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천만의 대도시, 리마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지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복잡하다. 숙소 주인은 위험하니 택시를 타고 오란다. 그린택시를 타라고 했는데 찾다보니 벌써 열명의 기사가 우리를 둘러쌌다. 어찌저찌 택시를 탔다. 해안도로를 총알처럼 달린다. 야근하고 자정에 강변북로를 달리는 것 같다. 다행히 숙소 앞에 잘 내려준다.


리마(Lima)_0607_0613

페루의 수도, 쿠스코에서 고산은 힘들고, 해안은 사막이고, 아마존은 더 힘들테니 리마밖에 갈 곳이 없다. 파타고니아 이후 뭘 해도 나사가 빠져서 기름이 새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리마에서 따뜻한 기운을 회복했다.


숙박_& 피터 까사_더블룸_4

대도시는 숙박 구하기가 힘들다. 공기방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미라플로레스 근처에 깔끔한 방을 하나 찾았다. 예약하니 주인이 이름도 물어보고,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준다. 미라플로레스에서 3,4블록 떨어진 대로변 아파트다. 경비실을 지나서 올라갔다. 복도를 헤메는데 누가 문을 활짝 열고 이리로 오란다.

윌과 피터, 그리고 윌의 동생인 드루스가 함께 지내는 집이다. 큰 거실에 방이 세 개라 남는 방을 공기방울 돌린다. 윌의 엄마(미라플로레스 광장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인들이 강연하는 전통이 있다. 그 영상을 보여주면서 자기 엄마라고 한다. 시인이시다 ㄷ ㄷ ㄷ )도 자주 계시는데 지금은 쿠스코 근처의 고향 마을에 갔다고 한다. 드루스는 볼리비아 수크레 의과대학에 다닌다. 잠시 볼일보러 리마에 왔다고 한다. 피터는 벨기에 와플나라에서 리마에 와서 1년 째 지내는 중이다. 윌은 변호사다. (엘리트 집안이다.) 이런 얘기를 나누고, 피터가 종이 하나를 가져온다. 신문이다. 한 가운데 May & Gordo (여편님과 나) 환영! 메인뉴스다. 주변 잡 기사로 각종 관광생활정보가 있다. 참 재밌는 친구들이다. 싸다는 식당가에 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와서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거실을 어슬렁 거렸다. 윌과 피터가 아침을 준비한다. 곡물빵으로 구운 샌드위치, 각종 과일과 드립커피, 차 푸짐한 아침을 같이 먹는다. 여행을 많이 다닌 피터는 주인이 잘 챙겨주고, 아침도 든든하게 주는 숙소가 좋았다고 한다. 공기방울도 피터의 아이디어라 여행자로서 좋은 숙소를 꾸미기로 했단다. 그래서 욕실엔 별도의 세면도구도 있고, 차 소리가 들리는 방인 걸 감안해서 귀마개도 준비해뒀다. 든든한 아침을 다 소화시킬 정도로 얘기를 하다가 쉬고 나갈 준비를 했다.


미라플로레스_0608

도시는 바쁘다. 보노보노를 점심에 만나기로 했다. 보노보노는 쿠스코에서 우리보다 한참 먼저 떠나서 아레키파, 이카를 거쳐서 하루 먼저 리마에 왔다. 공기방울로 구한 숙소가 복층 구조의 고급 아파트라고 한다. 주인 부부는 보노보노의 김치찌개에 매우 당황했다. 평일 낮에 둘이 운동을 다녀와서 우리를 불러서 같이 밥 먹는 건 안된다고 했다.

리마 최대의 부촌 미라플로레스 광장에서 보노보노와 너부리를 조우했다. 점심으로 유명한 La Lucha를 먹으러 갔다. 맛난 감자튀김도 추가로 시켰다. 우리는 일반 샌드위치를, 보노보노는 스페셜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그게 훨씬 맛있었다. 다음에 와서 또 먹기로 했는데 못갔다. 위엔 전설적인 Flying Dog호스텔이 보인다. 예전에 키토에서 리마까지 34일의 여정 끝에 머문 곳이다. 내 수화물이 버스 회사 실수로 다음날 오는 바람에 나도 이적처럼 숙소 잡자마자 팬티를 사러 갔었다. (나는 고급지게 백화점에서 샀다.) 추억팔이를 하며 공원의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고양이 사연은 여편님이)


보노보노와 웡마트_0608

커피까지 한 잔하고 마트를 구경하러 갔다. 웡마트, 여기도 대륙의 냄새가 난다. 대도시의 마트답게 한국의 대형마트와 비슷한 크기, 비슷한 구조다. 일층 제품 코너에서 저렴한 커피그라인더를 목격했다. 다들 볼리비아에서부터 원두 내려마시는 재미에 빠져서 한참 살까말까를 고민했다. 콜롬비아까지 와서도 그때 안산걸 후회하고 있다. (어디 안 간 건 후회 안되도 뭐 안 산 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식료품 코너엔 즉석식품과 케잌류가 많다. 페루식보단 유럽식이나 식재료가 눈에 띈다. 주고객층이 누군지 감이 온다. 놀라운 건, 외국식품 코너다. 중국제품 곁에 당당히 큰사발이 보인다. 과자도 있다. 이 마트 뿐만아니라 리마 시내 다른 마트에서도 한국 라면과 과자를 볼 수 있었다. 남미 대륙으로 퍼지는 한국 식품이 리마로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도 저렴하다.


로컬식당_0607_0609

시장까지 함께 둘러보고, 보노보노는 남은 김치찌개를 먹겠다고 집으로 갔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어제 갔던 식당가를 다시 찾았다. 케네디 공원 대각선 Reply 쇼핑몰 옆에는 3,4개의 작은 식당들이 붙어있다. 어제 먹은 곳이 시원치 않아 옆으로 갔다. 해물볶음밥을 시켰다. 양이 끝이 없고, 짠걸 빼면 맛있었다. 날씨도 우중충한 것이 동남아 같았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떠들다가 윌, 피터 그리고 드루스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윌이 미라플로레스 골목골목을 안내해준다. 오래된 건물로 둘러쌓인 정원도 있다. 맛집도 알려줬는데 갈일이 없었다. 중국풍의 식당에서 가지볶음 같은 걸 먹었다. 치파보단 더 페루식에 가까웠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대만 사람이라고 했다. 동양음식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스시 얘기가 나왔다. 유럽부터 남미까지 전세계의 스시 열기는 뜨겁다. 한국에서도 스시는 자주 먹고, 그 중 김밥이란 건 일상이고 길에선 1달러면 먹는다고 했다. 다들 셋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시장통(Mercado Central)_0609

여기 시내에 차이나타운도 있고, 외곽에 한인슈퍼도 있으니 우리도 같이 만들 순 있어. 라고 하자, 드루스가 오늘 안그래도 시장 갈건데 근처에 차이나타운도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윌은 일을 하러 집으로 돌아가고, 피터까지 4명이 택시를 타고 중심가로 갔다. 중심가는 치안이 안 좋으니 주의하라고 했다.

시장통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차가 막혀서 근처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차이나타운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몇 개 샀다. 여긴 완전 중국같다. 만두가 익어가고 있다. 그 다음 중앙시장을 구경시켜준다. 중앙시장답게 싱싱한 각종 고기는 물론이고, 종류별로 견과류, 원두도 다양하다. 요상한 인삼젤리 같은 걸 먹었다. 본격적으로 옷거리에 접어든다. 드루스는 미친듯이 활보하며 옷을 본다. 꽂힌 가게에서 3,4씩 산다. 놀라서 보는 우리에게 피터가, 저거 다 볼리비아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팔거라고 알려준다. 우린 그 사이 속옷 코너에서 양말 세트와 여편님 속옷을 샀다. 볼리비아에서부터 사겠다는 걸 속옷은 페루에서 사는 거라고 자제시켰었다. 적오빠, 열오빠의 얘기를 들려주니 수긍했다. 페루산 제품들은 모두 만족해서 쓰고 있다. 한참 시장통을 전전하며, 아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동대문 옷타운 같은 곳이다. 다양한 남미의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팔 거라지만 드루스의 열정은 대단했다. 쇼핑이 끝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을 기운도 없이 12시간을 잤다. 요즘 리마의 대기오염은 매우 심각하다. 피터 말론 멕시코 시티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일등을 차지했을 거란다. 거기다 날씨가 계속 흐려서 더 공기순환이 안된다. 목이 칼칼했다.


노다지와 한인슈퍼_0610

토요일은 모두 교회를 간다며, 준비해뒀으니 아침을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했다. 간단히 아침 먹고 쉬다가 노다지를 갔다. 앞서 방문한 보노보노가 돼지국밥과 반찬을 적극 추천해서 안 갈 수가 없었다. 여행 중에 처음으로 가는 한식당이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한적했다. 고급스럽게 방으로 안내했다. 국밥은 앉아서 먹어야 제맛이지. 화장실 벽엔 대문짝만하게 한류스타들 사진+사인이 붙어있다. 아이돌들도 공연왔다가 다녀간 것 같다.

돼지국밥 두 개를 시켰다. 소문대로 반찬이 많이 나왔다. 갓 지진 전과 튀김, 볶음, 나물, 김치(2) 등등 푸짐했다. 국밥에도 고기가 반이었다. 국밥이 30솔인데 전 10, 튀김 5솔 값은 충분히 한다. 가격만 따져도 페루 다른 현지식당보다 가성비가 좋다. 난 한식에 목 메는 사람은 아닌데 여편님은 목이 멨다. 이걸 먹어야 목감기가 나을 거라고 했다. 계산하고 나오니 어느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페루 사람들이 주말 외식으로 많이 오는 것 같다.

바로 옆 한인슈퍼에서 단무지와 김, 쵸코파이(정은 없었지만 선물이다.), 내가 쓸 젓가락, 깻잎, 두부 등을 사고 돌아왔다. 여편님은 집에서 배를 두드리기로 하고, 난 쇼핑을 좀 더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윌과 피터에게 한식당 사진을 보여주니 이런 델 니네 둘만 다녀와? 하는 눈빛이었다고 한다. 내가 백화점 간 사이 여편님은 피터와 과일을 사러 갔다왔다. 망고스틴부터 카카오열매까지 신기방기한 열대과일을 많이 보고 왔다.


백화점_Falabella_0610

리스본에서 구입한 운동화가 계속 말썽이었다. 좀 큰데 발목을 안 잡아줘서 걸으면 불편했다. 벼르고벼르다 리마에서 장만하기로 했다. 먼저 스포츠 매장인 Marathon을 갔다. 싼 건 다 이상했다. 몇 번 신어봤다가 안 사니 매장 직원이 날 죽일 것 같았다. 백화점인 Falabella로 갔다. 여기선 직원이 신경 안 쓸때 혼자 신고 벗었다. 사이즈별로 있는 박스를 일일이 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운동화 하나를 골랐다. 깔창에 쿠션도 있어서 편했다. 바람막이를 찾는데 저기 1+1 후드티 행사를 한다. 난리가 났다. 나도 인파에 묻혀 두 개를 골랐다. 여편님과 번갈아가며 입기로 했다. 하나는 용(Dragon) 그림, 하나는 용협(Dragon Alliance)라고 써져있다. 백화점 들어오면 1시간 안에 체력이 동나는 여편님이 안계시니 장장 3시간을 넘게 쇼핑했다.


김밥 밤(Kimpap Night)_0610

그리고 오늘 저녁은 대망의 김밥을 싸는 날이다. 여편님의 총괄하에 각자 김밥을 싸는 체험형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재료 준비를 마치고 모두를 불러모았다. 두르스는 늦게 온다고 꼭 자기 몫을 남겨달라고 했다. 또 다른 초대손님, 윌의 이모님이 잠시 머물기 위해 오셔서 같이 드시기로 했다. 사실 윌과 나는 태어나서 처음 김밥을 마는 것이었다. 피터는 어디서 말아봤는지 아는 척을 하며 능숙하게 말았다. 마트에서 사온 사발면을 겻들여서 먹었다. 다들 잘 먹었다. 이모님도 건강한 맛이라며 좋아했다. 행복한 밤이었다.

그러다 둥둥 누가 왔다. 윌의 또 다른 친척부부였다. 와서 김밥을 같이 먹었다. 그러다 여편님이 계속 기침을 하자 상담을 해준다고 했다. 이 분도 의사라고 한다. 기침을 보더니 처방전을 준다. 뭐냐고 물으니 항생제였다. 쿠스코 약국에서 처방 받은 게 있다고 하니, 그걸 먹을 거면 하루에 두 알씩 꾸준히 먹으라고 했다. 중간에 멈추면 괜히 내성이 생긴단다. 피터는 대충 흘려들으라고 한다. 이 나라 의사들의 항생제 남용은 엄청나다고 한다. 그러다 드루스가 왔다. 아예 손전등을 갖고 제대로 진찰해주기로 한다.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으니 관리 잘하고 약 먹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김밥을 먹는다. 흥분해서 거의 김밥을 마시려한다. 체할까봐 걱정했는데 별 탈이없다. 내일 새벽에 수크레로 돌아갈거라고 했다.


다들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근처에 있는 보노보노를 불러서 김밥을 건네줬다. 그 사이 숙소를 또 옮겨서 주인들과 잘 나눠먹었다고 한다. 그러고나서 개를 산책시켰다. 윌네 집 부엌엔 작은 개가 산다. 처음엔 있는 줄도 몰랐다.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단다. 사실 한쪽 눈을 잃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개다. 가볍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최후의 만찬이 차려졌다. 전날 사온 과일로 아침 상은 더 풍성했다. 공기방울에서 봤을 때 다음 예약이 있어서 겸사겸사 보노보노와 큰 집을 하나 빌려서 며칠 더 있기로 했다. 그 사이 윌과 피터는 우리 마음 껏 머물라고 추가 예약을 못 받게 해놨단다. 시간나면 집으로 놀러오기로 하고, 짐을 챙겨나왔다. 길 건너에서 보노보노와 접선했다. 대로 건너편 집 창문에서 아직도 손을 흔들고 있다.


숙박2_Barranco 아파트_더블룸_2

보노보노가 바랑코 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하나 빌렸다. 바랑코는 리마에서 인디, 히피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동네로 유명하다. 산책해보니 아기자기한 공원과 산책로 가게들이 많았고, 바다까지 길이 이어져있었다.


워크샵_0611_0612

풍성한 식재료로 23일간 펜션에 워크샵(팀장, 사장 없이 팀원끼리만) 온 것처럼 지냈다. 외출이라곤 장보기와 산책이 전부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먼저 식단을 짰다. 오후에 배고픈 이들은 라면을 먹고 저녁엔 소고기 된장찌개와 두부구이, 페루 와인을 마시고 편히잤다. 다음날 아침, 보노보노가 남은 된장국에 죽을 끓였다. 커피와 달달이로 마무리했다. 점심은 볼리비아에서 공수해 온 퀴노아면으로 고추장 비빔면을 만들었다. 남은 양념에 깻잎을 버무려 반찬 삼았다. 저녁 만찬은 제육볶음과 닭똥집볶음, 여기에 어울리는 또르띠아와 상추쌈이었다. 다들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많이 먹었다.

다음날 아침 물이 안나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주인에게 연락해봐도 기다리란 얘기 뿐이다. 보노보노는 씻지도 못하고 출발했다. 우린 오후 버스라 기다렸다. 12시에 물이 나와서 설거지를 하고 씻고 나왔다. 집 근처에서 중국인이 창안했다는 전설적인 페루식 샌드위치를 먹었다. 듬삭하니 좋았다. 마트에 버스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사러갔다가 고구마깡을 득템했다. 감자깡만 갖고 있던 보노보노에게 자랑했다.


장거리 버스_Lima_Tumbes_Excluciva_0613_0614_24시간

리마에서 바로 에콰도르로 넘어가기로했다. 에콰도르 남부 대도시 과야킬로 가는 버스는 Cruz Del Sur였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리마에서 국경까지 가는덴 절반도 안되는 가격이었고, 버스도 더 좋아보였다. 선택한 버스 회사는 Excluciva, 키토에서 리마로 올 때 내 배낭을 두고왔던 회사가 Civa. ExclucivaCiva에서 운영하는 고급 버스라인이다. 180도 의자라는 말에 믿어보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Excluciva 터미널은 Cruz Del Sur 터미널 옆이었다. 터미널도 깔끔하고, 위에 카페테리아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 버스를 탔다. 자리는 이층, 의자가 진짜 넓었고, 뒤로 시원하게 젖혀졌다. 바닥도 마루 바닥처럼 되어있고, 화장실도 잘 돌아갔다. 버스는 24시간 정도 걸렸다. 문제는 식사였다. 간식거리도 안될 도시락을 줬다. 아침은 더 심란했다. 조각토스트 3개가 전부였다. 식량을 더 두둑히 챙겼어야했다. 다른 승객들도 도착 직전에 처음 들린 휴게소에서 음식을 사먹으면서 밥이 적었다고 불만이었다.


긴긴 시간을 좌석 앞에 부착된 스크린 영화로 떼웠다. 라라랜드는 보다가 치워버렸고, 한국에서도 개봉한 패신져스(Pasajeros), 개들이 도둑잡는 러시아 영화를 엄청 재밌게 봤다. 에콰도르까지 이어지는 로드무비의 시작이었다. 종종 와아피이도 할 수 있었다. 여편님은 앞자리에 네이마르 닮은 아이와 Puro Puro chantaje(샤키라)shaky shaky(대디 양키)를 부르는 아이와 놀았다. 툼베스에서 내려 에콰도르로 가는 CIFA버스 터미널로 갔다. 과야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국경까지 갔다. 국경통과는 쉬웠다. 에콰도르는 따로 서류도 안써도 되니 편했다.

이날의 버스 여행은 또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 리마는 남위 12, 과야킬은 남위 2도다. 버스로 하루 만에 위도 10도를 올라간 것이다. 창밖으론 도시에서 사막, 해변, 열대의 풍경이 순서대로 펼쳐졌다. 지구의 1/18이 가지는 다양성을 하루만에 체험했다.



안데스 마감

안데스 고산 지대인 볼리비아와 페루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다. 볼리비아 얘기는 저번에 했고, 페루는 사실 관광객도 많고 호객하는 사람들, 기념품점, 투어회사 투성이라 좀 정신이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쿠스코 주변의 마을들을 둘러보고 싶다. 꾸이마을, 윌의 고향 등등 말이다. 객관적으로 페루는 관광 천국이긴하다. 빙하부터 사막, 해변, 아마존까지 없는 게 없다. 원주민, 잉카 문명의 정체성을 나라 자체가 갖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토착민, 메스티소 비율은 페루보다 에콰도르, 볼리비아가 더 높다.) 다양한 식문화도 많이 즐기진 못했다. 리마에 감자 박물관있는 걸 이제 알았다.


참고: 요리인류 도시의 맛: 리마편, EBS 세계견문록 페루 맛기행 등 참고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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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숙소를 빨리 바꾸고 싶은 마음에 먼저 마츄피츄(1박 혹은 2)를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데 지미 아저씨의 급보,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농민들의 시위로 마츄피츄로 가는 길이 이틀 간 막힐 거라고 했다. 가려면 새벽 1시에 일어나서 밤에 가야한다고 했다. 마침 보노보노가 비니쿤카를 간다고 해서 당일치기로 함께 다녀왔다. 그리고 나서 보노보노의 추천대로 23일로 마츄피츄를 다녀왔다.


무지개 산, 비니쿤카(Vinicunca)_0531

각종 금속 덕분에 산 위에서 보이는 풍경이 무지개 색이라 무지개 산(la montaña de siete colores)으로 유명하다. 발견된지 얼마 안됐지만 (5년 전에 쿠스코 왔을 땐 이런 거 없었다.) 쿠스코 주변의 수백가지 투어 중에서도 인기가 많다. 쿠스코 시내에서 보노보노가 알아봤다는 투어 사무실에서 예약을 했다. 별다른 주의 사항은 없고, 옷만 따뜻하게 입고 오란다. (물론 들어가자마자 가격 다 듣고 왔다고 깎기부터했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했다. 당일치기라 새벽에 출발한다. 가이드를 따라 버스로 갔다. 중형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다들 또 잤다. 어느새 6, 해가 밝아오기 시작하고 바깥 풍경이 펼쳐진다. 눈 덮인 계곡계곡을 스물스물 따라간다. 버스 한쪽엔 아주 어린(20대 초반) 한국 아이들이 조잘거리고 있다. 7시 쯤 산 아래 마을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는다. 빵과 잼을 두둑하게 먹었다. 한국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막 페루에 와서 바로 여길로 온 모양이다. 고산병 이런거 잘 모르는 눈치다. 한 명이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리마에서 바로 쿠스코로 왔고, 바로 이 투어를 한단다. 고도가 0m-3,400m 그리고 비니쿤카 산은 사천 몇백 미터에서 시작해 5,200m까지 올라간다. (사실 이정도면 별다른 준비없이 가볍게 하는 등산은 아니다.) 고산병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한 거라고 알려줬다. (그래도 젊은게 좋다. 저런 일정에 우리 같았으면 이미 초죽음 상태가 됐을 것이다.)

아침을 다 먹고 가이드가 주의 사항과 일정을 알려줬다. 가이드는 총 3명이다. 한 명이 총괄하고, 나머지는 중간 중간 일행들을 관리했다. 뭐 원래는 어디까지만 올라가는데 체력에 자신있는 사람은 좀 더 올라가자, 전망이 좋다. 그렇단다. 우린 무리하지 않는게 목표다. 다시 버스를 타고 산 입구로 이동한다.


산 입구부터 온통 눈밭이다. 껴입은 덕분에 춥진 않다. 말과 마부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린 내리자마자 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수십 명의 일행 중에 시작부터 말을 타겠다는 사람은 우리와 보노보노뿐이다. 수크레에서 쉐프님네는 비니쿤카가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올라가는 길에 경치도 좋고, 중간에 힘들어서 말 타느니 시작부터 편히 가라고 했다. 원래 좋은 산길은 말 타고 보면 더 아름답다. 거기다 왕복 말 타는 값이 25천원이다. 말은 싸면 무조건 타고 봐야 한다. (몽골 초원에서 배웠다. 사실 말은 낭만적 여행자에게도 적합한 교통수단이다. 자전거나 자동차처럼 빠르게 지나치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 않게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갈 수 있다. By 실뱅 테송)

말은 타는 건 들은 것 보단 10솔 정도 비쌌다. 중간에 가이드들이 개입하는 걸 보니 투어사에서 좀 떼먹는 눈치다. 나는 내 말을 직접 고르고 싶은데 가이드가 말과 마부를 배정한다.

내 말은 늙고 뚱뚱하다. 마부도 별로 말이 없다. 여편님은 만족스럽다. 말도 괜찮고, 마부도 말 많고 싹싹하다. 오고가며 많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여기 말들은 다 마부 말이 아니고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 자기 말은 집에 있다. 평범한 시골 청년 같았지만 리마에서 파티쉐(디저트 빵) 공부를 하고 도시가 싫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돈을 모아서 자기 빵집을 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보노보노의 친구, 너부리의 마부는 아줌마다. 안데스 산골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서 그런지 마부도 남녀 구분이 없다. 원주민 의상을 입고 매력 넘치게 말을 끈다. 여기저기 인사를 다 하고 다녀서 가는 길에 죽을 똥 살 똥 힘들어 했다. 그러면서도 천사미소를 잃지 않는다.


다시 산길로 돌아와서, 눈밭 사이를 소복소복 말을 타고 걷는다. 온통 눈으로 덮인 계곡길을 말타고 걷다니, 황홀한 일이다. 좌우로 라마와 알파카, 양들이 풀을 뜯고 지나간다. 가파른 길은 내려서 걷고 말을 다시 탄다. 말 타기 편하게 곳곳에 바위도 비치되어있다. 중간중간 쉬면서 힘들이지 않고(말이 힘듦 ㅠ) 산을 올라갔다. 지쳐가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막판 언덕은 우리도 걸어가야 한다. 올라가니 드디어 무지개가 보인다. 흰 눈까지 더 알록달록하다. 저 위에 고지까지 올라가본다. 거기선 무지개 빛 언덕은 물론 주변 산세까지 쭉 둘러볼 수 있다.

풍경을 만끽하고 내려간다. 말이 쉬는 곳까지 가기에 앞서 간식을 먹는다. 보노보노가 계란을 삶아왔다. 감자칩과 천상의 궁합을 이룬다. 말들도 우리가 다녀오는 동안 잘 쉬고, 잘 먹었다. 마부가 뭘 들고 오나 했더니 다 말밥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또 달랐다. 그새 눈이 녹아서 초록빛 계곡이다. 풀과 물 웅덩이, 먹는 알파카들, 평화롭다. 올라갈 땐 네팔 히말라야 같더니 내려올 땐 몽골 초원같다. 어떤 서양 친구는 내려오다 팔이 빠졌다. 여편님 말론, 이 친구가 너부리의 천사마부한테 ‘너희들이 이렇게 말 끌고 다녀서 산길이 훼손됐다’고 했단다. 니가 비행기 타고 여기 오는 건 그럼 환경보호냐. 귀신같이 벌을 받은 것이다. 산길을 내려와 말에서 내린다. 여편님은 소박하게나마 친해진 마부에게 팁을 줬다. 남은 일행들이 내려올 때를 기다렸다.


모두 다 내려온 뒤 다시 아침 먹은 곳으로 돌아갔다. 점심 시간이다. 푸짐한 뷔페식 점심이 차려진다. 고긴 좀 적었지만 카레와 야채를 듬뿍 먹을 수 있었다. 눈 녹은 마을도 아름답다. 차를 마시며 여운을 즐긴다. 돌아가는 길이 멀었다. 쿠스코 근처는 차가 막힌다. 저녁때가 한참 지나서 도착했다. 개인적으론 마츄피츄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마츄피츄(Machu Micchu)_0601_0603

쿠스코에서 마츄피츄를 가는 방법은 수십가지다. 투어프로그램도 엄청 많다. 단순히 가이드를 포함한 12일짜리부터 각종 액티비티를 가미한 정글투어도 있다. 여행자의 로망인 잉카트레일은 성수기엔 꿈도 못꾼다. 우린 보노보노의 가르침에 따라 투어회사에서 쿠스코-히드로 일렉트리카(Hidro Electrica) 구간 왕복 버스 티켓만 끊고, 마츄피츄 아랫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에서 넉넉하게 2박을 하기로 했다.


전날 비니쿤카를 다녀와서 몸은 좀 피곤했다. 마츄피츄를 오르기 전 준비운동으로 생각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썼던 스틱도 오랜만에 꺼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짐을 맡기고, 7시 지미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간다. 맛난 빵과 커피를 파는 빵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라기보단 여행객들만 타는 미니벤 합승 택시다. 차는 좋다. 음악도 빵빵하게 나온다. 우리 차엔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이다. 볼리비아, 페루엔 왜 이렇게 프랑스 사람들이 많은 걸까. 쿠스코를 벗어나 두 시간쯤 달려서 쉰다. 오얀타이땀보 근처 휴게소다. 배고프지도 않은데 과자나 사서 먹었다. 한쪽 구석엔 다양한 옥수수를 말리고 있다.

휴게소를 들른덴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죽음의 내리막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S자의 내리막을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간다. 잉카정글투어를 하면 이걸 자전거 타고 시원하게 내려간다. 빈 속에 우리는 어지럽다. 겨우겨우 내리막을 다 내려온다. 이젠 비포장도로로 진입한다. 어마어마한 절벽길을 잘도 간다. 점심 시간이다. 버스엔 점심, 호텔까지 패키지로 구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도 대충 끼어서 먹는다. 메뉴에 선택권은 없다. 닭이다. 후딱 점심을 먹고 히드로 일렉트리카로 이동한다.

히드로 일렉트리카는 수력발전소, 여기서 도로가 끊긴다. 기찻길만 연결되어 있다. 뚜벅이들은 철로를 따라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걸어간다. 해발 천 몇백미터의 정글지대다. 별로 덥진 않다. 끝도없는 서양애들이 우리를 지나쳐간다. 이렇게 더운데 두꺼운 옷을 너무 챙겨왔나, 배낭이 무겁다. 내 작은 배낭과 여편님의 큰 배낭을 지고 왔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정글길이라 재밌긴하다. 아보카도가 나무에 주렁주렁 열리는 걸 이날 알았다. 두 시간 반 정도 걸어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

마츄피츄 아래 계곡마을이다. 마을이라기엔 죄다 마츄피츄 가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 호텔로 먹고 사는 곳이다. 이름대로 따뜻한 온천도 있다. 마을 자체도 아기자기하고 편안하다. (날씨도 촉촉하니 좋다.)


숙박_Hostal Bromelias_더블룸_2

숙소도 보노보노가 알려준 곳으로 바로 갔다. 방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다. 인터넷도 빨랐다. 쿠스코 숙소에서 못 즐긴 걸 여기와서 즐기게 될 줄 몰랐다.


관광객 천지니 식당도 많다. 아침은 보노보노가 추천해준 파리 빵집에서 먹었다. 이틀 모두 여유로운 아침 일정이라 고급지게 크로와상과 커피를 마셨다. 첫날 저녁엔 치파 거리에서 볶음면을 먹었는데 무려 샐러드바가 무료였다. 나름 시장도 있는데 대부분 점심 장사만 한다. 마츄피츄 다녀와서 허기짐에 페루의 대표음식 치차론을 먹었다. 통오겹살을 튀긴 것이다. 하나씩 시켜서 먹었는데 옆엔 가족들이 하나 시켜서 나눠 먹고 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를 다 먹고나니 온몽이 돼지기름으로 차올랐다. 한 번 여행에 치차론은 한 번으로 족했다. 덕분에 저녁은 간단히 샐러드와 맥주로 마무리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찾고 찾던 송어탕집을 찾았다. 치파 거리 건너편에 있는데 저녁엔 닫아서 지나쳤던 것이다. 아침 9시부터 장사한다고 해서 파리 빵집에서 빵을 먹고 대기하다가 열자마자 달려갔다. 진한 국물 한 사발에 칼칼한 고추를 넣었다. 고소함을 더할 뻥튀기까지 얹어서 밥을 마셨다. 반찬으로 나오는 쉐비체도 시콤 달큼하니 담백했다. 행복하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를 떠날 수 있었다.


온천(Baños Termales)

마츄피츄를 오르내리며 쌓인 땀과, 치차론으로 얼룩진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온천으로 갔다. 해는 지고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난 수영복을 챙겨왔는데 여편님 껀 온천 앞에서 빌려야했다. 쿠스코에서 짐을 챙길 때 보니 수영복 윗도리가 사라진 것이다. 두고두고 찾을 수 없었다. 온천엔 사람이 많았다. 비가 와서 밖은 추운데 물은 따끈했다. 하지만 밖은 너무 추웠다. 거기다 마츄피츄는 너무 피곤한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귀가했다.



마츄피츄 피카츄

(내 표현이 아니다. 여편님의 드립이다.) 23일 일정이라 아침을 즐기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마츄피츄는 99% 아침에 안개가 껴서 일찍 가봤자 보이는 게 별로없다.) 입장권은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있는 사무실에서 먼저 끊었다. (현장 구매가 안되는 걸 화장실 가려고 들어갔다가 알았다.) 느릿느릿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간만에 등산을 하려니 힘들었다. 스틱이라도 안 가져왔으면 중도포기했을 정도다. 1시간 정도 걸려서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이 어마어마했다. 다들 셔틀버스타고 올라온 것 같다. 스틱을 맡기고 입장했다. 일방 통행만 가능하다. 무작정 들어가서 둘러보다가 위로 올라가려고 하니 내려가는 길이었다. 별 수 없이 30분만에 나와서 다시 들어갔다. 3번 입장할 수 있는데 바보같이 하나를 까먹었다. 체력도 많이 소진했다. 위쪽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올라갔다. 마츄피츄 마운틴으로 가는 길을 지나니 잉카 다리로 가는 길이 나온다. 여긴 무료라고 해서 들어가봤다. 이런 절벽에 길을 만든 잉카 사람들이 대단했다. 만들어진 길을 걷기도 후달거렸다.


돌아나와 본격적으로 마츄피츄를 둘러봤다. 위쪽 잔디밭에서 누워 바라보는 게 제맛이다. ‘우리 시인들은 마츄피츄를 보며 이걸 쌓느라 민중이 흘린 피를 생각했다.’ 사실 이 얘기를 듣고 나서 거대한 유적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곳곳에 라마들이 풀어져있다. 알파카는 털, 라마는 교통수단이었는데 요즘엔 안데스 산골에서도 말을 많이 쓰다보니 라마는 관상용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내려가서 계단식 밭과 신전 등을 둘러본다. 매우 배고프다. 돌 아래 요상한 설치류가 눈길을 끈다. 3번째 입장 카드는 제껴두고 내려가서 밥을 먹기로 한다.


귀환길_0603

돌아오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든든히 빵과 송어탕을 먹고 출발했다. 급할 게 없으니 올라올 때 보다 더 여유롭게 정글숲을 둘러본다. 2시에 돌아가는 걸로 예약했는데 1시 반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파리빵집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우겨넣는다. 2, 2시 반, 3시에 돌아가는 차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오오 우리가 타고왔던 차가 왔다. 기사가 반갑게 인사한다. 얼른 들어가서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 둘 사람이 찼다. 여러 대의 차량 탑승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우리 버스에 한 명 빠졌다며 찾는다. 이름을 들어보니 한국 사람같다. 저기 헤메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보고 내리라고 한다. 결국 한 자리가 비는데 우리를 내리고 3명 일행을 태우려고 한다. 뭐 이 사람들은 쿠스코에서 푸노까지 바로 갈 사람들이라 빨리 가야한단다. 어이가 없어서 못 내리겠다고 버텼다. 우리 때문에 출발을 안하니 결국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운전기사도 짐을 내려주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결국 뒤에 기다리는 좀 더 큰 벤을 탔다. 앞자리다. 출발한다. 이번 기사는 좀 더 트로트 같은 노래를 틀고 간다. 비가 와서 먼지는 없다. 중간에 쉬면서 과자와 바나나를 먹었다. 아까 헤메던 한국 사람과도 얘기를 나눈다. 다시 출발, 잠을 자다보니 쿠스코에 가까워간다. 옆에 여편님이 목이 칼칼하다고 한다. 감기 기운이다. 거의 10시가 다 되서 쿠스코에 도착했다. 힘들어하는 여편님을 먼저 새로운 숙소에 눕히고, 원래 숙소에 가서 짐을 찾아왔다. 이날 밤 여편님은 엄청난 오한과 두통에 시달렸다. 마치 수크레에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괜히 싸게 간다고 미니벤으로 다녀온 것이 무리였던 것 같다. 마츄피츄 올라가는 셔틀 버스도 안탔다. 거기다 고산은 뭐가 걸려도 한 번 걸리면 제대로 걸린다. 비니쿤카에서 편안하게 말 타고 다닌 것과, 마츄피츄를 가장 저렴하게 걸어다닌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편하게 느리게가 좋은 것 같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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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츄피츄로 시작해서 빙하부터 사막, 아마존까지 이것저것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페루지만, 컨디션 난조 등등으로 빨리 지나쳐 버렸다. 리마에서 손에 꼽을 만한 시간을 보냈으니 아쉬울 건 없다.


일정과 이동_20170529_20170614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밤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출국 도장을 찍고, 걸어서 국경을 넘고, 페루 입국 도장을 받고, 다시 버스를 타고 꾸스꼬로 간다. 다행히 우리가 탄 TITICACA버스는 푸노에서 사람을 내리고 또 쿠스코로 간다. (어떤 버스는 다이렉트라고 해놓고 푸노에서 갈아타게 한다고..) 쿠스코에서 처음 3일을 자면서, 무지개 산으로 불리는 ‘비니쿤카’를 하루 다녀왔고, 23일 일정으로 마츄피츄를 다녀와서 숙소를 바꿔 4박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리마로 가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리고 장장 24시간의 장거리 버스를 타고 에콰도르 국경이 있는 툼베스(Tumbes)로 가서 페루를 떠났다.


쿠스코(Cuzco)_0529_0601 & 0603_0607

잉카의 고도,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다른 남미 대도시들과 달리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대도시다. 들어서면 천해의 명당이다 싶을 정도로 주위에 산이 둘러져 있고, 비도 많이 온다. 해발 3,400m에 위치한 고산도시라 우리가 머문 겨울엔 아침 저녁으로 추웠다.

버스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새벽 5시라 어쩌나 했는데 대합실엔 사람이 가득했다. 거기다 호객꾼들은 바로 우리를 찾아왔다. 숙소를 여러개 보여줬다. 별로 성에 차지 않아(이때 괜찮은 곳을 바로 갔어야 했다.) 기다렸다가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갔다.


숙박_Hostal Mirador_더블룸_3

광장에 내렸는데 아직 허허벌판이다. 그 유명한 엘 퓨마를 가야하나 고민하는데 아저씨가 왔다. 지미라고 했다. 호스텔을 찾는다고 했더니 따라 오란다. 엘 퓨마 근처에 미라도르 어쩌구 하는 호스텔이다. 방을 보여준다. 허름한 숙소지만 나름 화장실도 딸려있고, 창문이 있는 방을 찜해뒀다. 다른 숙소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장장 두 시간, 언덕뿐인 쿠스코를 둘러봤지만 답이 없다. 좀 저렴한 숙소는 볕이 안들거나 주방이 없거나, 좀 깔끔한 곳은 엄청 비싸다. 유명한 호스텔들은 너무 시끄러워 보이고, 볼리비아에서부터 도미토리 생활은 청산했다.

결국 다시 호스텔로 돌아갔다. 소문대로 뜨거운 물은 나왔다 말았다 (대부분의 쿠스코 호스텔들이 그렇다고 들었다.) 주방은 아주 열악했다. (쿠스코에선 일부 슈퍼에 한국 라면을 팔아서 라면만 끓여먹을 수 있으면 됐다.) 안쪽엔 도미토리도 있는지 오래 머무는 애들도 보였다. 나름 이 가격대에 쿠스코 센트로에선 무난한 선택이었다. 우릴 낚아온 지미 아저씨는 (검색하다보니 많이 나오더라) 투어가 주업이라 끝임없이 마케팅을 했다. 마츄피츄 가는 교통편을 아저씨 통해서 구했다.


숙박_Diego`s House_더블룸_4

마츄피츄를 다녀와서 머물집을 미리 알아봤다. 예약닷컴에서 좀 괜찮아 보이는 집을 직접 방문했다. 산 페드로(San Pedro) 시장과 오리온 마트 사이 골목길이다. (오래 머물기엔 천해의 요새다. PC방 골목이기도 하다.) 아주 좋은 방은 100달러짜리 펜션이었고, 안쪽에 저렴한 방들이 있었다. 간단 깔끔한 주방도 있고, 방도 밝고 쾌적했다. 화장실도 나름 고급져서 예약을 했다. 마츄피츄 다녀올거라고 하니 몇 시에 올지도 대충 알고 있었다.

밤늦게 쿠스코로 돌아와서 아픈 여편님을 누이고, 얼른 전에 머물던 숙소로 가서 짐을 찾아왔다. (별에별 놈들이 다 모이는 쿠스코라 숙소에 오래 짐 맡기는 것도 찝찝했다.) 결혼기념일엔 좀 고급진 숙소에서 지내려고 했지만 이상한 곳이 아닌 걸로 만족해야 했다. 쿠스코 자체가 은근 숙박비가 비싸기도 하고, 나가면 빠리 뺨치는 카페들도 많아서 굳이 숙소에 집착할 필욘 없었다. 볼리비아에서 페루로 넘어오니 빠른 와이파이에 감동하기도 했다.


광장_Plaza de Armas

쿠스코 중심 광장인 아르마스 광장은 그 자체가 아름답다. 가운데 동상은 공사 중이었지만, 한쪽에 잉카와 유럽 스타일이 혼재된 성당이 도시를 그대로 보여준다.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엔 여행사와 기념품 가게,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쭉 둘러져있다. 광장 안엔 전세계에서 모여든 고급~배낭 여행자들과 호객꾼, 쉬러 나온 사람들로 늘 활기가 넘친다. 마츄피츄를 다녀오고 난 뒤, 한창 광장에서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6월 말 하지를 즈음해서 태양 신을 기리는 축제를 한다. 이 행사 때문인지 유아부터 청년들까지 각자 안무를 광장에서 연습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율동은 모두를 멈추게 했다. (대략 1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마츄피츄 가기 전에 농민들의 신공항 반대 시위가 있었다. 떠나는 날에는 쿠스코 무슨 기념일이라 군인들의 행진도 있었다.


시장_산 페드로(Mercado de San Pedro)

쿠스코 시내에 있는 시장이다. 처음 갔을 땐 농민파업으로 문을 닫았다. 시장 주변에 좌판을 깐 사람들도 시위하는 사람들 눈치를 봤다. (다들 같이 살자고 투쟁하는데 너만 치사하게 장사하냐 이런 분위기) 마츄피츄에 다녀와서 다시 갔다. 각종 먹거리와 주스부터 야채, 과일, 고기를 판다. 꾸이를 먹거나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주스도 파는데 좀 비싼감이 있다. 시장에 닭국이 유명하다고 해서 괜찮아 보이는 곳에서 먹어봤는데 그저 그랬다. 따로 유명한 곳이 있다고 했다. 망고도 제철이 아니라 좀 비쌌다. 그래도 망고는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시장 주변에도 노점상들이 쫙 깔린다. 아침엔 집 뒷 골목까지 여기저기서 야채를 가져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말엔 시장이 더 커진다고 한다.

한 가운데 시장 말고도 주변 전체가 시장 골목이다. 여편님은 실 가게에서 실을 사고, 티셔츠 가게에서 둘 다 하나씩 기념티도 샀다. 도매상이라 시내 기념품 가게보다 종류도 많고, 저렴했다.


마트_Orion & Gato`s

어느 나라를 가나 일단 둘러보는 건 시장과 마트다. 아무리 비슷한 생활양식이라도 마트에 가보면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시장이 차이가 더 적은 것 같다.) 페루 마트에 가장 큰 특징은 중국 식재료다. 페루는 오래전부터 화교가 많아서 우리나라 중국집처럼 페루식 중국집인 CHIFA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마트에서도 중국식 식재료가 많이 보이는데, 이름만 봐도 중국계로 보이는 오리온마트에서 더 두드러진다. 배추부터 각종 간장과 피쉬소스가 가지가지 많다. 쿠스코 인근에서 재배한 카카오와 커피도 많이 보인다.

시내에 있는 Gato`s란 슈퍼마켓에는 라면을 판다. 따로 한인마트가 아닌데도 풍부한 한국라면 코너가 있다. 덕분에 쿠스코에서 라면을 두 번, 짜파게티를 한 번 먹었다. 입맛이 변한 건지, 이쪽에서 생산된 라면이라 면이 다른 건지 라면은 꽤 느끼했다.


시내_Jardin Sagrado 주변

광장에서 아래쪽 큰길로 내려가면 또 번화가가 나온다. 관광지라기 보단 각종 사무실이 밀집한 쪽이다. 왼쪽에 큰 잔디밭이 있고 그 너머로 코리칸차(Coricancha)가 보인다. 태양의 신전이라고 불린단다. 여길 가보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못갔다. 여러 항공사 사무실이 있어서 쿠스코-리마 행 비행기를 직접 사무실에서 끊었다. 인터넷과 가격 차이가 별로 없었다.


쿠스코 전통 직물 센터(Centro de Textiles Tradicionales del Cusco)_http://www.textilescusco.org/

이 구역에서 가장 재밌는 곳이다. 여편님이 안데스의 직물을 짜보고 싶다고 하셔서 검색왕이 출동했다. 하루짜리 전통마을 방문투어부터 일주일 정도 마을에 짱박혀서 여인들에게 직접 전수받는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그리고 쿠스코 시내에서도 편하게 직물 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시내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처음 보이는 작은 가게를 지나니 좀 더 큰 매장이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 있는 브랜드 샵들과는 품격이 달랐다. 누가 무엇으로 짰는지 하나 하나에 소개가 되있는데 뭣도 모르는 내가봐도 물건에 흐르는 기운이 달랐다. 한 가운데서는 직접 작업도 진행하고 있었다. 가방부터 천까지 가격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들이었다. 매장 왼쪽에는 이 지역의 직물 문화를 상세히 소개한 박물관이 있었다. 알파카, 비쿠냐 등에서 실을 짜내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만드는 걸 모두 어릴 때부터 배웠다. (남녀에 구분도 없다.)

직물 교육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털에서 실을 짜내는 것부터(Spining), 천짜기(Weaving), 옷짜기(kniting) 등 몇 가지 코스가 있었다. 수업은 하루 6시간씩 3일에 걸쳐 진행한다. 여편님은 옷짜기를 배우고 싶었으나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고 해서 포기했다. 대신 시장 근처에서 실을 사서 연습, 간단히 귀노의 목도리를 짜는 걸로 만족했다. 가방도 여행 중에 막 들고 다니기엔 너무 고급이라 참으셨다.


골목_12각돌

골목을 지나다 12각돌을 봤다. 잉카 아제가 지키고 있다. 여편님은 특히 이 돌을 좋아하셨다. 이 골목 말고도 돌담길과 돌 바닥, 작은 광장들 모두 아름답다.


전망_Iglesia de San Cristobal

쿠스코를 떠나기에 앞서 뒷산에 올라가 전반을 조망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는 여편님의 의견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다보니 작은 박물관 하나가 있다. 쉴겸 들어갔다. 각종 식물 박물관(Mueso de Plantas Sagradas)를 둘러봤다. 약초 냄새가 너무 심해 오래는 못있었다. 원래는 언덕 끝가지 올라가려 했으나 체력 저하와 고산병 우려로 성당까지만 올라갔다. 거기서 보는 전망도 좋았다. 언덕까지 찻길이 뚫린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존_Xapiri_https://xapiri.com/

지나가던 박물관 얘기를 하다가 생각났다. 마츄피츄를 다녀오고 여편님이 또 한 번 고열을 동반한 아픔에 시달리다보니 아마존을 갈 생각이 사라졌다. 애매하게 가서 투어만 하고 돌아오는 건 몸만 고생할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길가에서 Xapiri란 곳을 발견했다. 페루 아마존 유역에 사는 부족들이 만든 공예품과 그들의 사진들을 전시한 매장이다. 아마존의 향기를 멀게나마 느꼈다.



보노보노와 함께하는 쿠스코 맛집 탐방

수크레 파차마마에서 함께 지냈던 보노보노가 먼저 쿠스코에 와있었다. 만나서 마츄피츄 다녀온 얘기도 듣고, 비니쿤카도 함께 다녀왔다. 거기다 치밀한 사전조사와 답사로 맛있는 걸 많이 먹으러 다녔다. 떠나고 나서 우리끼리 간 식당들도 대부분 보노보노와 쉐프님네가 추천해준 곳들이었다. 워낙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곳이다보니 페루 식당보다 다른 나라 식당이 더 많고, 저렴한 물가 덕에 가성비도 현지나 한국에서 먹는 거 보다 나은 곳들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남미 최고의 미식국답게 페루 사람들이 요리를 잘하기도 한다.)


스테이크_Fuego, Burgers and Barbecue Restaurant_0529

첫날 저녁, 숙소에서 실컷 쉬고 보노보노를 KFC 앞에서 만났다.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리의 기력 보충을 위해 FUEGO라는 스테이크 집을 가기로 했다. 아주 유명한 곳으로 들었다.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이 유명해서 시켰다. 생맥주는 지원되지 않아 쿠스코 맥주를 겻들였다.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뜯으니 든든했다. 나중에 다른 식당들을 먹고보니 비싼 가격을 생각하면 그리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부족한 맥주를 채우러 어딜갈까 고민하다가 보노보노가 머무는 호스텔로 가기로 했다. 마츄피츄 다녀와서 숙소를 옮겼다고 했다. 숙소 이름은 ECOPACKERS. 5년 전에 홀로 머물렀던 곳이다. 나름 오래 머물렀던 숙소라 감회가 남달랐다. 익숙한 마당 의자, 조식 주는 식당까지 모두 기억났다. 또 한마리 감성돔이 되어 헤엄쳤다.


카페_La Valeriana

다음날 점심, 시장이 닫아서 카페로 갔다. 아니 광장 한 구석에 이 넓고, 고급스럽고, 케잌도 화려한데 스타벅스 보다 싸다. 간만에 고급스러운 조각케잌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생과일주스도 시키면 최신식 유리병에 담아준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쿠스코에 있는 동안 자주 찾았다.


안티쿠초(ANTICUCHOS)_CONDORITO`S_0530

케잌으로 간단히 점심을 떼운 건 곱창이 기다렸기 때문이다. 보노보노가 소곱창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기대에 들떠 따라갔다. 가는 길은 멀었다. 도심에서 한참을 벗어났다. 덜컥 문이 닫혀있었다. 아직 문을 안 알였다. 엄청난 허무감이 우리를 엄습했다. 마음을 추스리고 바로 옆 치파집으로 들어갔다. 오후라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시내도 아닌데 규모가 커서 좀 맛있을 것 같았다. 직원에게 물어물어 주방장까지 등장해 완탕면과 해물볶음밥, 탕수육을 시켰다. 기대기대, 해물볶음밥은 양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볶음밥이 찰졌다. 돼지 고기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진짜 탕수육이 나왔다. 고기 양이 적고, 소스가 좀 달았지만 감지덕지였다. 여기서 더 시키냐 마느냐를 망설이는데 보노보노가 나가서 희소식을 가져왔다. 곱창집이 연다는 것이다.

바로 자리를 옮겼다. 안티쿠초는 소심장을 뜻하는 페루의 대표적 요리다. 고기가 귀해서 온갖 내장까지 다 먹는건 남미와 한국의 공톰점이다. 꼬치세트를 시켰다. 소심장도 심장이지만 곱창이 백미였다. 기름지고 쫄깃한 것이 이렇게 큰 덩이로 먹기는 딱 좋았다. 곱창의 내음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좀 더 강한 술과 먹으면 궁합이 더 좋을 것 같다. 가게 분위기도 딱 곱창집 특유의 스댕 테이블과 침침한 조명이다.


일식_킨타로(Kintaro)

일식집이다. 사실 난 외국에서 한식당을 가라면 차라리 일식당을 간다. 대부분 일식당은 자국 관광객 뿐만 아니라 전세계 관광객이 타겟이라 경쟁력이 있다. 킨타로도 마찬가지였다. 쿠스코에 있는 동안 3번이나 갔다. 직원과도 친해졌다. (굳이 스페인어를 연습하려고 해도 자꾸 영어를 한다.) 한국에 친구가 있어서 갈거란다. 일본 식당답게 밑반찬부터 분위기도 모두 정갈하다.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온다.)

돈가츠나 닭고기 덮밥, 두부 샐러드, 닭 가라아게 등을 먹었다. 된장국도 주니 개운하다. 보노보노가 카레우동에 밥 말아먹는 걸 추천했는데 우리가 갈 때마다 카레우동은 안됐다. 따뜻한 보리차를 끊임없이 리필해주니 따뜻해진다. 쿠스코를 떠나는 날도 킨타로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갔다.


_Sabores_0605

페루에 오면 닭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볼리비아부터 해당되는 얘기다. 밖에서 먹으면 태반이 닭이다보니 만들어 먹을 땐 닭을 피한다. 쿠스코에 오자마자 닭을 계속 먹었다. 30일 치파에 가서 시킨 완탄면은 닭국물이고, 31일 비니쿤카 투어에서 주는 점심은 메인이 닭고기였다. 1일 마츄피츄 가는 길에 식당 메뉴델디아는 마늘소스 닭구이(Aji de gallina), 저녁 치파에서 먹은 볶음면도 닭고기, 4일 시장에서 닭 국밥(Sopa de pollo), 5일 킨타로에서 치킨 가라아게를 먹었다.

그리고 저녁 따근한 국물만 먹으면 몸이 다 나을 것 같다는 여편님의 소원으로 유명한 Sabores를 찾아갔다. (닭곰탕으로 유명한 곳인데 점심 때 마다 닫아서 물어보니 오후부터 장사를 한다고 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Caldo de GallinaSopa de Pollo 두 가지였다. 이 두 차이를 한참 고민했는데 여러 고찰 결과 달곰탕(전자)와 닭국(후자)의 차이인 것 같다. 국물 안에 고기 양과 그릇 크기가 다르다. 시장에서 파는 요리요리한 국물 맛과 달리 담백하고 깔끔했다. 여편님은 귀신같이 이 국물을 먹고 다음날 기력을 차렸다.


결혼기념_외식_Cuse Smokehouse_0606

작년 삿포로에서 김밥을 싸고 공원에 갔던 것을 시작으로 결혼기념일은 소풍을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몸도 안좋고, 숙소 주방도 그렇고, 도시락 까먹을 공원도 없어서 맛난 거나 먹기로 했다. 그래도 아침은 만들어 먹었다. 짜파게티다. 미리 준비한 콩깍지를 벗겨서 넣었더니 더 맛있었다.

시장을 구경하다 수건집에서 여편님은 불의의 습격을 당했지만, 커플티(같은 건 아님)를 장만했다. 거리의 수박과 추로스로 흥을 더했다. (1솔 짜리 추로스가 1유로짜리 추로스보다 훌륭하다.) 그리고 광장의 아기들과 언덕의 전망을 보고 훈제구이와 타코를 파는 집으로 갔다. 미국인이 하는 곳이다. 이른 시간이라 구석에 아늑한 자리를 차지했다. 타코와 퀘사디아가 다양한 소스와 잘 어우러졌다. 훈제립도 훌륭했다. 그리고 결국 또 닭을 시켰다. 바베큐 윙인데 양념치킨 맛이났다. 행복한 하루였다.



쿠스코 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Alejandro Velasco Astete)_0607

쿠스코-리마 구간은 버스로 22시간, 시간도 시간이지만 코스도 힘들기로 악명이 높다. (5년 전 리마에서 쉐비체를 먹고 쿠스코 가는 버스에서 지옥을 맛봤다. 구토, 두통 설사 등등 식중독인지 고산병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이런 공포 덕분에 여편님의 비행기 제안을 혼쾌히 수락했다. 쿠스코 시내 몇 개 항공사 중 Star Peru가 저렴해서 구매했다. 싼덴 다 싼 이유가 있었다.

쿠스코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공항은 꽤나 협소했다. 신공항 얘기가 아주 터무니 없는 것 아니었다.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로 갔다. 마시던 물을 버리려는데 검색대 직원이 그냥 오란다. 물이 통과되다니. 고산병의 힘인지 평화의 상징인진 모르겠다. 공항 안 대합실도 작았다. 탑승구 3,4개와 대합실, 매장 몇 개가 전부였다. 우리 비행기 알람을 기다린다. 답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1번 탑승구에 안내가 뜬다. (원래 5번인데) 갔더니 다른 항공사 직원이 있다. 스타페루 어디갔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또 다들 기다린다. 스타 페루 직원이 온다. 지금 바람이 많이 불어서 한 시간 뒤에 다시 안내한다고 한다. (밖은 멀쩡했다.) 그러다 20분 뒤 탑승하란다. 비행기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무난하게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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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을 이끌고 수크레를 떠났다. 밤버스를 타고 라파즈에 도착, 터미널에서 바로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코파카바나행 버스를 탔다. 망할 버스는 구리기도 엄청 구리면서 라파즈 외곽의 시장을 통과해 터미널을 거쳐갔다. 호수에 도착해 우리는 배를 타고, 버스는 고무 보트를 탄다. 이렇게 호수를 건너 4시간만에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코파카바나(Copacabana) & 이슬라 델 솔(Isla del Sol)_0524_0528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Titicaca) 주변에 있는 마을과 호수 안에 있는 섬이다. 호수 주변 관광지로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와 페루의 푸노가 유명하다. 호수 안에 섬이 여러 개 있는데 태양섬(Isla del Sol)이 크고 유명하다. 보통 섬에 당일치기로 갔다가 하루 안 자고 오는 것을 후회한다. 5년 전에 당일치기로 갔다가 아쉬워서 이번엔 꼭 하루를 머물고 오자고 했다. 여편님도 섬에 가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남미에 바다가 없는 나라가 둘 있는데 하나는 파라과이 그리고 하나는 여기 볼리비아. 파라과이가 이과수폭포를 브라질, 아르헨티나애 빼앗겼다는 이야길 듣고 참 짠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볼리비아는 태평양쪽에 땅이 있었는데 칠레한테 다 빼앗겼다고. 심지어 파라과이랑 전쟁해서 진 역사가 있다고 한다. 남미에서 제일 짠한 나라로 인정. 바다에 대한 꿈을 못버리고 아직 해군이 있으며 훈련을 여기 티티카카호수에서 한다고 한다. 여기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Mar para Bolivianos(볼리비아의 바다)' 찬란하게 빛나던 물비늘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By 여편님


숙박_Hostal Pizarro_더블룸_3

버스에서 내리니 좀 유명하다는 호스텔이 바로 보였다. 들어가보니 들은 가격과 다르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아 돌아섰다. 뷰가 좋아 쉐프님네가 묵었나는 숙소를 찾아갔다. 좁은 언덕을 올라간다. 마당에 라마도 있다. 300? 아침도 안준다. 예전에 묵었던 숙소는 호스텔 가격에 조식이 호텔이었다. 기억이 안난다. 그사이 가격을 재조정했을 것이다. 호수로 향하는 내리막 숙소를 둘러본다. 새로 생겨 내부도 깔끔한데 가격도 싸다. 피사로 호스텔에 묵기로 한다.

투숙객은 이틀 간 우리, 마지막 날엔 한 커플이 추가됐다. 인터넷이 볼리비아에서 가장 빨랐다. 뜨거운 물은 이틀은 성공, 마지막날엔 실패했다. 아침은 빵과 잼, 바나나(아저씨 맘대로 줬다 말았다), 인스턴트 커핀데 뜨거운 물과 수크레 시장에서 구입한 융필터로 원두 커피를 내려마셨다. 융필터가 있으니 어떤 환경에서도 뜨거운 물만 있으면 원두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었다. 아침이 늘 행복해졌다. 방과 로비에 티비도 있어서 많이 봤다. 수크레 행사에 참여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많이 봤다.


에보 Si o No

에보 모랄레스, 원주민이자 광산 노동자 출신으로 오랜 기간 볼리비아의 대통령을 맡고 있다. 볼리비아에 호감과 궁금증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마다 곳곳에 Evo Si 아니면 Evo No 라는 문구가 보였다. 또 한 번의 연임을 위한 헌법 개정을 두고 투표가 있었다. 투표 결과는 연임 반대였다.

우유니 투어 할 때가 한국 대통령 선거 기간이라 그 얘기를 했더니, 가이드 우고는 바로 좌파냐 우파냐부터 물었다. 그래서 다음날엔 에보 모랄레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너무 좋다고 했다.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 기간 동안 교통이 불편한 시골 마을에도 학교, 병원이 생겨서 삶이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단 한 명 뿐이지만 미디어에 비친 시각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그가 독재자인지 진정 안정과 발전을 위해 장기 집권을 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기회가 되면 책이나 읽어봐야 겠다.

참고_탐욕의 정치를 끝낸 리더십, 에보 모랄레스_스벤 하르텐 지음


둘러보기_Cerro Calvario & Santa Barbara

여편님이 컨디션이 안 좋은 관계로 쉬시고, 난 주변을 둘러봤다. 먼저 창밖으로 보이는 언덕을 올라갔다. 돼지가 지키는 골목길을 지나 바위길로 올라갔다. 나름 해발 사천미대에서 이뤄지는 등산이라 좀만 올라도 숨이 찼다.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는 호수와 마을의 풍경이 좋았다. 겨우 언덕을 넘어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반대편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편한 계단길이 있었다. 내려가다보니 또 반대편 언덕과 연결됐다. 추모의 성격이 강한 언덕이었다. 멀리 하늘을 바라보는 두 여인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언덕 사이로 내려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한국 청년들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고 있다. 올라가면 언덕이 두 개라고 알려줬다. 마을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둘러보기_호수를 따라

다음날 오후엔 호수를 따라 페루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중간에 툭 튀어나온 코다리에서 호수 양쪽을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았다. 선착장을 지나면 포장마차가 늘어서있고, 호텔이 몇 개 있고, 나무와 자갈밭이 쭉 늘어서있다. 더 가본다. 이런 외곽에도 히피히피한 호스텔들이 더 있다. 한 시간을 걸었다. 점점 나무가 사라지고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평범한 호수다. 뒤돌아보는 마을의 풍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코다리는 멀었다. 가도가도 생각한 전망은 나오지 않는다. 중간에 만난 서양 친구는 여기로 가면 나오냐고 묻는다. 호수 빼고 뭐가 나오겠냐. 어마어마한 호수의 크기만 절감하고 돌아왔다.


둘러보기_선착장과 센트로

해질녘 여편님과 선착장을 돌아봤다. 노을이 지니 호수도 호수지만 마을쪽을 돌아봐도 너무 아름답다. 한 아줌마가 어린 알파카 두 마리를 산책시킨다. 너무 귀엽다. 이런 귀여운 생명체가 실존하다니, 당장 여편님은 달려들어 물고 빤다. 순간 사진 5, 아줌마의 관광상품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편님은 그깟 5볼이라며 실컷 사진을 찍는다.

숙소가 밀집한 골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시장과 광장이다. 숙소에 주방이 없으니 시장에선 소박하게 과일만 사먹는다. 우체국에 엽서를 보내려고 갔다. 국제엽서가 은근 비싸다. 페루로 미루기로 했다. 각종 기념품을 파는 매장들도 많다. 여편님은 볼리비아 할망들이 주로 둘러메는 보자기를 샀다. 감자도 담고, 애기도 담고 뭐든 담아 둘러메는 용도다.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나중에 보는 애기마다 둘러멜까 걱정이다. 난 소박하게 핸드폰 담을 주머니를 샀다. 원주민 문양의 원피스를 입은 마네킹들이 신박했다.



식사_El Fogon de la cabaña

첫날 저녁 식당을 찾다 들어갔다. 오두막 컨셉이라 안에 화덕도 있다. 난 투르차(Trucha, 송어) 정식, 여편님은 파스타를 먹었다. 어느 식당에나 송어를 판다. 호수에서 잡은 것들이다. 오랜만에 즐기는 생선이다. 파스타도 넉넉히 말아준다. 다음날 저녁 다시 먹거리가 고민이다. 선착장 주변 식당들은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정전이 됐다. 안그래도 우울한데 더 어둡다. 결국 화덕이 있는 집으로 다시 갔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한참을 기다려 식사를 했다. 화덕 연기를 오래 마신 덕분에 호전됐던 여편님의 목이 다시 안 좋아졌다. 하루를 더 쉬고 태양섬으로 가기로 했다.


식사_12번 포장마차

앞서 코파카바나를 다녀간 사람들이 12번 포장마차를 추천했다. 한국인들 사이에선 이미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하루면 족하다는 코파카바나에 4일을 머물렀으니 포차를 3번이나 갔다. 장사가 잘 되는 집이라 트루차가 크긴 하다. 디아블로 양념도 맛있어서 돼지고기에 추가해서 먹기도 했다. 한 구석엔 일 년전에 이곳을 다녀간 대학교 선배의 이름도 있다. 테이크 아웃도 되길래 맥주까지 사서 숙소에서 먹었다. 병을 꼭 반납해 달라고 해서 다음날 아침 (열지 않은) 포장마차 앞에 정갈하게 두고 왔다.

한 가지 의구심은 여기가 그렇게 맛집이면 왜 현지사람들은 다른 포차에도 골고루 갈까였다. 그래봤자 한 번 먹고 떠나는 여행객들이 열 개가 넘는 포차 중에 한 군데를 최고로 꼽는 건 섯부른 일이다. 의구심만 가지는 나와 달리, 수크레에서 만난 1층 총각은 모든 포차를 다 가봤다고 한다. 다른 포차가 훨씬 맛있었다고 싸단다. 추가로 사례를 검색해보니 대충 음료수 서비스도 다 주고 맛도 거기서 거기라는 의견이다. 어쨌든 그 후로도 가는 마을마다 트루차는 우리가 배제하는 메뉴가 됐다. 십 년 먹을 송어를 이때 다 먹었다.



태양의 섬(Isla del Sol)_0527_0528

드디어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짐은 맡겨도 되지만 그냥 다 들고 갔다. 카페에 앉아서 섬으로 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마어마했다. 코파카바나는 생략하고 바로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배낭들이 광장 버스에서 내려서 우르르 배로 몰려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침부터 배를 타는 줄이 길다. 두 척에 나눠서 탄다.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서 나란히 앉아서 갔다. 멕시코, 콜롬비아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해줬다. 시간이 금방 갔다. 우린 태양 섬에서 내리고, 그 분은 달섬(Isla de luna)까지 간다고 했다.

배에서 내려서 입도료부터 내고, 삐끼를 따라 올라갔다. 짐을 다 지고 계단을 올라가려니 죽을 맛이다. 삐끼가 보여준 집은 무난했다. 호텔 단지 초입이라 우리끼리 안쪽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숙박_Las Islas_더블룸_1

나귀 똥과 거친 바닥을 올라갔다. 꾸역꾸역 올라가니 숙소가 몰려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싸다고 했는데 우린 이 정도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먼저 보이는 라스 이슬라스 호텔에 들어갔다. 공사 중이긴해도 깔끔한 식당도 끼고 있고, 방도 깔끔, 창밖으로 호수도 보이고, 마당에선 호수와 섬이 잘 어우러져 보였다. 그깟 와이파이는 안되도 하루고 가격도 무난해서 여기서 자기로 했다. (예상에 없던 뜨거운 물도 잘 나와서 샤워도 잘했다.)

점심을 먹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고 왔더니 단체가 들어온다. 몇 몇 방은 예약이 있다길래 뭔소리지 했는데 나름 잘 나가는 곳이었다. 단체가 짐을 풀기 전에 마당에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끝없는 호수와 아래 보이는 마을, 줄줄이 그어진 밭과 그 사이로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그걸 보는 개까지, 완벽한 풍경이다. 이런 풍경에서 커피가 빠질 수 없으니 또 융커피를 내리기로 한다. 식당에 가서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니 당연히 5볼이란다. 보온병 두 통을 내밀었더니 가득 채워주고선 10볼이란다. (관광지에서 괜한 공짜 친절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경제적으로 힘든 나라다. 받을 거 다 받는다고 해도 우리 돈으론 몇 백원, 몇 천원 밖에 안한다.) 융으로 내린 융가스 커피의 부드러움이 풍경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저녁과 아침 모두 숙소 식당에서 해결했다. 나가봤자 가격은 거기서 거기다. 해가 지니 숙소 식당은 롯지 분위기가 났다. 단체 손님들 덕분에 퀴노아 수프도 진하게 우러나왔고, 닭고기와 송어 모두 싱싱했다. 볼리비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해 와인도 시켰다. 조지아에서 시작해 지중해를 거쳐 칠레까지 와인을 퍼마시던 여정이 끝난 것이다. 볼리비아 와인도 나름 쏠솔했다. 저가만 먹었는데도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좀 비싼 것들 중에는 세계 와인대회에서 입상한 것들도 있단다. 아침도 간만에 든든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별 몇 개달린 숙소에서 머문 느낌이었다.


섬 둘러보기

숙소에 가방을 맡겨두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이름 이쁜 식당을 찾아갔더니 빈집이다. 대신 섬 반대편에 섬이 많은 호수 풍경을 봤다. 왠지 피자가 땡겨서 피자 파는 집으로 갔다. 일단 뷰가 좋은 곳으로 간다. 피자와 맥주를 시켰다. 섬이라 뭐든 손수 만든다. 육지에서 들어온 식재료는 당나귀들이 부지런히 나른다. 섬 곳곳에서 일하기 싫다고 징징 거리는 나귀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돌길에 박힌 똥은 덤이다.

행복하게 피자를 먹고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곳곳에 돼지와 라마가 풀을 뜯고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끝까지 올라갔다. 구조물 위에서 쉬다가 돌아왔다. 섬 반대편은 입도료를 따로 받는다고 한다. 남부와 북부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단다. 오후에 커피를 즐기고 나서는 집 아래 밭길을 걸었다. 아랫집 개군은 골목 소식이 궁금하다고 난리다. 이틀이고 삼일이고 죽치며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배가 고파 곧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은 한 시간 뒤에나 나온다고 했다. 웨하스를 사와서 입에 물고 누워서 버텼다.



다음날, 아침을 여유있게 먹고 슬렁슬렁 내려갔다. 올라올 땐 짐 때문에 몰랐는데 내려가는 길도 좋다. 한 시간 정도 배를 기다린다. 육지로 돌아왔다. 쿠스코로 가는 밤버스를 예매하고 기다렸다. 또 포차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 하나에 들어가서 느릿느릿한 와이파이를 붙잡으며 시간을 떼웠다. 한 시간 정도 여편님과 말다툼을 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건강관리를 못해서 아쉬웠던 볼리비아였다. 융가스 커피가 자라는 융가스(Los Yungas) 지역을 둘러보고 싶다또 라파즈에 Red Monkey라는 식당을 가보고 싶었다. 수크레에서 볼리비아 여자의 테드 강연을 하나 들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온갖 패스트푸드로 건강이 나빠졌다. 다시 볼리비아로 돌아와 건강한 식생활로 몸을 회복하고, 라파즈에서 야채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연 중 인상 깊은 대목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볼리비아는 다른 선진국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곧바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다.’


참고_Movimiento hacia una cocina conciente: Rebeca Santa Cruz at TEDxViaLibertad

https://www.youtube.com/watch?v=ywn9Hn_kWPI

https://www.facebook.com/redmonkeycocinaconsciente/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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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크레에서 2, 처음 한 주간 행복한 시간이 끝나고 고생길이 시작됐다.


스페인어 개인 과외_0515_0519

수크레에서 넉넉한 기간을 머물면서 스페인어도 공부하기로 했다. 볼리비아 물가가 저렴한 만큼 1:1 수업도 시간당 7달러 정도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볼리비아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말이 빠르지 않고, (페루와 마찬가지로 한 두 세대 전까지 혹은 지금까지도 케츄아어를 모어로 배우고나서 스페인어를 배워서 그런 것 같다.) 발음도 비교적 정확해 학습 여건도 나쁘지 않다. 또한 수크레엔 사법기관들과 대학교가 많아 과외가 가능한 선생님도 많은 편이다.


도착 후 며칠 뒤, 유명 학원 몇 개를 돌아봤다. Me gusta, Sucre Spanish, Spanish Friend 세 개의 학원을 방문했다.

Me gusta: 검색하면 처음에 나온다. 시내 중심에 위치, 가격은 비싼데 시설도 별로고, 수업 시간 조절도 어렵다. 홈스테이 연결해준다. 체계적으로 보인다.

Sucre Spanish: 가격은 Me gusta보다 약간 싸고, 학원 내부가 탁 트여있어서 쾌적하다. 수업 시간 조절도 자유롭다. 홈스테이 연결해준다. 체계적으로 보인다.

Spanish Friend: 학원=호스텔이다. 기숙형 학원인 셈이다. 숙소는 깔끔한 편이다. 위 두 학원보다 저렴하고, 숙소와 결합할인도 가능하다. 시간 조절도 가능했다. 대신 홈스테이는 불가능하다. 살짝 체계성이 떨어져 보인다.


파차마마의 편안함에 빠져 기숙학원, 홈스테이는 자동 탈락했다. Sucre Spanish로 마음이 기울던 중, 콘도르 카페에 가니 과외 전단지가 보인다. 연락처로 연락이 안되서 카페 직원에게 물어보니 안쪽에도 지금 과외 중인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 이름은 수아레즈, 수업료는 시간당 35(5달러)라고 했다. 여편님과 따로따로 수업하고 싶다고 하니 다른 선생님도 연결해줄 수 있다고 했다. 어디서 학원 끼는 것 보다 직접 연결하는 게 싸다고 듣긴 했다. 어차피 이 선생님들도 학원에서도 수업할게 뻔하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3시간씩, 콘도르 카페에서 우선 일주일간 진행하기로 했다.


월요일, 여편님은 수아레즈와 수업하기로 했다. 내 선생님은 Erika, 수아레즈가 꼼꼼하고 딱딱한 스타일이라면 에리카는 부드럽고 편안한 스타일이었다. 간단히 시험을 보고 레벨을 가늠한다. 다행히 내 실력은 바로 나온다. 일주일간 회화와 부족한 간접법, 가정법 등을 연습하기로 한다. 수업 교재는 꽤나 충실하게 준비되어 있다. 문법, 읽기, 어휘 등을 연습할 자료를 준다. 중간중간 관련 주제나 한국과 볼리비아 문화에 대해 얘기도 나눈다. 첫날 3시간을 하고 나니 넋이 나갔다. 내일부터 2시간씩만 하기로 했다.

여편님은 자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에리카가 몸이 안 좋아서 수업을 못한다고 했다. 겸사겸사 이날은 내가 수아레즈랑 수업하기로 했다. 수요일 다시 에리카와 수업을 하는데 이번엔 내가 감기 기운이 있었다. 한 시간만 하고 수업을 마쳤다. 목요일은 도저히 수업에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금요일에 겨우 2시간 수업을 하고 짧은 스페인어 수강이 끝났다.


짧은 수업이었지만 꽤나 효과가 있었다. 사실 여행 전, 여행 중에 나름 스페인어를 공부했지만 스페인, 아르헨티나, 칠레에선 좌절감만 느꼈다. 관광지나 식당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될 뿐 일반 사람들과 대화는 힘들었다. 다들 말이 너무 빨랐다. 결정적으로 우루과이에서 호스텔 워크어웨이를 하다가 쫓겨난게 컸다. 다행히 칠레 산티아고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자기도 여기 사람들 말을 잘 못알아 듣는다고 해서 조금 위로가 됐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에리카와 여러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한 두시간 정도 여러 주제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니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우리 여편님은 다 두 시간의 수업 만으로도 자신감이 훨씬 상승했다. 이젠 나 없이도 먼저 말 거는데 거침이 없다.



이발의 나비효과_0516_0520

사막, 건조 기후를 여행할 때는 절대 이발을 하면 안된다. 모로코에서도 머리를 잘랐다가 서핑까지 하면서 감기에 걸렸다. 사막의 겨울, 낮엔 덥고 아침엔 춥다. 선선함은 아침에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낮엔 그냥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수크레 도착 후 며칠이 지나 머리를 잘랐다. 올해 1월 모로코에서 자르고 무려 4달 만에 자른 것이다. 미용실이 몰려있는 골목에서 대충 들어갔다. 적당히 잘라달라고 했는데 거침없이 밀어버렸다. 고도가 낮아도 수크레 역시 전형적인 사막 기후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해도 낮엔 햇살이 강하다. 답답했던 머리를 자르니 시원했다. 며칠이 지나고, 언제나처럼 이웃들과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보노보노가 떠나는 날이었다. 머리가 추워서 콧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냥 자라는 여편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잤다. 아침엔 또 안되는 와이파이를 부텨잡고 창가에 앉아 스페인어 영상을 보려고 애썼다. 감기 기운이 제대로 올라왔다. 앞서 말한대로 수업에 갔다가 조퇴했다.


숙소로 돌아왔다. 기운이 없어 총각과 여편님에게 샌드위치 배송을 부탁했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다. 여편님에게 방 열쇠를 받아둘걸. 겨우 샌드위치를 물어뜯고 방에 누웠다. 두통과 오한이 밀려왔다. 오후 내내 아픔에 몸을 떨었다. 저녁에 파스타를 좀 먹고 다시 방으로 왔다. 잠이 들었다가 배고픔에 깼다. 뭔갈 먹어야 했다. 잠긴 부엌문을 열 방법이 없을까? 다행히 방에 빵과 잼이 있다. 우적우적 빵을 두 개 먹어치웠다. 잠자던 여편님이 공포영화처럼 나를 본다. 다시 잠을 잔다.

목요일엔 하루 종일 쉬었다. 아침부터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다시 누워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렇게 진하게 아파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기로 한다. 아픔의 순기능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날 외출은 시장이 전부다. 시장에서 과일주스를 먹었다. 치리모야 주스 너무 맛있다. 저녁엔 야채 부자인 도지니와 함께 닭도리탕을 만들었다. 돼지감자가 주인공이다. 퍼잤다.


금요일, 상태가 매우 호전됐다. 목감기가 남았지만 기운은 있었다. 에리카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여편님과 태국식 점심도 먹었다. 또 시장에서 주스를 먹고 돌아왔다. 도지니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물도 없이 돌아다니더니 고산병에 걸린 것이다. 우리끼리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토요일 아침이 되니 완전히 나았다. 오전에 쉬고 점심은 숙소 바로 옆 식당에서 먹었다. 노랑파랑 풍선을 달아 생일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볼리비아 아이들은 엄청 귀엽다. 전통복장과 현대식 복장이 섞인 옷을 입고 엄마와 학교를 간다. 다들 볼이 빨개서 더 귀엽다.

며칠 간 나를 극진하게 간호하던 여편님이 감기에 걸렸다. 난 한번 앓고 말았지만 이때부터 그녀는 페루까지, 이 건조한 사막 기후를 벗어날때까지 완치가 되지않아 고생했다.



타라부코 시장(Mercado de Tarabuco)_0521

일요일, 건조한 수크레 생활의 활력소로 타라부코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수크레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타라부코 마을에 일요일마다 큰 장이 선다. 주변 마을에서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마틴 말로는 아침 8시 반에 광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거나 오전 중에 외곽 미니버스 터미널에 가면 된다고 했다. 다들 게으르던 시절이라 10시쯤 집을 나섰다. 외곽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다들 더위에 녹초가 됐다. 겨우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다음 버스는 오후에나 출발한단다. 포기하고 택시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감기에서 회복한 다음주 일요일, 다시 타라부코 시장을 가기로 했다. 이제 파차마마에 남은 건 우리와 도지니뿐이었다. 안전하게 광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관광버스 한 대는 이미 예약이 찼고, 우리는 추가로 온 미니버스를 타고 갔다. 타라부코에 회의적이던 도지니는 창가에 앉아 가장 신났다. 그전까진 밤버스만 타서 이런 풍경이 처음이라고 했다. 하늘도 맑고 경치도 좋았다.


운전기사가 초행길인지 타라부코를 지나쳤다. 놀란 승객들이 맵양으로 바른길로 인도했다. 식당에 내려주면서 알아서 관람 후 1시까지 돌아오라고 했다. 기사가 헤메서 30분 늦었다며 30분 더 달라는 쇼핑족도 있다. 확연히 시골마을이라 돼지와 애기들이 골목길을 귀엽게 한다. 광장에 가니 기념품이 한 가득이다. 맘에 확 와닿는 것들은 없다. (나중에보니 대부분 다른 관광지에도 다 파는 것들이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일반 시장이다. 별에별 물건을 다 판다. 이게 좀 더 재밌다. 외곽엔 각종 물건과 야채, 과일을 싣고 온 트럭들이 줄비하다. 도지니는 벌판을 더 돌아보겠다며 헤어졌다. 안쪽엔 작은 시장 건물이 있다. 식당이 있다. 갈비탕과 파스타 비스무리한 것을 먹었다. 갈비탕이 좀만 더 뜨거웠다면 일품이었을 것이다. 돌아다니면서 곱창 구이, 감자 고로케 등을 또 먹었다.

구경을 마치고 광장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외곽에 나와 맑은 공기를 마셨다. 수크레 골목길엔 차가 많다. 오르막에 오래된 차들이 많아서 매연이 심하다. 차 없는 광장과 맑은 하늘을 음미했다. 집합 장소로 돌아가 버스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은 힘들었다. 왠지모를 기름 냄새가 계속 나왔고, 차의 매연이 창 안으로 들어왔다. 감기 기운이 남아있던 여편님이 매우 힘들어했다.


수크레 탈출_0523

원래 월요일에 가려던 걸 하루 미뤘다. 여편님의 감기가 악화됐다. 화요일에 체크 아웃을 하고, 여편님은 숙소에서 쉬면서 내가 바깥일을 처리했다. 터미널에 가서 라파즈행 티켓을 끊고, 돈도 인출하고, 시장에서 치킨(점심)도 사고, 40cm짜리 샌드위치(저녁)를 사고, 마트에 가서 Cafe Colonia de Los Yungas도 사왔다. 집 옆 수공예품 시장을 구경하던 중 유기농 볼리비아 커피가 있길래 또 하나 사고 말았다. 커피 부자가 됐다.

터미널,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타려는데 아니란다. Trans Copacabana까진 똑같은데 거긴 m어쩌구 우린 다른 거란다. 잠시 뒤에 도착한 버스는 낡아 보인다. 어찌저찌 비지니스 좌석을 개조해서 의자는 넓고 푹신하다.


Posted by C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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