리나 수산시장처럼 먹고 싶은 물고기나 해산물을 골라 무게를 달아 가격을 흥정하고 이걸 식당에서 요리해주는 방식이다. 당연히 한국사람들이 좋아할 방식이라 그런지 우리가 갔던 식당에서도 사시미는 왜 안먹냐고 하고, 라면이나 매운탕도 메뉴에서 주문이 가능했다. 파도소리 들으며 먹는 조개구이와 새우구이야 당연히 맛있었다. 기본적인 요리 실력들이 좋아서 그런지 단순한 해산물구이도 과하지 않은 양념으로 풍미를 더했다. 관광지 해산물 식당이 다 그렇듯 베트남 물가를 감안하면 싼 가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무이네가 유명한 것은 이런 해변가 문화와 더불어 사막 투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도 1인당 6달러 정도에 반일 투어로 많이 하는데 보통은 사막에서 일출을 보는 새벽투어를 많이 한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침형인간이지만 여행지에서의 상쾌한 아침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니까 오후 투어를 선택했다. 베트남은 미리미리 문화가 강해서 한시반까지 투어회사로 오라고 해놓고 거의 한시간 가량을 기다려서야 차를 타고 출발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경제학을 가르친다는 백인 할베를 포함해 7명의 관광객을 태우고 차는 엄청나게 달려서 곳곳을 구경시켜주었다. 하얀 사막에서는 ATV를 빌려서 사막을 돌아보게 하는데 내 운전실력이 답답해 보였는지 ATV 관리 요원이 우리를 사막 언덕까지 데려다 주었다. 모래언덕 수직강하 시범을 보여주더니 우리를 뒤에 태우고 또 두어번을 강하했다. 바람이 심한 날이라 모래바람이 엄청 따갑게 후려쳤고, 하얀 사막 풍경은 시야를 채울 정도로 넓어서 중동 사람들의 척박한 삶을 가늠하게 했다.

붉은 사막에서도 한 번 내려주는데 내리면 꼬마들이 플라스틱 널판지를 보여주며 샌드보딩을 하라는 호객행위를 한다. 옆에서 여편님은 한심하게 바라봤지만 나호갱은 3만동(1.5달러)를 주고 꼬마에게 당차게 널판지를 빌렸다. 꾸역꾸역 언덕을 올라가서 힘차게 내려갔지만 좀 가면 멈춘다. 다시 언덕을 올라가려면 엄청 뜨거워 빨리 올라가게되고, 조리가 파묻히는 바람에 손을 휘저어 겨우 찾았다. 힘든 도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 꼬마는 아이스크림 콘을 낼름낼름 핥으며 본인의 공장을 수거해갔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이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무슨 골짜기 산책이다. 붉은 진흙이 적당히 깔려있는 계곡길 사이를 맨발로 40분 가량 걷는다. 아기자기한 열대 식물들과 붉은 모래와 희검은 돌덩어리가 어우러진 산책길이 모래 먼지를 가라앉혀 준다. 사막에서 일몰 보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집에 데려다 준다. 아쉽지는 않다.



호치민(HO CHI MIN CITY)_0125_0128

베트남에서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호치민(사이공)이다. 경제와 행정의 도시답게 그간 한적한 동네에서 몰랐던 혼잡함이 우리를 압도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를 찾는데 길만 건너면 되는 것을 오토바이와 자동차 범벅에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달러를 너무 많이 써버려서 시티은행 ATM을 찾아 가는 길에 이미 우리의 멘탈은 나가버렸다. 엄청난 오토바이 매연 속에서 어떻게 길을 건너야하는 것인지 정신 차릴 수가 없었다. 개운함을 얻기 위해 가이드북에 소개된 스시바를 찾으려 했으나 이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엄한 고급 일식바에 들어갔으나 가격도 비싸고, 분위기도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메뉴판을 덮고 나와버렸다. 여편님과 서로 불편한 감정 속에 숙소 근처의 인도식당 타지마할로 갔다. 역시나 혼돈의 대륙답게 카레는 먼지와 매연으로 썩어버린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었다.


하루 지나고 나니 길도 건너는 요령이 생겼다. 어차피 오토바이는 보행자를 적당히 피해가거나 알아서 속도를 줄이기 때문에 대충 빈틈을 해집고 들어가면 된다. 정 안되면 이 익숙해보이는 보행자 옆에 딱 붙어서 건너면 된다. 34일 동안 택시는 한 번만 타고 다 걸어다녔는데, 여편님이 친구분들이 알면 기겁할 것이라 했다.

유럽 영향을 받은 도시답게 중심부에 공원이 있어서 공원 길을 따라 통일궁에 들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군의 사이공 점령을 알리는 전차가 남아있다. 통일궁을 둘러보고 배고파 하다보니 여편님이 예전에 왔었다는 쇼핑몰 VINCOME CENTER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울에서도 잘 안가는 도시문명을 맘껏 빨아들였다. 체인형 쌀국수 집에서 먹은 쌀국수의 맛은 너무나 전형적이라 먹을 때는 좋았지만 저녁 쯤되니 쌀국수 생각만해도 물리는 맛이었다. 도시 여행의 필수 코스 마트 구경을 하며, 목표했던 티셔츠와 양말을 구입했다.

다음 날에는 설 맞이 양가에 엽서를 써고, 중앙우체국에서 발송했다. 이미 읽은 책과 잡다한 물품들도 기념품 몇 개와 함께 한국으로 보내버렸다. 클릭클릭으로 하던 배송과 달리 이런 아날로그 적인 우편 업무를 수행하니 감성이 돋았다. 특히나 이런 오래된 청사가 여전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 말고도 많은 관광객들이 여기서 우편 업무를 처리하는 모양이다. 이걸 처리하는 직원들도 외국인이 익숙한지 친절하게 도와주고 처리해준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되니 좀 걱정이 되긴한다.


이상 호치민에서 목표한 업무를 다 처리했다. 남은 시간 대부분을 카페에서 보냈다. 호치민의 청담동이라 불리는 쇼핑타운과 오페라 하우스 주변의 카페에는 노트북을 꺼내놓고 일하거나 회의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덩달아 우리도 노트북으로 원고 작업을 했다. 근처를 돌아다니다 노상 서점들이 줄비한 거리도 볼 수 있었고, 한국 기업인 금호아시아나의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연결된 식당가도 들어가보았다. 쇼핑센터의 규모나 양에서도 느꼈지만 베트남 경제규모도 한창 발전하고 있어 엄청난 인파가 이 인근에서 쇼핑을 즐기거나 비지니스 미팅을 갖는 것 같았다. 덩달아 한식 일식 등 고급진 외국음식점도 많이 보인다.

떠나기 전날 돌아다니던 중 여편님이 급격한 배고픔을 호소했다. 시골과 다르게 도시는 돌아다니다보면 몸에 영양소가 결핍되는지도 모른다. 위급한 상황이 되어서야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들어간 식당은 흔한 영어 메뉴판도 없는 허름한 곳이다. 돼지 퍼와 닭 퍼 하나씩을 시켜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가지 흡수했다. 전날 쇼핑몰에서 물렸던 쌀국수에 대한 사랑이 다시금 솟아났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식당의 양이 적은 편이라, 길가에 아줌마가 썰어서 속을 꽉 채워주는 반미 샌드위치도 우적우적 씹었다.


호치민 부록

볼일 다 보고 배도 채우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썬글라스의 코 받침이 부서져내렸다. 통일궁을 살짝 돌아가면 첫날 헤메던 우리를 구원해준 사탕수수 주스도 만날 수 있고, 이래저래 가게가 많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관광객들에겐 별로 유명하지 않은 것이 사탕수수 주스인데, 열대지방 어딜 가든 길가에서 지나칠 수 있는 것이다. 사탕수수가 설탕의 원료니 별로 맛없을 것 같지만 설탕과는 차원이 다른 상쾌함과 신섬함의 단맛이다.

주스를 충전하고 가게가 많은 거리를 지나다보니 여행용 가방을 취급하는 가게가 있었다. 전날 쇼핑몰에서 사려다 만 것이 내가 멜 크로스 백이다. 현재 배낭 구성은 둘 다 큰 배낭 하나씩, 작은 배낭 하나씩에 여편님은 작은 크로스백 하나가 더 있다. 평소 돌아다닐 때는 나는 작은 배낭을 메고, 여편님은 크로스백 하나를 메고 돌아다닌다. 포터인 내가 크로스백 하나 갖고 내 오래된 작은 배낭 하나는 던져버리고 싶다고 징징 거리니 여편님께서 친히 고르는 것을 도와주셨다. 전날 고급진 것을 지르지 않고 참은 보람이 있어, 튼실해 보이는 탐험가 삘 더해지는 크로스백 하나를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 근처에서 안경집을 발견했다. 들어가서 썬글라스 수리 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붙인 김에 양쪽 코받침을 다 갈아주었다. 얼마냐고 하니 FREE란다. 고마운 마음을 여러 번 표현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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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과 이동_2016_0119_0128

다낭에서 입국해서 바로 호이안으로 넘어 온 이후 베트남에서는 3개의 도시, 호이안(Hoi an), 무이네(Mui Ne), 호치민(Ho Chi Min City)에 열흘 간 머물렀다. 호이안에서는 새벽에 도착한 밤을 포함해 3, 호이안에서 무이네로 넘어가는 슬리핑 버스에서 1, 무이네에서 3, 호치민에서 3박을 하고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으로 넘어왔다. 호이안에서 무이네까지는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고,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인 나짱까지 12시간의 밤 버스로 이동 후, 나짱에서 무이네까지 6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을 했다. 베트남 버스회사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신투어리스트의 버스를 이용하려고 사무실에 가서 좀 싼 자리는 없냐고 했더니 다음날 바로 가는 건 대략 50% 할인이 된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호이안의 일정을 하루 줄이고 바로 무이네로 향했다. 무이네에서 호치민을 가는 것 역시 6시간 정도 일반 버스로 무난하게 이동했고, 호치민에서 프놈펜을 가는 것은 한국 회사인 금호아시아나가 합작회사로 만든 금호-삼코의 버스를 이용했다. 1인당 30달러인 관광비자 값과 5달러 정도의 웃돈을 주면 캄보디아 국경 넘어가는 수속도 대행(?)해준다.


원래는 최소 일부구간이라도 기차를 이용하려고 했었다. 일반적으로 철도 구간이 시골길을 지나게 마련이라 풍경도 훨씬 좋고, 도로 사정등을 감안했을 때 훨씬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기차 이동이 가능했던 구간이 무이네-호치민 구간이었는데 기차를 타기 위해 시내로 이동하는 택시 값이 무이네-호치민 버스 값이랑 거기서 거기라 그냥 숙소 앞에서 탈 수 있는 버스로 이동했다. 베트남 버스 가격은 매우 저렴해서 호이안-나짱-무이네 18시간 대장정이 20달러(물론 우린 할인까지 받아서 1인당 9달러 정도)가 안되는 수준이었다.

이미 와이파이의 물결은 이쪽 동남아도 피하지 못해서 대부분의 관광버스에서는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가 제공된다. 물론 신호는 매우 약하지만 불과 4년 전에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버스 타던 때를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그리고 슬리핑버스라는 형태로 개조가 되서 편하게 누운 자세로 이동도 가능하다.



숙소

머무른 도시가 세 개였으니 숙소도 세 군데에서 묵었다. 호이안에서는 사전에 호텔스 닷컴을 통해 예약해 놓은 LEO호스텔을 이용했다. 큰 맘먹고 신청한 공항 픽업이 공항에 도착해서야 취소된 것을 알고 좀 당황하긴 했지만, 머무는 동안 친절한 직원(가족인듯)들 덕분에 비행으로 지친 심신을 편히 달랠 수 있었다. 처음 준 방은 다소 넓고 습했지만 나중에 옮긴 방은 아늑하고 소박해서 급작스래 그 방에서 하루만 머물게 된 것이 매우 아쉬웠다.

호이안 시내 및 올드타운과는 걸음으로 10-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처음 베트남을 방문한 나에게는 오히려 베트남 사람들이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엇다. 보통의 베트남 주택가는 개와 닭들이 풀어져서 돌아다니고, 가벼운 운동을 마친 동네형들이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고, 야채나 빵을 사든 아저씨와 아줌마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유유히 몰고 간다. 자전거도 공짜로 빌려주고 친절한 직원들에 대한 평가가 올라온 덕인지 다소 모호한 위치에도 호스텔은 배낭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첫날 픽업이 급작스레 취소된 것에 대해 우리도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진 않아서인지 일정 변경에 따른 패널티도 없었고, 자잘한 요구에도 친절히 응대해줘서 베트남에서 머문 숙소 중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특히 주방일 하시는 아주머니는 우리가 뭐가 맘에 들었는지 요상한 맛의 베트남 과자도 몇 개 주셨는데 내가 소화하기엔 버거운 맛이었다.


무이네에서 머문 숙소는 단돈 12달러(마지막 날은 10달러)짜리 게스트하우스였다. 무려 12시간의 밤버스를 타고, 잠시 휴식 후 6시간을 또 달려와서 숙소를 찾아해멨다. 당초 점찍어 놓은 호아응아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지만 한참을 가도 나오지 않아 원점으로 돌아오면서 숙소를 찾아보았다. 12달러라는 게스트하우스가 나쁘지 않아 보였고, 연이어 10달러 방을 제시한 게스트하우스가 깔끔하니 괜찮아 보였다. 다만 여편님은 이 지역 물가도 저렴해 보이니 이왕 묵는 거 괜찮은 리조트에 머물자며 몇 군데를 알아보았다. 리조트라고 해도 삐까 뻔쩍한 수준은 아니었다. 수더분한 방들이지만 해변과 풀장을 끼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격은 대략 25~65달러 선, 지금 돌아보면 왜 그렇게 쪼잔하게 굴었나 싶은 가격이다. 마지막 날에야 25달러였던 리조트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아침까지 포함된 가격이면 큰 차이도 없었네 했다. 여편님은 이 참사를 두고 두고 욹어 먹을 것이라 했다.

결론적으로 무이네에서 머문 12달러짜리 방은 좋았다. 처음 보여준 방이 화장실에 문제가 있어 위 층의 방을 보여주었는데 두둥! 앞 집 지붕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는 전경이었다. 그 방도 화장실에 냄새가 좀 났지만 그럭저럭 쾌적하고 인터넷도 빵빵해서 평소 전화보다 더 맑은 목소리로 부모님과 보이스톡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도시 호치민에서는 별 감흥도 없을 거란 전망에 호텔스 닷컴에 들어가 싸고, 위치 좋고, 아침 주는 호스텔을 3일치 예약해버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오토바이의 충격을 뒤로하고 골목을 헤메다 보니 엄청 복잡한 골목 사이에 게스트하우스들이 줄비하고, 그 중에 콕 박혀있는 사이공 백팩커스를 발견했다. 4층이나 올라가보니 딱 달동네 단칸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에어컨은 냄새나고 화장실 문은 잡아당기니 떨어지고, 나름 많은 숙소를 경험해봤지만 이 정도로 비좁고, 쾌쾌하고, 찝찝한 숙소는 처음이었다. 쌍팔년도 여관방이 그래도 호스텔로 바뀐 것이라 짐작된다.




빵과 음료

뭐니뭐니 해도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즐긴 것은 음식이었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 덕인지 숙소나 레스토랑의 아침 식사에서 제공되는 바게트의 부드러움이 매우 우수하다. 길가에서 파는 샌드위치인 반미(Ban Mi)도 바게트 만큼은 여느 고급 빵집 못지 않다.

다음은 커피,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 답게 기본적인 커피도 맛이 진하고 깊다. 주로 스뎅 드립퍼를 사용해서 유리잔에 내려주는 데 엔간한 에스프레소 못지 않게 진해서 보통은 설탕이나 연유를 타서 마신다. 이것도 처음엔 쎄다가 점점 중독이 되고, 카페나 식당에서는 라떼나 아이스 형태로도 제공되어 아침, 낮 틈나는 대로 마셨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기본 커피의 경우 뒷맛에서 묵은 커피 특유의 쾌쾌한 뒷맛이 남아있었지만 호이안 로스터리나 하일랜드 커피 같은 지역별 주요 체인점과 고급 식당에서 제공되는 커피의 경우 이런 쾌쾌함 없이 강인한 쓴맛이 지배했고, 풍부한 향은 가격을 따질 것 없었다.

그리고 동남아 여행에서 가장 기대햇던 것이 주스다. 당연히 이곳 베트남에서도 망고, 파파야, 워터멜론 등 다양한 과일주스를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다. 대부분 매우 높은 순도로 직접 갈아서 주니 하루에 한 두 잔은 마셔댔다. 다만, 계절의 영향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망고 자체가 그리 달지는 않아서 망고 주스도 그저 그런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론 시큼한 패션 푸르츠 주스가 가장 맛있었다.


의외로 베트남에서 가장 즐긴 음료는 베트남 맥주였다. 그 중 으뜸은 남부지역의 맥주인 사이공 비어 Green이었다. 베트남은 지역마다 취급하는 맥주가 다른데 주로 남부에 머문 덕에 시원한 사이공 비어 Green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그 외에 333이나 Lauren, Tiger, 사이공 Red도 한 번씩은 마셔봤지만 사이공 그린의 산뜻함과 쾌적함을 따라올 맥주는 없엇다.

아쉬운 것은 남부의 산간 지방인 달랏에서 생산되는 달랏 와인을 마셔보지 못한 것이다. 무이네에서 몇 번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어버버하다보니 그냥 사이공 그린만 마셔버렸다. 그 후에 호치민에서는 작은 병에 파는 것은 보지 못해 큰 병을 살 용기는 내지 못했다. 와인까지 잇는 것을 보면 프랑스 인들의 와인 사랑과 근성이 이 타향에까지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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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와 여편님의 배낭에서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책이다. 둘 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서로가 원하는 책을 챙기는 걸 별로 만류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참사로 이어졌다. 현재 목표는 다음 행선지까지 각자 2,3권의 책을 다 읽고 누군가에게 주거나 한국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먼저 여편님이 지고 있는 책부터 소개해보면,


1) 사는게 뭐라고_사노요코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고, 보는 내내 낄낄 거리며 이 할머니 완전 멋있다고 하는 책이다. 매우 쿨한 분의 이야긴 것 같다.


2)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_김남희

여행작가인 김남희씨가 발리,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에 대하여 쓴 책이다. 이 책을 읽으시며 동남아 여행지를 추리셨는데 이런저런 정보가 여행 중에도 도움이 될거라고 하셨다.


3) 열대식당_박정석

출발 직전 들린 처가에서 뒤늦게 추가된 책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버마의 음식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된 책이라 유용해 보인다.


4)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_이반 일리치

작년에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인상깊게 읽어서 보다 그의 사상을 깊이 있게 소개한 책을 읽고 싶었다. 해당 출판사를 거느린 모 카페에서 직접 정가를 주고 구매해서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5) 불타석가모니_와타나베 쇼크_법정 옮김

지은이 보다 옮긴이에 주목한 책이다. 아시아를 이해하는데 있어 불교 사상과 석가모니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6) 셀프트레블 베트남편

여편님이 예전부터 소장하고 있던 베트남 가이드북이다. 베트남을 최초 출발지로 선정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음은 내가 지고 다니는 책이다.

1) 루트아시아 2015

아시아적 관점에 기초해 아시아지역의 경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잡지(?). 이번에 처음 발간되어 여러모로 알찬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챙겨왔다.


2) 갈색의 세계사_비쟈이 프라사드

1900년도 쯤부터 제3세계의 변화를 다룬 책이다. 강대국 관점이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 국가들의 주체적인 노력을 담고 있다.


3) 바빌로프_피터 프링글

이것도 작년에 인상 깊에 읽은 20세기 최고의 식량학자 바빌로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전기다.


4)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_잭 호이나키

녹색평론 2년 구독 연장 사은품으로 받은 책이다. 아메리카, 유럽, 인도 등을 여행한 미국인의 이야기다. 이반 일리치와 절친한 사이기도 하단다.


5)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_제임스 C. 스콧

구매할 때 가장 고민이 됐던 책이다. 책값이 가장 비싸기도 했고, 꽤나 학술적인 책이라 여편님과 바꿔 읽기에도 적합해 보이지 않아서다. 그래도 태국과 버마 국경 사이에서 특정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여러모로 '국가가 날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회의적이게 만드는 것이 이번 한국 정부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신영복

열대식당과 마찬가지로 출발 직전 처가에서 보이는 걸 집어왔다. 때가 때인지라 의미가 남다르다.


7) LONELY PLANET THE WORLD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가이드북인 론니플레닛 시리즈에서 전세계 판을 내놓았다. 론니플래닛의 장점인 적은 사진과 상세한 설명이 여기선 나타나지 않지만, 각 국가별 지도와 개괄적인 안내, 주요 여행포인트를 소개하고 있어서 유용한 듯하다.


8) 론니 플레닛 네팔(한글판)

여편님이 아는 분 중 네팔에 여러 번 다녀온 분을 만나 여러 좋은 이야기도 듣고, 네팔 여행책도 몇 권 빌려주셨다. 네팔까지 소중히 들고 갔다 오는 것이 목표다.


9) BARRON'S SPANISH GRAMMAR

둘다 틈틈이 스페인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로 가져왔다.


10) LONELY PLANET PHRASE THAI

태국말 단어장이다.


다행히 다른 짐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초반에 읽기 쉬운 몇 권만 덜어버리면 지고 다니는데 큰 부담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굳이 특히나 무거운 책들을 챙겨온 이유는 같은 무게 대비 글의 양이 많기도 하고, 평소에 읽기 힘든 책들도 여행 다니며 지루한 시점에 읽으면 술술 읽히고 구절구절이 잘 새겨진 경험이 있어서다.

들고 와서 읽고 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늘 생각하신다. 책을 맑이 읽고 생각과 지식을 넓히는 것 보다 적게 읽더라도 깊이 생각하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단다. 굳이 많은 책을 가져와서 낑낑거리는 것도 다 집착이다 싶고, 선생님의 말씀에 좀 뜨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행 중엔 읽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사색하고 되새길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지식을 실천한다는 것이 생활 속에 마주하는 대상을 배운바 느낀바 대로 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왕 가져온 책이니 잘 읽고, 더 나은 태도로 마주치는 사람과 자연을 대하도록 해야겠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렷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하여야시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신영복



<숙소에서 줄 세워 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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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장기여행을 또 한 번 나서게 되었다이번에는 여편님과 함께우선 5개월 정도 아시아를 여행할 생각이다무슨 일이 있어도 6월 말에는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출발해서 동남아-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을 생각했다하지만 동남아와 아시아에 대해 알아갈수록 가고 싶은 곳도 많아지고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지금 기세론 중앙아시아까지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거실에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세계지도를 보며 틈틈이 토론한 끝에 베트남-캄보디아-태국-미얀마-스리랑카-네팔 정도로 경로르 구상한 상태다.



항공권과 집

나의 퇴사 일자가 확정되고 난 뒤, 12월 중순 쯤 얕은 고민 끝에 끊은 인천-다낭(베트남편도 항공권을 구매했다늘 타고 다니는 제주항공이 신규 취항 기념으로 특가를 많이 하고 있어서 1인 당 15만 원 선에서 구매가 가능했다편도항공권 구매시 입국 거부 등의 위험으로 귀국 항공권이 필요하다는 주의사항이 있었다이걸 방지하려고 추후에 이동할 지역의 항공권을 구입하려고 보니 벌써부터 구체적인 일정을 짜는게 못마땅했다미루고 미루다 대충 방콕에서 돌아오는 항공권을 구입해서 e-티켓만 출력 후 다시 환불해 버렸다.


여행 기간 가장 중요한 이슈는 빈 집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다행히 결혼 전 동거인이었던 동생이 다시 집에 들어오는 걸로 해결이 되었다동생의 이사도 돕고우리와 진한 인사도 나눌겸 제주도의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퇴사하자마자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고약 2주 간 동생의 출근 준비를 돕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건강과 보험

장기간 여행하면서 가장 유의해야할 것은 첫째도둘째도 건강이다무사히만 돌아온다면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그래서 준비하는 것이 예방접종과 보험이다예방접종은 다들 그렇듯이 국립중앙의료원에 신청해서 주사를 맞았다난 황열병과 파상풍 주사의 유효기간이 남아서 장티푸스 주사만 한 방 맞았고여편님은 3가지 주사를 한 번에 다 맞았다결과적으로 둘 다 4,5일은 접종 후유증으로 골골 거리며 험난한 준비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알아본 것은 여행자 보험이었다대충 책이나 인터넷을 보면 많은 장기 여행자들이 어시스트 카드라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보험 패키지를 신청한다이걸 하느냐 다른 대안을 찾느냐를 놓고 꽤나 고심을 했다와중에 보험 관련 일을 시작한 동생의 조언을 구하다보니 비용 대비 보장액이 적절한 상품을 찾고자 노력을 했다이래저래 알아본 결과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한 단기 여행자 보험을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했고주요 보험사 중 1군데 정도가 장기 여행자가 장기 체류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1년을 기준으로 대략 70만원의 비용이 발생했다이걸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엄청난 고민을 했다단기 상품만 가입했다가 다시 해지해서 또 고민하기도 했다난 보험에 대해 비판적이라 보험 상품 하나 들어본 적도 없고예전 장기여행 때도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이제 홀몸도 아니고혹시나가 가져올 여파가 책임질 것이 없던 시절과는 다른 것 같아 두 눈 꼭 감고 가입했다.



돈돈돈

여행할 때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은 돈이다건강이고언어고지식이고용기고 부족한 것은 돈으로 다 커버할 수 있다물론 건강하고아는 게 많고말이 통하고용기가 있으면 돈이 좀 덜 들기도 한다어찌됐든 이 돈을 잘 관리하려니 통장도 두 개 더 만들고해외에서 수수료나 이용이 편리하다는 시티은행 체크카드와 하나은행 체크카드를 준비했다약 8년 간 지속적으로 말아먹기만 하던 100만원 남짓한 펀드를 이제야 회수하고, 3년 간 부었던 채권 펀드도 해지해버렸다미약한 나의 퇴직금은 수소문 끝에 영업일 기준 출발 전날에서야 거머쥘 수 있었다그리고 5년 만의 최고 환율이라는 연초 고환율 러쉬에 충격을 받고 매매 타이밍을 재고 재다가 이것도 끝내 막판에 가서 최고 정점에서 1000달러를 매수해야 했다.


남들 다 죽어라 일하는 이 마당에 또 여행이나 가겠다고 하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듣는 소리가 금수저론이다물론 이걸 아예 부정할 생각은 없다금수저까진 아니어도 부양해야할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살던 집을 마련하는 데에도 부모님으로부터 막대한 도움을 받았으니 최소 동수저 정도는 되는 것 같다그래도 애시당초 여행이나 가려던 생각으로 3년 간 쓸데없는 소비 줄이고비싼 옷 안사고부지런히 밥 해먹으며 모은 덕도 크다더불어 결혼식도 검소하게 치뤘고혼수도 이불과 밥솥 외에 큰 돈을 들이지 않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물론 수 년간 죽어라 일한 여편님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전자제품

최첨단 디지털 강국의 여행자로서 챙겨야할 전자제품이 많았다여편님이 사용하고 있는 맥북을 들고 가자니 인터넷 뱅킹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고심 끝에 보조노트북으로 쓸겸 집에 있는 구형 노트북도 같이 들고가게 되었다카메라는 최근 중고 거래에 맛들인 우리답게 소니의 미러리스 nex-5t를 중고로 샀다막상 집에 와서 보니 잔 기스도 많고덮개도 없어서 판매자를 저주했지만 이런 저런 보조 용품을 사고 청소도 좀 해줬더니 나름 애정이 생겼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휴대용 태양광 발전기다오지를 촬영하는 사진가들이 카메라 밧데리 충전을 위해 이런 걸 들고다니는 얘기를 듣고 순간 모험심이 발동했다가능한 친환경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나의 의지와도 맞물려 수소문 끝에 휴대용 발전기를 하나 챙겨왔다이게 하필 아이폰은 충전이 바로 안되서 덩달아 샤오미 베터리도 하나 챙겨왔다그 외에 외장하드변환 어뎁터멀티 콘센트 등 챙기다 보니 전자제품 덩어리만 해도 한 짐이 되었다.



기타 물품

둘 다 큰 배낭은 예전에 사둔 것이 있어서 그걸 쓰기로 했고준비하다보니 주로 있는 것을 위주로 쓰고필요한 몇몇가지만 사기로 했다보조배낭이나 침낭은 예전에 쓰던 게 아직 쓸만 했고여편님은 가벼운 침낭을 하나 주문했다그외 여행용 쿠션이나 스포츠 타올 등 이것저것 사다보니 이것도 10만원을 훌쩍 넘겼다비상약을 챙기려다 보니 서로 노선이 갈렸다나는 외상의 아픔이 있어 붕대소독약밴드 등을 넣었고여편님은 벌레 방지와 치료 물품에 전념했다결국 약봉지도 크게 부풀었다.


또 하나 작은 소동이 있었던 것은 화장품과 세면도구다남자인 내 입장에서 보기엔 저런 무겁고 다양한 것들을 뭣하러 들고가냐고 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의 지지 발언에 묻혀 여편님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대신 관련 물품은 여편님이 들기로 했다.


옷은 어차피 더운 지역이 태반이고필요하면 사면 된다는 주의라 출발 전날에 대충 두깨별로 몇벌 챙겼다트레킹 등을 위해 등산화를 사려고 아울렛까지 간 적이 있었지만 이것도 귀찮음을 반반하여 평소 신던 등산화를 신고 가기로 했다거기에 각자 조리와 크록스 하나 씩 챙겨와서 신고 있다.



출발 당일

건강보험료 납입 중지를 당일에야 신청하려고 보니 아직 퇴사처리가 안되서 퇴사 처리가 되고 나서야 신청이 가능하단다결국 동생에게 사후 처리를 위한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처가에 들러 맛난 아주 맛난 밥을 얻어 먹고 형님과 아버님이 친히 우리를 데리고 인천공항으로 가셨다.


얼른 수속을 끝내고 여유롭게 면세점 구경이나 하려던 참인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항공사에서 귀국 티켓이 불분명하면 수속을 안해주겠다는 것이었다다소간의 빡침과 당황으로 어버버하는 사이 여편님이 침착하게 등장해서 사태를 수습했다우선 방콕발 티켓을 끊어서 수속을 마치고환불 한 뒤 혹시 모를 베트남에서의 입국 거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다낭에서 돌아오는 항공권을 구입했다겨우 수속 마감 시각에 맞춰서 티켓을 받고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형님아버님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떨떠름하고 넋이 나간 상태에서 비행기에 타고 꾸역꾸역 졸며 다낭에 도착했다다행히 베트남 입국 절차는 간단했지만 픽업을 위해 나오기로한 숙소 측 피켓이 보이지 않았다당황 반 침착 반으로 서성거리다 혹시 몰라 잡히는 와이파이에 메일을 열어보니 담당자가 아파서 못 온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라 마음이 좀 찝집했지만별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다낭(da nang)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호이안(hoi an)으로 향했다택시기사가 길을 헤메긴 했지만 어찌저찌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준비소감

본격적인 준비 기간은 퇴사 후 2주 정도였는데 준비하랴 사람 만나랴퇴사자 감성팔이 하랴다소 지치기도 했다그래도 짧게 나마 얼굴 보러 와준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니 매우 고맙다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들로 고심하느라 마음이 급해졌었다그러다 보니 책도 별로 못보고 사람도 많이 못 만났다이 기간에 만난 한 분이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딱 두가지라 하셨다. “사랑”과 “용기”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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