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리찌바_Curitiba_0211_0213

히우에서 이과수까지는 버스로 23시간이 걸린다. 비행기는 비싸다. 여편님은 어디 중간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그러다 물망에 급 부상한 도시가 꾸리찌바였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친환경, 생태 도시로 몇 번 이름을 들어본 도시다. 청정 유기농 부부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딱 맞아 떨어졌다. 이런 계획을 히우 호스텔 스탭인 과라이에게 말했다. 과라이는 자기가 꾸리찌바 출신이다. 관광객이 거길 왜 가냐. 생태도시? 다 구라다. 대중교통 시스템? 그거 시내 중심만 홍보용으로 바꿔놓고, 외곽은 그냥 평범한 버스다. 원통형 정류장? 사진은 좀 쿨해보이겠지. 과라이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사진까지 보여줘가며 우리를 만류했다. 지난한 협상 끝에 딱 이틀만 머물겠다고 했다. 그정도는 괜찮단다.


교통_시외버스

복잡한 히우 터미널에서 햄버거 세트를 양 손에 들고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가 예매한 노란 회사 버스는 구려보인다. 두 회사가 있었는데, 실물을 보니 다른 회사 버스가 더 좋아보인다. 오랜만에 타는 밤 버스라 긴장을 좀 했지만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우겨넣고 곧 잠이 들었다. 편히 자고 일어나니 휴게소에 들른다. 휴게소 시설이 좋다. 다른 사람들처럼 커피를 마셨다. (이 나라는 휴게소도 뷔폐식이다. 맘대로 먹고, 매점까지 거쳐서 한 번에 계산하면 된다.) 적당한 아침 시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려서 바로 이과수를 가는 버스도 예매했다. 이과수까지는 또 12시간 정도가 걸린다. 충격적인 사실은 꾸리찌바와 이과수(Foz do Iguazu)가 같은 파라나(Paranà)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꾸리찌바도 다른 브라질 도시에 비해선 윤택해보였고, 이과수도 관광 수입이 많을 테니 파라나주는 재정이 탄탄한 것 같다.


교통_시내버스

터미널 건너 편에는 시장이 있었다. 내 촉에 따라 시장 안에는 식당이 있었다. 한 접시에 30헤알하는 뷔폐에 고기와 야채를 가득 쌓았다. 먹으면서 주위 테이블을 보니 우리처럼 먹는 사람은 없었다. 배불리 먹고, 그 유명한 꾸리찌바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신기하다. 기다란 원통 앞에 개찰구가 있고, 표 값을 받는 직원이 상주한다. 표를 사면 원통으로 들어가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 지역의 치안, 더위, 소나기 등을 감안하면 안전한 원통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큰 축복이다. 미리 표를 사는 것도 편하다. 브라질 다른 지역의 버스들은 기사나 버스 안에 차장이 표 값을 받는다. 각 정류장마다 직원을 상주시키면 그만큼 운영 비용이 늘어난다. 반대로 그만큼 임금이 저렴하다는 얘기도 성립한다.

긴 버스 한가운데 문이 원통에 정확히 멈춰선다. 타는 곳은 원통안에 하나고, 다른 문들은 원통 밖으로 열린다. 내리는 문 3,4개는 바로 정류장 밖으로 연결된다. 버스 운행 방식은 트램과 비슷하다. 버스 전용차로 위주로 다니고 버스 안에도 노선도가 있다. 이런 형태로 3~4개 정도의 노선이 있는 모양이다. 원통 정류장을 제외하면 다른 도시에서 트램을 타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다. 어쨋든 숙소는 터미널에서 환승 없이 갈 수 있었다.


숙박_Motter Home Hostel_도미토리_2

생각외로 호스텔이 많았다. 오래 머물진 않을 거라 깔끔해 보이는 곳으로 골랐다.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동네가 조용하다. 집들의 마당도 널찍널찍한 것이 일본이나 유럽의 주택가를 연상시킨다. 브라질에서 묵었던 세 곳의 호스텔 중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도미토리 3,4개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가족들이 같이 운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편안해하는 숙소 형태다. 전원주택이라 잔디밭도 있고, 거실도 널찍했다. (당구대만 치웠어도…) 조용한 도시인 줄 알았지만 금요일, 토요일엔 사람이 많았다. 다들 저녁에 사라진 것으로 보아 호스텔 주도로 클럽을 다녀오는 것 같다.

집 근처에 큰 슈퍼마켓이 있어 히우에서 제대로 못한 마트 구경을 했다. 이때부터 망고와 파파야를 번갈아가며 한 사발씩 먹었다. 마트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여러 간장과 우동면, 인스턴트 야끼소바, 기린 맥주였다. 일본 다음으로 일본 사람이 많은 나라가 브라질이라고 한다. 기린 맥주도 수입이 아니라 브라질에 자체 생산라인이 있는 모양이다. 토닉 음료까지 따로 있었다. 야끼소바는 일반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아는 야끼소바랑은 좀 다르다.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어 볶은 짜파게티같다.) 오랜만에 우동면을 보게 됐으니 숙소에서 샐러드 우동을 한 번, 볶음우동을 한 번 해먹었다. 숙소 언니가 그걸 보고 야끼소바 만드는 걸 알려주면 레드빈 삶는 걸 알려주겠다고 했다. 하루 더 머물렀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요시장(Feira do Largo da Ordem)_0212

토요일에 도착해선 실컷 먹고 잤다. 우리에게 꾸리찌바를 편히 둘러볼 날은 일요일 하루였다. 네이마르 어쩌구하는 건축가 박물관도 유명하다. 전망대도 꾸리지빠 전경이 좋단다. 둘 다 못갔다. 일요시장은 부지런히 찾아갔다. 천막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장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시내 중심 광장까지 이어진 시장을 쭉 둘러보는 데만도 반나절이 걸렸다.

규모뿐만 아니라 진열된 상품도 넘나 매우 매력적인 것이다. 보통 이런 시장엔 예쁘고 아기자기한 장식품들만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장엔 예쁘고 아기자기한 실용품들이 많았다. 거기다 브라질 사람들이 워낙 장거리 버스를 많이 타서 그런지 장기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물건이 많았다. 오랜 고심끝에 여편님은 선글라스를 넣을 면 안경집을 샀고, 난 아마존 테가 물씬 나는 천연염색 티셔츠를 샀다.


: 선글라스 넣을 면 안경집(프리다 칼로와 꽃 무늬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꽃 무늬가 완성도 면에서 앞섰다.)

: 실크 스카프(난 실크를 터키에서 안 사고 왜 여기 와서 사냐고 물었다. 친절한 여편님은, 지금이 당나라 시대도 아니고, 브라질에서 누에 많이 키운다고 알려주셨다.)

: 아마존 테가 물씬 나는 천연 염색 티셔츠를 하나 샀다. 잘 어울린다. 빨면 천연물이 나온다.

: 시장을 나와서 광장 바닥에서 가짜 축구바지를 하나 샀다. 일주일뒤 올이 풀리기 시작했다.


대강 이런 소핑을 마치고, 점심 거리를 찾았다. 호스텔 사람들이 먹거리도 풍성하다고 했다. 왠지 튀김거리만 한 가득일 것 같았다. 여기도 튀김, 저기도 튀김이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튀김집에서 각각 1튀김을 했다. 살짝 배가 고파 트럭에서 튀김을 하나 더 시켜먹었다.


꾸리찌바 식물원(Jardim Botânico)_0212

식물원도 유명하다고 했다. 식물원이라기보단 큰 공원에 유럽식의 정원을 더한 형태다. 찾아가는 게 좀 험난했다. 미리 트램이나 버스 노선도가 포함된 지도를 챙겼다면 좋았을 것이다. (터미널 관광센터에선 한 철 지난 지도를 줬다. 식물원에 가니 버스 노선까지 그려진 지도를 줬다.) 도심을 한참 헤메고 나서야 식물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정류장에 전체 버스 노선도가 없다. 포르투갈어가 안되니 설명을 들어도 헤맸다. 자꾸 걷게 만드는 친환경 도시다.

일요일이라 식물원엔 사람이 한가득이다. 공원이 크고 쾌적하다. 주위엔 대형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서울숲을 연상케 한다. 자꾸 서울이 연상되는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 시절 버스 체계를 바꿀 때 꾸리찌바를 참고했다는 소문을 들어서다. 다양한 열대 식물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기대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냥 놀러 오는 공원이다.

다른 도시와 달리 일요시장, 식물원에서 도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본 것 같아 뿌듯했다.


미국과 쇼핑몰

다음날은 호스텔에서 오전 업무를 마치고, 쇼핑몰에서 시간을 떼우기로 했다. 쇼핑몰 가는 길에 식당가가 몰려있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웃백처럼 생겼다. 매장 안에 들어가니 진짜 아웃백이 따로 없다. 메뉴도 고기 일색이다. 버섯 리조또만 따로 시키니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뻑하면 고기가 나오는 브라질의 메뉴에 좀 물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뒷마당 시절로 불리던 때가 길어서 그런지 곳곳에서 미국 문화를 많이 느낀다. 언제나 콜라를 한 페트씩 찾는 사람들, 패트가 2, 3개는 들어가는 햄버거 등등, 미국 포맷을 그대로 따르는 드라마, 예능 방송 등등. 정치적으론 다른 노선을 타도 한 번 스며든 문화색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긴 애매한데 분량을 채울 길이 없다. 쇼핑몰에선 쇼핑을 했다. 개인적으로 주변국 중에선 브라질 디자이너들의 감각이 가장 탁월해 보인다. 기념품도 그렇고, 쇼핑몰에서 보이는 옷들도 많이 마음에 든다. 여편님은 큰 맘 먹고 검은 원피스를 샀다. 언젠가 탱고바에 입고 가신단다. 겨우 시간을 떼우고 터미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스트레칭까지하다가 밤 버스를 탔다.


팟캐스트_차이나는 도올

버스 대장정에서 나에게 큰 힘이 됐다. 워낙 대국을 여행하다보니 중국 얘기가 쏙쏙 박혔다. 방송을 녹음한 거라 다른 팟캐스트에 비해 훨씬 자극적이다. 알게 모르게 중국에 대한 편견만 갖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중국 현대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11 따봉(Tudo bem)

브라질 어딜가나 만날 수 있는 것이 따봉이다. 슈퍼에서 잔돈을 맞춰내거나, 숙소에서 접시를 깨끗하게 씻어놓기만 해도 따봉을 해준다. 별 거 아닌데도 뿌듯해서 괜히 따봉을 받으려고 안해도 되는 일도 하게 된다. 솔선수범, 평화왕 여편님은 어딜가나 따봉을 천지로 받았다. 셈나서 나도 초반엔 하루에 몇 따봉을 받았는지 세봤다. 난 하루 1따봉 받기도 벅찼다. 어떤 여행자는 소매치기가 접근하는 걸 알고 따봉을 해주니 소매치기가 맞따봉을 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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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년 간의 여정은 라틴아메리카를 가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이 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 첫 발을 브라질에서 내딛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브라질은 남미 대륙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 10개 대륙과 국경을 맞댄다. 남방의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주가 가지는 문화적 다양성이 유럽 국가간에 가지는 다양성보다 클 것이다. 우리가 3주 동안 밤버스를 죽어라 타면서 돌아본 지역은 서남부 지역에 국한된다.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포르투갈어를 배워서 반 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 브라질을 돌아보고 싶다는 포부를 갖게 됐다.


일정과 이동_20170207_20170301

히우데자네이루 공항으로 입국했다. 위험과 재미가 정비례하는 도시라 3일 밤만 자고 도망쳤다. 이과수폭포를 바로 가는 게 겁났다. (23시간..) 중간에 위치한 생태도시 꾸리찌바에서 2박을 하고 브라질 이과수로 갔다. 이과수에서 5박을 하고 브라질 최남단 Rio Grande sul 주의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로 갔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카피바리(Capivar do sul)라는 작은 마을의 농장에서 열흘을 머물고 우루과이로 왔다.

이런 일정이 나온데에는 카니발이 큰 역할을 했다. 당초 2월 초에 브라질로 넘어온 것도 카니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1월 말이 카니발 기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브라질 숙소를 알아보니 2월 중순부턴 죄다 예약, 카니발 기간은 2월 말이었던 것이다. (카니발 기간은 음력 설처럼 음력 설처럼 바뀐다. 카니발 피해 2월 초에 같이 가자고한 도지니에게 또 미안했다.) 카니발엔 폭등하는 호텔 가격도 문제지만, 저 더운 밤에 서로가 땀범벅이 되고, 길거리의 튀김으로 배를 채우며, 밤을 지새울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카니발 기간에 피난을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주변국으로 빨리 갈 수도 없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모두 이 카니발 기간이 최대 휴가철이었다. 우리의 사랑 워크어웨이를 통해 이 난국을 해결했다.


광고_숙박_호스텔홉스(Hostelhops)_https://www.hostelhops.com

브라질 히우, 꾸리찌바, 이과수 3곳에선 모두 호스텔 세계를 이용해 미리 예약한 호스텔에서 묵었다. 워낙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라 같은 도시에도 호스텔들이 천차만별로 흩어져 있어서 여러 개 둘러볼 엄두가 안났다.

여행하면서 가장 아까운 것이 내 숙박비의 10~20%를 부킹땡컴이나 호스텔세계, 공기방울 같은 기업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것이었다. 저 위에 말한 업체들은 예약만 대행하고 취소는 알아서 하래서 이미 예약해 놓은 건 취소하기도 복잡하다. (망해라) 그래서 생각한 아이템 중에 하나가 협동조합 형태의 글로벌 숙박업소 네트워크였다. 이미 이런게 있다는 걸 꾸리찌바에서 알았다. 다음 번에 숙소 예약할 때부턴 이 Hostelhops를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활용은 못하고 있다.


지역 간 이동_버스

브라질 내에서 지역 이동은 뻑 하면 밤 버스다. 히우-꾸리찌바-이과수-포르투알레그레-추이(Chuy, 우루과이 국경)까지 총 4밤을 버스에서 보냈다. 버스 시간과 가격은 http://www.buscaonibus.com.br/ 사이트에서 확인 한 뒤 터미널에서 예매했다. Rodovaria라고 불리는 터미널의 크기는 도시 크기별로 천차만별이고, 버스 회사는 수십 개라 미리 버스 회사를 알고 가는 게 편했다. 히우의 버스 터미널은 정말 컸다.

10년 전 블로그 글에선 바퀴 3개 달린 버스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겁을 잔뜩 먹었었다 브라질의 버스 등급은 CONVENCIONAL(일반)-EXCUTIVO-SEMI LETTO-LETTO로 나뉜다. 평범한 좌석버스에서부터 우등, 반침대, 완전 침대다. 버스 회사별 품질은 복불복이지만 우리가 탄 건 모두 EXCUTIVO이라 큰 불만은 없었다. 오래된 버스여도 화장실은 다 멀쩡했고, 아침엔 휴게소도 들렸다. 와이파이 되는 버스도 많다. 물도 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다른 남미 버스들보다는 품질과 서비스가 한참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여전히 브라질 국내선 항공 가격은 비싸다. 브라질 사람들은 장거리 버스가 워낙 일상이라 그런지 터미널은 늘 북적인다. 인상적인 풍경은 배개와 이불이다. 주로 할머니집 가면 있는 꽃무늬 배개를 들고 탄다. 버스용으로 고정된 듯하다. 든든하게 이불까지 챙겨서 타는 사람들도 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기 때문이다. 우린 남방과 바람막이를 배낭에서 따로 빼서 들고 탔다. 발 받침이 비닐로 쌓여있어 여자들의 레깅스가 부러웠다.



히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_0207_2010

Ronaldo가 호나우두인 것과 같은 이치로 한국어로는 히우데자네이루라고 표기하는 게 적합하다. 올림픽 덕분에 리우라는 표현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인구 천 만, 올림픽, 카니발 등 여전히 브라질을 상징하는 도시다. 위험하지만 않았다면 좀 더 넉넉히 머물렀을 것이다. 그만큼 재밌고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만난 리우 살던 언니부터 호스텔 스탭까지 이렇게 현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주의를 거듭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3일만 깔끔하게 채우고 나왔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입국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남은 유로를 환전하려고 했다. 85유로가 계산기론 약 280헤알인데 환전소에선 200헤알을 주겠단다. (다음날 도지니는 5파운드를 들고 왔는데 환전소에서 2헤알을 주겠다고 했단다.) 택시기사들이 암환전을 제시했지만 믿을 수가 없어 먼저 돈을 뽑았다. 그리고 호스텔에서 알려준대로 국내 공항으로 가는 셔틀 버스를 탔다. 국내 공항으로 간 뒤 택시 타고 오라고 했다. 대충 시내에 들어오니 버스가 중간 중간 서기 시작했다. 여편님이 근처에 지하철 역도 있으니 호텔 앞에서 내리자고 했다. 숙소까진 약 2km 아침이라 체크인 시간도 넉넉하니 설렁설렁 걸어가기로 했다.

온도 30, 습도 80%를 넘나드는 더위를 하루만에 겪으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리스본은 겨울이었다.) 다행히 호스텔까지 가는 길은 시장통이라 사람은 많았고,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여편님은 거푸 스톱, 스톱을 외쳤다. 배도 고프니 겸사겸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만만해 보이는 식당이 메뉴를 게시하고 있었다. 리스본 생활 2주에 빛나는 포르투갈어 실력으로 쥬스와 밥을 주문해 먹었다. 다시 힘을 내어 걸었다.


숙박_Terra Brasilis Hostel_도미토리_3

거대한 빌딩 숲을 지나니 숙소가 있는 Santa Terresa가 나왔다. 호스텔 후기에 언덕이 심하단 얘기가 있었다. 빙빙 언덕을 둘러 올라가는 길이다. 집 벽엔 각양각색의 그림들이 그려져있었다. 점점 여편님과의 간격이 넓어졌다. 그녀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로 관광객을 위해 음료를 팔고 있는 아저씨쪽으로 간다. Santa terresa는 이 아기자기한 골목 분위기로 유명한 명소였다. 당장 아저씨에게 시원한 코코넛워터를 사마셨다. 겨우 정신을 차려 숙소를 찾아간다. 여편님은 리스본에서 못 다버린 오래된 옷가지들을 당장 버리기로 했다.


험난한 언덕 덕분에 호스텔은 어마어마한 전망을 자랑했다. 이층으로 된 구조인데 일이층 모두 집 넓이 그대로 테라스를 뽑아놓고 안쪽 절반만 방이 있는 구조다. 아래 층 테라스집 앞에 우거진 나무, 히우 시가지, 바다와 주변의 언덕까지 싹 다 보인다. 거기다 조식은 수박, 파파야 같은 과일과 빵, 케잌, 진한 커피까지 맘껏 먹을 수 있다. 방은 깨끗하진 않지만 침대도 튼튼하고, 아래 수납 공간도 있다. 화장실이 냄새가 좀 나고 좁은 것 빼면 흠잡을 데가 없는 숙소다. 심지어 도미토리 가격이 30헤알(10달러)라니 말도 안된다. 어디 따로 카페나 바에서 전망을 즐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 이 호스텔 때문에라도 히우에 더 머물고 싶었다. 대도시의 호스텔 답지않게 스탭들이 모두 다정하고 (몇몇은 귀엽기까지) 친절했다.

추가로 정수필터와 카페에서나 쓰는 얼음 제조기까지 있었다. 여편님은 이 얼음제조기를 최고의 애정 포인트로 꼽았다. 히우의 찌는 날씨는 얼음 탄 음료 없이는 버티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정수시설은 이후 경험한 모든 브라질 호스텔에 다 있었다. 워낙 전염병이나 바이러스에 민감한 나라라 이런 관리는 더 철저한 것 같다.

유일한 단점은 여전히 언덕이다. 시내 관광을 갔다가도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그나마 짧고 안전한 길은 천문학적인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과라이와의 대화

오전 시간에 녹초가 되어 호스텔에 도착했지만 스탭이 친절하게 바로 체크인을 해줬다. 과라이라는 이 청년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 매우 큰 관심을 표했다. 과라이는 브라질을 넘어 남미 최고의 대학이라는 상파울루 대학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다. 방학을 맞아 호스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방도 우리와 같은 방을 쓴다. 첫날부터 나갈때까지 (대부분 여편님과, 한번은 2시간 동안) 한국과 브라질의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언어의 천재 과라이는 여편님이 한글의 맛을 보여주니 당장 학교 수업에 한국어가 있는 걸 알고는 다음학기에 배우겠다고 돌아가면 알아볼거라고 했단다. 브라질은 우리와 달리 대학까지 공립은 모두 무상이라고 한다. 물론 사립도 있지만 초중고는 사립이, 대학은 공립이 교육 환경이 좋단다. 의료의 경우도 모두 무상이며, 심지어 여행 온 외국인까지도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경제 사정은 매우 좋지 않다. 히우를 기준으로 우리가 체험한 물가는 한국과 비슷한데, 최저임금은 한 달에 900헤알(36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12시간 걸리는 히우-꾸리찌바 간의 버스 가격도 150헤알이 넘는데, 멀리서 일자리 구하러 히우에 온 사람들은 고향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과라이는 이런 차이들에 대해 브라질은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고,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럴 거라고 했다. 트럼프의 취임에 하루가 멀다하고 들썩이는 한국 사회를 보며 식민지나 다름없다고 인정했다.


Santa Terresa 주변과 시내_0209

의도치 않게 숙소는 유명 관광지 한 가운데였다. 한국으로 치면 상상 속의 서민 동네인 부암동 느낌이다. 오래된 트램이 다니고, 벽화도 많다. Largo Dos 어쩌구하는 트램역 주변에는 식당도 몰려있다. 관광객 대상이라 가격이 좀 비싸다. 그래도 저녁은 이 근방의 식당에서 먹고 숙소로 후다닥 귀환했다.

언덕길 말고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은 아래서 보면 색색이 칠해져있다. 골목길 벽화를 통해 밤길 범죄가 줄어들었다는 서울의 한 소금마을이 떠오른다. 우리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도지니를 호스텔로 불러서 함께 구경하며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시내로 이어진다. 도시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고 돌아보니 커다란 도서관(Biblioteca Nacional do Brasil)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구경이 가능하다고 했다. 탕크레두 네베스(Tancredo de Almeida Neves) 대통령과 또 어떤 탐험가의 기획 전시를 대강 흝어봤다. 도서관 주변에는 시청과 극장, 박물관 등 히우의 주요 건물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서점_Livraria Cultura_0209

간단히 시내 구경을 마치니 배가 고파졌다. 첫날 먹었던 시장통의 밥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서점이 보여 들어갔다. 작은 서점인 줄 알았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넓었다. 5년 전 상파울루에 잠깐 들렀을 때 가봤던 서점이다. 브라질 각지에 지점이 있고, 온라인 배송도 한다. 내가 브라질 사람이라도 자기네 강 이름을 가져다 쓰는 미국 서점을 싫어할 것 같다. 오히려 이 서점이 아마존의 감성을 잘 표현한다. 한 가운데 공룡상이 있고, 책장을 빙빙 둘러서 올라가게 만들었다. 책장은 모두 원목 색상에 초록을 더했다. 유아 코너엔 애니메이션 영화도 틀어줘서 더위를 피하는 어른들도 많다. 좀 더 올라가니 레고와 블럭 코너가 있었다. 셋이 블럭 앞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탑을 쌓았다. 우리가 기초 공사에 매진하는 사이 도지니는 어느새 건축공학을 실현했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밥을 먹어야해서 나왔다. 꾸리찌바 쇼핑몰에도 지점이 있어 찾아갔는데 약소했다.


예수상(Cristo Redentor)_0209

도지니와 헤어져 예수상을 보러 갔다. 전날 해변의 여파로 무척 힘들었다. 체력이 소진되었지만 여편님은 히우의 하이라이트를 놓칠 수 없다고 했다. 번뇌했다.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탔다. 예수상 가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어려움은 없었다. 예수상으로 가는 기차역으로 갔다. 왕복 기차표와 예수상 입장권을 포함해 72헤알이었다. 친절하게도 예수상 현지의 기상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지금 구름이 많이 끼어 전망이 안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날 다시 오기는 힘들 듯 해서 입장권을 샀다. 예수상은 왠지 신성하게 안개가 끼어야 제맛일 것 같았다.

기차가 출발했다. 산길을 돌아올라갔다. 열심히 구경하는 여편님과 달리 난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 이런 밀림이 존재하다니, 괜히 브라질이 아니다. 높이 올라가니 히우 전경이 보였다. 기차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차에서 내려서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이마저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싶진 않았다. 사람이 어마어마했다. 히우 관광객을 여기 다 모아 놓았다. 시내에서 함부로 카메라 꺼내기가 힘든 탓에, 모두 사진 열정을 여기서 분출했다. 예수 앞에 가부좌를 트는 사람부터 눕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다행히 점프샷 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이 예수상이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줄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데 시내에선 엄청 커보인다. 제주도 산방산에 불상과 비슷한 포스였다. 안개가 부옇게 끼니 보는 맛은 더했다.

예수상에 와서 더 인상적인 건 아름다운 히우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구내 식당에서 수분을 장전하고, 기념품 가게에서 양 가 3대 성인을 위한 예수상 기념품을 샀다. 돌아오는 기차는 1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파네마 무지개 해변_Ipanema Rainbow Beach_0208

히우 도착 다음날, 당장 해변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 열기는 해변밖에 풀어줄 수 없었다. 여편님은 원피스+리스본에서 구입한 가죽 가방으로 해변의 언니들과 자웅을 겨룰 준비를 했다. 호스텔 데스크에서 과라이가 제동을 걸었다. 그렇게 여행객 티 팍팍내면 단박에 줄 끊어서 가방 가져간다. 길에서 카메라, 핸드폰 절대 꺼내지 마라. 백팩을 메라. 여편님이 백팩으로 바꾸려하자 내가 또 제동을 걸었다. 이왕이면 나 하나만 백팩을 메자. 그럼 너 또 나중에 가방 무겁다고 징징댈 거 아니냐. 결국 나 하나만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열기는 더욱 더 고조되었다.


난 코파카바나 해변만 유명한 줄 알았다. 여편님이 까를로스 호빙(Antonio Carlos Jobim, 브라질 재즈, 보사노바의 전설, 히우데자네이루 공항도 이 사람의 이름을 땄다.)Garota de ipanema(The girl from ipanema)를 모르냐며, 이파네마 해변이 더 유명하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많이 봤던 조리 브랜드 이름도 여기서 온 것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파네마 해변으로 갔다. 해운대 해변 가는 것처럼 길 잘 닦인 건물 사이를 지나서 길만 건너면 해변이었다. 코발트빨 바다 색깔하며, 5미터가 넘어 보이는 파도까지 어마어마했다. 왜 히우해변히우해변 하는지를 단박에 느꼈다. 언니들의 자태도 역시 심상치 않았다.

해변의 동태를 파악하고 일단 점심을 먹으러 돌아섰다. 한 블럭 안으로 들어가니 스타벅스와 여러가지 햄버거 가게와 쥬스바가 몰려 있었다. 생경해 보이는 브라질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무지막지해보이는 햄버거를 달달한 마테차와 함께 우겨 넣었다. 화장실이 없다고 해서 별 수 없이 스타벅스를 갔다. 화장실 때문에 많이 오는지 직원이 바로 화장실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3시간 뒤, 돌아오는 길에 화장실을 또 가려고 들어갔는데 그새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다시 해변으로 향했다. 여편님이 파라솔과 의자를 빌리자고 했다. 파라솔 대여 가격은 단돈 10헤알, 의자는 5헤알 시간은 무제한이었다. 파라솔과 의자 하나씩을 빌렸다. 번갈아서 해변을 다녀오기로 했다. 여편님이 자리를 잡고, 난 신이 나서 해변으로 달려갔다. 무릎까지만 들어가 있어도 엄청난 파도에 중심을 잃었다. 놀다 쉬다를 반복하다보니 의구심이 들었다. 히우에 그 유명한 언니들은 해변을 거닐기만 할 뿐, 내 주위엔 남자 천지였다. 숫자를 헤아려보니 대략 70%가 남성끼리 자리를 잡았다. 여편님에게 의문을 제기하자 뒤에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을 가리켰다. 그럼 왜 남자 커플만 있는 거야? 원래 히우가 게이 많기로 유명하잖아. 나중에 호스텔에 가보니 게이 파티 찌라시도 있었다. 얼른 모래를 털고 일어나 좌우 100미터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양쪽은 가족단위 투성이였다. 허무감에 날씨도 선선해졌다. 해가 지기 전에 정리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파라솔 빌려준 아저씨에게 팁을 좀 얹어줬다. 해변 사워기에 물이 안나온다고 하니 직접 양동이에 물을 떠다가 발을 씻게 해줬다.


엄청나게 저렴한 파라솔 가격도 놀랍지만, 해변에 앉아있으면 재밌다. 무지개 해변인 걸 늦게 알아차린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카니발 뺨치는 복장으로 음료 파는 아저씨들, 우루과이에서 왔다는 팔지 파는 청년,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아싸이(브라질에서 유명한 베리의 일종이다. 눈에 좋다고 여편님이 자주 사줬다.) 빙수를 파는 아싸이 아저씨 등, 언니들이 아니어도 심심할 새가 없었다.

정신놓고 한나절을 보냈더니 밤에 몸에서 불이 났다. 다음날 온몸이 팅팅 붓고 난리가 났다. 여편님은 긴급하게 오이를 썰어 붙였다. 둘 다 어린시절 이후 처음 겪는 해변 화상이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고, 피부 껍질이 벗겨졌다. 이후 한 달 동안 여편님은 햇볕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모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20 상승했다.


후식_망고의 향기

브라질에 오니 열대 과일을 맘껏 사 먹을 수 있었다. 숙소에서 아침에 주는 건 맘껏 먹기 눈치가 보였다. 대신 슈퍼마켓에서 망고와 파파야를 실컷 사다 먹었다. 초반에는 망고에 미쳤다가 나중에는 파파야의 매력에 빠졌다. 물리지도 않고, 건강과 소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 처음 히우의 슈퍼에서 망고를 고르던 중, 이 많은 망고 중 뭐가 맛난지 몰라 쩔쩔 거렸다. 그러다 여편님이 지나가던 아주머니한테 망고 좀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먼저 야채 사는 법을 물어봤던 아주머니다.) 계산을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직접 망고를 들고 끝 부분의 냄새를 맡아본다. 향이 망랑한 것이 맛난 망고란다. 역시 그 망고는 식감과 당도 뿐만 아니라 좋은 망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씨까지 오묘한 향을 내었다.

엄청난 명성 덕분에 휴대폰은 담고, 맵양 대신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돌아다녔다. 다들 친절히,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후기_우버(Uber) 체험기

밤버스를 타기 위해 호스텔 근처에서 오후까지 시간을 보냈다. 가방을 찾으러 숙소에 돌아가니 과라이는 없고, 과라이의 후임 예정자인 하파엘(Rafael)만 있었다. 체크아웃할 때 과라이는 터미널까지 그냥 우버를 타고 가라고 했다. 전날 도지니한테도 들었지만 시내 중심에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공무원들이 정부의 효율 정책에 반대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에 대응해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되었다고 했다. 브라질 다른 지역에서는 경찰이 파업해 범죄가 크게 증가하기도 했단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우리도 별 수 없었다. 택시보다도 우버가 싸고 더 안전하다고 했다.

영어가 서툰 하파엘과 어찌어찌 얘기를 해서 우버를 불렀다. 몇 헤알 더 주고 슈퍼 우버를 불렀다. 좋은 차가 왔다. 기사는 몇 번이나 길을 잘못들고, 금요일 밤에 터미널 앞 정체가 극에 달하면서 한참만에 도착했다. 사전에 통지된 요금이 17헤알이었는데 27헤알을 내라고 했다. 그냥 20헤알만 주고 내려버렸다.


카드, 숙박과 마찬가지로 이젠 택시도, 전 세계 어딜가든 미국(혹은 본사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기업에 일정 부분 수수료를 낸다. 외국에서 온 우리는 물론이고, 히우 사람이 히우에서도 택시보다 우버를 선호하고, 한국 사람이 제주도를 가도 공기방울을 쓴다. 국가에 세금을 내던 시대에서 글로벌 기업에 수수료를 내는 지구촌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어려운 얘기다.



부록_영상_MBC 세계의 축제_브라질 리우 카니발_https://www.youtube.com/watch?v=YFmAT2GES10

히우 공항에서 시내 가는 길, 오래된 창고 건물을 보니 다큐에서 봤던 축제 준비의 현장을 스칠 수 있었다.


부록_영상_웨이스트랜드(Waste Land)_빅 무니즈(Vik Muniz)

브라질과 관련한 쓰레기 다큐멘터리라 예전에 받아두고 안 보던 것이었다. 카사블랑카 공항에서 심심해서 틀어보니 재미있었다. 쓰레기가 아니라 쓰레기 처리장에서 재활용품을 줍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상파울루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가가 히우데자네이루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미술로 표현한다. 히우 카니발 다큐를 보면서 들었던 저 많은 쓰레기에 대한 회의와도 점접이 닿았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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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보급

리스본에서 우리가 목표한 바는 휴식과 더불어 대대적인 보급이었다. 등산화는 안달루시아에서 거친 올리브밭을 다니며 둘 다 구멍이 송송 뚫렸다. 태양의 땅 안달루시아와 모로코에서 지독한 한파를 겪으며 폭신한 패딩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아웃도어 제품이 저렴한 유럽에서 대강 준비해두는 게 좋아보였다. 거기다 우리 숙소는 이런 쇼핑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이런 저런 준비를 하며 마치 1년 전 서울에서 여행 준비를 하던 때가 그려졌다.


DECHATLON LISBON_0122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나 충격을 준 데카틀론이 리스본에도 많았다. 운명적으로 집 앞 El corte Ingles 옆에는 큰 데카틀론 매장도 있었다. (데카틀론 매장은 CITY와 일반 매장으로 나뉜다. CITY는 시내 중심가에 잘 나가는 물품만 모아놓았고, 일반 매장은 주로 대형 쇼핑몰에 있다. 교외에는 이케아처럼 팩토리 아울렛 형태의 매장도 있다. 차도 없는 뚜벅이가 굳이 교외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당장 데카틀론을 가서 답사를 하고 긴급히 필요한 물품들만 먼저 구매했다. 추후 백화점과 근처의 쇼핑몰을 둘러보고도 구하지 못한 물건들을 몰아서 구매했다.


쇼핑몰_AMOREIRAS_0126

다른 건 아무데서나 사도 되지만 등산화는 COLOMBIA를 사고 싶었다. 둘 다 여름부터 신고있는 브랜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30분거리의 쇼핑몰에 콜롬비아 매장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쇼핑몰에 가기로 한날 비가 내렸다. 작은 우산 하나를 모아쓰고 걸어갔다. 비가 엄청 퍼붇기 시작했다. 유럽은 겨울이 우기라는 걸 이때 실감했다. 별로 춥지도 않은데 겨울에 관광객이 적은 건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 리스본에서 머무는 내내 맑은 날이 손에 꼽았다. 중간중간 여편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에 젖으며 강행군을 했다. 쇼핑몰에 도착했을 때는 둘 다 발이 쫄딱 젖었다.

쇼핑몰을 돌아보니 스포츠매장은 하나만 있고, 콜롬비아는 없었다. 안내센터에 물어보니 없어졌단다. 스포츠매장이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나름 매장 규모도 컸고, 데카틀론엔 없던 브랜드들도 보였다. 난 잽싸게 아이다스 러닝화 하나를 점찍어두고 등산화를 둘러봤다. 서양친구들이 자주 신는 가죽바탕이 맘에 들었다. 여편님은 지금 발이 물에 불어서 신어볼 기분이 아니란다. 본인도 가죽바탕 등산화를 신고 싶은데 맞는 사이즈도 없단다. 울상이다. 평소 목 보온을 중요시하시는데 목에 둘렀다 두건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을 사기로 했다. 티셔츠도 몇 장 싸게 샀다. 신발은 나만 등산화와 러닝화를 샀다.


새 등산화는 BERG라는 브랜드다. 사실 여편님은 이 브랜드를 극혐한다. 나에겐 친숙한 브랜드다. 이것도 오 년전 리스본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허니, 허니 친구가 리스본 다리 건너 쇼핑몰을 간다길래 따라나섰다. 메고 다니던 큰 배낭이 다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 때 유럽 아울렛의 진가를 처음 경험했다. 60리터 배낭 하나가 45유로였다. 침낭은 20유로, 1인용 텐트도 10유로에 샀다. 여행 중 캠핑은 상상도 하지말라는 여편님의 엄명에 텐트는 집에 있다. 침낭은 지금도 폭신하게 잘 쓰고 있다. 문제는 배낭이다. 평소 심플함을 신주로 모시는 여편님에겐 너무 자잘한 줄이 많은 구조다. 거의 1년 가까이 뒤에서 내 배낭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났단다. 그 배낭을 겨우 이탈리아에서 바꿔치웠는데 여기서 또 BERG를 만났으니 악몽인 것이다. 티셔츠와 목플러모두 BERG.


EL CORTE INGLES

백화점에도 당연히 스포츠 코너가 있어 둘러봤다. 포르투갈 경기가 안좋아서 인지 늘상 70%세일을 했다. 이번엔 스포츠 주간이라 더 할인을 한단다. 상당한 고심끝에 여편님이 아디다스 러닝화 하나를 골랐다. 내 것과 색 디자인 모두 흡사하다. 여행 중엔 가성비를 제일로 따지다보니 점점 커플아이템이 늘어간다. (심지어 새로 산 패딩은 아예 같은 제품, 같은 색이다.) 내 신발만 샀다고 울상이던 얼굴이 비로소 펴졌다. 다다음날은 심심하니 주방 코너를 가보자고 했다. 막상 내가 신나서 BRA의 대형 모카포트를 하나 질렀다.


쇼핑목록_데카틀론 : 231유로

겨울패딩 60유로 2: 리스본에서 개시했다. 여편님은 이불덮고 걸어다니는 만족도라 한다.

내 등산바지 10유로 : 면바지 감성까지 톡톡

여 츄리닝 10유로 : 지난번에 산 츄리닝은 커서 내가 입기로

여 레깅스 4유로 : 레깅스는 많을수록 좋다

여 등산화 70유로 : 돌고 돌아 데카틀론에서 가장 고급진 걸로 구매

내 털모자 5유로 : 에스키모 감성

물통 10유로 : 한 달 뒤 버스에 놓고 내림

마사지 고무공 2유로 : , 발목, 등 등의 피로를 녹여줌


쇼핑목록_SPORT ZONE : 121유로

내 러닝화 50유로 : 발이 불었을 때 사서 그런지 좀 큼

내 등산화 55유로 : 한 달 째 들고만 다니고 있다. 무덥고 평지라 신을 일이 없다. 브라질에도 가죽이 유명해서 그런지 브라질 국기 붙은 등산화 브랜드도 있다. 돈 좀 더주고 필요할 때 샀어도 됐을 것이다. 유비우환

티셔츠 26유로 : 싼게 콩비지떡, 잘 입음

목플러 210유로 : , 마스크, 이마 두건 등으로 활용 예정


쇼핑목록_EL CORTE INGLES : 42유로

여 러닝화 25유로 : 가격, 디자인, 성능 뭐하나 빠지는 게 없음

모카포트(6인용) 13유로 : BRA 모카포트가 가성비가 좋은 것 같아 집에 보낼 요량으로 하나 구입

따개 4유로: 맥가이버 칼의 와인따개가 불만족스러워 와인따개, 병따개, 작은 칼로 구성된 걸 하나 샀다.


1968_택배의 기적_포르투갈 우체국

모로코에서 실패한 택배를 리스본에서 다시 보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쇼핑까지 마치고 구시가지 목전에 있는 중앙우체국으로 향했다. 번호표를 뽑고 창구로 갔다. 친절한 직원이 짐을 저울에 올려보란다. 2.9kg, 한국이면 젤 싼걸로 보내도 70유로란다. 짐을 좀 더 줄여서 2.3kg, 그래도 70유로란다. 별 수 있나, 보내야지. 적당한 박스를 가져다줄테니 포장하란다. 테이프가 없으면 연결된 문구점에 가서 사오란다.

여편님이 테이프를 사러 간 사이 기억을 더듬었다. 아침에 포르투갈 우체국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니 택배 2kg 어쩌구 하는 내용이 있었다. 혹시 몰라 1968g을 만들어서 다시 요금조회를 부탁했다. 20유로란다. 여편님이 테이프를 사고오자 이 소식을 전했다. 2Kg 초과할까봐 테이프도 최소한으로 말았다. 박스와 테이프 비용 등으로 5유로 정도가 더 들어갔다.

약 열흘 뒤,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오빠, 택배 왔어”, “어디서?”, “포르투갈”.

다시 며칠 뒤, 여편님이 말했다. “친구가 엽서 받았데”, “어디서 보낸거?”, “피렌체, 이탈리아”, “세 달 걸렸네”

숙소 정리_짐싸기

리스본을 떠나는 날, 2주간 벌여놓은 방을 정리했다. 와인병이 큰 테이블에 일렬로 세워니 꽉 찼다. 쇼핑한 것도 많고, 그만큼 버릴 것도 많아졌다. 안 그래도 청소 열심히하시는 아주머니한테 미안했다. 20유로를 팁으로 두고 나왔다.


숙소 정리_영국 설거지

숙소를 떠날 때 쯤 엄청난 걸 목도했다. 린느와 유럽 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영국식 설거지란 걸 알려줬다. 영국 친구들 중 일부는 설거지를 할 때 그릇과 식기에 세제거품을 잔뜩 묻혀 놓은 상태로 둔단다. 목욕하고 나서도 몸에 거품을 행구지 않고 그대로 말리거나 닦는단다. 그 예전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누가 문 두드리면 비누거품 묻은 체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샤워하다 중간에 나온 장면으로 알았던 것이, 다 끝내고 나온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귀신 같이 새로운 게스트가 설거지를 하고 나서 보니 거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싱크대에도 거품이 가득했다. 다음날도 보니 본인 먹은 건 바로바로 설거지하는 꼼꼼한 친구 같았다. 문화적 다양성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숙소의 공용 주방을 쓸 때는 꼭 그릇을 한 번 행구고 쓰기로 했다. 리스본 다음으로 런던 가는 린느가 부러웠다. 최소한 런던 호스텔엔 영국인이 별로 없을 테니까 말이다.



경제_포르투갈 인출기

첫날 유로를 뽑으려고 보니 모든 은행의 ATMMULTIBANCO로 단일화되어 있었다. 200유로까지만 인출이 가능하단다. 며칠 뒤 다른 은행을 다 뒤져봐도 해외카드로 인출 가능한 건 MULTIBANCO뿐이다. 숙소 주인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정책적으로 그렇게 정해졌단다. 대량 화폐 유출에 대비한 것인가? 나중에 만난 J군의 말을 들으니 기차역이나 구시가지에 있는 EURONET ATM 같은 데서는 그 이상도 인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경제_포르투갈 리스본 공항 택스 리펀(TAX REFUND)

리스본에서 쇼핑에 열을 올린 이유 중 하나는 세금 환급(택스 리펀)이었다. 포르투갈은 60유로 이상만 사도 세금 환급이 가능하단다. SPORT ZONEDECHATLON에서 택스 리펀용 서류를 발급받았다. 이탈리아에서 발급 받은 것도 한 번에 환급이 가능하다고 해서 잘 모셔서 가져갔다. 산 물건을 모두 갖고 가야한다고 해서 영수증에 포함된 내역 중 중간에 버린게 없나 확인했다. 양말 하나를 버렸는데 그건 다른 양말로 우기기로 했다.

공항 한쪽에 택스 리펀 창구에 가니 먼저 출국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고 항공권을 들고 오란다. 짐은 바로 붙이지말고 여기서 택스 리펀 받고 나서 따로 붙이란다. 아직 체크인 시작 전이라 기다렸다. 초조함에 초밥을 먹었다. HEINEKIN BAR 한 쪽에 초밥 코너가 있었다. 종업원이 일본 사람 같았다. 아보카도 롤 등 좀 비싸긴 해도 고품질의 초밥을 맛봤다. 된장국도 진국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시킨대로 항공권까지 들고 다시 줄을 섰다. 막상 짐 검사는 고가의 명품을 사는 경우에만 하는 것 같았다. 우린 바로 도장을 찍어줬다.

환급은 출국장 지나서 받을 수 있단다. 면세점 앞에 택스 리펀드라고 써져있다. 수수료를 건당 3유로 받아서 환급받은 건 총 45유로였다.



대서양 횡단기_LISBOA_RIO DE JANEIRO_0206_0207

리스본에서 다음 여행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갔다. 2달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티켓을 예매했다. 전부터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는 도지니와 한창 정보를 주고 받았다. 도지니는 요트 여행자한테 얻어타는 방법까지 알아봤단다. 막상 비용은 항공권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가격 체크만하다가 모로코 항공 리스본-리오데자네이루 노선이 300유로였다. 도지니한테 말해주니 바로 끊어버렸단다. 우리도 자극 받아 예매에 들어갔다. 찾아보니 TAP PORTUGAL에선 직항 노선도 300유로였다. 결제를 하다 막혔다. 결제 최종 단계에서 막히면 티켓을 먹고 안 벹는 경우가 많다. 한 시간이 지나도 가격은 계속 350유로로 올라있다. 별 수 없이 도지니한테 알려준 모로코 항공을 타기로 했다. 다시 찾아보니 26일 오후 4시에 출발해서 카사블랑카에서 4시간 경유,

상파울로에 들렀다가 리우데자네이루에 27일 아침 7시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도지니에게 알려준 건 27일 출발에 카사블랑카 경유 시간이 17시간, 리우 도착도 저녁 시간이었다. 다소 죄책감이 들었지만 우린 우리 편한 걸로 샀다. 이날 죄책감 때문인지 비행기 결제를 마치고 두통에 드러누었다.


모로코 항공(Royal Air Maroc) 탑승기

LISBOA AIRPORT 20170206_16:10 – CASABLANCA MOHAMMED V 20170206_17:30

CASABLANCA MOHAMMED V 20170206_21:30 – RIO DE JANEIRO GALEAO A.C JOBIM 20170207_07:55


초밥을 먹고 게시판을 확인해보니 출발 3시간 전, 체크인이 시작됐다. 브라질 편도 입국을 걱정했는데 체크인부터 출국, 브라질 입국 때까지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 택스 리펀을 받는다고 하니 짐을 거기서 보내지말고 한쪽에 있는 특수 수화물 코너에서 보내라고 했다. 택스 리펀 창구에선 짐이 잘 섞인다고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데 옆에 카사블랑카 환승 안내서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사실이 담겨있다. 환승 대기 시간이 4-8시간이면 카사블랑카 공항 내 항공사 라운지에서 먹고 쉴 수 있단다. 8-24시간인 경우 항공사 호텔에서 재워준다고 했다.

리스본 면세점 구경을 마치고 비행기를 탔다. 오랜만에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하늘에서 바라본 점박이 구름과 이베리아반도가 예쁘게 비쳤다. 잠시 감성돔이되어 대서양을 헤엄쳤다. 금방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요거트와 빵 등 풍성한 간식을 줬다. 옆 자리 언니도 우리처럼 리우데자네이루로 간단다. 카사블랑카에 내려서 라운지로 가려고 보니 해당 창구에 아무도 없다. 딱 네 시간짜리 환승이라 라운지 개방을 안하는 것 같다. 이런 소식을 뒤따라 올 도지니에게 알려줬다. 리우에서 다시 만나 들으니 진짜 최고급 호텔에서 푹 쉬고, 밥까지 든든히 먹고 환승했단다. 덕분에 준비한 간식이 필요없었다며 사탕 한 봉지를 우리에게 줬다.


꾸역꾸역 카사블랑카 항공에서 배회하다가 리우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장거리 국적기라 그런지 시설이 남다르다. 각 좌석마다 설치된 영상기기 화질이 아주 좋았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모든 승객이 스크린을 만끽했다. 다큐를 봤다가 애니메이션을 봤다가하면서 시간을 떼웠다. 밥도 잘 챙겨줬다. 공중에 뜨자마자 배식이 시작됐다. 하지만 앞에서부터 주느라 맨 뒷자리의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옆자리 아저씨는 잠이 들었다. 보통 이러면 방치하거나 딱지를 붙였다가 나중에 밥을 준다. 하지만 아랍의 극진한 손님대접 문화 덕인지 승무원이 아저씨를 탈탈 깨워 밥을 던져줬다. 우리도 각 와인 1병을 시켜서 생선요리와 빵 등을 싹슬이했다. 곧 잠이 들었다. 새벽 5시가 안되서 또 우리를 깨우더니 밥을 줬다. 승객 대부분이 상파울루에서 내려서 밥을 일찍 줬다.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2/3이 내렸다. 내 비행 경력 수 백회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렸다 타는 건 아니고 그냥 기다리란다. e-ticket에는 상파울루에서 기름만 넣는다고 되있었다. 리우를 거쳐 바로 카사블랑카로 가는 건지 다시 승객도 보충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엔 뜨자마자 도착했다.



부록_생선의 종말_EBS

리스본에 머물면서 이 다큐멘터리를 봤다. 전작 백성의 물고기의 국제 버전같았다. 참치, 연어, 대구 얘기가 나온다. 이걸 미리 봤더라면 우리의 유럽 여정이 완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는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엔 별로 춥지 않단다. 우리가 그냥 지나친 지브롤타 해협엔 생선을 맘껏 먹을 수 있는 동네도 있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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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보급이 주 목적이었다. 그런만큼 무리하지 않고 몇 군데만 둘러봤다.


추억의 구시가지_0124

하루 이틀 숙소 인근만 뒹굴 거리다 여편님을 보체 구도심을 찾았다. 역에서 내려 커다란 역사와 광장 건물들을 봤다. 문처럼 생긴 관문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골목길이 나타난다. 노란색 건물과 바다로 둘러쳐진 광장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움친다. 5년 전 홀로 다니던 여행이 지쳐 친구가 교환학생으로 있는 리스본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달려갔다. 당시 친구 허니는 구도심의 플랫 방 하나를 빌어 살고 있었다. 허니는 여행으로 생활비를 모두 탕진한 상태였다. 방에 맘껏 머무는 대신 생활비를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2주를 함께 지냈다. 허니와는 친한 친구들이 겹쳐 자주 만났지만 한국에서 따로 만난 적은 없는 사이였다. 그러다 여행 중 런던에서 만나 같이 다니고(엄청 싸웠다.), 독일에서 헤어졌다가 체코에서 우연히 마주쳐 얼싸안고, 다시 리스본에서 만난 것이다. 허니는 작년에 결혼해 쿠바로 허니문을 갔다. 피델 카스트로의 장례 행렬에 USA 커플 티셔츠를 입고 참석했다.


광장에서 바다를 보고 왼쪽으로 가는 길이 우리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켠으로 보이는 언덕을 올라가면 장을 보러가던 슈퍼마켓이 있었다. 허니는 쵸코맛 시리얼도 사자고 했고, 난 돈도 없는데 닥치고 콘푸레이크만 먹자고 했다. (허니 대신 여편님을 대입해도 맞는 문장이다.) 집 위치는 기억이 안나고, 허니가 알려준대로 성당(Se Catedral)으로 간다. 오래된 집 하나하나가 다 우리집 같다. 성당 앞에는 그때는 없던 툭툭이 잔뜩 몰려있다. 그 옆에 공중전화는 그대로 남아있다. 허니는 여기서 한국에 전화하면서 보는 풍경을 좋아했다. 그때만해도 보이스톡이 없던 시절이라 나도 국제전화는 꿈도 못 꿨다. 그런데 리스본의 공중전화카드는 국제전화 요금이 일반 국내 전화 요금과 별다를게 없었다. 나도 간만에 그리운 목소리들을 들었던 곳이다. 그러다 급작스레 미리 끊어놓은 항공권이 홈페이지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전화기를 붙들고 한 시간을 넘게 영어로 Orbitz 직원들과 사투를 벌여 다른 항공권을 받았다. 외국어는 절박해야 통한다는 진리를 여기서 체험했다.


구질구질한 추억 얘기가 끝나간다. 전망대를 보려고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또 무슨 성(Sao Jorge) 안에 전망대가 있단다. 내가 아는 전망대는 여기가 아니다. 입장료도 내야 한단다. 허니는 그런데를 데려가지 않았다. 반대쪽으로 내려오니 내가 알던 전망대(Santa Luzia)가 나온다. 여기 길에 자리잡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핥아먹어줘야 된다. 양 옆으로 고급진 카페들이 들어섰지만 이 소박한 카페의 전망을 따라잡진 못한다. 그 유명한 28번 트램도 이 앞을 지나간다. 바다와 빼곡한 집 배경(클라시칼한 유럽 인증샷)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트렘이 멈출 때 노랑빨강 건물쪽을 좋아한다.

골목을 더 돌아보았지만 집은 가물가물하다. 슬슬 갈아엎을 때가 된 모양인지 여기저기 파해치는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다음에 찾을 때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모양이다.


해물밥_UMA_ARROZ MARISCO_0124&0201

또 아제같지만 그때는 리스본에 한국인, 동양인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다.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인기가 많아지면서 리스본에도 한국인, 당연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 인기를 실감한 곳이 해물밥이었다. 여기도 당연히 허니는 데려가지 않은 곳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리스본 관광에 대해 사전에 알아본 일이 없다.) 하지만 곧 재회 예정인 린느가 해물밥과 타르트를 꼭 먹을 것이라 했다. 친절한 우리는 몸소 답사에 나섰다. 구시가지 문턱을 넘어서면 바로 있어서 찾긴 쉬웠다. 문이 좀 감춰졌지만 우리가 옆집에 속을 레벨은 아니다. 앞에 세사람 정도가 들어가고 우리 자리가 생겼다. 안에 들어가보니 1/3은 한국 사람, 1/3은 중국 사람이다. 당장 내일부턴 안 보여도 이상할게 하나 없는 할아버지가 메뉴를 주신다.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나와있다. 말 못해서 못 시킬 일은 없었다. 해물밥 2인분을 시켰다. 와인도 작은 걸로 하나 달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탄산음료 하나 시키는 것보단 맥주나 기본 와인 시키는 게 가장 이득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해물밥이 나왔다. 옆에 중국인은 남자 1, 여자 3의 어린애들(20대 초반)인데 남자애가 해물밥을 나눠주고 여자애들은 신이 나서 사진찍고 수다를 떨고 있다. 종종 느끼지만 대륙의 남자로 살아가는 건 참 고된 일이다. 앞의 앉은 애가 여자친구인지 본인 몫의 큼지막한 새우를 덜어준다.

해물밥의 위용은 대단한 것이었다. 왜 이렇게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여행 패턴이 유럽 일주 건, 이베리아 반도 건 포르투갈을 늦게 찾게 될텐데, 입에 안 맞는 기름지고 고소한 음식만 먹었을 것이다. 그러다 이 해물밥을 마주하면 대륙과 반도는 고향의 그 찰진맛과 (살짝 아쉽지만) 매운 거침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MSG없이도 그와 유사한 감칠맛도 난다. 그리고 해물의 양만 봐도 큼지막한 새우 몇 개와 게딱지까지 들어있어 25유로 들고 시장 가봐야 비슷하게 살까말까한 수준이다. 대강 걸걸한 해물탕 바짝 졸여 조글조글하게 밥 비벼 먹는 밥이다. 처음엔 국물이 많아보여 지나가는 직원을 부르니 뻔하다는 듯 바로 숟가락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국물은 곧 밥에 붙어 숟가락은 굳이 필요없게 된다. 옆 테이블의 유럽 친구들은 빵도 시켜 먹는데 맛있어 보였다. 끝내 시켜보진 못했다.


이 해물밥집을 린느와 함께 또 찾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숙소에서 J, J군과 진탕 와인 잔치를 벌이니 다음날 해장거리를 찾게 됐다. 낮에 우체국에 갈 일이 있어 구시가지를 찾았다. 겨우 빨간 우체국에서 일을 마친 두 코알라는 자연스레 빨간 해물밥집으로 향한다. 온 몸에 안주는 가고 혈중 와인 농도가 10%를 넘나드는 상태에서 칼칼한 해물밥을 쫘악짝 빨아들이는 기분은 어떨까. 필름 끊긴 다음날 배지근한 돼지or순대 국밥에 다데기와 깍두기 국물을 넣고 기억을 더듬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혈중의 와인을 해물액기스로 대체하고 나니 더 이상은 해물밥에 대한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자리가 별로 없어 옆에 커플도 우리와 붙어 앉았다. 여편님이 인사를 하고 말을 튼다. 바르셀로나에서 왔단다. 남자는 바르셀로나에서 호텔일을 한단다. 우리가 Pollo Ricomeson de David 식당을 얘기하니 놀란다. Pollo Rico주인장은 잘 아는 사이란다. 캄프누 경기장에는 수 십번도 더 갔다고 한다. 어지간한 구역은 다 앉아봤단다. 유니폼도 열 개가 넘는단다. 함께 한 여자는 영어를 잘 못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이름이 Eva라고 한다. 여편님은 언니 목소리가 너무 예쁘다는 말을 전했다. 호기심 많은 여편님은 전날 본 다큐에서 나온 바스크 인에 대한 궁금증까지 해소했다. 나는 차비 에르난데스를 잘 발음해서 칭찬을 들었다.


벨렘 타르트(Pasteis de Belem)_0125

타르트는 그때나 지금이나 유명했다. (누가 타르트는 마카오지 이러면 속으로 그거 다 포르투갈에서 온 거야. 난 본토의 오리지널을 이미 경험했지라며 미소짓곤 했다.) 이젠 엄청난 인파가 있을 거라는 두려움도 앞섰다. 한참 줄을 서야 한다는 얘기들이 있었다. 여편님을 보체 길을 나섰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버스 타는 곳을 몰라 좀 헤멨다. 한쪽 구석에 정류장이 있었다. 대략 삼십분을 버스가 기어서 갔다. 이런 속도면 트램을 타도 괜찮았을 것 같다. 벨렘에 내리려고 보니 반대편에 사람들이 죄다 하얀색 종이가방을 들고 있다. 내려서 가게 앞으로 가니 줄이 길어 당황했다. 다행히 다 테이크아웃하는 줄이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오전이라 자리가 많았다. 여기도 두 번을 갔는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매장 안에 자리는 워낙 많아서 일요일 오후에도 곧 자리가 났다. 그럼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테이크 아웃을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인가? 주문해서 먹어도 싸달라고 하면 별도로 싸준다. 혹시 옆 집의 커피가 기가막히게 맛있어서 더 궁극의 조합이 가능한 건가? 아니면 익숙하고 고급스러운 바로 옆의 스타벅스에서 먹는게 현대 감성에 더 충실한 것인가?


대신 여기서 해소되는 의문 하나는 맛집에 대한 열망에 동서양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타르트라는 하나의 열망으로 기다리고 모였다. 꼼꼼히 포장해서 가는 것도 다 비슷했다. 나중에 만난 거리의 방랑 연주가도 인스타를 보니 리스본에 오자마자 타르트 인증샷부터 찍었다. 우린 고상하게 타르트 4개와 커피 두 잔, 타르트 포장 4개를 주문했다. 옆의 유럽사람들은 샌드위치부터 와인까지 왁자지껄하게 시켜 먹고 있었다. 먼저 하나 먹고 두 개쯤 먹으니 이 진정한 타르트의 세계로 넘어갔다. 간만에 멀리 나온터라 배고팠는지 포장된 타르트를 뜯어 하나씩 더 먹었다.

돌아가는 버스는 사람이 더 붐볐다. 오래된 돌길을 지나니 버스가 꽤나 흔들렸다. 버터가 커피로 제거된 뱃속의 계란 3개는 부화를 시도했다. 둘 다 속이 울렁울렁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온몸에 닭털이 돋을 것 같이 힘들었다. 겨우 집에 돌아와서 간식을 먹고 살아났다. 타르트에 익숙한 유럽 사람들이 다른 메뉴들을 잔뜩 시켜 먹는덴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남은 타르트를 먹었다. 여유로운 아침에 먹는 식은 타르트는 또 별도의 맛이다.


벨렘_탐험비(Padrao dos Descobrimentos)_0125

벨렘에 가서 타르트를 먹고 나서 탐험비로 향했다. 리스본의 유명한 광경 중에 하나로 꼽히지만 타르트 먹으러 왔다가 보는 곳이다. 철저히 서양 문명의 관점이긴 하지만 포르투갈 출신의 탐험가들은 단연 돋보인다.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마젤란(Fernão de Magalhães) 외에도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바다를 향하는 모습은 여행자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탐험비 앞의 광장 바닥에는 세계 지도가 그려져있다. 리스본이나 한반도에 발을 딛고 우리가 여행한(+) 곳을 가늠해보는 재미가 있다. 타르트 옆에 있는 큰 건물도 무슨 수녀원인가 박물관이라는데 들어가보진 않았다. 타르트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 그 주변도 윤기가 난다.



신트라(Sintra) 나들이_0130

우리의 유라시아 여정을 마무리하는 곳에 왔으니 땅끝마을도 가보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다. 타르트 먹는 나들이를 하고 또 며칠을 집 근처에 있다가 나들이를 나갔다. 간만에 탁트인 교외로 나서니 신이났다. 그러다 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땅끝에 갈거라는 생각에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럼 여편님이 좀 걸어가다가 버스를 타자고 했다. 신트라 역에 내려서 먼저 식당을 찾았다. Espaco Edla라는 숙박과 카페를 겸한 곳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밝고 아늑해서 안쪽의 쇼파자리에 앉으면 땅끝이 아니라 땅바닥으로 침전할 것 같았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점심 메뉴를 주문했다. 아주 건전한 포르투갈식 정식이 나왔다. 직접 만든 고기파이와 야채였다. 가볍고 건강한 식사를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여편님은 내 뒤에 케잌 코너를 가리키며 가볍게 디져트로 마무리를 하잔다. 주문한 케잌이 나왔다. 스테이크 마냥 듬직하고 윤기쟈르르흐르는 쵸코 덩어리가 나왔다. 식사보다 든든한 디져트를 먹었다.

다시 땅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공원이 나왔다. 비가 살짝 흝뿌려서 그런지 공원 산책이 매우 상쾌했다. 동백꽃도 있다며 여편님은 신나했다. 공원을 다 돌고나니 꽃향기에 여편님의 콧물이 도졌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음악의 날_0201

해물밥으로 뼛속까지 해장을 하고 광장까지 걸어갔다. 광장을 들어서는 아치를 지나는데 스피커에서 노래를 틀어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한 여자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름돋게 짱짱한 울림에 나와 여편님은 발걸음을 멈췄다. 슬슬 우클렐레에 물이 오르던 여편님은 여기서 덕통 사고를 당했다. 얼른 가서 주머니에 돈을 넣고 오라고 했다. 역시나 목소리에 한층 더 힘이 들어갔다. (길거리 공연에서 돈을 낼 거면 미리 줘야한다는 주의다. 다 듣고 주면 뒷사람만 개이득이다.) 기타 가방에 앨범이 있어 집에 와서 이름을 찾아봤다. Brenna Logan이라고 한다. 유투브에 영상만 좀 있고, 아직 정식 앨범은 없는 것 같다. 페이스북과 인스타 친구도 맺었다. 다른 영상을 찾아보니 그 아치의 울림 효과도 톡톡히 본 것 같긴했다. 이 아치에서 며칠 뒤 린느도 다른 브라스 연주자들에게 덕통 사고를 당했다.


콘서트_Luisa Sobral_TEATRO TIVOLI BBVA

사실 이 날이 음악의 날이 된데는 미리 예매한 콘서트에 있다. 전날 코알라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장에 열을 올린데에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Luisa Sobral을 알게된 것도 오 년전 리스본에 왔을 때였다. 리스본에 오기 전 런던에서 노트북, 독일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가 MP3를 줬다. 허니의 노트북에서 있는 노래 없는 노래 다 담았는데 그 중 계속해서 내 재생목록에 살아남은 것이 Luisa Sobral이었다. 여편님도 추천해주니 좋아했다. 리스본에 와서 쉬던 며칠 뒤, 여편님이 아침부터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에서 Luisa Sobral이 콘서트를 한다고 했단다. 일정을 보니 리스본 공연은 21일 당장 예매에 들어갔다. 앞쪽의 자리도 1인당 25유로로 부담없는 가격이었다. 공연장은 집에서 구시가지까지 연결된 대로인 Avenida에 있어 사전에 위치도 파악했다.


저녁 해장까지 마치고 함께한 J군과 헤어져 공연장으로 향했다. 밤에 조명까지 밝히니 더욱 고급져보였다. 이런 공연장에 온 것도 아주 오랜만이었다. 중장년층부터 젊은층까지 관객층이 다양한 모양이다. 공연은 기대대로 흥미진진했다. 한창 실험정신이 솟구치는 시기라서 그런지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다. 중간중간 히트곡들도 들려줬다. 관객들 반응을 보니 우리가 아는 노래들이 히트곡이 맞는 것 같다. 앞 사람이 오로지 사진과 영상 담는데만 열을 올리는 통에 좀 방해가 됐다.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공연이었다. 신나서 야밤의 대공원을 거쳐 집까지 걸어갔다. 더이상 공원에서 싸우지 않기로 했다.


*관련 음악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X-wvVQ7ssNU&list=PLZKju6nnabw2OqUFaR0kUCClgQnyza1rV



린느와의 재회_0202

리스본 생활이 무르익어 갈 즈음 몽펠리에에서 린느가 오기로 했다. 몽펠리에에서 떠날 때 이미 그녀는 리스본 여행이 계획되 있었고, 우리도 그 일정에 맞추어 리스본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워낙 열정적인 그녀를 알기에 (몽펠리에에서 방문자인 우리보다 현지인인 그녀가 구경에 더 열정적이었다.)

린느가 우리에게 머물 호텔 이름을 알려주었다. 찾아보니 우리집 보다 살짝 외곽에 위치한 곳이었다.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목요일 아침, 그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시던 커피를 삼키고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호텔은 5성급 호텔이었다. 고위급 인사들이 참가하는 컨퍼런스도 열리고 있었다. 품위를 잃지않고 로비의 린느를 찾았다. 사연을 들어보니 투어/프로모션 등으로 저렴하게 묵는다고 했다. 더블룸을 혼자 쓰고 있으니 언제 한 번 놀러오라고 했다. (나 말고, 여편님) 다다음날 린느를 초대해 저녁을 먹고 여편님을 린느와 함께 호텔로 보냈다. 날 혼자두고 가는게 미안하다는 걸 억지로라도 내보냈다.


다음날 매우 밝아진 모습으로 여편님이 돌아왔다. 린느의 꼼수로 호텔 조식도 든든하게 먹고 왔단다. 욕조에서 거품 목욕도 했단다. 나도 숙소에서 한 번 물 받아서 목욕을 했기 때문에 여편님에게 강추하긴 했다. 그리고 영국제 고급 화장품과 세면도구도 하나씩 챙겨왔다. 우리가 신혼여행 때 머문 호텔보다도 고급졌다고 한다. 배개가 아주 포근해서 잠이 솔솔오고, 화장실도 너무 윤이나서 미끄러질 뻔 했단다. 호텔 목욕을 하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부슬비 오는 거리를 걸어 집에 왔던 그 20분이 리스본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단다.


스테이크_O Chiado

연유야 어찌됐건 오성급에 머무는 린느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린느를 모시고 구시가지까지 걸어갔다. 우리가 아는 한도에서 주변 것들을 소상히 설명했다. 여편님은 걸어다니는 위키피디아라는 칭찬을 들었다. 구시가지에 오자마자 린느가 스테이크 집을 가자고 했다. 한국에도 꽤나 소문이 난 곳이라고 한다. 식전주와 함께 문어 다리 하나, 스테이크 두 개를 시켰다. 먹다보니 자연히 포르토 와인도 시키게 됐다. 그리스에서도 먹어봤지만 무슨 문어 다리 하나를 스테이크와 동급으로 취급할만한 가치가 있다. 스테이크는 철판에 나와서 알아서 구워먹는 식이었다. 딱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게 마늘도 같이 굽는 시스템이다. 맛은 좋았으나 내 철판은 덜 달궈져서 나왔다. 직원이 여편님만 맘에 들었는지 철판 하나만 제대로 달궈서 줬다.


브라질 커피_Cafe A Brasileira

낮부터 술과 고기를 먹었으니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린느가 유명한 브라질 커피집이 있다고 했다. 카페가 있는 바이샤 치아도(Baixa chiado)는 원래 쇼핑과 아기자기한 가게들로 유명한 곳이다. 이런 구경 좋아하는 여편님과 린느가 만나니 10미터 전진하는데 10분이 걸렸다. 고기 먹은 건 다 날아갔다. 진한 브라질커피와 함께 린느가 골라온 디져트를 낼름 다 집어먹었다.


재즈바

린느는 저녁 일정이 있어 우리와 잠시 헤어졌다. 집에서 큰사발로 체력 충전을 하고 밤에 다시 만났다. 파두와 재즈 공연을 저울질하다 오늘은 재즈 공연을 보기로 했다. 전날 Luisa Sobral이 지펴준 재즈 정신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트램을 구경하고 Chiado 뒷골목에 바들이 즐비한 곳으로 갔다. 오오 여기도 허니의 리스본 친구들과 와봤던 곳이다. 재즈바 구석에 앉아 자리를 트니 곧 공연이 시작됐다. 구글 포르투갈 지점에서 근무할 것 같이 생긴 사람 셋이 연주를 했다. 프로그램 짜듯이 코드를 연주했다. 훌륭했다. 1부 공연만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리스본 벼룩시장_0204

린느가 토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을 가보자고 했다. 먼저 요기를 겸해 빵집을 찾았다. Confeitaria Nacional이라는 19세기에 생긴 빵집이다. 린느 덕분에 몽펠리에와 리스본의 200년 남짓한 빵을 모두 맛보게 됐다. 구시가지의 전망대를 한 번 보여주고 서둘러 벼룩시장으로 향했다. 벼룩시장에 다다르자 예전 기억이 또 되살아났다. Feira da Ladra라고도 불리는 시장이다. 토요일이면 허니가 나를 여기로 데려갔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여기로 가면 볼 수 있다고 했다. 둘 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하나씩 샀는데 내 껀 카톡이 되고 허니는 카톡이 안되서 폰을 바꾸자고 난리를 쳤다. 이런 암시장의 역할과 오래된 걸 파는 벼룩시장의 역할을 병행하는 곳이다. 오후가 되서 시장은 슬슬 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편님은 들어서자마자 가죽좌판이 눈이 꽂혔다. 모로코에서도 안 산 가죽크로스백을 여기서 득템하셨다.



시티투어 버스(Hop on Hop off) 타고 벨렘까지_0205

타르트집을 가기로 했다. 린느가 우리 몫까지 시티투어버스 티켓을 구했단다. 매우 설레는 마음을 안고 광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시티투어버스는 여러 개여서 처음에 좀 당황했으나 금방 체계를 이해했다. 노선은 두 개고, 둘 다 한 방향으로만 돌았다. 빨간 노선을 타서 도심을 다 돌고서야 벨렘을 갈 수 있었다. 타자마자 이층으로 올라갔다. 시티투어 버스는 달렸다. 롤러코스터 타는 것 만큼 재밌었다. 우리집 근처인 El corte Ingles까지 갔다. 이런 쇼핑 거점을 돌면서 협찬을 받으니 버스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한 것 같다. 여편님은 시티투어버스와 사랑에 빠졌다. 우린 왜 그동안 이걸 안탄거냐며, 내일 공항 갈 때도 이걸 타고 가고 싶다했다.

공원에서 정차하길래 흥분을 가라앉히고 버스를 바꿔탔다. 벨렘까지 가는 것도 재밌었다. 우리가 거닐었던 리스본 거점들을 이층버스로 다시 지나니 감회로웠다. 벨렘 앞을 지나는데 버스가 서질 않았다. , 표시된 지점에 다 서는게 아니라 Bus Stop이라고 표시된 곳에서만 서는 거였다. 어쨌든 벨렘에 가서 다시 타르트를 먹었다. 잠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꼽히는 분의 샌드위치를 코로 삼키는 노력으로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다.


해물밥_피노키오(Pinoquio)

해전의 여파로 마지막 만찬은 자연스레 해물밥집으로 정해졌다. 우마가 일요일엔 문을 닫는다고 해서 피노키오를 가기로 했다. 일전에 지나갈 때 가격은 비싼데 맛은 별로일 것 같아 지나쳤던 집이다. 린느는 해물밥을 시키고 나는 수프, 여편님은 오리밥을 시켰다. 수프는 해물밥과 같은 육수로 새우와 빵조각을 넣어주는 것이라 쏠쏠했다. 오리밥도 빠에야 느낌에 그간 뜸했던 오리고기를 듬뿍 넣어줬다. 요즘 대세인 중국인들을 겨냥한 특선 메뉴가 아닐까 싶다. 먼저 수프를 한 사발 비운터라 해물밥은 살짝 맛만 봤다. 우마이 해물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우마 해물밥이 매운탕이라면 피노키오는 맑은 지리국같다. 둘 다 해물뿐만 아니라 바칼라우 같은 생선의 뼈까지 진하게 우린 것 같다. 세 번 먹으니 조금 알만했다. 해물의 푸짐함에는 우마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담백함과 식당 전반의 정갈함을 바탕으로 만찬을 즐기기엔 피노키오가 좋았다. 맥주 한 잔으론 아쉬워 들고온 체리주를 몰래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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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에서 지친 몸을 달래고, 다음 대장정을 떠나기에 앞서 리스본으로 향했다. 포르투도 가보자는 여편님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뿌리치고 리스본에만 2주를 머물기로 했다. 여행 사상 가장 편안하고 풍요로운 2주를 보냈다.

*기항: 배가 항해 중에 목적지가 아닌 항구에 잠시 들름.


일정과 이동_20170121_20170206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스본 숙소를 일주일만 예약해 두었다. 그리고 이틀 뒤 숙소도 마음에 들고, 여편님도 현재의 열정 상 포르투 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걸 받아들여, 비행기 출발일까지 남은 9일밤을 연장했다.


리스본 공항에서 시내로

모로코 마라캐시에서 출발해 토요일 저녁 늦게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다. 리스본 공항은 대서양과 맞닿아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허브 공항이라 규모가 엄청났다. 우리가 타고온 TAP PORTUGAL 항공 비행기가 가장 많이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한 오백년을 몰고 갔다. 그 버스를 이렇게 오래 타보긴 또 처음이었다. 입국 심사를 받는데 우리 쉥겐 일자가 얼마 안남아서인지 검사관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대충 호스텔에 묵을 거고 이 주 있다가 떠날 거라고 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건 간단했다. 리스본 공항은 규모와 달리 시내와 매우 가깝다. 거기다 지하철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 공항이 분홍색 노선의 시발점이고, 종점은 우리 숙소가 있는 ‘상 세바스티앙 역’이라 환승도 없이 편하게 갔다.


지하철

리스본에 머물면서 가장 많이 이용한 건 지하철이었다. 처음 공항에서 지하철 역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데 올라오던 누군가가 뭐라뭐라 불렀다. 삐끼에 대한 반사적 반응으로 됐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지하철 카드를 주겠단 거였다. 내려와서 교통카드를 살 때가 되서야 땅을 치고 후회했다. 기본 카드 발급받는데 0.5유로가 들고, 남은 돈은 환불도 안되는 모양이었다. 둘이 카드를 하나씩 샀고, 마지막엔 각각 2.x 유로씩 남아있는 걸 공항 건물 앞에 버려야 했다. 여편님은 그냥 버리기 아깝다고, 아무나 붙잡고 카드 가지라고 하소연을 했고 한 사람이 겨우 가져갔다.

토요일 저녁이라 숙소로 돌아가는 한적한 지하철이 시끄러워졌다. 중년의 혼성 그룹이 술을 한잔 걸치고 지하철에 올랐다. 한 여성은 봉을 잡고 춤까지 췄다. 그 외의 지하철은 대부분 한산하거나, 출퇴근 시간엔 꽉끼는 정도였다. 전철도, 역도 오래되서 좀 침침하다.


경전철

리스본을 가면 다들 벨렘, 신트라 같은 교외도 돌아본다. 신트라를 갈 때는 시내에 있는 기차역으로 가서 신트라행 기차를 탔다. 지하철을 탔다가 타니 환승 요금이 적용되는 걸로 보아 서울의 경의선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집 근처의 다른 역에서도 신트라를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지하철 노선도의 회색 노선까지 입체적으로 사고했어야 했다.


버스

벨렘, 타르타 집을 갈 때 한 번 탔다. 시내 광장으로 나가서 버스를 탔다. 관광객 말고도 주로 노년층의 리스본 사람들이 많이 타서 버스가 꽉 들어찼다. 돌아오는 길엔 좀 힘들었다. 그 유명한 트램은 구경만 했다.



숙박_공기방울_Gulenkian Park Residence_16_더불름

오래된 건물을 공기방울 용으로 리모델링한 것 같다. 5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에 작은 공용 거실이 있고, 복도를 따라 방이 5~6개 정도 있었다. 우리 방은 복도 안쪽 방이었다. 햇살은 거실쪽으로만 들어서 우리 방은 볕이 잘 들지 않았다. 욕실은 2개나 있고 다 깔끔했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주방이었다. 지금껏 경험한 숙소 주방 중엔 최고의 시설과 청결도를 자랑했다. 어지간한 조리기구는 다 비치되어 있었다. (부엌가위가 있는 유럽 주방은 처음 봤다.) 게스트를 위한 기본, 다양한 양념류와 커피, 차는 물론이고 간단한 원두 가는 기계와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워낙 방도 많고, 시설도 괜찮으니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호스트 아저씨는 거의 매일같이 숙소에 다녀갔다. 며칠 머물다가 곧 연장의사를 타진했고, 아저씨는 혼쾌히 하루 20유로로 계산해서 현금으로 바로 달라고 했다. (난 직거래를 사랑한다.) 무엇보다 이 숙소의 하이라이트는 엄청난 청결도였다.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아주머니가 와서 체크인, 체크아웃하는 방은 물론, 거실과 주방, 욕실을 깨끗하게 관리했다. 이 분은 브라질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정도의 청결 유지는 브라질 출신이라서 가능(그간 경험한 유럽인들의 청결 기준은….)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티비였다. 화질 좋은 평면 TV에 최신 위성방송을 탑재했다. 스포츠 채널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스페인어로 된 방송(Tele Sur, Cuba international, Galicia...)을 맘껏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쿠바 방송이 가장 재미있었다. 익숙한 포맷의 오디션 프로였지만 장르면에서 신선했다.


첫끼니_초밥 뷔폐

대강 숙소의 체크인을 끝내고 아저씨에게 물어가며 주변의 식당을 찾아나섰다. 벌써 시간은 밤 8시가 넘어 주변은 어두 컴컴했다. 주변의 식당들은 다 닫은 것 같지만 반지하에서 성행 중이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들은 자리가 다 찼다. 저기 모로코 식당이 있다는 말에 여편님은 혼이 날아갔어도 기겁을 했다. 그러다 한 구석을 돌아보니 붉은 빛의 두드러진 식당이 보인다. 식당안이 사람으로 가득찼는데 대충 보니 초밥뷔폐! 앞에서 줄 서있던 영국 여자분은 기차역 같이 소란스럽다면 돌아섰다. 하지만 우리는 돌진했다. 모로코에서 도를 닦으며 억눌렸던 식욕과 동방 음식에 대한 정겨움이 몰아치는 순간이었다. 삽 시간에 초밥 한 접시, 두 접시를 먹어 져치고 정신을 차렸다. 정통 일본식은 아니고 중국계가 운영하는 것 같았다. 중국식 볶음 요리도 많고, 재료를 집어가면 철판에 볶아주기도 했다. 초밥의 수준은 과거 10여 년 전 대학가 초밥 뷔폐 수준을 넘나드는 정도였다. 저 멀리 동방 음식의 열기가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까지 뜨겁다는 걸 또 체감했다.


식사_아침

다음날부터 숙소 뿌리를 뽑는 수준으로 부지런히 밥을 해먹었다. 양심상 점심은 나가서 먹고, 아침은 간단하게, 저녁은 푸짐하게 먹었다. 장 봐둔 것이 없는 첫 아침엔 도지니가 모로코에서 건내준 눈물 젖은 오트밀을 먹었다.

원두갈이가 있었지만 아침부터 소란일 것 같아 슈퍼에서 갈아진 원두를 사왔다. 에스프레소 기계를 제치고 나의 모카포트를 맘껏 사용해보려 했다. 하지만 수난의 연속이었다. 이전에 잘 되던 것이 여기선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대부분 찔끔 나오거나 한 잔 분량만 나오고 물이 다 말라버렸다. 조바심에 모카포트를 열었다 닫았다하다가 포트를 감싸던 천을 세 번이나 태워먹었다. 가스레인지를 덮는 천이었다. 꼼꼼한 아주머니는 탄 천을 꼬박꼬박 새 걸로 갈아놓으셨다. (나름 기념품 매장에서 파는 포르투갈 지도가 그려진 거다.) 미안한 마음에 인사도 안하고 피해다녔는데 어느날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다행히 범죄는 발각되지 않은 것 같다. 몇 번의 시행 착오와 한 두 번의 성공을 거친 원인 분석 결과 불이 문제였다. 포트에 맞는 크기에 적당히 강한 불이 필요했다.

붙인 김에 에스프레소 기계 사용법도 익혔다. 간단했다. 같은 원두라도 기계보단 모카포트로 뽑아 먹는게 더 감칠났다.


아침마다 이런 소란을 겪고, 스페인어 공부를 좀 하고 나서 여편님과 아침을 먹었다. (그녀는 이 소란들이 다 꺼지고 잠시 뒤에 나타난다.) 조리는 하루 한 번이면 족하므로 간단히 빵과 망고 같은 과일을 먹었다. 무역에 적합한 위치라 그런지 열대 과일들이 꽤나 싱싱하고 저렴했다.


식사_점심

종종 머나먼 길을 나서 유명한 맛집을 찾아간 얘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집 근처에서 해결한 얘기만 하면, 한국의 파리빵집 역할을 하는 것이 포르투갈에도 있다. 이름도 그냥 Portugues padaria. 일요일 점심을 해결하러 나가보니 근처엔 여기만 열었다. 대략 5유로 정도에 스프와 샌드위치로 구성된 세트를 줬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빵집이건 카페건 다들 식사 메뉴도 파는 모양이다. O pão nosso라는 곳도 가봤다. 한 단계 위 파리크로아상의 감성이다. 좀 더 조용하고, 포르투갈 특산빵을 판다. 점심 메뉴도 10유로에 고급 빵과 페티로 구성된 햄버거를 판다. 조용히 혼자 앉아서 샐러드만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즐겨찾은 곳은 집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카페다. 호스트 아저씨가 괜찮은 카페라길래 월요일 점심 시간에 맞춰 찾아갔다. 작은 카펜데도 발 디딜틈이 없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입구에 붙은 종이를 보니 점심 메뉴 가격은 5.75유로(수프 or 음료 + 주메뉴+에스프레소)였다. 난 주로 감자수프를 에피타이져로 시켰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흔히 먹는 수프였다. 메인 메뉴(우리가 갈 때쯤엔 늘 메뉴가 한 개만 남아있어 선택권이 없었다.)로는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음식들을 먹어볼 수 있었다. 새콤한 간을 한 찐닭고기와 밥을 겻들인 음식, 족발(진짜 우리가 그리워하던 그 족발의 감성과 쫀득함 그대로였다.), 감자와 고기를 넣어 튀긴 소세지, 포르투갈의 대표 생선 바칼라우(대구)로 만든 그라탕까지 두루두루 섬렵했다. 미진한 의사소통에도 친절히 메뉴를 설명해주신 아저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


숙소_주변 정세

저녁 얘기를 하기에 앞서 숙소 주변 정세를 살피겠다. 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리스본 생활 패턴과도 일맥상통한다. 대부분 아침을 간단히 먹고, 빈둥빈둥 거리거나 업무를 마치고 집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집 주변을 기웃거리다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Parque Eduardo 7)

숙소를 선택할 때 내부 시설과 더불어 매력 포인트는 굴벤키안 공원이 바로 옆이라는 거였다. 굴벤키안 재단이 운영하는 박물관과 독서실 주변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었다. 기대를 안고 갔으나 실상은 별 것이 없었다. 건물도 칙칙했고, 주변의 공원도 침착했다. 근처 사는 학생이라면 자주 찾을 것이었다. 반경을 넓혀 대각선 방향의 큰 공원으로 갔다. 지도상으로 봐도 시내의 중심에 자리 잡은 공원이다. 이 공원과 연결되는 지하철역 이름도 그냥 Parque였다. 낮은 언덕을 올라가면 작은 호수와 카페가 있었다. 엄청 비쌀 것 같은 카페지만 현실은 무난했다. 여기도 뷔폐식 점심 메뉴를 제공했다. 파스타와 고기, 야채 반찬 등을 한 접시에 담아준다. 전망도 좋아서 여편님과 두 번 정도 먹었다.

분수를 지나서 나아가면 탁 트인 전망대가 있다. 구 도심까지 이어진 대로와 그 너머 바다까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아래를 따라 큼지막한 잔디밭과 양쪽의 산책로가 길다랗게 이어졌다. 또한 이 공원 안에는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미술가 보테로가 만든 조각상도 있었다. 조각상의 이름은 모성을 뜻하는 Maternidade이다. 아주 아름답고 인상적인 공원이지만 이상하게도 여기만 지날때면 여편님과 사소한 말다툼을 했던 기억이 있다.


El Corte Ingles

위 공원을 끼고 우리집 쪽엔 백화점이 있었다. 스페인 최대의 백화점 업체인 El corte Ingles의 리스본 지점이다. 리스본에서도 가장 큰 백화점이란다. 당연히 지하엔 슈퍼마켓이 있다. 백화점 슈퍼답게 가격은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다. 와인도 저가의 와인은 거의 없었다. 다른데 나갔다가 지하철 타고 돌아오게되면 여기서 장을 볼 수 밖에 없었다.


Pingo Doce와 집 앞 점방

집 근처엔 다양한 슈퍼마켓이 있었다. 독일계인 Lidl이 별로 시원치 않아 포르투갈 슈퍼를 찾아갔다.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다양한 식재료들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프랑스만큼이나 다양한 양념과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만난 포르투갈 친구는 여기선 2유로가 넘어가는 와인은 거의 안 사먹는다고 했다. 이 요건을 충족시키는 와인들이 많았다.

점심 먹는 카페와 반대편의 옆 건물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주로 이 지역 농산물들을 취급한다고 써져있었다. 고기류는 없고, 야채와 과일 위주다. 양파 등 몇몇을 제외하면 백화점보다 훨씬 싱싱하고 질이 좋았다. 올리브 절임도 팔았고, 와인도 저렴한 것들 위주로 구비되어 있었다. 작은 가게를 이용하는데서 오는 뿌듯함도 있었다. 그거보다 더 편한 건 대형 슈퍼마켓에서 수 백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하는 수고에서 해방된다는 점이었다. 싼 가격에는 소비자가 다양한 제품 중 하나를 골라야되는 부담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문제는 인터넷에서 물건을 고르면 더욱 심화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식사_저녁

다시 밥 얘기를 하면, 초반엔 단 둘이서도 매일 잔치를 벌였다. 나중엔 손님들과 잔치를 했다.


쌀국수

모로코에서 굶주렸던 돼지고기를 흡입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곧 여편님은 차분한 마음으로 아시아슈퍼를 찾아냈다. 구 시가지에서 가까운 곳에 괜찮은 아시아슈퍼가 있었다. 한국 제품 콜렉션도 바르셀로나, 몽펠리에의 아시아슈퍼에 뒤지지 않았다. 다행히 된장과 고추장을 한 통씩 소비한 터라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크지 않았다. 과감히 쌀국수와 두부, 숙주, 쪽파와 팟타이 소스를 집어들었다. 근 일 년 전 배우고 반 년 전 한국에서 실습한 팟타이를 만드시겠다고 한다.

우리의 왕성한 식욕을 채우기 위해선 팟타이를 솥에 볶아야 했다. 그럼에도 이전의 여편님 팟타이를 뛰어넘는 맛이 구현됐다. 이유는 팟타이 소스에 있었다. 한국 백화점에서 파는 팟타이 소스 보다 수리 아줌마 팟타이 소스의 맛이 백배는 훌륭했다. 거기다 탱탱한 라임도 한몫했다. 팟타이는 이후에도 몇 번 더 먹었다. 여새를 몰아 여편님은 쌀국수도 만들었다. 소고기 국물에 숙주, 양파 등을 넣으니 진한 동방의 국물이 우러나왔다.


따꼬에 취함

이제 우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El corte ingles 슈퍼를 돌아다니다 따꼬 코너를 발견했다. 밀로 만든 또르띠야가 주류였지만 옥수수로 만든 또르띠야와 살사 소스, 향신료가 포함된 셋트도 있었다. 이를 본 여편님은 새우와 아보카도로 과까몰리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아보카도를 열고 보니 딱딱하단다. 단순 새우 샐러드와 따꼬의 조합으로 변했다. 난 옆에서 달궈진 팬에 또르띠야 한 장 한 장을 데웠다. 따꼬의 맛은 신선하고 강렬했다.

다음날 바로 여세를 몰아 따꼬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강하고 맵운 양념에 볶은 돼지고기에 샐러드와 또르띠야를 겻들이기로 했다. 또 백화점 고기 코너를 기웃거리는데 포르투갈 국기 색깔로 빛나는 돼지고기가 있었다. 거기다 갈비. 한국으로 치면 백화점 특등 갈비인 것이다. 집에 가져가 갈비살을 다듬었다. 뼈 부분을 도려내고 갈비살을 작게 썰었다. 따꼬 향신료와 매운 고추를 넉넉히 넣어 야채와 함께 볶았다. 살을 애는 매운맛이 또르띠야를 타고 넘어왔다. 이것이 진정 따꼬의 맛이란 걸 깨달았다. 밤새 매운 기운이 몰아쳐 둘 다 잠을 설쳤다. 잠옷을 다 벗어던지고서야 편히 잘 수 있었다.

여편님은 이 갈비살의 매력에 취해 아예 통찜을 요구했다. 우리 고향에선 갈비찜=돼지갈비찜이라고 강조했던 게 화근이 되었다. 넉넉하게 갈비 6대를 샀다. 냄비 바닥에 테트리스를 해서 낮게 깔고 볶음식으로 쪘다. 쪽쪽 찢어지는 갈비살의 황홀함이었다.


식사_튀김 우동과의 첫 만남

리스본 생활이 막바지에 오를 무렵, 늦은 밤에 재즈바에 가기로 했다. 점심은 든든히 먹었고, 이 기운은 사발면이다 싶었다. 아시아슈퍼에선 라면도 다양했지만 큰사발을 1유로대에 파는 기적이 있었다. 여편님은 진작에 김치 사발면을 사뒀기에 나도 튀김 우동을 사서 같이 먹겠다고 했다. 소중히 모셔간 사발면과 올리브로 간단히 상을 차렸다. 고춧가루도 좀 뿌렸다. 여편님은 김치 사발면에 계란을 넣었다. 그녀가 튀김 우동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물어봤다. “설마 튀김 우동 안 먹어봄?”, “ㅇㅇ”, “사발면 별로 안 먹어봄? 계란 풀면 별로인 경우 많은데..”, “ㅇㅇ”. 살다 살다 튀김우동을 안 먹어본 사람을 만난 줄은 몰랐다. 큰사발 먹는 큰사람답게 국물 맛을 보여주고, 튀김 우동과 다른 사발면의 차이는 라면과 짜파게티의 차이처럼 큰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걸 김밥과 단무지에 먹으면 김치 없어도 천상의 궁합을 자아낸다는 점도 챙겨드렸다.


식사_손님 대접

일요일 아침 여편님과 이런 저런 걸 알아보고 있는데 또 사람이 들어왔다. 왠지 한국인 같았는데 우릴 보고 인사를 했다. J, 한국 사람 맞단다. 숙소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 건 워낙 오랜만이라 반가움이 더 했다. 같이 저녁 식사나 한 번 하자고 했다. 며칠 뒤 여행 친구 J군도 더해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우리가 저녁 상을 차리겠다고 하니 친구가 포르투 와인도 가져올거라고 했다. 스페인 포르투갈을 여행했다니 왠지 칼칼한 맛을 원할 거란 판단에 닭갈비를 만들기로 했다. 초면이지만 큰 맘 먹고 슈퍼에서 시골닭을 사왔다. 양념은 또 따꼬 양념을 백분 활용했다. 여편님은 이제는 흔해진 망고로 샐러드를 겻들이셨다.

J양은 우리 동네인 마포에서 직장을 다녔다고 한다. 우리 골목의 유명 냉면집도 자주 와서 아침에 냉면과 소주를 콸콸 마셨다고 했다. J군은 전주의 유지였다. 넷 다 신나서 자정까지 쌓아 놓은 술을 다 비웠다. J양은 다음날 포르투로 떠났고, J군은 하루 더 머문다길래 다음날 또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전날의 여파로 우리는 저녁까지 기름진 포르투식 샌드위치로 해장을 했다.

리스본에서 재회한 린느도 집에 모셨다. 직접 따꼬를 원한다해서 또 갈비살을 한땀한땀 떼어내고, 또르띠야를 한 장 한 장 구워냈다. 고급진 린느는 여편님에게 망고와 아보카도 다루는 법을 전수했다. 그리고 초콜렛 잔에 담아 먹는 체리주도 가져왔다.



식사_술과 와인

집에서 먹을 때 마다 여러 술을 맛보았다. 기본적으로 저렴한 와인들도 맛이 훌륭했다. 포르투갈의 특산 와인들도 두루 맛보았다.


그린 와인(VINO VERDE)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보는데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어 당장 VINO VERDE를 사다 먹었다.


만일 고인도 이곳을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좋아했을 것이다. 우리는 성당 중앙에서 커다란 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각자 그린와인 한 병씩을 들고 텅 빈 성당에 앉아 있었다. 영지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런 의식을 통해 고인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포르투갈 에서만 생산되는 와인 조금 덜 익은 상태에서 숙성이 시작되어 약간의 신맛을 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포르투 와인(PORTO WINE)

유명한 포르투 와인은 백화점 와인 코너에서 골랐다. 처음 한 병을 무작정 먹어보고 또 포르투 와인 코너를 기웃거리니 매장 직원이 설명해줬다. 포르투 와인에 붙은 이름은 각 와인의 숙성도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했다. 2~3(RUBY), 3~5(TWANY) 대의 와인은 모두 6유로 정도에서 가격이 시작해 부담없이 맛 볼 수 있었다. 그 이상의 빈티지 와인 설명은 고개만 끄덕했다. 와인 마개도 덮는 식이라 한 병을 다 먹어야하는 부담도 없었다. 맥주를 애호하는 여편님은 보헤미아의 고급 맥주 라인도 맛봤다. 확실히 보통의 맥주보다 한결 높은 품격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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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차, 14일 수요일, ‘마지막 휴일과 벤 그리고 뜨거운 안녕’

잠결에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직 더 잘 수 있어서.. 해가 나면 나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10시쯤 미술관으로 향할 생각으로 내려가서 커피를 마셨다. 벤이 방에서 나와 언제쯤 갈거냐고 물어보곤 자기도 같이 가자고 한다. 날이 흐렸다. 그래도 따수했다. 가스퍼를 내보내고 현관문을 잠그고 출발했다. 오늘도 일터에 못 간 네팔이가 우리를 앞서 길을 나섰다. 질퍽거리는 땅을 조심스레 짚으며 걷는다. 벤의 구두에 흙이 잔뜩 묻는다. 그는 종종 왔던 길을 돌아본다. 역시 시인의 감성! 검정 가죽잠바에 빨간 목도리를 한 그의 패션은 케사다에선 보기 힘든 스타일이다. 시인의 패션스타일! 올리브 농장을 지나 마굿간도 지났다. 언덕 집에서 송아지만한 개 세마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저길 지나야 하는데.. 그래도 벤이 있고 철조망이 쳐져있으니 괜찮을거라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드디어 그 앞을 지난다. 개들이 펄쩍펄쩍 뛰고 짖으며 난리를 친다. 저 몸집으로 이 철조망을 뚫거나 뛰어나올 수 있을텐데.. 생각하는 사이에 갑자기 구멍으로 한 마리가 도발을 시도한다. 그러더니 네팔이가! 우리 귀엽고 짖지도 않는 네팔이가! 그 구멍 사이로 자기 몸집의 5배는 넘는 그 송아지만한 개에게 짖기 시작한다. 2주만에 거의 처음 듣는 네팔이의 짖는 소리. 벤이 네팔이를 겨우 떼어놓았고 우린 빨리 그 집을 지나갔다. 다시 촐래촐래 걷는 네팔이로 돌아왔다. 집에서 미술관까지는 걸어서 40분정도 걸렸다. 네팔이한테 “넌 여기 못 들어올텐데.. 집에 가 있어.”라고 하니 알아들었는지 입구 계단에서 멈춰선다. 점점 작아지는 네팔이의 모습. 왠지 마음이 짠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11시가 채 안된 시각. 미술관은 이제 막 불을 키고 있었다. 남편이 직원에게 키케 얘기를 했는데 반응이 없다. 별 수 없이 입장료를 내려고 하는데 전시실에서 나온 다른 담당자가 단번에 “Amigos de 키케?”라고 묻는다. Wow¡ 인당 6유로를 아껴 준 키케에게 리스펙트!

이 미술관은 케사다 출신 Rafael Zabaleta (라파엘 사발레타)와 하엔 출신의 시인 Miguel Hernandez를 기념하여 건립했다. 시골의 작은 미술관을 상상하면 안된다. 제법 큰 규모의 건물 1,2층엔 사발레타의 그림들이, 지하엔 에르난데즈의 시와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시해놓고 있다. 우선 우린 사발레타의 그림들을 보기로 했다. 친절하게도 담당자님 오디오 가이드도 챙겨주셨다. 남편과 벤은 스페인어, 나만 영어로 부탁했다. 그의 초기 그림부터 마지막 자화상까지 인상깊게 둘러봤다. 사발레타는 나름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에도 작품이 걸려있는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다. 재밌었던건 케사다 영농조합 올리브 오일 팩키지(작년에 뉴욕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상도 받은 최상급 올리브라고 한다.) 그림이 사발레타의 그림이었다는 거다. 케사다에서 태어나고 사랑하고 묻혔다는 그. 여기 사람들이 왜 사발레타를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겠다. 그리고 몇몇 작품들을 둘러보고 미겔 에르난데즈 전시실로 향했다.

시인인 벤이 정말 오고 싶어했던 곳이다. 전시된 체험타자기 앞을 서성이는 그의 뒷모습에서 시에 대한 열정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게 보인다. 미겔 에르난데즈는 1920년대쯤 활동한 스페인 시인으로 가르시아 로르카와도 동시대 사람이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드리드에서 만난 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려고 했지만 도시에서도 목동일을 하고 싶어해서 못 구해줬다는 이야기.. 너무나도 안달루시아인 그였던 거 같다. 그 책에 보면 스페인 시인들과의 이야기가 많이나오는데 마침 갖고 있어서 읽으니 더 이해가 잘됐다. (참고로 네루다는 가르시아 로르카가 스페인 내전때문에 죽음을 당한 것이 자신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미겔 에르난데즈도 스페인 내전에서 반정부군으로 활동하다 수세에 몰렸고 포르투갈로 넘어가서 칠레로 망명을 하려고 했다가 포르투갈에서 받아주지 않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수감 3년만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에겐 사랑하는 ‘조세피나’ 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다. 감옥에서 쓴 아들들을 위한 동화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전시실을 나왔다. 그가 지은 시 중에 노래가 되어 민중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Andaluces de Jaèn” 을 다시 한 번 들었다.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전시관을 나섰다. 간밤에 키케 아저씨와 함께 듣고 봤던 모두가 합창하는 그 소리가 귀에 계속 남았다.

1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었다. 먼저 저녁을 위해 장을 봤다. 마트 두 곳을 돌아봤는데 통닭이 없다. 지난 번 우리 옆 밭에서 일하던 삼바의 친구들을 만났다. 오늘 쉬는 날인가보다. 그들의 봉지에 온 동네 닭이 다 들어간 모양이다. 삼바도 어제 닭을 사고 갔는데 이 친구들게도 복날 비슷한게 있는 것 같은 의구심이 들었다. 벤과 남편님과 셋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벤은 빵이 지겹다고(너 미국인 맞니?) 해서 샐러드를 시키고 우린 매운 순대 소시지와 감자를 시켰다. 맥주도 곁들여 같이 점심을 먹었다. 우린 이제 들어가보겠다고 하니 벤도 같이 들어가자고 한다. 의외였다. 남편님 왈 “마을 안쪽에 오래된 골목과 문도 있고, 전망대도 있어. 천천히 둘러보고 와.”라고 하니 “아니야. 나 길 못찾을거같아서.. 오늘은 혼자 찾아갈 자신이 없어.”라고 했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 자꾸 뒤를 돌아봤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여지껏 경험한 서양인과는 달랐다. 귀여움도가 1 상승했다. 왔던 길을 돌아갔다. 마굿간 앞을 지날 때. 말들이 팡팡 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에 가서 우리는 오늘 봤던 것들을 복습하고 벤은 샤워와 빨래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밖이 소란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말들이 뛰쳐나와 마당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중간에 와서 문을 열어줬겠거니 했다. 왠일이냐며 사진도 찍었다. 그러더니 말 두마리와 그 말들을 지키는 개 럭스 그리고 네팔이와 갸스퍼 동물 친구들이 모두 어디론가 갔다. 물론 네팔이와 갸스퍼는 돌아왔다. 아저씨가 일을 마치고 와서는 말을 보았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그들이 마당에 왔는데 우린 아저씨가 풀어준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아니라고 탈출했다고 했다. 자유를 향한 그들의 열정이란!

아저씨는 8시가 넘어서 집에 왔다. 우린 그 사이에 내일 새벽에 떠날 준비를 하고 닭백숙을 했다. 아저씨는 집에 잘 돌아오니 밤 사이에 돌아올거라고 했다. 일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 좋겠다 생각하며 넷이 닭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죽도 끓였다. 벤은 양배추 김치 국물을 죽에 뿌려 먹었다. 시인의 학습력이란! 내일은 벤이 뉴올리언스 요리를 하겠다고 한다. 시인의 요리를 놓치다니! 아저씨에게 남은 죽은 내일 점심으로 싸가라고 하니 좋아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5. 퀘사다에서 큰 도시로 나가는 버스가 650분 버스여서 일찍 일어났다. (다음 버스가 12시였는데.. 차라리 일찍 떠나는게 좋아 보였다.) 깜깜한 케사다. 우린 준비를 마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가 620. 아저씨는 이미 말들을 찾으러 한번 다녀오셨는데 아직 안돌아왔다고 했다. 아 어쩌지.. 괜히 마음이 쓰인다. 아저씨는 그 와중에도 우리에게 사발레타 그림이 그려진 올리브 한통을 주려고 하신다. 아니에요 아저씨 우린 괜찮아요! 다음에 연락할게요! 가연성만 아니면 택배로라도 보냈을텐데, 아쉽게 집을 나섰다. 아저씨가 우리를 태우고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데려다줬다. 만날때처럼 쿨하게 인사하고 슝 가버린 아저씨. 아저씨의 푸른 nissan 트럭이 멀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말라가로 갔다.


안달루시아의 시간들을 떠올리면 무언가 편안해진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곳으로.



* Andaluces de Jaèn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dNpXVzCwvjs

** 열흘 뒤 벤의 페이스북에서 스페인 최대 일간지 중 하나인 El mundo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는 소식을 봤다.

http://www.elmundo.es/madrid/2017/01/15/587927cc46163f71658b45cb.html

"En España la inmensa mayoría me pide poemas de amor. En Estados Unidos no es así, hay gente que me pide que escriba sobre la tristeza de la vida, sobre la melancolía por el pasado...”

여기 스페인에서는 사람들이 저에게 사랑에 대한 시를 써달라고 해요. 미국에선 그렇지 않아요. 삶의 비애나 과거의 우울함 같은 것들에 대해서 시를 써달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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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까지 벽에 부딪치고 둘 다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나니, 더 이상 모로코 여행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마라케시에서 할 일은 기념품 사서 보내기와 도지니를 만나는 것이었다.


마라케시(Marrakech)_0118_0121

페즈와 함께 모로코 내륙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다. 여행자에게도 관광과 교통, 기념품 쇼핑의 중심 도시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은 비가 내렸다. 이렇게 비가 종종 와서 사막 도시들 중에서도 제일 번성했구나 생각했다.


숙박_Riad Azul Marrakech_더블룸_3

무난한 방을 미리 예약해두고 찾아갔다. 넓은 방에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은 없어도 뻥 뚫린 리아드 가운데로 통하는 창문도 있고, 왠지 모르게 쾌적한 방이었다. 덕분에 나와 여편님 모두 모로코에서 쌓인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고 갈 수 있었다. 아침도 잘 차려줬다. 와이파이가 매우 간당간당했는데 마라케시 어딜 가나 정도는 달라도 비슷했다. 비오는 날에는 천장을 막아놓은 플라스틱 뚜껑이 새는 바람에 로비가 물 바다가 됐다. 옥상 테라스는 햇볕만 나면 운치 있게 머물 수 있었다.


식당과 카페

광장 한가운데를 둘러서 큼지막한 식당들이 있었다. 첫날은 무심코 따진(고기와 야채, 향신료를 넣고 푹 끓인 음식) 집에 들어가서 꾸스꾸스와 따진 등 각자 코스를 먹어봤다. 다음날 점심 혼자 시장을 기웃거리다 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이제껏 먹었던 식당들보단 가격대가 절반이었다. 케밥을 말아먹고, 저녁엔 여편님과 도지니를 불러 먹었다. 따진이 뭔가 덜 들어갔지만 입에 착착 붙는 맛이었다. 다음날 점심도 내 사랑 콩수프도 겻들여가며 시장통 식당에서 먹었다. 아주 한 발짝 사막의 검소한 식생활에 다가가본 느낌이었다. 또 다른 광장 식당에서 마지막날 저녁에 먹은 꾸스꾸스는 모로코 최강의 맛이었다. 내가 꾸스꾸스를 외칠 때마다 진저리를 치던 여편님도 다음날 점심에 이걸 주문해서 먹어보고야 말았다.

도지니 숙소 근처에 Corner Cafe라는 안락한 카페가 있어 시간을 떼우러 갔다. 광장에 Aqua 카페도 두 번 갔는데 아늑함은 별로 없었다.


가방이 가벼운 도지니

대학교 후배인 도지니는 러시아에서부터 우리와 비슷한 루트로 여행하고 있어서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드디어 마라케시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하고 만난 건 처음이라(막상 학교 다닐때도 엄청 친한 건 아니었다.) 졸업 후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근황부터 나눴다. 우리나 도지니나 떠날 때까지 할 일 없긴 매한가지라 이틀 저녁과 도지니가 떠나는 날 점심까지 함께 했다. 이것저것 쓸데없이 많은 걸 챙겨다니는 우리와 달리 도지니는 가방이 아주 가벼웠다. 저가항공 기내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중형 배낭 하나만 들고 다녔다. 우리의 많은 짐이 다 집착이고 번뇌로 느껴졌다. 그외 참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여기다 시시콜콜하게 쓰기엔 둘 사이에 지인이 너무 많아 자제하도록 하겠다. 다음 여정도 대략 비슷하여 또 만나기로 했다.


쇼핑과 소포

모로코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사 중에 하나가 가죽제품이다. 몇 년 전 동생이 모로코 여행 왔다가 사다준 카드 지갑을 요긴하게 쓰고 있다. 이거 말고도 쓸만한 기념품이 있었냐고 물으니 사후적으론 전혀 없단다. 동생도 하나 주고 우리도 각자 하나씩 챙길겸, 겸사겸사 카드지갑 5개와 여편님 통장지갑으로 쓸 긴 지갑 하나를 샀다. 우리 앞에서 영국사람들이 치열하게 흥정하는 얘기를 다 듣고, 아저씨에게 200디람을 제시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쉽게 가격 협상은 타결됐다.


이 가죽꾸러미들과 스페인에서부터 보내고 싶었던 잡기들을 보내러 우체국을 갔다. EU국가들보단 모로코가 택배가격이 훨씬 쌀거란 판단이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우체국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친절하고 여유로운 아저씨가 박스까지 가져다주고 무게를 제고, 주소를 입력하고 나서 요금을 알려줬다. 4kg915디람(10만원)? 옆 사람이 이게 젤 싼거라고 통역도 해줬다. 소포 보내기는 잠정보류하기로 했다. 우체국 직원은 친절하게 소포에서 우리 짐을 꺼내줬다. 짐은 다음 예정지인 리스본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중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는 이븐 바투타 책은 도지니를 주기로 했다. 난해한 책이라 관심 없다할 것 같았다. 책 좀 팔아본 여편님은 조심스레 어떤 책이냐면, 작가가 모로코 사람이예요부터 시작했다. 도지니는 혼쾌히 책을 받아들였다. 잘 읽고 영국 옥스포드 Last Bookshop에 뒀단다. 나중에 이거 찾으러 영국 한 번 가야겠다.


모로코 1월 추위

생각보다 추웠다. 밤에는 0도 가까이 떨어지고, 낮에도 바람이 찼다. 안달루시아도 그렇고 이 근방의 집들은 한 여름 더위를 이기는 게 더 중요해서 그런지 보온이라곤 1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남은 열을 밖으로 던져내기에 바쁜 집들이다. 주변에 열을 안아줄 나무도 별로 없고, 거기다 비도 왔다. 마을에만 있어도 이정도였는데 사막 갔으면 얼어죽었을 것이다. 거기다 이번 겨울은 사하라 사막에도 눈이 오는 등 역대급 한파가 닥치기도 했단다.


말랑말랑 모로코

모로코는 여러모로 말랑말랑한 동네였다. 사람들도 다들 순한 느낌이다. 거칠고 개성 강한 지중해를 겪다가 여길 오니 다소 심심한 느낌도 들었다. 찌는 음식인 꾸스꾸스나 따진 속 야채 같았다.


모로코 2주 방문 성과

별로 한 거 없어 보이는 모로코지만 나름의 성과를 추려보았다. (정신승리 파트)

1. 서핑을 통해 우리 체력과 근력의 수준을 깨달았다. 나름 1년 간 여행하며 건강한 생활을 영위했다고 자신했으나 우리의 근력은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등과 팔, 코어 등을 집중 단련하여 나중에 서핑도 재도전하고 남은 여행도 더욱 건강하게 지내기로 다짐했다. 체력, 근력의 한계로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2. 워낙 술을 자제하는 분위기에 가격도 비싼 편이라 저절로 디톡스를 했다. 음식도 대부분 찐 음식에 고기도 별로 없었다. 조지아에서부터 와인과 고기를, 아니 러시아 몽골을 지날 때부터 술과 고기로 다져진 몸에게 조금은 숨쉴 틈을 주었다.


3. 원하던 꾸스꾸스를 실컷 먹었다. 여편님은 원체 짧은 면에 관심이 없으니 지금도 내가 꾸스꾸스 베이베 얘기만해도 동공에 모래알 같은 지진이 난다. 모로코 떠나면 토마토 소스에 (돼지)햄 넣어서 꾸스꾸스 해먹자던 약속은 온데간데 없다. 난 그래도 맛있었다. 막판엔 따진맛 스프맛도 더 깊이 느끼게 됐다. 다양한 올리브의 맛은 덤이다.


4. 탕헤르에 도착하자마자 이발을 했다. 10월 초 터키 들어와서 이발하고 3달 만에 머리를 자른 것이다. 왠지 손이 투박한 유럽쪽 사람들에게 내 머리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모로코 물가를 감안하면 40디람은 좀 비싸게 자른 감이 있지만 유럽에서 자르는 것 보단 훨씬 쌌다. 한 주 두 주가 지날수록 스타일도 맘에 든다. 대신 급격하게 머리가 짧아지는 바람에 모로코 여행 내내 머리 속을 파고드는 추위를 견뎌야했다. 여편님과 도지니는 모두 모자를 갖고 있었다. 모로코에서 나도 모자 하나 사려고 했지만 털로 짠 모자는 내구성도 약해보이고, 내 머리엔 여러모로 꼈다.


5. 도지니와의 만남은 우리 모두에게 여러모로 큰 시사점을 주었다. 여행을 통해 지향하는 점도 비슷한 게 많아서 종종 공유하는 정보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부록_다큐_세계 견문록 아틀라스_멕시코_페루 맛 기행

모로코의 단조로운 식생활에서 자연히 이 다큐가 생각났다. 예전부터 보려고 챙겨온 걸 단 하루에 다 봤다. 저긴 고향 음식 생각은 하나도 안 날 거 같은 음식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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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 해변에서 여편님과 모로코 가서 뭐할거냐는 상의를 했다. 난 사하라 사막에 로망이 있었지만 여편님은 사막은 또 가기 싫단다. 몽골 고비 사막 다녀온지 반 년이 체 흐르지 않았다. 가서 모래 언덕 보고, 낙타 탈 텐데 몽골 쌍봉 낙타와 달리 사하라에서 타는 단봉 낙타는 승차감이 매우 구릴 거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항들이었다. 거기다 안달루시아 퀘사다에서의 생활은 매우 즐거웠지만, 사막 캠프 저리갈 정도의 열약한 자원과의 사투였다. 그러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모로코도 서핑하는 곳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부랴부랴 서핑 시즌을 알아보니 겨울이 적기란다. 해물이 가득 들어간 빠에야를 먹으며 전의를 다졌다.


에사우이라(Essaouira)_0112_0118

예전엔 Mogador라고도 불렸던 곳이다. 아가디르(Agadir)와 함께 카사블랑카 남쪽의 해변 휴양도시기도 하다. 아가디르는 엄청 큰 리조트 타운이 조성되어있다는데, 에사우이라는 해변에 모래 바람이 거세서 휴양지로서의 매력은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나름 성처럼 지어진 메디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서 도시만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거기다 어찌저찌한 연유로 모로코 레게 문화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기타의 전설 지미 헨드릭스가 좋아하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때 만나던 여친이 모로코, 에사우이라 출신이라 방문해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숙박_Surf and Chill House_4인 도미토리_3

서핑의 도시답게, 호스텔이 많았다. 아침에 도착했으니 여유있게 숙소들을 둘러보았다. 모로코식 Riad 구조의 게스트하우스들은 대부분 30유로였지만 별로 쾌적하진 않았다. 대부분 1인당 6유로(세금 2유로)에 모시는 호스텔의 가격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지간한 호스텔들을 둘러봤다. 엄청 어수선했다. 한데 이 서프칠 호스텔은 언니 둘이 관리해서 그런지 매일 청소도 깨끗히 하고, 정리 정돈도 잘 되어있었다. 테라스 뷰가 막혀있고, 로비가 다소 어두운 것만 단점이었다. (화장실도 좀 비좁지만 따뜻한 물 하나는 콸콸 나온다. 모로코 숙소 어디에서도 온수 걱정을 할일은 없었다. 도심 곳곳에 하맘도 있고, 목욕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것 같다.)

아침도 20디람에 원두커피, , 계란 등으로 정성스레 준비해주셨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차지한 도미토리 이층 침대 중 윗층이 불안불안 했다는 것이다. 철로 된 침대라 소리가 나면 더 공포심을 자극했다. 결국 첫날은 여편님과 함께 일층 침대에서 잤다. 평소 시원한 벽에 붙어자는 걸 좋아하는 나와, 침대 바깥쪽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여편님의 취향이 맞물려 절묘하게 세로로 누워서 잤다. 다음날은 옆 침대가 비어 밤에만 슬쩍 옆 침대를 이용했고, 셋째날은 다시 한 침대를 사용했다. 세로자기도 나름 두 번째 밤에는 한결 익숙해져서 안정적인 수면을 성취했다.


숙박_Riad Inna_더블룸_3

계속 이러고 자야하나 싶었는데, 첫날 숙소 둘러볼 때 괜찮아 보였던 숙소가 부킹닷컴에서 할인을 시작했다. 냉큼 물어서 이사를 했다.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세금이다, 조식 값이다해서 1박에 30유로 정도가 됐다. 할인가로 잡은 방이라 그런지 뒷골목으로 창이 나있는 방을 줬다. 서핑 배우느라 감기 기운이 들었던 터에 묵혀있던 담요를 썼더니 엄청난 재체기를 해댔다. 첫날밤 그 고생을 하고 나서 침낭을 꺼내고, 쿠션과 담요를 쳐박고, 침대 장식용으로 쓰는 깔개를 덮고나서야 발동이 가라앉았다.

숙소 앞에는 모로코 국기와 중국 국기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는데, 중국 자본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일 거다. 아침은 테라스에서 줘서 좀 추웠지만, 오물렛에 과일쥬스 등등 맛있긴 했다. 오후가 되면 테라스에 햇볕이 들어서 사람들 북적이는 골목을 구경했다. 한쪽으론 우리가 알아봤던 호스텔 중 하나인 Green Milk Hostel의 테라스도 불쑥 솟아 있었다. 우리가 감당하기엔 매우 자유분방펑키쏘울난잡 터지는 숙소였다. 사용할 수 있는 주방도 있어서 아껴뒀던 너구리에 시장에서 사온 각종 무와 야채를 넣어 푹 끓여먹었다. 길가 식당에서 파는 해산물 먹고 식중독에 신음했다는 후기를 본 덕에 해산물 사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식사_Delices et Saveur

점심은 주로 해안가에 있는 카페에서 피자 같은 걸 먹었고, 저녁은 죄다 이 식당에서 먹었다. 첫날 숙소를 잡고 점심 먹으러 나왔더니 골목 광장에 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있었다. 자리 잡고 먹는데 여편님이 앞 식당은 올리브도 여러 종류로 주고, 더 뗏깔이 곱다고 했다. 첫날 저녁부터 가기 시작해서 6 밤 중 5 저녁을 먹었다.

메뉴당 5유로 내외에 고급지고, 정성스러운 모로코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심지어 샐러드로 얼굴 모양을 만들어주는 플레이팅을 경험한 것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감지덕지한 수준의 식당이었다. 한방갈비찜 기운 물씬 나는 건과일소고기따진, 두툼한 찐야채를 흝고 흝어야 구수한 알갱이들을 맛볼 수 있는 꾸스꾸스 같은 걸 먹었다. 꾸스꾸스는 따로 소스를 달라고 해서 솔솔 뿌려 먹어야 더 잘넘어 간다는 것도 여기서 배웠다. 분위기도 안락하고, 다양한 음악이 흐르고, 밥 다 먹으면 서비스로 잠 솔솔 오는 민트차도 줬다.


성과 주변 해안

바람도 불고, 밖은 좀 휑한 감이 있어서 성벽 안으로 들어오면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과 기념품 가게들도 정렬된 감이 있고, 길도 쭉쭉 그어져서 헤메기 쉽지 않았다. 호스텔에 머물 땐 골목을 요리조리 지나서 집에 가야했는데, 누가 불쑥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사다라는 한류에 엄청 관심이 많은 모로코 여자였다. 한국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동네라 만나면 이것저것 말 걸고, 관심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봐서 그런지 한국-아랍어 학습 어플이 들려주는 발음보다 훨씬 유창하고 부드러운 한국어 발음을 구사했다. 역시 말을 배우려면 약간은 미친거 같은 자세로 달려들어야 한다.

성 밖을 나가면 항구가 있다. 냉장 시설이 충분치 않아서 그런지 항구 냄새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견디기 힘든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항구 구경은 1분 내로 종료됐다. 10분 정도 걸어나가면 해변이 펼쳐진다. 해변이 엄청 길다. 약간 고급진 카페부터 우리가 애용한 만만한 카페까지 서너개의 식당이 있다. 바다 너머 작은 섬도 또렷히 보인다. 여기서 한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카페들이 모여있는 해변이 또 있다. 주로 서핑을 하거나 낙타나 말을 타는 등 레포츠가 이루어지는 해변이다.


모로코 축구

일요일엔 성과 가까운 해변이 축구장으로 변했다. 해변의 모래가 아주 곱고 단단해서 산책하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맘놓고 달려도 좋을 정도였다. 해변에 라인을 반듯하게 그려놓고 골대를 설치해서 축구를 한다. 해변 안쪽에도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풋살 장이 있지만 해변 축구장의 정취를 당해낼 수가 없다. 가게에서 물건 팔고, 해변 공사하던 사람들이 다 축구하러 갔는지 길가가 한산했다.

마침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기간이라 마라케시에 있을 때 모로코와 토고의 경기가 있었다. 광장에 카페는 축구 보는데 1인당 20디람이라고 붙어있는데도 꽉차있었다. 무려 대형 벽걸이 TV 3개가 전방위 중계를 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 모로코는 월드컵에서도 본적없는 전력이 약한 나라였다. (2002년 이후 월드컵 4회 연속 지역예선 탈락) 요즘은 다른가보다. 무려 토고를 3 1로 격파했다. 관광객이 주도하던 도시의 분위기가 이 순간엔 모로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해졌다. 지금 찾아보니 모로코는 8강까지 진출하고 탈락했다.



서핑 도전기_기본 강습_2시간

서핑을 배우기에 앞서 서핑을 즐기는 지인들에게도 물어보고, 인터넷으로 간단한 동영상 강의도 시청했다. 곧 바로 일주일 강습을 끊기보다 하루 정도 해보고 더 할지 말지를 정하는 걸 추천했다. 서핑의 진정한 명소는 에사우이라에서 조금 더 내려간 남쪽의 해변이다. 하지만 서핑 초보자가 배우기에는 에사우이라 해변이 적합하다고 한다. 탕헤르 도착 후 다소 무기력에 휩싸였던 우리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해변으로 갔다. 가까운 해변에도 서핑, 윈드서핑, 카이트서핑 등 장비 대여와 강습을 하는 곳들이 있었다. 처음 들어간 곳은 가격대가 좀 쎄서 카페 옆에 무난해 보이는 업체에서 강습을 받기로 했다. 강습료는 보드, 슈트 포함 2시간에 1인당 250디람(25유로)으로 무난했다. (보드와 슈트만 빌리는 경우 2시간에 120디람, 서핑 해변에 있는 업체에서는 110디람이었다.)

다음날 오후 강습을 위해 다시 각오를 다지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찾아갔다. 스트레칭도 했다. 우리와 함께 한 아일랜드 커플은 1시간만 하기로 했단다. 여편님은 서핑 며칠 전부터 추위 걱정을 했다. 이 겨울에 기온이 18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 물이 얼마나 차갑겠냐고. 헌데 이 아일랜드 커플 중 여자도 같은 걱정을 했다. 앞으로는 여편님의 추위 걱정을 유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데스크 보던 친구가 오토바이에 리어카를 달아 운전하고, 우리 둘과 아일랜드 커플, 강사 2명이 보드와 함께 뒤에 탔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강습은 저쪽 먼 해변에서 하는 것이었다. (대여만해도 먼 해변까지 태워다줬다.) 강사는 현실 강사 한 명과 만화 강사 한 명이 있었는데 한 팀씩 나눠서 만화 강사가 우리를 강습하는 일이 벌어졌다. 180이 넘는 키에 까만 피부, 긴 머리, 부리부리한 눈에 서핑으로 다져진 군살 없는 얍씰한 근육질이 우리를 가르쳤다. 여편님은 서핑 못 배워도 본전은 뽑은 거라 했다.


본격 강습이 시작됐다. 간단한 보드 설명이 끝나고, 영상에서 본 것 처럼 해변에서 기본 자세를 다졌다. 보드에서 일어나는 걸 보여줬다. 강사는 키가 커서 가슴을 중간에 대고 엎드리면 보드 밖으로 발이 한참 남았다. 짤막한 우리 발은 보드 끝에 닿지도 않았다. 괜찮다고 했다. 양 손을 가슴 옆에 짚고 다리를 쭉 뽑아 올려서 반쯤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평소 허벅지는 탄탄한 덕에 육지에서 일어서는 자세는 칭찬을 받았다. 바다에서도 그대로만 하라고 했다. 여편님은 안됐다. 결국 변형된 자세로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대충 페들링에 대한 얘기도 듣고 파도가 부르는 바다로 뛰어들어 갔다.


차가운 물은 곧 익숙해졌다. 파도가 뒤에서 오면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백이면 백 넘어졌다. 강사가 뒤에서 밀어주고, 페들페들하면서 일어서라고 했다. 안됐다. 보다 못한 강사가 다시 나를 해변으로 끌어내어 자세를 다시 해보라고 했다. 육지에선 잘 하는데 바다에선 왜 못하냔다. 물은 물이고 땅은 땅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 시범을 보여준다. 잘 보란다. 파도 앞으로 팔을 휘휘 저어 가더니, 긴 다리를 가볍게 올려서 슥삭슥삭 파도를 잘 비벼탄다. 바다에서 또 물을 먹고나와 좀 쉬었다.


남은 한 시간 후반전에 어쩌다 강사가 뒤에서 밀어주니 반쯤 일어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감각을 다시 찾지 못했다. 강사는 이제 하는일 없이 해변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기만 한다. 이걸 보고 여편님은 역시 잘 생긴 것들은 믿을게 못된다며 평가를 뒤집었다. 와중에 여편님은 나보다 더한 녹초가 되어 있었다. 둘다 해초 미역이 되어 해변에 나와 드러누웠다. 시간이 좀 남았지만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했다. 강사도 춥단다.

강습 후 몇 시간이 지나니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견딜만은 했다. 하지만 해초 여편님은 이제 해파리가 되었다. 거기다 발 등이 긁히고, 다음날부턴 발바닥이 매우 시큰해졌다고 한다. 결국 이후 여편님은 서핑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아픈 발을 절둑거리며 남은 날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노바틱스 치료약을 사서 바르고 나니 상태가 호전되어 모로코를 떠나고 다 나았다. (하필 갖고 다니던 스리랑카 물리치료약을 우린 더이상 쓸데가 없다며 안달루시아 키케 아저씨에게 줘버리고 왔다.)


서핑 도전기_자습_3

1일차_다음날부터는 자습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 괜찮은 강사를 찾는 것도 어렵고, 일단 일어서는 거나 성공해야 겠다 싶었다. 여편님은 쉬면서 구경이나 하겠다고 했고, 전날 갔던 업체에 가서 장비를 빌리고, 해변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열심히 물을 먹고, 체력이 소진되는 동안 나의 문제점을 알았다. 옆에 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팔젓기(페들링)을 엄청 열심히 했다. 저걸 부지런히 해야 가속도가 붙고, 그래야 일어서는 와중에도 잘 넘어지지 않는 단 걸 깨달았다.


2일차_전날 날 구경한 여편님이 이쪽 해변에도 카페도 있고, 대여 업체도 다 있다고 했다. 함께 먼 해변까지 걸어와서 카페에서 요기를 했다. 체력이 슬슬 고갈됨을 느꼈지만 파다와 바도가 나를 불렀다. 장비를 빌려 바다로 들어갔다. 패들링을 좀 더 열심히했다. 하지만 이날 날도 흐리고 바람이 너무 불다보니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좀 타겠다 싶으니 파란 옷에 파란 보드를 든 애들이 와서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넓은 바다 다 놔두고 자꾸 내 옆으로 오니 성가셔서 집중이 안됐다. 약간의 감기 기운을 안은체 여편님이 기다리는 카페로 돌아갔다.


3일차_전날 감기 기운을 얻은 터에 옮긴 숙소에서 엄청난 제체기를 했다. 기운이 다 빠졌지만 이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슬슬 파도를 타고 일어서는 타이밍을 알 것 같았다. 남은 기운을 다 모아 연습을 했다. 한 두번 반쯤 일어나는데도 성공했다. 파도가 날 덮쳐도 패들링을 하다가 가속력이 붙고나서 일어서니 훨씬 나았다. 이제 슬슬 알 것 같았지만 체력이 바닥났다. 하루 이틀만 더 하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날 자체적으로 감기 확진을 내렸다. 이미 감기가 진폭 걸린 것 같았다. 차기 행선지에서 다시 한 번 도전을 꿈꾸며 모로코에서의 서핑 도전은 막을 내리기로 했다.


참고_혼자 서핑하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iveyourd&logNo=220423889255


참고_나도 서퍼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0ca68OQMli0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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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끝으로 20161월부터 시작한 1년 간의 유라시아 여정, 3달 간의 지중해 기행을 끝냈다. 스페인 남부까지 내려온 김에 모로코를 갔다. 헤엄쳐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 아프리카 대륙이 있는데 누가 주저하겠는가. 모로코부터 당분간 여행의 테마는 대서양으로 잡았다.


모로코를 방문에 앞서 기대한 것이 몇가지 있었다.


1. EU권 국가의 국민은 쉥겐 조약에 따라 쉥겐 조약에 해당하는 국가에 90일 동안 머무를 수 없다. 113일 그리스로 입국한 뒤 유럽권을 빠져나가는 것이 이월 초였다. 최소 일주일 정도는 쉥겐국 이외의 국가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글 하단 참고자료 참고)


2. 사하라 사막을 가보고 싶다. 어느 친구는 사하라 사막은 떼깔이 다르다고 했다.

3. 해변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싶다.

4. 꾸스꾸스를 실컷 먹어보고 싶다.


1을 제외한 3가지 소원 중 2개를 성취하였다.



일정과 이동_20170109_20170121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발해 지브롤타 해협을 건너 탕헤르로 입국했다. 탕헤르에서 2박 후 야간열차를 타고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아침에 바로 버스를 타고 에사우이라에서 6박을 했다. 다시 마라케시로 돌아와 3밤을 자고 리스본행 비행기를 탔다.


말라가(Malaga)에서 탕헤르(Tanger) 건너가기

말라가에서 탕헤르로 가는 길은 그리 짧진 않았다. 스페인 남부와 모로코 북부를 잇는 페리 노선은 타리파(Tarifa)-탕헤르(Tanger) 노선과 알헤시라스(Algeciras)-탕헤르 메드(Tanger Med) 노선이 있었다. 전자가 훨씬 가까워 보이지만, 더 비쌌다. 알고보니 타리파에서 탕헤르까지 가는 건 옛날 노선이고, 탕헤르 외곽 탕헤르 메드에 신항구가 생기면서 주 항로는 알헤시라스-탕헤르 메드가 됐다. 김포공항으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것보다 비싼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말라가에서도 알헤시라스를 가는 직통버스만 있고, 타리파를 가려면 또 갈아타야 하는 불편이 있다.

말라가에서 출발해 알헤시라스에 내렸다. 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스페인 꼬마와 장난을 쳤다. 뒤에 앉은 아빠에게 덥고, 답답하다고 떼를 쓰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도착할 무렵 징징이 절정에 이르자 남은 종이로 부채를 만들어서 줬다. 제대로 못부쳐서 아빠한테 부쳐달라고 했지만 좋아했다. 막판 5분은 편안해졌다. 버스터미널에서 페리 표를 물어보니 항구에 가서 사란다. 사람들을 따라 항구에 들어가니 여러 개의 창구에서 탕헤르로 가는 표를 팔았다. 타리파까지 데려다주고, 바로 탕헤르로 가는 페리를 타는 건 40유로 정도고, 탕헤르 메드로 가는 배는 20유로였다. 페리는 자주 있어서 바로 출발하는 표를 샀다. (인터넷에선 탕헤르 메드에서 내려서 페리 표를 보여주면 탕헤르로 가는 무료 셔틀을 탈 수 있다고 했는데 표를 살 때 물어보니 무료 셔틀은 없고, 버스비는 4유로라고 했다.)


표 파는 직원이 얼른 가서 배 타라고 했는데 체크인 하고 출발 시간이 다가와도 출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출발 시간이 좀 지나서야 배에 탈 수 있었다. 배 안은 매우 넓고, 쾌적했다. 승객은 그리 많지 많았고, 자리는 차고 넘쳤다. 배고픔에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다. 더 이상 하몽 샌드위치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감지덕지로 먹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 서서 검사를 받고 있다. 가서 보니 여권 심사였다. 배 안에서 입국 심사가 이루어졌다. 우리도 얼른 입국 카드를 채우고, 여권에 도장을 받았다. 입국카드에 호텔 주소도 채워넣어야 해서 PDF파일로 가지고 있는 론니플레닛을 뒤적여 무난해 보이는 호텔 주소를 적어넣었다. 심사관이 호텔 이름은 뭐냐고 묻길래 기억나는 대로 마모라라고 대충 답했다. (이땐 진짜 이 호텔에 머물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밖에 나가서 부옇게 보이는 앞 뒤 대륙을 감상했다. 여편님은 이틈에도 한창 물이오른 안달루시아 여행기를 집필했다. 뭐 어쩌다보니 대략 2시간 탕헤르 메드에 도착했다. 신항구는 엄청 컸다. 공항처럼 내려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 건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려고 밖으로 나가니 저 언덕에서 사람들이 미니버스를 타고 있었다. 우리도 타려고 줄을 서니 안받아준다. 뒤에 택시를 타란다. 별 수 없이 10유로를 내고 택시를 탔다. 큰 승합택시라 우리 말고도 3명을 더 태웠다. 그래도 차가 좋아서 쾌적하게 질주했다. 탕헤르 시내까지는 40분정도가 걸리고, 메디나 바로 앞까지 가서 내려줬다. (다음날 아침에 호텔 식당에서 만난 핀란드 할머니가 나에게 자랑을 했다. 호텔 방값부터 묻기 시작한 할머니는 탕헤르 메드에서 4디람(10디람 = 1유로)을 내고 버스를 탔고, 시내에서 메디나까진 10디람을 내고 택시를 타고 왔단다.)


모로코 기차, 버스, 택시

탕헤르에서 페즈 등을 거치지 않고 에사우이라로 가기로 하면서 이동도 단순해졌다. 탕헤르에서 에사우이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다. 가장 빠른 건 카사블랑카로 가서 또 버스를 갈아타는 것인데 한나절 내내 버스를 타야한다. 그래서 택한 것이 마라케시까지 밤기차를 타고 간 뒤에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모로코의 기차와 버스는 꽤나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기차는 ONCF라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뻔해 보이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어서 홈페이지로 쉽게 노선과 시간표를 파악할 수 있다. 여행자들이 많이 타는 버스는 CTMONCF에서 운영하는 SUPRATOURS 버스이다. 더 저렴한 로컬버스도 많을텐데 우린 안타봤다.


탕헤르(Tanger)-마라케시(Marrakech) 야간열차

탕헤르를 떠나는 날 해가 지기 전에 기차역으로 갔다. 출발시간이 넉넉히 남았지만 딱히 할일도 없었다. 성수기가 아니라 창구에서 침대칸 표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배낭을 지고 바로 건너편의 거대한 쇼핑몰을 구경갔다. 새로 생겼는지 가족, 친구, 연인끼리 구경 온 사람들이 많았다. 탕헤르가 국제자유면세도시라 엄청 세일 딱지가 붙어있다. 여기도 어차피 이쁜 건 다 비쌌다. 자라 망고 같은 유럽권 브랜드부터 LC WAKIKI같은 터키 브랜드까지 다 들어와 있거나 입점 예정이다. 마트엔 무알콜 맥주만 있다. 꾸스꾸스만도 한 칸을 쭉 차지하고 있다. 여전히 시장문화가 중심인 나라라 그런지 마트는 한산했다. 윗층 푸드코너를 한참 기웃거리다 나는 프랑스식 타코를, 여편님은 태국식 볶음면을 시켜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기차역으로 갔다. 역 앞에 택시 기사들이 우릴 불렀다가 기차 역 간다고 하니 미안한 모양새를 취한다. 택시 기사들에게까지 예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기차에 탔다. 시베리아 이후 야간열차는 오랜만이다. 밤버스에 비하면 밤기차는 안락함 그 자체다. 우리 칸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남자 둘과 우리 둘이었다. 여자 혼자 타면 알아서 여자만 있는 칸을 배정해 준다고도 들었다. 듣던대로 히터가 빵빵했다. 예민한 바르셀로나 친구가 밤새 창문을 부지런히 열고 닫지 않았다면 우린 히터에 쪄죽었을 거라는 것이 여편님의 증언이다. 밤 기차에서 사막의 별을 바라본다는 로망도 없이 쿨쿨 잤다. 깨어보니 일출, 이어서 아프리카대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리게 파란 하늘과 가슴 진하게 펼쳐지는 땅의 기운을 볼 수 있었다. 넉넉한 벌판에 드문드문 떨어진 집들과 가축들이 보이고, 분명 허허벌판인데 학교 가려고 책가방메고 달려가는 아이들도 보였다.


마라케시-에사우이라 SUPRATOURS 버스

탕헤르역 못지 않게 마라케시 역사도 아주 새것이었다. 여긴 좀 더 오아시스 같은 멋을 냈다. 넉넉히 아침 식사와 커피를 즐기고 가려고 했는데, 기차 역 바로 옆의 SUPRATOURS 버스 터미널에 가보니 곧 출발하는 9시 버스 다음 버스는 한참 걸렸다. 와이파이를 즐기던 여편님을 얼른 불러서 터미널에 달려가서, 표를 사고, 매점에서 달팽이빵과 크로와상과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버스에 탔다. 생각외로 빵이 맛있어서 흡족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하루에 한 대 있는 110디람짜리 프리미엄 버스였다. 일반 버스(같은 회사)보다 30디람이 비싼데 짐이 공짜다. 오는 길에 탄 일반 버스는 배낭 같은 큰 짐은 하나당 5디람을 따로 받았다. 대략 4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2분 정도 쉬면서 간식을 먹을 수 있다. 갈 땐 프리미엄 버스의 쾌적함을 몰랐다. 일반 버스는 와이파이가 없는 건 물론이고, 우리 좌석 번호가 45, 46이었는데 맨 뒷자리가 아니었다. 뒤로 3,4줄이 더 있을 정도로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마라케시 공항(Marrakech Menara Airport)

마라케시 공항은 기차역 바로 건너편에 있다. 기차역에서 메디나로 갈 땐 바로 승객을 내린 택시를 얼른 잡아 탔더니 20디람에 갈 수 있었다. 메디나 광장에서 공항 가는 택시를 잡으려니 기본 100디람(오피셜), 깎아도 70디람이었다. 좀 더 길가로 나가서 택시 타는 곳에서도 오피셜 70디람 그대로였다. 가진 잔돈이 55디람뿐이라고 실랑이 끝에 탈 수 있었다. 공항 가는 버스비도 택시기사 말대로 30디람이었다. 얼마 차이도 안나는 거 괜히 깎았나 싶었다.

마라케시 공항은 예전에 한창 확장 공사 중이던 조지아 트빌리시 공항이 완공되면 이렇겠다 싶은 모양이었다. 이것도 거의 새 건물에다 공항 안이 엄청 넓었다. 출발 2시간 전부터 체크인이라 커피 마시며 뒹굴다가(실제로 쇼핑 코너에 카페트와 쇼파를 깔아놔서 뒹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티켓 받고 들어갔다. 출국 심사를 받고 탑승장으로 넘어가니 면세점은 더 휘황찬란했다. 스타벅스와 프랑스 PAUL 빵집도 있고, 별에 별 명품 브랜드와 술, 모로코산 와인들도 다 있었다. 술을 당장 사마시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 참았다. 이런 저런 구경하다가 티켓에 표시된 탑승 시간이 30분 남았는데 게시판엔 탑승 안내가 떠있다. 훌렁 게이트로 가니 직원이 내 티켓을 보고 곧 탑승줄이 생겨났다.


어쩌다보니 모로코에 있는 2주 동안 술이라곤 꼴랑 맥주 각 1병씩만 마셨다. 해변에서 만난 커플은 우리가 술집을 못 찾았다고 하니 여기 바가 널렸다며 웃었다. 술 파는 가게는 없었지만 웬만한 해변 레스토랑 급엔 맥주와 와인을 다 팔았다. 무려 맥주가 40디람, 와인이 30디람이다. 우리가 만만하게 가는 식당엔 다 술이 없고, 음식도 순순한 음식들이라 자연히 술을 안 찾게 되었다. 리스본행 기내에선 음료와 간식 서빙을 해줬는데 음료에 와인이 있었다. 우린 5분간 묵념어린 고심끝에 와인을 외쳤다. 참치 샌드위치와 함께 꼴깍꼴깍 넘어가는 와인의 맛은 창공의 야경보다 빛이 났다.



탕헤르(Tanger)_0109_0111

택시가 우리를 메디나 안까지 데려다 주려고 하는데 좁은 골목에 공사 중이라 됐다고 하고 내렸다. 내리자마자 반가운 호객꾼이 우리를 반겨준다. 호텔 찾냐며 우릴 앞장서서 인도한다. 몇 군데 보여주고 나선 우리끼리 다니겠다고 했다. 소문대로 골목골목이 무성하다. 인터넷에서 예약이 되는 숙소들도 엄청 어두운 골목에 창문도 없는 곳이 많았다. 대륙 건너오는데 힘들었으니 처음에 보여준 괜찮은 호텔로 가기로 했다.


숙박_호텔 마모라(Hotel Mamora Tanger)_더블룸_2

무려 1박에 330디람, 30유로나 하는 호텔이었다. 골목길 내에서는 따라올 수가 없는 레벨의 쾌적한 로비와 테라스 뷰의 식당도 있었다. 로비와 달리 방은 좀 어설픈 구석이 있었지만 나름 쓸만했다. 말라가 도미토리 마지막 날에 맞은 테러를 삭히기엔 충분한 곳이었다.

방값에 포함된 아침이 제값을 하는 곳이었다. 일찍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올라가도 바로 커피와 식사를 줬다. 이 집 커피가 모로코에서 마신 커피 중에 가장 진하고 달콤했다. 항구와 옆 언덕 너머로 일출까지 덤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호텔에 돈 좀 쓴 맛을 냈다.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하나하나 안내해주는 일층 직원의 영어는 꽤나 인상 깊었다.


탕헤르 메디나(Tager Medina)

탕헤르에선 별로 한 게 없다. 할게 없기도 하다. 바닷가 한 번 보러 나간 걸 제외하면 들어와서 나갈 때 까지 메디나 밖(올드타운=시장=숙소+식당+카페 분포지)을 나가지 않았다. 밥은 숙소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다. 당연히 메뉴는 꾸스꾸스나 따진이다. 우리가 아는 거라곤 그게 전부여서 이 식당 저 식당에서 각각 하나씩을 먹어봤다. 겻들여주는 모로칸 수프의 맛이 부드럽다. 소고기 따진은 갈비찜 비스무리하게 해주니 잘 넘어갔다. 꾸스꾸스는 내 기대보단 좀 더 푸석푸석했다.

탕헤르 메디나는 이후 경험한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아주 소박한 수준이다. 관광객용 매장 비중히 압도적인 다른 도시에 비하면 훨씬 생활친화적이다. 가짜 상표의 옷 디자인이 매우 맘에 들었는데 좀 살걸 그랬다. 아무래도 유명 관광도시가 아니라 메디나에 모로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남녀노소 할 거 없이 후드가 달린 두루마기 같은 걸 입고 다녔다. 우리도 하나 맞출까 고민을 했다. 이런 고민은 대부분 사각 광장에 사각으로 자리잡은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다들 민트차를 마시길래 우리도 민트차를 마셨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카페의 의자들이 모두 길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마주 앉아 대화를 하기 보다는 벽에 다닥다닥 붙어서 거리 구경을 한다. 우리도 따라 앉아서 길거리를 구경했다. 모로코의 풍경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터키에서 처음 경험한 이슬람 사회의 공통점도 느껴지지만 뭔가 다른 향기가 난다.

돌아보면 방문한 3개 도시 중 거리나 카페에서 관광객보다 모로코 사람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탕헤르였다. 다른 도시에서 떠오르는 풍경은 수 많은 가죽가게들이지만 탕헤르에서 떠오르는 풍경은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다. 참고로 이 카페들에서 주는, 글라스에 민트 한 몽테기가 둥둥 떠있는 민트티가 달짝하니 맛있었다. 껌이라면 역시라는 그 껌을 씹는 기분이 든다.


부록_모로코 디람 사용

모로코 화폐 단위는 디람(MAD)인데 국외 유출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10~11디람에 1유로 정도였고, 어지간한 곳에선 유로화도 잘 통용되는 것 같았다. (유로화를 좀 넉넉히 뽑아올 걸 그랬다.) 문제는 ATM이었다. 프랑스 은행인 소시에테제너럴이나 크레딧아그리꼴, 비엔피파리 은행이나 그 은행그룹에 속한 모로코 은행들이 많았다. 여러 은행에 시도를 해봤지만 죄다 2,000디람이 한도였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카드 사용이었다. 탕헤르 호텔값이 660디람이라 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하니 안됐다. 몇 번을 시도해도 안되니 결국 현금으로 결제했다. 기차역에서도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야간 기차도 둘이 타면 700디람이 넘었다. 다른 숙소들도 대부분 1박에 200~300디람은 하는 통에 2주 동안 무려 5(2,000디람 X 4 + 600디람 X 1)이나 인출을 해야했다. 나중에 공항에서도 이미 인터넷으로 결제를 했지만 안내해준 사무실에 가서 카드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했다. 아마 국가적으로 해외 체크(신용)카드 사용을 제한해서 그런 것 같다.



참고자료_쉥겐_외교부 해외안전여행_쉥겐

https://www.0404.go.kr/consulate/visa_treaty.jsp


참고자료_쉥겐_주스페인대사관_질의응답 게시판

http://esp.mofa.go.kr/korean/eu/esp/civil_appeal/question/index.jsp


안녕하십니까. 주스페인대사관입니다.


귀하께서 보내주신 문의사항을 잘 접수하였습니다. 문의에 대한 답변을 아래와 같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럽여행 일정을 계획하실 때, 가급적이면 쉥겐협정상의 무사증체류 허가 기준(최종한국입국예정일 기준 180일내 90)에 맞추기를 권장드립니다. 쉥겐협정은 쉥겐국 출국 예정일로부터 역산하여 180일 기간중 90일까지 무비자로 쉥겐 지역을 여행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대부분의 여행객분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장기간 여행을 고려중인 000님의 경우 사전에 방문 국가와 체류일수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1일부터 629일까지 180일 기간중 90일간 쉥겐 지역에 체류했다고 할 경우 이전 180일간인 41일부터 927일까지 기간중 쉥겐국 체류 일수를 따져봐야 합니다. 만약 앞선 여행기간중 해당하는 41일부터 629일 사이 쉥겐국에 체류한 적이 있다면 이는 협정을 위반하게 됩니다.


스페인의 경우 양자협정을 우선시 한다지만 스페인의 지리적 위치상 불법이민자의 유입이 많고, 비유럽시민의 무사증 체류허가 기간의 오남용이 잦아 스페인 이민당국의 심사가 보다 깐깐하고 보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만일에 대비 유럽내 체류를 증빙할 수 있는 항공권, 기차표, 숙박 영수증 등을 버리지 마시고 꼭 소지하시기 바랍니다. 간혹 여권에 서명하지 않아 위조 여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여권에 본인 서명이 되어 있는지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000님의 경우 비쉥겐 국가로 이동을 하셨더라도 이미 최종 출국일을 기준으로 90일 이상을 체류하셨다면 무비자로 체류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상세한 정보는 외교부 홈페이지(https://www.0404.go.kr/consulate/visa.jsp) 화면 상단 맨 왼쪽 "여행/해외체류 정보"란의 네번째 "비자(영사서비스)"를 클릭하시면 쉥겐협약에 대한 날짜를 계산하실 수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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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13일 화요일 “활활 불태운 막노동”

아침 8. 한국은 오후 4. 엄마에게 첫 보이스톡을 시도해본다. “엄마?” “응 엄마야~” 거의 두달만에 편히 듣는 엄마 목소리다. 스마트폰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던 엄마는 나와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자주 주고 받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바꾸셨다고 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마지막 노동, 막노동을 하러 일터로 갔다. 가는 길에 도로변에 있던 야생양들도 보았다. 일주일넘게 따놓고 쌓아놓기만 했던 올리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오후에 트랙터를 불러 한꺼번에 공장으로 가져갈거라고 했다. 오늘도 마놀로 할아버지가 오셨고 네팔이는 따라오지 못했다. 알레한드라 언니는 10시가 넘어도 일터에 오지 않는다. 11시가 다 되서 온 언니는 아파보였다. 계속 기침을 하고 힘들어 보이는 언니. 12시가 되어도 간식을 먹지 않는다. 이 고개 일을 다 마치고 먹으려고 한단다. 어쩔수 없지. 12시 반이 넘어서야 간식을 먹었다. 밑에 내려와서도 남은 몇개의 나무를 작업하느라 바쁘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놀로 할아버지가 와인병을 딴다. 추웠던지 언니가 할배에게 와인을 좀 달라고 한다. 나도 한모금 얻어 마셨다. 맛있다. 직접 담갔냐고 물어보니 옆집이 담은 걸 줬다고 했다. 병나발을 부는 할아버지. 노동이 힘드신가보다.


마지막 노동 시에스타. 햇빛이 오래 머무는 자리를 찾아나섰다. 바로 밑에 다른 팀 아프리카 노동자들 중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먼 곳까지 와서 일하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누워서 하늘을 본다. 여전히 독수리들은 날아다니고 비행기도 날아가고 하늘은 파랗다. 그런데 저기 나무에 달린건 뭐지. 다가가서 따본다. 아몬드다. 여기 사람들은 아몬드를 우리 호두 까 먹듯 먹는다. 프로방스에서 보고 싶었는데 못봤던 아몬드 나무를 여기서 보다니. 여기저기 새싹을 피우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남편님이 더 따보라고 요청하신다. 따서 몇개 드리니 돌로 깨서 드신다. 나도 몇개 먹었다. 천연 비타민E를 맘껏 흡입했다. 그러더니 큰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트랙터가 왔다. 우리의 마지막 휴식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났다. 키케가 우리 둘을 데려가 올리브를 네트에서 사방에 고리가 달린 포대에 옮기는 걸 같이 하자고 했다. 큰 네트에서 작은 포대에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남편님과 키케가 당기는게 힘들어 보이면 나도 힘을 보탰다. 그럼 조금 움직였는데 그럴때마다 키케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Fuerte”라고 했다. 항상 키케는 나에게 장난을 많이 걸었다. 도착 첫날 뭐 필요한거 없냐는 질문에 “요거트”라고 했는데 “요굴?” 이러더니 20개 한팩을 사다줬다. 그리곤 맨날 장보러 갈때마다 “요굴 사다줄까?라고 물어봤다. 고마운 키케 아저씨.

이 날 힘을 가장 많이 썼다. 한시간 동안 한 네트에 200kg이 되는 올리브를 7~8번 옮겼으니.. 우리는 곧 넋이라도 있고 없고가 되었다. 항상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키케 아저씨는 배에 복대를 하고 있다. 육체노동의 어려움이여.. 조금 못채운 5톤짜리 트랙터, 우리 일주일 노동의 결과다. 알레한드라 언니는 트랙터를 따라갔고 우리는 업무 정리를 했다. 마놀로 할아버지는 그 사이를 못참고 언니에게 마시라고 줬던 기네스 맥주를 찾는다. 앞자리에 앉아 맥주를 땄는데 거품이 흘렀다. 키케 아저씨가 뭐라고 해도 꿋꿋이 맥주를 마시는 마놀로 할배. 좋아하시는 담배, 술 적당히 하시고 오래 행복하시길.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우리는 내일 마지막 저녁만찬 재료를 좀 사고 맥주도 좀 샀다. 삼바는 닭을 엄청 많이 샀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집에 와서 천천히 씻고 빨래도 열심히 했다. 작업복으로 입었던 옷에서 검정 올리브 물이 계속 나온다.

밖에서 낯선이가 온 소리가 들린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며칠 전 아저씨가 이야기 한 미국인 시인이다. 프랑스 커플이 나간 방에서 며칠 머물 기세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벤이라고 불러 달란다. 그와 키케 아저씨의 인연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케사다에서 멀지 않은 우베다라는 곳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가려던 벤은 히치하이킹을 시도했고 키케를 만났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라 바르셀로나까지 가는게 무리라고 생각했던 키케는 본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 것을 제안했고 다음날 벤은 케사다에서 안전하게 바르셀로나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잊고 있었는데 벤이 뉴올리언스의 모 대학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과 대화 중 10년전 이야기를 했고 스페인 사람이 그 사람 이름을 물어봤다.

키케? 그 키케? 안달루시아 케사다의 그 키케? 나 그 사람 연락처 알아!” 그렇게 다시 연락이 되었고 이번에 벤이 스페인에 오면서 방문하게 됐다고 한다. 그 사이 벤은 좋아하는 스페인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아저씨와 스페인어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저녁은 아저씨가 하기로 했다. 토르띠야 데 파따따. 즉 스페인식 감자전을 먹어봤냐고 물어봐서 아니라고 했더니 어찌 스페인의 대표음식을!! 이러면서 해주신단다. 정성스레 감자를 다듬고 올리브유를 웍에 잔뜩 부어 볶는다. 아니 기름으로 끓인다는 말이 맞다. 그리고는 감자를 치우고 거기에 푼달걀을 지지고 그 위에 감자를 부어 달걀전이 감자를 감싸는 모양새를 만들면 완성! 생각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달걀이 충분치 않아서 모양이 안살았다고 한다. 아침으로 프랑스 커플이 12개씩 먹고간 모양이다. 엔살라다 거리를 따오라는 아저씨의 명령에 텃밭에 가서 양상추도 뜯어왔다. 이미 벤이 사온 와인은 다 마셔서 아저씨가 사온 와인을 또 땄다. 내일 쉬는 날을 맞아 미술관에 갈거라는 이야기에 벤도 따라 나설거라고 한다. 그 곳에 같이 있는 모 시인의 박물관이 궁금하다면서. 키케 아저씨가 어디에 전화를 하더니 거기 가서 로사를 찾고 키케 친구라고 하면 무료로 미술관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 마음씨 따수운 아저씨. 그렇게 즐거운 내일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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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방문의 주 목적은 바르셀로나와 안달루시아였다. 마드리드는 겸사겸사 거쳐갔고, 안달루시아에서 워크어웨이를 하고 말라가에서 재충전을 했다. 안달루시아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여편님이 따로 연재하고 있다.


링크: http://cordon.tistory.com/153


일정과 이동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마드리드에서 2박만 했다. 곧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말이라 그 전에 안달루시아에서 워크어웨이를 시작하려고 서둘렀다. 2주간의 안달루시아 생활을 끝내고, 남부 해안도시인 말라가로 갔다. 거기서 4박을 하는 것으로 스페인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가는데에는 수 많은 옵션이 있었다.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은 AVE라는 KTX같은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미리 예매를 했으면 싼데 우린 그럴리가 없으니 비쌌다. 1명에 70유로 정도였다. 비행기도 공항 왔다갔다하는 걸 감안하면 비슷한 비용이었다. 싸고 만만한게 버슨데 30유로면 가지만 무려 6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도상으론 가까워보여도 마드리드는 산에 둘러싸여 있다. 고심끝에 찾아낸 방법은 좀 저렴한 기차였다. 아예 느리게 가는 기차도 있었지만 발렌시아를 경유해서 가는 고속열차가 45유로였다. 시간은 버스와 비슷했지만 기차는 편했다. 스페인 철도청인 Renfe 예매에 대한 악소문이 횡행하는데 어찌저찌하다보니 무난히 예매가 됐다. 표는 역에 가서 발권기에 예매번호 입력하면 촥 나왔다.

스페인 기차는 생각보다 더 편했다. 좌석도 넓었고, 영화도 틀어줬다. 발렌시아에서 갈아타는 건 좀 헷갈렸다. 바르셀로나발 기차가 내려주는 역(Estacion Norte)과 마드리드행 기차를 타는 역(Estacion AVE Joaquin Sorolla)이 달랐다. 두 역간 거리가 있어서 걸어갈라면 무겁겠다 싶었는데 내리니 셔틀버스 타는 곳이 안내되어 있었다. 마드리드행 기차는 AVE 중에도 최신형으로 아주 날렵한 주둥이를 갖고 있었다. 점심 챙겨먹을 시간이 없어 식당으로 갔다. 하몽 샌드위치 세트를 시켰는데 여지없이 음료론 맥주를 골랐다. 6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이후 이동은 모두 버스를 탔다. 스페인은 버스도 잘 되있는 편이다. ALSA 같은 큰 회사는 온라인으로 예매하는 게 좀 더 싸기도 하다. 텃새가 심한지 FLIX 버스는 스페인 내 노선은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워크어웨이 행선지인 안달루시아 퀘사다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우선 마드리드에서 ALSA를 타고 JAEN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안달루시아 지역 버스를 탔다. 완전 완행 버스로 꼬불꼬불 산길에 있는 모든 마을에 들르고 나서야 퀘사다에 도착했다. 2시간이 걸렸다. 나올때도 마찬가지로 다시 JAEN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말라가행 버스를 탔다. 이때 탄 말라가행 버스도 엄청 완행이라 안달루시아 남부를 다 흝고 말라가로 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마드리드(MADRID)_20161219_20161221

오로지 미술관을 보겠다는 목적 하나로 방문했다. 역사상 가장 짧게 치고 빠진 도시다.


숙박_BARBIERI SOL_4인 도미토리_2

숙소 알아보기도 귀찮아서 호스텔월드에서 무난해 보이는 걸 골랐다. 단 하나 우리가 고려한 것은 조식이었다. 무려 그리스에서부터 도통 조식 주는 숙소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침 주는 곳이 간절했다. 특히 토스트기에 구운 식빵과 달달 고소한 씨리얼이 간절했다. 예상대로 아침은 그렇게 준비되어 있었다. 탁탁 바스러지는 식빵과 씨리얼, 거기에 우유 탄 인스턴트 커피와 싼마이 오렌지쥬스면 내가 바라는 조식의 요건은 모두 충족된다.


이 숙소에 또 하나 특이점은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거였다. 체크인 하는데 스페인 직원이 우리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하자 누가 지나가면서 제대로 발음해줬다. 그 덕분인지 한국 여행객들도 많이 드나드는 모양이었다. 여편님은 곧 있으면 한국 돌아갈 사람들이 부대찌개면을 끓여먹고 있다고 부러워했다.

마드리드에선 주는 조식 빼곤 다 사먹자고 다짐했건만 둘째날 저녁이 되니 바깥 밥도 지겹고 간단히 소세지나 구워 와인을 마시고자 했다. 처음에 거세게 반대했던 여편님이 본인은 사발면에 샐러드를 사다 먹겠다며 응했다. 그리고 주방에 가보니 한국인들이 남겨 놓은 양념들이 많았다. 충격적으로 돼지갈비 양념이 있었다. 한국에선 누가 줘도 안받는 물건이지만 타지에선 감지덕지라 굽던 소세지에 마음껏 뿌렸다. 그런데 그 한국 직원 분이 주방을 지나다 그 양념들이 다 본인 것이라고 했다. 이 귀한 걸 막 써버리다니 죄송한 마음이 바닥을 긁었다. 고심 끝에 귤 몇 개와 감자칩으로 사죄했다. 와인이 최악으로 맛이 없었지만 갈비 양념 소세지는 레알 마드리드 천상의 맛이었다. 불고기양념의 위용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드리드 시내와 식사

호스텔 근처 SOL 광장엔 커다란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마드리드 트리라고 해서 엄청 대단하진 않았다. 다비드 비야가 다녀갔다는 영상을 보면서 비친 홍대의 트리와 길거리 장식이 훨씬 더 화려했다. 첫날 저녁으론 기웃거리다 보이는 타코집에 들어갔다. 사실 나에게 멕시코 음식은 또 다른 고향의 맛이다. 여행 중 현지 식이 물릴때마다 멕시코 음식맛 먹어주면 굳이 한식에 대한 절박감은 느끼지 않았다. 이번에도 타코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타코도 산뜻했고, 화지타로 나온 요리는 무려 고추장제육돌솥밥이었다.


다음날 오전, 연이은 미술관 투어에 지친 나는 여편님을 홀로 티센 미술관으로 보냈다. 난 다음날 이동을 위해 터미널 가서 버스 티켓도 알아볼겸 Estacion Sur de Autobus로 갔다. 대강 터미널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여편님과의 접선 장소인 프라도 미술관까지는 운동삼아 걸어갔다. 으쌍으쌍 대로를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커플이 나에게 스페인어로 버스 터미널 가깝냐고 물어봤다. 경황이 없어 '.. 큰 빌딩.. 10분 내외'라고 답해줬다. 여편님이랑 같이 다닐 땐 늘 영어로 묻던 사람들이 왠일일까.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여편님과 토의 결과 내가 타코 집 직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 앞의 카페에서 여편님과 접선한 뒤 점심으로 Menu del dia를 찾아 나섰다. 소박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니 세트가 1인당 10유로였다. 여편님한테는 소갈비찜이, 나에게는 하몽크로켓이 나왔다. 와인과 함께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너무 푸지게 먹어 숙소에 돌아와 낮잠을 자야했다.


미술관 열전

마드리드 미술관 얘기를 하는 김에 스페인에서 방문한 미술관을 한데 묶었다. 주로 피카소가 중심이다.


바르셀로나_피카소 박물관(Museo de Picasso)_1216

비오는 금요일, Arc of Triump를 거쳐 피카소 박물관을 갔다. 5년 전에도 피카소 박물관 가는 날은 비가 왔다. 잠시 감성돔이 되어 빗길을 헤엄쳤다. 여긴 분명히 가봤다며 큰 소리 쳤는데, 게르니카가 없다는 걸 까먹었다. 게르니카는 마드리드에서 본 것이었다. 워낙 스페인 곳곳에 피카소 작품을 전시한 박물관이 많아서 비싼 입장료를 들여서까지 이 박물관을 볼 필요가 있었나 싶다. (마드리드, 말라가에선 모두 무료 입장 시간을 이용했다.) 피카소의 생애에 대해선 잘 안내가 되어있었으나, 전 생애에 걸친 작품 궤적을 파악하긴 힘들었다. 특별 전시 중인 입체파 전은 재미있었다.


마드리드_소피아 미술관(Museo de Reina Sofia)_1219

마드리드 도착 후 숙소에 배낭을 던져놓고 소피아 미술관으로 갔다. 무료 입장 시간인 오후 7시에 딱 맞춰 도착했다. 여편님은 도착하자마자 시간이 없다며 나를 압박했다. 내 템포를 잃기 싫어 천천히 보겠다하니 먼저 가겠단다. 그래봤자 보는 속도가 거기서 거기라 같이 봤다. 게르니카는 사람이 너무 몰려 차분한 감상이 어려웠다. 하지만 살바도르 달리 같이 이름만 들었던 스페인 화가들의 면모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_프라도 미술관(Museo de Prado)_1220

다음날도 여지없이 저녁 6시 무료 입장 시간을 택했다. 확실히 무료 입장 줄이 어마어마했다. 이 거대한 박물관을 무료 입장 2시간으로 보는 건 제대로 안보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우리도 시간 부족으로 고야, 벨라스케스의 작품만 집중 탐구했다. 간간이 지나가는 그림들도 매우 훌륭했다. 맛만 봤다고 해야겠다.


퀘사다_라파엘 사발레타(Museo de Rafael Zabaleta)_0104

여편님의 퀘사다 이야기에서 다룬다. 링크


말라가_피카소 미술관(Museo Picasso Malága)_0108

여기도 마침 일요일 오후가 무료 입장이라 그날을 택했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미술관들에 비해 훨씬 한산했다. 피카소는 말라가에서 태어났지만 이름이 알려지고 난 후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도 소장품이 많진 않다. 그래도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았다. 초록색 화가라는 그림이 아주 맘에 들었다. 그간 미술관 다니며 스페인어 해설을 꾸역꾸역 읽어봤는데(덕분에 전시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았다.) 여기쯤 오니 비로소 읽히는 기분이 들었다. 뿌듯했다. 추가로 우루과이 작가인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Joaquin Torres-Garcia)의 상설전시도 보았다. 우루과이=파리-뉴욕-우루과이를 거치며 변화하는 그의 심리가 그림에 묻어났다. 또 하나 뿌듯한 발견이었다.



말라가(Malaga)_2017_0105_0109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지하철도 있다. 그라나다가 알람브라 하나로 먹고 사는 관광도시지만 말라가는 해안도시라 주변의 휴양지까지 관광도시로도 더 큰 규모다. 신문에서 보니 스페인 관광객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는 영국이라고 한다. 유럽의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러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길거리, 숙소에서 영어를 훨씬 많이 들었다. 근처 해안의 이름도 다 태양해변(Costa del Sol), 빛해변(Costa de la luz)일 정도다. 유럽 지방 사람들의 태양에 대한 사랑과 열망은 알아줘야 한다.


숙박_Lights Out Hostel_9인 도미토리_4

시설이 매우 쾌적한 호스텔이라 오래 묵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호스텔은 최대 3박이라는 법칙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서 찾아가기 편했다. 체크인하러 올라가니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1층부터 3층이 객실, 4층이 식당과 리셉션, 로비를 겸하고, 위엔 테라스도 있었다. 조식도 씨리얼과 식빵이 나오고, 저녁엔 테라스에서 바를 운영하는데 5유로짜리 식사 메뉴도 팔고, 상그리아도 공짜로 받아 마실 수 있다. (물론 아주 싼 거다. 마지막날 스스로 슈퍼에서 1.5유로짜리 상그리아 페트를 사와서 마셔봤는데 테라스에서 준거랑 맛이 똑같았다.) 리셉션엔 사람이 끝임없이 들어왔다. 호스텔 창구가 무슨 마트 계산대처럼 줄서서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하고 있었다. 규모가 워낙 크니 가격 대비 좋은 서비스가 가능했다.


객실은 사진으로 본 것처럼 시설이 괜찮았다. 침대도 원목느낌의 새거였고, 각 침대마다 개인등, 커튼, 넉넉한 수납 공간이 있어서 9인 실이라도 쾌적했다. 첫 두날은 사람이 별로 없어 쾌적했다. 하지만 세번째날 스페인 단체 여행객이 우리 방을 점령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새벽까지 놀다 들어왔다. 그래도 예상된 습격이라 잠에 큰 지장을 준건 아니었다. 하지만 네번째 밤, 결국 탈이나고 말았다. 우리 옆 침대에 중국인 모녀가 위아래로 자고 있었다. 낮부터 자더니 밤에 또 잔다. 위에 자던 딸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말리고 싶었지만 마음 착한 여편님은 곧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애가 ‘F 스투피드야, 난 자고 싶어’라고 소리 질렀다. 곧 밑에서 자던 엄마가 딸을 제지시켰다. 하지만 여편님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밑에서 이불킥하는 소리가 위에서 자는 내 침대까지 울려퍼졌다. 그 아이는 밤새 계속 뒤척였고, 또 소리를 지를까봐 나도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슬슬 자려는데 또 이상한 애가 밤 늦게 들어왔다. 불을 켜고 짐을 정리하고, 또 불을 켜고 나갔다 들어왔다하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역시 도미토리는 세 밤까지만 자야한다.


말라가 쇼핑_DIA DEL LOS REYES

우리가 말라가에 도착한 날은 왕들의 날, 스페인 전역에서 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한국에선 동방박사의 날로 알려진 날이다. 다른 나란 모르겠지만 스페인에선 이 날이 아주 큰 날이었다. 숙소 바로 앞 중심 대로엔 저녁이 되니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우리도 덩달아 나가봤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인파로 대로에 뭐가 지나가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뒤 경찰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부터 스타워즈까지 아이들과 어른들의 동심에 불을 지르는 것들이 지나갔다. 너무 사람이 많아 우린 좀만 보고 도망쳤다. 스페인 친구들이야 고만고만한데 여기저기서 원정 온 키다리 친구들이 문제였다.


이 날엔 전통과자를 먹고, 아이들에겐 선물도 준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은 공휴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버금가게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거리가 횡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주말인데도 모든 매장이 일찍부터 문을 열고 어마어마한 세일 잔치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부터 이 때까지가 나름 금욕(?) 기간의 의미도 있나보다. 한국 백화점에서만 보는 줄 알았던 풍경을 자라, 망고 같은 매장에서도 보게될 줄 몰랐다. 나름 10시부터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어지간히 유명한 매장들은 이미 소떼가 지나간 듯이 물건이 횡했다.


이들의 열정에 놀란 우리는 소떼와 시간대를 달리해 여러 가게들을 구경했다. 워크어웨이하는 동안 옷이 많이 상해서 좀 사야할 것 같았다. 데카틀론을 포함해 여기저기를 다 돌아다녀놓고, 우리가 건진 건 여편님의 털모자 하나 뿐이었다. 운동화도 구멍이 뚫리고 바지도 하나씩 남았지만 어찌어찌 버텨보다가 진짜 사고 싶은 마음이 동할 때 사기로 했다. 대신 난 스페인어로 된 책을 하나 샀다.

서점에서 짧고 쉬운 수필과 여행기를 뒤적거리다 파타고니아익스프레스라는 책을 골랐다. 숙소와서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내가 애정하는 소설 중 하나인 연애소설읽는노인의 저자 Luis Sepulveda였다. 큰 맘먹고 사서 꾸역꾸역 읽어보기로 했다.


말라가 해변

말라가는 해변이 유명하니 한 번 가봤다. 시멘트로 칼같이 조성된 산책로를 지나면 한가한 해변이 나왔다. 생각외로 해변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그 호스텔에 넘치던 친구들은 다 어딜 돌아다니는 걸까 의심이 들정도였다. 토닉워터를 먹으며 여유를 만끽했다.


말라가 라면

금요일 아침 한가한 해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금같은 아시아 슈퍼를 발견했다. 공휴일이라 어지간한 식당부터 슈퍼마켓까지 모두 닫아서 저녁거리를 걱정하던 참이었다. 주저없이 들어가서 너구리 3개와 북경반점 3개를 샀다. 퀘사다에서 먹고 남은 신라면 2개가 있었지만 일단 두둑히 샀다. 말라가에선 요리 열정이 별로 없어 짜파게티와 라면을 한 번씩 먹고, 남은 건 나중에 아껴뒀다 먹기로 했다.


먼저 그날은 북경반점을 먹었다. 아시아 슈퍼에서 청경채와 쪽파도 사와서 함께 썰어 넣었다. 여행 중 라면은 종종 먹었지만 북경반점은 처음이었다. 짜장면 한 번 먹고 싶다던 찰나였기에 더더욱 꿀맛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너구리를 먹을까 신라면을 먹을까 종일 고민했다. 그러나 점심에 파에야를 잔뜩 먹는 바람에 너구리로 기울던 판세가 신라면으로 급격히 넘어갔다. 미리 준비한 익힌 하몽햄(슈퍼마켓에서 햄을 사는데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햄이 워낙 중요해서 햄을 사려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다들 일주일 동안 먹을 여러 종류의 햄을 골라서 주문했다. 우린 특별히 두껍게 썰어 달라고 했다. 나의 어설픈 스페인어를 직원이 잘 알아먹고 300g을 통으로 줬다.)과 남은 야채를 몽땅 썰어넣어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하몽은 라면에 넣어도 맛나는 훌륭한 먹거리였다.


말라가 회센터_La pescaderia

말라가에 도착하기 직전 버스에서 수산물 가게를 봤다. 한국 회센터처럼 오래된 파란 건물에 사람들이 많았다. 왠지 맛있어 보였고, 해산물 요리가 간절했기에 배낭을 진 체로 찾아갔다. 앉아서 먹던 분이 안 비싸고 맛있다고 했다. 샐러드와 새우, 오늘의 메뉴인 해물볶음면을 시켰다. 반주로는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20유로 내외의 부담없는 가격에 신선한 해물 안주를 겻들일 수 있었다. 제대로 찾았다 싶어서 다음날 또 찾아갔다. 이번엔 아보카드 샐러드와 삶은 홍합, 오징어 튀김을 시키고 반주로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를 한 잔 더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나름 지역 맛집인지라 점심 시간 시작하자마자 갔는데도 휴일을 맞아 한 자리 빼고 예약이 꽉차 있었다.


말라가 맛집들

주말 점심엔 치킨을 사다가 숙소 옥상에서 먹었다. 테이크 아웃 전문인데 부산 시장에 유명한 통닭집 같은 곳이었다. 한 마리에 만 원, 양배추 샐러드도 두둑하게 챙겨줬다. 타는 듯한 태양과 함께 치맥을 즐겼다. 스페인을 떠나기 직전 파에야를 한 번 더 먹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길가에서 그나마 파에야를 잘할것 같은 집에 들어갔다. 해산물과 올리브기름 가득한 파에야를 만끽했다. 회센터를 한 번 더 가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저녁에 부대찌개를 해먹고 바로 향했다. 평소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FC바르셀로나 경기를 보려고 나간것이었다. 비야 레알과의 리그 경기를 보러 갔다. 스페인을 떠나기 전에 FC바르셀로나 중계를 보는 것도 또 의의가 있었다. 여러 바에서 종일 축구를 틀어주고 있었다. 우리가 골라 들어간 곳은 아르헨티나 유니폼 색깔톤의 바였다. 앉아서 맥주를 시키고 축구를 보려는데 아저씨 한 명이 들어와서 구석 티비 소리 좀 키워달라고 했다. 우리도 재빨리 그쪽으로 옮겨서 열심히 봤다. 막장 경기였지만 메시의 기가막힌 프리킥만도 볼 가치가 있었다.

엄청 맛있어 보이는, 말라가 오면 누구나 먹고 갈 거 같은, 골목을 통으로 장악한 츄로스 집도 있었는데 먹지 못했다. 감자칩도 직접 튀겨파는 집이 있었다. 참으로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말라가였다.


신문

스페인 여행기가 자꾸 먹방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 마무리는 다소 건조한 소재를 건졌다. 스페인어 좀 읽어보겠다고 신문을 사 보거나 카페에서 주워봤다. 바르셀로나에서 본 스포츠 신문은 1면부터 20면까지 다 FC바르셀로나 기사였다. 일간지로는 EL PAISEL MUNDO를 봤다. 둘 다 글로벌 신문을 지향한단다. 해외 뉴스의 비중도 높고, 일간지인데도 대부분 기사가 길다. 짧은 단신형 기사는 별로 없다. EL MUNDO가 좀 더 진보 성향을 띠는 것 같았다. 엘 문도 영화란에는 최근 개봉하는 부산행에 대한 기사도 실려있었다.


LA CANTA

전통적으로 여편님과 11일에 영화를 봐왔다. 올해도 늦게나마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스페인 오면서부터 염두해두었고, 마드리드에서 LA CANTA의 광고를 본 여편님이 점 찍어뒀다. 라라랜드가 끝내 개봉을 안해서 LA CANTA로 마음을 굳혔다. 신문에서 보니 나름 개봉 영화 중 누적 관객 수 1위의 천만 영화였다.

공휴일인 토요일 오후, 기차역과 영화관을 겸한 쇼핑몰로 갔다. 식당 빼곤 다른 가게들이 다 닫았다. 영화관도 셔터가 내려져있었다. 첫 영화가 3시부터 시작이니 그때 다되야 여는 것 같았다. 밖을 서성거리다 영화 시작 30분 전에 다시 찾아갔다. 슬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셔터 안을 들여다보며 언제 여는지 궁금해했다. 혹시나 표가 없을까하는 두려움에 자꾸 우리 앞에 서려는 꼬마를 견제했다. 셔터가 올라가고 영화표를 샀다. 아주 큰 상영관이었는데 관객은 우리 둘과 꼬마와 아빠, 또 다른 가족 정도였다. 한가운데서 아주 쾌적하게 봤다. 대충 봐도 뻔한 시나리오에 음악은 다 영어로 나와서 스페인어 초보인 우리도 즐겁게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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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차, 12일 월요일 “불굴의 요리 열정”

일터에 도착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해는 늦게 뜬다. 장갑도 두개나 꼈다. 양말도 두개 신으려다 참았다. 그런데 네팔이가 안보인다. 생각해보니 아까 마을에서 안 태웠다. 키케 아저씨한테 괜찮냐고 하니 집에 잘 찾아간다고 걱정말라고 한다. 프랑스 커플은 열심히 올리브 따기에 매진한다. 네트깔기가 주업무인 나와 남편님은 키케 아저씨의 구령에 맞춰 이리 저리 옮겨다니느라 바쁘다. 곧 몸에 훈기가 돈다. 시간이 잘도 간다. 일을 하다보면 그렇기도 한데 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부터 나는 오늘 저녁에 초밥과 김밥, 비빔소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계속 궁리중이다.

밥은 어느 솥에 할까. 초 비율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밥 뭉치기는 어떻게 해야하나. 같이 먹을 따스한 장국이 있으면 좋을텐데. 김밥은 안에 무얼 넣을까. 김발은 없는데 그냥 잘 말 수 있겠지? 썰기는 그 칼로 될까? 뭉게져 버리면 어쩌지?”

허허 답이 없다. 그냥 주어진 것들을 잘 사용할 수 밖에... 남편님은 오늘 힘들면 내일 하거나 쉬는 날인 수요일에 하라고 하는데.. 나는 안다. 지금 안하면 나는 계속 이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것을. 후딱 12시 간식 시간이 지났다. 남편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하는 말. “그런데 오늘 키케 아저씨가 왠지 자기님에게 일을 잘 안시키는거 같아. 오늘 저녁에 초밥만들 힘을 비축하라는 의미인거 같은데?” 나는 키케를 본다. 괜히 떨어진 올리브를 주워 모으라고 한다.

2시간 또 열심히 올리브를 따고 모으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해가 잘 드는 곳에 앉았다. 오늘의 점심은 알레한드라 언니가 준비했다고 한다. 토마토 펜네 파스타다. 보온 도시락에 싸고 수건으로 돌돌 말아 와서 그런지 아직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역시 세심한 언니. 키케가 언니한테 “오늘 저녁에 미가 스시 만들거래. 마키도 만든데..”라고 이야기 한다. 언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한다. “그 집 도구들 내가 잘 아는데.. 괜찮겠어? 칼도 잘 안들텐데..연어는 스시용이야?” 역시 뭔가를 아는 언니.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뭐 어찌 되겠죠”라고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어찌 될 것이다.

오후 업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아저씨가 뭐 필요한거 없냐고 물어본다. 와사비는 마트에 어차피 없고 맥주를 사오시라고 했다. 프랑스 커플과 같이 마굿간을 지나가는데 말 보고 싶다고 마굿간에 들른다. 나는 그럴 새가 없다. 빨리 가서 씻고 저녁 준비할거다. 집 근처에 도착하니 우리의 낙엽밟는 소리를 들었는지 네팔이가 멀리서 뛰어온다. 특유의 경쾌한 발걸음으로. (자신도 감당이 안되는 에너지를 가진 네팔이) 낑낑거린다. 알았어. 회포는 나중에 풀자. 언니 바빠.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남편님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나는 드디어 그 분이 그만두겠다고 한건가. 혹은 그에 관련된 일인가 했는데.. “장모님이 카톡에 등장하셨는데? 설마 스마트폰으로 바꾸셨나?” ~ 계속 통화가 안되는 걸 힘들어하던 엄마가 새해가 된 마당에 큰 결심을 하셨나보다. 여기는 저녁, 거기는 새벽이다. 내일 아침에 연락해보기로 하고. 나는 초밥의 열정을 다지며 주방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에 온 프랑스 커플은 한창 샤워 중이었다. 나는 쌀을 씻어 밥을 앉혔다. 그런데 오드리가 오더니 심각한 얼굴로 “너네 샤워 오래해서 우리는 차가운 물 나왔어. 샤워는 3분 안에 끝내줘.”라고 한다. 뭔가 억울하다. 우리는 샤워를 오래하지 않았다. 알았다고 하고 주방 물을 틀어보니 뜨거운 물이 나온다. 말이 잘 안통하는 그녀에게 “지금 뜨거운 물 나오는데. 누군가 쓰고 난 다음에 5~10분 정도 기다려야 나와.”라고 이야기 했다. 그녀는 “그래 내일 보자”라고 대답한다.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 커플이었는데.. 계속 이런 식이군. 내가 저들을 위해서도 저녁을 준비해야 하나 싶다가 마음을 크게 먹기로 했다.

초밥, 김밥, 비빔소바는 이렇게 준비했다.


초밥

1. 밥을 하고 난 다음 식초 4, 설탕1, 소금 0.5를 넣고 잘 섞은 초를 부어 비벼 주고 식힌다.

2. 연어는 초밥용으로 얇게 저민다.

3. 잘 식힌 밥을 작게 집어 양손으로 모양을 만들고 연어를 올린다. 완성.

(물 한사발 옆에 두고 손에 묻혀가며 밥을 뭉치면 손에 밥풀이 묻는 것을 방지해준다.)


김밥

1. 김은 약불에 구워 준비한다.

2. 속 재료는 참치마요네즈, 파프리카, 샐러리

3. 김 위에 밥을 ¾ 정도 깔고 밥 가운데 2의 속재료를 넣고 돌돌 만다. 나는 3줄 정도를 쌌다.


비빔소바

1. 물을 끓이고 계란을 먼저 넣어 삶는다. (반숙은 6. 완숙은 10)

2. 그리고 소바 면을 넣어 3분 정도 잘 삶아 차가운 물에 식힌다.

3. 채썬 상추와 남은 야채들을 모두 넣는다.

4. 비빔장은 고추장, 식초, 간장 약간으로 만든다.

5. 4를 위에 얹고 김 부순것, 깨를 위에 뿌리면 완성!


채소는 대부분 아저씨가 준비해둔거나 집 앞 텃밭에서 조달했다. 그 사이 키케 아저씨가 왔다. 맥주는 안사오고 와인을 사왔다. 김밥을 말 쯤 프랑스 커플이 와서 관심을 보이며 같이 먹는거냐고 물어본다. 유럽인들의 오리엔탈 요리 사랑이란.. 남편님은 테이블을 셋팅하고 초밥, 김밥, 비빔소바를 차례차례 내어갔다. 간장은 양파, 식초를 넣었다. 다들 찍어 먹어본다. 크기가 들쭉날쭉한 초밥이지만 모양은 그럴듯했다. 맛도 그럴듯했다. 초밥, 김밥을 다 먹고 소바를 비벼 나눠 먹었다. 소스도 맛있고 채소가 맛있다며 좋아한다.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는 그들을 보니 문화란 엄청난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몇십년만에 유럽인들도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었다. 게다가 스페인 안달루시아 시골 마을에서 한국에서 먹는 맛을 내다니.. 여튼 끝났다. 큰 일을 마친 기분이다. 키케와 프랑스 커플이 밖에서 담배를 피는 것 같더니 자러 올라가는 우리를 붙잡고는 “우리 내일 떠나기로 했어. 아침에 인사를 못할 수도 있으니 지금 인사하자.”라고 한다. 내일 보자더니 그새 떠나기로 결정했나보다. “응 잘가. 여행 잘해.”라고 인사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남편님 왈 “그러고 보면 자기님은 뭔가에 꽂히면 열정이 대단한 거 같아. 나 같으면 귀찮아서 안했을텐데..” 마음 가는데 몸도 가는게 이치라고 믿는 나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게다가 내일은 일 가는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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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차, 11일 일요일

30년 넘게 새해를 맞이하며 느끼는 건 새해가 되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왠만하면 새해 다짐이나 결심같은 건 하지 않는다. 계기가 생기면 하면 되는거니까. 현관문을 열고 나가본다. 햇살이 너무 좋다. 떡국은 없으니 어제 밥 짓고 남은 누룽지를 끓여먹기로 한다. 어차피 쌀로 만든 국이다. 그리고 양가에 연락을 드리고 있는데 키케 아저씨가 왔다. 외박을 한 아저씨.. 어제 메세지를 늦게 봐서 답을 안했다며 멋적게 웃는다. 마당에 앉아있는데 아저씨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온다. 해먹을 주섬주섬 맨다. 햇살을 만끽하는데 이것만한 것이 없다며 원할때 누워보란다. 그리곤 저녁때 돌아올게 하고 또 나갔다. 주말 외출을 좋아하는 아저씨다. 남편님이 먼저 눕기를 시도한다. 역시 눕눕을 좋아하시는 분이다. 매듭이 풀어질까 걱정하더니 이내 너무 좋다며 탄성을 지른다. 누워서 이것저것 시키는 남편님 “자기님. 이것 좀 가져다 주라. 이것 좀 해주라.” 다 들어드렸다.

한시간 정도 누워계시더니 배가 고프시다 하셔서 있는 재료를 생각해보았다. 딱딱해진 빵과 치즈가 있다. (무슨 1800년대 농가 표현 같다.) 빵을 구워서 치즈를 녹여 먹는 간단 쿠바샌드위치를 제안하니 좋아하신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팬에 올리브유를 둘렀다. 그리고 빵을 굽고 뒤집어서 뜨거운 부분에 자른 치즈를 올리고 다른 빵으로 덮고 이리저리 구우면 완성. 그런데 올리브유의 발화점이 낮아서 금방 타버리고 만다. 다른 기름은 없는 올리브 농가여.. 맥주도 한 캔 따서 곁들이기로. 햇살이 따사로운 밖에 앉아서 오렌지, 토마토와 함께 곁들여 먹으니 여유롭기 그지 없는 런치타임인데.. 남편님이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하신다. 빨리 드시는 남편님이여.. 부엌에 가서 하나 더 만들어 드린다. 다 먹고 설거지하고 나는 우쿨렐레를 꺼냈다. 코드 잡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다. 조금 연습하다 나도 해먹에 누워봤다. 해먹이 자연스럽게 몸을 감싸줘서 편안하다. 제이슨 므라즈 노래를 틀어 놓고 흥얼거렸다. 새들은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비행기도 날아다닌다.

어느새 5시가 다 되어간다. 햇님이 지는 것이 아쉽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에 해먹을 정리했다. 그 사이 프랑스 커플이 왔다. 지쳐보이는 그들. 핫샤워 할거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온수기계를 작동시킨다. 긴 샤워가 끝나고 나온 그들이 불을 지핀다. 어제 오늘 휴일에 밥해먹느라 집안일이 귀찮은 나였다. 한국에서도 휴일에 해먹는 밥은 하루 1끼를 넘어선 안된다는게 우리의 지론이다. 해먹는게 일이니까 쉬지를 못한다. 부엌에서 무언가를 썰고 끓이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커리 냄새도 난다. 그런데 같이 먹자는 이야기는 안한다. 배는 고프다. 남편님이 가서 부엌 써도 되냐고 물어보니 같이 먹는다는 뉘앙스로 말한다. 참 소통이 안되는 커플이다. 키케가 오고 상을 차리는 프랑스 커플. 그 사이 중앙난방을 점건하던 키케가 오늘 불 누가 피웠냐고 물어본다. 그러더니 프랑스 커플에게 지금 온도가 100도에 가까운데 저렇게 나무 많이 넣고 과도하게 뜨거워지면 화재의 위험이 있다고 조심하라고 한다. 그래서 집이 후끈했던거군. 뭐든지 화끈한 프랑스 커플이다. 야채커리와 렌틸콩이 오늘의 저녁이다. 간단히 먹고 산행은 어땠는지 물어봤다. 좋았는데 진짜 추웠단다.

상을 치우는데 키케 아저씨가 나보고 장 많이 봐왔다고 연어도 사왔다고 이야기 해준다. 나는 연어를 바란적이 없는데.. 그러더니 그걸로 스시를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본다. 연어 포장지를 보니 훈제 연어다. 뭐 훈제연어초밥은 있으니까 할 수 있겠지 하는데. 원하면 만들어도 된다고 한다. 간밤에 Tasty Japan에서 본 간단 초밥이 생각난다. 아저씨의 스시용 쌀, 김도 있으니 한번 시도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님이 키케에게 “일이 힘들면 저녁 만드는게 피곤하니 내일 그녀의 컨디션을 봐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결국 ‘내’가 만드는 건 확정인건가 보다. 뭐여. 우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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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 1231일 토요일, “케사다 시내 구경”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거실로 내려가 남편님과 간밤 꿈 이야기를 했다. 남편님은 일 초반엔 올리브가 가지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꿈을 꿨는데 어제는 네트에서 굴러 떨어져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꿈에도 나오는 올리브들. 오늘은 케사다 시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저녁식사를 위해 장도 보기로 했다. 프랑스 커플이 일어나 국립공원 1박 준비를 하고 나온다.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우리도 나갈 준비를 했다. 걸어서 시내까지 가보는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됐다. 키케 아저씨는 이것저것 집안 주변 정리로 바쁘다. 나오는 길에 멀리 있는 그를 발견하고 바이바이를 외쳤다. 질퍽거리는 길과 마굿간을 지나 나왔다. 여기 농장 근처엔 개들을 풀어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 더 긴장이 됐다. (송아지만한 개가 여러마리다) 오전이라 그런지 다들 자는지 조용하다. 그 덕에 평안하게 케사다 시내로 진입했다.

어느새 허기가 진다. 12시라 아직 연 식당이 많지 않다. 광장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보카디오를 시키려고 했는데 못알아 듣는다. “Quiero comida”라고 하니 뭐라뭐라 한다. 안달루시아 케사다는 우리 나라로 치면 전라도 구례정도 되겠다. 그래서 그들도 외국인의 스페인어 발음에 익숙치 않고 우리도 그들의 발음을 못 알아 듣는다. 겨우 건져낸 단어 “jamon tostada” 그거 두개 달라고 하니 “Bebida?”를 물어본다. 간밤의 와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나는 카페라고 했고 남편님은 맥주를 달라고 했다. 햇살 아래 앉아 농가마을의 토요일 오전을 느껴본다. 평소와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 간혹 올리브를 따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 음식이 나왔다. 생각보다 크고 하몽도 많이 얹어줬다. 나는 먹는데 한오백년 걸렸다. 계산을 하고 나온 남편님이 4유로 나왔다며 좋아한다. 이정도면 사기적 가격이다. 아직도 내가 스페인을 그리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바로 옆에 관광안내소가 있길래 가서 이것저것 구경했다. 올리브 특산품이 참 많다. 테스트도 가능했는데 핸드크림이 참 좋았다. 하지만 짐이 늘어나는 건 견딜 수 없으므로 참았다. 케사다는 올드타운과 신시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올드타운은 이슬람이 지배했던 13~14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지도만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성을 쌓고 안은 미로처럼 되어있다. 어딜 가려면 그냥 그 방향으로 이리저리 가면 된다. 익숙한 직사각형 방향감각은 소용이 없다. 종소리 울려퍼지는 교회도 가보고 발길 닿는대로 걸어본다.

어느새 1시반. 작은 마을이지만 Rafael Zabaleta라는 유명한 화가 미술관이 있다고 해서 지나가는 길에 가보기로 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오전 운영만 하고 내일은 새해 첫날이라 쉰다고 한다. 다음에 오기로 하고 저녁 만찬을 위한 장을 보러 우리의 사랑 DIA로 갔다. (디아는 스페인 마트 체인으로 작지만 알찬 식료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의 메뉴는 돼지고기구이, , 텃밭 상추쌈, 포도주로 간단하지만 알차게 구성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2시반까지 영업 후에 5시반에 연다고 한다. 대도시의 가게들은 시에스타를 잘 지키지 않는데 소도시들은 반드시 지킨다. 직원들도 정리 중인 상황에서 빠르게 장을 보았다. 아저씨의 포도주를 다 마신게 마음에 걸려서 한 병 더 집었다. 식량을 가방에 지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삼바를 우연히 만났다. 그도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주말 잘 보내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남편님이 어제 삼바와 알레한드라 언니의 대화를 엿들었다고 이야기 해줬다. 언니가 “삼바. 새해가 되면 몇살이 되니?” 라고 하니 삼바가 “비밀이에요.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줄게요.”라고 했단다. 우리 감수성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대화인 것이다.

오후가 되어 땅은 더 질퍽였다. 집 앞에 도착하니 역시 가스퍼가 우리를 반긴다. 오전에 보이던 네팔이와 솔틴이는 보이지 않는다. 피곤함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5. 이제 불지피기는 나의 몫으로 고정되었다. 오죽하면 키케아저씨가 나보고 Mujer de Fuego(불의 여인)라고 했을까. 한창 불을 피우는데 알레한드라 언니가 나타났다. 해가 뉘엿뉘엿 지니 솔틴이를 찾으러 온 것이다. 봤냐고 해서 오전에 보고 오후엔 못봤다고 알려줬다. 고르도는 어디있냐고 해서 안에 있다고 하니 나보고 멋진 여성이라고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후 갑자기 갈색의 무언가가 집 앞에 나타났다. 여우처럼 생긴 큰 개 였다. 창살사이로 들어오려고 해서 내쫓았다. 예상불가 시골살이다. 경건한 저녁시간이 되었다. 우리 둘만을 위한 저녁! 이니까 맘 편하게 준비하면 된다. 남편님은 고기와 버섯을 굽고 나는 밥을 지었다. 상추도 깨끗이 씻고 양배추 김치도 꺼냈다. 한 상을 차렸다. 고추장에 밥만 비벼 먹어도 맛있다. 엉엉.. 그리운 고향의 맛이여.. 밥을 먹으며 올 한해 여행하면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아쉬웠던 일들을 나누고 내년에도 잘 지내보자고 와인잔을 기울였다. 밤이 깊어지고 우리 둘만 있는 집이 썰렁하다 못해 무섭다. 밖에선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자꾸 걱정하니 남편님이 과다예민이라고 한다. 일찍 잠드는 남편님은 11시가 채 안되서 자겠다고 올라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키케는 올 생각을 안한다. 열쇠를 가져갔는지 안 가져갔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Whatsapp으로 “우리 잘거다”라고 보냈다. 답이 없다. 어느새 12시가 되었고 새해가 되었다. 그렇게 2017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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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1229일 목요일 “스한프 맥주 이야기”

프랑스 커플은 일찍 일어나 분주히 준비를 시작한다. 그 소리에 깨 나도 준비에 돌입했다. 나날이 더 추워지는 케사다의 아침. 뒷자리에 네명이서 꾸겨져 앉았다. 그런데 오드리가 내 옆에서 너무 불편해 한다. 어쩔수 없지 뭐. 오늘은 객원 일꾼 없이 우리끼리 갔다. 7. 키케 아저씨와 우리 커플은 네트깔기에 투입되고 나머지는 올리브를 털었다. 본격적으로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며 일을 시작한 나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햇빛이 없어 추우면 언덕에 올라갔다 오라고 했던 아저씨의 말이 온 몸으로 이해됐다. 겨우 간식시간이 되어 햄치즈샌드위치와 감자칩을 먹고 점심은 햇빛을 찾아 앉아 먹었다. 점심은 어제 우리가 먹고 남은 야채된장볶음. 하지만 찬바닥에서 찬음식을 먹으니 나는 체해버렸다. 빨리 집에 가서 따수운 물로 샤워하고픈 마음이다. 집에 가는 길 프랑스 커플은 내려달라고 해서 사라지고 우리는 집에 가서 샤워를 했다. 샤워시스템도 직접 불을 붙이고 꺼야 하는데 난방시스템과 병행이 안되므로 빨리 쓰고 꺼야 한다. 드라이기 사용이 금지되어있으니 나는 감기에 들까봐 옷을 든든히 입고 거실로 내려가 머리를 휘두르며 말렸다. 그 사이 프랑스 커플이 맥주를 들고 집에 왔다. 아저씨는 피자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알레한드라 언니 말로는 피자는 워커웨이어를 위한 아저씨의 특별식이란다. 역시 프랑스 커플이 새로 왔으니 만들어 주는건가. 하지만 나는 속이 좋지 않다. 그런데 프랑스 커플이 Estrella Damm맥주를 권한다. 남편님은 걱정하지만 한모금 들이키니 무언가 속이 풀리고 두통도 사라지는 것 같다. 아저씨는 아끼던 San Miguel 1리터 짜리 병도 가지고 온다. 다들 피자를 맛있게 먹는 동안 나는 남편님의 것을 조금 뺏어 먹고 대신 맥주를 많이 마셨다. 아저씨에게 어떤 맥주를 좋아하냐고 물으니 산미겔도 좋고 마호도 좋은데 크루즈캄포는 별로라고 한다. 그렇구나. 프랑스 애들은 자기들은 Leffe를 좋아한다고 한다. 크로넨버그 1664가 맛있지 않냐고 하니 아니라고 한다. 한국 맥주에 대해서도 물어보길래 맛이 없다고 했다. 한국이든 프랑스든 자기나라 맥주는 맛이 없게 느껴지나보다. 대신 수입맥주를 많이 먹는다고 이야기 해줬다. Estrella Damm도 마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프랑스 커플이 놀란다. 그 먼데에도 수입이 되는데 자기네 나라는 수입이 안된다고 한다. 나도 프랑스 마트에서 맥주 라인업을 직접 본 입장으로써 조금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라나다를 대표하는 알함브라,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Damm 등 지역맥주도 있는 스페인이 부러웠다. 피곤함에 먼저 올라가서 자겠다고 했다. 케사다에 와서는 잠을 못이룬 밤이 없었던 거 같다.


7일차, 1230일 금요일

프랑스 커플은 오늘 day off. 이틀 일하면 하루 쉬는 걸 철저하게 지켜주는 아저씨. 그럼 빅토르 아저씨가 대신 오겠지 했는데 웬걸. 배가 많이 나온 할아버지가 타신다. 마놀로라고 소개하신다. ! 그 마놀로? 키케 아저씨와 알레한드라 언니 대화 중 많이 들리던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마놀로다. 그분이시구나. 그런데 얼굴이 낯익다. 저번 성탄절에 멍멍이들을 맡아주신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맨 앞자리에 타시고 우리 셋은 뒤에 앉았다. 언니는 ATV를 타고 그 멀고 험한 길을 온다고 했다. 멋진 언니.. 차에 내리니 매번 따라오는 네팔이 말고도 솔틴이도 따라왔다. 마놀로 할아버지 발 밑에 조용히 오고 있었던 거다. 내리자 마자 업무가 시작됐다. 네팔이와 솔틴이는 둘이 쿵짝이 맞아서 놀러간다. 부럽다.. 마놀로 할아버지와 삼바가 한 조를 이루어 올리브를 따고 알레한드라 언니는 홀로 나뭇가지 터는 기구를 매고 올리브를 탈탈 털고 있었다. 그럴 수록 우리 네트 깔기 조는 바쁘기 그지 없다. 금새 온몸에 열이 올라온다. 키케 아저씨의 명령에 맞춰 네트를 요리조리 옮긴다.

고르도!!!!! !!!!!!(내 이름을 부르기 편하게 ‘미’라고 부르심..) Mira(봐봐) Tira(당겨라)” 하루 종일 제일 많이 들은 말이다. 남편님의 말에 의하면 정규직 3명에 인턴 4명 구조가 낫다고 한다. 정규직의 요구를 받쳐줄 인원이 많으니까. 고로 정규직 3명에 인턴 2명 구조는 고되다. 두통이 몰려온다. 추워서 네팔에서 사온 털모자를 썼는데 한번 빨았더니 작아져서 머리에 낀다. 그것 때문에 아픈건가 보다. 벗었더니 머리도 안아프고 소화도 잘된다. 낑낑거리다 보니 간식시간이다. 차 트렁크를 식탁삼아 간식을 먹는데 마놀로 할아버지는 맥주를 드신다. 갑자기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셨다. 내가 남편님한테 이야기하니 남편님이 키케랑 알레한드라한테 이야기 한다. “너네 할아버지도 술과 담배를 매우 좋아하셨니?”라고 언니가 물어본다. 맞다. 하니 둘이 웃는다. 기침이 많으신 할아버지가 술과 담배를 조금 줄이시길 바래보는 사이 또 일. 그리고 또 점심시간. 햇빛을 찾아 나섰다. 아저씨가 만들어 온 토마토 시금치 볶음을 맛있게 비웠다. 할아버지는 그 사이 와인을 땄다. 하몽과 꿀꺽꿀꺽. 솔틴이와 네팔이도 어느새 와서 할아버지 곁을 맴돈다. 할아버지가 하몽도 던져주신다. 그 귀한 하몽을.. 역시 강아지를 사랑하시는게 틀림없다. 다들 햇살에 잔뜩 드는 곳에 누웠다. 남편님과 나는 또 조잘조잘. 할아버지는 코를 고신다. 30분쯤 지났을까. 일어나야 하는 시간. 키케 아저씨가 코고는 마놀로 할아버지에게 조약돌을 던진다. 아저씨의 아빠 뻘로 보이는데 둘은 친구처럼 장난도 잘 치고 이야기도 잘한다. 오후 업무도 막바지다. 정리하고 차에 오른다.

집에 와서 샤워도 하고 불도 피우고 앉아 있으니 아저씨가 왔다. 동생이 와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둘이 알아서 먹으라고 한다. 오예! 하고 간만에 볶음 파스타를 하자며 물을 올린다. 갑자기 현관문이 끼익 열린다.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며 보는데 누군가의 발이 먼저 들어온다. 겁이 많은 나는 엄청 놀라버렸다. 프랑스 커플이다. 마테오가 왜 이렇게 놀라냐며 의아해 한다. 간밤에 국립공원 가는 걸 말하길래 거기 간줄 알고 있었다 하니 아니라고 한다. 우리만 밥 먹기 그래서 “밥은 먹었니? 우리 파스타 할건데 같이 먹을래?” 라고 예의상 물어봤다. 오케이라고 한다. 뭐 해야지 우짤.
물을 더 넉넉히 붓고 파스타를 삶는 사이 콜리플라워, 양파, 피망을 다듬고 큰 웍에 볶았다. 아저씨의 올리브 절임도 볶으면 맛있을거 같아서 넣었다. 삶은 파스타도 넣고 간을 해서 볶으면 완성! 그 사이 남편님은 테이블 셋팅을 했다. 그리고 다 함께 파스타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 커플은 올리브 따기일이 단조롭고 재미가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말과 동물에 관심을 보였는데 올리브 일만 하니 재미가 없나보다. 어느새 와인 한 병을 비웠다. 프랑스 커플이 와인을 한 병 더 가져온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맘 편히 마셔야하지 하며 꿀꺽꿀꺽했다. 그들은 내일 오전에 1박 예정으로 국립공원에 간다고 했다. 건투를 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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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 1228일 수요일, Day off ‘양배추 김치’

쿵쿵. 콩콩. 부릉. 그들이 갔다. 8시 넘어 출근한 그들. 하지만 나는 아직 침대 속. 좋구나. 더 자야지. 9시쯤 일어나 아래층으로 갔다. 쉬는 날 계단을 내려가면 보통 보이는 모습은 거실 소파에 담요를 덮고 커피를 마시는 남편님과 그의 무릎 위에 있는 흰고양이 가스퍼. 그럼 그 옆자리로 가서 내가 가스퍼를 뺏어 껴안고 쓰담는다. 아침을 무얼 먹을까 하다. 남편님의 제안으로 라면을 먹기로 한다. 감자와 양파를 썰어 미리 넣고 끓이다 아저씨가 불려놓은 콩도 조금 넣고 파도 넣고 계란도 풀어 끓여 먹었다. 맛있다. 나가서 일광욕도 하고 놀다가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사서 들고 다니는 우쿨렐레를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아직도 코드 잡는게 어렵다. 다시 유투브를 키고 연습해 보지만 추운 탓인지 손가락이 안풀려서 어렵다.

밝은 집안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남편님이 발견한 건. “Guia Practica De LA VIDA AUTOSUFICIENTE” 우리말로 하면 “자급자족 삶 실전 가이드” 역시 아저씨는 이런 삶을 추구했던 거다. 태양열도, 나무로 떼는 중앙난방도, 텃밭도. 그러했던 거다. 사실 올리브 추수가 있는 겨울철을 빼면 아저씨의 삶은 여유가 넘친다고 했다. 그 시간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 왠지 부럽지만 감내해야 할 것들도 많을거라 생각해본다. 여러 바느질 거리도 헤치우고 그러다보니 4시가 되었다. 휴일의 시간은 라면발 목구멍 넘어가듯 훌훌 넘어간다. 오늘 우리의 가장 큰 할일은 ‘양배추 김치’ 담그기다. 시원하게 물김치를 담그기로 한다. 사실 처음 해보는지라 장아찌의 달인 어머니께 여쭤봤지만 갖고 있는 재료가 별로 없어서 되는대로, 감으로 해보기로 한다. 장아찌의 달인의 아들이라며 남편님이 코치에 나선다. 나는 양배추를 나박나박하게 썰고 소금에 절였다. 텃밭에서 가져온 야채들도 손질한다. 양파도 다졌다. 가장 중요한 양념장 만들기! 물에 소금, 간장, 고춧가루 넣고 열심히 섞었다. 그리고 모두 버무렸다. 맛을 보니 무언가 부족하다. 원래는 액젓을 넣어야 하는데 스페인 산골에 그런게 있을리가. 과일즙을 넣으면 맛있으니까. 싱싱해 보이는 오렌지 하나를 갈라 짜 넣었다. 이제 익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는 5. 불을 뗐다. 더불어 오늘 저녁밥은 쉰 우리가 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사온 김, 텃밭 상추 쌈에 야채된장볶음을 생각했다. 밥도 하고 김도 구워서 자르고 간장과 고추장도 준비했다. 야채 된장 볶음은 브로콜리는 잔뜩 넣어 남편님이 만들었다. 그 사이 일에서 돌아온 프랑스 커플은 샤워를 하고 내려와 케사다 시내에 타파스 먹으러 갈거라고 생각있으면 같이 가자고 한다. 하지만 우린 이미 저녁 준비에 돌입했다. 그들이 가고 밥상을 차려 아저씨와 셋이 먹었다. 아저씨는 김에 밥을 싸서 간장에 찍어먹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상추쌈도.. 된장 볶음도.. 다 좋단다. 역시 채소를 사랑하는 아저씨.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내친 김에 설거지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밥을 우리가 했는데도 설거지까지 꼭 하게 된다.

쉬었던 하루인데 무얼했는지 피곤하다. 내일 또 그 험지로 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전주에 일했던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그때는 힘들다고 생각했으면서 그런 생각 이런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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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르셀로나를 다시 찾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5년 전 당시 초보 여행자였던 나는, 일정이 촘촘했고, 내가 머무는 몇 일 동안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열리지 않아 포기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경기 일정에 맞춰 방문한 것이다.


오피셜 유니폼_FC Botiga

사그라다 파밀리아 관람을 마치고, 입장 전에 점 찍어둔 바르셀로나 샵으로 갔다. 바르셀로나엔 수 많은 기념품, 유니폼 가게가 있는데 이건 정말 레알 오피셜 가게였다. 일단 들어가면 제품을 보는게 아니라 클럽과 유니폼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유니폼과 각종 기념품 매장을 보는 구조다. 100유로를 넘는 다양한 버전과 선수 이름이 붙은 유니폼들이 있었다. 한 구석에는 할인가로 파는 것들도 있었다. 예전에 왔을 때 망설이다 유니폼을 안 산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어 이번엔 오피셜을 뭐라도 하나 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금은 메인스폰서인 카타르 항공이 앞에, 유니세프가 뒷구석에 새겨져있지만 그땐 유니세프가 가슴 한가운데 팍 새겨져있었다. 메시의 최고 전성기이자, 전설 푸욜의 유니폼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기다.


여러 제품 중 눈에 띈 것은 카탈루냐 버전의 유니폼이었다. FC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카탈루냐 깃발 문양인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 유니폼을 1년에 1~2번 정도 입는다. 앞면은 아예 노란색이고, 줄무늬는 뒷쪽에만 있다. 폰트도 보라색이라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할인 중이라 60유로면 구입이 가능했다. 점 찍어두고 Camp nou에 있는 공식 매장에 가서 입어보고(여편님과 나란히 입고 공식 모델 포즈를 취해봤다.), 고민 끝에 며칠 뒤 FC Botiga에 다시 갔다. 맞는 사이즈가 없어 맞은 편에 있는 작은 유니폼 샵에서 구매했다. 여편님도 살까 망설였지만 내껄 같이 입기로 했다.


Camp Nou 답사 및 Mega Store

아침 일찍 구엘 공원을 다녀온 날, 오후에 산책 겸 경기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경기가 늦은 밤이라 동선 파악을 해두면 좋을 것 같았다. 배가 고파 작은 바에서 타파스와 상그리아를 먹었다. 곱창전골 같은 것이 나왔다. 꿀조합이었다. 예전에 왔을 때 경기는 못봤어도 경기장 투어는 한 적이 있어 구조는 익숙했다. 이젠 카타르항공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거 걸어준 돈으로 수아레즈, 네이마르 사온 거 아니겠나. 바로 공식 기념품 매장인 메가스토어로 향했다. 진짜 지글지글할 정도로 유니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아래에는 자켓, 티셔츠 등 다른 버전의 기념품이 많다. 바람막이나 티셔츠를 살까도 고민했지만 내키는 것이 없었다. 유아용 제품이 기막히게 예쁜게 많았다. 어른 덕후는 대충 만들어도 살거고, 아이들껀 예쁘게 만들어야 팔리는 세상이라 그런가 싶다.


티켓 구매

이탈리아를 떠나기 직전 다음 일정을 구상하다 경기 일정을 봤다. 1218일에 FC바르셀로나와 RCD 에스파뇰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에스파뇰도 바르셀로나가 홈인 구단이다. 카탈루나 더비라고 불리는 지역 라이벌 경기인 것이다. 말은 안하고 끙끙 거리는 날 보고 여편님이 당장 예매하라고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바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여편님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이미 티켓 현황은 다 파악한 상태였다. 이왕 보는 거 좀 좋은 자리에서 보자고 했다. 자리별 가격은 천차 만별이라 50유로에서 백유로가 넘는 자리까지 다양하다. 다행히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백유로 이하의 자리 중 붙은 자리는 경기장 꼭대기 가장 뒷줄 자리 밖에 없었다. 뒷줄이지만 가운데라 만족하기로 했다. 결제는 잘 진행되었다. 수수료 등을 포함하니 1인당 69유로 정도의 가격이었다. 전자티켓이 이메일로 날아왔고, 이걸 핸드폰에 다운으면 아이폰 지갑에 저장되었다. 신기한 세상이다.


몬주익(MontJuic) 공원

경기 당일, 스포츠의 날을 맞아 오전에 몬주익 공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넓은 범위가 산책로, , 박물관, 성벽, 경기장 등을 포함하는 공원 지구였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러 많이 찾는 듯 했다. 주말이라 광장에서 아이들을 위한 행사도 하고 있었다. 언덕 산책로를 돌고 돌아 올라기니 커다란 분수와 계단 건물이 이어졌다. 위로 올라근 계단은 에스컬레이터도 끼고 있었다. 언덕 위에 크게 자리한 궁전은 카탈루냐 예술 박물관(Museo Nacional de Arte De Catalunya)으로 쓰이고 있었다. 내부 전시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의 제약으로 건물만 둘러봤다.


또 돌아 올라가니 올림픽 경기장(Estadio Olimpico)이 있다. 이제는 거의 전설이 된 황영조 선수가 1992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곳이다. 경기장 앞에는 무슨 투어별 입장료가 나와있다. 여편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단 들어가보자고 했다. 티켓 없이도 경기장을 둘러보는 건 가능했다. 입장료를 받는 건 경기장 안에서 하는 체험행사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축구공을 들고 들어갔다. 진행요원이 골키퍼를 봐주고,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찼다. 외곽의 육상 트랙에선 100m, 200m, 휠체어 달리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우사인 볼트의 세계 신기록이 새겨져있었다. 한 가족이 체험 중이었는데 엄마가 유난히 열심히 달렸다. 경기장 한 구석엔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사가 안내되어 있었다. 원래 1930년대에 개최하려고 지은 경기장인데 나치 독일이 개최권을 뺏아갔다나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경기장 양식이 고전적이다. 경기장을 나오면 광장이 쭉 펼쳐져있고, 양쪽 언덕엔 성곽도 보인다. 에스파냐 광장까지 걸어내려와 집으로 귀가했다.


경기 전 식사

경기 시작 전에 한국분을 만나 식사를 했다. 몽펠리에 사는 린느가 우리와 같은날 경기를 보러 가는 분이 있다고 해서 만났다. 일요일에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 근처 닭집에서 1차를 하고, 경기장 근처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더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바 아저씨가 한국에서 왔다니 이승우 얘기를 했다. 이 근처에 살아서 자주 본단다. 바르셀로나에 와서 한창 스페인 신문 뒤적 거리는 시늉을 해보니 여기서도 이승우가 최고급 기대주이긴 한가 보다. 신문 기사에는 징계로 출장하지 못해서 헤메다가 요즘은 실전을 자주 뛰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점점 열기가 고조된 상태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직관기_FC BARCELONA VS RCD ESPANYOL_20161218_2045

경기 시작 한 시간 15분 전에 여유를 두고 입장 게이트로 찾아갔다. 한국분과는 입장 게이트가 달라서 인증샷 하나 찍고 헤어졌다. 암표나 기념품, 맥주를 파는 사람들과 입장객으로 붐볐다. 대략 한 시간 전에 입장이 시작됐다. 테러 위협 등으로 검문이 까다롭다. 이미 배낭은 집에 두고왔는데 우리 간식 바구니가 문제였다. 작은 물통은 반입이 됐지만 1리터짜리 탄산 음료는 뺐겼다. 경기장 외곽은 크게 볼게 없다. 잠실 야구장 들어가는 기분이다. 설렌다.

우리 좌석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여기도 관중석 입구 양쪽엔 매점이 있다. 맥주, 과자, 탄산 정도만 판다. 화장실도 넉넉하다. 우리 자리를 향해 올라갔다. 고민할 것 없이 끝까지 올라가면 됐다. 뒤에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경기장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아직 사람이 안차셔 관중석에 새겨진 무늬와 양쪽 전광판 등을 감상했다. 헬기곱터에서 찍는 각도와 비슷한 조망이었다. 인증샷을 여러번 찍었다. 여편님에게 잘 좀 찍어보라고 항의했으나 나의 배는 거짓이 없었다.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슬슬 선수들이 들어와서 몸을 푼다. 원정팀인 에스파뇰의 선수들이 먼저 몸을 푼다. 분석 기사를 보니, 최근 성적이 상승세란다. 이전부터 FC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엔 더 거친 집중력을 과시했던 팀이다. 이어서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들어온다. 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 삼총사는 한쪽에서 호흡을 맞춘다. 경기 시작 전, 자리가 거의 꽉찼다. 경기 중 나온 안내에 따르면 약 79천 명이 입장했단다. 오른편 골대 뒷자리엔 서포터즈들이 앉았는데, 한국에서 듣던 응원곡과 비슷하다. 롯데의 강민호, 짝자자작 박수 등등 붉은 악마를 벤치마킹했나 보다. 팀 응원가는 유투브로 사전에 예습을 해서 익숙했다.

초반 신경전 이후 경기는 쉽게 풀렸다. 수아레즈가 특유의 침투력으로 한 골을 넣었다. 후반엔 마에스트로 이니에스타의 지휘력이 살아났다. 그의 마술같은 플레이와 메시의 사람뚫기 신공을 수아레즈가 마무리했다. 이 장면에서의 정적이 최고의 순간이었다. 두 번째 골장면을 집에 와서 몇 번이고 돌려봤다. 결과는 41 대승이었다. 에스파뇰 입장에선 최근 가장 활약이 좋은 골키퍼가 부상으로 아웃된 게 컸다. FC바르셀로나는 근래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경기와 팀 플레이에 집중한 나와 달리, 여편님은 선수 개개인의 면모를 눈여겨봤다. 메시는 바지가 꽉 끼어서 중간 중간 어색한 자세를 취했다. 수아레즈는 생김새 못지 않게 엉덩이도 짐승같이 탄탄하다. 네이마르는 날이 추워서 자꾸 옷 소매를 당겨 손을 감싸고, 플레이가 소극적이다. (네이마르는 결국 이틀 전(직관 후 한 달) 경기에서 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11경기 무득점을 깨고 골도 넣었다.) 마스체라노와 이니에스타는 도통 구분이 안간다. 피케는 내가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이해하겠단다. 세르지 로베르토 잘 생겼다. 맘에 든다. 등으로 선수별 평점을 메기셨다. 그러다 경기 막판, 충분히 옷을 따뜻하게 입혔음에도 추위를 느끼고, 맥주가 남긴 졸음으로 힘겨워했다.


경기가 끝나고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헤집고 슈퍼에 들어갔다. 컵라면이 있었다. 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여편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각자 하나씩 샀다. 집에서 경기 하이라이트를 돌려보며 맥주와 컵라면으로 이날의 여운을 만끽했다.

다음날 여유롭게 일어나 산츠 역으로 가서 마드리드행 기차를 탔다. 여러모로 건강하고, 즐거움 가득한 바르셀로나 생활이었다. 세 번 네 번을 또 가도 재밌게 즐길 것 같은 도시다.



부록_바르셀로나 소원 성취 명세서

경기장 입장권 69유로 X 2 = 140유로

공식 유니폼 60유로

피카소 티셔츠 28유로

BRA 모카포트 41유로

우클렐레 및 커버 36유로

카메라 UV 커버 16유로

: 321유로


참고영상

다큐 BARCA DREAMS(https://www.youtube.com/watch?v=kdCBKeKDO5Q)

응원가 https://www.youtube.com/watch?v=c-r6jGBZX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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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1226일 월요일 “위기의 체력”

온 몸이 뻐근하다. 여느 날과는 다른 뻐근함이다. 그 날이 시작됐다. .. 예상보다 빠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하고 일하러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지금 일하는 곳 마무리 하는 날이란다. 아랫배가 찌릿찌릿. 남편님은 괜히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하라고 한다. 왠지 눈치가 보여 처음엔 열심히 했지만 몰래 저기 나무 밑에서 쉬었다. 네팔이는 그런 나를 촐랑촐랑 쫓아온다. 오지마. . 너 있으면 걸린단 말야. 키케 아저씨가 지나간다. 괜찮냐고 하길래 안괜찮다고 아프다고 했다. 그럼 쉬란다. 배도 고프다. 어찌저찌 간식을 먹고 잠시 일하니 또 점심시간이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이럴거면 간식을 11시쯤 먹는게 좋지 않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가는 과객일뿐. 어제 먹다 남은 밥을 점심으로 가져온 아저씨. 간장을 뿌려서 먹는다. 신기할세.

오후 일도 거의 마무리 단계. 갑자기 알레한드라 언니가 날 부른다. 이제 장소를 옮길거니까 네트를 정리해야 한다고 접는 방법을 알려준다. 언니와 아저씨는 업무 스타일이 참 다르다. 아저씨는 빨리 빨리 대충하는 반면에 언니는 빨리 빨리 꼼꼼히 해야한다. 네트에 깔린 올리브도 아저씨는 막 밟고 다니고 언니는 다 피한다. 네트 접기에서도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 잘 접어야 흐트러지지 않고 많이 운반할 수 있단다. 아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진짜 이 언니가! 욕이 나올뻔했다. 결국 네트 8개를 모두 접었다. 이런 날 보더니 남편님은 화를 낸다.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며. 마굿간 지나 개울 건너 꾸역꾸역 집에 왔다. 춥다. 불피우려고 다시 시도 했지만 안됐다. 결국 아저씨를 기다리기로. 돌아온 아저씨를 따라 중앙난방실로 갔다. 저번보다는 좀 더 상세하게 알려주신다. 그러더니 “너네 숲속에서는 어떻게 불피려고 그래?”이런다. 아저씨 우리는 숲속에서 밤에 안잘거에요. 아저씨는 안되겠다며 내일 하얀색 고체 연료를 사줄테니 그걸로 불 피우란다.

저녁을 뭘 먹을지 궁리해본다. 남편님은 어제는 우리가 했으니 오늘은 아저씨가 하게 냅두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따수운 걸 먹고 싶다. 원팬파스타가 먹고 싶다 하니 남편님이 피곤한 얼굴로 맘대로 하라한다. 양파를 썰고, 어제 따 놓은 브로콜리도 다듬고 토마토소스캔도 따서 소금과 올리브유를 넣고 끓이면 완성! 올리브유가 5리터짜리 페트병에 들어있어 양조절이 안되서 왕창 들어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고급병에 들어있는 비싼 올리브유보다 진하고 맛있다.) 그게 주효했나보다. 평소보다 맛있다. 아저씨는 오레가노 가루를 가져와서 뿌려 먹으면서 와인을 홀짝인다. 쉽고 맛있고 채소가 많아서 좋다고 한다. 내일은 반드시 아저씨한테 저녁밥 시켜야지. 다 먹고 앉아있는데 폰을 들여다 보던 아저씨가 “내일 다른 애들이 온대. 잉글랜드 커플이래”라고 이야기 한다.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막는 아저씨다. 사람이 많아지면 업무도 쉬워지겠지.

가로등 하나 없는 곳이라 불을 끄면 별이 너무나도 잘 보인다. 몽골 사막보다 잘 보이는 것 같은 기분. 별님에게 빌었다. 내일은 좀 더 몸이 나아지길. 그리고 털모자를 쓰고 잠이 들었다.


4일차, 1227일 화요일

별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내 기도가 무리이긴 했지만. 뼈마디가 쑤신다. 하지만 출근을 해야한다. 갑자기 회사 다닐때 기분이 떠오른다. 아파도 출근을 해야한다는 그 마음. 하지만 여기는 회사가 아니다. 우선 준비하고 내려가서 차를 마시며 아저씨한테 “아프다.”하니 “그럼 오늘 쉴래?”라고 이야기 해준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게 좋은거 같아. 내일은 우선 쉬는 걸로 해.”라고 이야기 한다. 오늘도 쉬고 내일도 쉬고는 무언가 염치가 없다. “따라가서 쉬엄쉬엄할게요.”라고 대답하고 차에 올라탔다. 케사다 시내에 가서 삼바를 태우고 다시 어디로 가서 새로운 얼굴을 태운다. “나는 칠레에서 온 빅토르 라고 해.” 작지만 탄탄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뒷좌석에 우리 둘, 빅토르, 삼바까지 네명이서 끼어앉았다.

새로 가는 일터는 저기 고개를 넘어야 하는 곳이었다. 차로 20분 넘게 가다가 갑자기 오프로드에 들어선다. 덜컹덜컹. 저기 밑에 낭떠러지도 보인다. 이런 험한 곳에 올리브 밭이 있다니 신기하다. 어느 음침한 골짜기에 차가 선다. 이미 네트는 준비되어 있다. 아저씨는 우리를 5시에 퇴근시켜주고 1~2시간 정도 더 있다 오는데 보통은 이런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오는 것 같았다. 내리니 너무 춥다. 골짜기라 해가 뜨려면 한참이나 남은 것 같았다. 올리브 나무들도 가파른 경사에 심겨져 있어서 업무의 난항이 예상되었다. 내가 피곤해 보였는지 아저씨가 나에게 올리브 줍는 일을 시켰다. 근데 그게 더 춥고 허리를 굽혀야 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몇개 줍다가 포기하고 차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봉우리를 올려다 본다. 큰 새가 보인다. 아 저게 vulture라는 큰 독수리구나. 훨훨 나는 니가 너무 부럽다. 날아서 집에 가고 싶다. 따스한 이불속이 간절하다. 엉엉. 이러다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기를 반복 발가락도 너무 시렵다. 차 밖에서 네팔이의 낑낑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여니 네팔이가 들어와서 함께 온기를 나누며 잤다.

12. 간식 시간인데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 배고파.. 하며 세번째 잠에 빠져든다. 그러다 저 밑에 해가 서서히 드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가서 해를 맘껏 쬐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네팔이도 따라나와 햇살 아래 눕는다. 그러고 놀고 있는데 남편님이 날 부른다. “자기님. 점심 먹재요” 저기 밑에 쭈구리가 되어 네팔이와 앉아 있는 날 보며 측은해하는 남편님이었다. 햇살이 나는 곳에서 점심을 먹으니 힘이 조금 난다. 빅토르 아저씨가 직접 싸온 간식을 권했는데 말린 고추와 견과류였다. 고추를 한 입 먹었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다. 하지만 빅토르 아저씨는 빵에 치즈와 함께 넣어 우적우적 먹었다.

남편님을 도와 올리브 정리를 하니 벌써 퇴근 시간. 지금 생각해도 너무 힘든 하루였다. 집에 가는 길에 아저씨는 가게에 들러 흰색 고체 연료를 사줬다. 이제 직접 불을 피우라는 강권! 중앙난방실에 가서 남편님과 함께 궁리하며 장작을 쌓고 종이 부스러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흰색 고체 연료를 한 조각 떼어 장작사이에 두고 불 붙인 성냥을 갖다 댔다. 활활 불길이 높다. 그 사이사이 종이를 넣어 불을 크게 하고 장작에 잘 옮겨 붙게 돕는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가 난다. 남편님은 이제 됐다며 문을 닫으라고 한다. 하지만 나무가 타는 모습이 예뻐서 한참을 더 봤다. 이런 날 보며 불장난에 맛들였다고 놀리는 남편님. 불 피우고 앉아있는데 아저씨가 무언가 통을 들고 온다. 뚝딱뚝딱. 부엌 뜨거운 물을 틀어보라고 한다. ! 드디어 온수가!! 쿨럭쿨럭 하더니 뜨거운 물이 나온다. 오올~ 아저씨~ 후다닥 올라가서 차례로 샤워를 했다. 하고 나오니 왠 남녀가 아저씨와 대화 중이다. “안녕 난 오드리라고 해. 나는 마테오.” 왠걸 프랑스 커플이다. 스페인어는 할 줄 알지만 영어는 못한다고 한다. 졸지에 이 집 5명 중에서 나만 스페인어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4명이서 스페인어로 대화하면 난 그냥 끄덕끄덕.

오늘 저녁은 아저씨가 하기로 했다. 츄리소 라는 빨간양념 소시지를 굽고 빨간피망 절임도 준비하고 샐러드도 만드신다. 그리고 와인을 곁들이니 아주 좋은 저녁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 쉬는 날이어서 더욱 좋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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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이어 여행 중 두 번째로, 두 번째 찾은 도시다. 두말할 것 없이 두 번 와도 신나고 재밌는 곳이었다.


바르셀로나_20161212_20161219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 도시다. 스페인은 각 지역별로 특색이 강한데 특히 카탈루냐 지역은 언어도 카탈루냐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지속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정치 뉴스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대목이 신흥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의 분열과 카탈루냐 독립에 관한 얘기였다. 국가를 구분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바르셀로나에서 느낀 카탈루냐어의 독립성은 꽤나 컸다. 지하철에 바로 보이는 것이 Bon viaje로 스페인어인 Bienvenido 보다는 프랑스어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대부분 스페인어가 별도 표시되어 있지만, 안내문의 순서는 카탈루냐어-스페인어-영어 순이다. 또한 주요 서점에 가면 초입엔 카탈루냐어로된 책들이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좀 심한 사투리 정도로 생각했는데 상당량의 출판물이 제작될 정도라면 별도의 언어, 별도의 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했다. 예를 들어, 한국엔 순수하게 제주도 사투리나 부산 사투리로 된 작품이 없다. 있어도 한국 전체를 겨냥한 작품이지 한 지역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가타부타 언어에 대한 말이 길어졌는데, 몽골의 정자매를 만난 이후 스페인어를 좀 더 열심히 공부했다. 드디어 스페인에 도착한단 생각에 흥이 올랐는데 막상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어가 주 언어였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겠다고 바르셀로나를 찾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름 신문 제목, 광고판(반반), 관광지 해설문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것만 대충 짐작해도 그간 여행에서보다 훨씬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시내 교통_지하철

큰 도시라 지하철을 타면 된다. 첫날 숙소로 가려고 지하철 표를 사려니 무슨 zone 개념이 있다. 도심에서만 다니는 것과 외곽까지 포함된 승차권의 가격이 다른 것이다. 우리 숙소가 완전 도심은 아니라 한참 고민을 하다 그냥 1회권을 끊었다. 알고보니 어지간한 바르셀로나 시내는 다 1 zone 으로 해결이 된단다. 다음날부터 10회권을 끊어서 거의 1주일을 살았다. 그러다 토요일 저녁, 비가 와서 승차권 하나가 젖었다. 그나마 멀쩡한 걸 나한테 준 여편님은 못 들어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직원이 월요일에 사무실 가서 환불 받으면 된다고 했다. 여편님은 더욱 애절하게 월요일에 떠난다고 했다. 그러자 직원이 마술같이 기계에서 3회권을 뽑아주었다. 평소 지하철에서 양보도 잘하고 요금도 꼬박꼬박 (이탈리아에선 벌금도) 내면서 산 보람을 느꼈다.

첫날 무거운 배낭을 들고 지하철을 탔더니 예쁜 언니가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줬다. 괜찮다는데도 곧 내리는 척을 했다. 여러모로 훈훈함을 많이 느낀 바르셀로나 지하철이었다.


숙박_공기방울_잔루카집_더블룸_7

이제 슬슬 공기방울로 집을 알아보고, 주인과 연락을 주고받는게 좀 물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스페인어를 연습할 겸 스페인어로 연락을 취했다. 일반적인 내용이라 대충 다 알아먹을 만했다. 도심에서 서쪽에 위치한 Badal역에 자리잡고 있다. 우측으론 몬주익 공원을 지나면 도심이고,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프누(Camp nou)와는 걸어서 십분 거리였다. 한마디로 서울의 종합운동장역 같은 곳이라 축구장 가려면 Badal역에서 내려서 걸어가야할 만큼 경기장과의 접근성이 최고조에 이른 집이었다. 예매해 놓은 경기가 일요일 밤 11시에 끝나니 경기장과의 접근성을 가장 중요시했다. (경기와 관련된 내용을 쓰려니 급 흥분이 되지만 자제하고, 다음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주택가라 집을 찾는 게 좀 헷갈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잔루카는 없고, 영국인 룸메이트가 우리를 맞아줬다. 이 친구는 종일 방에 박혀서 영드나 영화만 보는 것 같았다. 저럴거면 여기 왜 왔을까, 혀를 차던 차에 주말 저녁에 급 여자친구라며 인사를 시켜줬다. 집은 무엇보다 햇살이 잘 들었다. 특히 거실이 그랬다. 옥탑방이라 집 전후로 테라스가 크게 있었다. 우리방에도 창문 열면 바로 뒷테라스로 나갈 수 있었다. 테라스에서 타파스를 차려놓고 맥주를 마시기에 딱이었다. 너무 추워서 한 번만했다.


다음날 호스트인 잔루카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집 안 곳곳에 아웃도어 용품이 있었고,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는, 이탈리아 사람이란다. 스페인어는 잘한다. 너무 빨리 말해서 난 주요 단어만 주워듣고 그냥 끄덕끄덕한다. 집안 곳곳이 허술한 구석이 있는데 손재주 좋은 아저씨가 열심히 고치며 사는 것 같았다. 변기 버튼을 꾹 눌렀다가 휙 빼야하는데 이게 쉽지 않아서 나랑 여편님이 몇 번 고장냈다. 한 번은 제대로 고장나서 아저씨가 30분을 고쳤다. 볼일을 보고도 또 한 번 긴장해야하는 건 큰 고역이었다.


최근 스페인 당국과 에어비엔비의 신경전이 거세서 단속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이웃 중 누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냥 한국에서 온 잔루카 친구라고 하란다. 토요일 아침, 널찍한 테라스에 마음껏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돌풍이 불어 내 속옷이 아랫집 베란다로 날아들어갔다. 여행 중 속옷은 4개가 최적이다. 5개는 진짜 풍족하다. 3개가 되면 매일 손빨래를 해야한다. 이동 중엔 답이 없게 된다. 아저씨한테 사정을 말하니 아랫집에 사람이 없다며, 쪽지를 붙여주었다. 중국인 마켓에 가면 싸고 좋은게 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다행히 다음날 속옷이 돌아왔다.


동네 생활

첫날은 숙소에 짐을 풀고, 밥을 찾아 나갔다. 일요일 저녁이라 한산했다. 작은 타파집을 기웃거리다가 시원치 않아 광장에 큰 식당으로 갔다. 허기짐에 양파수프와 그릴 셋트를 시켰다. 각종 구운 고기도 맛있었지만 소세지가 인상적이었다. 순대 같은데 안에 재료는 매콤했다.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갈리시아 지방 소세지란다. 동네 주변은 바르셀로나 중앙역인 산츠역과 가까워서 산츠 시장도 있고, 서울의 경의선 공원처럼 기차역 위를 덮은 공원도 있어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한 가운데에 아시아마트가 있어서 무작정 들어갔는데 고추장이 있었다. 여편님의 오랜 소원인 고추장 구입을 이번에 이뤄보기로 했다. 이로써 우리는 김치, 된장, 고추장을 모두 보유한 여행자가 됐다. 고추장으로 홍합고추장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잔루카 아저씨도 맛보라고 주니 맛있단다. 과중한 업무로 피로에 지친날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여편님이 된장찌개를 끓이고 솥밥도 해줬다. 밥과 김치를 쓱삭 비웠다. 그리고 저녁에 바로 고추장 불고기를 만들어 먹고, 다음날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한국식 빠에야를 완성했다. 이렇게 먹고 나니 한동안 한식에 굶주릴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Estrella Damm

몽펠리에에서 와인 코알라가 되서 와인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바르셀로나에선 맥주를 주로 마셨다. 한국에서도 많이 마신 Estrella를 여기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지역 맥주는 Damm이라는 회사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EstrellaDamm이었다. 슈퍼마켓에서 Damm의 여러 맥주를 맛보았다. Estrella도 맛있었지만 Double MoltVoll Damm이 풍미가 더 진했다. 호스트 냉장고에도 Voll Damm이 가득했다. 파리정의 추천으로 Inedit도 마셔봤다. 한국에선 6천원 가량의 고급 맥주라는데 여기선 다른 Damm들과 비슷하게 1유로에 팔았다.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Navidad 맥주도 있어서 한 번 기분내서 마셨다. 여편님이 준비한 하몽 메론 타파스와 맥주의 궁합이 가장 좋았다.


바르셀로나 관광

사그라다 파밀리와와 가우디 투어(La Sadrada Famili y Antonio Gaudi)

일단 처음으로 나선 것은 만만한 사그리다 파밀리아와 가우디 산책이었다. 나의 기억은 가물했지만 숙소에 바르셀로나 가이드북이 있었다. 사그라다 파말리아 대성당을 보고 시내에 위치한 가우디 건축물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별도로 설명이 필요없는 대작이다. 물론 개인적으론 이게 계속 지어지고 있어서 더 신비로운게 아닐까 싶다. 10년 뒤 완공이라는데 그 때 오면 또 10년 뒤 완공이라고 할 것 같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올라갔다. 바로 성당이 보여 일단 한 번 둘러봤다. 입장권이 무려 15유로였다. 사려는데 직원이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30 어버버하는데 30살 이하면 할인이라길래 재빨리 아아아.. 28살이라고 수정했다. 각각 2유로씩 할인 받았다. 아마 5년 전에 왔을 땐 내부를 안 봤나보다. 외부 전경도 웅장했지만 내부 천장과 스테인드 글라스가 알록다록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연결된 가우디 자료실을 둘러봤다. 가우디의 건축과 생애에 대해 잘 소개되어 있었다. 또 개인적으로 가우디가 이렇게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조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란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 가이드북의 안내에 따라 광장까지 골목골목의 건축물을 찾아 나섰다. 열심히 따라갔는데 안내된 건축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대도로에 다다라서야 유명한 La Pedrela 건물이 보였다. 이것도 예전에 본 기억이 나서 단박에 알아봤다. 여편님이 이런 집에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 카페로 들어갔다. 다행히 카페는 유명한 건물인데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훈훈하게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1시간 정도 살아봤다. 건물 내부도 바깥처럼 벽이 물결쳐서 특이했다. 여길 나와 대각선에 위치한 Casa Batillo를 흝어봤다. 여긴 입장료가 따로 있어서 바깥만 봤다. 내친김에 서점인 Casa del libro에 가서 스페인책을 구경했다. 피델 카스트로 서거를 기념해 관련 도서를 뒤적거리다 한창 때 체와 피델이 웃고 있는 사진을 봤다. 이날 최고의 장면이었다.


복습의 왕 여편님이 집에 와서 복습을 시작했다. 가우디는 평생 일만 하던 중 아침 일찍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다 트램에 치였다. 사고 후 쓰러진 가우디를 못 알아보고 노숙자인지 알고 늦게, 가장 낙후된 병원으로 옮겼고,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다고 한다.


구엘공원(Parque Guel)

전날 생각보다 피곤하여 일찍 잤다. 바로 다음날 새벽에 구엘 공원을 가기로 했다. 구엘공원은 8시 전에 들어가면 공짜라고 했다. 구글에 따르면 1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6시에 일어나 6시 반에 집을 나섰다. 이동일도 아닌데 이렇게 서둘러 관광 나서긴 처음이었다. 어둠을 헤치고 지하철을 타고, 근처 역에 내렸다. 막 오픈한 빵집이 있어 들어갔다. 빵과 커피를 먹으니 겨우 잠이 깼다.


날은 아직 어둡고, 여편님은 홀로 작동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나는 계단을 묵묵히 올라갔다. 어찌어찌 돌고 돌아 공원 입구를 찾아들어갔다. 아직도 여덟시가 되려면 한참 남았다. 공원 가운데로 들어가니 우리를 비롯해 한국 관광객들이 더 있었다. 역시나 우리 민족은 관광도 제일 부지런히 한다. 슬슬 해가 뜨고 있다. 중심부를 둘러보고, 외곽을 먼저 산책하기로 했다. 작은 산 하나가 다 공원이라 산책로가 쭉 펼쳐져있었다. 슬슬 개를 데리고 산책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바르셀로나엔 특히 퍼그를 많이 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의 산책을 위해 8시 이전에는 개방하는 모양이다. 슬슬 주변 산책로와 공원 중심부를 가르는 문들이 닫혔다. 올라올라 전망대로 올라갔다. 저 멀리 바다에서 동이 트고, 바르셀로나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위로 바다와 해가 비치는 일출은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일출을 만끽하고, 다시 공원 중심부로 갔다. 유명한 문양 들을 자세히 살피려고 갔더니 이제 티켓 없으면 못 들어간단다. 일출을 본 걸로 만족하고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공원 입구에는 사립 초등학교가 있어서 부모들이 차로 애들을 등교시키고 있었다. 귀염귀염 열매를 마음껏 먹고 내려왔다. 붙인 김에 아침을 먹고, 근처의 Damm 공장을 찾았다. 꽤나 내부가 그럴듯하고, 매장도 있었는떼 관람객은 출입 금지란다. 집에 얼른 들어가서 쉬었다.


쇼핑 열전

바르셀로나를 꿈의 도시라고 한 이유는 축구도 있었지만, 그간 심사숙고했던 물품들을 구매한 탓도 있다. 그간 여행을 하며, 혹은 준비를 하며, 어딜 갔어야 했다거나 뭘 했어야 했다는 후회는 한 적이 없다. 자꾸 생각나는 건 ‘뭘 샀어야 했다’뿐이었다. 자본주의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이 우리의 발길을 잡는 것이다.


먼저 나는 El corte ingles에 가서 모카포트를 샀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행자가 모카포트를 들고 다니는 걸 보고 감명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좋은 모카포트를 써보니 탐이 났다. 백화점에서 여러 브랜드를 비교했다. Alesi는 튼튼하고, 써본 적이 있었지만 너무 비싸고, 무겁기도 했다. 백화점 자체 브랜드는 매우 쌌지만 삐걱거리고, 스뎅 느낌이 났다. BRA의 제품 중 41유로짜리 중견 제품을 구매했다. 슈퍼마켓에서 바르셀로나 커피 명가에서 만들었다는 에스프레소용 커피가루도 샀다. 여기도 대세는 돌체구스토나 네스프레소이지만 우리 숙소 아저씨를 포함해 모카포트 지지자들이 상당했다. 집에서 시음해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막상 바르셀로나에서 쓰고 난 이후 약 1달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대로 사용을 못하고 있다.


여편님은 100년 전 피카소가 입던 파란 줄무늬 긴팔 티셔츠를 샀다. 길거리에서 파는 거랑 달리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산 오피셜이다. 한국에서 한창 유행할 때 원체 애용하던 거라 여행 중 하나 버리고도 계속 아쉬워했다. 지금 다시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피카소의 사례를 보면, 2110년 경에 다시 유행할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우쿨렐레를 샀다. 여편님이 지중해 반대편 터키 이스탄불 탁심거리에서부터 악기 가게를 볼 때 마다 가격을 물어보곤 했었다. 그러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직접 나섰다. 막상 내가 모카포트를 망설일 때는 여편님이 부채질했다. (어차피 커피는 아침에 내가 탈꺼고, 한 번에 2잔은 타게되어있다.) 구글링을 하니 악기 파는 곳이 많았다. 홈페이지에 보유 중인 대표 모델도 나와서 대충 몇 개를 골랐다. 대부분 우리가 지나쳤던 중심가에 있어 찾아가기 편했다. 여행 중 여러 타박상의 우려와 초보인 점 등을 고려해 33유로짜리를 샀다. 아저씨가 여행에 딱인 제품이라며 추천해줬다. 가방도 7유로인것을 3유로만 받았다. 좋은 가격엔 현금으로 보답했다.


우쿨렐레 사러 가는 길에 카메라 집이 보였다. 이탈리아에서 깨먹은 카메라 렌즈 UV 커버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카메라는 워낙 허접해서 맞는 사이즈가 잘 없었다. 장인정신 풀풀 나는 아저씨가 걱정말라며 맞는 사이즈를 찾아줬다. 거슬러준 잔돈도 다 광채나는 2017년 판 새 동전이었다. FC BARCELONA 티셔츠 산 얘기는 다음편에 하겠다.


외식 열전

스페인은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하면 외식하기 좋은 나라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식당들이 술 값으로 돈 벌겠다는 마음이 없단 거다. 보통 점심이나 저녁 세트 메뉴가 10유로에서 시작하는데 전체 요리, 식사, 음료, 디저트로 구성된다. 10유로짜리 정식에도 음료엔 맥주가 포함되어 있다. 콜라 한 병이나 맥주 한 병이나 동등하게 대우받는 세상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점심을 찾아 헤메다 맛집으로 보이는 곳을 들어갔다. 간단히 빠에야나 먹을 생각이었는데 가격이 꽤나 비싼 곳이었다. 그래도 물어보니 빠에야는 있다고 했다. 파스타, 빠에야가 하나에 15유로씩 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여편님은 샐러드를 시키자고 했다. 아니, 이런 고급 식당에서 8유로나하는 샐러드까지 시키겠다고. 결국 샐러드를 먹다 여기서 이런 거 시키면 돈 아깝지 않냐고 했다. 결말은 뻔하다. 올리브 열매처럼 털리고, 요즘은 매끼 여편님에게 샐러드 주문을 권장하고 있다. 상그리아도 큼지막하게 한 잔에 5유로, 이후 스페인 여행을 다 포함해도 가장 비싼 가격대의 식당이었지만, 빠에야 파스타 모두 맛있긴 했다. 이후론 보다 현실적인 가격대의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숙소에 붙어있는 주인 아저씨의 추천 식당 리스트를 참고했다. Pollo rico를 찾아갔다. 점심 세트가 10유로였다. 그래 이것이 내가 기억하던 스페인의 물가라고 했다. 난 콩과 내장 고기를 넣은 수프를 시켰고, 여편님은 삶은 나물과 감자를 시켰다. 이어서 여편님은 닭구이 나는 토끼구이를 시켰다. 사실 그리스에서부터 정육점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토끼고기의 맛이 궁금했었다. 토끼를 먹는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만 익숙해진다면 닭보다 좀 더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맥주에 디져트까지 한 껏 내주는 스페인의 푸짐함에 낮부터 훈훈해졌다.


원래는 Pollo Rico가 아니라 Meson de David라는 족발집을 갈 생각이었다. 찾아보니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곳이었다. 점심에 가니 근처 길이 공사중이라 저녁에나 오라고 했다. 다음날 저녁에 찾아갔다. 저녁 영업 시작 시간이 8시에 갔는데 한 두자리 빼곤, 단체 예약으로 꽉차있었다. 나는 족발, 여편님은 그냥 돼지구이를 시켰다. 족발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이 기름기를 너무 쪽뺐다. 족발 특유의 젤라틴적 쫄깃함이 없었다. 다행히 여편님의 돼지구이와 이베리아 꼬냑을 넣었다는 상그리아가 흡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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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그라나다 여행 2, 1225일 일요일, ‘컴백홈과 비빔밥’


일어나니 9시반. 남편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식당에 먼저 가있다.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는 지라 거실, 혹은 공용공간에 먼저 나와 공부하시거나 글을 쓰신다. 참으로 성실정직하신 분이다. 하지만 난 아침잠이 많아 늦게 일어난다. 간혹 이런 날 기다리다 지쳐 깨우러 오시는 경우도 있다. 여튼 눈꼽떼고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난 아침을 먹어야 잠이 깨는 스타일이다. 역시나 커피는 맛이 없어서 밖에서 마시기로 했다.

오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4시에 아저씨를 타고 돌아가는 스케쥴. 외출에 앞서 한번 더 샤워를 했다. 오늘 저녁에도 못할게 확실하니까. 출발하는 날 아저씨가 추천해준 산니콜라스 전망대에 가보기로 했다. ‘mirador de san nicolas’. 아저씨 말로는 미셸 오바마도, 아들 부시도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알함브라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지므로 배경삼아 셀카를 찍기 좋기 때문. 걸어가려다 너무 피곤하여 버스를 타기로 했다. 쉽게 도착했다. 햇살 흡수하다가 밑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알함브라를 보기로. 내려가니 사람이 많다. 가격도 보통 가게의 2배가 넘는다. 하지만 커피가 급하니 마시기로. 명절 대목을 맞아 바쁜 웨이터는 늦게 커피를 가져다 준다. 나는 책을 보고 남편님은 스페인어 공부를 한시간여 하고 나섰다. 점심을 먹기 위해 헤매었다. 그러다 발견한 신라면 사진. 가게에 들어가니 신라면 등 농심 라면을 판다. 오뚜기는 왠만해선 잘 없다. 하지만 이런 작은 중국가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신라면 4개를 집어 들었다. 4.8유로. 이것 또한 고마운 가격이다. 어제 사놓은 쌀, 간장과 함께 산골 케사다에서 우리에게 좋은 식량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진짜 점심을 먹어야 한다. 배고프다. 아까 올라가는 길에 봐둔 ‘La Cueva’에 가서 세트 메뉴를 시킨다. 립스테이크, 샐러드, , 맥주 두잔, 디저트 다 합해서 25유로다. 돌아가면 순한 집밥만 먹을테니 정크한 것들을 마음 편히 흡입하기로 한다. 다 먹고 나니 벌써 3시 반이다. 호텔로 돌아가 맡겨놓은 보조가방을 찾고 4시에 맞춰 약속장소에 나갔다. 아저씨 차가 있다. 앞자리엔 알레한드라 언니가 있다. 돌아갈 때는 다 같이 돌아간다. 재밌었냐고 물어본다. “Si, si”

성탄절 명절 음식이 궁금해 무얼먹었냐고 물어보니 칠면조에 여러 맛난 음식들을 먹었다고 한다. 성탄전야 만찬과 성탄절 아침 만찬 이렇게 두번 먹는다고 했다. 키케 아저씨의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아주 좋다며 우리를 위해 남긴 케잌을 주었다. 그리운 한국 음식을 먹었냐고 물어보길래 맛있는 안달루시아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하니 본인들은 한끼를 일식당에서 먹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은 스시, 마끼 등 일식을 엄청 고급음식으로 생각한다. 그래봤자 우리나라 김밥보다 못한 재료들도 있는데.. 안되겠다. 오늘 저녁엔 비빔밥이다!

케사다로 돌아가 어느 집 앞에 차가 멈춰선다. 대문을 여니 개들이 우르르 나온다. 엇 네팔이와 솔틴이다(솔틴은 알레한드라 언니의 멍멍이 이름이다.) .. 츤데레 키케 아저씨.. 이렇게 다 맡겨놓을 궁리를 해놓고는 차갑게 버리고 가는 척 한거다. 그런데 네팔이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저씨는 찾아올거라며 집으로 간다. 우리는 방으로 올라가고 아저씨는 볼 일이 있다고 간다. 아마 말들, 염소들 보러 가는 걸거다. 우리는 아저씨에게 우리가 저녁 준비하겠다고 하고 밥도 하고 양파, 당근도 볶았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애지중지 들고 다니는 고추장도 꺼냈다. 그런 우리를 보더니 아저씨가 집에 들고간 여행가방을 가지고 오더니 무언가를 우르르 꺼낸다. , 하얀콩, 미역 등등 아시아 식재료 들이다. 뭐지 이 아저씨. 그러더니 자기 텃밭에 가보지 않겠냐며 물어본다. 그럴거면 밝을때 가자고 하시지. 랜턴을 머리에 끼고 따라갔다. 집 마당 바로 밑에 펼쳐지는 작지만 실한 텃밭. 양배추, 브로콜리, 상추를 받아들고 들어왔다. 오늘은 우선 상추만 쓰기로. 양푼이 없으므로 큰 웍(wok)에 갓한 밥을 깔고 볶은 채소, 계란후라이, 잘게 썬 상추를 착착 올렸다. 그리고 가스불에 구워 바삭하게 만든 김을 부셔서 작은 접시에 담았다. 이제 퍼포먼스 시간. 아저씨 앞에서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볐다. 신기해 하는 아저씨. 그리고 각자 접시에 덜어주고 김가루와 깨 솔솔 마무리.

한입 먹은 아저씨는 매우 만족해 한다. 스페인 사람들 특히 남부 사람들은 매운걸 좋아한다. 다 먹고 나서 설거지도 우리가 했다. 갑자기 부엌에 들어오는 아저씨. 본인 식량 서랍에서 스시용 밥, , 소바 등을 보여준다. 다 써도 된다고 한다. 그때는 몰랐다. 비빔밥이 아저씨의 오리엔탈푸드욕구에 점화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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