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다. 멕시코를 떠난지 한달 밖에 안됐지만 그 사이 영겁의 강이 흐르고 있다. 밀린 방학숙제를 마치는 기분으로 여행기를 써보기로 했다. 더 이상 여행자의 신분이 아닌 정착자 관점에서 쓰는 여행기는 앞의 여행기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다.


일정과 이동_20170829_20171012

칸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급형 칸쿤이라는 플라야델카르멘에 갔다. 그간 아껴둔 호텔스닷컴 리워드를 불살라 초호화 리조트에서 이틀을 자는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숙소를 옮겨 일주일을 더 머물며 마지막 물을 먹었다.

산크리스토발로 바로 가는 저가항공이 있는 줄도 모르고, 버스 타기 싫어서 멕시코시티로 먼저 비행기를 타고 갔다. 멕시코시티에서 열흘 정도 머물다가 와하카로 이동, 대략 2주를 빈둥거렸다. 마지막 밤버스를 타고(에콰도르의 악몽 이후 미루고 미뤘지만 이 구간은 밤버스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음의 고향 치아파스,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에서 또 다시 열흘 정도 머물다가 집으로 갔다.


버스와 비행기

그간 다녔던 나라들에 비하면 멕시코는 현대화(?)가 매우 잘 되어있는 곳이다. 미국 바로 밑에 있어서 그런지 웹/모바일, 저가항공 등이 우리나라 보다 더 발달했다. 비행기는 쿠바 하바나 - 칸쿤 구간부터 오래된 저가항공사 Interjet을 이용했다. 오래된 저가항공사라 수화물 추가 요금도 없고, 간식도 그냥 준다. 자리도 넉넉했다.

버스는 ADO만 탔다. 남미 대륙과 달리 멕시코는 버스회사 독점이 엄청났다. 우리가 머문 중부, 남부는 대부분 ADO가 장악하고 있다. 칸쿤 공항 버스도 모두 ADO였다. 저렴한 2등 버스들이 있었지만 ADO도 미리 할인가에 예매하면 그리 비싸진 않았다. 보안도 신경쓰는 것 같아서 더 ADO만 타게 됐다. 트라우마란 무서운 것이다. 미리 예매를 하려면 ADO앱을 쓰면 되는데 해외카드는 결제가 잘 안된다. 그래서 타 예매 사이트 중 저렴한 http://www.reservamos.mx/ 를 애용했다. (그래봤자 도시간 이동은 멕시코시티-와하카, 와하카-산크리스토발 두번이다.) 칸쿤-플라야델카르멘 구간은 그때그때 가까운 터미널에서 직접 구매했다.


입국과 칸쿤 공항_0829

멕시코는 시작부터 풍성했다. Interjet 비행기에 들어서니 이륙과 함께 간식을 주는데, 난 감자칩, 여편님은 도리토스를 고르고 음료로 무려 코로나 뚱캔맥주를 줬다. 맥주도 맥주지만 이 도리토스는 다른 나라의 도리토스와는 품격과 향미가 달랐다. 고수의 내음이 팍 퍼지며 매콤함이 싸르르했다. 창밖으로 전설의 칸쿤 해변을 봤다. 옥빛이 풍성한 해안의 숲과 맞물렸다. 섬에서 자라 바다는 그래봤자 바다라는 나의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내렸다. 수크레에서 한글 가이드북 쪼가리를 주웠는데, 멕시코는 입출국이 좀 까다로운 나라였다. 이른바, 입국센지 출국센지를 받는다고 했다. 보통 비행기를 타고 드나들면 티켓값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민국 직원이 괜히 더 뜯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걱정과 달리 우리 담당관은 무사히 통과시켜 주었고, 출국티켓이 없는 것도 문제삼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과테말라를 갔다가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것이 극도로 꺼려졌다. 들은바론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의 이민국 비리가 가장 심하다고 한다.)

게다가 무슨 버튼을 눌러서 초록색이 나오면 통과 빨간색이 나오면 짐검사를 하는데.. 우리는 모두 초록색이 나와서 통과했다. 옆에는 빨간색이 나와서 짐 검사받는 짜증나는 표정의 여행객이 몇몇 보였다.


공항은 매우 현대적이었다. 하얀색이라곤 찾기 힘들던 쿠바와는 달랐다. 에어컨도 빵빵했다. 플라야델카르멘으로 바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곳곳에 미니벤 삐끼들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다행히 공항셔틀 ADO 사무실은 국내선 터미널 (터미널이 달라 한참을 걸어야 했다.) 바깥쪽에 있었다. 공항버스는 좀 비싸도 달러도 받았다. 오오 버스의 쾌적함, 푹신하고 과학적인 시트, 문명이다. 도로도 그저 쭉뻗었다. 한 시간만에 플라야델카르멘에 도착했다.



PLAYA DEL CARMEN_0829_0907

배낭여행자의 칸쿤, 보급형 칸쿤으로 불리는 곳이다. 칸쿤에 여행자가 몰리면서 조용한 어촌마을인 이곳도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먼저 칸쿤은, 사계절 날씨가 좋아서 미국과 쿠바 관계 악화에 따라 전략적 휴양지로 육성되었다고 한다. 그 주변에 플라야델카르멘이 있는데, 바로 앞에 멕시코의 제주도라 할만한 이슬라 코수멜(ISLA COZUMEL)도 있고, 주변엔 수 많은 세뇨테(CENOTE)가 있으며, 마야 유적지인 툴룸(TULUM)도 가깝고, 바다는 칸쿤 보단 살짝 덜 예쁜 천해의 요양지다.


숙박_HM PLAYA DEL CARMEN_스위트 더블룸_2

여편님이 큰 결단을 했다. 그간 쌓아놓은 호텔들점컴 보너스를 쓰기로 했다. 신혼여행 때 크게 쓴 덕분에 제법 고가의 1일 숙박권이 있었다. 쿠바에서 녹을만큼 녹았고,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쓰냐며 치워버리자고 했다. 이왕 그럴거면 돈을 좀 더 써서 2박까진 묵는 것이 머무는 티가 날 것 같았다. 무난한 예산에서 좋은 호텔을 골랐다. 터미널에서 호텔까지 뚜벅이답게 걸어갔다. 도심에서 멀면 이동이 힘드니 시내 한가운데 호텔을 골랐다.


좀 일찍 도착했으나 곧바로 체크인을 시켜줬다. 큰 리조트는 아니라서 시원한 풀장 한 가운데 호텔 건물이 둘러진 구조였다. 침대가 광활했다. 쿠바 까사에서 둘이 자던 침대보다 3배는 컸다. 둘이 세로로 누워도 남을 지경이었다. 바닥도 돌이라 시원했다. 다만 에어컨인지 화장실인지 수영장 냄새가 나는게 흠이었다.

호텔에서 머무는 동안 풀장을 만끽했다. 우리같은 배낭 여행객은 없는 것 같았다. 여유있게 풀장이나 선베드에서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풀장에 백조 튜브 하나와 아보카도 튜브 하나가 떠있었다. 그걸 갖고 몇 명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나도 얼른 아보카도 하나를 집어다가 탔다. 재밌었다. 다음날엔 튜브가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들 것이었다.

밤에는 풀장 주변에 앉아 바를 즐겼다. 절대 바가 비싼 건 아니었으나, 쿠바 공항에서 사온 럼을 먹고 싶었다. 아직 쿠바리브레의 여흥이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콜라와 얼음만 사다가 방에서 간단히 제조했다. 고급스러운 밤이었다. 푹 자는 여편님을 대신해 아침엔 식당으로 새벽같이 올라갔다. 먼저 커피를 마시며 테라스를 즐기고 싶었다. 서빙까지 해서 주는 커피는 실망이었다. 뒤돌아보면 아쉽다. 그렇게 좋은 커피가 많이 나는 멕시코인데도 넷스커피 같은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식은 종류가 많진 않아도 다 맛있었다. 멕시코답게 조식에도 또르띠야, 살사가 잘 구비되어 있었다. 유럽, 미국 고객이 많으니 팬케잌도 있고, 용과, 파파야 같은 과일도 실컷먹었다.


숙박_공기방울_펜션_안방_더블룸_7

달콤한 이틀을 보내다 보니 플라야델카르멘에서 하려던 걸 하나도 안했다. 저렴하고 위치 좋은 공기방울을 찾아서 일주일을 예약했다. 호텔과도 가까운(거의 두 블럭) 중심지 펜션이었다. 여기도 공용 풀장이 하나 있고, 장기로 빌려서 머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집 주인은 이탈리아에서 온 커플로 근처에서 쏘렌토 어쩌구하는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장사를 해서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우리가 문을 잘 안잠갔거나 하는 등으로 약간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됐다. (곳곳에 자물쇠가 있는 걸로 봐서 좀도둑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식당에도 한 번 오라고 했으나 굳이 멕시코 음식을 두고 쿠바에서 물리게 먹은 파스타를 또 먹고 싶진 않았다.

집은 좋았다. 안방에 화장실도 딸려있고, 베란다도 있고(맞은 편 집이 매우 멕시코 해변스러운 펜션이었다.), 에어컨은 있었지만 호텔에서 냉방병이 올라와서 천장 선풍기만 썼다. (에어컨에서 걸레 냄새도 났다.) 주방도 눈치껏 조심조심 사용했다. 간단히 장을 봐서 볶음라면, 과카몰레, 새우요리 등을 해먹었다. 마지막 날 낮에 비오는 가운데서 수영을 해서 더위를 싹 던져버리고 나왔다.


주변엔 월마트를 포함해 대형 슈퍼마켓이 몇 개 있다. 우리가 맘에 든 건 MEGA였다. 여편님은 10년 전 미국 경험을 토대로 우리 월마트~ 했으나, 일단 월마트는 그녀의 기억과 달리 기본 색상이 파란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나마 월마트가 나은 건 아시아 식품 코너, 그 중에서도 오또기 라면을 풍성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메가는 풍족한 마트였지만 관광객들은 별로 없어 쾌적했다. 색깔도 멕시코스러운 것이 정이 갔다.



시내와 해변

카르멘 시내는 엄청났다. 배낭여행자들이 가는 칸쿤이라고 해서 소박한 풍경을 기대했다. 착각이었다. 체계적으로 개발된 곳이라 차 다니는 대로가 있고, 해변과 대로 중간에 번화가가 쭉 뻗어 있었다. 거기엔 대형레스토랑과 쇼핑몰, 기념품 가게, 별다방, 니케 등 없는 게 없었다. 기념품 가게만해도 쿠바와는 양이 달랐다. 가게 하나에 있는 기념품 양이 쿠바섬 전체 기념품 양이랑 맞먹을 것이다. 물자가 이렇게도 풍부한데 한쪽엔 가난한 사람은 많을테고, 자본주의가 그대로 비쳐지는 곳이었다. (쿠바물 덜 빠진 상태)

이런 번화가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어이어 칸쿤까지 이어질 기세다. 실제로 칸쿤에 있으면서 놀러오는 걸로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너무 더워서 낮엔 숙소에서 뒹굴다가 밤에 산책 나가서 둘러봤다. 쇼핑몰에 가면 시원했다. 개방형 쇼핑몰인데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다. 벨기에 초콜렛, 이탈리아 커피도 판다. 옆에 가면 멕시코 초콜렛, 멕시코 커피, 멕시코 와인, 멕시코 시가, 멕시코 가죽이 좀 더 저렴하다. 이 나라 대체 없는 게 뭔가 싶다. 기념품은 좀 귀엽다. 괴팍한 해골들이 많다. 콜롬비아가 우아하고, 쿠바는 고고하다면, 여기는 귀여움과 개그, 괴상함으로 팔아먹으려고 한다. (전반적인 멕시코 기념품이 그렇고, 와하까, 치아파스 등 원주민 컨셉으로 가는데는 또 다르다.)


해변도 밤낮으로 갔다. 미리 멕시코를 다녀온 보노보노는 카르멘 해변은 별로라고 했다. 역시 비행기에서 본 칸쿤 해변이랑은 좀 달랐다. 미역이 많았다. 멕시코 친구들은 미역은 거북이 먹이라고 생각해서 잘 안먹는다고 한다. 첫날 여편님이 주무시는 동안 일출을 보러 갔다. 운이 좋았다. 시간이 딱 맞았다. 리조트 사이로 가서 카리브의 일출을 봤다. 보름달 뜨는 날, 밤의 해변을 거닌 것 빼고는 거의 바다에 안갔다. 바다쪽은 여기도 거의 리조트와 레스토랑이 빼곡한 분위기다.


식당_Mariscos y Clamatos El Doctorcito_http://mariscoseldoctorcito.com/

첫날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데 번화가의 식당들은 왠지 호구될 것 같았다. 괜히 아까 터미널 근처에서 본 허름한 로컬 노천 식당이 끌렸다. 여편님도 순순히 가기로 했다. 다들 대낮부터 맥주와 나초를 먹고 있다. 대짝만한 음룐지 칵테일을 먹는 사람들도 많다. 메뉴판을 봤다. 옆을 보니 뭔가 해산물 무침 덩어리를 먹는다. 쉐비체 집이라고 한다. 페루에서 좀 먹어봤으니 멕시코 음식을 시켰다. 해산물 타코 하나와 Aguachiles를 주문했다.

타코는 소박해도 안에 내용물이 튼실했다. 하이라이트는 아구아칠레스였다. 멕시코식 물회였다. 가격이 좀 비쌀만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해산물이 오이와 함께 무쳐져 나왔다. 후와후와하며 나초에 맥주에 한그릇을 다 비웠다.


비로소 멕시코에 왔다. 이 매운 소스와 고소한 또르띠야, 하지만 보노보노는 멕시코에서 플라야 델 카르멘이 제일 맛없다고 했다. 서쪽으로 갈수록 맛있단다. 아마 여행기는 먹는 이야기가 반일 것 같다. 사실 예전에 남미 여행 중에 만난 친구는 멕시코에서 타코만 대충 먹고 지냈다고 하니, ‘멕시코는 먹으러 가는 데야.’라고 했다. (물론 양질의 또르띠야는 실컷 먹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엔 더 먹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어쨌든, 저 독토리스를 한 번 더 먹기로 했다. 숙소를 옮겨 주방이 생긴 뒤, 하루 날을 잡아 아구아칠레스를 테이크 아웃했다. (당연히 멕시코는 테이크 아웃 문화도 매우 발달되어있다. 나초까지 다 잘 챙겨준다.) 거기에 마트에서 사 온 쌀국수 소면을 비볐더니, 영혼까지 후벼파는 조합이었다. 이 때부터 우리의 멕시코 새우 사랑은 시작됐다. 대략 일주일에 2,3회는 새우를 먹었다.


식당_El fogon & Don Sirloin

가이드북과 검색으로 찾아낸 곳이다. 엘 포곤은 대로 건너편에, 돈 시로인은 번화가쪽에 있다. 둘 다 느낌은 비슷한데, 돈 시로인은 관광객이 좀 더 많고, 엘 포곤은 로컬과 관광객이 섞여있다. 대략 대성갈비, 태종갈비 느낌이다. 엘 포곤이 맘에 들어서 돈 시로인 한 번, 엘 포곤은 두 번 갔다. 둘 다 또르띠야는 밀이라 좀 아쉽다. 또르띠야에 닭과 치즈를 같이 볶은 알람브라가 맛있다. 여편님이 우린 왜 저 선인장 안주냐고 했더니 아예 선인장 샐러드를 메뉴로 줬다. 두 번째 갈 때는 기본으로 주는 선인장을 세 번이나 리필해서 먹었다. 이 선인장 무침은 노빨(nopal)이라고 불린다. 멕시코 해변에 온 김에 얼굴만한 마가리따를 한잔씩 곁들였다. 무슨 신혼여행 온 것 마냥 먹었다. 또 하나 여기서 얻은 교훈은 멕시코에서 메인메뉴 두 개 시키면 배 터져 죽는 다는 사실이다. 그 이후 메인하나 에피타이져 하나의 정책을 유지하고도 몸이 퉁퉁 불어서 돌아왔다.


식당_La Cueva del Chango

가이드북에 나온 집이다. 둘째날 점심을 위해 찾아갔다. 외로운 행성에 소개됐으니 당연히 사람은 많았고, 직원도 대충 맞아줬다. 그래도 다른 식당들과는 다르게 좀 더 건강한 맛이었고, 살사들에서 좀 더 깊고 다양한 맛이 풍겼다. 하지만 가격도 좀 비싸고, 숙소에서 워낙 먹어서 한 번 가고 말았다.


식당_ TORTAS Alejandra

쿠바에 차마 내 미용을 맡길 수 없었다. (혁명이발소!) 카르멘에 오자마자 답답한 머리를 자르러 갔다. 큰 길 건너편에 이발소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 중 가장 고급스러운 곳으로 들어갔다. 한국 못지 않은 커트 가격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여행 중 가장 섬세하게, 한국에 들어가도 부끄럽지 않게 머리를 잘랐다. 근처에 식당들은 다 허름한데 사람도 없었다. 날도 더운데 장사 안되는 집에서 오래된 음식 먹으면 큰일난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 , 사람이 바글바글한 토르타스 집이 있었다. 멕시코에선 샌드위치 같은 걸 토르타스라고 한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앞에 단체 주문이 있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여편님이 시킨 것이 진짜 맛있었다. 여기의 핵심은 토르타스에 더해 깔리는 다양한 살사와 할라피뇨에 같이 절인 야채 피클이다. 이걸 슥삭 빵 사이에 끼워먹다보면 곰발바닥만한 토르타스가 어찌저찌 내 배안에 들어가있다. 한 번 더 가서 먹었다.


그 외 엘 포곤 옆 Chilakiles de Playa과 콜렉티보 정류장 근처 Tortas del Carmen도 맛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콜렉티보 정류장 근처에 호스텔도 많고 저렴한 식당도 많은 것이었다.



세노테(Cenote)

카르멘의 최대 장점은 주변에 놀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편하게 콜렉티보 타고 다녀올 수 있었다. 콜렉티보는 남미 대륙의 그것과는 달랐다. 다 새하얗고, 앞뒤로 목적지가 덕지덕지 써져있지도 않으며, 에어컨도 삼면에서 빵빵하게 얼어죽게 나와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거북이 해변, 툴룸 유적지, 이슬라 무헤레스 등이 후보로 부상했으나, 결국 일주일 간 빈둥거리다 세뇨테 두 군데 다녀오는 걸로 만족했다. 다이빙을 배우긴 글렀고, 스노쿨링도 좋다고 했다. 스노쿨링용 안경도 대여비가 은근 비싼 것 같아서 MEGA 마트에서 백페소짜리를 하나 구비하고, 마지막 세노테 바위 위에 기증했다.


세노테에 대해서는 여편님이 설명할 것이다.

(여편 say, 칸쿤과 플라야델카르멘이 있는 유카탄과 킨타나로오는 석회암 지대이다. 그래서 주변 해안의 바닷물이 지하로 역류하면 녹게 되는데 큰 구멍이 되면서 거기에 담수가 차오르게 된다. 해수도 섞이게 되면서 독특한 천연 수영장이 된다.)


Cenote Azul_0904

겁 많은 우리는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 세노테 아슐은 깊은 구멍도 없고, 다 얕아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콜렉티보를 탔다. 리조트에 출근하는 직원들, 뚜벅이 여행객들이 많이 탔다. 20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세노테 아슐 표지판 앞에 내려줬다. 입장료를 내고, 구명조끼만 빌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물이 파란색이었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돌에 걸터 앉아서 발을 담그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오 전설의 닥터피쉬가 모여들었다. 여편님은 이것만 해도 좋다면서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1년 간 쌓인 발의 각질이 후둘둘 벗겨졌다. 개인적으로 물고기들은 내 발을 더 좋아했다.

난 과감하게 스노쿨링을 해봤다. (깊어봤자 물은 허리 높이다.) 닥터피쉬와 여편님의 발을 봤다. 아기자기한 색깔의 물고기도 많았다. 배가 고파서 과자를 하나 사왔다. 슬슬 비구름이 몰려왔다. 대피하기로 했다. 그래도 한 시간 반은 놀았다. 발도 깨끗해졌다. (지금도 만져보니 발이 매끈하다.) 폭우가 쏟아져서 입구 앞에서 대기했다. 방금 입장한 사람들은 환불을 요구했지만 들어줄리가 없다. 비가 좀 잦아들자 큰 길을 건너 지나가던 콜렉티보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콜렉티보 안에서 얼어죽을 뻔했다. 카르멘은 햇볕이 쨍쨍했다.


Cenote Jardin del Eden_0905

세노테가 의외로 재밌어서 다음날은 에덴의 정원 세노테를 갔다. 여기는 스노쿨링 하기에는 제일 좋다고 했다. 위치는 아슐이랑 거기서 거기였다. 대신 길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했다. 입장료를 내고는 또 한참을 걸어들어간다. 날이 덥고, 모기도 많다. 아래에 동그란 세노테가 펼쳐졌다. 아름다웠다. 각 언덕에서 풍덩풍덩 물 속으로 점프하는 친구들이 많다. 우리는 주변을 한바퀴 돌며 동태를 살폈다. 점프하는 곳은 너무 깊었고, 얕은 곳은 햇볕이 강했다. 한바퀴를 돌고 반대편 구석에 가보니 얕은 곳이 있었다. 얕고, 그늘도 있어 앉아 있을만 했지만 모기가 많았다. 햇볕나는 곳으로 갔다. 계단으로 연결된 아래쪽엔 물 안에서 발로 디딜 수 있는 바위가 몇 개 있었다. 줄을 잡고 바위까지 갔다. (구명조끼를 입었어도 발 안 닫는 곳에서 스노쿨링 하기는 겁이 났다. 에콰도르에서 빠져 죽을 뻔한 기억 때문이다.)

한참 바위 근처 물속을 구경하다 용기를 냈다. 그럴만큼 바닷속이 아름다웠다. 꽤나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여편님도 바톤을 터치해 물속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물 속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스노쿨링 기어는 하난데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했다. 바위에서 일미터 이미터씩 떨어지다가 건너편 바위까지도 헤엄쳐서 가봤다. 여편님이 큰 맘 먹고 반대편 끝 자락까지 구경해서 갔다. 다시 돌아왔다. 나도 따라했다. 뒤늦게 스노쿨링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물론 바위 근처가 볼 건 많았다. 멀리 간다고 많은 게 보이진 않았다. 다이빙하는 사람들은 뭘 좀 더 봤을 것이다. 금방 또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또 갈까 망설였지만 저녁에 체크아웃을 해야 해서 숙소 풀장에 물을 담그는 걸로 만족했다.



부록_삽질_칸쿤 공항_1

원래는 공기방울에서 일주일을 머물고, 칸쿤에서 낮 비행기로 멕시코시티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아니 그렇게 예매를 했다. 멕시코시티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다. 우리가 몇시 도착인지 삼사일 전쯤 확인을 했다. 엇 비행기 출발 시간이 아침 6시다. 난 분명 오후 1시 걸로 예매했는데 말이다. 몇 번이나 확인하다가 서비스 센터에 연락해봐도 묵묵부답이다. 열을 내다가 포기했다. 예매할 때 추가요금 확인한다고 창 두 개 띄운게 잘못이다. 새벽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도 있었으나 전날 밤에 가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귀국길에 노숙할 가능성이 높으니 연습 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았다. (귀국길에 노숙 따윈 없었다.)

삭막하지만 그래도 정든 카르멘을 떠났다. 숙소에서 저녁까지 먹고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탔다. 고작해야 9시였다. 어디서 잘까 고민했다. 공항노숙은 나나 여편님이나 평생 처음이었다. (유투브에서 공항 노숙 영상도 찾아보고, 노숙하기 좋은 공항 순위도 찾아봤다. 애시당초 칸쿤 공항은 목적지지 경유지는 아니라 노숙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공항 대기 의자엔 자는 사람도 몇명 있었다. 망할 의자가 이미 주인이 있는 것들 빼고는 다 손잡이가 불쑥불쑥 솟아 있다. 여기서 쪽잠을 잘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남은 럼을 매점 주스에 타봤으나 맛이 없었다. 공항은 추웠다.

그러다 결국 화장실 왼쪽, 은행 앞이 최적지임을 알게됐다. 그리로 가서 잠자리를 펴고, 중요한 배낭은 감싸안고, 큰 배낭을 배개 삼았다. 저기 의자에서부터 말 많던 친구도 옆으로 왔다. 우리랑 같이 내일 6시 비행기란다. 4시에 서로 깨워주기로 했다. 거의 10번을 깨며 잠을 잤다. 무사히 새벽에 일어나 첫 비행기를 탔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참고_호스텔 리오 플라야_http://cafe.naver.com/playadelcarmen

플라야 델 카르멘 구석구석, 교외 투어에 대한 정보까지 잘 나와있었다.


참고_호세호세 블로그_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ose_jose

먹다보니 좀 많이 알고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열심히 공부했다.


금융_Banamex

여행 내내 쓸데 없다고 투덜거리던 도시은행 카드가 또 빛을 발했다. 도시은행은 없지만 도시은행이 인수한 Banamex에서도 수수료 할인 혜택이 유지된다. 마지막 산크리스토발 지점이 수리 중이었던 걸 빼곤, 어딜가나 곳곳에 퍼져 있어서 유용하게 썼다. 멕시코도 IMF를 거쳐 은행 대다수가 외국계로 넘어간 건 슬픈 유대감이다.


영화_내 어머니의 모든 것(Todo Sobre Mi Madre)

심심한 카르멘에서 영화를 몇 편 봤다. 이왕이면 스페인어인 것을 봤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이다. 제목과는 좀 다르게 벙진 영화다.


영화_사랑해 매기(No se Aceptan Devoluciones)

이건 진짜 멕시코 영화다. 추천받은 멕시코 영화가 다 너무 괴팍해서 보다 말았다. 이건 재밌었다. 내용이나 감동이 뻔하지만 훈훈한 멕시코 냄새가 느껴진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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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나 마프라트

카페 2017. 10. 29. 10:12

[김선우의 빨강]  분나 마프라트


이제 커피는 많은 사람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커피를 만든다. 아침 커피는 머그잔이 아니라 작은 다완에 세 잔 마신다. 에티오피아의 ‘분나 마프라트’(커피 세리머니)를 안 이후 생긴 습관이다. 인류 최초로 커피가 발견되고 전해진 에티오피아에선 하루의 시작을 분나(커피의 에티오피아 말) 의례로 연다. 생원두를 작은 무쇠 판에 볶고 나무절구에 빻아 토기 주전자에 물과 함께 끓여서 손잡이 없는 작은 잔으로 세 잔을 마신다. ‘불맛’이 커피콩에 스밀 때 향을 피워 의례의 신성함을 더한다. 첫 잔은 우애의 잔, 둘째 잔은 평화의 잔, 셋째 잔은 축복의 잔이다. 커피 의례로 아침을 연 가족들은 서로 포옹하고 각자의 일터로 간다. 손님을 접대할 때도 세 잔의 커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몇 스푼의 갓 볶은 커피가루를 물과 함께 끓여 나누어 먹는 이 소박한 의례를 알고 난 뒤 그동안 내가 지나치게 ‘핸드드립 공식’에 연연했음을 깨달았다. 핵심은 마음이다. 거친 대지에 발 딛고 하루분의 삶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우애, 평화, 축복을 일깨우는 한 줌 커피콩의 힘. 그 마음작용이 중요한 것이지 ‘맛과 향’ 추출에 과하게 집착하던 그간의 내 습관은 정작 핵심을 놓치고 있었던 거다. 커피콩 체리들이 향기로운 원두로 변해 내게 오기까지 그 기나긴 과정에서 수고한 손들을 생각한다. 그 모든 수고 위에 우애와 평화의 따스함이 어리기를. 매일의 커피 한 잔이 모두에게 진정한 ‘축복’이 되면 좋겠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4444.html#csidxad50fc30d23063bb8423295f3da94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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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는 법  (0) 2017.10.10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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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는 법

카페 2017. 10. 10. 05:50

커피를 마시는 법
.
詩 박노해
.
에티오피아 커피 농부 유누스가
올해 처음으로 수확한 커피콩이라며
철판에 볶아 나무절구로 찧어 내린
첫 잔을 내밀며 수줍게 웃는다
.
나는 금이 간 커피잔을 들어
첫 모금을 마신 후 최고라고 말하려다가
실망어린 유누스의 표정을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챘다
.
나는 다시, 향기를 맡고 한 모금을 마신 후
천천히 눈을 감고 음미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뜨고 미소지으니
그의 얼굴이 환한 유채꽃이다
.
그렇지요, 서른을 셀 때까지요
첫 모금을 마신 뒤 서른을 셀 때까지
가만히 집중해야지요
목을 타고 입을 거쳐 코로 올라오는
커피향이 다섯 번은 변화하지요
.
에티오피아 커피는
다섯가지 꽃 향기가 연달아 피어나고
다섯가지 과일 맛이 연달아 감돌지요
.
우리는 커피 마실 때마다
이 커피콩이 자라난 30년의 시간과
계절의 햇살과 대지의 바람을 느끼지요
.
커피를 마실 땐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여운을 느끼는 거지요
그러면 어지러운 상념들이 가라앉고
복잡한 것들이 단순하게 정리되지요
.
커피를 마시는 곳은 생각의 성소이고
커피를 마시는 일은 마음의 성사지요


출처: 라 카페 갤러리

http://blog.naver.com/racafe/4015761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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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나 마프라트  (0) 2017.10.29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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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서부의 산골 휴양지 비날레스로 갔다. 이번에도 까사에 부탁해서 콜렉티보를 불렀다. 이번에 온 건 정식 택시가 아니라 가족이다. 앞 자리에 부부가 앉고 뒤에 아들이 앉고, 우리 셋이 끼어 앉았다. 좀 많이 좁았지만 차도 올드카가 아니라 덜 떨렸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마신 커피도 맛있었다. 아들이 절대 다리를 오므리지 않는 것만 빼면 쾌적했다. 아저씨가 비날레스 가는 콜렉티보가 있는 곳에 내려줬다. 빨간 올드카를 탔다. 알고보니 뷰익이었다. 고속도로를 창문 열고, 노래 들으며 달렸다. 우리 셋이고 매연이나 에어컨도 없어서 쾌적했다. 끈적한 바람에 머리는 모두 떡이됐다. 한 번은 해볼만한 경험이다. 꼬불꼬불 산길로 진입해서 30, 비날레스에 도착했다.


Viñales_0823_0828

쿠바의 다른 관광지와 달리 산골(그래봤자 해발 150m)에 있어서 좀 차분한 분위기다. 주변에 농장, 산이 많아서 생태 관광으로 유명하다. 어지간해선 예전엔 안 그랬다는 표현 싫어하는데 여긴 진짜 많이 변했다. 가운데 식당 몇 개 있고, 숙소도 많지 않고 골목엔 돼지와 닭이 자유롭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지금은 골목에 포장도로도 많이 깔리고 큰 길은 물론 뒷 골목까지 모두 까사와 식당으로 가득하다.


숙박_Casa Colonial_트리플룸_4

산타 클라라에서 아델라와 통화했다. Villa el Pollo로 가라고 했다. 주소를 보니 맵양에도 나왔다. (쿠바에서 맵양: maps.me은 거의 절대적 신이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아줌마의 거친 마케팅을 뿌리치고 숙소를 찾아갔다. 젊은 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자기네 집은 방이 없지만 연결된 옆집(형제인 듯?) 방을 보여준다. 숙소가 큰 길가라 걱정했는데 마당 깊숙이 있는 별채다. 스머프 버섯이 심어진 잔디밭도 있다. 방도 넓고 창문도 있다. (밖으로 통하는 창문은 쿠바에서 처음이었다.) 비날레스 숙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 앞에 흔들의자다. 서늘한 아침 바람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책만 읽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방은 좋았지만 아침은 그냥 그랬다. 무엇보다 커피가 너무 맛이 없었다. 우리 속을 모르는 주인 부부는 계란만 엄청나게 부쳐줬다. 밖에 나가면 아침 파는 식당도 얼마든지 있어서 큰 불편은 없었다. 하지만 아침도 잘 안 먹고, 저녁도 한 번 안 먹으니 우릴 별로 좋아하지 않는게 느껴졌다.


숙박_Casa Elisa_더블룸_1

솔님은 3박만하고 공항으로 바로 떠났다. (아바나로 가는 콜렉티보가 공항에도 내려주었다.) 주인에게 이틀 더 있을 거라고 하니 확답을 안주다가 하루만 된다고 한다. 옆집(Villa el pollo)에 방이 있다고 한다. 짐을 싸서 배낭을 맡겨 놓고 나갔다 왔는데 오늘 나가기로한 애들이 하루 더 있는다고 한다. 근처 집을 보여주는데 다 맘에 안든다. 여편님이 아침에 카페에서 조식 먹으면서 맞은 편의 좋은 집이 ‘빈 방 있음’을 걸었다고 했다. 가봤더니 이 집 주인도 우리가 아침 먹는 걸 보았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20)에 방을 하나 내준다. 에어컨 위치가 요상했지만 별로 덥지도 않았고, 방은 깔끔했다. (다른 좋은 방은 다 차 있었다.)

하루만 머물렀지만 편안한 집이었다. 나름 마당도 있고 쾌적했고, 아침 식사도 무난했다.


시내_추억 산책_0823

비날레스도 공원에서 와이파이를 한다. 동네가 좁아서 근처 식당이나 바에서도 접속이 되서 편안하게 인터넷도 좀 했다. 공원 한쪽엔 문화센터에서 살사 배우는 친구들도 있고, 밤엔 그 옆에서 트리니다드처럼 공연을 한다. 현숙 같은 언니가 나와서 분위기를 으쌰으쌰했다.

내가 비날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예전 여행 때 머물렀던 숙소가 좋았기 때문이다. 예약한 숙소가 맘에 들어 그대로 머물렀지만 그쪽을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연립주택을 지나 소박한 까사 몇 개가 보인다. 이제 돼지와 닭들은 저 풀섶 안쪽에서 놀고 있다. 여전히 운치가 있다. 이쪽 숲길을 돌아보는 친구들도 있다.


투어_국립공원_승마_0824

근처 국립공원을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숙소 아저씨를 통해 신청했다. 말 타고 돌아보는데 1인당 1시간에 5쿡이라고 한다. (나중에 돌아보니 3쿡이라고 써붙인 곳도 있었다.) 오전을 추천했는데 여전히 햇볕이 강해서 오후에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3시가 되니 비는 좀 잦아들고 구름이 껴서 선선했다. 우릴 데리러 온 사람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마을 외곽에 말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각자 말을 배정받는다. 내가 탄 말이 5, 여편님 말이 4, 솔님 말은 더 어리다. 순서대로 가는데 4살짜리가 자꾸 앞서려는 욕심을 낸다. 그럼 또 내 말이 달려나간다. 몇 번이나 여편님과 부딪혔다. 가이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뒤에서 까바요~(Caballo, ) 소리만 치면서 따라온다.

마을 외곽인데도 까사가 많다. 계속 짓고 있다. 한참을 말 타고 나가야 국립공원 길로 접어든다. 보아하니 예전에 워킹투어로 했던 거랑 코스가 똑같다. 담배 농장으로 간다. 앞의 팀 설명이 끝나고 우리가 들어간다. 담배 수확철이 아니라서 초간단 설명을 해준다. 여편님과 솔님은 괜찮다고 해서 나만 체험용 시가를 하나 물었다. (사진 않았다. 예전에 6개월 간다고 샀는데 한 달만에 배낭 속에서 다 썩어 문드러진 기억이 있다.) 여편님도 몇 번 피우고 맘에 들어한다. 시가는 연기를 머금다가 내벹는 거라 칼칼함도 없다. 그래서 천식이 있는 체형도 좋아했던 것 같다. 시가를 마저 물고 말에 오른다. 말 위에서 피우는 시가의 맛이란, 흡연가가 아닌 나에게도 신선 놀음이었다.


비가 그친지 얼마 안되서 내리막 비탈길은 미끄럽다. 긴장 빡 하고 내려간다. 커피 농장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거대한 호수를 끼고 (아침에 시작하면 점심에 이 호수에서 수영도 하는 것 같다. 하기 싫다.) 커피 농장을 보러 간다. 농장을 둘러본다. 커피 나무 뿐만 아니라 구아바 등등 열대 과일 나무가 많다. (자긴 구아바 두 개 먹고, 우린 하나 준다.) 커피 나무를 보여준다. 노란색 열매도 열렸다. 고도가 낮은 걸로 보아 로부스터 품종일 것이다. 구아바를 넣은 럼을 맛 보여준다. 커피는 볶은 원두를 생수통에 판다. 전통 방식으로 한 시간 동안 구웠다고 한다. 숯덩이 같은 맛이다. (당연히 사진 않았다.)

호수와 주변 산세를 보이는 오두막 카페에서 음료를 한잔씩 마신다. 코코넛인데 물이 별로 없다. (아바나 시내에서 사먹은 것보다도 못하다. 마시던 거 준듯?) 경치는 진짜 좋다. 가운데 홀로 솟은 오름 같은 봉우리가 인상적이다. 왔던 길을 한 번에 돌아간다. 중간에 여편님 말이 난동을 부렸다. 솔님은 중간 중간 말이 땅을 뚫을 기세로 볼일을 보면서 서서히 넋이 나갔다. 우리야 몽골, 페루 등에서 타면서 말에 안장만 있으면 감지덕지다 하는 수준이지만 제주도 승마장 이후 쿠바에서 말타기란 엄청난 문화 충격인 것이다.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돌아오니 2시간 반 정도가 흘러있었다. 말에서 내려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왔다.


요양_0825_0826

승마 후 돌아와서 저녁에 먹은 바베큐가 탈이났다. 바베큐라 질기군 하며 먹다가, 여편님 걸 먹어보니 부드러웠다. 결국 나와 솔님이 탈이 나고 말았다. 하루 종일 누워서 요양했다. 아껴둔 컵라면 세 개를 먹어봤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배고픈 여편님은 홀로 피자를 테이크 아웃해서 먹었다. 여편님과 나, 솔님의 생체리듬은 쿠바 여행 내내 반대 곡선을 그렸다. (참고: 생체리듬 변화)



다음날 아침, 헤롱헤롱한 상태로 솔님은 떠났다.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컸다. 어찌어찌 살아서 한국엔 갔다고 한다. 우리의 짐 몇 개와 그녀의 기념품까지 더하니 올때보다 캐리어가 더 무거워졌다. 여러모로 다시 감사를 표한다. 그녀가 떠난 날, 몸을 마저 회복했다. 기름기 없는 음식을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 마음은 허전했다. 우린 뭐하러 3,4일을 더 머물기로 했을까. 남은 날은 멍만 때리다 가나. 괜한 기우였다. 우리의 쿠바 여행은 (솔님께 미안하게도) 다음날 정점을 찍었다.


수영장_Horizontes Los Jazmines_0827

숙소를 옮기려고 짐을 뺐다. 짐 정리해서 맡기고 나니 땀이 한바닥. 해결책은 수영장을 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근처 자스민 호텔은 수영장만 별도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수영 장비를 챙겨서 택시를 타고 갔다. 호텔 입구로 들어갔다. 수영장 입장료는 3(가이드북에 7쿡이라고 해서 쫄았었다.)이었다. 바에서 파는 음료, 커피, 샌드위치도 일반 식당과 다르지 않다. (다른 곳의 고급호텔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 정책이다. 혁명 만세!) 일요일이라 놀러온 쿠바 사람들(대부분 까사 주인 느낌이다.)이 훨씬 많았다. 몇몇 가족은 어마어마한 바베큐 덩어리를 다같이 나눠 먹고 있었다.

처음엔 한가해서 아무데나 자리잡았는데 점점 사람이 늘어났다. 한쪽은 어린이용으로 낮은데 반대편은 기하급수적으로 물이 깊었다. 우린 안전하게 어린이들과 섞여 놀아야했다. 물에서 실컷 놀다가 나오면 비날레스 계곡이 그대로 펼쳐졌다. 물놀이를 실컷 하고, 점심도 먹고, 엽서 쓰고, 호텔 매점도 구경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쿠바에서 보낸 최고의 하루였다.


식물원_Jardin Botanico_0825

요양 중에 잠깐 다녀왔다. 그냥 산책하는 식물원인 줄 알았는데 가이드를 따라 구경하는 곳이었다.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상태가 메롱이라 별 감정이 없었다.



중심거리는 가로수길 못지 않게 번화하다. 초반엔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미국 휴가 시즌 막판이라 그런지 마지막 며칠은 한산했다. 골목엔 또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 선다. 대부분 지역 특산물인 나무와 짚 제품을 판다.


카페_Café del Rey

은근 카페는 많지 않다. 그나마 제대로된 커피를 팔 것 같았다. 마셔보니 맛도 있다. 조식을 먹어보니 양도 적당하고, 아침엔 커피가 더 맛있다. 종종 애용했다.


식당_El Barrio

가이드북에 나온 식당이고, 숙소 근처라 첫날 피자를 먹었다. 맛있었다. 또 가서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별로였다. 피자만 한 번 더 먹었다.


식당_길에서 굽는 바베큐 집

첫날 저녁을 뭘 먹을까 서성거렸다. 길가에서 직접 돼지 통구이를 굽고 있다. (비날레스에 가면 돼지 통구이를 먹으라고 했다.) 길가와 너무 가까웠지만 소박한 분위기에 고기도 맛있었다.


식당_100% 쿠바

문제의 식당이다. 승마를 하고 와서 들어갔다. 옥상 테라스 자리도 있어서 인기가 많다. 음악도 신난다. 다 같이 돼지 바베큐를 시켰다. 먹을 땐 좋았으니 결과는 폭망이었다. 고기는 잘 익혀 먹어야 한다.


식당_El Olivo

여행조언자 일등 식당이다. 몇 번 지나칠 때마다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솔님이 떠나고 둘이 기웃거리다가 한가해서 들어갔다. 안락하고 점잖은 분위기였다. 샐러드와 빠에야를 시켰다. 빠에야에 해물이 진득하게 들어가서 맛있었다. 샐러드도 오이, 토마토가 아닌 여러 풀이 잔뜩 들어간 것이었다. 이탈리아와 지중해 매니아인 솔님 생각이 났다. 그렇게나 풀이 많은 샐러드와 촉촉한 죽 같은 밥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이후 남은 이틀 내내 올리보에서만 먹었다. 직원들도 얼굴이 익었다. 모두 형제로 보이는데 몸집이 다 좋다. 쿠바 식당에선 하나 같이 접시를 한 번에 모아서 다 치우는데 이 형들이 치우니 불안하지가 않다. 파스타도 우리가 그리던 맛이었다. (이전에 쿠바에서 먹은 파스타는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주는 스타일이었다.) 나중엔 오리 고기도 시켰다. (토끼 고기도 판다.) 중화풍으로 부드럽게 나와서 집에서 먹던 생각이 날 정도였다. 먹을 때마다 솔님 생각을 했다.



P.S 꽝님

솔님과 더불어 감사해야 할 분이 또 있다. 솔님과 공항에서 만난 분이다. 우리가 오기 전 하루 아바나 관광을 같이 했다고 한다. 우리 아바나 숙소 얘기를 듣고 아델라 집을 예약해 달라고 했다. 이후로도 종종 솔님에게 쿠바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어떤 수난이 닥쳤는지 쿠바 이미지 꽝이라고 했다.


독서_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솔님이 예전에 읽고 여편님 보라고 가져온 책이다. 나도 예전에 읽고 쿠바에 대한 이미지가 급 좋아진 책이다. 저자는 쿠바 매니아라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 교육 천국 쿠바, 의료 천국 쿠바 등의 책을 펴냈다.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도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솔님은 여행 기간 이 책을 봤다. 각자 쿠바 관련된 책을 하나씩 보며 중간 중간 토론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비날레스 숙소 Casa Colonial에 두고 왔다.


_맥주__칵테일

쿠바하면 럼이다. 아바나 클럽 말고도 산티아고 데 쿠바 등등 다른 럼도 많은데 마셔보지 못했다. 더위 때문에 럼보단 맥주를 많이 마셨다. Cristal이 연하고 시원했다. 럼을 그냥 먹으면 온 몸에 없는 수분이 다 날라가는 것 같아서 쿠바리브레, 모히또를 종종 마셨다.


음악_영화_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설명이 필요없다. 집에 가면 한 번 더 봐야겠다. (여편님은 극장에서 이걸 보고 Chan Chan 나오자마자 울었다고 한다.)


음악_쿠바로 가는 길(The Road to Cuba)

유명한 부에나 비스타 클럽 엘범과 함께 쿠바에서 많이 들은 엘범이다. 여러 유명한 쿠바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_Silvio Rodriguez

실비오 로드리게스가 칠레 가순 줄 알고 있었다. 쿠바의 김광석 같은 대표적 민중 가수였다.

Mi unicornio azul: https://www.youtube.com/watch?v=dnvVtkVaM84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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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를 맛보고자 트리니다드로 갔다. 혁명을 맛보고자 산타 클라라도 갔다.


트리니다드(Trinidad)_0817_0821

남부 해안에서 조금 올라온 곳에 있는 마을이다. (난 여기가 바로 바닷간 줄 알았는데 바다는 차를 타고 10~20분 내려가야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식민지풍의 건물들과 가까운 해변 때문에 발달한 관광지다. 그래도 우리가 머물렀던 곳 중엔 가장 한적했다. 마을 안에선 바다는 고사하고 산만 보인다. 시원해서 좋다.


가는 길_0817

예정 시간보다 일찍 집으로 온 택시 운전사, 서둘러 밥을 먹고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데리러 갔다. 아바나의 부촌이라 불리는 동네다. 말루마 같은 애가 나와서 얘기를 하더니, 한 시간을 기다린다. 기약도 없다. 그러다 딱 봐도 전날 늦게까지 술 마신 말루마 친구 세 명이 나타난다. 워낙 늦어서 나머지 두 명은 다른 차를 타고 여기로 직접왔다. 콜렉티보 택시는 초록색으로 포드사거 였다. 여편님이 기사에게 “이 차 몇살이냐?” 고 물어봤다. 기사는 ‘58년형’ 이라고 했다. 우리 아빠, 장모님과 동갑이다. 올드카는 아바나 시내 관광할 때만 쓰는 줄 알았는데, 장거리 택시도 한다. 반 세기 지난 에어컨의 공기도 탁하다. 고속도로를 시속 백키로로 달린다. 거의 떠있는 상태로 달달달 거리며 간다.

잠시 휴게소에서 쉬고, 세 명은 다른 차로 갈아탄다. 앞의 두 여성은 필리핀에서 왔다고 한다. 5시간의 힘든 여정이었다. 다음엔 무조건 버스를 타기로 한다.


숙박_Casa Colonia Nena y Robe_트리플룸_4

아델라가 써준 종이를 보고 콜렉티보가 숙소 앞에 내려준다. 두근두근 어떤 방일까. 넓고 깨끗한 더블침대 2, 깔끔한 화장실, 심지어 LED로 온도가 표시되는 최신 에어컨. 좋은 집이다. 위에 테라스에서 아침이나 저녁을 맞이해도 좋다. 점심도 대충 먹어서 오후 늦게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방에 창문이 없어서 문 닫고 에어컨을 켜니 스르르, 모두 7시에 자서 다음날 7시에 일어났다.

당연히 아침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주인 내외 모두 친절하고 여러모로 배려를 많이 해준다.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에 새우, 랍스터 등도 있어서 랍스터 2, 새우 1개를 부탁했다. 랍스터는 보기엔 기세 등등했지만 살은 새우가 더 맛있었다. 더 이상 랍스터에 집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시내_광장과 시장

숙소에서 번화가까지는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길이 돌길이라 차는 별로 안 다닌다. 은퇴해도 괜찮을 말들이 힘겹게 마차를 끌고 있다. 비가 자주와서 지붕 밑의 좁은 도보 길로 다녀야 했다. 아바나 보단 덜 하지만 미친듯이 더워서 외출 후 집으로 피신하기를 반복했다.

두 개의 광장이 있다. 하나는 은행, 통신 등 사무적인 중심가고, 하나는 좋은 식당과 가게가 몰려있는 관광 중심가다. 골목골목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들어섰다. 지역별로 기념품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걸 보면 다들 근처에서 만드는 것 같다. 혹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많이 샀다. (티셔츠, 앞치마 등등) 와이파이가 잡히는 공원에 계단으로 공연장까지 이어지는데 거기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다들 콜라 하나 시켜놓고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공원엔 그늘이 별로 없어서 힘들다.)


전망_Museo Nacional de la lucha contra bandidos_0818

뜬금없이 트리니다드에 무슨 혁명 박물관인가 했더니, 이쪽 해안을 공습했던 미국과의 투쟁을 기념한 곳이다. 혁명 이후 끊임없이 쿠바를 괴롭혔던 미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실 박물관 방문의 주 목적은 종탑에 올라가서 전망을 보는 것이다. (여편님의 전망 욕심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더워서 대충 보고 나온다.


공연_Casa de la Musica_0818

광장 바로 위 계단 꼭대기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여기서 밤마다 공연이 펼쳐지고, 너도나도 무대로 올라가 살사를 춘다는 그곳, 숙소 저녁을 먹고 밤마실을 나갔다. 음료 하나를 시켜놓고 공연을 감상했다. 공연은 아저씨가 노래만 안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앞에는 바람잡이들이 춤을 추고, 맨 앞자리에 때를 노리던 2커플이 나선다. 잘 춘다. 여편님이 졸림을 호소하여 귀가했다.


해변_Ancon_0819

토요일은 해변에 갔다. 터미널 근처에 가서 택시를 탔다. (버스도 가격은 거기서 거기다.) 휴가철이라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제일 안쪽에 야자수 하나와 선베드 3(유료 대여)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선베드는 혁명적이게도 좀만 앉으려고해도 알아서 내려간다. 관리인은 중국제라서 그렇다고 한다.

여름 주말, 공공 해변이라 쿠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옆엔 젊은이들이 스피커로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줬다. 라틴 음악의 보급 창고 푸에르토 리코와 인접해서 그런지 익숙한 음악들이 줄줄 나온다. 앞엔 가족들이다. 오이, 토마토 등 어마어마한 도시락도 준비해왔다. 재밌는 건, 쿠바 사람들의 수영복에 미국 국기가 많이 그려진 것이다. 미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라고 마이애미의 월마트 등에서 폭풍 세일, 이걸 친척들이 보내주는 것으로 추측했다.


신난 솔님이 먼저 입수한다. 뒤이어 여편님도 한 두번 입수한다. 나는 읽던 책을 다 읽고 느지막히 입수했다. 점심 먹을 식당은 해변에 꼴랑 하나다. 돼지, , 소 중에 하나를 택하면 된다. 해변이라고 바가지도 없고, 맛은 있다. 노점상들은 피자를 판다. 쿡으로 비싸게 받는데 맛은 없다. (아마 동네에선 5모네다면 먹을 맛이다.) 입수 두 번이면 일 년 해수욕 다 하는 여편님이 먼저 귀가를 외친다. 올 때 탔던 기사 아저씨가 보인다. 담합 가격보다 싸게 태우는 거라 말 없이 우리를 태운다.


카페_Don Pepe_0819

이렇게 가게가 많지만, 트리니다드에 괜찮은 카페가 별로 없다. 여기 오는 관광객들은 다들 대낮부터 모히또 마실 생각만 하나보다. 각종 커피 음료도 있고, 정원의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자리가 별로 없어서 한 번 밖에 못갔다.


식당_Paladar El Criollo_0818

첫날 오후에 찾아간 곳이다. 카사를 겸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테라스에서 쾌적하게 수육같은 돼지고기를 썰었다. 본격적인 영업 시간이 아니라 연습하고 있던 밴드가 가볍게 부에나 비스타 ‘Chan Chan’을 연주해줬다. 체게바라가 그려진 기타로 ‘Hasta Siempre Comandante’도 연주했다.


식당_El Jigue_0820_0821

트리니다드에서 가장 맛나게 먹은 식당이다. 처음 가서 해산물 피자(Mar Pizza)를 먹었는데 반죽에 해물을 갈아넣었는지 촉촉함에 해물의 감칠맛이 잘 녹아있었다. 다음날 또 가서 같은 피자를 또 먹고, 파스타도 2개 먹었다.


밴드_Sabor Tropical_0821

El jigue 두 번째 방문이 만족스러웠던 건, 공연때문이다. 여기도 나름 크고 인기가 많아서 종종 밴드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 일찍 들어가서 음식을 기다리며 밴드의 공연을 봤다. 섹소폰 소리가 여유로웠다. 쿠바에서 본 최고의 공연이었다. 솔님이 CD를 구입해서 나중에 추출한 MP3파일도 보내주었다.


여편님이 수시로 졸림을 호소하는 바람에 제법 잔잔하게 트리니다드에서 4일을 보냈다. 정신없이 아바나를 탈출해서 쌓인 피로를 충분히 풀었다. 그리고 여행의 정점을 찍으러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비아슐 버스 정류장은 사람이 많았다. 체크인을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시엔푸에고스를 거쳐서 산타클라라까지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산타클라라 터미널은 더 크고 복잡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서 픽업 기사를 보냈다. 다음 티켓을 살 거라고 하니 비아슐 사무실로 안내해줬다. 비날레스로 가는 직행은 없고, 아바나로 가야하는데 자리가 없다고 한다.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만 적어놓고 왔다.



산타 클라라(Santa Clara)_0821_0823

아바나, 산티아고 데 쿠바 다음으로 큰 도시다. 중부 교통, 통신의 중심지고 대학도 많다. 체 게바라 기념관을 빼면 관광객에겐 별로 없다. 덕분에 일상적인 쿠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혁명의 불꽃을 활활 태웠다.


숙박_Hostal Cuba 208_트리플룸_2

택시가 집 앞에 내려줬다. 생각보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이다. 트리니다드 숙소에 아는 곳을 물어보니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아델라에 대한 신뢰도가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방이 매우 작았다. 에어컨도 켜고 자면 죽을 것처럼 오래된 것이다. 그래도 주인 내외가 친절하고, (아저씨가 영어도 했다.)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선풍기도 빌려줘서 이틀 지내기엔 나쁘지 않았다.

식사는 아침만 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좋은 식당을 추천해줬다. 아침은 다른 집보다 1쿡 저렴한 4쿡이었는데 전혀 부족함 없이 맛나고 정갈했다. 아저씨가 화가라서 그런지 그리던 그림도 보이고 고풍스럽다.


식당_Saborarte_0821_0822

주인 아저씨 추천 식당이다. 넓고 평범하게 생겼다. 메뉴판 가격이 모네다다. (대충 계산해보면 엄청 싼 건 아니다.) 돼지고기 요리를 시켰다. 잡곡밥에 붉은 고기, 제육볶음이다. 양도 푸짐해서 학교 근처 분식집 같은 감성이다. 다들 푸짐하게 먹어서 다음날 저녁에 회식을 하러 왔다. 전날 옆자리 사람들이 먹던 새우튀김, 솔님은 제육복음(전날은 다른 메뉴를 시켰다가 우리의 제육볶음만 탐냈다.)을 시켰다. 쿠바는 지역마다 함께 주는 칩의 종류가 다른데 이 동네 칩은 진짜 맛있었다. 추가로 한 번 더 먹었다. 맥주와 모히또까지 배불게 먹었다.


식당_Santa Rosalía_0821

점심 먹고, 시내 구경을 하다가 광장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식당 안쪽엔 마당에도 자리가 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바의 직원들이 반대편 손님있는 쪽으로 오지 못할 정도다. 다들 어찌저찌 시간만 떼웠다. 마당 한쪽엔 기념품 매장이 있다. 다른 곳에 안파는 티셔츠가 있어서 구입했다.

저녁을 먹으러 다시 찾았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했다. 새우, 생선 등을 먹었다. 카리브해 새우는 정말 맛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살도 도톰하고 쫄깃하다.


식당_La Toscana_0822

첫날부터 점심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둘째날 점심을 먹어보기로 했다.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위에 언급한 두 식당보다 가격이 비싼데도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식당안에서 콤큼한 냄새가 났는데 여기서 쓰는 치즈인 것 같다. 우리한텐 쉽지 않았는데 동네 사람들에겐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시내_광장과 쇼핑

광장엔 와이파이도 되고, 공연하는 바도 있고, 문화센터, 극장 등이 있다. 일단 날씨가 훨씬 덜 더워서 돌아다닐만했다. 안쪽 번화가로 들어가니 커다란 슈퍼마켓이 있다. 가방 맡기는 걸 기다려가면서까지 내부를 구경했다. 몇 군데 서점도 있다. 역시 체게바라의 도시라 관련 도서가 많다. 솔님은 이틀간의 고민 끝에 커다란 화보집을 구매했다. 티셔츠부터 시작해서 엽서, 모자, 화보집까지 솔님의 쇼핑도 여행도 여기서 정점을 찍었다.


기념관_Memorial Comandante Ernesto Che Guevara_0822

도착 당일엔 기념관이 쉬는 날이라 다음날 아침에 갔다. 광장쪽으로 나가니 말 버스(말이 끄는 다인승 수레)가 다닌다. 3명이 2쿡으로 쇼부를 본다. 더 없이 하늘이 푸르고 맑다. 공원 앞에 내려서 걸어간다. 그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다. 5년 전에 처음 봤을 땐 감동에 사무쳐서 차마 사진도 찍지 못했다. 천천히 둘러본다.

커다란 기념 동상 뒤편에 기념관이 있다. 짐을 맡기다가 여편님, 솔님을 잃어버려서 당황했다. 입장한다. 기념관은 무료다. 체 게바라의 유년 시절부터 성장기, 혁명 전쟁, 그 이후까지 주요한 유품과 사진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솔님과 여편님은 특히 웃통 벗은 사진을 좋아했다.) 다른 쪽엔 주요 혁명 영웅들을 기념한 곳도 있다. 기념관을 나와 밖으로 나가면 여러 무덤도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곳을 찾았던 모습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쿠바는 두 번 여행할 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위 자유, 배낭 여행이란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행자로서 지켜야할 제약 요소가 많다. (불만은 아니다. 쿠바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덴 그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을 꼽자면 체 게바라의 재발견이다. 예전엔 그저 여행가, 게릴라 지도자, 혁명가로 좋아했다면, 이젠 앞서간 세계 시민 사상가, 실천가로서 믿고 따른다. (여편님은 며칠 내내 체 게바라를 칭송하는 나와 솔님을 두고, 교회 수련회 온 것 같다고 평했다.)


독서_쿠바혁명사: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여정_아비바 촘스키

솔님이 여행 준비하면서 보고 갖고 오셨다. 아바나에서 시작해서 트리니다드의 해변까지 단숨에 읽었다. 저자는 그 유명한 미국 노인, 노엄 촘스키의 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요하게 미국의 횡포를 늘어놓기도 한다. 쿠바현대사를 다시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됐다. 비판적인 그녀도 체 게바라는 거의 절대 존엄 취급한다. 중간중간 그의 사상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다큐_체 게바라 뉴 맨(Che. Un hombre Nuevo)

산타클라라에 오기 전, 혁명의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트리니다드에서 단체 관람했다. 그가 남긴 흔적을 철저히 추적해 체 게바라가 진실로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뉴 맨은 체의 새로운 인간 사상을 말한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인간을 물질적 동기로 분석한다. 하지만 새로운 인간은 도덕적 동기를 기반으로 행동한다.

체가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남기는 편지에서 말한 혁명이다.

혁명의 중요성을 잊지마라. 하지만 혁명은 혼자선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은 민중이 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언제나 전세계의 누군가가 당하는 불의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혁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Acuérdense que la Revolución es lo importante y que cada uno de nosotros, solo, no vale nada. Sobre todo, sean siempre capaces de sentir en lo más hondo cualquier injusticia cometida contra cualquiera en cualquier parte del mundo. Es la cualidad más linda de un revolucionario.’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영원한 사령관’으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Hasta Siempre_Carlos Puebla: https://www.youtube.com/watch?v=GxtwzU0-wPM


기타_체가 남긴 말들 (개인 메모용)

Seamos realistas y hagamos lo imposible: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리고 불가능한 일을 하자.

Estar siempre lista a apoyar las causas justas: 언제나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편지 중

Que en dondequiera que me pare sentiré la responsabilidad de ser revolucionario cubano y como tal actuaré. Que no dejo a mis hijos y mi mujer nada material y no me apena; me alegro que así sea. Que no pido nada para ellos, pues el Estado les dará lo suficiente para vivir y educarse.

어딜가든 쿠바 혁명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행동할 것이다. 내 아이들과 부인에게 아무것(유산)도 남겨준 게 없는데, 슬프지도 않고 기쁘다. 국가가 이들에게 삶과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Patria o Muerte:.

Hasta la victoria siempre로 유명한 문구인데, 다큐에 따르면 피델이 편지글을 잘못 끊어 읽어서 굳어진 표현이라고 한다. 원문은 ‘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 조국 아니면 죽음을’로 끊어 읽는 게 맞다고 한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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