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천만의 대도시, 리마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지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복잡하다. 숙소 주인은 위험하니 택시를 타고 오란다. 그린택시를 타라고 했는데 찾다보니 벌써 열명의 기사가 우리를 둘러쌌다. 어찌저찌 택시를 탔다. 해안도로를 총알처럼 달린다. 야근하고 자정에 강변북로를 달리는 것 같다. 다행히 숙소 앞에 잘 내려준다.


리마(Lima)_0607_0613

페루의 수도, 쿠스코에서 고산은 힘들고, 해안은 사막이고, 아마존은 더 힘들테니 리마밖에 갈 곳이 없다. 파타고니아 이후 뭘 해도 나사가 빠져서 기름이 새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리마에서 따뜻한 기운을 회복했다.


숙박_& 피터 까사_더블룸_4

대도시는 숙박 구하기가 힘들다. 공기방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미라플로레스 근처에 깔끔한 방을 하나 찾았다. 예약하니 주인이 이름도 물어보고,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준다. 미라플로레스에서 3,4블록 떨어진 대로변 아파트다. 경비실을 지나서 올라갔다. 복도를 헤메는데 누가 문을 활짝 열고 이리로 오란다.

윌과 피터, 그리고 윌의 동생인 드루스가 함께 지내는 집이다. 큰 거실에 방이 세 개라 남는 방을 공기방울 돌린다. 윌의 엄마(미라플로레스 광장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인들이 강연하는 전통이 있다. 그 영상을 보여주면서 자기 엄마라고 한다. 시인이시다 ㄷ ㄷ ㄷ )도 자주 계시는데 지금은 쿠스코 근처의 고향 마을에 갔다고 한다. 드루스는 볼리비아 수크레 의과대학에 다닌다. 잠시 볼일보러 리마에 왔다고 한다. 피터는 벨기에 와플나라에서 리마에 와서 1년 째 지내는 중이다. 윌은 변호사다. (엘리트 집안이다.) 이런 얘기를 나누고, 피터가 종이 하나를 가져온다. 신문이다. 한 가운데 May & Gordo (여편님과 나) 환영! 메인뉴스다. 주변 잡 기사로 각종 관광생활정보가 있다. 참 재밌는 친구들이다. 싸다는 식당가에 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와서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거실을 어슬렁 거렸다. 윌과 피터가 아침을 준비한다. 곡물빵으로 구운 샌드위치, 각종 과일과 드립커피, 차 푸짐한 아침을 같이 먹는다. 여행을 많이 다닌 피터는 주인이 잘 챙겨주고, 아침도 든든하게 주는 숙소가 좋았다고 한다. 공기방울도 피터의 아이디어라 여행자로서 좋은 숙소를 꾸미기로 했단다. 그래서 욕실엔 별도의 세면도구도 있고, 차 소리가 들리는 방인 걸 감안해서 귀마개도 준비해뒀다. 든든한 아침을 다 소화시킬 정도로 얘기를 하다가 쉬고 나갈 준비를 했다.


미라플로레스_0608

도시는 바쁘다. 보노보노를 점심에 만나기로 했다. 보노보노는 쿠스코에서 우리보다 한참 먼저 떠나서 아레키파, 이카를 거쳐서 하루 먼저 리마에 왔다. 공기방울로 구한 숙소가 복층 구조의 고급 아파트라고 한다. 주인 부부는 보노보노의 김치찌개에 매우 당황했다. 평일 낮에 둘이 운동을 다녀와서 우리를 불러서 같이 밥 먹는 건 안된다고 했다.

리마 최대의 부촌 미라플로레스 광장에서 보노보노와 너부리를 조우했다. 점심으로 유명한 La Lucha를 먹으러 갔다. 맛난 감자튀김도 추가로 시켰다. 우리는 일반 샌드위치를, 보노보노는 스페셜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그게 훨씬 맛있었다. 다음에 와서 또 먹기로 했는데 못갔다. 위엔 전설적인 Flying Dog호스텔이 보인다. 예전에 키토에서 리마까지 34일의 여정 끝에 머문 곳이다. 내 수화물이 버스 회사 실수로 다음날 오는 바람에 나도 이적처럼 숙소 잡자마자 팬티를 사러 갔었다. (나는 고급지게 백화점에서 샀다.) 추억팔이를 하며 공원의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고양이 사연은 여편님이)


보노보노와 웡마트_0608

커피까지 한 잔하고 마트를 구경하러 갔다. 웡마트, 여기도 대륙의 냄새가 난다. 대도시의 마트답게 한국의 대형마트와 비슷한 크기, 비슷한 구조다. 일층 제품 코너에서 저렴한 커피그라인더를 목격했다. 다들 볼리비아에서부터 원두 내려마시는 재미에 빠져서 한참 살까말까를 고민했다. 콜롬비아까지 와서도 그때 안산걸 후회하고 있다. (어디 안 간 건 후회 안되도 뭐 안 산 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식료품 코너엔 즉석식품과 케잌류가 많다. 페루식보단 유럽식이나 식재료가 눈에 띈다. 주고객층이 누군지 감이 온다. 놀라운 건, 외국식품 코너다. 중국제품 곁에 당당히 큰사발이 보인다. 과자도 있다. 이 마트 뿐만아니라 리마 시내 다른 마트에서도 한국 라면과 과자를 볼 수 있었다. 남미 대륙으로 퍼지는 한국 식품이 리마로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도 저렴하다.


로컬식당_0607_0609

시장까지 함께 둘러보고, 보노보노는 남은 김치찌개를 먹겠다고 집으로 갔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어제 갔던 식당가를 다시 찾았다. 케네디 공원 대각선 Reply 쇼핑몰 옆에는 3,4개의 작은 식당들이 붙어있다. 어제 먹은 곳이 시원치 않아 옆으로 갔다. 해물볶음밥을 시켰다. 양이 끝이 없고, 짠걸 빼면 맛있었다. 날씨도 우중충한 것이 동남아 같았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떠들다가 윌, 피터 그리고 드루스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윌이 미라플로레스 골목골목을 안내해준다. 오래된 건물로 둘러쌓인 정원도 있다. 맛집도 알려줬는데 갈일이 없었다. 중국풍의 식당에서 가지볶음 같은 걸 먹었다. 치파보단 더 페루식에 가까웠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대만 사람이라고 했다. 동양음식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스시 얘기가 나왔다. 유럽부터 남미까지 전세계의 스시 열기는 뜨겁다. 한국에서도 스시는 자주 먹고, 그 중 김밥이란 건 일상이고 길에선 1달러면 먹는다고 했다. 다들 셋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시장통(Mercado Central)_0609

여기 시내에 차이나타운도 있고, 외곽에 한인슈퍼도 있으니 우리도 같이 만들 순 있어. 라고 하자, 드루스가 오늘 안그래도 시장 갈건데 근처에 차이나타운도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윌은 일을 하러 집으로 돌아가고, 피터까지 4명이 택시를 타고 중심가로 갔다. 중심가는 치안이 안 좋으니 주의하라고 했다.

시장통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차가 막혀서 근처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차이나타운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몇 개 샀다. 여긴 완전 중국같다. 만두가 익어가고 있다. 그 다음 중앙시장을 구경시켜준다. 중앙시장답게 싱싱한 각종 고기는 물론이고, 종류별로 견과류, 원두도 다양하다. 요상한 인삼젤리 같은 걸 먹었다. 본격적으로 옷거리에 접어든다. 드루스는 미친듯이 활보하며 옷을 본다. 꽂힌 가게에서 3,4씩 산다. 놀라서 보는 우리에게 피터가, 저거 다 볼리비아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팔거라고 알려준다. 우린 그 사이 속옷 코너에서 양말 세트와 여편님 속옷을 샀다. 볼리비아에서부터 사겠다는 걸 속옷은 페루에서 사는 거라고 자제시켰었다. 적오빠, 열오빠의 얘기를 들려주니 수긍했다. 페루산 제품들은 모두 만족해서 쓰고 있다. 한참 시장통을 전전하며, 아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동대문 옷타운 같은 곳이다. 다양한 남미의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팔 거라지만 드루스의 열정은 대단했다. 쇼핑이 끝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을 기운도 없이 12시간을 잤다. 요즘 리마의 대기오염은 매우 심각하다. 피터 말론 멕시코 시티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일등을 차지했을 거란다. 거기다 날씨가 계속 흐려서 더 공기순환이 안된다. 목이 칼칼했다.


노다지와 한인슈퍼_0610

토요일은 모두 교회를 간다며, 준비해뒀으니 아침을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했다. 간단히 아침 먹고 쉬다가 노다지를 갔다. 앞서 방문한 보노보노가 돼지국밥과 반찬을 적극 추천해서 안 갈 수가 없었다. 여행 중에 처음으로 가는 한식당이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한적했다. 고급스럽게 방으로 안내했다. 국밥은 앉아서 먹어야 제맛이지. 화장실 벽엔 대문짝만하게 한류스타들 사진+사인이 붙어있다. 아이돌들도 공연왔다가 다녀간 것 같다.

돼지국밥 두 개를 시켰다. 소문대로 반찬이 많이 나왔다. 갓 지진 전과 튀김, 볶음, 나물, 김치(2) 등등 푸짐했다. 국밥에도 고기가 반이었다. 국밥이 30솔인데 전 10, 튀김 5솔 값은 충분히 한다. 가격만 따져도 페루 다른 현지식당보다 가성비가 좋다. 난 한식에 목 메는 사람은 아닌데 여편님은 목이 멨다. 이걸 먹어야 목감기가 나을 거라고 했다. 계산하고 나오니 어느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페루 사람들이 주말 외식으로 많이 오는 것 같다.

바로 옆 한인슈퍼에서 단무지와 김, 쵸코파이(정은 없었지만 선물이다.), 내가 쓸 젓가락, 깻잎, 두부 등을 사고 돌아왔다. 여편님은 집에서 배를 두드리기로 하고, 난 쇼핑을 좀 더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윌과 피터에게 한식당 사진을 보여주니 이런 델 니네 둘만 다녀와? 하는 눈빛이었다고 한다. 내가 백화점 간 사이 여편님은 피터와 과일을 사러 갔다왔다. 망고스틴부터 카카오열매까지 신기방기한 열대과일을 많이 보고 왔다.


백화점_Falabella_0610

리스본에서 구입한 운동화가 계속 말썽이었다. 좀 큰데 발목을 안 잡아줘서 걸으면 불편했다. 벼르고벼르다 리마에서 장만하기로 했다. 먼저 스포츠 매장인 Marathon을 갔다. 싼 건 다 이상했다. 몇 번 신어봤다가 안 사니 매장 직원이 날 죽일 것 같았다. 백화점인 Falabella로 갔다. 여기선 직원이 신경 안 쓸때 혼자 신고 벗었다. 사이즈별로 있는 박스를 일일이 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운동화 하나를 골랐다. 깔창에 쿠션도 있어서 편했다. 바람막이를 찾는데 저기 1+1 후드티 행사를 한다. 난리가 났다. 나도 인파에 묻혀 두 개를 골랐다. 여편님과 번갈아가며 입기로 했다. 하나는 용(Dragon) 그림, 하나는 용협(Dragon Alliance)라고 써져있다. 백화점 들어오면 1시간 안에 체력이 동나는 여편님이 안계시니 장장 3시간을 넘게 쇼핑했다.


김밥 밤(Kimpap Night)_0610

그리고 오늘 저녁은 대망의 김밥을 싸는 날이다. 여편님의 총괄하에 각자 김밥을 싸는 체험형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재료 준비를 마치고 모두를 불러모았다. 두르스는 늦게 온다고 꼭 자기 몫을 남겨달라고 했다. 또 다른 초대손님, 윌의 이모님이 잠시 머물기 위해 오셔서 같이 드시기로 했다. 사실 윌과 나는 태어나서 처음 김밥을 마는 것이었다. 피터는 어디서 말아봤는지 아는 척을 하며 능숙하게 말았다. 마트에서 사온 사발면을 겻들여서 먹었다. 다들 잘 먹었다. 이모님도 건강한 맛이라며 좋아했다. 행복한 밤이었다.

그러다 둥둥 누가 왔다. 윌의 또 다른 친척부부였다. 와서 김밥을 같이 먹었다. 그러다 여편님이 계속 기침을 하자 상담을 해준다고 했다. 이 분도 의사라고 한다. 기침을 보더니 처방전을 준다. 뭐냐고 물으니 항생제였다. 쿠스코 약국에서 처방 받은 게 있다고 하니, 그걸 먹을 거면 하루에 두 알씩 꾸준히 먹으라고 했다. 중간에 멈추면 괜히 내성이 생긴단다. 피터는 대충 흘려들으라고 한다. 이 나라 의사들의 항생제 남용은 엄청나다고 한다. 그러다 드루스가 왔다. 아예 손전등을 갖고 제대로 진찰해주기로 한다.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으니 관리 잘하고 약 먹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김밥을 먹는다. 흥분해서 거의 김밥을 마시려한다. 체할까봐 걱정했는데 별 탈이없다. 내일 새벽에 수크레로 돌아갈거라고 했다.


다들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근처에 있는 보노보노를 불러서 김밥을 건네줬다. 그 사이 숙소를 또 옮겨서 주인들과 잘 나눠먹었다고 한다. 그러고나서 개를 산책시켰다. 윌네 집 부엌엔 작은 개가 산다. 처음엔 있는 줄도 몰랐다.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단다. 사실 한쪽 눈을 잃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개다. 가볍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최후의 만찬이 차려졌다. 전날 사온 과일로 아침 상은 더 풍성했다. 공기방울에서 봤을 때 다음 예약이 있어서 겸사겸사 보노보노와 큰 집을 하나 빌려서 며칠 더 있기로 했다. 그 사이 윌과 피터는 우리 마음 껏 머물라고 추가 예약을 못 받게 해놨단다. 시간나면 집으로 놀러오기로 하고, 짐을 챙겨나왔다. 길 건너에서 보노보노와 접선했다. 대로 건너편 집 창문에서 아직도 손을 흔들고 있다.


숙박2_Barranco 아파트_더블룸_2

보노보노가 바랑코 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하나 빌렸다. 바랑코는 리마에서 인디, 히피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동네로 유명하다. 산책해보니 아기자기한 공원과 산책로 가게들이 많았고, 바다까지 길이 이어져있었다.


워크샵_0611_0612

풍성한 식재료로 23일간 펜션에 워크샵(팀장, 사장 없이 팀원끼리만) 온 것처럼 지냈다. 외출이라곤 장보기와 산책이 전부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먼저 식단을 짰다. 오후에 배고픈 이들은 라면을 먹고 저녁엔 소고기 된장찌개와 두부구이, 페루 와인을 마시고 편히잤다. 다음날 아침, 보노보노가 남은 된장국에 죽을 끓였다. 커피와 달달이로 마무리했다. 점심은 볼리비아에서 공수해 온 퀴노아면으로 고추장 비빔면을 만들었다. 남은 양념에 깻잎을 버무려 반찬 삼았다. 저녁 만찬은 제육볶음과 닭똥집볶음, 여기에 어울리는 또르띠아와 상추쌈이었다. 다들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많이 먹었다.

다음날 아침 물이 안나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주인에게 연락해봐도 기다리란 얘기 뿐이다. 보노보노는 씻지도 못하고 출발했다. 우린 오후 버스라 기다렸다. 12시에 물이 나와서 설거지를 하고 씻고 나왔다. 집 근처에서 중국인이 창안했다는 전설적인 페루식 샌드위치를 먹었다. 듬삭하니 좋았다. 마트에 버스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사러갔다가 고구마깡을 득템했다. 감자깡만 갖고 있던 보노보노에게 자랑했다.


장거리 버스_Lima_Tumbes_Excluciva_0613_0614_24시간

리마에서 바로 에콰도르로 넘어가기로했다. 에콰도르 남부 대도시 과야킬로 가는 버스는 Cruz Del Sur였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리마에서 국경까지 가는덴 절반도 안되는 가격이었고, 버스도 더 좋아보였다. 선택한 버스 회사는 Excluciva, 키토에서 리마로 올 때 내 배낭을 두고왔던 회사가 Civa. ExclucivaCiva에서 운영하는 고급 버스라인이다. 180도 의자라는 말에 믿어보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Excluciva 터미널은 Cruz Del Sur 터미널 옆이었다. 터미널도 깔끔하고, 위에 카페테리아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 버스를 탔다. 자리는 이층, 의자가 진짜 넓었고, 뒤로 시원하게 젖혀졌다. 바닥도 마루 바닥처럼 되어있고, 화장실도 잘 돌아갔다. 버스는 24시간 정도 걸렸다. 문제는 식사였다. 간식거리도 안될 도시락을 줬다. 아침은 더 심란했다. 조각토스트 3개가 전부였다. 식량을 더 두둑히 챙겼어야했다. 다른 승객들도 도착 직전에 처음 들린 휴게소에서 음식을 사먹으면서 밥이 적었다고 불만이었다.


긴긴 시간을 좌석 앞에 부착된 스크린 영화로 떼웠다. 라라랜드는 보다가 치워버렸고, 한국에서도 개봉한 패신져스(Pasajeros), 개들이 도둑잡는 러시아 영화를 엄청 재밌게 봤다. 에콰도르까지 이어지는 로드무비의 시작이었다. 종종 와아피이도 할 수 있었다. 여편님은 앞자리에 네이마르 닮은 아이와 Puro Puro chantaje(샤키라)shaky shaky(대디 양키)를 부르는 아이와 놀았다. 툼베스에서 내려 에콰도르로 가는 CIFA버스 터미널로 갔다. 과야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국경까지 갔다. 국경통과는 쉬웠다. 에콰도르는 따로 서류도 안써도 되니 편했다.

이날의 버스 여행은 또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 리마는 남위 12, 과야킬은 남위 2도다. 버스로 하루 만에 위도 10도를 올라간 것이다. 창밖으론 도시에서 사막, 해변, 열대의 풍경이 순서대로 펼쳐졌다. 지구의 1/18이 가지는 다양성을 하루만에 체험했다.



안데스 마감

안데스 고산 지대인 볼리비아와 페루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다. 볼리비아 얘기는 저번에 했고, 페루는 사실 관광객도 많고 호객하는 사람들, 기념품점, 투어회사 투성이라 좀 정신이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쿠스코 주변의 마을들을 둘러보고 싶다. 꾸이마을, 윌의 고향 등등 말이다. 객관적으로 페루는 관광 천국이긴하다. 빙하부터 사막, 해변, 아마존까지 없는 게 없다. 원주민, 잉카 문명의 정체성을 나라 자체가 갖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토착민, 메스티소 비율은 페루보다 에콰도르, 볼리비아가 더 높다.) 다양한 식문화도 많이 즐기진 못했다. 리마에 감자 박물관있는 걸 이제 알았다.


참고: 요리인류 도시의 맛: 리마편, EBS 세계견문록 페루 맛기행 등 참고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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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숙소를 빨리 바꾸고 싶은 마음에 먼저 마츄피츄(1박 혹은 2)를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데 지미 아저씨의 급보,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농민들의 시위로 마츄피츄로 가는 길이 이틀 간 막힐 거라고 했다. 가려면 새벽 1시에 일어나서 밤에 가야한다고 했다. 마침 보노보노가 비니쿤카를 간다고 해서 당일치기로 함께 다녀왔다. 그리고 나서 보노보노의 추천대로 23일로 마츄피츄를 다녀왔다.


무지개 산, 비니쿤카(Vinicunca)_0531

각종 금속 덕분에 산 위에서 보이는 풍경이 무지개 색이라 무지개 산(la montaña de siete colores)으로 유명하다. 발견된지 얼마 안됐지만 (5년 전에 쿠스코 왔을 땐 이런 거 없었다.) 쿠스코 주변의 수백가지 투어 중에서도 인기가 많다. 쿠스코 시내에서 보노보노가 알아봤다는 투어 사무실에서 예약을 했다. 별다른 주의 사항은 없고, 옷만 따뜻하게 입고 오란다. (물론 들어가자마자 가격 다 듣고 왔다고 깎기부터했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했다. 당일치기라 새벽에 출발한다. 가이드를 따라 버스로 갔다. 중형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다들 또 잤다. 어느새 6, 해가 밝아오기 시작하고 바깥 풍경이 펼쳐진다. 눈 덮인 계곡계곡을 스물스물 따라간다. 버스 한쪽엔 아주 어린(20대 초반) 한국 아이들이 조잘거리고 있다. 7시 쯤 산 아래 마을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는다. 빵과 잼을 두둑하게 먹었다. 한국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막 페루에 와서 바로 여길로 온 모양이다. 고산병 이런거 잘 모르는 눈치다. 한 명이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리마에서 바로 쿠스코로 왔고, 바로 이 투어를 한단다. 고도가 0m-3,400m 그리고 비니쿤카 산은 사천 몇백 미터에서 시작해 5,200m까지 올라간다. (사실 이정도면 별다른 준비없이 가볍게 하는 등산은 아니다.) 고산병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한 거라고 알려줬다. (그래도 젊은게 좋다. 저런 일정에 우리 같았으면 이미 초죽음 상태가 됐을 것이다.)

아침을 다 먹고 가이드가 주의 사항과 일정을 알려줬다. 가이드는 총 3명이다. 한 명이 총괄하고, 나머지는 중간 중간 일행들을 관리했다. 뭐 원래는 어디까지만 올라가는데 체력에 자신있는 사람은 좀 더 올라가자, 전망이 좋다. 그렇단다. 우린 무리하지 않는게 목표다. 다시 버스를 타고 산 입구로 이동한다.


산 입구부터 온통 눈밭이다. 껴입은 덕분에 춥진 않다. 말과 마부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린 내리자마자 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수십 명의 일행 중에 시작부터 말을 타겠다는 사람은 우리와 보노보노뿐이다. 수크레에서 쉐프님네는 비니쿤카가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올라가는 길에 경치도 좋고, 중간에 힘들어서 말 타느니 시작부터 편히 가라고 했다. 원래 좋은 산길은 말 타고 보면 더 아름답다. 거기다 왕복 말 타는 값이 25천원이다. 말은 싸면 무조건 타고 봐야 한다. (몽골 초원에서 배웠다. 사실 말은 낭만적 여행자에게도 적합한 교통수단이다. 자전거나 자동차처럼 빠르게 지나치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 않게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갈 수 있다. By 실뱅 테송)

말은 타는 건 들은 것 보단 10솔 정도 비쌌다. 중간에 가이드들이 개입하는 걸 보니 투어사에서 좀 떼먹는 눈치다. 나는 내 말을 직접 고르고 싶은데 가이드가 말과 마부를 배정한다.

내 말은 늙고 뚱뚱하다. 마부도 별로 말이 없다. 여편님은 만족스럽다. 말도 괜찮고, 마부도 말 많고 싹싹하다. 오고가며 많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여기 말들은 다 마부 말이 아니고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 자기 말은 집에 있다. 평범한 시골 청년 같았지만 리마에서 파티쉐(디저트 빵) 공부를 하고 도시가 싫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돈을 모아서 자기 빵집을 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보노보노의 친구, 너부리의 마부는 아줌마다. 안데스 산골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서 그런지 마부도 남녀 구분이 없다. 원주민 의상을 입고 매력 넘치게 말을 끈다. 여기저기 인사를 다 하고 다녀서 가는 길에 죽을 똥 살 똥 힘들어 했다. 그러면서도 천사미소를 잃지 않는다.


다시 산길로 돌아와서, 눈밭 사이를 소복소복 말을 타고 걷는다. 온통 눈으로 덮인 계곡길을 말타고 걷다니, 황홀한 일이다. 좌우로 라마와 알파카, 양들이 풀을 뜯고 지나간다. 가파른 길은 내려서 걷고 말을 다시 탄다. 말 타기 편하게 곳곳에 바위도 비치되어있다. 중간중간 쉬면서 힘들이지 않고(말이 힘듦 ㅠ) 산을 올라갔다. 지쳐가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막판 언덕은 우리도 걸어가야 한다. 올라가니 드디어 무지개가 보인다. 흰 눈까지 더 알록달록하다. 저 위에 고지까지 올라가본다. 거기선 무지개 빛 언덕은 물론 주변 산세까지 쭉 둘러볼 수 있다.

풍경을 만끽하고 내려간다. 말이 쉬는 곳까지 가기에 앞서 간식을 먹는다. 보노보노가 계란을 삶아왔다. 감자칩과 천상의 궁합을 이룬다. 말들도 우리가 다녀오는 동안 잘 쉬고, 잘 먹었다. 마부가 뭘 들고 오나 했더니 다 말밥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또 달랐다. 그새 눈이 녹아서 초록빛 계곡이다. 풀과 물 웅덩이, 먹는 알파카들, 평화롭다. 올라갈 땐 네팔 히말라야 같더니 내려올 땐 몽골 초원같다. 어떤 서양 친구는 내려오다 팔이 빠졌다. 여편님 말론, 이 친구가 너부리의 천사마부한테 ‘너희들이 이렇게 말 끌고 다녀서 산길이 훼손됐다’고 했단다. 니가 비행기 타고 여기 오는 건 그럼 환경보호냐. 귀신같이 벌을 받은 것이다. 산길을 내려와 말에서 내린다. 여편님은 소박하게나마 친해진 마부에게 팁을 줬다. 남은 일행들이 내려올 때를 기다렸다.


모두 다 내려온 뒤 다시 아침 먹은 곳으로 돌아갔다. 점심 시간이다. 푸짐한 뷔페식 점심이 차려진다. 고긴 좀 적었지만 카레와 야채를 듬뿍 먹을 수 있었다. 눈 녹은 마을도 아름답다. 차를 마시며 여운을 즐긴다. 돌아가는 길이 멀었다. 쿠스코 근처는 차가 막힌다. 저녁때가 한참 지나서 도착했다. 개인적으론 마츄피츄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마츄피츄(Machu Micchu)_0601_0603

쿠스코에서 마츄피츄를 가는 방법은 수십가지다. 투어프로그램도 엄청 많다. 단순히 가이드를 포함한 12일짜리부터 각종 액티비티를 가미한 정글투어도 있다. 여행자의 로망인 잉카트레일은 성수기엔 꿈도 못꾼다. 우린 보노보노의 가르침에 따라 투어회사에서 쿠스코-히드로 일렉트리카(Hidro Electrica) 구간 왕복 버스 티켓만 끊고, 마츄피츄 아랫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에서 넉넉하게 2박을 하기로 했다.


전날 비니쿤카를 다녀와서 몸은 좀 피곤했다. 마츄피츄를 오르기 전 준비운동으로 생각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썼던 스틱도 오랜만에 꺼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짐을 맡기고, 7시 지미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간다. 맛난 빵과 커피를 파는 빵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라기보단 여행객들만 타는 미니벤 합승 택시다. 차는 좋다. 음악도 빵빵하게 나온다. 우리 차엔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이다. 볼리비아, 페루엔 왜 이렇게 프랑스 사람들이 많은 걸까. 쿠스코를 벗어나 두 시간쯤 달려서 쉰다. 오얀타이땀보 근처 휴게소다. 배고프지도 않은데 과자나 사서 먹었다. 한쪽 구석엔 다양한 옥수수를 말리고 있다.

휴게소를 들른덴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죽음의 내리막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S자의 내리막을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간다. 잉카정글투어를 하면 이걸 자전거 타고 시원하게 내려간다. 빈 속에 우리는 어지럽다. 겨우겨우 내리막을 다 내려온다. 이젠 비포장도로로 진입한다. 어마어마한 절벽길을 잘도 간다. 점심 시간이다. 버스엔 점심, 호텔까지 패키지로 구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도 대충 끼어서 먹는다. 메뉴에 선택권은 없다. 닭이다. 후딱 점심을 먹고 히드로 일렉트리카로 이동한다.

히드로 일렉트리카는 수력발전소, 여기서 도로가 끊긴다. 기찻길만 연결되어 있다. 뚜벅이들은 철로를 따라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걸어간다. 해발 천 몇백미터의 정글지대다. 별로 덥진 않다. 끝도없는 서양애들이 우리를 지나쳐간다. 이렇게 더운데 두꺼운 옷을 너무 챙겨왔나, 배낭이 무겁다. 내 작은 배낭과 여편님의 큰 배낭을 지고 왔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정글길이라 재밌긴하다. 아보카도가 나무에 주렁주렁 열리는 걸 이날 알았다. 두 시간 반 정도 걸어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

마츄피츄 아래 계곡마을이다. 마을이라기엔 죄다 마츄피츄 가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 호텔로 먹고 사는 곳이다. 이름대로 따뜻한 온천도 있다. 마을 자체도 아기자기하고 편안하다. (날씨도 촉촉하니 좋다.)


숙박_Hostal Bromelias_더블룸_2

숙소도 보노보노가 알려준 곳으로 바로 갔다. 방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다. 인터넷도 빨랐다. 쿠스코 숙소에서 못 즐긴 걸 여기와서 즐기게 될 줄 몰랐다.


관광객 천지니 식당도 많다. 아침은 보노보노가 추천해준 파리 빵집에서 먹었다. 이틀 모두 여유로운 아침 일정이라 고급지게 크로와상과 커피를 마셨다. 첫날 저녁엔 치파 거리에서 볶음면을 먹었는데 무려 샐러드바가 무료였다. 나름 시장도 있는데 대부분 점심 장사만 한다. 마츄피츄 다녀와서 허기짐에 페루의 대표음식 치차론을 먹었다. 통오겹살을 튀긴 것이다. 하나씩 시켜서 먹었는데 옆엔 가족들이 하나 시켜서 나눠 먹고 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를 다 먹고나니 온몽이 돼지기름으로 차올랐다. 한 번 여행에 치차론은 한 번으로 족했다. 덕분에 저녁은 간단히 샐러드와 맥주로 마무리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찾고 찾던 송어탕집을 찾았다. 치파 거리 건너편에 있는데 저녁엔 닫아서 지나쳤던 것이다. 아침 9시부터 장사한다고 해서 파리 빵집에서 빵을 먹고 대기하다가 열자마자 달려갔다. 진한 국물 한 사발에 칼칼한 고추를 넣었다. 고소함을 더할 뻥튀기까지 얹어서 밥을 마셨다. 반찬으로 나오는 쉐비체도 시콤 달큼하니 담백했다. 행복하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를 떠날 수 있었다.


온천(Baños Termales)

마츄피츄를 오르내리며 쌓인 땀과, 치차론으로 얼룩진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온천으로 갔다. 해는 지고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난 수영복을 챙겨왔는데 여편님 껀 온천 앞에서 빌려야했다. 쿠스코에서 짐을 챙길 때 보니 수영복 윗도리가 사라진 것이다. 두고두고 찾을 수 없었다. 온천엔 사람이 많았다. 비가 와서 밖은 추운데 물은 따끈했다. 하지만 밖은 너무 추웠다. 거기다 마츄피츄는 너무 피곤한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귀가했다.



마츄피츄 피카츄

(내 표현이 아니다. 여편님의 드립이다.) 23일 일정이라 아침을 즐기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마츄피츄는 99% 아침에 안개가 껴서 일찍 가봤자 보이는 게 별로없다.) 입장권은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있는 사무실에서 먼저 끊었다. (현장 구매가 안되는 걸 화장실 가려고 들어갔다가 알았다.) 느릿느릿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간만에 등산을 하려니 힘들었다. 스틱이라도 안 가져왔으면 중도포기했을 정도다. 1시간 정도 걸려서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이 어마어마했다. 다들 셔틀버스타고 올라온 것 같다. 스틱을 맡기고 입장했다. 일방 통행만 가능하다. 무작정 들어가서 둘러보다가 위로 올라가려고 하니 내려가는 길이었다. 별 수 없이 30분만에 나와서 다시 들어갔다. 3번 입장할 수 있는데 바보같이 하나를 까먹었다. 체력도 많이 소진했다. 위쪽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올라갔다. 마츄피츄 마운틴으로 가는 길을 지나니 잉카 다리로 가는 길이 나온다. 여긴 무료라고 해서 들어가봤다. 이런 절벽에 길을 만든 잉카 사람들이 대단했다. 만들어진 길을 걷기도 후달거렸다.


돌아나와 본격적으로 마츄피츄를 둘러봤다. 위쪽 잔디밭에서 누워 바라보는 게 제맛이다. ‘우리 시인들은 마츄피츄를 보며 이걸 쌓느라 민중이 흘린 피를 생각했다.’ 사실 이 얘기를 듣고 나서 거대한 유적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곳곳에 라마들이 풀어져있다. 알파카는 털, 라마는 교통수단이었는데 요즘엔 안데스 산골에서도 말을 많이 쓰다보니 라마는 관상용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내려가서 계단식 밭과 신전 등을 둘러본다. 매우 배고프다. 돌 아래 요상한 설치류가 눈길을 끈다. 3번째 입장 카드는 제껴두고 내려가서 밥을 먹기로 한다.


귀환길_0603

돌아오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든든히 빵과 송어탕을 먹고 출발했다. 급할 게 없으니 올라올 때 보다 더 여유롭게 정글숲을 둘러본다. 2시에 돌아가는 걸로 예약했는데 1시 반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파리빵집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우겨넣는다. 2, 2시 반, 3시에 돌아가는 차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오오 우리가 타고왔던 차가 왔다. 기사가 반갑게 인사한다. 얼른 들어가서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 둘 사람이 찼다. 여러 대의 차량 탑승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우리 버스에 한 명 빠졌다며 찾는다. 이름을 들어보니 한국 사람같다. 저기 헤메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보고 내리라고 한다. 결국 한 자리가 비는데 우리를 내리고 3명 일행을 태우려고 한다. 뭐 이 사람들은 쿠스코에서 푸노까지 바로 갈 사람들이라 빨리 가야한단다. 어이가 없어서 못 내리겠다고 버텼다. 우리 때문에 출발을 안하니 결국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운전기사도 짐을 내려주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결국 뒤에 기다리는 좀 더 큰 벤을 탔다. 앞자리다. 출발한다. 이번 기사는 좀 더 트로트 같은 노래를 틀고 간다. 비가 와서 먼지는 없다. 중간에 쉬면서 과자와 바나나를 먹었다. 아까 헤메던 한국 사람과도 얘기를 나눈다. 다시 출발, 잠을 자다보니 쿠스코에 가까워간다. 옆에 여편님이 목이 칼칼하다고 한다. 감기 기운이다. 거의 10시가 다 되서 쿠스코에 도착했다. 힘들어하는 여편님을 먼저 새로운 숙소에 눕히고, 원래 숙소에 가서 짐을 찾아왔다. 이날 밤 여편님은 엄청난 오한과 두통에 시달렸다. 마치 수크레에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괜히 싸게 간다고 미니벤으로 다녀온 것이 무리였던 것 같다. 마츄피츄 올라가는 셔틀 버스도 안탔다. 거기다 고산은 뭐가 걸려도 한 번 걸리면 제대로 걸린다. 비니쿤카에서 편안하게 말 타고 다닌 것과, 마츄피츄를 가장 저렴하게 걸어다닌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편하게 느리게가 좋은 것 같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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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츄피츄로 시작해서 빙하부터 사막, 아마존까지 이것저것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페루지만, 컨디션 난조 등등으로 빨리 지나쳐 버렸다. 리마에서 손에 꼽을 만한 시간을 보냈으니 아쉬울 건 없다.


일정과 이동_20170529_20170614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밤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출국 도장을 찍고, 걸어서 국경을 넘고, 페루 입국 도장을 받고, 다시 버스를 타고 꾸스꼬로 간다. 다행히 우리가 탄 TITICACA버스는 푸노에서 사람을 내리고 또 쿠스코로 간다. (어떤 버스는 다이렉트라고 해놓고 푸노에서 갈아타게 한다고..) 쿠스코에서 처음 3일을 자면서, 무지개 산으로 불리는 ‘비니쿤카’를 하루 다녀왔고, 23일 일정으로 마츄피츄를 다녀와서 숙소를 바꿔 4박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리마로 가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리고 장장 24시간의 장거리 버스를 타고 에콰도르 국경이 있는 툼베스(Tumbes)로 가서 페루를 떠났다.


쿠스코(Cuzco)_0529_0601 & 0603_0607

잉카의 고도,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다른 남미 대도시들과 달리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대도시다. 들어서면 천해의 명당이다 싶을 정도로 주위에 산이 둘러져 있고, 비도 많이 온다. 해발 3,400m에 위치한 고산도시라 우리가 머문 겨울엔 아침 저녁으로 추웠다.

버스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새벽 5시라 어쩌나 했는데 대합실엔 사람이 가득했다. 거기다 호객꾼들은 바로 우리를 찾아왔다. 숙소를 여러개 보여줬다. 별로 성에 차지 않아(이때 괜찮은 곳을 바로 갔어야 했다.) 기다렸다가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갔다.


숙박_Hostal Mirador_더블룸_3

광장에 내렸는데 아직 허허벌판이다. 그 유명한 엘 퓨마를 가야하나 고민하는데 아저씨가 왔다. 지미라고 했다. 호스텔을 찾는다고 했더니 따라 오란다. 엘 퓨마 근처에 미라도르 어쩌구 하는 호스텔이다. 방을 보여준다. 허름한 숙소지만 나름 화장실도 딸려있고, 창문이 있는 방을 찜해뒀다. 다른 숙소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장장 두 시간, 언덕뿐인 쿠스코를 둘러봤지만 답이 없다. 좀 저렴한 숙소는 볕이 안들거나 주방이 없거나, 좀 깔끔한 곳은 엄청 비싸다. 유명한 호스텔들은 너무 시끄러워 보이고, 볼리비아에서부터 도미토리 생활은 청산했다.

결국 다시 호스텔로 돌아갔다. 소문대로 뜨거운 물은 나왔다 말았다 (대부분의 쿠스코 호스텔들이 그렇다고 들었다.) 주방은 아주 열악했다. (쿠스코에선 일부 슈퍼에 한국 라면을 팔아서 라면만 끓여먹을 수 있으면 됐다.) 안쪽엔 도미토리도 있는지 오래 머무는 애들도 보였다. 나름 이 가격대에 쿠스코 센트로에선 무난한 선택이었다. 우릴 낚아온 지미 아저씨는 (검색하다보니 많이 나오더라) 투어가 주업이라 끝임없이 마케팅을 했다. 마츄피츄 가는 교통편을 아저씨 통해서 구했다.


숙박_Diego`s House_더블룸_4

마츄피츄를 다녀와서 머물집을 미리 알아봤다. 예약닷컴에서 좀 괜찮아 보이는 집을 직접 방문했다. 산 페드로(San Pedro) 시장과 오리온 마트 사이 골목길이다. (오래 머물기엔 천해의 요새다. PC방 골목이기도 하다.) 아주 좋은 방은 100달러짜리 펜션이었고, 안쪽에 저렴한 방들이 있었다. 간단 깔끔한 주방도 있고, 방도 밝고 쾌적했다. 화장실도 나름 고급져서 예약을 했다. 마츄피츄 다녀올거라고 하니 몇 시에 올지도 대충 알고 있었다.

밤늦게 쿠스코로 돌아와서 아픈 여편님을 누이고, 얼른 전에 머물던 숙소로 가서 짐을 찾아왔다. (별에별 놈들이 다 모이는 쿠스코라 숙소에 오래 짐 맡기는 것도 찝찝했다.) 결혼기념일엔 좀 고급진 숙소에서 지내려고 했지만 이상한 곳이 아닌 걸로 만족해야 했다. 쿠스코 자체가 은근 숙박비가 비싸기도 하고, 나가면 빠리 뺨치는 카페들도 많아서 굳이 숙소에 집착할 필욘 없었다. 볼리비아에서 페루로 넘어오니 빠른 와이파이에 감동하기도 했다.


광장_Plaza de Armas

쿠스코 중심 광장인 아르마스 광장은 그 자체가 아름답다. 가운데 동상은 공사 중이었지만, 한쪽에 잉카와 유럽 스타일이 혼재된 성당이 도시를 그대로 보여준다.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엔 여행사와 기념품 가게,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쭉 둘러져있다. 광장 안엔 전세계에서 모여든 고급~배낭 여행자들과 호객꾼, 쉬러 나온 사람들로 늘 활기가 넘친다. 마츄피츄를 다녀오고 난 뒤, 한창 광장에서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6월 말 하지를 즈음해서 태양 신을 기리는 축제를 한다. 이 행사 때문인지 유아부터 청년들까지 각자 안무를 광장에서 연습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율동은 모두를 멈추게 했다. (대략 1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마츄피츄 가기 전에 농민들의 신공항 반대 시위가 있었다. 떠나는 날에는 쿠스코 무슨 기념일이라 군인들의 행진도 있었다.


시장_산 페드로(Mercado de San Pedro)

쿠스코 시내에 있는 시장이다. 처음 갔을 땐 농민파업으로 문을 닫았다. 시장 주변에 좌판을 깐 사람들도 시위하는 사람들 눈치를 봤다. (다들 같이 살자고 투쟁하는데 너만 치사하게 장사하냐 이런 분위기) 마츄피츄에 다녀와서 다시 갔다. 각종 먹거리와 주스부터 야채, 과일, 고기를 판다. 꾸이를 먹거나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주스도 파는데 좀 비싼감이 있다. 시장에 닭국이 유명하다고 해서 괜찮아 보이는 곳에서 먹어봤는데 그저 그랬다. 따로 유명한 곳이 있다고 했다. 망고도 제철이 아니라 좀 비쌌다. 그래도 망고는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시장 주변에도 노점상들이 쫙 깔린다. 아침엔 집 뒷 골목까지 여기저기서 야채를 가져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말엔 시장이 더 커진다고 한다.

한 가운데 시장 말고도 주변 전체가 시장 골목이다. 여편님은 실 가게에서 실을 사고, 티셔츠 가게에서 둘 다 하나씩 기념티도 샀다. 도매상이라 시내 기념품 가게보다 종류도 많고, 저렴했다.


마트_Orion & Gato`s

어느 나라를 가나 일단 둘러보는 건 시장과 마트다. 아무리 비슷한 생활양식이라도 마트에 가보면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시장이 차이가 더 적은 것 같다.) 페루 마트에 가장 큰 특징은 중국 식재료다. 페루는 오래전부터 화교가 많아서 우리나라 중국집처럼 페루식 중국집인 CHIFA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마트에서도 중국식 식재료가 많이 보이는데, 이름만 봐도 중국계로 보이는 오리온마트에서 더 두드러진다. 배추부터 각종 간장과 피쉬소스가 가지가지 많다. 쿠스코 인근에서 재배한 카카오와 커피도 많이 보인다.

시내에 있는 Gato`s란 슈퍼마켓에는 라면을 판다. 따로 한인마트가 아닌데도 풍부한 한국라면 코너가 있다. 덕분에 쿠스코에서 라면을 두 번, 짜파게티를 한 번 먹었다. 입맛이 변한 건지, 이쪽에서 생산된 라면이라 면이 다른 건지 라면은 꽤 느끼했다.


시내_Jardin Sagrado 주변

광장에서 아래쪽 큰길로 내려가면 또 번화가가 나온다. 관광지라기 보단 각종 사무실이 밀집한 쪽이다. 왼쪽에 큰 잔디밭이 있고 그 너머로 코리칸차(Coricancha)가 보인다. 태양의 신전이라고 불린단다. 여길 가보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못갔다. 여러 항공사 사무실이 있어서 쿠스코-리마 행 비행기를 직접 사무실에서 끊었다. 인터넷과 가격 차이가 별로 없었다.


쿠스코 전통 직물 센터(Centro de Textiles Tradicionales del Cusco)_http://www.textilescusco.org/

이 구역에서 가장 재밌는 곳이다. 여편님이 안데스의 직물을 짜보고 싶다고 하셔서 검색왕이 출동했다. 하루짜리 전통마을 방문투어부터 일주일 정도 마을에 짱박혀서 여인들에게 직접 전수받는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그리고 쿠스코 시내에서도 편하게 직물 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시내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처음 보이는 작은 가게를 지나니 좀 더 큰 매장이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 있는 브랜드 샵들과는 품격이 달랐다. 누가 무엇으로 짰는지 하나 하나에 소개가 되있는데 뭣도 모르는 내가봐도 물건에 흐르는 기운이 달랐다. 한 가운데서는 직접 작업도 진행하고 있었다. 가방부터 천까지 가격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들이었다. 매장 왼쪽에는 이 지역의 직물 문화를 상세히 소개한 박물관이 있었다. 알파카, 비쿠냐 등에서 실을 짜내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만드는 걸 모두 어릴 때부터 배웠다. (남녀에 구분도 없다.)

직물 교육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털에서 실을 짜내는 것부터(Spining), 천짜기(Weaving), 옷짜기(kniting) 등 몇 가지 코스가 있었다. 수업은 하루 6시간씩 3일에 걸쳐 진행한다. 여편님은 옷짜기를 배우고 싶었으나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고 해서 포기했다. 대신 시장 근처에서 실을 사서 연습, 간단히 귀노의 목도리를 짜는 걸로 만족했다. 가방도 여행 중에 막 들고 다니기엔 너무 고급이라 참으셨다.


골목_12각돌

골목을 지나다 12각돌을 봤다. 잉카 아제가 지키고 있다. 여편님은 특히 이 돌을 좋아하셨다. 이 골목 말고도 돌담길과 돌 바닥, 작은 광장들 모두 아름답다.


전망_Iglesia de San Cristobal

쿠스코를 떠나기에 앞서 뒷산에 올라가 전반을 조망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는 여편님의 의견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다보니 작은 박물관 하나가 있다. 쉴겸 들어갔다. 각종 식물 박물관(Mueso de Plantas Sagradas)를 둘러봤다. 약초 냄새가 너무 심해 오래는 못있었다. 원래는 언덕 끝가지 올라가려 했으나 체력 저하와 고산병 우려로 성당까지만 올라갔다. 거기서 보는 전망도 좋았다. 언덕까지 찻길이 뚫린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존_Xapiri_https://xapiri.com/

지나가던 박물관 얘기를 하다가 생각났다. 마츄피츄를 다녀오고 여편님이 또 한 번 고열을 동반한 아픔에 시달리다보니 아마존을 갈 생각이 사라졌다. 애매하게 가서 투어만 하고 돌아오는 건 몸만 고생할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길가에서 Xapiri란 곳을 발견했다. 페루 아마존 유역에 사는 부족들이 만든 공예품과 그들의 사진들을 전시한 매장이다. 아마존의 향기를 멀게나마 느꼈다.



보노보노와 함께하는 쿠스코 맛집 탐방

수크레 파차마마에서 함께 지냈던 보노보노가 먼저 쿠스코에 와있었다. 만나서 마츄피츄 다녀온 얘기도 듣고, 비니쿤카도 함께 다녀왔다. 거기다 치밀한 사전조사와 답사로 맛있는 걸 많이 먹으러 다녔다. 떠나고 나서 우리끼리 간 식당들도 대부분 보노보노와 쉐프님네가 추천해준 곳들이었다. 워낙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곳이다보니 페루 식당보다 다른 나라 식당이 더 많고, 저렴한 물가 덕에 가성비도 현지나 한국에서 먹는 거 보다 나은 곳들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남미 최고의 미식국답게 페루 사람들이 요리를 잘하기도 한다.)


스테이크_Fuego, Burgers and Barbecue Restaurant_0529

첫날 저녁, 숙소에서 실컷 쉬고 보노보노를 KFC 앞에서 만났다.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리의 기력 보충을 위해 FUEGO라는 스테이크 집을 가기로 했다. 아주 유명한 곳으로 들었다.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이 유명해서 시켰다. 생맥주는 지원되지 않아 쿠스코 맥주를 겻들였다.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뜯으니 든든했다. 나중에 다른 식당들을 먹고보니 비싼 가격을 생각하면 그리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부족한 맥주를 채우러 어딜갈까 고민하다가 보노보노가 머무는 호스텔로 가기로 했다. 마츄피츄 다녀와서 숙소를 옮겼다고 했다. 숙소 이름은 ECOPACKERS. 5년 전에 홀로 머물렀던 곳이다. 나름 오래 머물렀던 숙소라 감회가 남달랐다. 익숙한 마당 의자, 조식 주는 식당까지 모두 기억났다. 또 한마리 감성돔이 되어 헤엄쳤다.


카페_La Valeriana

다음날 점심, 시장이 닫아서 카페로 갔다. 아니 광장 한 구석에 이 넓고, 고급스럽고, 케잌도 화려한데 스타벅스 보다 싸다. 간만에 고급스러운 조각케잌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생과일주스도 시키면 최신식 유리병에 담아준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쿠스코에 있는 동안 자주 찾았다.


안티쿠초(ANTICUCHOS)_CONDORITO`S_0530

케잌으로 간단히 점심을 떼운 건 곱창이 기다렸기 때문이다. 보노보노가 소곱창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기대에 들떠 따라갔다. 가는 길은 멀었다. 도심에서 한참을 벗어났다. 덜컥 문이 닫혀있었다. 아직 문을 안 알였다. 엄청난 허무감이 우리를 엄습했다. 마음을 추스리고 바로 옆 치파집으로 들어갔다. 오후라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시내도 아닌데 규모가 커서 좀 맛있을 것 같았다. 직원에게 물어물어 주방장까지 등장해 완탕면과 해물볶음밥, 탕수육을 시켰다. 기대기대, 해물볶음밥은 양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볶음밥이 찰졌다. 돼지 고기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진짜 탕수육이 나왔다. 고기 양이 적고, 소스가 좀 달았지만 감지덕지였다. 여기서 더 시키냐 마느냐를 망설이는데 보노보노가 나가서 희소식을 가져왔다. 곱창집이 연다는 것이다.

바로 자리를 옮겼다. 안티쿠초는 소심장을 뜻하는 페루의 대표적 요리다. 고기가 귀해서 온갖 내장까지 다 먹는건 남미와 한국의 공톰점이다. 꼬치세트를 시켰다. 소심장도 심장이지만 곱창이 백미였다. 기름지고 쫄깃한 것이 이렇게 큰 덩이로 먹기는 딱 좋았다. 곱창의 내음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좀 더 강한 술과 먹으면 궁합이 더 좋을 것 같다. 가게 분위기도 딱 곱창집 특유의 스댕 테이블과 침침한 조명이다.


일식_킨타로(Kintaro)

일식집이다. 사실 난 외국에서 한식당을 가라면 차라리 일식당을 간다. 대부분 일식당은 자국 관광객 뿐만 아니라 전세계 관광객이 타겟이라 경쟁력이 있다. 킨타로도 마찬가지였다. 쿠스코에 있는 동안 3번이나 갔다. 직원과도 친해졌다. (굳이 스페인어를 연습하려고 해도 자꾸 영어를 한다.) 한국에 친구가 있어서 갈거란다. 일본 식당답게 밑반찬부터 분위기도 모두 정갈하다.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온다.)

돈가츠나 닭고기 덮밥, 두부 샐러드, 닭 가라아게 등을 먹었다. 된장국도 주니 개운하다. 보노보노가 카레우동에 밥 말아먹는 걸 추천했는데 우리가 갈 때마다 카레우동은 안됐다. 따뜻한 보리차를 끊임없이 리필해주니 따뜻해진다. 쿠스코를 떠나는 날도 킨타로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갔다.


_Sabores_0605

페루에 오면 닭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볼리비아부터 해당되는 얘기다. 밖에서 먹으면 태반이 닭이다보니 만들어 먹을 땐 닭을 피한다. 쿠스코에 오자마자 닭을 계속 먹었다. 30일 치파에 가서 시킨 완탄면은 닭국물이고, 31일 비니쿤카 투어에서 주는 점심은 메인이 닭고기였다. 1일 마츄피츄 가는 길에 식당 메뉴델디아는 마늘소스 닭구이(Aji de gallina), 저녁 치파에서 먹은 볶음면도 닭고기, 4일 시장에서 닭 국밥(Sopa de pollo), 5일 킨타로에서 치킨 가라아게를 먹었다.

그리고 저녁 따근한 국물만 먹으면 몸이 다 나을 것 같다는 여편님의 소원으로 유명한 Sabores를 찾아갔다. (닭곰탕으로 유명한 곳인데 점심 때 마다 닫아서 물어보니 오후부터 장사를 한다고 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Caldo de GallinaSopa de Pollo 두 가지였다. 이 두 차이를 한참 고민했는데 여러 고찰 결과 달곰탕(전자)와 닭국(후자)의 차이인 것 같다. 국물 안에 고기 양과 그릇 크기가 다르다. 시장에서 파는 요리요리한 국물 맛과 달리 담백하고 깔끔했다. 여편님은 귀신같이 이 국물을 먹고 다음날 기력을 차렸다.


결혼기념_외식_Cuse Smokehouse_0606

작년 삿포로에서 김밥을 싸고 공원에 갔던 것을 시작으로 결혼기념일은 소풍을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몸도 안좋고, 숙소 주방도 그렇고, 도시락 까먹을 공원도 없어서 맛난 거나 먹기로 했다. 그래도 아침은 만들어 먹었다. 짜파게티다. 미리 준비한 콩깍지를 벗겨서 넣었더니 더 맛있었다.

시장을 구경하다 수건집에서 여편님은 불의의 습격을 당했지만, 커플티(같은 건 아님)를 장만했다. 거리의 수박과 추로스로 흥을 더했다. (1솔 짜리 추로스가 1유로짜리 추로스보다 훌륭하다.) 그리고 광장의 아기들과 언덕의 전망을 보고 훈제구이와 타코를 파는 집으로 갔다. 미국인이 하는 곳이다. 이른 시간이라 구석에 아늑한 자리를 차지했다. 타코와 퀘사디아가 다양한 소스와 잘 어우러졌다. 훈제립도 훌륭했다. 그리고 결국 또 닭을 시켰다. 바베큐 윙인데 양념치킨 맛이났다. 행복한 하루였다.



쿠스코 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Alejandro Velasco Astete)_0607

쿠스코-리마 구간은 버스로 22시간, 시간도 시간이지만 코스도 힘들기로 악명이 높다. (5년 전 리마에서 쉐비체를 먹고 쿠스코 가는 버스에서 지옥을 맛봤다. 구토, 두통 설사 등등 식중독인지 고산병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이런 공포 덕분에 여편님의 비행기 제안을 혼쾌히 수락했다. 쿠스코 시내 몇 개 항공사 중 Star Peru가 저렴해서 구매했다. 싼덴 다 싼 이유가 있었다.

쿠스코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공항은 꽤나 협소했다. 신공항 얘기가 아주 터무니 없는 것 아니었다.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로 갔다. 마시던 물을 버리려는데 검색대 직원이 그냥 오란다. 물이 통과되다니. 고산병의 힘인지 평화의 상징인진 모르겠다. 공항 안 대합실도 작았다. 탑승구 3,4개와 대합실, 매장 몇 개가 전부였다. 우리 비행기 알람을 기다린다. 답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1번 탑승구에 안내가 뜬다. (원래 5번인데) 갔더니 다른 항공사 직원이 있다. 스타페루 어디갔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또 다들 기다린다. 스타 페루 직원이 온다. 지금 바람이 많이 불어서 한 시간 뒤에 다시 안내한다고 한다. (밖은 멀쩡했다.) 그러다 20분 뒤 탑승하란다. 비행기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무난하게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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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을 이끌고 수크레를 떠났다. 밤버스를 타고 라파즈에 도착, 터미널에서 바로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코파카바나행 버스를 탔다. 망할 버스는 구리기도 엄청 구리면서 라파즈 외곽의 시장을 통과해 터미널을 거쳐갔다. 호수에 도착해 우리는 배를 타고, 버스는 고무 보트를 탄다. 이렇게 호수를 건너 4시간만에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코파카바나(Copacabana) & 이슬라 델 솔(Isla del Sol)_0524_0528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Titicaca) 주변에 있는 마을과 호수 안에 있는 섬이다. 호수 주변 관광지로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와 페루의 푸노가 유명하다. 호수 안에 섬이 여러 개 있는데 태양섬(Isla del Sol)이 크고 유명하다. 보통 섬에 당일치기로 갔다가 하루 안 자고 오는 것을 후회한다. 5년 전에 당일치기로 갔다가 아쉬워서 이번엔 꼭 하루를 머물고 오자고 했다. 여편님도 섬에 가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남미에 바다가 없는 나라가 둘 있는데 하나는 파라과이 그리고 하나는 여기 볼리비아. 파라과이가 이과수폭포를 브라질, 아르헨티나애 빼앗겼다는 이야길 듣고 참 짠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볼리비아는 태평양쪽에 땅이 있었는데 칠레한테 다 빼앗겼다고. 심지어 파라과이랑 전쟁해서 진 역사가 있다고 한다. 남미에서 제일 짠한 나라로 인정. 바다에 대한 꿈을 못버리고 아직 해군이 있으며 훈련을 여기 티티카카호수에서 한다고 한다. 여기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Mar para Bolivianos(볼리비아의 바다)' 찬란하게 빛나던 물비늘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By 여편님


숙박_Hostal Pizarro_더블룸_3

버스에서 내리니 좀 유명하다는 호스텔이 바로 보였다. 들어가보니 들은 가격과 다르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아 돌아섰다. 뷰가 좋아 쉐프님네가 묵었나는 숙소를 찾아갔다. 좁은 언덕을 올라간다. 마당에 라마도 있다. 300? 아침도 안준다. 예전에 묵었던 숙소는 호스텔 가격에 조식이 호텔이었다. 기억이 안난다. 그사이 가격을 재조정했을 것이다. 호수로 향하는 내리막 숙소를 둘러본다. 새로 생겨 내부도 깔끔한데 가격도 싸다. 피사로 호스텔에 묵기로 한다.

투숙객은 이틀 간 우리, 마지막 날엔 한 커플이 추가됐다. 인터넷이 볼리비아에서 가장 빨랐다. 뜨거운 물은 이틀은 성공, 마지막날엔 실패했다. 아침은 빵과 잼, 바나나(아저씨 맘대로 줬다 말았다), 인스턴트 커핀데 뜨거운 물과 수크레 시장에서 구입한 융필터로 원두 커피를 내려마셨다. 융필터가 있으니 어떤 환경에서도 뜨거운 물만 있으면 원두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었다. 아침이 늘 행복해졌다. 방과 로비에 티비도 있어서 많이 봤다. 수크레 행사에 참여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많이 봤다.


에보 Si o No

에보 모랄레스, 원주민이자 광산 노동자 출신으로 오랜 기간 볼리비아의 대통령을 맡고 있다. 볼리비아에 호감과 궁금증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마다 곳곳에 Evo Si 아니면 Evo No 라는 문구가 보였다. 또 한 번의 연임을 위한 헌법 개정을 두고 투표가 있었다. 투표 결과는 연임 반대였다.

우유니 투어 할 때가 한국 대통령 선거 기간이라 그 얘기를 했더니, 가이드 우고는 바로 좌파냐 우파냐부터 물었다. 그래서 다음날엔 에보 모랄레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너무 좋다고 했다.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 기간 동안 교통이 불편한 시골 마을에도 학교, 병원이 생겨서 삶이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단 한 명 뿐이지만 미디어에 비친 시각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그가 독재자인지 진정 안정과 발전을 위해 장기 집권을 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기회가 되면 책이나 읽어봐야 겠다.

참고_탐욕의 정치를 끝낸 리더십, 에보 모랄레스_스벤 하르텐 지음


둘러보기_Cerro Calvario & Santa Barbara

여편님이 컨디션이 안 좋은 관계로 쉬시고, 난 주변을 둘러봤다. 먼저 창밖으로 보이는 언덕을 올라갔다. 돼지가 지키는 골목길을 지나 바위길로 올라갔다. 나름 해발 사천미대에서 이뤄지는 등산이라 좀만 올라도 숨이 찼다.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는 호수와 마을의 풍경이 좋았다. 겨우 언덕을 넘어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반대편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편한 계단길이 있었다. 내려가다보니 또 반대편 언덕과 연결됐다. 추모의 성격이 강한 언덕이었다. 멀리 하늘을 바라보는 두 여인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언덕 사이로 내려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한국 청년들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고 있다. 올라가면 언덕이 두 개라고 알려줬다. 마을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둘러보기_호수를 따라

다음날 오후엔 호수를 따라 페루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중간에 툭 튀어나온 코다리에서 호수 양쪽을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았다. 선착장을 지나면 포장마차가 늘어서있고, 호텔이 몇 개 있고, 나무와 자갈밭이 쭉 늘어서있다. 더 가본다. 이런 외곽에도 히피히피한 호스텔들이 더 있다. 한 시간을 걸었다. 점점 나무가 사라지고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평범한 호수다. 뒤돌아보는 마을의 풍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코다리는 멀었다. 가도가도 생각한 전망은 나오지 않는다. 중간에 만난 서양 친구는 여기로 가면 나오냐고 묻는다. 호수 빼고 뭐가 나오겠냐. 어마어마한 호수의 크기만 절감하고 돌아왔다.


둘러보기_선착장과 센트로

해질녘 여편님과 선착장을 돌아봤다. 노을이 지니 호수도 호수지만 마을쪽을 돌아봐도 너무 아름답다. 한 아줌마가 어린 알파카 두 마리를 산책시킨다. 너무 귀엽다. 이런 귀여운 생명체가 실존하다니, 당장 여편님은 달려들어 물고 빤다. 순간 사진 5, 아줌마의 관광상품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편님은 그깟 5볼이라며 실컷 사진을 찍는다.

숙소가 밀집한 골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시장과 광장이다. 숙소에 주방이 없으니 시장에선 소박하게 과일만 사먹는다. 우체국에 엽서를 보내려고 갔다. 국제엽서가 은근 비싸다. 페루로 미루기로 했다. 각종 기념품을 파는 매장들도 많다. 여편님은 볼리비아 할망들이 주로 둘러메는 보자기를 샀다. 감자도 담고, 애기도 담고 뭐든 담아 둘러메는 용도다.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나중에 보는 애기마다 둘러멜까 걱정이다. 난 소박하게 핸드폰 담을 주머니를 샀다. 원주민 문양의 원피스를 입은 마네킹들이 신박했다.



식사_El Fogon de la cabaña

첫날 저녁 식당을 찾다 들어갔다. 오두막 컨셉이라 안에 화덕도 있다. 난 투르차(Trucha, 송어) 정식, 여편님은 파스타를 먹었다. 어느 식당에나 송어를 판다. 호수에서 잡은 것들이다. 오랜만에 즐기는 생선이다. 파스타도 넉넉히 말아준다. 다음날 저녁 다시 먹거리가 고민이다. 선착장 주변 식당들은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정전이 됐다. 안그래도 우울한데 더 어둡다. 결국 화덕이 있는 집으로 다시 갔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한참을 기다려 식사를 했다. 화덕 연기를 오래 마신 덕분에 호전됐던 여편님의 목이 다시 안 좋아졌다. 하루를 더 쉬고 태양섬으로 가기로 했다.


식사_12번 포장마차

앞서 코파카바나를 다녀간 사람들이 12번 포장마차를 추천했다. 한국인들 사이에선 이미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하루면 족하다는 코파카바나에 4일을 머물렀으니 포차를 3번이나 갔다. 장사가 잘 되는 집이라 트루차가 크긴 하다. 디아블로 양념도 맛있어서 돼지고기에 추가해서 먹기도 했다. 한 구석엔 일 년전에 이곳을 다녀간 대학교 선배의 이름도 있다. 테이크 아웃도 되길래 맥주까지 사서 숙소에서 먹었다. 병을 꼭 반납해 달라고 해서 다음날 아침 (열지 않은) 포장마차 앞에 정갈하게 두고 왔다.

한 가지 의구심은 여기가 그렇게 맛집이면 왜 현지사람들은 다른 포차에도 골고루 갈까였다. 그래봤자 한 번 먹고 떠나는 여행객들이 열 개가 넘는 포차 중에 한 군데를 최고로 꼽는 건 섯부른 일이다. 의구심만 가지는 나와 달리, 수크레에서 만난 1층 총각은 모든 포차를 다 가봤다고 한다. 다른 포차가 훨씬 맛있었다고 싸단다. 추가로 사례를 검색해보니 대충 음료수 서비스도 다 주고 맛도 거기서 거기라는 의견이다. 어쨌든 그 후로도 가는 마을마다 트루차는 우리가 배제하는 메뉴가 됐다. 십 년 먹을 송어를 이때 다 먹었다.



태양의 섬(Isla del Sol)_0527_0528

드디어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짐은 맡겨도 되지만 그냥 다 들고 갔다. 카페에 앉아서 섬으로 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마어마했다. 코파카바나는 생략하고 바로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배낭들이 광장 버스에서 내려서 우르르 배로 몰려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침부터 배를 타는 줄이 길다. 두 척에 나눠서 탄다.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서 나란히 앉아서 갔다. 멕시코, 콜롬비아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해줬다. 시간이 금방 갔다. 우린 태양 섬에서 내리고, 그 분은 달섬(Isla de luna)까지 간다고 했다.

배에서 내려서 입도료부터 내고, 삐끼를 따라 올라갔다. 짐을 다 지고 계단을 올라가려니 죽을 맛이다. 삐끼가 보여준 집은 무난했다. 호텔 단지 초입이라 우리끼리 안쪽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숙박_Las Islas_더블룸_1

나귀 똥과 거친 바닥을 올라갔다. 꾸역꾸역 올라가니 숙소가 몰려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싸다고 했는데 우린 이 정도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먼저 보이는 라스 이슬라스 호텔에 들어갔다. 공사 중이긴해도 깔끔한 식당도 끼고 있고, 방도 깔끔, 창밖으로 호수도 보이고, 마당에선 호수와 섬이 잘 어우러져 보였다. 그깟 와이파이는 안되도 하루고 가격도 무난해서 여기서 자기로 했다. (예상에 없던 뜨거운 물도 잘 나와서 샤워도 잘했다.)

점심을 먹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고 왔더니 단체가 들어온다. 몇 몇 방은 예약이 있다길래 뭔소리지 했는데 나름 잘 나가는 곳이었다. 단체가 짐을 풀기 전에 마당에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끝없는 호수와 아래 보이는 마을, 줄줄이 그어진 밭과 그 사이로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그걸 보는 개까지, 완벽한 풍경이다. 이런 풍경에서 커피가 빠질 수 없으니 또 융커피를 내리기로 한다. 식당에 가서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니 당연히 5볼이란다. 보온병 두 통을 내밀었더니 가득 채워주고선 10볼이란다. (관광지에서 괜한 공짜 친절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경제적으로 힘든 나라다. 받을 거 다 받는다고 해도 우리 돈으론 몇 백원, 몇 천원 밖에 안한다.) 융으로 내린 융가스 커피의 부드러움이 풍경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저녁과 아침 모두 숙소 식당에서 해결했다. 나가봤자 가격은 거기서 거기다. 해가 지니 숙소 식당은 롯지 분위기가 났다. 단체 손님들 덕분에 퀴노아 수프도 진하게 우러나왔고, 닭고기와 송어 모두 싱싱했다. 볼리비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해 와인도 시켰다. 조지아에서 시작해 지중해를 거쳐 칠레까지 와인을 퍼마시던 여정이 끝난 것이다. 볼리비아 와인도 나름 쏠솔했다. 저가만 먹었는데도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좀 비싼 것들 중에는 세계 와인대회에서 입상한 것들도 있단다. 아침도 간만에 든든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별 몇 개달린 숙소에서 머문 느낌이었다.


섬 둘러보기

숙소에 가방을 맡겨두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이름 이쁜 식당을 찾아갔더니 빈집이다. 대신 섬 반대편에 섬이 많은 호수 풍경을 봤다. 왠지 피자가 땡겨서 피자 파는 집으로 갔다. 일단 뷰가 좋은 곳으로 간다. 피자와 맥주를 시켰다. 섬이라 뭐든 손수 만든다. 육지에서 들어온 식재료는 당나귀들이 부지런히 나른다. 섬 곳곳에서 일하기 싫다고 징징 거리는 나귀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돌길에 박힌 똥은 덤이다.

행복하게 피자를 먹고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곳곳에 돼지와 라마가 풀을 뜯고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끝까지 올라갔다. 구조물 위에서 쉬다가 돌아왔다. 섬 반대편은 입도료를 따로 받는다고 한다. 남부와 북부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단다. 오후에 커피를 즐기고 나서는 집 아래 밭길을 걸었다. 아랫집 개군은 골목 소식이 궁금하다고 난리다. 이틀이고 삼일이고 죽치며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배가 고파 곧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은 한 시간 뒤에나 나온다고 했다. 웨하스를 사와서 입에 물고 누워서 버텼다.



다음날, 아침을 여유있게 먹고 슬렁슬렁 내려갔다. 올라올 땐 짐 때문에 몰랐는데 내려가는 길도 좋다. 한 시간 정도 배를 기다린다. 육지로 돌아왔다. 쿠스코로 가는 밤버스를 예매하고 기다렸다. 또 포차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 하나에 들어가서 느릿느릿한 와이파이를 붙잡으며 시간을 떼웠다. 한 시간 정도 여편님과 말다툼을 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건강관리를 못해서 아쉬웠던 볼리비아였다. 융가스 커피가 자라는 융가스(Los Yungas) 지역을 둘러보고 싶다또 라파즈에 Red Monkey라는 식당을 가보고 싶었다. 수크레에서 볼리비아 여자의 테드 강연을 하나 들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온갖 패스트푸드로 건강이 나빠졌다. 다시 볼리비아로 돌아와 건강한 식생활로 몸을 회복하고, 라파즈에서 야채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연 중 인상 깊은 대목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볼리비아는 다른 선진국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곧바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다.’


참고_Movimiento hacia una cocina conciente: Rebeca Santa Cruz at TEDxViaLibertad

https://www.youtube.com/watch?v=ywn9Hn_kWPI

https://www.facebook.com/redmonkeycocinaconsciente/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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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크레에서 2, 처음 한 주간 행복한 시간이 끝나고 고생길이 시작됐다.


스페인어 개인 과외_0515_0519

수크레에서 넉넉한 기간을 머물면서 스페인어도 공부하기로 했다. 볼리비아 물가가 저렴한 만큼 1:1 수업도 시간당 7달러 정도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볼리비아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말이 빠르지 않고, (페루와 마찬가지로 한 두 세대 전까지 혹은 지금까지도 케츄아어를 모어로 배우고나서 스페인어를 배워서 그런 것 같다.) 발음도 비교적 정확해 학습 여건도 나쁘지 않다. 또한 수크레엔 사법기관들과 대학교가 많아 과외가 가능한 선생님도 많은 편이다.


도착 후 며칠 뒤, 유명 학원 몇 개를 돌아봤다. Me gusta, Sucre Spanish, Spanish Friend 세 개의 학원을 방문했다.

Me gusta: 검색하면 처음에 나온다. 시내 중심에 위치, 가격은 비싼데 시설도 별로고, 수업 시간 조절도 어렵다. 홈스테이 연결해준다. 체계적으로 보인다.

Sucre Spanish: 가격은 Me gusta보다 약간 싸고, 학원 내부가 탁 트여있어서 쾌적하다. 수업 시간 조절도 자유롭다. 홈스테이 연결해준다. 체계적으로 보인다.

Spanish Friend: 학원=호스텔이다. 기숙형 학원인 셈이다. 숙소는 깔끔한 편이다. 위 두 학원보다 저렴하고, 숙소와 결합할인도 가능하다. 시간 조절도 가능했다. 대신 홈스테이는 불가능하다. 살짝 체계성이 떨어져 보인다.


파차마마의 편안함에 빠져 기숙학원, 홈스테이는 자동 탈락했다. Sucre Spanish로 마음이 기울던 중, 콘도르 카페에 가니 과외 전단지가 보인다. 연락처로 연락이 안되서 카페 직원에게 물어보니 안쪽에도 지금 과외 중인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 이름은 수아레즈, 수업료는 시간당 35(5달러)라고 했다. 여편님과 따로따로 수업하고 싶다고 하니 다른 선생님도 연결해줄 수 있다고 했다. 어디서 학원 끼는 것 보다 직접 연결하는 게 싸다고 듣긴 했다. 어차피 이 선생님들도 학원에서도 수업할게 뻔하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3시간씩, 콘도르 카페에서 우선 일주일간 진행하기로 했다.


월요일, 여편님은 수아레즈와 수업하기로 했다. 내 선생님은 Erika, 수아레즈가 꼼꼼하고 딱딱한 스타일이라면 에리카는 부드럽고 편안한 스타일이었다. 간단히 시험을 보고 레벨을 가늠한다. 다행히 내 실력은 바로 나온다. 일주일간 회화와 부족한 간접법, 가정법 등을 연습하기로 한다. 수업 교재는 꽤나 충실하게 준비되어 있다. 문법, 읽기, 어휘 등을 연습할 자료를 준다. 중간중간 관련 주제나 한국과 볼리비아 문화에 대해 얘기도 나눈다. 첫날 3시간을 하고 나니 넋이 나갔다. 내일부터 2시간씩만 하기로 했다.

여편님은 자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에리카가 몸이 안 좋아서 수업을 못한다고 했다. 겸사겸사 이날은 내가 수아레즈랑 수업하기로 했다. 수요일 다시 에리카와 수업을 하는데 이번엔 내가 감기 기운이 있었다. 한 시간만 하고 수업을 마쳤다. 목요일은 도저히 수업에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금요일에 겨우 2시간 수업을 하고 짧은 스페인어 수강이 끝났다.


짧은 수업이었지만 꽤나 효과가 있었다. 사실 여행 전, 여행 중에 나름 스페인어를 공부했지만 스페인, 아르헨티나, 칠레에선 좌절감만 느꼈다. 관광지나 식당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될 뿐 일반 사람들과 대화는 힘들었다. 다들 말이 너무 빨랐다. 결정적으로 우루과이에서 호스텔 워크어웨이를 하다가 쫓겨난게 컸다. 다행히 칠레 산티아고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자기도 여기 사람들 말을 잘 못알아 듣는다고 해서 조금 위로가 됐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에리카와 여러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한 두시간 정도 여러 주제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니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우리 여편님은 다 두 시간의 수업 만으로도 자신감이 훨씬 상승했다. 이젠 나 없이도 먼저 말 거는데 거침이 없다.



이발의 나비효과_0516_0520

사막, 건조 기후를 여행할 때는 절대 이발을 하면 안된다. 모로코에서도 머리를 잘랐다가 서핑까지 하면서 감기에 걸렸다. 사막의 겨울, 낮엔 덥고 아침엔 춥다. 선선함은 아침에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낮엔 그냥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수크레 도착 후 며칠이 지나 머리를 잘랐다. 올해 1월 모로코에서 자르고 무려 4달 만에 자른 것이다. 미용실이 몰려있는 골목에서 대충 들어갔다. 적당히 잘라달라고 했는데 거침없이 밀어버렸다. 고도가 낮아도 수크레 역시 전형적인 사막 기후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해도 낮엔 햇살이 강하다. 답답했던 머리를 자르니 시원했다. 며칠이 지나고, 언제나처럼 이웃들과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보노보노가 떠나는 날이었다. 머리가 추워서 콧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냥 자라는 여편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잤다. 아침엔 또 안되는 와이파이를 부텨잡고 창가에 앉아 스페인어 영상을 보려고 애썼다. 감기 기운이 제대로 올라왔다. 앞서 말한대로 수업에 갔다가 조퇴했다.


숙소로 돌아왔다. 기운이 없어 총각과 여편님에게 샌드위치 배송을 부탁했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다. 여편님에게 방 열쇠를 받아둘걸. 겨우 샌드위치를 물어뜯고 방에 누웠다. 두통과 오한이 밀려왔다. 오후 내내 아픔에 몸을 떨었다. 저녁에 파스타를 좀 먹고 다시 방으로 왔다. 잠이 들었다가 배고픔에 깼다. 뭔갈 먹어야 했다. 잠긴 부엌문을 열 방법이 없을까? 다행히 방에 빵과 잼이 있다. 우적우적 빵을 두 개 먹어치웠다. 잠자던 여편님이 공포영화처럼 나를 본다. 다시 잠을 잔다.

목요일엔 하루 종일 쉬었다. 아침부터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다시 누워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렇게 진하게 아파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기로 한다. 아픔의 순기능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날 외출은 시장이 전부다. 시장에서 과일주스를 먹었다. 치리모야 주스 너무 맛있다. 저녁엔 야채 부자인 도지니와 함께 닭도리탕을 만들었다. 돼지감자가 주인공이다. 퍼잤다.


금요일, 상태가 매우 호전됐다. 목감기가 남았지만 기운은 있었다. 에리카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여편님과 태국식 점심도 먹었다. 또 시장에서 주스를 먹고 돌아왔다. 도지니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물도 없이 돌아다니더니 고산병에 걸린 것이다. 우리끼리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토요일 아침이 되니 완전히 나았다. 오전에 쉬고 점심은 숙소 바로 옆 식당에서 먹었다. 노랑파랑 풍선을 달아 생일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볼리비아 아이들은 엄청 귀엽다. 전통복장과 현대식 복장이 섞인 옷을 입고 엄마와 학교를 간다. 다들 볼이 빨개서 더 귀엽다.

며칠 간 나를 극진하게 간호하던 여편님이 감기에 걸렸다. 난 한번 앓고 말았지만 이때부터 그녀는 페루까지, 이 건조한 사막 기후를 벗어날때까지 완치가 되지않아 고생했다.



타라부코 시장(Mercado de Tarabuco)_0521

일요일, 건조한 수크레 생활의 활력소로 타라부코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수크레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타라부코 마을에 일요일마다 큰 장이 선다. 주변 마을에서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마틴 말로는 아침 8시 반에 광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거나 오전 중에 외곽 미니버스 터미널에 가면 된다고 했다. 다들 게으르던 시절이라 10시쯤 집을 나섰다. 외곽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다들 더위에 녹초가 됐다. 겨우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다음 버스는 오후에나 출발한단다. 포기하고 택시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감기에서 회복한 다음주 일요일, 다시 타라부코 시장을 가기로 했다. 이제 파차마마에 남은 건 우리와 도지니뿐이었다. 안전하게 광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관광버스 한 대는 이미 예약이 찼고, 우리는 추가로 온 미니버스를 타고 갔다. 타라부코에 회의적이던 도지니는 창가에 앉아 가장 신났다. 그전까진 밤버스만 타서 이런 풍경이 처음이라고 했다. 하늘도 맑고 경치도 좋았다.


운전기사가 초행길인지 타라부코를 지나쳤다. 놀란 승객들이 맵양으로 바른길로 인도했다. 식당에 내려주면서 알아서 관람 후 1시까지 돌아오라고 했다. 기사가 헤메서 30분 늦었다며 30분 더 달라는 쇼핑족도 있다. 확연히 시골마을이라 돼지와 애기들이 골목길을 귀엽게 한다. 광장에 가니 기념품이 한 가득이다. 맘에 확 와닿는 것들은 없다. (나중에보니 대부분 다른 관광지에도 다 파는 것들이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일반 시장이다. 별에별 물건을 다 판다. 이게 좀 더 재밌다. 외곽엔 각종 물건과 야채, 과일을 싣고 온 트럭들이 줄비하다. 도지니는 벌판을 더 돌아보겠다며 헤어졌다. 안쪽엔 작은 시장 건물이 있다. 식당이 있다. 갈비탕과 파스타 비스무리한 것을 먹었다. 갈비탕이 좀만 더 뜨거웠다면 일품이었을 것이다. 돌아다니면서 곱창 구이, 감자 고로케 등을 또 먹었다.

구경을 마치고 광장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외곽에 나와 맑은 공기를 마셨다. 수크레 골목길엔 차가 많다. 오르막에 오래된 차들이 많아서 매연이 심하다. 차 없는 광장과 맑은 하늘을 음미했다. 집합 장소로 돌아가 버스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은 힘들었다. 왠지모를 기름 냄새가 계속 나왔고, 차의 매연이 창 안으로 들어왔다. 감기 기운이 남아있던 여편님이 매우 힘들어했다.


수크레 탈출_0523

원래 월요일에 가려던 걸 하루 미뤘다. 여편님의 감기가 악화됐다. 화요일에 체크 아웃을 하고, 여편님은 숙소에서 쉬면서 내가 바깥일을 처리했다. 터미널에 가서 라파즈행 티켓을 끊고, 돈도 인출하고, 시장에서 치킨(점심)도 사고, 40cm짜리 샌드위치(저녁)를 사고, 마트에 가서 Cafe Colonia de Los Yungas도 사왔다. 집 옆 수공예품 시장을 구경하던 중 유기농 볼리비아 커피가 있길래 또 하나 사고 말았다. 커피 부자가 됐다.

터미널,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타려는데 아니란다. Trans Copacabana까진 똑같은데 거긴 m어쩌구 우린 다른 거란다. 잠시 뒤에 도착한 버스는 낡아 보인다. 어찌저찌 비지니스 좌석을 개조해서 의자는 넓고 푹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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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수크레에 다달랐다. 우유니-포토시-수크레로 향하는 풍경은 꽤나 쏠솔했다. 우유니-포토시 길에는 많은 라마와 알파카를 봤다. 포토시는 은광산 도시인 만큼 척박한 기분이 든다. (절대 우클렐레 잃어버려서 하는 얘기 아니다.) 점점 고도도 내려간다. 두 도시와 달리 수크레는 해발 2천미터 대다. 숨쉴만한 곳이다. 가까이 갈수록 초록이 묻어난다. 라마가 소로 변한다. 꼬불꼬불 길을 올라가다 버스가 힘에 부친다. 후진해서 돌아간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 시내를 관통한다. 눈치껏 내렸다.


수크레(Sucre)_ 0508_0523

볼리비아에도 큰 일 없이 편안하게 지내고, 스페인어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수크레(Sucre)는 볼리비아 장기 체류자의 늪이라고 한다. 수크레는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남미 대륙의 독립을 이끈 사람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인데, 프랑스 어에서 설탕을 의미하기도 한다.


숙박_Hostal Pachmama(호스텔 파차마마)_스위트 더블룸_15

하루 이틀 머물 것도 아니라서 미리 점찍어둔 숙소들을 돌아봤다. 가격이 저렴한 숙소들은 다 답답한 구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차마마로 향했다. (중남미 어느 여행지에 가도 파차마마란 이름의 숙소는 하나쯤 있다. 파차마마는 어머니 대지(Tieera Madre)를 뜻하는 케추아(Quechua)말이다. 이젠 모두 안데스, 어느 마을이든 뻑하면 언덕이다. 배낭 메고 숙소 찾기가 힘들다.) 머리 하얗고 동글동글한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준다. 방을 보여준다. 숙소를 들어선 순간 주저없이 여기다 싶었다. 공용 부엌이 맞은 편 별채에 있고, 본체는 복도형에 마당과 정원이 있다. 할망에게 윗층 방은 없냐고 물었다. 열쇠를 주며 올라가보란다. 할망에게 계단은 무리다. 3층 제일 구석방, 다른 방보다 훨씬 넓다. 여기로 정했다. 아침은 안주지만 주방도 잘 구비되어 있고, 시장도 가깝고, 방은 쾌적하고, 건물은 안락한 목제구성이라 생활형 장기 체류에 최적인 숙소다.

파차마마는 가족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맞이한 할망은 마스코트 역할이다. 할망의 며느리와 아들들이 실제 운영을 한다. 직원도 여럿 있는데 단연 돋보이는 게 마틴이다. 일층 방에서 자거나 어딘가에서 출퇴근을 한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주방 청소를 부지런히 한다. (점심엔 할망의 어마어마한 식사 준비를 돕는다. 볼리비아에선 점심 식사가 가장 푸짐하다고 한다. 점심엔 주방 사용 엄두도 못낸다. 매일 감자가 썰리고, 옥수수가 빻이고, 찜통이 불을 뿜는다.) 어설픈 스페인어로 뭘 좀 물어보는데 시원하게 영어로 답해준다. 저녁엔 수영장도 다닌다. 숨겨진 인재다.


생활기_이웃 소개

짐을 풀고 주방을 둘러보러 갔다. 한국 사람이다. 어린 커플인데 내일 떠난다고 했다. 또 한국 사람이 있다. 커플인데 일주일 정도 머물거라고 했다. 수크레에 있는 맛집, 마트를 친절히 알려준다. 남자분은 나중에 요리사(쉐프님)로 밝혀졌다. 우리 방 아래아래 101호에 산다.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또 한국 커플을 몇 번 마주쳤다. 다음날 보니 여기도 파차마마에 산다. 3층 반대편에 전망 좋은 303호에 산다. 보노보노한 커플이다. 며칠 뒤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는데 아마존을 해치고 온 것 같은 사람이 들어왔다. 한국 총각이다. 수크레 정착 후 일주일 뒤 도지니(모로코, 브라질 편에 등장)도 왔다. 도지니는 총각과 함께 1층 도미토리에 머물렀다. 그 외 아주 많은 주로 프랑스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캠핑카(내부 침대는 나무판자)를 끌고 온 사람들, 1층 도미에 넝마주이 입은 약쟁이, 켄터키에서 직물 구하러 왔다는 청년, 오토바이꾼 정도다.

301호에 우리, 303호에 보노보노, 101호에 쉐프님네, 1층 도미에 총각과 도지니가 살았다. 그러다 하나 둘 떠나고 우리도 떠났다.


생활기_된장과 버거

첫날 저녁은 기력 보충을 위해 외식을 했다. 시장쪽으로 가다보니 고기집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큰 맘 먹고 오는 집이었다. 푸짐한 고기가 두툼한 감자튀김과 겻들여져 나왔다. 긴 여정의 피로가 씻겼다. 다음날부터 이웃들과 본격적으로 친해졌다. 쉐프님이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않은 시점, 저녁에 된장찌개를 할 거라고 했다. 우린 넙죽 시장에서 고기를 사다 바쳤다. 된장찌개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넣고, 남은 삼겹살은 후라이팬 2개에 바싹 구웠다. 된장찌개가 너무 깊고 진했다. 다음날 다같이 주방에 몰려 남은 국물에 죽까지 우려 먹었다. 거기다 쉐프님이 오물렛을 했다. 원래 호텔 조식 담당으로 오래 일했다고 한다. 오물렛을 위해 별도의 후라이팬을 배낭에 챙기고 다닌다. 칼갈이도 갖고 있다. 보노보노는 칼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숙소 주방에서 팬과 칼은 중요한 변수다. 좋은 가르침을 얻었다.

바로 쉐프님은 남은 소고기와 야채로 햄버거 패티를 만든다고 했다. 여행 나오기 전에 고향집 냉동실에도 잔뜩 만들어 놓고 나왔단다. 설마했다. 시장 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니 정말 햄버거가 구워지고 있었다. 재빨리 사온 야채를 진상했다. 삼색 소스까지 겻들여 어마어마한 수제버거가 탄생했다. 인생버거를 여기서 먹었다. 햄버거 광고 사진을 보고 상상되는 그맛이 이 햄버거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시장에 가면 종류별로, 크기별로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아보카도도 큰 역할을 했다.)


생활기_짬뽕과 보쌈

다음날 대망의 짬뽕 데이가 밝았다. 보노보노가 슈퍼에서 사온 냉동해물을 본 쉐프님이 빰뽕을 해볼까했다. 모두 초롱초롱 눈이 반짝였다. 각자 더 필요한 재료를 보충해왔다. 주방 탁자 아래 커다란 냄비들을 꺼냈다. 짬뽕은 불맛이라고 했다. 하나 둘 야채가 볶아지고, 해물과 고기가 볶아졌다. 한국산 고춧가루와 수크레 시장의 고춧가루가 더해졌다. (수크레 시장의 고춧가루는 한국()에서 가져온 코춧가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남미 다른 나라에서도 볼리비아 고춧가루가 유명하다고 한다.) 따로 볶은 야채와 고기, 해물을 솥에 넣고 팔팔 끓인다. 지구 반대편에서 짬뽕을 먹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기가 막히게도 우유니에서 만났던 청년이 슈퍼에서 샀다며 소주까지 들고왔다.

이렇게 먹다보니, 순간순간 볼리비아 돼지가 참 맛있었다. 고기를 통으로 사와서 보쌈을 하기로 했다. 시장 정육 코너엔 대부분 소고기를 판다. 1~2개 가게만 돼지고기를 취급한다. 삼겹살 부위는 갈비와 통으로 Costilla로 분류한다. 넉넉하게 고기를 사왔다. 옆에서 된장국을 끓이던 쉐프님이 도와줬다. 고기가 삶아졌다. 아주 어릴 적에 먹었던 똥돼지의 향기가 묻어났다. 볼리비아를 돌아다니다보면 작은 돼지들을 풀어서 키우는 게 보인다. 방목이 맛의 비결인 것 같다. 여기에 된장국 연이어 비빔면까지 등장했다. 특히 비빔면엔 슈퍼에서 찾은 퀴노아 파스타를 활용했다. 메밀면처럼 고소함이 더했다. 환상의 하모니였다. 당연히 남은 짬뽕 국물도 다음날 죽이됐다.


주말, 쉐프님네가 떠난다고 했다. 떠나는 날엔 치킨 만한 것이 없다. 수크레 시장 한 가운데에는 또 맛있는 치킨집이 있다. 테이크아웃도 가능하고, 감자나 밥도 추가, 배제가 가능하다. 맛나게 잘 튀겨준다. 거기다 쉐프님이 양념치킨 소스를 만든다. 다들 다닥다닥 붙어서 얻어먹었다. 치킨이 아니라 양념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감자부터 과자까지 소스를 찍어 먹을 수 있는대로 다 빨아먹었다.

그 뒤로는 남은 사람끼리 돌아가며 밥을 해먹었다. 나름 부지런히 해먹었지만 그리 기억에 남는 저녁이 없다.



생활기_시장

하얀 건물들로 모인 중앙광장과 중심가도 인상적이지만, 수크레의 중심은 시장이다. 접근성이 좋은 시내 한가운데 시장이 있다. 외곽에도 농산물 시장이 있지만, 거리를 감수할만큼 가격차이는 크지 않다. 감자, 바나나는 별도 코너가 있을 정도로 많은 가게가 취급한다. 빵집도 여러개다. 2층에 올라가면 닭국부터 돈까스까지 즐길 수 있는 식당가가 있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사실 주변 식당과도 가격 차이가 큰 편은 아니라서 거의 이용을 안했다. 2층엔 또 주로 야채와 꽃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다. 야채 가게엔 아보카도가 종류별로 엄청 많다. 한 번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호박을 봤는데, 왜 호박마차란 얘기가 나왔는지 깨달았다. 정육 코너엔 닭이 엄청 많다. 닭 파는 곳이 반이다. 대충 장을 보고 나면 주스를 마시러 간다. 시장 한쪽에 주스집이 몰려있는데 5볼 내외에 다양한 맛의 과일 주스를 준다. 여기 사람들은 주로 과일 샐러드를 사먹는다. 신기한 것이 주스를 한 번 시키면 두 잔을 준다. 믹서기 단위가 그런 것이다. 한 잔 먹고 가버리면 바보 인증이다. 이놈의 주스 때문에 살 게 없어도 시장은 하루 한 번 가게된다. 시장 바깥에 있는 아이스크림집도 유명하다.


생활기_커피(Cafe Colonia de Los Yungas)와 마트

수크레 도착 다음날, 근처에 가서 커피를 사오려고 했다. 어제 분명 카페를 봤는데, 가도가도 카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와, 여편님이 다시 나갔다. 그녀는 날렵하게 커피를 구해왔다. 하지만 커피 가격이 놀랍다. 그 카페에서 파는 조식세트가 15볼인데 커피 따로는 10볼이란다. 볼리비아에서 커피는 대중적이지 않다. 대부분 여행객들 위주로 구매층이 형성되서 그런 것 같다.

이 난리를 본 이웃들이 마트만 파는 좋은 커피가 있단다. 시장이 여전히 활기있지만, 여기도 다 마트가 있다. SAS라는 슈퍼마켓이 영화관까지 있는 쇼핑몰 안에 있다. (수요일에 영화관이 1+1이라 보려고 했는데 끝내 못봤다.) 마트엔 인스턴트부터 갈아진 원두까지 다양한 커피가 있다. (물론 시장에도 몇몇 브랜드가 있다.) 바로 Cafe Colonia de Los Yungas, 라파즈 동북쪽 융가스 지역에서 재배한 커피다. 보통 대량 생산, 슈퍼 판매용 커피는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커피는 묘했다. 산미와 함께 강력한 기운이 난 신선하다고 말했다. 동남아 이후 오랜만에 커피 벨트로 돌아와서 나타난 현상인지도 모른다. 마침 숙소엔 모카포트까지 있어서 날마다 좋은 커피를 공급했다. 콜롬비아까지 올라왔지만, 슈퍼에서 파는 커피 중엔 여전히 이게 최고다.


시장에 없는 다른 식품들도 마트에서 산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다른 제품들도 질이 좋다. 케찹 매니아인 사람들에 따른면 케찹이 아주 맛있다고 했다. 제품 중에 볼리비아 국기와 함께 Hecho en Bolivia(=Made in Bolivia)인 것들은 실망시킨 적이 없다. 심지어 웨하스 같은 과자도 엄청 싸고 맛있다. 중심가에 또 마트가 하나 있는데 거긴 뜬금포로 한국산 인스턴트 칼국수 같은 걸 팔기도 한다.


생활기_외식

Condor Cafe

점심 먹으러 자주 갔다. 수크레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이다. 독일사람들이 여행사를 겸해 만든 카페라고 한다. 수익은 대부분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매출과 기부 내역도 붙어있다.) 볼리비아식 채식 요리를 판다. 서양 여행자들에겐 거의 성지급이라 수크레 도착하자마자 배낭 메고 여기부터 가는 애들도 많다. 식사 뿐만 아니라 수크레 생활 및 여행에 대한 여러 정보 교류가 가능한 곳이다. Papas Rellenas라는 감자 고로케가 대표 메뉴다. 세 네번은 족히 먹은 것 같다.


El Patio & Para ti & Cafè Capital

볼리비아에선 엠빠나다를 살테냐라고 부른다. El Patio라는 곳이 유명했다. 사온 걸 먹어봤는데 좀 많이 달았다. Para ti라는 초콜렛 체인점도 많다. 아이스초코를 아주 맛있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초콜렛도 사서 먹었다. Cafè Capital에는 40cm짜리 샌드위치를 판다. 여긴 정말 인기가 많다. 종종 야채요리가 땡길 땐 여기서 베지테리언 샌드위치를 사서 둘이 나눠 먹었다. 치즈와 계란이 두툼하게 들어가서 고기가 없어도 될 정도다. 사실 시장에서 파는 기본 빵도 맛있다. 시장에선 다양한 종류, 다양한 곡물이 들어간 빵을 골라살 수 있었다.


기타

광장에 가도 먹을 게 많다. Papas Rellenas도 광장에선 더 저렴하게, 고기나 계란을 넣고 판다. 태국식당, 중국식당도 있다. 볶음밥에 탕수육을 먹으러 상하이라는 중식당에 갔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조지와 마리아를 길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총각도 이 둘을 알고 있었다. 칼라마에서 같이 올라왔다고 한다. 토요일 저녁엔 이웃들과 다같이 전망대에 갔다. 일주일 내내 먹기만해서 다들 올라가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야경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뺨치게 아름다웠다. 야경 볼 수 있게 무료 개방해준 호텔에 감사를 표한다. 내려오는 길에 타코를 하나씩 사서 돌아왔다. 비싼데 부족했다. 보노보노는 감자튀김을 거의 거저주는 나라에서도 직접 감자를 튀기는 열정꾼이다. 남은 배를 감자로 두둑히 채웠다.



이웃들과 더불어 아래 사이트가 수크레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줬다.

수크레 라이프: http://www.sucrelife.com/



부록_아이폰6 플러스 수리기_UNLOCK CELL (주소: ESPAÑA 161, SUCRE, BOLIVIA)

칠레 발디비아에서 핸드폰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한번 바닥에 떨어뜨리고 나니 하얀 창이 지지직 나타났다. 처음엔 멋모르고 필름 떼고, 커버 버렸다. 좀 괜찮아지는가 싶었는데 산티아고에서 완전히 메롱이 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이폰 6플러스에서 종종 나타나는 커튼 현상이었다. 공식 수리점에선 큰 비용과 부품 교체를 요구하지만, 기계 내부에 접촉 불량이라 뚜껑 열어서 그 안에 커버를 또 열어서 얇은 종이를 넣는 방법이 있었다. 시내 잡화상가에 가니 아이폰 분해 키트를 팔았다. (중국제…)

여편님의 컨디션이 최상인 날, 드디어 고대고대 아이폰을 열었다. 분해 영상을 실시간 중계하며 보조했다. 하지만 내부 커버는 아무리 드라이버를 돌려도 열리지 않았다. 나사만 마모되어 갔다. 결국 커버를 꾹꾹 눌러주는 걸로 대체했다. 좀 되다가 다시 안됐다. 그러다 우유니 사막에 가니 잘 됐다. 고도가 높아지니 압력이 달라져 접촉 불량이 해결된 것이다. 수크레로 돌아오니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부터 여편님과 김치 파동으로 심하게 다투고, 고집불통 모드가 되어 내 스스로 아이폰을 열려고 했다. 보다 못한 여편님까지 합세하니 어찌어찌 세개가 열렸다. 벌어진 틈으로 종이를 밀어넣었다. 뭔가 이상했다. 다시 종이를 빼려다 뚝, 내부에 연결 단자가 끊어졌다. 이젠 홈 버튼까지 작동하지 않는다. 망했다. 폰이 죽었다.


아이폰이 죽은체로 주말을 보냈다. 풀 죽은 나를 대신해 여편님이 숙소 직원들에게 아이폰 수리점을 물어봤다. 몇 군데 있다고 했다. 평일이 되어 괜찮아 보이는 수리점을 찾아갔다. 부부가 운영하는데 엄마는 애를 보면서 좀 기다리라고 했다. 남편이 오면 분해해주나 싶었다. 그러다 아이폰을 뚝딱뚝딱 연다. 우리가 못 열던 커버까지 슥슥 연다. (애가 뛰노는 곳 바로 옆 수건에 그냥 볼트를 놓는다. 조마조마하다.) 다시 재조립을 해준다. 커튼 현상이 사라졌다. 어느새 남편도 돌아왔다. 홈버튼 문제도 선만 교체하면 할 수 있다고 했다. 홈버튼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일단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동안 문제가 없어 잘 썼다.

2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홈버튼은 방치 상태다. 커튼 현상은 해발 고도가 낮아질 수록 다시 심해졌다. 좀만 무리해도 엄청난 발열이 나타난다. 그래도 2000미터를 넘으면 사용 가능하다.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어찌저찌 버티다 한국 가면 제대로 고치려고 한다. 괜한 삽질 안하고 바로 수리점에 갔으면 훨씬 나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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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소 유럽 문화의 색깔이 진한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지나 볼리비아로 향했다. 안데스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고, 에보 모랄레스가 장기 집권하면서 변화도 많은 나라에 기대가 컸다. 여차하면 비자 연장도 염두해둘 정도였다.


일정과 이동_20170504_20170528

볼리비아는 잘못한 것이 없다. 우리의 몸이 따라주지 않은 관계로 예상보다 빨리 지나쳤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깔라마(Calama)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공항에서 바로 아타까마(San Pedro de Atacama)로 향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바로 23일 우유니 사막 투어를 하면서 볼리비아로 넘어갔다. 투어 후 우유니에서 하루를 자고 (포토시 환승) 수크레로 갔다. 볼리비아에서 장기 체류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 우리도 어쩌다보니 보름이나 머물렀다. 라파즈로 가는 밤버스를 타고 내려서 바로 티티까까 호수가 있는 코파까바나로 갔다. 여기서 또 3밤이나 자버렸다. 마지막으로 태양섬(Isla del Sol)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와 페루 꾸스꼬로 가는 밤버스를 탔다.


시외 버스

깔라마 공항에서 아타까마까지 바로 셔틀버스를 타고 후회했다. 공항에서 바로 아타까마로 가는 줄 알았는데 어차피 깔라마 시내를 들렀다 갔다. 이럴거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또 아타까마 버스를 타는 게 훨씬 저렴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잘한 일이었다. 깔라마는 광업 도시이고, 볼리비아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도 많아 치안이 안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깔라마 터미널은 소매치기, 배낭치기 등이 많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어떤 여행자는 터미널에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배낭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심지어 우유니에서 만난 친구는 깔라마 터미널에서 내려 짐을 찾으러 갔더니 누가 배낭을 바꿔치기해서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몇 천 페소 더 주고 깔라마에 내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볼리비아 내에서는 모두 버스를 이용했다. 터미널에 가면 여기저기서 목적지를 외치며 호객 행위를 한다. 처음 우유니에서 수크레를 갈 때는 몰랐는데 버스 가격도 흥정이 가능했다. 주말 저녁이 아니라면 기본 10~20, 많게는 절반 가까이 깎을 수 있다고 한다. 버스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시트도 제대로 없는 구닥다리 버스가 3,4시간을 달리기도 하고, 비행기 비지니스 의자를 뚝닥뚝딱 박아 놓은 2층 버스도 있다. 와이파이가 되는 것도 있고, 화장실이 있어도 고장난 것도 있다. 직행인지 중간 중간 멈춰서 사람을 태우는지도 알 길이 없다.

좀도둑도 많은 것 같다. 우유니에서 수크레로 가는 티켓을 사서 가는데 버스는 포토시까지만 갔다. 이미 요금은 수크레 행으로 낸거라 버스 기사가 직접 수크레 버스표를 사줬다. 같은 버스로 가는 줄 알고 여편님의 우클렐레를 두고 내렸었다. 버스에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가 겪은 최초의 도난 사고였다.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San Pedro de Atacama)_0504_0505

깔라마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본 사막의 풍경은 대단했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과 사이 사이 계곡들이 보였다. 깔라마에서 아타까마까지도 그냥 사막이다. 중간에 운전기사가 전망대를 구경시켜줬다. 더웠다. 아타까마는 칠레 중부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볼리비아에 가까웠다. 원래 아타까마 사막 지역은 볼리비아의 영토였다. 페루-볼리비아 연합군이 칠레와 전쟁에 져서 이 지역을 뺐겼다. 덕분에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는 나라가 됐고, 지금도 바다로 가는 길을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쟁 말고 평화적으로… 이 얘길 찾다가 파라과이와도 전쟁해서 영토를 빼겼다는 걸 알았다. 파라과인 브라질-아르헨티나한테 이과수 뺐긴 나라다. 왠지 볼리비아가 더 짠하게 다가왔다.)


숙박_Hostal Matty_5인 도미토리_1

칠레 아타까마 사막 관광의 베이스 캠프라 그런지 숙소가 많다. 중심가 골목이 죄다 숙소, 투어회사, 기념품 가게다. 시내 숙소 중엔 그나마 저렴해 보여서 찾아갔다. 생각보다 깔끔했고, 어차피 하루만 잘 거라 주저없이 방을 잡았다. 5인 도미토리였는데 한 명만 짐을 풀어놨다. 나중에 만나보니 한국 청년이었다. 우리와 반대로 내려왔는데 매우 지쳐보였다. 볼리비아에서 해발 육천미터가 넘는 산을 올라갔다고 한다. 얼른 산티아고에 가서 한국식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다. 같이 온 친구들이 있다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여정이 길었고, 다음날 새벽 투어를 가야 해서 일찍, 편히 잤다.


동네 구경과 파스타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우유니 가는 투어를 알아보러 나갔다. 인터넷에도 알려진 유명한 투어회사부터 간판하나 달고 있는 소박한 회사들까지 가격은 비슷했다. 바로 다음날 한다고 하니 너도나도 할인가를 제시했다. 좀 좋아보이는 곳은 95,000페소, 평범해 보이는 곳은 85,000페소(130달러)를 불렀다. 보통 칠레에서 출발하는 투어는 가격이 꽤 비싸다고 했는데 생각보단 차이가 적었다. 아저씨가 코스와 일정을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줘서 파멜라(Pamela) 투어에서 하기로 했다.

저녁은 근처 파스타집에서 해결했다. 동네 사람들도 많이 찾는 것 같다. 술도 안 파는 곳이었다. 안이 보이는 작은 주방에서 파스타가 뚝딱뚝딱 만들어져 나온다. 산맥 같은 파스타를 겨우 하나씩 해치웠다. 옆 사람들은 셋이 2개를 시켜 나눠먹고 있었다.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 투어_1일차_0505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쌌다. 전날 산 5리터짜리 생수통이 든든하다. 고산병엔 물이 최고다. 왜 모든 투어는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나, 왜 모든 투어는 일출 투어로 끝을 맺나. 알람을 맞추고 동 트기 전에 일어나는 건 고되다. 7시가 되니 픽업차가 왔다. 이민국에서 내려준다. 이민국은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하다. 우리 투어 사람들이 눈치 빠르게 앞에 줄을 세워준다. 좀만 늦었으면 한 오백년 걸렸을 각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영수증 같은 걸 내민다. 우리가 푸에르토 윌리엄스에서 받은 건 바코드가 없는 증서다. 그래도 받아준다. 후다닥 다시 차를 탄다.

볼리비아 국경에 왔다. 어마어마하게 춥다. 가이드들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제일 춥단다. 사막에 소박한 볼리비아 이민국은 밖에 줄을 세운다. 여기서 또 일찍 온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리랑 같이 넘어온 중국(추정)2명은 미리 비자를 안 받은 모양이다. 어버버하더니 돈으로 해결하는 것 같다. 큰 차에서 내려 각자 기프를 배정받는다.


우리 기사&가이드 이름은 우고(Hugo). 경력 18년의 베테랑이다. 우리와 함께한 일행들은 18살 정도되는 영국 청년 4명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용돈 모아서 대학교 가기 전에 같이 여행왔단다. 아침을 춘다. 아보카도까지 썰어주는 푸짐한 아침이다. 오들오들 떨며 우걱우걱 집어 먹었다. 중간에 3명이 앉고 조수석에 한 명이 돌아가며 앉고, 우린 3일 내내 둘이 뒷자리에 앉았다. 나름 편안하고, 서로 불만없는 좌석배치였다. 본격적으로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서서히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한다. 역방향 우유니 투어의 안 좋은 점이다. 아타까마가 해발 2,000미터 정돈데 이날 바로 해발 4,000미터를 넘어선다. 정확한 순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Laguna Blanca, Laguna Verde, 용암이 보글보글 피어나는 화산 지대를 지난다. 달걀 삶아 먹고 싶다. 유황 냄새가 진하다. 오전에 온천도 한다. 수영복을 미리 꺼내놨다. 여편님은 파타고니아 다녀와서부터 온천을 별렸다. 하지만 이미 머리도 띵하고, 투어 초반이라 온천의 감동은 덜하다. 안은 따뜻한데 밖은 춥다. 사막의 겨울이다.


바로 숙소로 향한다. 해발 4,300미터에 있는 곳이다. 오늘 여기서 잠도 잔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아니고,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 상점들이 모여있다. 점심으로 푸짐한 감자요리를 준다. 감자의 나라답게 감자가 맛있다. 머리가 더 띵해진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차를 타고 근처 Laguna Colorida로 간다.

첫날 풍광의 하이라이트다. 언덕 위에 우리를 내려주고 호수를 돌아보라고 한다. 호수 빛이 그때그때 달라져서 색깔호수다. 한 구석엔 홍학도 많다. 아까 호수에선 더 가까이 봤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산책했다. 저기 청년들은 뛰고 서로 업고 난리가 났다. 좀 전에 차에서 너희들은 고산병 없냐고 물었다. 자기들은 스키 타러도 종종 다녀서 걱정없다고 했다. 젊음은 저런 건가 보다.


숙소로 돌아왔다. 청년들의 상태가 이상하다. 여편님도 힘들어 한다. 나도 머리가 띵하다. 이 정도 고도를 높였는데 고산병이 안 오는게 이상한 거다. 우고가 여편님에게 약을 준다. 상태가 심하면 먹으라고 했다. 결국 먹었더니 상태가 호전됐다. 저녁도 안 먹고 주무시기로 했다. 청년1도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메롱 거린다. 청년 2,3도 힘겨워한다. 청년 4는 멀쩡하다. 젊음이란 저런 거다. 저녁 메뉴는 요리요리한 야채수프에 통조림 버섯이 들어간 토마토 스파게티가 나왔다. 우린 꾸역꾸역 먹는데 주변 테이블은 와인 따고 난리가 났다. 볼리비아 쪽에서 투어를 시작한 사람들인 것 같다. 부럽다. 배부름이 가시기 전, 8시에 잠을 잤다. 다섯 번이나 깼지만 나름 선방한 꿀잠이었다. 중간에 별을 보려 나왔다. 별볼일 없었다.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 투어_2일차_0506

자다깨다를 반복해 5시 반 쯤 일어났다. 일치감치 준비를 마치고 7시 반에 조식을 먹었다. 국경에서 준 아침보다도 빈약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여기 숙소에 물자 보급이 어려운 것 같다. 둘 다 몸상태는 좋았다. 여전히 상태가 메롱인 청년 1에게 약을 먹으라고 권했다. 우고는 청년들보단 우리가 맘에 드는 모양이다. 여편님에겐 말도 하기 전에 준 약을 청년에겐 머뭇거리면서 준다.

짐을 지프에 올리고 2일차 일정이 시작됐다. 오늘은 쭉 고도를 내려간다. 그래봤자 3,000미터 대지만 큰 위안이다. (개인적으로 3천미터 대에선 날라다닐 수 있고, 4천미터 대에선 꾸역꾸역 걷고, 5천미터 넘어가면 죽자살자 걸어야 한다. 6천미터 대는 가고 싶지 않다.) 돌에 솟아난 나무를 본다. 감흥은 없지만 화장실을 향해 벌판으로 달려갔다. 무슨 호수를 또 4개 본다. 홍학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오전의 하이라이트 사막 토끼가 등장했다. 사막 계곡을 달려가던 중 우고가 멈췄다. 토끼를 발견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귀여움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뒤따라 오던 차들도 모두 멈춰섰다. 우고가 우리 점심 중에 토마토를 가져다 줬는데 반응도 안한다.

화산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여기 작은 슈퍼에서 점심을 먹는다. 우고가 도시락으로 참치마요를 준비해왔다. 맛있다. 코카잎을 판다. 씹어 먹으니 개운하다. 청년들은 비싸디 비싼 프링글스를 사먹는다. 얘네들은 좋겠다. 소울푸드를 세계 어디서나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밥 먹고 주구장창 달려서 소금 사막에 도착했다. 오늘은 맛보기다. 짜다. 철도가 있다. 소금 사막 외곽에 위치한 마을로 간다. 오늘은 진짜 사람 사는 마을에 머문다. 숙소는 소금 호텔이다. 진짜 방 안에 소금을 마구 뿌려놨다. 이럼 몸도 소독되고 보온도 잘 될 것 같아서 안심이다. 전날엔 도미토리였는데 오늘은 더블룸을 준다. 약간의 돈을 내서 뜨거운 샤워도 하고, 티타임을 가졌다. 청년들은 카드놀이로 시간을 떼운다. 이제 다들 멀쩡하다. 간식 거리 살겸 동네 구경을 갔다. 애들이 귀엽다. 석양도 아름답다.

고대하던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보나마나 감자일 것이다. 주방에 가보니 우고가 숙소 주인 내외와 함께 있다. 뭐 이것저것 썰더니 역시나 감자를 튀긴다. 여편님은 만 이틀 만에 먹는 저녁이다. 감자튀김과 각종 야채, 계랸, 소세지, 소고기까지 함께 볶은 요리다. 청년 3은 채식주의자다. 전날엔 다행히 고기 요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따로 채식으로 달라고 주문했다. 그의 접시엔 고기는 빠지고, 대신 계란과 소세지를 듬뿍 얹어줬다. 영양 균형을 맞추려는 주인의 자상함이 느껴졌다. 청년들은 당황했다. 청년 2가 항의했다. 우고가 그럼 소세지 빼서 먹으라고 했다. 그는 삐졌다. 먹지 않겠다고 했다. 우린 미리 사온 맥주와 함께 신나게 기름기를 만끽했다. 우고가 와인도 준다. 원래 투어 마지막 저녁엔 와인을 주나보다. 우리 몫을 다 먹고 청년2가 안 먹은 것들도 마저 먹었다. 내일은 더 일찍 4시에 일어나야 한다. 편히 잤다.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 투어_3일차_0507

새벽 4시에 귀신같이 일어나 짐을 챙겨 나섰다. 대략 5시가 되서 출발했다. 이미 동은 터버렸다. 무지개빛 지평선 위에 별이 어슴프레 널려있다. 쭉쭉 달려서 해가 뜨기 전에 내렸다. 해가 뜨기 전 우유니의 풍광은 대단했다. 아름다웠다. 드문드문 바다위의 섬 처럼 바위들이 솟아있었다. 우고의 고향은 저 지평선 끝자락 산이라고 했다. 얌전히 서로 독사진을 찍는데 우고가 점프샷을 요청했다. 베테랑 답게 우리보다 잘 찍었다. 일출을 맞이하고 Isla de Pescado로 이동했다.


우유니 투어하는 차들이 여기로 다 몰려왔다. 하얀 사막 바다 위에 섬이 있고, 그 주변에 배들이 정박한 모양새다. 여기도 따로 입장료가 있다. 우린 들어가보기로 한다. 어마어마한 선인장(Cactus)들이 불쑥불쑥 솟아있다. 대략 1시간 정도 가볍게 섬을 산책했다. 섬 위에서 바라보는 사막도 매력있다. 청년들은 안 들어오고 저기서 놀고 있다. 내려오니 아침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소금 사막 벌판으로 이동했다. 우고 말로는 지금이 건기라 물 찬 곳이 없다고 했다. 1,2월엔 어마어마한 인파가 (특히 한국, 중국) 몰려온다고 했다. 이땐 소금 사막에 물 찬게 얼마나 중요한 지 몰랐다. 그러려니했다.

벌판에서 또 심심하니깐 이런 저런 사진을 찍었다. 곧 힘이 부쳤다. 이런 저런 설정샷 찍는 일행과 안 온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우리가 사진도 안 찍고 놀고 있으니 우고가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몇 마디 알려줬다. 라파즈에서 하는 한국어 교실은 하루에 100달러나 한다고 했다. 엄두도 못낼 일이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똑같은 벌판인데 이번엔 점심 식사 시간이다. 닭고기와 콜라가 나온다. 전날 밤 묵었던 숙소의 요리 솜씨가 탁월했다. 소풍 감성으로 소금 바닥에 앉아 닭을 뜯었다. 소금은 따로 주지 않았다.


이렇게 대강 투어는 끝났다. 우유니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무슨 마을에 들러서 쇼핑 찬스 주고, 골동 기차 있는데 한 번 멈춘다. 시내 ATM 근처에 내려 달라고 했다. 휴일도 없이 고생한 우고에게 소정의 팁을 주고 헤어졌다.



우유니(Uyuni) 마을_0507_0508


숙박_Hotel Avenida_더블룸_1

우고가 추천해준 숙소는 터미널과 너무 가까웠다. 미리 알아본 아베니다 호텔로 갔다. 호텔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객실도 깔끔했다. 엄청 까다로워 보이는 할머니였지만 쉽게 가격을 깎아줬다. 하룻밤 편히 쉴 수 있었다.


동네 구경과 식사

휴식 후 버스표도 알아볼겸 밖을 나섰다. 우유니 마을은 사막이라 황량한 감이 있다. 그래도 시내에서 새로운 복장에 사람들을 보니 재밌었다. 볼리비아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터미널이랄 것도 없이 낡은 사무실들이 쭉 도열해 있었다. 버스표를 사고 다시 저녁 거리를 찾아 헤맸다. 투어회사가 많은 길을 지나다 한국 사람들을 발견했다. 유명한 브리타 회사에선 하루에 지프 3대가 한국 사람만 태우고 갔다고 한다. (여기서 한 사람들은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했는데도 다 물 찬 곳에 데려갔다고 한다.) 외국 사람들과 투어 하면 사진 핀트가 안 맞아서 한국 일행을 찾고 있다고 했다. 우린 투어는 했고, 칠레 돈 필요한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혼자 다니는 한국 남자를 찾아보라고 했다. 만났다. 알고보니 그도 우리처럼 칠레 돈을 바꾸고 싶어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칠레 깔라마에서 배낭 바뀌치기를 당했다고 했다. 배낭에 귀중품이 많아서 좌절했는데 다행히 한국 대사관, 칠레 적십자의 도움으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회복했다고 했다. 괜히 안타까운 마음에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관광지라 식당 가격이 꽤 비쌌다. 피자, 파스타를 먹었다. 우유니에선 라마나 알파카 고기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숙소 앞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저렴한 가격에 빵, 커피 다 나왔다. 커피의 풍미가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볼리비아도 커피 생산국이었다. 드디어 커피 벨트에 진입했다. 터미널로 가서 수크레 가는 버스를 탔다. 터미널에 가니 5년 전 우유니에 왔던 것이 기억났다. 그땐 밤 버스 타고 내려서 터미널에 있는 투어 회사 사무실에서 투어를 신청하고 바로 출발했다. 그 때 잠시 화장실 쓰려고 들어갔던 호텔이 그대로 있었다. 1볼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부록_우유니 3일 투어 비교_칠레 아타까마 출발 VS 볼리비아 우유니 출발

서론: 어쩌다보니 우유니 투어를 두 번했다. 5년 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투어 프로그램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비용, 코스 등등에 대한 의문으로 우리처럼 망설이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가격: 칠레에서 출발하는 게 좀 더 비싸지만 큰 차이는 없다. 투어 비용 자체가 추가로 내는 입장료 빼면 100달러 초반이라 차이는 커봤자 10~20달러 정도다. 칠레 어느 회사에서 해도 투어를 진행하는 건 볼리비아 쪽 회사고, 칠레 쪽에서 떼먹는 건 국경까지 교통비, 연결 수수료 정도다. 진짜 비싸봤자 볼리비아는 싸도 너무 싸다. 볼리비아에서 출발하려고 거기로 가는 교통비만 감안해도 비용차이는 거의 없다.

투어 내용: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분, 투어 내용은 다 똑같은 것 같다. 5년 전엔 Isla de pescado는 없었는데 그 사이 생긴 것 같다. 볼리비아에서 출발하면 첫날 우유니 사막을 본다. 그럼 2,3일에 보는 화산, 호수 등등은 그냥 다 오징어로 보인다. 기승전결과 3일째에 일출도 볼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칠레 쪽에서 출발하는 게 좀더 재밌다.

건강: 칠레에서 갔을 때 가장 부담이 되는 건 고도 적응이다. 우유니에서 출발하면 3천 미터 대에서 시작해 4천 미터대로 올라오지만, 칠레 쪽에서 가면 바로 4천 미터를 넘어간다. 거기다 첫날 숙소는 해발 4,300미터, 아무리 물을 많이 먹고 준비해도 고산병이 올 수 밖에 없다. 투어 자체가 다 차 타고 다니고, 심하게 몸 쓸 일은 없어서 큰 걱정거린 아니다. 힘들긴 하다.


결론: 우리처럼 시계 방향으로 여행하는데, (칠레 → 볼리비아) 3일 투어를 할건데, 굳이 볼리비아로 가는 건 매우 삽질인 것 같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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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서 일만하고 고생만 한 건 아니다. 비록 발디비아나 이슬라 네그라는 못 다녀왔지만, 시내 관광과 포도밭 나들이까지 부지런했다. 대도시는 놀 건 일하 건 사람을 바쁘게 만든다.


수산 시장 구경_Central Mercado_0429

토요일 점심, 푸에르토 윌리엄스에서 만났던 니키타와 심란이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둘은 시내 한가운데 호스텔에 머물고 있었다. 테라스가 있는 곳이라 햇볕을 쪼이기 좋았다. (우리 숙소 마당은 건물구조상 햇볕이 거의 안든다.) 니키타는 부지런히 여행해서 산티아고까지 올라왔고, 심란이는 2주 먼저 와서 기숙학원 같은데서 스페인어를 배웠다고 한다. 어제 늦게까지 음주를 했다며, 해장겸 수산 시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산티아고 중앙 시장은 주로 수산물을 취급하는 곳이다. (농산물 시장도 근처에 따로 있다고 한다.) 생선과 해산물을 직접 파는 가게도 있고, 시장 가운데와 이층엔 식당이 있다. 예전엔 여기서 손바닥 만한 전복을 하나에 5백원 정도에 팔았다. 그냥 먹을 상태는 아니라서 전복을 잔뜩 넣고 크림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산물을 둘러봤다. 기대했던 전복은 보이지 않았다. 삐끼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비좁은 식당은 가족 단위와 관광객들로 꽉 차 있었다. 해산물 수프와 Loco를 시켰다. 예상대로 Loco는 전복과 비슷한 해산물이었다. 살짝 데쳐서 줬다. 전복보다 식감은 좀 더 부드러웠고, 전복처럼 맛과 향의 층위가 다양하진 않았다.

니키타, 심란과 헤어져 시내 가게들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둘은 내일 오는 친구의 생일이라며, 케잌을 미리 살 거라고 했다. 밝고 좋은 친구들이다.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과 커피

이런 저런 이유로 아르마스 광장을 몇 번 지나쳤다. 산티아고의 중심 광장이라 주변엔 박물관, 우체국도 있고 행사도 꾸준히 했다. 광장 한 편엔 식당가가 있다. 진짜 내륙형 칠레식이라고 불릴 수 있다. 메뉴는 핫도그, 햄버거, 고기+감자튀김 같은 식이다. 한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내부가 축구장만큼 넓었다. 고기에 계란 후라이까지 얹어준다. 칠레의 이런 식당이나 핫도그 집들은 최소 3,4개의 소스가 구비되어 있다. 케찹, 마요네즈, 머스터드, 핫소스가 기본이다. 이 소스 조합이면 아무리 싼 소세지의 핫도그라도 맛이 절반은 간다.

광장 반대편엔 파나마 커피집이 있었다. 칠레에선 좋은 커피를 먹는 게 쉽지 않다. 슈퍼마켓에 가봐도 차 코너가 커피 코너의 2배를 차지할 정도다. 커피는 대부분 인스턴트 커피다. (그나마 칠레 브랜드가 네슬레보다 맛있다.) 네루다 자서전에 보면 그 옛날에도 산티아고 항구로 엄청난 차를 실어날랐다고 한다. 안데스의 비와 추위엔 한 잔의 커피보다 거푸 마실 수 있는 차가 어울리긴 한다. 오랜만에 괜찮은 커피를 마시니 좋아서 한 번 더 갔다. 칠레, 아르헨티나의 다방 커피인 Cortaddo(라떼보다 에스프레소의 비율이 높아서 진하다.)에 설탕 한 봉을 털어 마셨다.

환전도 이 근처에서 했다. 맵양에 나오는 몇 군데 환전소를 찾아서 볼리비아 돈을 미리 환전했다. 우유니를 바로 가려면 볼리비아 돈이 필요한데 아타카마나 국경에서 하는 것 보단 훨씬 낫다고 한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르마스 광장 한쪽 길이 아예 환전 거리였다. 페루, 볼리비아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환전을 하는 곳인 것 같았다. 다른 시내의 환전소보다 여기 환전 거리의 환율이 훨씬 좋아서 땅을 쳤다.



박물관_칠레 자연사 박물관(Museo Nacional de Historia Natural)_0428

집 근처를 산책하다 큰 공원(Parque Quinta Normal)까지 갔다. 박물관이 보여서 들어갔더니 무료라고 한다. 칠레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칠레는 남북으로 아주 긴 나라다. 그래서 파타고니아의 극 지방 기후, 발디비아 같은 비 많이 오는 기후(?), 와인 잘 되는 지중해성 기후, 아타카마 같은 사막 기후 등 열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후가 있다. 이 각 기후별로 전시관을 만들어 놓고, 기후별 특징과 동식물, 인간 생활 양식 등을 알차게 보여준다. 가운데 특별 전시에선 고래와 다른 대형 포유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물관이 일찍 닫는 바람에 1시간 밖에 못봤지만 매우 알차고 흥미로운 관람이었다.

박물관_산티아고 인권 박물관(Museo de la Memoria y los Derechos Humanos)_0430

심란이가 추천해줬다. 자연사 박물관 건너편에 있었다. 이 공원 근처에 박물관이 많다. 칠레 현대사는 우리 못지않게 슬픈 기억이 많다. 1970년대 좌파 정권인 아옌데 대통령이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여러 복지 정책을 펼쳤는데 미국이 많이 거슬려했다. 특히 국가가 아이들에게 분유를 지급하는 정책을 네슬레가 매우 싫어했다.(이런 연유로 우린 최소한 칠레에서는 네슬레 제품을 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런 기업들의 로비까지 더해져 미국이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아옌데는 대통령 궁에서 사망하고 피노체트의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런 일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이다.

여기도 무료다. 박물관 밖에는 칠레 여성 운동에 대한 전시가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세계 지도가 펼쳐지고,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학살, 탄압과 이를 규명하는 기관들이 일일이 표기되어 있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있다.) 이층, 삼층으로 연결된 전시는 주로 칠레 현대사 얘기다. 말로만 들었던 역사를 생생한 영상과 사진 등으로 느낄 수 있었다. 쿠데타 당시 대통령 궁 포격, 피노체트 정권에 대한 저항의 도화선이 된 네루다의 장례식 등이 우리를 멈추게 했다.

이 박물관은 서울로 치면 용산 공원 같은 중심지에 있는 것이다. 전쟁 기념관 같은 건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광주 민주화 운동, 독재의 탄압, 위안부 등을 상세하게 다루는 박물관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허구언 날 북괴 걱정만 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아옌데 대통령의 죽기 전 마지막 연설, 마지막 세 마디가 생생하다.

¡Viva Chile! ¡Viva el Pueblo! ¡Viva los trabajadores!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독서_파블로 네루다 자서전_박병규 옮김_민음사

남미 대륙에 넘어와서부터 틈틈이 읽던 네루다 자서전을 산티아고에서 끝냈다. 네루다가 칠레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얘기도 재밌었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아옌데, 카스트로 등에 대한 이야기로 남미 전반에 대한 흥미를 넓혀줬다. 객관적인 사실보단 본인의 견해가 중심이라 소소한 재미가 있다. 시인답게 몇몇 문구는 평이한데도 깊이 새겨진다. 대부분 주어가 우리 시인들은...이지만 여행자에게도 해당하는 말들이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No hay nada tan hermoso como perder el tiempo.


이렇게 지상에서 상처 입고 불에 탄 뿌리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다.

코끼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음식을 먹었다. 이제 길들여진 것이다. 지금부터는 고된 노동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젊은 작가는 몸서리 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성숙한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택배의 기적_네루다의 우편배달부_0502

남미 첫 택배를 산티아고에서 보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이다. 소설의 배경은 영화와 달리 칠레다. 이슬라 네그라나 발파라이소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런지 칠레 우편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다. 그간 누적된 기념품과 네루다 자서전, 안 입는 옷 가지, 못 쓰는 카메라 등을 모았다. 모험심 가득 담아 와이너리에서 받아온 와인 잔도 옷에 싸메서 보내보기로 했다. 집 근처 우체국에 갔더니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직원이 친절하게 박스를 주고 서류 작성을 도와줬다. 일일이 보내는 물건과 숫자, 가격까지 적어야 했다. (가격은 대충 찍었고, 와인잔 있다는 얘기는 죽어도 안했다.) 무게는 대략 5kg, 가격은 무려 10만원 정도였다. 대략 알아본 결과 남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국까지 택배 가격은 이 정도였다.

택배 보낸 사실을 잊기도 전에 고작 일주일 만에 동생에게서 택배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적적으로 와인잔은 본인이 쓰고 있어도 되냐는 말까지 덧붙었다.


산티아고 공항_0503

칼라마를 가기 위해 체크 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갔다. 버스로 가면 20시간이 걸리는데 비행기는 미리 예매하면 가격이 비슷했다. (덧붙여 칼라마 터미널이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버스에 맡긴 수화물도 가로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터넷은 물론 실제 피해자까지 만났다..) 산티아고 공항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시내 주요 지하철 역에서 정차해서 편히 갈 수 있었다. Pajaritos역에서 내리니 셔틀버스 타는 곳에 버스가 자주 왔다. 사람도 많았다. 공항은 크고 복잡했다. 얼른 체크인을 하고 탑승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탑승 시간이라 맥도널드를 먹었다.


셔틀버스 안내: http://www.centropuerto.cl/?page_id=6023




시외_와이너리 투어_운두라가 와이너리(Viña Undurraga)_0430

칠레하면 또 와인이다. 산티아고 근처엔 하루면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수 있는 와이너리도 많다. 산티아고 외곽 Maipo Valle에 많다. 대부분 유명한 와이너리 투어는 비슷한 가격에 비슷한 구성이다. 기본투어는 만페소 정도를 내고 와이너리 구경하고 3종류 정도의 와인을 시음한다. 검색을 통해 몇 개 후보를 추렸다.


Cono Sur (http://www.conosur.com/es/)

한국에서 알던 와인이다. 자전거로 배달하는 유기농 와인 Bicicleta를 한국에서 맛있게 마셨었다. 산티아고 오기 전에 여기나 가볼까 하고 여편님이 투어 문의 메일을 보냈다. 와이너리 투어는 없다고 했다.

Viña Concha y Toro (conchaytoro.com)

디아블로로 유명한 와이이너리다. 딱 봐도 젤 많이 가는 것 같았다. 홈페이지에 예약 시스템도 있다. (지금 몇일 골라보니 다 안된단다.) 심란이가 다녀왔다는데 너무 투어리스틱해서 그냥 그랬다고 했다. 디아블로 와인을 마셨을 때 엄청 좋단 기억도 없었다.

Viña Cousiño Macul (cousinomacul.com)

여기도 꽤나 유명한 와인이다. 한국에서도 많이 봤다. 가격은 14,000페소다. 비싼 편이다. 딱히 정가는 와인은 아니고, 일요일에도 안한다.

Viña Santa Rita Chile (www.santarita.com/chile/home/)

한국에서도 칠레와서도 만만하게 많이 마셨던 120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120와인은 칠레에선 댓병(2리터)로 팔 정도로 싸고 만만한 와인이다. 많이 마셔서 굳이 와이너리를 가고 싶진 않았다.


Viña Undurraga (www.undurraga.cl)

우리가 선택한 와이너리다. 이유는 간단했다. 홈페이지에 슈퍼에서 몇 번 봤던 Pablo Neruda와인이 있는 것이다. 네루다 밖에 모르는 우리는 주저없이 여길 가기로 했다. 투어 가격도 무난하게 11,000페소였다. 며칠 전에 이메일로 투어 예약을 했다.


조식을 먹고 출발했다. (투숙 3일만에 나온 조식이었다.)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려고 했다. 버스에 타서 요금을 내려는데 현금은 안되고, 교통카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기사 아저씨가 그냥 타고 가라고 한다. 와이너리에 안내된 바로는 Estacion Central 옆에 있는 San Borja 터미널에서 Talagante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했다. San Borja는 시장통 옆 골목 안쪽에 있었다. Talagante라고 써진 미니버스가 보였다. 얼른 탔다. 지금 출발하는 게 아니고 터미널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어쨌든 금방 출발했다. 운두라가 간다고 하니 아저씨가 알아들었다. 시내를 벗어나 대략 한 시간을 달렸다. 네루다 자서전(스페인어판)을 들고 있는 여자도 보였다. 기사 아저씨가 여기가 입구라며 친절하게 세워줬다. 예약한 12시 정각에 도착했다.


와이너린 다 이렇게 넓은 정원을 끼고 있어서 좋다. 간만에 푸르름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몇명 없는 영어 그룹에 꼈다. 앞에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브라질 단체)로 진행하는 그룹에는 사람이 많았다. 정원으로 나가서 와이너리의 역사를 말해준다. 원래 운두라가라는 가문이 여기에 저택도 짓고 와인도 만들었는데 십 몇 년 전에 지금 운영하는 회사에 팔았다고 한다. 한 구석에 저택도 그냥 장식용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지진에 무너졌다고 했나 기억이 가물가물) 포도밭으로 간다. 저 멀리 산맥을 배경으로 포도밭이 펼쳐져있다. 지금은 포도 수확시기가 지나서 포도가 별로 없다. 포도밭에 장미가 곳곳에 심어져 있는데 해충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땅굴 창고로 들어간다. 안에는 칠레 지역별 와인 특징을 보여주는 지도가 있다. 운두라가도 칠레 여러 지역에 포도밭을 갖고 있었다. 창고로 내려가는 길 옆에는 땅 지질이 그대로 보인다. 이걸 땅구조를 파악하고, 포도 재배에 적극 반영한다고 했다. 공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은 포도밭을 보여준다. 와인에 쓰이는 포도가 종류별로 심어져 있다. 포도종 별로 나뭇잎도 다르고, 포도 맛도 다 달랐다. 몇몇 포도는 아주 달고 맛있어서 투어 끝나고 또 따먹으러 갔다. 공장에선 커다란 통에서 와인이 숙성되고 있다. 가격대별로 이런 기계에서 보관해서 바로 내치거나 숙성을 거쳐서 오크통으로 간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Reserva의 의미가 그 차이였다. 오크통도 유럽에서 가져오는 게 있고, 여기서 만들어서 쓰고, 또 재활용하고 천차만별이다. 대략 우리가 일상에서 마시는 와인은 오크통 냄새도 못 맡은 것들이었다.


서비스로 운두라가 가문에서 수집한 야간족(파타고니아 원주민) 관련 전시가 있는 작은 박물관을 거쳤다. 그리고 시음에 들어갔다. 매우 만족스럽게도 무려 4종류의 와인을 시음했다. 시음한 와인 중 Sibaris라는 와인 뒤에는 한국어로 된 라벨이 붙어있었다. 여편님이 이거 우리 한국에서도 마신 거라고 일깨워줬다. 와인 시음을 마치고 기념품 상자를 줬다. 빈 상자길래 아 마신 잔을 주는거구나 깨달았다. 옆에 호주 청년은 한참 빈상자를 뒤적였다.

취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했다. 피크닉 투어를 한 사람들은 돗자리 펴놓고 와인과 음식을 즐겼다. 우리도 도시락을 따로 준비해 올걸 그랬다.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키고 쇼핑을 위해 사무실로 돌아갔다. 시음의 아쉬움을 달래며 Pinot NoirCarmener,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Cabernet Sauvignon) 3병을 샀다. (네루다 와인은 파블로 네루다 재단과 와이너리가 공식 파트너쉽으로 만든 것이다.) 이제껏 칠레에서 사 마신 와인 중 가장 비싼 와인들이었다. 별 수 없다. 투어란, 시음이란 사람을 한없이 약해지게 만든다.


돌아오는 길은 더 오래 걸렸다. 잡아탄 미니버스가 완행이라 올 때와 달리 빙 돌아서 갔다. Pinot Noir를 이날 저녁 제육볶음에, Carmener는 다음날 비빔국수(파스타)에 먹었다. 하루 쉬고 산티아고 마지막 밤에 비빔밥과 네루다 와인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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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디비아에서 촉촉한 시간을 보내고 메마른 산티아고로 향했다. 여기서부터 건조한 사막 기후다.


산티아고(Santiago)_0427_0504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엔 산티아고라는 도시가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구분을 위해 산티아고 데 쿠바 이런식으로 부른다. 하지만 칠레의 산티아고는 수도라 그런지 그냥 산티아고로 불러도 통용된다. 드디어 추운 곳을 벗어나 따뜻한 곳으로 오는 줄 알았지만 산티아고도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막성 기후라 그런지 낮엔 더워도 아침엔 추웠고, 낮에도 햇볕이 안 드는 곳은 서늘했다.

발디비아에서 산티아고로 오는 길엔 Tur Bus를 탔다. 가장 유명한 (=비싼) 버스 회사 중 하난데 엄청 좋고 그러진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 비싸지도 않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다릴 쭉 뻗고 자니 아침에 산티아고 터미널에 도착했다. 페스트 푸드로만 구성된 푸드 코트에서 아침을 떼우고 숙소로 향했다.


숙박_Selknam Hostel_더블룸_7

산티아고를 찾은 이유 중 하나는 이 호스텔을 가기 위해서였다. 5년 전 혼자 남미를 여행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숙소다. 어쩌다 호스텔 주인과 친해져서 매일 그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았고, SNS를 통해 계속 소식을 알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 사진을 올리니 먼저 연락이 왔다. 산티아고에도 간다고 하니 당연히 자기 호스텔로 오라고 했다. 특별 할인까지 해주겠다고 했다.

호스텔은 그 때와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예전엔 대학가 한 가운데 있어서 호스텔 밖으로 나가기만해도 언니들 보느라 신이 났었다.) 중심가인 Cumming 역에 있었다. 주인인 로드리고는 없고, 상주직원인 윌리엄이 우리를 맞아줬다. 처음 보여준 방은 너무 답답해 보여서 1층에 작은 더블룸에 머물기로 했다. 예전에 갔던 호스텔은 아늑한 분위기였다. 이젠 그냥 큰 여인숙 같았다. 저렴한 숙소를 찾는 배낭 여행자들과 산티아고에서 일하는 장기 투숙자들이 묵었다. 방은 좀 어둡고 칙칙했다. 가운데 뻥 뚫린 곳에 고양이도 살았다. 밤엔 거기서 음악을 틀어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침을 준다고 했으나 어떤 날은 주고 어떤 날은 안 주고 대중이 없었다. 그래도 윌리엄과 장기 투숙자들 모두 왠지 정이가는 사람들이었다.

로드리고는 마지막날 밤이 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요즘 개인적인 일과 다른 사업으로 바쁘다고 했다. 며칠째 안 나타나서 좀 섭섭했지만 만나니 반가웠다. 로드리고는 나보다 더 내가 그 숙소에 머물던 때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입고 있던 옷까지 묘사했다.) 우리도 다음날 떠나야 했고, 로드리고도 많이 피곤해보였다. 적당히 자리를 정리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일기_지진_0428

칠레하면 와인과 함께 지진도 떠오른다. 발디비아도 검색해보면 처음 나오는 얘기가 발디비아 대지진이다. (당시 지진의 여파가 일본 열도까지 닿았다고 한다. https://namu.wiki/w/%EC%B9%A0%EB%A0%88%20%EB%8C%80%EC%A7%80%EC%A7%84) 산티아고도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데 특히 3,4월에 많이 분포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2017428

5년 전 남미 여행 중 방문했던 산티아고 호스텔을 다시 찾았다. 그 사이 호스텔은 옆 동네로 이전했다. 오늘도 침대에 앉아서 워드치고 있는데 침대와 건물이 흔들거린다. 옆에서 낮잠 자던 여편님은 벌떡 일어나서 문 열고 "지진났어요??!"고 물어본다. (여기 한국 사람은 우리 둘 뿐이다.) 두 번째라 놀라움이 덜 하다. 이번 진도는 5.9라고 한다.


2012325

침대에 앉아서 워드치고 있는데 침대가 낑낑거린다. 분명히 방엔 나혼잔데 누가 몰래 위에서 장난치나 했는데 점점 심해진다. 통째로 휘청휘청 아. 지진이구나!!

며칠전에도 꽤심했다는데 자느라 몰랐다. 땅위에서 더 제대로 느끼지 못한게 좀 아쉽다. 내려가서 물어보니 7.2였단다. 지진대피요령숙지해놔야겠다.



일기_선거와 떡볶이_0427

산티아고에 온 또 다른 이유는 선거였다. 우루과이에 있을 때가 19대 대선 부재자투표 신청기간이었다. 그땐 파타고니아에 얼마나 있을지 몰랐다. 그래도 부재자투표기간에 산티아고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을 것 같아서 신청했다. 여편님은 언제 외국에서 투표해보겠냐며 참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어쩌다보니 투표기간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첫날 도착 후 숙소에서 좀 쉬고 바로 투표소로 향했다. 투표소는 한인타운에 있었다. 다른 도시의 한인타운과 달리 산티아고의 한인타운은 중심가와 멀지 않았다. 지하철 역 Patronato에서 동대문 같은 시장통을 지나니 한인타운이었다. 투표 안내 및 관리는 한인 2세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하고 있었다. 다들 한국말 잘하고, 자기들끼리 스페인어로도 대화했다. 태평양을 잘 건너갔을 지 모르겠다. 외국에서 보는 선거전은 흥미진진했다. 이 정도로 자극적인 드라마가 있을까 싶었다.

한인타운에 온 김에 슈퍼도 갔다. 고추장과 떡, 어묵을 샀다. 왠지 칠레에선 떡볶이를 만들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에 떡볶이를 한아름 만들어 먹었다. 남아서 이틀 뒤에 점심으로 또 먹었다. 고추장으로 비빔파스타, 비빔밥도 만들어 먹었다. 일주일 간 고추장 한 통을 다 비웠다. 왠지 칠레는 고추장이다.



볼리비아 비자와 산티아고 지하철 대란_0428&0502

산티아고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볼리비아 비자 받기였다. 볼리비아는 입국 전에 미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우리의 경로 상 산티아고나 칼라마에서 받아야 했다. 칼라마는 치안도 안 좋고, 당일 발급 보장도 없다. 체류 기간 넉넉한 산티아고에서 미리 받기로 했다.

발디비아에서 떠나는 날 어떻게 받는지 알아봤다. 그냥 대사관에 사진이랑 여권만 들고가면 되는 게 아니었다. 볼리비아의 빠른 성장 덕분에 인터넷을 통해 사전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던 최첨단 방식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른 블로그를 보면서 작성 요령을 파악하고, 인터넷에 입력하고, 호텔을 예약했다가 취소하고, 엑셀로 대충 일정표를 만들다 보니 1인당 2시간이 걸렸다. 또 하나 걸림돌이 발생했다. 나는 5년 전에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작성 항목 중에 이전에 볼리비아 비자를 신청했었냐, 그럼 언제냐가 있었다. 입국 날짜도 기억이 안나는데 비자 신청 날짜를 알리가 없다. 그나마 여권이 바뀌었으니 그냥 빈 칸으로 놔두고 신청하기로 했다. 덕분에 비자를 받는 순간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전날 떡볶이로 몸을 달구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산티아고 대사관에서 비자 업무를 11시까지만 한다고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Tobalaba역까지 갔다. 출근 시간 산티아고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과 다르지 않았다. 몇몇 지하철은 아예 역을 지나쳤다. 죽기 살기로 출근하는 사람은 아니니 몇 대를 포기하고 보냈다. 겨우 몸을 우겨 넣었다. (이러다 소매치기를 연속 두 번 당했다는 사람도 만났다. 여편님은 새삼 출근길의 고난이 떠올랐단다.) 멘탈이 날아가서 역에 도착했다. 여기엔 Costanera Center라는 거대한 빌딩이 있다. 서울로 치면 코엑스 같은 곳이다. 빌딩을 지나 볼리비아 대사관을 찾아갔다. 거기서 또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서류를 제출했다. 혹시나 튕길까봐 여권, 여권용 사진, 황열별 복사본, 신용카드 복사본, 여행 일정표, 호텔 예약자료, 인터넷으로 제출한 비자신청 문서 등을 다 준비해갔다. 에보 모랄레스를 닮은 직원은 우리의 준비에 만족해하며 여권용 사진을 빼곤 다 가져갔다. 우리 여권을 보며, 여권으로 북한과 남한이 헷갈린다고 했다. 북한은 Democratic이라고 알려줬다. 달력을 가리키며 오늘은 금요일, 다음주 월요일은 노동절이니깐 화요일 4시 이후에 오라고 했다.


황금같은 노동절 연휴가 지나고 화요일 오후 비자를 찾으러 갔다. 좀 일찍 도착했지만 대사관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저기 직원들이 볼록한 배에 간식 봉지를 휘두르며 돌아오고 있었다. 4시까지가 점심 시간인 것이다. 우리 바로 앞에서 누가 또 비자를 신청했다. , 이 친구한테는 오늘 6시 넘어서 오라고 한다. 우리 차례가 왔다. 좀 기다리라고 한다. 휙휙 탁탁 휙휙 탁탁, 휙휙 탁탁. 오늘이 관광 비자 업무를 몰아서 하는 날인 것 같다. 우리 비자와 방금 신청한 친구의 비자가 동시에 처리된다. (비자 발급 소요 시간은 대사와 직원들 업무 스케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땐 누군 바로 나오고 누군 오래 걸리냐며 열냈을 일이지만, 몇 년 일해보고 나니 이런 흐름들이 좀 이해가 되고 그러려니 한다. 아마 이 여행기의 끝은 ‘이렇게 아제가 된다.’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Costanera Center를 둘러봤다. 하도 오랜만에 거대 쇼핑몰을 보는 거라 현기증이 났다. 그 와중에도 여편님은 햄에 들어가 청바지를 하나 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은 또 퇴근 시간, 다시 한 번 지옥을 맛보고 돌아왔다.


참고: 칠레 산티아고에서 비자 받기 http://www.likewind.net/1360

참고: 볼리비아 비자 발급받기 - 인터넷 신청 방법 http://loveorlife.tistory.com/142



달라진 산티아고

처음 산티아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일하는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양해서 놀랐다. 내 기억에 산티아고는 아르헨티나처럼 유럽계의 비중이 높아 보이는 곳이었다. 발디비아에서 만난 산티아고 사람은, 요즘 산티아고에 이민자들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Bella Vista라는 산티아고의 부촌 마을에 사는데 옆집 사람들이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 강도가 들었다며, 최근에 이민자들이 늘어 치안이 아주 안 좋아졌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베네수엘라에서 산티아고에 일하러 왔다는 사람 앞에서 했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산티아고에 와보니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터미널이나 시장통에 가면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을 다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한인타운이 차이나타운보다 크다더니 시내 곳곳에 대짝만한 중국집 천지였고, 중심 대로에 중국슈퍼도 많았다.

칠레 경제가 남미 주변국에 비해서 가장 안정적이다 보니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는 것 같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가를 가도, Menu del Dia가 있는 로컬 식당은 죄다 페루 식당이었다. (칠레 식당은 핫도그집 말곤 없는 건가.. 그래도 페루 식당은 꼭 밥도 주고, 오징어 볶음도 맛있었다.)



부록_일기_인구 조사_0424

많이들 후진적이라고 생각하기만, 이 동네 나라들의 선진성은 종종 나를 놀라게 한다.

그저께 저녁 호스텔에서 프랑스-브라질 커플과 얘기를 나눴다. 곧 프랑스, 한국 대선이라 선거 얘기를 했다. 프랑스와 한국이 도장으로 종이에 투표를 한다고 하니 브라질 친구가 엄청 놀란다. 니네 같이 전자 산업이 발달한 나라가 아직도 종이로 투표를 한다고? 브라질에선 그냥 전화기처럼 1, 2번 버튼을 누르면 된단다. 당연히 개표도 순식간에 이뤄질 거고, 도장 잘 못 찍어서 무효표가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개표 조작이야 전자로 안해도 일어나는 일 아닌가?)

며칠 전, 칠레 동네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식당과 작은 슈퍼 몇 개만 열었다. 우리 인구주택 총조사 같은 CENSO를 하는 날이라고 한다. 방문 조사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조사가 끝나기 전까진 다들 외출도 못하는 것 같다. 문 앞을 서성이며 조사원이 얼른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조사가 끝난 집엔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 있고, 순식간에 외출 준비를 해서 나간다.

+칠레는 반려견은 물론이고 길거리에 유기견들까지 다 등록해서 관리한다고 한다. 길가에 개들도 CENSO 날에 조사하는지 이날은 다들 기웃거림을 자제하고 제자리를 고수했다.

어제 대형 마트에서 맥주 2병을 사려는데 제지당했다. 쿠폰을 가지고 오란다. 첫날 호스텔 주인의 설명을 상기시켜봤다. 사용한 맥주 병을 가져와서 쿠폰을 받아야 쿠폰 수 만큼 새로 병 맥주를 살 수 있다. 대신 병 값은 할인해준다. 계산할 때 1원 같은 작은 잔돈은 기부하겠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한동안 미국의 뒷마당으로 독재 정치에 시달렸다가 좌파가 바람을 일으키고, 요즘은 다시 자본의 공세에 휘청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배울 곳이 많은 동네다.



부록_일기_노동절과 세탁_0501

여기는 아예 노동절이 공휴이라 호스텔에 일하는 스탭도 (주인도) 출근을 안했다. 일요일에 영업하는 대형마트도 오늘은 일제히 쉰다. 한가한 아침이라 세탁기로 빨래를 하기로 했다. 친숙한 엘지 브랜드다. 빨래 넣고 세제는 안 보여서 샴푸넣고, 전원 켜고, 물 높이 맞추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물 버튼이 깜빡이는데 물이 안 나온다.

무슨 일인가 하고 기다리다가 뒤로 미뤘다. 장기 투숙객이 보이길래 빨래 하는 법을 물어봤다. 나랑 똑같이 하더니 물이 안나오는 걸 보고 급수 연결 호수가 없단다. 어디 찾아보란다. 찾아봐도 없다. 또 한참을 멍때리다가 내가 직접 물을 붓기로 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세탁기 작동원리도 찾아봤다. 물 높이만 맞추면 알아서 센서가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큰 냄비에 물을 부어도 부어도 차오를 생각을 안한다. 거의 열번을 부었다. . 깜빡이던 물 버튼이 멈추고 작동을 시작한다. 그러다 또 물을 달라고 멈춘다. 또 물을 몇 번 부었더니 빨래를 시작한다. 아침 거리를 사와서 입에 물었다. 대망의 행굼이 시작됐다. 애써 담은 물이 스르륵 빠지고 물을 달라고 한다. 이번엔 6리터짜리 생수통을 쓰기로 했다. 6,7번은 부어야 물이 찬다. 그리고 바로 벹어낸다. 또 물을 달란다. 이번엔 한 10번 정도 부었다. 드디어 뒤에서 지켜보던 여편님이 합세했다. 마지막 광활한 물로 행굼이 시작됐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 행굼이길 빌었다. 다행히 물을 빼고 탈수 단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방금 빨래 끝났다고 벨이 울렸다.

기계에 리듬을 맞춘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물론 기계 없이 이 많은 빨래를 하는 건 더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런 기계를 개발하는 것도 만드는 것도 파는 것도 옮기는 것도 모두 힘든 일이다. 힘들게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시장 가치가 아니라 노동 그 자체로 보상 받고 존중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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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여행 후 한달 내외로는 여행기를 써왔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의 여파가 너무 컸다. 이 여행의 열병, 혹은 여운을 씻어내는데 두 달이 걸렸다. (감성감성충충) 이후 여러 사정으로 사진도 덜 찍어서 오래된 메모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일정과 이동_20170421_20170504

파타고니아를 떠나기로 하고, 그럼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바로 산티아고로 가기는 아쉬워 칠레 중부, 푸에르토 몽트(Puerto Montt)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앞서 말했지만, 우린 이 비행기를 끊은 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반성했다.) 푸에르토 몽트 공항에서 내려 터미널로 이동 후, 바로 발디비아로 갔다. 별 생각없이 갔는데 의외로 안락한 생활을 했다. 덕분에 화산과 온천으로 유명한 푸노, 네루다의 고향 테무코도 제끼고, 산티아고행 야간버스를 탔다. 여러 업무를 병행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기 위해 아타카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양이와 이별_0421

푸에르토 몽트 공항은 단순했다. 짐을 찾고 나가니 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내가 있었다.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간단히 도너츠로 요기를 하고, 발디비아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대략 2~3시간을 달려 발디비아에 도착했다. 발디비아는 큰 도시가 아니라 호스텔로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려고 보니 양이가 사라졌다. 네팔 포카라의 기념품 점에서 티베트 난민들이 야크털로 만들었다는 양 인형이다. 거진 1년의 시간을 우리와 함께 여행했다. 버스 바닥을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는 배낭 한쪽에 잘 묶고 다녔는데 이날 따라 대충 주머니에 우겨넣은 내 잘못이다. 우수아이야에서 합류한 귀노(펭귄인형)에 대한 질투일까, 파타고니아에서 만난 넓은 벌판과 양 친구들 때문일까. 우린 며칠을 가슴 아파했다. 페루, 볼리비아에서 수 많은 알파카, 라마 인형을 마주칠 때마다 양이 생각이 났다. 돌이켜보면 양이를 잃어버고 나서부터 오래된 물건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디비아(Valdivia)_0421_0426

칠레 중부에 위치한 여러 도시 중 하나다. 푸에르토 몽트는 제법 큰 항구 도시다. 그 위에 있는 발디비아는 약간 내륙에 위치했고, 앞에는 태평양과 합류하는 굵은 강줄기와 섬들이 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연어, 생선, 조개 등 갖가지 해산물이 풍부하다. 또한 유럽에서 온 각지의 이민자들 중 독일인들이 발디비아에 많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칠레에서 유명한 맥주 중 하나인 Kunstman 맥주의 양조장(및 박물관)도 있다. 산과 강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그런지 뻑하면 비가 온다.


숙박_Airesbuenos Hostel Valdivia_4+1도미토리_5

만만한 예약닷컴에 보니 발디비아엔 저렴한 숙소가 별로 없었다. 주로 칠레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라 그런지 주로 펜션류가 많이 보였다. 그러다 호스텔세계에 들어가니 딱 하나 호스텔이 있었다. 이름을 검색해보니 자체 홈페이지도 있었고, 느낌이 좋아보였다. 홈페이지로 직접 예약이 가능해서 예약 메일을 보냈다. 발디비아에 배낭 여행객이 갈만한 호스텔이라곤 여기 밖에 없는데, 칠레 각지를 여행하는 배낭 여행객들은 많으니 호스텔은 늘 바글바글했다.

호스텔 주인은 칼리포니아 출신인데 조금 까다로운 것 같지만 지킬 것만 지키면 잘해준다. 숙소엔 직접 만든 발디비아 가이드북이 있어서 매우 유용했다.

침실은 도미토리지만 젤 윗방에 침대 4개에 다락방 하나라 안락했다. 아침도 주는데 대충 갖다 먹는 식이 아니라 개인별로 요거트+씨리얼, 빵을 세계지도가 그려진 테이블 받침에 서빙해줬다. 차는 하루 종일 마실 수 있게 뜨거운 물도 비치되어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주방이다. 실외정원을 사이에 둔 반 야외 주방이라 냄새 나는 해산물도 맘껏 요리할 수 있었다. 주방 시설도 경험한 호스텔 중엔 손에 꼽을 만했다. 야외 정원엔 호스텔 대장인 오리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가르델로 탱고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은듯 하다. 수컷이며 그래서 인지 여자만 좋아하고 남자가 만지려고 하면 쫀다. 주로 오전에 수산 시장에서 해산물과 야채를 사와서 보관했다가, 오후에 건너편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보충하고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칠레의 훌륭한 와인과 해산물(특히 조개류)을 마음 껏 즐길 수 있었다.

거의 매일 비가 오는데 맥심에서 줄 것 같은 커피잔에 라떼를 마시며 창밖을 구경했다. 홈페이지엔 호스텔 소개뿐만 아니라 발디비아에 대한 정보, 행사 등도 소개된다.

http://www.airesbuenos.cl/


시장과 바다사자

시내 중심을 지나 강가에 가면 주로 수산물을 파는 시장이 있다. 배가 고파 시장 옆에 식당가로 가서 조개국과 생선 구이를 먹었다. 조개가 듬뿍 들어가서 맛이 진했다. 시장을 갔다. 예전 갈라파고스 다큐에서나 봤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생선을 다듬는 상인들 뒤로 바다사자들이 도열하고 있었다. 생선을 다듬고 남은 내장과 찌꺼기를 던져주면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저 커다란 덩치들이 좁은 철장 틈새로 어떻게 들어갔나 싶었다. 바다 사자들을 한참 구경했다. 그들은 시장이 파하면 귀신같이 이동했다. 시장에서 좀만 가면 다리가 있는데 그 앞이 그들의 휴식터였다. 버려진 구조물에 대장 물개들이 올라와 휴식을 취했다. 미운털 박힌 애들은 올라오면 밀어버렸다. 육지 개들이 그들을 위협했지만 서로 경계선을 잘 지켰다. 이런 바다사자의 행동을 한 시간은 지켜봤다. 느린 동물을 보는 건 재밌고 시간이 잘 간다.

시장엔 고등어를 비롯한 큰 생선과 여러 종류의 조개들, 성게 등이 있었다. 원래 이 지역 연어가 유명하다는데 한 군데만 팔았다. 연어 철이 아닌가 보다. 호스텔 주인한테 물어보니 마을버스 타고 강 안쪽 마을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거란다. 여기서 잡힌 연어는 대부분 산티아고로 바로 간다고 했다. 성게는 한 번 사봤는데 맛이 이상했다. 주로 조개를 사다가 요리해서 먹었다. 1,2천 페소만 줘도 한 봉지를 가득 줬다. 긴 조개와 둥근 조개를 먹었다. 다들 크고 살이 많았다.

숙소에서 이걸 해감하려고 했으나 입을 안 벌렸다. 끓는 물에 넣고 삶았더니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국 조개랑은 성질이 다른 것 같다. 조개 듬뿍 넣은 파스타에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잠이 꿀처럼 왔다. 다음 번엔 마트에서 콩나물을 사다가 콩나물 조개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고향의 맛이 났다. 생선(대구) 조림도 한 번 만들었다. 마트에서 중국식 김을 팔길래 함께 밥을 먹었다. (절대 사면 안된다. 산티아고 한인 슈퍼에 가면 같은 가격에 김을 한 가방 살 수 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만난 폴 부부를 여기서 다시 만났는데 김과 생선 조림을 나눠주니 엄청 좋아했다. 특히 폴 아저씨는 밥에 김 싸먹는 재미를 들였다.


대학과 숲

발디비아는 대학 도시로도 유명하다. 칠레 남부 대학(Universidad Austral de Chile)를 포함해 여러 대학이 있다고 한다. 특히 이 남부 대학은 이 지역 생태 연구를 열심히 해서 대학 옆에 식물원(Jardin Botanico)도 끼고 있다. 주말을 맞아 대학과 식물원 산책을 다녀왔다. 대학 캠퍼스도 높은 건물이 없고, 나무가 많았다. 긴 가로수가 도열한 길도 있었다. 식물원엔 놀러 온 가족들도 많이 보였다. 안내판에 개, 공 등은 출입금지라는데 다 가지고 왔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 나무들이 시원시원하게 잘 자랐다. 아쉽게도 나무 종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오는 길에 대학 건물 옆 밤나무를 봤다. 아래 밤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둘의 잠바 주머니를 가득 채울만큼 가져왔다. 다음날 간식으로 쪄먹었다. 꿀맛이었다.


Isla Niebla 근방

시내에서 다리를 건너면 Niebla라는 섬 지역으로 갈 수 있다. 시내 중심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갔다. 토요일에 가면 해변에서 먹거리를 판다고 해서 찾아갔다. 너무 일찍 찾은 탓인지 아무것도 없었다. 간만에 해변과 시골길만 거닐고 왔다. 무료로 성곽도 둘러 볼 수 있었다. 며칠 뒤 다시 Niebla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Kuntsman 맥주에 내려서 양조장을 구경하려고 했다. 투어 가격이 꽤 비쌌다. 함께 있는 레스토랑 가격도 좀 부담스러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선착장에 내렸다. 강 건너 마을인 Coral로 가는 배가 30분 간격으로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섬에서 내려 먼저 식당을 찾았다. 좀 안쪽으로 들어가니 할머니(Abuela) 식당이 있었다. 난 연어 구이를, 여편님은 내장탕을 시켰다. 내 얼굴만한 연어 구이가 나왔다. 간도 잘 베어 맛있었다. 여편님은 매운 소스를 풀어 내장탕을 마셨다. 산티아고 가면 돼지뼈를 사다가 감자탕을 끓이겠다던 의지가 꺾이는 순간이었다. 껌을 사고 언덕을 올라갔다. 개 말곤 별개 없었다. 다시 내려와 선착장 쪽으로 갔다. 어마어마한 펠리컨들이 어선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발디비아의 물개와 마찬가지로 사냥 대신 인간에 기생하는 걸 택한 자들이다. 그래도 하늘에서 바다로 안착할 때의 폭격 포스만큼은 웅장했다. 짧은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귀환했다. Niebla 섬을 오고가는 버스는 언제나 귀엽고 정겹다.


외식_중국집(Shanghai)과 페루집(La Cevichería)

첫날 저녁은 외식을 했다. 해안가에 왔으니 스시를 먹어보려고 했다. 주인장에게 스시집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주인장 여러 가게를 보여주더니 우리 성엔 안 찰 것이라고 했다. 설명을 들으니 딱 캘리포니아롤 수준인 것 같았다. 그나마 근처 나라인 페루 요리를 괜찮을 것 같았다. 페루 물회인 쉐비체를 먹기로 했다. 파란 바탕의 가게였다. 쉐비체 두 개와 감자(Papas Bravas)를 시켰다. 한참 맛있게 먹는데 쉐비체에서 비닐이 나왔다. 항의했더니 새걸 다시 줬다. 어찌저찌 쉐비체 세 그릇을 실컷 먹었다.

터미널에서 숙소로 올 때 커다란 중국집을 봤다. 이름은 상하이란다. 저길 한 번 가기로 했다. 일요일 점심을 맞아 깐풍기를 먹으러 갔다. 튀김옷이 아쉬웠지만 맛있었다. 고추를 달라고 해서 간장과 함께 매운 소스를 만들었다. 옆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철판 구이를 먹고 있었다. 발디비아를 떠나는 날 배낭을 들고 와서 철판구이를 먹고 말았다.


발디비아에서 파타고니아에서 얼었던 몸을 잘 녹였다. 강과 숲, , 느린 바다사자 들이 마음을 잔잔하게 했다.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지만 비도 많이 오고, 해산물도 많고, 사람들 생김새도 다양했다. 내가 상상했던 칠레의 모습이 가장 잘 담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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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산장 도착 후 하루 쉬고, W 구간을 걸은 이야기다.


413_5일차_날씨 맑음

그레이 산장(Refugio Grey) 주변_4.2km_20

꿀잠을 잤다. 배낭 메고 안 걸어도 되니 행복하다. 짐만 없으면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4일 내내 네팔에서 트레킹하던 때를 많이 떠올렸다. 여편님이 배낭 메고 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짐 들고 앞장 서 가던 포터 아속만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참 좋은 시절이었다. 포터가 짐 들어주고, 길 알려주고, 숙소 잡아주고, 찻집에서 차 주고, 간식 주고, 숙소에서 이불 주고, (고기, 야채도) 주고 천국이었다.

아침은 뜨근한 오트밀을 먹었다. 이제부터 나타나는 산장에선 뜨거운 물(마실, 씻을)이 늘 제공된다. 물 하나 끓이려고 갖은 고생을 안해도 된다. 아제같지만 W코스 이전과 이후는 편의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커피도 달근하니 맛있다. 조식 나오는 모양새를 보니 괜찮아 보였다. 내일은 조식을 사먹기로 했다.


11시부터 3시까지 테라스 의자를 차지하고 광합성을 취했다. 눈 앞에 산 위로 햇살이 절묘하게 비춘다. 어제 빨아둔 양말과 옷 가지도 함께 말렸다. 여편님도 옆 자리를 차지했다. 온몸의 피로 물질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온다. 식량 보급을 위해 캠핑장에 있는 매점을 찾았다. 의외로 살 게 없었다. 간식으로 쓸 씨리얼은 아직 충분했다. 미리 살 필요는 없었다. 전투 식량을 사려다가 말았다. 산장에서 점심 식사로 제공되는 참치 샌드위치를 할인해서 팔고 있었다. 냉큼 사서 먹었다. 가스를 사려고 물으니 없단다. 이걸 어쩌나, 취사실에 기웃거려봐도 남은 가스나 쓸만한 식량은 없다.

난 다시 휴식 자세를 취하고, 여편님은 조지를 찾아보겠다며 캠핑장으로 갔다. 에릭 남매와 조지는 모두 Paso에서 하루를 자고 오늘 Grey로 온다고 했다. 아직 그들은 보이지 않고, 전날 Paso 캠핑장에서 만났던 하비에르라는 파크 레인져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할 일 없으면 강가에 있는 레인져 사무실에 저녁 먹으러 오라고 했단다. 조지도 보이면 같이 데려오라고 했다. 저녁 만들 재료도, 연료도 없었는데 잘 됐다. 오후에 주변 산책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4시가 되어 전망대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Grey 산장에서 왔던 길로 30분 쯤 가면 전망대로 빠지는 길이 있다. 멀리 보이는 빙하를 전망했다. 수직 표면을 볼 수 있어서 어제 내려오면서 보던 것과는 다른 맛이다. 언덕 아래 강가엔 떨어져 나온 빙하 조각들이 몰려다니고 있다. 안내문을 보니 약 백년 전만해도 빙하가 지금 Grey산장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러다 온난화로 녹기를 반복해 빙하선이 점점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Grey 산장을 지을 때는 거기가 빙하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돌아오다 옆길로 빠져 강가로 갔다. 작은 해변과 BIGFOOT 사무실, 레인져 사무실이 있다. 빅풋 직원이 카약을 정비하고 있다. 앞으로 며칠간은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했다. 해변에 가니 아주 작은 빙하 조각이 떠다니고 있다. 들고 있던 스틱으로 끌어서 주웠다. 손바닥만한 얼음 덩어리다. 멀리서 봤을 때 푸른 빛과 달리 작은 빙하 조각은 아주 투명했다. 부셔서 먹어봤다. 얼음 매니아인 여편님이 열광했다. 적당히 부셔서 보온()병에 담았더니 다음날까지 짤랑거렸다. 대단한 결정체다. 저 멀리 빙하 안에는 아직도 둘리 엄마가 잠자고 있을까? 둘리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오는 길에 다시 캠핑장에 들렀다. 에릭 남매가 막 도착해서 텐트에서 쉬고 있었다. 매우 반가웠다. 에릭은 내일 빙하 카약을 할거라고 했다. 이젠 일정이 달라질테니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스가 남냐고 물었다. 사실 이 준비왕 에릭에겐 첫날부터 가스가 4통이 있었다. 트레킹 내내 아무리 잘 해먹어도 3통을 다 쓰기도 쉽지 않다. 예상대로 아직 3통이 남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선뜻 가스 한 통을 준다. 얼마든 주겠다고 했지만 선물이라며 값은 사양했다. 여전히 조지는 보이지 않았다.

매점 앞에 어제 만났던 밥말리와 여자친구가 있다. 반갑게 재회했다. 알고보니 여자친구가 파크 레인져였다고 한다. 하비에르가 초대한 저녁 식사에서 밥 말리가 요리할 거라고 했다. 숙소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레인져 사무실로 갔다. 들어가보니 한 구석에 조지가 앉아있다. 엄청 반가웠다. (조지 조지 웰알유 노래부르고 다니던 여편님이 엄청 신나했다.) 밥 말리와 여자친구인 블랑카, 하비에르 거기에 아브라함과 띠또라는 아저씨 둘도 있었다. 아브라함과 띠또 아저씨는 여기서 다리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우리가 전날 건넜던 그 다리들 말이다. 아브라함 아저씨는 공원에서 퓨마도 3번이나 봤다고 했다.


블랑카는 파크 레인져로 일하다 지금은 쉰다고 했다. 남자친구인 밥 말리에게 토레스 델 파이네 구경을 시켜주러 왔다고 한다. 전문 가이드를 대동하거나 레인져들만 다닐 수 있는 산길도 있다며 여러 사진을 보여줬다. 그 중 3일 전 Paso 고개 사진을 보여줬는데 충격 그 자체였다. 눈이 어마어마하게 와서 주황색 표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눈 속에 묻힌 깃발을 찾아가며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우리가 무사히 트레킹을 하고 있는 건, 철저한 사전 조사와 장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무사히 걸은 건 철저히 날씨와 운, 하늘이 도운 것이었다. 산불 얘기도 들었다. 5년 전, 한 관광객의 실수로 (참치캔에 기름 닦은 휴지를 모아놨다나….) 큰 불이 났었다고 한다. 불은 장장 50여 일 간 타올랐고, 이로 인해 W구간의 숲이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한다.


하비에르는 와인 안사왔냐고 쿠사리를 주더니 요상한 와인한방탕 같은 걸 만들어서 줬다. 한참 뒤 기다리던 식사가 준비됐다. 파스타와 찜닭이다. 하비에르가 배식을 한다. 우리한텐 콩알만한 고기 덩어리만 주더니 조지에겐 큼지막한 닭다리를 준다. 역시 모든 관심은 조지에게 있었던 것이다. 우린 그저 (조지와 친한 덕분에) 딸려온 반찬 같은 존재였지만 파스타라도 배불리 먹었다. 11시가 다 되서 숙소로 돌아왔다.



414_6일차_날씨 맑음

그레이 산장(Refugio Grey)-파이네 그란데 산장(Refugio Paine Grande)-이탈리아노 캠핑장(Campamento Italiano)_20.5km_98

푹 자고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먹는 조식이다. 빵과 시리얼이 주어지고, 햄과 치즈는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양질의 지방과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햄을 열 장 가까이 먹었다. 미리 주문한 점심 도시락도 받았다. 1명분만 주문하고 나머지는 중간에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점심 도시락은 부실했다. 전날 5,000페소에 사먹은 참치샌드위치에 사관지 밴지 모를 과일, 초코바가 전부다. 그나마 과일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다.

아침을 차려줬는데도 어영부영하다보니 9시가 다 되서 출발했다. 이날 길은 전반적으로 평탄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나도 화창했다. (앞으로 계속 날씨는 화창했다.) 옆에 끼고 있는 그레이 호수엔 주변 설산과 빙하가 비친다. 점점 빙하가 작아진다. 곧 빙하와 이별한다. 화창한 경치를 즐기며 걷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한국 여자 2명을 만났다.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배낭을 두고 빙하를 보러 간다고 했다. 꼭 전망대까지 가서 빙하를 보고 오라고 했다. 이 분들은 이후 일정이 맞아서 마지막날까지 계속 만났다. 경치도 좋고, 하루 푹 쉬어서 더 여유있게 걸었다. 그러다보니 2시가 다 되서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도착했다.


파이네 그란데 산장은 그레이 산장보다도 훨씬 규모가 컸다. 바로 앞에 호수를 끼고 옆엔 벌판 뒤엔 산이 있어서 그림 같았다. 매점에서 간식 거리를 사려고 했는데 영업시간이 아니다. 보통 산장 매점은 아침과 저녁 시간에만 운영한다.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닫은 유리문으로 계란과 씨리얼바 등 먹거리가 풍성했다. 침을 흘리며 산장 식당에 가봤다. 직원들이 식사 중이었다. 점심 식사가 있냐고 물으니 배식통을 열어 보여준다. 감자수제비다. 얼른 한 그릇을 시켜서 여편님의 샌드위치와 나눠먹었다. 칼칼한 고춧가루까지 풀어 먹으니 북한산 아래 수제비집이 부럽지 않았다. 빵이 무제한이라 한 봉지 챙겨서 가방에 담았다. 가벼운 홍차를 마시며 산장앞 벌판에서 딩굴었다. 천국이었다. 쉬는 도중 나탈레스에서 몇 번 마주쳐서 친해진 폴 아저씨를 만났다. 부인과 함께 W코스를 걷고 있다. 삼봉에서 시작해서 오늘 그레이 산장으로 간다고 했다. 부러웠다. 두 분 다 건강하고 맘씨 좋은 부부다. 작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가 되니 부쩍 더워진다. 지나치는 서양 젊은이들은 반팔도 입고 다닌다. 우리도 옷차림을 가볍게 바꿨다. 이탈리아노까지 가려면 좀 서둘러야했다. 부지런히 걸었다. 이날부터 뭔가 허전했다. 급격하게 많아진 사람들 탓도 있었지만, 바싹 타버린 숲이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전날 말로 들었던 것보다 산불로 인한 숲의 황폐화는 상태가 심각했다. 나무는 모두 검거나 희게 타서 숲이 아니었다. 사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걸으며 가장 신났던 것은 알록달록 우거진 숲을 즐기는 일이었다. 숲이 죽어있으니 맑은 호수도 기묘한 산세도 흥이 떨어졌다.


꾸역꾸역 6시가 넘어서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도착했다. 공용 캠핑장에서 머무는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괜히 무료가 아니다 싶을 만큼 시설이 열약했다. 계곡 안쪽에 위치해서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았다. 밤부터 낮까지 계속 습하고 추웠다. 수도 시설 따윈 없고 옆 계곡에서 물을 떠다 써야했다. 그나마 푸세식 화장실이 설치된 것이 기적이었다. 저녁으로 그간 아껴뒀던 밥요리를 해먹었다. 차우파가루가 들어있는 밥에 말린 버섯을 불려 끓였다. 후딱 먹고 얼른 잤다. 패딩을 개시했다. 날씨가 맑아지니 나무 사이로 별이 빛났다.



415_7일차_날씨 맑음

이탈리아노 캠핑장(Campamento Italiano)-브리타니코 전망대(Mirador Britanico)-이탈리아노 캠핑장(Campamento Italiano)-프란세스 캠핑장(Campamento Frances)_11.7km_141

밤새 속이 이상했다. 새벽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다. 힘든 날의 시작이었다. 전날 도착했을 때 전망대를 다녀와서 텐트를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고 배려심 없다고 욕을 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아침에 습기로 텐트가 왕창 젖는 것이다. 아침 9시가 다 되서도 계곡엔 볕이 들 생각을 안했다. 빈 속을 안고 이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컨디션도 최악인데 이날 코스도 여러모로 영양가가 없다.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짐을 놓고 계곡 안쪽에 브리타니코 전망대를 다녀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잘 순 없으므로 30분 거리에 프란세스 캠핑장으로 이동한다. (공용 캠핑장은 이틀 이상 머물 수 없다. 프란세스와 이탈리아노의 시설차이를 감안하면 머물라고 해도 죽어라 가야 한다.) 장소 이름도 정 안 가게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이런 식이다. 이 트레킹을 다시 한다면 브리타니코 전망대는 생략하고, 이탈리아노를 거치고 프란세스에서 머물 것이다. 3일짜리로 온다고 해도 브리타니코 전망대를 가는 것보다 그레이 빙하를 더 윗쪽까지 보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속이 부글부글 거리므로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건 사탕밖에 없었다. 이날 사탕만 10개로 전망대를 올랐다. 다행히 짐이 적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초반은 돌길이라 스틱질도 쉽지 않다. 좀 올라가니 속리산 계곡의 느낌이다. 길은 완만해져서 갈만했다. 11시가 되서야 계곡에 해가 들기 시작했다. 아랫편엔 아직도 안개가 자욱하다. 중간 중간 산에서 빙하 덩어리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2시간 반이면 올라간다는 데 1시가 되서야 전망대에 도착했다. 주변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쌓여있다. 이 장면 하나 보자고 하루 다 써서 다녀오기엔 힘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나바리노섬 푸에르토 윌리엄스에서 만났던 티모와 티모 친구다. 하루 못봤던 조지도 다시 만났는데 조지와 티모도 아는 사이였다. 첫날 조지가 자기 호스텔에도 O코스를 하겠다는 친구들이 이틀 뒤에 출발한다고 했었다. 이 걸음 빠른 독일 청년들이 그새 우리를 따라잡은 것이다.

무난한 하산 길에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났다. 여편님이 물 웅덩이에 발을 빠뜨린 것이다. 난 그냥 놔뒀으면 했는데 그녀의 판단은 흙묻은 신발을 씻는 것이었다. (여편님: 진흙이 양말까지 묻어서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시냇물에서 잘 씻었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삼일 간 양말을 말리느라 고생해야 했다. 결국 이런 저런 고생 끝에 5시가 되서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복귀했다. 서둘러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쌌다. 530분 프란세스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이건 정확히 30분 걸려서 6시에 도착했다.


프란세스 캠핑장은 구조가 독특했다. 여기서부턴 Fantastico Sur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숙소들이다. 텐트를 바닥에 바로 치는 것이 아니라 설치된 평상 위에 친다. 덕분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서 해방이다. 샤워장&화장실, 개수대는 캠핑장에서 5, 매점과 식당은 15분을 내려가야 한다. 몇 번 오르락 내리락하면 하루 체력의 5%를 소진해버린다. 한 시간 전에 정리한 텐트를 다시 치는 일이 참 귀찮았다. 여편님은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말에 샤워를 강행했고, 나는 텐트에서 몸을 녹였다. 찬물 생쥐가 되서 돌아올 거란 예상과 달리 여편님은 샤워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았다. 이건 꼭 해야한다. 나도 용기를 내어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실&화장실은 첫날 중앙 롯지의 화려한 건물과 동일한 수준의 새것이었다. 물이 어마어마하게 뜨거웠다. 태양광 발전이란다. 재생에너지 만세다. Grey에서 나오던 온수와는 품격이 달랐다. 평소 5분이면 하는 샤워를 30분이나 했다. 실로 인생 샤워라 불릴만한 순간이었다. 여러모로 뭉친 몸이 많이 풀렸다.

상쾌한 마음으로 매점을 찾아갔다. 계란 4개와 파스타, 팩 와인(Fantastico Sur 매점에선 좀 더 저렴한 팩 와인을 취급한다.) 사고 간식으로 쓸 씨리얼바가 있는지 물어봤다.


부록_씨리얼바와 나

트레킹을 하며 남들 다 좋다는 초코바는 하루 만에 물렸다. 하지만 씨리얼바는 아침에 하나 먹고, 오전에 하나 먹고, 점심 때 하나 먹고, 오후에 산장 다 오기 전에 하나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전날 밤 텐트에 누워 난 왜 이렇게 씨리얼바를 좋아하는지 회상했다. 대학생 시절 남들이 공강이 없어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울 때 난 칼로리균형, 의사유 같은 씨리얼바를 먹었다. 살 빠졌을 땐 에너지바, 살 쪘을 땐 다이어트바로 체형도 조절했다. 미국산 씨리얼바도 꽤나 애용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이 매점에서 발견한 것이다. ‘”자연계곡” 당장 5개를 샀다.


계란과 파스타를 듬뿍 넣어 순하게 끓인 수제비로 앓았던 속을 달랬다. 후끈하게 와인도 조금 마셨다. 화장실 온수가 워낙 뜨거워서 뜨거운 물도 따로 끓여 놓을 필요가 없었다. 나무 사이로 또 다시 엄청난 별빛이 쏟아졌다. 훈훈한 밤이었다.




416_8일차_날씨 맑음

프란세스 캠핑장(Campamento Frances)-쿠에르노 산장(Refugio Cuernos)-칠레노 산장(Refugio Chileno)-토레스 캠핑장(Campamento Torres)_20.5km_164

또 다시 결전의 날이 밝았다. 아침 7시 퍼 자고 일어났다. 세면대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로 오트밀과 커피를 쉽게 마실 수 있었다. 그래도 왔다갔다 하다보니 체력이 꽤나 소진됐다. 뭐 한 것도 없는데 9시 반이 되서야 출발하게 됐다. 원래 이날의 목표는 무료 캠핑장인 토레스까지 가는 것이었다. 무료기도 하고 다음날 토레스 삼봉에 다녀오는 데도 훨씬 편하다. 하지만 출발이 늦어지면서 칠레노 산장까지만 가는 것으로 목표를 조정했다.

어쨌든 전날에 비해 컨디션이 좋으니 훨씬 갈만했다. 트레킹도 이제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 고비만 넘기면 내일은 나탈레스로 돌아간다. 싱싱한 고기와 야채, 맥주를 맘껏 먹을 수 있다. 쿠에르노 산장까지는 호수를 끼고 가는 길이다.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 북유럽식의 이름이다.) 호수는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아 고요하다. 배도 몇 개 떠다닌다. 호수와 맞닿은 자갈밭까지 지나면서 맑은 정취는 극대화된다. 가볍게 2시간을 걸으니 곧 쿠에르노 산장에 도착했다.

편안히 쉴겸 산장 안 식당으로 들어갔다. 구석에 매점을 보니 컵라면이 있다! 점심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주저할 수 없다. 이천 페소씩을 내고 컵라면을 하나씩 샀다. 식당에 가니 뜨거운 물도 있고, 주방에 부탁하니 포크도 줬다. 마지막 소세지 또르띠아와 함께 뚝딱 해치웠다.


12시 반, 꿈 같은 점심과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편님은 컵라면 후유증에 따른 졸림으로 힘겨워했다. 더 못가겠다며 길 바닥에 누우려는 걸 말렸다. 비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미 상할 대로 상한 여편님의 방수 바지를 버리자고 했다. 더 이상 눈이나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신축성이 약해 활동성에 지장만 초래했기 때문이다. 풀 섶에 조용히 바지를 남기고 왔다. 곧 쉬면서 말리던 양말을 두고 오는 벌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꿈에서 바지 귀신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6시까지 칠레노 산장까지 가는 길은 길었다. 중간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진 왼쪽의 산 봉우리와 오른쪽의 호수, 벌판을 보며 걸었다. 곧 우리가 일주일 전에 출발했던 벌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 참 아득하다. 꾸역꾸역 오르막이 시작됐다. 곧 토레스 삼봉으로 향하는 계곡으로 들어섰다. 브리타니코 계곡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가운데 강줄기도 훨씬 굵고 계곡도 깊고 선명하다. 하나 둘 하산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산장으로 물자를 실어나르는 말과 마부 일행이 우리를 앞서 간다. 어찌저찌 다리를 건너 칠레노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 안에 들어가니 전날 만났던 한국 사람들이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부럽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안내 데스크에 캠핑 가격을 물었다. 99000페소?? 출발 전 Erratic rock에서 들었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자체 캠핑은 안되고 산장에서 제공하는 텐트에 3끼를 포함하는 풀 보딩만 된다는 것이다. 산장 도미토리 가격도 32500페소나 된다. 잠시 여편님과 회의를 했다. 곧 결단이 났다. 씨리얼바 4개를 더 샀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초콜렛 맛이 있다. 토레스 캠핑장까지 가기로 했다.


투혼의 산행이 시작됐다. 해는 거의 넘어갔다. 다행히 야간 산행이 가능할 정도로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일출 보러 새벽에도 많이 가는 길이니 당연하다.) 15, 30분이 지날 때 마다 씨리얼바를 물어 뜯었다. 오르막이 나타날 때 마다 허벅지가 터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1시간 만에 토레스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캠핑장은 엄청 붐볐다. 여기도 화장실 빼곤 시설이 열약하긴 마찬가지다. 물은 시냇가에서 떠야했다. 물 옆이냐 나무 아래냐, 어디에 텐트를 치냐를 두고 또 여편님과 설전을 벌였다. 평평한 곳이란 없다. 텐트를 치고 서둘러 저녁 준비를 했다. 오늘은 마지막 남은 빠에야를 끓였다. 남은 소세지와 갖은 양념을 다 집어 넣고 팔팔 끓였다. 맛있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했다. 다 껴입으니 별로 춥지는 않았다.




417_9일차_날씨 아침 맑고 곧 흐림

토레스 캠핑장(Campamento Torres)-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Mirador Torres del Paine)-토레스 캠핑장(Campamento Torres)-호텔 라스 토레스(Hotel Las Torres)_15km_100

텔 라스 토레스(Hotel Las Torres)-매표소(Laguna Amarga)-Puerto Natales_버스 및 미니벤 이동

6시에 눈을 번개 같이 떴다. 여편님은 가기 싫다고 난리다. 새벽에 이동하려면 집에 가고 싶어하는 고질병이다. 어찌저찌 채비를 갖추고 7시에 출발했다. 다들 올라간다. 돌밭이다. 반달이 떠서 어둡진 않다. 하나 둘 모두 우리를 앞서 올라간다. 어제 칠레노에서 만났던 한국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적당히 길을 헤메며 함께 올라갔다. 어느새 동이 텄다.

8, 삼봉 전망대에 들어섰다. 날씨가 맑다. 호수 위로 솟은 봉우리 위로 붉은 해가 비추고 있다. 서양에선 이걸 스테이크라고 부른다. 함께 한 수진양이 불타는 고구마라고 했다. 고구마가 훨씬 맘에 든다. 지리산 일출도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데 지구 반대편, 가장 날씨가 험한 곳의 일출을 본 건 대대손손의 덕을 내가 다 먹어치우는 것 같다. 호수의 물맛도 즐겨보고, 가운데 돌에 앉아서 사진도 찍었다. 서로 사진 찍어 주느라 바쁜 우리들과 달리 외국인들은 삼봉만 찍기에 바빴다. 몇몇은 아예 침낭을 들고 새벽부터 와서 기다린 모양이다. 삼각대도 줄비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삼봉과 일출을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귀신같이 구름이 몰려왔다.


9시 반, 하산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걸려서 토레스 캠핑장에 도착했다. 20분 만에 텐트와 짐을 챙기고 칠레노 산장으로 내려갔다. 내려갈 때도 똑같이 한 시간이 걸렸다. 구름과 오전 햇볕이 이루는 계곡 아래편의 풍경도 아름답다. 색색의 단풍 위로 나무가 없는 곳은 초콜렛에 생크림()을 얹은 느낌이다. 칠레노 산장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짐을 정비하기로 했다. (토레스 캠핑장에선 아무것도 버리지 말라고 해서 각종 쓰레기와 연료 등을 다 들고 왔다.)


부록_씨리얼바와 콜라

여편님은 샌드위치를 먹겠다 했으나 조그만 것이 너무 비쌌다. 난 씨리얼바 두 개면 된다고 했다. 여편님은 씨리얼바는 도저히 못 먹겠다며 콜라를 먹겠다고 했다. (콜라 한 캔 = 씨리얼바 2= 2000페소) 나로썬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각자 등을 돌리고 씨리얼바와 콜라를 먹었다. 맹물에 씨리얼바를 먹자니 음료 생각이 간절했다. 여편님은 꿀꺽 캬 포효하며 콜라를 비웠다. 그리곤 나에게 씨리얼바 한입을 달라고 했다. 심술나서 주려다 말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번엔 진짜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치사하다며 가방을 들고 가버렸다.


12, 남은 씨리얼바를 다 먹고, 천천히 짐을 싸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은 연료 통과 찢어진 내 방수 바지도 산장 뒤 쓰레기 봉지에 잘 처리했다. 그래도 난 여전히 텐트와 식기 등을 들고 있어서 배낭이 무겁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저 멀리 점이 되고 있었다. 따라잡는 건 포기하고 천천히 내려갔다. 매표소까지 가는 셔틀을 타려면 두 시까진 내려가야했다. 차곡 차곡 내려갈 때마다 그간 정든 토레스 델 파이네의 경관이 다르게 다가왔다. 텐트에서 잠 잘 때 빼고 마음껏 즐기던 들판도 이제 끝이다. 평지까지 내려오니 돌아보면 설산, 앞엔 풀밭, 나무, 호수 등이 다 보였다. 어디서 무리를 했는지 다리를 절며 내려오는 친구들도 몇 명 보인다.

2시가 다 되어 라스 토레스 호텔쪽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편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한국 사람들과 함께 셔틀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셔틀을 타고 매표소로 갔다. 매표소에선 토레스 기념 도장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찍었다. 버스는 2시 반에 슬슬 나타났다.


사실 전날 아침, 짐을 챙기는데 돌아가는 버스표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던져버린 것이다. 버스 기사에게 표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터미널 사무실에 가서 말하라고 했다. 일단 우리를 태우고 출발했다. 곧 공원을 벗어나 벌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과나꼬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호수와 홍학도 보였다. 호수 위로 비친 산의 풍경은 삼봉보다 더 아름다웠다. 맵양을 보니 호수 근처에도 전망대가 많았다. 다음 기회엔 차나 자전거를 타고 이 근방을 돌아봐야겠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버스 기사를 뒤로하고 조용히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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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Torres del Paine)

파타고니아 여행의 하이라이트 꼽힌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컸다.) 작은 국립공원 내에 빙하부터 호수, , 초원, 계곡 등 파타고니아의 다양한 자연환경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원 내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잘 구비되어 있고, 빙하 트레킹, 카약 등도 즐길 수 있다. 트레킹이 가장 유명한데 공원 한 가운데 봉우리인 토레스 삼봉(Las Torres)1~2일에 다녀오거나, 빙하와 주요 봉우리를 볼 수 있는 W코스로 3~5일에 걸쳐 걷거나, 공원 한 바퀴를 6~9일에 걸쳐 돌아보는 O코스(서킷) 등이있다.

Q코스라는 말도 있어서 대체 OQ의 차이가 무엇인지 매우 헷갈렸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일반적인 서킷은 O코스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고, Q코스는 O코스 +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서 남쪽길로 쭉 내려가서 LAS CARRETAS캠핑장을 거쳐 남쪽 게이트로 나가는 것을 포함하는 것 같다. (남쪽게이트로는 입장은 불가능하고, 나가는 것만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이 코스는 성수기(11~3)에만 닫는다?고 들었다.)


토레스 델 파이네 O코스(서킷)

우리는 이 다양한 선택과 옵션 중 매표소에서 시작해 반 시계방향으로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마지막에 브라타니코 계곡과 토레스 삼봉을 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이 중 포장도로는 미니벤 셔틀을 이용했다.)



49_1일차_날씨 맑은 후 흐리고 비 조금

Puerto Natales-매표소(Laguna Amarga)-토레스 중앙 산장(Refugio Torre Central)_버스 및 미니벤 이동

아침 6, 다행히 잠은 잘 잤다. 우리 방 나머지 프랑스 4명도 오늘 출발이라 모두 짐을 싼다. 내려가서 준비된 조식을 간단히 먹고, 얼려놓은 햄버거패티까지 배낭에 챙기고 숙소를 나선다. 짐은 커다란 검은 비닐과 쇼핑백에 싸서 맡겼다. 7시가 좀 넘었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대로에 커다란 십자가만 우리를 비춘다. 어두운 터미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다. 모두 아침 7:30 버스로 국립공원에 간다. 버스가 많다. 숙소에서 준 티켓에 쓰여진 버스는 제일 구석에 있다. 가장 구리다. (괜히 싼게 아니다.) 그래도 사람이 채워지고 출발한다. 뭔가 익숙한 분위기다 했더니, 구례에서 새벽에 지리산 가는 버스를 탔을 때 기분이다. 오래된 시외버스에 등산객만 가득차있다.

좀 춥더니 해가 뜨면서 바깥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렘과 추위가 교차한다. 과나꼬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국립공원 안에 들어가면 과나코를 실컷 볼 수 있겠지?’, ‘과나꼬는 초원에 살아. 우린 지금 산 속으로 들어가는데 걔들이 있겠니.’ , 허탈했다. 트레킹하면서 과나꼬를 실컷, 가까이서 보는 게 소원이었다.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과나꼬는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서나 볼 수 있었다. 좋은 경치를 만끽하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9시 반 쯤되어 버스가 매표서 앞에서 멈췄다. 우린 더 이상 이 버스를 타지 않을 거라 배낭까지 찾고 매표소 줄에 합류했다.

급 복잡한 서류를 작성하고, 표를 산다. 지도 2개를 받는데 하나는 (사용용) 영어, 하나는 (기념용) 스페인어로 달라고 했다. 여기서 주는 지도가 엄청 유용하고, 자세하고, (방수재질로) 튼튼하다. 고급이라 나탈레스의 CONAF 사무실에서도 보여만 준다. 다음은 간단한 영상 시청을 한다. 이걸 왜 보여주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다. 다시 짐을 꾸리고 미니벤을 타러 이동했다. 3,000페소를 내면 매표소에서 LAS TORRESS 호텔이나 중앙 산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 어차피 찻길이라 걸어서 이동해도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창밖에는 이 구간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토레스 중앙 산장(Refugio Torre Central)-세론 캠핑장(Campamento Serron)_15.5km_45

미니밴이 내려준 곳엔 커다란 정보센터와 화장실, 매점 등이 모여있었다. 생각보다 시설이 훌륭해서 당황했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편안한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사과와 숙소에서 만들어 온 쨈빵를 우걱우걱 먹어 치웠다. 우리 옆에 남녀 둘도 짐을 추스리고 있다. 혹시 O코스 가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반갑다. 칠레 콘셉시온에서 온 에릭과 마리아라고 한다. 둘은 남매 지간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늘 SERRON까지 간다고 한다. 곧 걸음 빠른 서양이 둘이 들어왔다 나간다. 아까 미니밴 창문에서 본 사람들이다.

10시 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일단은 무난한 평지다. 부슬비가 내리지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허름한 롯지 단지를 지나니 언덕이 보인다. 오늘은 저 언덕만 넘어가면 된다. 여편님도 여유가 넘친다. 배낭도 별로 무겁진 않다고 한다. 여릿한 가랑비와 함께 벌판의 정취가 넘쳐났다. 천천히 언덕을 올라서니 젖은 나무로 우거진 숲이 나타났다. 1시간 쯤 지났다. 비가 좀 굵어져 판초를 입기로 했다. (네팔에서 구입한 무겁고 튼튼한 판초다.) 어정쩡한 바람막이와 방수바지를 덮어줘서 좀 테가 났다. 능선을 한 번 돌아보고 우거진 숲길로 들어갔다.

판초 효과를 만끽하며 무난하게 걸었다. 작은 동산 하나를 넘고 나니 힘이 들었다. 남은 길은 완만한 평지다. 큰 나무 아래서 가방을 풀고 쉬었다. 맵양에 따르면 곧 캠핑장이 나온다고 한다. 사탕을 삼켰다. 4시쯤 세론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엔 앞서 만난 에릭 남매와 또 다른 여자 한 명(무려 독서 중...)이 먼저 와있었다. 허허 벌판인 줄 알았는데 나름 지붕있는 건물이 있고, 지붕이 야외 테이블까지 덮고 있다. 건물 안에는 분명 관리하는 직원이 있는데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캠핑장 운영 기간이 끝나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것 보단 안심이 된다. 비가 좀 거세져서 텐트를 어디 쳐야할 지 고민이 됐다. 에릭 남매와 다른 여자 한 명은 나무 아래에 텐트를 쳤다. 요리하라고 만들어 놓은 커다란 천막이 비어있다. 우린 그 천막 안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주섬주섬 렌트샵에서 배운대로 텐트를 쳐본다. 생각보다 매우 비좁다. 대충 짐 정리를 하고 사람들이 있는 건물로 갔다.

여자 한 명과도 통성명을 했다. 조지, 영국에서 왔다고 한다. 순식간에 밥을 만들어 먹는다. 우리도 저녁 준비를 하기로 했다. 에릭 동생은 몸이 안 좋아서 텐트에서 쉬고 있다. 아픈 동생을 위해 텐트 안으로 에릭이 음식을 가져다 준다. (대체 저런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가 가능한지, 오빠와 여동생인 나와 여편님은 트레킹 내내 고찰했다.) 우리 캠핑의 요리사는 자동적으로 여편님이다. (나는 포터니깐 제외) 햄버거 페티를 뜨거운 물에 익히다 마지막에 감자범벅 가루를 넣었다. 거기다 각종 양념 가루도 넣었다. 햄버거 스테이크 감자 범벅이다. 맛있고 든든했다. 설거지는 내 담당이다. 건물 옆 개수대에서 배운대로 설거지를 했다. 국립공원 내에선 세제를 쓰지 않는게 좋다. 이럴 땐 일단 물로 행구고 흙을 가득 담아서 또 행구기를 반복하면 된다. 양치질 마치고 얼른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 여편님의 생애 첫 캠핑이다. 캠핑장 어귀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관련 자료를 구해와서 공부한다. 초보자에겐 3~5일 정도의 트레킹을 추천한단다. 길면 정신적으로 지친다고 한다. 8시도 되기 전에 졸음이 쏟아진다. 불을 끄고 잔다. 스르륵 스르륵 뭔가 기어다닌다. 캠핑장에 쥐가 많다더니 사실인 것 같다. 텐트를 툭툭 쳐서 내쫓는다. 밤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바람도 엄청 분다. 천막이라 더 큰 소리가 난다. 뭐가 무너진게 아닌가 싶어 나가보니 소화기 소리다. 다행히 천막은 무너질 것 같지 않다. 어찌저찌 실컷 잤다.



410_2일차_날씨 흐리고 비 조금

세론 캠핑장(Campamento Serron)-딕손 산장&캠핑장(Refugio & Campamento Dickson)_18.7km_83

비바람 속에서도 둘 다 12시간을 푹잤다. 나탈레스에서 준비하며 쌓인 피로를 산에서 푼 셈이다. 아침 8시에 넉넉하게 일어났다. 물을 끓이고 아침을 준비했다. 여유롭게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칠레 인스턴트 커피는 네스카페 보단 훌륭하다. 견과류와 건과일을 듬뿍 넣은 오트밀도 후루룩 마셨다. 든든하다. 조지는 이미 텐트에서 아침을 먹고 나왔다고 한다. 텐트가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 텐트를 말리고 있다니. 우리 텐트도 천막 안에 있었지만 아침 이슬과 함께 잔뜩 젖었다. 부랴부랴 텐트를 해체해서 말려두었다. 침낭도 좀 축축하다. 모든 짐이 축축하다. 짐을 챙겨보았다. 어제 실컷 먹었는데도 가방이 더 무거워졌다. 여편님이 습득한 꾸스꾸스는 다시 버리기로 했다. (세론 캠핑장 쓰레기통엔 먹지 않고 버린 음식들이 많았다. 아주 멀쩡한 것도 꽤나 있었다.) 세상에서 물이 가장 무겁다. 파타고니아 계곡물이 깨끗해서 물 안지고 다니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어찌저찌 11시가 되서야 길을 나섰다.

오늘의 코스는 무난하다. 전날과 비슷하게 200m 정도의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가면 쭉 평지다. 다만 언덕이 훨씬 가파르고, 그 다음 평지길이 매우 길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1시간 반을 오르니 언덕을 다 올랐다. 능선 오른편으로 에메랄드빛 강이 흐르고, 그 오른편엔 짙은 푸른 빛의 산을 하얀 눈이 덮고 있다. 비가 개이고 구름이 껴서 더욱 운치가 있다. 옆에서 쉬고 있던 에릭이 (에릭 남매는 절대 서둘지도 않고, 걷는 속도도 우리와 비등비등하다.) 벌써 절반 왔으니 천천히 가면 된단다. 신나서 영상도 찍고, 좀 더 능선을 따라 걷다가 2시쯤 경치 좋은 곳에서 점심도 먹었다. 아침에 또르띠아 소세지 말이를 준비했다. 거기에 시리얼바를 겻들이니 든든했다. 락앤락은 참 유용한 물건이다.

강 옆이라 언덕을 내려가니 제법 숲이 우거져있다. 어제와는 또 다른 느낌의 숲이다. 가는 길에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반가워서 인사하니 공원 관리원(Park Ranger)라고 한다. 코스 순찰을 도는 모양이다. 아 이런 사람이 있긴 있구나. 또 한 번 안심했다. 3시쯤 Coiron Ranger Station에 도착했다. 숨을 돌리며 안내도를 보니 이제 8km왔고, 딕손까지 앞으로 7km남았단다. 벤치에 않아 아니 누워 하늘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쉼없이 걷기로 했다. 호수와 가까워져서 그런지 종종 늪이 있었다. 초노빨 단풍숲 사이로 나무다리를 건넌다. 왼쪽에 보이는 산세도 나무색부터 땅색, 파란색, 흰색까지 겹겹이 층별로 다른 색을 띈다. 맵양의 말로는 캠핑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가도가도 캠핑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1km남을 때부터 캠핑장은 한없이 멀어지는 마법을 부린다. 겨우 막판 언덕을 넘으니 멀리 호수와 캠핑장이 보인다. 그 뒤로는 어렴풋이 딕손빙하가 있다. 괜히 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핑장이 아니다.


오후 5시 반, 후다닥 언덕을 내려갔다. 먼저 등산객 등록을 하라고 한다. 옆건물 캠핑장 안내소에 가서 예약 여부를 확인한다. 그러다 저 한쪽은 산장 건물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열었단다. 나탈레스 사무실에선 닫았다는데? 원래 밑이랑 산이랑 소통이 잘 안되나보다. 그러는 사이 여편님은 재빨리 캠핑->산장으로 바꾸는 절차를 마무리한다. 요금 차이만큼의 추가 요금만 내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이날은 자동 산장 찬스를 쓰게 됐다.

산장은 아주 아늑했다. 먼저 도착한 조지는 강가에 텐트를 치고 산장 안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 2층 방에 짐을 풀고 여편님이 먼저 샤워에 도전했다. 냉수였다. 나도 샤워에 도전했다. 빙하물이었다. 눈치로 보니 상주하는 아저씨들은 저녁이 되고 나서야 샤워를 했다. 짐을 풀다가 침낭의 매듭이 풀리지 않았다. 아침에 너무 서둘러서 짐을 싼 까닭이다. 보다 못한 여편님이 아래층의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산장 옆에 건물을 짓느라 장기 체류 중인 공사 인부들이 몇 명있었다. 기술자 답게 매듭을 풀어주었다. 여편님은 조지와도 친해졌다. 조지는 간호사라고 했다. 물집난 발을 보여주니 약도 줬다.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요리는 바깥 취사장에서 해야하지만 식사는 산장 안에서 해도 좋다고 했다. 오늘의 메뉴는 라비올리다. 네모난 파스타 안에 고기가 좀 들어있다. 조제상궁의 마법이 펼쳐지고 나니 코펠 한 가득 떡볶이가 탄생했다. 산장에는 간이매점도 있고, 술도 판다. 별 수 없이 맥주를 두 캔 사서 마셨다. 무려 4천페소였다. 술집에서 수입 맥주 한 캔 마셔도 이 가격은 한다며 위로했다. 10시 쯤 잠자리에 들었다. 달빛에 눈이 부셔 일어났다. 이날은 보름달이 떴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 대해 알아보던 중 달과 관련된 얘기가 있었다. 어느 여행객이 숙소 주인에게 언제 출발하는 게 가장 좋냐고 물었다. 그믐날을 전후해서 가는게 가장 좋다고 했단다. 그믐날 출발하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잦아들었다는 전설이다.



411_3일차_날씨 갬, 때때로 강한 바람

딕손 산장&캠핑장(Refugio & Campamento Dickson)-페로 캠핑장(Campamento Perros)_14.5km_118

이날 코스는 가장 만만했다. 지도상으로도 5시간이면 충분하다. 확실히 산장에서 자니 훨씬 아늑하게 잘 잤다. 7시쯤 일어나 일출을 감상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는데 옆에 인부들의 아침은 푸짐했다. 여편님이 설탕을 묻자 커다란 설탕통을 내밀었다. 냉큼 비닐팩에 커피와 설탕을 섞어 믹스를 만들고 남은 커피통은 기증했다.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짐을 싸놓고 주변을 산책했다. 캠핑장 뒷편에 있는 호수와 빙하의 이름이 딕손이다. 여기를 경계로 북쪽은 아르헨티나이기도 했다. 말을 타고 온 사람들도 있다. 부럽다. 산책하고 돌아와서 산장지기에게 돈을 냈다. 음악 틀어놓고 청소를 한다. 틈틈이 운동도 열심히 한다. 얘기를 해보니, 여름 성수기엔 포터로도 일한다고 한다. 캠핑장 사이를 오가는 비용이 꽤 비쌌다. 칠레 정부도 별로 안좋아한다고 했다. 저기 펄럭이는 파랑 노랑 깃발이 Magallenas 깃발이다. 이곳 파타고니아 사람들은 독립을 원한다고 했다.


1045분 출발했다. 에릭 남매는 슬렁슬렁 아침을 먹고 있다. 조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캠핑장은 대부분 분지에 있어서 어제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 한다. 호수와 빙하의 찬 공기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12시 쯤 전망대에 도착했다. 주변의 산세를 조망하기에 좋다. 알록달록 단풍 너머로 설산들이 둘러쳐져있다. 이럴 땐 초코바로 기운을 더해줘야 한다. 아침부터 맑던 하늘이 점점 더 개이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2시 쯤, 커다란 나무터기에 걸터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또 또르띠아에 만 소세지다.

지도를 보니 목적지인 페로 캠핑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페로 호수 근처에 도착했다. 호수 근처로 가니 턱밑에 빙하가 보였다. 어마어마한 포스였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호수 터기를 넘으면 광풍이 몰아쳐서 튕겨져 나갔다.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캠핑장으로 향했다. 맵양으론 코앞인 캠핑장이 무려 한 시간 거리였다. 겨우 겨우 거센 바람을 피해 도착했다. 오후 4, 이날은 우리가 가장 먼저 캠핑장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면서 안내문을 보니, 내일 PASO 캠핑장까지 갈 사람은 아침 8, GREY까지 갈 사람은 아침 7시에 출발하라고 했다. 일출이 820분인데 난감했다.


텐트를 치려고 자리를 몰색했다. 좋은 자리는 이미 캠핑장 텐트가 선점하고 있다. (캠핑장 텐트는 다 튼튼하고 넓고 좋아 보인다.) 평평한 나무 밑이냐, 푹신한 잔디밭이냐를 두고 여편님과 설전을 버렸다. 결국 나무 밑에 치기로 한다. 뒤이어 도착한 에릭 남매가 잔디밭에 텐트를 친다. 거기가 더 좋은데냐고 물으니 그냥 푹신한 건 개인의 취향이란다. 이틀만에 텐트를 친다. 첫날 내가 치는 걸 보고만 있던 여편님이 덮개 줄을 팽팽하게 당긴다. 텐트가 두 배는 넓어졌다. 걸음이 가장 빠른 조지가 오늘은 제일 늦게 도착했다. 어제 그 산장지기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산장에서 그 귀한 양주를 내주다니, 이후로도 쾌활하고 (예쁜) 조지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열악해 보이지만 여기도 나름 유로 캠핑장이라고 수세식 변기에 화장실도 있고, 취사실도 나름 건물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오늘은 토마토 소스와 참치를 겻들인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내일 대장정에 앞서 무거운 음식들은 다 해치워버리기로 했다. 남은 연료통도 버리기로 했다. 넘어가면 어찌저찌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작은 비닐하나까지 필요없는 건 다 버렸다. 또 한 번 여편님의 마법이 지나갔다. 토마토참치파스타에서 참치김치찌개의 맛이 났다. 천상의 맛이었다. 남은 가스불로 따뜻한 물을 끓여 보온병에 가득 채웠다. 배지근한 속을 안고 텐트로 들어갔다. 고도상으론 꽤나 높은 캠핑장인데도 여전히 텐트는 춥지 않았다. 히트텍과 덧바, 침낭만 덮어도 따뜻했다. 우린 아직 패딩을 개시하지 않았다. 내일의 결전을 생각하니 걱정만 앞섰다.



412_4일차_날씨 맑음, 때때로 강한 바람

페로 캠핑장(Campamento Perros)-그레이 산장(Refugio Grey)_17.8km_256

새벽 6, 이미 눈은 떴다. 잠은 잘 만큼 잤다. 하지만 밖은 춥고, 어둡다. 나가기 싫다. 가야 한다. 어찌저찌 살아서만 가면 따뜻한 산장과 예약한 저녁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원래 권장 코스는 Paso 캠핑장까지만 가는 것이다. 하지만 Paso 캠핑장은 전체 코스 중 가장 고도가 높고 추운 곳이다. 전략적으로 다소 무리한 코스를 가되, 산장과 저녁 식사를 예약한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밖은 생각만큼 춥진 않았다. 그래도 아침은 텐트 안에서 먹는다. 오물오물 미지근한 물에 오물렛을 타 먹었다. 여편님은 미지근한 오물렛은 싫다며, 투지만 있으면 고개를 넘을 수 있다고 했다. 715, 짐을 다 싸고 길을 나섰다. 길 좀 제대로 알아 놓을 걸,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달빛 덕에 넘어지지 않고 걸었다. 한참을 헤메다 맵양을 믿어보자는 여편님의 말을 따라 길을 찾았다. 동이 트기 전까진 태반을 헤맸다. 이럴 거면 8시에 출발하는 거랑 뭐가 다를까. 올라가는 느낌은 없고, 계곡 길을 오르락 내리락한다. 곧 허허 벌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황색 표지판이 저기 언덕까지 이어져있다. (한편 왼쪽을 보니 다른 길이 보였다. 나중에 맵양을 보니, 계곡 강을 따라오는 더 편한 길이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대차게 불기 시작한다. 맞바람에 약한 여편님이 뒤쳐지기 시작한다. 바위터기에서 전망보다가 날아간 사람도 있다던데 걱정이다. 바람을 해치고 언덕을 넘으면 또 언덕 너머에 주황 깃발이 꽂혀있다. 진정 죽자살자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넘었다. 11, 드디어 고개를 넘었다. (사실 이 고개가 토레스 삼봉 보다도 높다. 최대 고비라고 할만하다.) 고개를 넘자마자 더욱 더 맹렬한 바람이 몰아쳤다. 오후가 될 수록 바람은 강해진다. 그래서 가능한 일찍 출발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산과 빙하, 마치 산에서 빙하 줄기가 뿜어져 흘러내리는 듯했다. 우리 눈 아래로 거대한 빙하줄기가 펼쳐졌다. 여기서 시작된 빙하줄기가 그레이 산장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날씨는 화창했다. 파란 하늘 아래로 짓푸른 산과, 검푸른 빙하가 늘어져있었다.

탄성을 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와 반대로 도는 사람들은 아니고 고개까지만 둘러보러 왔다고 했다. Paso 캠핑장까지는 한 시간 반이면 내려갈 거라고 했다. 곧 황량한 벌판이 사라지고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등산로가 확연히 잘 정비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여러모로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내리막은 힘들었다. 길은 잘 정비되어있었지만 폭이 너무 높았다. 하나 하나 내려갈 때 마다 발바닥과 무릎에 무리가 갔다. 어떤 구간은 아예 엉덩이로 내려가는 게 편했다. 신체적인 피로감은 새벽의 오르막보다 더 했다. 145, Paso 캠핑장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으며, (이미 또르띠아 반은 내리막에서 해치웠다. 여편님은 이날 산은 정신력이 아니라 칼로리로 오른다는 것을 인정했다.) 캠핑장을 둘러봤다. 여기서 안 자길 천만다행으로 여길 정도로 시설이 열악했다. 원래는 없던 캠핑장인데 Perro-Grey 구간을 하루에 넘는 게 무리거나, 기상 상황에 따라 대피해야 해서 지은 것 같았다. 관리 직원들은 심심했는지 우릴 친절하게 대해준다. 밥말리처럼 생긴 친구가 우리에게 튀김 두 조각을 가져다 줬다. 속빈 튀김이었지만, 인생 최고의 튀김맛이었다. 3일간 냄비에 끓인 음식만 먹은 터라, 속은 기름을 맞이하자마자 춤을 췄다. 그 눅눅한 기름이 몸에 잦아들었을 때의 짜릿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215, 짧은 휴식을 마치고 후반전을 시작했다. 밥말리 말론 2시간 반이면 내려간다고 했다. 희망을 불사르며 출발했다. 곧 또 빙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아무리 바빠도 우린 관광객이니깐 전망은 챙기기로 했다. 오른쪽 아래 빙하를 끼고 내려간다. 참다랑어 생선 비늘처럼, 은빛, 잿빛, 푸른빛으로 다양한 색깔을 낸다. 무늬도 커다란 비늘같다. 조금만 더 체력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전체 트레킹 중 최고의 코스로 꼽았을 것이다.

빨리 가려고 해도 힘이 없어 슬렁슬렁 내려간다. 지도에서 가파른 구간이 있다고 해서 쫄았는데 큰 위험은 없었다. 한참을 내려가다보니 다리가 나온다. , 나탈레스에서 강의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Grey 산장에서 Paso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다리가 나온다. 2개까지만 건너서 전망대를 보고 내려와라. 3개까진 건널 필요 없다.’ 이런 내용이었다. 다리를 하나 더 건넜다. 삐그덕 삐그덕 거렸지만 다리 사이의 (빙하) 전망이 어마어마했다. 다리 건너편엔 말끔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한다. 다들 다시 Grey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Paso를 넘어가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옆길로 빠지면 전망대가 있어서 가방을 벗어두고 다녀왔다. Mirador라고 표시된 곳 치고 풍경 안 좋은 곳이 없었다. 드디어 막바지, 해는 늬엇늬엇 지고 Grey산장이 얼마남지 않았다. 총총총 걸어 내려가 6시 반, 대장정의 끝을 맺었다.


캠핑장에도 사람이 붐볐다. 산장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내부 로비는 화려했다. 직원은 덤덤하게 우리를 맞았다. 이제까지 겪은 산장, 캠핑장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도미토리는 어지간한 호스텔보다 깔끔했다. 우리 방엔 마늘냄새 가득한 청년이 구석에 자고 있었다. 얼른 짐을 풀고 샤워했다. X같은 옷도 안에 입은 것들 위주로 빨았다. 리셉션 옆에 BIG FOOT직원이 와 있었다. 내일 빙하 트레킹에 대해 물었다. 빙하 트레킹은 모래만 있고, 내일 카약은 가능하다고 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아마 다음날 빙하트레킹을 했다면 거기서 얼어버렸을 것이다.

8, 저녁을 먹으러 로비로 갔다. 로비는 정신없는 잔칫집 같았다. 신난 단체관광객들이 술을 잔뜩 시켜놓고 모험을 축하하고 있었다. 구석의 빈 테이블은 예약인지 뭔지 앉을 수 없다고 했다. 구석에 삼삼오오 모인 곳에 앉아 밥을 달라고 했다. 독점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듯 서빙하는 직원이 갑이다. 그래도 밥은 이 산속에서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싶다. 인스턴트지만 뜨거운 수프가 나온다. 주는 빵을 싹슬이해서 수프와 마셨다. 으깬 감자와 구운 돼!!!!가 나왔다. 뚝딱해치웠다. 나름 후식도 준다. 술은 꾹 참고 내일 마시기로 했다.

9시 반, 발이 아주 아팠다. 물집도 생긴 것 같다. 꿀떡 같이 잠을 잤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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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푼타 아레나스와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모두 토레스 델 파이네를 위한 이동, 베이스 캠프에 불과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두 도시에서 여러날을 머물게 됐다.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_0405_0406&0420_0421

칠레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다. 볼 거리로는 펭귄 투어가 유명한데 이미 끝났다고 한다. 주변 국립공원도 있지만 토레스 델 파이네에 집중하기 위해 건너뛰기로 했다. 하루만 자고 나탈레스로 이동했고, 나탈레스에서 돌아와서도 하루만 자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숙박_Huespedaje Sol_더블룸_1

페리가 제 시간에 출발했다면 밤 11시에 도착했을 거라 예약닷컴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페리가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저녁 시간에 도착, 예약할 필요는 없었다. 칠레 숙소들은 예약닷컴에서 부과하는 수수료 만큼 숙박료를 더 받는다. 비수기엔 예약 안하고 가는게 최곤 것 같다.) 파비앙과 막시모가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내려줬다. 안토니도 일단 우리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맵양에 표시된 위치로 찾아가니 없었다. 표시된 주소로 찾아가니 원래 차에서 내린 곳이었다. 겉은 조용해 보였지만 내부로 올라가니 사람이 많았다. 다들 나탈레스를 다녀왔거나 갈 사람들이다. 뜨거운 물 잘 나오고, 아침 식사도 잘 나왔다.


숙박_Hostal Independencia_더블룸_1

나탈레스 주인 아저씨가 추천해줘서 찾아갔다. 가격도 저렴했고, 겉보기와 달리 객실과 화장실이 매우 깔끔했다. 난방도 훈훈해서 하룻밤 만족스럽게 쉴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부엌이다. 작은 주방에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나무로 불을 뗀다. 이 위에서 바로 요리를 하면 된다. 기력 보충을 위해 돼지고리를 후라이팬에 구웠는데 연탄불고기 같은 맛이 났다. 성수기엔 조식도 준다고 한다. 겨울엔 뭐하냐고 물으니, 손님도 없고, 눈도 많이 와서 좋다고 한다.


Bar_The Clinic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안토니, 막시모, 파비앙과 다시 만나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전망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바로 숙소 뒤였다. 한참을 기다리니 안토니가 나타났다. 남아메리카의 시간 감각이란 게 다 그렇다. 처음 정한 장소로 가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요상한 나이트 클럽류였다. 중심가로 내려가서 좋은 맥주바를 물으니 The Clinic을 추천해준다. 호텔 바로 맞은편에 있는데 규모도 크고 깔끔하다. 칠레 내 주요도시에 분포한 체인이라고 한다. 자체 수제맥주 브랜드를 갖고 있는데 여기선 그냥 Austral 맥주를 판다. 바 한쪽엔 칠레의 주요 독재자들을 교수형 시킨 인테리어가 있다. 메뉴판 구석구석엔 정치 풍자가 담겨있다. 화장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아는 척을 한다. 우리가 타고 온 야간호 선장이란다. 우리가 갑판 위에서 구경하는 걸 많이 봤단다.

푸짐한 감자튀김과 함께 생맥주를 마시다 보니 파비앙과 막시모가 합류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얘기를 좀 더 듣다가 우린 먼저 귀가했다.


맥주_PATAGONIA VS AUSTAL

맥주 얘기를 이어서 한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Cerveza Austral 공장이다. 120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생산한 맥주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가 비싸지만 이 맥주만큼은 푼타 아레나스나 나탈레스에서 더 싸게 마실 수 있다. 파타고니아의 물맛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맥주맛이 참 맑고 경쾌하다. 결국 남는 것 기본 맥주인 Lager였지만 Yagan, Calafate 등의 이름을 가진 에일 맥주나 흑맥주도 맛있다.

아르헨티나에도 PATAGONIA라는 이름의 맥주가 있다. 부에노스 시내 곳곳에선 생맥주를 취급하는 매장도 들렀다. 개인적으론 AUSTRAL 맥주가 더 맛있었다. 맥주맛에 물맛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공항_PUNTA ARENAS

아레나스를 떠나기 전날 공항 가는 것부터 알아봤다. 나탈레스에서 타고 온 버스 회사에선 공항 셔틀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작 공항-나탈레스, 나탈레스-공항 노선의 승객은 태우면서 아레나스-공항 가는 승객은 안 태운다는 것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라고 한다. 셔틀버스는 시내 투어회사에서 취급하는데 1인당 무려 5,000페소다. 나중에 호스텔 주인한테 택시 가격을 물어보니 6,000페소면 간다고 한다. 아침 일찍 불러달라고 했다.

나탈레스에서 만난 분들이 아레나스 공항 라운지에서 놀다가 비행기를 놓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급한 마음에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정작 SKY 항공의 체크인은 1시간 반 전에 시작했다. 다른 노선이 없어서 직원이 느지막히 온 것이다. 공항은 단촐했다. 별탈없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늘에서 파타고니아를 내려다 볼 수 있을까 했지만, 좌석도 통로쪽이었고 날씨도 흐렸다.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_0406_0409&0417_0420

토레스 델 파이네의 베이스캠프지만 동네 자체도 강을 끼고 있어 소박하고 청명했다. 트레킹 전후로 총 6박을 머문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숙박_San Agustin(산 아거스틴)_0406_0409_도미토리_3

나탈레스엔 숙소가 매우 많다. 가서 고를 자신이 없어서 대충 괜찮다는 곳을 찾아 갔다. 그 호스텔은 죽어도 보이지 않아 옆의 호스텔로 들어갔다. 10인 도미토리 방에 아무도 없고, 1층 두 칸을 써도 된다고 해서 자리잡았다. 처음 이틀은 우리끼리 썼지만 마지막날 무려 5명 단체가 왔다. 아침은 전날 밤에 준비해놔서 새벽 6시부터 먹을 수 있다. 대신 성의가 좀 없는 아침이다. 주방은 9시로 제한시간이 있지만 좀 늦어져도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웬만한 주방기구도 다 갖추어져 있다. 트레킹 준비하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간단히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다만 운영진인 3자매가 은근 까탈스럽다. 사람에 따라 매우 신경쓰일 수 있다. (나 포함) 트레킹 후 다시 위 호스텔로 돌아가긴 싫었다. 미리 봐둔 깔끔한 숙소는 벨을 눌러도 답이 없다. 위 호스텔 옆 주차장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트레킹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물어봤으면 훨씬 편했을텐데 다들 자느라 바빴다.) 아거스틴에 들어갔다. 짐만 찾겠다고 하니 이유를 물었다. 야간 버스 탄다고 둘러대니 더 싼 숙소 가는 거냐고 꼬치꼬치 케물었다. 짐을 찾고 정리하려니 나가서 정리하라고 한다. (절대 가지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싸고 깔끔하다.)


숙박_Rio Tyndal_더블룸_3

허름한 호스텔이었지만 끝에 더블룸을 줘서 볕이 잘 들었다. 난로도 바로 옆이라 따뜻했다. 주인 아저씨가 한국 사람들에겐 특별히 천 페소를 깎아준다고 한다. (대신 홍보를 열심히 해달라고 한다.) 트레킹 후 생긴 빨래 더미를 맡겼는데 다소 실망스러웠다. 주방은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거실에선 Gold Star 텔레비전으로 챔피언스리그도 함께 볼 수 있다.

뒤늦게 숙소를 찾아가니 한국 친구들은 이미 지지고 볶고 있었다. 얼른 씻고 내려와서 합류했다. 맥주를 한 박스 사와서 고기, 전 등과 함께 먹었다. 고기가 눈 녹듯이 사라진 자리에 맥주를 들이부었더니 다음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렸다. 이 분들은 다음날 바로 아르헨티나로 떠났고, 마지막 날엔 새로운 한국 남자가 나타났다. 콜롬비아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 이 추운 곳으로 왔다고 한다. 간단히 저녁을 나눠 먹으며 건투를 빌었다.


트레킹 준비

일년 전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면서 역시 트레킹은 가능하면 긴 거, 한 바퀴 도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토레스 델 파이네도 O코스(서킷)을 돌기로 했다.

강의_Erratic Rock_0406

호스텔을 알아보기도 전에 후딱 점심을 먹고(꼭 이럴 때 들른 식당이 고급스럽고 맛있다 ㅠ), 광장 한켠의 에라틱락으로 향했다. 호스텔, 식당, 장비 렌탈을 겸하는 곳인데 매일 오후 3시에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에 대한 강의를 한다. 한 번 듣고 준비하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강의는 (영어로!) 한 시간 반이나 진행됐다.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지만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우선 W트레킹 위주로 코스를 짜준다. 많이 알려진 34일과 달리 첫날 GREY산장에서 자면서 빙하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45일의 코스를 추천한다. 우리도 윗부분을 돌고 이어서 이 루트를 따랐다. 이어서 현재 날씨에 맞는 장비, 주의 사항 등을 말해준다. 가장 유용한 것은 필요한 침낭 사이즈와 식사와 관련한 얘기였다. 4월을 기준으로 영하 9도짜리 침낭을 추천했다. 식량 준비와 관련해서 점심용 또르띠아, 저녁용 말린 버섯, 간식용 견과류 등등의 팁을 주었다. 우리를 포함해 캠핑&트레킹 경험이 적은 청중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하려했지만 몰려든 인파로 기회가 없었다.


산장 및 캠핑 현지 예약_CONAF_VERTICE_FANTASTICO SUR_0407

일단 첫날은 강의 듣는 것으로 준비를 끝냈다. O코스로 마음을 굳히고 가능 여부를 묻기위해 국립공원 관리 사무실인 CONAF를 찾아갔다. 현재 O코스 트레킹 가능 여부를 물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SERRON 캠핑장이 운영은 끝났지만 시설 이용(샤워 등) 없이 캠핑만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공용 캠핑장 예약은 다른 캠핑장 예약을 완료한 뒤 다시 돌아와서 하기로 했다. 숙소 예약을 위한 업체 사무실 위치도 알려줬다. 국립공원 서부 지역 숙소를 관리하는 VERTICE 사무실을 찾았다. 먼저 우리가 구상한 코스를 말해주니 괜찮다고 한다. 특별히 GREY빙하 트레킹과 중간 체력 안배를 겸해 GREY 산장을 2박 예약했다. 트레킹 예약은 BIG FOOT이라는 투어업체 사무실에 가서 하라고 한다. DICKSON도 산장 가격이 저렴해서 도미토리를 예약하려 했으나 영업이 끝나서 캠핑장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FANTASTICO SUR 사무실에 갔다. 이날은 직원이 매우 불친절했다. SERRON 캠핑장 가서 캠핑만 해도 되냐고 확인 질문하니 안된다고 한다. (CONAF는 어차피 자기네가 관리 안하니 그냥 가라고 하는 것 같다.) FRANCES 캠핑장만 예약했다. 다시 CONAF 사무실로 가서 ITALIANOLAS TORRES 캠핑장을 예약했다. 산장과 캠핑장 온라인 예약이 엄청난 빡침을 가져온다는데 비수기라 사무실에 찾아가서 편하게 예약 및 결제할 수 있었다. (막상 트레킹 도중에 느낀 것은 이 시기엔 아예 예매 안하고 그냥 산장이나 캠핑장에서 바로 결제해도 됐다. 상황에 따라 코스를 유기적으로 바꾸고 싶은 충동이 많이 일어난다.)

최종 숙박 일정_ 180,000페소

SERRON(캠핑)-DICKSON(캠핑, 현장에서 산장으로 변경)-PERRO(캠핑)-GREY(산장 2)-ITALIANO(캠핑)-FRANCES(캠핑)-TORRES(캠핑)



GREY 빙하 트레킹(BIG FOOT)

빙하 트레킹 예약을 위해 BIG FOOT 사무실에 갔다. 카페 안에 데스크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카페 직원에게 물으니 이메일로 예약하라고 한다. 이메일을 보냈지만 트레킹 시작 때까지 회신이 오지 않았다. GREY산장에 가니 BIG FOOT 저녁 때면 빙하 트레킹과 카약 할 사람을 모집하러 왔다. GREY 산장 근처에 BIG FOOT 사무실도 있다. 굳이 트레킹 시작 전에 조바심 낼 필요가 없었다.

http://bigfootpatagonia.com/



장비 구입, 렌탈, 식량 구입_0408

이전의 트레킹에서 장비 부족으로 고생했던 것을 교훈 삼아 제대로 보강하기로 했다. 거기다 이번엔 가이드도, 포터도 없으니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했다. 오후에 대강 가게를 둘러봤다. 고급 브랜드부터 현지 브랜드, 없는 브랜드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모든 물품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밤까지 추가 장비 구입, 렌탈, 식량 구입의 업무를 일괄 처리했다. 오전에 게으름을 피운 대가로 밤 11시에 저녁도 거르고 준비를 완료했다.


구입 내역

보온병_KLEAN KANTEEN_45,000페소

기존에 가지고 다니던 보온병 하나는 버리고, 각자 500ML짜리 보온병을 달고 다니기로 했다. 중간 중간 물을 떠먹거나 쥬스를 만들어 먹을 때, 밤에 뜨거운 물을 보관할 때 보온병이 넉넉하니 유용했다. 둘 중 하나가 뚜껑 불량이었다.


티셔츠 2_셔츠 1_75,000페소

트레킹 용 긴팔 티셔츠를 각각 한 벌씩 구비했다. 난 트레킹용 셔츠가 있었지만 여편님은 없어서 한 벌 추가로 구매했다. 가을철이라 긴팔 티셔츠와 셔츠가 적합했다.


트레킹 스틱_2_37,500페소

스틱은 필수다. 짐이 무거우니 스틱 없이 내려오면 무릎이 나간다. 렌탈샵에 가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스틱 하나에 1,500페소 9일이면 만페소가 훌쩍 넘는다. 스틱은 빌려도 상태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고, 중간에 부서지면 변상해야할 위험도 높다. 우리 말고도 스틱을 출발 전에 구매한 사람이 많이 보였다. 트레킹 시작 전만 해도 앞으로 여행 중에 트레킹 자주하자고 다짐했다. 트레킹 끝나고 나서 한 달이 지났지만 내 배낭 속에서 고이 쉬고 있다.


기타 옷 가지_100,000페소

시내 가게 중 중저가 트레킹 장비를 파는 곳이 있었다. 여러 고민 끝에 2만 페소짜리 방수 바지를 하나씩 구비했다. 털모자 하나, 겨울 장갑 한 벌씩을 추가 구매했다. 그 외 가스, 물통 고리 등을 사다보니 돈이 뭉텅뭉텅 불어났다.


렌탈 내역_130,000페소

몇몇 렌탈 샵을 돌아봤으나 장비가 정말 구려보이거나, 시즌이 끝나서 닫거나, 장비가 없는 등의 사유로 ERRATIC ROCK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저녁 시간에 가니 이미 장비 대부분이 렌탈 된 상태여서 간당간당했다. 다행히 영하 9도 침낭과 텐트를 포함해 필요한 장비들을 빌릴 수 있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요리도구, 깔개 등 만만한 장비는 호스텔에서 싸게 빌리고, 침낭, 텐트 같이 중요한 장비만 전문 렌탈 샵에서 빌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렌탈 내역(11일 가격, 페소): 침낭 2(3000), 2인용 텐트 1(4500), 깔개 2(1000), 조리 도구 세트(냄비, 버너, 그릇 등 3000)


식량 구비

DON BOSCO라는 로컬 슈퍼마켓, 과일 가게, UNIMARC이라는 대형 체인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다. 막상 UNICMARC에는 트레킹 인파가 한 번 쓸고 가서인지 필요한 물품이 바닥났다. (전쟁나서 식료품 러쉬가 시작되면 어떻게 되는지 간접체험했다.)

기억나는 쇼핑 내역은 다음과 같다. (50,000페소)

아침: 오트밀 한 봉지, 각종 견과류 섞어서 한 봉지, 인스턴트 커피, 허브 티백

점심 및 간식: 또르띠아 한 봉지(10?), 말린 소세지 1, 씨리얼 바 십 수개, 초코바 10, 사탕 1봉지, 쥬스 가루 10(오렌지, 레몬, 에너지)

저녁: 냉동 햄버거 스테이크 2(첫날용), 파스타 1, 라비올리 1, 빠에야 1, 차슈밥 1, 감자 가루 1, 각종 양념 가루, 말린 버섯, 토마토 소스 1, 참치캔 1(소금은 호스텔에서 조달)

기타: 대형 검정 비닐(배낭에 비가 샐 경우를 대비해 짐을 한 번 더 싸는 용이다.


오전에 게으름을 피우긴 했지만 트레킹 준비하는 이틀이 트레킹 초반의 3~4일보다는 훨씬 힘들었다. 겨우 장보기와 렌탈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가스를 안샀다. 난 먼저 짐을 싸기로 하고, 여편님에게 추가 구매를 맡겼다. 짐을 싸도싸도 끝이 없다. 여편님까지 합류해 겨우 짐을 다 싸고 나니 벌써 10시다. 나가서 먹기도 에매해 남겨두기로 한 참치 캔 하나와 토마토를 버무려 먹었다. 맥주가 간절했는데 마침 맥주 6캔을 사와서 하나만 먹는 헝가리 남자를 보고 여편님을 투입, 개당 500페소에 직거래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편히 잠들었다.



나탈레스는 동네가 매우 한적하다. 듣기로 성수기 시즌엔 사람이 어깨에 부딪힐 정도로 많단다. 강을 따라 산책로도 조성되어있다. 강 건너편엔 눈덮인 산이 그림을 그린다.


카페_The coffee maker

빅풋 사무실에 갔다가 알게 된 곳이다. 사무실, 카페, 옷가게 등이 고급스럽게 합쳐져있다. 드립커피를 판다. 문제는 전망이다. 강변에 위치해서 먼 산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행복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면 될 걸 굳이 힘들게 산에 가야하나 싶었다. 트레킹 후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으나 하필 그 기간에 내부 공사로 닫았다.


식당_PICADA DEL MERCADITO

정식 메뉴, MENU DEL DIA를 무려 4,000페소에 판다. 물가 비싼 나탈레스에서 배불고 따뜻하고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3번의 점심을 여기서 먹었다. 친절하고 양 많았다. 살사도 주고, 국밥도 말아줬다.


식당_양고기

트레킹 후 기력 보충을 위해 돼지가 메달려있던 식당을 찾아갔다. 이날은 돼지가 안 걸려있었다. 갈비도 없단다. 간단한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주문했다. 내 얼굴만한 양고기 3덩어리가 나왔다. 나와 여편님이 고기한테 진 건 오랜만이었다. 차마 3조각을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푼타 아레나스를 비롯해 이 근방 양고기가 유명하단다. 양 키우기 좋은 날씨라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양을 키우러 넘어왔다고 한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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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부분은 여편님이 집필하기로 협의했으나, 내가 작업 중인 파일을 지워버리는 바람에 급하게 떠맡게 되었다.


Dia 1_31 de Marzo

우수아이야 남쪽에 위치한 섬, 이슬라 나바리노(Isla Navarino)로 떠나기로 했다.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인 푸에르토 윌리엄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체크 아웃을 했다. 주인 아줌마가 윌리엄스로 가는 오전 배가 취소되서 오후 배를 타야 한다고 연락이 왔단다. (그럼 뻔히 서둘러서 아침 먹고 있을 때 말해줄 것이지) 어쨌든 짐 다 챙겨 나왔으니 체크 아웃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행사 사무실에 가봤다. 오전 배가 취소됐으니 12시반까지 와서 한시 배를 타라고 한다. (다른 여행사에선 오후 배만 있다고 해서 여기서 표를 끊은 건데, 원래 오전 배는 없었던 것 같다.)

잠시 항구 경치를 구경한다. 전날 못 보낸 엽서를 보내기로 했다. DHL에 물어보니 엽서 당 3~4천원 선이다. 역시 우체국을 가야지 싶었다. 우체국엔 사람이 많다. 딱 봐도 30분은 더 기다릴 각이다. 그냥 칠레서 보내자고 하니, 여기서 쓴 엽서는 여기서 보내야 한다는 여편님의 주장이다. 기다렸다. 바로 앞에 엽서 15장을 든 외국인의 차례다. 뭐라뭐라 하더니 엽서를 들고 돌아선다. 우리 차례다. 한국까지 얼마죠? ? 엽서 한 장 보내는데 5천 원이 넘는다. 돌아선다. 우수아이야, 아르헨티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여기까지다. 근처 초콜렛 카페에 가서 얼굴 만한 케잌을 먹었다. 점심을 걸러도 될 정도였다. 배를 타러 항구로 향했다.


승선기_우수아이야(Ushaia)_푸에르토 윌리엄스(Pueto Williams)_0331

대기실엔 승객이 우리 포함 네 명이었다. 영국 여자 둘이다. 이름을 물어보니 ‘니키타’와 ‘심란’이라고 했다. 푸에르토 윌리엄스에는 하루만 머물고, 또 배를 타고 푼타 아레나스로 갈 거라고 했다.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가족이 오고, 승무원이 와서 배를 타라고 한다. 배는 작다. 배라기보단 고속 보트다. 안에는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출발한다. 고속으로 달린다. 통통 튀겨져서 가는 게 재밌어서 밖으로 나갔다. 구경을 하는데 선장이 안으로 들어가란다. 큰 배가 지나가니 보트가 뒤집힐 듯 흔들린다. 약 한 시간을 달려 해안에 도착한다. 내려주는 곳은 윌리엄스가 아니다. 나바리노 섬에서 우수아이야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선착장이 있다. 입국 절차가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세관 검사만 한다. 능력은 출중해보이나 일은 대충하는 콜리와 리트리버 두 마리가 가방을 흝어본다. 빵은 괜찮다며 통과를 시켜준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미니벤에 오른다.

미니벤으로 장장 두 시간을 달린다. 점심으로 초코케잌만 먹었더니 속이 울렁거린다. 포장도로는 거의 끝무렵에 나온다. 우수아이야의 뚜렷한 푸르름과는 다른 감성이다. 윌리엄스 마을에 도착해서 가운데 관청 앞에서 내려준다. 드라이버가 여권과 서류를 가져가더니 도장을 찍어와서 갖다준다. (니키타 여권엔 도장이 없어서 다시 가서 찍어다 준다.)


숙박_호스탈 푸사키(Hostal Pusaki)_0331_0403_5~6인 도미토리_4

예약닷컴에서 미리 봐둔 호스텔이 있었지만, 니키타와 심란이 묵는다는 숙소부터 따라 가보기로 했다. 관청에서 십분 정도 따라가니 숙소가 나왔다. 들어가자마자 난로의 따스함이 확 다가온다. 주인장에게 남는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도미토리만 있단다. 방을 보니 여느 도미토리와 달리 이불도 푹신하고 색깔도 붉은 것이 안락해보인다. 가격을 확인하고 주저없이 머물기로 했다. 주인장 이름은 ‘빠띠’라고 한다.

윌리엄스가 전반적으로 물가가 비싸서 1인당 도미토리 가격도 2만원이 넘었다. (그래도 푸사키가 가장 싼 축에 속할 것이다.) 조식도 준다고 하고, 제법 큰 슈퍼도 바로 앞에 있다. 푸사키라는 이름은 난로를 뜻한다고 한다. 검정개와 하얀개도 한 마리씩 있고, 나중에 알았지만 점심, 저녁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물론 훌륭한 부엌에서 취사도 가능하다. 와이파이도 느리지만 되긴 된다.


짐을 풀고 정신을 차리고 거실을 둘러봤다. 우리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거실 벽에 자리한 세 인형이다. 인형을 유심히 보는 여편님에게 주인장 빠띠가 누군지 아냐고 묻는다. 왼쪽부터 프리다 칼로, 파블로 네루다, 비올레타 파라. 아니 그 먼 코레아에서 온 애들이 이 셋을 다 알다니! 우리도 네루다 책을 갖고 다닌다고 하니, 네루다 넘나 좋다고 공감한다. 철저한 예습의 가치를 느낀다.


산책과 크랩

은행과 우체국을 들러, 주변을 산책했다. 나름 마을 중심엔 작은 광장이 있고, 이런 저런 물건을 파는 가게와 식당이 몰려 있었다. 우체국이 닫기 직전에 들어가 엽서를 보냈다. 예상대로 우수아이야에서 보내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마을을 둘러보니 바닷가를 구경할 수 있는 벤치도 있다. 꽤나 복지가 좋은 곳이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서 저녁 거리를 궁리해보기로 했다.

여편님이 거실에 있는 관광 정보지를 뒤적거린다. ‘나바리노에서 해야할 것 10가지 중 첫 번째, 크랩을 먹어보세요.’ ??!! 크랩? 쇼파에서 바로 일어나 빠띠에게 크랩 파는 식당을 물어본다. 지금은 크랩 나오는 시즌이 아니라서 파는 식당이 없단다. 대신 자기가 갖고 있단다. 부엌 한 켠의 김치냉장고에서 작은 김치통 하나를 꺼낸다. 얼굴만한 통에 게살이 가득 들어있다. 다리살을 하나 맛보여준다. 한 통에 2만 페소라고 한다. 주저없이 구입했다. 귀가한 니키타와 심란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린다. 그들도 섬나라 출신답게 당장 한 통을 구입한다.

저녁은 고민의 여지가 없다. 게살 샐러드와 게살 파스타다. 슈퍼에 가서 재료를 사왔다. 한국에서 마셨던 120와인을 댓병으로 판다. 화이트 와인으로 친구들과 나눠마셨다. 음식을 준비하는데 빠띠가 살사(매운장)을 나눠준다. 테무코(칠레 중부, 네루다의 고향)에서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고춧가루라고 한다. 우리도 매운 맛 없인 못 살아서 고춧가루 들고다닌다고 했더니 나중에 챙겨 가라고 한다.

행복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모두 뻗어잤다. 밤 사이 부시럭부시럭 거리더니 2명이 더 들어왔다.



Dia 2_1 de Abril

밤 사이엔 우리 방에 2, 2인 실에 2명 총 네 명이 들어왔다. 네덜란드 커플과 바르셀로나 커플이다. 주섬주섬 일어나 거실에서 조식을 기다린다.

푸사키의 아침

푸사키의 아침은 어느 호스텔보다 훌륭했다. 일단 커피를 프렌치 프레스로 내려주는데 원두가 신선하다. 매일 두어잔을 탐했다. 거기에 파타고니아 특산 칼라파테(베리류)잼과 빵, 버터, 계란후라이까지 넉넉하게 나온다. 이 아침을 차려두고 무려 2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눴다.

새로 들어온 네 명은 모두 푼타 아레나스에서 출발한 배를 타고 들어왔다. 우리와 반대 방향이라 궁금증이 컸다. 이 뺀질뺀질한 네덜란드 아저씨 왈, ‘배는 참 좋아. 오면서 빙하도 많이 봤지. 아침 빼곤 밥이 너무 구려. 간식이랑 과일 좀 싸가. 니넨 오후에 반대 방향으로 출발한다고? 그럼 빙하 지날 때 밤이라 못 봐. 구려.’ 대강 이런 얘기들을 나눴다. 우수아이야로 가고 싶다는데 우리가 알기론 4월부턴 보트가 없다고 하니 바르셀로나 커플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겠다고 한다. 아침을 차려두고 장장 두 시간을 대화했다.


산책_Cerro Bandera

나바리노 섬에는 Dientes de Navarino라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푸에르토 윌리엄스에서 출발해 남쪽의 산을 넘어 섬 중심부를 돌아보는 것이다. 대략 4~5일 간 캠핑을 하면 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린 가벼운 맛보기로 첫 부분에 해당하는 Cerro Bandera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오후에 떠나는 니키타와 심란이도 한 시간 정도만 함께 산책하다 돌아가기로 했다. 덩달아 집 앞에 있던 개 두 마리가 신나서 앞장선다. 마을을 벗어나니 금방 숲길이 나온다. 별로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다. 개들만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숨어있는 작은 폭포도 안내해준다. 약 한 시간을 걸어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니키타와 심란이는 시간이 다 됐다며 개들을 데리고 내려갔다. 입구의 지도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등산로로 들어갔다.

등산로는 생각외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숲이 우거져서 좀 더 차분하게 이 지역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도 가깝게 봤다. 여기 새들은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좀 지나니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챙겨온 견과류를 간식으로 먹는다. 그러던 중 바르셀로나 커플인 알베르티와 마리아나를 만났다. 이들은 오늘 하루만 산속에서 캠핑을 할 생각이란다. 알베르티는 남미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해봤고, 트레킹도 좋아한다고 한다. 마리아나는 이번이 첫 캠핑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산길도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들을 먼저 보내고 우리도 슬렁슬렁 올라갔다. 우거진 숲, 마른 숲, 단풍과 이끼 등 다양한 식생대를 지나 마른 벌판에 올라섰다. 푸에르토 윌리엄스와 비글 해협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Cerro)이다. 여기서 칠레 깃발(Bandera)이 펄럭이고 있다.

점심을 먹고 숨돌리고 있는데 네덜란드 커플이 올라온다. 이 커플은 숨도 안돌리고 쉭쉭 벌판을 휘젓고 다닌다. 뒤이어 관광객, 현지인 등 주말 산책 나온 사람들로 제법 북적인다. (그래봤자…..) 좀 더 가면 호수도 보인다고 해서 벌판을 따라 올라갔다. 호수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Dientes De Navarino 코스다. 모험심을 참고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오는 길에 나무막대기를 하나 주워 썼다. 훨씬 발이 편하다. 순례자의 느낌도 나고 신선하다. 벌써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라 서둘러 하산했다. 집에 오니 어느새 7시가 되어있었다.


저녁 만찬

집에 오니 주방이 분주하다. 네덜란드 커플이 저녁을 주문해서 빠띠가 요리 중이다. (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빠른가. 알고보니 평소 취미가 조깅이고 마라톤도 종종한단다. 작년에 우리가 보름동안 낑낑댔던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일주일만에 주파했단다.) 어깨 넘어 보니 갈비찜이다. 우린 일단 크랩밥을 하기로 했다. 빠띠에게 고기 좀 있으면 달라고 하니, 주문한 사람들 주고 남으면 갈비찜 먹으라고 했다. 캠핌 하겠다던 알베르티와 마리아나도 급 귀가했다. 캠핑장에 술마시고 노는 아저씨들이 많아서 그냥 포기했단다.

만찬이 시작됐다. 빠띠의 저녁 메뉴는 크랩 샐러드, 갈비찜, 볶음밥이다. 우리도 크랩밥에 갈비찜을 추가해서 합류했다. 맥주와 와인, 독일 친구인 티모, 프랑스 출신인 빠띠 친구까지 와서 자리가 커졌다. 티모는 다음날 바로 5일짜리 트레킹을 간다며 그동안 빨래를 하나 맡겼다. 옷 몇 벌인데 반드시 40도에 빨아달라고 수십번 당부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아저씨는 여기서 투어업을 한다고 했다. 10명 정도 탈 수 있는 배를 타고 4주간 남극을 탐험한다고 했다. 비용은 대략 5,000유로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푸에르토 윌리엄스는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항구답게 남극으로 향하는 요트나 배들의 중요한 보급기지인 것 같다.

한창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푸사키의 명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사실 니키타와 심란이도 푸사키가 여행조언자에서 최고로 꼽히는 숙소라고 했다.) 다들 외로운 행성에 소개된 것을 보고 푸사키를 찾아왔다고 했다. 막상 빠띠는 그 사실을 몰랐다. 네덜란드 아저씨가 큰 소리로 푸사키에 대한 설명을 읽어 내려갔다. 연말 시상식을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Dia 3_2 de Abril

빠띠는 일요일은 쉬는 날이나 아침은 알아서들 차려 먹으라고 했다.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며 여유있는 아침을 시작했다. 책장엔 남극, 파타고니아, 칠레와 관련된 책이 많아서 구경을 했다. 겸사겸사 여편님은 책장도 정리하고 어지러운 거실도 좀 정리했다. 그러다 거실 한켠의 그림 액자를 부시고 말았다.


산책_해안선 및 공항 주변

다른 두 커플은 어제 갔던 Cerron Bandera를 넘어 호수까지 가보겠다고 한다. 우리는 편안하게 해안선쪽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을 동쪽에는 오래전부터 이섬에 살아온 야간족(Yagan) 마을이 있다는데 별개 없다고 해서 말았다. 대신 공항쪽의 해안선이 재밌어보여 그쪽으로 향했다. 어제 가져온 산책용 막대기를 집어드니 개 두 마리는 또 귀신같이 알아채고 앞장선다.

부담없는 거리니 먼저 윌리엄스 마을을 차분히 둘러본다. 교회도 있고, 박물관도 있다. 해군기지가 있어서 그런지 똑같이 생긴 군인집들이 많다. 더 나아가니 곧 해안가가 보이고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해있다. 산 에서 흘러나온 강줄기가 여기서 바다와 만난다. 강줄기 위로 보이는 산과 주변의 산맥과 숲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샛길이 보여서 들어가보니 요트 훈련장으로 연결됐다. 아무도 없는 훈련장을 지나 해안선을 끼고 걸었다. 풀섵을 해치고 가니 호텔 구역이라서 진입금지라고 한다. 아무도 없으니 들어갔다. 진짜 이런 외진 곳에 호텔이 있다. 호텔 주변 잔디밭엔 말들이 풀어져있다. 시내 투어회사에서 승마 프로그램도 있던데 여기 호텔과 연계되어있나보다. 앞장섰던 개들이 달려가서 말을 몰아본다.


배도 고프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호텔에 들어갔다.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와 쥬스는 먹을 수 있단다. 식당은 전면 유리에 고품격 바닥과 가구를 갖추고 있었다. 시켜먹는데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서귀포 관광단지 내 특급호텔 같은 풍경이었다. (절대 잔디밭에 풀 뜯는 말 때문이 아니다.) 마음만 같아선 호텔 레스토랑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우리의 충성스러운 개들은 꼼짝앉고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다. 여편님은 아쉬운 마음에 호텔 가격도 물어봤다. 대략 1박에 200달러 선이었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같이 말 몰던 개 두 마리가 따라붙었다. 집에 가라고 해도 안간다. 4마리를 앞장세우고 산책을 계속했다. 공항이 있는 섬으로 건너갔다.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찻길을 지나고 늪을 해쳐가니 바다가 나왔다. 오 마치 비글호같이 생긴 붉은 배가 떠있다. 호텔 개 하나가 해안선으로 올라오려는 물개를 저지한다. 개와 물개의 사투다. 개가 이겼다. 개들은 바다에 몸 적시고 신났다. 중간 중간 죽은 새나 동물 뼈도 주워 뜯다 서로 싸운다. 해안 언저리엔 새들 천지가 있다. 조심조심 새 떼를 보려고 다가가는데 개들이 다 내쫓는다. 새들은 비상이 걸려서 하늘을 뒤덮는다. 이놈의 개들 때문에 뭘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섬을 빙둘러 돌아가기로 하고 공항쪽으로 갔다. 공항 활주로가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넘어갈 수가 없다. 다시 왔던 해안가로 방향을 돌린다. 이번엔 소떼가 길을 막는다. 우리의 개들이 또 달려가서 소들을 구석으로 몬다. 처음엔 수세에 몰리던 소들이 대형을 갖추고 개들을 몰아세운다. 결국 소들을 빙 둘러 우회하기로 했다. 대장 소가 우리를 째려본다. 숨죽여 해안까지 도망쳤다.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가려는데 노을이 진다. 파타고니아 회사 로고를 연상케하는 빛의 조합이다. 못 돌아본 섬의 서쪽을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대신 노을을 십여분간 바라봤다.

돌아오는 길, 호텔 입구에서 개들을 겨우 돌려보냈다. 윌리엄스 마을에 들어섰다. 맞은편에서 감자칩과 콜라를 들고 오는 아저씨들한테 인사를 하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니깐 반가워한다. 80년대에 배를 타고 부산항에 갔다고 한다. 횬다이 배를 탔다고 했다. 지금은 해군 엔지니어로 일하는데 출장왔다고 한다.


저녁_소불고기

시간이 늦었지만 빠띠는 쉬는 날이라 저녁은 만들어 먹는 수밖에 없다. 대신 오늘은 고기를 사겠다고 했다. 다행히 슈퍼는 일요일에도 영업을 한다. 불고기를 넉넉하게 해서 알베르티와 마리아나에게도 나눠줬다. 네덜란드 커플은 이미 피자를 먹었다. 아저씨가 유명 빵집을 운영한다면서 피자를 오븐에 구웠다. 다들 내일 떠난다고 빨래를 맡긴다. 우리도 덩달아 맡겼다. 비와서 어쩌나 했는데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다 갖추고 있다. 티모의 옷도 40도에 함께 빨았다.



Dia 4_3 de Abril

이틀 연속 부지런히 탐험했으니 쉬기로 했다. 마침 비도 온다. 비까지 오니 난로 옆에서 떨어질 수가 없다. 다음 행선지인 푼타 아레나스 숙소를 예약했다. 이메일로 예약한 페리 표를 구매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갔다. 페리 사무실은 항구쪽에 있다고 했다. 눈에 띄지 않는 주황색 건물에 어렴풋이 페리 회사 이름이 써져있다. 문이 열려있다. 신상명세를 말하고 대금을 지급했다. 4시 출발이니 330분까지 오면 되냐고 물었다. ‘아아 내일은 짐이 별로 없어서 1시에 출발합니다. 12시 반까지 오세요.’ 아니 이걸 이제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다니. 어쨌든 이날의 큰 대업을 마치고 귀가했다.

점심엔 항구 앞에 카페를 가려고 했으나 월요일이라고 닫았다. 슈퍼에 라면이 있어 소세지를 곁들여 끓였다. 할일 없이 비오는 날엔 라면 먹고 낮잠 자는 게 일과다. 다들 체크아웃해서 도미토리도 조용했다. 저녁을 궁리했다. 슈퍼엔 싱싱한 야채가 많지 않았다. 보통 아레나스에서 출발한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싱싱한 야채가 넘친다. 슈퍼에 쌓인 건 감자다. 우리에게 남은 건 크랩이다. 더 이상 크랩에 대한 미련도 없어서 감자전을 해먹기로 했다.

예상외로 저녁 주방은 붐볐다. 그 남극 탐험가 아저씨가 손님들을 한 더미 데리고 온 것이다. 연어찜과 고기 뭐시기를 하는 틈새에서 감자를 갈고, 전을 부쳤다. 빠띠에게 주니 칠레에서도 많이 먹는 스타일이라며 놀라지 않았다. 배가 터지도록 전을 먹고, 다음날 페리에서 먹을 몫만 남겼다. 내 삼십 평생의 한 중 하나가 크랩을 만끽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이제 여한이 없다.



Dia 5_4 de Abril

전날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지쳐서 빠띠는 늦잠을 잔다. 새로온 미국 커플에게 친절히 조식 안내를 해줬다. 여기도 5일간 트레킹을 하고 왔다고 한다. 당당하게 먹다 만 피넛버터를 꺼내 빵에 발라 먹는다. 피넛버터에 빵만 있어도 열흘은 버틸 친구들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원동력, 부럽다.

슬슬 이별의 순간이다. 고춧가루 통에 빠띠네 고춧가루를 채웠다. 스스로 방명록과 후기를 찾아 쓴다. 빠띠는 괜찮다고 했지만 액자를, 부신 죄책감을 더해 여편님이 작은 그림을 하나 그려서 선물했다. 책장엔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úlveda)의 ‘Mundo del fin del Mundo(한국판 제목: 지구 끝의 사람들)’라는 책이 두 권이나 있었다. 무려 말라가 서점에서 구입한 ‘Patagonia Espresso(한국판 제목: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와 같은 시리즈 버전이었다. 책 앞엔 뭐라뭐라 써져있었는데 스풀베다의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하나 가져가라고 한다. 다음은 빠띠가 가장 좋아하는 돈 계산 시간이다.

고작 5일 머물렀을 뿐인데 고향 집을 떠나는 기분이다. 집 앞의 개들과도 인사하고 항구로 향했다. 항구 앞 카페가 문을 열었다. 차 한잔 마시고 배로 걸어갔다. 바로 옆에 작은 배에선 게가 콘테이너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 게가 다 우리가 먹은 크랩이었다.




승선기_푸에르토 윌리엄스(Pueto Williams)_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_0404_0405

붉은 배의 이름은 야간호(Yagan). 배에 올라 먼저 짐을 맡겼다. 객실쪽으로 들어가니 승무원이 자리를 안내해준다. 2등석에 사람이 별로 없으니 마음대로 앉으란다. 창문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2등 객실엔 프랑스 부자와 브라질 청년 안토니오까지 5명이 전부였다.

배가 고픈 여편님이 승무원에게 점심은 안주냐고 물어봤다. 안준단다. 곧 배가 출발하고 배가 고파서 감자전 도시락을 까먹었다. 객실로 복귀해 쉬는데 승무원이 올라온다. 점심 준단다. 담당 요리사가 있다. 밥 주고 안주고는 요리사 마음인가 보다. 급식판에 스프와 빵, 쥬스, 메인 요리를 담아준다. 출발 전 선원들이 먹던 고기 반찬이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네루다 자서전을 펼쳤다. 신난 여편님은 연거푸 바깥을 드나들었다. 흐려서 뭐 잘 보이지도 않는데 고래도 정확히 목격했단다. 망원경, 사진기 들고 선장놀이 하다보니 금방 저녁시간이다. 저녁 메뉴는 스파게티다. 밥 잘 만나오는 구만, 네덜란드 링크 아저씨 말은 안 믿기로 했다.

저녁 먹고 야간 정찰을 나갔다. 맵양에 따르면 곧 빙하를 지난다. 다행히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다. 흐린 와중에도 빙하를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먼 산에서부터 바다로 쏟아져내리던 빙하가 멈춰있다. 좀 지나서 또 한 번 어둠 속의 빙하를 본다. 흐린 밤에도 빙하는 충분히 밝게 비쳤다. 빙하의 여운을 간직하며 준비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잠에 들었다.


밤새 비가 내리고, 배가 흔들렸다. 낮에 선장 기세로 등등하던 여편님이 급 무섭다며 나를 깨웠다. 다시 잠들어 7시쯤 일어났다. 날이 밝으니 날씨도 잔잔해졌다. 조식을 먹고 차분히 일출을 감상했다. 먼 산에도 빙하가 보인다. 다시 활기를 되찾은 여편님이 다른 승객들과 안면을 텄다. 우리 객실에 있는 안토니는 브라질 아마존 쪽에 산다고 한다. 일본 문화도 관심이 많아서 한 달 넘게 일본을 여행한 적도 있다고 했다. 칠레 사는 파비앙과 막시모는 회사 일로 윌리엄스에 갔다가 아레나스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거기서 다시 나탈레스로 이동 후 나탈레스에서 배를 타고 푸에르토 몽트로 가서 산티아고로 돌아간다고 했다. 또 점심을 먹는다. 낮잠 자고, 시간 떼우다 보니 날이 완전히 갰다. 서서히 푼타 아레나스에 가까워진다. 이대로 내릴 줄 알았는데 저녁도 준단다. 가벼운 엔빠나다 두 개를 준다. 내려서 맛난 거 먹으라고 주방장이 센스를 발휘한 것 같다.

배가 빠른 속도로 아레나스 항구에 다다른다. 안토니에게 시내로 같이 택시 타자고 제안하니, 막시모와 파비앙 차를 얻어 타고 가자고 한다. 혼쾌히 태워주겠다고 한다. 배에서 내려 트럭에 올라탔다. 친절히 예약한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줬다. 밤에 다시 만나서 맥주를 마시기로 하고 헤어졌다.


*페리 운영 회사_AUSTRAL BROOM

http://www.tabsa.cl/portal/index.php/en/services/55-punta-arenas-puerto-williams-crossing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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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준비 단계부터 파타고니아는 나에게 신비와 미지의 땅이었다. 기대도 컸지만 여행 일정 상 이 추운 지역을 4월에 가자니 걱정도 컸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가을은 우리의 가을처럼 맑고 부드럽고 부셨다.


일정과 이동_20170325_20170421

세상 끝 도시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Ushuaia)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우수아이아까지 버스로는 40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여편님은 절대 NO를 외쳤다.) 우수아이야 아래엔 칠레 영토인 나바리노 섬(Isla Navarino)가 있는데 보트를 타고 섬의 중심 마을인 윌리엄스 항(Puerto Williams)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모험심이 터지던 때라 우수아이아에서 직접 보트 티켓을 끊어서 내려갔다. 나바리노 섬에서 5일을 머물고, 칠레 남부의 항구도시 아레나스(Punta Arenas)로 페리를 타고 올라갔다. 아레나스는 이동을 위한 거점으로만 삼았고,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꽃이라는 토레스 델 파이네를 위해 나탈레스 항(Puerto Natales)로 이동했다. 트레킹을 포함해 여기서 약 2주를 보냈다. 우리의 모험심과 체력은 바닥이 났고, 파타고니아엔 스멀스멀 겨울이 찾아왔다. 다시 아레나스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고 칠레 중부로 북상했다.


교통_배와 비행기 그리고 버스

항공_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_우수아이아(USHUAIA)_0325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됐다.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교통수단이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미리 우수아이아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남미 최대 저가항공사인 LATAM AIR를 타보는 영광을 누렸다. 1인당 250달러 정도를 냈는데 나름 수화물도 포함이고, 그 먼 거리를 4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 식당은 죄다 비싸서 공항 길 건너 트럭에서 본디올라(즉석 햄버거?)를 먹었다. 우수아이아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방법은 택시 밖에 없다고 했다. 다행히 택시가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다.


보트+버스_우수아이야(USHUAIA)_푸에르토 윌리엄스(PUERTO WILLIAMS)_0331

우수아이야에서 푸에르토 윌리엄스까지는 배를 타야했다. 배 표 구하는 게 어려울 줄 알았는데 유명한 PIRA TOUR, RUMBO SUR 같은 곳에서 매일 혹은 이틀 간격으로 배를 운행했다. (막상 운행하는 배는 하나인 것 같다.) 이게 가격이 무려 120달러나하는데 조그만 보트를 타고 간다. 푸에르토 윌리엄스로 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우수아이야에서 직선 거리에 있는 나바리노 섬 항구에 내려서 짐 검사(칠레는 농산물 반입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세관 절차만 밟고, 미니벤을 타고 2시간 달려서 푸에르토 윌리엄스로 간다. 입국 도장은 여기서 찍어준다. 4월부턴 비수기라 보트가 없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4월에 보트 타고 우수아이아 간다는 미국 애들도 만났다.


페리_푸에르토 윌리엄스(PUERTO WILLIAMS)_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_0404

두 도시 간에는 비행기도 있어서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모험이 우리를 불렀다. 바로 장장 40시간 페리를 타고 비글 해협을 거치는 것이다. 일반석 기준 가격은 10만 칠레 페소 정도로 비싸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나름 요리사가 직접 3끼 식사도 만들어주고, 객실도 안락하고, 바깥에 나가서 바다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예약 메일을 보내면 된다. 결제는 탑승 전날까지 아레나스나 윌리엄스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직접하면 된다.

운영 회사_AUSTRAL BROOM: http://www.tabsa.cl/portal/index.php/en/services/55-punta-arenas-puerto-williams-crossing


버스_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_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_0406&0421

두 도시 간을 운행하는 버스 회사가 여러 개 있다. 이 중 운행 빈도가 잦은 Bus Fernandez를 이용했다. 푼타 아레나스는 별도 사무실에서 출발하고, 아레나스 공항에 들렀다가 나탈레스로 간다. 올 때도 마찬가지라 비행기 시간만 맞으면 아레나스에 굳이 들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재밌는 건 푼타 아레나스에서 아레나스 공항까지는 이 버스를 타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공항에 갈 때는 미니버스(5000 페소)나 택시(7000 페소)를 이용해야 하는데 2명 이상이면 택시가 저렴했다.


항공_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_푸에트토 몬트(PUERTO MONTT)_0421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돌아온 후 체력과 열정이 바닥났다. 파타고니아를 떠나 칠레 중북부로 빠르게 넘어가기로 했다. SKY AIRLINE를 이용했는데 3일 전에 끊으니 1인당 거의 25만원에 육박했다. 워낙 지친 상태라 버스를 탈 엄두가 안났다. 버스는 대략 37,000페소, 28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 후 푸에르토 몬트 근처의 발디비아에 머물며 푼타 아레나스에서 발디비아까지 버스를 타고 온 캐나다 커플을 만났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만났던 나이 지긋한 커플이다. 몸은 힘들었지만 창 밖으로 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했다. 순간 나와 여편님은 나약했던 우리의 선택을 후회했다. 거기서 버스를 탔다고 우리 몸에 더 큰 탈이 났을까? 어차피 발디비아에서 쉬기만 하는데 말이다. 밤새 버스에서 뒤척이며 창 밖으로 비치는 빙하와 별도 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벵 테송은 비행기는 낭만 여행자의 적이라고 했다. 적을 넘어 마약이다.



우수아이아(USHUAIA)_0325_0331

서론이 길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우수아이아를 꼭 한 번은 가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만큼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곳이고, 가장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 아래 푸에르토 윌리엄스가 있다거나 어쩌구 하는 얘기는 자존심 강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하지 않는게 좋단다. 여기서 거의 일주일을 머물면서 국립공원도 가고, 비글 해협도 배 타서 구경하고, 근처 호수에도 갔다.


숙박_또레알수르_Torre al Sur Hostel_도미토리_6

여러 호스텔 후보 중 최우선으로 꼽았던 곳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스텔 앞에 내렸다. 벨을 아무리 눌러도 답이 없다. 다른 호스텔을 둘러보기로 했다. 루피토 호스텔을 가보니 너무 크고 휑한 느낌이었다. 벤 몰고 가던 아저씨들이 자기네 호스텔에 와보라 길래 타고 갔다. 부킹에서 본 적있는 리차드 민박이었다. 위치가 좀 외지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가격은 왕창 깎아줄 분위기였다.) 안타틱 어쩌구하는 호스텔은 전망이 좋았지만 좀 추워보였다. 결국 다시 또레알로 돌아갔다. 이번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체크인 하는 중이다.

주인 아줌마가 좀 까다로운 스타일이다. 아들은 옆에 크루즈 델 수르 호스텔을 운영한다고 한다. 호스텔 안에선 신발을 벗어야 하고, 주방은 8시 반까지만 사용이 가능하다. (9시까진 봐주기도 한다.) 빨래는 당연히 안된다. 등등 호스텔 곳곳이 안됨(NO PUEDE) 천지다. 그래도 이렇게 규범이 까다로우면 시끄럽거나 더러운 룸메이트를 만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남국의 정취에 걸맞게 롯지 분위기도 나고, 우선 집이 골고루 따뜻했다. 거기다 도미토리에 사람이 별로 없으니 우리만 빈 방에 각자 1층 침대를 쓰게 해줬다. (나중에 한 두 명이 더 들어왔지만) 3박 이상은 할 거라고 하니 숙박비도 좀 깎아줬다. 3박이면 우수아이야 둘러보기에 충분하다고 하다면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셨다.


호스텔 분위기가 조용한 편이라 얌전한 친구들을 몇 명 만났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온 콩스탕스는 곧 푼타아레나스로 넘어가서 여전히 칠레 곳곳을 누비고 있다. 보통 외국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와인 보단 맥주나 마시는 편인데 보르도 출신답게 칠레 와인을 간절히 원해서 나눠 마셨다. 노르웨이에서 지질학을 전공하는 친구는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끝내고 와서 바로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에서 약 1주일 간 캠핑을 할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방에 말 없고 덩치 큰 홍콩 청년이 왔다. 3일을 같이 있었는데 침대에 박혀서 나갈 생각을 안한다. (여편님에게 장난으로 현실 장국영 떴다고 드립쳤다가 혼났다.) 아줌마까지 답답해서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하는데 서로 말이 안통해서 어설프게 통역을 도왔다. 그러다 우리가 우수아이야를 떠나기 전날 여편님과 몇 마디를 나눴다. 내일 오후엔 등대를 보러 갈 거라고 했다. 331, 홍콩 시간으론 41일이라고 했다.


산책_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Parque Nacional Tierra del Fuego)_0326

기나긴 도시 생활이 끝났으니 도착 다음날 바로 국립공원을 가기로 했다. 티데라델푸에고 국립공원은 우수아이야 서쪽에 있는 드넓은 공원이다. 우수아이야가 포함된 지역을 티에라 델 푸에고, 불의 땅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인 것 같다. 공원으로 가는 셔틀버스표는 호스텔에서 바로 끊을 수 있었다. 도시락을 준비하라고해서 여편님이 아침을 먹고 바로 도시락을 뚝딱 만들었다. 전날 사놓은 빵과 마요네스, 햄과 치즈 등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이후 펭귄투어, 호수 산책 때도 모두 샌드위치를 만들어갔다. 평소 갖고 다니는 락앤락이 도시락통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날 호스텔에서 대략적인 공원 트레킹 설명을 들어서 코스는 짜둔 상태였다. 셔틀버스는 각 호스텔과 우수아이야 중심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공원으로 간다. 먼저 공원 기차를 탈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시 공원 입구에서 멈춰서 입장권을 사라고 한다. 입장권을 사면 다시 버스를 타고, 공원 안쪽 우체국에서 내려준다. 버스표는 이미 왕복으로 끊은 거라 공원 내 정거장 중에 하나에서 타고 돌아오면 된다. 7시가 막차라고 했다. 같이 내린 일본 친구들이 우체국으로 들어갔다. 우린 별 거 있나하고 트레킹 코스로 바로 접어들었다. (그 우체국에서 땅끝도장을 찍어 준다고 한다.)

공원 내에는 3~4가지 트레킹 코스가 있다. 우체국에서 시작하는 해안코스(7km), 해안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식당 교차로 등이 몰려있다. 여길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검은 호수, 늪지대 등을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있고, 북쪽으로는 칠레 국경까지 이어지는 숲 길이 있다. 이 숲길을 따라가다보면 공원 한가운데 언덕도 올라 갈 수 있다. 이 산책로들을 다 돌아보려면 아예 공원에서 캠핑을 하면서 1박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당연히 우리에게 캠핑은 없다.)


완만한 해안코스를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가 말도 안되게 맑았다. 산 틈 사이론 설산도 보였다. 둘 다 리스본에서 산 등산화를 실질적으로 개시했다. 여편님은 끈 묶는 게 맘에 안 들다며 이십분마다 끈을 다시 멨다. (아마 끈 묶는데만 한 시간을 소요한 것 같다.) 나무 중간 중간에 뭉탱이가 만들어져 있어 여편님에게 물어봤다. 겨울 날씨가 하도 추워 나무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처음 맞이하는 파타고니아의 풍경이라 둘다 매우 엄청 신이났다. 여편님은 앞으로 파타고니아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친다. 해안코스의 소요시간은 대략 3시간, 완만한 길이라 우리도 비슷한 시긴이 걸렸다. 배가 고파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다. 지금 다 먹으면 미래가 불투명하므로 샌드위치 1개씩만 먹었다. 다시 탐험을 지속했다. 도로와 만나고 곧 여러 산책로가 만나는 분기점에 왔다. 비버댐 등을 보기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캠핑장엔 우리가 생각한 분위기와 달리, 가족, 친구, 연인끼리 휴일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한테야 신비의 파타고니아지만 여기 사람들에겐 주말에 나들이 와서 산책하고 고기 구워먹기 좋은 공원이었다.

강과 늪이 연결된 곳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슥슥 진흙을 피해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알레스카에서 시작해 남쪽 끝까지 이어지는 도로의 종착지라고 한다. 어떤 여행자는 여기서 알레스카까지 20년 동안 말을 타고 갔다고 한다. 우린 다시 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중간 중간 누가 강가에 나뭇가지를 모아놨다. 사람을 따라 여기까지 내려온 비버는 이곳 생태계를 크게 바꿔놓았다고 한다. 산책로 끝까지 가도 비버는 보이지 않았다. 해변의 오리 한쌍을 보며 남은 샌드위치 하나씩을 먹었다.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갔다. 다른 산책로 한 곳은 포기하고, 오는 길에 봤던 검은 호수(Laguna Nerga)만 보기로 했다. 호수가 진짜 약간 검다. 바닥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있다. 이 호수 물은 전부 빙하물에서 생긴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정확하지 않다.) 분기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편님이 누워버렸다. 더 이상 못 걷겠다고 한다. 아침에 기상은 어디 간 건지. 이미 해도 한참 기울었다. 북쪽의 산책로는 거진 포기하기로 했다. 좀 더 올라가서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스토랑은 꽤나 규모가 컸다. 피자, 케잌도 팔았지만 차만 시켜서 몸을 데웠다. 막차 시간을 감안해 위쪽을 좀만 걸어보기로 했다. Lago Roca라는 관점에서 가지 못한 길을 조망했다. 캐나다 관광 다큐에서 봤던 숲과 강의 조화가 쭉 뻗어있다. 산 넘어로 지는 태양과 파도가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여기서도 버스가 선다는데 그럴 기미가 안보여서 재빨리 레스토랑으로 돌아갔다.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 오는 길에 하늘이 보라빛으로 물들었다. 측량 결과 총 20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다리가 남아났을리가 없다. 다음날은 온전한 휴식을 취했다.



관광_비글 해협(Cannal Beagle)과 펭귄 섬(Isla Martillo)_Pira Tour_0328

호스텔 주인에게 오자마자 펭귄 투어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천 페소, 천 오백페소 등등의 투어를 추천해준다. 모두 펭귄섬에는 안 가는 거란다. 펭귄섬에 가는 건 너무 비싸서 비추, 자기는 취급 안하니 직접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우수아이야에서 펭귄 섬에 들어가는 건 Pira Tour 한 곳이다. 독점이라 가격도 무지막지 했다. 비수기라 월요일에 가니 화요일 걸 예약할 수 있었다. 투어 프로그램은 펭귄 섬만 다녀오는 반나절(2000페소) 투어와 배를 타고 비글 해협을 다 돌아보고 펭귄섬에 가는 하루짜리 2500페소(20만원)짜리가 있었다. 가격 차이도 크지 않고 배 타고 둘러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하루짜리 투어를 하기로 했다. 우수아이야에 온 가장 큰 이유가 펭귄 보는 거라 높은 투어 가격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당시, 그간 아낀 돈은 파타고니아에서 다 털어버리자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물새는 방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비글 해협(Cannal Beagel) 탐사

아침 10시 바닷가에 위치한 피라투어 사무실로 갔다. 영어와 스페인어 가이드를 기준으로 두 팀으로 나뉜다. 다 똑같은데 밥-펭귄 섬-박물관의 순서가 다르다고 했다. 영어로 하면 괜히 단체 관광객에 슬릴 것 같아 스페인어 팀으로 달라고 했다. 페리를 탄다. 페리는 생각보다 크고 쾌적하다. 화장실도 새거다. 펭귄 투어로 돈을 엄청 벌었나 보다. 페리 내에서 차나 음료, 간식 등도 주문할 수 있다. 곧 사람들로 페리가 꽉 들어찬다. 동방에서 온 여행객은 우리 뿐이다. 펭귄에 대한 열망은 전 세계가 동일한 것 같다. 페리가 출발하니 위로 올라가서 바다를 제대로 구경하기로 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우수아이야의 전경은 더 아름답다. 산맥들이 그려내는 풍경이 우수하다. 우리를 포함해 설치기를 좋아하는 설치류들이 배 위를 장악했다. 맨 앞을 차지하고 바다를 보는데 여편님이 고래를 발견했다. 우아한 자태로 물을 뿜고, 바다로 들어갔다. 곧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인파에 밀려 잠시 뒤로 물러났다. 고래에 대한 열망이 어마어마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고래를 또 만났다. 이번엔 무려 두 마리가 나란히 헤엄을 쳤다. 심지어 우리 배 바로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진 욕심을 접어두고 간결하게 목도했다. 원래 이 맘때 쯤 고래들이 비글해협을 통해 대서양-태평양 간을 이동한다고 한다. 바다 폭이 좁아 고래를 목격하기엔 최적인 것이다. 거기다 우리가 타고 있는 페리도 꽤나 좋은 레이더를 장착한 것 같다. (다른 후기에서도 고래 봤다는 사람이 있었다.) 고래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속도도 알아서 조절해준다.

잠시 회상, 일년 전 스리랑카에서 했던 고래 투어가 생각났다. 당시론 큰 돈 (펭귄 투어에 비교하면 택도 안되는)을 들인 결정이었다. 따로 객실도 없이 땡볕이 쬐이는 배를 타고, 연약한 레이더와 투어팀들의 감에 의존해서 망망대해를 하루 종일 떠돌았다. 그 결과 본 거라곤 저 멀리 고래 꼬리 하나 뿐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멀미로 죽을 쒔다. (참고: 스리랑카 유람기_3_바다와 사파리 http://cordon.tistory.com/100


고래와 안녕하고 바다사자 섬에 도착했다. 바다사자는 냄새가 심하다. 바다사자섬에 내리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이어서 새가 많은 섬을 지났다. 새가 섬을 가득 채운다. 이런 섬보단 바다 위를 파닥파닥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특히 알바트로스의 비행은 폭격기를 연상하게 한다. (실은 폭격기가 알바트로스를 모델로 했다.)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는 그 우아한 비행은 한 줄기 바람에도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반성케 한다. 바다는 늘 이렇게 번뇌에 대한 해답을 가르쳐준다. 그 다음은 등대를 지난다. 세상 끝 등대로 유명한 등대다. 멋모르고 있다가 우리도 후다닥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대강의 비글해협 탐사가 마무리되고 외곽의 한적한 선착장에 페리가 내린다.


펭귄섬(Isla Martillo) 방문

우리팀이 먼저 밥을 먹으러 간다. 신난다. 페리에서 친해진 프랑스 청년 삼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간단히 도시락을 준비해왔는데 양도 부족해 보이고, 주문 안하면 밖에서 먹어야 한단다. 간단한 감자튀김과 맥주만 주문해서 도시락과 함께 먹기로 했다. 삼도 식사 메뉴와 맥주를 시킨다고 해서 비글맥주 3종 세트를 시켜서 나눠 마셨다. 감자를 직접 튀긴 거라 매우 맛있었다. 맥주는 비글비글했다. 배부른 식사를 하고 펭귄섬으로 향하는 보트를 탔다. 펭귄섬은 작아서 페리가 아닌 보트를 타고 들어간다. 보트가 작아서 팀을 나눠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15분 정도 보트를 타고 섬에 내렸다. 우억, 펭귄이다. CG같은 존재가 해안을 엉성거리고 있다. 한 놈은 누워있고, 둘은 누운 놈을 바라보고 있다.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상기시킨다.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조용히 할 것. 모두 숨죽여 펭귄을 바라본다. 그러다 옆을 보니 펭귄이 한 바가지있다. 갓 바다에서 돌아와 해안으로 서서 들어오는 위용이란, 귀엽다. 이 존대들은 뭘 해도 귀엽다. 섬 안쪽으로 들어가니 펭귄이 더 많다. 곳곳의 구덩이에 펭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펭귄은 금수 좋기로 유명하다. 부부 펭귄들이 뭐라뭐라 얘기를 하고 있다. 삼의 말론, 남자 펭귄이 예쁜 돌을 골라 여자 펭귄에게 프로포즈를 한다고 했다.이 집 저 집을 드나들며 소식을 전하는 펭귄도 있고, 셋이 모여 포효하는 젊은이들, 홀로 외로움에 사무치는 펭귄도 있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펭귄도 보인다. 여편님은 신나서 늘 대열의 꼴지에 뒤쳐졌다. 가이드한테 계속 지적을 받았지만 들리지 않는다. 겨우 끌다시피해서 대열에 합류시켰다. 꿈만 같은 펭귄섬 구경이 끝나고 다시 보트에 올랐다. 해변의 펭귄들과 다시 뜨거운 작별을 했다.

지난 425일은 펭귄의 날이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펭귄들을 생각하는 날이라고 한다. 주로 남극과 파타고니아에 서식하는 펭귄은 겨울이 되면 브라질, 페루, 에콰도르 등 열대지역으로 북상한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우수아이야에서 펭귄을 볼 수 있는 끝무렵이었다. 덕분에 다소 여유있는 펭귄섬을 즐길 수 있었다. 나중에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도 펭귄 투어가 가능하고, 당연히 우수아이야에서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시기 푼타아레나스에 있었던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이미 펭귄들이 다 올라가버려 섬에는 0.01%(실제로 계산을 해봤단다.) 밖에 없어 투어를 안했다고 한다. 이날 우리가 본 펭귄은 무려 2종류이다.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작은 마젤란 펭귄, 배가 하얗고, 발과 부리가 노란 젠투(파푸아) 펭귄도 몇 마리 있었다.


펭귄섬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근처 박물관에 갔다. 스페인어로 설명륻 듣는데 들어올리가 없다. 여편님은 따로 영어로 설명해주는 쪽에 합류했다. 난 대충 듣다가 빠져나왔다. 이 부근도 정취가 아름답다. 우수아이야에서 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자전거 타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대충 일정이 마무리되고 페리에 올랐다. 삼은 끝도 없이 말을 하고, 사진을 보여주는 재주가 있다. 중간에 고래 보러 나가는 것 빼곤 따뜻한 페리 안을 고수했다.



산책_에스메랄다 호수(Laguna Esmeralda)_0330

호스텔 주인에게 마지막으로 한 군데 가면 어디가 좋은지 물었다. 에스메랄다 호수를 추천했다. 대중교통은 없고,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숙소 앞에 온 건 셔틀버스라기보단 그냥 승합택시였다. 전날 저녁, 펭귄 투어에서 만난 삼과 맥주를 마셨다. 호스텔에서 만났다는 로라도 함께 왔다. 로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처에 사는데 휴가에 놀러왔다고 한다. 둘 다 에스메랄다 호수에 갈 생각이라고 해서 함꼐 가기로 했다.

삼과 로라가 시간에 맞춰 호스텔 앞으로 왔다. 차를 타고 출발했다. 약 삼십분 정도를 달려서 호수 입구에 섰다. 아저씨가 몇 시에 데리러 오냐고 물었다. 우체국에 엽서도 부쳐야해서 3시나 3시반까지 내려오겠다고 했다. 산책 시작 시간은 11, 보통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삼과 로라가 앞장 섰다. 우거진 숲을 지나고 넓은 벌판이 나온다. 삼과 로라는 막 만나기 시작해서인지 찰떡처럼 붙어서 간다. 삼은 앞으로 남미 대륙을 거쳐 아시아까지 갈 생각이라고 했다. 중간에 한국, 일본 여행객들과도 친하게 지냈고, 라멘 같은 일본 음식도 엄청 좋아한단다. 칠전팔기라는 글귀도 몸에 새겼다. 둘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걸었다. 층층이 색깔이 다른 산이 보이고, 에메랄드 빛 강줄기가 나타났다. 감탄을 하다가 곧 늪지대를 만났다. 여기 다녀오면 신발이 진흙탕 되는게 태반이란다.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그란 호수가 에메랄드 빛으로 빛난다. 그 위로 설산과 어렴풋한 빙하가 보인다. 호수에서 시작된 강줄기가 산맥이 펼쳐진 벌판으로 흐르는 게 아름답다. 오르막도 심한 건 아니라서 딱 소풍에 적합한 코스다. 호수 주변엔 사람들이 햇볕을 즐기거나 마테차를 마시고 있다. 호수에 발 담갔다가 같이 사진 찍고 놀던 삼은 저 멀리 여자 세 명에게 가서 또 놀고 있다. 잠시 어정쩡하던 로라는 곧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왔다는 청년과 대화를 나눈다. 우린 또 준비한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었다. 슬슬 도시락으로 먹는 샌드위치도 물려간다. 로라가 가져온 감자칩도 내가 다 먹어치웠다. 놀러 나간 삼을 불러 내려갈 준비를 한다.

어느새 시간이 2시를 향하고 있다. 기사 아저씨와 약속한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했다. 장난 겸 다 같이 뛰어내려가다 여편님이 넘어졌다.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과도한 설침의 끝은 늘 넘어짐이다. 후다닥 내려오니 4시다. 좀 늦었지만 아저씨가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삼과 로라는 어느새 뒷좌석에 다정하게 앉아있다. 알 수 없는 커플이다.



산책_우수아이야 주변

교외로 나가면 더 좋지만 우수아이야 주변도 아름다웠다. 시간만 나면 바닷가, 공항 가는 길 등을 산책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데, 외곽에서 우수아이야를 보면 카지노가 커다랗게 중심을 잡고 있다. 모두들 낭만을 품고 오는 도시에 탐욕스러운 카지노가 돈을 집어삼키는 형국이다. 보호구역인 호수엔 새도 많고, 옆 잔디밭 언덕도 노을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먹방_시내 식당가

우수아이야엔 맛있는 식당이 많다. 대신 비싸다. 물가가 비싼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비싼 관광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육상 생물만 먹다가 게를 파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첫날 숙소 체크인을 하자마자 크랩크랩을 외치며 유명 식당을 찾았다. 가격이 후덜덜해서 콩알만한 게살요리와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다행히 오징어 튀김이 양이 많았다. 게살요리도 훌륭한 집이었다. 티에라 델 푸에고 공원을 다녀와선 단박에 아사도집을 찾았다. 돼지고기 세트를 추천해줬다. 돼지 각 부위와 통소세지, 닭가슴살, 거기다 곱창까지 겻들여서 나왔다. 기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휴식일인 월요일 점심엔 피자를 먹으러 갔다. 전날 돌아다니다 여편님이 월요일 피자 반값!을 봤다. 피자국의 후예들 답게 피자를 맛나게 구웠다. 미국 문화의 영향으로 양도 푸짐했다. 이 식당이 수요일 저녁엔 생맥주가 반값이다. 삼과 로라까지 와서 비글 생맥주를 종류별로 맛봤다. 다 맛있다.

숙소에선 파스타를 먹거나 치킨을 테이크 아웃해서 먹었다. 치킨도 아사도처럼 구워서 양념을 발라줬다. 펭귄 투어를 다녀와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온 라면을 끓였다. 그냥 먹기 아쉬워 소고기를 잘라 넣었더니 훌륭한 라멘이 됐다. 반주로 그간 먹던 와인이 지겨워 럼을 마셨다. 첫날 장을 보다가 와인 3병 값이면 럼을 사는 게 이득이다 싶었다. 알콜도수를 종합해봐도 13 X 3 < 40으로 이익이다. 추운 겨울의 우수아이야를 상상하며 뜨근한 럼주를 마셨다. 떠나는 날에는 양 모양의 초콜렛집이 있어 거기서 시간을 떼웠다. 초콜렛케잌 하나를 둘이 나눠 먹으니 점심 생각이 사라졌다. 우수아이야는 모르겠지만 바릴로체만해도 스위스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아 초콜렛이 유명하다고 한다.


쇼핑_귀노

기념품 가게도 많고, 고급 아웃도어 가게도 많다. 비싼 차들도 종종 지나다닌다. 쿠루즈가 들어오는 날이면 주변 기념품 시장도 문을 연다. 이 숲을 뚫고 아늑한 가게에서 펭귄 인형을 하나 샀다. 솜털같이 보드랍고 빙하 같이 커다란 배를 자랑한다. 이름은 귀노라고 붙였다. 1년 간 네팔에서부터 우리와 함께한 양이의 벗을 겸했다. 여편님은 우루과이에서 새로 산 초록색 가방에 귀노를 메달고 다닌다. 하지만 귀노가 합세하고 한 달 뒤, 운명처럼 양이는 떠났다. 파타고니아의 푸른 벌판이 마음에 들었는지 파타고니아를 떠나자마자 버스터미널에서 사라졌다. 다시 식구는 나와 여편님, 귀노 셋으로 줄었다.


관광정보센터

바닷가쪽에 커다란 관광정보센터가 있다. 규모도 크고, 안에 화장실도 쓸 수 있다. 직원들도 많고 문의 사항도 상세하게 답해준다. 거기다 그 유명한 세상 끝 관련 도장들도 다 여기서 받을 수 있다. 구석의 어린이 코너에 놓여있는 우수아이야 색칠공부도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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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아레스(Buenos Aires)_20170317_20170325

아르헨티나의 수도다. 이과수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들의 추천으로 라 보카(La Boca) 지역에 머물렀다. 탱고의 발원지, 보카 쥬니어스의 연고지, 가난하고 위험한 항구 등등 여러 수식어가 붙는 곳이다.


이동_몬테비데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_버스+페리_0317

몬테비데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버스와 페리를 조합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콜로니아(Colonia Del Sacramento)를 갈 때 많이 이용하는 페리 회사가 몬테비데오에서부터 버스로 연결해준다. 3개 회사가 있는데 그 중 중간급인 Colonia Express를 이용했다. 3개 페리가 각각 부에노스 아에레스에서 내려주는 항구가 다른데, 마침 이 회사는 La Boca 항구에 내려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몬테비데오 중앙터미널 가장 구석에 위치한 데스크에 체크인을 하고 버스를 탔다. 몬테비데오에서 가는 사람이 많은지 2개 버스에 나눠탔다. 2~3시간 정도 달려서 콜로니아 페리 터미널에 도착한다. 구경할 사이도 없이 바로 페리를 타려고 줄을 선다. 검색대를 통과해서 물과 쥬스를 버렸는데 옆 사람들은 다들 물을 갖고 통과했다. 이어서 국경 수속을 밟는다. 특이한 것은 우루과이 출국 도장을 받고 옆 사무관한테 가면 바로 아르헨티나 입국 도장을 찍어준다는 것이다. 특별히 안내가 되있는 것도 아니어서 크게 놀랐다.

곧 배를 탄다. 자리는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데 어디서도 창 밖은 잘 안보인다. 버스 탈 때부터 떠들석했던 사람들이 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와 비슷한 유니폼을 입은 덩치 큰 형들이다. 우루과이에서 원정 응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 같다. 북 치고 맥주 마시면서 응원가를 부르는데 우리도 따라 불렀다. 잘 했다고 모자 씌워주면서 같이 사진도 찍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Tucuman 지역을 연고로하는 Club Atletico Tucuman 팬들이다. 배 안에는 면세점도 있었는데 도착할 때가 다 되어 보드카 한 병을 사려고 가니 문을 닫는다. 지저분한 창문 틈으로 석양이 비치는 항구가 보인다. 남방의 뉴욕답게 멘하탄 같은 냄새가 난다. 배에서 내려 뚜벅뚜벅 개똥을 피해 숙소를 찾아갔다.


숙박_공기방울_Sunny Twin Room in La Boca_8_발코니 더블룸

사전에 호스트인 페데리코와 연락을 취했다. 우리가 가는 날 자신은 우루과이에 볼일이 있다고 했다. 6시까지는 집에 누가 있을 거고, 그 이후엔 1층 사람이 문을 열어줄 거라고 했다. 역시 소문대로 거친 동네다. 길엔 개똥이 난무하고, 평평한 길 보도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게 설계되어 있다. 집은 사거리 골목길 코너에 있다. 벨을 눌러도 아무런 답이 없다. 오랜 기다림 중 갑자기 소녀 둘이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했다.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어떤 아줌마가 오셔서 대응할 겨를이 없었다. 페데리코 어쩌구하더니 대문을 열어준다. 1층 자기 집에 들어가서 페데리코와 통화를 연결해 준다. 열쇠를 주고 2층 집을 안내해주고 내려갔다.

오래된 이탈리아 풍의 집 답게 천장이 끝도 없이 높다. 폭탄 맞은 것처럼 방 몇 군데가 수리 중이다. 우리가 머물 방을 찾아봤다. 작은 방 하나는 정리가 안됐고, 골목 4거리를 향한 큰 방에 수건이 놓여져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작은 방이었지만 정리할 시간이 없어 그냥 큰 방을 내준 것 같다.) 다락방은 페데리코가 작업 공간으로 쓰는 것 같다. 프로그래머라는데 방 서랍엔 스티브잡스가 창고에서 개발했을 것 같은 돌덩이 맥북이 발굴됐다. 페데리코는 3일이 지난 뒤에야 만날 수 있었다. 근처의 여자친구 집에서 지내며 이 집은 공기방울을 운영하면서 관리만 했다. 이 친절한 청년은 세탁기 2번 돌린 값도, 추가로 머문 1박 숙박료도 받지 않았다. 대신 자기 나라 여행하면서 돈을 많이 쓰란다.

집에 모기장도 있고, 주방도 필수 구성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드럼 세탁기도 있고, 옥상에서 실컷 말릴 수 있어서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숙소였다. 거기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엔 다른 게스트도 없어서 큰 저택을 통으로 썼다.


숙소_주변_La bombonera_Boca Juniors

숙소 추천을 받을 때 주변도 매우 이상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집 바로 건너편에는 골목 빵집이 있었다. 첫 아침으로 부실한 오트밀을 먹고나서 다음날 부턴 빵을 먹기로 했다. 이삼백원에 반달빵(Media Luna, 크로와상), 초콜렛 빵 등을 편하게 사다 먹을 수 있었다.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까지 내려서 정통 아르헨티나식 아침을 고수했다. (아르헨티나,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주로 반달빵과 진한 밀크커피(Cafe con Leche)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다.) 슈퍼는 대형 마트 체인보다 집 앞에 중국계 가족이 운영하는 슈퍼를 이용했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와인도 두루 갖추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고깃집도 슈퍼 옆에 있었는데 우리의 모호한 요구도 충실히 들어주셨다. 보카 쥬니어스 경기가 있는 일요일 오후에만 닫는다.

일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진짜 인파가 어마어마하게 몰렸다. 근처 탱고거리에서부터 보카 쥬니어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집으로 가는 골목 골목에 경기장 들어가는 줄이 생겼다. 팬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이 없었고, 길거리에서 소세지와 샌드위치 등을 파는 상인들이 등장했다. 우리 집 앞엔 아예 경찰과 바리게이트가 생겼다. 처음엔 경찰이 저쪽으로 돌아가라고 하더니 우리 집이 바로 여기라니까 들여보내줬다. 라이벌 팀과의 경기도 아니었는데 팬들의 열정이 어마어마했다. 집 발코니에서 삼삼오오 모여 경기장으로 가는 행렬을 구경했다. 옥상에서도 경기장이 살짝 보였지만 제대로 응원쇼를 볼 수는 없어, 유투브 영상으로 대신했다. 보카 쥬니어스 경기 입장료는 꽤나 비싼 걸로 들었다. 경기장 옆엔 박물관과 공식 기념품 매장이 있었는데 이것도 가격이 꽤 비쌌다. 여기저기 다양한 시대, 버전의 유니폼도 많이 판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사는 모양이다.

보카 쥬니어스 경기장: https://www.youtube.com/watch?v=1ecO2vn9EpY


마라도나, 메시의 나라답게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대단했다. 탱고? 그건 이 사람들에겐 우리 일상에서 트로트가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할 것이다. 이 가난한 동네에서 성장한 축구팀은 마라도나, 리켈메, 테베즈를 품고 나라 전체의 자랑이 됐다. 경기가 있기 하루 이틀 전부터 사람들은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리켈메나 테베즈는 전성기가 지나기 전인데도 유럽 리그에서 자국 리그로 복귀했다. 고향, 가족같은 요소도 있겠지만 이런 열정적인 팬들의 사랑이 부와 명성을 마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보카 동네 곳곳에는 테베즈의 화보가 틈지막하게 걸려있다. 적어도 지금은 보카에선 테베즈가 마라도나, 메시보다 더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큰 돈 받고 중국에 가서도 향수병에 시달리는 이유를 알만했다. 축구 선수에게도 부와 명예vs가족과 고향에서의 편안한 생활은 끝없는 딜레마인 것이다.

주중엔 거리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예선전이 있는 날엔 하늘색 유니폼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를 수놓았다. 그 밤에 축구 보겠다고 술집을 찾아나설 용기는 없었다. 대신 인터넷으로 보려는데 괜한 브라질과 우루과이 경기만 나와서 이걸 대신 봤다. (경기 내용은 이쪽이 훨씬 훌륭했다.) 그러다 온 거리에 함성이 들려서 보니 메시가 골을 넣었다고 한다. 나중에 경기 영상을 보니 국가대표 응원도 또 어마어마했다. 이 경기에서 메시가 심판에게 욕을 한 게 논란이 됐다. 다음날부터 뉴스만 틀면 시위 얘기 다음이 메시 얘기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이 대륙의 사람들은 축구가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의문만 쌓인다.



숙소_된장과 김치, 와인과 소고기

여편님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기대한 버킷 리스트는 탱고와 한식이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한인타운을 찾아가기로 했다. 한인타운은 외곽에 있었다. 라 보카는 (못 살아서 그런가) 지하철이 없어서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거기서 지하철을 탔다. 한인 타운은 서울로 치면, 방화나 상일동 같은 곳에 있다. 보라색 지하철의 마지막 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다시 한참을 걸어갔다. 익숙한 한글 간판들이 보인다. 슈퍼가 여러개 있다. OO마트가 좋다는데 안 보인다. 당황한 여편님을 이끌고 좀 커보이는 슈퍼로 들어갔다. 고추장은 가격이 좀 비싸고, 고심 끝에 라면과 된장, 쌀과 두부를 사고 나왔다. 아 그리고 김치, 김치님을 2포기 샀다. 김치님을 고이 모시고 지하철을 탔다. 자꾸 사람들이 우리쪽을 보는 듯한 위축감이 든다.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탄다. 토요일이라 버스에 사람이 많다. 버스 안에 김치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처갓집에서 집으로 김치를 가져갈 때는 락앤락에라도 담았지, 김치 두 포기를 검은 봉다리에 의존해서 지구 반대편 대도시를 휘젓고 돌아왔다.

그래도 김치님의 위용은 대단했다. 파는 김치 답게 양념 맛이 강해서 시원한 오이를 종종 썰어넣었다. (김치보다 양념된 오이가 더 맛있었다.) 김치찌개는 꿈도 못 꾸게 5일만에 김치 2포기가 사라졌다. 두부도 큰 몫을 했다. 전날 저녁 소고기로 지친 날이면 가볍게 두부를 구워 먹었다. 동방의 치즈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와인과 좋은 궁합을 이뤘다.


된장 한 통은 진정 뿌리를 뽑을 정도로 잘 활용했다. 변방의 소국에서 소고기는 국으로만 먹어봐서 그런지 실컷 구워먹고 나면 밤새 몸에 열이 올라 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런 다음날엔 야채로만 순하게 된장찌개도 끓여먹고, 볶음된장에 밥을 비벼먹고, 된장소스로 파스타도 만들어 먹었다. 역시 소는 밭에서 나는 소고기인 콩으로 만든 된장과 좋은 궁합을 이룬다.

소고기는 집 앞에서 얼른 사와서 볶아서 덮밥을 해먹고, 상추 쌈에 구워먹었다. 이러다 한 번은 수육을 해먹었다. 이것도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여기선 등심 갖고 수육을 해도 부담이 없다. 부위마다 가격이 다르지만 대략 한 근(600g)6,000원 정도다. 돼지 수육과 달리 소고기 수육은 국물도 활용도가 높다. 두꺼운 소고기 사태를 통으로 삶고, 양파, 마늘 같은 향신료와 소금을 넣고 강--약 불에 한 시간 정도 끓였다. 확실히 담백하고, 와인과도 궁합이 좋으면서 구워 먹을 때에 비해 많이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았다. 국물은 다음날 점심에 죽을 끓여 먹었다. 기름을 열심히 걷어낸 거라 죽도 담백하다. 말이 좋아서 소고기 천국이지 소고기 말고 다른 고기는 구경하기가 어렵다. 돼지고기도 좋은 건 대부분 소세지로 직행하는 것 같다. 그래서 외식하면 주로 소세지 빵을 많이 먹었다.


끝은 와인 얘기다. 소고기와 함께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가격 때문에 주저했던 와인들도 마셔보려 했다. 하지만 마트에선 낯선 와인들만 많았다. 같은 와이너리라도 수출용과 내수용을 따로 관리하는 모양이다. 쉽게 보이는 와인 중엔 Benjamin 말백과 화이트. ALALIS도 괜찮았다. 집 근처 와인집에서 사온 FINCA MARTHA 카베르네 쇼비뇽은 꽃을 그려넣은 병과 맛이 비슷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즐겼다는 ALTA VISTA 말백도 RESERVA로 마셔볼 수 있었다. 말백은 맛처럼 음료 자체도 진해 소고기를 녹여 먹는 것과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예술_탱고(Tango)_Caminito_0319&0321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나가면 그 유명한 카미니토 탱고 거리가 있었다. 색색이 칠해진 건물들과 야외 레스토랑에서 보여주는 탱고 공연이 늘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 기세론 매일 귀가할 때마다 들를 것 같았지만 두 번 정도 갔다. 처음엔 일요일이라 보카 쥬니어스 팬들과 관광객이 범벅되어 거리가 꽉 찼다. 가운데 레스토랑들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리 초입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탱고를 구경했다. 탱고라곤 영화 한 편 본게 전부라 길거리 공연만해도 수준 높아 보였다.

다음 번에 찾았을 땐 평일이라 좀 더 큰 레스토랑에서 탱고를 감상했다. 댄서들의 활력은 저번보다 못했지만 가운데서 중심을 잡는 반도네온 할배의 포스가 남달랐다. 여편님의 말로는 원래 탱고는 반도네온 연주자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했다. 반도네온 할배와 다른 할배의 노래 만으로도 훌륭한 공연이었다. 나중에 산 텔모 광장에 나가서 또 길거리 탱고를 봤는데 딱 봐도 라 보카에서 보던 것 보다 화려하고 날렵했다. 이제 진정한 탱고 고수들은 다 라 보카를 떠난 것 같아 씁쓸했다.

워낙 동네 치안에 대한 얘기도 많고, 집에서 안락하게 와인을 즐기는 맛에 취해 탱고 공연을 따로 보지는 못했다. 일년 전 태국에서 보다 잠든 영화 해피투게더를 다시 보려고 틀었지만 이것도 파일호환 문제로 재생되지 않았다. 우리집이 나름 장국영과 양조위가 살았던 집과 조명이나 채도가 비슷해서 배경음악만 틀어도 운치가 났다.


예술_음악

아무도 없어서 좋긴 했지만 두 명만 지내기엔 워낙 큰 집이라 음악을 많이 틀었다. 종종 옆집에서도 그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었다. 주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으로 유명한 빔 벤더스가 만든 Last TangoOST, 국내 최초? 유일?의 반도네온 연주자인 고상지의 앨범, 해피투게더 OST를 많이 들었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양희은 같은 존재인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노래도 실컷 들었다. 소사는 첫날 만난 축구팬들의 연고지인 투쿠만 출신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독재가 끝나고 국립극장에서 다시 부른 Gracias A La Vida는 언제 들어도 역사에 남을 라이브다. (원곡은 칠레의 여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불렀다.) 그녀의 다른 공연 영상을 봤는데 우리 생각과 달리 젊을 때는 훨씬 날렵하면서도 똑 부러졌고, 샤키라 공연에 나타난 아주 말년의 모습은 가슴아팠다. Todo Cambia를 부르며 수건을 흔드는 모습은 진정 신이 그녀를 통해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메르세데스 소사 라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_1rPjtnHo2Q


예술_미술_PROA_0321

라 보카에 들어서기 전에 큰 건물이 하나있다. 철강회사에서 산하 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주로 현대 미술 기획전을 한다. 예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라 보카에 왔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재밌었다. 이번에도 한 번 갔는데 여전히 흥미로웠다. Yves Klein이라는 프랑스 작가 기획전이었다. 원래 일본에서 유도를 하다가 뒤늦게 미술가로 전업했다고 한다. 특유의 파란색을 많이 썼는데 이 푸른색은 Internationalklein Blue라고 불리며 특허권도 있다고 한다. 그 파랑 및 세상에 없는 색을 만들다 클랭은 화학약품에 중독된 탓인지 40대초반에 심장마비로 생을 마친다. 영상자료 중에 누드 모델들이 파란 물감을 묻혀서 몸으로 그리는 모습이 꽤나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예술_미술_현대미술관_Museo de Arte Moderno_Buenos Aires Ciudad_0324

시내 나가는 길에 둘러봤다. Antonio Berni라는 아르헨티나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울한 현대사가 담긴 작품이었다. 나머진 난해했다.



시장_산텔모 일요시장_La Feria de San Telmo_0319

몬테비데오에서 일요 시장을 놓쳐서 부에노스 일요시장에 이를 갈았다. 시장 이름에 걸맞게 산텔모 광장에서 시장해서 Plaza de Mayo까지 시장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골동품부터 관광 기념품, 히피, 재생품 등 여러 컨셉의 물품을 한 방에 다 둘러볼 수 있었다. 100년은 족히 되보이는 골동품들을 둘러보다가 몸이 노쇠해져 산텔모 상설 시장에서 소고기 토마토 범벅과 햄버거를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 중간 중간엔 소세지를 구우며 올드락 공연을 하는 곳도 있었다. 아무래도 요즘 관광 시장의 트랜드가 크루즈 타고 돌아다니는 노년층 중심이다보니 그런 것 같다. 멀리 이어지는 시장엔 좀 더 젊은 기운이 돌았다. 우린 긴팔이 필요했는데 관광 티셔츠는 죄다 반팔 위주다. 끝 무렵에 이르르니 아이디어가 불을 뿜는다. 국민간식인 엔빠나다로 만든 가방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드디어 아기자기한 긴팔 라운드티를 발견했다. 청년이 직접 이런저런 천을 떼다가 이어붙인 티셔츠라고 했다. 색깔 조합도 다양하고, 옷 마다 감도 다 달랐다. 어떤 건 기모, 어떤 건 면이었다. 거기다 기본 로고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잠시 다른 곳을 돌아보고 오니 그새 물건이 빠져나가서 몇 개 안남았다. 여편님과 의견 조율 후 붉은색과 푸른색 계열의 티셔츠를 하나씩 골랐다. 두 벌에 500페소, 기성품이 아닌 수제 티셔츠를 사서 서로 번갈아가며 잘 입고 있다.


레콜레타(Recoleta)_0322

맨날 서민 동네에만 있긴 그래서 잘 사는 동네도 가보기로 했다. 팔레르모와 레콜레타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레콜레타에 도착해서 내렸다. 같은 슈퍼를 들어가봐도 라 보카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라 보카 슈퍼에는 생필품과 간단한 식품이 늘 재고가 간당간당한다. 상품도 다양하지 않다. 잘 사는 동네라 고가의 와인부터 쭉 진열되어 있다. 길거리의 작은 가게들의 과일도 싱싱해 보인다. 열대과일도 많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서 피자를 먹었다. 애들을 데리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부촌의 점심은 분위기가 다른가 어쩌구 하다가 뉴스를 봤다.

지난 밤 라 보카 지구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났다고 한다. 떠들석하게 보도한다. 그 다음은 교사 파업 얘기다. 며칠에 걸쳐 지역별 교사 행진이 있었고, 오늘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집결해서 행진하고 있단다. 3시부터는 아예 중심대로에서 행진이 있단다.


서점_El Ateneo_0322

레콜레타에 유명한 서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플로리다 거리에서도 봤던 서점인데 여기 지점은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무대가 있었던 곳에는 카페를 운영해서 커피 한 잔 안 마시고 갈 수가 없다. 커피 마시면서 서점을 보면 지성인이 되는 기분이다. 책 사러 오는 사람보다는 관광객이 많아 보였다.


79일 대로_9 de Julio_0322

교사 시위덕에 집에 버스 타고 편하게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시내로 가보기로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대로는 나와의 친분을 기념해 내 생일인 79일이라고 이름 붙였다. 100년 전 아르헨티나가 세계에서 2번째로 잘 살던 시절부터 이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였다고 한다. 도로엔 온갖 버스가 다 주차되어 있고,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교사들로 붐볐다. 이 시위 덕분에 몇일 수업 공쳤을 학생들을 생각하면 배가 아프다.


오월 광장_Plaza de Mayo_0323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기 전날 뭘할까 빈둥거리는데 페데리코가 왔다. 할 일 없으면 5월 광장에 가보란다. 오늘이 진실과 정의를 기억하는 날(Dia Nacional de la Memoria por la Verdad y la Justicia)라고 한다. 간단히 군부 독재 시절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날이다. (이날 말고도 매주 목요일엔 오월 광장에서 독재 시절 실종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이 집회를 한다.)

조국의 촛불집회에도 못 가본 터라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광장에 가까워질 수록 사람들이 많다. 광장 가까이엔 인파에 쓸릴 정도였다. 체게바라, 페론, 에비타가 그려진 티셔츠, 깃발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열기는 뜨거웠지만 격하진 않았다. 정부에서 아주 싫어한다는 좌파 인사도 볼 수 있었다. 작년에 들어선 우파 정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총집결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교사 집회에서도 핵심 구호는 ‘한 달 9000페소로는 살 수 없다’였다. 길거리엔 맥주와 소세지, 햄버거를 파는 상인들도 있었다. 맥주 팔던 아저씨가 신나게 노래 부르다가 맥주도 한 모금줬다. 사람들의 행진을 따라가다 집으로 돌아왔다.


시내교통_버스

지하철은 한인타운 갈 때 한 번 타고 나머진 모두 버스를 탔다. 공항까지도 La Boca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대중교통은 Sube카드를 이용하는데 1개로도 2명이 쓸 수 있었다. 대중 교통 가격은 목적지에 따라 다르지만 20페소 정도로 매우 저렴했다. (버스 기사에게 대강 목적지를 말하면 해당 요금을 찍어준다.) 버스는 대부분 굉장히 오래됐고, 인도 버스처럼 요란한 색상이지만 잘 달린다.


환전_플로리다 거리_20173

아르헨티나의 화폐 시스템은 굉장히 이상했다고 한다. 달러 공식 환율의 두 배 가까운 환율을 암환전을 통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1달러에 8페소가 공식 환율이면, 암환전을 통해 1달러로 16페소를 받을 수 있었단다. 작년부터 이 말도 안되는 암환전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암환전이 약간은 유리한 면이 있다고 해서 플로리다 거리를 찾아갔다. 가는 도중에 시티은행이 있어서 인출을 하려고 하니 안됐다. 그리고 다시 플로리다 거리에 있는 시티은행에서 인출하니 2,000페소가 스르륵 나왔다. (시티카드로 인출, 나중에 확인 결과 수수료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플로리다 거리에 들어서니 환전(Cambio)를 속삭이는 삐끼들이 늘어서 있다. 몇 군데 대충 환율을 물어봤다. 이날 공식 환율이 1달러당 15.4~15.5페소였는데 200달러면 15.8에 해주겠다는 아주머니가 있다. 주말이라서 그 이상은 못해준다고 한다. 상가 건물로 한켠에 옷 가게로 들어간다. 옷 가게 안에 창구가 있고 여기서 환전을 해준다.

처음 환전한 돈을 거의 다 탕진하고, 평일에 플로리다 거리를 다시 찾았다. 다음 일정을 감안해서 1,000달러를 환전하기로 했다. 지난 번에 환전했던 아주머니는 오늘도 15.8이라고 한다. 거리 안쪽을 뒤져도 더 좋은 환율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다시 거리 초입으로 가서 16을 불렀던 아저씨와 16.2로 합의를 봤다. 이번엔 사무실 건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빈 사무실로 들어간다. 여긴 좀 더 규모가 있는 환전상인지 창구도 있고, 돈 세는 기계도 있다. 삐기로 일하는 아저씨는 콜롬비아에서 왔다고 한다. 한국어로 환전을 알려줬다. 엄숙하게 100달러 열 장을 내밀고 페소를 한 가득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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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비데오(Montevideo)_0308_0317

우루과이의 수도다. 수도라고 해봤자 인구가 백만 정도밖에 안된다. 한 가운데 올드타운이 있고, 그 외 지역은 주택가로 한산했다. 나름 바다를 끼고 있어서 해변도 많았다.


워크어웨이(WorkAway)

우루과이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고조된 건 브라질 꾸리찌바에 있을 즈음이다. 페페의 책을 읽으며 푸른 꿈을 꿨다. 조금 더 가까이 우루과이 사람들의 생활을 경험하고 싶어 무려 10군데가 넘는 워크어웨이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다. 이중 한 군데만 연락왔다. (대부분 휴가철이라 게스트를 안 받거나, 게스트로 꽉 찬 모양이다. 우루과이 숙박비가 남미에선 최고 수준이라 장기 여행자들이 워크어웨이를 많이 하는 것 같다.) La Paloma에 있는 곳인데 정원 관리를 돕는 일이었다. 사전에 스카이프로 통화를 한 번 하자고 했다. 상세한 얘기를 나누고 며칠 뒤, 내 스페인어 실력이 부족해서 함께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회신이 왔다. 실제 일하는 사람은 스페인어만 가능하다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절망감에 몬테비데오의 한 호스텔에 새로 연락을 했다. 곧 바로 답이 와서 간단한 스페인어만되면 리셉션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디아블로에서 편안한 휴가를 즐기고 다시 몬테비데오로 일을 하러 갔다.


숙박_Lo de Mercedes_반지하 5+더블룸 4

알려준 숙소 위치를 찾아보니 맵양, 예약닷컴에도 등록되어있는 숙소였다. 도심에선 약 10km 정도 떨어졌고, 길 건너엔 작은 해변과 공원 등이 있었다. 몬테비데오 중앙터미널인 Tres Cruces에서 내려 알려준 시내 버스를 타고 갔다. 다행히 버스는 숙소 바로 옆이 종점이었다. 전원주택가에 민박처럼 자리한 집이었다. 내부는 오래된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거실에 젊은 커플 둘이 노트북을 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왔는데 자기들도 워크어웨이로 두 달 넘게 여기 머물고 있단다. 여자 이름은 파트리샤고 남자 이름은 물어볼 타이밍을 놓쳐서 모른체로 지냈다. 거실 안에 부엌 겸 리셉션이 있다. 주인인 메르세데스가 우리를 맞아준다. (숙소 이름=주인 이름이다. OO네 민박. 우리끼린 아르헨티나의 유명 디바 Mercedes Sosa의 이름을 따서 ‘소사’라고 칭했다.) 워크어웨이 소개 프로필에 보면 자식 셋과 함께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어디 갔는지 모른다.)

우리가 머물 방을 알려준다. 지하로 내려간다. 잡동사니와 세탁기를 모아 놓은 방을 기준으로 한쪽에 아들방이 있고, 구석에 워크어웨이 방이 있다. 쾌적한 더블 침대는 브라질 친구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겐 이층 침대 2개가 붙어 있다. 아래 칸은 너무 어두워서 둘이 이층을 쓰기로 했다. 발끝에 반지하 창문이 향하는 구조다. 첫날이니 그냥 쉬고 일은 내일 알려준다고 한다. 낮잠 한 숨 자고, 동네 주변을 둘러보고 왔다. 집 앞에 넓은 잔디 공원이 있다. 간단한 주전부리로 저녁을 해결했다.


업무 일지_1일차_0309

다음날, 아침 식사가 차려져있다. 식사 준비, 객실 청소 등을 전담하는 아주머니가 2분이나 있다. 아침은 각종 빵과 과일, 시리얼까지 잘 나온다. 양껏 먹고 업무지시를 기다린다.

먼저 루나에 대해 알려준다. 이 집엔 대형 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루나, 2살이다. 비만이라 꾸준한 운동과 식단 관리가 필요하다. 아침이나 저녁에 루나를 데리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게 중요한 일과다. 종특이 막대기 물고 오는 거라 던지면 잘 물어온다. 하지만 절대 반환하지 않고 자기가 물고 뜯는다. 또 다른 막대기나 공을 던져야 물고 있는 걸 놓고 달려간다. 그러다가 볼일도 보고, 맘에 드는 개가 나타나면 친교도 나눈다. 매우 사랑스러운 개다. 집 내부도 맘껏 휘젓고 다닌다. 그 큰 몸집으로 의자나 탁자 사이를 잘도 돌아다닌다. 딱 루나의 크기에 맞게 집이 설계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돌아나오지 못하는 공간에선 후진도 한다. 고기나 치즈를 먹을 때면 찰싹 붙어서 한 점 주기를 기다린다. 우리 생활에서 루나의 존재는 가장 큰 활력소였다.


루나랑 놀고 돌아와서 한참이 지나도 다른 얘기가 없다. 뭘 하라는 건지, 배고프다. 그러다 2시가 다 되서야 파트리샤가 얘기를 시작한다. 각 방 이름과 수용인원, 가격, 예약현황, 이메일과 예약닷컴, 공기방울 계정 관리 등 순식간에 오리엔테이션이 끝난다. 덧붙여 지도로 시내 가는 방법과 근처 주요 시설을 알려준다. 업무는 아침 8시에서 4, 4시에서 밤 12시로 교대한다. 8시간을 둘이 나눠서 지키면 된다. 하지만 커플은 실질적으로 둘이 8시간을 일하게 되는 구조다. 기본적으론 우리가 저녁에 일을 하기로 한다. 교대가 필요할 땐 말하란다. 오늘부터? 그럼 이제까지 기다린 우리는 바보란 말인가. 식사는 아침과 점심or저녁이 제공된다. 홧김에 근처 식당에 가서 여편님과 빠에야를 한 사발 들이키고 돌아왔다.


4시가 되어 돌아왔다. 노트북에 앉아 아까 설명 들은 내용들을 둘러본다. 예약닷컴에 호스트 계정으로 들어가기는 처음이다. 전체 금액 중 수수료로 얼마 떼가는지가 나온다. 금액별로 다른데 대략 15%를 떼간다. 의외로 예약했다가 취소하는 사람도 무지 많다. 주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에서 많이 온다. 메일도 안오고, 전화도 안온다. 여편님은 일반 노트북 생긴김에 공인인증서를 갱신 하기로 했다. 소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공리에 갱신됐다. 그럼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우수아이야 항공권을 끊었다.

주방이 시끄러워진다. (이 곳의 문제는 리셉션에 앉아서 주방의 풍경을 생생히 지켜본다는 것이다. 어지럽다.) 오후부터 어마어마한 반죽을 만드는 2명이 있다. 피자를 만든다고 한다. 소사와 가족들, 파트리샤 커플에다 사람이 모이고, 계속 피자가 나온다. 색색 다른 버전의 피자를 한 판씩 구워낸다. 브라질 꾸리찌바에서 온 여행자들이다. 왜 여기서 피자를 만드는지 모른다. 우리도 계속 한 조각씩 먹는다. 맥주도 준다. 카이피리니(브라질에서 즐기는 칵테일, 나중에 알았지만 파트리샤 남자친구는 바텐더 출신이다.) 꾸리찌바 친구들은 투숙객도 아니었다. 피자 파티를 마치고 유유히 떠난다. 며칠 뒤 시내에서 걸어다니는 그들을 봤다. 첫날은 먹다 보니 열두시가 금방이었다. (탄핵 결정도 생방으로 지켜봤다.)


업무일지_2일차_0310

오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낮잠을 자고, 4시가 되어 바톤을 넘겨받는다. 소사도 나가고 우리만 숙소를 지킨다. 저녁은 냉장고에 있는 파스타를 데워먹으라고 한다. 나름 직접 만든 소스라 맛있다. 이날도 별일 없다. 메일 몇 통만 업데이트 했다. 또 개인 일을 처리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숙소와 교통편을 결제했다. 다음주 금요일까지만 여기 머물기로 했다. 12시까지 아무일이 없다. 평소 열시면 자는 우리에게 12시까지 버티는 거 자체가 중노동이다. 이미 눈이 감긴 여편님을 먼저 보내고, 나도 곧 잠을 잤다.


업무일지_3일차_0311

또 오전에 나갔다가 들어왔다. 일을 하려는데 소사가 아래 층에 빗물이 역류된다며 흙을 좀 빼달란다. 급 육체노동을 30분 정도했다. 저녁엔 다시 리셉션을 지킨다. 저녁은 레드빈을 끓인 수프를 먹었다. 업무는 주로 온라인으로 들어온 예약과 문의에 회신하고, 종이 달력, 컴퓨터 파일에도 기록하는 것 뿐이다. 아주 졸립다. 11시 반에 업무를 종료했다.


업무일지_4일차_0312

파트리샤 커플이 시간을 바꾸자고 해서 오전 근무를 했다. 금요일부터 가족들이 놀러와서 숙소에 같이 머물고 있다. 오늘은 같이 낮에 놀러나갈 모양이다. 맑은 정신에 일하니 한결 편하다. 루나 산책도 시켰다. 주말이라 공원이 개 천지다. 여편님은 소사를 도와 요리를 한다. 점심으로 근대로 만든 타르트가 나왔다. 난 맛있어서 두 개 먹었다. 근무 교대 직전 갑자기 아저씨 한 명이 왔다. 특정 방을 지목하며 비었냐고 물어본다. 다행히 사람은 없다. 자주 오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버버하며 체크인을 해줬다.

근무를 교대하고 산책을 나갔다. 바람이 엄청 분다. 해변엔 서핑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면 리듬이 바뀐 탓, 반지하 방 공기가 안 좋은 탓으로 감기 기운이 들었다. 소고기와 쌀국수를 사다가 쌀국수를 끓여 먹었다. 한 솥 끓여서 파티 중인 파트리샤 가족에게도 한 그릇 나눠줬다. 대신 생선 조림을 줬는데 생물이라 엄청 맛있었다.


업무일지_5일차_0313

감기 기운이 남아서 해롱해롱하다. 오늘도 오전 근무를 하기로 했다. 왠일인지 아침 식사가 주방에 차려져있다. 어제 체크인한 아저씨가 나가려고 한다. 잔돈이 없어서 자고 있던 소사를 깨웠다. 그 아저씨가 온 걸 이제야 안 소사가 다급히 내려간다. 아침도 먹으라며 챙겨주고 대화한다. 나중에 나에게 손님 응대를 제대로 하라고 주의를 준다. 전화가 울렸다. 모니터 보고 있다가 소사가 전화를 받으라고 알려준다. (그래봤자 소사 바꿔달라는 전화다.) 지하에 있는 세탁기로 빨래를 돌렸다. 드럼형 세탁기 뚜껑이 불안불안했는데 물이 샌다. 황급히 세탁기를 끄고 물을 닦았다. 대충 손으로 행궈서 널었다. 소사가 세탁기 쓰고 물 넘쳤냐고 묻길래 조금 흘렀다고 구라쳤다.

여편님이 먼저 낮잠 자러 갔고, 소사가 리셉션에서 할일이 있다길래 나도 내려가서 낮잠을 잤다. 한숨 자고 올라가니 소사가 얘기 좀 하자고 한다. 아무래도 일이 벅차 보인다고 한다. (몰랐는데 전화 받을 때 Hola도 안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빠른 스페인어에 긴장됐던 게 사실이다. 아는 사람들끼리야 괜찮지만 모르는 손님들은 봐주지 않는다. 금요일까지 몬테비데오에 있어야 하니 숙소에 게스트로 머물러도 좋단다. 아침을 제외하고 도미토리는 20달러, 더블룸은 30달러로 해주겠단다. 여편님과 상의 후 더블룸에 머물기로 했다. 좀 어색하겠지만 이 가격에 이 정도 숙소면 감당할만 했다. (좀 어수선해서 그렇지 객실 등은 엄청 깨끗하게 관리된다.)

이상 5일 간의 숙박업 체험이 끝났다. 체질상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생각보다 남은 기간 숙소에서의 생활도 편안했다.



몬테비데오 시내 관광

교통_시내버스

숙소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요금은 33페소(1달러).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고급버스는 49페소(1.5달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비하면 퍽이나 비싸다. 수도라도 인구가 적으니 별 수 없다. 버스는 인도, 스리랑카 버스라고해도 믿을만큼 느리다. 헥헥헉헉 거리면서 간다. 시내까지 보통 한 시간은 잡아야 했다. 돌아올 때는 대충 집 근처 동네 이름이 새겨진 버스를 잡아탔다. 그러다 마지막 시내 나들이 때 엄청 돌고 도는 버스를 탔다. 우리가 살던 고급 주택가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의 동네를 경험했다. 버스는 종점 부근의 모든 골목을 마을버스처럼 해집고 나서야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루이스 수아레즈는 아주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했는데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었다.


가이드 줄리아

금요일에 우리끼리 시내를 한 번 둘러보고 왔다. 그리고 토요일 낮에 이과수에서 만났던 줄리아를 만나기로 했다. 광장 한 가운데서 그녀를 만났다. 여기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커피를 마시며 근황을 얘기했다. 줄리아는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다. 지금 엄마는 프랑스, 아빠는 캐나다에 있고, 오빠 한 명은 필리핀에, 다른 오빠 한 명은 곧 남아프리카로 갈 예정이란다. 온 가족이 전 대륙에 흩어져 있는 셈이다. 주로 외국에서 영어를 가르쳐왔는데 니카라과, 온두라스, 산티아고에도 있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 중 몬테비데오를 골랐단다.

올드 타운에 살고 있어서 골목을 속속들이 안내해줬다. 보도블록이 망가지면 그 사이를 알록달록한 문양으로 채워넣는 것까지 알려줬다. 각 광장과 항구, 바닷가까지 부지런히 산책했다. 엄청 잘 걷는다. 몬테비데오라고 불린 유래는 항구 건너편에 보이는 언덕 덕분이란다. 첫날 우리끼리 왔을 때는 참 심심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줄리아의 가이드까지 받고, 세 번, 네 번 찾게되면서 아기자기한 몬테비데오 시내에 정이 들었다.


식사_Nueva Bolsa

첫날 발견한 식당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시장(Puerto Mercado)에서 아사도를 먹을까 하다가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래된 장식품에 나이든 아저씨들이 서빙을 한다. 근처 직장인들의 점심 식사 장소로 애용된다. 파스타, 밥튀김, 생선구이, 치즈돈까스(밀라네사) 등의 메뉴를 판다. 200페소 내외로 가격도 착하다. 시내 갈 때마다 3번이나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카페_Brasilero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에 대한 기사에서 그가 자주 찾던 카페 이름이 나와서 메모해 두었다. 시내에 있길래 찾아갔다. 갈레아노를 필두로 유명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 카페였다. 그의 사진도 걸려있다. 갈레아노는 젊은 시절 일과 집필을 겸하기 위해 커피를 강물처럼 마셨다고 한다. 유명 작가가 되고 나서야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이 카페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카페 이름대로 브라질의 좋은 원두를 쓰는지 새콤하면서도 무겁고도 가벼운 커피를 준다. 아마존의 강물을 마시는 기분이다. 더블 에스프레소나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특이한 잔에 준다. Nueva Bolsa에서 점심을 먹고 이곳 커피도 3번 마시러 갔다. 점심을 먹는 사람도 많아서 작업을 할정도로 조용하진 않다.


미술관_Museo Torres Garcia_0314

스페인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에서 우루과이 작가 토레스 가르시아의 특별전을 보게 됐다. 몬테비데오에 찾아보니 역시나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었다. 우루과이를 대표한 미술가로 몬테비데오를 거쳐 파리, 뉴욕에서 활동했다. 표현으로서의 미술을 중요시해서 그의 그림을 보면 어두운 몬테비데오, 파리, 뉴욕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의 질감을 매우 잘 다뤘다. 기념품 매장에는 자와 엽서 등 좋은 물건을 팔아서 득템했다.


서점_Liberaria Más Puro Verso

시내에 있는 서점 중엔 가장 규모가 컸다. (다른 서점은 대부분 아주 작은 서점이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3층 짜리다. 음반 등도 취급하고 위엔 까페도 있다. 생각했던 것 만큼 갈레아노의 책이 많지 않았다.


신시가지 나들이_CARRASCO_쇼핑몰_PORTONESS_0315

우리집도 나름 부유한 동네였지만 더 동쪽으로 가면 젊음의 거리가 있다고 했다. 하루 짬을 내서 가로수길을 찾아갔다. 거의 한 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별거 없었다. 고급스러운 은행 건물, 비싼 식당 몇 개가 다였다. 그 외 서브웨이, 버거킹, 맥도널드가 운집해있다. 줄리아가 전형적인 우루과이 식당이라고 소개한 La Pasiva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돈까스인 밀라네사를 많이 먹고 있다. 우리는 우루과이식 샌드위치 치비토(CHIVITO)를 시켰다. 큰 햄버거 안에 고기와 햄, 계란까지 두둑하게 넣어준다. 여편님이 본인 스타일이라며 좋아했다. (그녀는 터미널에서 먹은 버거킹도 크게 흡족했다. 확실히 햄버거도 크고 고기질이 훨씬 싱싱했다.)

시간이 일러 집 근처 쇼핑몰인 PORTONESS도 둘러봤다. 별거없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TRES CRUCES 터미널 위의 쇼핑몰이 훨씬 좋다. 여편님은 떠나기 전에 100페소짜리 백팩을 샀다. 내 백팩이 찢어져서 버리고, 여편님이 쓰던 백팩을 내가 쓰기로 했다. 크건 작건 백을 사는 건 백퍼센트 기뿐 일이라고 한다. 나이키 팩토리도 있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할인가 70유로에 주고 구매했던 오피셜 카탈루냐 유니폼도 무려 20달러 정도에 팔고 있었다.



와인과 맥주

슈퍼 곳곳에 국산 맥주를 애용하자는 문구가 보인다. 우루과이 맥주 중엔 PILSEN, PATRICIA 등을 마셨다. 개인적으론 PATRICIA가 상쾌해서 좋았다.

디아블로에서부터 PUEBLO SOL, SANTA CATALINA 등의 우루과이 와인을 마셨다. 저렴하고 맛도 무난했다. 가장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와인은 DON PASCUAL이다. 한 번 마셔보고 나서 여편님은 다신 마케팅 열심히 하는 와인 안 마시겠다고 했다. 몬테비데오 숙소에 좋은 철판이 있어 볶음 요리와 와인 조합을 즐겼다. 그 중 TRAVERSA라는 몬테비데오 근처에 위치한 와인이 매우 훌륭했다. 탄닌이 강한 TANNAT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화이트 와인도 맛있었다. 우루과이는 기후도 한정적이고, 고산지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와인은 괜찮다. 이탈리아 후예들의 엄청난 열정으로 빚어낸 성과같다.



독서_호세 무히카 조용한혁명_부키

우루과이의 열기를 고조시킨 책이다. 브라질에서 읽었다.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수식한 다른 책보다 훨씬 재밌다. 단순 찬양조가 아닌 적절한 비판이 겻들어간 평전이다. 무히카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정치 전반에 대해서도 시야를 넓혀줬다. 몬테비데오를 떠나는 버스에서 페페가 사는 집을 지나쳤다. 생각보다 훨씬 교외의 조용한 동네였다.


개념 착오가 있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절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차이점이다. 겸손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 더하다. 세상은 우리 없이도 계속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가난하다고 나를 묘사했는데, 가난에 대한 나의 정의는 세네카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많이 필요하면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절제할 줄 아는 것이지, 가난한 것이 아니다. 나는 수수한 사람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여 있지 않다. ?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 자유는 삶을 살아갈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Es un error conceptual. Yo no soy pobre. Soy sobrio, que es distinto. Hay que ser humildes. La gente se cree que es el centro del uni­verso y que cuando estamos en un puesto importante y esto… El mundo sigue dando vueltas sin nosotros. Nos pe­lamos de este mundo y no pasó nada.”

..

Pobres son los que describen, pobres son los que precisan mucho porque son insaciables. Yo soy sobrio no pobre. Liviano de equipaje, vivir con poco con lo imprescindible y no estar muy atado al sostenimiento de cuestiones materiales. Para tener más tiempo libre, para poder hacer las cosas que me gustan. La libertad es tener tiempo para vivir. Hay una filosofía de vida en la sobriedad que practico, no soy pobre”

Jose Mujica, La revolucion tranquila’, Mauricio Rabuffetti


#호세무히카 #무히카 #조용한혁명 #부키 #여행스캣치

#josemujica #pepemujica #larevolucióntranquila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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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루과이를 간다고 했을 때 백에 구십은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우루과이로 이끈 건 페페(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루이스 수아레즈 같은 사람들이었다. 추가적으로, 바로 옆 나라인 아르헨티나가 인구보다 소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과이는 인구(330만 명) 당 소 숫자가 3~4 마리(1200만 마리)로 비율로는 세계 1위다(비공식적으론 몽골이 압도적으로 1위일 것 같다). 운명적으로 브라질 일정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마치게 되면서 우루과이 동북쪽 국경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인구 당 소 숫자 통계자료: http://www.cattlenetwork.com/5-countries-have-more-cattle-people


입국_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_우루과이 추이(Chuy)

국경을 넘는 건 늘 까다롭고 긴장되는 일이다. 안전을 위해 사례를 찾아보는 편인데 국내 사례는 찾기 힘들었다. 포르투 알레그레 터미널에서 우루과이 버스 회사인 EGA(http://www.ega.com.uy/)의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다른 회사는 한밤 중에 국경에 도착했다. 가능한 늦게 출발하는 버스로 예매했다. 그래도 밤 10시 출발 새벽 5시 도착이다.

터미널에서 기나긴 기다림 끝에 9시 반쯤부터 버스 탑승이 시작된다. 승무원들 분위기를 보니 Chuy는 정식 정착지는 아닌가보다. 우리 표에도 San Carlos로 가는 걸로 되어있다. 몬테비데오까지 가는 버스 2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버스는 이제껏 타 본 버스 중에 가장 좋았다. 내부도 새것이고, 이층 버스에 공간도 넉넉하고, 티비도 와이드다. 출발하자마자 저녁을 준다. (역시 남유럽의 후손들… 다음날 아침에는 샌드위치도 준다는데 우린 못 먹는다.) 함박스테이크와 감자샐러드, 기타 달달이였다. 챙겨뒀다가 다음날 아침에 요긴하게 먹었다. 이렇게 좋은 버스는 12시간 정도 넉넉히 타줘야 한다는 아쉬움에 곧 잠이 들었고, 곧 깼다.

어느새 브라질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여권은 미리 수거해서 승무원들이 알아서 출입국 도장을 받아준다. (여긴 특이하게도 브라질과 우루과이 국경인 Chuy에 국경선 위아래로 마을이 형성되어있고, 각각 국경사무소는 마을에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우루과이 국경 사무소에 도착하자 승무원이 우리를 부른다. 우리만 여기서 내리는 모양이다. 우루과이 입국 도장까지 받은 여권을 챙겨준다. 이미 계산된 건지 곧 바로 해안쪽으로 가는 버스가 온다. 승무원이 이 연약한 코레아노들 잘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1시간을 달려 푼타 델 디아블로에 도착했다. EGA에서 다음 버스 요금까지 부담한 것인지 버스에서 따로 요금을 받지 않았다. 이동 거리에 비해 버스비가 비싼 걸로 보아 이정도는 서비스로 해준 모양이다.


일정과 이동_20170302_20170325

페페, 갈레아노, 수아레즈 3톱말고 우루과이에 대해 아는 건 수도 몬테비데오뿐이었다. 포르토 알레그레와 가까운 동북 해안지대가 볼거리가 많다고 했다. 카보 폴로니오보다 푼다 델 디아블로가 저렴한 숙소가 많았다. 약 일주일간 여기를 베이스 캠프 삼아 주변을 둘러봤다. 이후 몬테비데오로 이동해 열흘 정도를 머물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주일 정도 있으면서 대서양 서쪽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지역 간 이동_시외 버스

푼타 델 디아블로에서 주변 지역을 찾거나, 몬테비데오까지 이동할 때 모두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몬테비데오에서 동부 해안에 이르는 지역은 Rutas Del Sol, COT, CYNSA 세 개의 회사가 노선을 운행했다. 휴가철을 전후하는 바람에 버스 시간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처음 푼타 델 디아블로 터미널에 내렸을 땐 터미널에서 시내까지 셔틀버스(30페소)를 이용했다. 며칠 뒤 셔틀버스는 사라졌고, 시외버스가 직접 마을 안까지 들어와 사람을 실어갔다. 휴가철이 끝났기 때문이다. 버스 시간표가 바뀐줄도 모르고 이날 아침 버스를 2시간이나 기다렸다. 버스 안에는 차장이 있어 버스 안에서 직접 요금을 지불하거나 터미널의 회사 카운터에서 티켓을 구매했다.

Rutas Del Sol: http://www.rutasdelsol.com.uy/horarios.php

COT: http://www.cot.com.uy/site/


몬테비데오로 이동하는 건 꽤나 극적이었다. 여편님을 정류장에 남겨두고 바로 옆 슈퍼에 간식을 사러갔다. 뻥튀기와 탄산음료를 결제하려는 순간 여편님이 달려왔다. 버스가 온 것이다. 서둘러 달려가서 버스를 타려는데 표를 물어본다. 안에서 내면 안되냐고 하니 일단 타고 가서 터미널 사무실에서 사라고 한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차장 아저씨와 함께 사무실로 갔다. 사람이 없다. 일단 타고 다음 터미널에서 사기로 한다. 다음 터미널에 갔다. 마침 현금이 없어서 카드로 하려고 하니 결제기가 없단다. 다음 큰 도시 터미널에 카드 결제기가 있단다. 이렇게 대략 2시간을 무임승차 하고 나서야 표를 갖게 됐다. 매번 우리를 데리고 다니느라 차장 아저씨가 짜증났을 법도 했다. 하지만 이 긍정의 아저씨는 직접 사무실 직원들과 통역까지 해줬다. 그러다 내가 스페인어를 좀 한다고 하니, 버스에 돌아와서 스페인어는 어디서 배웠냐, 우루과이 좋냐 등등의 말을 건넸다. 토실토실한 운전사도 우리가 표가 있건 없건 난 드라이버니 상관 없다며 허허 웃었다. 넓은 땅에 살아서 그런지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다.


경제_우루과이 페소 및 달러

우루과이는 남미 장기 여행자들에게 달러를 뽑아쓰는 곳으로 유명하다. 처음에 뭣도 모르고 ATM에서 3,000페소를 인출했다. 1페소는 약 40, 28페소는 약 1달러였다. 하지만 경제규모도 작고, 주변국과 교류가 활발해서 그런지 달러가 원활하게 통용됐다. 관광지 식당에서도 공식환율과 맞먹는 가치로 달러를 받아주는 정도였다. ATM에서도 300달러까지 달러 인출이 가능했다. 이후엔 가진 달러를 직접 또는 환전해서 사용하고, 이후 여정을 위해 몬테비데오에서 무려 3,000달러(300달러 X 10)를 뽑았다. 몇몇 구식 ATM에선 인출이 안되었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비자카드만 인출된다는 걸 알았다. 달러를 계속 뽑다보니 빠징코 777 맞는 것처럼 신이들렸다.



푼타 델 디아블로(Punta Del Diablo)_0302_0308

푼타 델 디아블로(이하 디아블로)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악마의 지점이다. 왜 그런지는 차차 알게됐다.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분다. (나 나름 제주도 출생) 우루과이는 몬테비데오도 해안도시지만 그 옆의 해안선을 따라 Punta del Este, La Paloma, Cabo Polonio, Punta del Diablo 같은 휴양지들이 늘어서있다. 나머지 내륙 도시들은 다 소 키우는 동네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안가에 소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디아블로는 휴양지로 개발된 지 10년 정도밖에 안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호스텔도 많았고 3층 넘어가는 건물은 비치지도 않았다. 건물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오두막을 약간 상회한다.


숙박_Hostel Mar de Fondo_4인 도미토리_3

새벽 여섯시에 디아블로 터미널에 도착해서 멍을 때렸다. 7시 쯤 마을로 가는 첫 셔틀버스가 출발했다. 중앙 정류장에서 내리려는데 아저씨가 호스텔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원래 점찍어둔 트랑킬로 호스텔로 갔다. 이른 아침이라 졸린 직원은 12시가 체크인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도미토리 1박에 15달러.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와 한숨 잤다. 일어나보니 여편님은 영원 같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녀를 깨워 버스에서 챙겨온 밥을 먹었다. 길에도 어지간히 개가 많은데 숙소의 개들도 먹을게 부족한지 엉겨붙었다. (우루과이의 개들은 대부분 덩치가 소만한데 친숙하게 약간은 부담스럽게 엥기는 스타일이다.) 각자 미트볼 3개 중 2개를 사이좋게 던져줬다.

화장실을 가보니 그리 깨끗한 것 같지도 않고, 진짜 12시는 돼야 들여보내줄 것 같아 주변 숙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몇 군데를 돌아본 끝에 1박에 12달러라는 호스텔을 찾았다. 체크인도 바로 해줄 기세라 트랑킬로 호스텔에서 귀신 같이 배낭을 빼왔다. 아침도 잘 나왔고, 스텝도 친절했다. 화장실도 리모델링했는지 깔금했다. 옥상엔 해먹을 걸어놔서 마음껏 햇살과 하늘, 바다를 즐겼다.

종종 호스텔 앞에 유스(Youth)를 까먹는데 3일간 제대로 실감했다. 휴가 막바지라 호스텔엔 삼삼오오 몰려온 청년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호스텔이 정책적으로 12시까진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줬다. 우린 열시면 곯아떨어지는데 남유럽의 후손들은 이때가 주무대였다. 금요일 저녁, 호스텔에서 아사도 파티를 한다고 했다. 소의 나라에 왔는데 제대로된 아사도를 먹을 기회가 온 것이다. 배고프다는 여편님을 달래며 7시부터 리셉션을 기웃거렸다. 아무도 기미가 없었다. 스탭은 친해진 여자들과 피자를 먹는다. 답답함에 아사도는 언제부터 하냐고 물었다. ‘우리가 아홉시부터 구워서 열시쯤 시작이야. 여기 이름써.’ 여편님에게 비보를 전했다. 당장 전날 먹었던 식당으로 가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시켜 먹었다. 금요일 밤의 열기는 3시까지 지펴졌다. 하필 로비와 가장 가까운 우리 방엔 우리와 언니 2명이 갖은 방법으로 귀를 틀어막고 잠을 자야했다.


숙박2_Mono Verde_더블룸_3

도미토리에서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원래도 카피바리 오두막 생활이 쉽지만은 않아서 안정적인 숙소를 잡으려 했다. (여기도 죄다 오두막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다행히 주말을 기점으로 휴가철이 끝나는지 일요일부터 좀 저렴한 펜션들이 보였다. 저렴해봤자 하루 40달러를 넘는다. 우루과이의 숙박비는 주변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보다도 비싸다. 배낭족들이 주 타켓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숙소 근처라 전날 답사를 해보고, 주인장이 안보이니 예약닷컴으로 예약했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 찾아가니 아직 청소 중이다. 휴일이라 애들도 데려왔는지 막내딸이 빗자루를 들고 깝친다. “저기 스페인어 못하는 애들 왔다.” (나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곧 숙소 주인인 이탈리아 부부가 와서 안내를 해준다. 요즘 유럽에서 우루과이 이민이 열풍이라는데 이 사람들도 여기와서 펜션을 넘겨받아 운영하는 것 같다. 이 숙소가 디아블로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며, 대강의 역사도 말해준다. 작은 오두막에 주방, 욕실, 탁자 등을 잘 배치해서 아늑했다. 여편님은 오랜만에 숙면을 내리 취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일출을 보겠다거나, 날 안 깨우려고 침대를 돌아 화장실을 가다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난 제대로 잠을 못잤다.


식생활

첫날 체크인을 하고 호스텔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괜찮은 고깃집 있나요?’, ‘몬테비데오 가면 고깃집 밖에 없어. 여기선 해산물 먹어. 맛있는데 많아.’ 우린 정말 고기가 먹고 싶었지만 별 수 없이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 휴양지라 해안가에 식당이 줄비했다. 펜션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점심 저녁을 모두 밖에서 해결했다. 우리에겐 호스텔의 좁은 주방에서 젊음과 부딪힐 용기도, 가족 단위의 위용도 없었다.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대부분 식당들이 양도 많고, 튀김도 잘 튀긴다. 이탈리아 국기가 펄럭이는 피잣집도 국기값을 한다. 이사를 하고 나서는 간단히 파스타를 삶아 먹었다. 마을 한 가운데 슈퍼가 두 개나 있고, 재료도 신선했다. 이제 망고와 파파야 권에선 벗어났지만 우루과이의 수박은 진통이었다.


바다와 마테(Mar y Mate)

리조트가 없는 휴양지라 바닷가 풍경도 아기자기하다. 식당과 함께 각종 기념품과 히피들이 직접 만든 장신구를 파는 시장이 선다. 바람이 잘 부는 곳이니 서핑을 하는 사람도 많다. 가장 인상적인 건 한 손에는 의자를 다른 손에는 마테(마테차 마시는 원통형 컵), 팔꿈치에는 보온병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휴양지 해안에서 빌리는 플라스틱+(시장 컬러) 접이식 간이 의자를 여기 사람들은 직접 들고 다닌다. 어떤 사람은 펜션에 비치된 걸 들고오기도 하고, 아예 몬테비데오에서부터 버스에 싣고 오기도 한다. 이래서 해변에 파라솔, 의자 빌려주는 업체는 아예 없다. 준비의 민족이다.


마테 문화도 신기하다. 아르헨티나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체감상 우루과이가 진정한 마테국이다. 이과수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테차는 메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시는 걸로 국내에도 알려졌다. 브라질 남부부터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볼리비아까지 즐겨마신다고 한다. 보통은 마테 컵에 차를 한 가득 붓고,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채워가며 전용 금속 빨대인 봄비야(Bombilla)로 마신다. 정장 입고 출근하는 버스에서부터 수영복 달랑 입는 바닷가까지 보온병과 마테 세트를 끼고 다닌다. 보온병은 유명 S브랜드가 대세다. 첨단 문화를 달리는 히피들조차 손에 스마트폰은 없어도 마테 세트는 들고 다닌다. 이 마테 문화의 통합성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과수에서부터 호기심이 달아올랐던 덕분에 우리도 마테 세트를 장만했다. 기념품 가게에서 좀 고상해보이는 마테와 봄비야를 거금에 구입했다. 슈퍼엔 커피 코너보다 마테 코너가 클 정도로 여러 마테차가 쌓여있다. 처음이라 전통맛(노란색)을 샀다. 나중에 둘러보니 전통맛보단 허브를 가미한 허브맛(연두색)을 많이 마셨다. 마테를 두세스푼만 넣어도 진해서 이곳 사람들 처럼은 못 마시고 있다. 옅게 마시는 우리를 보고 그건 마테가 아니라 마테차(Tè)라고 선을 그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마테에 설탕이나 우유를 가미하기도 하고, 페트에 파는 가공 마테 쥬스도 많다. 하지만 우루과이 사람들은 대부분 순수 가득한 마테차만 마신다.



산타테레사 국립공원(Parque Nacional Santa Terresa)_0304

디아블로 마을 위쪽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바람은 불지만 비는 안온다고 하니 가보기로 했다. 스텝에게 어찌가냐고 물으니 걸어가란다. 한 두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바람이 강한 날이라 체력 보전을 위해 버스를 타고 갔다. Chuy쪽으로 가는 버스가 대부분 국립공원 입구에도 멈췄다. 국방상 중요한 곳이기도해서 들어갈 때 군인이 출입증을 준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말이 입구지 나무가 도열한 도로를 삼십분 정도 걸어가야 안내소와 식당 군이 나온다. 여편님이 터미널에서 국립공원 지도를 얻어왔다. 지도를 보니 구경거리는 더 안쪽에 있다. 보통은 차를 타고 공원을 돌아보는지 걸어가는 사람이 없다. 이번엔 소들이 보이는 목장 길을 옆에 끼고 또 삼십분 걷는다.


간만에 나들이라 곧 체력이 바닥에 닿는다. (참고로 카피바리 농장에서 약 10일 간 농장 밖으로 나간 일이 없었다.) 좀만 더 가면 새 공원이 있단다. 작은 식물원 같은 하우스에 진짜 새가 있다. 형광펜으로 칠한 듯 진짜 형형색색의 새들이 평범하게 갇혀있다. 한쪽 구석엔 이과수에서 스티커로만 봤던 전설의 새 토코투칸이 실존한다. 다른 새들이 참새 비둘기급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새장을 나가니 철장에 온갖 닭들이 있다. 나름 특이종을 모아놓은 것 같은데 별 감흥이 안온다. 한쪽 구석창엔 기니피그가 몰려있다. 심지어 새끼다. 기여워서 기니피그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니 새장을 넘으면 야외 야생동물 공원이었다. 둘러보기로 한다. 지상 최대의 설치류(쥐류)라 불리는 카르핀초(Carpincho) 한 마리가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어떻게 저게 쥐랑 친척인가 싶다. 좀 더 공원을 둘러보니 카르핀초 가족도 있다. 주위에 공작새고 뭐고 쥐 하나의 묵직함에 수그러진다. 작은 호수를 둘러보고, 멧돼지 가족, 공작새와 인사를 나눴다.


#토코투칸 와! 어쩜 CG 박혀있는 줄 알았다. 비현실적 🐧

#카르핀초 우루과이 2페소 동전에 쥐가 있길래 찾아보니 1-1.5m인 지구상 최대 설치류 #카르핀초 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실물을 보게됐다. 쥐의 비율 그대로 엄청 커진 몸집! 말도 안돼를 연발하며 먹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헐 🐹


동물 관람을 마치고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한라산 야영장 같은 관목 숲을 지났다. 여기 야영장 들은 하나같이 아사도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참 공원을 해집고 식당 있는 곳으로 같다. 식당은 폐업했다. 절망감에 매점을 찾아갔다. 매점이라기엔 슈퍼마켓이다. 디아블로에 있던 슈퍼보다도 크다. 텐트만 들고와도 음식 걱정이 없을 정도로 다 갖춰져있다. 주변의 수 많은 텐트 행렬이 이해가 된다. 우린 주섬주섬 빵과 치즈, 햄과 쥬스를 샀다. 여기까지 온 김에 바닷가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또 팬션들이 늘어서있다. 캠핑이건 팬션이건 다 고기굽긴 매한가지다. 전망대엔 어마무시한 바람이 몰아쳤다. 바람을 해집으며 손수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빵의 찰기가 근래 먹은 빵 중 으뜸이었다.

배를 채우고 바닷가를 구경했다. 여긴 디아블로 뺨치게 바람이 불어서 카이트 서핑까지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귀가길이 멀어보였다. 요새(Fortaleza)까지 둘러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요새는 입장료가 40페소였다. 입장권을 사면서 군인한테 물어보니 여기서 바로 큰길로 나가도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했다. 맘편히 요새를 둘러보고 바로 앞의 식당에서 댓병맥주로 여운을 즐겼다. 요새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여전히 국방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서 여기까지 군인 관할이다. 펜타콘처럼 오각형으로 생겼는데 가운대가 죄다 잔디고, 주변의 벌판을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 귀가 길은 편했다. 곧 버스가 와서 우리를 디아블로까지 실어갔다.



카보 폴로니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Cabo Polonio)_0306

생태 문화적으로 가장 특이한 곳이다. 근처 섬에 바다 사자가 서식하고 있고, 국립공원 내에서 히피들이 살고 있다. 원래 히피들이 살고 있었는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정부가 이들을 내쫓지는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전력 공급 등에는 어려움이 있어 여기 사는 사람들은 태양광 발전에 많이 의존하며, 공원 내에는 포장도로가 없어 물자 수급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원래 여기서도 며칠 머물 생각을 했으나 숙소 가격이 디아블로보다 비쌌고, 그마저도 대부분 허물어지는 오두막처럼 보였다. (우린 카피바리 생활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 열약한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의 아늑한 오두막을 두고 하루만 둘러보고 왔다.


여유있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으나 버스는 두 시간이 지나야 왔다. 휴가철이 끝나 마을은 더욱 황량했다. 정류장엔 사람보다 낮잠 자는 개가 많았다. 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 반만에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없지만 공원 안으로 가는 왕복 지프 티켓을 구매해야 했다. 지프는 매시 반에 매표소에서 출발하고, 매시 정각에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집에서 9시에 나서서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공원 안에 도착했다. 알아보기론 4~5시 경에 디아블로로 돌아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안내판에는 버스가 없다. 물어보니 저녁 7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서 중간에 Castillo에서 갈아타라고 한다. 늦은 귀가가 부담됐지만 국립공원을 넉넉히 둘러볼 수 있게 됐다.

나름 국립공원을 드나드는 사파리형 지프다. 다른 자리는 별거 없지만 앞 뒤로 이층에 4자리가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여길 앉으려고 다음차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처럼 하루만 돌아보려는 사람들과 배낭 메고 며칠 머물 사람들, 나름 해변이라고 의자까지 챙겨가는 사람들로 지프는 꽉 들어찬다.

지프는 한 곳에만 정차한다. 마을 한가운데 기념품 매장과 식당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둘러볼 것도 없이 모노베르데 아저씨가 추천해준 식당으로 갔다. 해변에 커다랗게 위치한 고급 식당이다. La Perla라는 이름인데 여기도 가장 오래된 식당이란다. 수제 맥주 하나와 생선 튀김, 새우리조또를 시켰다. 식전빵이 가장 맛있었다. 주문을 이상하게 해서 찝집하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다 먹고 나와서 마을을 둘러보니 제법 저렴한 식당들도 많았다.


바다사자를 볼 수 있다는 등대로 갔다. 언덕에는 일반 주택들이 듬성듬성하다. 등대는 3시부터 연다고 했다. 그 옆길로 바다부터 둘러보는데 쩍, 저기 바위 끝에 검은 물체들이 어기적 거린다. 바다사자들이 해안까지도 올라오는 것이다. 준비한 망원경을 동원해 바다사자들의 행동 거지를 한 시간 가량 관찰했다. 바다에선 날아다니는 애들이 왜 굳이 미끄러운 바다에서 몸부릴 칠까. 소리지르며 세력 다툼하는 애들도 보인다. 홀로 외딴 바위에서 고독을 씹은 친구도 있다. 저 멀리 두 개의 섬엔 각각 수 백마리의 바다사자가 기거하고 있는게 보인다. 관점을 조금씩 바꿔가며 한 시간이 넘게 바다사자를 바라봤다. 마을로 돌아가는 해변엔 파도에 쓸려온 바다사자의 시체도 보였다. 조개껍질의 색깔들이 보라에서 분홍빛깔이다.

휴식을 위해 상점가에서 쥬스를 마시고 가게들을 구경했다. 조개나 나무를 이용해 만든 장신구들이 많다. 무지개빛 호스텔과 해먹의 자유로움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저녁 늦게 집에 가면 장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슈퍼를 갔다. 야채와 술 등이 디아블로와 큰 차이가 날 정도로 비싸진 않았다. 남은 시간은 해변을 산책하며 보냈다. 해변 너머엔 모래 언덕도 있다고 했다. 사막이라면 낮잠도 마다하는 여편님과 거기까지 무리해서 갈 일은 없다. 확실히 국립공원이라 바다가 훨씬 맑다. 공원 입구로 가는 막차를 여섯시에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꽤나 난관이었다. 공원 입구에서 테니스 공을 물어오는 강아지와 놀았다. 숙소에 커피에 먹을 설탕이 없었다. 카페 아저씨한테 설탕 4개만 살 수 없냐고 물었다. 곧 가져다주면서 그냥 가지란다. 일곱시 반, 카스티요로 가는 버스가 왔다. 카스티요엔 8시 쯤 도착했다. 터미널 직원한테 물어보니 저기 다섯블럭 가서 다른 버스 회사를 타고 가란다. 가보니 직원도 없고, 750분에 차가 떠났다. 다음차는 8시 오십분이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거서 물어봤다. 그래도 그 버스가 가장 빠르단다. 다시 버스 회사 앞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우리처럼 디아블로로 돌아가는 독일 부부 2쌍이 있었다.

한 부부는 묀헨 근처에서 사는 교사 부부다. 앞 뒤 1년 동안 휴가와 연봉 일정 부분을 유보하는 대신에 1년 정도 안식년을 가질 수 있단다. 에콰도르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남미 대륙을 여행했단다. 아마존까지 가려고 했다가 멕시코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원래 휴가 기간인 8월이 아마존 가기엔 최적기고 카리브해쪽은 허리케인 부는 시기라서 일정을 바꿨다고 한다. 곧 버스가 와서 숙소에는 열 시 전에 돌아갈 수 있었다.


여편님이 주메뉴인 원팬파스타를 끓였다. 남미쪽 파스타들은 계란 반죽이 들어가있어서 떡이됐다. 감지덕지로 먹고 긴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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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에서 개고생한 것도 잊은채, 리스본에서부터 다수의 브라질 워크어웨이(Workaway)에 연락을 했다. 우리에게 먼저 연락온 곳도 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도지니에게 넘겼다. 그는 행복하게 몇 주 머문다는 소식이다. 세바스티앙 살가두가 숲을 가꾸는 Instituto Terra 인근도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회신이 오는 곳은 없었다. Porto Alegre 지역의 한 농장에서 우리를 반겨준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카피바리두술(Capivari Do sul)_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_0220_0301

정확하게는 포르토 알레그레주에 위치한 카피바리두술(이하, 카피바리)이라는 마을이다. 포르토 알레그레 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서 두 시간 정도 가야했다. 먼저 포르토 알레그레는 말 그대로 기쁨의 항구라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브라질 남부의 항구도시라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또한 해안선을 따라 커다란 호수(Laguna)가 늘어서 있기도 해서인지 브라질 최대의 쌀 농사 지역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곳이 전설의 레전드 호나우지뉴(Ronaldinho)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호나우지뉴는 이 지역 연고의 GRÉMIO라는 팀에서 데뷔해서 전설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우리 호스트도 이 팀의 열혈한 팬이었다. 작년 브라질컵(Copa do Brasil)에서 우승했고, 현재 리그에서도 상위권을 달리는 강팀이다.) 그가 공을 찼을 항구 뒷골목을 바라보며 터미널에 도착했다. 포르토 알레그레 터미널은 매우 크고 복잡했다. 안내센터를 찾아가 카피바리 가는 방법을 확인했다. 지역 내 버스는 일원화된 창구에서 티켓을 사고 승강장으로 가면됐다.

버스는 열심히 달려 카피바리에 도착했다. 근처 쇼핑몰의 식당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와이파이로 호스트를 불렀다. 키 크고, 손이 내 얼굴(정확히는 여편님 얼굴)만한 애가 차를 끌고 왔다. 차에 배낭을 싣고 집으로 갔다.


토네토 가족 소개

농장은 토네토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과 잔디밭, 소 풀어 놓는 풀밭과 물고기 기르는 인공호수로 이루어져있다. 식당은 근처 2개의 공장에 200명 규모의 점심식사를 조달한다.


엘비스: 워크어웨이를 통해 우리와 연락한 호스트다. 나이는 27, 농업과 경영을 공부했고, 농장과 식당 일을 거들며 법학 공부도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덩치도 크고, 활발하며 일도 잘 시킨다. 우리가 한 일은 대부분 엘비스가 하던 일이다. 농장을 관리하는 아빠와 종종 말다툼을 한다. 식당과 농장의 유력한 후계자다. 신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엘리다: 당연히 엘비스의 동생인줄 알았는데 누나였다. 나이는 29, 지리학 교사로 인근 2개 학교에서 수업을 한다. 브라질 돌기도 벅차다며 다른 나라 여행엔 관심이 없단다. 요즘 교육부에서 지리 과목을 필수과목에서 제외하고 있어 다른 동료 교사들과 함께 투쟁 중이다. 이 집에선 유일하게 오후만 되면 뭔가 운동을 하고, 샐러드도 챙겨 먹고, 고기를 기피한다.


마미: 엘비스와 엘리다의 엄마, 다른 두 아들은 산타카타리나 주에 산단다. 식당 일을 총괄한다. 전날 밤, 다음날 아침 일찍 메뉴를 준비하고 점심에 배달까지 마치면 그녀의 일과는 끝이난다. 거실에 에어컨을 틀고 시원하게 낮잠을 주무시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오후에 팬케잌 같은 간식도 뚝딱 만들어주신다.


할배: 엘비스와 엘리다의 아빠지만 나와 여편님은 그냥 할배라고 칭했다. 진짜 타죽을 것 같은 날이 아니면 새벽에서 황혼까지 일을 한다. 잔디 깎고, 풀 베고, 개와 오리들 먹이 주고, 본적은 없지만 멀리 나간 소들도 관리하는 모양이다. 농장 주변의 나무도 모두 할배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여기저기 모종을 심고 있다. 남부의 살가두*가 여기 있었다. 여편님의 우클렐레를 보고 집어들더니 힘찬 연주를 선보이셨다. 기타 치는 영상을 보여줬는데 엄청 잘친다. 막판엔 직접 연주도 들려줬다. 산타루치아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


이 가족은 엄마쪽과 아빠쪽 모두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브라질 남부까지 이탈리아계가 많이 분포한다는 걸 알았다. 그외 식당 일 같이하는 반장 아주머니와 신참 아저씨(하루 만에 잘린 아주머니도 있다.), 할배 바라기인 개 샤키라, 히간테라는 닭잡아 먹다 묶여버린 개, 오리 가족 등이 있다.


*세바스티앙 살가두(Sebastião Salgado)

우리의 브라질 여행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이다. 세계적인 사진 작가이며, 지금은 본인이 자란 Minas Gerais주에서 숲을 가꾸는 Instituto Terra라는 비영리단체를 이끌고 있다. 그의 여정을 담은 영화 ‘제네시스(Genesis): 세상의 소금’, 책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 TED 강연 ‘The silent drama of Photography’ 모두 인상 깊게 봤다. 그의 사진 얘기 중 피사체와 먼저 친해지고,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는 연습은 지금도 하고 있다.

Ted 강연: http://www.ted.com/talks/sebastiao_salgado_the_silent_drama_of_photography


숙박_오두막(Cabana)_9

가족들이 머무는 큰 집(+식당 주방)이 있고, 잔디밭 한 켠에 게스트용 오두막이 있다. 밤엔 다소 외진 감이 있었지만 둘이 자기엔 넉넉한 공간이었다. 밤엔 더위와 모기 퇴치를 겸해 선풍기를 가져다 돌렸다. 별도로 와이파이 수신기까지 설치되어 있다. 집 바로 옆엔 큰 나무가 그늘을 형성하고, 나무 판이 있어서 차를 마시거나 작업대로 활용했다. 원래는 오리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이 오리들의 주 생활 반경이 오두막 주위다. 한 놈은 하필 오두막 아래에 알을 낳는 통에 뻑하면 오두막 아래로 들어간다. 어느날 밤 밖에서 오두막을 긁는 소리에 깼다. 여편님은 저거 그 큰 쥐(하필 이날 저녁 샤키라가 쥐랑 싸우다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다.)가 오두막 갉아먹는 소리라며 대응을 촉구했다. 쿵쿵 소리를 내어 쫓았지만 몇 시간 뒤 또 오두막을 두드렸다. 다음날 아침 취재결과 소리의 주인은 오리였음이 밝혀졌다. 생각 외로 오리들은 해가 뜨기도 전부터 활동했다.


오두막 생활의 가장 큰 낙이 오리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할배가 남은 음식이나 사료를 투척하면 한쪽에서 쉬던 오리들이 오두막을 가로질러 돌격한다. 가장 귀여운 것은 새끼오리들이다. 약 열흘 머무는 동안에도 쑥쑥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시야에 들어오기만하면 오리들은 경계태세로 돌입한다. 할 일 없어 보이던 아재 오리들이 1선을 형성하고, 새끼오리들이 돌아다니는 걸 엄마 오리들이 후방에서 지킨다. 이 세 엄마 오리들은 공동육아의 좋은 형태도 보여준다. 본인들의 생활 터전을 우리한테 뺏긴 것이 싫었는지 연신 나무 작업대에 똥을 싸대기도 했다. 막판엔 우리가 별 위협없는 존재란 걸 인식했는지 오두막 주위를 맘대로 헤집고 다녔다.


식사_급식

오두막엔 냉장고는 있지만 켤 생각을 안했고, 모든 식사는 큰 집에서 제공되었다. 식당이 일을 하는 평일을 기준으로 하면, 아침엔 내려놓은 커피에 식빵과 치즈, 잼 등을 먹는다. 첫날부터 먹은 점심은 식당메뉴와 같다. 기름진 쌀밥에 페종(Feijao)이라 불리는 팥인지 콩인지 삶은 요리가 기본이고, , 돼지, , 생선 요리가 번갈아 하나, 파스타가 하나, 샐러드가 하나씩 나온다. 그냥 뷔폐식 급식 먹는 기분이다. 그리고 분말로 만든 쥬스가 후식이다. 할배는 이 분말가루 쥬스 챙겨먹는 걸 매우 중요시한다. 식사 배달이 끝나면 식구와 직원들 먹을 만큼 빼놓은 음식들을 식탁에 가져다 준다. 각자 먹을 만큼 덜어 먹는다.

저녁은 따로 만들지 않고, 냉장고에 남은 음식들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점심엔 따뜻한 밥을 먹고, 저녁엔 식은 파스타를 데워 먹는 걸 택했다. 고기 요리는 대부분 남지 않아서 그리 풍족하게 먹진 못했다. 고기나 파스타 모두 양념이 조금씩 변하긴 하지만 간장과 기름, 고춧가루, 토마토의 비율이 약간씩만 변할 뿐이라 매일 비슷한 맛이다.


장기 체류가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매일 똑같은 밥맛이다. 여행 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식사 준비 걱정없이 주는 밥만 받아 먹는 건 편했다. 한편 우리가 먹고도 남은 음식들은 오리와 개가 먹는다.


노동 일지

첫날은 짐 풀고, 낮잠 자면서 쉬었다. 어떤 일을 선호하냐고 물어 여편님은 주방, 난 농장 일을 돕겠다고 했다.


1일차_날씨 죽게 더움, 소나기_0221

아침을 먹고 집 청소를 했다. 간단히 거실만 쓰는 거다. 우리의 주요 일과다. 엘비스가 일거리를 가져왔다. 후르츠 칵테일 같은 과일 샐러드를 작은 컵 100개에 담는 거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이다. 잠시 후 엘비스가 차를 닦아 달라고 했다. 이 집은 할배, 엘비스, 엘리다까지 차가 3대다. 할베와 엘비스 차는 각각 배달용, 엘리다 차는 본인 출퇴근 용으로 주로 쓰인다. 내 차도 안 닦아본 판에 여기서 남의 차를 닦고 있다. 오후에 할일을 엘비스가 알려준다. 기계로 잔디를 깎는 거다. 생각보다 울림이 엄청나다. 덩치가 큰 엘비스는 한 손으로도 휘휘 잘 젓는다. 오후에 선선해지면 하란다.

점심 식사 후, 여편님이 주방에 투입됐다. 한 시간 뒤 죽네사네하는 표정으로 나왔다 다시 들어간다. 난 때를 기다리며 쉰다. 다섯시가 넘어가니 일을 시작해봤다. 우아아앙 살떨리는 걸 진정시키며 앞으로 전진했다. 내가봐도 삐뚤빼뚤 곧곧에 안깎인 틈이 보인다. 일단 갈 때까지 가본다.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겨우 한 시간쯤 일을 하니 잔디 반을 깎았다. 그런데 기계가 멈춘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일은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작업실에 기계를 겨우겨우 담아 넣었다.


2일차_날씨 계속 더움, 소나기_0222

아침 먹고 할배가 날 부른다. 어제 기계가 멈춘 건 기름이 다 떨어져서란다. 작업실에서 기름을 부어준다. 그리고 잔디 깎는 시범을 제대로 보여준다. 돌이나 호스가 있는덴 넉넉하게 놔뒀는데 할베는 자로 잰듯이 거길 깎는다. 내가 했던데도 튀어나온 걸 다 지운다. (할베는 우리에게 주구장창 포르투갈어로 말한다.) 대충 알겠다고 한다. 여편님은 오후에 다시 주방으로 투입, 죽다살다하다 뻗는다. 주방의 어마어마한 세제 사용에 취해 쓰러졌다.

슬슬 잔디를 깎아보려는데 비가 온다. 오늘은 공치나 싶었는데 곧 갠다. 잔디를 깎아본다. 어제보단 드라이브가 한결 완숙해졌다. 여편님은 이왕 깎을 거 우리 오두막 주위를 잘 깎아보란다. 대충 다 깎아갈 무렵 또 기계가 멈춘다. 일단 시동부터 다시 걸어본다. 시동 거는 줄을 몇 번 잡아당겼더니 끊겼다. 이건 또 다른 문제다. 이날 일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3일차_날씨 덜 더움_0223

초반 찌는 듯한 더위는 좀 가라앉았다. 카피바리의 날씨는 한국과 비슷한지, 이 정도면 엄청 더운 거란다. 겨울엔 눈도 오고 추운 곳이다. (그러니 쌀농사도 잘 되겠지.) 할베는 잔디 깎는 기계를 갖고 사라졌다. 오리 새끼들도 보이지 않는다. 장에 나가서 팔아버린 걸까? 다행히 오후가 되니 오리들이 보인다. 할베는 기계를 고쳐와서 본인이 직접 잔디를 깎는다. 아무도 나에게 다시 잔디 깎으란 얘기는 하지 않는다.

여편님이 나에게 주방일을 같이 하자고 한다. 엘비스에게 오늘부터 나도 주방일을 돕겠다고 했다. 그러란다. 점심 식사 후, 주방에 투입됐다. 반장님이 위생 모자도 장착시켰다. 여편님은 반장님과 나는 어제부터 새로 출근한 아저씨와 한 팀을 이룬다. 아저씨는 열심히는 안 하는 것 같은데 잘 웃는다. 미소천사로 칭했다. 내가 하는 일은 미소천사가 설거지한 통과 그릇, 식기들을 행주로 닦는 일이다. 멍하니 창밖을 보며 미소천사와 보조를 맞춘다. 아구아 아구아하면 뜨거운 물을 가져다 부어주는 일도 한다. 땀은 많이 나지만 할만했다. 어제까지 여편님이 하던 일이다. 여편님은 나의 투입으로 본인 부담을 덜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일을 차지한 덕에 반장님과 보조를 맞춰야했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을 자랑하는 반장님의 옆에서 여편님은 파김치 위에 녹초가 됐다. 오후 주방 설거지는 대략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4일차_날씨 덜 더움_0224

아침에 엘비스가 케잌을 가져왔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엔 케잌도 메뉴로 나간단다. 공장에서 생일 잔치 겸 먹는다. 여편님이 케잌을 잘라 담고, 나는 포장을 했다. 언제나 단순 포장은 내 적성이다. 삼일간의 격무로 녹초가 된 여편님은 오후 주방 일을 쉬기로 했다. 나만 홀로 주방에 들어갔다. 작업은 어제와 비슷하다. 반장님은 혼자서도 본인 작업량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아저씨도 어제보단 완숙해진 눈치다. 작업을 다 마치면 칼과 포크, 냅킨을 포개서 비닐에 넣는 일을 한다. 첫날 저녁부터 하던 일이다. 80개 정도 작업한다. 우리가 없으면 미소천사도 해야할 일이라 내가 가르쳐준다. 이후 식당에서 비닐에 쌓여서 나오는 식기를 볼 때마다 이거 싸느라 누가 또 고생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접시를 닦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왜 여기까지 와서 접시를 닦고 있나. 브라질의 뷔페 문화는 어쩌다 형성됐을까. 아마 노예들이 이렇게 먹었겠지. 서양 요리는 대부분 살코기를 굽거나 튀긴다. 남은 부속들을 한번에 쪄서 나누어 먹었을 거다. 우리와 비슷한 찜 요리가 많은 건 이런 연유일 것이다. 전염병이 생기기 쉬운 더운 날씨도 한 몫햇을 것이다. 주방도 여러모로 위생엔 신경을 많이 쓴다. 지나치게 세제와 락스를 좋아한다는 게 힘들지만 말이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와 우리에게 종종 보내는 외교부의 모기 주의 문자를 보면, 한국보단 브라질에서 사는 게 전염병엔 더 안전할 거란 생각도 든다.

반장님이 시키기도 전에 식기를 알아서 통에 나눠담았다. 따봉을 주신다. 여편님한테 나 따봉 받았다고 자랑했다. 반장님 원래 따봉 잘 준단다. 평소 따봉 잘 받는 따봉왕의 너그러움이다. 반장님, 아저씨라고 칭하지만 우리랑 나이는 비슷할 것이다. 내일이면 카니발 연휴라 그런지 마무리하는 손이 바쁘다. 어디 고향들 가시나. 남은 칼과 포크를 봉지에 담고 있는데 어느새 다들 사라졌다.


5일차_날씨 선선 바람 솔솔_0225

전날 오후 식당 일이 끝나고 마미와 할베는 산타카타리나로 떠났다. 마미는 캐리어만큼 큰 배게도 동봉한다. 카니발은 여기선 명절이기도 하다. 아들, 손자, 며느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가셨다. 식당은? 쉰다. 우리만 시나는 게 아니다. 알게 모르게 부모님 눈치를 보며 살았는지 엘비스와 엘리다도 축제 분위기다. 음악 빵빵하게 틀어놓고 집을 활보한다. 괜히 일 얘기 꺼냈다간 혼날 분위기다. 이 연휴기간의 휴식만으로도 카피바리에서의 시간은 값어치가 넘쳤다. 간이의자를 나무 밑에 가져다가 모닝커피도 마시고 밀린 여행기도 썼다. 심지어 밤에 선풍기도 필요없을 정도로 더위도 가시고 바람이 좋았다.


기술의 발달덕에 이런 초록 벌판 나무 아래서도 뭔가 결과물을 남기겠다는 집착을 벌이고 있다. 물론 쓰잘데 없는 여행기지만 방금 내려온 커피의 맛이 기가 막히다. 도시부터 시골까지 드립 문화가 정착된 커피선진국 답다.’ from my instagram

커피도 미리 내려놓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내렸다. 호스텔부터 카피바리 집까지 모두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아둔다. 카피바리에선 융으로 만든 몽통한 영구필터를 사용했다. 거기다 여편님은 브라질은 설탕맛도 다르다며 커피와 설탕을 모두 찬양했다.


저녁엔 티비로 카니발을 틀어준다. 여편님이 매우 기대했던 거다. 하지만 본격 중계는 야밤에나 하고, 뉴스는 각지 실황만 돌려가며 보여준다. 엘비스는 놀러나갔고, 엘리다는 관심이 없단다. 브라질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GLOBO가 맨날 이상한 드라마, 뉴스로 사람들을 현혹한단다. 그러면서 히우에서 카니발이 아닌 대중들의 집회도 벌어진다고 말해준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취임한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다.


카니발과 음악

카니발도 히우 카니발이 가장 유명한 줄 알았지만 뉴스에선 살바도르의 카니발이 많이 나왔다. 각 지역마다 카니발이 다 열리는 건 알고 있었다. 히우와 상파울루는 학교나 마을 단체들이 다양한 컨셉으로 행진하고,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든다. 살바도르의 카니발은 유명가수와 연예인들이 차를 타고 공연하며 관객들이 함께 행진한다. ANITTA 같은 브라질 인기가수들이 총출동했다. 만약 카니발을 위해 브라질에 오게 된다면 살바도르 카니발을 가보기로 했다.

엘리다와 이런저런 음악 얘기를 하다가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유투브로 틀었다. 트와이스, 블랙핑크 류를 선보였더니 맘에 들어했다. 엘리다가 알려준 가수 중에 Jorge Drexler라는 우루과이 가수도 맘에 들었다. 한국에도 유명한 Rita Calypso의 배우자이기도 했다. (파트너는 Leonor Watling이라는 스페인 배우라는데 파트너와 배우자가 공존도 할 수 있나?) 그 외 여러 노래들이 귓가를 맴돌았는데 Despacito를 필두로한 유투브 재생목록에 거진 다 들어있었다. 카피바리에서 난 대체 책 읽고, 글쓰기 말곤 즐기는 게 없는 진지충인가하는 벌레몰이에 골똘해있었다. 라틴의 풍부한 음악 덕에 요즘은 순간을 좀 더 즐기게됐다.


음악 리스트_Luis Fonsi - Despacito ft. Daddy Yankee

https://www.youtube.com/watch?v=kJQP7kiw5Fk&list=RDkJQP7kiw5Fk


6일차_날씨 강풍_0226

아침에 바람이 좀 차게 불었다. 밖에서 메일을 확인했는데 우루과이 워크어웨이로부터 바람을 맞았다. 약간 몸살 기운이 있어 하루 종일 골골 거렸다. 어제까진 식당의 남은 음식들로 끼니를 떼웠다. 하지만 오늘까지 그걸 다시 먹을 순 없겠다고 결의했다. 점심 즈음 주방을 가니 엘리다도 뭔가 만들고 있었다. 지겹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엘리다의 권유도 뿌리치고 우린 우리 요리도 하겠다고 했다. 엘리다는 페종에 볶음밥을 우린 계란파 볶음밥을 했다. 약 일주일만에 식당 밥이 아닌 다른 밥을 먹은 것이다. 저녁은 또 어쩌나했는데 엘비스가 빵과 치즈, 햄을 사왔다. 토스트기까지 꺼내서 빠니니를 만들어 먹었다.


7일차_날씨 좋음_0227

언제까지 쉬는지 몰라 물어봤다.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턴 식당 영업 재개란다. 할배와 마미도 오후에 올거란다. 점심에 또 엘리다와 여편님의 요리 열정이 맞붙었다. 엘리다는 햄토마토리조또를 여편님은 (리스본에서 린느가 전해준) 김가루를 뿌린 비빔파스타를 만들었다. 난 둘다 좋아서 한 그릇씩 먹었다. 얼마만에 배부름인가. 마냥 오후를 즐기는데 엘비스가 나를 찾았다. 대청소를 한단다. (이제까지 놀다가 왜?) 마미가 내준 방학숙제인 것 같다. 나에게 화장실과 세탁실 청소를 맡겼다. 벌레들이 이렇게 많이 똥을 싸는지 몰랐다. 파리와 모기, 개구리의 흔적을 지우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편님도 그 사이 엘리다가 내준 숙제를 했다. 엘리다도 은근 방문객들을 챙기는지 방명록을 받아서 모으고 있었다. 여편님은 긴 글 대신 그림을 한 수 그렸다. 오두막에도 오리 두 마리로 우리 흔적을 남겼다.

마미와 할배가 고된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할배는 며칠 간 일을 못해서 안달이 난 모양이다. 조리 신고 일 하던 사람이 구두 신고 아들네 집에서 놀기만 했는지 답답함을 호소했다. 뒤늦게 주방 정리를 거들고 일과를 마쳤다.


8일차_날씨 흐림_0228

연휴에 엘비스에게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 떠난다고 말했다. 마지막 근무일이다. 아침부터 좋은 향기가 난다. 축제 끝난 기념인지 할배가 직접 아사도를 굽고 있다. 식당 메뉴로 나간다고 한다. 혹시나 한 두 점 떼줄까하며 30분 단위로 곁에서 어슬렁 거렸다. 할배는 뼈도 안준다. 황홀하게 구워지는 덩어리들의 자태만 봤다. 여기선 큰 꼬챙이에 내 몸통만한 고기를 통으로 구웠다. 우리 정서상 식당 메뉴로 나갈거라도 식구들 먹을 몫으로 한 덩어리 더 구울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 점심에 나온 아사도는 1인당 고기 한조각이 다였다. 맛은 엄청났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오후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공장 하나에만 배달을 가서 일거리는 적었다. 미소천사 아저씨는 오늘까지 쉬는 건지, 잘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편님과 내가 반장님이 하던 일을 했다. 주된 일은 배식용 음식통과 이 음식 통을 담는 거대한 플라스틱 용기를 닦는 일이다. 여편님이 음식통을 설거지하고, 난 플라스틱 용기를 닦았다. 가능하면 락스를 적게 써서 닦고 있는데 반장님이 지나가다 락스를 한 사발 부어줬다 여편님이 왜 그렇게 경악했는지 깨달았다. 흘린 음식물 닦고, 거품칠 한 번 하고, 두 세번 닦아내면 끝이었다. 마지막날 답게 일도 순조롭게 끝이났다.


카피바리와 과테말라

맨날 존재를 까먹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번엔 기필코 찍었다. 다행히 가족들도 모두 좋아했다. 해질 녘 마지막으로 주변 벌판을 거닐고 있는데 엘비스가 따라 오란다.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안보이던 소들도 오늘떼라 집 근처로 몰려왔다. 소 주변엔 하얀 새들이 뭔가를 기다린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나니 세상 어디 안부러운 풍경이었다. 맑은 날 밤엔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별이 밝았다. 마지막날 밤엔 또 소동이 있었다. 호수가 많은 동네라 집에도 개구리가 빈번하게 드나든다. 오두막까지 들어온 적은 없었는데 마지막 날을 기념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여편님은 개구리 트라우마가 있단다. 그녀의 놀라는 소리가 날 더욱 놀라게 했다. 저녁을 먹고 왔는데도 개구리는 있었다. 여편님이 배낭을 들쳐보는 순간 뛰어 올랐다. 약 한 시간의 추격전 끝에 옷에 메달린 개구리를 밖으로 던졌다.


다음날 아침 여유있게 짐을 싸고 점심 때를 기다렸다. 점심을 먹으러 갔더니 모르는 아재가 한 명 왔다. 카우치서핑을 하러 온 과테말라 청년이다. 오토바이로 남미 대륙을 여행하고 있단다. 여기서 브라질 북쪽까지 가서 아마존 강을 따라 페루쪽으로 갈거란다. 과테말라에서 왔다니 어마어마한 운명이었다. 사실 여편님과 나는 카피바리에서 쉬면서 과테말라에 빠져있었다. 심심해서 ‘세계테마기행 과테말라’ 편을 봤다. 참 재밌는 나란데 어쩜 저리 심심하게 진행할까 싶었다. 와중에 장인장모님이 인간극장 ‘과테말라 내 사랑’ 얘기를 하셨다. 우리 생각나서 재밌게 보셨다고 하니 우리도 찾아봤다. 꽤나 흥미진진했다. 그러던 차에 과타멜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나다니 인연의 힘은 늘 놀랍다.


마지막 점심은 다체롭고 맛있었다. 괜히 꿀맛같았다. 엘비스가 우리를 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 버스는 올 때와 달리 만원이라 포르토 알레그레까지 거의 서서 가야했다. 버스는 밤 열시 출발이라 넉넉히 저녁을 먹었다. 만만한 고기 정식 메뉴에 맥주를 마셨다. 얼마만에 제대로된 맥주를 마신 것인지 엄청 상쾌했다. 후식으로 아이스 쵸코를 먹고, 너무 맛나서 맥주 한 병씩을 더 시켰다. 뼈를 적시는 상쾌함이다.



부록_브라질의 카드결제 문화

이제껏 여행한 나라 중에 브라질은 카드가 가장 많이 쓰였다. 동네 식당들도 카드 결제에 대해 별로 싫은 내색을 안했다. 오히려 우리가 현지 사람들보다 현금 결제를 많이 하는 느낌이었다. 워낙 소매치기가 많아서 다들 현금을 잘 안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과라이는 카드 비밀번호 없이 결제가 되는 우리나라 카드를 보고 기겁했다. 이거 훔쳐가면 끝난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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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륙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갔다.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개 국에 걸쳐있다. 잠깐 주워들은 역사를 거슬러 가본다. 원래는 이과수가 파라과이 땅이었다고 한다. 1800년대 중후반 누구의 뽐뿌질인진 모르겠지만 파라과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3국이 연합해서 파라과이를 제압했다. 여기서 이긴 댓가로 이과수 지역을 뺏겼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쪽도 출혈은 컸다. 로스차일드와 영국투자자본 등에 전쟁으로 진 빚을 최근까지도 갚았다고 한다. 이과수 지역은 폭포를 통한 관광 수입뿐만 아니라 댐을 통한 수력 발전(Itaipu Dam에서 나오는 전기는 파라과이 전력의 80%, 브라질 전력의 20% 정도를 책임진다고 한다.), 마테차의 원산지이자 주 재배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모로 못사는 파라과이가 짠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브라질 이과수(Foz do Iguacu)_0214_0219

보수적인 우리는 아르헨티나 쪽에 머물 생각은 꿈도 안꾸고 브라질 이과수에 숙소를 정했다. 성수기라 미리 방을 예약했다. 히우와 꾸리찌바에서 급하게 움직인 관계로 이과수는 넉넉하게 5박을 잡아뒀다.


교통_시내

브라질 이과수엔 2개의 터미널이 있다. 국제선 터미널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로 가는 버스와 브라질 다른 지역을 오가는 장거리 버스가 선다. 또 다른 시내 터미널(Terminal Urbano)에선 시내 버스가 출발한다. 국제선 터미널은 소박하다. 숙소에 문의하니 버스를 타고 오란다. 국제선 터미널에서 시내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국립공원(National Park, 이과수 폭포 공원을 뜻한다.) 가는 버스를 타서 가는 길에 내리라고 했다. 시내 버스로 가는 버스가 네모난 도심을 한 바퀴 돌고 가는데 숙소 주변이라 얼른 내렸다. 2km를 걸어갔다. 그나마 수확이있다면 가는 길에 미용실을 발견한 것이다. 습기에 머리 말리기를 걱정하던 여편님은 가격을 문의한 후 오후에 와서 당장 머리를 싹둑 잘랐다.


브라질 이과수 폭포를 가는 건 간단했다. 도심 서북쪽에 위치한 터미널에서 National Park라고 써진 120번 버스가 출발한다. 도심 동남쪽에서 빠지는 길을 따라가면 우리 숙소가 있고, 이 길을 따라가면 브라질 이과수 폭포고, 더 가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이다. 숙소 앞 정류장에서 이 시내버스를 타고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교통_시외_브라질 이과수(Foz do Iguacu)_아르헨티나 이과수(Puerto Iguazu)

숙소 앞 같은 정류장에서 아르헨티나 이과수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된다. 정시에 터미널에서 출발하니 숙소에선 매시 10분 정도에 탔다. 숙소 스탭이 말하길 일단 브라질 국경에서 내려서 출국 도장을 받고, 다음 버스를 기다려서 아르헨티나 국경에서 내려서 입국 도장을 받고, 기다리는 버스를 타고 아르헨티나 이과수 터미널에 내려서 폭포 가는 버스를 타라고 했다. 아르헨티나 국경에서는 버스가 출입국 심사를 기다려주지만 브라질 국경에선 출입국 심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게 사실이면 숙소에서 아르헨티나 폭포 한 번 가는데 두 시간이 더 걸린다. 어디선가 하루안에 돌아올 거면 브라질 출입국 심사는 안 해도 된단 소리를 봤다. 일단 숙소 앞에서 같은 숙소 사람들과 버스를 탔다. 다른 그룹 가이드로 보이는 아저씨가 같은 얘기를 한다. 브라질 국경은 안 내려도 된단다. 수 년간 문제된 적이 없단다. 순식간에 브라질 국경은 지났고, 아르헨티나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받았다. 졸지에 불법 출국자가 됐다. 그리고 버스가 아르헨티나 이과수 시내로 들어가기전 폭포 가는 길과 교차로에서 내려준다. 우리도 따라 내렸다. 여기서도 폭포가는 버스가 멈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택시 기사들이 딜을한다. 버스비가 65페소인데 인당 50페소 (다음날은 60페소)에 쇼부를 쳤다. (참고로 아르헨티나 페소는 1페소에 80원이었다.)


1시간 안에 브라질 숙소에서 아르헨티나 폭포를 갔다. 돌아올 때는 아르헨티나 이과수 터미널까지 가서 브라질 이과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정확히 6시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아르헨티나 국경 심사만 받고, 브라질로 넘어와 숙소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섯시 반 정도까진 막차가 있는 것 같다. 굳이 브라질 출입국 절차를 밟으려면 5시에는 버스를 타야한다.

첫날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완벽한 타이밍에 다녀왔다. 돌아올 때도 정확히 6시에 터미널에 도착해서 바로 버스를 탔다. 기사에게 말하니 숙소 앞 정거장에 잘 내려줬다. 하지만 다음날 또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가려는데 버스를 1시간 넘게 기다렸다. 금요일이라 국경에 차도 많았다. 세상은 늘 계산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도 슈퍼에서 아르헨티나 와인 한 병 사다가 버스를 놓쳐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브라질 와인은 심하게 물러터졌다. 아르헨티나 슈퍼엔 망고와 파파야가 없다. 이 또한 공평하다.


처음엔 복잡했지만 나중엔 이해가 되었다. 브라질 국경에서 버스가 출입국 심사를 기다려주지 않는 건 승객 대부분이 하루에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출입국 심사 받는 사람들한텐 다음 버스 티켓도 끊어준다. 오히려 이런 합리적인 운행 방식을 경험하고 나니 버스 회사들에 대한 신뢰가 한층 높아졌다. 워낙 치안이 안좋아서 그런지 브라질 버스들은 짐 태그 관리도 엄청 철저하다.


숙소_Concept Design Hostel_도미토리_5

쾌적한 폭포 관광을 위해 숙소는 가능한 깔끔한 걸로 골랐다. 도미토리 대강 골랐다가 침대에서 진 다 뺀 경험이 종종있다. 아침 일찍 갔더니 (숙소에 너무 일찍 가면, 특히 한창 조식 먹고, 체크아웃할 때 가면 스탭의 신경을 건드려 방이 있어도 체크인 시간 다 되야 들여보내줄 위험이 높아진다.) 가비라는 스탭이 엄청 까칠하게 맞아준다. 가방 맡겨놓고 기다리란다. 겨우 시간을 다 떼우고 체크인 시간이 되서도 말이 없다가, 체크인 안햐냐고 물어보니 그제야 체크인을 해준다. 하필 침대도 위아래가 아니라 대각선으로만 자리가 있다. 3일 뒤에나 위아래로 짝을 맞출 수 있었다.

도미토리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게 흠이었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 수 있었고, 조식도 잘 나오는 편이고, 풀장에 둥둥 떠서 피로도 풀 수 있었다. 바가 있는데 맥주나 와인 한 병 정도는 사다 먹어도 아무도 신경 안 썼다. 스탭이 까칠하면 아무리 숙소가 좋아도 기분이 상한다. 다행히 저녁반 스탭이 매우 열정적이고 친절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름도 여편님의 외국용 이름과 같은 May. 가비한텐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관광 정보도 알려줬다.

브라질, 이과수 다녀오는 법과 비용, 환전 준비 등등을 꼼꼼하게 알려줬다.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입장료와 교통비 등을 현금으로만 받으니 미리 환전해 가란다. (막상 아르헨티나 이과수 터미널에서 폭포 가는 교통비는 달러, 헤알로도 지불이 가능했고, 이과수 폭포 입구에는 ATM도 있긴했다.) 우리가 5박을 할거라고 하니놀랐다. ‘5? 여기 5일간 할 거 없는데?’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과수 하루씩, 옆에 새공원도 있다면서? ‘ㅇㅇ 그럼 남은 날은?’ 댐도 가볼려고 ‘그 댐 여기서야 제일 크지만, 이제 너희 옆나라 중국에 더 큰 거 있고, 요즘은 수량도 적어’ 전자제품 사러 파라과이 면세점 쇼핑도 많이 간다면서? ‘너네 한국에서 왔잖아. 여기 사람들한테나 싼 거지. 그냥 니네 나라서 사’


토론형 관광 개괄을 듣고 나니 이과수에 대한 윤곽이 잡혔다. 댐과 파라과이는 보류하고, 브라질 이과수 하루,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이틀을 가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이틀 연속으로 가면 두 번째날 입장권이 반이 되고, 공원 안에 약 7km정도의 트레킹 코스도 추가 비용 없이 가능하다고 했다.


도미에서 만난 사람들

한 숙소에서 도미토리로 5박을 머문 건 여행 사상 최초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우리와 같은 날 같은 방에 들어온 카밀은 핀란드에서 왔다. 이 아이도 우리처럼 4박이나 하느라 할일이 없었다. 앵그리 버드처럼 엄청 말이 많아서 도미토리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건다. 일찍 자는 우리한테도 클럽 안 가고 벌써 자냐고 짹짹 거렸다. 티아고라는 브라질 친구가 여편님 아래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3일 뒤에 갔는데 맥주 한 박스를 사놨다가 다 못마시고 호스텔 사람들에게 기증하고 갔다. 내 위 칸에 있던 언니는 이과수엔 관심이 없고, 카니발에만 정신이 가 있다. 그런데 카니발 표는 카밀한테 물어보고서야 부랴부랴 구입한다. 건너편에 귈렘이라는 브라질 친구는 브라질 광산업체의 CSR 관리자다. 과거 동종업계 사람을 지구 반대편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막판에 들어온 미국 애들 2명 중 한 명은 소리 낮춤 기능이 없었다. 한밤중에 들어와서도 친구를 자꾸 큰소리로 불렀다.


숙소에 처음 왔을 때 거실에서 누가 컴퓨터를 잡고 ‘굿잡, 굿잡’을 하고 있었다. 여행 중 화상 영어과외로 돈을 버는 모양이다. 미국 언닌데 아르헨티나 이과수 가는 날 다른 언니 3명을 더해 우리와 함께 갔다. 사라, 케이티는 영국의 NGO에서 일한다. 줄리아 영국에서 이들과 함께 자란 친군데 지금 몬테비데오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얼른 친해져서 몬테비데오에서 다시 만났다.

마지막 날 저녁엔 한국 여자 2명을 만났다. 무려 미국에서부터 여기까지 돌고 돌아왔단다. 우리의 다음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깨알같은 소스들을 주셨다. 유럽도 가신다길래 묵혀두었던 유로를 무통장입금으로 거래했다. (85유로<=>10만원)


주변 정황 및 생활

이과수 도심은 네모나게 생겼다. 숙소쪽 도심 귀퉁이에는 큰 슈퍼마켓이 있다. 한 번 갔다가 뷔폐를 먹고 왔다. 그 외에 장 보기나 사먹기는 모두 숙소 근처에서 해결했다. 일일 파파야와 바나나를 하니 숙면과 소화에 큰 도움이 됐다. 외식도 몇 번 했다. May의 추천으로 Empório com Arte를 가봤다. 옆에는 유력 숙소 후보였던 테트리스 호스텔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모던 컨테이너 호스텔이라는데 진짜 항구에나 쓸 컨테이너였다. 안하길 잘했다고 확신했다. 식당은 오후 3시부터 여는데 맛이 훌륭했다. 호박 안에 소고기를 볶아주는 것과 닭고기 커리를 시켰다. 밥이 딱 땡기는 맛이었다. 가격은 40헤알 정도였다. 관광지라 이 근처 식당이 다 비싼줄 알았다.

숙소 뒤의 로컬 식당에서 정식 메뉴를 시켰다. 10헤알? 일요일엔 닫는게 아쉬울 뿐이었다. 건너편엔 주구장창 고기만 굽는 고깃집이 있었다. 평일 낮부터 아재들로 득실거리는 곳이라 계속 꺼리다가 마지막날 갔다. 뷔페와 아사도 세트를 먹었다. 이 아사도의 깊은 맛은 전날 먹은 아르헨티나 스테이크가 꿈도 못꿀 맛이었다. 소세지도 같이 먹어볼 걸 그랬다.



이과수 탐방 준비

이과수를 돌아보면 그냥 워터파크 3일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첫날엔 최강우비와 갈아입을 옷, 운동화에 샌들까지 두루두루 챙겼다. 튼튼한 우비가 있으니 폭포 가까이 갔을 때 효과는 있었다. 자연스레 옷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엔 우비는 놔두고 잘 마르는 옷만 입고 갔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아예 안에 수영복을 입고 샌들만 신고 온다. 물론 마테차와 보은병과 함께다.


브라질 이과수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O IGUAÇU)_0215

관광 첫날이니 접근이 용이한 브라질 이과수 폭포를 먼저 가기로 했다. 입구가 엄청 깔끔하고 크다. 놀이공원에 온 것 같다. 표를 사고 바로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이층짜리 셔틀버스는 무제한이다. 한라산 천백도로처럼 우거진 숲길을 한참 달려간다. 사파리부터 하는 사람들이 먼저 내린다. 좀 더 지나서 호텔 맞은 편에 모두 내린다. 이 구역의 깡패인 코아티(Coati, 긴코 너구리)들이 얼쩡 거린다. 처음엔 귀엽다. 하지만 넋놓고 보고 있으면 간식 훔쳐가는 놈들이다. 얘네들 때문에 이과수 어디서건 맘편히 간식을 못 먹는다.

폭포가 나타났다. 우어어, 몇 주간 브라질에서 먹은 더위가 씻겨나간다. 폭포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다져져있다. 폭포 한 번 보고, 사진 한 번 찍고, 또 가면 뷰 포인트가 있다. 한참을 이렇게 갔다. 저 멀리 폭포 안쪽까지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악마의 목구멍(Devil`s Throat)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우비로 환복을 하고 폭포 안으로 들어간다. 브라질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다. 홀딱 젖으며 꾸아아아아앙 쏟아지는 폭포를 본다. 눈 앞에 몇 백미터 넓이의 폭포가 쏟아진다. 돌아간다. 코아티 몰래 바나나를 우겨 넣으며 폭포를 마저 감상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좀 더 위에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끝이다.

어딜가도 느리기로 유명한 우리도 브라질 폭포를 다 보는데 반나절이면 족했다. 구내식당은 꽤나 비싸서 준비한 간식에 음료수만 사서 먹었다. 옆에 간식을 잔뜩 사온 가족은 코아티를 쫓느라 큰 고생을 했다. 폭포 위 강을 보는 것도 좋다. 유유히 흐르던 강이 좀 지나면 엄청난 폭포가 되다니 신기하다. 찌는 열기에 여편님 레이밴 선글라스가 두 동강 났다. 위안 삼아 기념품 가게에서 탐험용 이과수 공식 로고 반바지를 샀다. 숙소로 귀환했다. 바로 옆에 새공원(Parque das Aves)가 있지만 하루에 이 정도 감동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나중으로 미뤘다. 결국 안갔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Parque Nacional Iguazu)_0216_0217

보통 브라질 이과수를 먼저 보고 아르헨티나를 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가 훨씬 재밌고, 감동적이라서 그렇다. 아르헨티나 보고 브라질 보면 별로 느낄게 없을 것 같다. 택시기사와 작은 실랑이를 마치고, 입구에서 표를 끊고 입장했다. 여긴 좀 복잡하다. 브라질처럼 버스 타고 한 군데 내려서 보고 돌아오는 구조가 아니다. 보트투어가 유명하다니 그것도 신경써야 했다. 편안한 관람을 위해 숙소에서 함께 출발한 일행들과 헤어졌다. 좀 고민하다 보트투어를 먼저 예매하기로 했다. 보트투어는 입장 후 바로 사도되고, 나중에 보트 타는 곳에서도 살 수 있지만 거기선 카드 결제가 안된단다. 어차피 탑승 시간은 아무때나 가서 바꿔도 된다고 하니 티켓을 구매했다. 망할 프로모션 덕분에 600페소짜리 패키지를 구매했다. (보트투어 450페소+악마의 목구멍에서 중앙역 인근까지 강 따라 보트타는 Eco trail 200페소) 악마의 목구멍 기차 기다리는 줄이 은근히 길어서 돌아오는 건 편하게 보트를 타보기로 했다.


악마의 목구멍(Devil`s Throat)

지도까지 받아서 대강 그림을 그리고 중앙역까지 걸어갔다.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브라질 이과수 폭포의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설도 좀 구리구리하다. 한참을 기다려 기차를 탔다. 칙칙폭폭 잘도 간다. 줄이 엄청 길어지면 눈 딱 감고 걸어가는 청년들도 생겼다. 브라질에서도 악마의 목구멍이라던데 거기랑 여기랑 같은덴지 다른덴진 모르겠다. 여편님 말론 저기 건너 어제 갔던 브라질쪽 보인단다. 강 위의 다리를 한참 걷는다. 1km정도되는 다리다. 양 옆에 우거진 숲이 없으니 햇볕이 진통이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다 멀쩡한 건 오면서 옷이 다 말라서였다. 악어떼가 튀어나올 것 같은 열대강의 평온함이다. 폭포다. 여긴 진짜 무슨 목구멍같다. 그 엄청난 폭포가 가운데 구멍 하나로 다 빨려들어간다. 말이 필요없다. 십분 넘게 넋놓고 목구멍으로 빨려갔다.

다시 다리를 따라 돌아오다 벤치에서 쉬고 있었다. 발바닥에 뭐가 따끔하길래 봤더니 벌이 나를 물어 뜯고 있다. 으악. 여편님한테 얼른 저걸 치워달라했다. (결론은 내가 죽였고 여편님은 벌침을 빼주었다.) 비상. 응급 상황이다.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서 벌에 쏘였다. 옆에 있는 노년 부부에게 물어봤다. 괜찮을 거란다. 허억허억 가녀린 심신을 이끌고 보트 타는 곳으로 갔다. 벌에 쏘였다고 진지하게 말하니 침 뽑았으면 붓기 빼는 약 발라준단다. 보트가 곧 출발하는데 다음 거 타도 상관은 없단다. 숙소 일행도 이 보트를 탄다길래 같이 타기로 했다. 친절한 케이티가 오레오를 내민다. 벌과 싸우는 통에 열량이 모자라던 터라 꿀맛같은 오레오가 큰 힘이 됐다.


에코보트(Eco Boat)와 윗길 산책(Upper Circuit)

보트는 잔잔했다. 조용한 여덟명과 한 명의 사공이 탔다. 악마의 목구멍에서 느낀 자극성이 가라앉는 코스다. 한 삼십분을 평화롭게 내려간다. , 물고기, 나무에 대해 틈틈이 설명해준다. 사공의 스페인어가 느려 딱 내가 듣기 좋았다. 고무보트가 탈 것 같이 햇살이 강했다. 얼른 내려서 그늘이 있는 산책로로 복귀했다. 점심을 먹어야 했다. 중앙역 옆에는 서브웨이와 푸드트럭 햄버거 등이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서브웨이를 크게 시켜서 갈라먹는 것 뿐이었다. 샌드위치를 시키니 뒤에 한국 청년들이 많이 보인다. 무초무초 샐러드를 외친다. 코아티의 습격을 피해 샌드위치와 바나나를 흡입했다. 든든히 먹고 나니 정신이 좀 났다. 이제 남은 코스는 위, 아래 산책로와 보트타기다.

윗길 산책은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치코 폭포, 아담, 이브 등등 폭포 이름을 알려주는 데 그냥 다 폭포다. 광활한 폭포와 가운데 섬을 한눈에 내려다 봤다. 체력적으로도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땀도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곳이다.


아랫길 산책(Lower Circuit)과 로우보트(Lower Boat)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며 여편님이 조들기(보체기) 시작한다. 반면 나는 점점 신이난다. 그 옛날 아재들은 건강을 위해 일부러 벌침도 맞았다고 했다. 아마존 봉침의 효과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랫길을 대강 둘러보고 보트타는 길로 내려갔다. 보트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보트도 보트지만 이 아래에서 바라보는 폭포의 전경이 아름답다. 넋놓고 바라보게 될 정도다. 파노라마로 찍어도 다 담지 못할 장관이었다. 아랫길 한쪽 끝엔 거의 반쯤 폭포를 제대로 맞아볼 수 있는 코너도 있다. 폭포를 맞아 잘 다듬어진 돌조차도 빛이 난다.

대망의 보트를 타는 순간이 왔다. 안전제일 겁보인 우리 둘을 위해 방수가방도 준다. 중간쯤 안전한 자리를 찾았다. 다들 핸드폰에 방수커버를 씌워서 찍는다. 우리도 핸드폰 방수커버 있는데, 숙소 배낭 속에 있다. 언제 쓰려고 가지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출발한다. 오오, 진정 몇 년 묵은 스크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다. (백수에게 스트레스란..) 폭포 주위를 빙글 돌고 나온다. 그러다 반대편 폭포 안으로 쳐들어간다. 다시 나왔다가 또 들어간다. 끝이다. 여편님은 보트 한 번 더 타고 싶다고했다. 마약같은 보트였다.

아랫길을 마저 감상하고 출구로 나왔다. 막차에 맞게 귀환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이틀차_0217

다음날은 좀 더 여유롭게 아르헨티나 이과수로 향했다. 하지만 무슨일인지 버스를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큰 욕심은 없는 날이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는 이틀 연속해서 가면 다음날 입장료는 반값이다. 전날 관람을 마치고 매표소에 말하니 확인 도장을 찍어줬다. 도장 받고 안와도 된다. 티켓 가격은 둘째날 입장하면서 지불한다. 합리적이다. 입구를 지나 안내센터에 갔다. 굳이 이틀이나 찾은 건 Macuco Trail이라는 7km짜리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다. 이과수 공원 서쪽에 있는 산책길인데 길 마지막에는 작은 폭포도 있고, 거기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닫았단다. 우기라 수량이 많아서일까? 이유는 모른다. 가운데 섬으로 가는 보트도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단다. 물이 많아서 잠겨서 그런가보다.

30초 정도 멘붕의 시간을 보냈다. 어제 정신없이 본 윗길과 아랫길을 다시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여편님은 내가 벌에 쏘인 뒤론 폭포같은 걱정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유있게 다시 둘러보는 것도 큰 의의가 있었다. 폭포는 다시 봐도 아름다웠다. 폭포에만 쏠려있던 시선을 넓히니 이곳의 다양한 나무와 꽃도 신기한 것이 많았다. 특히 아래 보트타러 가는 길을 제대로 즐겼다. 여유로운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향했다. 전날 살짝 부었던 발이 크게 부었다. 좀 많이 불편해서 여편님한테 말했다. 아니, 상태가 이러면 집에서 쉬어야 할 것 아니냐. 당장 의사한테 가자고 했다. 출구 한 켠에 응급실이 있었다.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소염제나 하나 먹으라고 했다. 원래 3일 정도 붓기가 심하단다. 걸었으면 더 붓는게 당연하다고 했다. 여편님을 안심시키며 관람을 마쳤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스테이크_외식_La Dama Juana Restaurant_0217

여편님을 안심시켜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후 예정된 외식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를 두 번이나 찾은 건 둘째날 여유있게 스테이크를 썰고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발이 하루 이틀 더 붓는다고 일정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스테이크는 하루이틀 먹는 게 아니고, 그럼 당연히 와인을 겻들여야했다. 터미널로 돌아가 미리 수소문한 스테이크 집을 찾아갔다. 주변의 고급스러운 가게들과 달리 소박하고 정갈해보였다. 각각 뉴욕스테이크와 그냥스테이크를 시키고 와인을 몰색했다. 흠 그나마 들어본 트라피체를 시켜야하나, 직원한테 물어봤다. 그 아래 더 싼 NAMPE가 좋단다. 곧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몰캉한 느낌의 뉴욕스테이크보단 풀석한 그냥 스테이크가 나한텐 더 맛있었다. 와인은 말벡치곤 뜨섭함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피로한 오후에 먹기엔 딱이었다. 지난 3일 간의 워터파크 모험으로 빠진 땀을 소고기 피와 와인으로 채웠다.


이 만찬의 댓가로 남은 날 동안, 발의 붓기를 감내하며 최대한 이동을 자제했다. 숙소 근방 두 블럭을 벗어나지 않고 남은 2박을 보냈다. 다행히 떠나는 날 저녁 쯤에는 상태가 진정되어 무사히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참고

아르헨티나 이과수: http://www.iguazuargentina.com/en/que-hacer/informacion-visitante/horarios-y-tarifas/

(죽어도 아르헨티나 페소로만 받는데 페소 가치가 워낙 널뛰기라 입장료가 시도 때도 없이 오른다.)

브라질 이과수: http://www.cataratasdoiguacu.com.br/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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