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가느냐 마느냐, 고민의 연속이었다. 보노보노의 쿠바 체험담에 여편님은 쿠바행을 포기하려고 했으나, 고민하던 여편님의 베프 솔님이 쿠바행 비행기를 끊었다. 우리도 바로 보고타-아바나 비행기를 끊었다.


공항_보고타_Bogota El Dorado_0815

쿠바는 기다림의 나라라고 했다. 공항 길도 길었다. 보고타-아바나 노선은 새로 생긴 Wingo 항공을 이용했다. 엄청 미리 한 것도 아닌데 값이 쌌다. 미리 도착한 보람도 없이 체크인은 출발 3시간 전에 이루어졌다. 거의 일등으로 체크인을 했다. 다음에 어디 갈 건지를 묻는다. 아웃 티켓을 보여줬다. 쿠바 여행자 카드를 사려고 했는데 콜롬비아 화폐로만 받는다고 한다. 전날 약간만 남기고 이미 다 환전해버렸다. 환전소로 가서 예전에 남은 페루 100페소를 환전해서 없애버렸다. 돌아가서 여행자 카드를 사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남은 돈에 몇 달러를 보테서 햄버거 세트를 하나씩 사 먹었다. 버거왕 옆, 콜롬비아 브랜드인데 빵이 맛있다. 탑승구로 향했다. , 탑승구가 바뀌었다는 신호가 나온다. 부랴부랴 다른 게이트로 이동했다. 지연이다. 거의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려서 탑승했다.


공항_아바나_La Habana Jose Marti_0815_0829

보고타 공항에 비하면 아바나 공항은 참 소박한 편이다. 내려보니 출국장이 사람이 한 가득이다. 더워보인다. 출입국 수속은 간단하다. 여행자 카드 내미니 도장 쾅, 건강 체크 종이 던지니 끝이다. (여행자 보험 등은 묻지도 않는다.)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한국 사람을 만났다. 간단히 환전을 하고 시내로 가는 택시를 같이 탔다. 덕분에 혼잡한 곳에서 택시 기사 고르는 수고를 덜었다. 베다도 숙소 앞에서 먼저 내리고 이 친구들은 센트로의 요반나로 향했다.


2주 뒤, 숙소에서 불러준 콜택시를 타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돌아왔다. 체크인이 시작 되기를 기다려 또 일등으로 한다. 공항에 둘러봐도 살 만한 건 없어서 남은 쿠바 돈을 달러로 환전했다. 다른 공항의 호화, 북적거림과는 다른 분위기다. 인테리어도 붉은색!.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장으로 갔다. 소박한 면세 코너가 있다. 술 코너가 가장 붐빈다. 애용했던 Havana Club 스페셜 작은 병을 하나 샀다. (그래봤자 7달러다.) 면세점인데 쿡으로 계산한다. 어찌저찌 달러와 남은 쿡 동전으로 셈을 마쳤다. 구미를 당기는 카페도 없다. 앉아서 남은 인터넷 카드를 활활 불태웠다.


일정과 이동_20170815_20170829

2주를 여행했다. 섬 나라는 여러모로 힘들다. 대부분 인-아웃 티켓을 미리 끊어야 한다. 괜히 오래 머물렀다가 안 맞으면 남은 기간이 힘들다. 10일 정도 방문하는 솔님의 일정에 더해 추가로 한 군데 정도 돌아보려고 했다.

아바나에 밤 늦게 도착해 2박을 했다. 나의 쿠바 여행 지론은 ‘어차피 다른 데가 별로면 아바나로 돌아오면 된다. 아바나에서 오래 있다가 다른 곳에 짧게 머물면 아쉽다.’이다. 첫날 아바나에서 후라이가 된 솔님이 적극 동의해서 바로 트리니다드로 떠났다. 트리니다드에선 숙소가 좋아서 4박을 했다. 체형을 만나기 위해 산타클라라에서 2박을 했다. 비날레스로 가서 함께 3박을 하고 솔님이 떠났다. (당초 예정은 반 정도만 같이 다니는 거였는데 결국 끝까지 같이 다녔다.) 나머지 2박을 비날레스에서 더 하고 아바나로 돌아갔다. 처음 머문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교통_도시 간 이동

혼자 쿠바에 왔을 땐 아바나 버스도 타고, 현지인 가격으로 박박 우겨서 산티아고 데 쿠바 가는 기차도 탔었다. 하지만 이번엔 초대 손님도 있고, 나이도 먹었으니 무리 안하고 편하게 다녔다. (쿠바의 여름은 모든 로망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콜롬비아에 이어 택시를 많이 탔다.

쿠바는 작은 섬나라에 동서로 고속도로가 쭉 뻗어있고, 교통량도 많지 않다. 남미 대륙에 비하면 도시간 이동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휴가철이라 버스 예매도 쉽지 않고, 일행이 3명이라 콜렉티보 택시(사람 모아서 가는 택시)라는 옵션을 많이 활용했다. 숙소-숙소 인 걸 감안하면 버스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아바나-트리니다드 구간은 숙소 주인의 마케팅에 바로 콜렉티보 택시를 이용했다. (숙소에서 콜렉티보를 부르면 가이드북에 알려진 가격보다 5쿡 정도 비싸긴 했다. 하지만 숙소 안 끼고 했다가 택시가 안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트리니다드-산타클라라 구간은 국영 여행자 버스인 Viazul을 이용했다. 출발 며칠 전에 터미널에 가서 예매를 했다. 버스는 여행객으로 꽉찼다. 버스도 매우 낙후되서 느렸다. 쿠바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 보다도 안 좋은 것 같다. 산타클라라-비날레스 구간은 산타클라라-아바나까지 숙소에서 불러준 콜렉티보를 탔고, 아저씨가 여행자 버스 터미널이 아닌 일반 버스 터미널 옆에 내려줬다. 덕분에 보다 저렴하게 비날레스까지 가는 콜렉티보를 타고 갈 수 있었다. 그래도 현지인들에 비하면 비싸게 내는 건지 우리 셋만 타고 갔다.

마지막으로 비날레스에서 아바나까지는 여행자 버스가 아닌 관광사 버스를 이용했다. Habana TourCubacan에서 운행하는 버스인데 아바나의 경우 센트로와 베다도의 호텔 앞에서 내려준다. 버스도 Viazul보다 훨씬 쾌적하고 빠르다. 가격은 Viazul보다 몇 달러 비싼 수준이다.


정세_쿠바-미국 관계

오바마 정권의 가장 큰 성과였던 쿠바-미국 간 관계 완화는 트럼프의 취임으로 바로 뒤집혔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진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다 이것 때문이었다. 비날레스에서 만난 미국인 말로는, 미국인의 쿠바 일반 자유 관광이 올해 8-9월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바나의 올드카들은 모두 예쁘게 단장되어 있고, 영화 ‘치코와 리타(Chico y rita)’에 나오는 것처럼 올드카를 타고 아바나를 누비는 사람들도 많았다. 막판 며칠을 제외하곤 늘 많은 인파가 작은 마을들을 가득채웠다.


금융_화폐와 ATM

쿠바는 화폐 제도가 특이하다. 쿠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쿠바 페소(CUP, MONEDA)와 공산품 거래 및 여행자 화폐로 쓰이는 쿡(CUC) 두 가지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행자들이 적정 비용을 지불하게 해서 관광수입을 극대화한 것이다. (물론 두 화폐 가치의 엄청난 차이로 소득 격차 등 많은 문제가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쿡은 단순히 달러와 연동시키고 거기에 약간의 수수료를 더한 것 뿐이다. 달러와 로컬 화폐가 통용되는 많은 나라와 별 차이가 없다. 대신 국가 입장에선 효율적인 외화 관리가 가능해진다.


미리 환전을 두둑히 해둔 솔님 덕분에 공항에서 약간의 유로를 환전(예전엔 달러 환율이 매우 불리했는데 요즘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하고 거의 돈 걱정없이 지냈다. 그러다 한참 지나서 ATM으로 돈을 뽑았다. Banco de Credito y Comercio만 두 번 이용했다. 몇 번 시도해도 안 뽑혀서 문제가 있나 했더니 마스터카드여서 그랬다. VISA카드로 인출하니 500, 700쿡씩 술술 나왔다.

쿠바 페소, 모네다의 경우 거의 쓸일이 없었다. 솔님이 미리 아바나의 환전소에서 한 시간 동안 후라이가 되가며 준비한 240CUP(=10CUC)를 겨우 썼다. 모네다 피자 한 번 안 먹고, 산타클라라에서 말택시 탈 때나, 흥정하다가 약간 더 깎고 싶을 때 1달러 대신 20모네다를 내는 식으로만 활용했다. 몇몇 로컬 식당에서도 모네다와 함께 쿡 가격을 알아서 제시하고 계산을 해줬다.


인터넷_인터넷 카드와 와이파이 공원

쿠바는 인터넷도 다르다. 인터넷 접속을 하려면 전화국에서 줄을 서서 인터넷 카드를 사야 한다. 솔님의 아바나 경험을 듣고, 일단 아바나에선 포기하기로 했다. 트리니다드 광장의 전화국에서 구매했다. (5시간에 7) 생존 보고도 문자(한 통에 몇 백원)로 하고, 바라데로의 숙소를 알아보는데 썼다. 인터넷으론 대충 가격대만 파악하고 여행사 사무실에 물어봤다. 방이 별로 남지 않아 바라데로는 포기했다.

숙소 침대에서 각자 누워 와이파이뽕을 맞을 시간에 멍하니 눕거나, 음악을 틀거나, 책을 읽거나, 사상 토론을 하고 특정 인물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터넷을 안하니 셋 다 엄청난 쾌적함을 느꼈다. (세상 모든 게 포기하면 편하다.) 머리가 가벼워졌다. 솔님은 이를 ‘디지털 디톡스’라고 명했다. 그러다 한 번 포털에 들어가니 복잡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고 했다. 우리도 그냥 안 쓰기로 했다. 나중에 솔님이 주고 간 카드를 썼다. 더운 공원에서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늘어지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랩탑으론 접속도 안됐다. 겨우 다음 여행지 숙소만 예약하고 말았다. 인터넷 세상은 오랜만에 들어가면 참 재미없는 곳이었다.



아바나(La Habana)_0815_0817 & 0828_0829

쿠바의 수도, 혁명 광장, 말레꽁 해안도로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 낭만이 넘치는 도시다. 하지만 그만큼 넘치는 호객꾼과 사기꾼, 올드카에서 뿜어지는 매연과 바다의 습기, 열섬 현상이 더해져서 8월엔 어마어마한 더위까지, 호텔이 아닌 까사에 생활자가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숙박_까사 아델라(CASA ADELA)_트리픔 룸_2+ 1

아무리 아날로그 여행의 로망이 있어도 아바나 숙소는 미리 예약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호아끼나, 요반나 등 북적북적한 곳에서 솔님과 셋이 접선하는 것도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까사 예약 사이트를 뒤지다가 공기방울을 보니 좋아 보이는 집이 있었다. 처음 3박을 예약해서 똘님이 먼저 하루를 자고 있다가 다음날 밤에 숙소에서 우리가 합류하기로 했다. (셋이 같은 방에 자는 것도 외국 여행 가면 온갖 사람들과 도미토리에 자는 거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데 모두 동의했다.쿠바는 대부분 도미토리도 별로 없고, 방 단위로 가격을 받아서 한 방에 자는 게 이득이다.)


택시가 집 앞에 내려줬다. 오래된 아파트다. 벨을 누르고 계단을 올라 올라 가니 맨 윗층에서 우리를 맞아준다. 간단히 주인과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둥 솔님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방에서 나타났다. 둘은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잠시 그녀의 일일 아바나 체험기를 듣고 간단히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었다. 소문대로 커피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2주 동안 이 집 커피가 최고라는 게 판명났다.) 샌드위치나 주스도 모두 맛있었다. 당장 이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뒤이어 아델라 아줌마의 마케팅이 시작됐다. 트리니다드를 갈 거라고 하니, 비날레스가 시원하고 좋단다. 그래도 일단 트리니다드를 가겠다고 하니 까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알아보기도 귀찮고 믿어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택시도 아델라에게 부탁했다. 아바나는 너무 커서 여행사든 터미널이든 알아보러 가는 것도 큰일이다.

숙소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방에 최신 에어컨이 달려있고, 2명이 자기엔 침대가 작았지만 화장실도 깔끔했다. 거실은 전망도 좋고, 가구도 다 좋아보이지만, 주로 주인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너무 더워서 밥만 먹으면 방으로 대피했다. 우리 말고도 맞은 편 방엔 늘 다른 투숙객이 있었다. 명함을 보니 아바나 센트로에도 아파트를 운영하는 것 같았다. 사업 수완이 띄어난 그녀를 신뢰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쿠바 여행은 아델라가 지배했다.


저녁도 맛있었다. 돼지고기를 요청했는데 팔둑만한 통삼겹이 나왔다. 잡곡밥도 착착 감겼고, 주스도 맛있었다. 아델라의 구아바 주스도 쿠바 제일이다. 다음날 아침까지 든든히 먹고 떠났다. 2주 뒤, 우리 둘만 아델라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리 비날레스에서 전화(대부분 까사에서 전화 한 두 통은 쓰게 해줬다.)로 방과 저녁 식사를 예약했다. 처음 썼던 방과 같은 방을 줬다. 에어컨 아래 자리에 솔님도 없고, 선반 위에 우리 몫의 택배 거리도 없는 방을 보니 허전했다. 그냥 저녁을 미리 부탁했더니 소박한 메뉴가 나왔다. 콩 수프를 줬는데 된장찌개 같았다. (솔님은 한국 가자마자 된장찌개를 끓일 거라고 했다.) 야채 볶음과 흰 밥에 비장의 깻잎 통조림을 겻들였다. 한식 부럽지 않은 식사였다. 부실한 메뉴 대신 디저트가 나왔다. 진한 초코맛 아이스크림이었다. 다음날 아침, 끝까지 맛있었다.


선물_솔택배_0815

메데진에서 보노보노에게 짐까지 부탁하고 나니, 솔님에게 받을 게 많아졌다. 뭐든 다 가져다주겠다는 말에 귀이개, 5(이 중 2권은 손수 중고 서점에서 픽업해 오셨다.) 등을 부탁했다. 거기에 최신 커피 믹스와 통조림 깻잎 절임, 컵라면 3개를 챙겨오셨다. 심지어 여편님에게 원피스 하나를 그냥 주었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의 콜롬비아, 쿠바 기념품 몇 점과 다 읽은 책까지 이고 가셨다. (본인의 기념품이 또 어마어마했다.)



베다도(VEDADO)에서 센트로(CENTRO)까지_0816

길고 긴 서론이 끝났다. 본격적인 아바나 관광 이야기다.


말레꽁(MALECON)

유명한 아바나의 해안도로다. 제주시 탑동 해안도로에 가도 이런 방파제는 다 있다. (에콰도르 과야킬에도 있는 걸 보면 보통 명사인 것 같다. 찾아보니 둑, 제방이란 뜻이다.) 어디든 해안도로는 드라이브하면 좋고, 파도 보면서 산책하고, 걸터 앉아서 맥주를 마시건 수다를 떨 건 좋다. 그래도 아바나 왔으면 말레꽁이라는 여편님의 열정에 숙소에서 나가자마자 밤 바다로 나갔다. 열대야를 피하러 온 시민들이 많다.

다음날 아침, 센트로로 나가면서 밝은 말레꽁을 또 보러 나갔다. 잠시 바다 감상을 하고 너무 더워서 골목으로 돌아왔다. 말레꽁이 유명해진 것은 드라이브,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서막, CHAN CHAN이 깔리는 대목이다. 밤밤 바바바바 밤바밤바밤…. 운 좋게 말레꽁을 차를 타고 두 번이나 달렸다. 심장 터지는 순간이다. 한 번은 둘째날 센트로 관광 후 숙소로 택시 찬스, 두 번째는 비날레스에서 돌아오는 데 센트로에 들른 버스가 베다도까지 말레꽁 도로를 따라서 갔다.

마지막 날 숙소 체크인을 하고 해질녘의 말레꽁을 또 걸어보기로 했다. 호텔 나시오날(HOTEL NACIONAL)에서 미국 대사관이 있는 길을 걸었다. 더운 해안도로다.


골목길

아바나의 평범한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의의가 있었다. 말레꽁에서 골목길로 돌아와 센트로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경기가 좋은 지 건물 수리 작업들이 한창이다. 그러다 두 명이 와서 말을 건다. 자기네 동네에서 축제를 하니 구경하러 같이 가잔다. 냄새가 난다. 따라가다보니 제법 활기찬 골목이 나온다. 관광객도 있다. 바로 들어간다. 확실하다. 우린 안 마실 거라고 나왔다. (전날 솔님은 공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다니다가 현지인에게 덜컥, 모히토 한 잔을 뜯겼다고 한다.)


까삐똘리오(CAPITOLIO NACIONAL) 주변

겨우 중심 광장까지 기어왔다. 땡볕이 내리쬐었다. 까삐똘리오 주변의 그늘로 피신했다.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보노보노가 알려준 일식집(NIPPON SHOKUDOU)을 가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에 맛난 튀김과 덮밥이 나왔다. 라임 주스와 함께 흡입했다. 다시 피난처를 찾았다.

솔님이 그깟 호텔 에어컨 얼마 안한다. 커피 자기가 살테니 가자고 했다. 플라자 호텔에는 CUBITA(쿠바 커피 브랜드)를 비롯한 명품 가게가 많았다. 둘러보지 못했다. (공항에도 매장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센트럴 파크 호텔(HOTEL PARQUE CENTRAL)에 들어가려고 했다. 경비원이 나를 제지했다. 뭐라뭐라 하길래 돌아가라는 줄 알았다. 한바퀴 빙 돌아도 입구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내 복장이 문제란다. 너무 더워서 팔을 자른 민소매 티를 입고 있었다. 그럼 여자는? 괜찮다고 한다. 다른 호텔로 갔다. 텔레그라포 호텔(HOTEL TELEGRAFO)는 우리를 시원하게 맞아줬다. 건물 안쪽까지 파랗고 높은 디자인이다. 가우디 풍인지 천장도 오묘하고 높다. 물론 커피 가격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소독 시간이라 나가라고 할 때까지 에어컨을 맘껏 마시며 버텼다.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de Cuba_0816

냉기 충전 후 미술관으로 갔다. 국립 미술관은 쿠바관과 국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두 개 동시에 보면 할인이 되지만 쿠바관 하나 제대로 보기에도 벅차다. 식민지 시절의 평화로운 그림, 열대 섬의 풍경 등이 지나고 혁명을 맞이 한다. 그리고 나서도 그림들은 다양한 색채를 보인다. 민중적인 삶,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의 삶, 아프리카에서 이어져 온 문화색에 대한 특별 전시 등등 문 닫을 때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Tomás SanchezRelación이란 그림은 여전히 인상이 깊다.


나와 솔님은 거의 체력이 다해서 미술관 앞에서 쉰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편님은 더 돌아보자고 한다. 오비스포 거리를 갔다. 인파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여러 가게들을 대충 돌아보고 바닷가에서 기지를 바라본다. 모두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갔다.


공연_Jazz club la zorra y el Cuervo_0816

하바나의 밤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어딜 갈까하다가 살사는 다른 데도 많을 거고, 재즈 공연을 보기로 했다. 숙소가 있는 VEDADO엔 괜찮은 바가 많다. 가장 유명하다는 재즈 클럽을 갔다. 공연은 10시 시작이다. 가보니 5년 전에 홀로 찾았던 그 재즈바다. 오늘은 거의 100세에 이른 재즈 할아버지의 생일이란다. 친히 나오셔서 인사를 하고, 공연 중간에 올라와서 드럼을 쳤다. 그 전까진 기력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신기하게 드럼 앞에서니 에너지가 넘친다. 현실 부에나 비스타가 여기 있었다.

우린 입장료에 포함된 모히또 한 잔씩을 마시고 졸음이 밀려온다. 결국 솔님이 먼저 포기를 외쳤다. 숙소로 돌아가서 꿀같이 잤다.



다시 아바나

산타 클라라에서 비날레스로 가기 위해 아바나로 한 번 돌아왔고, 비날레스에서 다시 또 아바나로 돌아왔다. 택시, 버스로 아바나 시내를 두 번이나 제대로 돌아봤다. 덕분에 여편님은 혁명 광장도 두 번이나 만끽했다. (안 그랬으면 따로 혁명광장을 가야 했다.)


호텔_Hotel Nacional de Cuba_0816 & 0828

솔님이 여기서 모히또를 한 번 마셔야 한다고 했다. 정원도 산책할 수 있고, 좋다고 했다. 재즈바에 가기 전에 들렀다. 그냥 들어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식당을 물으니 아래로 내려가라고 한다. 식당은 아직 영업 준비 중이다. 모히또를 마실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호텔 로비만 돌아보고 재즈바로 향했다.

다시 아바나로 돌아온 나와 여편님, 저녁 먹기 전에 호텔 나시오날을 다시 찾았다. 호텔 내부엔 기념품 가게도 많다. 이번엔 입구에서 쭉 들어갔다. 야외로 연결된 바가 여기에 있었다. 말레꽁 해안 도로 위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예전에 쓰던 포대와 벙커 같은 곳도 있다. 커다란 체 게바라와 콤파이 세군도의 사진도 걸려있다. 약간 비싼 모히또를 홀짝였다. 취기가 오르고 감성이 도진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게 하는 도입부다.

Buena Vista Social Club_Chan Chan: https://www.youtube.com/watch?v=6JEdf7XsV5g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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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Bogota)_0808_0815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왔다. 원래 월요일에 가려했으나 꽃축제의 여파로 하루 미루고 화요일에 떠났다. 새벽같이 터미널에 도착해서 미리 예매한 버스를 기다렸다. 식당에서 조식 메뉴를 사먹었다. 콜롬비아식 아침은 계란, 아레파(Arepa), 치즈, 핫초코가 기본이다. 은근 아침에 먹는 핫초코가 매력있다. 버스 길은 꼬불꼬불 끝도 없다. 중간에 라 도라다(LA DORADA)를 지날 때 여편님은 막달레나 강을 외쳤다. 이 곳 항구에서 막달레나 강을 따라 커피를 카리브해로 날랐다고 한다. 버스에선 영화를 4,5편이나 봤다. 심지어 보고타에 다다르니 퇴근시간,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장장 12시간이 걸려서 보고타 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보노보노가 일러준 호스텔로 향했다.


숙박_Ulucaho Hostel_식물성 게르_7

호스텔은 컬러풀한 벽에 부엌, 공용공간, 잔디밭도 있다. 하지만 휴가철이라 그런지 일주일 내내 비는 방은 없단다. 우리는 제일 안쪽 잔디밭 옆의 게르를 배정받았다. 담쟁이 덩쿨이 천막을 덮고 있는 식물성 게르였다. 보고타는 메데진 보다 고도가 높아서 밤, 새벽엔 매우 쌀살했다. (보노보노에게 보내버린 패딩이 아쉬웠다.) 어찌저찌 침낭과 옷을 껴입으니 잘만했다. 문제는 잔디밭 옆에 벤치에서 술판을 벌이는 놈들이었다. 처음 며칠은 조용하더니 금토 연속으로 잠을 설쳤다. 주인장에게 강조를 하니 일요일부턴 스텝이 나서서 자제를 시켰다. (스텝인 윌은 토요일 밤엔 같이 떠들 정도로 뺀질 거리는 애였지만, 안쪽 방에 머무는 주인장 부부는 매우 점잖으신 분들이다.)

구시가지 중심에 그래도 이만하면 좋은 숙소였다. 양은 적지만 과일과 계란이 포함된 콜롬비아식 아침도 차려주고, 잔디밭에서 마음껏 광합성도 할 수 있다. (대부분 아침에만 해가 난다.) 주방도 잘 되있고, 만들어 먹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메데진에서 요리 열정을 다 쏟아서 간단한 짜파게티나 볶음류만 만들어 먹었다.


호스텔 사람들

간만에 호스텔에 머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 건 하비에르 아저씨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 출신으로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친다. 스페인어를 가르쳐서 그런지 말도 천천히 하고 발음도 정확해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다. 보고타에 딸도 있어서 겸사겸사 놀러왔단다. 아침이면 잔디밭에서 담뱃대로 담배를 태운다. 재밌는 건 중국을 여러 번 여행했다는 거다. 위구르, 티베트 같은 곳까지 구석구석 다녔다. 중국말도 좀 할 줄안다. 결국 떠나는 날 함께 짬뽕을 만들어 먹었다. (메데진에서 총각의 중국 요리를 보며 고추 기름 만드는 데 취미를 붙이던 시기다.) 젓가락질도 수준급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조용한 시골집에 혼자 살고 있으니 언제든 놀러오라고 했다.

저녁으로 짜파게티를 만드는데 옆의 거실에서 누구 생일이란다. 조셉이라는 페루 사람이다. 보고타에 사는 여자친구 발렌티나를 만나러 왔단다. 이 둘은 인터넷으로 만났다고 한다. 남미 대륙에선 다들 말이 통하니 인터넷으로 외국 사람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점심에 한식당에서 사온 김이 있어서 선물로 줬다. 바다맛을 아는 페루 사람이라 그런지 좋아했다.


한국에 공연하러 갔었다는 아르헨티나 민속공연단도 만났다. 그리고 호스텔의 마지막 며칠을 휩쓴 언니들을 만났다. 간만에 햇살이 좋아서 밀린 빨래를 널려고 보니 빨랫줄에 옷이 가득했다. 왜 방이 없나 했더니 주말에 단체 손님이 온 것이다. 다 여자들이다. 거침이 없다. 직원들 눈치도 안 보고 빨래를 넌다. (그 안 빤다는 청바지도 널려있다.) 다음날인가 잔디밭에서 햇살을 쬐고 있는데 이 언니들 중 한 명이 말을 건다. 말이 엄청 빨라서 못 알아듣는다. 어찌어찌 대화를 나눈다. FARC란다. 내가 잘못들었나? 얼마 전까지 무장투쟁을 하던 그 게릴라 단체다. 정확하게는 FARC의 여성조직이라고 한다. 평화협정이 진행되면서 이제는 정치적 투쟁, 사회운동으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관심을 보이니 아예 게릴라 강령집도 줬다. 저녁엔 다른 언니와도 얘기를 나눴다. 자기네 동네로 놀러오란다. 시골엔 공기도 좋고, 보고타처럼 파파야가 비싸지도 않고(대체 얼마나 싸길래), 팔려고 내놓은 집도 저렴하다고 한다. 물건 사고 볼일보러 왔지 대도시는 싫다고 한다. 미리 끊은 비행기만 아니면 진짜 가보는 건데 아쉽다. 군복 입은 사진들도 보여줬다. 투쟁 방향이 바뀐 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도 여편님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이제 막 스마트폰의 세계에 눈을 떠서 그런지 이런저런 광고성 문구를 마구 보낸다.


참고 SNS: MUJER FARIANA https://www.facebook.com/MujeresFarianas/


주변_BBC_BOGOTA BEER COMPANY_0808 &0810 &0813

숙소 주변은 완전 중심가에 대학가다. 메데진에 없던 예쁜 언니들도 많이 보인다. 저녁 10시가 넘으면 숙소 앞에 걸인들이 자리를 잡아서 좀 신경쓰이긴 해도 주변을 돌아다닐만 했다. 저녁 늦게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그 유명한 BBC, 보고타에서 가장 유서깊은 맥주집 중 하나라고 한다. 첫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달려갔다. 저렴한 가격으로 7가지의 샘플을 맛볼 수 있었다. 피자도 좀 비싸도 맛있었다. 하지만 다음부턴 무난하게 라거만 마셨다. 다른 곳에 비해 확실히 맥주 값이 좀 비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찾아간 날엔 맥주 두 잔을 시키니 아슬아슬 주머니에 꼴랑 천페소가 남기도 했다.

대망의 엘클라시코가 있던 일요일 오후, 주변 술집은 다 닫고 BBC만 열었다. 축구 중계한다고 입간판도 내걸었다. 난 바르셀로나의 팬이지만 (까딸루냐 찬가_3_FC 바르셀로나 캄프누(Camp nou) 직관기http://cordon.tistory.com/161 ) 이날 레알마드리드의 축구는 완벽했다. 거기다 우리형 호날두의 웃통벗는 세레모니의 폭풍간지에는 저절로 기립박수를 쳤다.


시내 교통_TRANS MILENIO

보고타에선 시내, 교외를 많이 돌아다녔다. 보고타엔 지하철도 트램도 없는 대신 버스와 트램, 지하철의 장점을 모두 합친 트랜스 밀레니오가 있다. 대부분의 구간에 버스 전용차로가 적용되고, 환승도 정류장 내에서 이뤄져서 지하철처럼 이용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역이 서울의 환승센터처럼 생겼다. 노선 번호가 앞의 알파벳으로 종점을 파악할 수 있게 배정되고(갈 때와 올 때 버스 번호가 달라진다.) 동네 마을 버스(초록색)는 무료라 별도의 환승시스템 없이도 트랜스 밀레니오를 타러 갈 수 있다. 교통 카드는 대부분의 역에서 쉽게 사고, 충전이 가능하다. 공항까지도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다. 지금 껏 겪어본 대중교통 시스템 중에 가장 편하고, 만드는 데 돈도 별로 안들었을 테고, 환경 파괴도 적었을 최고의 시스템이다.


아드리와 함께 하는 보고타 관광_0809

보고타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아드리를 만나는 것이었다. 아드리는 나와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 스페인어 강의를 했던 선생님이다. 나 말고도 한국인 학생을 많이 가르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2년 전에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심지어 서울에서 잡은 숙소가 우리집 근처라 여편님과 함께 카페에서도 한 번 만나고, 집에 초대해서 불고기도 맛보여줬다. 콜롬비아에 왔더니 당연히 웰컴, 보고타에 오면 꼭 만나기로 했다.

멋모르고 ARTE Y PASION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양쪽 다 찾는데 애를 먹었다. 나보고 건강해 보인다고 칭찬해줬다. (아드리는 여편님을 늘 BONITA ESPOSA라고 강조한다.) 아드리는 이미 오늘의 일정까지 다 짜고왔다.


MUSEO DEL ORO_0809

먼저 황금박물관으로 갔다. 아드리의 예상 방문 시간은 2시간, 하지만 질문이 많은 여편님과 풍부한 지식을 가진 아드리의 조합은 3시간을 초과했다. 화려한 금붙이와 각 지역의 장식물들은, 콜롬비아 구석구석을 못 가서 한에 사무친 여편님을 신나게 했다. 난 이미 녹초가 되어 마지막 기념품 매장에서 반지를 구경하는 둘을 외면했다.


식당_La Puerta Falsa_0809

5, 지친 우리를 위해 아드리는 간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가는 길에 콜롬비아와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얘기했다. 콜롬비아에선 6,7시에 간단한 아침을 먹고, 11시 정도에 누에베라는 간식을 먹고, 2~3시에 점심을 먹고 5시에 또 온세라는 간식을 먹는다. 그리고 9시 정도에 저녁을 먹는다. 한국에 왔을 때 5시에 만나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볼리바르 광장에서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달달한 것들을 파는 식당이었다. 다들 퇴근길에 온세를 먹으러 오는지 붐볐다. 퇴근 전에 간단히 먹고 집에 가면 저녁 준비도 여유롭고 좋을 것 같다. 거리에서 많이 파는 타말도 이 식당의 주메뉴인 것 같다. 아드리는 간단히 주스를 시키고 우리에겐 주메뉴인 흑설탕물(Agua de Panela, 한국의 흑설탕과는 다르게 거의 정제되지 않은 사탕수수액 덩어리다. 이 근방에선 건강식품으로 더 각광받고 있다.)와 핫초코를 추천해줬다. 기본으로 작은 빵과 치즈가 같이 나왔다. 다 찍어먹는 거라고 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치즈도 뜨거운 차에 찍으니 보드러워지고, 단단한 치즈라 차 맛에도 별 영향이 없었다.


서점_Centro Cultural Gabriel García Márquez_0809

어느새 해가 졌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서점이다. 사실 이 서점은 예전에 나도 와봐서 꼭 다시 찾을 관광코스기도 했다. 마르케스 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점이라 문학 코너도 크고, 콜롬비아 관련 서적도 많고, 서점 자체도 잘 꾸며놓아서 구경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런 저런 책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드리가 불쑥 책 두 권을 사더니 그 중 한권을 줬다. 콜롬비아 전래동화 책이다. 글자 수가 적으니 읽을만 할 거라고 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 서점은 나중에 둘이서 한 번 더 구경왔다.

주말에 아드리네 집에 놀러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빡센 일정의 투어로 둘다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시내_MUSEO DE BOTERO_0811

메데진의 열기를 이어 보고타의 보테로 박물관도 갔다. 여긴 관광객이 더 많고 북적인다. 역시 보테로 그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다른 박물관과도 연결되어 있으나 안갔다. 기념품 매장에서 보테로의 춤 그림을 하나 샀다. 어디 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외_초이푸드CHOI FOOD) & EXITO_0810

김밥을 좋아하는 여편님이 초이푸드 노래를 불렀다. 보고타의 한식당인데 아드리가 종종 SNS에 올리는 걸 보면서 알게됐다. 찾아보니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다. 가는 길은 멀었다. 트랜스 밀레니오를 처음 가는 거라 헷갈리기도 했다. 머나먼 허허벌판 같은 동네에서 내려서 주택가로 들어갔다. 한인타운 같은 데 있는 게 아니다. 들어가보니 직장인, 군인 등이 있다. 군인들은 양념치킨을 시켜먹고 있다. 예전 친정집 양념통닭 같은 스타일이다. 우린 오징어김밥, 참치김밥, 떡볶이를 시켰다. 떡볶이와 오징어볶음의 양념은 같은 걸로 보였다. 어묵이 없으니 아쉬웠다. (나중에 아드리가 한국에 오면 제대로된 떡볶이를 만들어 줘야겠다.) 그래도 김밥이 푸짐했다. 정말 컸고, 속도 알찼다. 다 먹고 나서 짜파게티를 샀다. 보노보노가 다녀간지 며칠 안되서 매장에 재고가 별로 없다.

버스를 타기에 앞서 EXITO 대형 매장을 들렀다. 그간 낡을대로 낡은 속옷을 샀다. 콜롬비아에 오니 속옷을 사도 되겠다 싶었다. 가격도 저렴한데 질은 한국 못지 않다. 엑시토는 안그래도 노란색인데 전면에 농부 사진으로 농산물 광고를 하고 있다. 이 땅의 마트를 자부하는 한국의 마트가 떠올랐다.


시내_악기점과 기념품

여편님이 다시 한 번 우쿨렐레를 사겠다고 했다. 시내에 가면 악기점이 많다고 했다. 복잡한 시내로 나갔다. 악기점이 진짜 많았다. 거의 10군데를 돌아 저렴한 메이커를 하나 샀다. 근처에 기념품 매장이 있었다. 박물관 근처의 매장들보다 훨씬 저렴했다. 악기를 손 보러 다시 갔을 때 기념컵을 샀다. Cafe de Colombia가 새겨진 컵으로 커피를 마시면 맛있을 것 같다.


시장_Mercado Paloquemao_0810

집 근처 슈퍼의 과일이 시원치 않아서 농수산물 시장을 찾았다. 거의 닫는 시간이라 후다닥 과일과 야채만 샀다. 훨씬 저렴하고 질이 좋았다. 특히 버섯의 풍미가 어마어마했다.


시장_토요시장, 일요시장_0812 &0813

집 근처에 토요일이라고 무슨 시장이 섰다. 각 지역의 특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다. 들어서자마자 와유백과 비슷한 가방을 파는데 훨씬 질이 좋아보였다. (비싸기도 했다.) 후안발데즈가 새겨진 가방을 샀다. 일요일엔 또 다른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커피 스푼 세트 등 아기자기한 것들을 샀다.

콜롬비아는 진짜 이것저것 예쁜 소품들이 많다. 거기다 이게 다 관광객 뿐만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대상으로도 파는 거라 바가지 쓰는 느낌도 잘 없다. 결국 콜롬비아에서 쓴 돈 중 1/4을 기념품 쇼핑에 쓰고 말았다.


초대_아드리집_0812

대망의 토요일, 시내에서 케잌을 사들고 아드리네집으로 갔다. 트랜스 밀레니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아드리가 나와있었다. 집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조용한 연립주택 단지였다. 사진으로 많이 봤던 아드리의 어머니를 만났다. 집은 작지만 고풍스럽고 이쁘다. 식사 준비를 도울 아주머니 한 분도 계셨다.

먼저 아구아르디엔테(Aguardiente)를 줬다. 여편님이 메데진에서부터 마시고 싶어하던 술이다. 럼처럼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지만 허브가 들어가있어 향긋하다. 맥주와 소다를 섞은 콜롬비아식 음료(Refajo)도 준다. 그리고 식사시간, 보고타 정통 바베큐 요리(Fritanga). 돼지, , 소세지, 꾸이, 감자를 골고루 익혔다. 거기다 콩나물, 참기름(초이푸드에서 구매 샀다고 한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샐러드도 준비하셨다. (전날 짬뽕을 과식하는 바람에 많이 못먹었다.) 후식을 먹고 여편님은 틴토(Campesino) 커피 내리는 것까지 전수받았다. 푸짐하게 마무리했다.

나와 화상 강의를 했던 아드리의 방도 구경했다. 아드리의 어머님까지 넷이 한참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드리 어머님은 판다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어했다. 아드리는 사료 값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된다고 했다. 두 시에 점심을 먹기 시작했는데 놀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돌아오는 길엔 아드리가 마을 버스를 태워줬다. 아드리는 2020년에 다시 한국에 올거라고 했다. 그때를 기약하고 헤어졌다.


전망_몬세라떼_0813

여편님의 전망 사랑, 일요일이니 전망대를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따말을 사먹었다. 메데진 슈퍼에서 팔던 것보다 훨씬 따끈하고 맛있다. 전망대쪽으로 가니 옥수수를 판다. 옥수수는 맛이 없다. 언덕은 오래된 기차, 혹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같은 티켓으로 골라서 타면 된단다. 내가 기차를 타자고 했다. 케이블 카는 메데진에서 실컷 탔다. 기차 타고 터널까지 지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언덕 위에는 성당이 있다. 성당 보단 둘러보이는 보고타의 전망이 정말 좋다. (성당 안엔 인파가 가득이라 들어갈 엄두도 안난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기념품 매장들이 많다. 오오 파파 프란치스코 기념품을 판다. 9월에 콜롬비아에 온다는 홍보를 에콰도르에서부터 봤다. 내전 중단에도 한몫한 포프가 평화에 불을 지피러 다시 왔다. (아드리의 엄마는 프란치스코 미사 맨 앞자리를 일치감치 예매했다고 한다.) 우리는 소박하게 부채를 샀다. 기념품 매장을 지나니 먹거리 천지다. 곱창골목을 지났다. 너무 비싸서 안먹기로 했다. 끄트머리에 아드리가 말한 치차를 판다. 산 위에서 마시니 더 막걸리갔다. 반대편엔 아예 등산으로 온 사람들이 바위에서 간식을 먹는다.


내려가는 길엔 줄이 길었다. 그나마 기차 줄이 짧았다. 내려가는 길에 여편님이 시몬 볼리바르 집(Quinta de Bolivar)을 들르자고 한다. 집은 좋다. 통영의 충무공 집을 갔던 기억이 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까지 차는 별로 없고, 오랜만에 날씨가 맑았다.


남미 대륙 안녕_0815

떠나기 전날, 풍요로운 남미를 떠난다는 두려움에 과일과 야채, 고기를 잔뜩 사서 든든하게 먹었다. 보고타 엘 도라도(El Dorado, 공항 이름도 아름답다.) 공항은 수화물 검사도 까다롭고 수속도 오래 걸린다고 해서 일찍 출발했다. 이제 더 이상 추울일은 없을 것 같아서 부피 큰 내 침낭을 버렸다. (이왕이면 노숙자가 가져가도록 양지바른 길에 두었다.) 아마 남미 대륙 중 하나를 고르라면 우선 콜롬비아, 카르타헤나부터 바랑키아, 유명한 커피 산지, 아마존까지 구석구석 여유롭게 흝어보고 싶다.



참고_LOS PUROS CRIOLLO

아드리가 수업 참고용으로 활용했던 프로그램이다. 콜롬비아의 6시 내고향 느낌으로,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커피, 아레파, 타말, 아침 식사, 시장 등을 재미있게 봤다. (YOUTUBE에서 대부분 시청이 가능하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los+puros+criollos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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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에서 커피 체험을 마치고 콜롬비아에 들어서니 커피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수확철은 이미 지났으니 좋은 농장 좋은 카페에서 좋은 커피나 실컷 마시기로 했다.


뽀빠얀_후안 발데즈(Juan Valdez)

콜롬비아 커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다. 거의 오십년이 넘는 동안 콜롬비아 커피를 대표해왔다. 후안 발데즈는 특정 사람이 아니라 노새를 끌고 있는 캄페시노(Campesino, 농부)를 상징한다. 주기적으로 모델을 선발한다. 에콰도르 키토에서도 몇 번 갔지만 본토 후안 발데즈는 좀 다를 것 같아서 뽀빠얀의 후안 발데즈를 찾아갔다.

큰 회사답게 광장 한 가운데에 있다. 여편님과 총각은 아이스 라떼 프라페를 시켰다. 더위사냥을 그대로 갈아놓은 맛이다. 나는 틴토(Tinto)를 시켰다. 한국 카페 식으로 말하면 ‘오늘의 커피’에 가깝다. 콜롬비아에서는 미리 우려놓은 커피를 틴토 또는 캄페시노(Campesino)라고 한다. 이미 설탕도 덜지근하게 들어간 블랙커피다.

나중에 돌아다니다보니 아예 이 틴토를 아침에 길거리에서 많이 팔고, 보통은 여기에 아레파(Arepa)나 치즈 등을 찍어 먹는 게 콜롬비아식 아침이라고 한다. 나중에 살렌토에서 조식을 시켜도 틴토를 줬다.

이후 콜롬비아를 떠날 때까지 후안 발데즈 커피는 입에도 데지 못했다. 공항에 큰 매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작았다. 나중에 출국 게이트에서 기다리다 급작스레 게이트가 변경되서 지나다보니 그제서야 엄청 큰 매장을 발견했다. 이런저런 굿즈가 많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구경 못한 걸 아쉬워했다.

뽀빠얀도 좌우로 커피가 유명한 나리뇨(NARIÑO), 우일라(HUILA) 주의 사이에 있다. 이 지역 커피도 당연히 괜찮은 모양이다. 시장 가는 길에 길에서도 생두를 말리고 있었다.


살렌토_농장_Las Acacias_0716

사실 살렌토는 휴양지지 커피 재배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마니살레스, 페레이라, 아르메니아로 이뤄진 삼각지대가 커피로 유명해 아예 이 지역을 카페테로(Cafetero)라고 부른다. 물론 살렌토도 이 구역에 포함되서 커피 재배엔 좋고, 살렌토에 놀러왔다가 가볍게 찾을 수 있는 소규모 농장(Finca)들이 여러개 있다. 유명한 곳도 있고 숨겨진 곳(?)도 있어서 고민하던 중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 소녀가 다녀온 곳을 가기로 했다.


일요일인데도 농장은 열려있었고, 앞에 다른 팀의 투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콜롬비아 커피 전반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여전히 스페셜티 커피로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지만, 베트남 등의 커피재배가 확대되면서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그래도 많은 농부들이 콜롬비아 커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르메니아로 내다 팔면 가격 변동이 너무 심해서 주로 관광객에게 생산한 원두를 판다고 했다. 작은 커피 묘목부터 보여주면서 커피 나무가 자라는 과정을 알려줬다. 예전 중남미에 병충해가 심했던 적이 있어서 지금은 아마존의 어떤 묘목과 아라비카 종을 교배한 종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중간 중간 라임, 오렌지, 바나나 나무 등을 심어주면 그늘도 만들어주고 커피의 맛(신맛, 단맛) 등에도 영향을 주고, 바나나 나무는 수분을 많이 먹고 있다가 가뭄 때 수분 조절을 해준다고 한다. 이 농장의 경우 규모도 작고, 밭의 고도가 모두 높아서 농약을 안 쓰지만 큰 농장들은 약을 쓰는 게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런 저런 설명을 하면서 커피 밭을 구경시켜주고 다음 공정을 보여준다. 로스팅 기계가 없어서 말리는 과정까지만 보여주고 시음을 한다. 커피는 정제되지 않은 신맛이 매우 강했다. 한 봉지를 샀다. 나중에 다른 심심한 원두와 블랜딩해서 마시니 풍미가 있었다. 나중에 보노보노는 더 알려지지 않은 농장을 가서 설명을 실컷 들었다고 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터의 차이 등등등

사실 다른 농장 못 가본 건 별로 아쉽지 않은데 Café Jesús Martin(http://www.cafejesusmartin.com/) 을 한번 밖에 못 간게 더 아쉽다. 주변 농장에서 직거래하고 로스팅도 다양하게 해서 커피가 맛있어 보였다.



메데진_El Laboratorio de Cafe: http://ellaboratoriodecafe.com/

메데진에서 바리스타나 배워볼까 하다가 찾았다. 바리스타 과정이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한 수준은 아니라서 포기했다. (스페인어로 배울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커피를 마셔보기 위해 보테로 광장에 있는 매장을 찾아갔다. 드립 커피를 V60, CHEMEX, 프렌치프레스 등으로 고를 수 있고 콜드 브루도 있다. 원두 종류도 ROJO, ORO, NEGRO 세 가지가 있어서 돌아가면서 마셨다. 개인적으로 ORO의 균형잡힌 맛을 좋아했다. (센트로만 가면 여길 가서 직원들도 우리를 알게 됐다.) 여편님은 여기서 기념 티셔츠도 샀다. (사이즈가 없어서 다른 매장에 있는 걸 가져다줬다.)


바리스타를 안하는 대신 로스팅 공장에서 진행하는 테이스팅 투어를 하기로 했다. 며칠 간 워크숍이 있는 바람에 공장 방문은 칠월 마지막 날에 성사됐다. 최소 인원이 5명이라 보노보노(2명이다.), 총각까지 총 출동했다. 공장은 포블라도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로스팅 공장 겸 카페다. (손님은 없었다.) 근처가 공장 지대라 다른 큰 커피 공장도 있었다. 담당 직원이 와서 투어를 시작한다. 먼저 농장을 소개해준다. 메데진이 속한 안티오키아 주의 농장에서 생두를 조달한다. 시장가보다 높게 쳐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장도 있다. 농장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다. 지역 내의 커피만으로도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게 놀라웠다.

다음은 생두분별과 로스팅이다. 보통 콜롬비아에서 원두 품질은 크기별로 구분해서 슈프리모를 많이 수출하는데 무조건 크다고 좋은 건 아니란다. 로스팅 기계도 간단히 보여주고 시음을 하러 간다. 커피 맛 지도를 보면서 6잔의 커피를 보고, 냄새 맡고, 마셔본다. 노트에 감상도 쓴다. 담배맛이 나는 것이 일반 슈퍼마켓에서 파는 커피란다. 쟈스민 차 같은 건 게이샤 커피, 소량만 들어온다고 한다. 기념으로 작은 원두도 받고, 소포장 원두도 하나씩 샀다. (생두는 구입할 수 없었다.)


메데진_Pergamino Café: https://us.pergamino.co/

유명하기로는 라보라토리오보다 더 하다. 아무래도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포블라도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처음 지날 때 하도 붐벼서 포기했다가 다음에 가서 마셔봤다. 여기도 안티오키아와 다른 지역의 원두를 취급한다. 포장이나 디자인 등이 라보라토리오(실험실)와 달리 팬시한 컨셉이다. 여기도 CHEMEX로도 드립을 내려준다. 진하게 두 잔을 통으로 내려줬다. 한국 자유 커피집에서 스티커도 붙여놨다. 예쁜 굿즈들이 많아서 망설이다가 커피 스티커만 사서 컴퓨터에 붙였다.


메데진_모카포트

처음엔 각지에서 사온 원두를 커피메이커로 내려마셨다. 그러다 보노보노가 와서 아랫방의 모카포트를 가져다줬다. 확실히 커피메이커보다 맛있었다. 보노보노가 떠나면서 줌보에 들러 빨간 모카포트를 사다줬다. 감동의 눈물이 날 뻔했다. 휴대용 원두 분쇄기는 은근 찾기가 어려웠다. (페루 마트에서 샀어야 했다.)


한국에선 모카포트 는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고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커피 좀 마신다는 나라 백화점이나 마트엔 만만한 가격에 종류도 가지가지다. 핸드드립은 한가한 주말에나 쇼하는 거고, 태반은 커피국이 됐다. 모카포트는 바쁜 아침에 내려놓기도 편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떼까지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좋은 원두를 만나니 욕심에 세 번째 모카포트를 질러버렸다. 하난 쓰다 보내고, 하난 사서 바로 보내고, 이건 집까지 잘 가져가 보자.’



보고타_Arte y Pasion (http://www.arteypasioncafe.com/)

메데진에서 콜롬비아 커피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보고타에선 숙소에서 주는 커피를 안 마시고 메데진에서 남은 원두를 굳이 모카포트에 직접 내려가며 마셨다.

소박하게 보고타에선 Arte y Pasion 카페를 자주 찾는 걸로 만족했다. 황금박물관 쪽과 대통령궁 쪽에 두 개가 있다. 황금박물관 쪽의 지점을 처음 찾을 땐 당황했다. 매장이 큰 건물 안에 감춰져있었다. 점심 시간이라 점심 메뉴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했다. 오전에 한가한 시간에 가니 쾌적했다. 대통령 궁 쪽의 지점은 커피만 파는 곳이라 좋았다. 두 매장 모두 콜롬비아 각지의 원두를 취급한다. 지역의 원두를 골라서 다양한 형태로 내려달라고 주문할 수 있다.

카페 자체가 바리스타 학교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바리스타들(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다. 한국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들 너무 잘한단다.)이 자리에 와서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 먼저 원두 향을 맡게 해주고, 불린다음 내린다. 자리에서 커피를 내려주니 향이 더 그득했고, 맛이 더 감칠났다. 여편님은 여기서도 기념 티셔츠를 샀다.


예전에 콜롬비아하면 슈프리모만 알아서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각 지역마다 색다른 풍미의 원두를 맛보다보니 콜롬비아 커피에 엄청난 애착을 갖게 됐다. 커피를 마실 때 나라를 넘어 지역, 농장, 자연과 사람들까지 보기로 했다. 나의 커피에 대한 열정도 한 단계 올라선 계기였다.



독서_매혹과 잔혹의 커피사_마크 펜더그라스트_을유문화사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미국 대중 문화, 커피 산업에 할애하는 부분이 좀 커서 아쉽지만 이만큼 포괄적으로 잘 다루는 책이 없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한 번 읽어야지 하던 책이다. 여행이 좋은 건 이런 긴 책을 읽을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무겁다. 얼른 읽고 치워버려야겠다. 커피가 대중화된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가정에선 원두를 직접 볶아 마셨고, 2차 대전 때 미군엔 전선에서 그때 그때 로스팅한 원두가 배급되었다고 한다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장주가 받는 생두값, 일꾼들이 받는 일당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시계는 전진하기도, 후퇴하기도, 돌기도 한다.

(나도 남편님 덕분에 덩달아 읽고 있다. 미국이 없었다면 커피가 어떻게 되었을까 매번 읽을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EEUU여… - 여편님 왈)


다큐_Black Gold (https://www.youtube.com/watch?v=qLCql6m3Pm4)

앞의 책에서 추천한 다큐다. 좀 이색적인 에티오피아의 풍경도 많이 나오고, 화려한 커피 산업 뒷면의 안타까운 분배의 현실을 다룬다. 그나마 소농 중심으로 짜여진 콜롬비아 커피 산업은 나은 편이다.


다큐_Black coffee (https://www.youtube.com/watch?v=TTDy-L0NKIg)

이것도 앞의 책에서 추천한 다큐다. 분량이 길다. 아직 안 봤다.


다큐_Los Puros criollos_El café (https://www.youtube.com/watch?v=1XXWh0mpet0)

콜롬비아 커피에 대해 소개한 현지 프로그램이다. 꿀잼이다.


다큐_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_커피의 나라_1부 콜롬비아

(https://www.youtube.com/watch?v=zzxMAAEQUUA)

예전에 봤던 다큐인데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을 다뤄서 재밌게 봤다.


도서_Coffee Obsession_한글판: 커피중독_아네트 몰배르_시그마북스

여편님이 보고타 마르케스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다. 백번 글보다 좋은 그림 하나가 훨씬 뇌리에 잘 박힌다. 각 나라별 커피 재배를 그림으로 잘 표현해서 10분만에 전 세계 커피를 돌아봤다. 한국에서는 ‘커피중독’으로 번역되어 있다.


참고_콜롬비아의 커피 산업

콜롬비아 커피를 개괄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되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cw5172&logNo=10012628313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co%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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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진도 콜롬비아의 손에 꼽히는 대도시답게 여러모로 볼 것이 많았다.


시내와 교통

집에서 시내 여러 지역으로 갈 때는 대부분 택시를 이용했다. 환승 할인이 없어서 트램+지하철 등을 조합하면 일인당 3,4천 페소인데 3명이 움직이면 대부분 택시비가 만~2천 페소였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다 나를 제외한 둘은 택시 매니아, 거기다 난 택시 아저씨랑 이런 저런 말하기를 귀찮아하는데 메데진 기사 아저씨들은 대부분 묵묵해서 별 불만이 없었다. 탑승 거부는 딱 한 번, 축제 때 공원 앞에서 당했는데 옆에서 지켜본 경찰 언니가 당장 다른 택시를 직접 잡아줬다.)

센트로에 갈 때는 트램을 탔다. 집에서 걸어내려가면 센트로까지 가는 트램이 있었다. 트램은 최신식이라 쾌적했다. 지하철은 케이블카 타러 간다고 한 번 탔다. 케이블카 역이 지하철과 연결된다.



센트로_시장과 광장

시내는 여러 번 나갔다. 주로 쇼핑과 관광 목적이었다. 트램 마지막역인 San Antonio가 지하철과도 만나서 엄청 붐볐다. 각종 과일부터 옷가지, 헌 책, 장난감 등을 파는 노점상과 가게들이 줄비했다. 은행이 몰린 번화가와 고급 상점가, 기념품 시장, 광장까지 이어진다.


와유백_CENTRO ARTESANAL MI VIEJO PUEBLO

작년 대유행했다던 와유백*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서 여편님은 장만을 결심했다. 하나 사고, 곧 만날 친구를 위해 또 하나 샀다.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냉장고 바지도 하나 샀다. 그 외 각종 기념품들은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전국민이 쓰고 다니는 콜롬비아식 모자는 동네 시장이나 공원에서 구매했다.) 여편님이 먼저 시범구매를 하고, 보노보노와 함께 다시 찾았다. 한국 가서 지인들 준다며 무려 9개와 아가용 와유백 1개를 샀다.

*한국에서는 모칠라백으로 알려져있으나 모칠라(Mochila) 자체가 스페인어로 가방이라는 뜻이다. 카르타헤나 지역의 와유족 사람들이 생계 수단으로 만든 가방으로 와유백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총각은 우리와 메데진에서 헤어진 후 진짜 와유백을 찾아 머나먼 모험을 떠났다.


광장_PLAZA BOTERO

늘 시내 모험의 종착역이 되었던 곳이다. 휴일이 아니어도 사람이 넘친다. 광장 주변에 식당가가 있어서 점심 메뉴를 두 번 먹었다. 특이한 것은 이 시내 북새통에 식당 사이사이 카지노와 미용실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점심 시간에 밥을 후딱 먹고 카지노 아니면 미용실을 간다는 추축을 해봤다.

보테로 광장이 좋은 점은 거장 보테로의 조각상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 조각상들은 자주 해외 순방을 나가기도 한단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조각상을 보다보면 보테로의 그림이나 조각이 큰 과장이 아니란 생각도 하게된다. 또한 안티오키아 미술관 입구 오른쪽에 내가 사랑한 카페(El Laboratorio de Cafe)가 있어서 마음껏 광장을 음미했다.


안티오키아 미술관(Museo de Antioquia)_0728

오전에 살사 강습을 마치고 미술관을 갔다. 기대했던 보테로의 작품을 실컷봤다. 메데진을 포함한 안티오키아 지역 미술관이라 보테로 작품 말고도 다른 작가의 작품이 많았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보테로의 그림은 행복과 귀족스러움이 가득했다. 다른 작가들의 보다 서민적인 그림도 좋았다. 기념품 매장에 가니 복사품 그림들의 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카노(Francisco Antonio Cano)의 수평선(Horizontes)라는 그림이 마음을 열어줘서 사버렸다. 좋은 통에 담아줘서 그 후로 맘에 드는 그림들을 몇 점 사서 모아 다니고 있다. 무사히 가져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포블라도(POBLADO)_0721_0802

메데진의 번화가 포블라도를 구경하러 갔다. 센트로와 달리 여기는 고층 건물과 사무실, 빌라 등이 위치한 곳이다. 총각과 내가 기대한 예쁜 언니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공원(Parque de la presidenta)를 산책했다. 뒤쪽으로 나가니 번화가였다. 화려한 바와 채식당, 고급진 카페들이 줄비했다. 호스텔과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배고파서 햄버거집을 갔는데 평소보다 2배를 주고 먹었다. 물가가 확실히 비쌌다. 수제 옷가게와 더불어 수선집도 많이 보여서 여편님과 한 번 더 찾아갔다. 안쪽에 들어가니 그나마 저렴하게 점심 메뉴를 파는 식당들이 있었다. 제육볶음을 줘서 매우 만족했다. 유명한 카페(Pergamino Cafe)는 처음엔 너무 붐벼서 지나쳤다가 재방문때 들렀다.


쇼핑_산타페몰(Centro Comercial Santafè)

포블라도의 최대 쇼핑몰이다. 일층에 JUMBO라는 슈퍼마켓이 있는데 외국식품 코너가 빵빵해서 우리의 사랑을 받았다. 남미 대륙에서 본 것 중엔 최대 규모다. 한 번 돌아보는 것만도 체력이 다했다. 후퇴했다. 그 뒤 큰 맘을 먹고 다시 찾았다. 꽃축제를 기념해서 쇼핑몰 일층 라운지에 커다란 꽃밭에 꽃으로 만든 공작새를 구현해놨다. 거기다 각종 기념품 시장까지 열려서 볼거리가 풍성했다.

백화점도 연결되어 있어 쇼핑을 했다. 여편님이 원피스를 고르는 사이 나는 바람막이 하나와 티셔츠 하나를 냅다 샀다. 여편님은 대여섯개의 원피스를 골라서 입어봤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탈의실 직원이 건네준 원피스 하나가 딱 맘에 들었다. 원피스를 입고 나선 살사 교습 중 도는 속도가 1.3배 빨라졌다.


서점_Librería Panamericana

산타페몰 옆에 있는 큰 서점 겸 생활용품 점이다. 콜롬비아가 다른 건 다 (한국에 비해) 저렴한데 책 값은 엄청 비쌌다. 기념으로도 하나 살 엄두를 못냈다.


대학_Centro de Egresados Universidad EAFIT

동네에도, 시내에도, 쇼핑몰에도 없으면 대학에라도 있을까 싶어 들어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공식 신분증(여권)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고 해서 실패했다.


메데진 꽃축제(Feria de las Flores)_0730 & 0806

메데진에 온지 얼마 안되어 조만간 꽃축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여러 꽃장식을 들고 (등에 지고) 행진하는 것인데 못봤다. 대신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공원 지구를 두 번 찾았다. 한 번은 총각, 보노보노까지 다 함께, 또 한 번은 여편님과 둘만 다녀왔다.


공원_Parque de Los Deseos & Parque Norte Medellin_0730

두 팀으로 나눠서 택시를 타고 갔다. 무려 공원 세 개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시장 건물과 차가 없는 대로에 사람들과 먹거리가 가득했다. 여편님은 냅다 피카츄 풍선을 샀다. (무슨 단체도 아니고 피카츄를 따라 같이 움직였다.) Parque Norte로 가보니 놀이공원이었다. 하지만 입장은 무료였다. 꽃축제 기간이라 공원 곳곳을 행사장으로 꾸며놨다. 안에는 또 먹거리가 가득했다. (딱히 꽃은 많지 않았다.) 맥주 차가 있어서 기대했는데 모두 캔 맥주만 있다고 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광장의 먹거리를 지나칠 수 없어 수박과 옥수수, 머릿고기와 곱창 볶음 등을 나눠먹었다.

그 밑에는 모두 테마파크 같은 곳들이었다. 길을 건너 Parque Deseo로 갔다. 여기선 낮부터 공연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불렀다. 일주일 내내 크고 작은 공연이 있어서 집의 TV로도 많이 봤다.


공원_Jardin Botanico_0806

처음 갔을 때 보타니코 정원의 행사는 8월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 다음 주말을 맞아 공원 지구를 다시 찾았다. 보타니코 공원이라 정말 꽃축제 분위기였다.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몰려왔다. 멀리 보고타에서 단체로 놀러온 할망들도 만났다. 가운데 행사장엔 각 디자이너(?)와 화원에서 출품한 꽃더미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거대하고 예뻤다. 작은 전시도 있었고, 메데진럼 같은 술회사에서 장식한 곳도 있었다. (분홍꽃 사이에 럼들이 가장 아름다웠다.) 꽃 구경도 꽃 구경이지만 이렇게 꽃 축제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게 더 놀라웠다. 콜롬비아는 세계 꽃 수출 3위로 꽃도 많이 팔지만 다들 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재밌는 것은 각 지역에서 올라온 특산품 구경이다. 단순히 외국 관광객이 타겟이 아니라 그런지 물건 질도 좋고, 곳곳의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많았다. 홀랑 넘어가서 Pasto 지방의 반지함, 보고타의 반지, 여성단체에서 만든 꽃 모형 등을 사버렸다. 거기다 30년 전통의 사탕수수 주스(Guarapo), 핫도그, 커피 등을 사먹고 유기농 과일 매장에서 망고스틴을 샀다.

끝으로 커다란 화환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식물이 들어간 전세계 화폐 특별전도 유익하게 관람했다.



전망대 나들이(Parque Arvi)_0807

메데진을 떠나기 전날, 짐정리를 마치고 고민 끝에 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했다. 트램을 타고 지하철 역으로 가서 Acevedo역까지 간 다음, 거기서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고 종점인 Santo domingo역까지 간다. 여기까진 무려 지하철과 환승까지 되는 대중교통이다. (사실 여기까지의 여정만으로도 만족했다.) 공원이 있는 Arvi역까지는 관광용 케이블카라서 추가 요금을 내야했다.

추가 요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케이블카가 길었다. 그냥 꼭대기 전망대에 내리는 건 줄 알았는데 산을 넘어 공원 한가운데 내렸다. 지역 특산물 시장이 있어서 근처에서 재배한 커피, 와인도 팔고 북적북적했다. 안내센터로 가니 생태 공원 등은 입장료가 있고, 무료인 산책로를 알려주었다. (어디 돈 내고 들어가기엔 이미 시간이 늦었다.) 지역 특산 커피를 한잔 들이키고 산책을 시작했다. 산길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다들 올라오는 시간이다. 중간중간 식당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삼십분을 내려가서야 산책로로 진입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간단히 산책을 마치고 서둘러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줄이 어마어마했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정든 메데진 생활이 이렇게 마감됐다. 우리 덕분에 무리한 총각은 그 후 며칠을 홀로 앓아누웠다고 한다.


은행_CITI BANK

콜롬비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금융 생활이다. 콜롬비아엔 시티 은행이 여전히 개인, 지점 영업을 한다. 저 머나먼 아르헨티나에서 쓰고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시티은행의 혜택을 드디어 누리게 됐다. 시내는 물론, 각 지역의 중심가에도 시티 은행이 있었다. (뽀빠얀, 살렌토 같은 지방 도시는 없다.) 인출 한도도 백만 페소가 넘어서 넉넉하게, 수수료 부담을 덜고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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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뽀빠얀에서부터 총각과 동행한 데에는 큰 목적이 있었다. 총각과 우리 모두 영원한 봄의 도시, 미녀의 도시로 불리는 메데진에서 넉넉히 머물려고 했기 때문이다. 추진력이 좋은 총각 덕에 뽀빠얀에서 만난 다음날 아침 바로 좋아보이는 아파트 하나를 빌렸다.


메디진(Medellin)_0717_0808

일년 내내 날씨가 좋아서 영원한 봄의 도시로 불린다. 예쁜 언니들이 많다. 마약왕으로 유명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이기도 하다. 살렌토에선 메데진으로 바로 가는 콜렉티보가 있었다. 전날 슈퍼를 겸한 곳에서 미리 예매를 했다. 아침에 가보니 버스는 자리가 꽉찼다. 지정 좌석이라 좋은 3자리를 차지했고, 편안히 예상보다 빨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박_좋은 전망 장미 아파트_더블룸_3

총각은 한달(4), 우리는 2~3주 정도 머물려고 했다. 2개에 3명이 가능한 집, 가격 필터를 아래로 조정하니 공기방울에서 몇 개만 나왔다. 깔끔한 집 한채인데도 저렴해서 바로 예약했다. 동네 이름은 Buenos Aires, 나중에 알게 된 바,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택시는 시내를 가로질러 빠지더니 꼬불꼬불 언덕길을 한참 올라갔다.

경비원과 내부 주차장도 있는 고급(?)아파트였다.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줬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청소 마치기를 기다렸다. 간단한 안내를 해줬다. 우리가 쓰기로 한 안방은 넓은 침대에 옷장, 넉넉한 수건까지 완벽하게 갖춰져있었다. 총각이 혼자 쓸 옆방도 이층침대지만 밝고 쾌적했다. 화장실, 주방도 잘 갖춰져있다. 거실도 창이 넓고, 쇼파에 TV, 식탁까지 얼마만에 맛보는 제대로 된 살림살이인가. 저녁엔 주인 아저씨가 와서 등을 갈아주고 갔다. 부부는 엘페뇰 근처에 전원주택에 살면서, 메데진에 볼 일이 있으면 이 아파트에 머물고, 우리 같은 장기 체류자에게 빌려주는 식이었다. 중간에 한 번 정도 청소 필요하냐고 확인하는 거 빼곤 거의 왕래가 없었다.


동네

집 주변은 주택가라 출퇴근, 등하교 시간에만 붐빈다. 바로 옆에 학교가 있어서 등하교 시간엔 헤어지고 만나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뽀뽀하고 난리가 난다. 집 바로 맞은 편에는 피자집과 아이스크림집이 있다. 아이스크림은 레알 맛있고, 피자는 한 번 먹고 더 안 먹었다. 귀퉁이에 치킨집이 하나 있는데 한국 마인드로 한 마리 반을 사왔다가 반 마리를 남겼다.

슈퍼 하나와 빵집, 슈퍼 하나와 청과+정육점이 다들 나름 시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빵집은 죄다 치즈가 들어가서 맛이 없다. (시내에 가면 빵집 밀집 구역에서 이 치즈냄새가 진동을 한다.) 슈퍼에선 우리가 하도 생필품과 맥주를 사러 드나드는 바람에 안면도 텄다. 야채와 과일을 파는 집도 거의 매일 갔다. 파파야, 망고, 바나나, 파인애플(심지어 잘라준다.) 등의 과일과 각종 야채를 한아름씩 샀다. 가장 호황을 누린 건 정육점이다. 세명이, 중간엔 다섯명이 먹다보니 기본 1kg 많게는 2kg씩 돼지나 소고기를 사댔다. 슈퍼마켓은 십분을 내려가야하는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쉬운 게아니라 반 강제적으로 골목상권에 의존했다.


일과

총각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여편님은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메데진의 날씨는 낮엔 25도 밤엔 15도 정도라 그간 설친 잠을 실컷 잤다. (볼리비아, 페루 등에선 해안은 너무 덥고, 고지대는 새벽에 너무 추워서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괜히 영원한 봄의 도시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은 내 차지였다. 간단히 바나나를 먹고 커피를 내리며, 밀린 여행기를 쓰거나 드라마를 봤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산 동네의 전경이 늘 펼쳐졌다. 아침은 주로 빵, 볶음밥, 파파야 등으로 간단히 먹었다. 주변에 가볍게 점심 먹을 곳이 없어서 점심도 간단히 만들어 먹었다. 태반이 파스타나 비빔파스타였다. 가벼운 외출 후에 돌아와서 장을 보고 저녁은 늘 푸짐하게 먹었다. 시내에 나가서 큰 마트에 가게 되면 갖은 양념을 사왔다. 총가은 요리 실력이 뛰어나서(그런데 수크레에선 모두가 총각에게 설거지만 시켰다.)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다. 본격적인 먹방은 일주일 뒤에 시작됐다.


손님_보노보노

계속 뒤쳐져서 오던 보노보노가 드디어 메데진에 왔다. 우리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왔다. 키토에서 장을 볼 때 고추장과 고추가루를 부탁했다. 총각 방의 위층 침대와 거실 쇼파가 비었으나 마다했다. 근처 호스텔에 머물겠다고 하더니 당일날 우리 집 근처의 원룸을 빌렸단다. 잠깐 나갔다가 와서 메세지를 보니 설마설마 같은 아파트 아래층이다. 심지어 그 숙소에 모카포트와 큰 웍, 세탁기가 있어 살림이 더 풍요로워졌다. (집주변엔 빨래방이 없어서 손빨래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집엔 건조대만 있었다.)

숙소는 따로였지만 거의 한 식구처럼 같이 매일 밥 해먹고 놀았다. 큰 솥이 있고, 사람이 많으면 보쌈만한 것이 없다. 거기다 고추장이 있으면 비빔면을 겻들일 수 있다. 정육점에서 2kg를 사다가 보쌈을 했다. 보쌈 장인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정 많은 보노보노는 지난 내 생일을 기억하고 마른 미역을 고이 갖고 와서 미역국도 끓여줬다. 거기다 호기심에 산 춘장도 갖고 왔다. 여기서 중식에 그나마 감각이 있는 건 총각 뿐이었다. 모두 초롱초롱하게 총각의 짜장면을 지켜봤다. 춘장이 많아야 2~3인분이라 옆에서 대충 짬뽕을 만들었다. 진짜 짜장면은 만들어 먹는 게 아니란 걸 생생하게 지켜봤다. (춘장을 기름에 따로 튀겨야 된다는 걸 몰랐다.) 총각이 고난 끝에 만든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여편님의 주도로 월남쌈을 사와서 월남쌈을 먹었다. 매일 고기 위주로만 먹다가 건강한 월남쌈을 먹으니 좋았다. 보노보노가 몇 달간 아껴둔 소면도 겻들였다. 그 전에 팟타이, 그 후에 쌀국수도 한 번씩 먹었다. 태국, 베트남에서 쿠킹 클래스 들은 게 헛되지 않았다. 부지런한 총각은 수제비 반죽도 했다. 난 수제비는 별론데 보노보노가 끓인 라면 국물에 맛있게 먹었다. 고춧가루(막판에 이 고추가루를 한 바닥 쏟았다가 여편님과 총각에게 융단폭격을 맞았다. 서울 사람들의 고춧가루 사랑은 남다르다.), 피쉬소스를 본 여편님이 결국 김치를 만들었다. 겉절이와 파김치 모두 아껴가며 먹었다. 거기에 하이라이트로 총각이 돼지갈비찜을 해줬다. 너무 맛있어서 떠나기 전에 한 번더 해달라고 했다. 저녁에 먹을 걸 전날부터 절이는 정성을 발휘했다. 총각은 늘 엄마를 보고 싶어했다. 라면은 잘 끓여주신다고 했다.

보노보노는 보고타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갔다. 친절하게도 우리 짐도 가져가서 인천공항에서 바로 택배로 부쳐줬다.


맥주와 럼

이렇게 잘 차려 먹은 덕에 술도 꾸준히 마셨다. 콜롬비아 맥주는 Poker, Aguila가 많고 프리미엄 컨셉으로 Club Colombia가 있다. 가격 차이는 별로 안나는데 우린 입에 착착 감기는 서민형 AguilaPoker를 선호했다. Aguila는 바랑끼야 지역의 맥주라고 한다.

콜롬비아는 사탕수수가 많아서 정제되지 않은 설탕(Panela)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사탕수수로 만든 술도 많다. 메데진은 럼이 유명하다. 5년 산을 사마셨는데 (따는 데 좀 고생했지만) 역시 고품격으로 맛이 좋았다. 3년 산도 마실만했다. (메데진이 속한 주인 안티오키아는 Aguardiente라는 증류주도 유명한데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 여편님 주)


교습_살사_2_Academia de Baile Dancing Con Los Gemelos

메데진에 머물면서 셋 다 살사를 배우기로 했다. 처음 한주는 널부러져 있다가 그 다음주가 되서야 알아보러 나갔다. 총각이 미리 몇 군데를 수소문했다. (콜롬비아 살사는 칼리가 가장 유명하지만 칼리 도시 자체는 오래 머물만큼 매력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괜찮다는 곳은 대부분 시내 기준으로 반대편에 있었다. 일단 택시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처음 들어간 곳은 교차로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무슨 할인 어쩌구) 그냥 여기서 하기로 했다. 우리는 2:1 교습 16시간, 총각은 1:1 교습 32시간을 끊었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효과는 1:1 교습이 훨씬 좋다. 계속 선생님이랑 추기 때문이다. 남자가 중요하다는 건 헛소리, 총각이 추는 걸 보면 여자 선생님이 알아서 잘 이끌어주고 잘 돌고, 그래서 잘 춰 보인다. (총각도 엄살이 심하지만 잘 따라간다.) 우리도 더듬더듬 꾸준히 스텝을 밟고, 돌았다. 초반에 자기만 돈다고 불평하던 여편님도 나중엔 꾸준히 돌았다. 두 번 돌기, 자리 바꿔서 돌기 등등을 할 수 있게 됐다. 밤에 살사바를 한 번 가면 좋을텐데 주행성인 우리는 여태껏 한 번도 못갔다.

우릴 가르친 선생님들은 모두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주로 우리를 담당한 하이메는 키가 엄청 크고 왠지 건성이라 맘에 안 들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총각은 무려 3명의 여선생님이 번갈아가며 가르쳤다. 우리랑도 친해져서 나중에 우리 수업 끝나면 총각 혼자 오는 걸 걱정했다. (결국 총각은 혼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라도 꾸준히 살사를 (여편님과 같이) 배우고 싶다.


음악_SHAKIRA_EL DORADO

살사를 배우면서 좋은 점은 살사 음악을 실컷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우리를 지배한 음악은 샤키라의 음악이었다. 마침 새 음반이 나와서 좋았다. 여편님은 샤키라 언니의 기운을 받겠다며 바랑키아까지 가겠다고 했다가 살렌토에서 대판 싸웠다. 샤키라, 마르케스의 사생팬도 아닌데 그 땡볕에 뭐하러 가냐고 했다가 대반격을 당했다. 다행히 한 달 뒤에 카리브의 태양을 맛보시곤 그때의 결정에 순응하고 계시다.


음악_MALUMA

음악에 열정있는 여편님은 말루마를 찾아냈다. 메데진 태생의 아이돌(?)이다. 어딜가도 말루마처럼 머리하고, 차려입은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음악_CHINO Y NACHO

베네수엘라 출신 남자 듀엣이다. 너무 매력 터져서 최근 활동 중인 가수 중엔 우리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시청과 독서

숙소에 TV가 있고, 인터넷도 엄청 빠르고, 총각과 보노보노가 가진 자료도 많아서 영화와 드라마를 꾸준히 봤다.


독서_무소유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의 책이다. 예전에 읽었는데 들고 다니다 이제 읽었다. 여행 중 물건을 잃어버릴 때 이만큼 위로가 되는 책이 없다.


독서_꿈을 빌려드립니다 & 마르케스: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작가, 여편님이 열정적으로 그의 단편집과 만화로 된 전기를 구입했다. 난 단편집 몇 편과 뒷부분의 대담만 봤다. 콜롬비아의 폭력과 관련된 그의 언급이 인상 깊었다.


영화_콜레라 시대의 사랑

예전에 책으로 읽었던 걸 영화로 봤다. 내용은 다 알지만, 카르타헤나와 막달레나 강의 정경을 화면으로 나마 느껴서 좋았다. 마르케스가 감독에게 OST는 꼭 샤키라로 해야한다고 고집한 일화가 유명하다.

HAY AMORES OFICIAL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JM7bY9Gtmsw


영화_네루다

최근에 개봉한 네루다와 관련된 영화다. 역시 우리 시인은 추격자도 매혹당할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다.


영화_아가씨

영상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보면서 화면이 예쁘다했더니 미술상을 받았단다.


드라마_나르코스(NARCOS)_SEASON 1 & SEASON 2

내 메데진 생활을 지배한 드라마다. 내용 상으론 1부까지가 더 극적이고 재밌다. 그의 상식을 뒤집는 협상력이 포인트다. 2부는 힘의 균형이 바뀌고 추격전만 반복되서 흥미가 덜했다. 그래도 끝가지 본 건 드라마 내내 나오는 메데진의 풍경, 오프닝 음악, 그리고 끝임없는 폭력에 시달리는 콜롬비아의 모습이다. 마르케스는 대담에서 콜롬비아엔 폭력이 너무 일상화*되었다고 했다. 마약, 내전, 독재 등 콜롬비아 사람들은 현대에서 겪을 수 있는 폭력을 계속 견뎌냈다. 그런데도 우리가 만난 콜롬비아 사람들은 늘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밝았다. 내전도 끝났으니 이제 평화로울 일만 남은 나라다.

NARCOS OPENING: https://www.youtube.com/watch?v=PtJ6yAGjsIs


*콜롬비아에서 폭력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콜롬비아의 역사는 폭력적인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아마 세상의 모든 역사가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콜롬비아에서는 매우 특이합니다. 이것이 아주 오래되고 심오한 현상이 아니라면, 이런 문제는 모두 교육 탓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콜롬비아에서 폭력을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교육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꿈을 빌려드립니다. 인터뷰 중)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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