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그라나다 여행 1, 1224일 토요일

이 호텔을 정한 이유는 저렴해서도 있지만 아침을 주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저렴한 호텔들은 아침을 주지 않는다. 워낙 다들 밤 늦게까지 먹고 마셔서인지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넘겨짚어본다. 남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게 얼마만인지.. 단촐하지만 맛있게 먹고 숙소를 나섰다. 커피만 빼고.. 오늘은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기로 했다. 습관처럼 옷을 껴입고 나왔는데 덥다. 걷다가 카페를 찾았다. 온 몸에 젖산과 피로물질들이 소용돌이 치는 기분이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커피를 시켰다. 마시고 나니 좀 낫다. 다시 알함브라로 돌진! 골목을 올라가다가 길을 물어물어 궁전 뒷문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길에 가족끼리 온 한국인 여성분을 만났다. 바깥분은 미국사람이고 얼마전부터 독일에 살아서 성탄절을 맞아 스페인에 여행을 오셨단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스페인에 한국 사람 많냐고 물어오셨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이 나와서 일거에요.”라고 대답해드렸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그리고 그라나다까지 한국 사람이 많기도 많다. 다들 열심히 다닌다. 예매해둬서 편히 티켓팅을 마치고 1시반에 입장했다. 알함브라에 있는 나자리에스 궁전은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3. 근처 정원과 요새를 구경하니 어느새 3시이고 궁전 입장줄이 생겼다. 우리 앞뒤로 다 한국가족들이다. 말조심해야한다.

알함브라에 간다고 하니 엄마가 궁전 천장 사진을 잘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엄마는 1년전 가을, 친구분들과 스페인, 포르투갈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왜 그런 부탁을 하셨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입장하고 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아랍 미술의 섬세함과 정교함은 인정해줘야 한다. 어떻게 저렇게 조각했을까.. ‘핀셋으로 했을거야’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자리에스 궁전은 아름다움에서 이스탄불의 토카프 궁전을 압도했다. 물론 규모는 토카프가 더 크지만. 다 보고 나와서 ‘General Life’ 구역으로 갔다. 정원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라나다에 살면서 산책으로 오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심을 거른 우리는 배고팠다. 식후경이 맞다. 서둘서둘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했다. 숙소에 가서 어제 사놓은 맥주와 감자칩을 우선 먹고 저녁을 고민하자고 했다.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한숨 자고 씻고 나오니 9시 즈음. 거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거나 닫고 있다. 맙소사. 어제 분명히 키케 아저씨한테 물어봤을때는 걱정말라며 토요일까지는 다 한다고 했는데 이브 저녁은 가족들이랑 먹나보다. 다 닫았다. 절망하며 골목을 뒤지고 있을 때 구원의 빛이 보인다. Kebab. 터키 이후에 한번도 먹지 않았지만 고맙다. 먹어야 한다. 남편님과 공모해봤다. 작은 피자 1과 치킨 케밥 2을 시켜 숙소에서 티비보며 먹기로 결론! 일사천리로 주문하고 나는 와인을 찾아 떠났다. 열려있는 작은 가게로 들어갔다. 중국인 아저씨가 나를 반겨준다. 5유로 짜리 와인을 사서 돌아가니 남편님은 케밥을 들고 온다. 야호! 돌아가는 길에 스페인 중년 여성분이 “이거 어디서 샀나요? 다 닫았네요”라고 물어봤다.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아랍과 중국이 우리를 살려준 그런 성탄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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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은 옛날에 같은 문화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카탈루니아어도 프랑스어와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막판 벌금 폭탄을 맞고 생긴 마음의 상처를 안은 체로 프랑스 남부의 교육도시로 향했다. 여기서 넉넉한 휴식기를 보내고, 꿈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일주일을 보냈다.


몽펠리에(Montpellier)_20161203_20161212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지만 나름 프랑스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이고, 한 조사에서 2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로도 꼽혔단다. 한국에서부터 여편님과 같이 알고 지내던 린느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어 찾아갔다.


중요 인물 소개_린느

린느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환멸을 느끼던 중 유럽 여행을 했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의 사는 것이 좋아 보여 프랑스행을 결심한다. 평소 애정하던 프랑스의 디져트 빵을 배우기로 했다. 프랑스의 빵 학교는 바게트 같은 식사빵을 만드는 과정인 블랑제리(Blangerie)와 달달한 빵을 만드는 파티쉐(Patisserie)로 나뉜다고 한다. (십만 년 전 드라마 김삼순에서 들어보고 처음 듣는 단어였다.) 파티쉐 과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몽펠리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다.

우리가 유럽연합에 진입하면서 만남의 시기를 조율하던 중, 12월 중순이면 학기가 끝나 동유럽과 파리를 간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몽펠리에로 달려갔다. 당초 몽펠리에에 볼거 없다던 말과 달리 우리에게 곳곳의 명소를 소개해주었다.


이동_FLIX버스

제노바에서 몽펠리에, 몽펠리에에서 바르셀로나 구간을 각각 미리 예매했다. 제노바 역에서 5분 정도 걸어나가면 광장에 버스 타는 곳이 있었다. 버스가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또 다른 버스가 와서 우리를 태워갔다. 플릭스버스 로고가 박힌 제대로된 초록색 버스였다. 이젠 능숙하게 티켓도 모바일로 보여줬다.

이날은 마침 역사적 더비인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한국에선 꿈도 못꿀 시간이지만 유럽에선 토요일 오후 경기였다. 눈물을 머금고 버스에 올라야 했다. 그래도 축구의 성지 유럽인데 버스에서 티비로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뒷자리용 티비는 고장났고, 맨 앞에 붙은 티비는 열 시간 내내 한 번도 켜지지 않았다. 힘든 여정이었다. 지도에서 보기와 달리 제노바에서 몽펠리에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거기다 마르세유, 액상프로방스, 칸트 등의 도시에서도 정차했다. 잠시나마 칸느해변을 걸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준비한 간식과 중간에 내린 공항 빵집에서 햄버거를 사먹었지만 배고팠다. 콜라 한 모금만 마시면 소원이 없었는데 차내에서 파는 음료가 다 떨어졌다고 한다.


아침에 탄 버스는 저녁 일곱시가 넘어 도착했다. 외곽에 SABINES라는 트램 역에 내려줬다. (바르셀로나 가는 버스도 여기서 탔다. 몽펠리에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4시간이면 갔다. 설명할 것도 없이 훨씬 편했다.) 숙소까지 트램을 타고 가려니 토요일 저녁에 시내로 가는 사람이 한 가득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날 시내 건물에 불 비추는 쇼가 벌어졌다고 한다. 숙소를 찾아 짐을 풀고 골목길을 해치며 먹을 것을 찾아나섰다. 피자는 또 먹을 자신이 없어 베트남 식당에 들어가서 쌀국수를 한 사발씩 들이켰다. 주인 아저씨가 베트남 LG공장에서도 일했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이때 잠바에 베인 쌀국수 냄새는 해를 지나 안달루시아의 햇볕에서 말리고 나서야 사라졌다.


숙박_공기 방울_티에리집_더블룸_9

프랑스는 에어비엔비 자체가 합법화되어 있어 그런지 결제 때 이미 프랑스 숙박세가 포함되어 있었다. 트램으로 시내를 다니기 편하고, 린느의 집과도 가까워 보이는 곳을 골랐다. (아쉽게도 린느 집과는 도심 기준 반대편이었다.) 티에리라는 점잖은 대학원생과 안토니라는 조금은 더 활달한 대학원생이 같이 사는 플랫이었다. 우리가 머문 방에 밖으로 향하는 창문도 있고, 잡동사니로 가득한 넓은 거실과 온갖 향신료와 차가 쌓여있는 주방이 있어 지내기 편했다.


시내까지는 약 2km라 트램을 타거나 걸어다녔다. 여기서 잠시 트램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이탈리아에서 한번 데인 우리는 유럽의 대중교통 체계에 한 껏 위축되어 있었다. 첫날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려고 트램을 기다렸다. 정류장엔 트램 표 판매기가 있었다. 1회권 10회권 등을 구매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동전만 받는다는 거였다. 답답함을 억누르고 있는 동전 없는 동전 다 끌어 넣었더니 5센트 미만은 또 안받는 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벹어나지도 않았다. 이미 넣은 2.x0 유로는 도루묵이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돌아서는데 뒤에 트램표를 사던 청년이 쪽지를 하나 준다. 나중에 사무실 가서 환급 받으라는 쪽지였다. (이건 끝내 환급을 못받고 린느에게 마지막 선물의 하나로 줬다.) 일단 처음엔 무임 승차를 하고, 나중에 린느가 우리에게 친절히 안내해줬다. 각자 1개씩의 10회권을 린느가 친절히 카드로 긁어주고 현금을 넘겨줬다. 린느는 1년 이용권을 300유로 정도에 사서 타고 다닌단다. 여러모로 외지인에겐 까탈스러운 트램이었다. 그래도 여편님이 트램 타다가 3번 더 탈 수 있는 카드를 주운 것으로 위안이 되었다.



몽펠리에 구경

코메디(COMEDIE) 광장

도착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 린느가 우리에게 코메디 광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전날 저녁에도 우리를 기다렸지만 우린 너무 피곤해서 자고 멀쩡한 정신으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코메디 광장이 뭔가 했더니 극장을 말하는 프랑스 단어가 코메디였다. 오페라 극장 앞에 있는 중심 광장이다. 파리를 연상케하는 오래되고 거대한 건물들과 같은 돌로 만들어진 바닥에 분수가 솟아나는, 샹들리에 노래가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주말이라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린느를 기다리다 극적인 상봉을 했다. 린느는 다른 프랑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우린 그 광장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빨강, 파랑 자켓을 입고 있었다. 핸드폰 없이 장소를 지정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이젠 참으로 재미있고 생소한 일이다.


크리스마스 마켓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는 크리스마스까지 특설시장이 벌어진다. 그리스에서 만난 독일 할머니가 뮌헨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광고했는데 여기저기 다 있는 것이었다. 나의 이런 반응에 친절한 린느는 뮌헨 크리스마켓이 원조라고 일러줬다. 각 매장마다 온갖 귀여운 것들을 모아놓은 인형가게, 유기농 식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비했다. 우린 먹거리 파는 곳을 주로 봤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따스한 뱅쇼를 길에서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옆에선 생굴을 팔길래 몇 점 나눠 먹었다. 그리고 으깬 감자에 치즈를 녹인 것과 굵은 소세지를 먹었다. 내 마음에 쏙드는 오리지널 독일식 조합이었다. 워낙 맛있게 먹길래 린느가 저녁에 자기 집에서 또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마켓을 지나면 작은 놀이 공원이 있다. 밤에 가보니 트리와 펭귄상에 불이 들어와 더욱 빛이났다.


파브레 박물관(MUSEO FABRE)

린느와 함께 장을 보고, 합정에 있을 법한 아기자기아담한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지나던 박물관에 들어갔다. 이 지역 미술관이라고 한다. 비가 몇 방울 시작됐다. 들어가니 심지어 매달 첫 일요일에 무료라고 한다. 작은 미술관인 줄 알았는데 내부는 생각보다 컸다. 익숙한 르네상스 그림들부터 프랑스 주요 화가들의 작품까지 가득가득했다. 예상못한 관람에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구스타베 쿠르벳(Gustave Curvet)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콜럼버스 카페와 기타 가게들

우리의 몽펠리에 체류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콜럼버스 카페다. 체인인데 곰 로고와 넓은 업무 공간을 자랑한다. 몽펠리에의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스터디 장소로 애용했다. 우리도 여기서 밀린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여편님은 프랑스 방송(여편님은 무려 10년 전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프랑스어만을 토대로 많은 부분을 찍어 맞췄다.)을 보거나, 접선했다.


또한 린느가 소개해준 100년 된 빵집의 빵을 자주 사다먹었다. 정말 바게트가 한번 꼭지를 따면 멈출 수 없이 먹게 되고, 얼마나 발효가 잘됐는지 소화도 꿀떡꿀떡 되서 먹으면 더 배고픈 빵이었다. 그 외에도 중심가 골목 한 켠엔 팟타이(누들박스 같은 거다), 쌀국수, 케밥, 타코(프렌치 타코를 먹어봤더니 케밥이었다.) 등등 각 지역의 스트릿 푸드들이 줄비했다. 이제껏 겪은 다른 유럽 도시와 달리 다양한 지역의 음식들이 대중화 되었단 느낌을 받았다. 학생 도시인 탓도 있고, 과거 식민지 영향, 다양한 이민자의 유입 등이 주 요인인 것으로 사료된다.



세트(Sete)섬 나들이

주 목적이 린느 방문과 휴식이었지만, 몽펠리에 주변엔 고흐가 살던 곳, 아비뇽 등등 하루에 다녀올 만한 곳들이 많다. 여편님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비용, 교통편 등의 이유로 모두 무산됐다. 그러던 중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린느와 재회한 일요일 카페에서 수다를 떨던 중, 뒤에 프랑스 남자애가 한국말을 했다. 한국 사람이냐며, 한국에서 2년 살다가 다시 돌아와서 또 한국 갈 준비를 하고 있단다. 이름은 기엠이고, 그때도 한국 학생과 언어 교환을 하고 있었는데 린느와도 친해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기엠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심지어 한국 살 때 조기축구에 용병으로도 뛰어서 욕도 잘 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한류의 열기를 피부로 느낀 것이, 기엠은 물론이고, 몽펠리에를 떠나는 날 정류장 옆 빵집 아가씨가 우리가 한국인인 걸 알고 ‘안녕하세요’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단다.)


다다음날 린느가 기엠이 자기 차로 세트섬을 가자고 했다며, 동행 제안을 했다. 우린 당연히 동행했다. 난생 처음 프랑스 푸조차를 타보는 영광도 누렸다. 시내에서 만나서 외곽으로 트램을 타고 가서, 주차장에 세워진 기엠의 차를 타고 출발했다. 세트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다들 속이 비어서 약간은 멀미기가 돌았다. 그러다 창밖으로 플라밍고들이 잔뜩 보였다. 왜 이런걸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지. 세트에 도착해서 항구를 구경하고, 차를 한잔 마시고, 석양이 보이는 공원을 돌아봤다.


다시 몽펠리에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파리스토어라는 아시아 마켓에 들렀다. 충격적이었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종류별 라면은 물론 냉동 만두까지 한국 제품도 가득했다. 모두 각자 필요한 물품을 조금씩 수급했다. 라면 끓여먹을 계획을 세웠으나 다음날 아침 먹을 게 없어 해치워 버렸다. 파리스토어가 준 스케일과 감동이 세트섬을 압도한 날이었다.


몽펠리에 동물원

린느가 몽펠리에 명소 중 하나로 수족관과 동물원을 꼽았다. 작은 도시 동물원이 얼마나 대단할까 싶었다. 그래도 공짜라니 찾아갔다. 무려 린느네 집 근처, 도시 반대편으로 트램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서 갔다. 들어가자마자 시끄러운 앵무새와 붉은 새장이 우리를 내려다봤다. 동물원 안내도에는 각 구역에 자리한 동물들이 그려져있었다. 먼저 가다보니 치타가 있었다. 3,4마리가 각각 큰 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얘들이 달리기도 잘하는데 저 담을 뛰어넘으면 어쩌나 싶었다. 약간 멀리서 그 아름다운 가죽무늬를 감상했다. 다음은 늑대다. 여기도 뭔가 담장이 낮다. 다행히 날 물지는 않았다.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코뿔소를 보러 갔다. 전세계에 희귀하게 분포한다는 흰코뿔소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뿔소 3마리를 멍하니 지켜봤다. 오로지 그들의 느릿한 움직임에만 집중하다보니 평화가 찾아왔다. 넋놓고 30분을 바라봤다. 동물원 한 켠엔 사자 여러마리도 있었다. 여긴 나름 활동적이라 자기들끼리 장난치고, 사육사가 먹이주러 오니 반갑게 맞아줬다. 끝으로 곰을 봤다. 곰 세 마리가 한 우리에 있다. 케나다 불곰이란다. 한 마리는 심통났는지 계속 멤돌고, 한 마리는 주저 않아서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곰돌이푸가 꿀먹는 자세는 곰을 유심히 관찰해서 얻어낸 그림인 것 같다.

여기 동물원은 어렸을 때 한국에서 봤던 동물원들 보단 훨씬 우리가 넓다. 큰 동물들도 맘껏 뛰어다니기에 넉넉한 공간이다. 나에게 넓은 저택과 양질의 먹을 걸 꾸준히 줄테니 가족과 갇혀 지내라고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질문을 했다. 코뿔쏘가 또 보고 싶어 다음날 린느와 함께 다시 찾았다. 아쉽게도 일요일 오후라 동물들이 조기 퇴근을 한단다. 곰만 다시 보고 돌아왔다.


프랑스식 성탄절 밤크림초코컵케이크 만들어보기 by 여편님

안녕하세요. 슬슬 여행기가 쓰기 귀찮아지는 남편님을 대신해 나왔습니다. 여튼 이 부분은 제가 경험했으니 적으라고 하더군요. 헤헤

우리의 몽펠리에 여행수석가이드 린느가 본인은 가기로 예약했는데 같이 가고 싶냐고 해서 바로 수락했습니다. 25유로라는 가격에 배우고 컵케이크도 얻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것보다 큰 것은 계속되는 유럽 여행으로 인한 매너리즘에 허우적대고 있던 시즌이어서 무언가 환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남편님에게도 저에게도 각자의 자유시간을 허락하고요.


127일 수요일이었습니다. 2시 수업이니 1시반에 만나 트램을 타고 갔습니다. 여러 정거장을 가니 한적하고 부유해보이는 주택가가 나옵니다. 린느 말로는 좋은 가게들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시내에 나가야만 있는 맛있는 빵집이나 치즈가게가 여기에는 주택가에 있다고 합니다. 생활필수품이여서 그럴지도 모르죠. 미리 스튜디오를 답사하고 길가에 앉아 따스한 햇빛을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2시가 되어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불어는 아무래도 어려워 린느의 통역으로 수업을 따라갔습니다. 설탕(슈크레)만 기억나는군요. 만들기를 되새겨 보자면

1. 밀가루, 설탕, 버터, 계란을 섞어 초코를 녹이고 함께 섞는다.

2. 1의 반죽을 실리콘 케이스에 넣어 굽는다.

3. 밤페이스트와 슈가파우더, 버터 등등 (기억상실)을 넣고 밤크림을 만들어 짤주머니에 넣는다.

4. 다 구워진 초코컵케이크를 케이스에서 떼어내어 식히고 그 위에 밤크림을 짠다.

5. 크리스마스 컵케이크니까 위에 알록달록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


사실 제일 재밌던 것은 5번이었습니다. 각자 7~8개의 컵케이크를 배정받아 트리, 산타 등등을 표현했습니다. 수업을 마치니 4시즈음이 되었고 우리는 박스에 담아 쇼핑백을 달랑거리며 나왔습니다. 무언가 뿌듯한 기분! 다시 코메디역으로 돌아와 남편님이 있는 콜럼부스카페로 향합니다. 3시간여만에 만나서인지 무지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더 뿌듯한건 그날 저녁 숙소 프랑스 친구들에게 닭요리를 해주고 디저트로 맛있게 먹었다는 거죠. 함께, 나누어서 좋았던 컵케이크 만들기였습니다.



식사 교류전

숙소에 사는 안토니는 아시아 음식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리하여 내가 한 번 찜닭을 할테니 같이 먹자고 했다. 린느까지 불러서 나, 여편님, 안토니, 티에리, 린느 다섯 명이서 식사를 함께 했다. 린느의 조언대로 찜닭을 조금씩만 퍼주었다. 나만 두 그릇 먹었다. 점잖은 티에리는 우리 손에 디져트(요거트 푸딩)을 하나씩 챙겨주고, 할일 있다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곧 안토니가 본인도 식사 대접을 한 번 하겠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 또 다섯이서 먹기로 했다. 7시 쯤 집에 왔더니 안토니는 남은 시험 과제를 하고 있었다. 기다렸다. 슬슬 9시가 되니 요리에 열을 올린다. 배가 고팠지만 참았다. 이탈리아서부터 이 남유럽 사람들은 지질이도 늦게 먹는단 생각을 했다. 린느가 보통 저녁 약속이라 하면 10시는 기본이라며 위로해줬다. 드디어 식사 시간이 됐다. 달걀, 햄 등을 싸먹는 크레페와 계란이 들어간 리옹식 샐러드(안토니는 리옹 출신!)였다. 린느가 이건 꼭 먹어봐야할 프랑스 음식들이라며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식사와 술이 무르익으니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었다. 천성이 노인인 나는 밀려드는 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모두를 남겨두고 먼저 자러갔다.


김치와 보쌈

린느는 첫날부터 프랑스식으로 간단한 스테이크를 해주었다. 그리고 세트섬에서 돌어오던 중 파리스토어에서 김치 재료를 샀다. 우리가 떠나기 전날 대망의 김치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먼저 점심에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전날 안토니와의 식사로 쌓인 피로를 털어내고, 조바심을 내며 린느네 집으로 갔다. 하지만 이미 린느는 배고픈 우리를 위해 떡볶이를 다 만들어 놓았다. 참 감동적인 맛이었다. 한동안 참 천천히 먹는다는 소리를 들었던 여편님도 이날은 예외없이 함께 후라이팬을 닦았다.


그리고 곧장 김치 양념을 만들고, 절여놓은 배추에 발랐다. 열정 넘친 여편님은 양념을 일일이 손으로 비비고, 배추에 발랐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레시피에 따라 고추, 피쉬소스, 마늘, 생강, 쪽파 등을 넣었다. 그리고 이 때 중요한 인물이 등장했다. 린느와 함께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는 한국 청년인 원스타군이 왔다.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며 새우젓을 들고 왔다. 그것도 한살림. 이는 김치뿐만 아니라 다가올 보쌈에도 환상적 효과를 불러왔다. 김치는 집의 그것은 아니었지만, 명동에서 먹던 그 맛이었다. 다만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그 후 약 한달 동안 요리에 마늘을 넣고 싶지 않았다.


김치를 만들어 놓고, 동물원 산책을 다녀왔다. 그리고 고기를 삶았다. 고기와 함께 팔뚝만한 생소세지도 함께 삶았다. 다들 순대순대하는 눈치라 내가 보쌈과 함께 제안한 아이템이다. 먼저 생소세지가 다 삶아져서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사실 요즘 진짜 순대 구하기 힘든 세상인데, 이정도면 한국 시장에서도 찾기 힘든 맛이다. 참 유럽의 소세지 문화는 한국의 순대 정신을 압도한다. 곧 보쌈에 김치를 돌돌 말아 먹으니 와인에도 흥이 올랐다. 이미 준비한 3병을 다 마시고, 두 병을 더 사왔다. 그리고 우린 모두 코알라가 되었다.


다음날, 전날의 여파로 힘겹게 짐을 쌌다. 그리고 어제 린느가 챙겨준 김치에 계란간장밥을 만들어 먹었다. 남은 김치는 또 락엔락에 고이고이 간직해 바르셀로나에서 된장찌개와 함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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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1223일 금요일

또 밤새 머리가 너무 시렸다. 침낭, 이불, 담요로 구성된 3층 보호막을 빠져나가기 싫은 그런 추위.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고 했던가. 그걸 너무 느끼게 되는 케사다다. 참고로 8시반에 해가 떠서 6시에 지는 그런 패턴. 하지만 해가 뜨기만 하면 따스함이 금새 지면에 축복처럼 내려앉는다. 동절기 회사생활이 떠올랐다. 8-8시반 출근이었던 생활. 해가 뜨기 전에 자리에 앉아 정신없는 낮을 보낸 후 해가 지고 나서 퇴근한다. 사이사이 밖을 나갈 일이 있지만 해를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요즘엔 미세먼지로 바깥활동 자체가 힘든 서울, 한국. 나아지려나. 잡생각 사이에 벌써 일터에 왔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다들 열심이다. 간식을 먹는데 어제부터 삼바는 같이 밥을 먹지 않는게 생각났다. 언니한테 물어보니 본인이 원해서 따로 먹는다고 했다. 아마 종교때문이리라. 세네갈은 인구 95%가 이슬람이다. 할랄이 되어있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을테고 본인이 준비한 걸로 먹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 크리스마스 연휴라 그런지 삼바에게 일 중간중간 친구들 전화가 왔다. 묵묵히 일하던 삼바에게 엿보이는 천진한 미소. 그러고 보니 삼바는 스페인어도 할줄 안다.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였어서 프랑스어가 공용어인데 아마도 일하러 오려고 스페인어를 열심히 배웠나보다.

어느새 점심 시간. 오늘은 아저씨가 토마토소스와 올리브유를 잔뜩 넣은 야채볶음을 준비했다. 너무 맛있어서 열심히 먹었다. “Bueno!Bueno!”를 연발하면서.. 빵으로 도시락통까지 닦았다. 크리스마스는 유럽의 가장 큰 명절이다. 엊그제 버스터미널에서 캐리어를 든 젊은 학생들을 많이 봤고 가족을 만나 얼싸안는 장면에 가족이 보고 싶기도 했다. 아마 명절귀경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명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은 중국문화권이라 새해와 추수감사절은 음력으로 한다는 이야길 했고 Luna calender를 이야기 하다가 서로 무슨 띠인지도 이야기 했다. “나는 돼지고 남편님은 호랑이다.” 라고 하니 언니가 키케도 돼지라며 둘이 같다고 웃었다. ! 아저씨와 나는 띠동갑. 아저씨의 나이를 알게됐다. 그러더니 본인은 염소라고 했다. Goat. 하지만 12간지에 염소는 없다. 양이 있을 뿐. 언니에게 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의 나이도 알게되었다. 67년생이시다. 우리 시어머니보다 6살 어리실뿐. 그런데 그렇게 체력이 좋다니.. 다시 한번 내 거지체력을 반성하게 되었다. 단축근무여도 낮잠은 챙긴다. 이러다 보니 일찍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시가 다되서야 키케 아저씨가 그만하자며 올리브를 수레에 담기 시작한다. 다 담고 삼바에게 인사하고 알레한드라 언니와도 인사를 했다. 언니는 내일 키케 아저씨 아빠랑 같이 그라나다로 올거라고 했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재밌는 관계들이었다.

아저씨는 어제와 같이 마굿간 앞에 우리를 내려줬다. 그리곤 네팔이를 앞장세워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 짐을 챙긴다. 각자 매고 다니는 작은 등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담고 보조가방에 옷가지를 챙겼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빨래도 담았다. 우리가 묵을 곳은 2,3성급 호텔. 뜨거운 물을 팡팡쓰며 빨래를 하겠다는 의지. 옛 어머니들이 목욕탕갈때 빨래를 하는 마음이 이랬을까. 물론 우리가 갈 호텔엔 빨래 금지같은건 없을거다. 짐을 챙겨 아래로 내려오니 아저씨가 도착했다. 여기서 그라나다까지는 140km. 차로 두시간 정도 달리면 된단다. 아저씨는 가스퍼와 네팔이를 집밖으로 내보내고 집문을 잠갔다. “보고싶을거야..애들아” 네팔이와 가스퍼를 그냥 두고 오는 아저씨가 신기하기도 매정하게도 느껴졌다. 차가 출발하고 네팔이가 달려온다. 엉엉 마음이 왜이렇게 아픈지. 그 장면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가가 찡하다. 어느 순간 네팔이가 안보인다. 내가 뒤를 계속 쳐다보니 아저씨가 걱정하지 말란다. 원래 동물들은 바깥생활을 하는 거라며..

편안히 뒷자리에 혼자 앉아 바깥구경을 했다. 올리브 산 뒤로 해가 뉘엿뉘엿진다. 그러고 보니 다음주면 올해도 가고 나도 한국나이로 35살이다.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 뭐하는건가 싶다가도 그래도 재밌어서 다행이다 생각한다. 지금 내 나이는 남은 나이 중에서 가장 젊은 나이니까. 차가 한창 올라가더니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갑자기 눈 덮인 산맥이 보인다. ! 아저씨가 sierra nevada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저씨를 따라 그라나다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깜빡 졸다 일어나니 어느새 큰 고속도로에 다달았다. 도착 막판엔 귀경길 정체같은 것도 느껴졌다. 도심안으로 진입하고 나서 아저씨는 어느 호텔 옆에 세워주더니 여기서 일요일 오후 4시에 만나자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우리 숙소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는 길에 느꼈다. 우리 신발에서 흙이 엄청 떨어지고 있음을.. 깨끗한 대리석위에 후두두둑. 방에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앉지도 않고 씻었다. 씻으려고 온 애들처럼. 빨래도 잔뜩하고 여기저기 널어놨다. 급 허기가 진다. 식당을 찾아 나섰다. 방랑하던 중 미슐랭 어쩌고도 발견했지만 땡기지 않는다. 다음 골목에서 발견한 “Los Andaluces Restaurante” 우리가 사랑하는 “menu del dia”가 보인다. 기웃기웃하니 안에서 웨이터아저씨가 맛있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오홍.

9시 즈음. 한창 저녁 전이라 자리가 꽤 있다. 안내 받아 앉고 나서 가장 저렴한 15유로 짜리 세트를 시켰다. 나는 샐러드+돼지고기튀김. 남편님은 연어무스+돼지고기 구이 그리고 각자 적포도주 한잔씩. 디저트로는 과일과 푸딩을 시켰다. 기대 이상의 음식들이 나온다. 포도주 맛도 좋다. 올리브 절임도 잔뜩. 기분좋게 잘 먹고 나와서 집에 왔다. 티비에서는 “PAPA Noel”이 나오는 귀여운 만화를 하고 있었다. 뻐근한 기분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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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1222일 목요일

밤새 머리가 너무 시렸다. 침낭으로 머리를 겨우 가리며 잤다. 7시반에 겨우 일어나 커피와 비스켓을 먹고 작업복(이라 쓰고 등산복이라 읽는다.)을 입고 내려갔다. 아저씨가 장갑도 껴야 한다며 줬다. 사실 우린 올리브 일에 대해 아무런 감이 없었다. 아저씨한테 언제가 수확시즌이냐고 물어보니 12월부터 3월이 피크라고 한다. 겨울이 수확시즌이라니 신기한 안달루시아일세.

마을로 들어가니 젊은 남자 한 명이 차에 올라탄다. 아저씨가 고용한 세네갈 출신 ‘삼바’. 바르셀로나에서부터 봐온 바지만 아무래도 유럽의 농업은 아프리카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듯. “Hola” 인사를 나누고 일터로 향했다. 타운에서 차로 10분 가니 일터가 나왔다. 여기저기 똑같은 올리브 나무기 때문에 자기네 업무 구역을 어떻게 확인할까가 신기할 정도였다. 올리브 따기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 바닥에 큰 검정 그물 두개를 나무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치고 경사가 기울어진 부분은 올리브가 굴러 넘어가지 않게 잘 포개준다.

- 나무를 흔드는 기계(벌초 기계와 비슷하게 생겼다.)를 한사람이 가지에 걸고 흔들면 다른 사람은 큰 작대기로 가지를 훑으며 털어낸다. 팍팍

- 더 남은 올리브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훑어낸다.

- 그물은 다른 올리브 나무 밑으로 옮긴다. 그리고 주변에 크게 떨어진 올리브들을 줍는다.

- 하루에 20~25개의 올리브 나무를 작업하면 보통 끝이 난다. 그물은 보통 6개를 사용하는데 2개 정도에 합쳐서 차 뒤에 담고 협동조합으로 간다.

- 근무시간 9 to 5. 휴식시간은 따로 없다. 12시에 간식 20(체감 10), 2시에 점심 그리고 3시까지 잠

- 화장실은 근처 아무데서나… (죄다 올리브 밭이다.)


알레한드라 언니가 왔다. ATV를 타고서.. 멋진 언니다. 바로 일이 시작되었다. 키케 아저씨가 나무 흔드는 기계에 시동을 건다. 언니가 그걸 들쳐매고 나무가지에 건다. 그리곤 삼바가 작대기로 팍팍 친다. 우수수수 떨어지는 검보라빛 열매들. 처음엔 우리도 작대기로 올리브 털기를 해봤지만 별로로 보였는지 둘이 한 조를 이루어 네트를 움직이라고 했다. 그 사이사이 작업이 끝난 나무에 더 달린 건 없는지 확인하고 네트 옮기고 바닥에 떨어진 올리브를 확인하고 주웠다. 그 사이 해가 뜬다. 큰 산맥들로 둘러싸인 곳이라 해가 늦게 비춘다. 두꺼운 옷 한겹 벗고 다시 업무 시작. 헉헉..

12시가 되고 나서 간식을 먹었다. 언니랑 아저씨는 큰 광주리 바구니를 가져왔고 바닥에 앉았다. , 치즈, , 요거트 등 본인이 먹고 싶은대로 먹으면 된다. 나도 그들을 따라 빵을 칼로 자르고 그 사이에 햄과 치즈를 끼워 우적우적 먹었다. 그리고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일. 허리가 너무 아팠다. 내 거지체력이 너무 서글펐다. ‘나보다 열살은 더 많아 보이는 언니가 20키로는 되어보이는 저 기계를 들쳐매고 몇시간이고 일을 하는데.. 나는 왜 이리 힘든가..’ 계속 이 생각 뿐이었다. 그 사이 남편님은 언니와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었다.

2시 점심이 되었다. 해가 잘 비추는 곳으로 가서 아무거나 깔개를 가져왔다. 점심은 간식의 메뉴에 더해 아저씨가 준비한 조리메뉴를 같이 먹는다. 열어보니 렌틸콩 수프다. 나는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햄치즈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맛있는지.. 밥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언니에게 드디어 질문을 했다. 어디 출신인지 궁금했는데 언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했다. 화학공장에서 일했던 아빠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정착하면서 거기서 태어났고 어렸을때는 포르투갈에서 미국계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아 그래서 언니가 영어를 할 줄 알았던거다. 그리고 몇가지 서로의 농업문화에 대해 나누고는 아저씨는 저기로 언니는 반대로 갔다. 둘 다 해가 잘 비추는 곳으로. 눕고서는 잠을 청한다. 나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땅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하지만 해는 너무 따뜻했다.

남편님이랑 주절주절 수다를 나누니 다시 일할 시간. 나무 몇개 작업을 마치고 나니 아저씨가 큰 긁개를 준다. 이걸로 나뭇가지를 제거하란다. 나무를 털때 나뭇가지와 이파리들도 같이 떨어지는데 옮겨 닮는데 큰 방해가 된다. 낑낑거리며 요리조리 모으고 버리고 하니 아저씨가 시범을 보여준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아저씨가 다가와 네트를 ATV에 걸어 다른 네트에 옮긴다. 합쳐야 수레에 옮겨 닮기 쉽다. 그리고는 큰 고무 다라로 옮겨 담는다. 무겁고 힘들어서 나는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다 담고는 영농조합공장으로 출발할 시간. 아저씨가 같이 가겠냐고 물어봐서 냉큼 탔다. 마을 외곽에 있는 올리브유 공장에 왔다. 여기저기 작업을 마친 차들도 들어온다. 아저씨는 작은 트럭에 수레를 달고 왔는데 큰 트랙터도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올리브를 아래로 쏟아붓는다. 그러면 기계가 돌과 이파리등을 제거하고 남은 올리브의 무게를 재어준다. 다 끝나면 직원이 종이증서를 가져다 준다. 얼마를 수확했다는 증서. 나중에 정산해서 돈으로 바꿔준다고 했다. 친절하시게도 올리브유 추출방법도 알려주셨는데 올리브와 뜨거운 물을 넣고 기름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는 염소 등 동물 먹이나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다시 일터로 돌아와 언니와 삼바의 업무 정리를 돕고 언니는 큰 비닐에 아까 정리한 올리브 나뭇가지를 담아 차에 싣고 집으로 출발했다. 그 올리브 나뭇가지들은 언니가 키우는 염소 7마리의 먹이가 된다고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차가 들어선다. 그리곤 철창을 열고는 여기로도 집에 갈 수 있다고 알려준다. 아저씨의 개인 농장 영역이었는데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아저씨가 휘파람을 분다. 어디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 말이다. 아저씨는 세마리의 말을 키운다고 했다. 임신한 4살 회색말, 건장한 3살 갈색말. 그리고 눈이 안보이는 25살 할머니 갈색흰색얼룩말. 말들을 마굿간에 넣고 우리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아저씨는 남은 볼일을 보고 7시쯤 돌아온단다. 개울을 건너니 집이 보이고 옆집 큰 개들의 짖는 소리도 들린다. 네팔이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한다. 아저씨가 준 열쇠를 열고 들어가 샤워는 못하니 손만 씻고 옷 갈아입고 1층 소파에 앉아 그라나다 숙소를 검색하고 예약했다. 춥다. 중앙난방방법을 배우지 않아서 떨며 한시간 기다리니 아저씨가 왔다. 계속 이런 패턴이면 안되겠다 싶어서 아저씨가 나무에 불을 피는 걸 배우러 갔다. 이리저리요리조리 하면 불이 피워진단다. 중요한건 불이 크게 계속되어지게 종이나 나무껍질 등 잘 타는 걸 초반에 잘 주입해주는 거였다. 그래야 큰 나무에 불이 붙는 이치. 알겠다고 하고 다음에 해보겠다고 했다. 어쨌든 내일 저녁엔 그라나다에 있을거니까.

그리곤 아저씨가 피자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보통 유럽인들은 마트에서 파는 냉동피자를 사서 오븐에 데워먹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다른 피자들보다 맛있다. (눈물.ㅜㅜ) 하지만 아저씨는 직접 반죽을 하고 야채를 썰어넣고 참치도 넣었다. 그리곤 오븐에 넣고 우리랑 와인 마시다보니 피자 완성. 맛있었다. 아저씨에게 내일 그라나다 갈거라고 숙소도 예약했다고 했다. 그럼 일 마치고 3시에 집에 내려줄테니 준비하고 떠나하심. 오예! 일 시작 하루만에 단축근무와 휴일이 너무 좋은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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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러니까 1년도 훨씬 전.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몇가지 해보고 싶은 것을 꼽아봤다. 둘 다 올리브절임과 기름을 좋아해서 올리브 주 생산지인 이탈리아 토스카나나 스페인 안달루시아 올리브 농장에서 일해보기가 그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올리브는 우리나라에서 생산이 아예되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 나간 김에 어떻게 자라는지, 수확은 어떻게 하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스페인 안달루시아 구석진 어느 마을에 사는 아저씨에게서 답이 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결시스템은 “워크어웨이(workaway)”. 호스트와 여행자를 연결해준다. 호스트는 숙식을 제공해주고 여행자는 호스트의 일을 돕는 그런 구조다.


도착. 1221일 수요일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거쳐 안달루시아로 향했다. 곧 크리스마스와 새해 시즌이니 시골로 가서 조용히 지내고 싶은게 우리의 소망이었다. 세번의 버스를 타고 9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후 도착한 그 곳의 이름은 ‘Quesada’. 남편님은 자꾸 ‘퀘사디아’라고 발음했지만 그 곳의 정식 발음은 ‘케사다 혹은 퀘사다’ 이다. 마드리드에서 하엔(Jaen)에 도착해 연락하니 답이 없다. 무작정 가는거다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점점 버스가 올라가 설산이 군데 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2시간 동안 멋진 구경을 하니 도착했다. 산 속이라 춥다. 해가 이미 진 시간. 전화를 했더니 여자 친구(amiga)가 마중을 나갈거라고 아저씨가 말했다. 언제 마중 나오려나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는데 어떤 발랄한 언니가 빨래건조대를 들고 귀여운 멍멍이랑 걸어온다.

Are you Gordo?” (남편님은 한국 이름과 비슷한 이 단어를 스페인 이름으로 사용하는데 뜻은 ‘뚱뚱한’이다.) 라고 물어봤다. 맞다고 했더니 호스트 아저씨가 바빠서 본인이 마중을 나왔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My name is 알레한드라. I am the partner of Quique” 라고 소개했다. 무언가 강한 느낌의 언니였다. 발걸음도 어찌나 빠르던지 따라가다 몇번이고 놓칠뻔했다.

어둡고 알아보기 힘든 미로같은 길을 지나 언니의 집이 나왔다. 차를 권해서 한잔씩 마시고 있는데 언니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그리고 본인은 일본문화와 명상을 좋아한다고 했다. SEN 이라고 하던데.. 선명상을 뜻하는 것 같았다. 개연성 없는 질문들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언니에게 질문을 할 세는 없을 정도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자질검증인가 싶다. 언니는 두마리의 고양이와 한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었다. 집이 작지만 효용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나무로 인테리어 되어있었는데 물어보니 키케가 해줬다고 했다. 무언가 슬슬 재미져지고 있었다. 곧 키케 아저씨가 왔다. 사진보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편인데 등은 단단해보였다. 오랜 육체노동의 결과물이리라. 머리 스타일이 재밌었는데 약간 레게 식으로 꼬았다. 그냥 관리 안하면 되는 그런 스타일인거 같았다.

아저씨 차에 가방을 싣고 뒤에 탔더니 무언가 불쑥 나온다. 개다. 이름은 ‘네팔’이라고 했다. 자꾸 자기를 쓰다듬으라며 콧등으로 내 손을 들어 올린다. 네팔이를 계속 쓰담으며 집으로 갔다. 집은 퀘사다 시내에서 차로 10분 내려가야 하는 곳인데 비포장도로라 무지 덜컹댔다. 집에 오니 흰색 고양이가 마중 나왔다. 이름은 가스퍼라고 했다. 2층으로 올라가 빈방 두개 중에 어느 걸 쓰고 싶냐며 이게 더 따뜻한데 매트리스는 여기 있으니 원하면 옮기란다. ‘Help yourself’ 크레타 워커웨이에서도 많이 들은 말. 어쩌면 워커웨이 호스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일 거다. 방정리를 하고 내려가니 아저씨가 시금치 올리브 볶음이랑 빨간피망절임, 빵과 포도주를 준비해줬다. 탁자는 두꺼운 담요로 덮여있었는데 그걸 들어 무릎위에 얹으면 화로안의 타고 있는 나무가 하반신을 따수히 해줬다. 일본의 코타츠와 비슷한 이치. 맛있게 먹으며 몇가지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1. 이 집은 80년된 집을 직접 리모델링 했다. 중앙난방시스템이 있는데 나무를 태워 물을 데우면 그게 각 방의 난방기구로 들어가 방 공기를 따스히 해주는 구조다.

2. 태양열로 전기를 공급하기 때문에 전력을 갑자기 많이 사용하는 제품을 사용하면 안된다. 헤어드라이어는 사용하지 말아달라.

3. 뜨거운 물 기계가 고장나서 곧 고칠 예정이다.

4. 일은 8시반에 출발해 9시쯤 시작하고 5시쯤 마친다.

5. 나는 크리스마스에 고향인 그라나다로 간다. 금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온다. 너희들도 가려면 이야기 해주렴. 방은 찾아보고.


4번은 당연히 가야했다. 아저씨가 없는 기간 동안 샤워는 커녕 추운 집에서 무얼하리. 어차피 그라나다는 가볼 생각이었고 태워준다니 금상첨화 총총 따라가기로.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양치질과 세수를 겨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케사다의 최저온도는 1~3. 최고온도는 14~18. 추운 밤과 따스한 낮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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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를 거쳐 라스페치아로 갔다. 친퀘테레(Cinque Terre), 다섯개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지역을 보러 간 것이다. 해안을 따라 자리한 각양각색의 마을을 기차로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마을들을 둘러보기 위해 라스페치아에 머물렀다.


라스페치아(La Spezia)_1129_1203

우리에겐 친퀘테레를 둘러보기 위한 요충지였고, 원래는 제네바에서 해군기지가 옮겨오면서 커진 도시라고 한다. 관광 비수기라 그런지 시내에 사람도 많지 않고, 그래도 있을 건 다 있고, 나름 시내도 있고, 큰 가게부터 아기자기한 가게까지 다 있었다. 더불어 좋은 바다도 끼고 있어 베이스 캠프로 손색이 없는 동네였다.


The Gate to Cinque Terre_4_더블룸

친퀘테레 내에 위치한 펜션들은 대부분 가격이 높았고, 라스페치아엔 숙소가 많진 않았다. 공기방울로 깔끔해 보이는 방을 예약했다. 가보니 부킹닷컴에도 등록되어 있는 아파트형 호텔이었다. 방이 사진과 달리 바다도 안보이고, 햇볕도 안드는 게 맹점이었다. 대신 화장실이 깨끗했고, 특히 주방이 아주 훌륭했다. 큰 건물 삼층과 사층을 쓰는데 체크인은 일층에 사는 아저씨가 해주고, 나름 숙박세(1박 당 11.5유로)도 받아갔다.


알레시 모카포트(ALESSI 9090/3) 사용기

짐을 풀고 차나 마시려고 주방 구경을 갔다. 요상한 주전자가 있었다. 이제껏 내가 알던 육각진 모양은 아니었지만 모카포트란 생각이 들었다. 돌려보려고 하니 안됐다. 낑낑 거리다 누워계시던 여편님을 호출했다. 브랜드를 확인하시더니 알레시 여는 법을 유투브에서 검색했다. 손잡이를 들어올리면 회리릭 분해가 되는 구조였다. 알아본 결과 이탈리아에서 손에 꼽히는 주방 브랜드 중 하나였고, 각 모카포트들은 디자이너가 치밀하게 설계한 것이라고 했다.


마침 또 로마 따짜도르에서 에스프레소용 커피를 산 보람이 있었다. 또 유투브 영상을 시청하면서 까먹었던 모카포트 사용법을 되새김질했다. 사후 조사 결과 3컵짜리라 물과 커피를 넉넉히 넣었다. 곧 취취하는 소리가 나더니 커피를 분사하기 시작했다. 라스페치아에 머무는 내내 바깥 커피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만큼 훌륭한 커피가 나왔다. 머신으로 나오는 에스프레소보단 좀 연했다. 하여 아주 진한 아메리카노의 느낌으로 마실 수 있었다. 설탕을 넉넉히 넣어주면 풍미가 더욱 진해졌다. 여편님도 매일 이 커피만 찾으셨다. 문제는 그 4일간 이거 뽕 뽑겠다고 진한 커피를 하루 두 잔씩 마셔서 어지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은 머리에 기별도 안 간다는 것이다. 한동안 카페에 가면 꼭 에스프레소 더블을 마셔야 했다. (추후 몽펠리에 카페에서 오늘의 커피 맥시멈을 마시고 온 몸의 혈액을 커피로 한 번 바꿨다. 그러고 나니 다시금 연한 커피를 찾게 됐다.)

커피를 끓이고 난 뒤 모카포트도 청결히 유지되었다. 물 넣는 곳에 커피가 새지도 않고, 커피 놓는 곳은 끓이고 나면 커피가 딱 엉겨붙어 떼내기 편했다. 한국으로 하나 날려보내고 싶은 품종이다.


먹고 마시고 취해라

쾌적한 주방이 있으니, 그간 시장과 마트에서 눈여겨 본 재료들을 시험가동했다. 첫날엔 이탈리아 부부 두쌍, 다음날부턴 스페인 단체 여대생들이 머물러 우리와 주방을 다퉜다. 그래도 먹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일단 집 근처의 마트가 크지도 않고, 재료도 싱싱했다. 이동으로 지친 여편님의 제안으로 첫날은 소고기를 구워먹었다. 거기에 피렌체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육수를 끓여 파스타 생면을 넣은 된장 국수를 후루룩 마셨다. 반주로는 유기농 Chianti 와인이 선정됐다.

다음날엔 친퀘테레를 다녀와 셀프 배달을 했다. 중심가에 안내판이 있어 따라가보니 La Pia Centenaria라고 말 그대로 백년된 피자집이었다. 대표 메뉴는 피자보다는 더 얇게 무게로 달아 파는 얇은 빈대떡류였다. 우린 4치즈피자와 햄피자, 마르게리타를 주문했다. 거기에 따로 사온 루꼴라를 잔뜩 얹어 먹었다. 라면 사리를 추가한 떡볶이에 비견될 효과다. 사실 마르게리타를 추가해 놓고, 앤쵸비를 시킬걸 후회했다. 그런데 마르게리타가 상상 이상, 토핑 많은 다른 두 피자보다 훌륭했다. 반주로는 수제 맥주 한 병과 피자의 고향과 가까운 시칠리아 와인을 골랐다.


그리고 셋째날, 쉬면서 일찍 시장을 갔다. 전날 친퀘테레에서 귀가하면서 보니 해산물 시장은 오후에 닫았다. 아쉬운 마음에 근처 식당에서 해산물 파스타를 먹었는데 아주 기름지고 맛있었다. 점심쯤 가니 해산물 시장은 곧 파할 기세였다. 일단 만만한 새우를 1kg 샀다. 옆 일반 시장의 야채들이 아주 훌륭했다. 몇몇 이뻐 보이는 것들을 골랐다. 옆 밥차에서 빵과 가지토마토찜을 사서 집에서 먹었다. 이렇게 가볍게 파는 가지토마토찜이 사기적으로 맛있었다. 확실히 기본으로 쓰는 토마토 소스들이 워낙 훌륭해서 어지간한 토마토 소스 요린 다 기본은 한다. TIGER라는 북유럽 발 다이소 매장도 들렀다. 신기한 잡동사니들이 많았다. 호기지름신을 억누르고 젓가락 세트만 사고 나왔다. 젓가락까지 생기니 더이상 두려울 먹거리가 없었다.

저녁엔 새우 잔치가 벌어졌다. 여편님이 새우를 한 통 넣고 파스타를 했는데도 한참 남았다. 남은 새우를 올리브와 고추로 칼칼하게 볶아냈다. 이날부터 2와인 체제로 바꿔서 CHARDONNAY를 요리에 넣고 남은 건 입에 넣고, ALBA 와인으로 끝을 맺었다. 보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몸에 새우 독이 남아 있을 정도로 새우 요리를 기피하게 되었다.


마지막날, 낮에 큰 봉변을 당하고 허탈감에 점심 피자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울분을 씻기 위해 두툼한 소세지를 사왔다. 여편님이 어제부터 사랑하던 양배추와 된장을 살짝 겻들여 볶았더니 순대 전골 그 이상의 맛을 구현했다. 거기에 여편님은 빵 발라먹던 바질 페스토를 한통 더 사서 페스토 파스타를 했다. 방울 토마토로 방점만 찍어도 페스토의 양으로 식어도 찰지고 맛있었다. 전반전을 스푸만테로 치르고, 언젠가 피에몬테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ASTI와인을 비웠다.



친퀘테레(Cinque terre) 탐방_1130&1201

첫날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역내의 안내센터에 들어갔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다섯마을을 잇는 기차 노선의 시간표도 주셨다. 열차 패스도 안내센터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열차 패스 가격이 그새 오르기도 했고, 우린 넉넉하게 둘러볼 요량이라 하루에 2,3 마을만 다녀오기로 했다.


2) 마나롤라(Manalola)

기차는 많다. 아침 든든히 먹고 기차역으로 가서 바로 출발하는 기차의 표를 샀다. 사고 보니 이 기차는 첫번째 마을인 리오마조레(Riomaggiore)엔 안 선단다. 별 수 없이 두 번째 마을에서 내렸다. 여기 사랑의 길(La via del amor)이 유명하다더니 마나롤라와 리오마조레를 해안으로 잇는 산책로였다. 우리도 걸어볼 요량으로 찾아갔다. 이탈리아하면 많이 보던 절벽사진이 나왔다.

사진 좀 제대로 찍어보려고 하니 금이 갔다. 전날 가방이 침대에서 고꾸라졌는데 그 영향으로 UV보호막이 깨진 것이었다. 돌려서 빼려고 하니 죽어도 안빠졌다. 몽골에서부터 낀 먼지가 굳었나보다. 번갈아 낑낑거려도 소용이 없고, 집에 와서 옷으로 덮어 뒀다가 돌려도 안됐다. 이번에도 유투브가 쉽게 해결해줬다. 안빠질땐 유투브가 최고다. 전선을 둘러서 돌리니 스르륵 빠져나왔다. 다행히 렌즈도 무사했다. 아직까지 UV보호막을 찾는 중이다.


당장 카메라는 포기하고 본격 탐방에 나섰다. 사랑의 길이 막혀 마을쪽으로 돌아왔다. 언덕길을 따라 마을이 좀 있고, 그 위엔 포도밭이다. 포도줍는 사람들 이란 주제로 형상도 있었다. 밤엔 불도 켜지는 모양이다. 맵양에게 물어보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5km, 1시간 남짓이면 세번째 마을인 코르닐리아(Corniglia)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여편님이 가보자고 했다.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간만에 산행이라 경치도 좋고, 마음도 즐거웠다. 그간 먹은 체중 때문인지 곧 지쳐왔다. 분명 1시간은 더 걸은 것 같은데 아직도 맵양은 1시간만 더 가면 된단다. 더 다급한 문제는 배고픔이었다. 비상 식량이라곤 에스프레소 들어있는 초콜렛 뿐이었다. 다행히 언덕베기에 마을이 하나 있었다. 힘을 내어 마을에 도달했다. 안나푸르나 마낭 마을에 도달했을 때 환희가 밀려왔다.

식당을 찾아가니 닫았다. 마을 중심부 호텔 식당이 열었다고 친절히 안내해준다. 호텔 식당에 가니 또 닫았다. 더이상 걸을 수 없었다. 운명적으로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었다. 다음 마을로 가는 버슨느 한참 남았다. 대신 라스페치아로 가는 버스는 금방 왔다. 편도 기차 요금이 2.5유로 정돈데 버스비는 5유로였다. 택시 찬스를 썼다 치고 라스페치아로 돌아왔다. 내려오는 길에 라스페치아에 정박한 군함들이 부두와 좋은 궁합을 비쳤다.


1) 리오마조레(Riomaggiore)

하루 휴식 후 전열을 가다듬었다. 주말부터 숙박비가 올라서 이탈리아를 떠나기로 했다. 마지막 하루 안에 남은 네 마을을 다 둘러보기로 했다. 첫번째 방문에서 하나만 보고 돌아온 업보라 생각했다. 이번엔 열차표를 제대로 확인하고 10시 쯤 순조롭게 차에 올랐다. 각 마을별 관람 시간을 1시간 정도로 정해 열차 시간과 맞추기로 했다.

리오마조레에 내려 다시 사랑길에 도전했다. 이쪽 방향도 낙석 위험으로 막혀있었다. 마나롤라에서 봤던 풍경과 여러모로 흡사했다.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돌아갔다.


3) 코르닐리아(Corniglia)

역에서 내리니 바다가 쫙 펼쳐졌다. 인상적인 풍경이다. 기차역을 빠져나가면 계단으로 언덕을 올라갈 수 있었다. 언덕에 자리한 집이 전망이 제일 좋아보였다. 물론 우린 들어갈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엔 닭한 마리와 새 한 마리가 유유히 산책하고 있었다. 앞의 마을들과 비슷하지만 한결 조용한 맛이 있었다.


4) 베르나차(Vernazza)

붐빈다. 식당도 많고, 관광객도 많았다. 처음으로 운영 중인 식당도 볼 수 있었다. 배고픔에 못이긴 여편님은 돌아오는 길에 두툼한 샌드위치도 하나 사드셨다. 난 라스페치아 돌아가서 피자를 먹겠다고 참았다. 아담한 항구와 함께 마을이 바로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또 한쪽엔 동굴이 있고, 동굴을 통과하면 작은 해변으로 연결됐다. 신기한 자연구조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5) 몬테로소 (Monterosso)

드디어 마지막 마을이다. 이제껏 본 마을과는 규모가 달랐다. 넓은 해변과 함께 해안 산책로가 있어 쭉 거닐었다.



망할 기차 검표

우리의 멘토 제이슨은 1)갈 때는 티켓 검사를 잘 안하니 끝까지 가는 거 하나 끊어 놓고, 내리면서 구경하고 다시 탈 것. 2)올 때는 티켓 검사 가능성이 높으니 그냥 한 번에 돌아올 것 을 주문했다. 우린 그의 지침에 충실했다. 한데 하나 궁금한 것은 스템프였다. 피렌체에서 피사행 기차를 끊을 때 기계가 꼭 스템프를 찍으라고 했다. 직원한테 물으니 저기 있다고 했는데 없었다. 곧 열차 도착 시간이라 부랴부랴 열차에 올랐다. 검표원은 표를 보고 그냥 스템플러 같은 걸로 똑딱 찍어줬다. 이후 피사-라스페치아 노선에선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친퀘테레 첫날, 라스페치아에서 마나롤라를 갈 때도 검표원은 보이지 않았다.


친퀘테레 탐험 두번째 날 3번 마을과 4번 마을로 이동하는데 저 멀리 검표원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침에 라스페치아에서 5번째 마을 가는 걸 끊어놓고 계속 다니는 거라 찝찝해서 멀리 도망가서 곧 내렸다. 중간에 여편님이 스탬프 기계로 추정되는 걸 봤다. 찍자는 걸 그냥 말자고 했다. 몬테로소에서 라스페치아에 갈 표를 샀다. 곧 열차 시간이 임박햇는데 기계가 현금은 안 먹고, 내가 화장실 간 사이 여편님이 부랴부랴 카드로 결제했다. 달려서 플랫폼에 가니 곧 기차가 왔다.

라스페치아에 다 와가는데 검표원이 왔다. 당당히 티켓을 내밀었다. 스템프 안찍었냔다. 그거 안찍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우리 기차표 사고 바로 타서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벌금이 100유로란다. 돈이 없다. 카드가 된단다. 우린 몰랐다. 봐달라. 안된단다. 버텼다. 경찰을 부르겠단다. 우리 내려야 된다. 걱정마라 내가 기차 멈춰 준단다. 별 수 없이 지갑을 열고, 물론 현금이 뻔히 보였지만 카드를 내밀었다. 그때 앞 좌석 남자분이 좌석 사이로 내지말고 버티라는 손짓을 했다. , 이미 늦었다. 그의 손에 내 카드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린 이탈리아를 욕했다. 낮에만 해도 나이들어 차를 빌어 이탈리아를 다시 찾겠다던 여편님도 합세했다. 망할 나라, 곧 무슨 투표 한다는데 EU에서도 나가버려라, 무슨 숙박세니 뭐니 다 받아가면서 여행자 편의는 하나도 안 생각하는 나라, 내가 이래서 원래 여길 싫어했다. 그래 니 말을 이제 이해하겠다. 카페에서 점원이 동전 던질 때부터 알아봤다. 점심? 밥맛없다. 집에 가자. 한탄에 한탄을 했다. 거기서 더 버틸걸, 없다고 뻗댈 걸, 나중에 알았지만 유럽 경찰 한 번 만나려면 3일은 걸린단다. 자면서 억울함이 치밀어 올라 실제 이불킥을 두어번은 더 했다. 이탈리아에서 쓴 돈이 다 아까웠다. 여편님이 트레비 분수에 던진 1센트도 다시 주워오고 싶었다.

다음날 제노바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보니, 눈에 스템프 찍는 기계가 수십개는 들어왔다. 이전까지 아무도 스템프 안찍던데 이날은 다들 스템프를 꼬박꼬박 찍고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했다. 뼈 저린 교훈을 남기고 이탈리아를 떠났다.



_보통날의 파스타_박찬일

파스타 매니아인 여편님이 보신 책이다. 저자가 원래 문학을 공부하다 이탈리아에 와서 요리 공부를 한 거라 글도 잘 쓴단다. 파스타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_GRANNY’S RECIPES_FABRIZIO BARONI

피렌체 서점에서 구입했다. 145가지의 투스카니식 요리 방법들. 영어로 되있고, 책도 가볍고 심플하다. 언젠가 이태리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찾아서 해보겠다고 마음 먹고 구입! (떠나온지 열흘이 지나도 안먹고 싶은 것이 문제)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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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Firenze)_1124_1129

메디치가의 소중품을 전시한 우피치 미술관이 있고, 지인인 제이슨도 있어서 찾아갔다. THE MALL이라는 명품 아울렛이 있는 걸로도 유명하다. 현대 이탈리아어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문화 전반에 또 많은 영향을 미친 곳이라고 한다.


숙박_엘리나 썬룸_더블룸_5

공기방울을 통해 예약했다. 피렌체도 로마처럼 숙박시 세금이 부과되지만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에어비엔비는 세금을 따로 낼 필요가 없었다. 이 세금 여부만해도 숙박비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대부분 호텔이나 호스텔은 훨씬 비싸기도 했다. 로마에서 출발한 버스는 피렌체 중앙역 뒤편에 섰다. 일단 역으로 가서 요기를 하고, 호스트가 안내해준 14번 버스를 찾아 탔다. 버스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버스 요금도 어떻게 내는지 몰랐는데 물을 정신도 없었다. 겨우 숨을 참으며 삼십분을 달리고 내렸다. 호스트에게 물으니 시내버스 티켓은 길 곳곳에 보이는 점방 TABACCHI에서 사라고 했다.

엘리나가 살면서 남은 두 방을 공기방울 돌리는 것인데 게스트용 화장실도 따로 있고, 부엌은 오전에만 사용 가능했지만 깔끔했다. 저녁에 돌아올 때면 온 집에서 파스타 소스 냄새가 진동했다. 작은 방이지만 테라스도 있어서 밝고, 근처엔 크고 작은 슈퍼마켓이 있어서 살기 편했다. 시내까지는 버스도 있었지만 강둑 산책로를 따라 걸어갈 수도 있었다. 강둑엔 카페가 있어서 광합성을 하며 초록 가득한 피렌체를 맘껏 향유했다.

어차피 이탈리아에선 식당가면 파스타, 피자, 샌드위치라 아침은 이탈리아 식으로 간단히 먹었다. 한 번은 집 근처 대형 슈퍼마켓에 가서 즉석요리를 사와서 와인과 먹었는데 바깥보다 비싸고 맛없었다.


제이슨과의 재회

제이슨은 약 4년 전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다닐 때 한 학기만 함께 지냈고, 나는 직장으로 그는 이후 여기 피렌체에 자리한 한 대학의 경제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한창 바쁜 박사 유학생이라 가볍게 연락만 해봤는데 바로 만나기로 했다. 피렌체 도착 첫날 숙소에 짐을 풀고 접선 장소인 두오모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앞에서 감격의 재회를 한 후 그는 우리를 작은 파스타 집으로 안내했다. 저녁을 먹으며 그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가히 피렌체의 왕자라 할 정도로 이탈리아 전역과 한국 미국을 누비고 다녔다. 먹고 나서 이차를 가는 동안 피렌체 시내 주요 지점을 다 안내해줬다. 핫한 펍에서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헤어졌다. 열한시가 다 된 시간까지도 시내버스가 있었다.

이후 주말엔 제이슨이 나폴리를 가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고, 떠나기 전날 저녁에 다시 만났다. 다시 두오모 성당 앞에서 만났다. (항상 만남은 냉정과 열정사이 돋게..) 이번엔 약속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 삼십분을 기다리다 카페에 들어가서 연락을 취했다. 극적으로 상봉해 장을 보고 제이슨의 집으로 향했다. 제이슨의 집은 중심가에 위치한 몇 백년짜리 집이라 집 안 복도에도 박물관처럼 동상과 그림이 있었다. 스스로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작은 창틈으로 두오모 성당이 보였다.


이날은 마침 제이슨의 생일이었다. 우리도 떠나기 전날이라 밖보다 집에서 먹을 것을 제안했더니 김치와 고추장, ‘쿠쿠’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린 미리 제이슨이 알려준 아시아슈퍼에서 된장을 샀다. (첫날 여기서 라면을 사서 숙소에서 브런치로 진까르보나라면을 끓여 먹었다.) 제이슨이 쿠쿠로 밥을 하고, 여편님이 쌈장과 쌈채소, 된장국을 준비하고 난 돼지 목살을 구웠다.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후라이팬이라 기름도 안생기고 골고루 익었다. 좀 늦게 만나는 바람에 아쉬웠지만 훈훈했던 밤이었다. 생일을 기념해 준비한 작은 케잌보다 쿠쿠가 만든 밥이 더 기름지고 쫄깃했다. 누가 나 보고 한국에서 캐리어 하나만 갖고 이민 가라고하면 쿠쿠만 들고 갈 것이다. (남편님의 쿠쿠사랑..)

‘쿠쿠’는 하루 꿈으로 끝났고 우린 이날 산 된장을 고스란히 들고 다니기로 했다. 이후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피렌체 식당

Club del Gusto

첫날 제이슨이 안내해준 파스타 집인데 곰탕을 판다고 했다. 곰탕 국물에 파스타를 말아주는데 여름까지만해도 쌀을 넣어서 국밥을 만들어주기도 했단다. 시켜보니 곰국시 같은 맛이 났다. 날이 추워져서 우리에겐 딱이었다. 여기에 곱창볶음과 다른 고기 파스타 하나, 와인 하나를 더하니 얼었던 몸과 로마에서 잃어버린 정신이 다 녹아내렸다. 소박하고 정겨운 파스타 집이다.

여편님과 둘이 여길 다시 찾았다. 여편님은 올리브 파스타를 시켰고, 난 베이컨 파스타를 시켰다. 여편님의 올리브 파스타는 바삭 고소 기름진 것이 훌륭했다. 내 베이컨은 그냥 베이컨이 아니라 삼겹살의 기름 부분을 두껍게 구운 수준이었다. 따로 놓고 보면 훌륭한 요리지만 이날 저녁엔 제이슨과 삼겹살을 먹기로 되있었다. 쿠쿠와 삼겹살을 위해 전날부터 온 기를 모으던 시점에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꾸역꾸역 배를 채우는데 여편님은 와인까지 시켜가며 으으음~~~~을 연발했다. (그래서 화가 난 남편님) 다행히 쿠쿠와 목살의 조합은 삼겹살이 무색할 맛이었다.


La Prosciutteria Firenze

Club del Gusto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으로 제이슨이 간단히 먹기 좋다고 추천해줬다. 원래 유명한지 영어 메뉴도 있고, 여기저기 지점도 있는 모양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1인당 10유로짜리 셋트와 와인 한잔씩을 시켰다. 오 꽤나 훌륭했다. 다양한 치즈와 프로슈토, 좋은 와인을 맛 봤다. 먹다가 이럴 거면 제대로된 식사를 주문할 걸 그랬다고 했다.


Gusta Pizza

이건 급 여편님 친구분이 추천해준 곳이다. 화덕피자 대회에서 우승한 나폴리식 피자집이란다. 저녁 장사 시작 전에 가보니 양쪽에 줄이 있었다. 앞쪽은 가짜줄이고 옆문으로 들어가야했다. 세상에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오는 맛집은 처음봤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미국 사람이 많이 보이는데, 그들 입장에선 자기들 문화의 뿌리를 찾는 여행이라 인기가 많은가보다. 팍스아메리카냐도 팍스로마냐에서 따왔으니 말이다. 아빠존스나 피자모자처럼 정제된 피자만 맛보다가 이탈리아의 솔직하고 직접전인 피자를 맛보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난 엔쵸비 피자를 시켜 먹었는데 확실히 여느집보다 젓갈 맛이 강했다. 딱 예전 할머니네 집에나 가야 맛볼 수 있던 멜젓의 맛이다.


Gelateria La Carraia

우리가 피자 먹으러 갔다고 하니 친절한 제이슨이 이번엔 젤라또 집을 추천해줬다. 피렌체에서 2번째로 맛있고, 5 중에선 가장 싼 곳이라고 했다. 추천 메뉴인 피스타치오와 다른 맛 하나씩을 먹었다. 확실히 일전의 먹었던 젤라또들과 원재료의 함량이 달랐다. 진짜 피스타치오를 갈아 얼려 먹는 것 같았다.



피렌체 쇼핑 San Donato

피렌체하면 쇼핑이니 우리도 쇼핑을 가기로 했다. 여러모로 필요한 것이 많아 사전 조사를 했다. 접근이 가능한 쇼핑몰 중 가장 크고 실해 보이는 곳이 San Donato였다. 집에선 버스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서 또 버스를 갈아타면 됐다. 도착해보니 합정 메세나 폴리스와 흡사한 기운을 느꼈다. 둥그런 건물 안에 가운데가 비어있고, 그 가운데에선 음식과 잡화를 파는 장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구조를 보니 엄청난 크기의 coop과 전자제품 매장이 중심이었다. 우린 여긴 차마 들어갈 엄두를 못내고 결전에 앞서 배를 채우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즉석 샌드위치 집에 갔다. 우리돼지듬직버거 같은 걸 팔았다. 내 얼굴만한 빵에 편육 더미를 넉넉하게 넣어주었다. 든든했다.


DECATHLON

내가 겨냥한 데카틀론은 쇼핑몰 본 건물이 아니라 바깥쪽에 있었다. 먼저 여기를 둘러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여러 스포츠 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사후 조사 결과 아웃도어계의 이케아라고 했다. 이 쇼핑몰에 주력 모델이 QUECHUA라는 염가 아웃도어 브랜드였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속속들이 진여해 두었다. 그리스에서부터 눈여겨보던 내피가 달린 바람막이가 60유로였다. 각자 원하는 사이즈를 점찍어두었다. 색상은 남잔 빨강과 검정, 여잔 파랑과 검정 두 개뿐이었다. 혼잡한 여행 중에 서로 식별이 유리한 색을 골라야 했다. 애국심이라곤 1도 없는 우리가 태극 부부가 되버렸다. 추가로 여편님은 가벼운 추리닝, 난 아웃도어용 남방을 하니씩 더 샀다. 양말도 한짝씩 보충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배낭이었다. 일단 여편님은 10유로짜리 작은 배낭을 샀다. 그간 들고 다니던 네팔산 대마 가방은 하야하기로 했다. 워낙 핫딜이라 이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남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마주하는 중년 배낭의 반이 여편님과 같거나 비슷한 모델이었다. 이어서 근처의 또 다른 스포츠 매장 UNIVERSO SPORT로 갔다. 여긴 데카틀론 같은 할인 상설매장은 아니었다. 아웃도어 브랜드는 많았지만 세일은 거의 없었다. 그 중에 그 안 구석에 큰 배낭 하나만 있었다. 가격도 115유로, 파랗고 단단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FERRINO. 마침 블랙프라이데이라 추가 할인까지 받아 92유로에 득템할 수 있었다.


득템의 댓가로 그간 정들었던 물품들을 버렸다. 특히 예전 여행할 때 포르투갈 아울렛에서 50유로에 득템, 여행 출발할 때부터 배낭 좀 바꾸자는 여편님의 한숨을 버텨내던 배낭을 버리게 됐다. 배낭 교체 후 내가 지는 짐이 준 게 아닌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여행자에게 좋은 배낭은 좋은 침대와도 같다. 그리고 여편님의 네팔 가방, 네팔산 내피도 버렸다. 안나푸르나를 돌던 도중 마낭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내 껀 빨아도 냄새가 안빠질 정도로 닳고 닳았지만 여편님은 보라돌이 보라돌이 하면서 입던 거라 못내 아쉬워했다. 못 버리다 짐싸는 당일에야 내가 강제로 뺏어 던져버렸다. 새로 산 물건들은 모두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것 같지만 다 동남아에서 왔다. 나랑 여편님 자켓은 같은 모델인데도 생산 국가가 다르다. 이런 브랜드들 옷을 생산하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화재 사고는 일년이 넘도록 보상도 제대로 못받고 있단다. 핫딜의 착찹함이다. 대신 오래오래 쓰기라도 해야 겠다.



피렌체 언덕과 시내

묵은 과제인 쇼핑을 해결했다. 다음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내를 둘러봤다.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걸어갔다. 주말이라 강변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덕을 올라 가는 길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날씨가 맑아 피렌체 전경이 확 들어왔다. 다리와 강, 중간 중간 솟은 성당들이 좋은 조합이었다. 계단엔 한국어로 된 이탈리아 가이드북도 있었다. 여편님이 주워 피렌체에서 보고 떠날 때 버렸다. (한국의 가이드북을 오랜만에 봤는데 정보는 둘째치고, 요리나 도시에 대한 감상과 평가가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리조또는 나이든 사람이나 먹을 비추천 음식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시내로 내려 가는 길은 정원 길이라 재밌었다. 시내엔 주말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강변에 위치한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었다. 계산을 나갈 때 하려니 직원이 화를 내며 동전을 거의 집어 던졌단다. 이탈리아에선 뭘 집어 던지는 걸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심지어 파스타도 벽에 던져 본다. 여편님은 던지는 걸 가장 싫어한다. 서점엔 요리책이 눈에 띄었다. 여편님은 영어로 된 이탈리아 요리책을 하나 건졌다. 악기상, 시장 구경으로 눈요기를 알차게 했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일요일에 우피치를 가기로 했다. 브런치로 라면을 먹고 여유있게 나섰는데 버스가 없다. 시내에 아식스 마라톤대회가 있어 도로가 다 통제됐다. 우르르 몰려오는 러너들과 함께 도심으로 강제로 밀려왔다. 체력 게이지에 심각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이날도 미술관 내내 체력 문제에 허덕였다. 소문과 달리 우피치 미술관도 줄은 거의 없었다. 편하게 들어가 관람이 가능했다. 워낙 돈 많은 메디치 가문이라 복도에도 그림 걸어둘 자리가 부족했다. 가문 사람들의 초상화가 빼곡했다.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는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명랑만화나 로맨스 주인공의 이미지 형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피렌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여러 초상화가 많았다. 이후 근대 작가로 와서 소피치(Ardengo Soffici)와 카라바죠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피사로

제이슨과의 만찬까지 즐기고 피렌체를 떠났다. 새로 배낭을 챙기려니 짐 싸는데 한시간이 더 걸렸다. 예상치 않게 라스페치아를 가게되면서 피사도 들릴 수 있게 됐다. 기차역으로 가서 후다닥 기차표를 끊고 달려가 기차를 탔다. 한 시간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따라 나렸다.

내려서 또 허기를 채우고 탑을 보러 갔다. 피사탑은 정말 기울어져 있었다. 배낭을 지고 기울어진 탑을 보려니 몸이 기울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탑샷이고 뭐고 후다닥 다시 기차를 타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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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과 이동_20161121_20161203

로마는 3박을 하면서 흔하게 로마 시내 1, 바티칸 1일하는 관광을 했다. 부랴부랴 피렌체로 가선 다섯 밤을 넉넉하게 지냈다. 친퀘테레로 유명한 라스페치아에서 4박을 하고 이탈리아를 벗어났다. 여편님이 일전부터 꿈꾸던 나라라 피에몬테, 남부 해안 등도 고려했지만 연말을 맞아 차차 올라오는 숙박비의 압박 등으로 생각보다 짧은 시간을 머물렀다.


FLIX BUS

이탈리아에서 이동할 때는 기차가 가장 편리하다. 유레일 패스가 있었던 때는 나도 기차만 탔었다. 그러다 막상 유럽에서 지내는 친구들을 보니 의외로 버스를 많이 탔다. 그래서 시베리아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가 추천한 앱을 켜봤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버스는 FLIX버스였다. 그 친구가 깔아준 앱도 플릭스 버스였다. 실시간 가격 변동이 있었지만 매우 저렴했다. 로마에서 피렌체까지 12유로였다. 버스 타는 지점과 내려주는 지점도 정확하게 안내되어 있다. 나중에 사용하면서 모바일보다 일반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가 가격이 싼 경우도 있었다. 가격 변동 체계는 저가항공과 비슷한 것 같다.

피렌체에서 라스페치아 가는 건 기차 뿐이라 피사를 들러서 갔다. 라스페치아에서 제노바로 이동 후 다시 FLIX 버스를 타고 프랑스 남부로 갔다.


로마(ROMA)_1121_1124

크레타를 떠나 로마로 갔다. 여러 변수를 고려했으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니 일단 로마로 갔다. 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5시였지만 한참 전에 해가져서 콜로세움의 야경을 잠깐 볼 수 있었다. 예전에 홀로 배낭여행으로 왔던 곳이라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숙박_FOUR SEASONS HOSTEL ROMA_도미토리_4

로마엔 호스텔이 아주 많았다. 겸사겸사 도시 구경 정보도 얻고, 친구도 사귈 겸 호스텔에 묵기로 했다. 1명 당 13.5유로씩의 세금이 추가로 부과되니 짧고 굵게 3박만 하기로 하고, 깔끔해 보이는 곳으로 예약했다. 정신줄 놓고 테르미니 역에 내려서 숙소를 찾아갔다. 분명 위치는 맞는데 숙소 간판이 없었다. 맞은 편에 다운타운 호스텔에 가서 물어보려고 들어가니 포시즌도 여기란다. 크레타 촌 구석만 있다가 이 어마어마한 도시에 오니 쓰나미가 몰려왔다. 호스텔도 생각보다 커서 스텝들은 일사분란 체크인을 해주고 방을 배정해줬다.

방은 비어있었는데 나갔다 오면 사람이 차고 바꼈다. 그나마 계속 있던 건 한 폴란드 친구다. 자기 친구가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생긴 건 물론이고 한복부터 일상룩까지 쇼핑몰 모델 보는 줄 알았다. 한국 사람도 많이 보였지만 워낙 사람 많고 붐볐다. 너나 할 거 없이 거실에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우리도 대충 확인할 거 하고, 예약하고 아침은 대충 챙겨 먹고 호스텔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저녁 8~9시 쯤 들어와 씻을 때면 폴란드 친구와 다른 무리들도 그때쯤 씻고 밖으로 나갔다. 늘 겪지만 대도시에 있는 이런 대형 호스텔에서 머물면 얼른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그래도 스텝들은 바쁜 와중에도 프린트도 해주고 할 건 다 해줬다.


첫날 저녁은 스텝에게 물어봐서 근처 식당에 갔다. 피자 파스타를 파는 체인점이었다. 마르게리타와 크림버섯 파스타를 시켜서 와인과 함께 먹었다. 가성비만큼은 로마 최강의 식당이었다.



로마 1일차_시내 둘러보기

새벽같이 일어나 총알같이 밖으로 나갔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내가 로마에 왔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먼저 베네치아 광장으로 걸어갔다. 영화 촬영 중인지 한 골목길이 막혔고 사람들이 구경을 했다. 광장에 있는 커다란 건물과 동상을 보니 위용이 남달랐다. 일단 배를 채우고 보기로 했다. 광장 반대편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에스프레소와 달달이 빵과 샌드위치를 시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단빵 하나에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고 한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3.5유로였다. 더블이 7유로, 아주 솔직한 가격체계다. 광장이라 워낙 비싼 거긴 했다. 이후 다른 바에선 다 1유로 내외로 가격이 형성됐다. 바에서 서서 먹는 것과 자리 잡고 앉아서 먹는 건 또 가격이 다르긴 했다. 에스프레소의 어원이 익스프레스와 같다고 한다.


베네치아 광장

베네치아 광장과 건물을 보니 이제 좀 옛날 생각이 났다. 건물 계단에 올라가 로마 전경을 보고 내려왔다. 옆으로 가니 무슨 건물로 올라가는 언덕이었다. , 이 길도 기억난다했다. 그 길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기억만하고 지나쳐갔다. 덕분에 길을 빙 둘러 주변을 산책했다. 로마노들이 러닝을 하는 긴 공원도 가로질렀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그늘을 만들기 위해 가로수들을 평평하게 잘랐다고 한다.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 입장권을 셋트로 구매했다. 입구에서 서쪽으로 들어가서 전구역을 다 돌아봤다. 막상 포로로마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끝에서 콜로세움을 대문짝만하게 바라보는 거다. 사진도 잘 찍혔다. 새삼 느꼈지만 로마엔 한국 사람이 정말 많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삼삼오오부터 신혼여행 온 걸로 보이는 커플, 가족, 단체 등 한국>>>>>>중국, 일본으로 관광객이 분포한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안은 밖에서 보는 것만 못했다. 밖이 워낙 로마의 자랑이니 말이다. 그래도 안을 휘 둘러보았다. 이날 하늘이 워낙 맑아 콜로세움의 조각 조각이 더 돋보였다. 관중석을 원형으로 쭉 둘러볼 수 있었는데 아래는 내려갈 수 없었다. 만약 그 시대에 무작위로 태어난다면 이 관광객들 중 99%는 저 아래서 단체 공연이나 사자와 쌈박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래 무대에서 콜로세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게 좀 더 현실적인 각도란 생각을 했다.


트레비 분수

콜로세움까지 보고 나니 벌써 힘에 부쳤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은 아직 멀었다. 물이라도 한 통 사려고 보니 콜로세움 역에서 파는 물은 죄다 3유로가 넘었다. 차라리 분수대를 보기로 했다. 트레비 분수에도 사람이 많았다. 연예인 보는 것처럼 비집고 들어가 여편님이 1센트를 던졌다. 그리고 각자 격려 차원에서 만만한 젤라또를 하나 사먹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훨씬 맛나 보이는 초콜렛집, 젤라또집이 무수히 보였다.


타짜도르(Tazza d’ oro)

오늘의 종착지 판테온으로 향했다. 근처엔 100년짜리 커피집이 바로 옆에 있었다. 여편님은 또 오래된 약국에서 비타민을 샀다. 그리스에서부터 찾아헤멨는데 왠지 고풍스러워 들어가니 딱 봐도 좋아보이는 비타민을 줬다. 효험이 좋다고 한다. 타짜도르에 가니 비로소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진정 로마노가 되는 느낌이었다. 서서 한잔, 옆에 간이 의자에 앉아 한잔을 마셨다. 갈아진 원두도 하나 사서 돌아다니면서 타 먹기로 했다. 그릭커피를 배운 이상 원두가루는 가라앉고 마시면 됐기 때문이다.


판테온 저녁

판테온 골목에 위치한 식당이 닫았다. 사실 우리의 로마 관광은 여편님의 친구 분인 솔님의 추천 루트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식당이 닫으면서 잠시적 공황상태가 왔다. 판테온을 둘러보면서 이 사태에 대해 고민했다. 혹시나 해서 다 보고 가봤지만 역시 닫았다. 겨우 마음을 추스려 근처의 다른 식당에 들어갔다. 와인 먼저 시키고 삼십분만 있다가 시키겠다고 했다. 직원이 안시켜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메뉴는 추천받은 대로 호박꽃 튀김을 시켰다. 그리고 각자 아라비아따와 봉골레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호박꽃튀김은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확실히 이탈리아의 파스타들은 면이 좀 더 거친대신 양념을 잘 빨아먹었다는 느낌을 줬다. 간단히 시켰는데 40유로가 훌쩍 넘었다. 팁도 줘야되는 줄 알고 몇 유로 더 줬다. 파스타 냄비 바닥까지 긁어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AS로마 매장이 보여 들어갔다. 로마의 황태자 토티 유니폼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여편님은 AS로마 늑대와 젖빠는 두 아이 문양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날 저녁 그 유래를 찾아 알려줬다.

(*안녕하세요. 처음이네요. 여편님입니다. 처음엔 코뿔소인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늑대와 두 아이여서 이게 뭔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검색해본 AS로마 엠블럼! 로마의 초대왕인 로물루스는 쌍둥이 형제인 레무스와 함께 버려져 팔라티노 언덕 강가에서 암늑대에 발견되어 그녀(?)의 젖을 먹고 크다가 목동이 데려가서 또 키웠다고 합니다. 엄마가 레아실비아고 마르스와 내통해서 낳은 아이들이라고 하는데 역시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우리로 치면 고주몽 혹은 박혁거세 같은 거지요.)


이날 총 35km를 걸었다. 역대급 기록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던때도 이 정도 걸은 날은 없었다. 이는 다음날에도 피로 누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로마 2일차_바티칸시국(Vatican City)

바티칸의 위세는 어마어마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일요일이나 수요일에 교황을 보러 갔을 것인데, 나중에야 알았다. 수요일에 교황을 만나려면 미리 팩스를 보내야 한단다. 바티칸 박물관도 예약을 안하고 가면 3~4시간 기다려야 한단다. 문제는 티켓값이 16유로인데 예매 수수료가 4유로나 붙는다는 거다. 난 불불 거렸지만 여편님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로마에 도착 후 첫날 저녁 겨우겨우 예매를 해두었다.


바티칸 박물관

날이 밝았다. 전날의 피로로 여편님은 못 일어날 줄 알았다. 새벽같이 벌떡 일어났다. 로마의 힘이란 대단하다. 체력 소진을 방지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로마의 지하철은 붐비기로 유명하다지만 서울 통근 지하철로 단련된 우리에겐 어느 대도시든 다 껌이다. 역에서 내려 바로 카페로 들어갔다. 알파바라는 보통 로마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라 전날 광장에서 마신 에스프레소보다 훨씬 맛깔났다. 든든히 카페인과 당류를 장전하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오전 10, 생각보다 박물관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예매를 하지 않았어도 무혈 입성했을 정도다. 얼마 전 지진의 여파로 여행객이 상당 수 줄어든 덕분인 거라 추측했다. 달팽이같은 계단을 돌고 돌아 올라갔다. 여편님은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했다. 먼저 이집트 전시를 봤다. 일전에 러시아나 터키에서 봤던 이집트 유물보다 떼깔이 훨씬 고왔다. 제일 상태가 좋은 것들은 교황청이 먼저 챙긴 것 같다.

이어진 전시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이탈리아 지도방이었다. 이탈리아 각 주를 그린 그림 지도들이 한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워낙 오랜기간 도시국가 형태로 존재했던 나라라 각 지역별 자부심과 색체가 강하다는 걸 또 한번 느꼈다. 한국 단체 팀도 많이 보였다. 개별적으로 여행와도 바티칸만 투어를 해서 보는 경우가 많단다. 예매 수수료나 오디오 가이드 비용 등을 생각하면 투어가 더 효율적인 선택일 것 같았다. 원체 관람을 거북이 기어가듯하는 우리에겐 없는 선택지다.


식당에서 열량을 보충하고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러갔다. 박물관에 사람이 없다했는데 이 방에 다 갇혀있었다. 여기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다들 한 소리씩 들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도 참다참다 막판에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고, 감독관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우린 대략 한 시간을 방에 머물렀다. 그 장엄함과 스케일에 압도되기도 했다. 물론 오랜 시간 봐도 물리지 않을 작품이긴 했다. 다만 오디오 해설이 너무 많았다. (여편님 주장 체류 시간 40)


여편님은 원래 어딜가든 배경 지식을 중요시한다. 난 그냥 무턱대로 보는 스타일이다. 하여 보통은 여편님이 예습 복습으로 얻은 지식을 잘 주워듣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여편님이 오디오 가이드를 달고 있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궁금한게 생겨서 물으면 여편님은 대답대신 이어폰 한쪽을 귀에 꽂아줬다. 난 답답해서 그냥 좀 듣다 돌려주곤 했다. 해설로 관람이 풍성해지긴 하지만 한 방에 한 시간은 너무 한거 아니냐며 항의했다. 결국 다음부터는 오디오 해설 안 듣고, 정 궁금한 것들은 예습을 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후 우피치는 짧은 책을 하나 다 보고 가셨다. 여편님이 대강 배경 설명을 해주니 내 관람도 더욱 풍성해졌다.


이후 방을 나와서 본 다른 전시들도 재밌었다. 이곳의 전시들은 신 보다는 교황과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각 교황들의 그림도 있고, 책장으로 쓰던 가구들도 재밌게 봤다. 그 뒤에는 고흐, 보테로, 디에고 리베라 등 유명 작가들이 그린 그림들도 있었다. 고흐의 피에타, 원체 좋아하지만 보기 힘든 보테로의 그림이 좋았다. 램브란트의 특별전도 마침 이날 시작이라고 했다. 돌던 중 찾지 못해서 되돌아 가보니 전시 준비가 안되서 출입 금지였다. 박물관만 다 봤는데 벌써 2시였다. 평평한 바닥은 샌들을 신고 왔어야 했는데 등산화를 신고와서 더 힘들었다.


Old Bridge Gelato

다행히 친절한 솔 투어는 박물관에서 나와 베드로 성당으로 가는 길에 젤라또 집을 들르게 했다. 가게 앞엔 한국 모녀가 젤라또를 하나씩 먹으며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다. 전날 먹었던 젤라또 와는 차원이 다르게 맛있었다. 또한 각자 취향대로 맛을 골라 하나씩 먹으니 좋았다. 여편님은 본인 취행대로 딸기, 레몬, 초코를 골랐고 난 기름지게 바닐라, 피스타치오 등을 골랐다. 원래 로마쪽은 과일맛 젤라또가 유명하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크림류가 많이 들어간 젤라또가 유명하다고 한다. 내 젤라또는 곧 녹기 시작해 내 바지 곧곧에 흔적을 남겼다.


성 베드로 성당

예전에 로마 왔을 땐 박물관은 안 보고 베드로 성당만 봤다. 다시 봐도 드넓은 곳이다. 입장을 하려는데 금지 품목에 맥가이버 칼이 있었다. 원래 잘 안들고 다니는데 마피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챙겨 온게 생각났다. 급히 배낭 안쪽으로 숨겼지만 여지없이 걸렸다. (바티칸 박물관 들어갈 땐 안 걸렸다는 게 더 충격이다.) 어설픈 연기를 하며 맡겨놓고 다시 찾으러 오기로했다. 입장료가 필요한 구역은 제쳐두고 성당 안으로 향했다. 원래 나는 종교가 없지만 엄마(는 한 때)와 외가는 다들 성당을 열심히 다닌다. 작년에 교황이 한국에 왔을 때 집에만 있었다가 엄마한테 왜 날 대신해 안 가봤냐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엔 제대로 살펴보기로 했다. 한쪽 방에 들어가려니 한 번 들어가면 30분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편님은 주저했지만 난 냉큼 들어갔다. 간단한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로마에서 번잡한 생활만 하다 침묵의 시간을 가지니 영혼이 차오름을 느꼈다. 미사는 십분만에 끝났고 다 나가란다. 다시 나와서 성당 구석 구석을 둘러봤다. 이번엔 한쪽 구석에서 사제단이 나와서 큰 미사가 시작됐다.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제지당했다. 가서 물으니 이것도 한 시간 있을 거면 들어가라고 했다. 또 망설이는 여편님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웅장하게 퍼지는 오르간 소리를 제대로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미사는 또 삼십분만에 끝났다. 여편님은 다른쪽을 마저 보기로하고, 난 칼을 찾으려고 검색대로 달려갔다. 분수대 앞에서 감격의 재회를 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성당의 야경도 볼만했다. 성당 한쪽 구석에서 경비 차량들이 불을 반짝였다. 광장쪽에도 경찰이 대기하고 있고, 사람들도 몰려있었다. 이건 분명 파파 프란치스코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여편님 모두 교황의 열렬한 팬이기에 기다렸다. 하지만 십분 이십분이 지나도 다들 대기만했다. 곧 하나둘 떠나고 경찰에게 물어보니 이러다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바티칸 주변을 산책하며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스페인 광장

로마의 야경을 걷다보니 영화 ‘그레이트 뷰티’가 자연스레 생각났다. 그 강한 비트와 허무한 욕망이 다 이 빛이다. 한참을 걸어 스페인 광장에 다달랐다. 광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기념 사진을 찍고 주변 식당을 찾아나섰다. 이제 막 저녁 장사를 시작한 조용한 식당에 들어갔다. 어제보다 가격도 쌌고, 직원이 메뉴도 추천해줬다. 마지막으로 로마에서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솔님이 추천한 다른 메뉴인 엔쵸비 피자와 라비올리에다 베이컨 파스타를 하나 더 시켰다. 로제 와인을 겻들여 실컷 먹었다. 그래도 모자라 까르보나라도 추가해서 먹었다.

배불리 먹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맵양을 봤다. 내가 생각한 스페인 광장의 위치가 아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포포로 광장이었다. 그래서 식당도 조용하고 맛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라 스페인 광장도 들렀다. 공사 중이라 운치가 덜했다. 솔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 티라미슈 집에서 티라미슈를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POMPI 티라미수라는데 숙소 냉장고에 보관하려고 보니 같은 박스가 하나 더 있었다.

이날도 25KM가 넘는 대 장정의 날이었다.




다음날 또 아침 일찍 일어나 로마 티부르티나 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거기서 내려 다리를 건너가니 버스 정류장이었다. 어제 사서 고이 모셔온 티라미슈에 진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시는 것으로 로마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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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오코라(PALEOCHORA)_1113_1117

아조기리 가는 길에 잠깐 들리고, 럭키와 장을 보러 두 번 정도 다녀가면서 팔레오코라가 굉장히 좋아보였다. 특히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본 바다가 참 아름다웠다. 무슨 수족관처럼 물 속에 물고기와 자갈이 다 보일정도로 바다가 맑았다. 크레타섬 남서쪽에 뾰족하게 돌출된 곳이다. 중심가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성당도 하나 있고, 기념품 파는 상점들도 있다. 해변은 돌출된 뿔을 기준으로 양쪽에 하나씩 있는데 하나는 자갈해변, 하나는 모래사장이라 취향대로 선택이 가능했다. 바닷가 해안도로에는 식당도 많고, 카페도 있는데 겨울이 다가올 수록 하나둘 닫기 시작했고, 팬션들도 보수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숙박_VIRGINIA STUDIO_더블룸_5

유럽의 치앙마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유럽의 은퇴자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이 작은 마을에도 죄다 팬션이고, ROOM FOR RENT도 많이 붙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좋아보이는 숙소를 하나 찍어놓고 방을 보러 갔다. 인터넷으로 본 것 보다도 방이 훨씬 넓고 깔끔했다. 유럽은 흥정이 안 통할 줄 알았는데 비수기에 안되는 건 없었다. 1박에 30유로라는 걸 28유로로 깎고, 체크 아웃할 때 아줌마가 아들 장난감 드론을 손보고 있길래 총 금액에서 3유로 더 깎았다.

손님만 오면 짖어대는 강아지도 있었고, 우리가 밥만 하면 기웃거리는 고양이들도 주인집 고양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려면 꽃 덤불을 걷어야 할 정도로 꽃과 나무가 우거진 집이었다. 앞에는 럭키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있었고, 나름 테라스에 테이블까지 있어서 오후에 쾌적한 광합성도 실컷했다.


첫날은 슈퍼도 다 닫아서 외식을 하고, 둘째날은 아침부터 슈퍼에 장을 보러 갔다. 두둥, 여편님의 생일이었다. 전날 카페에서 조각 케잌 두 개를 사두었다. 센스없는 빵집 직원은 케잌 방향을 엇갈리게 해서 반듯하게 넣어달랬더니 케잌 위에 장미 조각을 들었다 놨다했다. 럭키와 함께 애용했던 슈퍼에서 그릭요거트 한통과 바나나, 땅콩 한 봉지, 큰 맘 먹고 딸기도 샀다. 괜히 그릭 요거트가 아닌게 그리스 요거트는 진짜 진하고 쫄깃하다. 땅콩도 알파카페에서부터 계속 달고 살 정도로 맛있다. 딸기와 요거트, 바나나, 땅콩으로 그럴듯한 샐러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그릭커피까지 겻들여서 생일 아침상이 완성했다.

저녁은 밥을 먹고 싶다하셨다. 쌀을 사고, 시금치와 간장, 올리브도 샀다. 그리고 새우와 호박, 피망에다 매콤함을 더할 페페론치노도 한 봉지 샀다. 페페론치노는 이후에도 휴대하고 다니면서 각종 요리에 유용하게 쓰고 있다. 오랜만에 흰 쌀밥에 시금치무침, 새우 가득한 간장새우볶음을 먹었더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 다음날 저녁엔 또 시금치를 사다가 크림파스타를 했다. 시금치크림파스타에 시금치를 잘라 넣느냐 통으로 넣느냐를 두고 여편님과 실랑이를 벌였다. 다음엔 잘라서 만들어 보시겠다고 했다. 우리의 집 저녁이 마지막날 정점을 찍었는데 백숙을 한 것이다. 사실 백숙은 여행자가 해먹기에 아주 좋은 요리다. 실해보이는 닭을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가서 기름기를 좀 빼고, 마늘, , 양파껍질, 소금 정도만 넣고 한 시간을 삶았다. 거기다 이런저런 야채와 간장, 고추로 겉절이를 만들었다. 흑맥주도 같이 마셨다. 이런 고전적인 백숙은 한국에서도 먹은지가 오래였다. 남은 국물은 기름기를 걷고 쌀을 넣어 리조또를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치즈까지 뿌리니 더 고급스러운 맛이났다.

고작 열흘 일하고 왔다고 제대로 휴가 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시골 바다

크레타에 10월에만 갔어도 훨씬 볼 것이 많았을 것이다. 가서야 알았지만 팔레오코라를 중심으로 서쪽의 Elafonissi에는 분홍빛 해변이 있고, 동쪽 산자락은 Samaria Gorge 계곡이 있었다. 둘 다 크레타섬에서 손에 꼽는 장관이었다. 하지만 비수기라 팔레오코라에서 Elafonissi로 가는 페리도 끊겼고, Samaria Gorge5월에서 10월까지만 방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도 팔레오코라엔 즐길 것이 많았다. 어느날 점심으로 피자를, 저녁으로 돼지구이와 오징어 튀김을 먹은 식당은 아주 푸짐했다. 해안도로에 있는데도 20~30유로로 와인까지 겻들여 먹을 수 있었다. 여기 학생들이 주로 애용하는 중심가의 에베레스트 식당도 기로스가 아주 풍성했다.

작은 시내를 돌아보다 해안가의 특이한 돌과 반짝이는 바다를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모래 사장쪽 해변에서 찬란한 일몰을 봤다. 둘 다 용기를 내어 겨울 바다에도 들어갔다. 물은 자갈해변이 더 맑아 그쪽을 택했다. 처음 들어갈때는 엄청 차가웠지만 들어가서 몸이 풀리면 도통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입수를 끝내고 자갈 마사지까지 즐겨줬다.


즐거운 팔레오코라 생활을 마무리하고 남은 4박을 Rethymno와 에라클리온에 2박씩 부여하기로 했다. 정류장에 가보니 이상했다. 분명 오전에 하나 있던 시간이 지워졌다. 비수기라 버스도 줄어든 것이다. 가방을 맡기고 오후까지 기다려야했다. 산책하다 봐두었던 파란 카페에서 시간을 떼우다 독일 부부를 만났다. 아니아가 좋단다. 어차피 Rethmno까지 가기엔 늦은 거 같아 아니아 2, 에라클리온 2박으로 작전을 바꿨다.



아니아(HANIA, CHANIA)_1117_1119

영어로는 CHANIA로 불렸지만 여기선 HANIA라 쓰고 ‘아니아’라고 읽었다.


숙박_ROOMS 47_더블 다락방_2

느지막이 아니아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 이름이 ROOMS 47이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47번지 집이었다. 올드 타운 한 골목 가장 안쪽에 있었다. 예약은 안한터라 벨을 눌러보니 주인이 없다. , 별 수 없이 기다리다 큰 맘 먹고 붙어있는 번호로 전화했다. (국제전환데…) 아줌마가 덜컥 받았다. 금방 올거라고 해놓고, 현관을 어떻게 열고, 일층 방이 비었으니 한 번 보고, 아 이틀있을 거면 그 위에 좋은 방 있으니 맘에 들면 그 방 쓰고, 1박에 유로고, 와이파이는 어쩌구, 자기 기다리지 말고 가방 두고 나가도 된단다. 얼른 끊었으면 했으나 아줌마는 3분 안에 체크인 안내를 다 전화로 해줬다.

좋다는 이층 방에 가방을 두고 숨 돌리고 나가서 밥을 먹고 왔다. 아줌마가 미안한데 이 방은 예약이 있어서 옮겨 달란다. 위에 다락방도 보여줬는데 난 그게 끌려서 다락방으로 짐을 옮겼다. 여편님은 집이 좀 춥다했고, 난 쓸만했으나 팔레오코라의 넓고 볕 잘드는 방이 그리워지는 다락방이었다.


항구와 시내

아조기레스, 팔레오코라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아니아만해도 대도시였다. 올드타운에서 좀만 벗어나도 어마어마하게 붐비는 인파와 건물과 글로벌 브랜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내 구경은 내 부서진 러시아 혁명 이어폰과 여편님의 잃어버린 커버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새로 산소니 이어폰은 아이폰을 마법처럼 자동으로 정지시키거나 빨리말하게 했다. 여편님의 ‘북면 정품 커버’는 겨우겨우 가방 뒷편만 덮어주는 정도였다.

일전에 만난 독일 부부의 추천대로 아니아 옛날 항구는 걸을만했다. 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처럼 둘러쳐져있다. 성벽 위를 따라 걸으면 또 맑은 바다도 보였다.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돌들로 성벽을 둘러쳤고, 대포를 설치했던 구멍도 남아있다. 쭉 등대까지 이어져있는데 밤에는 이 등대의 빛과 식당들이 알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첫날 저녁은 아쉬운대로 등대 보이는 가운데 식당에서 먹었다. 역시 그리스답게 이런 식당에서도 음식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내 생선구이와 여편님의 해물파스타 모두 맛깔났다. 시원한 맥주는 덤이었다. 여편님은 팔레오코라 앓이로 이때부터 몸이 쇠약해졌다. 이건 그리스를 떠나서야 나았다. 다음날 브런치로 좀 더 항구 안쪽에 위치한 식당을 찾았다. 백년 됐다고 홍보하는 식당에서 전날 저녁 못 시킨 무사카를 시켰다. 무사카는 감자, 가지, 치즈, 고기 치즈 등을 쌓아서 찐 요리다. 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 구성이다. 샐러드와 무사카 세트 하나만 시켜서 쥬스와 나눠 먹었다. 하나만 시켰는데도 디져트와 라키 서비스도 충실했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 백년 식당 옆에 있던 한 식당에 들어갔다. 오징어/문어 볶음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징어 먹물 볶음밥과 와인소스문어졸임을 시켰다. 함께 겻들인 화이트 와인이 아주 훌륭했다. 약간 유기농을 강조하는 집이라 빵도 토실했다. 이후 그리스를 떠날때까지 이날 과도한 먹물 복용으로 둘 다 고생했다. 몸 구석 구석이 간지러웠다.



에라클리온(HERAKLION)_1103_1104&1119_1121


에라클리온 공항으로 들어와서 다시 에라클리온 공항을 통해 크레타를 빠져나갔다. 아니아 공항을 통해 나가는 것도 비행기 삯은 똑같았다. 다만 크레타를 떠나기 전에 크노소스 궁전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를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크노소스는 난 워낙 돌더미에 물렸고, 여편님도 다락방 생활로 피로가 누적이 되어 포기했다.


숙박_Hotel Rea_더블룸_3

처음 크레타에 도착해서 아조기레스로 가기 전날 묵었던 호텔이다. 호스텔월드로 예약을 해서 묵었다. 깔끔 쾌적한 모텔인데 스탭도 왠지 불친절하고, 방에 커피포트도 없고, 조식은 시킬 순 있는데 방에서 먹어야 된단다. 아니아를 거쳐 에라클리온에 다시 도착했다. 다른 선택지로 알아둔 호스텔이 별로라 다시 또 여길 찾아갔다. 까탈스럽던 스텝도 그냥 원래 그런 거였다.


항구와 시내

에라클리온도 아니아와 비슷하게 항구에 오래된 성벽이 둘러쳐져있다. 이런 불그스레한 돌을 보면 왜 그런 그리스 신화가 나왔는지 알것도 같다. 첫날 체크인을 하고 항구를 둘러봤다. 인상 깊게도 작은 배를 젓는 아이들이 많았다. 방과후 활동으로 이런 걸 하는 것 같다. 성벽을 따라 산책하는 관광객도 있었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안도로를 따라서는 아주 큰 카페도 있고, 작은 카페와 식당들도 있다. 떠나는 오후엔 이 큰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셨다. 워낙 위치가 좋아서 사람들로 꽉 들어찼었다.

시내는 스타벅스와 기념품 매장이 있는 길이 있고, 좀 더 올라가면 여기 사람들로 붐비는 중심가가 있었다. 다양한 음식점들이 많았다. 간편한 파스타를 파는 누들박스 같은 곳에서 파스타와 볶음면을 먹었다. 멕시코 식당에서 타코와 맥주도 마셨고, 중식 뷔폐에서 밥과 볶은 반찬을 퍼먹기도 했다. 크레타에서 첫날과 마지막날 저녁은 숙소에서 바닷가로 나가면 보이는 식당에서 먹었다. 첫날 저녁에 샐러드와 오징어와인조림, 돼지고기꼬치구이인 수블라키를 시켰다. 오징어는 없다고해서 문어 구이를 시켰다. 샐러드가 산더미로 나왔고, 문어는 다리 하나였지만 구수했다. 와인과 감자튀김, 꼬치구이까지 든든히 먹으며 크레타 만세를 외쳤다. 배불리 먹었는데 디져트라며 케잌과 라키, 간단한 과일이 나왔다. 크레타의 많은 식당에서 별도 요금도 안 받고 이런 디져트를 줬다. 이렇게 줄거면 미리 말해주지 하는게 아쉬움이 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도 샐러드와 돼지 스테이크를 시켰다. 크레타의 식당들은 늘 푸짐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__영혼의 자서전

슬슬 전자책에 물이 오른 여편님이 이걸 구매하셨다. 그녀는 크레타 가는 길에 순식간에 다 읽었고, 난 틈틈이 크레타를 떠나고 나서야 다 읽었다. 난 테블렛으로 봐서 그런지 가독성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나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니 얜 자꾸 왜이러나 싶었다. 크레타에서 자란 이야기, 크레타 사람들의 이야기, 조르바 찬양만 재밌게 읽었다. 대략적인 그의 생을 살필 수 있었다. 서양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겸 나중엔 그의 저작들을 하나 하나 읽어봐야 겠다. 물론 난 니코스보다 조르바를 훨씬 좋아한다. 조르바가 치는 산투르를 크레타에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건 크레타 전통 악기가 아니라 그런지 없었다. 부주키는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찌저찌 에라클리온에 다시 돌아와 그의 무덤을 찾았다. 시내에서 좀만 더 걸어들어가면 있다. 옆에 축구장에선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에라클리온 전경이 보였고, 단촐하게 십자가가 하나 세워져있는 무덤이다. 그의 묘비명을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에필로그_로마로 가는 길

다음 우리의 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처음엔 그리스 왔으니 배타고 가볼까 생각했다. 문제는 크레타에서 이탈리아를 가려면, 먼저 아테네로 배를 타고 가서, 육로로 서쪽 끝으로 가서, 거기서 배를 타야한다는 것이다. 비용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달랐다. 그래서 또 비행기를 끊었다. 이번에도 에게안에어로 끊었는데 막상 에라클리온-아테네 노선은 올림픽에어를 타라고 했다. 알고보니 한 회사나 다름없었다.

호텔 레아에게 공항 가는 방법을 물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버스 타고 오는 방법은 잘 안내되어있다.) 8시 반 비행기라 6시 반에는 나서려고 했다. 그 시간엔 버스가 없고, 택시를 탈거면 예약을 해주겠단다. 아니 학교 수업도 8시에 시작하는 동네가 6시에 버스가 없을리가 있나. 에라클리온에서 할 일이라곤 무덤 보는 것 밖에 안남았으니 버스 터미널로 먼저 갔다. 공항 가는 시내버스는 6시부터 있단다. 저기 맥도날드 앞에 가면 있단다. 일단 그 정류장의 실체를 확인하고, 시내로 왔다. 오는 길에 공항 버스가 많이 보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가니 시내 중심 광장에도 큰 정류장이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공항 가는 버스가 있었고, 운행 시간도 안내되어 있었다. 우리 근성의 승리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7시에 나섰다. 새벽 or 공항 둘 중에 하나만 있어도 집 가고 싶다는 여편님을 잘 달래며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는 무난하게 왔다. 이번에도 내 배낭만 수화물로 구매했는데 또 여편님 배낭을 그냥 부쳐주겠단다. 커버를 단단히 묶어서 보냈다. 너무 일찍 와서 멀뚱멀뚱 기다렸다. 에라클리온 공항은 다시 보니 아주 낡았다. 운항 노선도 별로 없었다. 아니아 공항이 신공항인가 보다. 무덤 하나 보자고 여길로 온 게 좀 아쉬웠다. 아니아에서 출발하는 건 11시에 출발이라 아테네에서 대기 시간도 훨씬 적었다. 이런 순간에 커다란 개 하나가 들어왔다. 실해보이는 큰 뼈다구를 물고 들어와선 의자 밑에서 먹었다. 그러고 그걸 내버려두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테네에 금방 가서 5시간을 기다렸다. 전날, 아테네 시내 가서 아고라와 신전도 볼까 구상했으나 당일엔 둘 다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공항 각 층을 다 돌아봤다. 한창 쇼핑구역 공사가 진행 중이라 더 볼게 없었다. 맥도날드 자리가 가장 좋아보여 다른 그리스 체인에서 샌드위치를 사고, 콜라만 사와서 먹었다. 이번엔 그 기내식으로 나오는 변같은 파이를 안 먹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기내식 메뉴는 달랐다. 로마행 비행기라고 쿠스쿠스가 나왔다. 우적우적 다 먹었다.



참고: 크레타 버스 노선 및 시간표

https://rethymnon.com/TheBus-Bus-Service-Crete/timetable.php


그리스의 음악에 대해선 일전에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유럽음악기행 그리스의 심장 부주키’를 본 것이 기초가 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t0fDXiaHbJc


조르바를 떠올리면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을 자주 들었는데 이분도 크레타 출신이었다. 현대 그리스 문화의 양 대장인 카잔차키스와 테오도라키스가 모두 크레타 출신인 것만 봐도 크레타가 그리스 문화의 본산이라는 주장에 수궁이 간다. 열님이 음악은 글로 배우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아래 블로그 얘기도 재밌게 읽었다.

http://blog.ohmynews.com/rufdml/152599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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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어웨이(www.workaway.info)

소문으로만 듣던 ‘워크어웨이’를 크레타에서 해보기로 했다. 워크어웨이는 호스트는 여행자에게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고 여행자는 하루 5시간, 1주일 25시간 정도의 일을 하는 방식이다. 호스트들은 호스텔, 농장, 가정집, 학교 등등 하는 일도 다양하고, 요리, 청소, 아기 보기, 동물 보기, 집 짓기, 컴퓨터, 음악, 예술 등 작업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이스탄불에서 크레타행 비행기를 끊어놓고 출발 일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워크어웨이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전세계에 수 많은 호스트들이 지역별, 나라별로 등록되어 있었다. 사이트를 몇 번 드나들다가 가입을 했다. 호스트로 등록하는 건 무료고, 호스트와 연결을 원하는 여행자는 개인 30달러, 커플 40달러면 1년 동안 활동이 가능했다.


간단히 우리 소개와 착하고 열정있어 보이는 사진, 할 수 있는 일, 여행할 지역 등을 입력했다. 뭐가 많았다. 하지만 호스트를 찾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유럽-그리스로 선택한 후 CRETE를 검색어로 넣으니 선택지가 확 줄었다. 호스트의 설명과 후기 등을 꼼꼼히 흝어보며 만만해 보이는 곳을 찾았다. 먼저 시골에서 카페를 한다는 청년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1~2주 정도 머물 수 있냐고 물으니 다음날 답장이 왔다. 겨울 대비 청소거리가 많다고 했다. 빡세 보여서 다른 후보군 3개에도 메세지를 보냈다. 나머지는 모두 답이 없거나 안된다고 연락이 왔다. 출발일이 임박해 오면서 시골 카페의 호스트와 몇 일간 메일을 주고 받았다. 오는 방법과 연락처를 알려줬다.


*워크어웨이가 다른 플렛폼보다 마음에 들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공기방울 등의 업체와 달리 상장을 통해 대박을 노리고, 이를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원래 우리는 비슷한 형태로 주로 농업에 기반한 우프를 해보려고 했다. 여러 번 알아봤지만 각 나라별로 운영 지부가 달라 가입비로 그때그때 내야하는 것 같고, 가입하기 전에는 호스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후기 등을 보기 어려웠다.

*이미 장기 여행을 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사람들이 다들 워크어웨이를 적극 추천했다.

*TIP: 이후 이탈리아에서도 해보려고 했으나 연락한 4군데 모두 실패했다. 2군데는 답이 없고, 2군데는 이미 인원이 찼다는 식이었다. 워크어웨이 호스트들이 대부분 인터넷을 달고 살지는 않아서 답장이 오는데도 몇 일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충 일정이 정해지면 (우리처럼 2명이면 더더욱) 해당 지역 후보군에 미리미리 골고루 찔러보는 걸 내부 방침으로 삼았다.



가자 크레타로_20161103_20161121

정든 이스탄불을 떠나 그리스 남단에 크레타 섬으로 향했다. 그리스의 수 많은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우리가 이 섬을 알게 된 건 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때문이다. 2년 전 여편님과 나는 모두 그리스인 조르바를 감명 깊게 읽었다. 크레타 섬은 이 소설의 배경이자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기도하다. 그래서 그리스하면 우린 가장 먼저 크레타 섬을 떠올렸다. 아테네를 경유하긴 했지만 시내로 나가진 않았고, 다른 섬도 찾진 않았다. 제주도 출신인 내게 휴양섬에 대한 로망은 없다. 괜히 크레타를 그리스의 제주도라고 부르면서 무한한 친근감을 가졌다. 하지만 실제 크레타섬은 제주도 4배나 되는 아주 큰 섬이었다. 만만하게 볼 섬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크레타로 향하는 비행기 값은 쌌다. 페리를 타고 갈까 생각도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저가 항공의 위세 앞에 여행자의 로망이란 간데없다. AGEAN AIR라는 그리스 항공사가 저렴한 가격에 우리를 크레타로 데려다 주었다. 이스탄불 숙소에서 트렘을 끝에서 끝까지 타고 공항에 갔다. 테러가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경비는 삼엄했다. 유럽의 저가 항공은 깐깐하기로 유명하고, 짐값도 비싸다. 어떤 경우 짐 하나 더 붙이는 가격(20유로 내외)이 비행기 값이랑 비등비등하다. 내 몸무게와 짐 1(23KG)를 비율로 따져보면 KG 당 운송 비용은 사람이 더 싼 셈이다. 사람은 알아서 비행기에 타지만 짐은 일일이 싣고 내려야 하니 그런가보다. 삼엄한 검색을 뚫고 항공사 데스크에 갔다. 내 큰 배낭에 짐을 몰아넣고 여편님은 큰 배낭을 메고 타려고 했다. 근데 직원이 여편님 배낭도 공짜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게 왠 친절인가 싶어 부랴부랴 지갑과 여권만 빼고 넘겼다. 내 작은 배낭 하나만 메고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여편님은 졸지에 난민 심경이 됐다.


기내식은 형편없었다. 무슨 이상한 파이에 고기류가 들었다. 출발 전에 승무원이 나눠주는 사탕과 디져트가 훨씬 맛있었다. 금방 아테네에 도착했다. 비 유럽인이라 긴장했지만 유럽 연합은 우릴 쉽게 받아줬다. 아테네 공항은 수도 공항 답지 않게 소박했다. 구경 좀 하다가 크레타행 비행기를 탔다. 크레타에는 HERAKLIONCHANIA 두 도시에 공항이 있다. 우린 HERAKLION으로 들어가고 나왔는데 나중에 둘다 가보니 두 도시 규모는 비슷했다. 관광객에게는 CHANIA가 더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눈 깜짝하니 크레타에 도착했다. 공항은 더 작고 단순했다. 짐을 찾으려니 여편님 가방에 커버가 없어졌다. 짐 공짜로 보내준다고 해놓고 커버를 빼갔다. 크레타를 떠나기 직전 눈물을 머금고 15유로나 주고 커버를 사야했다.



아조기레스(AZOGIRES)_1104_1113

에라클리온에 도착해서 당일 바로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저렴한 호텔을 예약해서 짐을 풀고 든든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 터미널로 향했다. 에라클리온에서 아니아(CHANIA)로 간 뒤, 아니아에서 팔레오코라(PALEOCHORA)로 가야했다. 거기 도착해서 전화하면 픽업을 나온다고 했다. 차비만 각각 15유로 8유로였고, 아니아까지 3시간, 팔레오코라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크레타 내의 버스 시간표는 인터넷(….)을 통해 미리 확인해서 중간에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섬이 크다는 걸 이때 실감했다. 하필 우리가 머물기로 한 장소는 에라클리온 반대편이라 섬을 반바퀴 돈 것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 반 버스가 곧 출발한다고 했다. 커피를 한 잔 사고 싸들고 온 빵을 들고 타려니 먹을 건 안된단다. 빵을 입에 우겨 넣고 버스를 탔다. 해안선을 따라가니 바다를 맘껏 볼 수 있었다. 신화의 섬 답게 붉은 바위가 가득했다. 바닷가 절벽에 집을 지어놓은 지중해식 팬션들도 듬성듬성 보였다. 아니아에 도착해 터미널 식당에서 오징어덮밥과 무사카를 먹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팔레오코라까지는 산길을 가로질러 갔다.

팔레오코라에서 내린 곳은 버스 정류장과 바, PC방을 겸했다. 확연히 작은 마을이다. 탄산음료 하나를 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핸드폰으로 국제전화를 해보니 연결이 안됐다. 주인 아줌마한테 전화 한통 쓰자고 하니 점방에 가서 전화카드를 사서 쓰란다. 길가를 둘러봐도 가게는 모두 닫았다. 다시 돌아오니 다른 청년이 카운터를 보고 있다. 이번엔 전화를 쓰라고 한다. 호스트인 럭키가 전화를 받았다. 20분 뒤에 우리를 데리러 왔다. 우수한 그의 영어에 겨우겨우 답하며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갔다. 아조기레스는 더 작은 마을이었다. 해안에서 차로 20분 정도 올라오면 있는 마을인데 가운데 카페가 하나 있고, 그 옆에 집들이 열 개정도 있다. 그리고 길을 따라 집들이 더 있고, 안쪽엔 교회도 있다고 했다.



알파호텔(ALPHA HOTEL)

럭키가 우리를 데려다 준 곳은 방 8개를 갖춘 2층짜리 호스텔이었다. 보통 워크어웨이를 하면 호스트 집에서 방 하나를 내주거나 농장에 딸린 간이방에 묵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럭키는 카페뿐만 아니라 이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었다. 주방도 웬만한 시설을 다 갖추고 있었고, 야외 테이블, 요가실, 객실별 테라스 등을 갖춘 수준급의 호스텔이었다. 우리는 1층 구석방에 머물며 게스트하우스 관리도 겸했다. 첫날은 뭐가 뭔지 몰라 아래 카페에 내려가 멀뚱거렸다. 배가 고플때 쯤 럭키가 뭘 먹겠냐고 물었다. 아무거나 달라고 했더니 돼지꼬치구이와 감자튀김, 그리스식 샐러드를 한 가득해줬다. 와인도 맘껏 따라 마시라고 했다. 배불리 먹고 실컷 잤다.

다음날 팔레오코라에 가서 럭키와 장을 보고 돌아왔다. 마트를 얼마나 자주 오는지, 계산을 누가하는지 몰라서 당장 먹을 식재료만 좀 샀더니 럭키가 본인 것과 함께 싹 다 계산했다. 우리더러 칩(cheap) 워커웨이어(workawayer)라고 했다. 바닷가 전망 좋은 카페에서 오렌지 쥬스도 한 잔씩 사주고 돌아왔다. 이때만해도 진짜 열흘 내내 지갑을 한 번도 열지 않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럭키는 우리를 호텔에 놓고 가며 첫 일거리를 주었다. 주방과 객식을 포함해 호텔 전반을 청소해달라고 했다. 성수기가 지나서 다 정리해두면 된단다. 어차피 우리가 해먹을 주방이라 의욕적으로 치우고 닦았다. 한 시간쯤 정리하니 됐다 싶었다. 너무 오랜만에 생산적인 일을해서 그런지 급 피곤이 몰려왔다. 나머지 청소는 다음날 하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는 객식을 제외하고 가볍게 쓸고 닦았다. 이미 청소를 한 번은 한 상태였다. 여편님은 십 년 전 배운 서양식 침대 정리 노하우를 시전하셨다. 나도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했다. 하지만 다음날 정리하기가 무섭게 애가 둘인 벨기애 가족이 객식을 두 개나 차지했고, 그리스 부부도 또 하나를 차지하는 바람에 일주일 뒤 또 정리를 해야했다. 중간에 한 번은 화장실 물이 막혀서 역류하는 바람에 1층 객실에 물난리가 났다. 럭키에게 수리를 요청했다. 처음엔 간단할 거라고 했다가 곧 럭키 표정이 굳어졌다. 웃지 않는 럭키는 그날이 유일했다. 럭키가 종일 메달려 고쳤고, 물이 넘친 화장실을 한 번 더 치워야 했다.


침대가 좀 취약하고, 너무 넓어서 좀 춥고, 밤엔 인적이 없어서 무서운 게 좀 흠이었지만 알파호텔에서 머무는 건 아주 평화로웠다. 아침이면 테라스에 앉아 그리스식 커피를 마시며 보랏빛 하늘이 밝아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산 언덕 사이로는 작은 팔레오코라 마을과 파란 에게해도 보였다. 주방도 시설이 좋았고, 사온 재료나 알파카페에서 가져온 재료로 파스타, 고기 등을 와인이나 맥주와(술도 알파카페에서 맘껏 가져다 먹으라고 했다.) 즐겼다.



알파카페(ALPHA CAFE)

우린 알파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주로 알파카페의 일을 거들었다. 알파카페는 동네에 하나뿐인 카페라 동네 사람들이 거실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곳이다. 몇몇은 매일 자리를 차지하고, 하루나 이틀 걸러, 혹은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종종 크레타 내륙을 둘러보는 관광객들도 찾아왔다. 나름 와이파이도 되고, 맵양에도 알파카페와 알파게스트 모두 나와있었다.

그리스식 커피부터 맥주, 와인, 오렌지 쥬스 등의 음료와 감자튀김, 그리스식 꼬치 구이 등을 팔았다. 단골로 오는 아저씨들은 알아서 맥주를 마시다 갔다. 종종 럭키가 없을 때 외부 손님이 오면 우리가 오렌지 쥬스를 갈아 주기도 했다. 주스 두 잔 만드는데 오렌지 5개를 갈았는데 나중에 럭키가 만들 때 보니 한 잔에 오렌지 하나를 쓰는 것이었다. 터키쉬 커피와 똑같은 그리스식 커피도 탈 줄 알게됐다. 그냥 곱게 갈린 커피를 물과 함께 끓이면 된다.


할일을 다했거나 할일이 없을 때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이랑 얘기하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광합성을 맘껏 했다. 다만 그리스의 흡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카페에 앉아 있기만해도 옷에 담배 냄새가 풍풍 베었다. 시골 카페라 그리스 아저씨들은 와서 별말 없이 맥주나 한 잔 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에게 말을 거는 건 영국계 아저씨들이었다. 카페에 두 번째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서 아저씨는 우리의 작업까지 감독했다. 카페 자체가 럭키 혼자가 아니라 마을 자치회 같은 식으로 운영되는 것 같긴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하면 1따봉이나 2따봉을 날려주셨고, 노는 거 같으면 할일을 말해줬다. 워낙 여기저기 말을 걸어놓고 자기 말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부인이랑 카페 옆 집에서 사는데 꼭 혼자 와서 하루 맥주 1~2병을 마시고 갔다. 막판엔 하도 잔소리가 많아서 여편님이 호텔에서 이불킥을 수백번했다.

알파 카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할배다. 이 마을에서 쭉 나고 자랐다는 할아버진데 영어도 못하고 원체 말이 없다. 무슨 연유인지 그 할배한테는 술 값을 받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돈을 내면 잔돈으로 똑같이 거슬러주면 됐다. 아침부터 와서 와인을 홀짝이다 오후 무렵 돌아가곤했다. 카페에서 잡일 거드는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날은 이칼립투스 사탕을 한 봉지 주셨다. 나눠 먹으려했더니 우리만 먹으라고 했다. 농사지은 토마토나 키위도 박스채로 카페에 가져다 주는 착한 할배였다.


다음으로 자주 찾는 아저씨는 존 할배다. 이 할배는 잉글랜드 출신으로 음악을 전공하다 동양 문화에 큰 감흥을 느껴 침술 같은 것도 공부한다고 한다. 젠틀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분이다. 럭키 아빠는 더 멋있다. 이일 저일 하느라 바빠서 별 얘기는 못했지만 카페랑 호텔 맘껏 쓰고, 맘껏 가져다 먹으라고 했다. 럭키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에 부인은 갓 태어난 딸과 함께 아니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시종일관 개그를 하는 바람에 종잡을 수 없었다. 내 이름이 GO, 여편님 이름이 MAY라고하면 YOU MAY GO? 하는 식이다. 일도 천천히 하라고하고 우리가 한일을 검사하거나 꼼꼼히 지시하지도 않았다. 카페일, 목축, 농사에다 무슨 글도 쓴단다.


하루는 벨기애 가족이 럭키와 몇몇 사람을 포함해 저녁을 차리는데 우리도 같이 먹자고 했다. 둘다 원래 요리를 한다고 해서 우린 그냥 주는대로 먹기로 했다. 호텔 주방도 모자라 알파 호텔 주방까지 써서 대대적인 만찬을 준비했다. 첫번째로 소세지가 들어간 비트 수프가 나왔다. 소세지가 아주 맛있었는데 하나 건질까 말까했다. 주메뉴로 양배추 양파 볶음에다 현미밥에 콩과 버터를 얹은 밥을 줬다. 김치도 담그고 건강식에 관심이 많다고해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먹었다. 그리스 부부도 함께 앉아서 맛나게 먹었다. 드미트리씨는 아내가 크레테 서쪽에서 공방을 한단다. 아내분이 공방을 해서 그런지 손재주도 좋고, 미니 봉고도 운전했다. 다들 배불리 먹었다.

문제는 음식이 엄청 남았다는 것이다. 급식소에서나 쓰는 솥으로 국과, , 반찬을 잔뜩했다. 백 명도 먹을 정도로 음식이 많았다. 민망해하는 벨기애 부부를 생각해 다음날 점심 볶음밥을 만들었다. 계란 후라이에다 민들레 나물까지 얹어주니 다들 환장해서 먹었다. 나중에 온 럭키도 할머니가 만들어준 거 같다며 맛나게 먹었다. 우리의 볶음밥 투혼에도 불구하고 밥은 한참 남았다. 떠나기 전날 아서가 그것도 씻으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냅뒀다. 지금쯤은 염소 밥이 됐을 것 같다.



올리브통과 창고 정리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호텔 정리를 다 마쳤다고 하니 럭키가 오늘 할래? 내일 할래? 물었다. 우린 오늘하겠다고 했다. 한쪽 구석의 창고에서 올리브유를 담갔던 통들을 하나 둘 들고 나왔다. 대부분 우리 몸통만 한 것들부터 다리통만한 것, 와인 담았던 병 등 200L짜리 고무통 10개 포함 수십개였다. 우리 임무는 이 통들을 씻는 것이었다. 씻는 도구는 세제와 수세미, 밀대와 호스가 주어졌다. 뜨거운 물에 세제를 부어 세척수를 만들었다. 먼저 물로 통을 씻어내고, 사이즈에 따라 밀대나 수세미로 닦았다. 큰 통 하나를 닦고 나니 둘 다 진이 빠졌다. 통 위치를 옮기는 거나 행군 물을 부어버리는 것도 힘들었다. 한 시간이 못되서 휴식 시간을 선었했다.

다시 작업에 들어가서 한 시간을 더 했다. 묵은 기름떼를 완전히 벗겨내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청소 수준을 낮추기로 했다. 겨우 한 시간을 더하니 온 몸에 기력이 없었다. 간식을 먹기로 했다. 여차저차 보이는 걸 주워먹고 꾸역꾸역 일을 했다. 럭키가 주문들어오고 남은 음식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맥주까지 하나 뜯어서 배를 채웠다. 나른해서 뻗어 자고 싶었다. 남은 통은 열 개 미만, 끝이 보였다. 둘 다 온힘을 다해 작업을 마쳤다. 통을 창고에 갖다 놓는 아서가 2따봉을 선사했다. 이날 작업 후 거의 이틀은 몸이 쑤셨고, 럭키는 별 다른 말 없이 편히 쉬게 해줬다.


또 다른 일이 며칠 뒤에 주어졌다. 이번엔 말 그대로 창고 정리였다. 뜬금없이 토끼가 사는 창고에 오래된 책과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다. 주로 십 여년 전에 죽은 지역 로터리 클럽 회장의 회의록 같은 걸 치웠다. 이 중 각 회의록 1개 씩은 따로 모아 달라고 했다. 책 하나를 털 때마다 100년은 묵었을 먼지가 터져나왔다. 조르바가 기타치던 시절의 할배들 사진도 보였다. 로터리 클럽의 수익 사업 중 하나는 콘돔이었다. 50년 묵어 보이는 제품이 한 통 있었다. 책 들을 다 정리하고 내 팔뚝만한 타일 들을 모으니 작업이 대충 끝났다. 돼지고기와 소세지가 절실해지는 날이었다.



원래는 최대 2주를 머물 생각이었지만 남은 기간 팔레오코라와 다른 크레타 지역을 돌아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았다. 럭키에게 일요일까지만 있겠다하니 그러라했다. 일요일 아침, 우리가 머물렀던 객실과 호텔의 주방까지 새 것처럼 치워놓고 럭키를 불렀다. 럭키 아빠도 우리의 환송 길에 대동했다. 내려가는 길에 염소와 양에게 건초 더미 먹이는 것도 구경했다. 기념 사진을 한 방 찍고 정든 아조기레스에서 내려왔다. 심심할 때도 많고, 바닷가 내려오면 붐비는 팔레오코라가 너무 활기차 보였다. 꼬린내 나는 할배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니 속이 시원했다. 특히 아서의 잔소리에서 해방된 건 아주 좋은 일이다. (럭키는 아서와 1시간 독대하는 형벌이 우주에서 가장 잔혹할 것이라고 했다.) 막상 떠나려니 아쉽고 짠했다. 팔레오코라에 방을 잡고 돌아다니다 슈퍼를 찾는 럭키와 두 번을 더 마주쳤다. 가끔 팔레오코라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아조기레스를 볼 때나 후에 붐비는 대도시를 걸으며 그리운 아조기레스를 연발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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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패스를 끊어놨더니 비자발적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게 됐다순수박물관을 제외하곤 박물관 패스로 입장이 안된다는 곳은 안가게 됐다.


순수박물관(THE MUSEUM OF INNOCENCE)_1018

오르한 파묵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박물관이다그의 책과 그에 관한 비평집을 읽다보니 찾게됐다특이하게도 순수박물관 책에는 이 박물관 입장권이 포함되어 있다혹시나 이스탄불에서 한글판을 구할 수 없을까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불가능했다영문판을 사도 못읽을게 뻔해서 그냥 입장료내고 찾아갔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작가와 박물관 설립 배경에 대해 알고가니 보는 재미가 쏠솔했다오전에 가니 사람도 없고 전시에 아주 몰입했다한 사람의 일생과 수집력에 관한 전시라 오래된 이스탄불 물건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수 천개의 담배꽁초가 입구부터 압도했다. (우린 터키가 세계에서 담배를 가장 많이 피우는 나란 줄 알았다카페에서 차이와 담배를 끝도없이 피고 마셔대기 때문이다막상 찾아보니 OECD 국가 중 5위 권이다그럼 1위는무려 그리스..) 2, 3층에 걸쳐 시계장신 구 등 잘도 모아놨다오래된 이스탄불의 사진들도 있다.


아야 소피아(AYA SOFYA)_1020

아야 소피아를 보겠다고 처음 술탄 아흐멧으로 건너갔다탁심만 붐비는 줄 알았는데 여긴 또 어마어마하다이스탄불 시내 교통이 중심이라는 EMINONU에서 내려 걸어갔다시장통 골목이라 어지럽다돌아오는 길엔 트램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는 걸 알았다.

비잔틴 제국이 지은 걸 모스크로 쓰다가 박물관으로 만든 거란다스케일이 웅장하다타일이 인상적인데 내부는 공사 중이라 정신이 없다나중에 그 옆에 무덤도 들어가봤다다른 입구로 무료로 들어가면 됐다투르크 족이 유목민 성향이라 그런지 게르처럼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그냥 관을 모셔놨다.


터키 이슬람 예술 박물관(TURKEY ISTANBUL ART MUSEUM)_1021

한창 ‘아랍’책을 읽을 때고마침 오스만제국 시기를 지나서 가니 유익했다대략 600년 이후의 터키와 이슬람 세계의 역사를 유물과 함꼐 보여줬다한쪽엔 코란이 많았고그 다음엔 예언자 무함마드의 흔적들이 고이 모셔져있었다기왓장 너머로 블루모스크의 자태도 볼 수 있었다.

예술박물관과 블루모스크 사이의 광장에는 오벨리스크도 있고오전엔 낙엽 날리는 이스탄불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블루모스크 조망하기에도 좋았다언덕을 내려가니 한적한 잔디밭과 모스크가 있었다그 앞에 터키스러우면서도 쾌적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거기서 터키쉬 커피를 마시며 햇볕을 마음껏 쪼였다.


귤하네 공원(GULHANE PARK)과 모자이크 박물관(MOSAIC MUSEUM)_1022

주말을 맞아 톱카프 궁전을 끼고 있는 귤하네 공원을 갔다나란히 옥수수를 물고 가는 커플들도 많았다여편님도 하나 드셨다이스탄불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간식 중 우리가 가장 사랑한 것은 옥수수였다보통 2리라 정도에 찐옥수수나 군옥수수를 골라 먹을 수 있었다관광객 뿐만 아니라 이스탄불 남녀노소가 즐기는 간식이다군밤도 한 두 번 사먹었는데 좀 고급 간식이다그래서 그런지 탁심 거리엔 군밤 장수만 있었다공원을 통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려고 했으나 그쪽은 다 공사중이었다.

블루모스크 뒤 편에 있는 모자이크 박물관을 갔다융단박물관도 가보고 싶었지만 박물관 패스는 안 받는단다받아준다는 모자이크 박물관을 갔다가는 길엔 여러 기념품 매장이 많았다모자이크 박물관의 모자이크는 그 타일은 아니고 비잔틴 시절 모자이크 바닥들을 보존한 곳이었다비잔틴 시기답게 힘차고자연스러운 모자이크가 많았다.


주말엔 아쉬굴이 없어 돼지 고양이 밥 주는 등 집안일이 많아 관광을 쉬었다하루는 이사를 했다박물관 패스가 이틀 남아 다시 관광을 재개했다.


톱카프 궁전(TOPKAP PALACE)_1026

이스탄불 관광의 화룡점정긴장된 마음으로 아침부터 여편님을 보채 길을 나섰다오스만제국 최전성기의 궁전과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진귀한 보석을 모아놓은 곳도 있다는데 못봤다.

엄격한 입장 절차를 마치고 입구로 들어섰다다들 가운데부터 몰려가길래 오른쪽 길로 샜다주방이었다엄청난 크기의 솥과 기구들로 왕실과 궁중 식구들의 음식을 만들던 곳이다그 주요 식기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또 한켠에는 프랑스러시아독일 등 다른 왕국으로부터 받은 식기 세트도 있다톱카프 궁전의 장점은 각 구역별로 주제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주방을 다 둘러보고 나서 시계방무기방 등을 관람했다주방과 시계 모두 오스만제국 것은 물론중국과 유럽 왕실 등 어디서 온 것인지 표기되어 있었다동서 교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대충 1차 관문의 방들을 둘러보고 다음 관문으로 들어섰다정원이 있었다이슬람 양식의 타일로 둘러쳐진 건물과 그 안의 쇼파창으로 비치는 장미 정원이 아름답다정원과 왕실의 건물들을 둘러보고 나면뒷편의 보스포루스 전망을 볼 수 있는 테라스로 이어진다여기 카페 가격이 무진장 비싸서 커피는 제겼다어쨌든 파묵이 노래하던 그 해협을 보니 또 이스탄불의 감동이 벅차올랐다흑해와 에게해 나아가 지중해를 잇는 해협이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 많은 교역선이 드다드는 해협이다한데 워낙 좁은 해협이라 물살이 거세 사고가 잦다한 번은 유조선과 양 3만 마리를 실은 화물선이 충돌해서 바다는 기름 범벅과 양의 울음 소리로 가득찼다고 한다고작 몇 마리의 양 만이 근처 카페에 있던 사람들에게 구조됐고 대부분 몰사했단다침몰한 배에서 불도 나서 해협에 위치한 목조 저택들이 타거나검게 그을렸다고 한다.


정원 한켠에는 신성한 방이 있다예언자 무함마드의 수염과 발자국을 찾은 많은 이슬람 교도들이 경건하게 관람하고 있었다이곳에는 또 아브라함의 사발요셉의 터번모세의 지팡이다윗의 검세례 요한의 팔 뼈가 있다조지아 예수의 망토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여편님의 신앙심이 의심으로 고조되었다검색 결과 세례 요한의 유해와 무덤만해도 세계 여기저기 분포한다고 한다.

끝으로 하렘을 둘러봤다터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타일과 수도꼭지가 아름답다박물관 샵에 들러 엽서를 샀다터키 박물관 샵은 매력적인 상품들이 많다심지어 바겐 세일까지 하니 늘 관람객의 마음을 흔든다톱카프 궁전에서 나오니 박물관 샵이 하나 더 있다여긴 상품이 더 많다엽서도 더 많다후회했다.


간만에 엄청난 스케일의 관람으로 허기가 졌다술탄 아흐멧 광장에 가면아야소피아 반대편 블루모스크를 볼 수 있는 곳의 식당있다여길 두 번이나 갔다처음에 여편님이 수프를 먹으며 건너편 사람들이 치킨 케밥을 먹는 걸 봤다다음에 가서 치킨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다참 닭가슴살을 맛깔나게 구워준다.

이날도 각자 치킨스테이크와 닭꼬치 구이를 시켜 배불리 먹고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오벨리스크를 지나 골목길로 언덕을 내려오다보면 건물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를 볼 수 있다그리고 그 바다에 크고 작은 화물선들이 떠다닌다이스탄불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풍광 중에 하나다이날도 이 풍경을 보다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사진기가 없었다최근 불거진 나의 배를 보고 여편님이 톱카프 궁전 박물관 샵에 놓고 온 것이다부랴부랴 왕복 한 시간을 더 걸어 카메라를 찾아왔다.


고고학박물관(ISTANBUL ARCHAEOLOGY MUSEUM)_1027

박물관 패스 마지막 날이라 의무감에 찾아갔다비가 와서 오래된 박물관 건물이 운치있었다시대상으로 고고학박물관-예술박물관-톱카프궁전이다메소포타미아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유물들이있다거대한 조각상들과 사자 장식이 맘에 든다계단 한축의 메두사 얼굴도 인상적이다이쯤되니 그리스로마 양식의 조각상이나 조각돌에는 감흥이 잦아들었다키오스크에 그릇들에 더 눈길이 갔다.


박물관 패스가 끝나고 남은 기간은 평화롭게 보냈다대충 독서와 잡일 하루가벼운 산책과 관광 하루독서와 잡일 하루 이런식으로 보내며 이스탄불의 생활을 정리했다바로셀로나 문양이 그려진 롱타올도 샀다스리랑카에선 무지개물이 끝없이 나왔는데 이번엔 빨노파 물만 좀 나와서 그냥 쓰기로 했다상징처럼 입고 다니던 바람막이가 닳고 달아 츄리닝 세트를 사려고 했다맘에 드는게 없어서 편하게 입을 바지만 샀다대충 짐정리가 되서 한국으로 택배도 한 번 보냈다. 6키로가 넘었는데도 3만원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시장 구역_그랜드바자_향신료바자_이집트바자(GRAND BAZAAR_SPICE BAZAAR_EGYPTIAN BAZAAR)_1029_1102

소포를 보내기에 앞서 시장을 찾았다주요 명소도 다 봤으니 득템의 열망이 차올랐다막상 건진 건 별로 없었지만 즐거운 시장 탐험이었다주말엔 그랜드바자와 향신료바자가 모두 닫았다그래도 그 주변의 시장통은 활기가 가득찼다일반 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재밌었다향신료 시장 주변에는 각종 기념품과 식료품 등등이 잘 범벅되었다자연산 올리브와 찢어먹는 치즈를 사서 유용하게 먹었다견과류와 새우도 구입했다줄서서 사는 커피집이 있어 커피도 200g 샀다집에서 물에만 타먹어도 꿀맛이었다.

평일에 시장 구역을 다시 찾으니 그랜드바자와 향신료바자 모두 열려있었다보기엔 볼거리가 많았다기념품을 못사니 살건 없었다한쪽에는 황금 가게들이 몰려있었다융단을 침낭으로 쓸 수 있다면 샀을 것이다괜히 아쉬운 마음에 비누를 하나 샀다향신료바자 입구엔 큼지막한 향신료 가게가 있었다거기가 장사가 잘 되니 그나마 신선할 것 같아 견과류와 자스민 차를 샀다요즘 이스탄불 관광객이 급감해서 이 바자들이 폐점하고 있단다.


불가자다섬(BURGAZADA ISLAND)_1031

날을 잡아 아쉬굴 집에서 만난 젬 아저씨가 있는 섬으로 갔다이스탄불 아래에는 대략 3개의 섬이 있다예전에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PRINCE ISLAND로 불린다젬이 섬 이름과 자신이 근무하는 식당 이름을 알려줬다.

이스탄불에는 사설 페리도 있지만 버스트램지하철 등 대중교통과 환승할인까지 되는 공공 페리도 있다고 했다대충 검색해보니 KABATAS에서 페리가 있었다. 9시 반 페리를 타려고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트램을 타고 KABATAS로 공공페리 정류장은 공사 중이었다사설 페리 선착장에 가서 물어보니 EMINONU로 가라고 했다다시 트램을 타고 EMINONU로 돌아갔다. EMINONU에 가니 여러 공공 페리 정류장이 있었고각 정류장마다 노선과 시간표가 비치되어 있었다이렇게 간단한 것을 괜히 인터넷을 뒤졌다.

이스탄불 교통카드를 하나만 갖고 둘이 쓰다보니 환승 할인은 한 명만 적용이 됐다그래도 5리라라는 저렴한 가격에 페리를 타고 이곳 저곳을 다닐 수 있다는 엄청났다아쉬굴도 페리를 타고 출퇴근하길 좋아한다고 한다나라도 조금 오래 걸려도 이런 낭만있는 페리를 타고 다닐 것 같다지하철 타듯이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서 페리를 기다렸다.


오전 10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페리에 올랐다페리 안에는 차와 시미즈 빵 등 저렴한 매점도 있었다차를 한 잔 마시고 서서히 출발하는 창밖을 바라봤다신나서 밖에 나가서도 보고 따뜻한 객실에서도 봤다페리는 섬으로 바로 가지는 않았다공공 페리답게 유럽 지구아시아 지구를 거쳐 각 섬을 거쳐 돌아오는 루트다첫 번째 섬이 가장 큰 섬인지 여러 리조트와 집들이 언덕을 빼곡히 채웠다불가자다 섬은 다른 섬에 비해선 소박했다올 때도 같은 페리를 탔는데 하교 시간이라 어린 학생들이 페리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갈 때와 달리 페리 안에선 노래도 부르고 시끌벅적했다페리에서 바라보는 낯선 아시아지구익숙한 유럽지구의 풍경도 새로웠다범고래같은 유조선도 한참을 따라갔다다시 생각해도 훈훈한 공공 페리의 광경이다.


불가자다 섬까지는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선착장에서 내리니 헤멜 것도 없이 젬이 일하는 식당이 보였다어디 구석진 식당에서 일할 줄 알았는데 섬에서 가장 목 좋은 곳이었다청소하던 젬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차를 한잔 마시며 섬 살이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곧 섬 구경을 시켜줬다작은 시내와 조용한 골목들을 돌아보고언덕 산책로도 알려줬다동네 개들이 다 따라붙었다그리고 다시 젬이 일하는 식당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매콤한 요거트 샐러드와 굵은 콩 조림을 먹다보니 토실토실한 물고기가 나왔다블루피쉬란다신난 김에 낮부터 맥주도 곁들여 먹었다쫄깃쫄깃 생선살이 맛있었다덤으로 디져트까지 내줬다얼마냐고 물어봤다무려 180리라한국 돈으로 대략 7만원여행아니 결혼 생활을 통틀어 둘이 한 끼에 나와본 적이 없는 금액이었다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섬 산책에 나섰다.


아까 젬이 안내해줄 때 따라 붙었던 개 하나가 있길래 가자고 했다선뜻 따라나섰다살짝 불쌍해 보이는 생김새지만 덩치가 워낙 듬직했다데리고 다니니 사람 없는 길도 든든했다근데 막상 말이 나오니 우리와 같이 머뭇거렸다. 1시간 정도 산책로를 따라 오르니 곧 섬 전체와 다른 섬멀리 대륙의 건물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날씨도 맑았다내려오는 길에 개와 헤어졌다남의 구역으론 못 가나보다그러다 영화처럼 개가 달려왔다감동적인 재회였다그리고 다시 젬이 있는 식당으로 돌아가서 인사를 나눴다. 3시 반 페리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블루모스크(BLUE MOSQUE)_1102

두고두고 겉모습만 보다가 이스탄불 마지막날 찾았다왠지 겉에만 봐도 아름다운 건물이라 아껴두고 싶었다. 12시가 다 되서 갔더니 곧 예배 시간이란다서둘러 들어갔다내부의 건물 색깔 하나하나가 다 고았지만 푹신한 양탄자가 가장 좋았다눈치없이 뒹굴며 사진도 찍었다.


이스탄불 기타 먹방

무스타파 제과점(MUSTAFA TURKISH DELIGHT)

터키하면 터키쉬 딜라잇이다사실 메론을 한 번 사먹었는데 거대한 메론이 그대로 설탕 덩어리였다과일이 이렇게 달고 맛있으니 딜라잇이 더 달지 싶었다동네 제과점에서 한 두번 터키쉬 딜라잇을 사먹었다커피를 진하게 타서 함께 먹으니 좋았다시내에서 가장 좋아보이는 제과점에 들어갔다. 1800년대부터 있었다는 무스타파 제과점이다술탄 마흐멧 초입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어 전망도 좋았다주말이라 사람이 미어터졌다탄불러들은 어떻게 먹나 봤다다들 1인 1딜라잇 체제를 유지했다우린 조심스레 치즈돈까스처럼 생긴 걸 하나 시켰다뜨거운 돌판에 파삭달달한 겉껍질 안에는 치즈가 가득했고위에는 피스타치오 가루가 뿌려져나왔다다음 번에는 여편님이 먼저 집에 들어가 쉬는 날 혼자 들렀다푸딩케이크를 꼭 먹고 싶다는 여편님이 생각났다골라보려는데 아저씨가 바클라바 하나를 집어줬다먹고나니 무장해제되어 바클라바 여섯조각을 한 박스에 담고 있었다꽤나 비쌌지만 확실히 동네 제과점의 것들과는 품격이 다른 클래스였다.


길거리 음식_고등어 케밥

갈라타 포구 옆의 해안가에 고등어 케밥집들이 늘어서있다배에서 파는 것이 특징이다옹기종기 모여앉아 케밥 하나를 시켰다레몬즙을 쫙 바르고 옆에서 파는 물김치도 하나 사왔다온몸에 바다 냄새와 북적이는 거리가 모두 퍼지는 맛이다.

그 외에 앞서 말한 옥수수군밤기름떡아이란굳이 길에선 안 사먹게 되는 케밥만만한 식당에서 먹는 미트볼 정식 등 막상 다른 나라에 오면 그리워지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넘쳐났던 곳이다동생이 추천한 살렙은 마지막 날에야 마셨다진작 알았으면 더 많이 먹고 즐겼을 것이다.


고급생선식당_BALIK SABAHATTIN

한 번은 제대로된 생선 요리를 먹겠다고 맛집을 찾아나섰다술탄 마흐멧의 구석진 주택가에 자리한 집이다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한정식 느낌이다공무원인지 대기업 입원인지 기사도 있는 분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우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홍합밥 하나에 돔구이대구튀김을 시켰다올리브기름과 빵도 맛있었다나중에 젬의 식당에서 먹은 것에 비하면 비싼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했다.


정리하다보면 끝도 없는 이스탄불에 대한 감상이다여러 풍경들을 뒤로하고 이스탄불을 지배하는 기억은 거대한 도심 한가운데 가득한 낚시꾼들, PATATOS 같은 최신 식당 안에 들어와 부지런히 감자 조각을 주워먹는 참새들고급생선식당에 마구 난입해 화분 뜯어먹는 염소들작은 골목 카페에 붙어 앉아 케밥 먹고차 마시고해바라기 까먹는 사람들이다.


난민

이스탄불에 난민들이 많다도움을 청하는 손길도 많다거기선 바로 도울 엄두가 안났다일전에 알고 있던 시리아 난민 후원 단체에 기부를 했다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헬프시리아https://www.facebook.com/helpsyriaplease/


참고_터키 박물관 산책_이희수

책을 직접 읽은 건 아니지만 목차가 큰 도움이됐다.



부록_10월의 독서일기


책 읽기 좋은 계절이고차이와 터키쉬 커피의 향기가 어린 책들이다터키 가이드북을 포함해 이 무거운 책들을 덜게 됐다한동안 배낭이 가벼울 거다.

론리 플래닛:터키 편(720g)+아랍(1186g)+여기에는(510g)+이스탄불(766g)=3182g


론리 플래닛:터키

운좋게 득템한 최신판답게 효과를 톡톡히 봤다이런 저런 유적이나 건물도 많은데 도움이 많이 됐다거기다 역사문화음식 등과 관련한 지식도 잘 담겨있었다거기다 괴레메 트레킹 루트에 대한 소개도 유용했고파묵칼레 석양이 좋다는 얘기가 있어서 석양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물론 이런 장점은 다 한글판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영어판은 루트나 교통편만 확인하기도 힘들다.


아랍오스만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_유진 로건_20161101

분량의 압박이 상당했다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교수님이 추천하신 아랍 역사서 가운데 하나다이 책과 함께 추천한 또 다른 책은 ‘현대 중동의 탄생’이라는 책이다마지막 한 권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오스만 제국의 정복기 이후부터 2011년 아랍 혁명의 바람이 불 때까지를 다뤘다. 20세기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현재 아랍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분쟁의 뿌리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다루는 지역은 이집트와 시리아레바논사우디아라바아이라크알제리튀니지모로코 등이다생각외로 터키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다행히 론니 플래닛 터키 편에 있는 터키 현대사 이야기로 대강 흐름을 잡을 수 있었다아타튀르크 평전이나 터키 현대사에 대한 책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 점령여기에 불씨를 제공한 열강의 묵인이 이어지는 부분이다이어서 이집트 나세르의 투쟁기를 통해 이 나라의 여러 면을 알 수 있었다석유를 탈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구축한 아랍 국가들의 도전기는 현대사의 여러 파편들을 연결해 주었다.

끝없는 분쟁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감정적 연민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쟁의 뿌리를 알고 어디가 문제고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할 바탕을 까는 것도 중요하다그런면에서 한 시간에 20쪽을 겨우 넘기면서도 800쪽에 달하는 시간을 투자한 것은 잘 한일이다이런 두꺼운 책을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것도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큰 호사 중에 하나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고뇌의 레바논과 희망의 헤즈볼라_박노해_20161101

아랍을 읽기에 앞서 이 책부터 읽기로 했다역사의 순서론 뒤로 읽어야 했지만 가볍기도 하고감정적으로 공감대를 갖추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아랍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헤즈볼라의 투쟁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또한 단순히 숫자나 관찰자의 눈으로만 표현되는 전쟁의 폐혜를 더 입체적으로 겪을 수 있었다터키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도 아랍 세계는 인류 탄생의 중심지이고우리가 누리는 종교와 농경 문화의 뿌리이다그리고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석유가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생각할 수록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 땅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이 땅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 소중한 유산들 때문에 아픔을 겪고 있다.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_오르한 파묵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_이난아_20161007

오르한 파묵 전문 번역가인 이난아씨의 파묵 연구서를 먼저 읽었다이스탄불을 바로 읽으니 별로라는 여편님의 추천이었다그의 배경과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좀 더 알고나니 이스탄불을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그렇다고 다른 에세이 마냥 술술 읽히진 않았다그가 너무나도 애정하는 도시 이스탄불과 그의 삶에 대해 끝임없는 묘사의 향연이 펼쳐진다그래서 트라브존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 나라 사람들의 습관 하나하나소품 하나하나를 더 눈여겨 볼 수 있었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대한 흥미와 기대감도 더욱 배가 된다도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대제국의 영광은 서양인들에게는 신비와 아름다움이 되지만현재도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련한 향수가 되고 이는 현재에 대한 비애가 된다이런 정서가 이스탄불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꾸준히 남아있다는 얘기를 한다파묵은 서양 여행자의 이스탄불 여행기와 회화를 탐독하면서 이스탄불 여행자와 생활자의 상반된 모습을 잘 대비시켜준다.

어쨌든 오르한 파묵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어느 도시를 볼 때 마다 한 걸음 더 멈춰서 생각해 볼 것들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다도시 여행이 대부분인 우리에게 좋은 여행 지침서의 역할도 한다그런 면에서 도시를 볼 때 건물 뿐만 아니라 그 건물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는 얘기가 인상 깊었다.

끝으로 이 책에서 주구장창 나오는 얘기가 서구에 대한 터키인들의 열등감과 서구화에 대한 열망이다터키가 유로 축구 대회에 나가고월드컵 유럽 예선에 속하고언제든 유럽 연합에 가입할 준비가 되어있는 나라라는 것들이 여전한 사실임을 뒷받침한다허나 총균쇠를 읽으며 형성된 요즘 나의 시각에서는 터키그리고 아랍권 모두를 서양 혹은 서구로 분류하고 싶다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여타의 종교는 달리 매우 유사점을 많이 갖고 있으며그 기원 또한 같다한 뿌리를 갖는 두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라는 점과터키와 시리아 인근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형성된 농경문화(빵 문화)를 기초로 한다는 점이 이들 문화의 중요한 공통점이다이스탄불을 동양의 시작점으로 보면서 터키부터 모두 동양의 세계라고 보는 것은 여러모로 포괄적이지 못한 틀이다.


굳이 이스탄불부터 일본에 이르는 문화권을 하나로 묶고 싶다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를 언제 시작했느냐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그런면에서 모두 제3세계에 속했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자본주의 체제의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의 문화를 동경하고 과거의 영광스러운 문화를 그리워 하는 면이 이들 지역 사람들이 갖는 정서적 유대감일 것이다구분이야 어떻든한국전쟁 참전 말고도 우리의 한과 비슷한 비애의 정서를 공유한다는 점을 알게되니 한결 더 친근한 나라로 다가오는 것이 터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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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대항해시대2라는 게임을 열심히했다. 그 덕분에 세계지리도 해안선까지 훤하다. 여러 주인공 중 이슬람 상인이 있는데 그 배경이 이스탄불이다. 그때부터 이스탄불은 나에게 꿈의 도시였다.


숙박_베이올루 주택가_더블룸_7

장기로 머물기엔 공기방울이 좋아보였다. 그간 말만 숙박공유지 주인도 없는 방만 써봤다. 그리하여 이번엔 큰 마음 먹고 진짜 자기가 살면서 빈방 빌려주는 곳을 골랐다. 주인인 아쉬굴은 당일 없을 거고 자기 친구가 체크인을 도와줄거란다.

밤 버스가 이스탄불 외곽에 서고 세르비스를 타고 새벽 탁심광장에 내렸다. 시미트 깨빵 체인점에서 차와 빵을 먹으며 정신을 차렸다. 아침 9시쯤 집을 찾아갔다. 비가 오는 바람에 좁고 붐비고 지저분한 골목길을 걷는게 쉽지 않았다. 벨을 울리니 만취한 깨죄죄 아저씨가 문을 열어줬다. 우리 기다린다고 이 아침까지 술을 마시며 버틴 모양이다. 우리가 묵을 것으로 보이는 방에서 여자친구도 나왔다. 따뜻하라고 침대를 데워둔 모양이다.


마흔 같지않게 동안인 젬 아저씨는 이스탄불 아래 섬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단다. 원래 이 집 윗집에 살다가 아쉬굴이랑 친구가 됐고, 이스탄불에 볼 일 있으면 여기서 머문단다. 자본주의 사회에 염증을 느껴 사무실에서 뛰쳐 나왔단다. 그러고 여행도 하고 지금은 조용한 섬에서 자연과 벗하며 일하고 있다. 내년엔 남미로 떠날 생각을 한단다. 나중에 섬에 놀러오라고 했다. 첫 인상보단 괜찮은 아저씨였다.

집 주인인 아쉬굴은 둘째날 저녁에야 만났다. 다음날엔 친구들도 집에 온다며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여기도 터키인-미국인 부부라 대충 영어로 다 소통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토마토 마카로니 수프와,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아쉬굴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달전에 독일인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지금 살림을 정리하고 곧 독일로 떠날 예정이란다. 회사일하랴 살림 정리하랴, 이민 서류 준비하랴 이걸 다 해내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주말엔 또 지방 친구 만나러 간단다. 고양이 밥도 챙겨 달라고 했다.


사실 이 고양이가 집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딱 봐도 돼지라 우린 돼지라고 불렀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런던단묘 종이라 종특이 뚱뚱한 것이었다. 탁자에 올려놓은 노트북에 올라가는가 하면, 우리 방문도 안 잠가 놓으면 열고 들어와서 주무시는 여편님을 밟아 깨웠다. 그럼에도 여편님은 돼지와의 동거 생활에 매우 흡족해했다. 아쉬굴 말로는 이 고양이를 독일로 이민시키는데만도 500유로가 더 들어갔다고 한다. 건강검진 등록 등 유럽인 되는 것 못지않게 유럽 고양이 되는 것도 까다로웠다.

아쉬굴만오면 너구리굴이 되는 것과 주방이 비좁고 집 구석구석이 난장판인 것만 좀 단점이었다. 주택가라 마트도 있고, 주말엔 그 골목 사이에 셀주크에서 섰던 장이 들어섰다. 작은 찻집과 정식집도 있었고, 굴다리만 건너면 핵심 거리인 탁심 이스틱크랄 거리와 연결될 정도로 접근성도 좋았다. 일요일엔 아쉬굴이 알려준 벼룩시장도 가볼 수 있었다. 온갖 것들이 다 나오는데 필요한 건 없었다.


아쉬굴과의 대화

아쉬굴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역시 한국과 터키는 유사점이 많다고 확신했다. 하나는 결혼 이야기다. 처음 독일인과 결혼한다고 하니 지방에 사는 부모님은 엄청 반대를 하셨단다. 외국인인 것도 모자라 기독교인이라니 독실한 이슬람 집안에선 가당치도 않았나보다. (참고로 아쉬굴은 이슬람 신자라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고 다른 종교의 다양성도 인정하며, 따로 예배를 하거나 술을 안마시거나 복장을 준수하는 등의 엄격한 이슬람 신자는 아니다. 터키 지방에서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로 갈수록 이런 사람들의 비중이 높았다.) 일단 부모님 보는 앞에서라도 남편이 이슬람 세례를 받고 이슬람식 결혼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단다. 거기다 독일 가서 사는 것도 엄청 걱정을 하신단다. 막상 독일에 터키 사람 엄청 많아서 모스크도 있고, 터키 음식, 물건 있을 건 다 있는데 말이다.


다음은 정치 얘기다. 이것도 역시 젊은층, 고학력, 대도시로 갈 수록 정권에 대한 반감이 큰 것 같았다. 에르도안이 술탄되고 싶은 독재자 아니냐니깐 당연히 맞단다. 그리고 2013년에 있었던 탁심광장 시위에 대해 얘기해줬다. 탁심 광장 공원을 재개발하고 쇼핑몰을 짓는 것에 환경운동가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한 정부의 강경 진압이 진영과 이념을 넘어 정부에 대한 포괄적인 시위로 발전했다. 아쉬굴도 이 때 매일 시위를 나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았다고 했다. 독재의 유산과 씨름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자연스레 연결됐다.

(위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 2013년 반정부 시위, https://ko.wikipedia.org/wiki/2013%EB%85%84_%ED%84%B0%ED%82%A4_%EB%B0%98%EC%A0%95%EB%B6%80_%EC%8B%9C%EC%9C%84 에 잘 나와있다.)


숙박_술탄 아흐멧 BRIGHT APART HOTEL_더불룸_9

아쉬굴도 정신 없고, 동네도 조금 어수선하고, 남은 볼거리와 접근성이 좋은 술탄 아흐멧 지구로 옮기기로 했다. 이것도 공기방울을 사용했다. 아파트형 호텔이라 작은 원룸 안에 간단한 주방과 탁자도 있었다. 깔끔했으나 발 디딜틈이 없었다. 여기도 다른 공기방울과 달리 주인이 아래층에 살고 우리 방 앞에 데스크도 있어 심적으로 한결 편안했다. 술탄 아흐멧 지구가 관광지라 블루 모스크쪽으로 가면 죄다 호텔이고 식당이었지만 딱 경계선에 있어 숙소는 주택가였다. 베란다로 학교가 보여 매일 축구와 배구를 하는 학생들을 구경했다. 축구는 그렇다쳐도 여자애들이 배구 토스하는 솜씨가 다들 수준급이다. 괜히 김연경이 터키 가서 배구하는게 아니었다.


작게나마 주방이 있으니 아침이면 터키쉬 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먹고, 저녁엔 여편님이 적극적으로 파스타를 했다. 나도 시장산 올리브 절임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집에서 먹는게 좋았다. 올리브 기름을 따로 사기가 아까워서 주인집에 달라고 했다. 아줌마가 컵에 덜어 주셨다. 세제는 없냐고 물었더니 주인집 딸이 사라고 했다. 이 아이가 영어를 잘해서 호스트와 소통을 담당하고 있었다. 궁리를 하다가 비누를 쓰기로 했다. 고심끝에 알아보니 군대에선 다 비누로 설거지를 한단다. 일전에 샴푸 넣고 세탁기 돌려도 된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깨달음이었다.

까칠한 딸은 떠나기 전날 비행기 티켓 뽑아주면서 파일철까지 해주는 걸로 착한 딸로 판명났다.



시내 구경_탁심, 자한기르

첫날 가벼운 마음으로 탁심(이스틱크랄) 거리로 나갔다. 여긴 대도시라 한국책이 없을까해서 서점부터 찾았다. 생각외로 탁심 거리엔 다양한 서점들이 많았다. 다들 전통과 색깔을 겸비했다. 한국책은 없었지만 각 서점별 구성과 분위기를 보는 것만도 재미났다. 여편님이 다이어리 살 때가 다되서 겸사겸사 둘 다 새로 장만했다. 스페인어 써가며 공부하겠다고 이스탄불 느낌 물씬나는 손바닥 노트도 질렀다.

탁심 거리는 가장 번화가답게 구경거리도 많았다. 이 번화가로 오래된 빨간 트램도 다녔다. 노래하는 청년들부터 페루 악기까지 별에별 거리공연이 다 있었다. 갈라타사라이 유니폼 매장에 들어가보니 드록신의 유니폼도 있었다. 주말엔 경기가 있어서 그런지 갈라타사라이 유니폼이나 자켓을 입은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기도 했다.


우리가 초반에 애용한 골목길은 이 탁심거리에서 순수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리집에서 탁심거리로 가는 길과 그대로 이어지고 쭉 내려가면 트램 정거장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트램을 타고 술탄 아흐멧으로 가기도 했다. 이 골목이 나름 대학가 뒷골목인지라 헌책방, 카페, 빵집 등등 운치좋은 가게들이 많았다. 이 일대를 자한기르라고 하는데 오르한 파묵이 살던 동네기도 했다. 첫날 우연히 들어간 카페는 고양이가 젤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자주 찾았다.

이스탄불 둘째날 이 골목 아래서 케밥을 먹고, 트램 정거장을 건너가니 이스탄불 모던 박물관이 있다고 했다. 근처를 둘러보니 한창 공사 중인 항구 창고 골목이다. 그런데 급작스레 사람이 북적이는 카페 거리가 있었다. 서울 합정이나 신사동에나 있을 카페들이었다. 그간 터키식 카페만 들렀던터라 오랜만에 홍대 카페에 온 것 같았다. 커피도 터키쉬가 아닌 아메리카노가 아주 맛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사람이 싹 빠진느 걸 보니 예전 회사 근처 성수동 도시재생하면서 생겨난 가로수길 생각이 났다.


카페에서 나와 걷다보니 곧 강이 보였다. 갈라타포구란다. 분명 도심 한가운데인데 다들 낚시를 하고 앉았다. 페리도 아주 분주하게 움직였다. 벤치에 앉아 종이컵에 따라주는 차이를 한 잔 마셨다. 내가 이스탄불에 오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리쪽으로 가니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좀 더 걸어가니 생선 시장도 있고, 생선 구워주는 식당들도 많았다. 저녁은 전망 좋은 식당에서 가볍게 생선구이와 새우, 홍합밥을 먹게 됐다.

첫날은 탁심거리, 다음날 자한기르와 갈라타포구, 셋째날은 아야소피야 근처,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우리의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탁심 먹방_쉑쉑버거_PATATO KUMPIR_이란 식당_아디다스 양고기

여편님은 터키에 들어오던 날 ‘난 이제 케밥 더 먹기 싫어’라고 하셨다. 다행히 케밥 말고도 터키엔 먹을 게 많았다. 그래도 2주가 넘으니 다 거기서 거기 같았다. 탁심에 오니 다양한 선택지에 눈이 돌아갔다. 먼저 우리 눈길을 사라잡은 곳은 쉑쉑버거다. 서울에서 그렇게 난리라는데 여기도 사람이 많았다. 쉑쉑 거리며 찾아가는 한국 사람들도 보였다. 기력 딸리는 토요일 브런치로 쉑쉑을 제안했다. 여편님이 용수철처럼 일어났다. 전날 저녁엔 미어터졌는데 토요일 오전엔 거의 텅 비어있었다. 갈라타사라이 팬들만 전의를 다지러 왔다. 소문대로 묵직했다. 여편님 말론 한국은 물론 미국보다도 싸게 먹었다고 한다.

쉑쉑보다 눈에 띄는 건 PATATOS라는 감자요리집이었다. 검고 현대적인 가게에 얼굴만한 감자가 쌓여있으니 호기심이 동했다. 쉑쉐 다음날 브런치는 여기로 갔다. 주메뉴는 KUMPIR인데 찐감자를 반으로 갈라 버터를 바르고, 올리브, 소세지, 샐러드 등 여러 재료 중 5개를 골라 넣어주는 식이다. 아주 맛있고 신박한 조합이라 두 번 더 갔다. 다른 패스트푸드와 달리 소화도 잘 됐다. 양념도 맛있지만 감자가 맛있어서 껍질까지 씹어먹었다.


감자로 속이 가뿐해져서 저녁엔 풍요로운 이란 식당으로 갔다. 순수박물관 내려가는 길에 눈여겨봐뒀다. REHYUN IRAN LOKANTASI가 식당 이름이다. 술은 안팔고, 닭날개와 콩수프를 시켰다. 콩수프는 양고기까지 들어있었고, 모두 샤프란밥이 딸려나왔다. 풍요와 깊이가 동시에 느껴졌다. 식당 분위기도 신비감을 더했다. 닭날개 구이는 그 바스러짐과 기름기가 예술이었다. 여길 또 가겠다고 마지막까지 노래를 부르다가 못갔다. 천추의 한이다.

다음날엔 그 유명한 아디다스 골목의 양고기집을 찾아갔다. 딱 봐도 유명한 식당 같았다. 가격이 좀 쎘지만 맛집 분위기도 나고, 양갈비가 쫄깃했다. 먼저 주는 난과 갈릭요거트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양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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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다음으로 향한 곳은 파묵칼레, 그리고 에페수스가 있는 셀주크였다. 에게해쪽으로 향하니 그리스 로마 시대의 흔적들을 보게 됐다.


파묵칼레(PAMUKKALE)_1013_1014

괴레메에서 출발한 버스는 파묵칼레까지 가는 건 아니었다. 데니즐리(DENIZLI)라는 도시에서 내려주고 기다리던 세르비스가 우리를 태우고 갔다. 마침 괴레메 터미널에서 한국 청년을 만났다. ‘후’라는 청년도 파묵칼레를 간다고 했다. 우리랑 같은 버스라 다른 말레이시아 커플까지 다섯 명이 세르비스를 탔다. 세르비스가 내린 곳은 SUHA 사무실이 아닌 파묵칼레 버스의 사무실이었다. 세르비스 운전한 아저씨가 파묵칼레 버스티켓도 팔고, 파묵칼레 투어도 겸하고 있었다. 자꾸 투어 안할거냐길래 우린 무시했고, 말레이시아 커플은 투어를 하기로 했다.


새벽이라 아침 먹을 궁리를 하는데 아저씨가 자기 부인이 바로 옆집 식당을 한단다. 일곱시에 열어준단다. 곧 무려 신라면 티셔츠를 입은 동양 아줌마가 나타났다. 여편님이 파묵칼레에 괜찮은 일식당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그 집 주인이었다. 시국이 어수선해서 그런지 신라면은 없다고 했다. 대신 저렴한 인도네시아 라면에 계란도 풀어주고, 공기밥도 서비스로 줬다. 후와 함께 모두 행복한 아침을 맞았다.

저녁도 여기서 먹기로 했다. 나는 오야꼬동을 시키고 여편님은 닭볶음탕을 시켰다. 우리가 상상하던 그것보다 더 매콤하고 자극적인 닭볶음탕이었다. 밥 한공기를 더 추가해서 국물까지 싹 다 비벼먹었다. 한 켠의 미국인들 중 한 명도 닭볶음탕을 시켜놓고 입에서 연신 불을 뿜어댔다.


숙박_OZEN TURUKU HOTEL

아침을 먹고 잠잘 곳을 구하러 나섰다. 어차피 하루만 자고 갈 생각이라 대충 돌아봤다. 파묵칼레 사무실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을 골랐다. 웃긴 할아버지가 주인장이었다. ‘머니가 없으면 허니도 없단다’. 온 방을 다 보여주면서 기어코 우리를 눌러 앉혔다. 다음날 가족들이 모두 안탈리아로 간단다. 진짜로 새벽에 우다당 소리가 났고, 아침에 보니 호텔엔 우리밖에 없었다. 식당에 올라가보니 한쪽 구석 식탁에 아침을 플라스틱 대야로 덮어두고 갔다.


파묵칼레 자연 공원(PAMUKKALE NATURAL PARK)

호텔에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오전 열시 쯤 여편님을 깨워 파묵칼레로 갔다. 옷 다 버릴 각오하고, 비닐도 챙기고, 수건도 챙겨서 갔다. 석회똥을 뒤집어 쓰는 줄 알았다. 이미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후를 만났다. 이날 바로 셀주크로 간다고 했다. 가서 또 만나기로 하고 입장했다. 듣던대로 신기한 석회층이었다. 신발을 벗고 감촉을 느끼며 올라갔다. 미끄러운 곳도 있고, 꺼끌꺼끌한 곳도 있었다. 중간에 물이 고인 곳도 거쳤다. 하얀 언덕 막바지에 이르르니 수영복을 입은 서양 여행객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그간 보지못했던 단체 여행객들이 다 여기 있었다. 알고보니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서해안 지대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석회 언덕을 다 오르니 카페가 있었다. 인스턴트 커피 한잔이 9리라였다. 아래론 석회언덕과 그 옆의 호수 공원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 마을과 산맥이 놓였다. 숨을 돌리고 로마 유적들을 봤다. 여기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더 귀족스러웠다. 먼저 원형 경기장쪽으로 갔다. 배가 고파서 원형 경기장의 높은 계단들이 버거웠다. 여기선 또 뭘 했을까. 경기장을 나와 다른 건물들을 봤다. 아고라 광장의 늘어선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날도 덥고 배가 고팠다. 한쪽엔 석회 언덕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었다.

대충 유적을 돌아보고 온천으로 갔다. 목욕탕 이름이 클레오파트라였다. 욕탕 입장료가 비쌌지만 밤버스로 쌓인 피로를 풀기로 했다. 간단히 햄버거로 요기를 하고 온천에 입수했다. 탕 입구에서 티켓을 내고 들어가는 식이라 한 번밖에 못들어 간단다. 그래서 그런지 탕에 안들어가고 온천의 정취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본전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한 시간이나 탕 안에 있었다. 둘 다 삶은 계란이 된 느낌이었다. 물 느낌은 조지아 보르조미의 온천과 비슷했다. 황제들은 이런 물을 좋아하나 보다.


목욕까지 마치고 다시 카페로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때웠다. 론리 플레닛에서 파묵칼레 석양이 좋다는 얘기를 봤기 때문이다. 주변 산책도 더 하고, 해가 산 자락에 걸리고 하늘이 노르스름해질 무렵 석회 언덕을 서서히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물이 흐르는 곳에 발을 담그고 석양을 즐겼다.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해서 족욕도 하고, 일어나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특히 여편님이 인생 사진을 많이 건졌다. 하얀 석회 바위와 하얀 물줄기 위로 갖가지 석양빛이 그대로 쏟아졌다. 여지껏 바라본 석양 중에 손에 꼽을 장관이었다.



셀주크(SELCUK)_1014_1017

처음으로 밤버스가 아닌 이동이라 편안했다. 버스는 우등이 아니라 좀 작은 버스였다. 이스탄불의 4인승 돌무쉬부터 미니벤, 긴 벤, 소형버스, 우등버스 터키는 버스 사이즈가 아주 다양하다. 미니버스라고 해서 당황했는데 생각보단 컸고, 여기서도 간식과 차를 서비스해줬다. 셀주크에 도착해서 앞서 간 후가 알려준 숙소로 바로 갔다.


숙박_ANZ GUEST HOUSE_더블룸_3

숙소 주인인 이브라힘은 한국 식당에서 일했다고 한다. 파주에서 일했다니 파주 잘 안다고 했다. 차를 내주면서 얘기를 나눴다. 관광객이 없다는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터키 정치 얘기로 넘어갔다.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에르도안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슬람 성향이 강한 곳이나 지방 발전 정책 덕분에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지역이 많다고 들었다. 자기가 쉐프 출신이라 아침은 좀 특별하단다. 그렇게 특별할 건 없었지만 잘 나왔다. 볕 잘드는 테이블에서 차도 아무때나 마실 수 있었다.

다시 만난 ‘후’는 첫날 셀주크 구경을 다 하고도 며칠 더 있었다. 그리스로 가기 전에 스카이 다이빙을 하고 간단다. 몇 번을 가도 비행이 취소되서 못하다가 떠나기 전날 성공했다. 다시는 안한단다. 멕시코에서 온 아나도 알게 됐다. 한창 스페인어에 열을 올릴때라 말을 붙여봤다. 바로 대답을 못 알아듣고 큰 좌절에 빠졌다. 멕시코 집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해온 덕분에 유럽 여행에서 카우치서핑 게스트로 여러 군데를 들렀단다. 터키에선 워크어웨이도 했단다. 여러모로 새로운 여행 스타일에 눈뜨게 해줬다.


셀주크 시내

늦은 점심으로 이브라힘이 추천해준 케밥 하우스를 갔다. 한국어 메뉴판도 있었다. 이브라힘의 친척이 운영하는 것 같다. 닭고기 케밥이 아주 푸짐했다. 터미널 뒤로 돌아가면 가게도 많고, 본격 여행자 거리와 셀주크 중심가가 있었다. 후와 다시 재회한 기념으로 함께 시내 피데집에서 테이크아웃을 해서 와인과 함께 먹었다. 피데는 터키식 피잔데 셀주크에서 먹은 버섯 피데가 가장 맛있었다. 그 옆의 케밥집에서 동생이 추천한 요거트케밥을 먹었다. 양념된 소고기에 요거트를 겻들이고 아랜 양념이 베인 식빵을 깔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맛이었다. 아이란과 먹은 케밥도 맛있었다. 전반적으로 셀주크의 식당들은 비싸지도 않고 터키맛이 잘 났다.

다음날 저녁, 후가 우리를 양곱창 집으로 데려갔다. 곱창 구이집은 아니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케밥만 파는 집이었다. 근데 그 샌드위치에 양곱창을 넣어 파는 곳이다. 우린 곱창과 빵을 따로 달라고 했다. 양꼬치도 주문하고, 근처에서 맥주도 사왔다. 허가 안받은 식당에서 대놓고 마시면 안된다고 해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간만에 느끼는 기름기라 속을 지글지글 태웠다. 에페스 맥주 중 강한 걸 사오니 곱창과 소맥의 마리아주가 펼쳐졌다. 셋 다 다음날 과도한 기름기로 고생을 좀 했다.


며칠 더 셀주크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니 좋은 곳을 많이 알게됐다. 특히 기차역 맞은 편에 큼지막한 정원을 가진 노천카페가 좋았다. 떠나는 날 오후에 잠깐 머물렀지만 푸르고 쾌적했다. 셀주크 사람들이 애용하는 명소 같았다. 그 앞에 중심가로 들어서는 커다란 고대 기둥 흔적도 있는데 아르테미스 신전보다 훨씬 멋있었다. 후가 아르테미스 신전 진짜 별거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가봤다. 황룡사터가 그렇듯이 그냥 신전’터’였다.

토요일엔 시장이 선다고해서 기대를 했다. 터미널 뒤편 중심 거리 가득 시장이 섰다. 과일의 광채가 마트랑은 급이 달랐다. 여편님이 아주 신이 났다. 과일 한풀이를 실컷했다. 쇼핑 목록은 아래와 같다.

청포도 1.2kg=3리라=1200

무화과 1kg, 15=5리라=2000

1kg=1.5리라=600

2=5리라=2000

포도는 송이채 잡고 흡입해버렸고, 귤은 아줌마들과 경쟁해 선별했다. 무화과는 곧 상했다. 배는 살면서 외국에서 먹어 본 것 중 최고였다. 탱크보이 갈아서 얼리기 전의 맛이다. 후는 15리라에 츄리닝 바지를 건졌다.


PAMUCAK 해변

에페수스를 걸어서 가려는데 지나가던 돌무쉬가 우리를 태웠다. 해변까지도 간다길래 우선 해변을 가기로 했다. 에페수스는 오전에 가면 사람도 많고 더울 것 같았다. 카페 두 어개가 있는 조용한 해변이었다. 주말이라 음식 싸들고 야유회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것이 에게해인가 했다. 모래 사장을 더 걷다보니 작은 방파제가 있었다. 낚시꾼들이 늘어섰다. 안쪽의 가족은 파란게도 잡았다. 다시 카페로 돌아와서 탄산수를 들이키고 돌무쉬를 기다렸다. 돌무쉬 두 어개가 만석이라 그냥 갔다. 삼십분을 기다려서야 돌무쉬를 잡아탈 수 있었다.


에페수스(EFESUS)

돌무쉬가 에페수스 주차장에서 내려줬다. 괴레메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입구까지 상점들과 식당이 늘어서있다. 일단 파스타로 요기를 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입장했다. 과거엔 해안선이 더 안쪽까지 들어와서 에페수스 자리가 포구였다고 한다. 바다와 어우러졌으면 더 빛이 났을 거다. 원형경기장은 파묵칼레에서 본 거랑 비슷했다. 단체로 온 사람들은 노래도 시켰다. 아예 여기서 정기 공연이나 행사를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이런 좋은 노천극장을 보존만 하는 건 낭비다.


가장 인상적인 건 추가 입장료가 필요한 테라스 저택이었다. 물론 박물관 패스엔 다 포함되는 거다. 이럴 때 고민을 안해도 된다. 한창 발굴 중인 것처럼 천막이 쳐져있어 인디애나 존스 감성이 돋는다. 지금으로 치면 타워펠리스 같은 고급 다세대 주택이다. 바닥이나 벽에 타일 장식이 매우 고급스러웠다. 다음 인상적인 건 도서관이다. 이집트 도서관 저리가라로 맘먹고 지은 거라고 했다. 스케일이 웅장했다. 여편님은 그 기세에 압도되어 미끄러졌다.(대리석이 미끄럽기도 했다) 왼쪽의 내 엉덩이가 아닌 오른쪽의 다른 남자 엉덩이를 잡고 늘어졌다. 대략 두 시간 정도 돌아다니고 귀가했다. 성경 지식이 해박한 여편님은 더 재밌게 봤다. 난 터키 맥주 에페스가 여기 이름을 딴 거라는 것도 이날 알았다.


에페수스 박물관(EFESOS MUSEUM)

에페수스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에페수스를 보고 가는 게 좋다고해서 에페수스 보고 떠나는 날 갔다. 간단히 돌아봤다. 슬슬 그리스 로마 풍 돌덩이엔 물리기 시작했다.


요한 성당(BASILICA OF ST. JOHN)과 성채

토요일 오후에 갔더니 성당만 열고 성채는 닫는 단다. 성채를 보려면 성당을 거쳐야 한다. 박물관 패스론 2회 입장이 불가능해서 떠나는 날 갔다. 그 유명한 세례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데리고 온 곳이라고 한다. 에페수스에서 더 가면 성모 마리아가 살았던 곳도 있다고 한다. 여편님은 성당 가운데 구멍 안에 쏙 들어가 세례 세레모니도 했다. 무너진 성당 터를 지나면 성채가 있다. 셀주크 전경을 흝어볼 수 있었다.



밤 열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전날 먹은 요거트 케밥을 또 먹었다. 가게 문 닫는 시간이 되서 축구 틀어주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 아저씨가 좋아했다. 팝콘도 줬다. 또 문을 닫을 기세라 터미널 앞에서 멍하니 버스를 기다렸다. 파묵칼레 우등 버스를 타고 마지막 종점 이스탄불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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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하면 이스탄불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이 열기구 둥둥 떠다니는 카파도키아다. 열기구 없인 못 돌아다니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투어도 있고, 또 투어 없이도 속속들이 돌아볼 곳이 많았다. 맵양에 각 계곡별 등산로가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었다.


괴리메(GOREME)_1007_1012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 도시다. 우리도 여기서 탐방을 시작하기로 했다. 중간에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돌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숙소가 워낙 안락했다.

트라브존에서 야간 버스를 탔다. 5시 출발이라 7~8시 경에 휴게소에 들러 케밥을 와구와구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도 가도 중간에 사람만 태울 뿐 휴게소는 나오지 않았다. 11시가 넘어서야 휴게소에 멈춰섰다. 케밥은 없고, 괴즐레메라는 빈대떡만 오물거렸다. 카파도키아에 가자마자 팔뚝만한 케밥을 먹기로 했다.


숙박_GAFERLI STONE HOUSE_더블 스위트룸_5

괴레메 숙소의 특징은 동굴이 많다는 거다. 상당수 호텔들이 동굴방을 갖추고 있었다. 동굴호텔은 다 비싼줄 알았는데 동굴 도미토리도 있다고 했다. 동굴방에 오래는 못 머물줄 알았다. 몇 군데 방을 둘러보니 이미 꽉찼거나 100리라가 넘었다. 가페를리는 보통방의 가격이 80리라였는데 좀 넉넉하게 머문다고 하니 안쪽의 가장 좋은 방을 내줬다. 여행 중 우리가 머문 방 중에 가장 안락하고 쾌적한 방이었다. 침대도 아주 튼튼하고 푹신했다. 신혼여행 때 묵었던 방보다도 좋았던 것 같다.


조식으로 여러 치즈와 핫소스가 깔리고 늘 푸짐한 계란 요리를 줬다. 특히 빵이 아주 맛있었다. 어디서 떼오는 빵인지 다른 게스트들도 호텔빵보다 맛있다고 했다. 저녁 식사도 가능하다고 해서 한 번 먹었다. 터키식 만두인 만티 등을 해주셨다. 주인 아저씨가 곧 다른 한국 투숙객들이 온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오나 궁금했는데 갑자기 한복 입은 여자 두 명이 나타났다.

방에서 놀라움과 긴장감을 가라앉히고 인사하러 나갔다. 특이한 분들은 아니고 한복 디자이너와 박물관 큐레이션을 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앙카라의 한국 문화원에서 한 달간 한복 만드는 수업을 진행하다가 관광차 오신거라고 한다. 한복 챙겨온 김에 촬영 기사를 고용해서 카파도키아 배경으로 몇 장 찍으러 오셨다고 한다. 나와 여편님도 한 한복하는 터라 숙소 앞 모스크에 가서 사진도 찍어드리고 푸짐한 저녁 식사도 함께했다. 한복의 색감과 옷 스타일에 터키 여성들이 관심이 많아서 수업도 성황리에 진행했다고 한다.


괴레메 시내

관광지라 시내 한가운덴 기념품 파는 매장이 많다. 트라브존에서 제대로된 케밥을 못 먹어본터라 길거리 케밥집에 들어가서 첫 끼를 먹었다. 작고 맛없었다. 더 돌아다녀보니 감자튀김과 치킨 등을 파는 곳이 있었다. 터키 맛이 물릴 때 애용했다. 한식당, 중식당도 있었는데 안 가게 됐다. 쿠르드족, IS 등의 여파로 확실히 관광객이 없었다. 카파도키아 먹여살리던게 한국인, 중국인 단체였다는데 보기가 힘들었다.

기억나는 식당은 항아리 케밥으로 유명한 술탄 레스토랑과 숙소 위 언덕길에 위치한 노천식당이다. 첫날 뭘 먹을까 돌아다니는데 생선 굽던 아저씨가 우릴 불렀다. 셋트 메뉴로 25, 30리라가 적혀있었는데 그걸 5리라씩 깎아 준단다. 식당에서도 딜이 통하는 나라라니. 돌고 돌아 그 식당에 앉았는데 샐러드도 3가지나 주고, 항아리 케밥도 맛있었다. 며칠 뒤 또 가서 또 먹었다.


술탄 레스토랑은 앞에 언급한 여자분들과 함께 갔다. 시내 한가운데, 항아리 케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들으니 항아리 케밥 빼고 다 맛있는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항아리 케밥은 대충 데운 것 같고, 피자와 양고기 구이는 맛있었다. 같은 에페스인데도 이 집이 유난히 맛있기도 했다.

조사 결과 원래 항아리 케밥을 제대로 하는 곳이라면 몇 시간 전에 예약만 받는 것이라고 한다. 음식을 항아리로 싸고 진짜로 구우려면 몇 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먹은 항아리는 다 가짜였던 것이다.



괴레메 인근 탐방

고르쿤 계곡(GORKUN DERE)

숙소에서 좀만 올라가면 뷰 포인트가 있었다. 둘째날 아침 일출을 보러 갔다. 대략 50~100개에 달하는 열기구가 뜨는 걸 볼 수 있었다. 일출보다 열기구 떠다니는 걸 보는 게 장관이었다. 열기구 하나에 대여섯명 타는 줄 알았는데 10~20명이 타고 있었다. 안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타는데 1인당 10만원은 더 한다고 한다. 비싸서 안 탄 건 절대 아니다.

열기구 뜨는 것 뿐 아니라 일몰 보기에도 좋아 카페도 있는 곳이다. 론리플레닛에는 아침에 걷기 좋은 계곡이라고 했다. 야외 박물관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이 계곡을 통해 귀가했다. 맵양에 나온 길을 따라가니 말 키우는 작은 목장이 나왔다. 그 옆으로 바위 길을 디뎌 올라가니 바로 전망대가 있는 곳이었다. 일몰때가 되니 붉은 계곡과 장미 계곡이 화사하게 보였다.


떠나기 전 이틀엔 아침 운동 코스로 삼았다. 여편님이 편히 주무시는 동안 다녀왔다. 평일이 되니 열기구는 뜨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시작해 산책로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곳곳엔 텐트를 치고 캠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굴뚝 바위 사이사이를 조용히 거닐 수 있었다. 첫날 산책은 무난했으나 둘째날에는 개를 만났다. 자꾸 따라오는게 귀찮아서 뛰었더니 꾸역꾸역 쫓아왔다. 전망대에 와서 다른 여행객에게 붙이고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장미 계곡(GULLU DERE)

괴레메 도착 후 첫날 안락하게 잠을 자고, 유명한 장미 계곡쪽으로 길을 나섰다. 유난히 날이 덥고 건조해서 여편님은 걷는 내내 죽어라했다. 야외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장미 계곡으로 빠지는 길이 있었다. 굴뚝 바위와 동굴들을 봤다. 벌판을 헤메다가 겨우 석류 쥬스를 파는 간이 카페를 만났다. 쥬스를 한 잔 마시니 장미 계곡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고 했다. 아닌 거 같아 가봤더니 또 카페가 영업 중이었다. 좀 더 올라가니 붉은 계곡을 선명하게 흝어볼 수 있었다. 계곡 안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너무 급했다. 둘러서 내려오니 괴레메 북쪽 마을인 차우신(CAVUSIN)이 나왔다. 카페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고 돌무쉬를 타고 귀가했다. 돌무쉬가 정시보다 늦게 와서 돌무쉬를 기반으로 다른 지역을 탐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GOREME OPEN AIR MUSEUM)

론리 플레닛에서 가지 말라던 일요일, 야외 박물관을 갔다. 어차피 관광객이 많지 않으니 일요일 야외 박물관엔 터키 사람들이 많았다. 카파도키아는 해양성인 다른 지역과 전혀 다른 분위기라 터키 사람들도 주말엔 많이 놀러왔다. 낙타와 기념 사진을 찍는 곳도 있었다.

입장권을 사려고 보니 카파도키아 패스라는 것이 45리라였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모든 박물관을 72시간 동안 입장할 수 있는 거란다. 야외 박물관 입장료만 30리라라 지하도시 등도 둘러보려면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야외 박물관 내부에서 추가 입장료를 낼 필요도 없었다. 동굴 내부의 벽화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동굴 아파트에서 집단 거주하며 밥도 해먹고, 예배도 드리는 걸 상상하니 재밌었다.


카파도키아 그린투어

대충 저렇게 돌아보니 카파도키아에서 더 가보고 싶은 곳은 동굴도시와 으흘라라 계곡 정도였다. 어지간하면 투어를 안하려고 했는데 두 곳의 왕복 차비를 감안하고, 오고 가는데 돌무쉬를 기다리고, 오후 늦게 돌무쉬가 안오면 숙박을 구해야하는 등 변수가 너무 많았다.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린투어를 100리라에 해주겠다고 했다. 박물관 패스가 있다고 하니 80리라에 해준다고 했다. 근처의 투어 사무실에 물어봐도 박물관 패스의 할인폭은 20리라였다. 주인 아저씨의 알선업체로 다음날 그린투어를 하기로 했다.

투어 버스를 타고 각자 소개를 했다. 우리 숙소에 묵는 중국인 둘, 우리를 포함해 한국인 다섯, 파키스탄 셋, 아프가니스탄 둘, 일본 둘이었다. 올 아시아 화합의 순간이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었던 여러 아랍 국가의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는게 터키 여행의 또 다른 재미였다.


카파도키아 그린투어는 잘 알려진대로 괴레메 전망을 한 번 보고, 데린쿠유(DERINKUYU) 지하도시를 갔다. 지하도시는 재밌었다. 삼십분쯤 지나니 허리와 허벅지가 당겼다. 가이드없이 왔으면 길을 잃었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으흘라라 계곡쪽으로 이동했다.


으흘라라 계곡(IHLARA VALDESI) 초입에 있는 동굴 사원을 먼저 봤다. 그리고 중간 지점으로 이동해 밥을 먹고, 계곡의 나머지는 걸어보는 코스였다. 인터넷 후기를 아무리 찾아봐도 다들 투어로 가서는 투어 없이 전체를 걸어보면 좋겠다는 얘기만 있었다. 아니면 차를 렌트해서 보고 갔다는 사람들 얘기였다.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걸어보고 좋으면 또 오자고 했지만 당연히 귀찮아서 안 가게 됐다.

계곡의 분위기는 이때껏 돌아보는 카파도키아와는 사뭇 달랐다. 시원하고 숲이 우거진 계곡으로 쑥 떨어진다. 강줄기도 있어 선선했다. 중간 찻집에서 차 한잔 마시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가이드의 재촉에 서둘러 차를 마셔야 했다.


비둘기 계곡(PIGEON VALLEY)는 가볍게 조망했다. 옛날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비둘기를 키워 편지 배달에 쓰거나 그 알을 풀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 저렇게 계곡에 비둘기 집이 많은 것이라고 했다. 비둘기 계곡에서 보는 우치사르(UCHISAR) 마을의 평온함이 더 끌렸다. 사이에 보석 가게도 들러 간단히 터키석과 카멜레온 같은 보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몇 년 전 터키석이라는 팔지를 서울에서 차고 다녔었다. 그때도 여편님은 그거 다 가짜라고 했다.


이상이 하루하루 헤메가며 돌아본 것과 투어로 후딱 몰아본 카파도키아 계곡들의 모습이었다.



부록_터키 박물관 패스(TURKEY MUSEUM PASS)

http://www.muze.gov.tr/en/museum-card

카파도키아 패스가 등장하고, 터키 박물관 패스에 대해서도 알게됐다. 일단 카파도키아 패스를 사서 괴레메 일대에서 대충 본전을 뽑았다. 셀주크에선 터키 박물관 패스를 사서 개시했다. 이건 185리라에 15일간 터키 내 모든 박물관에 1회 입장이 가능했다. 이스탄불까지 포함해 좀 더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쓸 수 있었다.

이스탄불의 사설 박물관에선 적용이 안됐다. 순수박물관은 할인만 됐고, 융단박물관, 돌마바흐체 같은 곳은 할인도 안됐다. 그래도 톱카프 궁전 등을 감안하면 본전은 더 뽑는 셈이었다. 이스탄불에선 박물관 패스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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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 중 우리와 가장 친근한 나라가 터키다. 난 여전히 형제의 나라라는 감정이 유효하다. 조지아 바투미에서 육로로 터키 국경에 다다랐다. 보안 검사관이 내 배낭을 한 번 열어보잔다. 책이 많은 경우 종종 보안 검색에서 의심을 사기도 한다. 별 것 없는데 열어보게 한 게 미안해서인지 검색관 아저씨가 찢어진 내 배낭 커버에 테이프를 붙여 주셨다. 이런게 형제애 아니겠냐며 편안히 터키에 발을 내딛었다.


일정과 이동_20161004_20161103

시리아, 쿠르드족 분쟁 등으로 위험한 동남부를 제외하고 북동부의 중심도시인 트라브존에서 2, 카파도키아의 괴레메에서 5, 파묵칼레에서 1, 셀주크에서 3박을 했다. 대략 ↙ 방향으로 터키를 가로지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약 보름간 이스탄불에서 머물렀다.

도시 간의 이동은 모두 버스를 이용했다. 터키는 버스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여러 버스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 중이라 서비스도 좋았다. 장시간 이동하는 야간 버스의 경우 음료와 간식도 주고, 승무원이 내릴 때가 되면 알려줬다. 도시 외곽에 터미널이 있는 경우 시내 광장에서 픽업해주고, 내릴 때도 터미널에서 광장까지 데려다줬다. 직항이 없는 경우 주요 도시에서 버스나 미니버스로 갈아타서 데려다주기도 했다. 이런 형태의 서비스를 ‘세르비스’라고 통칭하는 것 같다. 버스도 대부분 한국의 우등버스보다 좋은 의자에, 각 좌석 별로 터치 스크린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파묵칼레에서 셀주크로 갈 때를 제외하면 모두 장거리 야간 버스였다. 중간 모든 도시에서 정차하느라 자꾸 서고, 설 때마다 불도 켜는 것이 불만이었다. 좌석도 생각보다 많이 안 제쳐지는 것이 아쉬웠다.


트라브존에서 괴레메까지는 METRO만 노선이 있어 이걸 탔다. 가장 노선이 많고 큰 회사라고 한다. 중간에 두어번 버스를 바꿔타게 하니 터키 승객들이 짜증을 냈다. 우리한테도 METRO 타지 말란다. 괴레메에서 파묵칼레까지는 SUHA라는 회사를 이용했고, 파묵칼레에서 셀주크, 셀주크에서 이스탄불까지는 PAMUKKALE라는 버스 회사를 이용했는데 둘 다 좌석도 더 쾌적하고, 간식과 음료도 많이 줬다. 이스탄불 터미널에선 탁심 광장까지도 픽업 서비스를 해줬다.


픽업용 세르비스와 비슷한 사이즈로 마을 사이나 시내를 돌아다니는 미니버스가 있다. 마슈르카랑 같은데 터키에선 돌무쉬라고 불렀다. 이름도 좀 무식해 보이는데, 예전 터키의 지식인 중엔 돌무쉬가 정류장에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타고 내리는 걸 두고 선진화의 걸림돌로 한탄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트라브존(TRAVZON)_1004_1006

다른 목적은 없었고, 조지아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대도시라 터키 여행을 시작하기에 무난해보였다. 과거에는 이을용, 지금은 석현준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트라브존스포르의 연고 도시라 이름도 친숙했다. 터키 내에서 손에 꼽히는 큰 도시이지만 관광지는 아니라고 한다. 이스탄불, 앙카라 같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그런지 정치,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이라고도 한다. 여러모로 터키 문화를 처음 접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숙박_EFE OTEL_더블룸_2

터키어로는 HOTELOTEL이라고 한다. 막상 트라브존에서만 OTEL로 표기되어 있고, 다른 도시들은 워낙 외국 여행자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그냥 다 HOTEL이었다. 어차피 오래 머물 생각은 없어서 네이버 검색을 했다. 트라브존에서 한국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CAN OTEL이라고 한다. 우리 맵양(이제부터 MAPS.ME를 미스맵, 맵양이라고 부르겠다.)에는 CAN OTEL 위치에 EFE OTEL이 있었다. 바투미에서 출발한 마슈르카는 우리를 트라브존 광장에 내려줘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광장 한 구석 골목에는 여러 OTEL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들 가격을 부르고 쇼부를 치는데 거기서 거기였다. CAN OTEL은 없고, EFE OTEL에서 그냥 묵기로 했다.

알고보니 EFE OTELCAN OTEL을 리모델링한 것이라고 한다. 내부도 그냥저냥 깔끔하고, 조식도 빵과 차, 치즈, 올리브 등이 잘 나왔다. 직원도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브라더 브라더하고, 야간 버스 기다리는 동안 돌아와서 기다리는데 차도 줬다.


트라브존 시내 구경

트라브존 시내 중심엔 광장이 있고, 광장에서 내려가면 바다도 있고, 뒷골목엔 여러 상점들이 있는 시장 골목이다. 처음 도착한 날에 광장에 터키 국기와 트라브존 깃발이 펄럭이고, 노천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가득 하길래 무슨 날인 줄 알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랬다. 시장 골목도 오후만 되면 늘 인파로 붐볐다. 카페엔 삼삼오오 앉아서 담배를 피며, 손바닥만한 찻잔이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우리도 많은 시간을 차이(CAY, ) 한 잔을 시켜놓고 사람 구경을 했다. 각자 원하던 터키쉬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기도 했다.


시장 골목으로 가서 올리브 가게와 옷 가게를 둘러봤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카프와 히잡 가게다.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제품들이 고가에서 시장통까지 가격도 다양했고, 찾는 사람도 많았다. 여편님도 하나 장만할까 했는데, 워낙 선택의 폭이 넓어 포기했다. 난 옷 가게를 둘러보다 청셔츠를 하나 장만했다. 그간 입고 다니던 셔츠는 닳을대로 닳았다. 문제는 새로 산 셔츠를 몸에 맞추다보니 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몽골, 러시아, 조지아에서 축적한 지방이 셔츠 단추를 자동으로 열고 있다.

살 얘기로 이어가면, 트라브존에 도착한 첫날 숙소 옆에 이발소가 있어 머리를 잘랐다. 몽골에서 깎은 이후 약 두 달만이다. 젊은 청년과 흰 머리 아저씨가 있었는데 아저씨가 내 머리를 잘라줬다. 그냥저냥 짧게 잘 잘라줬고, 붙인 김에 면도도 해달라고 했다. 평범한 이발소 구조에, 창가쪽 의자 앞 테이블에는 세면대가 있다. 다 자르고 나선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바로 허리를 굽혀 거기다 내 머리를 박았다. 심지어 세면대 수도도 고장나서 청년이 옆에서 포트물을 부어주고 아저씨가 머리를 감겨줬다. 머리가 세면대에 박힌 상태에서 웃음을 참는 것이 고역이었다. 머리도 자르고 면도를 하니 살이 오른 내 볼이 드러났다. 셔츠를 뚫는 배와 함께 여편님의 무수한 지적을 받아야 했다.


맵양에 공원이 나와있어 광장에서 한쪽 길을 따라 나갔다. 왜 버스가 안들어오고 세르비스로 픽업해주는지 알만했다. 중심가인데도 길은 좁고 무수한 돌무쉬와 자동차가 엉키고 설켰다. 양 옆의 시장 가게들과 더해지니 더 정신이 없었다. 공원은 예전 성벽터를 활용해 만든 것 같았다. 얼기설기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고, 곳곳의 물줄기를 따라 백조인지 거위인지가 떠다녔다. 풀밭에는 토끼도 있었다. 음식 싸들고온 아줌마들과 애들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MURAT BALIK 생선 구이

바투미에서 ‘백성의 물고기’를 보고 생선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어 있었다. 광장 한 가운데 생선 구이집이 성황이었다. 왕멸치튀김 HAMSI과 고등어 BONITO를 시켰다. 양이 워낙 푸짐해서 둘 다 비린내가 훨훨나게 먹었다. 떠나는 날에는 고급스럽게 농어구이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살은 더 맛있었지만 둘이 나눠먹기엔 부족한 양이었다. 한동안 육고기만 주구장창 먹는 나라에 있다가 생선을 먹으니 개운했다. 칼칼한 양파와 고추도 겻들여서 잘 구워줬다.


생선 식당 외에도 로컬 식당들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었다. 무난해 보이는 밥 집에 들어가니 전기구이 한 덩어리도 저렴하고, 터키식 백반도 먹어 볼 수 있었다. 대충 12~14리라에 밥과 반찬을 한 접시에 골고루 담아주는 식이다. ‘LOKANTASI’라는 집이 대부분 이걸 파는 집인 것 같다. 식당 아저씨들이 친절하고 영어도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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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의 여파로 보르조미와 바투미에선 약간 시들한 날을 보냈다.


보르조미(BORJOMI)_0926_0930

정든 시그나기를 떠나 트빌리시를 거쳐 보르조미로 갔다. 조지아 중서부에 위치한 곳으로 온천과 주변의 국립공원이 유명하다고 하여 찾아갔다.


숙박_GUEST HOUSE NATALIE_더블룸_4

터미널에서 내려 언덕진 골목길로 들어갔다. 태반이 민박집이다. 몇 군데를 둘러봤다. 여기 숙소들은 조지아의 다른 곳들과 달리 아침 저녁은 안주고 주방은 쓸거면 쓰라는 식이다. 이번엔 여편님과 각자 나눠서 방을 둘러봤다. 여편님이 돌아다니는데 창문에서 한국 여자분이 불쑥 나타나 저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한창 공사중인 집이지만 밝아보였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보르조미엔 계속 비가 오락가락했다. 원래 비가 잦은 동네인 것 같았다. 날도 추워졌다. 첫날은 히터를 그냥 틀어주더니 다음날부턴 10라리를 더 내란다. 좀 춥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주방도 남이 쓰고 있는 주방을 쓰는 거라 편치가 않았다. 대충 차나 끓여 먹고, 도시락라면을 사다 끓여 먹기나 했다.


그 옆집에 있는 한국 여자분과 식사나 한 번 하기로 했다. 우리집이 마땅치 않아 옆집으로 갔다. 별채에 주방도 있는 방이라 부러웠다. 대충 알아봤지만 보르조미에 그런 집은 더 없었다. 파스타를 해먹으려고 재료를 사들고 갔는데 이미 만들어 놓고 계셨다. 와인 1페트(3L)를 함께 나눠 마셨다. 워낙 오랜만에 한국 여행자를 만난 거라 금방 친해졌다. 실비아라고 하는데 지금은 수 년째 여행 중이라고 한다. 비행기가 싫어 야금야금 육로로 다닌다고 한다. 이란과 다른 중동 국가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알고보니 고향도 나와 같았다. 이런 저런 연유로 파스타도 많이 먹고 와인도 콸콸 부어댔다. 다음날 나는 기억이 없고, 여편님은 나를 부끄럽게 기억했다.


보르조미 온천

소문으로 듣던 온천 가는 길을 실비아가 알려줬다. 보르조미 중심가에 위치한 공원(MINERAL WATER PARK)으로 갔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난 가보지도 않은 온양온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공원 옆에는 케이블카도 있고,, 공원 안에는 약수물도 나왔다. 먹어보니 보르조미 탄산수에서 탄산을 뺀 맛이었다. (보르조미는 탄산수로 유명하다. 조지아 곳곳에서 보르조미 탄산수를 마셨다.) 공원길을 따라 한참가니 공원이 끝나고 산책로가 나왔다. 숲길을 한 시간 남짓 걸었다. 온천에 대한 설명을 봤다. 러시아 차르가 이곳 온천을 자주 다녀갔다고 한다. (온양온천도 조선왕들이 자주 가던 곳이었다.) 가볍게 발을 담가보니 물은 미지근했다. 그래도 황제목욕이니 좀 더 담갔다. 조금 지나 발을 만져보니 확실히 매끈해졌다. 오호라 이런 효과가 있었다. 다음에 수영복 챙겨서 전신을 옥으로 만들기로 했다.


식당_올드보르조미(OLD BORJOMI)

여기도 실비아가 추천했다. 보르조미에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기도 하다. 첫날 피자에 맥주를 먹어봤다. 다른 테이블 먹는 것도 보니 맛나보였다. 가격도 비싸진 않았다. 다음엔 예전에 추천받은 우유 소스의 닭요리를 먹었다. 서울에서 가끔 보이는 까르보나라 치킨과 비슷했다. 짭잘한 구운 닭고기를 마늘과 우유가 들어간 소스로 버무린 것이다. 떠나기 전날엔 소고기 스프, 킹갈리, 돼지구이로 만찬을 했다. 꽤나 정성들인 조지아 음식을 맘껏 맛볼 수 있었다.

시내 공원쪽으로 가면 빵집이나 카페도 더 있었다. INCA CAFE를 발견해서 커피를 마시며 책도 읽고 글도 썼다.


사실 보르조미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국립공원 트레킹이었다. BORJOMI-KHARAGAUL NATIONAL PARK가 정식 명칭이다. 홈페이지에 정보가 많이 나와있었다. 당일, 1, 2박 등 다양한 코스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날씨 등 여러 변수로 인해 불가능했다. 조지아에 또 오게 된다면 캠핑과 트레킹 준비를 완벽히 해서 메스티야와 보르조미를 활보하고 다닐 것이다.



바투미(BATUMI)_0930_1004

조지아 최대의 휴양도시라고 한다. 러시아는 물론, 도박이 금지된 아랍 국가에서도 카지노 등을 이유로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별 기대는 없었고, 조지아 여행을 정리하고, 터키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에어비엔비_콘도_4

조지아 물가를 감안해도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콘도를 통으로 빌리는 게 좀 쌌다. 집 주소도 명확하지 않아서 걱정을 했다. 터미널에서 내려 해안도로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호스트 엄마라는 사람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오래된 아파트와 새로 짓는 콘도, 새로 지은 콘도를 지났다. 우리집도 이제 막 짓고 내부 인테리어가 안 끝난 콘도였다. 아줌마는 후다닥 와이파이 등을 알려주고 사라졌다. 주인이 없더라도 다른 숙박객들이 드나들던 에어비엔비와 달리 집 전체를 빌리니 공허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호스트가 주는 안정감이 크다는 걸 실감했다. 공허해서 에어비엔비인가 보다.

나름 주방은 있어서 여편님의 주특기인 파스타를 실컷 해먹었다. 냉동 오징어와 해산물을 사다가 실컷 먹었다. 와인은 소박하게 한 페트로 4일을 지냈다.


바투미 시내 구경

케이블카

바투미도 당연히 케이블카가 있다. 트빌리시나 다른 지역의 것과는 스케일이 달랐다. 물론 요금도 비쌌다. 어지간한 놀이기구 타는 것 보다 재미있었다. 바투미 항구와 시내 전경을 바라보고, 전망대가 있는 산까지 올라갔다. 산에선 설산자락도 볼 수 있었다.


바투미 해안

비로소 흑해를 만났다. 이름처럼 검은 색깔과 자갈, 거친 질감의 바다다. 추워보이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잘도 들어간다. 떠나기 전날, 첫날부터 호시탐탐 노리던 자전거를 탔다. 해안에 자전거 도로가 쭉 정비되어 있었다. 항구가 있는 쪽부터 옆마을 경계까지 설렁설렁 몰았다. 옆의 도로에선 어느 부자가 스포츠가를 부앙 몰았다.


바투미 시내

시내에서 좀 더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도 올드타운이 있었다. 공터를 두른 큰 카페도 있었다. 밤이면 공연을 한단다. 여느 유명 유럽 도시처럼 쾌적한 분위기다. 해안도로를 낀 시내 중심부에는 공원도 있고, 갖가지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집 쪽으로 점점 호텔과 콘도들이 확장되고 있다. 한창 공사 중이다. 큰 빌딩 중엔 와인잔과 맥주잔을 닮은 것들도 있다. 며칠 비가 오다 갠 날 아파트 집집 마다 빨래를 널어 놓은 것이 장관이었다.


바투미 터미널

터키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려고 미리 터미널을 갔다. 다소 어수선하지만 쉽게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출발 당일날 역사상 가장 고급스러운 마슈르카를 탔다. 편하게 국경을 넘는 대가로 기사의 파트너가 나눠주는 담배 한 보루와 양주 한 병을 가방에 담아야했다. 터키가 주류세, 담배세가 비싸서 이렇게 많이 넘겨 파는 것 같다.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조지아에 20여 일을 머물렀다. 한달이 지난 지금 조지아의 인상은 친절함, 장미혁명, 산과 돼지, 와인과 포도 등이다. 시그나기를 정점으로 나머지 여행은 후다닥거리가 되버렸다.



정리_먹거리

조지아 와인

조지아하면 와인이다. 조이아인들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가장 오래된 와인 제조의 흔적도 갖고 있다고 한다. 여행자인 우리야 곳곳에서 주는대로 하우스 와인을 맛본다. 마트에서도 와인을 많이 판다. 좀 고급스러운 거 먹어보겠다고 병으로도 사봤다. 시행착오 끝에 그냥 페트로 파는 걸 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의 물가를 감안하면 병으로 포장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페트 와인 중 가장 흔하게 보이는 걸 사봤더니 꽤나 맛있었다. 대부분 세미 스위트, 레드드라이, 화이트 세 가지를 판다. 화이트 와인을 마셔보니 아 이게 숙소에서 많이들 주던 와인이란 걸 알았다.


심심해서 약 보름간 우리가 마신 와인을 정리해보았다.

트빌리시(2): 하우스레드 PET 1L, 레드 1, 레드 0.5L, 화이트 1

카즈베기(3): 레드 PET 2.5L, 므츠헤타(1): 하우스레드 PET 1L,

시그나기(5): 하우스화이트 4L, 와인투어 3+ 1L + 0.3L(텀블러 키핑)

보르조미(4): 레드 병 0.75L, 하우스화이트 1L, 레드 PET 2.5L

바투미(4): 화이트 PET 3L



16.5L +5= 17L (19) = 11500ML. 퍼 마신 기억이 많은데 생각보다 덜 마셨다.

 


조지아 돼지

조지아 간다니 지인분이 조지아 돼지 얘기를 해주셨다. 이건 또 뭔가 싶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꼬치에 꽂아 주는 게 꿀맛이다. 제주도에서 먹던 생갈비가 그립지 않았다.


레몬에이드, 탄산수

보르조미 덕분인지 탄산수와 레몬에이드가 다 유명하고 맛있다.


포도

와인이 맛있으니 포도도 당연히 맛있다.



독서_자급의 삶은 가능한가:힐러리에게 암소를_마리아 미즈 등

조지아가 워낙 동적이고, 흥이 나는 동네라 책을 잘 읽지 못했다. 한창 한국에서 페미니즘 논란이 일때였다. 책은 에코페미니즘을 소개한 책이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차베스는 ‘자본주의는 마초다.’라고 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에코페미니즘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워낙 어려운 개념어도 많은데 번역도 별로라 읽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방송_백성의 물고기

흑해에 다다른 기념으로 바투미에서 봤다. 멸치, 고등어, 명태, 조기 등 이른바 서민 생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나온다. 사실 멸치, 고등어를 빼곤 즐겨 먹던 생선은 아니었다. 만만하게 옥돔이었다며 허세를 부렸다. 그래도 정겨운 고향 풍경을 보니 좋았다.


방송_멋진 신세계

글로벌한 시각을 키워줄 컨텐츠를 찾다가 발견했다. 요즘 잘나가는 JTBC에서 만드는 국제버전의 썰전이다. 단순 토픽이 아니라 국가별, 주제별로 한 편 한 편 다루는 구성은 맘에 든다. 문제는 재미도 없는 농담이나 이상한 코너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하나의 이슈를 다루면서도 여러 의견을 다루지 않는 다는거다.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나 콜롬비아 게릴라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밑천을 다 드러냈다. 아무리 재미가 우선이라지만 하나의 이슈를 여러 관점에서 소개해 주었으면 한다.



부록_공인인증서

공인인증서 기간이 만료되어 바투미에서 신규 발급 받았다. 힘들었다. 아래는 당시의 기록이다.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위해 3개 은행으로 분산하여 자금 운영 중에 공인인증서가 만료됨. 맥북으론 금융거래가 안되니 겸사겸사 테블릿 중고를 하나 들고옴.

하여 아침부터 삽질 시작!

1. 우리은행에서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했으나 로그인하다 막힘. 창 닫았다 키니 로그인 다음 인증단계에서 막힘.

2. 스마트폰에서 우리은행 어플로 공인인증서 신규발급함. 아주 쉬움.

3. 폰에서 받은 인증서는 같은 폰 내 하나은행 앱에서 타행인증서로 인식이 안됨.

4. 우리은행에서 스마트폰 인증서를 pc로 보냄.

5. 하나은행 보안프로그램 설치 후 타행인증서 등록

6. 하나은행 스마트폰 어플로 인증서 전송

7. 시티은행 보안프로그램 설치 후 타행 인증서 등록

8. 시티은행 스마트폰 어플로 인증서 전송

현재 이글 쓰는 동안 5단계 보안프로그램 설치 중

+7 도중 멈춰서 컴퓨터 껏다 키려니 윈도우 업데이트

+다시 7 도중 입력이 안되서 87을 바꿔해보니 됨


2시간 여의 혈투 끝에 안전금융인으로 거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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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SIGHNAGHI)_0921_0926

시그나기를 중심으로 한 조지아 동부는 와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는 아주 설레는 마음으로 시그나기로 향했다.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돌아온 후 삼고리 터미널로 가기위해 지하철로 한참을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시그나기 행 마슈르카를 타고 시그나기에 내렸다. 언제나처럼 호객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힘 없는 할머니를 제치고 건강하고 영어 잘하는 청년을 따라갔다. 마침 우리와 같은 마슈르카에 탄 사람들을 픽업 나온 것이었다. 편안히 차를 타고 마을 중심부를 살짝 벗어난 곳에 내렸다. 처음 보여준 방은 호텔급 쾌적함과 산간 뷰를 자랑했다. 우리가 원하는 가격대를 말하니 지하에 구리구리한 방을 보여줬다. 나름 와인도 무제한으로 주고, 나중에 알고보니 론니플레닛에까지 소개된 유명한 곳(ZANDARASHVILL)이었다. 아무리 유명해도 이런 계급차이를 조장하는 숙소는 싫다. 다른 곳을 찾아나섰다.

블로그에서 봐둔 민박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언덕이 많은 마을이라 배낭을 메고 숙소를 돌아보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나마 맘에 드는 것(여편님 기준)들은 비쌌다(내 기준). 둘 다 지쳐(내부 갈등과 체력) 여편님에게 잠시 배낭을 맡고 쉬고 있으라 하고 몇 군데를 더 찾아봤다. 아까 터미널에서 봤던 할머니가 들어오라고 해서 봤다. 안나푸르나 산장만도 못한 판자집이었다. 별 소득없이 여편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기사 아저씨들한테라도 물어보던 참에 BMW 하나가 멈춰섰다. 민박 찾으면 자기네 집으로 가보잔다. 처음 봤던 그 집쪽으로 가길래 그 집 동생인가 했으나 바로 맞은편 집이었다. 가격도 괜찮고 집도 깔끔해보여 머물기로 했다.


숙박_TSMINDA GIOGRI APARTMENT_더블룸_5

짧은 조지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이 됐다. 집 구하느라 녹초가 된 우리에게 주인 아줌마가 포도와 차를 내주셨다. 집 마당에서 바로 따 준 포도다. 주인 아저씨는 오크통에 와인을 젓고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던 조지아 민박집이란 기대감이 차올랐다.

잠시 쉬다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미친듯한 바람이 불어 집으로 날아왔다. 곧 저녁 시간이 되었다. 빵과 치즈, 비트 무침, 감자마요네즈 샐러드, 볶은 김치 맛나는 야채 무침 등이 깔리고 아줌마가 직접 튀긴 치킨과 감자튀김이 메인으로 나왔다. 와인도 유리병으로 한통 가득 채워주셨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1인당 15라리 짜리 밥상이 이렇다니. 충격이었다. 이날 하루 뿐만 아니라 이런 저녁이 5일 내내 계속되었다. (이런 숙소엔 넉넉하게 머무르는 것이 진리라 믿고 오래 오래 머물렀다.) 다른 날에도 삶은콩, 가지무침, 버섯볶음, 조금씩 변형되는 감자샐러드 등을 겻들여 주셨고, 감자탕이나 돼지김치찌개, 깻잎말이구이 비슷한 음식들이 메인으로 나왔다. 덤으로 킹갈리나 레드와인을 주시기도 했다. 매일 저녁을 접시 닦아 가며 먹었다. 조지아를 벗어나자마자 이발과 면도를 했더니 여편님이 확 살이 쪘다고 했다. 지금보면 다 그럴만 했다.

이렇다고 1인당 5라리 받는 아침이 대충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요거트와 치즈, 삶은 계란과 오이, 토마토 등을 주고, 아줌마가 직접 담은 것으로 보이는 베리잼과 무화과절임을 빵에 발라 먹었다. 첫날 말고도 때때로 포도와 디져트 거리를 차와 함께 주시기도 했다.


첫날 배부르게 밥을 먹고 있는데 (마침 이날 저녁 전기가 나가고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비에 홀딱 젖은 서양 커플이 들어왔다. 에릭과 나딘이라는 독일 친구들이었다. 이들의 저녁 상이 차려지자 밥을 다 먹은 우리는 자리를 합쳤다. 와인을 콸콸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졌다. 주인 아저씨가 제안한 투어들을 함께 가기로 했다.

둘 다 정신의학(내 영어 실력이 좋다면...)을 공부하고 있는데, 에릭은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독일주의자 청년과 너무나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머리 스타일과 생김새부터 행동거지와 정치에 대한 관심과 관점 등 도플갱어의 존재를 의심할 정도로 비슷했다. 반면 나딘은 어린 구석이 있는 에릭도 잘 챙겨주고 어려서부터 빵집하는 아빠랑 등산을 다녀서 등산을 좋아한단다. 둘이 조지아에 온 목적도 메스티야 지역에서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란다. 그 지역 날씨가 한동안 좋지 않아 시그나기로 왔단다. 시그나기에서 헤어지고 나서는 눈이 펄펄 내리는 메스티야로 가서 끝내 트레킹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유럽도 간다니 독일 오면 꼭 연락하란다.


에릭과 나딘은 2박을 하고 떠났고, 그 뒤엔 러시아 가족이 왔다. H자동차에서도 일했다는 남편은 BMW 츄리닝을 자랑스럽게 입고 있었다. 이 가족도 주인 아줌마 아저씨의 대단한 대접이 좋았는지 한 번은 조지아식 돼지구이를 한 냄비 만들어서 함께 나눠먹었다. 우린 이미 낮에 돼지구이를 먹고 저녁도 막 다 먹은 상태라 차마 더 먹을 수가 없었다. 그 풍성한 고기를 느긋한 와인과 함께 즐기지 못한 것이 시그나기에서의 유일한 오점이다.



시그나기 와인투어

아저씨가 제안한 투어는 와인투어와 데이빗 가렛자 두 가지였다. 시내에서 택시 운전사를 섭외해도 됐지만 이미 이 집의 서비스에 감탄한 터라 주인 아저씨와 함께 하기로 했다. 다른 조지아 아저씨들과 다르게 주인 아저씨는 운전할 때도 별 말이 없고, 묵묵하게 운전만 하는 스타일이다. 에릭, 나딘과 영어로 얘기하기에도 정신이 없어서 아저씨의 배려(?)에 또 감사했다.


와인투어는 시그나기 근처가 아닌 와인 재배로 유명한 텔라비(TELAVI) 인근의 와이너리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DURUJI VALLEY라는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가이드는 무료고 시음은 5라리라고 했다. 먼저 3가지 맛의 와인을 시음했다. WHITE, RED DRY, SEMI SWEET 세 가지 맛을 시음했는데 SEMI SWEET 와인은 초콜렛을 녹인 것 같았다. 시음 후 뒤로 가서 와인 공정을 설명해줬다. 조지아 전통 와인은 대부분 화이트 와인인데 일반 화이트 와인과는 제조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일반 와인은 적포도의 껍질을 벗겨서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그러나 조지아 와인은 청포도를 발로 밟고,

크베브리(QVEVERI)라는 큰 항아리에 담아서 발효시킨다. 살짝 붉은 빛을 띠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다음 찾은 와이너리는 KHAREBA라는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입장료만 7라리였고 시음은 또 별도의 비용을 내야했다. 이미 넉넉히 마신터라 모두 시음은 안하기로 했다. 아주 큰 동굴 같은 곳을 구경시켜줬다. 유명한 브랜드인지 규모가 컸다. 동굴 구경 후 레스토랑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경치는 볼만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WINE CELLAR MUSEUM이다. 와이너리라기 보다는 레스토랑이다. 정원을 갖춘 허름한 집이다. 한쪽에는 와인 담그던 도구들과 각종 골동품 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른 한쪽은 레스토랑 겸 와인을 시음하는 곳이다. 점심을 거른터라 와인과 함께 빵과 치즈도 좀 달라고 했다. 주방 규모가 꽤나 컸다. 여기 와인이 다른 와이너리보다 맛있었다. 차차도 시음할 수 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들 한껏 마셨고, 남은 와인 중 하나를 텀블러에 챙겨왔다. 에릭과 나딘은 너무 즐겁게 마신 나머지 가방을 두고 왔다. 숙소에 돌아와서야 알았지만 아저씨가 직접 가서 가져다 주었다.



데이빗 가렛자(DAVID GAREJA)

다음날엔 데이빗 가렛자를 갔다. 시그나기와 트빌리시 중간에서 아제르바이젠 국경까지 가면 나온다.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걱정을 좀 했다. 다행히 근처에 다다르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돼지고기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시골길을 지났다. 미국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량한 벌판이 펼쳐졌다. 데이빗 가렛자에 도착해서도 비가 조금씩은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우비를 개시할 때가 온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준비를 하면서 포카라에서 산 우비는 거의 반년을 내 배낭에서 썩고 있어야 했다. 완벽한 방수성을 자랑하는 만큼 팔뚝만한 크기와 두께도 있다. 이걸 들고만 다니다가 드디어 쓴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했다. 그간 거의 관리를 안한 터라 냄새가 좀 났다. 숙소에 가서 가볍게 빨고 햇볕에 말려줬다. 튼튼한 우비를 걸치니 비오는 산길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니 오래된 성벽과 교회가 보였다.


교회는 15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었다. 한 시간은 더 걸린다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어딘가로 올라가고 있었다. 교회를 나와서 뒷편 길로 가보니 언덕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었다. 등산꾼 나딘을 앞장세웠다. 감기 기운으로 고생하던 에릭은 조금 올라가다가 하산을 결심했다. 우리 셋이 산길을 올랐다. 비와 안개가 섞이니 한라산이나 오름을 오르는 것 같았다. 길이 분명하지 않아 헤메기도 했지만 앞의 두 여인이 잘 찾아냈다. 다 오르고 난 뒤에는 능선길을 따라 걸었다. 능선에 오르니 아제르바이젠 국경과 황량한 벌판이 쫘악 펼쳐졌다. 내려오는 길에는 그 유명한 동굴과 그 안의 벽화들도 봤다. 하산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오는 길에 에릭과 나딘은 사가레호(SAGAREJO)에서 내려 트빌리시행 마슈르카를 타고 갔고, 우리는 아저씨와 집으로 돌아왔다.



시그나기 시내

시그나기 마을 자체도 아주 아름답다. 이틀을 더 머물면서 동네 산책도 하고, 카페에서 풍경도 즐겼다. 맑은 날에는 저 멀리 산맥에 설산들도 보인다. 그 앞으로 초록빛 벌판과 아랫마을들이 있고, 그 앞엔 시그나기 교회와 층층이 들어선 지붕들을 볼 수 있다. 시내 한 가운데있는 시그나기 호텔의 카페도 좋았고, 트빌리시 쪽으로 가는 길에 위차한 노천카페가 아주 좋았다. 거기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다가 돼지감자 구이를 시켜 먹었다. 조지아의 돼지구이들은 환장할 맛이었다. 괜히 숙소 후라이팬에 대충 구워먹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여행 중 소중한 인연들에게 선물할 겸 폴라로이드를 갖고 다닌다. 몽골에선 정자매도 폴라로이드가 있어 우리 카메라를 쓰지 않았고, 여기서 이걸 또 개시했다. 에릭과 나딘에게도 한 컷, 주인 아줌마와 아저씨도 한 컷 찍어서 작은 선물을 했다. 떠나는 날 아침에는 5일치 숙식과 투어 비용에다가 아저씨 아줌마에게 소정의 금액을 더 드렸다. 아저씨가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줬다. 여러모로 조지아에서 느낀 행복의 팔십프로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다. 별거 없다. 숙소랑 주인장 잘 만나면 다 좋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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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민을 했다. 배만 타고 가면 핀란드, 북유럽인데 온 김에 향이라도 맡아보고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 고물가에서 빵만 뜯을 걸 생각하니 먹먹했다. 그러다 여편님이 이전부터 와인이 맛있다던 조지아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몽골, 러시아를 거치다보니 상대적으로 작은 조지아가 더욱 빛이 났다.

힘든 러시아 탈출 뒤에 이어진 조지아행 비행기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뒤엔 항공기 의자보다 더 큰 부부가 앉아 향기를 내뿜었다. 착륙 전에 창가로 파란 천둥이 반짝였다. 새벽 3시에 비몽사몽으로 공항에 내렸지만 180일짜리 넉넉한 비자를 받고, 웰컴투조지아라고 써진 환영 문구를 보니 마음이 풀어졌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동안 쓴 공항의 와이파이는 ILOVETBILISI였다. 러시아에서 느껴보지 못한 환대감이었다.



일정과 이동_2016_0915_1004

대략 20일 정도를 머물렀다.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2박을 하고, 북부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인 카즈베기에서 3, 다시 트빌리시 인근의 므츠헤타에서 1박을 했다. 그리고 동부 휴양지인 시그나기에서 무려 다섯 밤을 잤다. 다시 트빌리시를 거쳐 중서부 보르조미에서 4박을 하고, 서부 해안가의 최대 휴양도시 바투미에서도 4박을 했다. 우쉬굴리로 유명한 메스티야 지방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갈까 한다.


먼저 공항에서 트빌리시 시내로 가는 방법은 쉬웠다. 호스텔에서 안내해준대로 새벽 6시부터 운행하는 버스를 타니 편하게 갔다. 막상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는 하나 뿐인지라 헷갈릴 것도 없었다. 트빌리시 시내에선 터미널과 터미널을 이동할 때만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도 노선이 하나고, 소련 시절에 만들어서 그런지 러시아와 여러모로 비슷했다. 트빌리시의 케이블카를 탈 때 쓴 카드가 교통카드로도 쓰였다.


나머지 도시간 이동은 미니버스인 마슈르카(MARSHUTKA)를 이용했다. 각 마을 중심에 마슈르카 터미널이 있고, 어딘가에 노선과 시간표가 비치되어 있었다. (사전 파악이 힘든 경우 위키트레블의 도시 정보를 활용했다. )http://wikitravel.org/en/Batumi) 많은 블로그에서 마슈르카가 사람이 다 차면 출발하는 식이라고 나와 있어서 긴장했는데 우리가 이동한 노선 백이면 백, 정해진 시간이 있었고, 그에 맞춰서 출발했다. 우리가 이용한 노선은 트빌리시-카즈베기(2~3시간), 트빌리시-므츠헤타(30, 워낙 가까운 거리라 시내버스 식으로 버스가 계속 다닌다.), 트빌리시-시그나기(3시간), 트빌리시-보르조미(3시간), 보르조미-바투미(4~5시간)이었다. 더 장거리 노선의 경우 휴게소 들려서 밥도 먹게 해준다는데 우리 노선들은 기사 마음대로 들쭉날쭉이었다. 보르조미에서 바투미 가는 길에 여편님이 하도 급하다고 하니 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화장실이 깨끗한 주유소에서 멈춰 주시기도 했다. 요금도 대부분 20~30라리(여행 당시 1라리: 500)선으로 이동 비용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고, 이동 시간도 러시아 몽골에 비하면 소박했다.


트빌리시의 경우엔 북쪽의 디두베 터미널(DIDUBE역 근처, 므츠헤타, 카즈베기, 보르조미 등으로 가는 노선)과 남쪽의 삼고리 터미널(SAMGORI역 근처, 시그나기 등으로 가는 노선)로 구분되어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시장을 통과해서 찾아가려니 좀 헷갈리긴 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붙잡는 사람 말고 좀 가서 가게 주인들이나 기사 아저씨들한테 물어보니 잘 알려줬다.


트빌리시(Tbilisi)_0915_0917


숙박_WHY NOT TBILISI HOSTEL_도미토리_2

새벽 도착이고 시간도 넉넉하여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시내로 갔다. 미리 점찍어둔 두 곳을 둘러보았다. 시내의 복잡한 골목 안에서 호스텔을 못찾으니 동네 주민들이 알려주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방이 없다고 하여 WHY NOT호스텔로 갔다. 아침인데도 바로 체크인을 하게 해줬다. 혹시나 해서 16인 도미토리 방을 봤는데 농구장 반 만한 공간에 메트리스 16개가 부채꼴로 펼쳐져 있었다. 조심조심 러시아 여자 한 명이 자고 있다는 방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씻고 누웠다. 아침은 풍성하게 나왔지만 오랜만에 시설이 낙후된 호스텔을 쓰자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호스텔월드에 잘 나오는 호스텔답게 스텝들이 친절하게 이런 저런 정보도 주고 근처 맛집도 잘 알려줘서 무난하게 조지아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한숨 자고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러시아 여자가 일어나 있었다. 우리가 코리안이라고 하니 자기도 코리안이라고 한다. 스텝이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B양은 지금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여름방학을 이용해 터키와 조지아를 여행했다고 한다. 곧 개학이라 다음날 돌아간다고 했다. 터키는 동남부만 제외하곤 여행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하며, 와인보다 강한 조지아의 차차를 맛보여주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치 사회에 관심도 많고, 재밌어 보이는 친구였다. 하필 이날 몸이 안 좋아 함께 식사 한 번 못한 것이 아쉬웠다.


숙소 앞에는 SOFIA라는 식당이 있어 두 끼를 먹었다. 그 유명한 조지아의 만두, 킨칼리도 맛보고, 치즈와 야채가 푸짐한 샐러드도 먹었다. 여긴 그나마 가격도 높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었다. 또 다른 간이 식당 겸 와인샵에서 와인 옮기는 걸 구경도 하고, 하우스 와인도 한 병 시켜봤다. 날이 또 한가위라고 카차푸리라는 치즈전을 안주 삼아 보름달을 즐겼다.


시내 구경

올드타운으로 향하는 길에 카르푸와 주변 상점들을 구경했다. 장미 혁명의 나라답게 색색의 장미를 길가에서 팔고 있었다. 카르푸에는 갖가지 돼지고기와 와인, 러시아와 터키에서 들어온 물건들이 많아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올드타운을 돌아보니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프리덤 스퀘어의 카페에서 조지아 여행과 관련된 정보를 주워 모으다 점심을 시켰다. 양송이 버섯에 치즈를 얻은 철판 구이와 소고기 스튜, 글라스 와인이 속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오후엔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평소 케이블카 설치 반대론자라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한 번 타는데 1라리라는 가격에 나의 신념은 무너져내렸다. 이미 설치된 건 즐기자는 여편님의 의견에 수궁했다. 조지아의 여신이 있는 곳까지 시내 풍경을 보며 올라갔다. 언덕 너머에 보타니칼 가든도 구경가려고 했으나 곧 비가 내렸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따뜻한 차를 마시고, 정갈한 공원과 평화의 다리를 걷는 것으로 시내 구경을 마쳤다.

원래 다른 곳들을 구경하고 다시 트빌리시에 들리면 또 2~3일 묵으면서 다른 곳들을 둘러볼 생각이었으나 트빌리시를 벗어나 한적한 곳들을 즐기다보니 붐비고 비싼 도시에 다시 머물 이유가 없었다. 이후 트빌리시는 환승 지점으로만 거쳐갔다.



카즈베기(KAZBEGI)_0917_0920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조지아는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와인이 아쉬울 곳 없는 동네에서 자란 서양 여행자들은 캠핑과 트레킹을 위해 조지아를 찾는 것 같다. 우리도 코카서스 산맥의 향기를 맡아보고자 카즈베기로 향했다.


숙박_할머니 민박_더블룸_3

소문대로 버스에서 내리니 숙소 호객꾼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개 후보는 있었지만 우리를 낚은 할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우리와 함께 따라간 러시아 여자는 바로 그 집에서 머물기로 했고, 우리는 몇 군데를 더 돌아보기로 했다. 지도에는 숙소가 많이 나와있었는데 거리에 숙소라고 표시된 곳은 별로 없었다. 숙소라고 들어가보면 다들 방이 꽉찼다고 했다. 별 수 없이 할머니의 민박집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예카테리나는 할머니가 서비스로 내준 빵과 킹갈리를 먹고 있었다. 집 구조가 매우 특이한 것이 가운데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거실이 있고, 옆에 우리 방이 있고, 우리 방에 또 옆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옆 방을 거쳐 뒷복도로 가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가서 화장실이 있는 복도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가 차려주는 저녁은 킹갈리와 함박스테이크 같은 것들이었다. 처음엔 멋모르고 맛있게 먹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다 시장, 슈퍼에서 사온 인스턴트로 추정된다. 그래도 아침에 계란후라이는 아주 푸짐하게 해주었다. 카즈베기 집들엔 닭들이 돌아다니고, 골목엔 돼지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데 그 고기들은 다 누구 입으로 가는지 궁금했다. 또한 다음부터 마녀수프 끓여줄 것 같은 할머니들은 절대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조지아에선 예카테리나 말고도 많은 러시아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냉전시대 조지아가 구소련 연방 소속이어서 지금도 대부분의 조지아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잘 하고, 정치와 경제도 러시아의 영향이 절대적인 상황이라 그렇다.

예카테리나는 하루만에 러시아로 떠났고, 다른 방의 일본 여행자들은 3일을 함께 했다. 개인적이라는 일본 여행객의 이미지 답게 밥 먹을 때만 말을 좀 섞었다. 커플인 줄 알았는데 그냥 대학교 자전거 동아리 친구란다. 마지막날엔 다른 친구 한 명도 합류했다. 각자 기한이 다르지만 여러날 동안 자전거로 조지아를 여행하고 있단다.


카즈벡산(KAZBEK MOUNTAIN)과 삼위일체 교회(GERGETI TRINITY CHURCH)

카즈베기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카즈벡산과 산 언덕에 자리한 삼위일체 교회이다. 삼위일체 교회는 차로도 접근이 가능한 정도지만 나의 원대한 목표는 카즈벡 산을 더 오르는 것이었다. 교회를 넘어 더 올라가면 메테오 산장이 있고, 해발 4천미터 정도에 교회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카즈베기에 있는 등산 업체에 알아보니 꽤나 힘든 트레킹이었다. 산장은 말 그대로 건물만 있는 것이라 우리가 음식과 침낭 등을 다 챙겨야 했다. 네팔의 가이드, 포터, 롯지 콤보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꿈도 못 꿀 것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삼위일체 교회를 보고, 올라갈 만큼만 더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래도 간식 거리는 챙기고 길을 건너 마을 길로 들어갔다. 곧 개울길이 나오고 얼마 안가 가벼운 언덕으로 진입했다. 양 떼와 함께 아기자기한 계곡이 보이고 돌아오르니 그 유명한 삼위일체 교회를 볼 수 있었다. 교회를 둘러보고 언덕에 비스듬히 누워 카즈벡산의 빙하와 그 아래 계곡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이런 풍경을 봐서 그런지 계곡이 아주 아름답게 보였다. 네팔에서 만난 파울로는 안나푸르나가 너무 좋아 밤에 안나푸르나와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기도 했다는데 그 심경이 이해가 갔다.


여편님이 틀어주는 아델 노래와 함께 한참 풍경을 즐겼다. 그리고 계곡 사이로 보이는 주황색 집까지만 더 올라보기로 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도 꽤나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되돌아 오면서 삼위일체와 그 뒤로 펼쳐지는 산맥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다시 마을로 내려올 때는 교회 옆에 표시된 길로 내려갔다. 전날 여기를 다녀간 예카테리나가 우리에게 한 길은 개을을 따라 가는 길이고, 한 길은 차가 다니는 먼지길이라고 했다. 우리가 내려간 길이 그 길이었다. 매우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니 차들이 오르내리는 구불길이 나왔다. 먼지를 잔뜩 먹으며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단체로 산을 오르는 조지아 대학생 집단도 만났다.


점심 때가 지났지만 간식이 부족해 오면서 점 찍어둔 케밥집으로 갔다. 조지아식 케밥이라 주로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갔고, 크기와 양념 구성은 터키식이라 맛있었다. 나름 산맥뷰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 겁 많은 아기 양 한 마리가 있었다. 조지아엔 유독 고양이가 많았는데 여기서부터 여편님의 고양이 로맨스가 시작됐다. 보통 케밥집 고양이들은 빵이나 야채는 줘도 쳐다도 안본다. 마음 약한 여편님은 선뜻 아까운 케밥 고기를 한 점 두 점 떼어주기 시작했다. 오후라 케밥 하나를 나눠 먹었다. 다음날에 여길 다시 찾아 각자 케밥 하나씩을 먹었다.


옆 마을 산책과 룸스 호텔(ROOMS HOTEL KAZBEGI) 방문

다음날도 계속해서 트레킹의 흥을 이어가기 위해 옆 마을까지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건넛마을로 넘어가서 남쪽 마을로 향했다. 언덕을 넘어가니 카즈베기와 아랫마을 사이엔 광활한 평지가 펼쳐졌다. 오른편엔 그대로 산맥이 있고, 벌판엔 걷는 사람이 없었다. 한껏 벌판을 즐기며 가다보니 말 탄 무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여기도 승마 트레킹이 가능하다고 한다. 좀 더 가니 마을이 나왔고, 마을 언덕엔 성탑도 있어 꽤나 운치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집에서 쉬다가 룸스 호텔을 찾아갔다. 다들 카즈베기에 오면 룸스 호텔을 찾는다기에 얼마나 좋은지 궁금했다. 물론 다들 우리처럼 호텔에 묵지는 않고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것 같다. 룸스호텔은 예전 소련 시절에 고위급 간부들이 휴가를 보내던 곳이라고 한다. 힘겹게 골목길을 올라가니 거대한 나무 건물이 있었다. 레스토랑인 일층 내부로 들어가보니 그 명성을 인정하게 됐다. 오래된 책과 널찍한 쇼파, 고즈넉한 인테리어가 잘 조화되어 있었다. 심지어 거대하게 펼쳐진 풍경은 전체가 산맥이고 오른쪽 15도 정도에 교회가 자리했다. 아이맥스 영화 한가운데 떠있는가 싶었다. 레스토랑의 가격도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각자 차 한잔을 시켜놓고 카즈베기의 여운을 곱씹었다.

나중에 보르조미에서 만난 분은 하루를 룸스호텔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객실 내부는 물론 스텝들의 서비스도 너무나 훌륭했다고 한다.



므츠헤타(MTSKHETA)_0920_0921

성경 이야기에 조예가 깊은 여편님이 므츠헤타도 들러보자고 했다. 트빌리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가깝지만 훨씬 쾌적했다.


숙박_아마찌게스트하우스(ARMAZI GUEST HOUSE)_더블룸_1

어차피 하루 잘 거라 중앙 광장 옆에 숙소를 찾았다. 여편님이 점찍어둔 곳이었는데 마침 나무 그늘에서 놀고 있던 아저씨가 이 집 주인이었다. 대충 저녁과 아침을 포함해 가격 쇼부를 치고 방을 봤다. 나름 옥탑방에 쾌적하고 넓은 테라스에서 경치도 볼 수 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자기 벤츠로 모나스터리를 보러 가면 된다고 했다. 본인의 벤츠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드라이브 가면서 자기는 스탈린도 좋아한다고 했다. (조지아에 오기 전에 발견한 놀라운 사실 중 하나가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저녁은 아저씨 부인이 아닌 할머니(아저씨 엄마)가 해줬는데 간단한 카차푸리와 햄, 소세지 등이었다. 카즈베기에서도 그랬고 밥 차려주는 할머니들이 거동도 불편한 수준이라 음식 나르는 걸 가만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다음엔 꼭 밥 잘해줄 것 같은 인상 좋고, 건강한 아줌마가 있는 민박집을 잡겠다고 다짐했다. 와인도 별도로 10라리나 받았는데 그 값을 할만큼 맛있었다.


중앙 성당과 언덕 성당

므츠헤타 광장엔 중앙 성당이 있는데 여기에 예수의 망토가 있어서 유명하다. 성당의 성곽을 중심으로 광장이 형성되어 있다. 성곽 안에 들어가면 조용하고 좋다. 광장에 관광 안내소가 있어 들어가보니 언덕 성당 투어도 잡아주고, 관광 안내도도 비치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다른 지방의 안내도도 있어 다 챙길 수 있었다는 거다. 광장 한켠에 에티오피아 커피라고 파는 길거리 커피 아저씨한테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터키식으로 타주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기념 사진도 한 방 찍고, 다음날 아침에 또 마시러 갔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숙소 주인 아저씨와 오후에 언덕 성당으로 갔다. 오래된 벤츠는 승차감도 좋고, 내부도 고풍스러웠다. 언덕 성당에서 세 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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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간의 쌍트페테르부르크 생활과 러시아 여행하며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본다.


쇼핑

몽골을 지나 러시아에 들어오고 나니 우리의 복장과 도시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주로 날씨가 더운 아시아 남쪽에선 반팔티만 돌려가며 입으면 됐고, 몽골은 털이나 가죽 아니면 뭘 입어도 빛이 안나는 동네였다. 모스크바에서도 쇼핑을 시도했지만 컨디션 난조로 여의치가 않았다. 기차에서부터 니키타는 여편님의 냉장고 바지 보고 H&M이냐고 물었고, 러시아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비닐 봉지 태반이 H&M이라 쌍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H&M이 있는 쇼핑몰을 찾아갔다.

우선 내가 아끼던 네팔산 등산 바지의 쟈크가 나갔다. 여편님은 살찐 탓을 하지만 과도한 복근 운동이 원인이다. 여러 스포츠 브랜드 샵을 돌아봤다가 나이키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직원들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다행히 아웃도어 제품을 할인해서 파는 곳이 있었다. 그 유명한 콜롬비아 등산 바지를 4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색깔도 군청색, 혁명적이었다.


패션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여편님은 엄청난 저력을 발휘해 쇼핑몰을 휘젓고 다녔다. 모스크바에서 본능적으로 레깅스와 원피스(몽골에서 새로 산)를 두고 오시기까지 했다. 러시아 여성들의 필수품인 체크 무늬 셔츠를 샀다. 핀란드 풍 초록무늬를 H&M에서 샀다. 마침 유니클로도 있어서 기능성 제품과 청바지를 구매하고 GAP에서 파란 티셔츠도 5천원에 하나 건져오셨다. 내가 글을 쓰는 지금도 이날 구성한 파란티, 청바지, 셔츠 라인을 고스란히 입고 계신다.

북유럽과 가까워서 그런지 H&M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동구권과의 끈끈함 때문인지 나이키 보단 아디다스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주로 효도르 같은 형들이 아디다스 세트를 위아래로 입고 다닌다.


식생활_집밥

오랜만에 쾌적한 주방을 가진터라 마음 껏 해먹었다. 아침과 저녁은 모두 숙소에서 만들어 먹었다. 한 번은 시장에 가서 커다란 대구를 사다가 대구탕을 끓여 먹었다. 초반엔 집 근처의 ㄷ마트를 이용하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해외 업체인 ㅅ마트를 발견하면서 여길 주로 이용했다. 집 앞에 친절한 동네빵집이 있어 아침은 여기서 산 빵에 계란 등을 곁들여 먹었다. 일하는 언니들이 러시아어 못하는 우릴 잘 배려해줬다.

워낙 땅이 넓은 나라라 고기들 많이 좋다. 소세지와 훈제 고기만 가볍게 구워도 마약 같은 황홀감을 느꼈다. 몽골에서 돼지 못 먹은 한을 마음껏 풀었다. 러시아의 야채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박이다. 호박이 워낙 맛있어서 어떤 요리에 넣어도 맛을 더했다. 오이는 기차역 매점에서도 팔 정도로 인기도 많고, 개운하다.

여편님의 파스타도 맘껏 먹었는데, 파스타 면 중 링귀니를 발견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우동 못지 않은 통통한 질감에 든든한 맛이 있다. 한 번은 해산물 믹스를 사다가 국물을 내고 칼국수처럼 먹었다. 볶음 요리를 하고 남은 국물에 비벼 먹기도 좋았다.

마지막날엔 열정이 불타 올라 소고기 배추 전골인 밀푀유 나베까지 만들어 먹었다. 이 얘기는 별도로 찬양글로 정리해뒀다. (관련글: http://cordon.tistory.com/129)


식생활_외식

집 근처에도 괜찮아 보이는 펍이 많아 한 두번은 나가서 먹자고 했다. 결국 저녁은 모두 집밥이 됐다. 점심은 종종 나가서 먹었는데 러시아 식당들은 평일엔 런치메뉴가 많았다. 어느 케밥집은 200루블대에 괜찮은 케밥 코스를 줬다. 피자 먹으러 갔더니 피자집 런치는 국과 밥이었다. 소문대로 유럽엔 스시가 고급요리라 400루블에 런치 메뉴로 롤과 초밥 세트도 맛봤다.


식생활_맥주와 포도주

러시아는 보드카의 나라지만 강한 술을 꺼리는 우리는 맥주와 와인을 많이 마셨다. 맥주가 진하고 개운하다. 특히 APCEHAbHOE라는 식으로 써진 맥주가 엄청 맛있었다. 가장 대중적인 맥주인 것도 같다. 포도주는 주로 100~200루블 대의 저렴한 것만 골라 마셨는데도 대부분 흡족스러웠다. 흡족스러웠던 것들은 흑해연안에서 재배된 것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조지아와 가까운 지형이라 포도주가 잘 되는 것 같았다. 러시아 포도주들은 다른 것들에 비해 좀 더 진하고 강했다.


카페_GRAND CAFE FRIDA

도착 첫 날 동네를 돌아다니다 발견했다. 원래 프리다를 좋아하니 여러번 찾았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라 음료만 마시면서 글을 쓰고 시간을 보냈다. 프리다의 여러 그림과 관련 책들, 라틴 음악으로 풍취가 넘치는 곳이다. 러시아에서 왠 프리다라고 하기엔 그녀와 러시아가 인연이 깊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에게 밀려 멕시코로 망명을 갔다. 이때 프리다와 리베라의 집에서 살았고, 프리다와 트로츠키 사이에 썸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정리_지하철

모스크바와 쌍트페테르부르크엔 지하철이 있다. 냉전을 거치면서 대피소로도 쓸 생각이라 아주 깊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한 오백년은 내려가야 된다. 그리고 워낙 예술적인 나라라 지하철 역도 하나하나 예술이다. 특히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각 역별로 인상적인 조형물들이 많다. 붉은 광장역이 아주 빼어나다는데 컨디션 난조로 못 간 것이 아쉽다.

모스크바의 역들은 멋도 멋이지만 아주 직관적이고 체계적인 환승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 노선도만 봐도 어떻게 가면 될지 딱 나온다. 모든 노선이 대각선 혹은 직선으로 움직이고 그 가운데를 하나의 노선이 원 모양으로 잇고 있다. 대부분 환승도 한 두 층만 내려가면 되는 구조다. 초행인 우리도 두어번 타니 머리 속에 노선도가 훤히 그려졌다. 들리는 전설엔 지하철 건설 도안을 몇 번이나 보고 고심하던 스탈린이 커피 잔을 탁 내려쳤더니 노선도에 원 모양의 커피 흔적이 남았고, 그 것이 가운데 축이 되는 노선이 되었다고 한다.

모스크바 역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은 러시아포커스(http://russiafocus.co.kr/travel/2015/01/18/46443)에서 주워들을 수 있었다.


정리_러시아의 인종과 직업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는 부분이다. 처음 이르쿠츠크에 당도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이 먼 시베리아 한 복판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도 대부분 유럽 사람처럼 생긴 것이다. 그러다 시장을 가보니 비로소 친숙한 얼굴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관광지가 아닌 모스크바나 쌍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를 지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유럽계 사람들이다. (예쁜 언니들이 많았다. 일일이 챙겨보느라 눈코 뜰새가 없었다. 모스크바의 미녀들은 화보에 같지만 쌍트페테르부르크의 미녀들이 좀 더 자연스러웠다. 물론 훈남들도 많아 여편님도 딱히 의의를 재기하진 않았다.) 마트에서 계산대 일을 하는 분들도 대부분 유럽계다. 중앙아시아쪽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로 정비, 청소 등의 일을 많이 한다.


정리_러시아의 보안

국내외 여러 문제로 테러의 위험이 증가하면서 러시아 당국의 보안도 강화된 것 같다. 기차역이나 공항을 들어갈 때도 보안 검색대를 거쳐야 하고, 붉은 광장 같은 곳을 들어갈 때도 철저한 보안 검색이 이뤄졌다. 지하철을 탈 때도 모두는 아니지만 불심검문이 행해졌다. 모스크바에서 나와 여편님은 동시에 한 번 검사 대상으로 집혀서 검사를 했다. 쌍트페테르부르크에선 나 혼자 검사 대상으로 지목되어 배낭 검사를 당했다. 테러의 표적이 되는 것 보다야 테러 분자로 의심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정리_여행 경비_루블의 혜택

원래 러시아 대도시는 물가가 비싸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싸다싸다 하면서 다녔는데 이건 루블 가치의 끝없는 추락 때문이다. 십년 치 그래프를 보니 화폐가치가 절반은 떨어졌다. 유명 레스토랑에 간 것이 아니니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교통비였다.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기차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2등석 2인 기준, 울란바토르-이르쿠츠크 18만원, 이르쿠츠크-모스크바 50만원, 모스크바-쌍트페테르부르크 10만원 총 78만원을 러시아 철도청에 지불했다. 그 외 에어비엔비(34만원)을 포함해 180만원 정도가 먹고 자고 보는데 들어갔다. 258만원.



부록_러시아 연방 탈출기(벨라루스 민스크 공항 환승을 통한 러시아 출국)

북유럽을 단념하고 조지아로 가기로 했다. 다시 모스크바를 갔다가 남쪽 국경까지 가서 육로로 가려면 대략 50시간은 족히 걸린다. 비용도 비슷할 것 같아 비행기를 예매했다. 환승 시간과 비용 등을 감안해 BELAVIA 항공을 선택했다. 오전에 쌍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출발해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약 7시간을 대기한 뒤 새벽에 조지아 트빌리시 공항에 떨어지는 여정이었다.


쌍트페테르부르크 공항인 레닌그라드 공항으로 가는 건 쉬웠다. 공항버스 탄다고 표시된 역에서 내려 올라가니 바로 공항버스 타는 곳이 있었다. 출발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1시간을 기다려 탑승 수속을 하니 짐은 한 번에 가고, 다음 티켓까지 두 장의 티켓을 줬다. 일반적인 환승 항공 타는 방식이다. 우리 게이트가 있다는 쪽으로 들어갔다. 보안검색을 통과했다. 걸어가는데 출국도장 찍는 출입국 관리소(IMMIGRATION)이 없었다. 바로 면세점과 비행기 탑승게이트가 나왔다. 불안한 생각이 들어 점심 먹자는 여편님을 말렸다.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 탑승게이트에 항공사 직원에게 갔다. 출입국 관리 안하냐고 물으니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한 연방이라 항공 노선도 국내선(DOMESTIC)으로 분류된단다. 안내 센터를 찾아가니 사람도 없고, 전화 문의를 해보니 뭐 그냥 나가면 된단다.

같은 연방 소속인 러시아, 벨라루스 사람들은 그렇다쳐도 우린 벨라루스 가려면 사전비자(비자 수수료 60유로) 가 있어야 한다. 경유비자도 사전 발급(비자 수수료 20유로) 받아야 한다. 일단 내려보면 알 거라고 생각하고 비행기를 탔다. 내가 이제껏 타본 비행기 중 가장 오래된 연식의 비행기였다. 뒤로 잘 제껴지지도 않는 의자였다. 햄과 마요네즈를 아껴바른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줬다.


민스크 공항에 내려서 걸어서 도착장으로 향했다. 짐 찾는 곳을 건너뛰니 바로 공항 내 도로였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나가서 다시 건물로 들어가서 환승하면 된단다. 이런식으로 벨라루스 땅을 밟을 수 있다니 말이 되나. 불안한 마음에 재빨리 탑승게이트로 가려고 했으나 보안검색대 통과는 출발 2시간 전부터 가능하단다. 또 불안불안 떨다가 공항 안내센터에 비자 문제를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나는 모른다. 이번엔 수 많은 벨라루스 항공 탑승수속 데스크로 갔다. 다행히 직원이 친절하게 우리의 상태를 파악하고 전화로 확인까지 해줬다. 출국 심사 때 반드시 러시아 입국 카드와 방금 타고 온 쌍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민스크 공항까지의 항공권을 첨부하란다.

여편님은 안심했지만 난 조금 더 찝찝한 구석이 남았다. 이런 저런 사례를 보니 5년 전에 우리처럼 환승만 하다가 200~300유로를 경유비자 명목으로 뜯겼다는 사례도 있었다. 러시아 대사관에 공지 사항을 보니 친절하게 안내가 되어있었다. 러시아 입국 후 벨라루스를 경유해 러시아 연방 이외의 나라로 출국할 경우 러시아 당국에서는 이 출국 기록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나라가 출입국 카드를 함께 쓰고, 벨라루스에서 출국하는 건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우리의 러시아 출국 기록이 없어 장기 체류자로 분류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다음 러시아 방문 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대략 5~10년 정도는 러시아 입국이 어려울 것 같고, 영원히 불가능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결론을 안고 벨라루스 공항 내 식당에서 아주 많있는 저녁을 먹었다. 감자고로케 비슷한 만두가 나왔다. 벨라루스 방문의 의미는 그 식사에서 찾기로 했다. 염려를 뒤로하고 출국심사를 받았다. 좀 뚫어지게 보다가 출입국카드를 회수하고 출국 도장을 찍어줬다. 고통의 하루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벨라루스를 육로로 경유하는 경우 사전 경유비자가 있어야 한다. 우리처럼 러시아 국내선을 이용하면 벨라루스를 비자 없이도 둘러볼 수는 있다. 이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우크라이나 등 러시아와 주변국 정세가 복잡해지면서 벨라루스 항공을 통한 환승이 많아진다고 한다. 혹시나 도움이 되었으면해서 자세히 정리해 보았다.



참고_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_박흥수

이 책을 읽은 건 아니고, 작년에 노유진의 정치카페 중 박흥수 기관사가 나온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엄청난 철도 매니아이자 기관사가 들려주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기다. 철도 여행에 대한 로망에 불을 지펴줬다.


참고_론리 플래닛_시베리아 횡단철도

최근 한국어판도 출간이 됐다. 이걸 사려다가 영문판 중고를 들고 갔는데 다행스러웠다.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타거나 만주 횡단 열차 등 겻가지 노선까지 갈게 아니라면 굳이 필요하진 않다. 가이드 순서도 유럽 기준이라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향한다. 오로지 이 열차만, 그리고 주요 역에 정차하면서 돌아볼 게 아니면 거의 펴볼 일이 없다. 모스크바나 쌍트페테르 등의 정보는 훨씬 잘 나온 곳이 많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등과 관련해선 몇 개 포스팅만 봐도 다 이해가 된다. 이르쿠츠크에서 던져 두고 왔다.


정리_독서와 영화

영화_미드나잇인파리

파리 부럽지 않은 도시에 있으니 여유로운 관람이 됐다. 안 본줄 알았는데 예전에 본 영화였다. 다시 보니 좀 더 재밌었다. 유명인사들을 하나하나 뒤짚어 보았다.


영화_트립투이탈리아

이탈리아 맛집 탐방영화다. 영화계에 큰 관심이 없는 나로선 공감대가 적었다.


독서_너의 시베리아_리처드 와이릭

조금 아쉬웠다. 거의 다 읽었더라도 실뱅 테송의 시베리아 책을 가져왔어야 했다. 횡단열차에서 대충 읽고 한국사람들이 많은 칸의 화장실에 놔두고 왔다.


독서_가난한 농민에게 고한다_레닌

크게 와닿는 담론은 없었다. 당시 러시아 농민 현실에 어지간히 가혹했나보다. 황제는 부르주아들의 지원에 의존하는 존재란 표현은 지금의 대통령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독서_죄와벌_도스토예프스키

바이칼에서 읽기 시작해 무거워 던져버리고 싶어 열심히 읽었지만 쌍트페테르부르크까지 따라왔다. 어두침침한 쌍트페테르부르크 방에서 하숙생 감성을 부풀리기에 좋았다. 역시나 대작이고 고전인 것이 그 구성이나 흡입력 면에서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것이 실감된다. 작가의 인생 얘기도 들여다보니 대작을 쓰려면 인생이 어지간히 가혹해야되나 싶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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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한국식으로 해석하면 성자 피터를 기리는 도시 이름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한동안은 레닌그라드라고도 불렸다. 여전히 러시아 사람들도 레닌그라드라고 많이 부르는 것 같다. 뭐가 됐든 이름만 들어도 당기는 곳이다. 당초 계획은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민지느님의 강력한 추천과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 가보자 하는 마음이 일었다. 거기다 몽골에서부터 모스크바까지의 강행군으로 체력도 떨어진 터라 에어비엔비를 통해 안정적인 숙소를 마련했다. 대략 2주의 시간을 보냈다.


발레나 클래식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쌍트페테르부르크는 내가 경험한 대도시 중 가장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맑을 때는 지독하게 화창하다가 곧 흐려지고 찬 바람이 불면 한없이 음습하고 우울해진다. 러시아 대제국 시절 만든 계획도시답게 많은 유산과 공원, 곳곳에 오래된 건물들 모두 인상 깊은 도시다. 베네치아 뺨치게 운하가 흐르고 있고, 파리 못지 않은 규모와 수준의 박물관이 있고, 런던 부럽지 않게 공원도 많다. 8월 내내 교통수단에 의지해 다니느라 축난 몸을 추스릴 겸, 가능한 발로 도시를 구경했다.


숙박_0831_0914_올가아파트 더블룸_2

모스크바에서 에어비엔비를 통해 1주를 예약하고, 머물면서 1주를 연장했다. 예약변경이 까다롭다는 안내문이 있어 신경이 쓰였는데 머물면서 연장을 하는 건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일본에서 한 번 에어비엔비의 체계를 이해하고 나니 호스트인 올가 얼굴 한 번도 못보는 건 당연하다 싶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시스트가 우리를 맞아 간단한 안내를 해주고 청소를 마치고 사라졌다. 거실은 없고, 화장실이 하나, 넓고 쾌적한 주방 겸 식탁이 하나, 독방, 2인실, 4인실 방이 세 개인 하숙집 구조였다. 건물이 정사각형에 가운데가 뚫린 구조라 우리 방 창문으론 별로 빛이 들지 않았다. 죄와벌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음습한 방이었고, 잠을 많이 잤다.

대략 구도심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지하철 역에서도 5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집 맞은 편에 무려 시티은행이 있었고, 여러 대사관들이 줄비한 골목이었다. 여름정원과는 아주 가깝고, 겨울궁전 등 다른 명소와도 무리하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집 바로 앞은 근린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바로 또 다른 공원(TAUNDE GARDEN)과 연계되어 삶의 질이 높은 동네였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러시아 가족이 이틀, 중국인 여자분이 4~5, 러시아 여자분이 2일 정도 머물렀을 뿐이라 대부분 조용하고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


관광_발레

쌍트에 가면 발레를 봐야한다. 러시아 발레는 여편님의 소망이었다. 한국에서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하셨다. 난 아는 것이라곤 차이코프스키 밖에 없었다. 차이코프스키가 폴란드 사람이냐 러시아 사람이냐를 두고 불같은 논쟁이 일기도 했다.

몇몇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보니 지금 하는 공연은 대부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고가의 공연이었다. 발품을 팔아 유명 극장 중 하나인 알렌산드 극장도 가보고, 시내의 티켓부스에도 가봤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도 느꼈지만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러시아의 주요 공연단이 쉬는 시기였다. 발레, 클래식 등은 대부분 구월 말에나 정기 시즌을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에 하는 공연도 있었지만 밤 늦게 끝나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 꺼려졌다. 이르쿠츠크에서 만난 독일 커플은 역에서 내려 숙소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5000루블을 내라고 했단다. 못내겠다고 하니 내려주지 않고 차를 빙빙 돌리더란다. 다행히 크리스티나가 창문 밖으로 소리쳐 사람들이 도와줬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싶은 생각이 코털만큼도 들지 않았다.

쌍트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의 공연도 보고 싶었다. 이것도 구월말에나 정기 공연이 시작됐다. 개막 공연을 제외하곤 대부분 저렴한 가격에 관람이 가능했다. 역시나 러시아는 더 추울 때나 아주 백야일 때 와야하는 것 같다.


관광_여름정원(SUMMER GARDEN)_0902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처음 관광을 나선 곳이다. 관광용 보트가 자주 지나는 운하를 건너가면 큰 공원이 나온다. 무슨 생태 공원인줄 알았는데 러시아 황제가 조성한 여름정원이라고 한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결혼 사진 촬영을 위해 다니는 신랑신부 일행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러시아도 9월이 결혼 성수기라 그런지 도시 곳곳에서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다니는 커플과 이들을 축하하는 무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기념 촬영을 박물관이나 공원에서 하고, 길가에서까지 축하파티를 이어가고 있었다.


관광_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DOSTOYEPSKY MUSEUM)_0905

모스크바에서도 박물관을 갔고, 에르미타주라는 거대한 산을 눈앞에 두고 있어 여기까지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죄와벌로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곤 한다. 근처에 아시아슈퍼와 시장이 있어 겸사겸사 찾아가봤다. 박물관 맞은편에 야외 자리를 겸한 카페가 운치 있어보였고, 그 옆에는 딱 봐도 소문난 도넛츠집이 있었다. 도너츠를 테이크 아웃해서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먹었다. 또 먹고 싶어 사오니 바로 비가 오는 바람에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에서는 도너츠를 먹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다음날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간식으로 먹었다. 식었지만 기름기가 좀 빠지니 또한 다른 맛이 있었다.


관광_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MUSEUM)_0906&0909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과 달리 약탈이 아니라 러시아 황실의 수집력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겨울궁전(WINTER PALACE)라고 불리는 건물과 그 옆의 00에르미타주라고 불리는 건물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공부를 좀 하고 가는 것이 좋은 곳이다.

나름 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침 열시부터 길을 나섰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는 무려 일주일 만에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대한 겨울궁전이 보이는데 어디가 입구인지 몰라 헤멨다. 옆으로 갔다 광장 앞으로 가니 정문이었다. 자동 티켓 판매기로 표를 사서 줄을 섰다. 추이를 보니 이 줄은 티켓을 건물 안에서 사는 줄이었다. 이미 티켓을 샀으면 아무도 없는 옆으로 가면 되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인산인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인파가 엄청났다. 안내도 하나를 들고 검색대를 통과하려니 물은 반입이 안된단다. 다시 나가서 물도 버리고 무거운 짐도 맡겼다. 한 번 진을 빼고 12시가 되서야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떤 순서로 관람할 지 감도 없이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갔다. 이층 큰 방의 러시아 황제 사진들부터 봤다. 대충 감을 잡고 러시아 왕실의 유산부터 보기 시작했다. 에메랄드 톤으로 장식된 방과 고풍스러운 서재, 공주님 방 등 여러 컨셉의 방들이 인상적이었다. 비잔틴제국 특별전도 한 켠에서 봤다. 각종 언어의 단체 관광객들에게 휩쓸리다보니 한 것도 없이 힘이 빠지고 배가 고팠다. 다시 일층으로 내려가 준비한 간식과 샌드위치를 주문해 먹고 전의를 다졌다.

자연스레 일층의 이집트와 그리스 전시관으로 향했다. 이집트 근방의 토기들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관능적 조각상들이 인상적이었다. 아테네의 박물관이 공사 중이라 주요 조각상을 교환 전시하고 있었다. 거대한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 이탈리아의 그림을 봤다. 다빈치의 여인 그림 주변에 또 인파들이 몰렸다. 새삼스레 사진 찍기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이 낯설어 보였다. 벽면에 붙어 그림을 조망하고, 다른 작가의 비슷한 그림들을 봤다. 다양한 주제와 관능적, 육체적 예술들이 재밌었다. 중세 시대 유럽 그림은 대부분 종교에 한정되어 있어 별 흥미가 없었다. 종교에 대해 조외가 깊은 여편님은 시대와 주제를 막론하고 유익한 관람을 하셨다.

전시도 전시지만 거대한 복도를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틈틈이 창밖으로 보이는 광장의 풍경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곳곳의 현대 미술 기획전도 다 재밌다. 스페인 그림까지 보고나니 금새 5시가 되었다. 이미 체력과 정신적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 며칠 뒤 재관람을 하기로 했다. 대략 반은 봤다고 생각했다.


이틀간 전열을 정비하고 금요일에 재방문했다. 일차 방문과 달리 입장에 시행 착오가 없으니 한결 수월했다. 물론 관람은 지난 번과 비슷한 11시 반 무렵에 시작했다. 일차에 이어 네덜란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종교적 성향이 약한 곳이라 그런지 정물, 항구, 시장 등 많은 주제를 다양한 색감으로 그린 그림이 많았다. 특히 245번 방은 바닷과 시장 그림을 비롯해 모든 그림이 인상 깊었다. 램브란트 방은 관람객으로 넘쳐났고, 그 옆의 루벤스, 프란스 스나이더의 전시실은 차분했다. 대강 유럽 그림들을 마무리하니 3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고흐가 네덜란드, 고갱이 프랑스, 고야가 스페인 출신이라는 고씨 화가 계보도 정립했다.

점심을 먹고 남은 전시를 보기로 했다. 3층의 넓은 공간에 일본,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 등 광활한 지역의 전시물을 볼 수 있었다. 유리로 조각한 새는 아주 황홀했다. 한국의 도자기 특별전도 있었다. 대충 보려고 했는데 여편님이 이 도자기들 어차피 매번 해외 출장 가는 것들이라 한국에서 보기 힘들다고 했다. 열심히 봤고, 고향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지하에 고대 시기 유물들은 빠른 속도로 스캔했다. 체력이 좀 남아 러시아 왕실 유물 중 인상 깊은 것들을 다시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에메랄드 방을 다시 봤고, 황금으로 조각된 움직이는 공작새도 여유있게 지켜봤다.

관람을 마치고 네바 강변 출구로 나와 강가를 걷고, 다리를 건너고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걸어갔다. 쌍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이었는데 종일 박물관 안에만 있었다. 쌍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전날, 여편님이 복습을 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겨울궁전 광장 맞은 편 건물에는 별도로 세잔, 피카소, 고흐, 고갱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에르미타주 통합 입장권으로 관람이 가능한 곳이다.


관광_피의 사원, 미하일로브스키 공원, 러시아 박물관_0908

에르미타주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상적인 성당을 봤다. 작은 다리 건너편에서 보니 에뻤는데 엽서에서도 활용되는 각도였다. 피의 사원으로 불리는 성당이었다. 별도로 날을 잡아 이 근방을 다시 걸었다.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안을 볼 생각은 없어서 주위만 둘러봤다. 운하를 끼고 있어 더욱 아름답게 비치는 성당이다. 그 옆으로는 미하일로브스키 공원이 있고, 공원을 걷다 보이는 큰 건물이 러시아 박물관(RUSSIAN STATE MUSEUM)이었다. 원래는 러시아 박물관도 한 번 볼까 했으나 에르미타주를 소화하기에도 벅차 참기로 했다. 주로 러시아 미술을 다룬다고 한다.


관광_발틱해 항구_0911

떠날때가 다가오면서 도시 탐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핀란드 행을 단념하면서 발틱해 색깔이라도 보고 싶었다. 지도를 보고 항구쪽으로 보이는 곳으로 찾아갔다. 항구와 가장 인접한 지하철 역에서 내려 걸어갔다. 아주 기다란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진 하천 공원을 따라 걸었다. 일반 주택가라 그런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커서 그런지 반려견으론 다리 짧고 귀여운 개들이 많이 보인다. 더 가봐도 항구 가는 길은 막혀있었다. 그 주변을 헤메다 트렘을 타고 다른 항구쪽으로 갔다. 이 때 쌍트페테르부르크 트램을 처음 탔는데 아주 신식이고 쾌적했다.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와이파이도 제공한다. 이르크추크에서 탔던 혁명시대 트램과는 차원이 달랐다.

항구쪽은 매우 비싸보이는 동네였다. 개들도 털이 고왔다. 항구쪽으로 가니 터미널과 페리가 있었다. 페리가 워낙 커서 바다는 티끝만 보였다. 터미널에 들어가봤다. 어디에서도 바다 전망은 없었다. 간이 매점에서 파는 핫도그가 너무 맛있어 11도그했다. 집에 돌아와 아쉬운 마음에 연어회와 해물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관광_폴엔피터 포트리스(PAUL AND PETER FORTRESS)_0912

여편님의 핀란드에 대한 갈망은 대단했다. 카모메 식당과 무민의 고향을 가고 싶어했으나 경제적 이유로 큰 단념을 하셨다. 발틱해를 꼭 보겠다는 열망으로 보다 확실한 루트를 찾아냈다. 해변까지 조성된 곳이었다. 전날의 실패를 뒤로하고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려 트램타는 곳으로 갔다. 공사 중이었다. 가도가도 공사는 이어졌다. 허무함에 맥도날드를 들이키고 폴엔피터 포트리스가 있는 섬 방면으로 갔다. 이번엔 아주 오래된 트램을 잡아타고 근방에서 내려 걸어갔다.

알렉산드리아 공원에는 극장도 있었고, 쌍트페테르부르크 도시를 축소한 모형도 있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강변에 위치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강 건너로 쌍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명소를 조망했다. 그리고 의욕적으로 다리를 건너 폴엔피터 포트리스로 들어갔다. 그냥 성당 정도가 있는 줄 알았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돌아나오면 성벽도 있고, 강물이 흐르는 모래밭도 있다. 맞은 편에 에르미타주도 평범하게 펼쳐진다. 이어서 초록색 잔디밭까지 돌아나오는 알찬 산책이다.


관광_SMOLNY 공원_0913

떠나기 전날 가벼운 마음으로 집 옆의 공원 산책이나 하려고 했다. 여편님의 열정으로 공원을 건너 SMOLNY 공원과 쌍트페테르부르크 청사가 있는 공원까지 갔다. 옆의 SMOLNY 수녀원은 공사 중이라 가까이 가진 못했다. SMOLNY는 러시아 황실이 왕족과 귀족 소녀들을 위해 만든 교육시설이었다고 한다. 레닌이 혁명 전에 연설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설명해주셨다. 유독 피곤했던 나는 서둘러 집 근방의 카페로 돌아가자고 했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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